• 최종편집 2023-01-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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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어원은 "인간이 만든 무늬"라는 뜻이다. 흔히 우리가 입는 옷에 그려진, 즉 인간에 의한 무늬라는 말이다. 인간과 사회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으로 문학(文)·역사(史)·철학(哲)으로 대표된다. 최근에는 법률·경제학·언어·지리 등도 포함해 인문학(人文學)으로 불린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져 버리면 그것들도 함께 없어져 버리는 것, 그것들에 대해 배우는 것이 문과이다.


반면 "理"는 "돌에 새겨진 무늬"를 말한다. 즉 자연이 그린 무늬이다. 자연계의 원리나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물리학·화학·동물학·천문학 등이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전부 사라져 버려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 그것들을 배우는 것이 이과이다.


오랫동안 철학이란 바로 앎의 추구고 그 앎은 과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문학의 사유와 과학의 실험이 합해서 진리와 진실에 다가서며 통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얼마 전까지도 자연과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불렀던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 들어 학문 분야에 변화가 생긴다. 학문이 발전하고 분화를 거듭하면서 철학과 과학이 분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학문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으로 근본적으로 구분됐다. 인문과학에서도 사회과학 등이 자립하게 된다. 철학이라는 하나의 나무에서 여러 갈래의 학문이 파생된 것이다. 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은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神學, theology)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신, The Divine, The God) 그 자체를 성경이나 이성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연구하거나 신과 관련된 교리와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방 기독교에서 쓰이는 신학(theology)이라는 낱말은 테오스(theos 신)에 로고스(logos 학문, 말)가 결합 된 단어이다. 한국어에서 특별한 수식어 없이 신학이라는 낱말을 쓸 때는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을 가리킨다. 단어 의미로는 종교적 초월자로서 신개념이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서 다루는 신에 관한 학문을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용어 그대로 기독교의 신과 율법, 교리에 대한 모든 연구이다. 좁은 의미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를 의미한다. 기독교의 성장과 함께 2-3세기부터 학문으로서 틀을 갖추기 시작해 중세시대에 유럽인의 관점에서 기독교의 신과 관련된 일체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신학이라는 용어는 원칙적으로 기독교 신학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 기독교 신학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학문체계에서의 신학 역시 흔히 기독교 신학을 가리킨다. 교파에 따라 개신교 신학, 로마 가톨릭 신학, 정교회 신학, 성공회 신학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좀 더 세밀하게 분류가 된다. 구약신학, 신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선교신학, 기독교 상담학 등으로 나뉜다. 


대학의 전통이 가장 똑바르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제도에 있어서다. 우선 첫째로, 학문의 조직체로서의 대학(university)이라고 하는 명칭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널리 조합(corporation)이나 길드를 의미하며 중세에는 그렇게 불린 공동체가 많았다. 그러므로 학도들의 공동체는 점차 한정되어 그것이 곧 "교사와 학생의 학문적 공동체 내지는 조합"(universitas societas magistrorum discipulorumque)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게 발전해 세워진 세계 최초의 대학은 1088년에 세워진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이다. 당시 유럽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인 베네치아, 볼로냐 등에 교회 자금과 세상의 온갖 물자가 몰렸다. 여기서 복잡한 "상법(商法)"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관계자들은 "상법"을 공부하기 위해 전문가를 초빙했다. 이 모임이 수사학, 논리학 등으로 범위가 넓어져 오늘날 대학이라는 근대 교육기관이 탄생했다. 


신학교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313년 유럽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보편교회 시기에 전문적인 성직자를 육성하기 위한 훈련 학교를 각 지역 교회인 콘스탄티노플, 로마, 안디옥,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교회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한 것이 기원이다. 


최초의 정식 신학교 설립 기록은 4세기 성 대 바실리우스(라틴어: Sanctus Basilius Magnus 329년 또는 330년 - 379년 1월 1일 또는 2일)의 활동으로 로마제국의 갈라티아 주의 앙키라(현재, 터키 앙카라)에 성직자 육성을 위해 학생을 모아 가르친 학교가 최초였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와 라오디케이아의 아폴리나리스 등 초기 그리스도교의 이단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니케아 신경을 지지한 유명한 신학자였다. 그는 뛰어난 신학 지식과 더불어 정치적으로도 유능한 인물로서 자신의 능력으로 니케아 신학을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그가 세운 학교들을 '신학교'(Seminary)라 했는데 라틴어로 '세미나리움'(seminarium: 씨앗을 키워 가꿈)에서 기원한 단어이다. 성직자들을 육성하는 학교의 의미로 일찍이 사용되었다. 현대적인 신학대학원의 원형은 16세기 서방교회의 종교개혁 이후 유럽 개신교에서 목사를 육성하기 위한 전문 개신교 신학교를 설립하며 나타났고, 현재의 신학대학원의 뿌리가 되었다. 그러면 한국의 장로교 선교와 신학교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미국 북장로교는 1884년, 호주 장로교는 1889년, 미국 남장로교는 1892년부터 대한제국에 선교를 시작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내한하여 선교를 시작한 초기의 장로교 선교사들은 1889년 미국 북장로교선교회와 호주 빅토리아 장로회 간의 '장로교선교연합공의회'(The United Council of Presbyterian Missions)를 결성했다. 그리고 1893년 미국 북장로교, 남장로교, 호주 장로교 소속 선교사들 간의 '장로교선교공의회'(The Council of Missions)를 결성하여 효율적인 선교 활동을 추구하였다. 이후 조선인 장로교인들이 늘어나면서 1901년 9월 20일 선교공의회 소속 선교사 25명은 조선인 3명의 장로 및 6명의 조사들과 함께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를 결성하였다. 


초창기 한국교회의 신학교육은 1890년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선교사들이 학생들을 서울로 보내 '신학반'(神學班)이라는 이름으로 1개월씩 공부시키던 과정이 있었으나 이는 단기 과정에 불과하여 체계적인 한국인 목회자 양성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후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가 신학교 설립을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1901년 5월 15일 평양에 '최초 학교의 공식명은 '대한야소교장로회신학교'(大韓耶蘇敎長老會神學校)였지만 1910년 한일합방 후 일제의 강요로 '대한' 대신에 '조선'이란 교명을 사용하였다.'를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으로는 모펫(S. A. Moffet, 한국명 마포삼열) 선교사가 취임했다. 평양 대동문 옆 술막골에 있던 마포삼열 선교사 집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한옥이었는데 1924년에 철근콘크리트 4층 건물로 증축한다.


첫 학생은 방기창·김종섭 2명이었고, 1907년 6월 제1회 졸업생으로 서경조·방기창·한석진·양전백·송인서·길선주·이기풍 등 7명을 배출하였다. 1908년 미국인 여성 맥코믹(Nettie F. Mccomick)의 기부금으로 평양 하수구리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일제가 폐교했다. 광복 후 제35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결의로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장로회신학교'로 재개교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침공(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으로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교로 개편하고 대구시 중구 대신동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다가 1953년 7월 27일 22시 (오후 9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다시 서울 중구 회현동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1955년 4월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가 인가되었다. 


1959년 장로교회는 합동과 통합이 분열하였다. WCC문제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단이 되어 서로 이탈한 것이었다. 또한 박형룡 교수의 3천만 환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총회신학교 건축기념 3천만 환을 사기당한 박형룡 교장에 대한 인책문제와 관련한 대립도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었다. 결국 승동과 연동으로 분리되었고 재결합의 노력도 있었지만 지금의 합동과 통합으로 나뉘어지는 결과가 되었다. 이들이 각기 서울의 승동교회와 연동교회에서 별도의 총회를 개최함으로서 결국 승동 측과 연동 측 즉 합동과 통합으로 분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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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백남조 장로(초대 재단 이사장)의 헌납으로 사당동 산 31-3 소재의 교사를 신축해 이전하고 1969년 12월 4년제 정규대학인 총신대학으로 개편하였다. 


2022년 9월 23일 교단 기관지와의 대담에서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총신 총장 길자연(2013.12.30 ~ 2015)과 김영우(2015.8 ~ 2018.10)로 엉클어진 총신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문제해결에서 관계자의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추구적이어야 하고 목적이 고상해야 한다. 총신대 발전을 위한 논의도 어떻게 하는 것이 총신과 교단에 유익할지를 염두에 두고 논의하고 협력해야 한다. 특히 재단이사 증원은 중요한 현안이며 총회의 결의이기도 하다. 앞으로 총신대재단이사회와 총회는 이 문제를 위해 긴밀히 소통하며 협력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이때 총회는 이해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재단은 협조의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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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성 대 바실리우스가 성직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세운 학교들을 '신학교'(Seminary)라 했는데 라틴어로 '세미나리움'(seminarium: 씨앗을 키워 가꿈)에서 기원한 단어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권순웅 총회장이 강조한 총신의 태도가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럴듯한 직업을 얻기 위해 신학을 배운다면 그건 이미 신학이 아니다. 성경과 산학을 통해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며 자기 삶을 바꾸어나갈 힘을 얻고 그것을 실천하고 전하는 것이 신학을 공부하는 목적이고 그것을 가르치고 익히게 하는 것이 총신대의 존재 이유여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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