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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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혀로 받는 상처는 칼에서 받는 상처보다 나쁘다. 영혼을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날 때쯤의 어느 날이었다. 1년 동안 나를 지켜본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나를 불러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너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공할 거다”


그 말은 내 영혼에 박혀 평생 나를 살리는 힘이 되었다. 무기징역을 받고 감옥에 있다가 탈주했던 신창원을 변호할 때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얼마나 나한테 저주 같은 말을 퍼부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학교에 가지 않았죠. 변명 같지만 선생님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주었더라면 이런 범죄인은 되지 않았을 거예요.”


선생의 말은 그의 세상을 회색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법과대학 졸업 무렵 친했던 한 교수님이 서너 명의 제자들을 앞에 놓고 이런 말을 했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술에 취하기도 하고 사랑에 취해 불륜을 저지르기도 하고 심하면 마약을 하는 경우도 있지. 그런데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수를 하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도 있고 용서받을 수 있지. 그러나 권력에 취하는 경우는 그렇지 않아. 용납되기가 힘들 거야. 그러니 자네들이 혹시 높은 자리에 가더라도 꼭 명심해야 할 거야.”


철학이 담긴 그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 교수의 제자 중에 장관들이 나왔고 대통령 후보가 배출됐다. 교수의 그 말은 권력 병을 예방하는 좋은 약이었다. 매일같이 수많은 말들이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글뿐 아니라 말버릇도 잘 배워야 한다. 삼십 대 중반 무렵 내가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근무할 때였다. 내가 수행하는 일 중의 하나는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그중 좋은 의견이 있으면 그걸 보고서로 써서 대통령에게 올리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쓰라는 지시였다. 내가 보좌하는 직속 상관은 인품이 훌륭한 분이었다. 그는 내게 말에 대해 이렇게 의견을 얘기했다. 


“사람은 잘 듣는 재능을 가져야 하지. 잘 듣는 게 말을 잘 하는 거니까. 대화를 해야 할 때는 속칭 ‘일이삼 대화법’을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아. 하나를 말하면 그 두 배를 듣고 그 사이에 상대방을 세 번 칭찬해 준다는 기분으로 말을 하는 거지. 더러 상대방이 경계하고 멋쩍어하면 그때는 자네가 말하면서 먼저 마음을 열어야지. 더러 상대방이 말할 소재가 머릿속에 없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경우에는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자네가 70퍼센트 이상을 말할 수도 있어.”


남과의 대화가 그렇게 시간과 소재 그리고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신중하게 기획되는 것인지 처음 알았었다. 상관은 말을 들으면서 인재와 쓰레기를 감별하는 법도 이렇게 가르쳤다.


“모든 게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사람,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말만 떠오르는 대로 하는 사람, 흑백논리에 젖어 모든 걸 하나로 싸잡아 말하는 사람, 자네를 자기 뜻대로 조정하려고 위선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존재야. 그런 말은 속으로 무시해도 돼.”


그 후로도 말을 파는 변호사로 수십 년 세월을 살아왔다. 지식인 단체인 대한변협의 말의 창구 노릇을 2년 동안 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말 한마디 때문에 엄청난 고난을 받기도 했다. 이사야의 예언도 바울의 전도도 혀를 사용해서 한 것이다. 또 발람의 저주도 유다의 반역도 혀를 사용한 것이다. 나는 그 어느 쪽인지 모른다. 주관적인 나의 생각으로는 바른 말이었지만 언론계 사람들의 심정을 상하게 한 것 같다. 뉴스로 신문 시사로 칼럼으로 사설로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말은 경우에 따라 심한 매도 감수해야 하는 걸 알았다. 나는 요즈음 생각한다. 완전한 사람이란 누구일까? 혀를 잘 지배하고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는 말이 있고 살리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의 영혼에 꽃을 피우는 그런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요즈음 나의 입은 가급적 남을 칭찬하는 데 사용한다. 그렇지만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한다. 많은 말 중의 꽃 같은 말은 감사하다는 말인 것 같다. 그 말은 평화와 온유의 단 꿀이기 때문이다.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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