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0-02(일)
 

20220712 자유 복지 국가 시민의 삶-web.jpg

 

자유 복지 국가 시민의 삶


어제는 바닷가의 이웃에 사는 노인 서너 명과 승합차를 타고 놀러 갔었다. 정년퇴직한 회사원도 있고 중학교 선생님도 있었다. 나 같이 바닷가에서 여생을 즐기려고 옮겨온 사람들 같았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옆에 앉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저는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평생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했어요. 마지막에 임금피크제가 실시됐는데 내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월급이 3분의 1로 깎인 거예요. 평생을 일하면서 급료가 차츰 올라갔었는데 갑자기 월급이 신입사원보다도 못하게 된 거예요. 차라리 나가서 쉬자 하는 마음을 먹고 퇴직을 했어요.”


표현은 안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았다. 모든 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제도의 취지 중에는 회사를 나갈 사람에게 그나마 계속 일을 하게 해 준다는 선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감사보다는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게 인간인가 보다. 얼마 전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기 시작한 오십대 중반인 중견 기자한테서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아파트 경비원을 봅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그 경비원만큼도 월급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더라구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가 받는 급료만큼이 자신의 가치가 되는 것 같다. 자기를 상품으로 내놓고 파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태백으로 가는 길의 차 안에서 앞에 앉은 노인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는 젊은 시절 중동의 건설 공사장에서 오랫동안 일했어요. 외화통제가 심한 시대라 한사람이 해외에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달러가 이삼백 불이었어요. 백 불짜리 한 장만 따로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죠. 뜨거운 사막의 공사장에서 일했는데 물을 사 먹는다는 걸 그때 우리는 생각도 못했어요. 돈이 아까워서 물을 안 사먹었죠. 대신 공사장 한구석에 있는 파이프에서 나오는 녹물을 마셨죠. 공동식당에서 주는 대로 먹었는데 김치는 꿈도 못 꿨어요. 해외에서 달러를 우리가 몰래 쓸까 봐 돈을 주지 않았어요. 바로 국내의 가족통장에 입금되는 시스템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잠시 귀국할 때는 선물을 사가야 하잖아요. 돈은 없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계를 조직하기도 했어요. 귀국하는 사람에게 곗돈으로 밀어주는 거죠.”


그의 말을 들으면서 타는 듯한 하얀 빛을 뿜는 태양과 모래바람 속에서 소금기 절은 작업복을 입은 채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 노동법에는 시간 외 작업이나 야간작업은 한 시간을 더 일해도 두 시간 세 시간 일한 걸로 쳐주는 거예요. 그러니 눈에 불을 켜고 잠을 안 자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렇게 일하니까 하루에 서른일곱 시간의 실적을 올린 사람도 있고 마흔 시간 일했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국내에 들어와서 서른일곱 시간 마흔 시간의 야간근무실적을 내놓고 수당을 달라고 했더니 담당자가 되묻는 거예요. 하루가 몇 시간이냐고. 그래서 스물네 시간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왜 하루를 서른일곱 시간, 마흔 시간으로 쳐서 돈을 달래는 거냐고 따지더라구요. 중동의 노동법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죽도록 일만 했죠.”


그건 노동자를 속이는 교활한 방법 같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 노인은 세상은 의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다음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한국에서 중동으로 배가 다니기 시작했어요. 한국산 공사 자재를 싣고 오는 거죠. 그 배를 통해서 김치와 통조림이 왔어요. 그때 우리가 느낀 기쁨은 말도 못 했어요. 인생 팔십 가까이 살아보니까 그런대로 우리 세대는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착실하게 돈을 모아 아파트 한 채씩은 마련하고 아이들 교육을 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노후도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 부부는 실버타운을 알아보고 들어왔어요. 실버타운은 아내를 일에서 해방 시켜 주더라구요. 부부가 매일 파크 골프를 하고 낚시도 하고 이렇게 놀러 다닐 수 있으니까요. 실버타운을 예전의 궁색한 늙은이들에게 공짜 밥을 먹여주는 양로원으로 착각하는 친구들 중에는 나보고 거기 면회는 되니 밥은 제대로 얻어먹니 하고 걱정해 주는 경우도 있어요. 현실을 몰라서 그렇죠.”


나이 먹은 이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들의 삶 자체가 한 권의 살아있는 책이다. 나는 그 노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시대 산업화의 전형적인 인물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서민이 어떻게 살아야 자유 복지 국가가 되는지 그 표본을 본 것 같았다. 젊어서 평생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는다. 일터가 삶의 터이고 수행터이다. 땀 흘린 노동으로 감사의 밥을 먹는다. 부당한 압력에 시민이 무릎을 꿇지 않는다. 인생의 황혼이 오면 밤이 될 때까지 힐링의 시간을 가진다. 그런 세상이 우리가 가야 할 자유 복지사회가 아닐까. 

 

2022-07-20

 

엄상익의 미셀러니 1 - 네모칸 속 나의 인생 표지.JPG

태그

전체댓글 0

  • 05547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엄상익의 미셀러니_ 자유 복지 국가 시민의 삶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