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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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돈을 받고 명성 획득

소강석 맨돈 뿌리고 감투 획득

소강석 비판 손보고 고소하겠다

그들이 맨입으로 그렇게 하겠나

회개하고 돌이키면 맨입으로 될 일인데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하고 있는 축구선수 손흥민(30)이 아시아인 최초로 EPL 득점왕에 올랐다. 손흥민 경기를 본 사람들 중엔 경기가 끝난 후에도 기쁨으로 잠 못 이룬 이들이 많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경기 시작 직후부터 수천 개의 관련 글이 올라왔다. “손흥민은 우리의 자부심이다” “손흥민 유니폼 오늘부터 가보” 등의 반응이 나왔다.


손흥민은 23일(한국 시각) 영국 노퍽주의 노리치에 위치한 캐로우 로드에서 열린 노리치 시티와의 2021∼2022시즌 최종전에서 후반에 2골을 넣어 EPL 득점왕이 됐다.


‘디씨인사이드’ 해외축구 갤러리에 올라온 토트넘 라커룸에서의 손흥민 연설 영상은 공감 600여 개를 받았고, 유튜브에도 손흥민이 골을 넣는 영상에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리고 있다. 오전 9시 기준 11만 명이 본 ‘손흥민 멀티 골, 득점왕 등극, 최종전 5대0 완승에 미쳐버린 현지 팬들 반응’이란 제목의 영상. “월드컵 4강 이후 최고의 경기였다” “아시아 최초 득점왕이라니 맙소사” 등 댓글이 달렸다.


손흥민(30·토트넘)에겐 세 살 위 형이 있다. 형제가 어릴 적 탱탱 볼 빼앗기를 하고 놀다가 형의 손가락이 꺾인 적이 있다. 둘 사이에 떨어진 공을 먼저 차지하려고 형은 손을 뻗었는데 동생은 킥을 날렸다. 동생이 날린 킥에 형의 손가락이 뒤로 넘어간 것이다. 손흥민은 어릴 때부터 둥글게 생긴 것만 보면 뭐든 발로 차고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작종이 울린 뒤 교실에 가장 늦게 들어오는 아이가 손흥민이었다. 10분간의 쉬는 시간마다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고 수업 종이 울린 뒤에야 다시 공을 들고 교실로 향했다.


“할 때마다 내가 제일 잘했다. 친구들을 쉽게 제쳤다. 달리기도 내가 제일 빨랐다.” 손흥민은 자신이 쓴 글에서 초등학교 때 축구 실력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항상 이기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고 했다.


손흥민이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 빅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잘나가는 ‘월드 클래스’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들 때 종종 거론되는 얘기들이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워낙 좋아했고 또 잘하다 보니 축구에 빠져 살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따라붙는 것이 프로축구 선수였던 아버지한테서 재능을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손축구아카데미 감독(60)은 프로축구 현대호랑이(현 울산현대)와 일화천마(현 성남FC)에서 뛰었고 국가대표 2군으로 선발된 적도 있는데 아킬레스건 부상 때문에 이른 나이인 28세에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손흥민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빠른 스피드와 함께 양발을 모두 잘 쓰는 것이다. 손흥민이 원래는 오른발잡이지만 왼발도 잘 사용하는 선수인 것처럼 소개될 때가 있는데 이제는 양발잡이로 보는 게 맞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땐 오른발잡이였겠지만 지금처럼 왼발도 잘 쓰면 양발잡이 선수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기 시작한 2015∼2016시즌 이후 16일까지 모두 91골을 넣었는데 오른발로 49골, 왼발로 38골, 머리로 4골을 기록했다. 오른발 골이 더 많기는 하지만 대개의 오른발잡이 선수들보다 왼발 골 비율(41.8%)이 훨씬 높은 편이다. 특히 이번 시즌 들어 기록한 21골 중에는 왼발로 넣은 골이 12골로 오른발(9골)보다 더 많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53)이 손흥민에게 “네가 잘 쓰는 발이 오른발이냐 왼발이냐” 하고 물으며 궁금해했던 것도 이런 수치들 때문이다. 유럽의 축구전문 매체나 축구통계 사이트에 올라 있는 손흥민의 프로필을 봐도 ‘two-footed player(양발잡이 선수)’라고 표시되어있는 곳이 적지 않다. 


손흥민은 자신이 지금처럼 양발을 잘 쓸 수 있게 된 것을 두고 ‘절대 타고난 게 아니라 혹독한 훈련의 결과’라고 얘기한다. 손흥민은 아버지한테서 축구를 처음 배웠는데 지도 방식이 엄하고 혹독했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접은 아버지는 축구가 얼마나 힘든 운동인 줄을 잘 알았기 때문에 아들에게 특히 엄했고 강하게 단련시키고 싶어 했다. 운동장 인근을 지나던 한 할머니가 아버지와 훈련 중이던 손흥민을 보고서 경찰서에 신고하려 했던 일이 있을 정도다. 어린아이를 너무 심하게 혼내는 것을 보고 의붓아버지가 아이를 혹사시키는 것으로 여긴 이들도 있다고 한다.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프로 데뷔를 한 2010∼2011시즌을 마치고 오프 시즌에 한국으로 왔다. 손흥민은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손흥민에겐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의 말 그대로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흥민은 5주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000개의 슈팅을 때려야 했다. 오른발로 500개, 왼발로 500개였다. 당시 손흥민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중고교 학생 선수도 아니고 유럽축구 5대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이 정도로 훈련을 한다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은 믿기가 어렵다. 손흥민은 지금의 양발 슈팅 능력과 세계 톱클래스로 평가받는 슈팅 정확도가 이때의 훈련에서부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손흥민은 왼발을 조금이라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양말을 신을 때도 항상 왼발부터 신었다고 한다.


손흥민처럼 맨몸 맨손 맨땅에서 맨땀과 맨믿음으로 일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소강석이다. 그런데 그는 이제 총회장 한기총 대표회장 3연패 칼빈대 총신대 총장 갈취한 길자연을 돕고 방기한 뒤 총신대재단이사장과 총장을 편취한 김영우를 뛰어넘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맨돈으로 선거법을 개악해 60세 이전에 보수 대표 교단 합동총회 총회장을 차지하고 쥐뿔 아무것도 없었다. 감투에 중독된 것인지 에덴의 그 뱀에 홀린 것인지 이제 60세라서 그런 것인지 교계 연합 들먹이며 맨돈으로 한기총 대표회장을 차지할 요량으로 동분서주한다. 그런 와중에도 유유상종인지 김영우가 축사하는 길자연 팔순 잔치에 시인이랍시고 축시 지어 바쳤다. 염치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뭘 몰라서인지 그런 행태를 버젓이 기사로 내보내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 어줍잖은 기사로 그런 추태를 알기는 했지만...


봄날과 여름날의 경계에서 믿음은 떠났고 총회 봄날과 총신 여름날의 경계인 맨돈 소강석은 경계를 넘나들며 남아 있다. 봄은 사라져도 남는 맨돈으로 부패를 남기는 사람은 총신의 전통을 겪은 적 없이 총신재단이사장이 되려던 맨돈 소강석뿐이다. 김영우를 뛰어넘는 무모함이다. 김영우는 단돈 2천만 원을 박무용에게 건넨 것 때문에 법정 구속돼 총장직이 물거품이 된 인물이다. 맨돈 소강석도 모든 명예와 감투가 물거품이 될 수 있으니 맨돈 뿌리기를 50억 클럽 설립자 같은 이재명처럼 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벚꽃처럼 총신 지는 걸 보니

한강 흐르는 광나루 장신이 좋아

푸른 강 장신 좋아하다 보니

푸른 숲 총신마저 좋아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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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83846
가ㅡ즈

예수믿어도 열등감 충만한 인간들이 버릇을 못고친다 외모로 밀리고 학력으로 밀리고 무식으로 밀리니 조금이라도 권세있다 싶으면 아부충만해서 인맥잡고 싶은 그 더러움이란 소새끼만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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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과 소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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