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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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의 작은 책방


나는 젊어서부터 바닷가 마을에 작은 책방을 하고 싶었다.


잔잔한 명상의 분위기가 안팎으로 출렁이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작은 공간 안에 있는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굶어 죽을 게 두려워 낭만에 그쳤다. 칠십 고개를 넘어선 요즈음 묵호 근처 바닷가 마을로 와서 산다. 뒤늦게 반 발자국쯤의 용기를 내 삶의 장소를 옮긴 것이다. 서울의 한 친구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묵호에 ‘잔잔하게’라는 아주 작은 책방이 있다네. 여행작가인 부인과 사진작가인 남편이 차렸다는 미니서점이야. 지나가는 길에 들러 봐>


순간 나는 참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꿈에 그쳤고 그들은 현실로 만든 것이다. 며칠 후 나는 발품을 팔아 그 작은 서점을 찾아갔다. 낡은 건물의 일부분을 빌린 간판도 붙이지 않은 서점이었다.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소박하고 깔끔한 서가에는 크고 작은 하얀 책들이 꽂혀있고 그 사이사이에 앙증맞은 외국의 인형들이 서 있기도 하고 앉아있기도 했다. 구석의 아날로그 턴테이블 위에는 진홍색의 엘피판이 흘러간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서점 곳곳에 주인 부부의 꿈이 신선하게 묻어있었다. 내가 서가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삼십 대 말이나 갓 사십 대쯤의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커피도 주는 것 같았다. 구석에는 작은 탁자가 있었고 앞뒤로 의자가 놓여있었다. 향기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자연스레 그와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이런 서점을 하게 됐어요? 나도 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어려서부터 그냥 서점의 주인이 되고 싶었어요. 유럽 같은 곳에 여행을 할 때 골목 안 작은 서점이 참 평화로워 보였어요. 고양이는 꼬리를 길게 세우고 무료한 듯이 서가 사이를 걸어가고 구석에 앉은 주인은 세월을 낚으면서 앉아있는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그냥 그걸 실행해 본 거죠. 아내와 십 년 정도 같이 세계여행을 했어요. 인도에서도 몇 년 살았죠.”


그들 부부는 이미 차원이 다른 정신세계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책 속의 희랍인 조르바 같이 평안해 보이는 얼굴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에 대한 아무런 근심이 없어 보였다. 그게 젊음의 특권인가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철저히 물질의 노예였다. 굶어 죽는 데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 아파트와 자동차가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철학이 결여된 일개미였다. 일에 중독이 되어 먹이를 가져다 저장만 할 뿐 사용할 줄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힘이 빠져 죽었다.


“요즈음 같은 시대에 종이책이 팔립니까?”


내가 물었다. 스마트 폰으로 전자책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종이책은 사멸할 운명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모든 걸 이익으로만 보는 나의 습관적인 시각이었다.


“여기서 작은 서점을 해보니까 저녁 무렵이면 시장을 보고 돌아가는 부인들이 책을 한 권씩 사서 장바구니에 넣고 가요. 의외였어요. 오래된 바닷가 도시 사람들에게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되네요. 이 작은 서점에서 종이책을 팔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순간 나는 말실수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세상을 보고 서점을 낸 철학 자체가 상업적 논리를 떠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통속적이고 물질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잣대로 남을 생각하는 데에 실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많은 걱정들을 해주세요. 독특한 음식이나 차를 팔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책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호기심에 와서 책을 산 사람이 다시 서점에 들리기는 쉽지 않다는 거죠. 종이책을 배낭에 넣으면 짐이 되기도 하니까요. 어떤 분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업종을 해보라는 분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이렇게 살아볼 겁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현상 뒤에 있는 그들의 어떤 깨달음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들은 이미 가난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아니었다. 물질 너머의 어떤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자기는 머리를 누일 곳조차 없다고 했다. 자신의 무소유를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먹고살 것을 걱정하는 인간은 까마귀보다 못한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걱정하지 않는 주의라고 할까. 그는 인간이 걱정할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단 한 가지라고 했다. 그것만 생각하면 나머지는 그분이 줄 것이라고 했다.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생각하던 젊은 책방 주인이 내게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조금 전에 제가 성공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해 주셨는데 성공한 저의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순간 젊은 그가 자신의 철학을 질문형식으로 에둘러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잠시 다시 생각한 후에 이렇게 고쳐서 대답했다.


“세월이 가고 내 나이같이 되어서도 오래된 이 작은 서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잔잔하게 늙어가는 건 아닐까요?”


깨달음을 얻은 은자로서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란 그런 깨달음과 마음의 평안이 아닐까.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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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미셀러니_ 묵호의 작은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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