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엄상익 초상화 580px-web.jpg

 

화가 날 때 

 

한 절도범이 내게 물었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양심이 아프다고 하는데 저는 왜 그 양심이라는 게 아프지를 않죠? 아무렇지도 않아요. 판사 앞에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는 차라리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 말속에서 이미 그의 잠자는 양심이 기지개를 펴고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하다가 걸린 강간범과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왜 강간을 하면 나쁘죠?”


그가 내게 물었다. 그는 아무런 죄의식조차 없이 범행해 왔던 것 같다. 그의 표정을 살폈다. 상식을 벗어난 질문이지만 그는 진지했다. 신중하게 대답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딸이 있죠?”


내가 되물었다.


“있어요”


“어떤 놈이 집에 몰래 들어와 아내와 딸에게 당신이 한 짓 그대로 했다고 상상해 봐요. 당신 같으면 그놈에게 어떻게 할 것 같아요?”


그는 잠시 그런 장면을 상상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면서 흥분하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바로 즉석에서 때려죽이겠어요.”


그의 눈동자가 분노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그가 하는 강간은 재미있는 놀이였던 것 같다. 그런 피해가 자신의 일이 되니까 비로소 강간이 범죄인지를 느끼는 것 같았다. 범죄인들이 대부분 극한적인 이기주의자였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벌레같이 죽이기도 했다. 내가 강간범에게 말했다.


“처참하게 맞아 죽지 않고 이렇게 감옥에 앉아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법의 혜택 아닐까요?”


“------”


그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말을 일부는 납득하는 눈치였다.


여러 명을 죽인 잔인한 살인범을 만난 적이 있었다. 껍데기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눈동자에서 나는 파충류를 보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다섯 명만 죽였다고 불었는데 사실 죽인 사람들이 더 있어요. 그중 두 명은 내가 쓰레기 하치장 밑에 묻어뒀는데 그것까지 알려줘야 할까? 그냥 가만히 있을까?”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에게 분통이 터져서 내뱉었다.


“야 이 살인범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 말을 들은 그의 눈에서 순간 불이 번쩍했다. 둘만 있는 교도소의 작은 방이었다. 교도관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가 당장이라도 내 목을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지면서 내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살인을 했더라도 살인범이라고 직접 말하다니? 변호사가 그래도 되니?”


“살인을 했으면 살인범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지 않니? 너는 강도범이기도 하잖아? 아니야?”


내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35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본 세상 밑바닥이었다. 그들에게 도덕이나 윤리는 없었다. 하나님의 음성이나 양심의 명령이라는 게 있을 턱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타락의 밑바닥이었다. 


성경 속의 예언자는 말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고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는 그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변호사 생활 35년 동안 나는 항상 분노했다. 감옥에 가서 그 안에 있는 흉악범들과 싸우면서 화를 냈다. 법정에서 거짓말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했다. 사무실을 찾아와서 잔꾀를 부려 탈법이나 불법을 행해 달라는 사람들에게 성을 냈다. 화를 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었다. 화를 낼 때 나는 지옥의 변두리를 서성거렸다. 악마를 닮는 것이다. 하늘의 고요를 떠나서 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이 세상에서 성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의가 공공연히 짓밟힐 때, 무고한 이가 학대를 당할 때 성을 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통을 참고 성을 내야 했다. 내가 강도라고 직접 욕한 살인범에게서 뒤늦게 받은 편지의 이런 문장을 아직도 기억한다.


‘변호사까지 나를 두려워하면서 비위를 맞추곤 했습니다. 나에게 강도라고 살인범이라고 직접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내 말이 그에게 어떤 자극이었던 것 같다. 강간범과 그 가족은 시편 23장을 천 번 썼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내준 숙제였다. 나는 성경 속에서 화를 내는 방법을 배웠다. 성내야 할 경우 예수처럼 성을 내야 했다. 성내자마자 용서하고 저주했던 입으로 곧 입 맞추고 때린 손으로 곧 치료해 주고 말이다. 그렇게 해야 악마가 분노의 틈을 타지 못하는 것 같다.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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