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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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유


나와 친한 가구점 사장이 있다. 특별한 학력이나 경력은 없는 분 같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지게를 졌다고 했다. 그에게서 지게 철학을 들었다. 누구든 무거운 걸 지고 걸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내려놓을 때 균형을 잡지 못하면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게 지는 걸 인생에 비유해 내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형님같이 모시는 분이다. 그는 평생을 가구점만 하고 살았다. 중풍에 걸려 나이 팔십인 지금까지 고생하면서도 가구점 구석방에 출근해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는 항상 근심 걱정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얼굴이었다. 외환 위기 시절 가구점들이 도산해도 그는 평안한 표정이었다. 부하직원이 서류를 빼돌려 협박해도 개의치 않았다. 빼돌린 서류가 세무서와 수사기관에 접수되어 그가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가 조사관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탈세한 게 맞습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고 해도 내 능력으로는 어느 정도의 탈세를 하지 않고는 가구점을 꾸려갈 수 없었어요. 처벌을 받겠습니다. 이제 가구점 문을 닫을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는 파멸의 공포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살려고 하니까 문제지 죽으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태도였다.


언젠가 그의 이런 말에 감명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나는 가방끈이 짧아요. 그래서 항상 판검사 같은 사람들을 보면 주눅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순간에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어요. 너는 내가 인정하는데 그까짓 판검사가 다 뭐냐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강한 자부심이 솟아올랐어요. 대통령의 임명장이나 옛날 왕의 교지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는데 내가 그 앞에서 위축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날 이후 어디를 가도 당당해졌어요. 열등의식의 속박으로부터 참자유를 얻은 거죠.”


그의 말에 귀중한 의미가 있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감옥 안에서 또 다른 자유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징역을 30년째 살고 있는 죄수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철창과 콘크리트 벽이 저를 가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저의 영혼만 자유로우면 벽이 두껍고 얇고 감옥 안에 있고 감옥 밖에 있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영혼의 자유를 한 번 변호사님도 얻어 보세요. 그러면 이 세상의 부자유나 속박이나 압제를 개의치 않게 되실 거예요. 정치적인 압제나 사회적인 속박에 대해서 무관심해질 수 있을걸요”


진리의 말이었다. 가구점 사장이나 교도소 안의 죄수가 말하는 자유는 내가 법에서 배운 자유가 아니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하늘이 주는 자유 같았다. 법이 아무리 자유를 허용해도 인간은 본능에 속박되어있는 존재다. 아무리 위선을 부려도 인간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인간은 일생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노예가 된 존재다. 내가 아는 목사가 자기의 이런 경험을 내게 얘기해 준 적이 있다. 


“내가 20일 동안 금식을 하고 기도한 적이 있어요. 며칠이 지나니까 기분이 몽롱해지고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았어요. 더 시간이 흐르니까 고통이 없어지고 환희가 오더라구요. 죽는 순간의 고통을 걱정들 하는데 인디언들도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음식을 스스로 끊어버린다고 하잖아요? 마지막이 되면 맹수가 와서 살을 뜯어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한대요. 죽음이 다가왔을 때 병원 응급실로 가서 관을 주렁주렁 달지 마세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음식을 끊으세요. 그 각오를 가지면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의지가 대단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나는 한없는 겁쟁이인 걸 확인했다. 근래에 특이한 체험을 했다. 삼척 부근의 실버타운에 묵다가 산불의 중심에 있게 됐다. 한밤중에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과 누런 연기를 보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인생 칠십이면 꽤 많은 세월을 확보했는데도 나는 살고 싶었다. 죽어도 타죽는 고통은 싫었다. 꽤 고통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죽음에서의 자유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법이 주는 자유에 대해 배웠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헌법 자유권을 금과옥조로 삼았다.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까 법보다 높은 차원의 자유가 있는 것 같다. 그 자유는 멋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정치적인 자유, 신체의 자유도 아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세상에 온 것은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참자유가 있는 것 같다.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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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미셀러니_ 참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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