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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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된 페인트공


캐나다대사관에 일이 있어 민원대기실 의자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내 옆에 다리를 저는 초라한 옷차림의 한국여성과 삼십 대쯤의 백인 남성이 함께 앉아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그들은 부부 같아 보였다. 낡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백인 남성도 소박한 모습이었다. 무료하게 기다리는 순간 옆에 앉았던 그 여성과 몇 마디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여기 이 사람을 서울올림픽이 있던 88년에 마닐라에서 만났어요.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일 때문에 거기 가게 됐어요. 당시 마닐라 길거리에는 버려진 아이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고 자라는 거예요. 너무 비참했어요. 그런데 옆에 있는 이 남자가 그런 아이들을 열 명 정도 모아놓고 돌보는 거예요. 그게 인연이 돼서 함께 일하게 됐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들 부부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의 눈이 둘 다 맑은 샘물같이 투명하고 순수해 보였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이 남자는 캐나다에서 페인트공을 했었는데 돈을 모아 세계 일주를 하는 게 꿈이었대요. 캐나다는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너무 심심했대요. 그래서 여행을 하다가 정착한 곳이 마닐라였대요. 거기서 버려진 아이들을 보니까 도저히 그냥 갈 수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곳에 주저앉아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거죠. 우리가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됐어요. 지금까지 10년 동안 함께 아이들을 돌봤는데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티도 안 나고 말이죠.”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나의 마음 기슭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 속에 섞여서 티도 나지 않으면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의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도 그런 흉내를 내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일월의 얼어붙을 것 같은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밤이었다. 갑자기 노숙자시설에서 일하는 목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노숙자 한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치료비와 수술비 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다. 늦은 시각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가량 가서 입원 수속을 도와주고 병자를 만났다. 거의 죽어가는 노숙자와 몇 마디 대화를 했는데 갑자기 불쾌한 기분이 확 들었다. 그 노숙자는 나를 ‘앰블런스 로이어’ 같이 취급하면서 경계했다. 변호사 중에는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를 찾아가서 사건을 수임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다. 몹시 불쾌해 지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해야지?’라는 회의가 들었다. 가난하다고 착한 건 아니었다. 죽어가면서도 뒤틀린 영혼들이 존재했다. 한밤중에 병원을 나와 부근의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을 앞에 놓고 나를 부른 목사와 대화를 했다.


“도대체 내가 밤늦게 피곤하게 와서 모르는 저 사람을 도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의인도 아니고 말이죠.”


의인과 악인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사회가 의인이라고 칭찬해도 의인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매스컴이 악인이라고 돌을 던져도 변호를 하면서 직접 만나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한밤중에 보증을 위해 왔다가 실망한 나 자신조차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마음속에 허영과 위선으로 온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앞에 앉은 목사가 차분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은 세상의 잣대와 인과율을 가지고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셔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추운 날 밤에 힘든 걸 무릅쓰고 이 변두리 병원까지 와서 전혀 모르는 노숙자의 수술비 보증까지 서 줬는데 돌아오는 게 의심의 눈길이니까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수만 명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사람을 바라보고 그 보답을 생각하고 일을 한다면 절망합니다. 의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뭡니까? 뭐가 그렇게 만듭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탐욕이라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의인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죄인입니다. 도덕이나 명예욕, 공명심으로 만들어지는 의인은 위선입니다. 저는 성령에 들씌워야 의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영적인 재창조의 체험이라고 할까요. 저는 하늘에 있는 그분을 보고 이 일을 했습니다. 변호사님은 아까 그 사람을 보고 일을 하셨습니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있는 그분은 동시에 내면에 성령으로 존재합니다. 성령이 나를 도구로 이런 일을 하게 합니다. 성령이 내가 섭섭해하지 않도록 마음을 만지십니다. 또 내가 이 추운 밤에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게 만들어주시죠. 그리고 저 사람을 용서하게 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것도 내가 아니라 나를 장악하고 있는 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인간의 능력이나 도덕만으로는 진짜 의인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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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미셀러니_ 의인이 된 페인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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