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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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불량품

 

나는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다. 성경도 관련된 서적도 많이 읽었다. 한동안 미쳐서 기도원도 다니고 산의 바위 위에서 기도한 적도 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에 대해 죽으라고 한다. 욕망을 벗어나라고 한다. 진리는 공통된 것 같다. 다른 종교도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도 끊어버려야 그 순간 깨달음이 온다고 했다. 종교적 인간이 되려고 할수록 내면에서의 저항은 몇십 배 몇백 배 강했다. 나는 그 반대의 인간이 분명하다.


변호사인 나는 좁고 전문적인 지식은 있다. 약간의 이상도 있다. 문학을 사랑하고 현세를 중하게 여긴다. 나의 중심은 항상 자기다. 자기 발전, 자기 수양, 자아의 실현 등 무엇이든지 자기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에 대해 죽은 자가 아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다. 자기는 더욱더 펄펄 살아났다. 나는 나의 욕망을 벗어나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참여하는 척해도 그 속에는 참여하는 모습의 위선적인 내가 들어있었다. 나는 오히려 하나님이 내 사업에 협조하게 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말을 빌려서 내 의견을 관철하려고 했다. 내 의견과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만 하나님을 믿는 것 같다. 하나님의 뜻이 나와 맞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하나님의 교훈을 굽혀서 내 의견에 맞추려고도 했었다. 하나님을 위에 모시고 도를 자기 밖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깨뜨려주시거나 나를 죽여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아가 죽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나에 대해 털끝만치도 의심하지 않고 만사에 내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나 자신만의 도덕이 있고 나의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있었다. 나의 내면은 그런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이따금 씩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종교학자나 자칭 사상가라고 하는 동양학자의 인터뷰를 보곤 한다. 그들에게서 또 다른 종교적 교만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구원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구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를 그리스도 위에 놓고 그리스도를 비평했다. 그들은 선악을 아는 나무 열매를 먹고 눈이 열려 하나님처럼 된 것 같았다.


나는 다섯 살 무렵 동네 아이를 따라 예배당을 갔었다. 성경 한 구절을 외우면 사탕을 준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외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


여덟 살 무렵 방학이면 강원도 깊은 산골 초가집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창고 같은 산촌의 예배당은 좋았다. 마룻바닥에 앉아 서울에서 온 젊은 전도사들이 얘기해주는 소공자, 소공녀 얘기를 넋을 잃고 들었다. 이십 대쯤이었던 젊은 선생님이 헤어질 때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 따뜻하고 훈훈한 느낌이 칠십 고개가 다가온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법을 공부한 지 거의 10년 가까이 될 때였다. 친했던 다른 친구들은 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만 실패자로 혼자 남았다. 상대적으로 좌절감이 더했다. 혼자만 깊은 나락에 떨어져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새벽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에 별이 총총히 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어두운 골짜기에 있던 내게 그분은 밧줄을 내려주었다. 그때 고시에 합격했다. 혼자 피켈을 박으면서 암벽을 올라간 친구들은 모두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능력이 없는 나는 그분이 불쌍하게 생각해서 내려준 밧줄을 타고 간신히 살아났다. 그때 무엇을 하더라도 평생 감사하며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위선과 욕망의 껍질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책상 앞 벽 위에 붙은 십자가에 예수님이 비참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다. 예수님은 같이 매달릴 자신이 없으면 그냥 나를 바라보기만 하라고 하는 것 같다. 토기장이에 비유되는 하나님은 왜 나같이 의지가 약한 불량품을 만들어 던져놨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망치로 깨서 버리지도 않은 것 같다. 나는 땅에 속하지도 못하고 하늘에 속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줄을 던져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 같다.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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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미셀러니_ 믿음의 불량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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