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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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직관하는 재능

 

퇴직을 한 후 그는 지리산 골짜기의 낡은 빈집을 얻어 십 년이 넘게 혼자 살고 있었다. 요즈음은 시골의 농가까지 수세식 화장실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는 유독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개량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고 했다. 지난여름 그의 소문을 듣고 일부러 지리산을 찾아가 그를 만났었다. 다 늦은 나이에 더이상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그를 억지로 만났었다. 그는 자신의 오두막에서 명상을 하면서 책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그중에 이런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내면으로 깊이 들어갔어요. 나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갔더니 2층 집 같은 게 느껴졌어요. 그 안으로 들어가 1층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우연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죠. 그 계단을 딛고 조용히 2층으로 갔어요. 거기에 어떤 존재가 있는 거예요. 분명히 있었어요.”


그는 직장을 다닐 때부터 이미 시간만 나면 지리산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유명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의 정치부장과 보도국장을 지냈고 방송국의 거의 정상까지 갔었다. 도중에 화려한 여러 자리나 괜찮은 지위로 이동을 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영혼의 본질은 수도승이었던 것 같았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는 가끔 내게 신비로운 구름이 낀 지리산 골짜기나 노을에 젖은 구름 사진을 내게 보내주곤 한다. 그 사진들은 내게 허망한 인생과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중동의 광야에 가서 30년 가까이 수도 생활을 한 선교사가 나를 찾아와 함께 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레슬링선수를 했다는 그는 젊은 시절 건달같이 놀다가 어느 날 무당이 신들리듯 어떤 존재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그 존재에 이끌려 성경 속의 광야가 있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가서 그곳에서 평생을 보낸 셈이다. 그는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을 찾아가 그곳 사람들에게 침을 놓아주며 예수를 전했다. 갈릴리 호숫가에 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지금은 시리아 난민촌 안에 태권도학교를 만들어 난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광야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매일 아침 성령이 하는 소리를 직접 듣는다고 했다. 그는 성령의 소리를 공책에 적어놓고 있었다. 그 공책의 제목은 ‘성령 일기’였다. 이번에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깨달았어요. 나는 성경 속의 ‘나실인’이예요. 나실인은 독주나 포도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성경에 적혀 있어요. 이번에 기도하면서 그 의미를 확실히 알았어요. 독주의 의미는 이 세상의 문화나 탐욕을 상징하는 것이죠. 제 소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저는 나실인이 될 수 없어요.”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그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나이에 부부가 묵을 작은 거처도 없었다. 시리아난민촌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내게 어떤 자매가 헌금 1억 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돈을 맡아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다. 당장 부부가 잘 방도 없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 돈을 쓰고 싶어 했다. 나는 한편으로 그를 의심한 적도 있다. 몇 년 전에 그가 지으려는 시리아난민촌의 태권도학교에 내 주변의 사람들이 돈을 모아 보냈다. 꽤 큰돈이었다. 나는 그가 그런 돈 중에서 필요한 최소한은 자신을 위해서 썼겠지 하고 마음속으로 짐작을 했었다. 모금 활동의 대부분이 중간에서 몇십 퍼센트는 뗀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그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갈릴리호숫가에 교회를 지을 때도 여러 곳에서 그에게 헌금을 했다. 사람들은 그가 사기꾼이라는 의심을 품기도 하고 모욕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마음만 먹었다면 종교계에서 성공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그는 성직자의 현실적인 성공비결도 알고 있고 영적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기 자신은 가난한 사람으로 나실인으로 일생을 마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성경과 기도 없는 인간의 활동은 매미가 벗어버린 껍질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리산 골짜기의 도인이나 광야에서 수도사 같은 생활을 하는 그들은 진리를 직관하는 비범한 재능을 가진 것 같다. 그들이 바라보는 목표는 재물도 명예도 사업도 아니었다. 한 사람은 속에 있는 진아(眞我)를 찾는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내면에 있는 성령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다. 내면의 진아와 나의 영혼에 들어와 있는 성령이 같은 것일까, 다른 존재일까, 둔한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을 보면서 의미 있게 일생을 산다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 봤다.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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