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엄상익 초상화 580px-web.jpg

 

그냥 믿으라고 했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나이 먹고 강가에 혼자 사는 친구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어 물었다.

“지금 뭐 하냐?”

“스텐트 수술받고 약 받으러 병원에 가고 있다. 운전하는 차 안이다.”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한 그는 참 꿋꿋하게 성공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온 것 같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들게 공부했다. 대학 시절 토큰 한 개가 없어 목발을 짚고 스무 정거장이 넘는 버스 길을 걸어 집으로 가기도 했었다. 고시 공부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변호사가 되었다. 젊은 시절 그는 불교에 심취했었다. 혼자 강가에서 노년을 살고 있는 요즈음은 낮이면 불편한 몸으로 텃밭을 돌보고 밤이면 성경을 읽으며 살고 있다. 내남없이 죽음이 내다보이기 시작하면 좀 더 종교적이 되는 것 같다. 우리들의 대화 내용이 대부분 그랬다. 그가 내게 물었다.

“기독교를 보면 참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수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한 걸음 한 걸음 품성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성결하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야”

그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중세 수도원의 수사들도 결국은 불교의 승려들이나 마찬가지로 기도와 묵상으로 정진해 나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에게 이런 내 의문을 얘기했다.

“득도 내지 해탈한 스님의 경지가 어떤 건지 또 성령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성직자가 어떤 건지 보통사람인 나는 모르겠어. 그런 도의 길에서 완성이란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고 말이야. 그런데 그것과 관련되어 두 가지 상상되는 장면이 지금 앞에 떠올라.”

“그게 뭔데?”

“암벽등반 하는 장면이야. 등산가가 험한 바위틈에 피켓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박고 자일을 묶으면서 조금씩 힘들게 올라가는 거야. 그게 수행을 하는 수도생활자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또 하나 나한테 떠오르는 장면은 누군가 바위 위에서 줄을 내려준 거야. 그 줄을 잡고 바위 위로 바로 올라가는 거지. 나 같이 약한 사람은 그 무서운 암벽을 기어 올라갈 체력도 담력도 없어. 누군가 줄을 내려줘야 그걸 잡고 끌려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나는 그분이 약한 나에게 내려주는 줄을 그냥 잡는 쪽을 택했어.”

“그래도 사람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많은 공덕을 쌓아야 복을 받을 자격이 있지 나같이 죄 많고 더러운 상태로는 그냥 봐 달라고 못하겠더라. 인간이 양심이 있지, 죄를 가득 짓고 어떻게 무임승차 할 수 있겠어?”

착한 품성의 친구의 말이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 그곳에서는 거룩한 도덕과 힘찬 활동을 가르치더라구. 여러 자선사업을 하고 그런 선행의 공적이 있어야 참신자 같았어. 나 스스로의 힘으로 성결하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야 한다는 생각이었어. 한 걸음 한 걸음 품성의 완성을 힘쓰는 열심 있는 수양인이 되려고 해 봤어. 기도원도 다니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이상해. 그런 활동에 끼고 기도를 해도 내 영혼 깊은 곳에는 기쁨과 만족이 없는 거야. 그냥 흐름에 휩쓸리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어. 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채찍질 하면서 자선사업이라는 데 동참하는 거지. 난 부담감을 느끼는 기독교 신자였어.”

“그건 나도 그랬어. 불교신도회에 참석하고 변호사를 하면서 고정적으로 시주를 하고 활동에 참가했었어. 불사에 참가하고 공덕을 쌓아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니까. 지금도 누군가를 돕고 선행을 해야 할 것 같아.”

“이봐 친구”

나는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왜?”

그가 되물었다.

“자선사업에 참여하고 누군가를 돕고 봉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제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가 그런 도움을 받을 처지가 된 거 아니야? 너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고 나 역시 한쪽 헤드라이트가 고장 난 차 같이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처지의 늙은이가 됐으니까 말이야.”

“그건 그러네”

“성경을 보면 그냥 믿으라고 했지 일하라고 하지 않았어. 수양이나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위선적으로 깨끗해질 필요도 없어.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그대로 봐 달라고 하면 그분이 봐 줘. 우리 모두 그분 앞에서는 어린애인데 애가 더러워져서 돌아오면 거절하는 부모 봤어?”

“알았어. 나도 성경공부를 더 해 볼게. 야 병원이 가까웠다. 이제 전화 끊자.”

“그래 심장약 잘 받고 건강해라. ”

친구와 얘기하면서 나는 믿음을 다시 생각했다.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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