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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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딸을 보았다


일본에 갔을 때 특이한 일본인 목사를 본 적이 있다. 허름한 건물의 구석 일부를 빌려 교회를 하고 있었다. 자기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교회를 꾸려가고 있었다. 신자는 15년째 노숙자 한 명이라고 했다. 그 노숙자 한 명을 위해 새벽기도를 하고 설교를 한다고 했다. 그 일본인 목사는 설교할 때 의자에 앉아 있는 앞의 노숙자가 조는 걸 보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하고 회의가 든다고 했다. 그는 나와 함께 찾아간 몇 사람을 보면서 자기교회에 최대의 신자가 들어찬 순간이라고 감사해 했다. 나는 일본인 목사의 그 자세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 일본인 목사보다 더 감동적인 한국인 여성을 최근에 보았다. 그녀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다. 영리하고 다재다능한 그녀는 여러 분야의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마친 후 그녀는 수출회사의 중견 영업사원이 되어 스페인, 프랑스 등을 돌아다녔다. 

 

어느 순간 그분이 그녀의 인생 항로를 바꾼 것 같았다. 그녀는 어느 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선교사가 되어 있었다. 다시 그녀를 조종하는 신의 계시가 바뀐 것 같았다. 그녀는 귀국을 해서 심한 장애를 가진 한 여인을 돌보기 시작했다.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물을 한잔 마실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불에 묻히면 질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장애 여성은 돌볼 사람이 없었다. 늙은 부모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몸이 불편한 여성이 스물네 시간 사용하는 인간 로봇이 되어주었다. 봉건시대의 노예나 종보다 더 자유가 없는 생활이었다. 화장실도 같이 가야 할 정도로 자기라는 건 완전히 없어져야 했다. 요즈음 같은 각박한 세상에서 그게 가능한 것인지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탤런트들같이 반짝하는 순간 그런 성녀의 모습을 연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는 15년이 넘게 그런 생활을 해왔다. 서른다섯 살에 그 일을 시작해서 지금 나이 쉰 살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피도 섞이지 않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일이 가능한 것인지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다. 

 

주변의 오해와 모략도 있는 것 같다. 장애 여성이 사는 작은 아파트를 가지려는 야심이 있다는 것이다. 무역상사 인텔리 중견 사원의 급료를 계산하면 15년이라는 세월은 서울의 고급아파트를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어떤 간병인도 중증의 장애를 보고는 그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하루나 이틀 만에 나갔다. 사람으로 24시간 그 일을 감당하면서 15년을 버틸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나는 직접 내 눈으로 보았다. 

 

그녀는 이유를 묻는 나에게 “이 일도 역시 선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게서 나는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갓난아기 예수를 보면서 예언자 시몬은 마리아에게 “날카로운 검이 네 마음을 찌를 것이다”라고 했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 닥칠 것이 훤히 내다보이는 운명이었다. 전문 간병인들도 기피하는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그 여인을 돌보라는 십자가가 그녀에게 부과된 것 같았다. 그 이외에는 나는 그녀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 이외의 ‘어떤 분’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진 게 아닐까.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사람은 다 ‘어떤 다른 분’의 의지에 의해 보내졌는지도 모른다. 살아보면 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고 생각지도 않은 일이 되곤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그분의 종인 것 같다.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인생 최대의 본분으로 삼는 그녀를 보면서 하나님의 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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