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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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 


그가 말한 한마디는 생생하게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그가 누구였던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는 변호사 생활 30년이 넘는데 지겹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는 몸도 시원치 않고 이제 일을 그만 쉬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무뚝뚝하게 한마디 했다.


“일을 계속해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요.”


그의 음침하고 낮은 어조는 뚜렷이 떠오르는데 도대체 그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하늘에 있는 그분이 그라는 존재를 통해 내게 전한 메시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지난밤 열 시에 한 남자를 만나 법률상담을 했다. 그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반차 휴가를 내야겠다는 걸 말리고 내가 밤 시간을 냈다. 밤 열두 시까지 그와 소송에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로 평생을 이런 찌그레한 얘기를 듣는 일을 하셨을 건데 참 싫으시죠?”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늙어도 일을 할 수 있다는데 감사하기로 했다. 이번 주 배달된 주간지를 보다가 우연히 ‘백세시대의 일’이라는 작은 기사를 봤었다. 도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화제가 된 백네 살의 하코이시 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이발사 자격증을 따고 지금까지 현역이발사로 일하고 있다. 그 할머니는 여전히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하다고 하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위를 들고 싶다고 했다. 손님과 즐겁게 대화하는 것이 건강비결이라고 했다. 나이 때문에 자칫 손이 떨릴 수가 있어 가위를 들 때에는 항상 긴장하면서 집중한다고 했다. 상상하기 힘들었다. 

 

또 다른 인터뷰 내용이 있었다. 백두 살의 나고야대학 명예교수인 미즈다 히로시의 얘기였다. 아담 스미스 연구로 유명한 그는 그 나이에도 학문의 깊이를 더 파고들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하다고 했다. 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그 반대로 일 자체를 모르는 귀족 같은 존재를 보기도 했다. 평생을 카지노를 드나들면서 백억 원 이상을 날린 부자의 아들을 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우나가 딸린 빌딩 한 채를 주었다. 아들은 계속 놀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그 빌딩을 포함한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버리고 죽었다. 그래도 아들은 일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동창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꾸었다. 그리고 갚지 않았다. 노동 자체를 모르는 피폐한 인생이었다. 그런 어설픈 현대판 귀족들을 더러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부모가 최고의 과외선생을 붙여줘도 공부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돈으로 다 살 수 있었다. 대학도 돈으로 갈 수 있었다. 군대도 돈을 쓰면 면제가 됐다. 아버지 기업에 적만 걸어두고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룸싸롱을 다니면서 춤추고 노래했다. 예쁜 연예인들과 바람을 피웠다. 꿀 한 방울에 수많은 파리가 몰리듯 돈 주변에는 건달들이 모여 도련님들을 봉건시대의 주군같이 모셨다. 돈에 굶주린 정치인들도 그의 앞에서 비굴했다. 그런 ‘도련님’들은 정치 얘기에 핏대를 올리기도 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그의 입에 오르면 살아남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극히 일부겠지만 나는 일하지 않고 사는 그런 존재들을 보면서 화가 났다. 정직한 노동으로 돈을 벌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 그들은 섬김을 받을 줄은 알아도 봉사할 줄은 몰랐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면서 남의 노동으로 생존했다. 그런 불필요한 존재들이 군림했다. 열등의식이 있고 자존감이 약했던 나는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너무 싫었었다. 

 

가난뱅이의 게으름은 더 싫었다. 노동을 하는 그런 친척이 있었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일하러 가지 않았다. 평생 가난이 떠나지를 않았다. 집에 청소일을 해주러 오던 나이먹은 아주머니가 있었다. 대학을 나온 아들이 사십이 넘도록 룸펜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기생을 했다. 나는 그 아들에게 노동할 자리를 주선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노동을 거부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홍도의 풍속화 중에는 부지런한 일꾼 사이에 술병을 옆에 끼고 취해서 누워있는 양반의 모습이 나와 있다. 화공은 속에 어떤 생각을 품고 그 그림을 그렸을까. 아마도 불필요한 인간을 묘사한 건 아닐까. 역사는 그런 인간들을 점차로 없애면서 변해 온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한 선배는 “공부를 해 보니까 역사는 놀고먹는 왕과 귀족을 때려잡는 과정이더라구”라고 말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서도 비슷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헤겔은 인간의 역사를 자유의 확장이라고 했다. 자유를 독점한 왕과 귀족과의 투쟁과정이라고 깨달았다. 왕통이 끊어지고 귀족이 없어진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자연도태의 법칙을 통해 게으름을 피우는 귀족을 멸망시킨 것 같다.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했다.

예수는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했다. 이 세상에 불행한 것 치고 게으름뱅이 이상 가는 것이 없다. 

 

실업급여를 받아서 유럽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일 안하고 은행에서 돈을 꾸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예 일은 안하고 국가에 기본소득을 보장하라고 한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잘 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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