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1-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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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열했던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불과 1.5%포인트 차로 패배한 박근혜의 인상적인 승복 연설이 생각난다. “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경선은 이제 끝났습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이젠 잊어버립시다. 하루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몇 날 며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승복은 빠를수록 감동적이다. 현장에서 깨끗하게 승복함으로써 ‘아름다운 패배’로 역사에 남았다.


패배의 아픔은 몇 날 며칠 만에 사라지지 않는다. 성경을 믿고 따르고 전하는 목사끼리의 18표 차가 아니라 크게 졌다고 쓰라림이 덜 한 것도 아니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레이건 대통령에게 참패한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이 1972년 닉슨 대통령에게 대패한 조지 맥거번을 찾아가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면 패배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맥거번이 소강석처럼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날이 오면 제일 먼저 전화하겠습니다.” 


선거 패배란 그런 것이다.


헤겔이 ‘법철학’(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0년) 서문에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같은 호남이라도 분명 소강석 측은 아닐텐데 누구 말을 들었는지 ‘리폼드뉴스’가 아닌 ‘리폼드투데이’의 최장일은 뚜렷한 증거 없이 제106회 선거를 물색없이 비판했다. 그러나 그런 언론인 최장일과 달리 헤겔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언급한 것은 미네르바의 부엉이(지혜 또는 철학)가 낮이 지나고 밤에 그 날개를 펴는 것처럼, 철학은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이 지나간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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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일 오후 2시 호렙산교회당(허활민 목사)에서 제99회 산서노회가 열렸다. 서기 이권능 목사의 인도로 부노회장 김양구 장로가 기도하고 부서기 강성찬 목사 시편 146편 1-5절을 봉독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노회장 이왕욱 목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 메시지를 전했다. 증경노회장 허활민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고 문정식 목사(대가중앙교회) 집례로 성찬 예식 후 회무 처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헌의부의 보고를 통해 9건의 청원이 산서노회의 부엉이 조영기 목사의 지혜로운 간여에 힘입어 시의적절하게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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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대검찰청에서는 99세의 김형석 교수께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주제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살아보니 60세쯤 돼야 철이 들어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되고, 60세에서 75세까지가 인생의 계란 노른자 같은 황금기입니다.” 


그는 1시간 넘는 강연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원고도 없이 막힘없이 말을 이어갔다고 한다. 강연 후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물어보니 수영과 산책을 계속한다며 계속 일하려면 건강해야 하는데 운동이 필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총신대를 졸업했지만 감신 측에서 안수받고 우리 교단에서 얼굴 디밀고 사는 최장일이 건강을 위해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성스럽고 참됨’이다. 주된 뜻은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성(誠)과 실(實)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참됨(眞)이 본래 뜻인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타인을 대하면서 꾸밈이나 속임이 없는 마음의 깨끗함이라는 뜻으로 성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불성실이라 하면 나태, 게으름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재명이 극히 싫어하는 일본인에게 후세이지쓰(不誠實)는 이재명이 즐기는 것 같은 남을 속이는 허위, 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간관계의 기초인 믿음(信)과 직결되는 성정으로서 성실하다는 말은 우리 보수 교단처럼 일본 사회에서도 최고 칭찬으로 통한다. 


가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교계 연합을 외치며 고의춤에 고영기를 달고 다니는 소강석 같은 사람을 위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을 뽑을 때는 세 가지 자질을 봐라. 성실(integrity), 지적 능력(intelligence), 활력(energy). 만약 그 사람에게 첫째 자질이 없다면 나머지 둘은 너를 파멸시킬(kill) 것이다.” 


총회의 관심이 온통 교단의 지도자를 뽑는 데 집중되어 있다. 성경을 믿고 따르는 총회의 중요한 공직자를 뽑는 데에 부끄럽게도 세계적 부호 버핏의 통찰만큼 의미심장한 지혜와 충고가 또 있을까 싶다.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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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회 산서노회 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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