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0(수)
 

엄상익 초상화 580px-web.jpg

 

문학과 바람


나이 들어 새로운 공부방법을 발견했다. 유튜브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마술 등잔처럼 내가 원하는 걸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철학, 역사, 문학을 검색어로 찾으면 수많은 동영상이 떠오른다. 심심해서 마이크에 대고 ‘문학’이라고 말해봤다. 화면에 넥타이를 매고 깨끗한 와이셔츠에 쟈켓을 입은 소설가 김훈이 나타났다. 방송을 위해 그렇게 입은 것 같았다. 지난해 겨울 일산의 지하철역 앞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의 평소 복장은 후줄그레 했었다. 그의 옆에는 원로 탤런트 김혜자가 있었다. 그녀가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대담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김훈은 문장에 목숨을 거는 사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차원 높고 그윽한 글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탤런트 김혜자 씨 역시 평생을 연기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는 연기 자체이고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작은 바늘구멍에 일생을 과감히 던진 예술에의 순교자같이 나는 그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문학이 뭡니까?”


탤런트 김혜자가 소설가 김훈에게 물었다. 


“저는 솔직히 문학에 대한 개념이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제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혜자 씨가 연기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듯이요. 그리고 문학은 세상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하죠.”


정직하고 겸손한 대답 같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문학 자체고 다른 한 사람은 연기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김훈이 멋쩍은 듯이 씩 하고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덧붙였다.


“저는 밥을 먹기 위해 글을 씁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돈을 받고 다음 책을 만들 때까지 그 돈으로 밥을 먹습니다. 비루한 얘기지만 밥을 먹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힘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정량의 원고지를 채워야 하는데 문장을 고치다 보면 자꾸만 원고지 분량이 줄어드는 겁니다. 그래서 밥을 먹기 위해 매번 불만족한 원고를 보게 됩니다.”


정말 그럴까? 그는 그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는 수십 년 기자 생활을 했다. 기자라는 직업으로 밥을 먹고 문학은 그의 마음의 제단 위에 소중히 모셔두었던 것은 아닐까. 기자로서 보는 현장은 그의 삶의 소재는 아니었을까. 


나는 그의 문장들에서 그가 천재가 아니라면 문장에 목숨을 걸고 쓰고 또 쓰다가 마법을 일으킨 것으로 짐작하기도 했다. 작업실에 있는 수많은 몽당연필이 그걸 말해준다. 사회자인 탤런트 김혜자 역시 대본을 읽고 또 읽고 그 속의 인물이 되어 울고 웃고 하는 연습을 끝없이 하면서 자기 속에서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켰다. 


“저는 쉴 때 집안에서 빈둥거려요. 그러다 졸리면 잡니다. 김훈 선생님은 어떻게 쉬시죠?”


김혜자가 물었다.


“저는 밖에 나가서 열심히 몸을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불어오는 바람을 쏘이죠. 바람을 쏘이면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바람에는 여러 동사가 있는데 쏘인다는 말도 있고 바람을 핀다는 말도 있죠.”


“남자들은 왜 바람을 피나요? 아내가 예쁘고 살림도 잘하고 나무랄 게 없는데 그런데도 바람을 피고 하지 않나요?”


갑자기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거 솔직히 말하면 이 자리에서 한계를 넘는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김훈의 얼굴에 순간 당혹한 표정이 스쳐갔다. 어쩌면 말 도중에 나온 즉흥적인 질문 같기도 했다. 이윽고 결심한 얼굴로 소설가 김훈이 말을 했다.


“저는 바람을 피는 친구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다르게 보지도 않습니다. 사회는 제도적으로 한 남자에 한 여자로 묶어 놓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람을 피지는 않았습니다. 잘했다기보다는 그냥 제도에 굴복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용감하고 정직한 대답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유튜브의 철학 강의에서 들었던 쇼펜하우어의 말이 생각났다. 이성으로 욕망을 절제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건 거짓이라는 것이다. 미쳐 날뛰는 욕망이라는 말 잔등에 탄 이성은 욕망에 끌려다니면서 그걸 합리화해주기 바쁘다는 것이다.


예수는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섯 남편을 가진 수가의 여인도 돌에 맞아 죽을 여인도 용서했다. 하나님은 부하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도 이백 명의 첩을 둔 솔로몬도 회초리를 든 후에 용서했다. 바람이란 그런 건가. 잘 모르겠다. 

 

2021-09-16

 

엄상익의 미셀러니4 - 나를 살린 한마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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