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5(목)
 

엄상익 초상화 580px-web.jpg

 

죽음과 싸우는 아기들

신생아 집중치료실 안은 마치 동물을 사육하는 의학실험실 비슷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들이 받침대 위에 줄지어 있고 그 안에서 새빨간 아기들이 손발을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앞쪽의 통 안에 들어있는 아기가 보였다. 아기라기보다는 큰 쥐만 한 정도의 크기였다. 바늘구멍 같은 작은 입과 코에 전선 같은 튜브가 삽입되어 있었다. 가슴을 뚫고 중심 정맥에 역시 가느다란 선을 연결시키고 있었다.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기는 마치 ‘죽여 줘 죽여 줘’ 하면서 빌 듯이 앙증스런 작은 발을 비비고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보면서 의사가 내게 말했다.


“이 아기는 처음에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5백 그램이었어요. 담배갑만한 크기였죠. 길이는 볼펜 정도였어요. 그걸 키워서 이만큼이라도 사람같이 만들었어요.”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옆의 플라스틱 통 안에서도 역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전선 줄이 연결된 작은 기계같이 되어 극도의 고통 속에서 작은 팔을 흔들고 있었다. 의사가 그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도 MRI를 찍어보니까 뇌 안에 출혈이 있어요. 앞으로 뇌성마비가 될지 지체 장애가 될지 몰라요. 여기 신생아 치료실에 있던 아기들은 세상에 나간다고 해도 정박아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우리들 앞에 올 때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태어나면 우리는 바로 이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옮겨야 합니다. 생명이니까 말이죠.”


나는 도대체 그 아기들이 왜 태어나자마자 그런 불행을 맞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원인도 없이 갑자기 쓰나미 같은 불행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 전 한 종교강의에서 강사가 하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을 보면 말이죠. 악인이 벌을 받지 않고 더 잘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죽고 말이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왜 그런지도 모르고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우주의 인과법칙이 있습니다.”


아기들은 그 자신도 모르는 전생의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것일까?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동료 변호사 중에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다리를 쓰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자신만 평생 장애인이 된 이유가 늘 궁금했다고 한다. 전생의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이론 이외에는 납득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내게 기독교에서는 자기 같은 장애의 경우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물었다. 성경을 보면 길에 앉아 있는 맹인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건 누구의 죄냐고. 거기에도 죄의 관념이 언급되어 있었다. 성경 속에는 그 외에도 문둥병자도 있고 앉은뱅이도 있고 수많은 장애자 들이 존재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무대를 멀쩡한 사람들로만 채우지는 않았다. 그걸 묻는 사람에게 한마디로 ‘내 맘이다’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덩이로 뭘 만드는지 자유 아니냐고 했다. 만들어진 그릇이 주인에게 따지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는 금그릇, 은그릇이 있고 나무그릇이나 질그릇도 있다고 했다. 어느 그릇이든 자신을 깨끗이 하면 귀하게 쓸 테니까 그리 알라고 했다.


초월의 세계에서 그분의 뜻이 어떻게 3차원 속의 글을 통해 확연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 그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인간의 한정된 작은 머리로 초월의 세계의 미세한 일부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힘들다는 생각이다.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들은 종교강좌에서 강사는 전생의 죄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예수로 그 방향이 튀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예수님은 맹인이 누구의 죄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셨죠.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인간과 똑같은 고통을 받고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었죠. 그 의미가 뭔지 아세요? 인간의 죄를 사면해 주려고 하는 거예요.”


실루엣같이 ‘죄사 함’의 의미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찰나에 불과한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면 잠시 걸치는 옷 같은 육체가 다가 아니라면 죄가 사해질 수 있다면 갓난아기의 고통이나 장애의 불편함도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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