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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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와 걸레 스님


원로 탤런트 정한용은 중학교 때부터의 친구다. 중학 시절 그는 항상 작은 눈을 깜짝거리면서 생글생글 웃는 미소가 귀여웠다. 오락시간이면 선생 흉내를 기막히게 내서 아이들을 웃기곤 했다. 그게 타고난 연기력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공부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중학 시절 여름방학 학원의 단과반에 가면 콩나물시루같이 아이들이 들어찬 강의실 길다란 탁자 같은 책상 뒤에 앉아 공부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었다. 그는 성공했다. 큰 드라마의 주인공을 하는 중량감 있는 탤런트가 되었고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정치인이었던 시절 신문의 한 컷짜리 만화에서 왕의 옷을 입은 대통령이 정한용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한 총애를 받은 것 같았다. 탤런트나 정치인은 세상용의 특별한 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웬만하면 그 탈을 벗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인 정한용은 다른 것 같았다. 젊어서부터 이따금 중고교 동창들이 만나는 자리들이 있었다. 속칭 명문이라고 자랑하는 학교를 나왔던 우리들은 내남없이 고질병이 있었다. 대부분 자신의 사생활이나 치부를 감추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사회적 지위나 재산을 자랑하면서 서로 비교했다. 탤런트인 정한용은 자신을 딴따라 혹은 광대라고 자조 섞인 단어를 쓰면서 자신을 낮추었다. 입담 좋은 그는 걸죽한 얘기들을 재미있게 해서 좌중을 즐겁게 하면서도 자신을 결코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못나고 모자란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쨍쨍 햇빛이 내려쬐던 인생의 여름이 가고 가슴 서늘했던 바람과 맞섰던 인생의 가을이 가고 어느덧 우리의 머리에 흰 눈이 내린 삶의 겨울을 맞이했다. 지금도 그와는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낄낄대는 친구 관계다. 그는 지금도 만나면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먼저 자신의 치부부터 적나라하게 얘기한다. 이제는 나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이라는 정도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젊어서부터 이미 어떤 경계를 넘어서 있는 인격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만나 잡담을 할 때 그는 갑자기 중광스님을 화제로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중광스님이 살아있을 때 친했었어. 그 양반 정말 아무런 걸림이 없는 사람이었어. 한번은 중광이 술집에서 접대부를 끼고 술을 마시다가 전화를 한 거야. 야 한용아 뭐하냐 나와라 하면서 부르는 거야. 나는 다음날 드라마 녹화가 있어 대본을 보고 열심히 연습하는 중이었거든.”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탤런트에게 녹화 전에 대사를 외우고 연습을 하는 것은 중요한 순간이었다. 어떤 약속도 모임에도 가지 말고 몰입해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한용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인정사정없이 나오라고 불러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끌려나갔어. 가서 보니까 여자 두 명을 옆에 끼고 술을 먹는거야. 그리고 나보고 그 여자들을 데리고 가서 같이 자자고 하는 거야. 하여튼 우리 일행 네 명이 거리로 나와서 호텔 쪽으로 걸어갔어. 길을 걸어가면서도 중광이 빽빽 소리치는데 나는 누가 볼까 봐 겁이 나더라구. 이상한 중하고 얼굴 팔린 탤런트가 여자들하고 가는 거잖아? 눈에 띄지 않겠어? 그런데 중광은 그런 건 아예 염두에 없는 것 같았어.”


그런 경우 탤런트들은 모자와 짙은 색의 안경을 쓰고 자신을 위장했다. 스님들도 역시 사복을 입거나 어둠 속에서 일탈을 했다. 중광이라는 존재는 이미 세상의 시선을 뛰어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한용이 말을 계속했다.


“중광을 따라 할 수 없이 호텔까지 따라갔어. 그랬더니 중광이 안내데스크 앞에서 큰 소리로 방이 없느냐고 소리치는 거야. 몇몇 로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중광인 걸 알아보고 또 내 얼굴도 알아보는 거야. 거기서 기자라도 만나 신문에 나면 난 죽는구나 하고 겁이 나서 도망쳐 나왔지.”


다음날 녹화를 앞둔 대본연습을 포기하고 거기까지 따라가 준 것만 해도 남에 대한 대단한 배려였다. 그는 그런 친구였다. 


“중관은 굳이 그런 걸레 같은 행동을 과시해야 했을까?”


내가 물었다. 


“중광은 스스로 자기의 법명을 걸레라고 했어. 내가 왜 하필이면 걸레라고 이름을 지었느냐고 물었었지. 그랬더니 걸레는 그 스스로가 더럽혀지면서 다른 존재들의 때를 받아주고 주위를 깨끗하게 한다는 거야. 그래서 자기는 걸레가 되기로 했다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까 중광의 행위 하나하나는 어떤 상징 내지 은유로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걸레’라는 그 단어는 가슴에 어떤 울림을 주는 것 같았다. 

 

202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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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미셀러니_ 탤런트와 걸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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