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1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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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재활병원의 하얀 병실에 혼자 누워있을 그 늙은 친구가 떠올랐다. 얼마 전 중풍으로 병원으로 간 친구였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을 가는데도 받지 않았다. 잠을 자고 있거나 핸드폰을 침대 옆 탁자 서랍에 넣어두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지 않고 계속 신호를 보냈다. 한참 만에 그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어때?” 하고 내가 간단히 말했다. 그냥 위로의 말이었다.


“계속 몸을 못 움직이겠어. 왼쪽 반신마비야”


“그래도 말은 제대로 하네. 중풍이던 우리 아버지는 입도 반쯤 마비 되서 밥이 흘러나오고 침을 흘리고 그랬는데.” 


아버지의 증상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도 처음에 그랬어. 그런데 이제 말은 그런대로 할만해.”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사무실에서 오후 늦게까지 서류를 정리하고 일을 다 잘 마쳤어.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거야. 내가 버둥거리고 있는데 집사람이 들어와서 그걸 보고 앰블런스를 불러 응급실로 간 거지. 뇌경색이라고 그래. 지금 내 희망은 재활에 성공해서 지팡이라도 짚고 다시 걸어보는 건데 여기 의사들 아무도 희망적인 소리를 해 주는 사람이 없네. 코로나 사태로 가족도 옆에 있을 수 없어서 하루종일 혼자 있어. 옛날부터 아홉수가 나쁘다고 그러더니 예순아홉 살에 이렇게 되네. 엄 변호사 너도 조심해.”


그가 믿고 의지할 뭔가를 주고 싶었다. 그는 하얗게 바랜 시간 속에서 혼자 있을 것이다. 이런 때 뭘 권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런 때 병실에서 혼자 성경을 읽는 건 어때?”


“야 읽으면 불경을 읽어야지 왜 성경을 읽어? 나 아함경을 읽으려고 그래. 열 아홉 권으로 된 전집이야.”


“아함경에 부처님이 중풍 고쳐주는 거 있냐? 나도 불교 경전을 여러 권 읽어 봤는데 그런 건 없던데? 그리고 우리가 학자도 아니고 불교 경전은 너무 양이 많잖냐? 그 내용들도 좋지만 한 번 성경도 읽어봐. 그냥 한 권이야.”


“성경에 나 같은 중풍 고쳐주는 거 있어?”


친구가 물었다.


“전신 마비가 되어 들것에 실려 온 중풍 환자를 예수님이 단번에 고쳐줬어. 자기가 타고 온 들것을 들고 나가더라구. 그 정도 화끈하게 고쳐주는 장면이 있어.”


“그건 이천 년도 넘는 옛날에 있었던 얘기잖아?”


“아니야. 예수는 지금도 살아있어. 그러니까 내가 믿는 거야. 이천 년 전 그럴듯한 소리만 하고 죽은 사람이면 내가 왜 믿겠니? 예수는 성령의 형태로 지금도 존재하는 거야.”


“그렇구나”


전화 저쪽에서 그가 하는 목소리는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는 어조였다. 사실 나도 마음은 그랬다. 그렇지만 그에게 작아도 어떤 희망의 빛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읽은 짧은 불교 지식은 병들고 죽고 하는 누구에게나 오는 인생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 받아들이라는 거지. 그런데 성경을 보면 여러 기적이 나와 중풍 병자가 벌떡 일어나는 거야.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면서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고 표현하더라구. 너도 믿음만 있으면 예수처럼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재활운동을 해서 지팡이 짚고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한번 해 보라구. 그 시절은 현대적인 병원이 없으니까 마술 같은 행태를 보였지만 요즈음은 현대의학이 있으니까 그 방법을 따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알았어. 성경을 한번 읽어볼게. 전화해 줘서 고마워.”


친구의 대답이었다. 이상했다. 처음부터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었다. 하얗게 바래버린 시간 속에 혼자 있을 그 친구를 생각하니까 성경을 읽는 것으로 남은 여생을 색칠해 나가게 하고 싶었다. 중풍 환자인 그를 보고 성경 속의 중풍 환자가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순간 그분이 그렇게 만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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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미셀러니_ 중풍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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