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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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빵 전문가는 좋은 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첫째가 밀 본연의 맛과 향이 잘 드러난 빵이다. 둘째가 충분히 발효시켜 잘 부풀고 잘 구운 빵이다. 너무 허옇게 구우면 빵 본연의 구수한 풍미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6월 14일 칼빈대 관계자와 전화가 연결됐다. 


“건강하시죠...”

“네. 하나님 은혜로...”

“학교는요...”

“학교는 그런대로 잘 하고 있고 윤은 완전히 지난 금요일(6월 11일) 고등법원(사건번호 2020누57709호)에 제소했는데 완전히 파면으로 확정됐어요. 그건 대법원에 올라가도 아무 소용도 없어요...”


나는 그가 잘나가던 시절 그의 속은 잘 모르고 그의 자질을 아껴 오뚝이라는 별명까지 지어 부르며 그를 위한 기사도 쓰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총회면 총회 학교면 학교 둘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 그러면 잘 될 것 같은데...”


웃음기를 띤 모습의 그의 대답은 차마 부끄러웠다. 


“총장이 되면 총회 정치를 그만 두겠어요...”


그 꼴에 총장까지 된 김영우가 총신을 넘어 총회까지 차지하려 총회장의 과욕을 부리다 망했다. 그렇듯 오뚝이의 처지도 김영우를 닮으려고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김영우보다 낫다면 법정 구속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처지일런지...


정치적 야심이 있거나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어느 세대 어느 분야에나 있다. 지금 세대 가운데 권력 지향적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집권층 속에 들어가 있고 총회 내에도 스며있다. 우리나라에서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가장 아름답게 쓴 사람은 소강석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였다.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기독교 원죄의식을 가진 서구사회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윤동주는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준 아름다운 시인이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대 세속 권력이나 교계 주도권을 주도하고 있다. 그게 문제고 그 풍조가 바뀌었으면 하는 기도 제목이 있다.


직장이든 목회든 이제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 60줄 어디쯤에서는 그만둬야 하는 지경이 됐다. 여기에 기대 수명이 늘어났다. 자의건 타의건 인생 2막을 살 수밖에 없다. 인생 2막에서는 직(職)이 아닌 업(業)을 선택하고 싶다. 직은 잡(job)이고 타이틀이지만 업은 미션(mission) 즉 자신의 존재 가치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기자 나부랭이처럼 세속 권력이 직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총회 정치나 목회에서는 업(業) 즉 하나님의 미션을 따르는 소명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였는지 소강석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는 이렇게 노래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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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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