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18(토)
 

엄상익 초상화 580px-web.jpg

 

한 성자의 재봉틀


아침에 성경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데 내가 아는 부부가 찾아왔다. 사회에서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알게 된 분들이다. 따지고 보면 적으로 만난 셈이다. 내가 한 대형교회 목사의 비리를 공격하는 입장이었고 그 부부는 그 교회의 기둥 역할을 하는 장로로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원래 적과는 친구가 되기도 쉬운 법이다. 소송이 끝난 지 오래됐는데도 그들 부부가 가끔씩 찾아와 주어 차를 마시며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곤 했다. 그 부인의 아버지는 어려웠던 60년대 남쪽의 시골을 다니면서 전도하다가 나환자촌에서 일찍 삶을 마친 목사였다. 지난번 만났을 때 지나가는 소리 속에서 시골 작은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한이 말의 행간 속에 스며있는 걸 느꼈었다. 문득 그 부인의 아버지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어요?”


“아버지는 가난한 목사였어요. 60년대 그 시절은 목사의 월급이라는 것도 없었어요. 그냥 신도들이 더러 쌀을 조금씩 가져다주면 그게 수입이었죠. 아버지는 자식인 우리들을 할머니 댁에 부탁하고 재봉틀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당시 바닷가 남해 벌교 순천 주변의 깡촌을 떠돌았어요. 그때 아버지가 본 시골 마을은 절반쯤은 폐병 환자에다 봄이면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처참한 가난이 깔려있었죠. 아버지는 그런 마을로 들어가 먼저 사람들의 구멍 난 헌 옷들을 가져다 깨끗이 빤 다음에 짊어지고 간 재봉틀로 깨끗하게 옷들을 기워줬어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샀죠.”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술이나 의술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활용해서 전도를 하기도 했다. 성경 속의 사도바울은 텐트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계속 그 일을 하면서 예수를 전했었다.


“그다음은 아버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아버지는 마을 한구석에 천막을 치고 거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죠.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일이 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이 그 자리에 교회를 지었어요. 그럴 때면 아버지는 그곳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셨죠. 경상도가 고향인 아버지는 굳이 전라도 바닷가를 찾았어요. 아버지가 배운 성경 속에 자기 고향이 아닌 멀리 떠나가서 거기서 말씀을 전하라고 했대요. 그래서 고향인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 남쪽의 바닷가로 가신 거죠. 그러다 보니까 고통도 많으셨던 것 같아요. 당시 어촌에는 미신이 성했는데 고흥 쪽의 바닷가 마을에서는 배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나거나 고기가 잘 안 잡히면 전부 예수 귀신을 몰고 온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면서 달려와서 혼을 냈다고 그래요.”


그 부인의 아버지는 역사에 숨겨진 성자 같았다. 나는 그녀의 다음 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어려서 그런 아버지를 원망도 했어요. 함께 살지도 못하고 춥고 배고프고 그랬으니까요. 아버지가 꼭 그렇게 살아야 하나 하고 화가 나기도 했죠. 어쩌다 시골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면 마을 제일 위쪽 초라한 집에 방을 얻어서 묵고 있어요. 그 옆에는 나무로 얼기설기 대충 얽은 종탑이 보였구요. 마지막에 아버지는 나환자촌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돌봤어요. 그때는 제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데 하루는 나환자들을 저의 집으로 데리고 온 거예요. 그분들에게 밥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잘 대접해 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남편 보기도 미안하고 기가 막혔죠. 남편 눈빛도 좋지 않았구요.”


성자도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늙고 초라한 평범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 성자는 벌써 하늘나라로 떠난 지 30년가량 된다고 했다. 그 부인이 말했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남해 바닷가 쪽을 여행하다가 아버지가 젊어서 고생하던 마을을 돌아봤어요. 아버지가 천막을 쳤던 곳마다 아름다운 교회들이 들어선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 교회 마당에 아버지가 얼기설기 엮었던 어설픈 종탑을 옮겨다 놓고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었어요. 그 마을에서 아버지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가 됐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 아버지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큰 분이셨구나를 깨달았죠.”


“아버지의 재봉틀을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건 성자의 보물 같았다.


“예 지금도 집에 있어요. 아직도 기름 냄새가 나요.”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옷을 기워주던 그 재봉틀이 사랑이고 십자가이고 한 성자의 지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1-06-16


표지-web.jpg

 

태그

전체댓글 0

  • 11168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엄상익의 미셀러니 - 한 성자의 재봉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