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로마서 1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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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사도 바울처럼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는 이방인 가운데 특별히 필리피노의 사도이다. 그가 필리핀 선교를 결심한 건 극동방송에 출연한 한 선교사가 필리핀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듣고서였다.
 
“극동방송에서 필리핀에 있다 나온 선교사님이 필리핀 선교는 끝났다하는 겁니다. 그때 한참 그런 말이 돌았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아직 안 오셨는데 어떻게 선교가 끝났다고 선교사가 말할 수 있느냐. 그래서 필리핀에 가보자 하고 갔습니다. 가보니까 여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하구나. 우리나라는 접촉점 때문에 세미나 사탕 화장지 별걸 다 동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필리핀은 접촉점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는 이미지 하나만 가지고 접촉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걸 못하느냐...”
 
지난 세월을 술회한 그는 자신의 몸에 필리피노의 DNA가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아니면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CH, 1874년 1월 25일~1965년 12월 16일)의 프랑스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작품 《달과 6펜스》에서 언급된 격세유전(隔世遺傳, atavism) 탓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말했다. 필리피노(Filipino)는 필리핀 사람을 의미한다. 필리핀(필리핀어: Pilipinas 필리피나스, 영어: Philippines 필리핀스)은 서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이다.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 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섬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필리핀 민족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지역에 따라 구별되며 각 지역적 집단은 상이한 풍습과 방언을 통해 구별할 수 있다. 북부 지역의 일로카노 주 지역 주민은 강건하고 검소하며. 중부 평야지대의 따갈로그 주민은 근면하다. 중부지역 섬으로부터 비사야의 주민들은 낙천적이며 민다나오 지역에는 각색의 원주민과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인구는 1억 명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또한 약 1,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이들의 송금으로 요즘 필리핀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존재한다. 선사시대에 필리핀에 거주했던 사람들 중에는 네그리토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스트로네시아어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착했고, 말레이인의 문화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이 전래되었다. 또한 무역으로 중국 대륙의 문화가 필리핀에 영향을 끼쳤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식민 지배 동안에 마닐라는 아카풀코와의 무역 연결점이 되었으며, 필리핀에 가톨릭이 널리 전파되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된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과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전해졌다.
 
필리핀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 사정이 좋은 나라였으나, 마르코스 정권의 독재와 부패, 과도한 빈부 격차로 인해 경제적으로 몰락했다. 수도는 마닐라이며, 공용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이다. 필리피노(필리핀어)라고 명명된 그 표준형은 국어이자, 영어와 더불어 필리핀에서 공식어로 사용하고 있다. 필리핀어(Filipino)는 헌법에 정해진 국어로서의 명칭이며, 실질적으로 따갈로그어와 거의 같다고 생각해도 좋다. 따갈로그어는 f와 p의 구별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이 언어는 필리피노어(Pilipino)라고 명명되었지만 1972년 헌법에서 필리피노(Filipino)로 개칭되었다.
 
필리핀 국민의 특성은 실제로 모든 문화가 조금씩 섞여 있다. 필리핀인들의 유명한 친족 정신은 말레이족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긴밀한 가족 관계는 중국인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경건한 신앙심은 16세기 가톨릭을 전파한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서구화된 보편적인 평상복을 주로 입지만, 중요한 자리에는 항상 필리핀 전통 상의인 바롱 따갈로그를 즐겨 입는다. 필리핀에서 축제나 기념식, 결혼식 같은 경우에 바롱 따갈로그를 입은 남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따갈로그 지방의 옷"(Baro ng Tagalog)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실제로는 줄여서 바롱이라고 말한다. 처음 2개의 단어(Baro ng)가 변해 Barong으로 변했는데, " ~의 옷"이라는 뜻이다. 바롱은 4세기에 걸쳐 변천해 왔다. 그 과정에서 아직도 옛날의 특징이 남아 있다. 우선은 얇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입을 때는 바롱 안에 셔츠를 필히 입고 바깥에 바롱을 입는다. 또 바롱의 하단을 바지 안으로 넣지 않고 항상 바깥으로 내놓은 채 입는 것이 전통적인 특징이다. 바롱을 바깥으로 내놓고 입는 것은 필리핀의 더운 기후 때문으로 풀이되지만, 스페인 식민정책의 유산이라는 설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것은 스페인 식민통치자들이 옷을 통해 쉽게 구별하기 위해 원주민들에겐 바롱을 입을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게 한 것은 옷속에 무기를 감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고, 주머니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은 도둑질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필리핀 원주민 사이에서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벌거나 농사를 크게 짓는 등 성공한 중산층이 차츰 생겨났지만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항상 바롱을 입어야 했다. 이러한 식민통치에 대한 반발로 이들은 원래의 바롱에는 없었던 전면의 다양한 장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긴소매 앞부분 상단에 단추를 달고 입고 벗을 때 단추를 끌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주로 흰색의 천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색상이 조금씩 다양해지는 추세다. 이번 선교여행에서 김상윤 목사도 바롱을 잘 다려 입고 필리피노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설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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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교통에서는 해운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박의 항행으로 국토가 이어지고 통일되기 때문이다. 육상 교통으로는 철도가 루손 섬, 파나이 섬에서 경영되고 있다. 자동차 도로도 루손 섬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해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지프니, 버스, UV 익스프레스, 택시, 트라이시클(삼륜차) 등이 있는데, 버스는 노선은 정해져 있지만 정류장은 없어 사실상 어디서나 타고 내릴 수 있으며, 차종도 가지각색이다.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대부분 로마 가톨릭 신자(83%)이며, 그 외 필리핀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 in the Philippines), 개신교(9%)가 있다. 필리핀 성공회는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 of USA)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전래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래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필리핀 이슬람은 민다나오 섬에 많이 살고 있다. 이는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로마 가톨릭 신자를 이주시키는 종교적인 이주정책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살 곳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60년대 말부터 모로민족해방전선, 모로이슬람해방전선 등의 독립 요구로 이어졌다.
 
대구의 제100회 총회 끝나고 2015년 9월 23일 199,000원 내고 예약한 패키지여행 상품에 실려 마닐라에 도착했다. 저녁 먹고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마닐라 거리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차가 막힌 길에 배수로가 힘에 겨워 물을 게워내자 길가는 개울이 되었다. 차가 다니는 차창 밖 흐르는 그 개울에 아이들이 남녀가릴 것 없이 한 여름 뚝섬 야외 수영장처럼 뛰어들어 물놀이했다. 그 빗물은 하늘에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쏟아지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땅에서 그들의 기쁨을 위해 괴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안다. 비가 새는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걱정이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안다. 그런데 이 필리핀 마닐라의 아이들은 지붕이 없는 거리가 그들의 집이고 빗물은 그들의 샤워기다. 그래서 비가 새는 집이 없는 그들은 비오는 날이면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작년 11월 계룡시의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를 인터뷰할 때 그의 남다른 필리핀 선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금년 1월 나눔의교회 교인들의 선교여행 4박 5일을 동행 취재하는 특별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2016년 1월 10일 오후 5시 인천공항 필리핀 항공 카운터에서 계룡 나눔의교회와 화순나눔의교회 40여명의 교인들의 단체 좌석배정과 선교지에서 쓸 많은 수하물 탁송의 탑승수속으로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카운터 앞에서 70년대 총신대학 시절의 소탈한 모습 그대로의 이무종 목사를 근 43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는 김상윤 목사와 같은 황동노회 회원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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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20분 만석의 필리핀 항공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우리보다 1시간 늦은 시차의 마닐라 공항에 자정 무렵 비행기가 착륙했다. 마닐라 공항 밖은 새벽인데도 더위가 느껴졌다. 짐은 두 대의 지프니에 싣고 사람은 대절 버스에 실려 따가이따이의 CCT 수양관에 하루가 바뀐 1월 11일 새벽 4시에 도착했다. 여호수아관의 숙소배정을 받고 3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일어나 8시 두툼한 돼지비계 요리와 김칫국 같은 필리핀 수프로 아침식사를 했다.
 
따가이따이는 서늘한 지역이라 필리핀인들의 고급 별장지대였다. 이곳 30만평에 자리 잡은 CCT(Centre for Community of Transformation) 수양관은 본래 필리핀 노숙자 20만 명을 관리하는 필리핀 기업인 중심의 NGO 단체였는데 김상윤 목사의 영향으로 기독교 정신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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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월요일 오전 8시 아침식사.  일반 교인들은 김치를 담그는 등 선교집회 진행을 위한 준비를 했다. 찬양팀은 부목사 이준의 지휘 하에 악기 설치와 음정을 맞추는 리허설을 했다. 교회 설립 10년이 좀 넘은 나눔의교회 교인들은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헌신적으로 움직였다. 각기 휴식을 취한 뒤 12시 30분 점심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집회가 시작됐다. 필리핀 전국에서 참가비를 내고 모여든 170여명의 필리피노 교역자와 교인들을 위한 선교집회가 시작되었다. 찬양팀 리더 이준 목사의 인도로 청중 모두가 일어서 손뼉을 치며 찬양했다. 찬양 리듬을 타는 필리피노들의 몸놀림은 리드미컬했다. 찬양 영어 가사의 리드는 청중석에서 필리피노 에이젤(Eizel Madamba)이 맡았다. 그녀는 필리핀 대학교(University of Philippine) 출신 교사였는데 5년간 한국에서 김상윤 목사의 집에 머물며 신학 공부를 하고 한국어를 익힌 재원이었다. 김상윤 목사는 필리핀 선교를 위한 현지 사역자들을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준비했다. 힘찬 찬양이 CCT 강당을 흔들었다. 천정 철골 사이로 새들이 날았다.
 
"Everlasting God"
Strength will rise as we wait upon the Lord
...
The everlasting God
You do not faint
You won't grow weary
...
You're the defender of the weak
You comfort those in need
You lift us up on wings like ea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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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 목사의 설교 전에 나눔의교회 안진 권사의 대단한 특송이 이어졌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 하나님 지으신 모즌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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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곡의 찬양이 한 곡처럼 메들리로 섞여 강당을 메웠다. 김상윤 목사가 영어로 설교를 시작했다. 썰리나(Serlina) 목사(나눔의교회가 후원해 세운 웰스 스프링 초중고 교장)가 필리핀 원어 따갈로그로 통역했다. 영어로 읽은 성경본문은 레위기 23:4-8이고 제목은 ‘유월절’이었다.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김상윤 목사의 한국어 설교를 필리피노 썰리나 목사의 따갈로그 통역으로 듣는 필리피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 강하게 호응했다. 김상윤 목사의 주제는 유월절 신앙을 회복하고 믿으면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김상윤 목사는 신자는 성경을 믿고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한다. 가지고 다니지 않으려면 성경을 외워 다녀야 한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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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마친 후 설교자를 포함해 모두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했다. 축도 후 예배를 마치니 오후 3시 40분이었다.
오후 5시 30분 저녁식사에는 나눔의교회 사모와 교인들이 함께 담은 김치가 뷔페 식탁에 진열돼 필리피노들과 코리언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오후 6시 30분 나눔의교회 교인들은 유니폼을 입고 안내를 맡았다. 집회석 뒤에는 간식과 차가 마련되어 있었다. 연단 위의 찬양팀은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령과 몸을 달구었다.
 
나눔의교회 김현주 권사가 수화 찬양과 필리피노 썰리나 목사의 통역으로 간증을 했다. 김현주 권사는 장애가 있는 쌍둥이 아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그녀의 삶의 목적이고 꿈이라고 증언했다. 오후 8시 40분 필리피노들의 교회 별 분반토의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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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2일 오전 5시 한가로운 새벽 공기 속에 CCT 강당 천정 강철 기둥 사이로 새들이 푸드득 날아다녔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 뒤 성경본문 레위기 23:15-22 제목 ‘부활절의 신앙’을 김상윤 목사가 전했다.
초실절은 부활절을 상징한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100원 짜리 은혜만 있어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오전 11시 집회는 필리피노들의 간증 집회가 있었다. 김상윤 목사는 여호수아관 미팅룸에서 따로 필리피노 교역자 그룹을 위한 꿈을 가진 리더십 강의와 토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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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20분에는 이번 선교여행의 총진행 관리를 한 윤은애 집사의 간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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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이준 목사 찬양팀의 찬양고 무릎 꿇은 통성기도 후 나눔의교회 이경섭 장로(맛나감자탕 대표)의 부인 김복희 권사의 간증이 있었다. 이 부부는 신혼 10개월 동안 닭고기를 한 번 먹고 6만원 월세 밀려 셋방에서 쫓겨난 가난뱅이였다. 2002년 청주에서 잘 되던 생선 장사를 정리하고 천안에서 김상윤 목사의 권면을 따라 감자탕 식당을 시작했다. 감자탕 요리법은 김상윤 목사가 가르쳐 준 것을 따라했다. 감자탕이 너무 맛있어 잘 될 줄 알았는데 하루 5그릇 팔았다. 그 때 김상윤 목사님 아침저녁으로 다른 목사님들과 찾아오셨다. 감자탕 1인분 값만 가지고 오셔서 서너 목사님이 먹고 가셨다. 그런데 그렇게 목사님들을 대접한 뒤 장사가 잘 되기 시작했다. 2년 뒤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 기다리다 감자탕을 먹게 되었다. 하루 5만 원 매출이 2백만 원이 되었다. 그녀의 신앙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먼저 내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어려움을 딛고나니 이제는 환상의 콤비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일 때문에 부부가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날마다 가난한 과부의 기름 단지처럼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그들을 사용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린다. 지금은 맛나감자탕 체인점을 통해 1년 매출이 100억에 이른다. 그들 부부의 소원은 나눔의교회를 위한 맛나감자탕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들은 돈의 욕심으로 하나님과 멀어져 배달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도한다. 김복희 권사는 올해 맛나감자탕 115호점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필리핀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학교를 세우고 작은 교회를 돕고 싶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필리피노 교인들에게 두 손을 맞잡고 권면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교회와 목사님에게 순종하세요. 물질을 아끼지 마세요. 우리는 자신 있게 바칩니다. 하나님을 심는 대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는 그 축복의 경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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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들이 아멘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오후 9시 49분에 마쳤다.
1월 13일 오전 6시 새벽폐회예배. 하늘은 어둡고 비올 것처럼 바람이 불어 유리창의 블라인드를 들썩거렸다. 반주 없는 찬양이 새벽 공기를 채웠다. 청중석에서 에이젤이 가사를 리드했다.
 
There is none like You,
No one else can touch my heart like You do,
I can search for all eternity Lord
And find, there is none like You.
...
I can search for all eternity Lord,
There is none like You.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He’s so good to me!
...
I praise His Name,
I praise His Name,
I praise His Name,
He’s so good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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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 목사는 성경본문 레위기 23:33 제목 ‘감사절의 신앙을 회복하자’ 제목으로 선교집회 마지막 설교를 전했다. 그는 성경의 절기들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등을 설명하며 신랑을 기다리는 등불을 든 처녀처럼 성경을 통해 주님 재림하시는 나팔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든 그걸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실천한다. 김상윤 목사는 예수님에게 충성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전도에 힘쓰고 감사의 신앙이 회복되는 신앙인이 되기를 축복했다. 필리피노들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축도로 마치니 오전 7시 55분이었다. 하늘이 맑게 개고 바람은 잦아들었다.
 
그 다음 일정은 CCT 수양관을 떠나 CCT 고아원과 직업훈련원을 방문한 뒤 나눔의교회가 세운 10학년 과정까지 인가를 받은 웰스스프링(Well's Spring)과  달리다굼(Dalidagum) 두 학교를 방문했다. 웰스스프링은 썰리나 목사가 교장이고 기숙사까지 갖춘 달리다굼은 김진주 선교사가 교장이었다. 두 학교 다 나눔의교회가 후원했지만 명의는 필리피노들의 것이다. 웰스스프링은 고등학교 과정이 완결되는 12학년까지 인가를 받고 교사를 증축할 예정이고 달리다굼은 대학교와 신학교까지 세울 생각을 하고 있는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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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두 원주민 교회를 방문했다. 마지막으로 김상윤 목사가 후원하고 강의하는 보스턴 신학교(Boston Theological School)를 방문했다. 신학교 교무처장이 대접한 필리핀 음료 할로할로를 마셨다. 이 음료가 교인들 다수의 배탈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새벽 3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 뒤 눈을 떠 옆자리를 보니 김상윤 목사가 일어나 잠자리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 때 이야기를 들으니 밤중에 교인들의 심한 배탈로 김진주 선교사의 차로 병원에 실려 갔었다고 한다. 마닐라 공항까지 오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 김상윤 목사가 세심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공항은 여전히 붐볐다. 선교팀 교인 모두 비행기에 탑승하고 오후 7시 30분 인천공항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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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든 겨울 숲, 그러나 곧 새싹의 소곤거림이 시작될 것이다. 빈 몸에 새 옷을 입고 나올 나무들을 바라본다. 믿음이란 그 숲 속의 연못으로 가 그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슴 같은 것이라고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저녁을 아내와 햄버거로 때우고 공항철도를 타고 돌아오는 철로 아래 바다가 보이는데 물은 다 빠져나가 검은 갯벌만이 드넓게 드러나 있었다. 마치 인생의 죽음이 그러하다는 듯이.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말씀한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1:23-28
 
필리피노의 사도 김상윤 목사는 말한다.
 
“...마닐라 시립대학으로 다시 갔어요. 역사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무시험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대학이 800개나 되는데 그 대학은 상위권에 속하는 괜찮은 학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따갈로그와 영어를 익히게 됐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접근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제대로 필리핀 선교를 하게 된 거죠.”
 
201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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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노의 사도 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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