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18(토)
 

엄상익 초상화 580px-web.jpg

 

글자들이 개미로 변해서 기어 다녀


오후 두시의 햇빛이 쨍쨍하게 내려쬐고 있었다. 두물머리 쪽의 잔잔한 강가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 지금 뭐하나?”


그는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인생 칠십 고개를 눈앞에 둔 그는 오랜 세월 무리하게 부담을 준 다른 다리마저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군대 가고 그는 그 몸으로 강가의 오래된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나 지금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서 앞에 있는 밭에 상추를 심고 있어. 너무 즐거워.”


몸이 불편한 데도 그는 나무를 가꾸고 밭에 채소를 심는 일을 즐거워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


“밤에는 혼자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읽지.”


“야 정말 멋있는 노년의 모습이다. 그게 성자의 모습이지, 신선 같은 존재가 뭐 따로 있겠냐?”


내가 칭찬해 주었다.


“혼자 이렇게 사는 게 편하고 행복해. 동네 노인정에도 나가지 않아. 거기 쭈그리고 앉아서 고스톱이나 치고 싸우고 남의 험담이나 하고 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아.”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도 있고 추한 노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좋아?”


친구의 목소리에는 어떤 아쉬움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뭔데?”


“성경을 자꾸 읽어도 이제는 늙어서 그런지 그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깨달아 지지가 않는 거야. 우리가 법을 공부했듯이 주석서나 사전을 보면서 해야 할까? 나는 평생 불교도였다가 이제 성경을 보지만 너는 젊어서부터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왔잖아?”


그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신 같은 얘기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곳곳에 귀신들이 난무하고 접신을 한 예언자들의 얘기였다. 기독교의 기반을 구축한 사도 바울의 모든 이론 역시 그가 길을 가다가 만난 예수의 영과 환상 그리고 셋째 하늘에 올라가 본 것들에 대한 신비로운 얘기들이었다. 기적과 신비한 현상과 체험들을 이성과 논리 그리고 학문적으로 논증할 수 있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형님 같은 가구점 사장이 내게 해 주었던 이런 얘기가 떠올랐다.


“사업이 곤란해서 술을 먹고 방탕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괴로운 마음에 새벽 두 시경 성경을 펼쳐 든 적이 있어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어요. 성경이 보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글자들이 개미가 되어 저마다 살아서 움직이는 거예요. 너무나 놀랐어요. 표현하지 못할 어떤 감동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울면서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아버지는 장로였거든요. 아버지는 내게 성령이 임한 거라고 말씀 하시더라구요.”


나는 들었던 그 얘기를 친구에게 해 주었다. 그 며칠 후 가느다랗게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저녁 우리는 몇 명의 신도들을 데리고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인 친구를 만났다. 법대 동기인 그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목사가 되고 평생 가난과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고기 굽는 화덕 앞에 세 사람이 모여 자연스럽게 성경을 읽던 체험을 나누고 있었다. 목사인 친구가 말했다.


“기업을 다니고 있는데 어느 날 꿈을 꿨어. 그 꿈에서 어떤 존재가 내가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그 얼마 후였어.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나보고 양 떼를 이끄는 목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거야. 그리고 다시 얼마 후에 내가 아는 한 권사님이 와서 내가 성직의 길을 가라고 권면하더라구. 세 사람이 일치하는 거야. 나는 그걸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어. 그 후에 신학대학에 입학했지.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환희가 오는 거야. 하나하나가 깨달아지고 기쁨이 오는 거야. 나는 세상에서 벗어나서 다른 존재로 태어난 것 같았어.”


그런 걸 운명이라고도 하고 섭리라고도 하는 것 같았다. 성경이란 단순한 책자가 아닌 것 같다. 그 안에 어떤 신비한 기운이 있어서 그걸 펼쳐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분의 영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이다. 그리고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그분과 만나는 게 아닐까. 


성경은 말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리석음이자 비웃음의 대상이고 믿는 사람에게는 강한 하나님의 힘이라고.

 

 2021-05-12

 

표지-web.jpg

태그

전체댓글 0

  • 8877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엄상익의 미셀러니 - 글자들이 개미로 변해서 기어 다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