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1-2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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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 두 노인의 마지막 대화


2020년 12월 13일이었다. 집을 나와 강가 친구의 초막에 묵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내일은 짧은 방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밤이 늦은 시간이다. 늙어가는 우리들 대화의 마지막은 종교였다. 대학 시절부터 열성적인 불교도였던 친구는 내가 믿는 기독교에 대해 여러 가지로 궁금한 것 같았다. 그가 물었다.


“예수가 메시아라면 이 세상의 불공평과 모순을 고쳐줘야 하는 거 아니야?”


논리적으로 그의 말이 맞았다. 그런데 예수는 그가 나타난 시간과 공간에서 현실의 모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예수는 정치적으로 유대인이 로마로부터 독립하는 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실의 빵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그 자신이 처절한 가난을 상징하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평민인 목수였다.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모욕당하고 얻어맞고 억울하게 사형당했다. 그 자신의 삶이 불공평과 모순 자체였다. 나는 친구에게 내 개인적인 생각을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 왔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 내가 겪어온 세상은 불공평했어. 평등하지도 않았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한 일도 많이 겪었어. 중학교 시절 부잣집 아이에게 억울하게 칼을 맞고 무기정학을 받은 적이 있어. 그 시절 모범생만 모였다는 명문 학교에서 무기정학이란 방이 게시판에 붙으면 그건 한 인격의 죽음이었지. 패자부활전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시 공부를 했지. 마지막에 군에 근무하면서 응시해서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했지. 아마 전두환 정권에서 제시한 국민윤리라는 과목만 아니었다면 수석이나 그에 가까운 성적일걸. 그런데 주위의 시샘으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제대도 할 수 없었지. 관료주의에서 한번 부상할 기회를 놓치면 그건 끝이야. 나중에 연수원에 들어가니까 우수했던 내 점수가 제일 바닥등수가 되어 있더라구. 판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만약 그 열망이 있었다면 또 쓰라린 세상을 맛보았겠지. 그런 때 내게 다가온 게 성경이었어. 예수는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가르쳐 주더군. 양팔을 벌리고 불공평과 모순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라는 걸로 나는 받아들였지. 쉽게 말하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걸로 생각했지. 생각해 보니까 살라고 하니까 문제지 죽을려면 무슨 문제가 있겠어? 행복하려고 바둥거리니까 불행해 지는 거지. 불행을 맞아들이면 불행해 질까? 나는 예수를 믿고 불평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살아가는 게 편해지더구만. 니체는 그런 걸 노예 철학이라고 욕했지만 그 자신이 발광하고 제대로 죽지 못했잖아? 마음이 편해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야.”


“그래도 불공평하게 세상이 끝이 난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친구가 말했다.


“성경 속에서 사도 바울도 그렇게 말하더구만. 이 세상이 모든 것이라면 자신 같은 존재는 가장 비참한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말이야.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는 커튼 저쪽에 있는 세상을 가르쳐 주더라구. 분명히 있다는 거야. 소설로 치면 앞에서 주인공이 고난과 위험에 처하고 불행으로 치닫다가 마지막 대단원에 극적으로 전환이 되잖아?  예수도 세상에서 욕먹고 멸시받고 머리 둘 곳도 없다고 가난을 한탄하고 사형장에까지 가잖아?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통과하면서 부활과 천국을 우리들에게 제시하지. 나는 성경에서 이 세상은 훈련장이고 커튼 저쪽이 진짜 쉴 곳임을 예수한테 안내받은 것 같아. 그게 평범한 시민으로서 성경을 읽어온 내 짧은 소감이야. 이제 그 세상으로 가면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


“네 얘기를 들어보니까 나도 성경을 한번은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해. 보통 타 종교의 경전을 한 번도 읽지 않고 서로 배타적이 되기도 하잖아? 나는 어떤 경전이나 진리를 담고 있다고 봐. 나 역시 불교 경전과 선에 대한 책을 읽고 여러 도움을 받았어.”


우리는 마음을 열고 순수하게 체험을 주고받고 있었다.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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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미셀러니 - 강가 두 노인의 마지막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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