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1-2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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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홀로서기

2020년이 저물어 가는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오후였다. 나는 가방에 속옷과 보던 책을 한 권 넣고 갑자기 집을 떠났다. 노년의 톨스토이가 어느 날 갑자기 배낭을 지고 순례자의 모습으로 떠났던 생각이 떠올랐다. 막상 집을 나서니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막막했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40년 동안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집까지 내가 신경을 써 본 적이 거의 없다. 아내가 넥타이나 옷 그리고 돈의 관리까지 세심하게 배려해 줬기 때문이다. 편하게 살아온 나는 집안에서 간단한 청소나 세탁기까지 만져본 적이 없었다. 아내가 모두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냥 변호사를 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만 했다. 60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어느 날부터 나는 갑자기 무력감이 들었다. 머리가 하얗게 바랜 아내는 어느 날 더 이상 밥 차리는 것도, 일하는 것도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내를 동역자로 생각하지 않고 편한 하녀쯤으로 무심히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나도 스스로 뭔가 해야 하겠다는 자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혼자 집을 나가 며칠간이라도 세상을 배워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관념의 첫발을 디딘 것이다. 아내의 도움 없이 나 혼자 산 게 언제였었지? 하고 돌이켜 보았다. 40년 저쪽 세월 속에 두고 온 고시 낭인 시절의 생활이었다. 무덤 속같이 적막한 암자의 뒷방에서 누렇게 뜬 얼굴로 혼자 생존해 가고 있었다. 아내가 보살펴준 지난 40년 세월 동안 나에게 끼었던 두꺼운 안일의 녹을 벗겨버려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었다.

얼마 전부터 빈민촌 쪽방으로 들어가 얼마 동안 묵으면서 안일한 나의 삶에서 나오는 붉은 녹물을 없애야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두물머리 쪽 강가에 혼자 사는 친구를 떠올렸다. 그는 예순다섯 살쯤에 서울의 법률사무소 문을 닫고 남한강 강가의 허름한 초막 같은 집을 얻어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한 살 때부터 소아마비로 평생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를 찾아가기 위해 나는 일단 양수역에서 내렸다. 역 주변은 설핏하게 해가 지고 있었다. 양수리는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찍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깊은 산골로 한약재를 구하러 다니던 할아버지는 평생을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북한강 옆의 비포장길을 따라 홍천읍으로 갔었다. 할아버지는 이따금 씩 장사 길에 나를 데리고 다녔다. 버스는 양수리에서 더 갈 수 없었다. 6.25 전쟁 시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가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토막토막 끊어진 다리와 그 끝에 삐어져 나온 흉측한 철골들의 배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버스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버스 안에서 나는 창을 통해 맑은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맑은 강물 속의 자갈들이 투명한 햇살과 물결에 일렁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공이 짓는 노가 규칙적으로 물소리를 내며 강물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그 추억의 강가에서 얼마간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강가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렸다. 20분쯤 기다리니까 혼자 사는 친구가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다. 그의 초막 같은 집 구석방에서 살기 위해서는 간단한 나의 살림 도구가 필요할 것 같았다. 국도변의 이불가게에 가서 내 손으로 처음 이불과 요를 샀다.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변의 그릇가게에 가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노란 양은냄비와 숟가락, 젓가락을 샀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마트에 들려 햇반과 일회용 된장찌개 고추장찌개 등 인스턴트로 먹을 수 있는 식품들을 사서 친구의 강가 초막으로 갔다. 오래된 퇴락한 집이었다. 천정의 타일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고 나무로 된 창틀도 비바람에 썩어 있었다. 집안도 얼핏 보면 폐가의 내부 같았다. 다리가 불편한 친구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손으로 집을 수 있도록 배치하는 바람에 그렇게 살고 있다고 했다.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면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사람이 쓰지 않던 구석방에서 묵기로 했다. 창가 턱에 새까맣게 더께가 끼어 있었다. 노년의 홀로서기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나이 70이 다 된 친구가 겨울바람이 들이치는 강가의 퇴락한 집에 혼자 사는 것이 안쓰러웠다. 더구나 그는 몸이 불편했다. 몇 년 전 임대아파트에 혼자 사는 내 나이 또래의 강태기 시인의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폐암에 걸려 혼자 살고 있던 그를 도우미들이 이따금 씩 들려 몸을 씻어주기도 하고 이웃 학교에서 남은 밥을 주기도 하고 성당에서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죽어가던 시인은 세상이 너무 고맙고 좋다고 내게 말했었다. 시인은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동차수리공을 하면서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학의 천재였다. 방송작가를 하면서 평생 책을 읽고 인도 여행을 많이 했었다. 시인의 삶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다리가 불편한 친구에게 말했다.

“도움을 청하면 여러 가지 복지혜택을 받을 텐데?”

“아직은 아니야.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내가 모든 걸 직접 하게 했어. 일부러 하나도 도와주지 않은 거야. 그래서 굼벵이가 기어가듯 이라도 천천히 내가 할 일은 내가 했지. 어머니는 내가 힘들더라도 혼자 살아가라고 교육을 시킨 거야.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까 어려서 어머니 옆에 항상 앉아서 살림하는 걸 어깨 넘어 봤어. 그래서 내가 김치도 담글 줄 알고 청소도 세탁도 변기 청소까지 못 하는 게 없어. 앉아서 해도 난 다 해낼 수 있어. 도움이 필요 없어.
그런데도 나이를 먹어가니까 남은 한쪽 다리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한 다리로 서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제는 양 팔꿈치를 씽크대에 받쳐야 돼. 나도 몰랐는데 요전에 집에 들렸던 한 사람이 씽크대에 팔을 받치고 밥을 하는 나를 보고 자기가 대신해 주겠다고 나서더라구. 그제서야 내가 그렇게 했구나 하는 걸 자각했지.”

그가 티 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노인이 이렇게 혼자 사는 걸 알면 복지담당들이 와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내가 문 앞에 비싼 독일 차 아우디를 세워놨잖아? 이만큼 아직은 잘 사니까 들어오지 말라는 나의 의사표시지.”

신세 지지 않고 혼자 살아내겠다는 그의 개결한 자존심을 보고 나는 가슴이 섬뜩했다. 그가 씩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말이야 도서관을 왔다가 한번은 집으로 돌아가는데 버스 토큰조차 하나 없는 거야.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가난했어. 등록금이 없어 대학도 휴학한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차비가 없던 날 목발을 짚고 거의 스무 정거장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니까. 그런 날이 여러 번 있었지.”

그의 말은 나의 느슨해진 영혼에 찬물이 되어 부어진 것 같았다. 얼마간 그의 손발이 되어주면서 일을 배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내가 쉬운 청소부터 해 보면 어떨까?”

내가 그에게 제의했다. 파출부와 아내가 청소했지 내가 직접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걸 눈치챈 듯 친구가 말했다.

“내가 먼저 청소기 사용법이랑 시범을 보이지. 나도 다 할 수 있어. 다만 앉아서 궁둥이를 끌고 다니면서 하는 청소니까 먼지 묻은 바지를 따로 빨아야 하는 불편한 점은 있지.”

그는 옆에 있던 진공청소기를 끌어다 놓고 군대 생활 시절 훈련된 조교같이 세밀하게 작동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둥이를 끌고 다니면서 손이 닿는 영역을 청소하고 다시 움직여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진공청소기에서 먼지 통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 먼지들도 따로 잘 싸서 쓰레기 봉지에 넣어 처리해야지. 남보다 몇 배 시간이 들고 힘이 들어서 그렇지 난 모든 걸 다 직접 할 수 있어.”

그를 보면서 나는 건강한 두 다리가 얼마나 축복인가를 느꼈다. 동시에 노인이 되어서도 혼자 버티는 그의 강인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저물어 가는 강가에 붉은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낡고 퇴락한 집 안에서 다리가 불편한 자연인 친구는 싱크대에 양 팔꿈치를 대고 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투명한 페트병 속의 쌀 일정량을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 넣으면서 옆에 있는 내게 물었다.

“너는 쌀의 품종별로 10킬로그램에 얼마인지 모르지?”

“아내가 샀지 내가 한 번도 산 적이 없어.”

“생활과 떨어져 있으면 칼럼을 써도 살아있는 글이 되지 않는 거야. 대학교수들의 글을 보면 흰 손으로 쓴 관념적인 글이 많지.”

그의 따끔한 지적이다. 그가 밥 짓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 플라스틱 바가지 밑에 격자 모양으로 문양이 튀어나와 있잖아? 이건 쌀을 씻을 때 도움이 되라고 하는 거야. 요즈음은 옛날같이 돌을 없애려고 조리질을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깨끗한 물에 씻고 손으로 씻은 쌀을 문질러야 밥맛이 좋아. 그래서 나는 조금 힘이 들어도 그렇게 해.”

잠시 후 그가 쌀뜨물을 싱크대 구멍으로 흘려보내면서 말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쌀뜨물을 찌개나 국 국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셨지. 그래야 국물맛이 깊어지거든.”

그가 옆에 있는 전기밥솥에 위에 씻은 쌀과 물을 넣고 취사 단추를 누르면서 말했다.

“이걸로 밥 짓는 건 끝이야. 가마솥 시대가 아니니까 간단하지?”

이어서 그가 옆에 대파를 물에 담그면서 말했다.

“김치찌개를 끓일 건데 나는 찌개에 대파를 넣는 걸 좋아해. 그래야 국물맛이 깊어지거든. 먼저 내가 대파를 다듬는 걸 알려줄게. 먼저 밑둥의 뿌리를 가위로 잘라내. 그리고 누렇게 시든 잎은 따서 버려. 그리고 특히 파는 철저하게 씻어야 해. 내가 텃밭에서 파를 키워 보니까 벌레가 많이 끼는 게 대파야.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대파에는 농약을 많이 치는 것 같아. 묻은 농약을 철저히 닦아내야 하는 거지. 참 냉장고 안에서 김치하고 돼지고기 좀 가져다줘 볼래?”

다리가 불편한 그는 동작 하나가 엄청난 일이었다. 내가 냉장고를 열고 김치가 담긴 사각 플라스틱 통과 랩에 싸인 돼지고기가 담긴 팩을 그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싱크대 바닥에 냄비 좀 놓아줄래?”

그가 말했다. 나는 노란 양은냄비를 가져다 그의 앞에 놓았다. 그가 통에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서 들었다. 그리고 가위로 밑둥부터 일정한 크기로 잘라 냄비 속에 넣었다. 이어서 적당한 양의 물을 붓고 올리브유를 두세 숟가락 분량쯤 따라 넣었다.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불을 켜줄래?”

조수가 된 나는 그의 말대로 했다. 파란 불이 냄비를 감싸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강가에서 혼자 사는 몸이 불편한 그가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는 일은 엄청난 작업이었다. 한 끼 식사를 마련한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린 시절 방학에 갔던 시골 할머니의 진흙 초가집이 뇌리에 떠올랐다. 밥을 짓거나 군불을 때기 위해 할머니는 산자락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가져오기 위해 한나절이 걸리기도 했다. 할머니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냇가로 물을 길러 갔다 오곤 했다. 가마솥에서 밥을 짓고 무쇠 냄비에 두툼하게 썬 감자를 넣고 된장을 풀어 찌개를 만들었었다.

“김치찌개를 만들 때 나만의 비결이 있어.”

저녁을 짓던 친구가 씩 웃으면서 작은 양념 병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 병에 든 게 후추 종류인데 돼지고기의 냄새를 없애주고 내가 좋아하는 독특한 향을 내줘. 나는 이게 좋아. 나만의 김치찌개를 만드는 비결이지.”

잠시 후 친구와 나는 앞에 밥 두 그릇과 찌개 한 냄비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소박한 저녁 밥상이었다. 창밖으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친구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 적막한 강가의 낡은 집에서 우리 두 노인이 이렇게 밥을 먹는 모습을 남이 보면 어떨까? 상당히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할 거야. 그렇지만 나는 말이야. 나 혼자 살면서 이렇게 밥을 먹을 때 행복해.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희열을 느껴. 나이 먹고 몸이 불편해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가장 쓸쓸하고 고독해 보이는 상황에서 그는 행복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열악한 환경에 있어도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이 도살되어 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노래와 춤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존재가 강가의 고독한 노인이 된 친구의 영혼을 행복감으로 충만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그 정체가 무엇일까. 중요한 걸 깨달은 노년의 저녁이었다.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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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미셀러니 - 노인의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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