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1-22(금)
 
Saint Jerome, who lived as a hermit near Bethlehem, depicted in his study being visited by two angels (Cavarozzi, early 17th century).jpg
 Saint Jerome, who lived as a hermit near Bethlehem,
depicted in his study being visited by two angels
(Cavarozzi, early 17th century)


혼자 사는 사람

세상은 좋아졌다. 카드로 물건을 사고 전화를 건다. 동전을 넣으면 팔팔 끓는 차가 나오는가 하면 라면으로 끼니도 이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가 귀해서 친구들끼리 봉고차를 빌려 여행을 갔었다. 뜨거운 여름 여행길에 탈탈거리는 차라도 빌려 가는 게 얼마나 가슴 뿌듯했던지. 비포장도로에서 몽땅 내려 밀고 땡기고 하기는 했을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때 그 친구들 가운데 자기 차 안 가진 사람 없고 듬직한 소나 탄다는 소나타를 가진 친구도 있다.

세상은 이제 혼자 살기에도 그만이다. 옛날 청승스럽게 사내가 빨래판을 문지르거나 대야를 밥상마냥 모시지 않아도 된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가루비누를 흩뿌린 다음 스위치를 누르면 거의 마르다시피 해서 빨래감이 나온다. 웬만한 옷은 탈탈 털어 입어도 좋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문명의 이기들에 둘러싸여 혼자 사는 현대인들이 늘고 있다.

세계가 기독교화 될 때의 교역자들이 원로원의원 마냥 으시대는 귀족이 되고 황제들이 감독들을 부리는 신하처럼 유배시킨다면 진지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 것일까?

양미간을 좁히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을 떠나시오. 사막으로 가시오. 세상을 벗어나시오. 도시에서 도망가시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시편을 노래하는 논과 밭이 있는 들로 돌아가시오. 살기로 눈을 번들거리는 황제들과 부패한 교역자들을 피해 도망가시오. 모든 사람을 벗어나 혼자서만 살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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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Orlando Furioso, Angelica meets a hermit

이렇게 했던 사람을 은수사니 수도사니 했다. ‘은수사(hermit)’는 사막에서 격리돼 사는 사람을 뜻한다. ‘수도사(monk)’는 혼자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최초의 수도사들은 기실 은수사들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은수사는 전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수도사는 도시와 가족을 떠나 다른 수도사들과 한 무리가 되어 따로 사는 사람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이 운동은 이집트에서 시작됐다.
 

은수사와 수도사는 세상이 악하고 육체도 악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영지주의자 즉 노스틱 주의자의 사상에 빠지게 되었다. 육체가 악하다면 고행으로 그걸 다스려야 한다고 그들은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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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emitic cave in Spain 

이런 이유때문에 그들은 동굴에서 살았고 바위를 요 삼아 잤다. 그리고 그들은 딱 목숨을 부지할 만큼만 먹었다. 종려 열매와 양상추가 주식이었다. 식사 때 음식이 입에서 떨어질 정도로 잠을 자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악한 육체에 벌을 가하는 셈이었다. 누가 가장 심한 고행을 견딜 수 있는가 견주어 보는 시합도 열렸다. 어떤 수도자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황새처럼 외다리로 서 있었다. 높은 기둥 꼭대기에 올라가서 장대로 음식을 받아먹고 사는 수도사들도 적지 아니했다.
 

청년 시절 조계사엘 들른 적이 있었다. 우람한 나무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가보니 여느 까까중과는 달리 황색 가사를 걸친 외국인 중이 석가처럼 고목 아래 가부좌를 틀로 앉아 있었다. 그는 고행 승으로 평생을 앉아 지낸다고 했다. 그 앞에는 공양을 드리는 사람들로 줄을 이루고 있었다.

20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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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3 - 혼자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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