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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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샘광천교회 이문희 목사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웃음과 웃음소리가 태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1972년 3월 12일 성북구 석관동 소재 건물 2층에서 97명이 창립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해 1973년 4월 23일 박병진 목사가 제1대 위임을 받았다. 박병진 목사는 1924년 평남 출생으로 남산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저서로는 ‘교회정치 문답 조례’, ‘권징 조례-교회재판 편람’, ‘예배와 예식’, ‘교회헌법 대전’ 등 20여 권의 교회헌법 관련 저술을 펴낸 98세 현역 교회헌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 이후 1980년 제2대 윤도영 목사에 이어 1986년 제3대 장정일 목사 때 광천교회 성장의 틀과 토대가 완전히 잡혔다. 평소 선교의 열망이 커 해외 선교에 많은 후원을 하던 장정일 목사 자신이 선교사로 떠나면서 대학부 지도 부목사 이문희 목사가 1990년 제4대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문희 목사의 목회로 광천교회가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에는 한국 최대 장로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4회 총회(총회장 김도빈 목사) 때 광천교회 정동원 장로가 부총회장에 선출되는 쾌거도 있었다. 이문희 목사는 교세에 맞는 지금의 새 성전을 건축하고 2009년 8월 2일 맑은샘광천교회로 개명했다. 이문희 목사는 부임 28년째 되던 2018년 8월 2일 원로목사로 추대받는 날 후임 김현중 목사를 제5대 위임목사로 세웠다. 교인들이 결정한 김현중 목사는 후임 후보 가운데 일인으로 이문희 목사와 일면식도 없는 목사였다. 이문열의 장편 소설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이동영이 말했다. "언제든 때가 오면 나는 맑고 깨끗한 이념, 자유와 평등에 대한 더렵혀지지 않은 열정을 품은 채 이 대지를 떠나겠다." 그렇듯 이문희 목사도 표연히 떠났다. 물러난 뒤 죽기까지 자신이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 앞 건물 사무실을 떠나지 않은 조용기 목사와 달리... 이문희 목사가 광천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몇 년 뒤 같은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직원 기독인 회 회원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고 한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 카이스트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광천교회 이문희 목사님 설교가 좋아 좋은 설교 들으려고 주일마다 강남에 가지 않아도 돼." 2017년 9월 1일 기독신문에 실린 '자살 예방과 교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시론에 그런 이문희 목사 설교의 편린을 엿볼 수 있겠다.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의 의미는 이제 국가가 직접 자살을 예방하고 사회에 생명존중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를 표명한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불과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약 6000여 명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시무하는 맑은샘광천교회도 지난 4월 부활주일에 생명보듬페스티벌(Life Walking)을 시행했다. 개 교회에서 진행한 행사지만 생명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행사였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를 부여하면서 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했다. 특별히 안전사고예방 차원에서 경찰서에서 교통 안내를 해 주고 중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거 참여시켜 생명의 가치를 나누며 행진하는 뜻깊은 행사를 했다... 교회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그분을 우리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생명의 가치를 이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절망하며 삶조차 버겁게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를 전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자살 예방 활동이라고 믿는다. 이 일에 한국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도전하고 싶다." 이문희 목사는 교회 이름을 맑은샘광천교회로 바꾸고 그렇게 실천했다. 샘 (泉)은 지하수가 지표로 흘러나오는 곳이다. 지하를 지나는 동안 불순물이 여과 되어서 광물 성분이 녹아 있는 물이 되고 그래서 샘에서 나오는 물을 샘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지 4년 2022년 3월 12일 설립 50주년이 됐다. 제주도 해풍에 세진듯 흰머리가 안개처럼 자욱한 이문희 목사가 5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해 축사를 맑고 잔잔하게 전했다. "축하드립니다. 90여 분이 박병진 목사님과 교회를 시작해 참 많은 수고와 눈물들이 마침내 열매를 맺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희 맑은샘광천교회는 참 좋은 풍토가 있습니다. 세 분 목사님이 떠나가신 다음에 제가 부임을 했습니다. 전임자가 떠나고 후임자가 올 때는 갈등이 많습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다툼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저희 교회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임해서 보니까 전임 세 분이 모두 교회를 부흥시키셨습니다. 부흥시키지 않은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남겨놓고 가셨고 제가 그 풍토 밑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다 오시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상징을 꼽자면 틀림없이 ‘하트’가 첫손에 들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워도 문자에 하트를 붙이거나 손 하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뭇잎 모양 빨간 하트가 사랑의 상징으로 통용된 건 14세기 초부터다. 그 전까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하트는 진짜 심장을 닮은 긴 솔방울 모양으로 그려졌고 이는 예수님의 ‘성심(聖心)’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맑은샘 이문희 목사에게 진심으로 예수님의 성심을 본뜬 손 하트를 보낸다.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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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점차 변한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바로 지구가 자전하는 축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 있다. 이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고, 태양 광선이 지표면을 비추는 일조시간에 햇볕이 얼마나 세게 얼마나 오래 내리쬐는지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선 일 년을 24절기로 나눠 한 달에 두 번씩 절기가 찾아온다. 2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있다. 올해의 경우 2월에 설날도 있었다. 설날은 달의 움직임을 따른 음력의 1월 1일이다. 이와 달리 절기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상에서 태양의 위치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돌 때마다 하나씩 해서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기준을 세웠다. 그래서 설날은 절기가 아니라 명절이다. 우리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모두 달력을 보고 안다. 그러나 자연에 사는 생명체들은 달력 없이도 기가 막히게 시간의 흐름을 알고 저마다 계절에 맞게 적응해 살아간다. 일 년 중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입춘을 지나 나들이를 나서면 땅속에서 솟아 나올 준비를 하는 새싹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고 여린 새싹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꽤 자라 큰 모습의 풀을 만날 수도 있다. 도심에서도 공원이나 화단을 보면 살아있는 풀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시장에 가면 벌써 냉이가 나와 있다. 그걸 보고 ‘벌써 냉이가 나왔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이의 내력을 알면 아마 아! 하는 탄성이 새싹처럼 나올 것이다. 사실 봄나물 냉이는 지난해 가을에 이미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싹이 돋아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라나 꽃을 피우는 거다. 이런 풀들은 바닥에 붙어 수평으로 나온 잎이 장미꽃 모양이어서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이라고 부른다. 또한, 잎이 방석같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방석 식물’이라고도 한다. 민들레, 냉이, 달맞이꽃, 질경이와 같은 로제트 식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쉽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그들의 전략은 참 놀랍다. 풀이지만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몇 가지 멋진 작전을 세운다. 첫 번째는 키를 낮추고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작전이다. 줄기가 짧고 잎을 땅에 붙은 듯이 내보내 엎드려서 겨울의 추운 바람을 피하는 것이다. 이때 잎을 넓게 사방으로 뻗어서 적은 양의 햇빛이라도 최대한 받는 게 두 번째 작전이다. 세 번째는 땅에 바짝 붙은 만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이용하는 거다. 건강한 숲속 땅이라면 낙엽이나 다양한 미생물들로 인해 온도가 조금 더 높기 때문이다. 꽤 많은 종류의 로제트 식물은 몸에 잘게 솜털이 나는데 이 털도 추운 겨울을 견디는 데 활용한다. 그렇다면 로제트 식물은 왜 가을에 싹을 내서 힘든 겨울을 견디는 걸까. 다른 식물이 싹을 내기 전에 미리 싹을 내고 있다가 봄이 되어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워서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로제트 식물 대부분은 1년에 두 번 이상 번식하는데 아마도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이 번식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키도 작고 땅에 붙어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풀들에도 이렇듯 놀라운 삶의 전략이 숨어있다. 그런데 만약 춥고 힘든 겨울이 없다면 로제트 식물은 어떻게 될까. 겨울이 없다면 다른 풀들도 얼어 죽지 않고 이 시간을 지냈을 것이다. 그러면 애초에 경쟁을 피해 누구보다 빨리 꽃가루받이를 하려던 로제트 식물들은 유리한 위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대부분 풀은 죽게 되고 로제트 식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시련이지만 이 시련을 기회로 삼아버린 로제트 식물. 우리 목사의 삶 또한 이와 같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을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작은 냉이 같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아는 믿음이다. 뛰어난 실력과 엄청난 운이나 타고난 재능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을 이루는 믿음 앞에선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는 2021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시 삼천동에 있는 전북신학교에 도착했다. 전북신학교는 1971년 3월 25일에 전주 북문교회에서 개교하여 1972년 9월23일 제57회 총회에서 총회 인준을 받았다. 1988년 현 위치인 전주시 삼천동 11,000여 평 대지 450평 본관을 지닌 학교다. 2층 학장실에서 한기영 목사(전주은강교회 총신 84회 61세)를 만났다. 그는 한때 전북을 기반으로 총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김백경 목사(총신 73회)의 혹독한 시절을 잘 견딘 냉이 같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의 용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내면은 크다. 그래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임이나 공동체를 화합시키고 세우는 조정 역할을 잘 감당해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이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리폼드투데이)가 한기영 목사와의 대담을 이끌었다. 1. 제106회 총회 임원 후보로 준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합동 총회의 목사로서 총회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여러 회 총회를 출입하면서 저에게도 앞서서 총회를 섬길 기회가 오겠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년 106회기는 순환적 임원 구성이 우리 중부호남지역 회원들 사이에 제가 임원 후보로 거명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좀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만일 기회가 주어지면 총회 공동체를 위해서 부회록 서기로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합동 총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임원으로 섬길 기회를 주면 그동안 생각했던 아쉬움과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미력이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섬겨볼 각오입니다. 화평과 화합의 균형추(조정자)가 되겠습니다. 2.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첫째로 부임원으로 섬길 때는 함께 묶인 임원들을 잘 섬기며 좋은 호흡을 맞춰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 믿음의 원리와 상식이 통하는 임원회가 총회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우리 총회가 사무 행정을 펼쳐 나감에 있어서 먼저 교회와 노회를 돕고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정직하고 바르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함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제 임무를 은혜롭고 덕스럽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총회에 큰 그림을 그리고 회기별 연계성이 있게 서로를 존중하며 진행해 가자고 제안하고 곁에서 돕고 섬기려고 합니다. 지금의 시대 변화와 현실적 필요를 잘 분석하고 정말 선진 총회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논쟁과 싸움은 그치고 보다 발전적 전략을 수립하게 모든 기관이 통합적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처럼 저는 소박하게 세워주신 총회장을 잘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3. 교단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소견이 있다면? 우리 교단 리더들의 생각이 건강한 개혁주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총신신대원과 신학교들을 다시 잘 살펴서 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솔선해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총회도 이제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섬겨오고 현재도 학장을 맡고 있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이미 있는 좋은 인프라를 잘 활용하여 우리 지도자들을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총회가 더욱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행정과 정치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해주는 총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나아갈 방향과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1) 목회자 수급에 대한 조사와 신대원의 운영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2) 도시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의 목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합니다.(다양한 목회 전략과 좋은 콘텐츠 제공, 자립 방안의 구체적 사례 연구와 적용) 3)목회자 은퇴자를 위해 상설위원회를 설치하여 은퇴를 앞둔 목회자의 처우를 준비해야 합니다. 5.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목회의 위기감이 엄습해 옵니다. 교회의 장래가 염려되는 것을 넘어 교회의 무너짐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 가지 교회의 연약함이 더욱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그 어려움은 공교회 예배와 주일성수, 모이는 교회와 봉사와 섬김에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청년들의 신앙교육, 전도 등이 어려움으로 다가와 많은 지역 교회들이 소멸할 것 같습니다. 지역 노회들이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여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교회 합병, 교회 연합 등). 6.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오랫동안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 왔습니다. 저 자신이 개척하여 섬긴 교회도 있지만 개미목(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후배 개척 목회자들을 다각적으로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이사 임원으로 학생처장으로 실무를 감당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미력하지만 돕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 왔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교회 세움과 성장 컨설팅을 하고 싶습니다. 제 목회 철학은 골3:23 말씀을 모토로 ‘성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자’입니다. 전주은강교회 한기영 목사 프로필 ◆총회 주요이력 : 현)총회 정치부 서기, 경기북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총회실행위원, GMS이사, 호남협의회 감사총회인준전북신학교 학장. 총회지방신학교협의회 회장. ◆전)제103회 면려부 부장, 평서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산서노회조사처리위원회 서기, 대구동노회조사처리위원장, 학원선교위원, 개혁사상특별위원, 전북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호남제주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제105회 총회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사회기관 : 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 원장, 사)나눔과기쁨 전북상임대표, 전주시장로교연합회 선임회장 전주완산경찰서 경목위원 ◆학력 : 경기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북신학교 대학부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84회 졸업, 칼빈대학교 대학원(Th.M) 플러신학대학 대학원(D.min)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같은 믿음의 목사들은 시련을 견디고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티며 실패에서 배우고 끝까지 해내며 마침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취를 제104회 총회장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처럼 손에 넣는다. 그렇듯 목회자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한 가지는 바로 믿음이다. 교회를 살리는 목회와 총회를 세우는 정치에 있어 실력과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믿음이 약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돌아오는 길은 서설(瑞雪)인 듯 눈이 드문 전주임에도 큰 눈이 내렸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1-4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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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5
  • 살림 이종석 목사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물음에 이종석 목사는 이런 뜻의 대답을 했다.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 잠깐 하늘과 땅이 기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년 10월 16일 - 1900년 11월 30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가는 곳마다 행복이 되고,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이 된다 Some cause happiness wherever they go. Others whenever they go.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살림’이란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다. 즉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사람을 잘 살리고 있다’라는 말이다. 예로부터 한글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 말은 ‘돈을 많이 아꼈다’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은 은덕을 잘 쌓았는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개의 가정은 '살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무턱대고 돈을 아끼는 것을 살림으로 착각하고 있고, 아내는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만을 살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돈 몇 푼 때문에 소중하게 맺은 부부의 인연까지 흔들리고 있다. 살림은 여자만 하는 것도, 남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잘 살리는 일은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돈만으로는 남을 살릴 수 없다. 우선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 교인의 삶을 돌보아야 한다. 목회자에게 살림은 가정을 잘 살리는 일이고 동시에 내 교회를 잘 살리고 잘 다스리는 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의 살림을 잘 해야 인생의 살림꾼을 넘어 믿음의 살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종석 목사는 살림꾼이다. 의사가 돌보던 어떤 환자는 임종 직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가까이 오자 “내 돈 2억 갚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환자들은 “10년 더 살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의사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곤 한다고 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소망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 회원사(더굳뉴스, 리폼드투데이, 좋은신문, 합동투데이)는 신년을 맞이하여 제106회 총회 임원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을 차례로 인터뷰하고 있다. 세 번째 순서로 부서기에 도전하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를 만나기 위해 2021년 2월 2일 11시 광교제일교회를 찾았다. 총회 두루 발길이 닿는 박철수 목사가 평생 동지 이종석 목사(총신 80회)를 돕기 위해 함께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가 대담을 이끌었다. 1. 금년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교회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교회 또한 세상을 향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우리 교단 내 목사님들이나 총대들도 현 총회 운영에 대해 신뢰보다는 불신이 더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일까요? 그것은 법과 규칙의 자의적 해석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도 흔히 들립니다. 부족하지만 법학사로서의 지식과 총신인으로서의 신앙 양심을 통하여 총회를 좀 더 깨끗하게 섬겨보고 싶고, 특히 약자의 편에 서서 저들의 소리를 듣고, 총회 안에 억울한 사람이나 노회가 없도록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임원으로 출마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아웃사이더(outsider)에게 비난은 할 수 있지만 세워 가는 일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총회 임원이라고 해서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한 욕심 내지 않겠습니다. 할 수 없는 약속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물으셨으니까 적어도 이 세 가지는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 총회 화합입니다. 먼저는 임원들 간에 화합을 도모하는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섬기겠습니다. 총회장님을 비롯해 임원들 상호 간에 협력하고 잘 도우면서 일을 하겠습니다. 서기 일을 하다 보면 각 노회에서 올라오는 여러 사건이나 서류를 접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정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법과 규칙을 따라 물 흐르듯 하는 행정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힘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대들에게 나서는 일보다는 섬기는 일을 하려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총회가 끼어들어 노회나 개 교회의 일을 더 큰 문제로 만드는 정치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는 분쟁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해결의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지 오히려 문제를 재생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 2). 교회의 예배 회복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작금 한국 교회는 예배의 위기 앞에 서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지만, 예배에 대한 바른 지침이 별로 없습니다. 당장 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에 대한 우리 총회의 명확한 기준이나 입장 표명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총회 임원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교단 내 교회를 지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예배의 회복입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고른 인재의 등용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를 보면 늘 그 인물에 그 인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경험과 경륜이 중요하다 보니 쓰던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인물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각 위원회나 특별 위원 배정을 할 때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 찾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임원들에게 부여된 최고의 사명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편향된 인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선거에서 같이 경쟁했던 인물이라도 유능한 인물을 고르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3. 교단 차원에서 시급한 선결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뢰 회복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 일도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 교단의 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던 은급재단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총신 문제도 결국은 서로가 믿지 못함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지금 총회 회관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이전이냐를 두고도 많은 논의가 있고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 일도 모든 총회 구성원 간에 믿음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선관위도 그렇고 재판국의 판결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총회 임원회도 총대들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뢰 회복이라는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믿음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약속한 것은 손해가 나도 지키고 서로가, 아니 총회 임원들부터 지도자들이 먼저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우리 합동 교단은 정말 큰일도 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코로나 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 되는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교인 수의 감소일 것입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어느 정도 회복 되어진다 해도 많은 수의 교인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 헌금의 감소로 직결될 것이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서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나아가 예배 형태도 많은 변화가 올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이미 많은 성도들이 비대면 예배라는 달콤함에 맛 들어 버렸습니다. 온라인 예배, 방송 전파를 통한 유명 목사님들의 예배가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서는 아무래도 교회의 주일학교일 것입니다. 어른들보다 더 심각하지요. 다음 세대가 걱정입니다. 이를 어떻게 다시 세울지 많은 기도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우리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하고 싶었고,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하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새벽 기도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지시보다는 솔선수범하고, 섬김의 목회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 절대 주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 여생은 한국 교회를 위하여 조그만 보탬이 되고 싶고, 정년이 끝나면 시골로 내려가 아내와 함께 시골 교회를 섬기며 조용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허락된다면 구약성경 공부를 위한 책을 써 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6.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녀교육이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자녀교육이라고 해서 제가 특별히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잘해줬어요. 지금 딸은 결혼해서 초등학교 4학년 되는 아들과 일곱 살 아들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지금 현재 목사입니다. 제가 개척하는 걸 다 본 아들인데 홍익대 사범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가서 3학년 때 군대 다녀와서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중국 우루무치에 계시는 선교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 가서 선교사님 자녀들 교육도 하고 선교사님도 도우면서 선교를 좀 배우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일테니까 그래서 보냈습니다. 한 6개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루무치 현지 대학에서 언어 공부도 했습니다. 6개월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온 김에 6개월만 더 있다 오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을 갔다 오더니 저한테 ‘대학 졸업을 하고 신학을 하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한 번도 신학을 하라는 말을 안 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너 신학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정말 가서 보니 선교사들이 너무 어렵고 힘드시더라. 그래서 한국에 있는 교회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느라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선교사들이 정말 선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국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너 나중에 선교사로 갈 생각이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자기는 선교사 스타일이나 체질이 아니고 자기는 선교사를 보내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겁니다. 네 뜻이 그러면 한번 공부해 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홍익대 졸업하고 총신신대원을 갔는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저 제주도에 가겠습니다.’ 왜 제주도에 가느냐 했더니 제주도의 작은 교회가 교육전도사를 구하고 있는데 교육전도사를 못 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게 너한테 좋은 기회일 수 있다며 허락했습니다. 제주도를 가니까 교육전도사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됩니다. 여기 광교에서 김포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로 제주도에 갑니다. 그리고 교회까지 버스로 가는 겁니다. 주일날 교회 사역을 하고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오는 겁니다. 그걸 한 1년, 저 녀석이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 하고 나더니 하는 말이 ’아버지. 아무래도 제가 떠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졸업하고 김종준 목사님의 꽃동산교회 부임해서 초등부를 맡아 1년 하고 사랑의교회로 갔습니다. 사랑의교회에서 지금 4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했는데 제 며느리도 총신신대원 졸업했는데 둘이 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녀교육에 대해 특별한 것은 없는데 아이들이 볼 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죠. ‘좋은신문’의 지용길 목사가 말을 거들었다. “삶으로 다 보여주셨네요.” 최장일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 다 하셨네요.” 일동 웃음. 이종석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를 말씀하시는데 세상 적으로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뭘 가지고 교회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척하러 올 때에도 제가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고 와서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하고 중도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해주셨습니다. 그때그때마다. IMF 만나 여기 땅을 사러 올 때도 교회 건축하는 것도 돈이 있어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뭔 돈으로 할 거냐,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랬습니다. ‘나도 무슨 돈으로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하면 될 것 같아.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하니 되더라고요. 새로 이 교회를 지을 때도 그 당시 적립된 돈이 잘 해야 한 2억 정도였습니다. 그건 설계비 정도밖에 되지 않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다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 그러다 큰코 다친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으니까 절대로 잘못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은퇴준비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잘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설날 아침, 주위를 둘러보면 북적북적 마주 앉은 친지들,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 식당과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이리라 믿는다. 일 년 뒤 오늘의 모습은 일 년 전 오늘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꿈만 꿀 것인가, 꿈을 이뤄낼 것인가. 작가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에서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썼다. ‘당신은 꿈을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했나요.’ 그날의 빛... 광교제일교회 예배당에 들어선 순간 벅차오르던 잔잔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 1월 한낮의 태양 빛이 벽에 뚫린 창틈으로 들어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양식의 예배당을 비추고 있었다. 처음엔 투명한 빛이었다가 틈새 사이로 흔들리는 조명 빛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인류가 세운 모든 종교 건축의 지향점이 똑같지 않을까. 신성하면서 미적으로 뛰어난 공간,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행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건물. 인도의 아잔타 석굴부터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까지 수많은 종교 건축물이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새로운 기준이 된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 건축에도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가 됐다. 예배를 드리되 접촉은 피하기, 2m씩 떨어져 앉기... 바이러스 전파는 최대한 막아내면서 '믿음'과 '신앙'이란 목적을 담아내는 기발한 상상력이 등장하지 않을까. 먼 훗날, 이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새 건축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지. 건축가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 이종석 목사 프로필 총신 신대원 80회 졸업 총회 정치부장(제102회기) 총회 특별 재판국원(제104회기) 총회 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실행위원, GMS 이사 역임 현 기독신문 이사 한장총 부흥사회 제34대 대표회장 재경영남교직자 협의회 상임회장 AGM(아시아 복음 선교회) 상임회장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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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4
  • 대나무 한종욱 목사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대나무는 곧고 높아진다. 대나무는 이름에 나무가 들어가 있어 나무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라 풀 종류에 속한다. 풀과 나무를 가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단단한 부분(목질부)이 있느냐, 또 하나는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하느냐다. 대나무는 단단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형성층이 없다. 이 말은 키는 커지지만 굵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대나무의 구조와 나이테를 이해하면 바로 감이 올 수 있다. 식물의 ‘나이테’라는 것은 옆으로 성장하면서 계절의 차에 의해 생기는 흔적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으니 나이테가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곧고 높아질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나무는 불에 타도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1년 우리는 전 세계적 감염 위기를 만났다. 하지만 더 자라고 단단해졌다.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면서도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제퍼슨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직(Honesty)을 최선의 정책으로 중시했다. 그렇듯 리더의 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정직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조국 사태에서 정직과 거리가 먼 위선과 이중잣대의 심연을 봤고 추미애를 통해 말이 굽은 독선과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를 목도했다. 이런 시대 우리 총회에 대나무 같은 모습과 성정을 닮은 인물이 있다. 그는 1994년 4월 22일 군산노회 등대교회를 개척해 26년째 주민과 함께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신장염에 걸렸다. 그 병의 치료 과정은 그를 믿음과 목사의 길로 이끌었다. 군산에서는 ‘거리의 전도자’로 유명해 오가는 택시 기사들이 그에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는 제102회 총회 상비부 사회부장 역임한 한종욱 목사이다. 2021년 1월 26일 오전 11시 인천 영종도에 있는 웨스턴 그레이스호텔에서 제37회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육수복 목사가 취임했다. 그 모임의 식사 뒤 오후 1시 12분 제106회 총회 부서기 후보 출마 예정자 한종욱 목사(58)와 ‘총신언론인회’가 회장 최장일 목사의 사회로 공동 인터뷰를 했다. 아름다운 바다의 밀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호텔 로비 창가였다. 1. 금년에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합동총회 임원이 된다는 것은 ‘예장합동 산하 전체 노회와 교회 및 기관’이라는 하나 된 교회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전체로서의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가 되는 것입니다. 총회의 임원이 되려는 뜻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함이며, 총회라는 보다 큰 “교회”를 통해 전국교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또한 전북기독교총연합회 상임총무, 군산기독교연합회사무총장, 군산시장로교연합회 회장, 전북장로교연합회 회장 등 지역교회 연합운동의 경험으로 총회에서도 각 교단과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아울러 본 교단의 위상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합니다. 제가 임원이 되면, 기능적으로 총회의 행정과 역량을 강화하고 질서를 바르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열정을 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에 소명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저는 부서기로 출마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당선하게 된다면, 제게 주어진 직무에 집중할 것입니다. 교단 헌법이 제시하는 바를 따라 총회가 위임해 준 사항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 총회 행정시스템의 현대화.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정보를 지니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성공과 실패의 관건입니다. 즉 정보와 처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현대를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행정시스템 자체의 개편과 그것을 뒷바침하는 전산정보시스템의 구축을 비롯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 방안까지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운영자 중심의 즉흥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총회의 행정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총회의 시스템이 운용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인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교단 내의 모든 인재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2) 교단 내 각종 분쟁의 최소화와 신속한 해결 교단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전쟁터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분쟁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총신 사태가 그러했고 각 교회 및 노회의 분쟁이 그러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기독신문의 갈등도 있습니다. 지금 화해조정위원회가 있고 또 헌법자문위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특별위원회들이 만들어져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주어진 자리를 통해서 각종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며, 최소화하고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그것을 총회의 분쟁관리 매뉴얼로 확립하고 싶습니다. 3) 교단 내 목회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수립 초기에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은급재단의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지만, 납골당 사태가 발생함으로 어느 누구도 은급재단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단 산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안정적 생활기반 위에서 소신 있는 목회를 해가며,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교회미래자립위원회에서 미자립교회에 재정적 지원과는 별도로 농촌에서는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땅을 무상으로 빌려서 화초, 건강식품 등을 무농약재배, 유기농산물 재배하여 도시교회와 연결하여 서로 상생하는 것을 구축할 것입니다. 도시교회 미자립교회는 바리스타, 컴퓨터 강사, 디자인 강사, 개인특기조합을 결정하여 틈나는 대로 소득을 올려 스스로 일어서도록 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교단 적 차원에서의 대사회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거나, 교단 산하 지교회들이 효율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교육과 활동, 대사회적 섬김과 봉사시스템의 구축(대사회적 복지재단운영), 교단법의 제도적 발전과 권징 체계의 개편을 위해 교단신학교에 교회법전문대학원 개설 등과 같은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3. 합동교단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교단은 대한민국 최대의 교단이며,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선도해야 하며, 또 한국사회를 향해 기독교적 가치를 선명하게 제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예배회복을 위한 회개와 성결 운동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회개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대단한 일을 이룬다고 해도 회개가 없다면 모래 위에 세운 집에 불과합니다. 목회자들이 경건을 회복하고, 당회가 경건을 회복하고, 교단의 모든 지도자가 다시금 경건을 회복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다시금 교단과 교회를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4.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여야 하는 교회가 더 이상 모일 수 없게 되고,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간접적 만남을 추구할 뿐입니다. 다행히 현대적 기술의 발전으로 실시간 방송 예배, 또는 줌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활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코로나19는 예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배의 회복과 대사회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코로나는 유튜브를 통한 영상예배와 줌을 통한 교육 등 단지 교회의 시설물에 갇혀 진행되던 모든 것을 보다 폭넓게 열어두었으며, 동시에 영상 기술의 활용을 통한 교회 교육의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위기에서 배운 다양한 기술을 통해 교육과 선교사역에서 더 큰 발전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목사들을 돕고 싶다.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주민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여 개방하고, 주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길거리 전도를 수년간 해왔고, 지금은 맨투맨으로 전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윈윈해야 합니다. 지역교회에 꾸준히 협력과 봉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전도입니다. 전국 5일장 마다 다니면서 생선도 팔고, 복음도 전하면서 지역에 맛있는 것도 먹고 전국을 다닐 것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십자가가 굳게 서고, 복음의 깃발이 휘날릴 수 있다면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김준곤 목사님이 주장하셨던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건강비결을 물었다. 그는 새벽기도가 끝나면 헬스장에서 2시간가량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평생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대나무 같은 어조와 꼿꼿한 자세로 말했다.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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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9
  • 영광대교회 김용대 목사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라고 윤동주는 노래했다.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 도입부는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린다.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의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 묘사를 수행의 간결체를 통해 서술함으로써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설국’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조에쓰선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오면 펼쳐지는 그곳은 일본의 니가타(新潟)현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에치고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작가는 ‘국경을 넘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동해에서 몰아치는 눈바람은 에치고산맥을 넘지 못하고 니가타에 눈을 쏟아낸다. 니가타는 하룻밤 새 1m가 넘는 눈이 내리는 대설지역이다. 눈(雪)은 기상 현상의 한 종류로 기온이 섭씨 0℃ 아래로 떨어져 구름 안의 물 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결정화된 것이다. 남극·북극의 두터운 얼음층과 빙하는 오랜 기간 눈이 쌓여 형성되었다. 눈은 여러 가지의 결정이 단독으로 내리는 경우와 여러 개의 결정이 붙어서 눈송이가 되어 내리는 경우가 있다. 송이로 된 눈을 함박눈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 때 내린다.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들이 눈을 생성하는 핵의 역할을 한다. 미세한 핵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 알갱이가 되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계속 달라붙어 결정이 커지게 된다. 눈이 많이 내리는 서해안 같은 경우 물론 저기압 또는 전선에 의해 눈이 오기도 하겠지만 대기 온도와 해수 온도 경도가 발생하여 생기는 해기 차이가 대부분 서해안에서 내리는 눈의 원인이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도 원래 三白(삼백)이 으뜸이라고 했다. 삼백이란 눈(雪), 소금(鹽), 쌀(米)이라고 한다. 전남 서해안에 눈이 내리면 적설량이 가장 많은 곳이 영광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1월 3일 전남 영광의 영광대교회 앞엔 아무 표정 없이 눈이 소금과 쌀처럼 하얗게 수북했다. 영광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 20분이었다. 1905년 5월 7일 배유지(Eugene Bell) 선교사의 전도 열매로 영광읍 무령리에 세워진 영광대교회는 설립 116년 되는 교회다. 한국교회 역사의 초창기 기억부터 소중히 간직한 교회에 시무하는 김용대 목사는 2009년 7월 1일 부임했다. 2021년 1월 3일 영광대교회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 예배라 20명만 참석하는 데 감사원의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총회 감사부 오광춘 장로의 배려로 다른 분을 내려오시게 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 준비 찬송이 끝나고 김용대 목사가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된 강단에 섰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주일입니다. 이렇게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성탄 무렵 어떤 분이 제게 글을 보냈는데요. ‘성탄절을 맞이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렇게 방역지침이 확대되어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인지 무엇인지 너무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다’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했습니다. 코로나든 전쟁이든 기근이든 무엇이든 성탄절의 기쁨을 바꿀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도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주일은 코로나든 전쟁이든 지진이든 기근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주일의 의무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덮을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각 처소에서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그 무엇도 덮을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만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은혜가 새해 첫 주일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 같이 묵상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르간 전주가 ‘만세 반석 열리니’로 예배의 문을 묵직하게 열었다.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김용대 목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소강석 총회장의 활동 범위가 제약을 받는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소강석 목사님이 활동을 많이 하셔야 되는데.” 김용대 목사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소강석 총회장은 내가 볼 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끌어내시더라고요. 어찌 됐든 소 목사님은 활동적인 분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둬야 됩니다.” “그렇죠. 그게 좀 아쉽다는 거죠. 활동을 많이 하실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어서 제한된 가운데 하시긴 하지만...” “그게 좀 아쉬워요.” “가장 능력있는 분이 가장 어렵게 됐어요. 교단이나 교계에서도 바람직한 일인데... 하나님 뜻이죠.” “그러고 보니까 식사대접도 못 하네. (사모님에게 뭐라 말한다.) 어허 세상에.” “차 한 잔이면 되죠.” “어허 이거 어쩌지. 많이 드시지도 않지만.” “말씀 받았잖아요.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오셨다.) 저한테도 필요한 말씀이었는데.” “광주에도 큰 교회들이 많은데 시골까지 오셔서.” “시골이 아니라 영광대교회에 김용대 목사님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진 기본적인 신앙과 자원이 있는데 저는 제 앞에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거의 그럽니다. 안 그러면 화병(火病) 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지난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정리가 됐었는데 우리 오광춘 장로님이 엄청 서운했던 거 봐요. 우리 지역에는 같은 노회 한기승 목사님 계십니다. 2년 뒤에는 차례가 돌아오죠. 2년 전에 한 번 도전해서 물론 후보도 못 됐지만, 그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니까 가려지더라고요. 그때 어려웠잖아요. 정치 공학적인 어려움이었죠. 저는 한 번도 누구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돌아와서 내가 마음속에 약속한 것은 우리 교단 안에서 할 일이 있다면 겸손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아주 많이 부름을 받아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그래도 말씀 사역 기회를 하나님 주셔서 감사하고 그걸로 교단을 섬기니까 그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보면 교단 정치를 현실적으로 뛰어다니는 소모적인 부분도 많잖아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을 정의하는 가치로 기회, 안전, 자유, 존엄성, 존중, 명예, 그리고 진실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국인, 특히 헌법을 존중하고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선서한 지도자들은 진실을 수호하고 거짓을 물리쳐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평생 불운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이든 편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늘 털고 일어나 한 걸음 전진했다. 바이든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1917∼2010)이 심어준 긍정의 신앙 덕분이라고 미 언론들은 평한다. 바이든 여사는 아들 조가 어린 시절 말더듬증으로 인해 “모스 부호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할 때 “머리가 뛰어나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29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는 말씀에 근거해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시련을 주시진 않는다.” 그의 시련은 이어졌다. 1988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무렵 유세 후 쓰러졌던 바이든은 그 자신도 뇌혈관 부종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다. 가톨릭 신부가 임종 미사 준비까지 하던 위급 상황이었다고 에번 오스노스는 최근 펴낸 ‘조 바이든’ 전기에 기록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가 우려됐지만, 말더듬이 시절 어머니의 격려를 떠올리며 이겨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 때 “어머니는 정치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누구도 너보다 뛰어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너보다 못하지 않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도덕적 나침반이자 정치의 좌표가 됐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자택 주차장을 별채로 개조해 말년의 어머니를 모셨다. 2010년 어머니 별세 때 애도 성명에선 “헌신은 최고의 가치이며 신념은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한다는 어머니 말씀 덕분에 세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바이든은 2015년 뇌종양을 앓던 장남 보를 가슴에 묻으며 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때 주변에선 “시련이 바이든을 더 결단력 있고 더 겸손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리고 5년 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미국을 치유할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뒤 더욱 단단한 믿음의 낮아짐으로 견딘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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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1
  • 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홍해 사건은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 듯 고요 그는 호수에 파문 일 듯 입 열어 보수교단은 나날이 퇴색되는 보수 신앙 기치 다시 세울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코로나 팬데믹 총회 총신 혼돈해결할 총회 지도자로 필요 절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간절한 바람 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 마음에 오래 갇혀 있던 기도가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바람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쉬엄쉬엄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월의 나무들은 수락산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아주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하얀 빛이 된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바람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바람 하나 있음을 안다. 2018년 12월 16일 11시 30분 양문교회 예배는 이영신 목사가 내 자신 젊었을 때 듣던 보수의 아이콘 김창인 목사처럼 설교를 하는 설교자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1970년 시작된 양문교회의 원우연 목사와 서공섭 목사를 이어 2004년 11월 7일 부임한 제3대 목사다. 그는 본문 출애굽기 14:26-31을 봉독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성가대 찬양의 은혜에 대한 감사기도 후 이영신 목사는‘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는 듯 고요했다. 그는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 묻는다면 ‘일상생활에서 감탄하는 습관을 길러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어느 칼럼니스트가 말했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감탄하게 되면 그 안에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어린아이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게 별 것이 되고 그래서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감탄할 거리를 찾아서 감탄해보신다면 행복해지실 겁니다. 저는 주초에 아내와 예술의전당에서 서울모테트합창단(Seoul Motet Choir)이 연주하는 ‘메시아’ 전곡 연주를 관람했습니다. 그 후 3부 53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 시간이 장장 두 시간 삼사십 분 되는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어제까지 들었습니다. 정말 헨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메시아’라는 오라토리오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절대로 처서는 안 될 곳에 장막을 치고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600대의 정예 병거를 앞세우고 추격해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외쳤습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어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까 하노라 하지 않았느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인을 섬기며 사는 게 더 낫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 모세를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에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모세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던 것 같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 붙잡고 그 모든 상황을 여호와께 아뢰며. 지도자로서 간절히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향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부르짖지만 말고 행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르짖고 있을 때만 아니고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영혼의 호흡 같은 게 기도이기에 늘 기도해야 하고 또 위기를 만났을 때는 더욱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고 행동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그 다음에 행동해야 합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에서 포로임에도 왕의 큰 신임을 받고 있던 느혜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 성과 동족에 관한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에게 나아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무너진 성을 건축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역시 포로로 붙잡혀 가있던 시절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로 유대인 전체가 멸절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모든 동족과 함께 사흘 밤낮을 기도한 후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아하수에로 왕 앞에 목숨 걸고 나아갔습니다. 그처럼 기도했으면 지금은 부르짖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때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손에 든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키면 바다가 갈라질 것이고 그러면 백성은 마른 땅 육지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전쟁의 최고 지휘관이시고 사령관이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지도자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모세는 그대로 수행만 하면 됐습니다. 이어지는 17절에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여러분 이 말씀에서 누가 주어입니까. 바다가 갈라지게 만들고 애굽의 병거와 마병을 따르는 바로의 모든 군대를 수장시키고자 했던 분이 누구이십니까. 내가. 내가. 하나님. 애굽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들어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리하여 바로와 그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18절 또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갔던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다 죽게 될 때야 그들이 하나님이 여호와 참 신이신 줄 알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직후였습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뒤로 옮겨갔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하나님의 사자는 미디안 광야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던 그 여호와의 사자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탄생하시기 전의 성자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군대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뒤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자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섰습니다. 어떻게요. (회중은 미동도 없이 강단을 주목했다)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쪽은 대낮같이 밝았지만 애굽 진영 쪽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흑암이 깊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래야 할 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 사이 모세가 바다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내민 것은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닷가 해변에 물이 빠지고 나면 진흙투성이 개펄이 됩니다. 그런데 그걸 아시는 하나님께서 큰 동풍이 불게 하시어 바다 한 가운데가 갈라져 물이 물러가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진흙투성이 바닥이 육지처럼 마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육지처럼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 사이 물은 그들의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그들의 뒤를 추격해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 사이에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동 트기 전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혼비백산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어렵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친다.’ 그들 입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기들 밑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노예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과의 싸움이라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줄행랑을 치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비하히롯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말씀하실 때도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투루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회중 아멘)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자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었습니다. 역시 이 장면에서도 하나님이 총지휘관이셨고 모세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새벽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셨습니다.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애굽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장정만 60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넜지만 바로와 그가 이끄는 강력한 애굽 군대는 하룻 밤 사이에 바다에 수장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큰 일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과 그가 세우신 종 모세를 굳게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함께하시면 바다 한가운데도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중 아멘) 바닷가에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자 애굽 사람들은 길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그곳에 진을 치게 되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애굽 군대 칼에 죽게 하느냐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는 경외를 받으셨습니다. 또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셨습니다.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말씀하심으로 태초에 땅과 바다가 생기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큰 동풍을 불게 하사 바다를 가르시고 그 한가운데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는 것쯤이야 왜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쯤이야 어떻게 못하시겠습니까. 만들기도 하셨는데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인 진퇴양난의 상황에 하나님의 백성이 처하게 되면 그 바다를 가르시던지 아니면 바다 위를 걷게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다를 반드시 통과한 다음 가나안 복지 들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회중 아멘) ... 천지를 창조하신 인류의 생사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얼마든지 능력과 기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행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지은 죄를 모두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쉴 새 없이 중보하고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고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중 아멘) 그 진리를 깨닫게 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면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될 것입니다. 그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이영신 목사는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이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라고 갈파했다. 이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전략의 출발은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앞의 것이 '지리(地理) 감각'이고, 뒤의 것이 '역사 감각'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나를 바로 아는’ 것도 이 두 가지 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한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을 잃으면 홍해에 수장된 애굽 군대처럼 될 것이다. 보수의 아이콘처럼 말씀을 전한 이영신 목사가 지향하는 ’보수의 메시지‘는 기득권 옹호, 기복 신앙, 수구적 사고가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신앙적 삶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에 반하는 풍조에 대한 이런 말이 있다. ‘사회주의자는 (정권 장악에)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주의는 (국민을 고루 배부르게 한다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래서 기독교를 폄하하고 경제를 어렵게 하는 사회주의자들로 인해 지금 나라 형편이 아주 어렵다. 세계 모든 개발경제학 교과서에는 ‘한국 성공’과 ‘북한 실패’ 스토리가 체제(體制) 간 우열을 비교하는 대표 사례로 실려 있다. 한국은 이와 정반대로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부인하는 북한을 호도하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있다. 한국 보수교단인 우리는 나날이 깊어가는 국민의 이런 시름과 걱정에 희망의 출구(出口)를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 활로(活路)를 위해 이영신 목사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전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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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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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rship Designer 방성일 목사
    '지식 나눔 콘서트'나 '스타 특강쇼'처럼 요즘 TV를 틀면 흔히 볼 수 있는 강연 프로그램의 원조(元祖)가 테드 콘퍼런스다. 테드는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약자이다. 원래 테드는 1984년 건축가 리처드 워먼(Wurman)씨가 창립해 청중 800여명을 상대로 매년 한 차례씩 열린 소규모 행사였다. 그러나 2000년도에 워먼씨로부터 1400만달러에 테드를 인수한 앤더슨씨는 파격적인 실험을 통해 세계 지식산업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꿨다. 18분 강연의 기적으로 10억 명을 감동시키는 앤더슨은 말한다. “우리의 모토는 가치 있는 아이디어의 확산(ideas worth spreading)입니다. 저희는 하나의 큰 '아이디어 기계'예요. 기계 위쪽 입구에 아이디어를 떨어트리면, 전 세계로 배급되는 거죠. 테드는 한 가지에만 집중합니다. 호기심. 그것이 이 방대한 콘텐츠를 이어주는 유일한 단어입니다. 테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든 것에 대한 무대입니다. 테드는 선사시대의 캠프파이어 경험을 복원하려고 해요. 모닥불에서 불이 타고, 한 명이 물감을 잔뜩 칠한 얼굴로 앞에서 이야기해요. 또 누군가는 드럼을 치겠죠. 모두가 참여해요.” 효과적인 강연을 위한 테드의 무대 디자인 다섯 가지 규칙 가운데 두 가지 규칙 1. 이중 조명: 단선 조명은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지루하게 만든다. 무대 바닥과 천장 등에 조명을 이중으로 설치해 효과를 극대화한다. 2. 강연자는 청중석에서 무대에 올라서고 청중석으로 퇴장한다: 테드는 뒷무대가 없다. 뒷무대에서 입장하고 퇴장하면 시간이 낭비되며 청중과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꽃샘바람이 시샘하지만 그 바람이 겨울처럼 코끝을 아리게 하지는 않는 3월 4일 오후 2시 한 목회자를 대담하러 갔다가 젊은이 전도를 위해 테드의 앤더슨처럼 교회의 예배를 디자인하는 Worship Designer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하남교회의 방성일 목사다. 그의 서재는 두 면의 대형 책꽂이에 책이 빽빽이 꽂힌 것은 물론이고 바닥도 책들이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의 섬들처럼 쌓여 있었다. 커피가 나왔다. 잔에서 오른 김이 커피 내음을 실어 책 섬들 사이로 번졌다. ―어떻게 목사가 되셨습니까. 타고난 목회자로 보이시는데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목사 자질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의 성품이나 나름대로 소양이 있었다면 목사가 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열등의식일 수도 있겠지만 목사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 품행이나 모든 면에서 목사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입니다. ―그러면 목사가 되기 전에 다른 꿈이 있었습니까. 원래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옛날 시골 어른들이 제일 좋아하시는 직업은 당시의 화이트칼라인 면사무소 면서기였습니다. 농사꾼에게 가장 인기 직업이었죠. 당연히 제 부모님도 늘 제게 그런 소망을 말씀하셨어요. 공무원이 되라고요. 그래서 저 자신도 자연스레 그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세무직공무원이나 검찰직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공부도 쉽지 않은데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당시 세무직공무원 시험은 경쟁률이 120대 1이나 했어요. 그래서 포기하고 말았죠. ―그러면 목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했습니까. 그 당시 경북 경산의 우리 마을에 아주 잘 믿는 장로님이 담 너머 이웃집에 사셨어요. 그 집은 잘 믿는 집안입니다. 그 장로님 딸이 같이 자란 내 또래였어요. 그 영향으로 주일학교를 같이 다녔어요. 우리 부모님은 농사꾼이시니까 도시 사람처럼 신앙생활을 잘하시지는 못 했지만 교회는 그냥 다니시는 수준이었어요. 누나 등에 업혀 교회 다닌 기억도 지금 나네요. 내가 목사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웃집 장로님이 세상사로 시달리던 저한테 권유를 했어요. 나보고 신학을 한번 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그 권면이 제가 목회자의 길로 걷게 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목회 경력이 어떻게 되십니까. 제가 담임목사로 미국 샌디에이고 카운티의 엘센트로 한인교회에서 이민 교회 한번 목회했고 한국에서는 하남교회가 처음입니다. 사실 총신신대원 다닐 때 하남에서 교육전도사 생활했어요. 졸업반 때 제가 대구로 내려가서 청소년교육선교회 지역총무를 하고, 교회 교육전담 교역자, 교회가 파송한 교목으로 활동을 했어요. 그렇게 청소년 사역을 6년 정도 하다가 1996년도에 미국 유학을 갔어요. ―미국 유학을 가시게 된 어떤 동기가 있었습니까. 그게 제가 미국을 처음 간 게 1995년이었을 겁니다. 한번 가서 학교를 돌아보고 돌아와서 1996년에 가방을 싸가지고 유학을 갔어요. 교육목사, 선교단체 총무, 학교 교목으로 청소년 사역을 6년간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역에 대한 미래가 안 보이는 거예요. 세상은 급변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정치, 교육, 경제 모든 게 미국을 따라가니까 미국에 가서 공부하면 10년 후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청소년 사역을 잘하고 싶었어요. 이 아이들 사역을 잘하려면 미래를 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을 가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선겁니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먼저 조사를 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청소년학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알아보니까 샌디에이고에 복음주의 기독교 사립대학이 있는데 크리스찬 헤리티지 칼리지(Christian Heritage College)였어요. 지금은 이름이 샌디에이고 크리스찬 칼리지(San Diego Christian College)로 바뀌었어요. 샌디에이고 엘카혼(El Cajon)에 있는 그 학교 안에는 쉐도우 마운틴 처치(Shadow Moutain Church)라는 백인들 교회가 있는데 3,000여명 모이는 큰 교회였어요. 그 교회 담임목사가 이 대학의 설립자예요. 가보니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교가 있고 이 대학에 청소년학과가 있어요. 학부에 Youth Ministry가 있는 거예요. 게다가 1970년 1월에 설립된 이 대학의 설립 동기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 근거한 창조론의 틀 안에서 교육할 수 있는 대학이 필요해서였어요. 그래서 그 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3년만 있다 돌아오겠다고 아주 간 크게 보따리 싸들고 혼자 갔어요. 그런데 한 학기 지냈는데 너무 외로워서 혼자 못 살겠더라고요. 그 학교에는 당시 한국인이라곤 나뿐이었어요. 동양계도 일본인과 홍콩인 둘뿐이에요. 서른일곱이었는데 한 학기동안 기숙사에서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한 학기 마치고 방학 때 나와 가족을 데리고 들어갔죠. ―미국 비자가 참 어려울 때였는데요. 맞아요. 참 비자가 안 나올 때였어요. 돈도 없지 영어 실력도 짧지 비자도 없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그냥 용기만 있는 겁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어요. 94년 1월 겨울에 강사로 청소년연합수련회를 기도원에서 인도했어요. 그런데 새벽기도회 마치고 내 방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데 하나님께서 저한테 얼마나 말씀으로 위로를 주시는지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시편 32:8을 통해서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산에서 내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무 감동스럽더라고요. 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이구나. 그래서 바로 비자 신청했어요. 그랬는데 놀랍게도 비자를 바로 주더라고요. 담당자가 바로 찍어버리는 겁니다. 아 하나님 인도하심이구나 하고 감사했습니다. 너무 쉽게 가족과 함께 미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하나님 인도하심이었어요. 11년 살다가 한국으로 왔어요. ―11년 사셨으면 미국에서 목회 사역도 하셨겠군요. 거기 가서 한인 목회를 했죠. 한인 교회 목회를 잘하다 왔어요. ―저도 시카고에 1년 있었어요. 목사님 같은 분 오시면 교인들이 좋아하죠. 제가 이민 목회를 했는데 한 5년 지나니까 그곳이 좋더군요. 사회 환경도 느긋하고 우리 가족도 다 좋아하는 거예요. 영주권은 아이 때문에 받게 됐어요. 영주권 받은 지 5년이 지나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어요. 제가 미국에서 한국에 2007년 4월에 왔는데 2006년 봄에 가족회의를 했어요. 우리 이제 미국 살자고 말입니다. 다 좋아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민권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 시민권이 제일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아내 시민권이 나오고 나는 맨 나중 12월에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한 달 뒤 해가 바뀐 1월에 하남교회에서 청빙이 온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사실 2006년 가을 대구의 한 교회에서 청빙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교회가 나를 9 10 11월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연말에 들르겠다고 말해 놓으니까 그 교회는 계속 다른 사람을 설교시키면서 나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그곳에 보내신다는 마음의 감동이 전혀 없어요. 불안하고 그래요. 그래서 계속 못 갔죠. 그러다 미국 시민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교회에 못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 교회가 1월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고 연락했어요. 그 교회 청빙 문제를 그렇게 다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마음을 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 날인가 이 하남교회에서 청빙 연락이 온 겁니다. 나는 너무 놀랐죠.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오게 됐습니다. ―그러면 하남교회는 실제로 어떻게 오시게 됐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참 이야기가 긴데 제가 신대원 시절 하남에서 3년여 모시고 있던 분이 김윤규 목사님(하남예일)이세요. 월간목회 편집장을 오래 하셨죠. 그런데 그 목사님이 저를 여기 추천해 주셨어요. 그분과 헤어진 지 20년이나 됐는데 저를 기억하고 이 교회에 추천해 주신 겁니다. 김윤규 목사님이 당시 이 교회 임시당회장이셨습니다. ―저도 출판관계로 인연이 있는데 김윤규 목사님 정말 좋으신 분이죠. 김 목사님이 임시당회장이시니까 저를 모든 면에 이 교회에 맞는 사람이라고 추천하신 겁니다. 김윤규 목사님이 워낙 훌륭하신 분이라 장로님들이 그럼 한번 보겠다고 한 겁니다. 저는 서류도 낼 겨를이 없이 바로 청빙 목사 세 명의 후보군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그래서 나까지 네 명이 되었죠. 네 사람이 다 설교하고 교회가 투표를 했어요.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들이 투표를 한 겁니다. 먼저 두 사람이 결정됐어요. 두 사람을 놓고 당회가 또 투표를 했어요. 그래서 결정된 한 사람을 놓고 전교인이 참여하는 공동의회를 한 겁니다. 저는 투표를 세 번 받았어요. 하나님이 하시니까 순적하게 진행됐어요. ―하남교회가 전통을 따라서 은혜롭게 청빙 절차를 밟았네요. 기도하고 투표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는 거죠. 다른 분들도 아주 강력한 후보들이었는데 제가 됐어요. 하나님 은혜죠. 저는 모르고 왔는데 와 보니까 청빙위원들이 정한 열 가지 조건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조건에 딱 맞았다는 거예요.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일이니까 다 순적하게 이루어지더라고요. ―담임목사로서 실제로 목회를 하시는데 교회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런데 신학적인 지식보다도 교회는 성도에게 어머니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고향인 겁니다. 우리가 어머니 품에서 자라고 힘을 얻듯이 교회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가 지치고 힘들면 어머니한테 와서 용기를 받고 또 세상으로 나가고. 그래서 교회가 어머니 같다고 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엄마를 찾듯이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 교회 해 보니까 두드러지는 게 한국에서 예수 안 믿던 사람들이 외롭고 괴로우니까 교회로 오잖아요. 어떤 면에서 교회가 엄마지요. 그 사람들 인도해 주고 품어 주고 격려해 주고 돌보아 주고 하는 겁니다. 결국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민 교회를 목회하면서 참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안 믿는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곳이 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이 위로도 얻고 힘도 얻는 거죠. 우리가 몸이 병들면 병원가고 약 사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음이 아프면 갈 데가 없잖아요. 마음이 아프면 어디로 가나요. 마음이 상하고 고통스러우면 혼자 끙끙 앓고 있거든요. 그러다 누구 만나면 고작 푸념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지 않습니까.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면 정신과에 가죠. 그전에는 안 가거든요. 결국 마음이 상한 자는 갈 곳이 어머니인 교회입니다. 이민자들은 더욱 그렇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살다가 마음이 상하고 아프면 어머니한테 와야죠. ―목사님이 오셔서 교회를 이전하고 이렇게 성장시키셨는데 어떤 목회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참고로 제가 2007년 4월 8일 부활주일에 부임 설교를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월요일 서울동노회가 열렸어요. 노회 참석해서 이명 허락을 받은 바로 그날 저녁 장로님이 내 이름의 도장을 새겨가지고 와서 이 땅 계약을 했어요. 이 땅은 제가 부임하기 전에 이미 구입하기로 결정을 해 놓은 거죠. 그러니까 계약만 제가 한 거죠. 그때부터 설계와 건축은 제가 다 관여하게 됐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비행기 타고 오면서 이런 형편을 모르고 교회가 힘들테니 이삼 년 안에는 교회를 건축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교인도 잘 모르고 하니 말입니다, 그게 일반 목사들 생각이죠. 그런데 와 보니 상황이 그렇지 않은 거예요. 지나고 나니까 그때 잘했지 싶어요. 그런데 이 예배당 장소를 놓고 갑론을박이 참 많았어요. 원래 교회가 있던 장소를 주장하는 측이 있고, 이전 결정을 한 지금의 장소를 원하는 측이 있고, 제삼의 다른 장소를 생각하는 측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상황을 이민 교회에서 한번 겪었어요. 미국에서 작은 예배당을 하나 지었는데 상황이 똑같았어요. 땅 계약 진행 과정이 다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 경험을 살려 진행을 했는데 하나님 은혜로 잘됐어요. 하나님께서 한국 목회를 위해 미국에서 저를 미리 훈련을 시키신 거죠. ―그 당시 지금의 교회를 크게 지으신 거 아닙니까. 제가 아니라 온 교인이 힘을 다해 지었습니다. 사실 부채도 꽤 되긴 하지만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교회의 갈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저는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정이 많아요. 저는 미국에서도 장로님들하고 친구처럼 지냈어요. 저는 스스럼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저를 처음 봤을 때 놀랐을 겁니다. 제가 미국에서 선을 보러 왔는데 편하니까 백팩을 메고 왔어요. 목사는 그렇게 안 다니잖아요. 그런데 와서 설교를 하고 당회실에서 면담을 하는데 저는 그냥 편하게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어요. 오랜 사귄 사람들처럼 막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장로님들이 놀랬을 거예요. 저는 잘 보일 일도 없고 하나님이 결정하신다고 생각하니 참 편했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얘기 했어요. 사실 저는 좀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교회 건축 문제를 얘기할 때도 그냥 자유롭고 편하게 하는 겁니다. 목사가 그러니 교인들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단호함과 엄격함이 드러날 때가 있어요. 교회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가 반세기가 넘은 51년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죠. ―목사님 겉보기에는 점잖고 매끄럽게 보이는 데 다른 면이 있는 모양이지요. 그런데 그런 내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저희 교회가 오래 되다 보니 전통을 고수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세상적인 방법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경적인 방법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당회를 할 때도 기도를 많이 해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이 교회 회의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당회는 통성 기도를 많이 하고 회의를 합니다. 이렇게 했더니 회의도 순조롭고 시간도 많이 안 걸려요.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방식의 회의네요. 저희는 회의를 할 때 순서에 따라 발언을 하고 조용하게 진행합니다. 회의는 의견 조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가 되어야 하고 발언의 기회가 공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견 조율이 어렵지 않아요. ―어려운 걸 쉽게 처리하십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죠. 하나님께서 사람들 일을 잘 아시니까 캘리포니아 끝자락에 있는 저를 하남교회에 데려다 놓으신 거예요. 교회가 평안해지고 교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 당시에는 교회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오고 3개월 만에 좋아졌어요. ―설교를 어떻게 준비하십니까. 씨름하죠. 그러니까 현대교회의 예배 핵심이 설교인데 설교에 맞춰 예배를 디자인해야 합니다. 저는 빅 아이디어 큰 생각 즉 큰 주제 하나를 정해요. 이 달 같으면 지난주에 했는데 지저스 스토리Jesus Story 즉 예수님과 나와의 이야기인데 이걸 의역해서 인생의 봄이라고 해요. 3월이니까 봄이 오잖아요. 이 봄에 맞는 메시지 다섯 개를 기도하면서 정합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성도들의 상황입니다. 성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말씀이 필요할까에 맞춥니다. 이 다섯 개를 정해놓고 설교를 준비합니다. 주제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는 자료들을 찾고 강단에 디스플레이를 합니다. 주보도 거기에 맞춥니다. 주보에 예고편 식으로 다섯 개의 주제도 보여 줍니다. 그러면 교인들이 다음 주에 어떤 말씀을 듣게 될지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이 예컨대 히든카드라는 제목을 보면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설교에 맞는 영상을 제작합니다. 다음 주 영상을 찍으러 내일 담양에 간답니다. 한 팀이 갑니다. ―매주 그걸 만들면 상당한 시간과 예산이 투입되겠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전문 방송 팀이 있어요. 풀타임 사역자들입니다. 영상 음향 조명 팀도 있습니다.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도 있어요. 등장 배우는 교인들이 봉사해요. 남의 것을 사용하면 저작권 침해라 방송에 내보낼 수가 없어요. 설교 한 편에 맞춰 이 모든 것들이 종합해 사용됩니다. 설교는 건축의 기둥처럼 큰 주제로 세우고 거기에 맞는 소주제를 교인들의 상황에 맞춰 채웁니다. 그렇게 디자인된 예배 시간에 제가 설교를 합니다. 말하자면 아픈 사람이 약국에 오면 열이 나는지 기침이 나는지 들어보고 진단해 약을 조제해 주잖아요. 그런데 약국에서 진단 없이 미리 약을 지어놓고 오는 사람 순서대로 주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약사는 환자의 상황에 맞는 약을 주는 게 약사의 본분이죠. 목사는 성도의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 년치 주제를 정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상황을 위해 매달 주제를 정합니다. 그 달이 끝날 때쯤 다음 달 주제를 기도하면서 정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교인 중심의 설교를 준비해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서는 한 달에 얼마나 하십니까. 정해 놓지는 않았습니다만 서점에 가면 30권은 삽니다. 직원을 시켜 사는데 30권 더 사면 샀지 덜 사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금방 봅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컨대 이 책을 보면 목차를 보고 필요한 곳을 찾아 읽습니다. 그러면 이 책에서 본전 다 뽑은 겁니다. 소설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다음 책을 읽는 겁니다. 30권 사오면 금방 다 읽게 됩니다. 그리고 저렇게 쌓아놓죠. 저는 독서 때문에 머리 아프거나 부족을 느끼진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은 독서를 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다양한 책을 섭렵합니다. 성도들의 상황에 맞추려면 제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성경 본문 연구는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 교회가 참 좋은 교회라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본문 중심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두란노가 발간하는 《생명의 삶》을 온 교인이 보기 때문입니다. 1997년 부임한 해 여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걸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걸 매월 정기구독으로 700권을 받습니다. 그 본문을 가지고 새벽기도회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본문 묵상이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 전체 본문을 돌은 게 아마 몇 차례 될 겁니다. 본문이 정해지면 주석도 보죠. 필요한 단어는 원어도 찾아봅니다. 그러나 본문에 그렇게 매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성경 연구보다 묵상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죠. 그래서 지난달의 주제가 하나님을 체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로는 Testimony 증언이라 했지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자기 간증이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논리나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아는데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종교적인 사람 즉 종교인입니다. 지난 한 달 그걸 설교하면서 제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면 아무리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많이 알아도 사실은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성도들과 은혜의 시간을 많이 나누었죠. 제 개인적으로는 참 풍성한 한 달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데 우리가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거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배우기만 했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를 한번 들었는데 자기계발적인 내용이 많은 것 같았는데 실제 내용은 그렇지가 않군요. 제 설교를 그렇게 하는 의도는 교인 가운데 청년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교회이기도 합니다만 우리 교회가 연령층이 높았습니다. 제가 부임할 때 마음에 부담이 될 만큼 교인들 머리가 하얀 거예요. 그래서 포커스를 바꿨더니 지금은 삼사십 대가 교인들 주류를 이룹니다. 아주 많아요. 그런 젊은 사람들 때문에 설교를 그렇게 하는 겁니다. 안목을 가지고 젊음의 한때에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제 설교에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도전 의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 설교 때문에 다시 시작하고 도전한 사람이 젊은 사람 가운데 많습니다. 주부들 중에서도 자격증도 따고 학위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사무실 직원도 그렇습니다. ―듣고 보니 놀랍네요. 목회자들의 사고가 일찍 늙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 사람이 있고 젊은데도 나이 든 사람이 있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사고(思考)가 나이 든 목사가 있어요. 관건은 저도 나이가 들어도 젊음의 사고를 가지고 목회를 하면 젊은 사람들이 제 설교를 듣는 자리에 계속 있지만 제 사고가 늙어버리면 이 사람들은 사라져요. 그래서 목사의 설교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교회는 지금 삼사십 대 교인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예배도 1부 2부는 정장 차림으로 설교합니다. 그러나 3부 4부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헤드셋을 하고 강대상을 자유롭게 누비며 설교를 합니다. 3부와 4부는 조명도 회중석은 좀 어둡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미국 교회에서도 그런 걸 많이 봤습니다. 극장처럼 아주 어두운 교회도 있어요. 사람의 마음이 약간 어두우면 안정이 돼요. 어두우면 숨을 수가 있어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숨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들의 심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그렇게라도 교회 나와서 하나님께 편안히 예배드리게 해야지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 배려가 젊은이가 교회를 올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의 집중을 위해서도 좋은 것 같은데요. 청년들은 퍼포먼스에도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어쨌든 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하면 은혜가 안돼요. 환하면 불안해지는 경향도 있어요. 나이든 세대는 예배는 환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선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나름대로 선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미국에 있을 때 멕시코에 교회를 하나 세워 봐서 아는데 선교 전략이 정말 필요해요. 선교지의 형편이 어려워지면 후원받은 재산을 처분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의를 여러 사람 이름으로 해야 됩니다. 서로서로 모르게 하고 후원한 교회의 담임목사만 아는 거죠.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게 맞죠. 그러나 선교에 대해 성도들도 보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선교의 방향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냥 선교사 보내고 후원금만 보내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선교를 하게 되면 전략적인 선교를 할 것이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선교지에 학교도 세우고 센터도 세우려고 합니다. 태국이나 캄보디아 수도 같은 데서 좋은 대학의 젊은이들을 선교할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 없는 시골보다 도시의 젊은이들을 선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가 바뀌는 것은 젊은이 선교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후배 목사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죠. 우리 세대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세대였습니다. 밤새 부르짖고 울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가슴 세대고 요즘 세대는 머리 세대 같아요. 우리는 열정을 앞세우는데 요즘 세대는 데이터와 정보를 중시하는 것 같아요. 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에서 두 학기 째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다 제 후배들 아닙니까. 늘 이런 얘기를 자주해요. 우리 시대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목회자들이 시대에 맞는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지만 그 대신에 마음은 더 공허해집니다. 그래서 그 심령을 채워줄 수 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제 설교는 많은 경우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겉은 멀쩡한데 속이 병들잖아요. 계절의 봄은 때가 되면 와요. 꽃이 피고 향기가 날리는 봄은 그냥 누구에게나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인생의 봄은 초청하지 않으면 오지 않아요. 내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내가 영접하고 나를 향한 그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내 인생의 진정한 봄이 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벌고 출세해도 인생의 봄은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봄을 맞이할 때 하나님을 향한 젊은 목사들의 사랑과 헌신이 뜨거워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편 32:8 2015-03-21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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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1
  • 한국의 스펄전 장대영 목사
    침례교 뿌리는 종교개혁 후기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09년 홀랜드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 존 스미드(John Smyth)는 자신의 머리에 물을 붓는 세례를 행하고 다른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침례교 운동은 의미 있는 성장을 했다. 런던의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과 맨체스터의 맥클라렌(Alexander Maclaren)과 같은 위대한 설교자들이 침례교회로 수많은 청중을 이끌었다. 2009년 침례교는 설립 400주년을 기렸다. 찰스 해돈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은 영국 에섹스 켈비던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어온 일상이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삶은 아니었다. 스펄전의 회심은 15세 때인 1850년 1월 6일 일어났다. 약속이 있어 가는 길에 눈보라 때문에 콜체스터에 있는 한 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교회에서 스펄전의 마음에 구원의 메시지를 열어주셨다. 그를 감동시킨 성경 본문은 이사야서 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였다. 그의 자신의 회심에 대한 회상은 이렇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만, 만약 하나님이 은혜롭게도 어느 일요일 아침 대단히 심한 눈보라로 나의 예배당 가는 길을 막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암흑 속에 있지나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날 아침 나는 눈에 길이 막혀서, 우리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조그만 한 교회에 불가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회중은 모두 열 두 서넛밖에 없었으며 목회자도 안 나왔습니다. 아마 눈에 길이 막혔던 모양이었습니다. 이윽고 한 초라한 사람 ― 양복장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구두장이 같아 보이는 이가 강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본문을 외어대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딴 소리는 할 재능이 없어보였습니다. 본문은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하는 이사야 45장 22절이었는데 이 사람은 본문을 온전히 읽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경 봉독을 들었을 때 제 생각에 그 말씀에는 제게 대한 어떤 소망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안됩니다. 예수를 자주 바라보십시오. 예수는 '나를 바라보라' 하셨습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큰 핏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가에 매달렸다. 보라, 나는 죽어 장사되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승천했다! 나는 아버지 오른 편에 앉았다! 오오,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라!" 여기까지에 겨우 한 십 분 동안을 소비하고 나서 이 설교자는 밑천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강단 바로 밑에 앉았던 나에게 시선을 던졌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는 내가 처음 나온 사람인 줄을 알아 차렸던 모양입니다. 그는 나를 향해 입을 열어 "청년, 당신은 왜 그리 가련한 모양을 하고 있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청년이 이 성경 본문을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나 가련할 것이고 죽어서도 가련할 것이요. 그러나 이제, 이 시간에 이 성경을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소." 그는 한층 소리를 높였습니다. "청년이여, 예수를 바라보라! 지금 바라보라!"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리에서 놀라 일어났으나, 그러나 그 때 나는 예수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구름은 걷히고, 나는 햇빛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넘쳐 구주의 귀하신 보혈과 단순 명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찬송하고 싶었습니다. 아아, 그 누가 이 진리를 좀 더 일찍이 나에게 깨우쳐 주었더면..."나를 앙망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고한 이 위대한 진리를! 그때부터 스펄전의 삶은 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의 삶이었다. 1851년 그는 17세의 나이로 정식 목사 직분을 얻었다. 장대영 목사의 회심도 스펄전처럼 이루어졌고 목사 안수도 17세 때 받고 부흥사로 나섰다. 그의 당시 충청도는 성령의 바람이 뜨겁게 불던 곳이었다. 부흥회를 얼마나 많이 다녔던지 충청도 지역이나 섬 지역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2015년 1월 10일 10시 수도중앙교회 당회장실에서 장대영 목사를 만났다. 그리 크지 않은 당회장실 벽에 수양관 전경이 찍힌 큰 사진틀이 걸려 있었다. ―목회는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목회 시작은 감리교에서 했어요. 그러다 마경일, 윤덕수, 윤창덕 등으로 인해 교단이 갈라지는 바람에 그 바람을 피해 장로교로 왔어요. 그런데 김희보 목사와 박아론 목사가 또 갈라지는 바람에 분열의 아픔과 피해를 또 겪었지요. 어쨌든 이제는 평안해져서 참 은혜롭습니다.” ―사역 기한은 어떻게 되십니까. “목회사역 45년, 부흥사역 45년입니다.” ―두 사역이 다 같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나이에 비해 내가 목회를 오래 했어요. 거기에는 군 면제도 한몫 했지요.” ―독자이셨습니까. “아니요. 대전 병무청에서 누락시키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요. 그 당시는 전도자나 목회자가 많이 없던 시절이었죠. 하나님 복음 사역이 더 급해서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어쨌든 하나님 은혜죠. 그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병역 문제를 엄히 다스려서 미국 보낸 장관 아들도 불러들이던 시절이었는데 말입니다.” ―선대 때부터 내려온 신앙의 집안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내 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 핍박도 많이 받았어요. 그 당시 이강산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같은 분들에게서 은혜를 받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모양입니다.” ―그럼 몇 살 때부터 믿었습니까. “저는 그냥 주일학교부터 다녔어요. 육이오 끝난 뒤였는데 여덟 살부터 열심히 교회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니까 어린애가 별스럽다고 유교 집안에서 핍박받고 그런 거지요.” ―교단 안에서 친한 분은 누구셨습니까. “최승강 목사. 참 친했죠. 그런데 좀 일찍 떠나고 말았어요. 최은혜라고 딸이 있었는데 굉장히 사랑했죠. 그런데 그 딸때문에도 마음이 많이 아팠던 모양이에요.” ―부흥사는 어떻게들 되시는 겁니까. “옛날에는 은혜를 받으면 부흥사가 되었어요. 60년대 70년대 성령운동이 일어나니까 그 당시 체험하고 은혜 받으면 사명을 강조하던 시절이었어요. 목회자도 많지 않던 시절이고. 또 성령의 체험 속에서 뜨거워지니까 복음 전하는 일이 인생의 최고 목표로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사명감에 대개 부흥사가 된 거죠. 우리나라에서 성령운동이 제일 먼저 일어난 곳이 충청도였어요. 성거산 집회, 흑성산 집회, 계룡산 집회 등에서 이성봉 목사, 박제봉 목사 등의 부흥회로 성령운동이 충청도에서 빨리 일어났어요. 옛날 오관석, 김충식, 강달희 등을 보면 다 충청도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삼각산에서 집회를 하다보니까 서울에서도 성령운동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경상도 쪽에서는 용문산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사적으로 육이오 이후에 성령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이 사실 충청도입니다. 처음에는 이북출신 부흥사들이었지만 나중에는 충청도에서 제일 많이 부흥사가 나왔죠.” ―그러면 목사님은 몇 살 때 부흥사로 소명을 받으신 겁니까. “열일곱 살 때.” ―그 때부터 바로 부흥회를 시작하신 겁니까. “당시는 열일곱 살만 되도 주일학교 선생을 다 맡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열아홉 살 정도부터 집회를 해달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72년에 전도사로 제천에 있는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게 되었어요.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정식으로 부흥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김제 남산교회 부흥회를 시작으로 연줄연줄 계속 나가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신안 앞바다 섬에 있는 교회는 다 다녔습니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나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죠. 근래에는 도시 중심으로 부흥회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살다보니 벌써 45년이란 세월이 지나가버린 겁니다. 근 반백년 부흥사역입니다.” ―목사님 기록을 보니까 목회사역 기간과 부흥사역 기간이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분이 다 계시나 했습니다. 제가 총회 전도국장 시절 일만교회운동을 하느라 부흥사들과 같이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부흥사들 설교가 중복되고 한정되어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십니까. “부흥사들이 은사를 가지고 설교를 하니까 제한적인 설교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 설교나 부흥회 설교나 폭을 넓혀서 하고 있습니다. 부흥회 설교다 해서 말씀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부흥사일지라도 설교를 말씀 중심으로 해야지 열매가 있고 생명이 깁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으로 하지 간증 집회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간증하다보면 내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게 하다보면 자기를 확대시키게 되요. 거짓말도 하다보면 습관이 돼서 자꾸 하게 되고 결과가 안 좋게 되죠. 게다가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시지를 않아요. 내가 좀 부족해도 말씀 중심으로 하면 성령이 역사하셔서 은혜가 있게 되죠. 그러다보니 제 부흥회는 한 교회에서 여러 번 초청해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최승강 목사 교회 같은 경우에는 일곱 번이나 초청을 받았어요. 그런데 일곱 번째 하려는데 최승강 목사가 소천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후임 목사가 초청을 해서 그 교회 부흥회를 일곱 번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최병헌 목사의 인천 낙원제일교회도 그 정도 했죠.” ―최병헌 목사도 부흥사인데요. “그 분이 내 어렸을 때 간증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나를 초청했는데 여덟 번인가 했어요. 나는 최 목사를 몰랐는데 최 목사는 나를 잘 아는 겁니다.” ―목사님은 부흥사로서 화려한 경력을 가지신 분인데 선전은 안 하신 것 같네요. “나는 나 자신을 선전하거나 하지를 않고 열심히 부흥회를 다녔어요. 그런 걸 하면 죄인 줄 알았어요. 보수적이었죠. 우리는 애를 키워도 품에 안고 다니면 큰일 난 줄 알았으니까요. 성경대로 사명자는 부모형제를 버려야 된다고 믿었죠. 그러다보니까 내 자신을 알리는 일은 꿈도 못 꿨죠.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더 오래 하는 것 같아요.” ―설교는 어떻게 준비하십니까. “설교는 한 주 전에 본문을 정하죠. 그렇게 해야 부흥회를 주일 저녁부터 나가니까 설교를 준비할 수가 있죠. 마음속에 설교 본문과 내용을 담고 지냅니다.” ―설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시는군요. “그렇죠. 생각을 많이 합니다. 목사가 설교 생각밖에 더 있어요. 사람 보는 것에서도 깨달음을 얻고, 만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교훈과 뜻을 발견하고, 그렇듯 항상 설교 준비에 마음이 꽉 차 있어요. 주부가 식사 준비를 위해 반찬을 늘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하고 설교 원고를 씁니다.” ―설교를 잘하는 김동호 목사도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하더군요. “아 그래요. 저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자나 깨나 설교 생각이죠. 그게 생명이니까요.” ―결혼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 집사람하고 여섯 살 차이에요. 내가 좀 늦게 결혼을 했습니다. 33살에 했으니까요. 기다렸다가 했어요. 그때는 시절이 가난하고 세대주의가 강할 때라 주님 빨리 오시기를 바라던 때인데다 저는 빨리 주님 오셔야 한다는 믿음도 있어서 결혼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면 목사 사모하면 되겠다 싶어 기다렸습니다. 믿음도 좋고 얼굴도 예뻤어요. 교회 봉사도 잘 했죠.” ―자녀는 어떻게 되십니까. “일남일녀입니다. 아들이 재작년에 목사가 됐습니다. 지금 캐나다 유학 가 있습니다. 딸은 예능 쪽인데 여기서 대학 나와 독일 유학 가서 바이올린 전공했어요. 그래서 스투트가르트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 있어요. 아직 미혼입니다. 32살인데 유학파들은 결혼이 늦어져요. 독일은 대우가 좋잖아요. 그러니 갈등이 많죠.” ―어떻게 딱 둘만 나셨어요. “우리 형제가 많아요. 내가 십 남매에 다섯째입니다. 그래서 형제가 많은 건 그렇게 원하지 않게 되죠.” ―자녀는 어떻게 키우셨어요. “아들은 아내가 하나님께 바친다고 서원을 했어요. 아들이 커서 신학을 하는데 나는 목회자가 하도 많으니까 그만 두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떠봤어요. 내심 안한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면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본인은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후회가 되는 건 아들한테 너무 엄하게 대했다는 겁니다. 집에서도 볼 때마다 인사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딸은 그렇지 않았는데 아들은 내가 상당히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내 앞에서 한번도 아니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들이 자신의 감정 표현을 나한테는 전혀 안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아주 자그마한 것까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좀 마음이 아픔니다.” ―목사님이 화를 내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내가 잔소리는 안 해요. 그런데도 나를 그렇게 어려워하는 겁니다. 너무 어려워하니까 그 당시는 키우기는 편했는데 나한테 너무 눌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유학으로 멀리 떠나고 나니까 마음의 빈자리가 더 큰 것 같네요. ” ―어디로 갔습니까. “캐나다 밴쿠버로. 공부하고 적응하려니까 힘든 모양입니다. 손녀가 둘입니다.” ―며느리는 뭘 하십니까. “이대 간호학과 나와 이대 부속병원에 있다가 결혼을 했죠. 지금은 내조만 하죠. 애들도 잘 키워요. 우리 손녀가(손톱을 내밀며) 요만큼 한마디도 나한테 반말이 없어요. 백 프로 존댓말을 써요.” ―아드님이나 따님도 목사님한테 존댓말을 쓰게 하셨겠죠. “교역자도 기도할 때 말씀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데 그런데 손녀는 말씀하시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말해요. 애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며느리가 참 잘 가르친 거겠죠. 그리고 사람이 나이를 먹으니까 손녀 보는 재미로 사는 게 상당해요. 그 아이만 보면 엔돌핀이 나오는 것 모양입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집에 오면 내 품에서 자고 가곤 했어요. 이제 떠나고 나니 얼마나 허전한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가 여섯 살 아이인데 나한테 오면 내 수준에 맞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거짓말 하는 줄 알아요. 못하는 말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언어의 마술사라고까지 했어요. 아이한테.” ―목사님은 성격이 어떠십니까. “우리는 외모로만 차분한 것 같지 내면은 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설교도 빨리 하고 모든 것이 조금 지체하는 걸 못 보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시간도 칼날 같죠. 내 위치가 목사니까 겉으로 억제하는 것이지 실상 속으로는 성격이 굉장히 빠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시작되면 잠을 못 잘 때가 많아요. 생각을 거듭 하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늘 잠이 부족해요.” ―수양관을 보면 규모가 굉장한데요. 지금 이만한 일을 이뤄놓으려면 굉장히 큰 일인데요. “잔디만 2만 5천평입니다. 은혜의 전당 옥탑까지 내부는 다 대리석을 붙이고 외부는 화강암으로 했어요. 이런 수양관은 전국에 하나뿐입니다. CTS의 내 영혼의 노래 방송도 저기서 몇 번 했어요. 총회 일만교회운동 세미나도 계속 하고 있죠. 수양관에 한 100억 정도 들어갔어요. 저 독수리가 있는 수양관 문만도 2억5천이 들었습니다. 열두 대문처럼 문이 위엄이 있어야 사람들이 무시를 못해요. 문이 하찮으면 사람들이 막 들어와요. 저 설계도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가 했습니다.” ―개선문 같아요. 저 독수리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사야 40:31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는 말씀의 독수리를 상징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양관은 좋습니다. 수영장도 있습니다. 집회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여름 행사 때마다 아이들이 물 사고를 당하곤 해서 말입니다. 전체가 5만 5천 평인데 나무하고의 싸움도 만만치 않아요. 교인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조경하느라 들어간 흙 값만도 엄청 들었어요. 목요일은 저도 새벽 끝나면 가서 열심히 일 합니다. 운동 부족인데 그걸로 메꿔요.” ―목사님은 집회 때 신유도 행하십니까. “저는 기도만 해요. 교인들의 생활에 집중해요. 하나님을 섬기면서 복을 받고 누리는 삶을 강조합니다.” ―기억에 남는 집회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대전에서 1979년도 열린 충북 체육관 집회일 겁니다. 그 집회가 컸어요. 당시 한 3만 명 모였어요. 그 때도 내 나이가 30대 후반의 어린 나이인데 말입니다. 사실 난 유신 반대도 해서 끌려 다니기도 했어요. 그때 이적이 많이 일어났어요.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불치병 걸린 사람들도 낫고 그랬어요. 이런 이적이 일어나니까 결신자가 수천 명이나 됐어요. 참 대단했어요. 3박 4일의 연합집회인데 내가 주최를 했어요. 충북 체육관 짓고 얼마 안되었을 때인데 꽉 차고 밖에까지 사람들이 줄 서 있었어요. 그때는 뜨거운 때라 그런 집회가 가능했어요.” ―지금하고는 어떻습니까. “많이 다르죠. 옛날에는 강단에 서면 교인들이 은혜를 받으려고 눈들이 빛났어요. 그러나 지금은 은혜보다는 이벤트성이 강해요. 은혜를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구경을 하는 자세들이죠. 지금은 믿음이 걱정스러운 지경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믿음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말세 현상인 것 같아요. 돌리기 힘들 것 같아요. 목회자들이 그렇게 가요. 교역자들 스스로가 교인들 영혼이 아니라 신앙이 아니라 수평 이동을 위해 믿음이 아니라 영웅심으로 목회들을 하는 것 같아요. 숫자 확보나 큰 교회 만들면 된다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요. 교인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우리 정신하고는 안 맞아요. 내가 얘기해 봤자 나만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말해도 듣지를 않아요. 저마다 잘 났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말세에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했기 때문에 그냥 말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같이 안 가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지 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나이도 70이 가까워지니까 말은 바르게 합니다.” ―유신도 반대하셨는데 요즘 정치는 어떻게 보십니까. “나쁘죠. 세월호에 무슨 법이 필요해요. 애도해야죠. 정치인들도 보면 애국심이 없어요. 너도나도 무료를 부르짖는데 나라 망하면 어떻게 됩니까. 국민들 인기몰이 해 표나 끌어 모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참 걱정스럽습니다. 영화를 보지는 못 했습니다만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제시장 같은 영화가 많이 나와야 됩니다. 어떻게 해서 세워진 나라인데 정치인들이 표나 얻으려고 그러면 안 됩니다. 농촌도 잘 사는데 저마다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으려고 야단들이에요.” ―교회 분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단이 문제입니다. 또 목회자도 문제가 있고요. 참 목자라고 밥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삯꾼이라고 해서 밥 안 먹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명감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런 정신이 사라지다보니 자기 것을 챙기려는 성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럼 흠점을 이단이 파고 들어오고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총회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평동노회 총대 30년입니다. 연속으로 총대 30년 한 사람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정치는 하지 않습니다.” ―아니 총대 30년 하셨으면 정치 안 하시고는 안 될텐데요. “사실 내막이야 다 알죠. 다 보면 총회 돈 눈먼 돈이라고 다 먹지만 다 그 대가를 치르더라고요. 총회를 악용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아요.” ―교회 후계자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교단은 하나님의 예정과 뜻을 믿기 때문에 다른 교단들처럼 유행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습이라는 말 자체를 성경적이지 못하다 생각합니다. 그런 말은 왕조나 독재 정권에서나 쓸 수 있는 용어라고 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이고 노예인데 무슨 세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믿음과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많이 보게 돼요.” ―이제까지의 삶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강북에 있었다는 겁니다. 올해가 우리 교회로서는 40주년이라 그간 주변을 사들이긴 했어도 워낙 이 지역이 땅이 없어요. 이 지역은 가난한 곳이에요. 그냥 먹고사는 사람들은 많아도 사업가는 그닥 없어요. 빈촌은 아니면서 모험을 하지 않는 안정적인 사람들로 주종을 이루고 있죠. 그래서 사실 내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야 되는 지역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늘 빚이 있습니다. 1월 한 달 바치는 헌금이 한 삼천 됩니다. 감당할 수 있다니 감사할 뿐이죠. 1975년도에 강남으로 나갔어야 했어요. 김선도 목사 같은 이는 여기 있다 그리로 갔어요. 내가 어리다보니까 그런 상황 판단이 덜 됐어요. 내가 스케일이 너무 작았어요. 여기 산도 좋아 기도하기 좋다고 눌러 앉았죠.” ―이제 후배 목사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목회라는 것은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이나 진실인 것 같아요. 재능이 좀 부족해도 진실하게 말씀을 전하고 진실하게 기도하고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목회하면 목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더라고요. 우리가 무슨 목회를 하겠어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같은 설교를 해도 진실하게 기도하고 전하면 은혜가 있는데 유행어를 외위 웃기고 인터넷을 이용해 지식을 내보여도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니까 은혜가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문명의 이기나 내 재주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2015-02-08
    • G.PEOPLE
    • G.PEOPLE
    2015-02-08
  • 엄상익 변호사
    이단집단과 종교전쟁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금‘이단은 누구이며, 진정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그 화두를 던지는 소설가 변호사 엄상익의 외침 3백 명이 넘는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업배후인 구원파집단 문제가 벌써 석 달 넘게 신문지면과 방송을 온통 뒤덮고 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체가 한 종교단체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 교주 유병언의 도피행각이 결국 그의 비참한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종교가 미움을 받고 있다. 우리 시대 이단들의 특징과 현상, 맘모니즘에 빠진 한국교회- 목사전쟁, 노래방목사, 총회장 목사의 주먹다툼, 스캔들과 모략, 종교 재판국, 탤런트목사, 하이에나 종교언론, 가난한 모자의 십일조… “교주는 처음부터 그랬을까. 도중에 무엇이 그로 하여금 수많은 영혼들을 병들게 하는 악마로 변질되게 했을까. 그들 역시 처음에는 누구보다 갈급한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유다처럼 악령이 들어가 돈을 탐하고 음란에 빠지게 되는 걸 목격했다. 사탄이 세상의 권력과 부를 가지고 예수를 시험했듯이 많은 목회자들이 얼마간의 재물과 지위에 영혼이 팔리는 걸 보기도 했다.” 저자는 어느 날 홀연히 예수가 거닐던 중동의 광야 사막으로 떠났다. 붉은 모래밭 위에서 성경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해서 40년 동안 이동한 광야에서 몸부림쳤던 그 흔적이 저자에게 불치의 풍토병까지 걸리게 하였다. 중동 쪽의 희귀한 독충에 물려 한동안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까지 그는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헤롯의 피부병, 야곱의 팥죽, 시리아난민촌, 황금기도원, 팔레스타인의 한국예수, 오붓광야의 기도, 도피성, 롯의 동굴, 아랍인 촌장집, 나사렛의 한국예수, 유대광야…”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또 다른 진솔한 화두이다. 그는 중동의 깊숙한 땅에서 한 이름없는 선교사 이철수를 만나 함께 예수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 바로 광야순례의 종착역인 유대광야의 예수가 기도하던 곳이었다. 요단강 물에서 세례를 받은 후 성령에 이끌려 유대광야로 갔던 그 광야, 40일 동안 금식하며 마귀의 시험을 견뎌 냈던 그 곳에서 예수님께 다시 질문을 던진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세와 재물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을 이 광야에서 물리치셨습니다. 저도 세상적인 욕망을 모두 이 유대광야에 묻어버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그 유대광야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을 배우라고 결론을 내린다. 법정을 통해본 이단 교주들은? 저자 엄상익은 이 넌픽션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머리말에서 “30년이 훌쩍 넘는 동안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신앙에서 비롯된 사건들을 참 많이 다루었다. 군판사 시절 종교적인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적도 있다. 의연한 표정으로 감옥을 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나의 내면이 위축이 된 적도 있었다. 사이비 이단의 피해자라는 사람들을 더러 만났다. 그들의 동기는 순수했다. 기성교회에서 얻지 못한 갈급함을 풀기위해 방황하다가 영혼사냥꾼들의 이빨에 물린 어린 사슴 같은 모습이었다. 이단 교주들은 그들에게 욕심이 없는 순수한 성자의 형태로 접근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늘로부터 이 시대에 전하라는 말씀을 전해 듣는다. 선한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수많은 장치가 지능적으로 이용됐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음악과 무대,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소문은 점차 신화가 되기도 했다. 최면에 걸리듯 그들의 머릿속에 교주의 프로그램이 박히고 그 이후 그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허깨비가 되는 걸 목격했다. 최면에 걸린 그들은 교주의 허망한 저주에 벌벌 떨었다. 그러나 그게 단순한 건 아니었다. 심지어 검사나 법정에 취재를 온 기자들까지도 국내외적으로 수 만 명 수십만 명을 끌어 모으는 그들에게는 어떤 악마적인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인간적인 단순한 사기차원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법이라는 현실의 검을 이단 교주에게 들이밀어 보았다. 정면으로 보면서 부딪치는 게 공포감을 소멸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의외로 교주들은 경찰관이 잡으러 올까봐 벌벌 떠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구치소에서 돋보기를 쓰고 공소장에 밑줄을 쳐 가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교주들은 경찰관이 잡으러 올까봐 벌벌 떠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들의 구치소에서의 늙고 초라한 모습과 수만 명의 열광하는 신도들 앞에서 신을 연출하던 때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그들의 실체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상을 흔든 괴물의 본체인 입에서 나온 개구리의 영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떠올랐다. 믿음이 구원을 하듯이 그들에 대한 두려움이 영혼을 파멸시켰다. 이단의 힘은 불쌍한 신도에게 착취한 돈이었다. 세상은 돈에 복종했다. 이단 교주와 그를 둘러싼 세력이 돈 때문에 다툼이 생기는 걸 봤다. 결국 그들이 섬기는 건 맘몬 신 같았다.…” 그리고 이 책은 대형교단의 일부 부패한 정치목사들의 작태도 고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총회장 노래방사건’의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사탄이 세상의 권력과 부를 가지고 예수를 시험했듯이 많은 목회자들이 얼마간의 재물과 지위에 영혼이 팔리는 걸 보기도 했다. 목회자가 된다는 건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이다. 머리를 둘 장소조차 없이 가난하고 세상에서 참을 수 없는 억울함과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다. 그 중에는 기름부음이 있는 성직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걸 보기도 했다. 하나님보다 돈을 섬기거나 음란에 잡히면 그는 가짜다.” 본문은 모두 43편의 주제로 구성, 여호와의 증인, 오대양집단, 전도관파, JMS교 등 다양한 우리 시대의 이단집단 문제와 성령사기꾼, 성전을 예수라는 상품을 파는 장소로 전락한 오늘의 한국교회 문제점, 저자는 그것을 마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는 착각에 빠진 경우라고 고발한다. □ 주요 내용 머리말1. 헤롯의 피부병2. 야곱의 팥죽3. 홍합미역국 4. 시리아 난민촌5. 딱 딱 딱 6. 에덴동산 7. 소망촌 8. 병석제단9. 여호와의 증인10. 붉은 모래 위의 묵상11. 모스크바의 한국예수 12. 성령 사기꾼13. 도(道)를 아십니까? 14. 수령님에서 주님으로 15. 황금 기도원16. 감옥과 시편 23장17. 팔레스타인 한국예수 18. 푸들 강아지19. 오봇광야의 기도20. 도피성21. 롯의 동굴22. 목사전쟁23. 정의파 목사24. 탤런트 목사 25. 주먹다툼 26. 모략의 진원 27. 새벽닭 목사28. 자존심 상한 기자29. 형사와 목사30. 운전기사 목사31. 하이에나같은 종교계 언론들 32. 거세한 목사33. 증류수 목사34. 노래방 목사35. 기자회견36. 아랍인 촌장집37. 가난한 모자의 십일조38. 나사렛의 한국예수39. 종교 재판국40. 유대 광야41. 순중42. 후기 □ 기 타이 책에 관련한 더 상세한 문의는 글마당 편집부(담당 하경숙 국장) 02)451-122 팩스 6280-9003, 이멜 12him@naver.com 로 문의바랍니다. 2014-08-25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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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5
  • 백영규 목사의 목향원
    백영규 목사의 이력을 총회 교단지 기독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1997년 5월 6일 총회 산하 전국교회 교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목소리로 교단과 나라를 위해 기원하는 34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를 주제로 1997년 5월 6일 오후7시 충현교회(김창인목사)에서 제81회 총회장 김준규 목사의 설교로 개회됐다. 기도회는 교회 성장이 멈추고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 가운데 3천여명의 교역자가 참석해 열렸다. 둘째 날 저녁집회에서 김창인 목사는 '예수님의 눈물'이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고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렸지만, 지금 한국교회를 본다면 더욱 많은 눈물을 흘리실 것"이라면서, 우리 속에 젖어있는 물질지상주의 명예심 당파싸움 지방색 등을 눈물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외쳤다. 이어서 계속된 '교단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특별기도 시간에는 사회자인 백영규 목사가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하며 두 손을 높이 들고 우리 모두 울자"고 호소하자 예배당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1998년 6월 10일 첫시집 <목사는 목사는 성경이 집입니다 고향입니다>를 낸 백영규 목사(예장총회 서기·상리교회·광주신학교 학장)는 『시는 아닙니다. 설교로 못 다한 이야기, 일상생활에서 얻었던 귀한 경험들을 시의 형태를 빌어 부드럽게 표현했을 뿐입니다』라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겸손하게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시를 탐닉했습니다. 김소월부터 괴테니 바이런이니 하는 세계적인 시인들의 작품도 미치도록 읽었구요. 그런데 전도사로, 목사로 바쁘게 생활하게 되자 자연 잊고 살게 되더군요.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숨겨 두었던 시심을 다른 분들의 위임예배나 장로장립식에 축사를 하면서 되찾게 됐습니다. 작은 시작입니다.” 2001년 10월 3일 상리교회(백영규 목사)가 4년 6개월에 걸친 예배당 신축공사를 마무리하고 입당식과 직원 임직식을 거행했다. 성도와 하객 1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입당식은 백영규 목사 사회로 백원술 장로(장흥중앙) 기도, 최기채 목사(광주동명) 설교, 리영숙 목사(광주서문) 입당기도, 정성규 목사(여수제일) 안기영 목사(광주지산) 축사, 김길현 목사(증경총회장) 축도 등으로 진행됐다. 1997년 5월 14일 기공한 후 25억을 들여 완공한 상리교회 새 예배당은 지상 3층에 예배실과 친교실 등 800여평 규모를 갖추고 있다. 기존 예배당은 교육관과 목포노회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게 된다. 2002년 12월 17일 목포노회가 3개 노회로 분리되기 전 당시 백영규 목사는 총 164 교회, 85 당회를 거느리며 호남지역 최대 노회로 군림했던 목포노회의 대표로 총회 지도자로 활동하던 때였다. 2006.10월 11일목포서노회(노회장:최우식 목사)는 2006.10월 11일과 12일 목포 사랑의교회에서 제102회 정기회를 열어 백영규 목사(상리교회)의 은퇴식을 거행했다.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은퇴해 농촌 생활을 하고 있는 백영규 목사를 만나러 목포로 갔다. 감사하게도 내가 태어난 산정동에서 목회하는 총회 회록서기 최우식 목사(예손교회)의 신세를 졌다. 최 목사의 차로 청계북초등학교 정류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전남 목포시 무안군 청계면 동암길 75-17에 주소를 둔 백영규 목사의 은퇴 후 지내는 거처를 찾았다. 그는 그의 처소를 천계 목향원이라 부른다. 인사와 차를 나누고 최우식 목사는 떠났다. 백 목사와 마주 앉아 여러 이야기 끝에 나이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을 물었다. Q: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십니까.그의 건강 비결은 간단했다. A: 노동. 그리고 기도와 찬송. 천계 목향원 앞과 뒤에 있는 1000여 평의 밭과 과수원을 가꾸느라 일해야 하고 집안일도 만만치 않아 계속 움직이니 몸에 힘이 늘어나. 그 노동이 내 육체에 힘을 주고 건강을 주더군. 그의 얼굴은 맑고 몸은 건강해 보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4년 전 교통사고가 나 갈비뼈가 여덟 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41일 입원해 있었는데 일찍 퇴원해 노동을 했더니 오히려 더 빨리 낫더라구. 목회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그 자유로운 환경에서 그의 경건 생활은 더욱 깊어진 것 같았다. 은퇴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새벽기도만 자유롭지 기도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그의 서재 겸 기도실은 응접실과 천정 사이의 중층에 있었다. 중층 서재 책상 뒤의 창이 있는 의자에서 그는 기도를 하고 크게 찬송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거나 밤에 자기 전에 자유롭게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한다. 찬송은 아예 외워서 하다 보니 백영규 목사는 모세처럼 목소리도 정정하고 기억력도 쇠하지 않았다. 그가 가사를 외워 부를 수 있는 찬송이 이백여 곡이다. 그는 하루걸러 100곡을 큰소리로 부른다. 시인 서정주는 치매 방지를 위한 기억력을 위해 세계의 산 이름을 외웠다고 한다. 그런데 백영규 목사는 경건 생활을 위해 하는 찬송 부르기가 육체의 건강과 기억력 보존에 도움을 주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이 324장 “주님 찾아 오셨네”이고 늘 그의 마음을 치는 가사는 헛된 교만 버리세 우리 구주 모시고 영원한 복락 누리세였다. 78세의 백 목사에게 앞날의 꿈을 물었다. 내가 사는 동네 너머에는 교회가 있는데 정작 목사인 내가 사는 동네에는 교회가 없어. 원래 동안교회라고 있었는데 없어졌어. 이 동네가 동안이야. 그래서 내가 세상 떠나려고 하니까 이 동네에 교회를 하나 세우고 싶어. 그런데 희망이 있어. 이 너머에 꾸리꾸리 마을이 있는데 바로 꽃동산교회 김종준 목사가 그 마을 출신이야. 내가 김종준 목사 한번 찾아가서 이 마을에 교회 하나 세워달라고 부탁하려고 해.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면 아내와 내가 예배에 참석하거나 저녁설교를 도와줄 수도 있겠지. 백 목사의 외동딸은 기장측 목사의 사모가 되어 군산에 있다고 했다. 그 딸이 낳은 아이들이 그의 집에서 지내는 흔적이 집안과 집밖에 있었다. 그의 여러 시집 가운데 초야에 실린 시 한편을 골랐다. 목사6 이 대목은 소리 내지 말고눈으로 읽고 목사만 보아라하나님이 에덴에서 사람을 만드신 후에사람은 좋아라내 살중에 살이요내 뼈중에 뼈라고옷을 올리고 내리고모두 던져 버리고허우적 거리다실수로 만든 것이 사람들이다목사는 목사는 고요하고 깊은 밤에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너모태에서 지었고 알았고구별하였고 세웠노라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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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5
  • 열방교회 김유식 목사
    진주열방교회의 서부경남지역 복음전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께서 명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9장 14절 진주교회(김동권 목사) 부교역자로 사역하다 건강 때문에 개척을 시작한 김유식 목사. 그는 신학교 시절 1982년 복음전도자 소명을 받았다. 그때 받은 말씀이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께서 명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9장 14절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면 그걸로 사는 거였다. 그때부터 거리나 전철 안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 신학을 마치고 진주교회(김동권 목사) 부교역자로 내려와 사역하다 간과 고혈압 등의 건강문제로 매여 있는 부교역자 생활보다는 자유로운 개척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의 실천은 신영미 사모의 기도와 내조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그때 김성완 피부과를 운영하는 김성완 서울 명성교회 장로가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봉투에 삼천 만원이 들어있었다. 그 돈으로 1998년 10월 경남 진주시 하대동 722-1번지 말티고개 아래 개척을 시작해 1999년 진주열방교회 설립 진주노회 허가를 받았다. 올해로 15주년이 되는 진주열방교회는 어엿한 자립교회가 되었고 개척 당시부터 서부경남지역 20개 시골 교회와 함께 매주 목요일 지역에 복음전도 사역을 이끌고 후원하고 있다. 서부경남지역 복음화 사업에 필요한 1년 예산 2500만원은 김성완 장로가 기증한 5억 4천의 이자로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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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5
  • 안명환총회장의 의리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37년 12월 15일~68년 6월 9일) 네로는 자신을 위대한 예술가라고 굳게 믿고 그리스 등지에서 열리는 시 낭송 대회에 출전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고, 올림픽 경기에 직접 출전해 자신을 위해 제정한 음악 대회에서 우승하고, 전차경기에서는 중간에 전차에서 굴러 떨어졌음에도 1등 판정으로 우승했다. 나름 시인, 음악인, 체육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으려고 노력은 참 많이 했지만 당시 로마인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황제란 인간이 정무는 안 돌보고 그리스에 가서 연예인 흉내나 내고 있었으니 나라가 무슨 꼴이었겠는가. 2013년 제98회 총회 넷째 날 9월 26일 목요일 저녁 10시 40분경, 총무의 거취 문제로 총대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안명환 총회장은 파회를 선언했다. 이에 총대들은 총회장의 퇴장을 막으며 황규철 총무 거취 건을 놓고 투표할 것을 요구했다. 일부에서는 “총회장 못나가게 막으라”면서 거칠게 항의했다. 결국 안명환 총회장은 11시 36분경 총대들에게 사과하며 “파회가 아니라 정회다. 내일 다루자”고 선언한 뒤 자리를 떴다. 총회 파회 후 2013년 10월 5일 안 총회장 시무 교회 명성교회에서 강석근 기자가 안명환 총회장 인터뷰 시 질문을 던졌다. Q: 총회총무와 관련하여 총회산하 교회가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총무의 거취문제를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안명환 총회장은 서슴없이 답변했다. A: 제98회 총회의 최고 이슈는 총무 건이었습니다. 총회 현장에서 한 달 내에 임원들과 상의하여 총무 거취문제를 논의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약속한대로 첫 임원회부터 총무 참석을 배제시켰습니다. 행정총무로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권고도 하고 이를 지켜 나갈 생각입니다. 지난 회기에는 총무가 월권을 행사하고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하여 문제가 된다는 비난이 많았습니다. 교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여론도 높았습니다. 저는 총무의 긍정과 부정을 함께 평가하여 살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현재 총무와 관련된 책벌 건은 총회임원회에 있습니다. 임원들과 충분히 상의한 뒤 결정하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14년 6월 총무 임기 3년과 관련하여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던 총회총무 황규철 목사에게 총회임원회(총회장:안명환 목사)가 거취 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총회임원회는 7월 11일 전남 담양에서 회의를 열고 현 총무는 제96회 총회총무 임기 3년과 관련하여 각서를 쓰고 출마하였다. 그러나 이를 위반하였기에 7월 15일까지 고소를 취하할 것을 요구하고 불응 시에는 변호사를 재선임하여 대응하고, 총무 직무정지를 즉시 시행하기로 가결했다. 무얼 믿는지 황 총무는 총회임원회 결의를 무시했고 안 총회장은 모른척했다. 항간에 소문과 예측만 분분했다. 황 총무는 명예회복을 외치며 재판 결과에 자신만만했다. 그 사연은 이렇다.2011년 9월 제96회 총회에서 현 황규철 총무를 투표로 선정하였다. 총회임원회는 5년 임기의 총회규칙에 따라 공고했고 황 총무는 이 공고에 의해 서류를 접수했다. 그러나 제96회 총회는 총무의 5년 임기를 3년 임기로 단축하고 1회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총회규칙을 개정했다. 그러나 황 총무는 3년 임기가 만료 되가는 제99회 총회가 다가오자 무슨 속셈인지 총무임기 규정을 개정한 절차에 하자를 이유로 자신의 임기는 5년이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99회 총회에서 총무선거를 금지해 달라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이 8월 20일 총회총무 황규철 목사가 제기했던 총회총무선거금지가처분을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더굳뉴스는 안명환 총회장과 8월 8일 오후 1시 총회장실에서 대담을 가졌다. 여러 좋은 말이 오간 뒤 총회 임원회의 총무 결의건에 대해 물었다. 왜냐하면 그의 좋은 업적은 다른 매체에서 이미 긍정적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Q: 왜 황 총무의 소송 취하 불응 시 총무 직무정지와 법적 대응을 하기로 한 총회 임원회의 결의를 지키지 않습니까. 안명환 총회장은 정말 솔직하게 말했다. A: 불쌍해서 그래요. 안명환 총회장은 우리 헌법에 명시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모든 지교회 및 치리회의 최고회(最高會)를 이끄는 대표다. 그러므로 제98회 총회가 결의한 수임 안건을 합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는 성경과 헌법을 따라 판단하고 판결하는 신성하고 막중한 책임 의식보다는 정(情)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 젖은 의리를 더 중시한 것 같다. 사실 의리(義理)는 한국인과 매우 친숙한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의리라고 하면 한 번 맺은 사람과의 관계를 변함없이 잘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의리에 산다’, ‘의리의 사나이 돌쇠’ 같은 액션영화가 70~80년대에 유행했고 조폭이 아니라도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의리가 지켜지는 범위가 향응을 제공받거나 혜택을 입은 이해관계자로 국한된다는 점이다. 규칙보다는 인간관계를 앞세우고, 규범보다 정(情)을 우위에 두는 온정주의는 이해관계로 귀착되기 마련이다. 세월호 같은 참사는 법령과 규정이 없어서, 전담 기구와 인력이 없어서, 감독기관이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사고와 관련된 모든 기관에서 규정대로 자신의 직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인재(人災)였다. 작금에 총회에서 일어난 납골당 사건, 아이티 사건, 광주중앙교회 사건, 총신대 총장 사건 등이 해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미제(未濟)로 남아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과 헌법에 규정된 법과 정신을 역대 총회장들이 헌신짝처럼 버리고 의리와 이해관계에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총신 재단이사장 김영우 씨는 신학생 시절 칼빈주의는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박태준, 박정희, 스티브 잡스, 시인 나부랭이 등이나 들먹이는 글을 개혁주의 글이라고 써대고, “길자연이 가는 데까지 가고 길자연이 멈추는 데서 멈춘다”는 새로운 개혁주의 표어를 따라 총회와 총신을 좀먹고 있다. 자신의 업적으로 개혁주의를 선양하는 일을 했다는 안명환 총회장에게 개혁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선조들의 신앙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외로 꼬게 되었다. 그는 납골당 사건, 아이티 사건, 총신 총장 불법 선출 등에 대해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고 오히려 방해하고 더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네로 황제가 황제의 직무보다 삼류 연예인 노릇을 더 좋아하다 망했다. 안명환 총회장도 총회장의 직무와 의무보다는 부도덕한 조폭 따위의 의리와 정을 더 좋아해 총회 수임 사안을 망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안 총회장은 사실 황 총무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가 행한 취임사나 기독신문 대담에서의 약속은 거의 모두 내가 책임진다, 또는 내게 맡겨달라는 말로 소멸되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만은 분명히 했다. 그것은 그가 모든 사건의 이해 당사자들에게 의리만은 확실하게 지켰다는 것이다. 성경과 헌법과 총회 결의를 어기면서까지. 그런 면에서 안명환 총회장은 상당히 순수하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 헌법에 규정한 총회장의 직무를 소홀히 해 역사에 좋지 않은 기록을 남기게 되어 아쉽기 그지없다. 2014-08-25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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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5
  • 매력 있는 설교자 소강석 목사
    3M(맨손·맨몸·맨땅)으로 개척, 신자 3만을 끌어당긴 자석의 설교가 한국사회를 이끌어 갈 비전의 목회자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이끄는 조용기 목사를 한신대 한국교회사 교수 연규홍 박사가 인터뷰하고 <조용기 성령의 힘>이라는 책(2011, 바이블리더스)을 펴냈다. 조용기 목사는 그 책 122쪽에서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목사마다 설교를 짓는 각자 방법이 있겠죠. 그러나 제가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설교에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력 있는 설교가로 새에덴 교회 소강석 목사님이 있어요. 그 양반은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데 유행가도 막 불러댑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당황할 정도입니다. 설교 말씀 도중에 유행가를 부르지를 않나 하모니키를 꺼내서 불기도 하고 정신이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도 저는 그 설교를 끝까지 듣거든요. 그 설교에 매력이 있단 말이에요. 매력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설교학적으로 보면 영 아니다 싶어요. 그런데도 그 교회는 물론이고 그 분의 텔레비젼 설교 프로그램을 보는 아주 많은 성도들이 열심히 설교를 듣습니다. 그 이유는 소강석 목사님의 설교에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강석 목사에게는 ‘맨손, 맨몸, 맨땅’ 밖에 없어 3M 목회자’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맨발의 소명자’로 불렸던 그는 요즘 기독교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2008년 12월호 <시사저널> 지령 1000호 기념호에서 기독교 차세대 리더를 묻는 설문조사와 2009년에 ‘목회와 신학’이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10년 후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목회자’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소강석 목사는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새에덴교회가 크게 성장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강석 목사의 열정적인 설교와 독특한 예배분위기 때문이다. 소강석 목사는 ‘월간 문예사조’로 등단하여 시집을 5권을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2007 한국기독교출판문화대상, 2008 목양문화상을 수상했다. 설교 내용을 함축한 시와 수준급 노래실력으로 설교내용과 딱 맞는 찬송가를 직접 부르며 호소하는 감동적인 설교를 한다. 그는 설교를 이렇게 생각한다. “설교는 철저한 소통입니다. 저는 어릴 때 잠들기 전에 할머니와 어머니 누나한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어요. 할머니가 저한테 ‘나중에 이야기장사 할래?’라고 하셨죠. 동화와 위인전을 많이 읽었는데, 딱딱한 강해설교나 교리설교가 아니라 저는 부드러운 이야기설교를 했습니다. 초창기 때부터 성경을 감동적으로 구성하여 설교하면서 곁들여 그에 맞는 찬양도 불렀죠. 2-3년 전까지 내러티브 스피치가 대세였다면 요즘은 지금은 내러티브와 더불어 문학적 예술적 문화적 감각을 살린 아트 스피치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몰랐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그걸 실천하고 있었더군요. 잘 짜인 드라마를 보거나 조용필의 열창을 들을 때면 목사도 저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많이 합니다.” 소강석 목사는 새에덴교회의 미래상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미국의 경영학자이자 작가인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앞으로 미국은 목회적 대형교회가 이끌어 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비영리단체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주 투명하고 거룩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존경을 받는 교회일 때 영향력과 지도력을 가지고 시대를 주도해 나갈 것입니다. 목회적 대형교회의 본질은 영혼구원입니다. 목회적 대형교회로 성장하여 한국사회를 이끌어가고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가 목표입니다. 본질은 변함이 없으나 상황은 변합니다. 본질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길 원합니다.” 2013-11-25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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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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