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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희와 김태현의 성막과 건축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물건은 사용되는(be used) 것이고, 사람은 사랑받는(be loved) 존재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선 사람이 사용되고, 물건이 사랑을 받는다. 그 반대가 성막과 건축의 디자이너 tBD(The Basic Design) 대표 서정희와 총괄대표 김태현 건축가의 관계다. 건축가(Architect)의 영어 어원은 '계획과 과제를 도안하고 지도하는 사람'(a person who designs and guides a plan, project, etc.)이다. 실제로 고대 건축가들은 '건축'일만 하지 않았다. 이런 전통은 현대까지도 이어지며 지폐에 자국의 건축가를 새긴 나라도 많다. 사실상 고대에는 거의 모든 왕이 통치자이자 동시에 건축가였다. 자신의 업적과 신에 대한 찬양, 자신의 예술 감각을 나타내기 위한 용도로 건축을 이용하였다. 물론 이런 왕들 중에 대중을 위한 건축을 한 왕들도 있다. 성막은 길이가 약 45.6m(100규빗), 폭이 약 22.8m(50규빗)인 뜰 가운데 세워졌고 뜰 사면은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이 휘장은 청동으로 만든 기둥 60개로 지탱되었다(출 27:9-19). 뜰(마당) 안에는 번제를 위한 큰 제단이 있었고(출 27:1-8), 제사장들이 제사를 위하여 자기 몸과 제물을 씻는 청동 물두멍이 있었다(출 30:17-21). 뜰의 서쪽 끝에 세워진 성막의 성소는 목재 구조로 길이 약 14m(너비 1규빗 반의 판자 20개) 너비 약 4m(1규빗 반 되는 판자 6개를 나란히 놓은 폭)였으며, 두꺼운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였다(출 26:15-30). 성소 지붕은 제일 안쪽(덮개)에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 모양의 자수를 놓은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출 26:1-6), 그 바로 위에는 보온을 위해 염소 털 휘장이(출 26:7-13), 또 그 위에는 붉은 물 들인 숫양 가죽이(출 26:14), 그리고 제일 바깥에는 방수를 위해 해달의 가죽(출 26:14)이 덮인 4중 지붕 구조를 하고 있었다. 또 성소 내부에는 휘장 오른편에 진설 병상, 휘장 왼편에 금 등대, 그리고 휘장 바로 앞 가운데 분향 단이 놓여 있었다(출 25장). 또 휘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는데 거기에는 오직 언약궤만 있었다. 성소에는 제사장이 매일, 그리고 안식일마다 제사를 드릴 때 들어갔지만(출 27:21; 30:7; 24:3,8)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갔다 (레 16:1-34, 히 9:7). 이것은 성소와 지성소의 거룩함의 차이 때문이었다. 즉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봉사하는 예물과 기구가 놓여 있었으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언약궤(법궤, 증거궤)가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두 장소는 단지 휘장 하나로만 가려져 있을 뿐인데 이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예표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이 휘장은 둘로 찢겨 졌다.(마 27:51, 막 15:38) 따라서 이제는 제사장과 일반인 사이의 구별이 없어지고 누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졌다(히 10:19-22). 이 사건은 성도들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제까지 제한되었던 하나님의 존전(尊前)에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2023년 11월 21일 11:00 아차산로 345 tBD 사무실. tBD(the Basic Design) 대표 서정희 총괄대표, 김태현(콜롬비아 건축대학원 졸업) 기독언론인협회(회장 황규학) 회원 고정양, 김영배, 김효정, 소재열 간의 신앙과 교회 건축에 대한 대담이 이루어졌다. 김영배: 서정희 씨는 전공을 안 하셨는데 건축에 대해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요. 황규학: (총괄대표 김태현) 옆에 따라 다니다 보니까. (일동 웃음) 서정희: (손사래를 치며) No, No. 정보를 잘 아시고 말하세요. 김효정: 허위 보도. 허위 보도. (일동 웃음) 서정희: 저는 젊었을 때부터 집에 관심이 많아서 집안에서 많은 일들을 했잖아요. 김태현: 공간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서정희: 그렇죠. 공간 디자인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저는 그 기초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믿고 있습니다. 김영배: 그 기초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죠? 서정희: (1962년생) 1981년 19살 때 주님을 믿고 지금까지 저는 예화를 들 때 누구한테 얘기를 하면 브살렐과 오홀리압(출 31:2-6)을 꼭 예로 들어요.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와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막 건축을 맡기잖아요. 성소(聖所, Sanctuary)는 '거룩한 장소'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백성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처소(處所)'다. 성소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을 보관하는 장소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사함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외소(外所)와 내소(內所)로 분리된 구조였고 최초의 성소는 이동이 가능한 천막 형태였기 때문에 성막이라고 불렸다. 성소를 지을 때 실을 꼬아서 만든 천막으로 지었기 때문에 이를 장막(帳幕)이나 성막(聖幕)이라고 했다. 서정희 씨가 말을 이었다. 서정희: 그 성막을 그에게 맡긴 이유가 딱 하나예요. 많은 사람에게 성막 짓는 이야기를 해봐야 성령의 감동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령 감동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감동 때문에 여러 가지 일 그러니까 여러 가지 재주가 있었다고 출애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실 짜는 일 가구 짓는 일 모든 것들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령께서 임했던 것처럼 저에게도 그들의 영을 부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영이 제게 임해서 남들보다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그 다음에 성막을 보지 않아도 성령의 감동으로 지은 것처럼 우리 건축가 선생님들이 하지 못 하는 것까지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열어주셨고 계시의 영을 부어주셨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창의적인 영도 주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랜 세월 살림하면서 훈련을 했더니 그 열매로 국제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공간디자인을 3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받았습니다. 저도 외부로 다니면서 강사를 했었는데 결국 정교수가 될 정도로 주님이 인도해주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배워서 한 것보다 더 많은 일곱 권의 책을 냈는데 다 집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도 처음 만들었고 무크 형태의 책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었고, 그리고 글을 써도 자서전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다 집 안에서 썼고 묵상도 집 안에서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결국은 우리의 가정 교회가 점점 확대되어 작은 교회가 되는 것처럼 작은 것을 귀히 여기고 그 작은 것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만 담겨진다면 크든 작든 금그릇이든 은그릇이든 질그릇이든 저는 같다고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도했던 것들이 꾸준한 훈련과 그 공교함과 정교함이 결국은 건축팀을 만나서 더 성숙 되고 확대된 것 같아요. 그래서 감히 제가 함께할 수 있는 이런 영광을 누린 거죠. 김태현 대표님이 저를 써주신 거죠. (웃으며) 감사하게 된 거죠. 소재열: 궁금한 게 있는데 저는 항상 실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돈을 벌 수 있습니까? 서정희: 저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우리가 정말 묵직하게... 주님은 간사함을 싫어하시잖아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7, 48) 말씀하시잖아요. 간사하지 않고 성실하고 정말 주님의 눈을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 실익이 생기지 않을까요. 황규학: 신앙적으로 굉장히 훌륭하네요. 서정희: 내가 이 건으로 당장 이익이 없어도 그러나 결국에는... 소재열: 믿음이 좋은 분들하고 대화하면 제가 힘들어하거든요. 그러나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지되기 위해서는 뭔가 이익이 창출되어야 하거든요. 서정희: 그렇지 않으면 엄청 고달프죠. 김태현: 건축 디자인 회사가 베이직(기본)을 잘 고수하면 큰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벌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저희는 이 건축 디자인 공동체를 만들었을 때 돈을 버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기본에 충실하고 인내하면서 디자인을 해나가면서 우리(회사) 식구들이 먹고 살면 돼요. 황규학: 철학이 분명하네. 서정희: 그러면 우리는 하늘나라의 상급이 많고 하나님이 보고를 열으시면... 김태현: 이걸 사업으로 일으키고 하는 문제보다 저희는 신앙으로 멀리 보고... 소재열: 그렇게 말씀하셔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죠. 서정희: 주님이 보고를 열으셔야지, 사람을 통해 사람을 설득시키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황규학: 소 박사가 보고 배워야 돼요. 소재열: 그러니까 나머지는 하나님 주신다니까. 그러나 그걸 무시할 수는 없어요. 김태현: 부끄러운 과거지만 소위 명예와 돈 이런 걸 건축 디자인의 하나님 주시는 달란트로 여기고 그것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던 세월이 많이 있었어요. 선배님들 앞에서 죄송한 말씀인데 제가 부끄러운 과거를 지나고요. 느낀 것이 많이 있어요. 서정희: (웃으며) 깨졌다는 얘기에요. 김태현: 그걸 쫓아 올라가다가 상당히 어느 정도까지 접근을 했어요. 그런데 한순간에 무너지더라고요. 한순간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이유로 그렇게 됐어요. 해외 일을 많이 했었어요. 제가 주로 일했던 나라들이 러시아 연방 우즈베키스탄, 카지스탄 전쟁 나기 전 우크라이나, 몽골, 이런 러시아 언어를 쓰는 나라들, 러사아를 큰형님으로 여기는 나라들, 중앙아시아를 포함해서 최근까지도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통령 관련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새로운 정부 출범과 동시에 건설부에 자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일들을 해나가면서 그때 당시 명예와 돈을 하나님 주신 달란트를 이용해서 추구를 했어요. 그렇게 여러 일을 추진하다 자금력이 모자라 중단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중국과 터키 정부가 들어오게 됐어요. 그 두 정부가 들어오면 프로젝트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자기들 자원과 인력이 전부 들어와요. 그렇게 되니까 제가 했던 일이 중국과 터키 기업들이 들어와서 다 넘어가게 되죠. 그런 과정에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저랑 멀어지게 되죠. 그렇게 되면서 2, 3년 어렵게 되죠. 싱가폴에 본사가 있고 거의 100명 정도 직원이 있었는데 다 손을 놓게 됩니다. 그런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일의 공간을 만들어 주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tBD를 기점으로 작지만 성실하게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황규학: 건축과 다른 문제인데 두 사람이 언제부터 알게 되었습니까? 서정희: 이 문제는 30년 전으로 돌아가야 돼요. 우리 친정하고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았어요. 그런 거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소재열: 교회를 상대로 일을 하시면 아까 말한 것처럼 돈이 개입되잖아요. 시험 많이 듭니다. 감당하셔야 될 겁니다. 서정희: 그런데 우리는 지금 꼭 교회만 하는 건 아니예요. 교회는 저도 개인적으로 겪어봤는데 경력이 40년이니 안 겪어봤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저희에게 주신 것들이 다른 거예요. 저는 어제도 묵상하면서 '주님 저를 영화롭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제게 주신 것들 다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알았고 그것들을 통해서 제가 흘려보내야 될 것들도 주님이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전파되는 것으로 저를 다시 영화롭게 해주소서. 저는 그렇게 기도를 해요. 그러니까 모든 기준을 세상으로 삼으면 저는 시험 들어서 하루도 못 살아요. 그러나 주님과 저와의 교제 가운데서만 머물면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사단이 밀 까부르듯 우리를 까부를 것입니다(눅 22:31-32). 그러나 내가 믿음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전신갑주를 입고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이길 수 없다면 들어서지도 말았어야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무장하고 나가듯 영적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는 겁니다. tBD를 세우셨을 때는 주님께서 믿고 맡기실 일들이 있을 거고, 보내주시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맡겨주시는 기업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저를 유방암에서 다시 살리셨다면 주님이 저에게 주시는 일이 있다는 것으로 믿습니다. 또 주님 앞에 갈 때는 어떤 말들을 해야 될까, 생각한다면 제가 부끄럽지 않도록 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그런 마음과 각오로 지금 살고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고 행하시고 성취하신다는 겁니다. 누가 물 주고 자라게 합니까. 여호와께서 자라게 하시는 거잖아요. 내가 감히 어떻게 합니까. 주님 그렇지 않습니까.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Tadao Ando, 1941년 9월 13일~ )는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이다. 안도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는데, 건축가가 되기 전에 트럭 운전사와 권투선수로 일했고, 건축에 대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일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1969년에 그는 회사를 설립했고(firm Tadao Ando Architects & Associates), 1995년에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상금 십만 달러를 고베 지진 고아들에게 기부하였다. 그의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그의 건축물 속의 '물'은 얕고 조용하며 잔잔하다. 또한, 건축물과 매우 인접하여 하나로써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편안함과 경건함을 준다. 자연과의 조화와 함께 큰 특징으로 보여지는 것은 건축작품이 기하학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유사한 면을 보이고 있다. 건축교육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오사카 '촌놈' 안도는 건축 여행을 하면서 롱샹과 라투레트를 오랜동안 혼자 공부했다. 스위스 예술고등학교에서 배운 그림이 건축교육의 전부였던 시골뜨기 코르뷔지에는 안도의 롤모델이자 영웅이었다. 안도 다다오의 대표적인 설계작품으로는 1988년에 지은 오사카의 갤러리아 아카와 1989년에 건설된 '빛의 교회'(光の教会, 히카리노쿄카이)가 있는데 그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정식 명칭은 '이바라키 가스가오카(茨木春日丘)'로 1989년 준공되었다. 예배당, 홀, 목사관은 모두 안도 다다오 씨의 설계다. 보통의 경우라면 십자가가 걸려있는 예배당 대신에 정면 벽면에 십자 모양의 틈을 만들어 놓아 그곳으로부터 빛이 들어와 아름다운 십자가가 나타나도록 설계됐다. 예배당 제단 뒤 벽면에 가로와 세로로 만들어진 틈, 외부로부터 빛이 들어와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십자가가 나타난다. 예배당의 바닥과 의자 등은 빛의 십자가가 자아내는 빛을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심플한 구조인 만큼 모든 것이 철저히 계산된 설계, 간소하면서 작은 예배당이면서도 명암의 조절로 차분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공간이다. 끌려서 안으로 들어가 음미하기 시작하면 계속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떠나기가 어려워진다.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모든 걸작들이 그렇듯이... 서정희 씨는 tBD 건축사무소 대표이며 국제대학교 산업디자인 초빙교수, 영동대학교 협력 교수이다. 김태현 씨는 우즈베키스탄 건설부 수석자문이면서 콜럼비아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이다. 서정희 씨는 첫 프로젝트로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 소속된 캠퍼스 복음화와 온 가족을 위한 전략적인 교회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전의 오메가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고 한다. tBD 대표 서정희 씨는 "시골이든지, 작은 교회이든지, 그 공간에 맞게 인테리어나 교회 건축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tBD 총괄대표 김태현 씨는 "하나님 말씀, 십자가로 이루어진 예배당, 자연, 미래에 대한 공간을 만드는 경건성과 실용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윤동주 시인은 ‘바람이 불어’에서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라고 자신의 괴로움을 성찰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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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8
  • 함신익의 전도 심포니
    함신익(咸信益, 1957년 10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관현악단 지휘자이다. 현재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이며 그 외 국내에서는 대전시립교향악단과 KBS 교향악단에서 지휘봉을 잡았었다. 그는 1995년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됐다. 2010년 10월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상임 지휘자 함신익과 KBS 교향악단의 연주는 New York Times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연주”라는 평론을 받았다. 영국의 The Financial Times는 함신익과 대전시향의 카네기홀 연주를 "확실한 자부심과 확실한 헌신, 열정과 뛰어난 정교함이 어울린 음악"으로 평가하였다. 예일대 명물 교수 함토벤으로도 불리는 세계적 지휘자 함신익은 합동 교단의 중진 함성익 목사의 친동생이다. 심포니 송(Symphony S.O.N.G;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 오케스트라는 2014년 8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창단연주회를 개최하였다. 그 오케스트라가 2023년 10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 인근 창성교회(담임 함성익 목사)에서 연주를 했다. 함성익 목사가 성경 누가복음 15:11-24 제목 '돌아온 둘째 아들' 설교하고 축도했다. 이어진 창성교회 행사는 삼양교회 설립자 성자의 풍모를 지닌 함영진 목사의 둘째 아들로 세계적 지휘자가 된 함신익의 '심포니 송' 연주가 이어졌다. 그와 함께 피날레로 '새 생명 축제 VIP 초청 주일'을 위해 창성찬양대도 피터슨의 '아름답다 저 동산'을 함신익 지휘로 찬양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의 모델로도 알려진 바가 있는 마에스트로 함신익은 그의 친형 함성익 목사가 젊은 찬양대 지휘자 시절 제일 좋아하는 '아름답다 저 동산'으로 각종 경연대회에 참여해 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함신익은 예일대 지휘과 교수로 20년 넘게 교육현장에서 우수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배출시켰고 그의 지휘 문하생들은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오케스트라를 구축하기 위해 함신익은 현대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한국오케스트라에 기품 있는 새로운 음악을 전달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상하이 심포니와의 현대음악제 개막연주를 지휘하고 있으며 우루과이 국립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받아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은 보편적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함토벤이라는 평을 받는 함신익이 연주 홀이 아닌 교회 '새 생명 축제 VIP 초청 주일' 연주회에서 지휘하는 전도 심포니 음악을 듣고 지휘 몸짓을 보니 감흥이 달랐다. 그는 선율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지휘자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선율을 발전시켜 나가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능력을 발휘한 지휘자 같았다. 성경은 말씀한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 15:20-24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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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이승만은 누구인가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열차에 탔다. 첫 번째 정차 역은 전 총신재단이사장 김기철 목사가 목회하는 정읍.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남한만이라도 선거해서 정부 세우자’고 연설한 정읍동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 훌륭한 역사적 용단이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또래의 목사일지라도 우파와 좌파가 만난다면 그것에 대해 이런 말이 오갈 수 있을 것 같다. “6·25 터지니깐 국민들 보고 안심하라 방송해놓고 다리 끊고 도망쳤는데 뭘 잘해?” “전쟁 나면 당연히 ‘우리 군이 잘할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방송하지 ‘큰일 났으니 도망가세요’라고 방송하냐? 갑자기 밀고 내려오니깐 반복해서 틀어주던 라디오도 못 끄고 화급히 후퇴한 거지. 한강 철교도 이승만이 끊으라고 한 게 아니고 군에서 안 되겠다 싶어 끊은 거야.” “이승만은 반민특위(제헌국회에서 1948년 9월 7일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를 해산시킨 친일파잖아.” “그때는 국민 80%가 글도 못 읽고, 제주 4·3 여순 사건 터져서 혼란스러운데 정치인들끼리 테러하고 조폭이 주름잡던 시대였어.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랑 일 좀 같이 했다고 관료들 다 내쳐버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 이승만은 일본이 반대해도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 주장하면서 대한해협에서 고기 잡던 일본 어선들 막 잡아들였어. 이래도 이승만이 친일파냐? 네 말대로면 이승만보다 친일파 훨씬 많이 기용한 김일성도 친일파겠다.” “미국 꼭두각시 노릇 하느라 민족이 분열되고 전쟁까지 했는데?” “남한에서 선거도 하기 전에 김일성은 이미 소련 지원 받아서 군대 만들고 정부 만든 상태였어. 이런 상황에서 김구랑 김규식이 김일성을 만나봐야 협상이 되겠냐? 난 전 세계 절반이 공산화되는 이 거대한 물줄기를 조그만 반도 끄트머리에서 온몸을 바쳐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게 민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봐. 그 과정에서 이승만은 미국에 전혀 순종적이지 않았어. 오히려 빨리 휴전하고 싶은 미국이 이승만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정권 세우려 했을 정도지. 굴하지 않고 직선제 개헌해서 2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불리하게 진행되는 휴전 협상을 뒤집으려 반공 포로를 석방해버리는 벼랑 끝 전술을 썼어. 그렇게 미국한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 내 대한민국 침범은 곧 최강대국 미국 침범과 같게 되는 시스템을 만든 거라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언제 먹힐지 모르던 나라가 안보 문제를 해결해서 번영의 기반을 마련한 거야. 우크라이나 봐. 미군이 주둔했다면 감히 러시아가 쳐들어오기나 했을까?” “어떻게 부정선거 저지른 독재자를 전광훈처럼 옹호하냐?” “뜬금없이 전광훈은 왜 나오냐. 이승만은 경쟁 후보였던 조병옥 사망으로 당선 확정이었어.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사람들이 장난친 거지. 독재자는 말이야, 국민의 재산을 국유화해놓고 제 맘대로 해. 김일성이 한 무상 몰수, 무상 분배가 바로 그거야. 맘대로 매매·상속도 못 하는데 뭔 분배? 독재 강화 수단이지. 이승만은 유상 몰수, 유상 분배해서 국민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사유재산을 늘려줬어. 국민에게 ‘지켜야 할 나의 것’을 만들어줘서 6·25 때 용감히 싸울 원동력이 된 거야. 그리고, 세상 어느 독재자가 시위 좀 한다고 하야하냐? 소강석이 칭송하는 등소평이 천안문에서 한 것처럼 탱크로 밀어버리지. 이승만은 시위하다 다친 학생이 있는 병원에 가서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학생들이 참으로 장하다’라고 말했어. 게다가 국민이 한 사람이라도 더 똑똑해지길 바라며 부족한 재정에도 초등 의무교육을 시행한 이승만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을까.” “그래도 초대 대통령은 목숨 바쳐 무장 투쟁한 김구였어야 해!” “당신은 왜 잘사는 대한민국에서 문재인처럼 누릴 거 다 누리면서 건국에 몸 바친 이승만은 싫어하고 김구만 좋아하냐? 국제정세를 잘 알고 활용한 이승만 아니었으면 우리는 김씨 왕조 밑에서 노예로 굶주리고 있었을 거야. 이승만이 원자력을 육성했으니깐 이렇게 싼값에 고속열차도 탈 수 있는 거지. 물론 이승만이 잘못한 점도 있었지만 넌 구구단도 못하는 상태에서 바로 미적분 할 수 있냐? 미국도 1965년에 흑인한테 처음 투표권 줬고 스위스는 1971년에 여성한테 처음 투표권 줬어. 식민지를 막 벗어나서 모든 게 취약했던 나라의 첫 지도자가 생존 문제를 해결했으면 잘한 거 아니야.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게 ‘정읍 선언’이야. 이승만이 옳았다고!” “와, 너 고등학생 때는 안 그랬을 것 아니야. 이해찬과 달리 같은 용고 나온 놈이 어쩌다 극우로 변해버렸냐.” “이승만 존경하면 다 극우냐? 3대 대통령 선거 때 보면 오히려 대구가 좌익 조봉암을 72% 지지하고 전라남도가 이승만을 72% 지지했어. 전라도가 우파의 본산이었다고.” 이승만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승만은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 아버지 흥선 대원군과 달리 무능하고 비굴한 고종의 양위 문제에 연루돼 1899년 1월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근대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1875년 전주이씨 몰락, 양반의 ‘6대 독자’로 출생하여 아버지 종교인 유교와 어머니 종교인 불교에서 영향을 받아 유년기를 보낸 그는 어려서부터 과거시험을 위해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영어를 배워 출세할 목적으로’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미감리회 선교부가 설립한 이 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영어공부에 몰두하였고 선교사와 토착 전도자들이 전하는 기독교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소개한 서구 국가의 정치적 기본 개념인 ‘자유와 평등’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협성회와 독립협회에 관여, 급진적 정치 개혁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그 일로 1899년 수구파에 의해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갇혔다. 어두운 감방 안에서 “사형을 받을 수도 있다.”라는 절망과 두려움 속에 배재학당 시절 들었던 선교사의 설교가 기억나면서 기도를 하였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느끼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선교사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사라지고 오히려 절대자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로 종교적 개종을 하였다. 그런 이승만이 1904년 2월 7일 수감 된 한성감옥에서 러일전쟁 발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그는 12일 뒤인 2월 19일부터 넉 달 동안 비장한 심정으로 '독립정신'(獨立精神, The Spirit of Independence)을 저술했다. 당시 대한제국의 문제점과 주변 열강의 움직임 및 대한제국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저술하였으며 기독교 입국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조선 성리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서구 열강이 기독교에 기초하여 발전된 문명을 이룩한 것을 서술하면서 한반도에 기독교를 이념으로 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중등 이상 사람이나 한문깨나 안다는 사람은 대부분 다 부패하고 타락하여 대한의 장래가 맨 아래 인민들에게 달려 있기에 이승만은 무식하고 천하고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순 한글로 이 책을 집필했다. 집필 중 이승만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읽혔으며 탈고한 1904년에는 그에게 적대적이었던 환경 때문에 대한제국 내에서 출판할 수 없었다. 이후 이승만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10년 2월 10일 로스앤젤레스 대동신서관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제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서문에서 그는 집필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 우리나라에 독립이 있다, 없다 함은 외국이 침범함을 두려워 함도 아니요, 정부에서 보호하지 못함을 염려함도 아니요, 다만 인민의 마음속에 독립 두 글자가 있지 아니함이 참 걱정이라...” 구성은 51장과 후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0장에는 조선이 처한 상황을, 11~25장에는 민주주의와 자유·백성의 권리·의무를, 26장부터는 국제정세를 기록했다. 주요 내용은 외국의 침범이나 정부의 무능보다 더 큰 문제는 백성이 독립심을 갖지 못하는 상태, 곧 인민의 심성에 뿌리내린 노예근성이라는 지적이다. 인민이 독립심을 갖기 위해선 스스로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한 강렬한 믿음 위에서만 백성은 권리를 가진 근대적 자유인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의 주장은 모든 것의 근본을 기독교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청년 이승만은 감옥 속에서 근대 구미 문명의 기초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계몽된 개인(enlightened individual)이 놓여 있음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 모두가 계몽된 개인으로 거듭나지 않고선 제대로 된 근대국가가 세워질 수 없음을 내다보았다. 조선은 한때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0~40%를 넘어섰던 신분제 사회였다. 소수 엘리트를 제외한 기층 민중은 신분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 속에서 정신적 노예근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승만은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서 스스로 자기 의지를 발휘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무식하고 천하고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모두 스스로 하늘이 준 인권을 갖고 태어난 자유인임을 자각해야만 국가의 독립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승만은 몰락한 왕족의 후예로 태어나 유교 경전을 익히며 과거시험을 준비했던 인물이다. 그런 이승만은 감옥 속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간절한 기도 속에서 내면의 절대자 하나님과 직면하고 스스로 독립적 개인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전향의 체험은 단순한 개인사에 머물 수 없다. 이따금 한 사람의 온전한 전향은 역사적 큰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1945년 분단 이래 북한의 지도부는 공산주의 명령경제, 폐쇄적인 고립주의, 반민주적 집단주의, 일인 지배 수령유일주의, 공격적 종족주의를 채택해왔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세상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가난한 전체주의 세습 전제 정권으로 남아 있다. 정반대로 남한의 지도부는 인류적 보편가치를 선양하며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아래 개방적 시장 경제, 수출주도 산업화 전략, 창의적 개인주의, 경쟁적 다원주의, 범인류적 국제 연대를 추구했기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세계 10위권의 경제 부국으로 성장해 있다. 결론적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오늘날 북한을 만든 악마적 이념이었고 이승만의 독립정신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건전한 국가 철학이었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모택동이라는 독재자의 정신적 노예가 되어 좀비 떼처럼 날뛰었다. 마찬가지로 1980-90년대 대한민국에도 김일성의 홍위병을 자처했던 주사파가 있었다. 중국의 홍위병과 한국의 주사파는 과연 왜 그토록 어리석은 개인숭배의 노예가 되고 말았나? 독립정신을 버린 채 좀비 정신에 빠져 스스로 생각하길 멈췄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독립심을 잃은 개인은 자유와 인권을 빼앗긴 채 전체주의 정권의 노예가 되고 만다. 청년 이승만이 7년 감옥살이에서 깨달은 진리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 칭송했던 전직 대통령 문재인이 새로 책방을 열은 모양이다. 그 책방 맨 앞 진열대에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놓아두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책이 있다는 사실이라도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롬 8:31-32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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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27
  • 하나님 외교관 손문수 목사
    19세기 프랑스 외교관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는 외교적 수사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외교관의 '그렇다'라는 말은 '고려해 본다'라는 의미이고 '고려해 보겠다'라고 말하는 건 '안 된다'는 의미다. ‘기도해 보겠습니다’도 그런 의미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안 된다'고 말하는 자는 외교관이 아니다. 그렇듯 목회에 있어서도 손문수 목사의 경우처럼 외교적 수사의 효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손문수 목사의 행동 지침은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저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는 외교관을 닮았다. 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원장 장혜경 박사) 총동문회 회장연임 감사예배 및 정기총회가 2023년 6월 12일 오전 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 대예배실에서 개최되어 손문수 목사(동탄순복음교회)가 취임감사예배를 드리고 정기총회를 가졌다. 이날 감사예배는 이평수 목사(총무, 다산충만한교회)의 사회로 드렸다. 편정자 목사(부회장, 주신은혜교회)의 대표기도 후 주미 목사(서기)가 마 28:18-20 성경을 봉독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손문수 목사(회장, 동탄순복음교회)가 ‘지상명령’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목회자들이 실천해야 할 유일한 목회방법이 지상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가장 중요한 핵심내용을 알아야합니다. 먼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것으로 그 방법은 눅 24:49(능력), 행 1:4-5, 8(성령), 2:1-4 말씀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면 권능이 생겨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역사가 일어나 사람들이 몰려오게 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믿게하고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말씀을 한 말씀도 빼지 않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환영사는 장혜경 박사(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 원장), 박영숙 목사(순복음삼마교회)와 연충복 목사(증경회장, 금촌순복음교회)가 축사하고 주술람미 목사(증경회장)와 윤석원 목사(1기 회장)가 격려사를 하고 손문수 목사(회장, 동탄순복음교회)가 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원장 장헤경 박사)에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평수 목사(총무, 다산충만한교회)가 광고 후 헌금축복 및 축도로 감사예배를 마쳤다. 정기총회는 손문수 회장의 진행으로 서기 주미 목사가 회원 점검, 부회장 문명자 목사가 대표기도, 서기 주미 목사가 서기보고, 재무 조순옥 목사가 재무보고, 회계 조미자 목사가 회계보고, 감사 정길영 목사가 감사보고, 회장 손문수 목사가 안건처리, 총무 이평수 목사가 광고 후 하나님 외교관 손문수 목사의 폐회선언으로 정기총회를 마쳤다. 예술계 거장들의 운명에서 아주 큰 공통점은 그 예술의 스펙트럼이 평범한 이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고 실체가 단단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작 예술가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겨 조바심을 내며 일평생을 예술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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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25
  • 김종철 목사 총회 임원 추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가 2년여 공들여 조각한 "다윗" 상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작업을 의뢰한 피렌체 시장이 방문해 코가 조금 큰 것 같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 작품은 높이가 5미터에 달하는 데다 좌대 위에 올려질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아래에서 조각을 올려다보게 되면 원근감으로 인해 얼굴이 작게 보일 것을 계산해 일부러 조금 크게 만든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원리를 설명하는 대신 조각대 위에 올라가서 코를 손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는지 한번 봐 달라고 묻자, 시장은 한결 낫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난다. 미켈란젤로는 사실 조각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대리석 가루를 가지고 올라가서 조금씩 뿌리면서 작업하는 척 연기를 했을 뿐이다. 시장과 논쟁을 벌여봐야 그가 한낱 예술가의 말에 자신의 주장을 굽힐 리도 없고 또한 설사 그랬다고 한들 미켈란젤로에게는 아무 득이 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예술가 한 명이 한 도시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가!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년 12월 7일 ~ 1680년 11월 28일)는 오늘날 로마의 모습을 거의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처에 장대한 교회와 회화, 조각과 분수가 있는 로마는 도시 공간 전체가 극적이어서 여행자 자신이 로마라는 거대한 우상숭배의 연극에 동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베르니니의 "다윗"(1624) 상과 120년 전의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1504)을 비교해 보자. 미켈란젤로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움을 하기 직전 팽팽한 긴장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투석기와 돌을 어깨너머로 멘 채 형형한 눈으로 적을 노려보는 모습이다. 미켈란젤로가 이처럼 정적(靜的)인 모습을 표현한 데 비해 베르니니는 몸을 틀어 골리앗을 향해 투석기로 돌을 던지는 역동적 장면을 표현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다윗의 표정은 목숨 걸고 싸우는 전사의 투혼(fighting spirit)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이 작품은 일종의 자화상으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이 멈추어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작가 베르니니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담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베르니니는 바로크 예술의 선두에 서 있었다. 바로크 예술은 이 시대 가톨릭 종교개혁의 강렬한 에너지를 표출한다. 16세기에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인해 유럽의 기독교는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로 양분되었다. 가톨릭으로서는 신교의 충격으로 한 세기 정도 휘청거렸다. 그러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자체의 개혁(예전에는 ‘반동 종교개혁’이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가톨릭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를 주로 쓴다)을 추진하여 교리와 조직을 재정비했다. 그 결과 17세기에 들어서서 자신감을 회복한 가톨릭계의 열망이 바로크 예술로 나타났다. 신교라는 ‘이단’이 패배하고 성상 숭배에 쪄든 가톨릭 신앙이 승리했다고 스스로 선언하고 이를 화려하고도 장엄하게 확인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새로 정비한 로마의 성당들이 그것이 우상숭배인 줄도 모르고 조각이나 회화, 장식예술을 총동원하여 놀라운 정도로 장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그런 이유다. 그 가운데 최정상의 활약을 선보인 예술가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예장합동 김종철 목사(큰빛교회)가 2023년 9월 제108회 총회 부회록서기에 출마한다. 용천노회(노회장 채수영 목사)는 2023년 4월 10일 경기 성남시 세광교회(채수영 목사)에서 제131회 정기회를 갖고 31대 노회장을 지낸 김종철 목사를 총회 부회록서기 후보로 추천했다.. 노회원들의 만장일치 기립박수 속에 추천을 받은 김종철 목사는 말했다. “노회원들께서 부족한 종을 너무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작년에 낙마했을 때도 너무 안타까워해 주시고 다시 도전하면 당선될 것이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용천노회의 위상을 높이고 총회를 최선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이날 총회 부회록서기 후보로 추천받은 김종철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 85회 졸업생이다. 총회 주요 활동은 2014년 총회 아이티사법처리전권위원회(위원장 신규식 목사) 서기, 교단교류협력위원, 교회실사처리위원회 서기, 총회선거관리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제107회 총회(총회장 권순웅 목사) 연기금제도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서북지역노회협의회 상임총무로도 활동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고양시기독교총연합회와 일산기독교연합회 임원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2005년 고양시에 개척한 큰빛교회를 18년째 섬기며 지역사회를 밝히는 큰 빛이 되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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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3
  • 제비뽑기 사도 박광재 목사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탁월한 예술가 한 명이 한 도시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는 오늘날 로마의 모습을 거의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처에 장대한 교회와 회화, 조각과 분수가 있는 로마는 도시 공간 전체가 극적이어서 여행자 자신이 로마라는 거대한 연극에 동참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말했다. “로마는 당신을 위해 있고 당신은 로마를 위해 있다.” 여러 개체에 무언가를 표기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뽑아 벌칙이나 차례를 정하는 놀이를 이른다. 한자어로는 추첨(抽籤)이라고 한다. 제비뽑기에 쓰이는 물건을 '제비'라고 한다. '제비' 자체로도 '제비뽑기'의 뜻이 된다. 주로 운에 맡기는 놀이이고 승부를 쉽게 내고 싶을 때 쓰는 놀이이다. 어원상 조류 제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제비뽑기에서 '제비'는 중세 한국어에서 '져비'로 나타난다. 종이에 내용을 적어놓은 뒤 접어놓고 섞어서 뽑은 것에서 따와, 접다의 옛말 '졉다'에 접미사 '-이'를 붙인 '져비'가 되어 지금의 '제비'가 됐다고 한다. 로마 제국이 유대 지역을 지배할 때 한 유대인이 누명을 쓰고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의 형 집행일이 되자 로마 병사가 그에게 다가와서 제비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제비 2개 중에 하나를 뽑아라. 이 두 제비 중 하나엔 붉은 표시가 있는데 네가 뽑은 제비에 붉은 표시가 되어 있으면 넌 죽을 것이지만 표시가 없으면 넌 풀려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 제비들은 모두 붉은 표시를 한 것들이었고 유대인 또한 그걸 예상하고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농락당하게 된 그는 고민 끝에 제비 하나를 뽑고는 확인도 하지 않고 그것을 곧바로 입안에 넣고 삼켜버렸다. 당황한 병사는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제비를 삼켜버리면 네가 죽을지 살지 알 수 없지 않느냐." 그러자 유대인이 말했다. "병사님의 손안에 있는 남은 제비를 보십시오. 둘 중 하나에만 표시가 되어 있다고 병사님이 말하셨으니 그 남은 제비에 표시가 있으면 제가 뽑은 것은 표시가 되지 않은 것일 테고 표시가 없으면 그 반대겠지요." 당연히 병사의 손안에는 표시된 것이 있었고 유대인은 풀려났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그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할 때 제비뽑기를 실시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수 14-19장). 그리고 아간이 범죄했을 때 범인을 찾아내는 데에도 제비뽑기가 사용되었다(수 7:14-18). 뿐만 아니라 속죄제를 위해 바쳐진 두 염소 중에서도 제비를 뽑아 한 마리를 제물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냈다(레 16:7-10). 그 밖에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을 세울 때도 제비를 뽑았다(삼상 10:21,22). 그리고 제사장, 찬양하는 자, 성전 문지기 등의 직무를 위임할 때에도 제비를 뽑았으며(대상 24:5; 25:8; 26:13) 정해진 기간 동안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하는 데에도 제비를 뽑았다(느 10:34; 11:1). 구약 성경과 달리 신약 성경에서 제비뽑기를 시행한 예가 사도행전 1:26에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한 번 언급되어 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사도를 세울 때였다. 이때 열한 명의 사도들은 기도를 한 후 제비를 뽑았다. 그렇듯 총회 공정 선거 개혁을 위해 성경의 '제비뽑기'를 시행해야 한다고 평생 외친 인물이 있다. 그는 영광교회 박광재 목사이다. 오늘날 교회나 노회나 총회에서는 어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주로 거수나 투표를 한다. 이것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며 인본주의적인 결정 방법이라는 것이 박광재 목사의 주장이다. 물론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수야 있겠지만,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결정권을 맡기는 제비뽑기 방법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가 40년 목회 사역을 마치고 2023년 4월 1일 오전 11시 영광교회 본당에서 원로목사 추대를 받고 제비뽑기로 결정된 후임 하만규 목사의 위임 감사예배를 드리고 또한 박광재 목사 기념관 개막식도 가졌다. 1부 예배는 박광재 목사의 사회로 남평양노회 전 부노회장 김승석 목사의 기도, 사회자의 성경 봉독, 영광교회 시온 성가대의 감동적인 메들리 찬양으로 은혜를 끼쳤다. 전 총신대 총장 정성구 목사가 히 11: 24-26을 본문으로 ‘거룩한 꿈을 꾸자’란 제목의 힘찬 말씀을 예전보다 더 알차고 은혜롭게 전했다. 2부 원로목사 추대식은 남평양노회 전 노회장 임중근 목사의 사회 가운데 사회자의 추대 기도, 김지영 장로의 추대사, 사회자의 공포, 추대 패 전달, 축하 패 전달로 마쳤다. 3부 담임목사 임직식은 위임국장 한창호 목사의 사회 가운데 후임 제비뽑기 영상 시청, 위임 기도, 목사 서약, 교인 서약, 위임국장 공포, 위임 패 전달로 마쳤다. 제4부 축하 및 인사는 옥토교회 원로목사 김신성 목사의 권면, 총신신대원 전 총동창회장 이춘복 목사의 축사 및 자랑스런 동문 상패 증정, 총신신대원 총동창회장 김진하 목사의 축사 및 축하 패 증정, 총신신대원 제75회 동창회장 오세광 목사의 축사 및 축하 패 증정, 총아협 대표회장 배만석 목사의 축사 및 축하 패 증정, 필리핀복음주의신학교 이갑형 교수, 증경 부총회장 이완수 장로의 축사, 박재천 목사, 소망교회 원로 이실태 목사의 축시, 박광재 원로목사의 회고사, 하만규 위임 목사의 답사, 성문교회 성자 풍의 원로 황정식 목사가 축도로 모든 순서를 은혜롭게 마무리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6:33 2023-04-07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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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7

실시간 G.PEOPLE 기사

  • 부총회장 후보 임영식 누구
    총회임원행 버스는 한 해 하루 한 차례뿐이다. 정류장 앞에 멍하니 서서 총회임원, 하고 입속으로 부르며 믿음 좋은 한 사람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이 길 잃은 소망이 먼저 앞서가며 닿는다. 다 닳은 돌쩌귀 매단 문설주가 쨍쨍한 햇볕에 믿음 말리며 서 있는 곳 길자연 교권 서슬 푸르렀던 지난 시간들이 자질자질 잦아들고 대치동 길가엔 벌써 머리 희끗해진 풀들이 나와 있다. 교회 분쟁 깊숙이 걸어 들어간 정치꾼 몇이서 왁자하게 그물을 던졌다. 건져 올리는 소리, 이리저리 튀는 총대들을 잡았다 놓아주는 소리, 총회에서 산짐승을 만나도 피하지 않는 곳, 총회임원행 표를 주머니 깊숙이 접어 넣고 부력을 잃고 뜬 물고기처럼 무심히 믿음을 강에 빠뜨리고 대치동을 느릿느릿 걷고 걷는다. 김종준 목사, 소강석 목사 같이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장로 부총회장 후보 기호1번 임영식 장로(경서노회·아천제일교회)는 정견발표를 통해 말했다. “총회를 중심으로 임원들과 화합해 겸손히 섬기겠습니다. 미자립, 주일학교, 선교·전도라는 3가지 기반 위에 총회 산하 1만2000교회 중 농어촌 교회와 미자립 교회 지원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어서 성령의 불에 단련된 정금 김종준 목사처럼 그는 말했다. “주일학교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총회가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세대 일꾼을 양성하는 주일학교 교육에 힘쓰겠습니다. 교회의 본질인 선교와 전도를 위해 앞장서서 섬기겠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총회 산하 기관 및 연합회 발전을 위해 섬기겠습니다.” 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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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5
  • 소강석은 누구
    한 가수가 나타나기까지 그의 인생은 저 멀리서 천천히 달려온다. 가수는 새로운 창조라기보다 믿음과 예정의 두 대상이 만나야 할 지점에 정확히 도달하는 ‘예정된’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소강석은 그렇게 이 시대가 원하는 달란트와 현실의 지분을 조화롭게 장착한 채 세상에 나왔다. 가수 소강석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요셉처럼 꿈 많은 자기를 지키며 사랑했기 때문이다. 타인을 즐겁게 하면서도 자신이 망가지지 않는 법을 쾌활한 그가 우직하게 보여준다. 믿음의 사랑은 격정 어린 투정이 아니라 진공관 라디오 주파수처럼 지직거리며 끈기 있게 맞춰가는 것이라고. "나는 좋은 목사입니까?" "당신은 좋은 신자입니까?" 그 무겁고 순진한 질문을, 나와 네가 연결되어 그 믿음이 완성된다는 진실을 믿음의 절창으로 가수 소강석이 알려줘서 고맙다. 가을, 찬송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그리고 시인 소강석은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처럼 세련된 영롱함 보다 마치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에 신기하기만 하던 만화경 속의 모습과 닮았다. 대도시의 세련미 나는 모습과는 반대로 오래된 벽시계의 늘어진 추 같은 느릿함과 골동품 냄새가 풋풋하게 나는 그런 투박함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또 목사 소강석은 공원에서 겨울을 버티고 있는 크고 푸르른 침엽수 같다. 또 다른 모습의 소강석은 무겁고 느릿한 숨소리 사이사이로 온갖 새싹이 움트고 새들이 지저귀는 하나님의 창조를 전하는 목사이다. 나의 느낌이 아직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흐릿하더라도 천연색으로 복원하면 생동감 넘치는 소강석 목사의 모습이 2020년 9월 자신이 세운 새에덴교회에서 총회장으로도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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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2
  • 경배찬양 설교자 안홍대 목사
    서양음악에서 새로움을 추구한 역사는 오래지 않은 18세기 후반부터의 일이다. 바흐만 해도 그의 작품이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좋은 음악 기술을 습득해서 필요한 음악을 잘 쓰는 것이 중요했다. 마침 그의 시대에는 유럽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보편적인 음악 언어가 있었고 그는 그 언어들을 모두 마스터한 마이스터였다. 바흐는 봉직했던 궁정과 교회에 필요한 음악을 성실히 작곡해 많은 음악을 남기면서도 스스로를 음악의 봉행자라고 여겼지 창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9세기 초에 활동한 베토벤은 궁정이나 교회를 위하여 일하지 않았다. 누구의 요청을 받지 않고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새로운 착상이 생기기 전에는 교향곡을 착수하지 않았던 그는 창조자로서의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의식이나 행사를 위해서 쓰인 후 남은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감상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미적 대상’이었다. 그 안에는 시간이 있었고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교차했고 정신과 역사가 공존했고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무엇이 꿈틀댔다. 그는 그러한 대상물의 창조자였고 음악은 그 손에 빚어진 작은 우주였다.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새로움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였다. 그들이 만든 작은 우주들은 제각기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는 소우주였다. 그렇지 못한 작품은 중심 없이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의미 없는 물질처럼 취급되었다. 새로움의 추구는 작곡가마다 개성 있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보편적인 음악 언어는 차츰 개인적인 언어로 대체되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이르면서 보편적인 언어 자체를 거부하고 완전히 혁신적인 새로운 언어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이 나타났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업도 있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 20세기 후반에는 급기야 새로움의 추구 자체가 진부한 패션이라는 반성까지 나오게 된다. 성경으로 먹고 사는 우리 목회자들도 그와 마찬가지 아닐까. 한 곡 안에는 수백만 수천만 개의 음들이 들어있다. 베토벤의 음악 뿐 아니라 바흐의 음악, 또 그 이전의 음악에도 들어있는 그 음들은 작곡된 이래 변함없이 있다. 그러나 그 소리 하나를 내는 방법 또한 무한히 있다. 사실 음악이 기록된 악보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의 설계도면이다. 이 설계도에 의거하여 소리의 집을 지어 들리는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 연주가이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경험과 맥락 속에서 그 설계도를 이해한다. 지휘자마다 곡의 빠르기와 강약이 달라지고 섬세한 표현법이 달라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에 의하여 음악은 새로운 생기를 얻는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곳을 보고 들리지 않던 곳을 들리게 한다. 마치 18~19세기의 청중들이 대체로 당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을 들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청중은 과거의 음악을 듣는다. 바흐나 베르디나 말러를 들으러 연주회장이나 극장을 찾는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듣는다. 천광교회는 1986년 6월 15일 30여명의 교인들이 이리시 신흥동 483번지에 외딴집 옆 마당을 빌려 천막을 설치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개척 설립 첫 설교에 23명이 모인 자리에서 안홍대 목사는 이렇게 선포했다. "천광교회는 앞으로 1천 성도가 모일 것입니다." 천광교회가 개척 5년 만에 1991년 예배당을 완공했다. 그리고 목회가 안정기에 접어든 1994년 미국을 방문한 안홍대 목사는 찬양으로 크게 부흥하는 교회들을 목격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주일 예배에 경배와 찬양을 도입해 지금의 안정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 찬양하고 교회가 더 성장하기 위해 예배를 변화시키라는 성령의 감동으로 그는 받아들였다고 한다. 겉보기와 다른 외유내강의 그는 귀국하자 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는 찬양대의 찬양 외에 예배의 경배와 찬양을 지휘자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강단에 서서 음악적인 재능이 아니라 기도와 연습을 통한 말씀과 믿음의 능력으로 스스로 인도했다. 현대적 예배음악의 목적은 사람들과 온 교회가 개인의 경배 경험과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더욱 깊게 느끼는 데에 있다. 그렇듯 하나님과의 관계를 굳게 세우고 창조주 하나님에게 올리는 찬양과 경배를 돕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행하셨는지 감사하도록 돕는 것이 안홍대 목사가 주도하는 경배찬양 예배의 초점이다.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는 강단도 현대적 무대 기법을 적용해 강대상이 자동으로 위치를 바꾸게 하고 찬양대석도 찬양할 때와 예배드릴 때도 자동으로 방향이 바뀌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천광교회는 교회 성장과 함께 예배당이 좁고, 주차장 시설이 없어서 기도하던 중 2003년 6월 15일 현재 2,600평 대지와 400평의 예배당 건물을 마련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 천광교회는 2009년에 6층으로 교육문화센터를 건축(800평)하여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익산시에서 천광교회는 안홍대 목사의 경배찬양 예배를 통해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모든 영화에 공통으로 있는 위대한 주제를 하나만 꼽아보라면 정답은 '변화'이다. 아인슈타인이 그에 어울리는 말을 했다. “무엇을 하든 똑같이 되풀이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길 바라는 건 미친 짓이다”(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인생에서 중대한 변화의 물꼬를 터야 하는 건 퍽 겁나는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건 변화하지 않은 걸 뒤늦게 후회하는 삶이다. 시편 50편에서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선포하셨다. 안홍대 목사는 이 말씀의 실천을 통한 축복과 성장의 변화를 체험하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한편 전공도 아닌 찬양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리고 천광교회는 성장했다. 안홍대 목사는 말한다. “1986년 6월 15일 이리시 신흥동 483번지에 외딴집 옆 마당을 빌려 세운 천막에서 예배를 드린 개척 첫 예배 때 믿음의 선포에 30여명의 교인들이 믿음으로 아멘을 크게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척 설립 비전을 그 아멘에 응답하시는 중에 천막교회 생활 1년 6개월만에 2층 건물을 임대하여 예배실로 1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어양동 주택 개발 지역에 340평 대지를 구입 하여 1층 건물을 건축하여 유치원을 설립하고 또 교회 예배당을 마련하여 입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9월에 2층 교회 건축을 완성하여 입당하였습니다. 그 후 교회 발전과 함께 예배당이 좁고, 주차장 시설이 없어서 기도하던 중 2003년 6월 15일 현재 2,600평 대지와 400평의 예배당 건물을 마련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천광교회는 2009년에 6층으로 교육문화센터를 건축(800평)하여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특별히 첫 예배 때 선포한 비젼을 이루게 하시는 중에 필리핀에 1개 교회를 건축하였고 중국에 2개, 아프리카에 100여개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건축 상황이 국민일보에 세 차례 보도됨에 따라 전국 교회와 성도들이 참여하여 아프리카 브르기나파소에는 수백 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계속해서 천광교회는 21세기 비전을 세우고 기도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은혜 중에 기도 응답 속에 놀라운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2019-08-17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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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7
  • 정연한 설교가 윤희원 임재의식
    선릉역 지나 총회 있는 삼성역을 거르면 누에가 고치를 트는 잠실역이 시작되고 엄마야 누나야 같이 살자는 강변역을 지난다. 꼬꼬부랑까지 아홉 노인이 살았다는 구로역 지나 별이 떨어졌다는 낙성대역을 지나면 다시 큰 무덤이 있는 선릉역 지나 근처에 총회가 초라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삼성역이다. 매일 200만 명이 이 순환선을 오르내린다고 한다. 곧 도착할 삼성역에서 총회 취재 삼아 가기 위해 나는 내릴 것이다. 독일의 제일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루터파 개신교의 신실한 교회 음악가였던 바흐는 1707년 10월 17일 결혼 후 더 나은 대우로 작센 바이마르 대공의 궁정교회와 실내악단에서 초빙을 받고 1708년 7월 4일 감사의 편지를 대공에게 보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앞으로 교회를 위해 정연한 음악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음악이 ‘정연하다’는 의미는 작곡을 하는 데 있어서 손이 이끄는 데로가 아니라 질서와 균형 그리고 음악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물리적인 음악이다. 이런 음악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의 칸타타 수난곡 혹은 평균율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손이 이끄는 대로 즉 일필휘지(一筆揮之)가 습관이나 배운 대로 하는 작곡이라면 이성적인 논리와 사고로 작곡을 한다는 것은 이성과 관습을 뛰어넘는 학문적인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바흐의 어떤 창조성을 의미한다. 정연하다는 것은 짜임새가 갖추어지고 조리가 있는 창조성이다. 사실 작곡에 대한 바흐의 이러한 태도는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베토벤이 작곡할 때 ‘왜’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한다. 바로 이런 작곡에 있어서의 인과관계를 끊임없이 묻고 고민했던 태도였을 것이다. 평균율 곡집이 바흐의 논리적인 음악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곡의 위대성은 장단조의 정착과 고난이도의 대위법 완성 그리고 모든 조성 즉 열두 개의 단조와 열두 개의 장조를 통한 잘 조율된 조성 즉 평균율이 만들어지게 된다. 바흐는 이론을 알면 그것을 실증해 보이는 학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에게도 의뢰받지 않은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총신대 재학시절 기독교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는 윤희원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8월 5일 짙은 뙤약볕 아래 전주초등학교 건너 전주효성교회 앞에 섰다. 터미널 건너 오래 기다려 탄 버스인데 정류장을 잘못 내려 고집스레 걷고 걷다 30여 분 늦게 도착했다. 설교가 선포되고 있었다. 야고보서 1:19-25 ‘행복인가? 거룩인가?’ 천국의 소망에 대한 바흐의 작곡 태도가 배어 있는 설교였다. 지난 1992년 11월 24일 전주효성교회 담임으로 취임한 윤희원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강단이 있는 목회를 지향해왔다. 효성교회는 2012년 교회건축을 끝내고 입당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는 교회건축을 위해 성도들에게 건축헌금 강요한 일도 없었고 건축헌금을 위해 부흥회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건축과정에서 교인들이 전세금을 가져왔습니다. 이들의 정성에 대해 감사했지만 받지 않고 목회 원칙을 지켰습니다. 때로는 유혹도 도사리고 있지만 먼저 나 자신부터 이벤트성 성장목회를 금하고 있으며, 성도들에게도 기복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칼빈주의 원리에 의한 목회를 지향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씀중심과 교회중심의 가르침과 저의 목회지향에 대해 대다수의 성도들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려웠던 생활고와 부친의 목회에 대한 반발심이 잠재해 있어 목회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점차적으로 목회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다. 그 동기에 대해 그는 술회했다. “부친이신 윤남중 목사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실 신학을 전공하기 전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총신대학교 1학년 초기에도 갈등이 있었지만 부친의 권고로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부친께서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신학을 전공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윤희원 목사의 목회 지향점은 초대교회와 같은 가정교회다. 그는 효성교회 원로인 윤남중 목사의 장남이다. 윤남중 목사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전주효성교회를 담임하면서 전북노회장 전북신학교이사장 전북노회유지재단이사장 신흥중고·기전여중고 이사 등으로 섬겼다. 특히 1980년 총회 분열 당시 남아있는 교회들을 수습해 전북노회를 지킨 대표적 공로자 중 한 분이다. 1992년 전북노회 제114회 정기회에서 최초로 공로목사 추대를 받은 윤남중 목사가 2015년 별세한 후, 전북노회는 후배들에게 목회자로서 사표가 되었던 고인의 생애와 신앙을 기리고자 윤남중기념사업위원회를 조직하고 해마다 신학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윤희원 목사는 전북의 정신적 리더로서 총회를 위한 봉사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반기독교세력대응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된 윤희원 목사는 말했다. “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각종 현안들이 성경과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연구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와 대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그 실제적인 대안을 2018년 8월 27일자 기독신문 논단에 바흐의 작곡 태도처럼 정연한 논리로 밝혔다. 누군가 “왜 우리 총회는 개혁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은 우리 모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사람의 기억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도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고 합니다. 우리에게 기억이 없다면 역사도 기록될 수 없고 실상 자신도, 우리라는 공동체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인 출애굽을 기억하게 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 다시 오심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기억하는 것이 신학이요, 기억하여 사는 것이 신앙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기억의 역사는 늘 실패로 귀결되었습니다. 광야 40년의 방황의 세월을 끝내고 정착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한 문제는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던 하나님을, 그 축복의 땅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고 그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기억해야 할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에 구원하셨습니다(출 2:24,25).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시며, 그들을 통해서 섭리하셨습니다(출 5:13).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면한 하나님에 대한 기억, 이해는 그 땅에서의 번영과 성장을 지금까지 인도하고 섭리하신 하나님이 주느냐? 아니면 바알이 주느냐? 하는 새로운 이해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이 기억상실증에 대한 책망을 여호수아는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고 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가나안을 정복하여 정착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성경은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모든 일을 아는, 기억하고 있는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만 하나님을 섬겼다고 합니다(수 24:31, 삿 2:6).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영과 풍요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잊었으며 하나님보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더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사들을 세우시고,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그 우상 숭배적인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여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임금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며, 왕이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삼상 15:22,23). 왜냐하면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사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식이 없으면 참 신앙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실상 이 임재의식의 유무는 율법이나 제도화된 성막이나 성전에서 오지 않습니다. 율법을 주셨고, 성막과 성전을 이스라엘 백성 속에 세우셔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셨어도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하여 임재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 그 경건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국무총리 되었던 요셉은 율법도 없었고, 성막도, 성전도 없는 애굽 땅에서 노예가 되어 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사는 경건, 그 임재의식으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하고 유혹의 자리의 죄를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7장에서 모세가 레위 제사장과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행할지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 임재의식이 없으면 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교단의 103회 총회는 개혁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총대가 개혁을 부르짖지만 다 개혁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혼돈 속에 있습니다.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을 구분하지 못하고 개선과 개혁을 분별하지 못하는 혼미함 속에 있기에 필자는 금번 총회도 조금 개선은 되어도 개혁되지 아니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혁은 몇 사람을 새로 선출하는 것으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라는 이 임재의식, 신전의식(神前意識)을 가지고 말씀을 행하는 자(약 1:22)로서 살아갈 때 진정한 개혁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임재의식이 있다면 우리는 산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잠에서 깨면 의식, 정신이 돌아오듯이 산 신앙을 가진 자는 행함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알기에 하나님 앞에서 삽니다. 나의 말, 행동 모두를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압니다. 여기에 경건이 있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가 되어 분석심리학의 개척자가 된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년 7월 26일 - 1961년 6월 6일)은 말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1961년 6월 6일 저녁, 칼 구스타프 융은 퀴스나흐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 융의 묘비에 적힌 문구는 언젠가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상기시킨다.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자, 융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분을 믿는 게 아니라, 그분을 압니다.” 인간의 마음은 여러 층으로 나뉜다. 우선 의식에 해당하는 자아(나, 또는 에고)가 있고, 그 아래에 개인무의식(‘그림자’가 있는 곳)과 집단무의식(‘아니마와’ ‘아니무스,’ ‘원형’이 있는 곳)이 있고, 마음의 맨 한가운데에 바로 ‘자기’가 있다. 자기실현의 최종 단계인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이 온전하게 통합된 것을 말하며, 우리의 의식을 일컫는 ‘자아’보다는 더욱 큰 개념이다. 융은 이것을 ‘자기원형’이라고 불렀으며, 그 궁극의 형태는 신(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과도 유사한 개념이라고 간주해서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자기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경우에는 사람이 자칫 개인지상주의나 자아팽창에 빠져서 결국 과대망상을 품기 쉽다고 지적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살아남는 자는 가장 강한 자도, 가장 현명한 자도 아닌 변화하는 자다.”찰스 다윈의 말이다. 자연은 그렇게 변화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도마뱀의 경우 적을 만날 경우 스스로 꼬리를 잘라 먹잇감으로 던져주면서 도망간다. 생존을 위해 자기 살점을 덜어내는 식이다. 주목할 부분은 꼬리의 3할 이내만 끊는다는 점이다. 너무 많이 자르면 도마뱀 스스로의 생명이 위험해진다. 미래학자들이 꼽는 21세기 핵심 역량 중 하나는 상상력 즉 창의력이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창의력은 ‘점’과 ‘점’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축구’와 ‘야구’를 연결해 긴장과 불안을 뛰어넘는 것. ‘내 것’과 ‘남의 것’을 연결지어 ‘우리’로 확장해가는 능력은 ‘점’과 ‘점’을 잇는 능력인 셈이다.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우리 총회에 성경을 전하고 실천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지닌 지도자가 부족한 이유는 정연한 설교가 윤희원 목사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임재의식 즉 신전의식(神前意識)을 가지고 말씀을 행하는 자(약 1:22)로서 살아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창의적 지도력은 신앙의 근육이다.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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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6
  • 대구 토박이 보수 이양수
    있잖아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어릴 적 옛날 말씀을 들으려 해도 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근데요. 이것 봐요. 신기하죠. 말씀이 쏙쏙 귀에 들어왔어요. 당신 귀에도요. 한번 들어 봐도 돼요. 성경 말씀. 즐거운 사랑의 속삭임이네요. 대구지하철 2호선 아곡역 3번 출구를 나와 이조가구를 지나 오른쪽으로 도니 이면 도로 끝. 녹음이 깃든 얕은 동산 옆에 붉은 벽돌 대구성서교회 종탑이 보였다. 옛적 모습 그 예배당에서 시무하는 이양수 목사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듣고 보고 자란 성경 그대로의 말씀을 전하는 대구 토박이 보수 목회자였다. 11시 대예배 장로 대표기도 성가대 찬양 후 이양수 목사는 마태복음 26:69-75 말씀을 성도와 교독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말씀을 전했다. 경상도 어조로 구수하게. "은혜 받은 자의 감사는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를 넘어 내게 베풀어주신 예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잊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영남 토박이 노회 대구노회를 기반으로 이양수 목사는 제103회 총회에서도 교육부 부장을 맡아 공정하고 효율적인 일처리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목회관을 '좋은 군사'에 비견해 이렇게 말한다. 전투하는 병사를 '군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 좋은 군사가 되려면 우선 영적 전투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전투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군사로서 지금도 영적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28)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이기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나를 방해하는 원수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의 역사, 즉 나를 죄 짓게 하는 모든 환경, 상황, 문제를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는 자가 좋은 군사입니다. 그래서 좋은 군사는 마귀가 가져다주는 사건과 상황을 잘 분별하는 성령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좋은 군사는 자기 생각을 이겨야 합니다. 자기 교만을 이겨야 합니다. 좋은 군사는 내가 노력하고, 내가 수고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을 다 내버려야 합니다. 나는 오직 예수를 얻어야 합니다. 좋은 군사는 싫은 것에서도 순종해야 됩니다. 좋은 군사라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내 똑똑함을 버려야 합니다. 내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순종만이 좋은 군사가 되는 길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좋은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만이 자기를 좋은 군사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세대교체의 총회를 위한 '좋은 군사' 토박이 보수 이양수 목사를 주님께서 예비해 주신 것 같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디모데후서 2:3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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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23
  • 세안목 정연철
    경상남도 영산시 회현1길(GIL God is Love) 교동에 가면 불교 본산 통도사가 영취산 기슭에 똬리를 튼 복음 불모지에 1981년 설립된 삼양교회가 있다. 그 교회에 이방 세계에 수많은 영적 자녀를 낳은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낳아 기른 영적 자녀들을 위해 세계를 안은 목사(세안목) 정연철이 있다 4월 7일 3시 오후 예배 설교에서 앞줄에 앉은 청년들에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셨으니 세상을 위한 학자 교수 의사 공직자 성직자가 되어 선한 일에 쓰임받아 예수님께서 축복하시고 인도하시는 사람들이 되어야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나도 우리 교회 쩡년을 위해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내면서 보니 세안목 정연철은 본질과 가치를 볼 수 있는 내면의 눈 즉 안목을 지니고 있다. 그는 세계를 안은 목사 세안목답게 세 가지 내면의 눈 즉 세 안목도 지니고 있다. 첫째 그는 영적인 삶의 길을 열어주는 기도의 안목을 지니고 있다. 둘째 그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말씀의 안목을 지니고 있다. 셋째 그는 희망을 잃은 삶을 치유하고 되살리는 삶의 안목을 지니고 있다. 세안목 정연철은 본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의 2년 임기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의 총회 마지막 봉사가 될 기독신문 이사장 재임 중 그가 세워 맡고 있는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중앙고등학교와 한빛 국제학교 이사장 역할처럼 큰 변화의 기여가 있기를 바란다.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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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1
  • 김기성 국제기아봉사단 이시장
    2019년 4월 29일 오전 11시 서대문 소재 아세아연합신학원 안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사단법인 국제기아봉사단 서울본부 이사장 김기성 목사와 본부장 황남길 목사 취임 예배와 이사회가 있었다. 서울본부장 황남길 목사 사회로 드린 예배에서 총회 정치 기린아이자 색소폰 연주 부흥사이기도 한 김기성 목사가 고린도후서 6:1 '하나님의 은혜' 설교를 전했다. 새순교회 차종률 목사 축도로 예배를 마친 후 사단법인 국제기아봉사단 이사장에 취임한 김기성 목사의 사회로 열린 이사회에서 이사회비와 은행 자동이체 프로그램 CMS를 이용한 후원의 건을 심도있게 의논했다. 향후 발 넓고 활발한 이사장 김기성 목사의 국제적인 봉사 단체장으로서의 헌신과 봉사와 조용하지만 실용적인 황남길 목사의 협력과 뒷받침이 기대된다. 210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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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1
  • 힐렐 이건영 목사
    부총회장 후보 될 마음 없어 다른 분야에서 총회를 섬기겠다 우리 총회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갈 지도자 탄생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 목회자 많을 것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 드물 것 지도자가 없다는 건 좀 외로운 노릇이다. 지도자를 둔다는 건 더 외로운 노름이다. 탕진한 기다림 같은 흰 터럭 믿음을 줍다 말고 외롭다. 벚꽃 흩으는 바람은 혀끝 쓰린 독백이다. 외롭다 다문 것은 시울 시린 성령의 방언이다. 자목련 혈흔을 읽다 바람이나 또 성령에 취하듯. 아니면 두 획의 굵은 먹이 맞닿아 수묵화의 거대한 봉우리를 이룩하듯. 인간은 하나하나의 음률이고 관계는 악보이다.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둘이 잘못된 악보를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가 없는 음악은 잡음에 불과하다. 타인의 음정에 끌려 다녀서는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화음을 이룰 수 있다. 어쨌든 칼빈주의가 배태된 우리의 총회는 우리의 분위기가 우리의 공기가 우리의 믿음이 배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노회나 교회들은 우리 교단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이어야 한다. 얕은 산등성이와 개울과 벌판 그리고 그곳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작은 집 같은... 그 뒤로 압도적 경사에 좌우로 교차하며 쏟아지는 적묵의 암석이 시야를 장악하듯. 힐렐(Hillel HaGadol 또는 Hillel HaZaken)은 주전 110년 경 바빌론에서 태어나 주후 10년 예루살렘에서 죽은 유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교 지도자였다. 그는 미쉬나와 탈무드 저작에도 관여한 유대교 학자이자 현자였다. 그의 유명한 일화들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다. 하루는 유대교에 관심이 깊은 이방인 한 사람이 힐렐에 버금가는 다른 한 파의 유대교 지도자 샤마이를 찾아가서 말했다. “랍비여, 제가 이렇게 한발을 들고 서있는 동안에 당신이 가르치는 율법 전체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면 유대교로 개종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샤마이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아니 여보시오. 내가 한 평생 공부하고 연구해도 부족한 이 율법을 그렇게 간단하게 한 마디로 설명을 해 달라니 말이 됩니까. 거 참 아주 무례하기 짝이 없구려. 당장 여기서 꺼지시오.” 실망한 이방인은 다시 힐렐을 찾아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 “랍비여, 제가 이렇게 한 발을 들고 서있는 동안에 당신이 가르치는 율법 전체가 무엇인지 가르처 주시면 유대교로 개종하겠습니다.” 힐렐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 오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에게 싫은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요, 그 밖의 것은 주석에 불과합니다.” 이 말에 크게 감동받은 그 이방인은 유대교에 귀의했다 한다. 그리고 후세인들은 그 교훈을 ‘힐렐의 황금률‘이라 했다. 2016년 1월 8일(금) 3월 6일(주일) 두 차례 이건영 목사(총신 75회)를 인천시 중구 인중로에 있는 인천제2교회 당회장실에서 만나 대담을 했다. ... -지금 이 교회 오신 지 몇 년 되셨어요. “저는 여기에서 태어났어요. 이 교회 유아세례 출신입니다.” -총신은 몇 회세요. “75회입니다. 지금은 제 마음속에 하나님 은혜 주시면 이 교회에서 은퇴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시면 지금 또 어디로 부임해 가시겠다는 겁니까. “저는 좀 일찍 은퇴를 해 힘이 있을 때 다른 사역을 좀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나 교인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제가 보니 한 교회에서 지도력을 키우신 목사는 영적 지도자라 연륜이 더할수록 더 지도력이 성숙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력을 다른 데 쓰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지만 인천에는 신도시가 많이 생겼습니다. 여기 교회 근처에서 걸어 교회 나오는 교인은 5퍼센트도 안 됩니다. 나머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먼 데서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복음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는 청계천처럼 공구상가가 많습니다. 500개가 넘어요. 저 구석구석까지 성탄절 날 수건을 돌리면 500개가 부족해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죽어도 안 옮기려고 해요. 이미 다 자리가 잡혔으니까요. 저희 교회는 공구상가와 주위 식당들과 같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 -시카고의 무디 바이블 교회도 시내에 있는데 목회자에 따라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온답니다. 거기 교인이 말하길 온 지역에서 몰려오는 교인들을 보면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그 교회는 변두리로 이사 가려고 하지를 않아요. 인천제2교회도 그럴 것 같네요. “아멘. 목사님 잘 모르시겠지만 실제로 송도 신도시하고 연수동에 수 만 채 아파트 대단지가 있습니다. 고 가운데 3000평 땅이 나왔어요. 경매로 80억에 나온 거예요. 일부 장로님들이 그 쪽으로 가자고 말씀 했어요. 한 10년 전일 겁니다. 그 때 거기로 갔다면 지금 엄청난 교회가 됐을 겁니다. 송도 신도시가 엄청나고 연수동 수 만 채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이니까요. 많은 교인들이 가자고 했는데 최종적으로 장로님들을 설득해 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나중에 장로님들이 이유라도 좀 알자고 했어요. 내가 이유를 말씀 드릴 테니까 그 이유를 듣고 포기하는 것으로 하면 말씀 드리겠다고 했어요. 장로님들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어요. 아내랑 그 곳에 가봤더니 이미 작은 교회 개척교회 상가교회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 작은 교회들이 없다고 하면 가도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들이 반경에 엄청나게 많은 데 이 대지를 팔고 거기 가서 큰 교회를 지어놓으면 교인 간에 수평이동이 생기고 작은 교회 개척 교회 상가 교회들이 엄청나게 타격을 받을 겁니다. 장로님들 아시지 않느냐 우리 교회가 나쁜 소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그곳으로 가면 우리는 엄청 큰 교회가 될 것이지만 주위에 많은 교회들이 말로 할 수 없는 피해를 볼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맙시다. 제가 연구하고 현장 조사를 한 걸 말씀 드리는 겁니다. 여기에서라도 오겠다는 교인만 받읍시다. 우리가 인천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된다고 해서 천국 가서 더 큰 면류관을 교인들이나 장로님들이 받는 건 아닙니다. 목사가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인천에서 제일 큰 교회가 못 되더라도 여기서 오는 교인만 받고 거기 작은 교회들 살려줍시다. 그랬더니 이제 많이 얘기들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장로님들이 제 말씀을 들어주셨어요.” ... -좋아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잠언 16장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목사가 ‘지혜자의 마음’을 가졌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는 그가 목회나 설교에 탁월한 테크닉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비범한 지성과 의지를 가졌다는 의미도 아니다. ‘지혜자의 마음’을 가졌다는 건 특별하고 고귀한 정신을 가졌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 이건영 목사의 경이로움은 그의 정신적 위대함에 있다.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이뤄낸 위대함이라 더욱 값지다. 그는 세상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성경의 진리를 앎으로 얻은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건영 목사가 지난 2016년 2월 16일자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행한 그의 자유로운 마음을 보여 주는 말 한마디를 소개한다. “교회가 마련한 공간과 시설들은 이용자의 대다수가 교회 외부 사람들이므로 그 공간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슬픔을 경유하지 않고 믿음의 바닥에 이를 수 없다. 성경은 말씀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도서 7:3-4 2019년 3월 24일 오후 예배 시작 전 잠깐 이건영 목사를 만나 물었다. -총회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혀 생각이 없다가 어떤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총회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다고 믿습니다.” 2019년 4월 첫째 주 총회 기관지 기독신문은 이런 기사를 게재했다. 2019년 4월 9일 인천제2교회에서 열린 인천노회 제110회 정기회에서 신상 발언한 이건영 목사는 “저는 지금까지 사적, 공적 모임에서 교단 부총회장으로 출마할 것을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목사는 “모 언론 기사를 통해 저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전달된 후, 각자 의견들이 계신 것 같다”면서, “하지만 저는 부총회장 후보가 될 마음이 없다. 저는 총회장이 되겠다는 기도와 목표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총회를 섬기겠다는 기도와 행동으로 지금까지 지내왔다”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아울러 이건영 목사는 제104회 총회 부총회장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소강석 목사를 의식한 듯 “총회가 개혁측을 복음의 동역자로 받아 드린 지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며, “이제는 그 형제들 중에 총회장이 선출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더 하나 되고, 더 화목한 총회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했다. 끝으로 이건영 목사는 “저는 지금까지 부총회장 출마를 거론한 적이 없었기에 지금 드리는 말씀은 불출마 선언이 아니고, 다만 제 입장을 밝힌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총회와 교단을 위해 기도하며 협력하겠다”며 발언을 마쳤다. 그 순간의 이건영 목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말씀 잠언 16장 9절을 그대로 이루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에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의 마음을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에게 목회와 총회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2019-04-12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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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2
  •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메시지 하나님의 백성 웃고 울게 하면서도 믿음 세계 인도하는 성령의 감동이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의 설교가들로 아우구스티누스, 크리소스톰, 루터, 칼빈, 스펄젼, 무디, 빌리 그래함 그리고 한국의 길선주, 한경직, 김창인 등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상 최초 최고의 하나님의 광대로는 소강석 목사일 것이다. 그의 설교와 사역을 들여다보면 그는 하나님 백성을 웃고 울려 즐겁게 하고 기독교 대적자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목숨을 걸고 전달하는 하나님의 광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찬양하는 광대이다. 서양에서 광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Clown(클라운)으로서의 광대, 다른 하나는 Pierrot(피에로)로서의 광대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광대들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광대들은 대부분 Clown인데 서커스 같은 공연에서 등장하는 이들은 복식의 규제가 없고 따로 정해진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Pierrot의 개념은 다르다. 피에로의 개념은 비극적인 광대이기 때문에,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웃으면 안 된다. 주로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입술을 위한 빨간색으로 색이 정해져 있으며, 눈 밑에 항상 눈물을 그려 넣는다. 서커스에 나오는 마스코트이자 웃음을 주는 직업이다. 오늘날 연예인(예능인)의 조상 격 되는 직업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옷과 행동과는 다르게 광대도 상당히 어려운 수준의 기술들을 터득해야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흔히들 광대를 문학적으로 ‘얼굴로는 웃지만 마음으로는 우는 사람들’ 이란 식으로 표현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순 우리말인 ‘얼굴’이란 말에는 그 사람의 ‘얼’이 들어있는 ‘굴’, 즉 마음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영혼이 거기 담겨 있는 굴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보다는 남의 얼굴을 더 여기며 자신의 얼굴을 낮추는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목사야말로 어쩌면 더 귀한 영혼을 지닌 그런 얼굴의 소유자가 아닌가 싶다. 그의 얼굴은 하나님의 백성을 웃기고 즐겁게 하기 위해 웃기고 노래하고 시를 읊지만 주님의 십자가 대속을 전하기 위한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순종의 믿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광대로서. 나 이제 내가 되었네./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시간이 많이 걸렸네./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없어져/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나 이제 내가 되었네... 2019년 1월 3일 27일 그의 설교를 듣고 미국의 시인 메이 사튼(May Sarton)의 ‘나 이제 내가 되었네’의 구절이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목사의 얼굴과 오버랩 된다. 이제 이 세상 떠날 즈음 그가 어떤 시를 남길까 궁금해 괴테와 더불어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년 12월 13일 뒤셀도르프 ~ 1856년 2월 19일 파리)의 시가 떠올랐다. 파리 몽마르트르의 하이네 무덤 묘비 삼 면에 덴마크의 유명한 조각가 루이(Louis Hasselriis)가 새긴 시다. ‘어디에?’(독일어 Wo? 영어 Where?)라는 제목의 독일어 시를 영역한 것을 나름 번역해봤다. Where? Where shall I, the wander-wearied,/Find my haven and my shrine?/Under palms will I be buried?/Under lindens on the Rhine?/Shall I lie in desert reaches,/Buried by a stranger's hand?/Or upon the well-loved beaches,/Covered by the friendly sand?Well, what matter ! God has given/Wider spaces there than here./And the stars that swing in heaven/Shall be lamps above my bier. 지친 방랑자 나는 어디에서/나의 안식처와 성소를 발견할까?/종려나무 아래 나는 묻힐까?/라인강 보리수 아래 묻힐까?/나는 광활한 사막에 뉘여/친절한 모래에 덮힐까?/그래 어쨌든! 하나님께서 여기보다 더 넓은 그곳을 주시겠지./그리고 하늘에서 흔들거리는 별들이 내 영구차 위 등불들이 되겠지. 세계 최고의 광대 채플린의 유명한 어록 중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그의 영화들은 위트가 넘치면서도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중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듯 세계 최초 최고의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목사의 메시지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웃고 울게 하는 희극과 비극이 넘치면서도 우리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성령의 감동이 있다.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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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30
  • 총회제일목사 김승동
    까마득한 태초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어데 말씀 소리 들렸으랴.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말씀을 연모해 휘달릴 때도 끊임없는 주의 종들의 말씀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 같은 은혜가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꽃샘바람 나리고 철쭉향기 홀로 아득하니 다시 천고의 뒤에 성령의 감동을 타고 말씀 전하는 목사 있어 이 강산에서 하나님 뜻 목 놓아 부르짖게 하리라. 3월 25일 주일 오전 10시 구미상모교회에서 총회제일목사(總會第一牧師) 김승동은 성성한 영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날 거룩한 제단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본당을 가득 메운 회중 아멘) 말씀이 그립고 은혜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발걸음 복되고 아름답게 하시고 주신 말씀에 아멘 하여 복을 받게 해주시옵소서. 삶 속에 승리를 얻는 길은 오직 말씀을 먹는 길밖에 없사오니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시간 되게 하시고 주님의 영 가운데 마음이 뜨겁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뜨겁게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드립니다. 아멘.” 총회제일목사 김승동 교인들 서로 인사를 나누게 하고 온 교인이 집중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전했다.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말씀을 전하는 그의 음성과 모습 하나도 놓치랴 교인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 말씀의 감동과 여운에 눈시울을 적셨다. 이제 몸도 여위고 정년이 다 된 그 뒤를 뉘 이을까... 201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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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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