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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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샘광천교회 이문희 목사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웃음과 웃음소리가 태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1972년 3월 12일 성북구 석관동 소재 건물 2층에서 97명이 창립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해 1973년 4월 23일 박병진 목사가 제1대 위임을 받았다. 박병진 목사는 1924년 평남 출생으로 남산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저서로는 ‘교회정치 문답 조례’, ‘권징 조례-교회재판 편람’, ‘예배와 예식’, ‘교회헌법 대전’ 등 20여 권의 교회헌법 관련 저술을 펴낸 98세 현역 교회헌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 이후 1980년 제2대 윤도영 목사에 이어 1986년 제3대 장정일 목사 때 광천교회 성장의 틀과 토대가 완전히 잡혔다. 평소 선교의 열망이 커 해외 선교에 많은 후원을 하던 장정일 목사 자신이 선교사로 떠나면서 대학부 지도 부목사 이문희 목사가 1990년 제4대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문희 목사의 목회로 광천교회가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에는 한국 최대 장로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4회 총회(총회장 김도빈 목사) 때 광천교회 정동원 장로가 부총회장에 선출되는 쾌거도 있었다. 이문희 목사는 교세에 맞는 지금의 새 성전을 건축하고 2009년 8월 2일 맑은샘광천교회로 개명했다. 이문희 목사는 부임 28년째 되던 2018년 8월 2일 원로목사로 추대받는 날 후임 김현중 목사를 제5대 위임목사로 세웠다. 교인들이 결정한 김현중 목사는 후임 후보 가운데 일인으로 이문희 목사와 일면식도 없는 목사였다. 이문열의 장편 소설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이동영이 말했다. "언제든 때가 오면 나는 맑고 깨끗한 이념, 자유와 평등에 대한 더렵혀지지 않은 열정을 품은 채 이 대지를 떠나겠다." 그렇듯 이문희 목사도 표연히 떠났다. 물러난 뒤 죽기까지 자신이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 앞 건물 사무실을 떠나지 않은 조용기 목사와 달리... 이문희 목사가 광천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몇 년 뒤 같은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직원 기독인 회 회원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고 한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 카이스트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광천교회 이문희 목사님 설교가 좋아 좋은 설교 들으려고 주일마다 강남에 가지 않아도 돼." 2017년 9월 1일 기독신문에 실린 '자살 예방과 교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시론에 그런 이문희 목사 설교의 편린을 엿볼 수 있겠다.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의 의미는 이제 국가가 직접 자살을 예방하고 사회에 생명존중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를 표명한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불과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약 6000여 명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시무하는 맑은샘광천교회도 지난 4월 부활주일에 생명보듬페스티벌(Life Walking)을 시행했다. 개 교회에서 진행한 행사지만 생명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행사였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를 부여하면서 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했다. 특별히 안전사고예방 차원에서 경찰서에서 교통 안내를 해 주고 중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거 참여시켜 생명의 가치를 나누며 행진하는 뜻깊은 행사를 했다... 교회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그분을 우리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생명의 가치를 이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절망하며 삶조차 버겁게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를 전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자살 예방 활동이라고 믿는다. 이 일에 한국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도전하고 싶다." 이문희 목사는 교회 이름을 맑은샘광천교회로 바꾸고 그렇게 실천했다. 샘 (泉)은 지하수가 지표로 흘러나오는 곳이다. 지하를 지나는 동안 불순물이 여과 되어서 광물 성분이 녹아 있는 물이 되고 그래서 샘에서 나오는 물을 샘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지 4년 2022년 3월 12일 설립 50주년이 됐다. 제주도 해풍에 세진듯 흰머리가 안개처럼 자욱한 이문희 목사가 5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해 축사를 맑고 잔잔하게 전했다. "축하드립니다. 90여 분이 박병진 목사님과 교회를 시작해 참 많은 수고와 눈물들이 마침내 열매를 맺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희 맑은샘광천교회는 참 좋은 풍토가 있습니다. 세 분 목사님이 떠나가신 다음에 제가 부임을 했습니다. 전임자가 떠나고 후임자가 올 때는 갈등이 많습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다툼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저희 교회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임해서 보니까 전임 세 분이 모두 교회를 부흥시키셨습니다. 부흥시키지 않은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남겨놓고 가셨고 제가 그 풍토 밑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다 오시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상징을 꼽자면 틀림없이 ‘하트’가 첫손에 들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워도 문자에 하트를 붙이거나 손 하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뭇잎 모양 빨간 하트가 사랑의 상징으로 통용된 건 14세기 초부터다. 그 전까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하트는 진짜 심장을 닮은 긴 솔방울 모양으로 그려졌고 이는 예수님의 ‘성심(聖心)’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맑은샘 이문희 목사에게 진심으로 예수님의 성심을 본뜬 손 하트를 보낸다.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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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점차 변한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바로 지구가 자전하는 축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 있다. 이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고, 태양 광선이 지표면을 비추는 일조시간에 햇볕이 얼마나 세게 얼마나 오래 내리쬐는지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선 일 년을 24절기로 나눠 한 달에 두 번씩 절기가 찾아온다. 2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있다. 올해의 경우 2월에 설날도 있었다. 설날은 달의 움직임을 따른 음력의 1월 1일이다. 이와 달리 절기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상에서 태양의 위치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돌 때마다 하나씩 해서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기준을 세웠다. 그래서 설날은 절기가 아니라 명절이다. 우리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모두 달력을 보고 안다. 그러나 자연에 사는 생명체들은 달력 없이도 기가 막히게 시간의 흐름을 알고 저마다 계절에 맞게 적응해 살아간다. 일 년 중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입춘을 지나 나들이를 나서면 땅속에서 솟아 나올 준비를 하는 새싹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고 여린 새싹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꽤 자라 큰 모습의 풀을 만날 수도 있다. 도심에서도 공원이나 화단을 보면 살아있는 풀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시장에 가면 벌써 냉이가 나와 있다. 그걸 보고 ‘벌써 냉이가 나왔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이의 내력을 알면 아마 아! 하는 탄성이 새싹처럼 나올 것이다. 사실 봄나물 냉이는 지난해 가을에 이미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싹이 돋아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라나 꽃을 피우는 거다. 이런 풀들은 바닥에 붙어 수평으로 나온 잎이 장미꽃 모양이어서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이라고 부른다. 또한, 잎이 방석같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방석 식물’이라고도 한다. 민들레, 냉이, 달맞이꽃, 질경이와 같은 로제트 식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쉽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그들의 전략은 참 놀랍다. 풀이지만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몇 가지 멋진 작전을 세운다. 첫 번째는 키를 낮추고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작전이다. 줄기가 짧고 잎을 땅에 붙은 듯이 내보내 엎드려서 겨울의 추운 바람을 피하는 것이다. 이때 잎을 넓게 사방으로 뻗어서 적은 양의 햇빛이라도 최대한 받는 게 두 번째 작전이다. 세 번째는 땅에 바짝 붙은 만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이용하는 거다. 건강한 숲속 땅이라면 낙엽이나 다양한 미생물들로 인해 온도가 조금 더 높기 때문이다. 꽤 많은 종류의 로제트 식물은 몸에 잘게 솜털이 나는데 이 털도 추운 겨울을 견디는 데 활용한다. 그렇다면 로제트 식물은 왜 가을에 싹을 내서 힘든 겨울을 견디는 걸까. 다른 식물이 싹을 내기 전에 미리 싹을 내고 있다가 봄이 되어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워서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로제트 식물 대부분은 1년에 두 번 이상 번식하는데 아마도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이 번식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키도 작고 땅에 붙어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풀들에도 이렇듯 놀라운 삶의 전략이 숨어있다. 그런데 만약 춥고 힘든 겨울이 없다면 로제트 식물은 어떻게 될까. 겨울이 없다면 다른 풀들도 얼어 죽지 않고 이 시간을 지냈을 것이다. 그러면 애초에 경쟁을 피해 누구보다 빨리 꽃가루받이를 하려던 로제트 식물들은 유리한 위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대부분 풀은 죽게 되고 로제트 식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시련이지만 이 시련을 기회로 삼아버린 로제트 식물. 우리 목사의 삶 또한 이와 같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을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작은 냉이 같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아는 믿음이다. 뛰어난 실력과 엄청난 운이나 타고난 재능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을 이루는 믿음 앞에선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는 2021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시 삼천동에 있는 전북신학교에 도착했다. 전북신학교는 1971년 3월 25일에 전주 북문교회에서 개교하여 1972년 9월23일 제57회 총회에서 총회 인준을 받았다. 1988년 현 위치인 전주시 삼천동 11,000여 평 대지 450평 본관을 지닌 학교다. 2층 학장실에서 한기영 목사(전주은강교회 총신 84회 61세)를 만났다. 그는 한때 전북을 기반으로 총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김백경 목사(총신 73회)의 혹독한 시절을 잘 견딘 냉이 같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의 용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내면은 크다. 그래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임이나 공동체를 화합시키고 세우는 조정 역할을 잘 감당해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이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리폼드투데이)가 한기영 목사와의 대담을 이끌었다. 1. 제106회 총회 임원 후보로 준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합동 총회의 목사로서 총회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여러 회 총회를 출입하면서 저에게도 앞서서 총회를 섬길 기회가 오겠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년 106회기는 순환적 임원 구성이 우리 중부호남지역 회원들 사이에 제가 임원 후보로 거명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좀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만일 기회가 주어지면 총회 공동체를 위해서 부회록 서기로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합동 총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임원으로 섬길 기회를 주면 그동안 생각했던 아쉬움과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미력이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섬겨볼 각오입니다. 화평과 화합의 균형추(조정자)가 되겠습니다. 2.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첫째로 부임원으로 섬길 때는 함께 묶인 임원들을 잘 섬기며 좋은 호흡을 맞춰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 믿음의 원리와 상식이 통하는 임원회가 총회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우리 총회가 사무 행정을 펼쳐 나감에 있어서 먼저 교회와 노회를 돕고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정직하고 바르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함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제 임무를 은혜롭고 덕스럽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총회에 큰 그림을 그리고 회기별 연계성이 있게 서로를 존중하며 진행해 가자고 제안하고 곁에서 돕고 섬기려고 합니다. 지금의 시대 변화와 현실적 필요를 잘 분석하고 정말 선진 총회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논쟁과 싸움은 그치고 보다 발전적 전략을 수립하게 모든 기관이 통합적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처럼 저는 소박하게 세워주신 총회장을 잘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3. 교단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소견이 있다면? 우리 교단 리더들의 생각이 건강한 개혁주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총신신대원과 신학교들을 다시 잘 살펴서 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솔선해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총회도 이제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섬겨오고 현재도 학장을 맡고 있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이미 있는 좋은 인프라를 잘 활용하여 우리 지도자들을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총회가 더욱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행정과 정치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해주는 총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나아갈 방향과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1) 목회자 수급에 대한 조사와 신대원의 운영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2) 도시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의 목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합니다.(다양한 목회 전략과 좋은 콘텐츠 제공, 자립 방안의 구체적 사례 연구와 적용) 3)목회자 은퇴자를 위해 상설위원회를 설치하여 은퇴를 앞둔 목회자의 처우를 준비해야 합니다. 5.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목회의 위기감이 엄습해 옵니다. 교회의 장래가 염려되는 것을 넘어 교회의 무너짐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 가지 교회의 연약함이 더욱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그 어려움은 공교회 예배와 주일성수, 모이는 교회와 봉사와 섬김에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청년들의 신앙교육, 전도 등이 어려움으로 다가와 많은 지역 교회들이 소멸할 것 같습니다. 지역 노회들이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여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교회 합병, 교회 연합 등). 6.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오랫동안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 왔습니다. 저 자신이 개척하여 섬긴 교회도 있지만 개미목(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후배 개척 목회자들을 다각적으로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이사 임원으로 학생처장으로 실무를 감당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미력하지만 돕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 왔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교회 세움과 성장 컨설팅을 하고 싶습니다. 제 목회 철학은 골3:23 말씀을 모토로 ‘성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자’입니다. 전주은강교회 한기영 목사 프로필 ◆총회 주요이력 : 현)총회 정치부 서기, 경기북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총회실행위원, GMS이사, 호남협의회 감사총회인준전북신학교 학장. 총회지방신학교협의회 회장. ◆전)제103회 면려부 부장, 평서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산서노회조사처리위원회 서기, 대구동노회조사처리위원장, 학원선교위원, 개혁사상특별위원, 전북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호남제주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제105회 총회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사회기관 : 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 원장, 사)나눔과기쁨 전북상임대표, 전주시장로교연합회 선임회장 전주완산경찰서 경목위원 ◆학력 : 경기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북신학교 대학부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84회 졸업, 칼빈대학교 대학원(Th.M) 플러신학대학 대학원(D.min)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같은 믿음의 목사들은 시련을 견디고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티며 실패에서 배우고 끝까지 해내며 마침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취를 제104회 총회장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처럼 손에 넣는다. 그렇듯 목회자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한 가지는 바로 믿음이다. 교회를 살리는 목회와 총회를 세우는 정치에 있어 실력과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믿음이 약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돌아오는 길은 서설(瑞雪)인 듯 눈이 드문 전주임에도 큰 눈이 내렸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1-4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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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5
  • 살림 이종석 목사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물음에 이종석 목사는 이런 뜻의 대답을 했다.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 잠깐 하늘과 땅이 기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년 10월 16일 - 1900년 11월 30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가는 곳마다 행복이 되고,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이 된다 Some cause happiness wherever they go. Others whenever they go.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살림’이란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다. 즉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사람을 잘 살리고 있다’라는 말이다. 예로부터 한글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 말은 ‘돈을 많이 아꼈다’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은 은덕을 잘 쌓았는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개의 가정은 '살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무턱대고 돈을 아끼는 것을 살림으로 착각하고 있고, 아내는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만을 살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돈 몇 푼 때문에 소중하게 맺은 부부의 인연까지 흔들리고 있다. 살림은 여자만 하는 것도, 남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잘 살리는 일은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돈만으로는 남을 살릴 수 없다. 우선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 교인의 삶을 돌보아야 한다. 목회자에게 살림은 가정을 잘 살리는 일이고 동시에 내 교회를 잘 살리고 잘 다스리는 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의 살림을 잘 해야 인생의 살림꾼을 넘어 믿음의 살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종석 목사는 살림꾼이다. 의사가 돌보던 어떤 환자는 임종 직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가까이 오자 “내 돈 2억 갚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환자들은 “10년 더 살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의사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곤 한다고 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소망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 회원사(더굳뉴스, 리폼드투데이, 좋은신문, 합동투데이)는 신년을 맞이하여 제106회 총회 임원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을 차례로 인터뷰하고 있다. 세 번째 순서로 부서기에 도전하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를 만나기 위해 2021년 2월 2일 11시 광교제일교회를 찾았다. 총회 두루 발길이 닿는 박철수 목사가 평생 동지 이종석 목사(총신 80회)를 돕기 위해 함께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가 대담을 이끌었다. 1. 금년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교회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교회 또한 세상을 향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우리 교단 내 목사님들이나 총대들도 현 총회 운영에 대해 신뢰보다는 불신이 더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일까요? 그것은 법과 규칙의 자의적 해석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도 흔히 들립니다. 부족하지만 법학사로서의 지식과 총신인으로서의 신앙 양심을 통하여 총회를 좀 더 깨끗하게 섬겨보고 싶고, 특히 약자의 편에 서서 저들의 소리를 듣고, 총회 안에 억울한 사람이나 노회가 없도록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임원으로 출마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아웃사이더(outsider)에게 비난은 할 수 있지만 세워 가는 일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총회 임원이라고 해서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한 욕심 내지 않겠습니다. 할 수 없는 약속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물으셨으니까 적어도 이 세 가지는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 총회 화합입니다. 먼저는 임원들 간에 화합을 도모하는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섬기겠습니다. 총회장님을 비롯해 임원들 상호 간에 협력하고 잘 도우면서 일을 하겠습니다. 서기 일을 하다 보면 각 노회에서 올라오는 여러 사건이나 서류를 접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정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법과 규칙을 따라 물 흐르듯 하는 행정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힘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대들에게 나서는 일보다는 섬기는 일을 하려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총회가 끼어들어 노회나 개 교회의 일을 더 큰 문제로 만드는 정치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는 분쟁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해결의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지 오히려 문제를 재생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 2). 교회의 예배 회복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작금 한국 교회는 예배의 위기 앞에 서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지만, 예배에 대한 바른 지침이 별로 없습니다. 당장 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에 대한 우리 총회의 명확한 기준이나 입장 표명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총회 임원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교단 내 교회를 지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예배의 회복입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고른 인재의 등용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를 보면 늘 그 인물에 그 인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경험과 경륜이 중요하다 보니 쓰던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인물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각 위원회나 특별 위원 배정을 할 때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 찾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임원들에게 부여된 최고의 사명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편향된 인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선거에서 같이 경쟁했던 인물이라도 유능한 인물을 고르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3. 교단 차원에서 시급한 선결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뢰 회복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 일도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 교단의 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던 은급재단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총신 문제도 결국은 서로가 믿지 못함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지금 총회 회관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이전이냐를 두고도 많은 논의가 있고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 일도 모든 총회 구성원 간에 믿음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선관위도 그렇고 재판국의 판결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총회 임원회도 총대들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뢰 회복이라는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믿음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약속한 것은 손해가 나도 지키고 서로가, 아니 총회 임원들부터 지도자들이 먼저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우리 합동 교단은 정말 큰일도 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코로나 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 되는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교인 수의 감소일 것입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어느 정도 회복 되어진다 해도 많은 수의 교인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 헌금의 감소로 직결될 것이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서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나아가 예배 형태도 많은 변화가 올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이미 많은 성도들이 비대면 예배라는 달콤함에 맛 들어 버렸습니다. 온라인 예배, 방송 전파를 통한 유명 목사님들의 예배가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서는 아무래도 교회의 주일학교일 것입니다. 어른들보다 더 심각하지요. 다음 세대가 걱정입니다. 이를 어떻게 다시 세울지 많은 기도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우리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하고 싶었고,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하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새벽 기도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지시보다는 솔선수범하고, 섬김의 목회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 절대 주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 여생은 한국 교회를 위하여 조그만 보탬이 되고 싶고, 정년이 끝나면 시골로 내려가 아내와 함께 시골 교회를 섬기며 조용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허락된다면 구약성경 공부를 위한 책을 써 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6.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녀교육이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자녀교육이라고 해서 제가 특별히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잘해줬어요. 지금 딸은 결혼해서 초등학교 4학년 되는 아들과 일곱 살 아들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지금 현재 목사입니다. 제가 개척하는 걸 다 본 아들인데 홍익대 사범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가서 3학년 때 군대 다녀와서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중국 우루무치에 계시는 선교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 가서 선교사님 자녀들 교육도 하고 선교사님도 도우면서 선교를 좀 배우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일테니까 그래서 보냈습니다. 한 6개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루무치 현지 대학에서 언어 공부도 했습니다. 6개월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온 김에 6개월만 더 있다 오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을 갔다 오더니 저한테 ‘대학 졸업을 하고 신학을 하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한 번도 신학을 하라는 말을 안 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너 신학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정말 가서 보니 선교사들이 너무 어렵고 힘드시더라. 그래서 한국에 있는 교회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느라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선교사들이 정말 선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국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너 나중에 선교사로 갈 생각이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자기는 선교사 스타일이나 체질이 아니고 자기는 선교사를 보내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겁니다. 네 뜻이 그러면 한번 공부해 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홍익대 졸업하고 총신신대원을 갔는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저 제주도에 가겠습니다.’ 왜 제주도에 가느냐 했더니 제주도의 작은 교회가 교육전도사를 구하고 있는데 교육전도사를 못 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게 너한테 좋은 기회일 수 있다며 허락했습니다. 제주도를 가니까 교육전도사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됩니다. 여기 광교에서 김포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로 제주도에 갑니다. 그리고 교회까지 버스로 가는 겁니다. 주일날 교회 사역을 하고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오는 겁니다. 그걸 한 1년, 저 녀석이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 하고 나더니 하는 말이 ’아버지. 아무래도 제가 떠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졸업하고 김종준 목사님의 꽃동산교회 부임해서 초등부를 맡아 1년 하고 사랑의교회로 갔습니다. 사랑의교회에서 지금 4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했는데 제 며느리도 총신신대원 졸업했는데 둘이 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녀교육에 대해 특별한 것은 없는데 아이들이 볼 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죠. ‘좋은신문’의 지용길 목사가 말을 거들었다. “삶으로 다 보여주셨네요.” 최장일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 다 하셨네요.” 일동 웃음. 이종석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를 말씀하시는데 세상 적으로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뭘 가지고 교회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척하러 올 때에도 제가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고 와서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하고 중도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해주셨습니다. 그때그때마다. IMF 만나 여기 땅을 사러 올 때도 교회 건축하는 것도 돈이 있어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뭔 돈으로 할 거냐,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랬습니다. ‘나도 무슨 돈으로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하면 될 것 같아.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하니 되더라고요. 새로 이 교회를 지을 때도 그 당시 적립된 돈이 잘 해야 한 2억 정도였습니다. 그건 설계비 정도밖에 되지 않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다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 그러다 큰코 다친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으니까 절대로 잘못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은퇴준비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잘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설날 아침, 주위를 둘러보면 북적북적 마주 앉은 친지들,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 식당과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이리라 믿는다. 일 년 뒤 오늘의 모습은 일 년 전 오늘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꿈만 꿀 것인가, 꿈을 이뤄낼 것인가. 작가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에서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썼다. ‘당신은 꿈을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했나요.’ 그날의 빛... 광교제일교회 예배당에 들어선 순간 벅차오르던 잔잔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 1월 한낮의 태양 빛이 벽에 뚫린 창틈으로 들어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양식의 예배당을 비추고 있었다. 처음엔 투명한 빛이었다가 틈새 사이로 흔들리는 조명 빛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인류가 세운 모든 종교 건축의 지향점이 똑같지 않을까. 신성하면서 미적으로 뛰어난 공간,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행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건물. 인도의 아잔타 석굴부터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까지 수많은 종교 건축물이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새로운 기준이 된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 건축에도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가 됐다. 예배를 드리되 접촉은 피하기, 2m씩 떨어져 앉기... 바이러스 전파는 최대한 막아내면서 '믿음'과 '신앙'이란 목적을 담아내는 기발한 상상력이 등장하지 않을까. 먼 훗날, 이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새 건축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지. 건축가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 이종석 목사 프로필 총신 신대원 80회 졸업 총회 정치부장(제102회기) 총회 특별 재판국원(제104회기) 총회 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실행위원, GMS 이사 역임 현 기독신문 이사 한장총 부흥사회 제34대 대표회장 재경영남교직자 협의회 상임회장 AGM(아시아 복음 선교회) 상임회장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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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4
  • 대나무 한종욱 목사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대나무는 곧고 높아진다. 대나무는 이름에 나무가 들어가 있어 나무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라 풀 종류에 속한다. 풀과 나무를 가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단단한 부분(목질부)이 있느냐, 또 하나는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하느냐다. 대나무는 단단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형성층이 없다. 이 말은 키는 커지지만 굵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대나무의 구조와 나이테를 이해하면 바로 감이 올 수 있다. 식물의 ‘나이테’라는 것은 옆으로 성장하면서 계절의 차에 의해 생기는 흔적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으니 나이테가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곧고 높아질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나무는 불에 타도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1년 우리는 전 세계적 감염 위기를 만났다. 하지만 더 자라고 단단해졌다.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면서도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제퍼슨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직(Honesty)을 최선의 정책으로 중시했다. 그렇듯 리더의 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정직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조국 사태에서 정직과 거리가 먼 위선과 이중잣대의 심연을 봤고 추미애를 통해 말이 굽은 독선과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를 목도했다. 이런 시대 우리 총회에 대나무 같은 모습과 성정을 닮은 인물이 있다. 그는 1994년 4월 22일 군산노회 등대교회를 개척해 26년째 주민과 함께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신장염에 걸렸다. 그 병의 치료 과정은 그를 믿음과 목사의 길로 이끌었다. 군산에서는 ‘거리의 전도자’로 유명해 오가는 택시 기사들이 그에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는 제102회 총회 상비부 사회부장 역임한 한종욱 목사이다. 2021년 1월 26일 오전 11시 인천 영종도에 있는 웨스턴 그레이스호텔에서 제37회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육수복 목사가 취임했다. 그 모임의 식사 뒤 오후 1시 12분 제106회 총회 부서기 후보 출마 예정자 한종욱 목사(58)와 ‘총신언론인회’가 회장 최장일 목사의 사회로 공동 인터뷰를 했다. 아름다운 바다의 밀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호텔 로비 창가였다. 1. 금년에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합동총회 임원이 된다는 것은 ‘예장합동 산하 전체 노회와 교회 및 기관’이라는 하나 된 교회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전체로서의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가 되는 것입니다. 총회의 임원이 되려는 뜻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함이며, 총회라는 보다 큰 “교회”를 통해 전국교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또한 전북기독교총연합회 상임총무, 군산기독교연합회사무총장, 군산시장로교연합회 회장, 전북장로교연합회 회장 등 지역교회 연합운동의 경험으로 총회에서도 각 교단과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아울러 본 교단의 위상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합니다. 제가 임원이 되면, 기능적으로 총회의 행정과 역량을 강화하고 질서를 바르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열정을 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에 소명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저는 부서기로 출마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당선하게 된다면, 제게 주어진 직무에 집중할 것입니다. 교단 헌법이 제시하는 바를 따라 총회가 위임해 준 사항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 총회 행정시스템의 현대화.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정보를 지니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성공과 실패의 관건입니다. 즉 정보와 처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현대를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행정시스템 자체의 개편과 그것을 뒷바침하는 전산정보시스템의 구축을 비롯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 방안까지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운영자 중심의 즉흥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총회의 행정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총회의 시스템이 운용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인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교단 내의 모든 인재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2) 교단 내 각종 분쟁의 최소화와 신속한 해결 교단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전쟁터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분쟁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총신 사태가 그러했고 각 교회 및 노회의 분쟁이 그러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기독신문의 갈등도 있습니다. 지금 화해조정위원회가 있고 또 헌법자문위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특별위원회들이 만들어져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주어진 자리를 통해서 각종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며, 최소화하고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그것을 총회의 분쟁관리 매뉴얼로 확립하고 싶습니다. 3) 교단 내 목회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수립 초기에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은급재단의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지만, 납골당 사태가 발생함으로 어느 누구도 은급재단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단 산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안정적 생활기반 위에서 소신 있는 목회를 해가며,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교회미래자립위원회에서 미자립교회에 재정적 지원과는 별도로 농촌에서는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땅을 무상으로 빌려서 화초, 건강식품 등을 무농약재배, 유기농산물 재배하여 도시교회와 연결하여 서로 상생하는 것을 구축할 것입니다. 도시교회 미자립교회는 바리스타, 컴퓨터 강사, 디자인 강사, 개인특기조합을 결정하여 틈나는 대로 소득을 올려 스스로 일어서도록 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교단 적 차원에서의 대사회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거나, 교단 산하 지교회들이 효율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교육과 활동, 대사회적 섬김과 봉사시스템의 구축(대사회적 복지재단운영), 교단법의 제도적 발전과 권징 체계의 개편을 위해 교단신학교에 교회법전문대학원 개설 등과 같은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3. 합동교단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교단은 대한민국 최대의 교단이며,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선도해야 하며, 또 한국사회를 향해 기독교적 가치를 선명하게 제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예배회복을 위한 회개와 성결 운동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회개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대단한 일을 이룬다고 해도 회개가 없다면 모래 위에 세운 집에 불과합니다. 목회자들이 경건을 회복하고, 당회가 경건을 회복하고, 교단의 모든 지도자가 다시금 경건을 회복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다시금 교단과 교회를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4.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여야 하는 교회가 더 이상 모일 수 없게 되고,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간접적 만남을 추구할 뿐입니다. 다행히 현대적 기술의 발전으로 실시간 방송 예배, 또는 줌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활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코로나19는 예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배의 회복과 대사회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코로나는 유튜브를 통한 영상예배와 줌을 통한 교육 등 단지 교회의 시설물에 갇혀 진행되던 모든 것을 보다 폭넓게 열어두었으며, 동시에 영상 기술의 활용을 통한 교회 교육의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위기에서 배운 다양한 기술을 통해 교육과 선교사역에서 더 큰 발전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목사들을 돕고 싶다.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주민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여 개방하고, 주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길거리 전도를 수년간 해왔고, 지금은 맨투맨으로 전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윈윈해야 합니다. 지역교회에 꾸준히 협력과 봉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전도입니다. 전국 5일장 마다 다니면서 생선도 팔고, 복음도 전하면서 지역에 맛있는 것도 먹고 전국을 다닐 것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십자가가 굳게 서고, 복음의 깃발이 휘날릴 수 있다면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김준곤 목사님이 주장하셨던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건강비결을 물었다. 그는 새벽기도가 끝나면 헬스장에서 2시간가량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평생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대나무 같은 어조와 꼿꼿한 자세로 말했다.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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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9
  • 영광대교회 김용대 목사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라고 윤동주는 노래했다.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 도입부는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린다.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의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 묘사를 수행의 간결체를 통해 서술함으로써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설국’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조에쓰선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오면 펼쳐지는 그곳은 일본의 니가타(新潟)현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에치고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작가는 ‘국경을 넘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동해에서 몰아치는 눈바람은 에치고산맥을 넘지 못하고 니가타에 눈을 쏟아낸다. 니가타는 하룻밤 새 1m가 넘는 눈이 내리는 대설지역이다. 눈(雪)은 기상 현상의 한 종류로 기온이 섭씨 0℃ 아래로 떨어져 구름 안의 물 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결정화된 것이다. 남극·북극의 두터운 얼음층과 빙하는 오랜 기간 눈이 쌓여 형성되었다. 눈은 여러 가지의 결정이 단독으로 내리는 경우와 여러 개의 결정이 붙어서 눈송이가 되어 내리는 경우가 있다. 송이로 된 눈을 함박눈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 때 내린다.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들이 눈을 생성하는 핵의 역할을 한다. 미세한 핵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 알갱이가 되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계속 달라붙어 결정이 커지게 된다. 눈이 많이 내리는 서해안 같은 경우 물론 저기압 또는 전선에 의해 눈이 오기도 하겠지만 대기 온도와 해수 온도 경도가 발생하여 생기는 해기 차이가 대부분 서해안에서 내리는 눈의 원인이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도 원래 三白(삼백)이 으뜸이라고 했다. 삼백이란 눈(雪), 소금(鹽), 쌀(米)이라고 한다. 전남 서해안에 눈이 내리면 적설량이 가장 많은 곳이 영광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1월 3일 전남 영광의 영광대교회 앞엔 아무 표정 없이 눈이 소금과 쌀처럼 하얗게 수북했다. 영광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 20분이었다. 1905년 5월 7일 배유지(Eugene Bell) 선교사의 전도 열매로 영광읍 무령리에 세워진 영광대교회는 설립 116년 되는 교회다. 한국교회 역사의 초창기 기억부터 소중히 간직한 교회에 시무하는 김용대 목사는 2009년 7월 1일 부임했다. 2021년 1월 3일 영광대교회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 예배라 20명만 참석하는 데 감사원의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총회 감사부 오광춘 장로의 배려로 다른 분을 내려오시게 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 준비 찬송이 끝나고 김용대 목사가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된 강단에 섰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주일입니다. 이렇게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성탄 무렵 어떤 분이 제게 글을 보냈는데요. ‘성탄절을 맞이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렇게 방역지침이 확대되어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인지 무엇인지 너무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다’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했습니다. 코로나든 전쟁이든 기근이든 무엇이든 성탄절의 기쁨을 바꿀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도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주일은 코로나든 전쟁이든 지진이든 기근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주일의 의무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덮을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각 처소에서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그 무엇도 덮을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만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은혜가 새해 첫 주일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 같이 묵상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르간 전주가 ‘만세 반석 열리니’로 예배의 문을 묵직하게 열었다.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김용대 목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소강석 총회장의 활동 범위가 제약을 받는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소강석 목사님이 활동을 많이 하셔야 되는데.” 김용대 목사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소강석 총회장은 내가 볼 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끌어내시더라고요. 어찌 됐든 소 목사님은 활동적인 분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둬야 됩니다.” “그렇죠. 그게 좀 아쉽다는 거죠. 활동을 많이 하실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어서 제한된 가운데 하시긴 하지만...” “그게 좀 아쉬워요.” “가장 능력있는 분이 가장 어렵게 됐어요. 교단이나 교계에서도 바람직한 일인데... 하나님 뜻이죠.” “그러고 보니까 식사대접도 못 하네. (사모님에게 뭐라 말한다.) 어허 세상에.” “차 한 잔이면 되죠.” “어허 이거 어쩌지. 많이 드시지도 않지만.” “말씀 받았잖아요.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오셨다.) 저한테도 필요한 말씀이었는데.” “광주에도 큰 교회들이 많은데 시골까지 오셔서.” “시골이 아니라 영광대교회에 김용대 목사님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진 기본적인 신앙과 자원이 있는데 저는 제 앞에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거의 그럽니다. 안 그러면 화병(火病) 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지난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정리가 됐었는데 우리 오광춘 장로님이 엄청 서운했던 거 봐요. 우리 지역에는 같은 노회 한기승 목사님 계십니다. 2년 뒤에는 차례가 돌아오죠. 2년 전에 한 번 도전해서 물론 후보도 못 됐지만, 그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니까 가려지더라고요. 그때 어려웠잖아요. 정치 공학적인 어려움이었죠. 저는 한 번도 누구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돌아와서 내가 마음속에 약속한 것은 우리 교단 안에서 할 일이 있다면 겸손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아주 많이 부름을 받아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그래도 말씀 사역 기회를 하나님 주셔서 감사하고 그걸로 교단을 섬기니까 그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보면 교단 정치를 현실적으로 뛰어다니는 소모적인 부분도 많잖아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을 정의하는 가치로 기회, 안전, 자유, 존엄성, 존중, 명예, 그리고 진실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국인, 특히 헌법을 존중하고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선서한 지도자들은 진실을 수호하고 거짓을 물리쳐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평생 불운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이든 편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늘 털고 일어나 한 걸음 전진했다. 바이든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1917∼2010)이 심어준 긍정의 신앙 덕분이라고 미 언론들은 평한다. 바이든 여사는 아들 조가 어린 시절 말더듬증으로 인해 “모스 부호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할 때 “머리가 뛰어나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29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는 말씀에 근거해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시련을 주시진 않는다.” 그의 시련은 이어졌다. 1988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무렵 유세 후 쓰러졌던 바이든은 그 자신도 뇌혈관 부종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다. 가톨릭 신부가 임종 미사 준비까지 하던 위급 상황이었다고 에번 오스노스는 최근 펴낸 ‘조 바이든’ 전기에 기록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가 우려됐지만, 말더듬이 시절 어머니의 격려를 떠올리며 이겨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 때 “어머니는 정치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누구도 너보다 뛰어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너보다 못하지 않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도덕적 나침반이자 정치의 좌표가 됐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자택 주차장을 별채로 개조해 말년의 어머니를 모셨다. 2010년 어머니 별세 때 애도 성명에선 “헌신은 최고의 가치이며 신념은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한다는 어머니 말씀 덕분에 세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바이든은 2015년 뇌종양을 앓던 장남 보를 가슴에 묻으며 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때 주변에선 “시련이 바이든을 더 결단력 있고 더 겸손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리고 5년 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미국을 치유할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뒤 더욱 단단한 믿음의 낮아짐으로 견딘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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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1
  • 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홍해 사건은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 듯 고요 그는 호수에 파문 일 듯 입 열어 보수교단은 나날이 퇴색되는 보수 신앙 기치 다시 세울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코로나 팬데믹 총회 총신 혼돈해결할 총회 지도자로 필요 절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간절한 바람 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 마음에 오래 갇혀 있던 기도가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바람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쉬엄쉬엄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월의 나무들은 수락산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아주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하얀 빛이 된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바람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바람 하나 있음을 안다. 2018년 12월 16일 11시 30분 양문교회 예배는 이영신 목사가 내 자신 젊었을 때 듣던 보수의 아이콘 김창인 목사처럼 설교를 하는 설교자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1970년 시작된 양문교회의 원우연 목사와 서공섭 목사를 이어 2004년 11월 7일 부임한 제3대 목사다. 그는 본문 출애굽기 14:26-31을 봉독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성가대 찬양의 은혜에 대한 감사기도 후 이영신 목사는‘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는 듯 고요했다. 그는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 묻는다면 ‘일상생활에서 감탄하는 습관을 길러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어느 칼럼니스트가 말했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감탄하게 되면 그 안에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어린아이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게 별 것이 되고 그래서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감탄할 거리를 찾아서 감탄해보신다면 행복해지실 겁니다. 저는 주초에 아내와 예술의전당에서 서울모테트합창단(Seoul Motet Choir)이 연주하는 ‘메시아’ 전곡 연주를 관람했습니다. 그 후 3부 53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 시간이 장장 두 시간 삼사십 분 되는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어제까지 들었습니다. 정말 헨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메시아’라는 오라토리오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절대로 처서는 안 될 곳에 장막을 치고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600대의 정예 병거를 앞세우고 추격해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외쳤습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어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까 하노라 하지 않았느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인을 섬기며 사는 게 더 낫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 모세를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에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모세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던 것 같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 붙잡고 그 모든 상황을 여호와께 아뢰며. 지도자로서 간절히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향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부르짖지만 말고 행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르짖고 있을 때만 아니고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영혼의 호흡 같은 게 기도이기에 늘 기도해야 하고 또 위기를 만났을 때는 더욱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고 행동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그 다음에 행동해야 합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에서 포로임에도 왕의 큰 신임을 받고 있던 느혜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 성과 동족에 관한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에게 나아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무너진 성을 건축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역시 포로로 붙잡혀 가있던 시절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로 유대인 전체가 멸절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모든 동족과 함께 사흘 밤낮을 기도한 후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아하수에로 왕 앞에 목숨 걸고 나아갔습니다. 그처럼 기도했으면 지금은 부르짖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때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손에 든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키면 바다가 갈라질 것이고 그러면 백성은 마른 땅 육지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전쟁의 최고 지휘관이시고 사령관이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지도자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모세는 그대로 수행만 하면 됐습니다. 이어지는 17절에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여러분 이 말씀에서 누가 주어입니까. 바다가 갈라지게 만들고 애굽의 병거와 마병을 따르는 바로의 모든 군대를 수장시키고자 했던 분이 누구이십니까. 내가. 내가. 하나님. 애굽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들어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리하여 바로와 그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18절 또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갔던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다 죽게 될 때야 그들이 하나님이 여호와 참 신이신 줄 알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직후였습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뒤로 옮겨갔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하나님의 사자는 미디안 광야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던 그 여호와의 사자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탄생하시기 전의 성자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군대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뒤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자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섰습니다. 어떻게요. (회중은 미동도 없이 강단을 주목했다)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쪽은 대낮같이 밝았지만 애굽 진영 쪽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흑암이 깊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래야 할 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 사이 모세가 바다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내민 것은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닷가 해변에 물이 빠지고 나면 진흙투성이 개펄이 됩니다. 그런데 그걸 아시는 하나님께서 큰 동풍이 불게 하시어 바다 한 가운데가 갈라져 물이 물러가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진흙투성이 바닥이 육지처럼 마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육지처럼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 사이 물은 그들의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그들의 뒤를 추격해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 사이에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동 트기 전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혼비백산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어렵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친다.’ 그들 입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기들 밑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노예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과의 싸움이라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줄행랑을 치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비하히롯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말씀하실 때도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투루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회중 아멘)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자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었습니다. 역시 이 장면에서도 하나님이 총지휘관이셨고 모세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새벽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셨습니다.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애굽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장정만 60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넜지만 바로와 그가 이끄는 강력한 애굽 군대는 하룻 밤 사이에 바다에 수장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큰 일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과 그가 세우신 종 모세를 굳게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함께하시면 바다 한가운데도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중 아멘) 바닷가에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자 애굽 사람들은 길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그곳에 진을 치게 되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애굽 군대 칼에 죽게 하느냐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는 경외를 받으셨습니다. 또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셨습니다.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말씀하심으로 태초에 땅과 바다가 생기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큰 동풍을 불게 하사 바다를 가르시고 그 한가운데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는 것쯤이야 왜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쯤이야 어떻게 못하시겠습니까. 만들기도 하셨는데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인 진퇴양난의 상황에 하나님의 백성이 처하게 되면 그 바다를 가르시던지 아니면 바다 위를 걷게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다를 반드시 통과한 다음 가나안 복지 들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회중 아멘) ... 천지를 창조하신 인류의 생사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얼마든지 능력과 기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행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지은 죄를 모두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쉴 새 없이 중보하고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고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중 아멘) 그 진리를 깨닫게 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면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될 것입니다. 그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이영신 목사는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이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라고 갈파했다. 이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전략의 출발은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앞의 것이 '지리(地理) 감각'이고, 뒤의 것이 '역사 감각'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나를 바로 아는’ 것도 이 두 가지 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한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을 잃으면 홍해에 수장된 애굽 군대처럼 될 것이다. 보수의 아이콘처럼 말씀을 전한 이영신 목사가 지향하는 ’보수의 메시지‘는 기득권 옹호, 기복 신앙, 수구적 사고가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신앙적 삶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에 반하는 풍조에 대한 이런 말이 있다. ‘사회주의자는 (정권 장악에)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주의는 (국민을 고루 배부르게 한다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래서 기독교를 폄하하고 경제를 어렵게 하는 사회주의자들로 인해 지금 나라 형편이 아주 어렵다. 세계 모든 개발경제학 교과서에는 ‘한국 성공’과 ‘북한 실패’ 스토리가 체제(體制) 간 우열을 비교하는 대표 사례로 실려 있다. 한국은 이와 정반대로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부인하는 북한을 호도하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있다. 한국 보수교단인 우리는 나날이 깊어가는 국민의 이런 시름과 걱정에 희망의 출구(出口)를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 활로(活路)를 위해 이영신 목사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전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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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7

실시간 G.PEOPLE 기사

  • 불굴의 배재군 목사
    1999년 6월 24일 발병해 2000년 2월 말 수술 후 항암치료 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어선 동원교회 배제군 목사. 그의 믿음의 비결은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목회하며 교회를 괴롭히는 조폭과의 싸움도 이기고 이제까지 총회 지도자의 반열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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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19
  • 총회의 유리창 김선규 부총회장
    총회의 유리창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 하늘이 있고 흰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말간 유리창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투명한 유리창을 들여다보며 섬뜩한 칼을 들고 엉클어져 뒹구는 총회 우에 서 있다. 내 보잘 것 없는 글 길 잃고 헤매는 목사들의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어깨를 눕히는 가을 총회 건물 아래 말갛게 흘리는 눈물방울 주님의 소리로 다가간다면 대치동 거리는 한순간에 낙엽으로 덮이려나. 그리고 은행나무 긴 가지로 대치동 길처럼 뻗은 나날 믿음을 잃어버린 형제 목사들에게 주님의 반가운 소식을 보낼까 망설이는 마음 길을 못 찾는다. 책과 더불어 등불을 밝히는 가을은 지난날 얘기다. 목사와 목사의 선혈이 튀는 섬뜩한 싸움판 소식에 독서는커녕 진득하게 기도하기도 어렵다. 독서 없음으로 기도를 깨우는 글이라니, 세상 앞에 서면 우리 목사들 모습 참혹해지는 한때가 총회의 유리창 한가운데로 불현듯 스며들어 사라지기를 바라는 눈물 간절하다. 2015년 9월 14일(월) 오후 9시 25분 대구 반야월교회당에서 열린 제100회 총회의 부총회장 직선에서 평양제일노회 김선규 목사(판교 성현교회)가 경합을 벌인 동한서노회 김종준 목사(꽃동산교회)를 예상을 뒤집고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투표 결과 김선규 목사가 930표를 얻어 516표를 득표한 김종준 목사를 414표차로 제쳤다. 총신 70회 출신의 그의 당선 경력은 교계에서 실로 화려하다. 1998년 12월 19일 총회부흥사회는 서울 양재동 횃불회관에서 제15대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신임회장에 김선규 목사(성남 성현교회)를 선임하는 등 회무를 처리했다. 이날 새 회장에 선임된 김선규 목사는 취임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교단 내 부흥사들이 하나 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재임기간 동안 총회 영성회복, 부흥사 자질 향상, 1만 교회 운동 확산, 미자립교회 자비량 부흥집회 개최 등에 힘쓰겠다.” 2001년 9월 18일 제86회 총회 부서기에 처음 당선된 김선규 목사(54)는 총회정치부와 전도부 서기, 농어촌후원회 부회장, 21세기교단발전위원회 농어촌분과위원장, 총회부흥사회 회장, 총회세계선교회 서기 등을 역임했다. 1979년부터 성현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는 김 목사는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드린다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며, 그의 동역자인 김영순 사모에게는 더없는 애처가이기도 하다.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2004년 10월 8일 총회 세계선교회는 화성 선교센터에서 임시총회 및 이사장 이·취임 예배를 드렸다. 김선규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말했다. “선배들이 다져 놓은 사역위에 내실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하고 재임기간 중 교단 산하 교회 중 10분의 1인 700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토록 발판을 마련하고 선교사 영성강화와 새롭게 시행되는 3구도 체제의 정착에 전념하겠다.” 2007년 12월 3일 한장총(한국장로교총연합회)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제25회 정기총회를 열어 김선규 목사를 신임 대표회장으로 추인했다. 김 목사는 임기 중에 그동안 군소교단들의 주도권에 밀려 소외됐던 장로교 대형교단들의 한장총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새 회기에 예장대신,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기장 등이 한장총 임원진으로 포진할 수 있었다. 2014년 11월 21일 총회회관 회의실에서 화해조정위원회 설치연구위원들이 모였다. 제99회 총회에서는 화해조정위원회 설치를 전격으로 결의했는데 광주노회의 헌의안이기도 했으며, 백남선 총회장의 공약사업이기도 했다. 위원회 참석자들은 교회분쟁으로 죽어가는 교회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김선규 목사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화해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선규 목사는 말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해의 십자가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고 사람과의 화해를 이루셨다. 화해조정위원회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분쟁이 있는 교회의 화해를 모색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2014년 12월 27일 11시 판교 성현교회 행정실에서 전 GMS이사장 김선규 목사를 만났다. 더굳뉴스와의 그의 대담을 다시 되새기는 것은 무엇보다 그의 지난 정치 여정과 그의 앞으로의 정치 비전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찾아 뵌 건 교단 지도자로서 살아오신 여정과 내년 총회 부총회장 선거에 나서신다고 해서 알려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연말당회에서 만장일치로 내년 선거에 나서는 걸 허락해 주었습니다. 내년에 노회 통해 절차 밟아 나가야겠죠. 뭐 또 내년에 누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까지 목회와 총회 정치를 해 오시면서 좋은 인맥을 구축하고 계신데 비결이 무엇입니까. “저는 정치를 하면서 첫째는 교회를 살리고 둘째는 목사님을 세우고 셋째는 교단과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역할에 힘써 왔습니다. 또 한 가지는 청탁에 대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총회의 모든 자리를 공유하고 나누려고 애를 썼습니다. 귀한 인물을 세워 함께 가려고 했습니다. 예컨대 총회 서기 끝나고 나니(2003년) 내가 교육부 1년조였어요. 그런데 당시 어느 목사가 교육부장하고 싶은데 양보해 달라고 하더군요. 상비부 자리도 임원한 사람 우선이잖아요. 그 당시는 그가 부각되는 인물은 아니었어요. 자기는 총회에서 아무 것도 못했는데 양보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그를 바로 보면서 꼭 하고 싶으냐고 물었어요. 그가 그렇다고 말해서 양보했어요. 그리고 내가 GMS이사장 끝나고 나니 또 고시부 1년조였어요(2006년). 고시부 사람들이 날 부장으로 해서 임원조직을 해서 왔어요.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또 어느 목사가 찾아왔어요. 그가 날더러 GMS이사장도 하셨는데 뭐 그러냐면서 고시부장하고 싶다고 하길래 양보했어요. 그리고 고시 보는 날 원래 총회장이 설교하는데 날 시키더라고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우리 총회 정치라는 게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아니래도 그 위치에서 건전하게 일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세워서 공동체가 돌아가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다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죠. 총회 정치가 퇴색되고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다 해 먹으려고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녀서 그래요.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 된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다보니 총회 정치는 어려워지게 됐죠. 나는 총회 정치를 공생하고 나누며 해 왔어요.” -목사님 총회 서기 하실 때 한명수 목사님이 총회장이셨죠. “그렇죠.” -그리고 그때 부총회장이 임태득 목사였는데 납골당 문제가 생겨요. 뭐 기억나시는 거 있으세요. “납골당 문제 가지고 한 목사님하고 임 목사님 많이 다투었어요. 그러다가 부총회장에게 다 일임되었어요. 그렇지만 그 당시는 그 문제가 많이 불거지지가 않았어요.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서 그 문제가 커져버린 겁니다.” -임원회에서는 안 하기로 반대했는데 임태득 목사 혼자서 다 처리하신 거네요. “그랬죠. 임태득 목사가 자기가 부총회장이니까 위임해 달라고 해서 위임해 주었어요. 그 다음에 임태득 목사가 총회장 되면서 그 일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거죠.” -그때 정치 상황하고 현재 총회 정치 상황하고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그때 정치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이영수 목사님 영향을 받은 정치 그룹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반하는 그룹이 있었잖아요. 그 그룹들이 제가 서기할 때 총회 정치를 장악하다시피 했죠. 그러니까 노련한 정치 전문가들께서 총회 정치를 하다보니까 그때 젊은 사람들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 정치초년생으로서 그분들을 우러러보며 정치를 공부하는 단계였죠. 그러나 그 이후 제비뽑기가 되면서 교단의 정치가 방향도 없이 표류했죠. 슬로건은 개혁주의라고 하면서 성경에 있듯이 자기소견에 좋은 대로들 행했죠. 내가 보니 제비뽑기하면서 목회는 성실히 하고 그 지역에서 행세는 할는지 몰라도 총회 정치는 그렇게 안돼요. 총회 정치는 몸담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총회의 장들이 되는 거예요. 내가 총회 정치를 한 30여년 총회에 몸담고 정치를 하다 보니까 총회가 보이는 거예요. 나름대로 갈 방향도 보여요. 그러나 이분들은 그게 안 되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죠. 게다가 주변의 정치전문가들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훈수하는 대로 하거나 자기하고 코드 맞는 사람들하고 정치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총회 정치라는 게 이리 가고 저리 가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지금 증경총회장이라고 하는 분들 가운데 아주 원로급에 있는 분들 말고는 총회를 리드해 주는 분이 누가 있습니까. 제비뽑기해서 된 분들 가운데 아무도 없어요. 그 동안 총회장을 하기는 했지만 총회를 위한 리더십 내지는 방향을 지시하는 비전이라는 게 전혀 없어요. 그래서 총회가 뒤죽박죽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총회 개혁해야 된다고 목청을 높이곤 하죠. 총회 산하의 어려움들이 그래서 생겼던 것 같아요.” -이제 직선제가 부활했는데 총회 정치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직선제이긴 하지만 두 명이상이면 제비 뽑아 선거를 하잖아요. 저번 99회 총회가 실제로 그랬죠. 한 사람 탈락하고 두 사람이 결선 투표를 했죠. 성실히 목회를 하고 정치를 하지 않았던 분들이 제비 뽑아서 되겠다는 요행수는 없어져 버렸어요. (실례로 제비뽑기로 당선된 사람들 가운데 내가 어떻게 총회장 될 꿈이나 꿀 수 있었겠나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총회 정치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던 분들이 나와 경선을 하게 된 거죠. 요행수를 바라고 나오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총회가 어떤 곳인지를 알고 공부를 한 다음에 총회 리더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이나 배경을 믿고 툭 나오다 보니 나름 총회의 표면은 볼 수 있겠죠. 그러나 그 동안 몸으로 체험한 건 없잖아요. 예컨대 갓 결혼한 주부가 요리책을 보고 보기 좋게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만들어 진 것들을 사다가 좋은 그릇에 담아 차리기만 해도 요리로 보이죠. 그러나 어머니들은 처녀 적부터 직접 요리를 해 온 경험이 있잖아요. 뭐 몇 그람 칼로리가 얼마가 아니라 그냥 익숙한 손맛으로 요리를 만들잖아요. 대충 경험으로 요리를 해도 우리가 그 요리의 깊은 맛을 알고 좋아하잖아요. 그게 경험인데 그런 게 없이 일이 진행되다 보니 어설프죠. 자기 소견대로 한두 가지 이렇게 저렇게 해 보지만 큰 총회가 가야할 진정한 방향성을 찾지는 못 했다고 봅니다.” -30여년 총회 정치에 참여해 보아 오셨는데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예컨대 이영수 목사 체제가 무너지고 한명수 목사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들어설 때라던가 또는 길자연 목사 때의 여러 파행기나 제비뽑기 시대의 어떤 때라던가. “제가 보기에 이영수 목사 체제가 무너졌잖아요. 그 다음 이영수 목사 밑에서 정치했던 사람들이 영호남을 초월해 있었잖아요. 그분들이 정치 바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나올 때 정치전문가들이다 보니 문제는 있었어요. 그래도 총회의 정치 무게라고 할까 그분들의 정치에는 원칙을 지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에는 개혁성이나 뭐 어떤 걸 가지고 나와 총회의 위상을 높이려고 했죠. 그런데 오히려 어떤 인물들 때문에 총회가 추락됐고 우리가 합동이 아니라 합똥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김선규 목사님이 두루 정치적인 역량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온건하게 가셨던 거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왜냐하면 제가 어떤 누구와 강하게 부딪치는 성격도 아니고 그러나 한 교회를 개척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양하게 총회를 섬기고 미국과 전 세계를 다니면서 집회를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 경륜이 제게 리더십을 주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목사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이 볼 때 김선규 지가 차고 들어가서 해야지 왜 다른 사람을 시키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이루는데 내가 앞장 서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앞장 세워놓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는 의도대로 가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GMS이사장 김재호 목사를 세웠어요. 김재호 목사가 선교 마인드를 가지고 잘 가고 있어요. 나는 앞장서지 않아도 앞으로 잘 가도록 뒷받침해 주는 역할만 하면 되죠.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내 성품에 대한 평가를 그렇게 할 수도 있겠죠.” -왜 그런 말을 드리는가 하면 내년 부총회장 선거에 나오시려고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김선규 목사는 다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적이 없다보니 그 친구들이 다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뭐. 정치라고 하는 거는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잖아요. 그런데 친구라고 하기 보다는 저는 그래요. 제 또래들은 미국 갔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입장이에요. 그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나 미련이 없어요. 후배들이 많은데 그들을 동생처럼 사랑했죠. 그런데 그들이 이제 총회 현장에서 정치적인 그룹을 갖거나 어떤 목적을 지향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어떤 목적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대했어요. 정치적인 색깔이 없이 후배들을 대했죠. 그래서 내가 어떤 정치적인 색깔을 가지게 될 때 그들이 나를 지지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겠죠. 정치는 정치이니까 정치세계에서는 일어서서 게임을 해야 되겠죠.” -이번에는 정치색을 드러내고 어느 쪽으로 가시려 합니까. “어느 쪽이라기보다는 나는 우리 교단이 나갈 방향성을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느 방향으로 가시려고 합니까. “다양할 수가 있겠죠. 우리 교단의 신학 정체성에 의한 방향이 있어야겠죠. 우리 교단이 비대해지다 보니 이것을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운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개혁측과 합동할 때 합의 가운데 하나가 대회제를 실시한다는 거였어요. 제가 대회제연구위원장으로서 시행 방안을 세워놓은 게 있는데 시행이 되지는 않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더 커지다보면 헌법에 있는 대로 교단이 언젠가는 시행해야겠죠. 커지다보면 시행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는 대의 안에서 하면 치열한 정치는 안 하게 될 것입니다. 총회장은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죠. 우리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면서 통일 방안도 마련해야 된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북한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북한을 연구하고 통일의 그릇은 준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단이 정치를 해가면서 그간 크고 작은 소송이 걸린 것이 많아서 돈도 많이 쓰고 했습니다. 총회 안에 백남선 총회장이 화해조정위원회를 세워놨으니까 이걸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교단이 대외적으로 취약한 면이 있는데 그 회복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단이 대외적인 면에서 미온적이었지만 앞장을 서서 리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잘 하시면서도 총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목회 시작을 했고 목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어요. 목회를 하면서 부흥사 사역도 겸했죠. 부흥사로서 3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 곳곳을 참 많이 다녔죠. 많이 나갈 때는 일 년에 80여회 나간 적도 있어요. 그러다가 총회의 교제의 폭이 넓어지고 목회가 커가고 안정되어 가니까 노회나 총회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를 해야 되겠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정치하는 사람들 심부름꾼밖에 안되잖아요. 그래서 정치라고 하면 나쁘게들 많이 해서 나는 부족하지만 건강한 정치를 한번 해보자 하게 된 거죠. 나를 보호하고 노회와 총회를 위한 건강한 정치를 해 볼 마음을 먹게 된 겁니다. 그런 의도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한 발 두 발 정치에 발을 들여놓다가 길자연 목사가 정치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었죠.” -그때 참모 하셨나요. “네. 참모했습니다. 어쨌든 정치의 연륜이 없으면 부분적인 분야의 정치는 하겠지만 총회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는 어렵습니다.” -교단의 특성과 역사를 반추해보면 무엇보다 교단의 원래의 보수성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신학과 신앙의 보수성이죠. 타교단과 연합해서 하는 일에 있어서는 끌려가면 안 되잖아요.” -그 연합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흡수되고 마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지도자들이 거기 가서 우리 교단의 위상을 세우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세우려고 하다보니까 끌려가게 된 겁니다.” -그걸 어떻게 배제할 수 있습니까. “기존의 것을 막으려고 하기 보다는 한국의 큰 교단을 새롭게 모아서 우리가 다시 주도권을 쥐어야죠. 여러 연합 기구가 분열로 작아지고 말았어요. 새로운 연합기구의 태동을 위한 시동을 우리 교단이 걸어야죠. 그 다음에 우리 기독교가 100년까지는 종로 5가 시대에 맞았어요. 그러나 종로 5가는 통합측 중심입니다. 이제는 200년을 향해 가면서는 종로 5가가 한국 기독교를 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전에 주님 오실지는 모르지만 200년을 향해 나가면서 기독교 타운을 어딘가에 또 조성해야 합니다. 그 깃발을 우리가 들고 앞장서야죠. 그러면 타교단들이 쫓아오든지 협력하든지 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리더십을 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제2의 광복을 추진해야 합니다. 북녘 땅을 복음으로 해방시켜야 합니다. 이 광복을 위해 우리 교단이 앞장서서 사회나 정계나 모든 계층을 리드해가면서 선도의 깃발을 우리 교단이 들어야 합니다.” 이제 9월 14일 제100회 총회에서 당선 일성은 “부총회장으로서 한 회기동안 총회장님을 잘 보필하고 총회장의 공약이 잘 이행되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교단의 내일을 준비하는 한 회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총신 74회 출신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의 총신 4년 선배이면서 총회정치의 대선배인 부총회장 김선규 목사에게는 다음의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전략적인 전사들은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한발 앞서 생각하고, 어떤 싸움은 피해야 하고 어떤 싸움은 불가피한지를 결정하면, 감정을 조절하고 일정 방향으로 돌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싸워야 할 상황에 그 책략을 결코 알아채지 못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언제나 평화로운 외양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소양을 지닌 김선규 목사가 총회의 유리창이 되어 목사들인 우리 모두가 세상 앞에서 말간 하늘을 자랑스레 바라보게 해 주기를 간절히 눈물로 빈다. 2015-10-24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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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24
  •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
    1980년 황금동 허허벌판에서 박무용 목사는 자신을 치료해 준 예쁘고 선한 간호사 출신의 안이자 사모와 단 둘이 예배드리는 개척교회로 출발해 1,000여명 교인의 교회로 성장시킨 대구 황금교회의 목회자이다. 그런 그가 2015년 9월 14일 성역 35년 만에 12,000여 교회의 보수 장자교단의 제100회 총회 총회장으로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취임한다. 대낮 한 차례 폭염의 잔류부대가 대전중앙교회 앞 주차장에 집결하고 있는 9월 1일 오후 1시 30분 총회 정치의 전설 이영수 목사 시무 당시 70년대에 새로 지은 대전중앙교회 본당에서 예배 후 제100회 총회장 후보 박무용 목사는 설교단 오른 편 대기석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 머리 숙여 인사한 뒤 단에 서서 총회장 후보가 아닌 제100회 총회장 당선자 자세로 자신의 실천 사항 공약을 다짐하는 정견발표를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0회 총회 총회장 후보로서 지난 한국교회 역사의 100여년을 통해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가 당면한 현재 우리의 모습과 교단의 당면 과제와 교단의 미래와 비전을 생각하는 가운데 다음의 사항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그래서 총회가 교회의 본질과 공교회성을 회복해 새로운 한국교회의 미래 선교 100년을 향해서 다시 한 번 힘찬 생명력으로 비상하는 총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에 저는 금번 100회 총회가 첫째,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한 총회 100여년 역사의 정체성 확립에 힘을 쓸 것입니다. 둘째, 깨끗한 총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셋째, 총회 중장기 정책 기능을 강화해 미래지향적인 정책 중심의 총회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넷째, 총회 산하 기구에 대한 조정과 통제 기능을 강화시켜 나가도록 힘쓰겠습니다. 다섯 째, 총회의 교육, 전도, 구제, 봉사 등에 있어서 교회 본연의 사역 영역과 중복된 기능과 임무를 조정하고 사업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총회 대내외적으로 첫째, 우리 한국교회의 연합 사역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공교회적 연합의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둘째, 곧 다가올 민족통일의 시대를 앞두고 남북교회가 다함께 기도하며 남북통일을 준비해 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셋째, 세계개혁주의 기독교단 단체들과 교류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 총회 사역의 지평을 세계로 넓혀가도록 하겠습니다. 제100회 총회장 후보로서 이제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정책 중심의 총회로 거듭나서 총회 산하 모든 교회가 민족과 국가를 위한 복음의 사역을 힘 있게 전개해 나가기를 바라면서 섬기는 리더십으로 총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작년 2014년 9월 22일 광주 겨자씨교회에서 열린 제99회에서 한 차례의 제비뽑기를 통해 세 후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후보 김승동 목사가 탈락했다. 그는 총회에서의 정치 경력이 별로 없는 정연철 목사를 누르고 제99회 총회 부총회장에 당선된 박무용 목사(대구수성노회·황금교회)는 100년 전통을 이어온 최대 규모의 교단에 필요한 것은 책임감과 강력함을 가진 리더십이라고 강조한다. 그때 그는 말했다. “지도자의 무책임과 리더십 부재가 수많은 생명을 단숨에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큰 배를 바다로 침몰시킨 세월호 사고의 모습을 보며, 최근 몇 년간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교단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 교단이 다시금 위상을 회복하고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책임을 질 줄 알면서도 거대 교단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청되는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박무용 목사의 말은 배우는 막이 내리면 일이 끝나지만 정치가는 연설이 끝나면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연설의 실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이 좋고 인화력이 출중한 그가 섬기는 리더십으로 총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 약속대로 100년 총회의 드문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2015-09-10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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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10
  • 칼빈주의 예배자 유선모 목사 _ 원당교회 담임
    전국에 무더위가 이어진 8월 9일 지하철 원당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원당교회(유선모 목사)에 10시 30분 도착했다. 기독교방송 설립자 감의도(본명 오토 디캠프) 선교사가 1949년 9월11일 한 교인의 가정집에서 시작한 경기도 고양시 주교동의 원당교회는 창립 65년을 넘어 70년을 향하고 있다. 2부 11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본당 2층 앞줄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설교 강단 벽에 작은 교회에도 있는 고해상도 대형 스크린이 장년 1,700여명이 참여하는 원당교회의 강단 벽에 없었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 예배당에 고해상도 대형 스크린 설치가 유행이다. 신축하는 예배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예배당 정면 상단에 스크린을 한두 개씩 설치한다. 건축한 지 오래된 교회들도 강단을 뜯어고쳐 앞 다투어 스크린을 설치했다. 대형 스크린에는 설교하는 목사의 얼굴이 배우나 가수처럼 크게 나타나고, 성가대 찬양, 성경 본문, 회중 찬송 가사, 교독문까지 제공된다. 신자라면 두 손으로 들고 펼쳐야 할 성경도 찬송가도 필요 없는 편리한 세상의 편리한 예배 풍경이다. 이런 시대에 원당교회는 보기 드문 정통 칼빈주의 예배를 지키고 있다. 칼빈은 그의 활동을 시작하면서 초대교회가 가졌던 내용을 되살리는 예배를 회복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은혜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전임을 강조하였다. 칼빈은 중세 미사를 흉내 내는 것을 싫어하였으며 그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초대교회가 드렸던 예배였다. 칼빈은 성경을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로 여겼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설교는 성만찬과 함께 예배에 있어 중심적이고 규범적인 요소였다. 즉 설교는 그의 예배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그 다음에 칼빈은 시편송을 아주 강조하였다.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장려하였던 루터교 전통이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거의 허용되지 않았던 쮜리히의 종교개혁과는 달리 칼빈은 시편을 프랑스 운문으로 번역하도록 조치했다. 그래서 제네바를 방문한 사람들은 시편 찬송이 예배에 주는 엄숙함과 기쁨에 대해 말하였고, 회중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감명을 받았다. 제네바에서는 시편의 기쁨과 슬픔들이 음악으로 회중의 입으로 표현됐던 반면에 예배 장소의 시각적인 면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1542년 칼빈이 인도하는 제네바의 예배의식은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 예배의 부름(시 124:8), 죄의 고백 속죄를 위한 기도, 시편송(운율에 맞춤), 성령의 임재를 위한 기도문, 성경봉독, 설교, 성찬성례전, 구제를 위한 헌금, 중보기도, 주기도문 해설, 성물준비(사도신경을 노래함), 제정의 말씀, 권면, 성찬기도(성령임재를 위한), 성체분할(분병례), 분병, 분잔, 성찬참여(시편 혹은 성경말씀을 봉독), 성찬 후 기도, 아론의 강복선언(민 6:24-26). 2015년 유선모 목사가 인도하는 원당교회의 예배의식은 다음과 같다. 입례찬송, 예배의 부름, 찬송, 성시교독, 신앙고백(사도신경), 송영, 기도, 성경봉독, 찬양, 설교, 찬송, 헌금, 봉헌찬송, 봉헌기도, 교회소식, 찬송, 축복. 개혁주의 예배의식 전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칼빈의 예배의식 전통을 지키고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정통 설교자 유선모 목사다. 그 사실은 장년 1,700여명이 참여하는 주일 원당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이제 시각적인 대형 스크린을 배제하고 성경말씀과 경건한 찬송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설교자 유선모 목사의 설교 원문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 보자. 세상을 사랑하지 맙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5-17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이며 탐험가였던 리빙스턴이 나일강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정글을 탐험하다가 그만 심한 열사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와 함께 원주민들이 의사를 부르기 위해 급히 밀림을 헤치고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한참 뒤에 돌아온 그들은 리빙스턴이 침대 위에 앓아누워 있으리라 생각을 하였습니다만 그는 뜻밖에도 두 손을 깍지 낀 채 침대위에 올려놓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만 기도가 끝나지를 않습니다. 인기척이 없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리빙스턴은 기도하는 가운데 평온하게 생을 마감한 겁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에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처럼 자기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나온 삶에 대해서 자신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 가운데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지요. 하나님 앞에 서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습니까?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부르시든 주저 없이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바울이 했던 생의 마지막 고백을 우리도 할 수 있게 되겠지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바울은 그의 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생애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다져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합니까? 오늘 읽은 이 본문을 통해서 세 가지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세상을 사랑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을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기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지나가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분명히 요한은 말씀을 합니다. 한마음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는 겁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 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습니다. 주님도 뭐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둘 다를 사랑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든 세상이든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요한이 이렇게 잘라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자신 할 수 있습니까? 주께서 물어보실 때에 정말 내가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이런 자신 있는 고백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하는 거죠. 우리 모두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었어요. 한 번은 깊은 산에 등산을 갔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숲을 헤매다가 그만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척을 분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듬거리며 산길을 내려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밑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간신히 나뭇가지 하나를 붙들게 돼요. 발을 더듬거리며 뭔가를 디뎌보려고 했습니다마는 발이 땅에 닿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간신히 작은 돌부리 하나에 발을 딛게 됐어요. 발끝으로 그 돌부리를 딛고 작은 나뭇가지를 붙들고 매달려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불현듯 어린 시절 주일학교 다닐 때 기도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캄캄한 밤하늘을 향해서 소리를 칩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그러면 정말 이제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니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기보다는 그저 열심히 교회를 다니겠습니다. 아직 신앙생활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나를 한번 살려주시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그렇게 하늘을 향해서 소리를 쳐대니 순간 하늘로부터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손을 놓아라.” 그에게 손을 놓으라고 하니 세상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난 소리라고 하더라도 이 사람 생각에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손을 놓았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았습니다. 낭떠러지인데 여기서 떨어지면 그냥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에 도저히 손을 놓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못 들으시게 속으로 외쳤습니다. 하나님 손을 놓으면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저는 죽습니다. 그런데 또 하늘의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래도 손을 놓아라 하는 겁니다. 이 사람이 그 소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밤새도록 죽으라고 이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었어요. 새벽녘이 되었습니다. 어둠이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주위가 희끄무레 보이니 좌우를 살피다가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보니까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간신히 딛고 서있는 돌부리 밑이 바로 땅이었던 것입니다. 땅에서 솟아오른 작은 돌부리를 딛고 서서 나무를 붙들고 진땀을 흘리며 버티고 있었던 거죠. 순간 맥이 탁 풀리면서 그는 땅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습니다. 뭔가를 손에 쥐어야 살 것 같아요. 놓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세상 줄을 붙들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돈의 줄을 붙들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의 줄을 붙들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배운 지식의 줄을 붙들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지위나 명예의 줄을 붙들고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정말 살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네가 붙들고 있는 것을 놓아라. 세상의 줄을 놓아라 그래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세상 줄을 놓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붙들고 있는 그 모든 것 가운데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놓으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겁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는 참 생명이 없습니다. 그 속에는 참 평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것들은 존재 할 수 있어요. 돈이 주는 기쁨이 있지요. 권력이 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식이 주는 어떤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다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그런 것이 있을 때에는 무슨 일이든 부분적으로 가능합니다만 그것이 내 손을 떠날 때 또 다른 불안이 나를 찾아온다는 겁니다. 솔로몬이 뭐라고 합니까?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솔로몬이 인생을 살아본 마지막 결론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그것이 우리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삶의 결론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 누려보고 살아봤습니다만 그가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한마디는 모든 게 헛되다는 거예요. 솔로몬 왕이 그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내가 의지하던 세상 줄을 놓을 때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시며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이 주님의 초청에 우리가 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 줄을 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쥐고 있는 것을 여전히 내가 쥐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초청에 우리가 응하지 못 할 때가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세상 줄을 내려놓을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는 겁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세상 줄을 놓는 그 순간, 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충만해질 때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갖지 않은 평강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거지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합니까?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세상을 통해서 평강을 누립니다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한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순전한 평강입니다.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돼요. 어떻게 그 평강을 여러분과 제가 소유 할 수 있습니까? 세상을 떠나고 세상 줄을 내려놓을 때에 그것을 우리가 누릴 수 있고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오늘 사도 요한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영적 교훈이 여기에 있다 하는 거죠. 그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이게 쉽지가 않아요. 세상 줄 다 놓아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치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현실을 살다보면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많이 경험하지 않습니까?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땅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놓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것을 놓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아야 돼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놓아버리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쥐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놓아버려야 돼요. 우리가 그것을 놓지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믿음생활을 해가면서도 불안한 가운데 살아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거죠. 여전히 내가 그것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참된 평강이 찾아오지 않는 겁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믿음으로 놓으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참된 청강을 누리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할 두 번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있는 것들이 죄를 짓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사도 요한은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세요. 뭐라고 말씀을 합니까?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있는 것들이 죄 뿐이라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사도 요한은 이 죄의 뿌리를 세 가지로 이야기 하고 있어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 세 가지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어요. 갈수록 단계가 고차원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이라고 하는 거 동물적인 본능의 욕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5:19이하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15가지를 설명을 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육신의 정욕들이 우리를 죄짓게 만든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아직까지 온전히 성화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죄의 잔재들이 여러분과 저를 부추겨서 죄짓도록 만든다고 하는 거죠. 사도 요한이 바로 이점을 지적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은 인간적인 욕구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탐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간이나 가룟 유다처럼 물질을 탐하는 것을 말하죠. 눈에 보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리고성을 점령했을 때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다음 아이성 점령에 실패한 원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눈에 보이는 안목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그 민족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처럼 이성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 안목의 정욕 때문에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탐하다가 생각지 아니한 이런 죄 가운데 빠지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거지요. 오늘 이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자신들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안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나는 예수를 믿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이래도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온전해집니까? 그렇지 않아요. 우리 주변에 매스컴을 통해서 이상한 소리를 들을 때 그 가운데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그 사실로 예수를 온전히 믿는다고 할 수는 없죠.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보장하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우리도 안목의 정욕에 얼마든지 넘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사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라고 불리던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배가 바다에 온전히 가라앉는 시간이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배 안에 있는 구명보트가 충분하지 못했어요. 할 수없이 1등 객실의 손님과 여자들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구명보트를 내려야되는데 이 구명보트를 타기로 되었던 한 여성이 선실을 향해서 갑자기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깜짝 놀란 선원이 가로 막았어요. 그런데 이 여성이 이렇게 말하며 울며 애원을 합니다. “저 객실에 제가 소중히 여기는 작은 보석상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을 놔두고 나왔습니다. 빨리 가서 그것만 가지고 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가 통사정을 하며 하도 애원을 하니까 5분만 시간을 주기로 했어요. 그녀가 선실로 뛰어가는데 1분, 그것을 찾는데 1분, 뭐 어디에 뒀는지 아니까 얼른 찾아서 뒤돌아오는데 1분, 그래서 3분 정도면 충분히 뒤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여인이 뒤돌아 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5분을 더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여인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구명보트를 바다에 내리고 말았어요. 이 여인이 왜 돌아오지 못한 줄 아십니까? 자신의 보석상자만 가지고 나왔으면 충분히 돌아왔을 겁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까 바닥에 보석이 깔린 거예요. 그걸 딱 보는 순간 약속시간을 잊어버린 겁니다. 그것을 정신이 없이 줍다가 정신이 들어 나와 보니 구명보트는 저 멀리 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보석을 잔뜩 안은 채 그만 배와 함께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던 거죠. 이게 인생입니다. 죽음의 길인 줄도 모르고 안목의 정욕에 빠져 사는 게 인생이다 그거죠. 이건 비단 이런 여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안 믿는 사람만 안목의 정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우리도 안목의 정욕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살피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에 빠지지 않는다고 자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게 되면 나도 빠질 수 있어요. 세상에 있는 것들이 이런 것들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우리에게 경계하고 있는 겁니다. 또 우리를 죄짓게 하는 죄의 뿌리가 뭐라고 합니까? 이생의 자랑이라고 요한은 지적을 하지요. 이생의 자랑,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얼마나 자기를 자랑하려고 하는지 몰라요. 가만히 여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의 험담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자기 자랑입니다. 또 남자들 역시도 아내의 어떤 점을 이야기하는데 들어보면 결국 자기 자랑이에요. 부모들 역시 자식에 대해서 자랑하는데 결국 자기들 자랑입니다. 사실 자랑한다는 것이 누구나 다 같은 속성이에요.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다 자랑하고 싶은 속성이 우리 가운데 존재합니다. 부인할 수 없지요. 이생의 자랑 ,이것이 지니치게 되면 죄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하루는 한 중년 부인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서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백할 게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 황홀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도 죄인가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죄는 아닙니다. 착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착각하고 삽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착각하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의 문제인 거죠. 착각이 심각해지면 하나님 자리까지 올라가게 돼요. 하와가 그렇지 않았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니까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줄 알았어요. 이런 착각 속에 우리가 살아 갈 때가 많이 있다고 하는 거죠. 느부갓네살이 그렇지 않습니까? 일본의 천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 이런 착각 속에 산다고 하는 겁니다. 지금도 사단은 이 세 가지 죄의 뿌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여러분과 저를 미혹한다는 겁니다. 사도는 이 본문을 통해서 이것들을 경계할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할 때에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미혹하지 않습니까?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신 이 주님을 찾아와서 사단이 미혹할 때 사용한 것도 이 세 가지예요.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육신의 정욕이죠.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천사들이 네 발을 받쳐 주어 다치지 않게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환호하게 될 것이다. 안목의 정욕이죠, 내게 절하면 보이는 천하만국을 네게 줄 것이다. 이생의 자랑이죠. 여러분 사단이 여러분이나 저를 유혹하는 것은 과거나 주님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예요.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우리를 미혹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이러한 미혹을 이겨 낼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안돼요. 여러분 내 힘으로 될 줄 아십니까? 절대로 내 힘으로 안돼요. 내 능력으로 안돼요. 공부 많이 한 사람도 여기서 넘어가지 않습니까?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도 여기에 넘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매스컴을 통해서 이런 보도들을 우리가 경험하지 않습니까? 이걸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다윗 같은 성군도 그 믿음 좋은 사람도 안목의 정욕에 넘어가고 말았잖아요,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길 수가 있느냐?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그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신을 쫒아 행하지 말고 성령을 쫒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에 이 죄의 뿌리들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김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세 번째 이유가 뭡니까? 세상에 있는 것들은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17절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말씀을 하지요.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어요. 이 세상도 다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정욕도 지나간다고 했어요.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영원히 거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다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시냇물이 흘러가듯 다 흘러갑니다. 공중의 새가 날아가 버리듯 다 날아가 버린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잠시 있다 사라지는 땅 위에 있는 것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해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란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지요. 여러분과 제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뭡니까? 세상은 땅의 것을 바라보지만 여러분과 저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에요.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준비해 두신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마치 땅에 있는 것들이 영원한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있는 것들에 집착하게 되지요. 여기에 인생에 한계가 있다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해요. 여기에 바로 여러분과 제 자신의 한계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우리가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착해서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에요. 여기에 인생의 한계가 있는 겁니다. 생쥐 두 마리가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치즈 창고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아 들어가니까 치즈가 창고 가득 쌓여있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다 먹어도 먹을 수가 없을 정도가 있는 겁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리저리 뛰고 살판이 났어요. 생쥐들은 행복했습니다. 야 이제는 먹을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날마다 고양이를 피해서 도망을 다니며 숨죽이며 먹이를 찾았는데 이제는 그 걱정과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치즈를 봐라. 치즈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치즈가 자기들 앞에 가득 있으니까 너무 좋은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날도 당연히 치즈가 있으려니 생각하고 치즈창고에 들어갔는데 하나도 없는 겁니다. 아주 깨끗이 창고가 치워져 있습니다. 주인이 치즈를 다 옮긴 거죠. 이 생쥐들이 발광하고 난리가 났어요. 야 도대체 우리 치즈를 누가 다 가지고 갔느냐며 누가 듣든 말든 소리를 찍찍거리며 소동을 피웠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남의 것을 훔쳐 먹다가 누가 우리 치즈를 가져갔느냐 난리를 피우는 거예요. 누가 내걸 가지고 갔느냐 하는 겁니다. 이런 모양이 인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마치 세상이 온통 내 것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삽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해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실 동안만 내 것이죠. 그 때까지 잠시 빌려 쓴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해요.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결코 내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거죠. 영원하지 않다는 것, 내 것이 아니라는 것 다 압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알지만 우리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해요. 본래 내가 가지고 온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올 때처럼 갈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는 것 없습니다. 전도서 5:15에 뭐라고 말씀을 합니까?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7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욥기 1:21에 뭐라고 고백을 합니까?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나올 때 벌거벗고 나왔어요. 역시 이 세상을 떠날 때도 그 모습으로 간다고 하는 거죠.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를 못합니다. 세상 것은 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집착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영원을 사모하며 영원한 것, 신령한 것,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이런 살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17절에 보니까 오직 주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원히 거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주의 뜻을 행하는 자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거죠. 주의 뜻을 행하는 자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구원받은 성도들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왜 영원합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존 칼빈을 다 아실 줄 압니다. 그가 임종 시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죽거든 내 무덤에 절대로 묘비를 세우지 마세요. 내 무덤은 가급적 흔적을 남기지 마세요. 그 무덤에 칼빈이 묻혔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비석을 세우거나 이름을 새기거나 어떤 표시를 절대로 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는 숨을 거두는 시간까지 로마서 8장18절 말씀을 계속해서 암송을 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해 보세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땅에서 아무리 영광을 누려도 나중에 우리 하나님에게서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칼빈은 이 말씀을 열다섯 번을 외우고 열여섯 번째 끝부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떠나는 세상을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다가올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떠나는 세상을 아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영광을 기뻐하며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이런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그 사람은 이러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어요.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늘 우리에게는 세상을 사랑하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올라오게 되어있지요.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야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면 세상사랑은 우리한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를 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영원한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는 귀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녹음정리 김정주 기자2015-08-31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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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31
  • 예수향기 변우상 목사
    버스 창문 밖으로 교회 건물의 어깨에 여름성경학교를 알리는 긴 천이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름이 깊어가면서 산과 들을 찾는 사람이 많다. 나무와 꽃이 내뿜는 여름의 향기에 몸과 마음이 절로 깨끗해진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인체에서 제일 먼저 발달한 감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후각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의 리처드 액설(Axel)과 린다 벅(Buck) 연구팀은 1991년 코에 있는 후각 수용체의 기능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이들은 이 공로로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후각 수용체와 특정한 향기 분자는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결합한다. 맛이나 냄새를 말로 설명하기는 뜬구름 잡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맛을 풀이할 때처럼 어떤 특정한 사물을 보기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짠맛의 풀이는 아주 쉽다. '짠맛: 소금 맛과 같은 맛.' 그래 바로 이거다. 얼마나 간단하고 알기 쉬운가. 신맛은 식초나 설익은 살구, 매운맛은 고추와 겨자, 단맛은 꿀, 고소한 맛은 볶은 참깨나 참기름과 같은 맛이라고 설명된다. 음식이 입에 당기는 맛을 뜻하는 감칠맛도 소중한 맛이다. 감칠맛은 움직씨 '감치다'에서 비롯된 것인데, '감치다'는 '잊혀지지 않고 늘 마음에 감돌다'라는 뜻을 가진다. 감칠맛과 짝을 이루는 그림씨, 다시 말해 감칠맛을 표현하는 그림씨는 '맛깔스럽다'일 것이다. 맛깔은 맛의 빛깔, 곧 맛의 성질을 말하는데, 음식 맛이 입에 맞거나 마음에 들 때 '맛깔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맛과 마찬가지로 냄새도 말로 설명하기는 뜬구름 잡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맛을 풀이할 때처럼 어떤 특정한 사물을 보기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냄새를 나타내는 말들은 동시에 사람의 성품이나 하는 짓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마음 쓰는 것이나 하는 짓이 다랍고 잔 것을 '고리다'고 하고, '구리다'는 하는 짓이 더럽고 추잡한 것, '노리다'는 마음 쓰는 것이 치사스러운 것을 나타낸다. 하는 일이 아니꼽거나 무엇이 너무 적어서 마음에 차지 않을 때는 '비리다'고 한다. '타분하다'는 생선이나 고기 따위가 약간 상하여 새뜻하거나 신선한 맛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고리다'와 '타분하다'가 결합하면 '고리타분하다'가 되어 냄새가 고리고도 타분하다는 뜻이 된다. 군내는 제 본맛이 아닌 다른 냄새를 가리키는데, 텁텁한 군내는 군둥내라고 한다. 날내는 날것에서 나는 냄새, 풋내는 새로 나온 푸성귀 같은 것에서 나는 풀 냄새를 말한다.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는 새물내, 빨지 않고 오래 둔 더러운 빨랫감에서 나는 쉰내는 자릿내다. 나도향의 본명은 나경손(羅慶孫)이다. ‘경사스런 손자’라는 뜻이 싫어 박종화에게 부탁해 필명을 도향(稻香)으로 지었지만 가족들은 ‘나락의 향기’라는 뜻의 도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향기란 곧 사라지는 것이라는 게 가족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변우상 목사의 이름에서는 은퇴하기 전이나 그 후에도 언제나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 느낌의 향기가 난다. 언제나 변함없이 나는 그 새물내를 예수향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꽃이 향기로 말하듯 목사는 예수향기로 말하지 않을까. 그래서 변우상 목사를 생각하면 용인제일교회 교인들은 새물내 느낌의 예수향기에 콧구멍이 그리움으로 벌름거릴 것이다. 변우상 목사의 설교나 삶에서는 꾸미고 덧씌운 듯한 가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그의 설교를 듣거나 삶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예수향기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특별히 목사는 자신의 부인에게 삶과 설교에서 감동을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란 날마다 서로 가릴 것이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변우상 목사의 설교에 대한 고(故) 김영순 사모의 태도를 그들의 딸 변순주 집사가 이렇게 회상한다. 늘 바쁜 남편을 당신의 남자로 욕심내지 않으시고 목사님으로만 모셨던 사모님. 여자이기 보다 목사 부인으로만 사셨던 나의 엄마. 항상 아빠를 사랑하시고 아빠 설교에 은혜 받았다고 행복해 하셨지요. 설교시간이면 예배실 장의자를 잡고 앞으로 달려 나갈 것 같은 자세로 말씀에 집중하시던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해요. 엄마는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신자의 모범이셨어요…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일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어떻게 나타날까? 사도 바울은 특이하게 "냄새"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설명한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 2:14-16 고린도후서 2:15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 말씀한다.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나는 그리스도인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주께서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신다.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생명이다. 그러므로 생명에 이르는 냄새는 예수의 냄새, 예수향기가 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사도 바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로마제국 군대가 주피터 신전에서 승전을 기념하며 향을 피우는 장면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래서 14절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말씀한다." 승리의 향을 피우는 로마 장군들과 같이 죄와 거짓과 사망을 주무기로 싸움을 걸어오는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고 구원과 영생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내는 예수향기를 내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마음 쓰는 것이나 하는 짓이 다랍고 잔 '고린' 냄새, 더럽고 추잡한 '구린' 냄새, 마음 쓰는 것이 치사스러운 '노린'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 속에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로 신선하고 신령한 예수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는가. ‘새물내’는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이라는 의미의 ‘새물’에 냄새를 뜻하는 접미사 ‘-내’가 합쳐진 말이다. ‘오래도록 빨지 않은 빨랫감의 쉰 듯한 냄새’를 뜻하는 ‘자릿내’가 그 반대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새물내 같은 예수향기를 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느 날 순례자가 길에서 향내가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을 발견해서 방에 갔다 났다. 그랬더니 온 방 안에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찼다. 순례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진흙덩이에서 나는 이 놀라운 향기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이 진흙 덩이는 백합과 같이 있었다. 진흙에 불과했지만 백합과 함께 있었으므로 놀라운 향기를 방안에 풍기는 흙이 되었다. 진흙 속에 배어 있는 백합의 향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예수향기이다. 그렇다. 아무리 질그릇 같은 인생이라도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향기로운 인생을 산다. 제3대 안디옥의 총대주교이자 사도 요한의 제자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50년 ~ 117년)는 그의 고결한 성품으로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라고 알려졌다. 현재 '가톨릭'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 바로 이 사람이 쓴 편지이다. 로마 제국의 제13대 황제이고 오현제 중 한 사람인 트라이아누스(Traianus; 53년 9월 18일 - 117년 8월 7일)조차 그의 고매한 인품을 존경했다. 어느 날 황제가 그런 별명을 얻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황제 폐하, 그것은 제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에게서 예수의 아름다운 향기가 넘쳐난다. 찬송가 샤론의 꽃 예수는 이렇게 노래한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 사랑의 향기로 간데 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마음에 사랑으로 피소서." 작시자 아이다 가이리 여사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시인이었다. 그런데 유명한 찬송 작곡자 찰스 가브리엘 목사가 그녀의 찬송시 '샤론의 꽃 예수'를 읽고 난 후, 깊은 감명을 받아 이 곡조를 작곡했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 2:1)란 구절이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을 찬양하는 내용이 시적인 어휘로 표현되어 있다. 아름다운 새로움의 꽃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먼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며(고후 2:15), 열매를 맺어야 한다(갈 5:22; 엡 5:9). 이 시대 우리 총회의 그런 표본이 변우상 목사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예수향기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면 그는 누구인가.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아픔인 6.25전쟁을 겪으면서 학업이 늦어져 다른 연배보다 2년 늦게야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가정형편상 중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어 고향에서 꼴을 베고 있던 어느 날, 교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북받쳐 올라 비가 유난히 많이 오던 그 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처음 서울 큰아버지 댁에 찾아가서 중학교 공부를 시켜달라고 간청했다.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신문배달, 과외, 라디오수리공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과정을 마쳤다. 신앙은 모태신앙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생활에 열심이었다. 김승룡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숭인교회를 출석했고, 학생회 회장은 물론이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중학교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 생활을 했기에,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목회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목회자로 헌신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학교 담임선생 결혼식에 참여하고자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의 결혼식에 갔다. 본인을 제외한 친구들 모두가 술을 마시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막차를 잡기 위해 뛰어가게 되었다. 마침 다리 위를 뛰어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버스 헤드라이트 불빛이 너무 밝아서 길을 잘못보고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기절해버렸고 이것을 본 버스 운전기사와 친구들이 즉시로 달려가 버스에 실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서울로 올라가던 중 버스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고 결혼식에 갔던 것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목사가 되리라 결심했다. 변우상 목사(총신 65회)는 총회신학교 신학생 시절, 2학년 때부터 용인 목회를 시작했다. 숭인교회 고등부 학생시절 고등부를 담당하던 차용식 목사가 후에 신일교회 당회장 목사로 갔는데, 고등부 때 제자였던 변우상 전도사를 기억하고 신일교회 부흥회 강사로 초빙했다. 그래서 그는 낮에는 주일학교 성경학교를, 새벽과 저녁에는 장년부흥회를 인도하게 됐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차 목사가 다른 교회로 가면서 그에게 신일교회를 이끌기를 부탁했고, 신일교회 당회 및 교인들도 간곡히 요청해서 받아들이게 됐다. 그 때로부터 용인에서의 반세기 목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1963년의 일인데, 2년 후인 1965년에는 포곡교회에서도 교회를 이끌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변우상 전도사는 신일교회와 포곡교회(現, 포곡제일교회)를 모두 목회했다. 주간에는 사당동 총신에서 공부하고, 토요일에는 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주에서 내려 2시간을 걸어 교회에 도착했다. 용인에 오면 용인기독병원에 가서 매주 환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위해서 기도했다. 그즈음에 김영순 사모를 만나 결혼했고, 그 시절 신혼여행은 고사하고, 돈이 없어서 신혼방도 어렵사리 마련했다. 1970년대 용인 시내에는 기장과 감리회 교단의 교회 2개만 있었다. 예장합동 교단 소속 교회는 없었다. 변우상 목사는 용인 인근에서 군목으로 사역하던 이기만 목사에게 교회를 개척하고 청소년 선교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1973년 4월 용인제일교회는 이렇게 설립됐다. 그러나 이기만 군목은 근무지변경으로 1년도 안 되어 전근을 떠나게 됐고, 결국 변 목사가 1974년 2월 천막 예배당 용인제일교회에 부임했다. 변우상 목사가 부임한 후 용인제일교회는 놀랍게 성장했다. 변우상 목사가 용인제일교회에 부임한 1970년대는 산업 성장이 한창인 터라 당시 용인 지역은 가죽 의류 염직 등 공장이 많았고, 20살 내외의 청년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변 목사는 그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전도와 구제 사역을 진행했다. 지역에 있는 동광통산, 화일상사, 원진레이온, 대동화학, 중앙염직, 경방, 신원산업 등 용인 관내에 있는 회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우회를 조직하여 매주 예배를 드렸다.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이 주일날 교회로 몰려온 것이다. 이를 통해 산업선교를 확장시켰고, 또한 용인시장에 나가 발로 뛰며 전도하여 시장 복음화를 시작함으로 약 300점포의 많은 상점 주인들이 교회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1977년 4월 1일 제일어린이 선교원을 시작으로 지역에 있는 어린이 교육에 앞장섰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혜택이 어려운 인근 면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이 사업은 녹십자병원 원장이었던 박종희 집사가 주축이 되어 용인제일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의료관계자들로 의료선교회를 구성, 김정란 산부인과, 에덴 이비인후과, 부부한의원 등 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성도들이 동참했다.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변우상 목사가 전국 수백 교회와 기도원들의 부흥회를 인도하게 하셨다. 부흥회를 통해 성령의 강력한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를 가지고 교회에 돌아와 성도들과 나눔으로 교회는 점점 더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강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신일교회, 포곡제일교회를 담임했던 전도사 시절에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고자 서울에 있는 큰 교회 목사님들을 강사로 초청했던 적이 있었는데, 용인의 시골 작은 교회여서 모시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변 목사는 부흥회를 요청받으면 교회가 크든 작든, 멀든 가깝든, 어디든지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의 그 결심대로 땅 끝 마을 해남, 제주도, 미국, 뉴질랜드, 중국, 태국, 미얀마, 나병환자촌 교회 등 어디서든지 말씀을 증거해 달라는 곳이면 평생 거부하지 않고 말씀을 전하기 위해 나갔다. 용인제일교회는 청년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교회가 성장하는 가운데 변우상 목사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것은 1980년 당시로서는 용인과 수원 지역에서 최대 규모인 연건평 692평 예배당 건축 때문이었다. 건축비의 어려움으로 용인제일교회가 부도난다는 소문이 용인 전역에 난무할 정도였다. 교인들의 헌금도 한계에 달해 빚은 날로 늘어만 갔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용인제일교회 초대 장로 故 박한신 장로가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병 중에 자신의 눈을 팔아 교회를 건축할 벽돌을 사서 쌓아달라는 유언을 했다. 또 최애현 권찰이 와서 자신의 건강한 눈을 팔아 교회 건축에 필요한 재정을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변우상 목사는 강단에 올라가 눈물로써 그분들의 중심을 전했고, 온 교회 성도들은 통곡하며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했다. 당시 청년회 회장이었던 권희용 장로를 중심으로 청년회에서 금품 봉헌 운동이 일어났고,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통장을 가져오는 청년들, 집을 팔고 전세로, 전세를 월세로 돌려 건축헌금을 하는 성도들이 계속 이어졌다. 예배당 건축은 5년 동안 공사를 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 열매가 현재 마평동 655번지에 우뚝 서있는 용인제일교회 예배당이다. 교회 건축이 끝나고 1987년부터 시작한 총력 전도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전을 채우고 1000명, 1500명으로 매주일 출석하는 교인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런 성도들의 성장에는 그림자처럼 목사님을 내조하는 故 김영순 사모가 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매일 저녁 금식을 하며 교회와 목사님을 위해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 사모님의 헌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예물은 물론 힘에 지나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렸다. 병든 환자들의 입원비, 쌀이 없는 가정에 쌀을 가져다주고, 겨울이면 연탄을 배달해 주었다. 본 교회 교육전도사들이 결혼할 때면 일일이 혼수품을 챙기고, 어려운 이웃 교회 목사님 댁에 음식은 물론이고 쌀과 헌금도 베푸는 사랑의 메신저였다. 변우상 목사가 사모와 심방을 하던 초창기는 성도 가정이 모두 어려워 물 한 컵 대접할 여유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심방이나 전도를 다니실 때는 언제나 주머니에 비스킷을 넣고 다니면서 먹었다. 성도들이 점심을 드셨느냐고 물어볼 때, 가난한 성도들도 배려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신병자들도 집에 데리고 와서 날마다 찬양하며 기도하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도 좁은 사택에서 함께 머물게 하고, 교회 청년들이 집에 와서 언제든 밥을 먹고 교제를 나누게 하는 등 초대교회의 모습을 몸소 실천했다. 온 마음과 온 몸을 다해 교회와 남편을 위해 헌신하던 2000년 세상을 떠난 고(故) 김영순 사모의 마지막을 그들의 딸 변순주 집사가 2012년에 이렇게 회상했다. 13년 전 2000년 GMS선교대회가 수원에서 열렸습니다. 그 대회 저녁예배 찬양봉사를 위해 용인제일교회 성가대와 변우상 목사님이 교회버스로 교회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집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갔고 어머니를 진찰하신 한의사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말했습니다. 119구급차를 타고 아주대병원으로 갔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어머니는 눈이 몹시 아프시다 하면서도 아버지 변우상 목사에게는 선교대회 예배가 끝날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유언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온 가족이 함께 조용히 기도드릴 때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2012년 12월 1일 토요일 용인제일교회 목회 38년과 예수향기를 날린 평생 사역 50년을 마감하고 기리기 위해 변우상 목사 원로추대 및 임병선 목사 위임 감사예배가 용인시 마평동 용인제일교회 본당에서 거행됐다. 장년 400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한 예배당은 용인제일교회 성도는 물론 중부 지역 목회자 및 장로들과 지역 정재계 인사 등으로 가득 찼다. 변 목사가 지역사회와 총회와 교계에서 고결한 성품으로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로 불린 사도 요한의 제자 이그나티우스 같은 “한국 교회의 예수향기 목사”로 일컬어지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감사예배는 축하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설교를 한 증경총회장 김준규 목사는 “한 교회에서 사역하시며 목회자로서 정말 잘 달려오셨다. 본분을 다하셨다. 존경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축하했다. 이어 변 목사의 39년 목회 회고영상이 상영되고, 담임목회자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 되자 성도들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박한준 장로는 눈물을 삼키며 “목사님은 오직 목양일념으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예수향기 변우상 목사는 눈물 머금은 동안(童顔)의 얼굴로 답사를 했다. “지난 50년, 행복하게 목회했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주님의 일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일입니까. 그래서 미치도록 목회를 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 여러분, 고맙습니다.” 변우상 목사가 원로로 추대된 2013년 7월에 새롭게 담임목사가 된 임병선(총신 92회, 전 신반포교회 청년담당 부목사) 목사는 설립 40주년을 맞아 용인제일교회를 젊은 분위기, 역동적인 분위기로 바꿔 나가며 하나님 나라 확장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슬하에 6남매가 있고 그중 신학을 공부한 자녀도 있지만 그는 담임목사 초빙공고를 통해 임병선 목사를 후임으로 결정했다. 변우상 목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인품이 드러난 후임자 선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70세 정년을 앞두고 10년 전부터 기도해 왔다. 실제 준비는 5년 전에 시작했다. 공개모집을 통해 후임으로 4명이 지원했다. 장로들이 중심이 된 교회 당회(20명)에서 먼저 이들을 심사했다. 물론 4명 모두 우리 교회나 나하고는 특별한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투표를 통해 한 명을 선정했다. 장로님들이 자꾸 내 의중을 알고 싶어 했지만 일체 함구했다. 내 말 한마디가 결정적으로 작용될 것은 빤하지 않겠는가. 당회에서 후보자 1명을 선정했고 이를 온 교인이 참여하는 공동의회에 부쳤다.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만 최종 통과가 되는 것이고 그 이하일 경우에는 다시 모집공고를 내도록 했다. 다행히 교인들이 후임자를 흡족하게 여겼고 임병선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하게 됐다.” 이제 2015년 12월에 용인시청 근처 용인시 처인구 역복동 산 97-1 대지면적 6,176평에 건축 면적 5,000평의 건축 설계를 완료하고 2016년 착공해 2017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새로운 예배당 글로리센터 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제일교회의 이런 모든 크고 작은 일에 원로 변우상 목사는 후임 임병선 목사를 적극 후원하고 후임 임병선 목사는 원로 변우상 목사의 기대와 뜻을 살리고 높이는 목회를 한다. 은퇴 이후에도 변우상 목사의 예수향기는 6남매 자녀 모두와 함께 사는 용인의 빌라에서, 용인제일교회에서 한 달 한 번 하는 저녁설교에서, 수원의 은퇴 목회자들이 모이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덕영대로 1201번길 16 세일프라자 3층의 희망은목교회 등에서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처럼 여전히 날리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라일락꽃 도종환 진정 도종환 시인의 라일락꽃 같은 평생의 반려자 2000년 김영순 사모가 떠나는 그 날, 그 주일(主日)에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놓을 수 없어서 강단을 비우지 않고 슬픔을 참고 설교하고, 평생 새벽기도를 할 때마다 장로님들로부터 모든 성도와 자녀, 그리고 총회 산하 모든 교회에 이르기까지 기도하고, 맨 마지막에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현실에서 보이며 살아온 변우상 목사는 진정 예수를 그 가슴에 품었기에 예수향기가 새물내처럼 풍기는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였다. 201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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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9
  • 오정호 목사의 목회관
    '유월' 하고 소리 내면 걸리는 것 하나 없다. 유월 하면 청개구리·소나기 소리, 능소화·감자꽃·밤꽃이 생각난다. '유월' 햇빛이 밝다. 부드러운 발음과 달리 모진 유월이 전국을 강타했다. 그래도 국가 재난 사태에도 박 대통령은 무슨 습관인지 활짝 웃고 다니기만 하지만 의료진들의 목숨 건 사투 덕에 메르스가 '유월' 하늘을 떠돌다 이제는 좀 수굿해진 모양이다. 이러다 언제 편안히 여름 날지 마음 쓰이지만 태풍의 재난에 비하면 견딜 만하다. 2013년 11월 8일 중국어로 바다제비라는 뜻의 초강력 태풍 하이옌[海燕 - Haiyan]이 필리핀 중부를 강타했다. 이 태풍으로 필리핀에서만 1만20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민도 430만 명이나 발생했다. 최대 피해 지역인 레이테섬에선 지역 내 건물의 70~80%가 무너졌다. 이 섬의 최대 도시 타클로반은 인구 20만 명이지만, 이중 1만 명이 숨졌다. 오정호 목사를 처음 만난 건 총회회관에서 총회군선교회가 아라우부대 필리핀 재난지역 파병예배 때였다. 총회군선교회(회장:김기원 목사)가 2013년 12월 23일 총회회관에서 필리핀 태풍 피해 지역 복구에 나서는 국군 아라우 부대 파송 및 환송예배를 드렸다. 파송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오정호 목사(군선교회 명예회장)는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는 축복’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여러분은 대한민국 군인들 중에 뽑힌 사람들로 환란 당한 이웃들을 돕기 위해 떠난다”며 “우리 주님의 마음이 여러분의 손과 발을 통해 눈물 흘리는 필리핀 여러 형제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아라우 부대는 필리핀 타클로반을 비롯해 태풍 피해 지역에서 도로 복구, 관공서와 학교 보수 등에 나서게 된다. 아라우부대는 파병된 이후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한다'는 슬로건으로 헌신적 재해 복구 활동을 펼쳤다. 태풍 피해를 본 학교·관공서·병원·보육원 등 67개소의 공공시설을 복구했으며, 쓰러진 전신주 250여개를 다시 세웠다. '찾아가는 종합의료지원'으로 의료 사각지대 현지 주민들을 진료했다. 파병 기간 92개 소외 지역 마을 주민 등 4만2000여명이 진료 혜택을 받았다. '아라우 중장비 직업학교'를 설립해, 포클레인·지게차 등 중장비를 다룰 수 있는 현지 인력 500여명을 양성했고, 한국어교실도 운영했다. 6만1000여명의 현지 주민에게는 무료 급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아라우부대가 1년의 파병임무를 마치고 2014년 12월 23일 돌아와 해단식을 가졌다. 오정호 목사를 아라우부대 해단 3주 전 전국이 꽁꽁… 강추위가 밀려온 12월 2일 오후 3시 대전 새로남교회 10층의 새로남카페에서 만났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한없이 하늘에 가까운 투명한 삼면 유리벽이 대전 신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는 분주했다. 그는 대전지역 목회자들 식사 대접을 마치고 오는 길에 제과점에서 샀다며 따뜻한 빵을 탁자에 내놨다. 그와 적지 않은 시간 나눈 이야기 가운데 후배 목사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그간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이제 전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그의 목회관을 담고 있었다. 그의 듣기 좋은 굵직한 음성이 울렸다. “1993년 4월 3일 남정웅 목사가 서울 구로동의 서울남교회(1993년 12월 28일 정년 은퇴한 박원섭 목사를 이어 제4대 담임목사로 서울남교회 부임)로 떠나자 새로남교회에 혼란이 왔어요. 후임 목사를 결정하는데 핑퐁 게임하듯 서로 추천하고 비토하는 겁니다. 당회에 갈등이 생긴 거죠. 그렇게 갈등을 거듭 겪다보니 안수집사 그룹이나 다른 그룹들이 당회가 담임목사를 결정하지 못 하고 뭐하는 거냐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하게 됐어요. 전교회의 존경을 받으시는 옥한흠 목사에게 가서 좋은 목사 추천을 한번 받아보자 한 겁니다. 그래서 옥한흠 목사를 만나게 됐습니다. 옥한흠 목사가 듣고 나를 추천하시게 된 겁니다. 옷을 벗죠.” 밖은 겨울바람으로 찬데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군 겨울나무들처럼 이야기 나누는 새로남카페 안의 훈훈함에 우리는 웃옷들을 잠시 안녕 했다. “그때 비로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새로남교회와 연결이 된 겁니다. 대전은 잘 모르는데다 사돈의 팔촌까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정말 물이 설고 낯선 곳이죠. 그런데 옥 목사가 저를 추천하신 겁니다. 저는 말을 안 했습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어느 날 옥 목사께서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시기 전에 저를 찾아오셨어요. 총신대 휴게실에서 저를 만나셨어요. 하시는 말씀이 ‘오 형제 내가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내가 장년부할 테니까 오 전도사는 주일학교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제안을 하시는 거예요. 그분이 원래 제안을 하시고 그러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 그건 어렵겠다 했습니다. 왜 어렵냐고 물으셨습니다. 내수동교회에서 대학부를 지도해야 될 입장인데 빠질 수가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휴게소에서 차 한 잔 마시고 돌아서시며 하는 말씀이 ‘나한테 배워도 많이 배울텐데’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쉽다하는 그 말이 지금도 제 귀에 맴돌아요. 그리고 헤어졌죠. 물론 후에 다시 만났지만 말입니다. 저는 내수동교회 대학부를 지도하고 결혼한 뒤 군대를 갔습니다. 그 다음에 군대 제대한 뒤 사랑의교회로 갔습니다. 사랑의 교회가 원래 상가에 있다가 지금 서초동에 교회를 세울 때 지하로 내려간 이유가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땅값 떨어진다고 난리가 났어요. 원래 설계를 멋있게 하고 이게 아니라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교회 건물을 못 올리게 데모를 해대고 하니까 본당을 지하로 내려 보낸 겁니다. 그런데 그게 나름대로 특색 있게 짓다 보니 건축 상도 받고 그런 겁니다. 위에 공사할 때 방수 처리가 미흡해 고생 많이 했습니다. 바늘구멍 하나만 있어도 물이 새는 겁니다. 그러면 갈고 뜯고 얼마나 많이 공사를 다시 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만 7년 사랑의교회 옥 목사님을 보필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유학을 보내주셔서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옥 목사님 마음속에는 부산 호산나교회(합신측)의 최흥준 목사가 기성교회에 들어가서 잘 하고 계시니까 중부권 대전에도 사랑의교회 출신 교역자가 한 사람 있었으면 하신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바로 새로남교회 부임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제가 허락한다고 그 교회가 저를 받아들인다는 보장도 없고 해서 일주일 말미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가족과 의논을 하니까 모두 안 가고 싶다고 펄쩍 뛰는 겁니다. 다 미국에 있고 싶다는 거죠. 그렇다면 내가 기도해 보겠다며 LA 근처의 하이데저트라고 하는 사막에 있는 기도원으로 기도하러 갔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곳입니다. 금식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제 마음에 잠언 29장 25절, 26절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하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말씀이 제 마음에 부딪쳐 왔습니다. 그래서 옥 목사님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가보라고 해서 교회 개척하실 때 순종하지 못했는데 하여튼 나가보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행기 표도 보내주니 좋아서 한국에 나가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후 공동의회를 했는데 제가 덜컥 됐습니다. 기라성 같은 분들이 많이 다녀갔는데 말입니다. 그 다음 노회에서의 정치문제로 위임목사가 임시목사 청빙으로 뒤바뀌었습니다, 교회 청빙위원회 집사님한테 그 전화를 받고 양떼가 저렇게 어려움을 당하는데 나는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아내한테서 부임하지 않으면 교회가 쪼개지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가 자신의 면류관이 아니라 양떼의 은혜와 행복과 목회의 안정을 위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내도 찬성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능력 있는 목사도 아니고 무슨 교회를 질 것도 아니고 화평한 교회 화목한 교회만을 이루면 된다는 생각으로 왔습니다(1994년 11월 6일 부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갖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5년 동안 두문불출 목회만 전념했습니다. 신학교 강의나 외부 강사도 일체 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싸우는 교회로 소문난 교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니까 매주 마다 사람들이 늘어나는 겁니다. 3년 만에 1부에서 3부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주차시설이 열악했는데 8중 주차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충청도 끈기가 있잖아요. 경상도 같으면 뿌샤버린다 할텐데 그런 불편에 대해 내색을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 얘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회 건축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고 생각하던 사람입니다. 교인 거의 전체가 건축 반대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전임자가 2년 만에 하나님의 뜻이라며 올라간 서울에서 다시 하나님의 뜻이라며 대전에 내려와 분립 개척예배를 드리니까 8분 장로 가운데 몇, 안수 집사들 몇 사람을 비롯해 사람들이 저쪽으로 갔어요. 교회 안에 혼란과 평지풍파가 날 수 있는데 내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정면 돌파를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고 그쪽 교회 개척헌금을 해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이건 말도 안 된다며 노회와 총회에 제소하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를 봐서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제가 다 가라앉혔습니다. 영적 매듭을 짓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서로 다 잘 알고 그러는 사이 아닙니까. 저는 화평한 교회만을 바랐는데 하나님께서 덤으로 교회까지 주셨습니다. 부임한 지 2년이 좀 지난 1997년 5월 600여 명 모일 때 교회 부지를 매입했습니다. 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장로들도 요단강 가시고 이민도 가시고 했습니다. 다시 내려온 목사에게 가고 교회가 참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은혜를 주시니까 매주 교인들이 오는 겁니다. 저쪽 교회 빚도 다 갚고 헌당식도 부임 6개월 만에 제가 했습니다.” 카페 봉사자가 과일을 갖다주었다. “나는 교회를 짓는다면 전통 방식으로 하나 짓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원래 있던 교회는 공간 여유가 없어 성도들이 가 있을 데가 없었어요. 교회 앞에 정해진 방향이 없는 이면도로가 있어 차가 막 다녀 아이들도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목회는 행복했습니다. 이 교회 건축은 정림건축(1967년 설립된 정림은 국립중앙박물관, 인천국제공항, 서울월드컵경기장, 무역센타, 연세의료원세브란스병원 등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이 했고, 시공은 전국 도급 순위 4위의 엘지건설이 했습니다. 이 교회를 엘지건설이 맡게 된 것은 마침 이 교회 건너편에서 을지대학병원을 짓고 있던 터라 그냥 한 건설 현장이나 같았습니다. 엘지건설도 좋고 우리 교회도 좋은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제 마음에 이 교회 건축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과정의 은혜도 주실 것이고 결실의 열매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1600여 명 모일 때였습니다. 성도들의 헌신이 얼마나 놀라웠는가 하면 수협에서 융자금을 천천히 갚으라고 조기 상환 페널티를 없앴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로 우리가 빚도 빨리 갚고 헌당도 빨리 했습니다(2002년 6월 14일 새성전 건축 봉헌예배, 2008년 11월 16일 헌당식). 그 사이에 4년 반 동안 이단들과 소송도 있었습니다. 국제초등학교도 하나 세웠습니다. 고등학교는 많은 데 초등학교는 우리가 제일 큽니다. 이제까지 잡음 없이 땅을 사고 건물 짓고, 화평하게 일을 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이 태도를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 목회관은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목양일념(牧羊一念), 정도목회(正道牧會), 은총무한(恩寵無限), 동역감사(同役感謝), 성령충만(聖靈充滿)입니다. 이 목표로 달려왔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목양일념이라는 말과 사도(邪道)가 아니라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일념으로 왔습니다. 제가 저에 대해 드릴 말씀은 이게 다입니다. 하하.” 사임하고 떠난 전임 목사 면직하라고 돈까지 들여가며 아우성치는 삼일교회(송태근 목사) 같은 분쟁 아닌 분쟁을 겪는 교회들과 정도 목회를 걸으려는 후배 목사들에게 귀감이 될 오정호 목사의 이야기를 마치고 둘러 본 새로남카페의 창에 대전청사가 들어선 신도시의 너른 겨울 숲이 내려다 보였다. 이런 시가 있다. 겨울 숲은 따뜻하다 -홍 영 철 겨울 숲은 뜻밖에도 따뜻하다. 검은 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말없이 늘어서 있고 쉬지 않고 떠들며 부서지던 물들은 얼어붙어 있다. 깨어지다가 멈춘 돌멩이 썩어지다가 멈춘 낙엽이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시간을 붙들어놓고 있다. 지금 세상은 불빛 아래에서도 낡아가리라. 발이 시리거든 겨울 숲으로 가라. 흐르다가 문득 정지하고 싶은 그때. 헤어질 때 교회를 벗어나 건널목까지 배웅한 그는 악수를 나눈 내가 푸른 신호를 받아 길을 건너고 돌아보니 아직 그 자리에 겨울 숲을 뒤로 하고 겨울바람에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2015-6-22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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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2
  • 제1 총신인 김승동 목사
    B.C. 44년 2월 종신 독재관이라는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 모든 권력을 뒤로한 채 한 달 후인 3월 15일 암살당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자들이 지키려 했던 공화정은 급속히 확대되는 로마의 정세에 대처할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군단을 장악해 그 위력을 그대로 권력으로 삼는 지휘관들이 반목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포악한 독재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스스로가 단독 지배자가 되려 했던 카이사르가 생전에 제안했던 대규모 개혁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막대한 재산, 그리고 정치적 유산이 방치된 것이다. 암살자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시민들 앞에서 연설했다. 그 무렵에 카이사르의 사택에서는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그 유언장에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그녀와 카이사르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카이사르(카이사리온)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고 카이사르의 오른팔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상속인이 아니라 유언 집행 책임자로 지명되어 있었다. 유언장에 의해 재산의 제1 상속인이 되고 또한 후계자인 양자가 되도록 지명된 것은 시민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젊은이, 열여덟 살의 옥타비아누스였다.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은 그가 평민 출신임을 나타내는데, 지방 도시 벨레트리 출신의 아버지도 같은 이름이므로 구별하기 위해 그는 옥타비아누스(작은 옥타비우스)라 불렸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사망해 로마의 관습에 따라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 후 곧 재혼했다. 어머니 아티아는 카이사르의 여동생 율리아의 딸이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큰할아버지가 된다. 카이사르도 옥타비아누스를 눈여겨보았던 것 같다. 전쟁의 지휘관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에게 군사적 재능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이 소년을 저버리지 않고 보좌역으로서 젊고 우수한 병사 아그리파를 붙여 암살당하는 날 며칠 후에 출발을 예정하고 있던 파르티아국 원정(遠征)에 참가할 것을 허락했다.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의 죽음을 안 것은 파르티아 원정군의 결집지인 그리스의 아폴로니아에서였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지 한 달 후에 옥타비아누스는 로마로 귀국했다. 암살자들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고 이미 로마를 떠난 후였다. 카이사르의 후계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안토니우스는 입지를 굳히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카이사르의 유산을 자택으로 옮겨놓고 자기의 군대를 위한 자금으로 사용했다. 역전(歷戰)의 군인인 서른여덟 살의 안토니우스에게 카이사르의 유언장에서 지명되었다고는 하지만 열여덟 살 소년에 불과한 옥타비아누스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의 관습상 죽은 유력한 인물의 후계자는 연극이나 경기 대회를 개최하고 관객을 초대해야만 했다. 옥타비아누스는 그 때문에 안토니우스에게 카이사르의 유산 반환을 요청했는데, 이 요구는 묵살되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고난의 길을 걷기 시작한 옥타비아누스 앞에 그를 카이사르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하는 재계(財界)의 유력자들이 잇달아 나타난다. 그들의 자금으로 옥타비아누스가 개최한 카이사르 기념 경기대회는 성공리에 끝났다. 미덥지 않아 보이는 이 젊은이의 무기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고심참담(苦心慘憺)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을 약자로 연출하는 전략을 선택한 옥타비아누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직 깨닫지 못했다. 카이사르가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은 절대적인 효력이 있었다. 병사들은 잇달아 그의 군단에 참가했고, 자격 연령에는 스물한 살이나 부족한 옥타비아누스는 집정관에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열아홉 살의 집정관이 탄생한 것이다. 시민 집회의 지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가 고심 끝에 편성한 그의 군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된 그는 10개 군단 이상의 병력을 움직이는 권한을 손에 쥐었다. 그는 불과 1년 만에 이만큼의 진용(陳容)을 갖추었다.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는 이 힘의 근원이 카이사르의 유언장 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B.C. 32년에 로마에서 안토니우스파 사람들을 추방한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사기가 낮은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어렵지 않게 격파했다. 결전 '악티움 해전'에서도 완전한 승리를 거둔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자결하게 했다.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이 종결되자 옥타비아누스는 '질서가 회복되었다'며 비상시에 그에게 집중되었던 군사?정치 결정권을 모두 원로원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이 말에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공화정으로 복귀하겠다는 이 선언에 감사하며 원로원은 '존엄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이후 그는 아우구스투스로 불리게 된다.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 원로원이 수여한 칭호로, '위엄 있는, 존귀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황제들의 칭호가 되었으며, 황제의 아내나 딸들에게는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그리고 이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칭과 카이사르라는 호칭이 결합해야만 정식으로 인정된 황제였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클라우디우스 티베리우스'는 원로원의 정식 동의를 받은 티베리우스 황제라는 의미이다. '자신을 절대 위험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 않는' 아우구스투스의 독특한 재능은 훗날 카이사르조차 죽음으로 내몰았던 로마인들의 '제정(帝政) 알레르기'까지도 중화시켜 버렸다. 하지만 집단 지도체제인 과두제(寡頭制)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카이사르의 뜻을 아우구스투스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독재적인 통치에 필요한 몇 가지 결정적 권한을 두드러지지 않게 유지하고자 했다. 우선 집정관으로서의 직무, 그 다음으로 군대의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칭호 '임페라토르'를 항상 사용하는 권리, 마지막으로 제1 시민이라는 뜻의 '프린켑스' 칭호였다. 특히 이 '프린켑스' 칭호는 아우구스투스의 목적 달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로서의 권한을 필요로 하면서도 국민들로부터 황제로 여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어디까지나 원로원에서 제 1 발언권을 지닌 제1 시민 '프린켑스'로서 군대의 통수권을 장악하고 법률 제정을 담당했다. 정연철 목사가 설교집이라도 냈는지 광고비가 만만치 않을 기독신문 돌출 광고를 계속 하고 있다. 그걸 보니 그는 믿음과 총회 정치력이 아니라 로비스트만 잘 활용하면 될 수 있다는 경험에 의지해 총회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 된 서정배나 김용실처럼 다음에 또 부총회장 선거에 나올 모양이다. 2014년 9월 제99회 총회 당시 가장 유력한 김승동 목사가 제비뽑기 암초에 좌초했다. 그러자 김승동 목사의 지지표가 방향을 잃고 정연철을 찍는 바람에 박무용 목사가 정연철을 108표차로 신승했다. 이 소식을 접한 교계와 총회 정치의 원로목사이자 목회자 시인 백영규 목사는?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단을 사랑하시지 않는 모양이네.” 제비뽑기 덕에 결선 투표에 올라갔던 정연철 목사는 기도의 종이라는 소문과 달리 자신의 받은 표가 자신의 것이 아니었는데도 다시 나오면 그러한 지지를 얻어 총회장이 될 수 있다는 망상에 젖어있는 모양이다. 교계 지도자로서 모든 면에 탁월해 교단 전체 어느 누구와도 이길 수 있는 김승동 목사가 제비뽑기에서 떨어지고 그 덕에 몸도 약한 박무용 목사가 총회 상비부 부장도 되어본 적이 없는 상대를 손쉽게 이기고 부총회장이 되었다. 차제에 총회 선거는 무능력과 무자격자들이 즐기는 제비뽑기는 폐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이 들리는 박무용 목사가 100회 총회를 치르고 난 뒤 감당할 스케줄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그런 선례가 바로 앞의 탱크 같은 건강과 힘을 자랑하던 총회 총무 황규철 목사일 것이다. 그는 무리한 총회 정치의 여파인지 지금 건강이 상당히 걱정스러운 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총회 총무 말기 총회 상대 재판 패소 건으로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신분임에도 그는 문제와 사고로 실타래 같이 얽힌 평동노회 노회장이 되었다. 따라서 총회 결의에 따르면 총회 산하 어떤 공직도 맡을 자격이 없는 황규철 목사의 평동노회 노회장 사회로 추천을 받은 장대영 목사의 부총회장 후보 자격을 유지하고 당선까지 노리는 정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80여㎞가량 떨어진 고지대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는 흔히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라고 한다. 그것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영국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 때 뉴욕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허드슨강을 지키려고 세운 요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1802년 이곳에 육군사관학교를 개교했다. 올해로 213년 됐다.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는 170년, 콜로라도스프링스의 공군사관학교는 61년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의 사관학교는 단순한 장교 양성 기관이 아니다. 사관학교 교육의 기본 틀을 만든 인물이 1817년부터 16년간 미 육사 교장을 역임한 테이어 대령이다. '테이어 제도'의 요체는 국가에 대한 의무감, 명예, 헌신, 정직 등 리더에게 필요한 인성 교육에 인문학적 교양과 전문 지식까지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을 이끌 진정한 리더를 배출하는 교육기관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마찬가지로 총신도 세계와 한국을 변화시키고 이끄는 지도자를 배출하는 선지동산이라는 자부심이 드높다. 1901년 평양 대동문 옆 마포삼열(Samuel A. Moffet) 선교사 자택에서 평양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로 시작하여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교를 거쳐, 1995년 교명을 총신대학교(總神大學校, Chongshin University)로 변경한 총신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서 설립하였고, 네덜란드 중심의 화란 개혁주의보다 영미 중심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전통을 따르며 바르트주의를 배격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의 개혁주의 교리에 따라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무오하고 절대적인 말씀으로 믿으며, 칼빈주의 혹은 역사적 개혁주의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교리문답의 교리를 바탕으로 학문연구와 영성 및 인성교육을 실시하여 인류사회의 국가 및 교회에 기여할 인재 양성을 사명으로 한다. 1959년 제44회 총회 때 WCC문제로 개혁주의 보수신앙을 지키기 위해 빈손으로 갈라져 나와 세운 총신대학교는 개혁(장로)교단에서 가장 큰 신학교이며, 평양신학교의 정통권을 계승하고 있다. 총신대학교는 개혁(장로)교단에서 가장 큰 신학교이며, 평양신학교의 정통권을 계승하고 칼빈주의를 계승한 개혁주의 요람(搖籃) 114년의 총신의 힘은 바로 그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1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총신의 교훈은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 이다. 이 학교를 통해 한국과 세계 교계에 귀감이 될 박형룡·박윤선·김창인·옥한흠·박영선·김승동 등의 목사들이 배출됐다. 그들 가운데에서도 로마의 제1 시민 옥타비아누스 같은 이 시대의 제1 총신인은 교계와 목회에서 올곧고 두드러진 활약과 업적을 세운 김승동 목사다. 그러므로 김승동 목사가 조선 선비들의 전통에 따라 그의 집 대들보에 글을 적는다면 ‘爲神, 爲如白, 爲詩’가 어울릴 것이다. 그 까닭은 이렇다. 위신(爲神)은 ‘하나님을 위해’라는 뜻이다. 이 글귀는 성경 시편 116편 12절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를 외우며, ‘살아있는 동안 웬 은혜인가, 웬 사랑인가를 신앙으로 고백하며 살겠다’를 입과 몸에 달고 사는 김승동 목사의 신앙관에 맞는 글귀이기 때문이다. 위여백(爲如白)은 '흰빛과 같이 맑다'는 뜻의 ‘맑음을 위해’라는 뜻이다. 이 글귀는 김승동 목사가 평생 실천한 청렴을 나타내는 글귀이기 때문이다. 위시(爲詩)는 ‘시를 위해’라는 뜻이다. 이 글귀는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를 통해 성도를 향한 애절한 사랑을 전하겠다며 시와 글을 써 책을 낸 목사이기 때문이다. 김승동 목사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박진감 있는 목회, 성령의 역사가 넘치는 강단, 은혜로운 당회, 총회와 지역사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목회자”이다. 그렇듯 지도력 부재의 이 각박한 시대에 보기 드물게 주일 예배에 눈시울에 눈물이 어리게 하고 마음을 다잡게 하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는 구미상모교회의 김승동 목사이다. 그가 설교를 마치고 교회 마당을 지나면 놀던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인사하거나 달려와 안긴다. 2015-06-22
    • G.PEOPLE
    • G.PEOPLE
    2015-06-22
  • 옥한흠 목사의 참 제자 오정호 목사
    체르니의 아버지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오보에 연주자였으며 피아노 교사, 피아노 수리 등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했고 체르니의 음악교육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음악을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체르니는 문학과 언어에 있어서도 또래의 아이들보다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무료로 음악을 배우던 가난한 제자들로부터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배웠으니 이후에 그가 가난하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여 무료로 레슨을 한 것은 아버지로부터의 대물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823년 체르니는 그의 스승 베토벤을 어렵게 설득해 12살이었던 리스트를 데려갔다. 리스트가 자신이 작곡한 소품 한 곡을 연주하자 베토벤은 바흐의 푸가를 주문했고 리스트는 바흐 평균율 피아노곡집에서 C단조 푸가를 연주했다. 베토벤은 즉석에서 다른 음계로 바꾸어 연주할 것을 요구했고 리스트는 훌륭하게 연주를 마쳤다. 베토벤은 리스트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리스트는 훗날 “이 사건은 나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나의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수호신 역할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리스트는 평생에 베토벤이 자신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다는 고백이다. 1971년 지금의 숭실대 앞으로 돌아가 보자. 숭실대 정문을 지나 사당동 쪽 언덕을 넘어서면 철거민들이 자리 잡은 초라한 골짜기에 총회신학교가 있었다. 내부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신학교 건물 지하에는 전깃불도 없는 기숙사가 있고 지하의 식당은 울퉁불퉁 정리되지 않은 운동장을 면하고 있었다. 당시의 신학연구원 전도사들보다 머리가 길고 황색 가방을 든 옥한흠 전도사가 운동장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총신 신학연구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그 후 1970년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한 그는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는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한 그는 3M(Campus Ministry, Business Ministry, World Ministry)의 비전을 갖고,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펼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그는 성도교회에 부임한 지 3년 만에 서울에서 최초로 대학부 학생 2백 명을 모아놓았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당시 총신대 1년생으로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하면서 틈틈이 대학부를 기웃거렸다. 서울의 남녀 대학생들로 그득한 교육관 2층의 대학부 집회실은 늘 그득하고 옥한흠 전도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그들의 심령을 파고들었다. 대학생들은 진정 옥한흠 전도사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진지했고 뜨거웠고 밝았다. 제자훈련에 대한 신학적 논리와 성격적 체계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옥 목사는 1975년 미국의 칼빈신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다.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유학을 마친 옥한흠 목사는 미국과 한국의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강남은평교회는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4년 6월 옥 목사는 『평신도를 깨운다』를 출간했다. 제자훈련 목회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자 제자훈련에 대한 중간결산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3개월간 제자훈련 자료들을 모은 후, 1984년 제자훈련 겨울방학을 이용해 용인 벧엘수양관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원고를 집필했으며, 7주 만에 원고를 탈고했다. 2010년 9월 현재까지 103쇄가 인쇄됐다. 『평신도를 깨운다』의 책 발간은 CAL세미나 개최로 이어졌다. 책을 읽은 목회자들로부터 제자훈련 세미나 요청이 쇄도하자 1986년 3월 세미나실(현재 국제제자훈련원)을 설립하고, 1986년 3월 제1기 ‘평신도를깨운다 제자훈련지도사세미나’(CAL세미나)를 사랑의교회에서 개최했다. 고 옥한흠 목사가 시작한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가 100기를 맞았다. ‘CAL세미나’로 유명한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는 1986년 3월 시작해 꼭 30년 만에 100기를 배출하게 됐다. 국제제자훈련원과 사랑의교회 그리고 제자훈련목회자네트워크(CAL-NET 전국대표 오정호 목사)는 100기 배출을 기념해 오는 2015년 2월 3일 오전10시 사랑의교회에서 ‘2015 CAL-NET 전국 평신도 지도자 컨벤션’을 개최했다. 컨벤션 주강사는 이어령 박사와 권성수 목사였다. 이어령 박사는 오전에 ‘지성과 영성이 균형잡힌 제자’를 주제로 강의하고, 권성수 목사는 오후 ‘목자의 심정으로 사역하는 제자’를 강의했다. 이외에도 선택강좌로 오정호 목사의 ‘성경적 훈련 목회자상’ 강의가 있었다. 옥한흠 목사의 제자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 옥한흠 목사가 사랑하는 참 제자를 꼽는다면 단연 오정호 목사가 가장 앞설 것이다. 오정호 목사는 옥한흠 목사가 아끼는 제자 조성희 사모와 결혼을 했다. 사랑의교회에서 부부가 사역한 사례는 아마 오정호 목사와 조성희 전도사 부부가 유일할 것이다. 오정호 목사는 옥한흠 목사의 사랑에 힘입어 미국 유학(FULLER THEOLOGICAL SEMINARY)도 다녀왔다. 오정호 목사는 그의 스승 옥한흠 목사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여 목회 사역에 있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2015년 4월 19일 주일 11시 옥한흠 목사의 참 제자 오정호 목사가 설교하는 새로남교회 3부 예배에 참석했다. 설교본문은 누가복음 7:36-42 설교제목은 『더 사랑의 비밀』이었다. 설교자와 교인이 성경 본문을 한 절씩 교독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누가복음 7:36-42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 성악가가 있습니다. 이분이 하는 말은 평생에 아침 일찍이 모이면서 딱 두 번 노래했다고 합니다. 테너 성악가로서 목의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노래하는 것은 치명적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가 대통령 조찬기도회, 두 번째가 자신의 아버님 생신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오늘 이렇게 아침에 모여서 행사를 하니 제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런 고백을 그는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개인적으로 가지는 남다른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내게 은사를 주신 이도 주님이시오 쓰시겠다는 분도 주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기쁨으로 이 자리에 나옵니다. 주님이 나를 쓰시겠다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남모르는 『더 사랑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오늘 어떤 비밀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아멘은 천상의 용어입니다. 예배는 주님만을 높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나의 의지가 주님 앞에 송두리째 드려지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예배는 원래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입니다. 옛날 교회는 이런 푹신한 의자가 없었습니다. 그냥 나무 바닥이었습니다. 무릎 꿇고 엎드렸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영적인 사사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혼의 부식 상태가 심각합니다. 서울에 행인들이 길을 가다가 땅이 함몰되었습니다. 지반이 내려앉았어요.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보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의 상수관과 하수관이 부식되어 거기서 물이 새는 겁니다. 그래서 땅들이 점점 무너져 어느 순간 빠져버리는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가 참 예배자로 드리지 않을 때는 겉보기에는 멀쩡해요. 그러나 영혼이 점점 부식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왕창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누가 져야겠습니까. 하루아침에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닙니다. 바리새인처럼 형식은 갖췄어도 마음이 주께서 멀어지거나 주님 앞에 엎드리되 적당히 엎드리고 납작 엎드리지 않으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자로 나와 있습니다. 스무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고 두 시간을 예배 드리는 사람이 세상을 따라가겠습니까 주님을 따라가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친구의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데 나중에 자라서 부모 따라가겠습니까. 친구 따라가겠습니까. 우리가 주일 오전 한 번 오후 한 번 드리는 걸로 예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오산입니다. 주님 우리 마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예배를 드림으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많이 용서받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예배자의 축복 아니겠습니까. 일상의 분주함을 이제는 정리하고 주님이 나를 찾으시는, 주님이 나를 발견하는 예배자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정호 목사의 사무실에 들어가면 한쪽 벽에 그가 새로남교회에 부임해 함께한 “아름다운 동행 20년”을 정제된 한 단어, 한 줄 문장에 따뜻한 마음을 담아 축하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1994년 11월 6일 오정호 목사는 유학을 마치고 옥한흠 목사의 추천으로 새로남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부임 3년이 안 된 교인 성장으로 1997년 3월 2일 주일부터 낮 예배를 1, 2 ,3부 확대해서 예배를 드렸다. 설교의 은혜와 추진력과 실천력을 겸비한 오정호 목사는 부임 이후 1997년 5월 대전 만년동의 500평의 부지 매입을 시작으로 총 1650평의 부지를 확보했다. 그리고 새로남교회 부임 10년만인 2004년 5월 30일 온 성도가 참석한 가운데 입당예배를 드리고, 2008년 11월 16일 헌당예배를 드렸다. 새로남교회 주변에는 대덕연구단지, 정부대전청사, KIST(카이스트) 등 국가 주요 건물들이 있어 전도와 대안 교육의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오정호 목사는 선명하지만 강한 영성과 정치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총회의 차세대 지도자로서 총회를 이끌고 총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랑의교회도 세우고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도 설립한 옥한흠 목사의 참 제자답게 목회도 성공한 목회자이지만 총회와 교계에서도 성공한 정치적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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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6
  • 크리소스톰 김희태 목사
    “교회 안은 온통 열광의 도가니였다. 감동의 절정에서 터져 나온 청중들의 환호와 갈채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설교가 정점을 향하여 치달을 때 회중들은 완전히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버렸고, 못된 소매치기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더욱 눈을 움츠리며 손을 열심히 놀렸다.” 이 설교자는 안디옥과 동방교회가 자랑하는 4세기의 요한(St. John Chrysostom, AD 347~407)이다. 영어명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헬라명 크리소스토모스(Chrysostomos)라는 그의 통칭(通稱)은 그의 전설적인 웅변 때문에 붙여진 황금의 입(golden-mouthed)이라는 뜻이다. 그 통칭은 그가 너무나도 뛰어난 언변을 지녔던 설교자요, 당대의 사회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던 탓이다. 위대한 설교자로서 크리소스톰과 관련된 일화 가운데, 그가 설교하는 곳에는 좀도둑이나 소매치기들이 많았던 이유는 그의 설교를 듣느라 사람들이 자기 소지품들을 챙기는 것조차 잊고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리소스톰은 예의 바르고 다정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고,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거인이었지만, 체구는 왜소했다. 하지만 쾌활한 얼굴, 주름진 이마, 벗어진 머리, 꿰뚫어 보는 듯한 맑은 눈은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영속적인 감명을 주었다. 크리소스톰은 주후 347년에 안디옥에서 출생했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는 신앙이 좋은 어머니에게서 경건훈련을 받았다. 어머니 안투사는 오로지 어린 크리소스톰을 키우는 데 헌신하여, 아들에게 최상의 훈련을 받게 하였다.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쳤고, 가장 훌륭한 교사 문하에 들어가도록 주선했다. 크리소스톰은 어머니 권유로 당시 이교도의 대변자요, 수사학의 대가인 리바니우스 문하에서 헬라 문학과 수사학을 배웠다. 그는 리바니우스의 최우수 학생으로 후계자로 지목될 수도 있었지만 신앙적인 이유로 거절했다. 크리소스톰은 다른 학문으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연구에 일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의 임종 후 그는 시리아에서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때 안디옥 학파 지도자인 타르수르의 디오도루스(Diodorus)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디오도루스는 성경을 우화적(Allegory)으로 해석하는 유행 방법을 배격하고,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면밀히 연구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적 배경은 크리소스톰이 당시에 유행하던 심각한 알레고리 해석에 빠져 들지 않고 본문 해석에 힘쓰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크리소스톰은 6년간의 수도원 생활 가운데 2년 동안 밤낮으로 한 번도 누운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의 위장은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었고, 신장도 추위로 인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자기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없게 되자, 결국 그는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가 AD 380년이다. 그는 훗날, 수도원 생활은 목회자 훈련으로 적당치 못했다고 저서에서 고백했다. 또한 수도자와 목회자를 비교하면서, 목회자는 수도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소스톰이 안디옥으로 돌아오자마자, 안디옥 교회의 부제가 되어 5년간 일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부요한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을 접했고, 교회 실상도 익히게 되었다. 그는 AD 381년에 집사 안수를 받고, 가난한 대중과 접촉하면서 무엇을 설교해야 할 것인지 깨달았다. 그로부터 5년 뒤인 39세 때인 AD 386년 안디옥 교회의 장로 겸 수석 설교자로 임명받아 본격적으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무엇보다 심각하게 침체된 영혼들을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그가 강단에서 쏟아내는 황금 같은 설교를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회중들은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온갖 영적 체험을 경험했다. 안디옥의 고통을 묘사할 때는 마음이 녹아내려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그의 격려에는 영혼의 활력을 되찾았다. 그가 설교할 때면 교회는 회중들로 가득했다. 그의 강해설교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회중들은 자발적으로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이것을 싫어했다.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설교자로서 세상적이고 정치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한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설교 강론은 두 가지 형태로 전해온다. 하나는 초고 형식으로, 속기사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직접 기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후대 사람들이 이 초고를 다듬어서 일관성 있게 재편집한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전례축일이나 특별한 기회에 맞추어 신구약 성경에 어떤 제목을 발췌하여 강론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신자들의 교육을 위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강론한 것도 있다. 안디옥 학파의 영향을 받고 자란 크리소스톰이기에 설교는 항상 성경의 문자적, 역사적, 문법적인 해석 방법에서 얻은 영적 통찰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강해는 윤리적 권면으로까지 폭을 넓혔다. 그의 설교는 세상과 연결 짓지 않고는 이해되기 어렵다. 설교자는 험한 세상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참된 설교는 성경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다리 한쪽은 하나님의 거룩에, 다른 한쪽은 성도의 삶의 한복판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소스톰이 주석에서 예화로, 성경 원리에서 실제적인 호소로 설교를 전개시켜 갈 때는 말의 속도가 차츰 빨라지며 제스처가 활발해지고 목소리는 점점 강렬해진다. 그러면 기대감에 부푼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긴장하다가 경우에 따라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청중의 박수갈채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환호를 받은 크리소스톰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백했다. “설교자가 박수갈채를 좋아한다면 자신뿐 아니라 회중에게 해(害)가 미칠 것이다. 칭찬에 대한 열망 때문에 설교자는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설교보다 그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설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강단에 섰을 때 갈채를 받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깐의 전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를 칭찬했던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수갈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본문의 순서를 따라 단순한 전개 형식을 취해 간다. 그럼에도 그가 ‘황금의 입’(크리소스톰)이란 별명을 갖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어려서부터 최선을 다해 학문에 정진한 까닭이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성경에 대한 풍부한 이해력이 있었다. 둘째, 신학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으로 실생활에 연관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셋째, 설교를 불붙게 하는 정열이 넘쳐 흘렸다. 이런 4세기의 크리소스톰을 닮은 21세기의 목사가 서울에 한 사람 있다. 그는 동광교회의 김희태 목사다. 1966년 3월 15일 창립된 동광교회에 1987년 12월 25일 김희태 목사가 부임했다. 김희태 목사 부임 당시 200여명의 교인이 2015년 현재 재적 교인 7000여명 장년 주일출석 2500여명으로 성장했다. 동광교회는 2015년 3월 15일 교회 설립 50주년 예배를 드렸다. 이날을 기려 동광교회는 2015년 3월 23일 제주도 조촌읍 대흘리 120-1에 아카페(A Cafe) 교회(담임 권혁선 목사)를 설립했다. 아카페는 아가페와 카페를 합성한 이름이다. 실제로 일반인을 위한 카페가 아담하고 예쁜 교회 뒤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교회를 위해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짓기 전 하나님의 은혜로 제주특별자치도청에서 교회 앞에 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교회 주변은 귤 농장과 농토로 둘러싸여 있다. 2015년 4월 5일 부활주일 동광교회 오전 12시 3부 예배. 크리소스톰 같은 황금의 입과 푸른 초장 같은 너른 마음을 지닌 김희태 목사가 활기찬 모습으로 동광교회 설교단에 섰다. 그의 설교는 진지하지만 논리적이고 재미있고 성경적이다. 요한복음 11:21-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우리가 부활하면 흰색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 앞에서 찬양하게 됩니다. 세마포는 아마 섬유로 짠 천인데 그 당시 중국의 비단과 값이 거의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마포는 최고의 의상을 의미하며 부(눅 16:19)와 정결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계 19:8, 14). 우리가 최고의 옷을 입고 주님 앞에 설 그날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 기대로 말미암아 오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좌우의 분들에게 축복해 주시고 행복하세요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태풍 급 바람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내려오시기 시작합니다. 이건 태풍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번 유월절 명절날 예수가 예루살렘에 오겠는가 하는 걸로 내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를 거쳐 요단강을 따라서 강 서안에 있는 여리고에 오셨습니다. 대단한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예루살렘에서 5리 동쪽으로 2km 떨어진 작은 촌락 베다니에서 이제 진짜 강한 태풍이 붑니다. 그리고 며칠 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갔다는 것은 왕으로 등극했다는 신호입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합니다. 이것은 왕을 영접하는 역사적인 행사입니다. 예루살렘에 강한 태풍이 불었습니다. 유대인은 그걸 잠재우려고 온갖 수단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니까 더 큰 태풍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태풍은 세계를 뒤엎었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기독교 2천년 역사 아니 세상 2천년 역사에서 예수님을 뽑아내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을 크게 자부심을 가질 이유가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이 초라한 나사렛 예수! 무슨 사건이냐. 그분이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감격을 온 세계에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회가 살아났습니다. 그러자 법이 정의로워졌습니다. 그러자 여자들이 존경받고 아이들도 대접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21세기의 인류문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베다니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마다 베다니에 들르셨습니다. 그곳에는 참으로 예수님을 환영하는 나사로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나사로는 부모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여동생들은 결혼 이야기가 없는 걸로 미루어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18살 정도 동생 마리아는 15살 정도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큰 근심거리가 생겼습니다. 오라버니가 아픈 겁니다. 그런데 소식을 들어보니 예수님께서 베다니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우리 오라버니가 아프니 빨리 오셔서 고쳐달라고 말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사로의 질병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장 11절에 보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말합니다. 지금은 잠을 자도 잘 낫지를 않습니다. 수면제가 나오고부터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잠자면 병이 다 나았습니다. 정신적으로 맛이 간 사람도 푹 자면 온전해졌습니다. 잠들었으면 병이 다 나을테니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십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안 가신 것 같습니다. 즉 이 나사로의 사건을 통해 강한 태풍을 만들어 보여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게 하기 위하여 나사로에게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제자 가운데 도마가 말합니다. 그는 의심 많은 도마로 알려진 제자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도마는 집을 짓는 목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도마였습니다. 목수가 과학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엉뚱한 소리를 잘 해요. 예수님이 죽은 사람 나사로에게 가자고 말씀하시니까 우리도 죽으러 가는구나 생각하고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마는 결심도 좋고 참 남자다운데 허경영 같은 소리를 합니다. 여러분 어때요. 예수님 부활, 예수님 기적 못 믿겠다고요. 누구는 믿어지는 줄 압니까. 자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됩니까. 베다니 동네 입구에 마르다가 뛰어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아마 그때 마르다의 모습은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그녀의 말 그대로 때맞춰 오셨으면 우리 오빠 안 죽었을 텐데 이제 오십니까 하는 원망의 말투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니까 자기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발 후퇴합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마르다가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까지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디까지 해 주기를 바라고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이 어린 두 자매가 남겨져 있으니까 이 슬픔을 가시게 해 줄 예수님의 위로를 기대하고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때부터 엇박자 코미디 대화가 시작됩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교리적인 대답이 문제입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힘을 잃어갑니까. 정답을 알아요. 그런데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이 없습니다. 신앙은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정답으로 가슴에 사무쳐서 나와야 합니다. 로봇처럼 컴퓨터처럼 스위치만 누르면 정답이 튀어나옵니다.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지금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마르다가 이렇게 코미디 같은 소리를 하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의 귀한 진리가 나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는 말씀으로 끝났다면 마르다도 별 고민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것을 믿어야 할지 안 믿어야 할지 얼마나 당황했으면 마르다가 그냥 집으로 가버렸겠습니까. 여러분 혹시 허경영이란 사람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1997년 11월 26일 15대 대선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는데 개표 결과 0.2% 득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후보로 선거에 참여했으며, 0.4%의 득표율(약 9만7천여표)을 기록하여 7위를 했습니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의 주요 후보들과 함께 토론회에 다수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0.68% 득표를 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득표율입니다. 자기가 축지법을 쓰고 아이큐가 430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비밀보좌관을 했대요. 여기까지 했으면 허풍으로 끝났을 건데 도를 지나쳤어요. 박근혜 대통령과 비밀결혼을 했다고 한 겁니다. 그걸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 17대 대선 때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되어 1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나왔습니다. 콩밥을 먹고 정신이 들었는지 요즘은 좀 엄한 소리를 덜 하고 노래를 합디다. 제가 인터넷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허경영은 사기꾼이 아니라 미쳤다고 하더군요.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사기꾼 아닙니까.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거나 아니면 정신이 이상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허경영보다 좀 더 하신 겁니다. 여러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지하게 생각을 해서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부활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받아들이시든지 아니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하시든지 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요. 인간이 예수님의 부활과 몸의 부활을 못 믿어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말 믿게 하시려고 나사로의 무덤까지 오신 겁니다. 지금 나사로는 죽은 지 4일이나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안에 입관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혹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살았을 때 사람이지 죽으면 끝입니다. 게다가 부패가 시작되면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라고 해도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라고 해도 간덩이 큰 사람은 3일 동안 밥을 못 먹고 약한 사람은 30년 식사를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 더 흉악한 꼴 보기 전에 관 두껑 덮고 못질해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덤 속의 시체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부르셨습니다. 이 단순한 말씀 한마디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세요. 그냥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니까 모든 사람이 예수님 믿고 따를 것 같죠.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이자는 모의가 공공연하게 일어났습니다. 기적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죽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향해서 한마디로 살려내신 예수님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분은 우리의 구원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을 믿는 게 아니라 죽이고자 합니다. 인간은 참 악합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그 모의에 못이기는 체 하고 끌려들어가 죽으십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 말씀이 수용이 안 되니까 건성으로 들은 겁니다. 예수님 금요일 돌아가셨습니다. 그 다음 날은 유대인의 안식일입니다. 그 다음 날은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주일입니다. 당시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지낼 때에 일정한 소리를 내며 우는 곡(哭)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게 전통 장례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니까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섭섭하지 않게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예수님을 자기 가족묘에 안장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금요일에 여인들이 그를 위해 울어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안식일은 참고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울어 드리기 위해서 간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셔서 무덤에서 나와 계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은 다 기절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들이 그를 동산 무덤 관리인으로 알았어요. 예수님 시신이 없으니까 그에게 시신에 기름도 바르고 곡도 해야 하니 시신이 있는 곳을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그때 그가 “내가 예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예수님 골치 아프셨을 것 같아요. 때마다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셔야 된다면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 만날 때마다 “내가 네 할애비다” 해야 한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이 여인(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들이 사랑하는 예수님 모습을 보고 모두 최대한의 속도로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예수님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말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 제자들 말고 또 한 사람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터키 해안 남부 지역 길리기아 다소 사람인데 날 때부터 귀족이고 부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예루살렘의 유명한 학자 가말리엘 문하에 유학을 왔습니다. 그가 거기서 공부를 하는데 이상한 바람이 부는 겁니다. 아니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허무맹랑한 소식을 전하면서 세를 불려가는 이상한 무리를 본 겁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람들을 박살을 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망을 가 다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도망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다메섹이라고 하는 다마스커스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로마군이 그 도시를 경계로 이쪽 아시아에 항상 상주하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 신자들이 많아졌다는 소문을 듣고 이것들 봐라 하며 그 사람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거의 다마스커스에 갔는데 홀연히 하얀 빛이 그를 비추는 겁니다. 그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는 이해를 못 하고 “주여 뉘시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또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앞을 못 보게 된 그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번화가 직가(straight street)에 있는 유다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며칠 안 있어 그는 거기서 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찾아온 아나니아에게서 안수를 받고 눈을 다시 뜨게 됩니다. 이때 사울의 머릿속에 있던 성경 지식이 재조립되기 시작합니다. 그래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처음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일단 믿기만 하면 머리가 스스로 움직입니다. 스스로 증거를 찾습니다. 스스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갑니다. 그 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으면서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만있겠습니까. 가말리엘 문하의 바리새인이 왜 이 모양이냐면서 이 배반자를 죽이려고 하니까 예수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려 도망을 시킵니다. 사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갔다가 그 후 삼 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이 사람이 큰 자라는 뜻인 사울에서 작은 자라는 뜻인 바울로 이름을 바꿉니다. 바로 이 사람이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들고 서진(西進)할 때 엄청난 태풍이 불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그 과정을 고린도전서 15장에 요약해놓았습니다. 3절과 4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이 우연히 된 게 아니고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창세전부터 계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닙니다. 수천 년 전 창세기에 한 남자가 나옵니다. 그는 뱀의 머리를 상할 자입니다. 그는 사망의 권세를 쳐부술 자이십니다. 이것은 최초의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쯤 되면 그 예언이 점점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갑니다. 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합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증인 두셋만 있어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먼저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이것도 다 제자들이 지어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교회는 250년 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재판의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자기가 이익이 되면 재판에서 거짓말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자기가 거짓증언해서 손해가 난다면 절대 거짓증언 안 한답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재산을 뺏기고, 직장을 잃고, 추방을 당하고, 거지가 되고, 목이 잘려 죽고, 심지어 사자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는 데도 아시아보다 로마에서 믿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예수님 때문에 도망을 다니고, 거지가 되고, 죽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버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부활을 어떻게 부정합니까.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우리도 부활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부활의 소망,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이것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세상사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가 삐삐를 사용하다가 좀 있으니 몽둥이 같은 이동 전화기를 들고 소수의 사람들이 별 쓸 일도 없으면서 으스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최신식 스마트폰이 나와 누구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졌습니까. 우리가 핸드폰 없을 때 전화기 없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누가 볼 일이 있으면 이웃집에 헐레벌떡 뛰어가서 숨을 몰아쉬며 우리 집 오시라고 합니다 하고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가 모두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기기가 나왔는데 우리가 행복합니까. 저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미래의 어둠에 대한 공포 때문에 말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의 부활의 언약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부활하셨고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 땅의 환란과 핍박을 이긴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부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다 보게 될 것입니다. 골방에 광야에 산에 어디에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메시아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다 볼 수 있게 오십니다. 이게 성경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사기꾼들이 설칠 것을 아시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곳에서 죽었든 다 육체로 부활하여 동시에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이야기를 하고 결론으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하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 생명, 젊음, 경륜, 기술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십니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축복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015년 4월 9일 오후 2시 제주도 아카페 교회 카페. 제주 제주시 선덕로 바다 앞 도두해수파크 찜질방에서 나와 해안로 정류장에서 제주 시내로 들어가는 17번 버스를 아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쉽게 오지 않았다. 같이 기다리던 다른 한분과 말을 나누게 되었는데 일본 나고야 교회 목사님의 한국 사모님이었다. 그분도 제주 시외버스정류장으로 가시는 중이었다. 일본의 아들들 때문에 제주도 땅을 정리하려고 오셨단다. 정류장 건너에는 아침 선잠에 눈비비고 나온 것 같은 청색의 푸른 파도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하품하듯 밀려와 마음 깊숙이 할 말이 많은 듯 해안에 부딪혔다. 버스를 기다리는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늘었다. 마침내 온 17번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와산행 버스로 갈아타고 달빛빌리지 앞 푸른 초장 팻말이 있는 곳에 내렸다. 제주도 화석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 들어가니 김희태 목사가 아들 목사와 귤 밭을 맨발로 한 고랑씩을 맡아 매고 있었다. 차를 대접받은 뒤 두 달 전 설립된 근처의 아카페(A Cafe) 교회(담임 권혁선 목사)로 갔다. 손님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순대국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교회 뒤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며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혁선 목사는 평안교회 부목을 거쳐 1988년 인천의 희망교회와 풍성교회를 시무했다. 그리고 2008년 그는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사역을 했다. 그러다 그는 2015년 3월 23일 동광교회 50주년을 기려 제주도 조촌읍 대흘리 120-1에 설립한 아카페(A Cafe)교회에 부임했다. -권혁선 목사: 김희태 목사(두 사람은 총신 77회 동창이면서 절친이고 나이는 52년생인 권 목사보다 김 목사가 두 살 위다)가 1987년 동광교회 부임하실 때 제가 그랬죠. 교회 출석 교인이 2000명이 넘을 거다. 제가 말하는 건 장년 주일 예배 참석 교인입니다. 요새 통계로 말하면 7000이지만 주일 출석 장년 교인만 2000이 넘는다고 한 거죠. 그런데 김희태 목사가 안 믿어요. 그래서 제가 뭐랬냐하면. -김희태 목사: 그런 일은 절대로 안 일어날 거라고 제가 확신했죠. -권혁선 목사: 사실 내가 그 교회를 소개해 줬으니까 그 교회 저력을 알잖아요. 그런데 동광교회는 목사님만 좋은 분이 오면 가능한 교회죠. 문제가 많은 교회이긴 해요. 그런데 제가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소개시켜 준 건 아니에요. 그 교회가 어떻게 되었냐하면 목사를 모셔야 하는데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의논하다 보니까 모르는 분이 오시면 그게 그거니 우리 교회 출신 가운데서 담임목사를 모시자 그런 겁니다. 그 결과 저를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저를 잘 알거든요. 제가 가면 감당이 안 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 김 목사님이 가면 이건 틀림없이 감당할 뿐만 아니라 큰 교회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가시면 2000명 됩니다 그랬습니다. 김 목사님이 저보다 믿음이 없어가지고 그럴리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동광교회에 대해서는 하나님보다는 목사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컸습니다. 됩니다 하면서 그때 김 목사님과 약속을 했어요. 2000명이 되면 저한테 선교비 천불씩 후원해 주기로. -김희태 목사: 그게 아니라 두당 1불씩 후원해 주기로. 2000명 넘어가면 2000불 하기로. -권혁선 목사: 2000명 훨씬 넘어갈 거라고 했더니 안 믿는 거예요. 그래서 로열티 계산 개념으로 두당 1불씩 하기로 했습니다.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막상 선교지로 갔는데 안 주는 겁니다. -김희태 목사: 저는 두 가지 확신을 가졌어요. 2000명 절대 안 된다. 그리고 목회 잘 하는 목사가 선교사 갈 일이 있겠느냐. -권혁선 목사: 저는 겁이 많아요. 그래서 사전에 준비를 해요. 목회를 한 지 한 12년 정도 됐을 때부터 다음 선교지를 어디로 가느냐 여기서 관두면 어디로 갈 것이냐를 생각을 하는 거죠. 저는 일본을 생각했어요. 사실 일본 쪽에 많은 공을 들였죠. 그랬는데. -김희태 목사: 특별히 일본 낫토(대두를 낫토균을 이용해 발효시킨 한국의 청국장과 유사한 일본 전통의 식품으로 미소와 함께 중세 일본의 필수적인 영양 공급원이었다)를 좋아하죠. 우리 교인들도 낫토, 낫토해. 나는 안 좋아해요. -권혁선 목사: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일본에 가서 느낀 건 여기서는 한인 목회를 해야 되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한인 목회를 하려면 문제가 뭐냐면 다른 목사들과 부딪칠 것 같은 겁니다. 망설이고 있는데 어느 분이 캄보디아를 가자고 해요. 캄보디아를 도와달라는 거죠. 그래서 가봤는데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보면서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백성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참 나도 하나님 앞에서 영혼을 죽이는 목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캄보디아 백성이 불쌍했습니다. 외국 나가서 공항에서 울어본 나라는 그 나라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나라 민족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캄보디아에 가서 오래 살려고 했는데 이 친구(김희태 목사를 가리키며)가 문제예요. 친구가 도와주고 그러니까 김 목사님이 많이 도와줬죠. 그 동안 도와준 걸 계산해 보니까 200만불이나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모든 걸 다 해놓으니까 내가 왕 노릇 할 것 같은 겁니다. 김 목사님이 들어오라고 하니까 들어와서 이 교회를 하게 된 겁니다. 김희태 목사: 우리 교회에서는 선교비 2000불 약속했는데 교회가 도저히 형편이 안 좋아서 50만원씩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사람이 몇 십만원 보내고. 권혁선 목사: 사실은 2000불 이상 했어. 왜냐면 그건 공식적으로 보내는 거고. 김희태 목사: 제직회에서 권 목사님 아는 집사가 있어요. 그가 막 뭐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집사님, 권 목사님한테 선교비 많이 준다고 그 말씀하시는 거죠. 그 집사님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요. 제가 권 목사님한테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2000불씩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거 보내는 겁니다. 그 집사님 내려갔어 건강이 안 좋아서. -권혁선 목사: 그랬다고 그러데. -김희태 목사: 그런데 신장하고 간이 안 좋데. 신장 약을 먹으면 간한테 안 좋고 간 약을 먹으면 신장한테 안 좋아서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다네. 그래서 공기 좋은 데로 간다고. 서한결 사모:(제주 해안가에서 만난 일본 나고야 교회 사모)네, 서양 의학적으로는 그런데 동양 의학적으로 진짜 몸의 원리를 알면 신장(腎臟)은 어머니고 간장(肝臟)은 아들입니다. 옛날에 어린애들이 아프면 엄마가 젖을 토해서 아이한테 줍니다. 신장이 약을 먹으면 간장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그러니까 그 원리를 알고 한의학적으로 하면 아주 좋죠. -권혁선 목사: 양약으로 하니까 그런 거죠. -서한결 사모: 한의학에서 그걸 상생상극(相生相剋)이라고 합니다. -김희태 목사: 아이고 사모님 제주도 아카페교회 오시면 우리 노틀(중국어 ‘老頭兒’에서 온 말로 외래어 발음법상 라오터우얼로 소리 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늙은 남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노틀’이 됐다) 클래스가 죽음을 한 단계 올리겠네요. ―그래서 동광교회 장년 주일출석 2000명이 넘어서 선교비 지원이 잘 됐습니까. -권혁선 목사: 아니 2000명은 당연히 넘었죠. 넘었는데 500불밖에 안 보내는 겁니다. 제가 캄보디아 간다고 하니까 1000불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그걸 안 믿었습니다. 왜냐. 솔직하게 말해서 김 목사님하고 저하고의 관계에 있어서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래서 나 말고 딴 데 선교비를 보내면 선교를 위해서 돈을 쓴다고 해요. 그러나 저하고는 절친이잖아요. 저한테 선교비를 보내면 선교를 위해서 돈 쓰는 게 아니라 친구를 위해서 돈을 쓴다고 합니다. 교인들에게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주 파송 교회를 생각해 보면 제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30만원이 원래 내가 생각했던 후원금입니다. -김희태 목사: 그랬었구나. 20만원 내놔. -권혁선 목사: 왜냐면 이건 빤한 계산입니다. -김희태 목사: 친구라 못한 겁니다. -권혁선 목사: 그러나 보통 모르는 목사님들은 친구지간에 안 해 주느냐고 해요. 사실 친구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걸 생각 못 하는 것 같아요. 제삼자는 오히려 딴 데 도와주면 순수하게 선교를 위해서 한다 이렇게 생각해요. -김희태 목사: 우리가 백 불 이백 불은 수십 군데고. 파송이 일곱 가정이에요. 그래서 더욱 어려운 가운데에서 친구한테 많이 보낸다는 건 명분을 세울 수가 없어요. -서한결 사모: 친구라는 걸 알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권혁선 목사: 온 교회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둘이 아삼륙(마작에서 쓰는 골패의 쌍진아, 쌍장삼, 쌍준륙 이른바 쌍비연이라 하여 좋은 패가 있는데 이 세 쌍의 패 끝 자를 딴 말로 단짝을 비유하거나 서로 호흡이 잘 맞을 때 쓰는 말)이라는 거 다 알아요. -김희태 목사: 게다가 가끔 들어오면 설교시켜야지. -권혁선 목사: 그런데 사실은 2000불이 아니라 더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캄보디아 교회 뭐 할 때도 천만 원 헌금해 줬지 -김희태 목사: 그랬던가. -권혁선 목사: 자동차도 두 대 보내줬죠. 뭐 이래저래 하면 솔찬합니다. 제가 자동차 가지고 사기 많이 쳤습니다. (동석자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차를 일부러 안 사요. 오토바이 타거나 걸어다녀요.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오면 헌금을 해요. 목사님 이렇게 지내시면 되냐고. 일단 그 돈을 받아요. 간 다음에 전화를 해요. 내가 지금 원주민을 위해 그 돈을 써야 되는데 양해해 달라고 말해요. 저한테는 우선순위가 원주민을 위하는 게 먼저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헌금을 하는데 원주민보다는 당장 보이는 대상에 헌금하는 걸 더 좋아해요. 목사님 차 사세요 하고 돈은 줘도 원주민을 위하는 데는 잘 안 주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받은 다음에 원주민을 위해서 쓰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방법을 많이 우려먹었죠. 그러다보니 차를 안 타고 일부러 걸어 다닌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서 담임 목회할 때도 그랬어요. 여름에 제 방에 에어컨 달겠다고 해서 제가 달지 말라고 했어요. 유아실, 영아실, 사무실까지 다 달고 마지막에 내 방 달아라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들이 서둘러요. 목사 방부터 달면 교육부는 안 달고 세월아 네월아 합니다. 사실은 고도의 정치죠. -김희태 목사: 그러다가 평생 못 다는 수가 있어. -권혁선 목사: 난 일 년 만에 다 달었어. -김희태 목사: 그거 하나님의 은혜네. 광주의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은 평생 에어컨 없이 지냈어요. -권혁선 목사: 야 진짜 못됐구나. -김희태 목사: 지독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도 그 교회가 난리더라고요. 그런 사고가 우연히 나온 게 아니에요. -권혁선 목사: 옛날 그 목사님 점잖으시잖아요. -김희태 목사: 부흥회 가면 깜짝 놀래요. 그렇게 큰 교회가 사무실에 에어컨이 없어요. 광주도 여름에 굉장히 덥거든. -권혁선 목사: 저 인간이 좋게 이야기했다. 그러다 안 했다가 저 인간이 넥타이 돌려 매면 난리가 난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저는 좋게 이야기할 때 서로 잘하자. 넥타이 돌려 매면 막다른 골목이니까 알아서 해라. -김희태 목사: (일본 교회 서한결 사모님을 보며) 사모님 모셔다 드릴게요. 가십시다. 서한결 사모: 제가 한번 걸어 가보죠. (동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모님에게 차를 타고 가시라고 했다. 두 사람이 일어서 카페를 나갔다.) ―(가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며)저희는 좀 더 있다 버스 타고 공항으로 가겠습니다. (우리는 남은 커피를 마저 비우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권혁선 목사: 동광교회를 소개해 주었을 뿐인데 김희태 목사는 자기 가족들한테도 제가 가문의 은인이라는 말을 늘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사실 저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들한테 권혁선 목사가 김 목사한테 어떻게 했다 이런 말 안 합니다. 처음에는 좀 하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수치로 느끼거든요. 목사님도 그런 경우를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만 제 경우에도 보면 큰 은혜는 하나님과 부모만이 베풀 수가 있고 사람이 베풀면 서로 떠나게 됩니다. 뭐 그것이 인생이죠. 그런데 그런 단계를 넘어가는 사람은 큰 인물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은 절체절명(?體?命)의 일인데 나한테는 손 한번만 내밀면 되는 일이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 도와줄 때는 그 사람을 잃는다고 생각하고 도와줘요. 도움 받은 사람은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하죠. 그런데 대부분 얼마 안 가서 (내 추임새를 받아서)잊어버릴 정도가 아니고 욕을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멀리 한 건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인간의 심리가 그런 모양입니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 문제를 넘어서는 사람은 정말 큰 사람입니다. 사실 김 목사님한테는 제가 오히려 변덕을 많이 부렸습니다. 파닥파닥하는 못된 성질이 제가 있어요. 김희태 목사님하고 40년 우정이 유지된 건 제가 잘 해서가 아니라 김 목사님이 잘 해 주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평생 도움을 받고 삽니다. 제가 그러죠. 김 목사님 잘된 건 하나님께서 나 도와주라고 그렇게 된 거라고요. 오히려 뭐 한 놈이 큰소리친다는 격이죠. ―같은 서울남노회 회원들 가운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권혁선 목사: 김희태 목사님은 의리를 지켜요. 제가 복이 많아서 김 목사님을 사귀게 된 거죠. 저는 먼저 부모를 잘 만났어요. 아내도 잘 만나고 자식들도 좋아요. 저는 정말 성도들도 잘 만났어요. 그리고 아주 좋은 친구를 만났어요.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가장 좋은 형님이죠. 나이도 저보다 두 살 위죠. 저는 만 가지가 없는데도 막 채워져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김 목사님은 정치도 하는데 막상 총회장은 되고 싶어 하지를 않아요. 순수한 거죠. 시대가 하도 순수하지 않으니까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설교도 살아 있어요. 사실 김희태 목사는 설교를 위해 많은 독서와 기도와 삶으로 준비한다. 그래서 그는 설교는 물론이고 크리소스톰의 삶과 정치적 성향도 닮았다. AD 397년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인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죽자, 후임으로 크리소스톰이 선임되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동방 기독교의 노른자위를 차지할 마음이 없었고, 안디옥 교인들도 위대한 설교자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지도자들은 명성이 자자한 크리소스톰을 콘스탄티노플로 납치하듯 데려갔다. 안디옥에서는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애썼지만, 전격적인 조치로 콘스탄티노플 대감독으로 전임되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첫 시작은 만사가 순탄하였다. 이곳 사람들도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많은 수입을 구제와 다른 경건한 일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정치적인 술수와 교직의 타락이 난무하는 도시였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크리소스톰은, 부패하고 타락한 수하의 성직자들을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치리했고, 사회 개혁을 촉구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의 성도들을 향하여 도덕적이고 검소한 삶을 살아갈 것을 설교했다. 예배당 근처에서 벌어진 황후 유독시아의 은상 헌당식을 기념하는 외설적인 행사와 춤을 크리소스톰이 방관할 수 없었다. 그즈음 세례 요한의 축일에 맞춰 크리소스톰은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또 다시 헤로디아가 소리쳤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난리를 쳤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춤을 추었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세례 요한의 목을 쳐서 쟁반에 담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설교자로서 세상과 정치적 지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한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원치 않았던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었다. AD 407년 크리소스톰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전 생애에 걸쳐서 가장 짧고 가장 뛰어난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멘” 이라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에게로 갔다. 2015-05-03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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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3
  • 제주도 선교사 김성욱 목사
    그레고리우스 1세는 수도원장으로 있을 당시 로마 시내 광장을 거닐다 영국에서 온 포로들이 노예시장에서 매매된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한 노예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하얀 피부와 반듯한 용모, 아름다운 머리카락의 노예는 대답했다. “안젤래(angelais, 영국).” 그레고리우스 1세는 노예의 대답에 충격을 받았다. “안제레(angele, 천사), 천사라구. 그렇게 불릴 만도 하군. 얼굴도 천사와 같으니. 하늘나라에 사는 천사들의 후계자들이 분명하군.” 노예는 영국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 1세는 저 멀리 낙후된 브리튼 섬의 angele, 즉 천사가 보내서 노예가 온 걸로 알아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64대 교황(재위: 590년 9월 3일 - 604년 3월 12일)이 된 이후에도 그레고리우스 1세는 잉글랜드를 잊지 않았다. 597년에 그는 자기 수도원의 수사들을 선교사로 임명하여 섬나라 영국에 파견하였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597년 6세기말 섬나라 영국 angelais에 선교사를 보내게 되었다. 그레고리우스 1세에게 선교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미개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시절 조선의 개신교는 국내에서의 신앙 전파는 ‘전도’, 해외는 ‘선교’로 구분했다. 그 당시의 우리는 사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를 세상에서 찾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국가의 주권도 없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첫 번째 선교사는 어디서 활동한 누구일까? 한국 개신교 역사가 최초의 선교사로 기록하는 인물은 뜻밖에도 1908년 제주도로 파견된 이기풍(1868~1942) 목사이다. 이는 당시 제주도가 육지와는 언어나 풍습이 완전히 달라서 해외나 다름없는데다 실제로 바다 건너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 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자 190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목사 안수를 받은 7명 중 한명인 이기풍 목사는 당시 개신교 신앙의 불모지였던 제주도의 선교 활동을 자원했다. 이기풍 목사는 1908년 2월 20일 목포에서 제주도를 향하여 조사 한 분과 승선하였으나 소식이 없다가 44일 만에 무사도착이라는 전보를 목포의 가족들에게 보내 왔다고 한다. 그가 제주도에서 활동한 기간은 1908~1915년, 1927~1932년 등 두 차례에 걸쳐 만 12년이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제주도에 10개가 넘는 교회를 세웠고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 제주 시내에 있는 성내교회는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도에 처음 세운 교회이자 그의 제주 사역 중심지였던 곳이다. 1908년 1월 중순 평양을 출발한 이 목사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4월 초 간신히 제주도에 도착했다. 그는 바닷가에서 한 해녀를 만나 처음 복음을 전했고 얼마 후 몇몇 사람들과 함께 교회를 열었다. 현재 삼도동의 성내교회(기장)는 원래 제주 훈련청이 있던 자리로 1910년 매입해 교회로 사용했다. 교회 입구에는 수령(樹齡)이 300년이 넘는다는 팽나무가 서 있고 그 앞에는 “이기풍 목사가 이 나무 밑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복음을 전했다”는 안내문이 눈에 띈다. 성내교회에는 또 이기풍 목사 기념비 등 그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제주도에서 이기풍 목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또 한 곳은 북제주군 조천읍 와흘리 야산에 자리잡은 이기풍 선교기념관이다. 예장 통합 총회가 1998년 5월 이기풍 목사의 선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웠으며 이 목사의 사진과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이 기념관은 대지 1만600평, 연건평 2000여평에 4백5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배실을 비롯해 세미나실을 갖추고 있으며, 2인실과 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은 4백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독노회(獨老會·朝鮮耶蘇敎長老會獨立老會의 약칭)를 열면서 시작한 국내 장로교는 광복 후인 1952년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고신파(高神派·'出獄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이었던 한상동 목사와 고려신학교에서 비롯)가 별도의 교단으로 독립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갈래의 교단이 나뉘게 됐다. 1953년 자유주의신학 문제로 기독교장로회(기장)와 예수교장로회(예장)로 나뉘었고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문제를 놓고 이를 찬성하는 예장통합과 반대하는 예장합동이 각각의 교단으로 갈라졌다. 2008년 9월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교단인 장로교 4개 교단이 제주도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 김영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장 김용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임명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총회장 문상득) 등 장로교 4개 교단은 오는 9월 22~26일 제주도에서 각각 총회를 갖고 수요일인 24일 오후 7시 제주컨벤션센터에서 합동예배를 드렸다. 이 합동예배는 평양대부흥의 시발점이 된 평양장대현교회에서 1907년 9월 17~19일 제1회 조선야소교장로회 독립노회가 열렸는데, 이때 안수를 받은 목사 7명 중 한 사람인 이기풍(1865~1942) 목사가 1908년 제주도에 도착해 선교활동에 나선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작년 이맘때도 김성욱 목사를 만나려고 4월 15일 인천발 제주행 세월호 예약까지 했다가 사정상 그 다음 달 배편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었다. 해가 바뀌어 2015년 4월 8일 수요일 동광교회 김희태 목사 배려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그는 총신 졸업여행 때 제주도에 올 것을 결심했다. 서울 달동네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던 그는 구미 상모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1989년 7월 11일 제주이도교회를 설립해 자체 건물의 자립교회로 성장시켰다. 제주시 구남로에 있는 제주이도교회에서 수요 예배 후 담임목사 김성욱 목사를 만났다.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구미공고를 졸업하고 염색공장 해양산업에 취직했는데 그 안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공장에 처음 간 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예배소리 들렸어요. 그런데 입사서류에 예배 참석 서약서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데 하는 반발심이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마지못해 사인을 했습니다. 아침 7시에 30분 날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한 주일에 예배를 일곱 번이나 드려야 하는 겁니다. 예배시간은 그냥 시간 때우기로 일관했죠. 기도를 할 줄 압니까. 성경을 읽습니까. 성탄절이나 여름성경학교 때 과자 얻어먹고 연극 보느라고 일 년에 두세 번 교회에 갔었죠. 그러다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인정되고 믿어지게 됐어요. 내가 예수님을 언제 영접했느냐 하면 빌리 그래함 집회(1973년 5월 30일 저녁부터 6월 3일 저녁까지 12만 평의 여의도광장에 51만6천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회장 한경직 목사의 사회와 김장환 목사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때였습니다. 당시 스무 살이었는데 70명 되는 교회의 청년 몇 명이 전도사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때 빌리 그래함 목사의 영어 통역을 통한 초정에 일어나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사실은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당시 인솔 전도사님이 현재 서울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님이셨습니다. 명일동에 교회 개척하기 전에 김삼환 목사께서 하일동 망월리의 해양산업 내에 있는 해양교회에서 10여년 사역을 하셨는데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해양교회 장로님 부인 권사님이 좀 까다로우셨거든요. 그분이 7개월간 나한테 전도를 하고 믿음의 기초를 세워 주셨어요. 1980년에 명일동에 명일동의 소리라는 뜻으로 명성교회를 세웠습니다. 나중에 내가 제주도에 와서 목회를 하는데 명성교회가 새벽기도회로 유명해져서 여기 계신 목사님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그 근처에 방을 잡고 하룻밤을 자면서 수요저녁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수요저녁예배 때 설교 말씀하시는 게 해양교회 전도사 시절 모습과 아주 비슷한 겁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너무나도 흐름과 스타일이 같고 그 시간에 또 방지일 목사님 이야기를 말하시는 겁니다. 김삼환 목사님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방지일 목사님이시거든요. 예전에는 작은 교회의 전도사님이실 때도 방지일 목사님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제 큰 교회 목사님이 되셨는데도 또 방지일 목사님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말씀하는 폼이나 여러 가지가 너무나 흡사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워하면서 아는 체 할 엄두도 못 내고 제주도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주도로 관광오신 명성교회 집사님에게 물어봤더니 김삼환 목사님이 옛날에 해양교회 계셨다는 겁니다.” ―해양교회가 어디 있었어요.“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에 있었습니다. 하일동 바로 옆입니다. 김용기 장로님의 가나안농군학교 조금 더 들어간 곳입니다. 강 건너 맞은편은 신앙촌 덕소죠. 김삼환 목사님이 제주도에 연합집회 강사로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감동을 받으시고 저희 교회도 한번 방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방문하실 때 11년 된 그레이스로 모시니까 시동도 잘 안 걸리고 그랬습니다. 저희 어머니 기도도 해 주시고 용돈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해 기억을 하시는 겁니다. 그분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아주 잘하세요. 김삼환 목사님이 떠나실 때 저한테 서울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면 한번 들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뒤 서울에서 연락이 와서 명성교회에 들렸더니 차를 한 대 준비했다 주시는 겁니다. 신앙과 목회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시력은 언제부터 안 좋았습니까.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영양실조였는지 열병 때문이었는지 한번 크게 아팠는데 망막이 찢어지게 됐어요. 망막박리(안구의 안쪽을 덮고 있는 망막층이 찢어지면서 눈 속의 수분이 새어들어 가서 망막이 안구벽으로부터 들뜨는 병적 상태)라고 하죠. 중 2때 병원에 가서 알았어요. 열병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도 구미공고 실업계를 갔죠. 대학도 못 간다 생각하니 제 처지가 참 슬픈 겁니다. 직장 생활도 힘들 것이다. 군대는 가고 싶어도 안 받아줄 것이다. 이런 나에게 누가 시집을 오겠는가. 가난한 부모가 6남매의 다섯째인 내게 재산을 물려줄 처지도 아니고. 그러니까 앞날이 막막하고 절망이 되더라고요. 그때는 죽을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죽을 생각을 하니까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안 믿을 때니 답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생각한다는 게 내가 죽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가슴 아파 하실까. 슬퍼할 가족 생각을 하니까 못 죽겠더군요. 그런 가운데 구미공고를 졸업하고 경기도 광주 망월리 염색공장까지 가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무슨 기술이든 처음에는 청소 같은 쉬운 일을 하다가 염료로 색을 맞추는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게 되면 시각장애가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다시 구미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염색공장에서 7개월 있는데 하나님께서 교회가 있는 직장 골짜기로 보내시어 예수 믿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떻게 달라졌습니까.“대학도 못 갑니다. 무엇이든 할 수 없습니다. 직장생활도 시력 때문에 힘듭니다. 결혼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저한테 시집을 오겠습니까. 그래서 죽자 했던 것인데 이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죄 용서 받은 기쁨이 일어납니다. 삶을 살아야 할 의미가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으니 내가 살아야 되지 않겠나. 내가 한 사람이라도 살리거나 복음을 전한다면 인생이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소박한 꿈을 꾸게 되고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소망이 생기게 된 겁니다. 그래서 밑바닥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가다 막일도 했습니다. 저는 그걸 경험삼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것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 것이었습니다. 시멘트를 나르는 등짐을 지기도 하고, 곡갱이로 땅을 파기도 하고, 구멍가게도 하고 과일장사도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봤습니다. 밑바닥 일을 하다가 집안의 친척을 통해 교육청 임시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행정공무원 시험도 처음에는 떨어졌지만 결국 합격하고 면접도 잘 봤는데 신체검사에서 시력장애로 떨어지는 겁니다. 지금은 장애인 의무 채용 규정도 있습니다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시력 때문에 군대 안 간 것이 나오기 때문에 도저히 그 벽을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시직으로 8년 정도 있으면서 통신대학을 해 행정학을 7년 만에 마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격을 갖춰도 신체검사에서 안 되는 겁니다.” ―신학은 어떻게 하게 되었습니까.“구미제일교회를 다니는데 청년부 담당 목사님도 그러시고 주변에서 자꾸 신학을 해 보라고 그러더군요. 그래도 아무나 신학을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먼저는 제가 성직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당시에도 제 생각에 목회자가 많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2년을 미루다가 결혼 문제를 앞두고 신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그리고 풀리지 않던 결혼 문제가 풀리게 됐죠. 그래서 신학을 마치면 남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가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까지 오게 하나님께서 구미상모교회를 통해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28살 되던 해 1월에 결혼하고 3월에 대구신학을 하는데 저는 통신대학을 마쳐서 3학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결혼은 어떻게 하시게 됐습니까.“제가 시각장애인인데 누구한테 청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구미제일교회 자매(박찬혜 사모)가 저한테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니 직장은 임시직 신분이고 앞길이 막막한데 어떤 자매한테 결혼해 달라는 염치가 생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내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김성욱 목사는 지금 봐도 잘생겼다고 말을 했다.) 아니 잘생기면 뭐 합니까. 경제력이 있어야 되고 직장이 번듯해야죠. 그래서 저는 앞길이 막막하고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해도 좋다는 겁니다. 신학을 해도 남들이 안 가는 곳으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앞날이 정말 불투명하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고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처음부터 각오한 터라 잘 견디더라고요.” ―시각장애의 약시(弱視)인데 정상인 같이 보입니다. “눈이 푹 들어갔거나 검은 안경을 쓰면 시각장애인으로 보일 것입니다만 그렇지 않고 정상인 같이 보여 참 감사하죠. 한 눈을 가리면 그냥 희미하게만 보이죠. 양쪽으로 보면 시력검안표의 위에서 두 번째 것까지 큰 글자만 보입니다. 시력이 0.2입니다. 물건이나 사람은 가까이 오면 보입니다. 좀 떨어져 있으면 안 보입니다. 보는 범위도 정상인의 1/5정도 밖에 안 보입니다. 한때는 점자를 배울 생각도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독일제 확대경으로 봅니다. 모니터를 볼 때는 화면을 키우고, 돋보기안경을 쓰고, 확대경을 들이대고 봅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설교는 요약을 해서 확대경으로 보면서 합니다.” ―설교할 때 보니 아주 자연스럽던데요. “오래 숙달돼서 그럴 겁니다.” ―어떻게 제주도에 오게 되었습니까.“총신 졸업반 때 김의원 교수 인솔로 이곳에 평생 처음으로 졸업여행을 오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여행하고는 인연이 없었거든요. 그때 제주도는 우상숭배, 관광지, 열악한 교회 환경 등 인기가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제 사역지가 이곳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주도에 가서 목회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구미상모교회 전도사 친구가 제게 정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결정이 되어 제주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1989년 구미상모교회의 파송을 받았으니 이제 26년이나 됐네요. 7월 11일이면 정식으로 26주년이 되는군요.” ―지난날을 생각하면 특별히 어떤 게 기억이 되시나요. “제주도로 교회를 개척하려고 오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건강이나 실력이나 저보다 다 나은 분들이죠. 그러나 의욕만 가지고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움이 많죠.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들어 쓰신다는 말씀이 더욱 은혜로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구미상모교회의 파송과 지원을 받아 개척의 특혜와 혜택을 많이 받은 목사이기도 합니다. 구미상모교회의 배경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구미상모교회에서 생활비와 교회 건물 월세를 몇 년간 지원해 주고 교회 지을 때 1억을 감당해 주었습니다. 기도도 해 주시고 또 상모교회 기관들에서도 후원을 해 주었습니다.” ―제가 전도국장 시절 90년대에 이도교회가 지하에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저 건너 길가의 작은 건물 지하 23평을 쓰고 있었죠. 거기서 6년 반 있었습니다. 그 후 땅을 사서 이쪽으로 오게 됐죠.” ―교세가 어떻게 되나요.“지금 교세는 어린이 포함 한 200명쯤 되어갑니다. 하나님의 은혜죠. 주일 장년 출석은 80에서 90명 사이죠.” ―1년 예산은 얼마나 되나요.“건축비까지 다 합쳐 2억 정도 됩니다.” ―부채는 얼마나 됩니까.“부채는 교회 증축할 때 5억이었는데 2억 2천 갚고 지금은 2억 8천 남았습니다. 구미상모교회에서 1억을 후원해 주고 우리 교회가 헌금을 하고 해서 빚이 줄었습니다. 아이엠에프 같으면 어려울 텐데 지금은 이자가 많이 내려가서 이자 부담은 그렇게 힘들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건축헌금으로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실 때 목사님의 핸디캡은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제가 제일 힘들 때가 처음 개척했을 때 두 번 철거해야 할 때였습니다. 교회가 들어오는 것을 주민들이 좋아하지를 않았습니다. 준공검사가 안 된 건물에 교회가 들어왔다는 것을 빌미로 구청에 고발해서 준공검사를 안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한 달 동안 철거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건물 주인하고 뒷집하고 건물 경계 때문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지하를 쓰고 있는 데도 용도변경을 안 하고 쓴다며 고발을 해서 철거를 하고 보름 동안 교회 예배당 사용을 못 했습니다. 그리고 한 3년쯤 지나 시력 장애가 심해져서 길을 건널 때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보이지 않아 소리로 알아야만 하고 길이 두세 개로 겹쳐 보이는 겁니다. 시력이 현격하게 나빠져서 사람이나 사물을 거의 못 알아보는 지경까지 간 겁니다. 그때는 교회가 기초가 선 것도 아니고 식구도 하나 더 늘어 둘째 딸이 생기고 지하실에서 어머니도 모시고 있는데 시력까지 나빠지니 절망이 오더라고요. 저는 운전도 못하죠. 다른 목사님들은 사역하고 전도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절망에 빠지니까 꼼짝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런 상황 가운데 가이드포스트에서 1980년대 미국 드라마에서 맥가이버의 상관 배역을 했던 사람의 간증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45세에 시각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가 시력을 잃고 나서 생각하니 시력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가 45년 동안 보게 해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시력을 잃거나 빼앗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가져가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앞을 못 봐도 기도는 할 수 있고 전화를 하는 일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목회를 하자. 내가 못 하는 거나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목사님들이 해 줄 것이니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생각을 바꾸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전에는 오토바이도 타고 다니면서 심방을 하고 전도를 했었습니다. 그것도 못 하고 할 수 없는 그때부터 교회가 조금씩 일어서기 시작하는 겁니다.” ―교인들이 찾아오는 겁니까.“예, 그러는 겁니다. 내가 뛴다고 교회가 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것이지요. 그때부터 교회가 일어서고 지하실도 채워지는 겁니다. 그때 선교원도 하고 있었는데 교회가 23평인데 실평수는 한 18평 되는 거죠. 2층을 임대하여 운영하던 어린이선교원도 어린이들이 그때 80명까지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옮기려고 더 넓은 곳을 찾으니까 건물을 빌려주지를 않는 거예요. 계약까지 해도 깨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를 바꾸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형편은 땅 한 평을 사기도 어려웠습니다. 제주도는 임대료도 1년치를 선불로 내게 되어 있습니다. 임대료를 빌려 집세를 내고 매달 갚아나갔습니다. 그런데 임대조차 힘드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게 몇 년도였습니까.“95년도였습니다. 사실 기도는 94년부터 하기는 했습니다만 이제 본격적으로 교회를 짓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땅이 나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을 헌납하신 것과 성도들의 헌금, 대출금 등을 합쳐 222평의 땅을 샀습니다. 땅이 있으니까 조립식 건물이라도 지을까 하다가 지하실 예배당이라도 파자해서 예배당을 마련해 예배를 드리게 됐죠. 그리고 주변이 택지로 바뀌어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해서 교회가 먼저 준비하자는 믿음에서 2011년에 지금의 예배당을 증축하고 리모델링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교회가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교회가 제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요사이는 육지에서 오신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도교회가 이제는 제주도에서 모범적인 교회이겠는 데요. “자립하는 교회임에 감사하며 좋은 모델이 되고자 꿈꾸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총회적으로 이도교회가 자립교회 안에 들어간 겁니다. “예산이나 재정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빚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총신 몇 회시죠. “79회입니다.” ―이제 고참인데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십시오. “제가 겪은 바로는 목회자는 한 곳에 오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주도에 올 때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라는 걸 반드시 기억하라고 권면해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라는 걸 고백하고 잊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은 이동수 집사님이라고 구미제일교회에서 만난 분인데 술 마시고 교회 앞에서 행패부리는 남편을 장로로 변화시킨 집사님입니다. 전국여전회연합회 회장도 지내신 분입니다. 지금은 권사님이 되셨겠죠. 그분의 권면은 제가 힘들 때마다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니 책임져 주시고 도와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세월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제2의 인생이 허락된다면 이도교회를 위해서는 적당한 시기에 은퇴해 후임에게 물려주고 또 다른 사역으로 파송을 받고 싶습니다. 젊은 세대를 위해서 그런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훌륭한 목회자라도 끝낼 때 교회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회의 끝마무리도 아름답길 원합니다, 일평생 헌신하시다가, 은퇴 후에 대책이 없으신 목회자들을 위해 은퇴 목회자들의 자립 및 선교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주가 가장 적합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하여 제주총회수양관 예정부지가 제주노회로 이관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저와 제주노회 목회자들이 갖고 있습니다,” ―제주수양관이 완성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저희 제주노회만 해도 70대가 몇 분 되고, 60대가 12명, 50대가 15명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갈 데가 없는 은퇴목사들의 자립 공동체가 정말 필요합니다. 총회가 2010년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 수양관 건립 부지 매입으로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대지 2414평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총회에서 계획하고 결의한 대로 수양관 규모를 축소해서 지어주시든지(총회임원회와 총회유지재단은 2010년 3월 19일 전국 노회 임원을 초청한 가운데 제주도에서 기공예배를 드렸다), 아니면 저희 제주노회에 부지를 이관해 주시든지(통합측 총회는 100억대 이기풍선교관을 제주노회에 이관하였음),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2010년 구입가로 제주노회가 분할 상환할 수 있게 해 주시든지,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장기임대라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총회유지재단이사회(이사장:서정배 목사)는 2010년 8월 20일 총회회관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제주선교100주년기념수양관 건축을 건축위원회에 전권을 맡겨 제95회 총회 보고 전까지 설계 계약하여 시행하기로 결의했다. 건축위원은 변우상 이태선 최병현 이치우 목사, 최병철 김원래 천충길 장로 등 7인이다. 이와 함께 제주선교100주년기념수양관 건축위원회 사업계획을 용역업체 예다움건축사로부터 보고받고 진행키로 했다. 총회유지재단이사회(이사장:김삼봉 목사)는 2010년 11월 30일 총회장실에서 회의를 열고 제주수양관 착공시기를 공사 예상금액의 70%가 확보된 후 시행키로 가결했다. 이로써 180억원이 예상되는 제주수양관은 건축기금의 126억원이 마련돼야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그럴듯한 단서를 달아놓고 그들은 너나없이 몰려든 아이티 구호헌금 요리에 정신이 팔렸다. 그래서 올곧다는 제99회 총회장 백남선과 총무 김창수조차 한국과 미국의 총신과 납골당 문제에 골몰한 나머지 2015년 4월 현재까지도 제주도총회수양관에 대한 2009년 제94회 총회(증경총회장이면서 현 법인찬송가공회 이사장 서정배) 결의 시행여부가 오리무중이다. 201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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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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