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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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샘광천교회 이문희 목사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웃음과 웃음소리가 태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1972년 3월 12일 성북구 석관동 소재 건물 2층에서 97명이 창립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해 1973년 4월 23일 박병진 목사가 제1대 위임을 받았다. 박병진 목사는 1924년 평남 출생으로 남산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저서로는 ‘교회정치 문답 조례’, ‘권징 조례-교회재판 편람’, ‘예배와 예식’, ‘교회헌법 대전’ 등 20여 권의 교회헌법 관련 저술을 펴낸 98세 현역 교회헌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 이후 1980년 제2대 윤도영 목사에 이어 1986년 제3대 장정일 목사 때 광천교회 성장의 틀과 토대가 완전히 잡혔다. 평소 선교의 열망이 커 해외 선교에 많은 후원을 하던 장정일 목사 자신이 선교사로 떠나면서 대학부 지도 부목사 이문희 목사가 1990년 제4대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문희 목사의 목회로 광천교회가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에는 한국 최대 장로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4회 총회(총회장 김도빈 목사) 때 광천교회 정동원 장로가 부총회장에 선출되는 쾌거도 있었다. 이문희 목사는 교세에 맞는 지금의 새 성전을 건축하고 2009년 8월 2일 맑은샘광천교회로 개명했다. 이문희 목사는 부임 28년째 되던 2018년 8월 2일 원로목사로 추대받는 날 후임 김현중 목사를 제5대 위임목사로 세웠다. 교인들이 결정한 김현중 목사는 후임 후보 가운데 일인으로 이문희 목사와 일면식도 없는 목사였다. 이문열의 장편 소설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이동영이 말했다. "언제든 때가 오면 나는 맑고 깨끗한 이념, 자유와 평등에 대한 더렵혀지지 않은 열정을 품은 채 이 대지를 떠나겠다." 그렇듯 이문희 목사도 표연히 떠났다. 물러난 뒤 죽기까지 자신이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 앞 건물 사무실을 떠나지 않은 조용기 목사와 달리... 이문희 목사가 광천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몇 년 뒤 같은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직원 기독인 회 회원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고 한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 카이스트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광천교회 이문희 목사님 설교가 좋아 좋은 설교 들으려고 주일마다 강남에 가지 않아도 돼." 2017년 9월 1일 기독신문에 실린 '자살 예방과 교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시론에 그런 이문희 목사 설교의 편린을 엿볼 수 있겠다.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의 의미는 이제 국가가 직접 자살을 예방하고 사회에 생명존중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를 표명한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불과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약 6000여 명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시무하는 맑은샘광천교회도 지난 4월 부활주일에 생명보듬페스티벌(Life Walking)을 시행했다. 개 교회에서 진행한 행사지만 생명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행사였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를 부여하면서 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했다. 특별히 안전사고예방 차원에서 경찰서에서 교통 안내를 해 주고 중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거 참여시켜 생명의 가치를 나누며 행진하는 뜻깊은 행사를 했다... 교회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그분을 우리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생명의 가치를 이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절망하며 삶조차 버겁게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를 전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자살 예방 활동이라고 믿는다. 이 일에 한국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도전하고 싶다." 이문희 목사는 교회 이름을 맑은샘광천교회로 바꾸고 그렇게 실천했다. 샘 (泉)은 지하수가 지표로 흘러나오는 곳이다. 지하를 지나는 동안 불순물이 여과 되어서 광물 성분이 녹아 있는 물이 되고 그래서 샘에서 나오는 물을 샘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지 4년 2022년 3월 12일 설립 50주년이 됐다. 제주도 해풍에 세진듯 흰머리가 안개처럼 자욱한 이문희 목사가 5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해 축사를 맑고 잔잔하게 전했다. "축하드립니다. 90여 분이 박병진 목사님과 교회를 시작해 참 많은 수고와 눈물들이 마침내 열매를 맺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희 맑은샘광천교회는 참 좋은 풍토가 있습니다. 세 분 목사님이 떠나가신 다음에 제가 부임을 했습니다. 전임자가 떠나고 후임자가 올 때는 갈등이 많습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다툼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저희 교회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임해서 보니까 전임 세 분이 모두 교회를 부흥시키셨습니다. 부흥시키지 않은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남겨놓고 가셨고 제가 그 풍토 밑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다 오시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상징을 꼽자면 틀림없이 ‘하트’가 첫손에 들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워도 문자에 하트를 붙이거나 손 하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뭇잎 모양 빨간 하트가 사랑의 상징으로 통용된 건 14세기 초부터다. 그 전까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하트는 진짜 심장을 닮은 긴 솔방울 모양으로 그려졌고 이는 예수님의 ‘성심(聖心)’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맑은샘 이문희 목사에게 진심으로 예수님의 성심을 본뜬 손 하트를 보낸다.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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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점차 변한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바로 지구가 자전하는 축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 있다. 이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고, 태양 광선이 지표면을 비추는 일조시간에 햇볕이 얼마나 세게 얼마나 오래 내리쬐는지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선 일 년을 24절기로 나눠 한 달에 두 번씩 절기가 찾아온다. 2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있다. 올해의 경우 2월에 설날도 있었다. 설날은 달의 움직임을 따른 음력의 1월 1일이다. 이와 달리 절기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상에서 태양의 위치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돌 때마다 하나씩 해서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기준을 세웠다. 그래서 설날은 절기가 아니라 명절이다. 우리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모두 달력을 보고 안다. 그러나 자연에 사는 생명체들은 달력 없이도 기가 막히게 시간의 흐름을 알고 저마다 계절에 맞게 적응해 살아간다. 일 년 중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입춘을 지나 나들이를 나서면 땅속에서 솟아 나올 준비를 하는 새싹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고 여린 새싹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꽤 자라 큰 모습의 풀을 만날 수도 있다. 도심에서도 공원이나 화단을 보면 살아있는 풀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시장에 가면 벌써 냉이가 나와 있다. 그걸 보고 ‘벌써 냉이가 나왔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이의 내력을 알면 아마 아! 하는 탄성이 새싹처럼 나올 것이다. 사실 봄나물 냉이는 지난해 가을에 이미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싹이 돋아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라나 꽃을 피우는 거다. 이런 풀들은 바닥에 붙어 수평으로 나온 잎이 장미꽃 모양이어서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이라고 부른다. 또한, 잎이 방석같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방석 식물’이라고도 한다. 민들레, 냉이, 달맞이꽃, 질경이와 같은 로제트 식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쉽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그들의 전략은 참 놀랍다. 풀이지만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몇 가지 멋진 작전을 세운다. 첫 번째는 키를 낮추고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작전이다. 줄기가 짧고 잎을 땅에 붙은 듯이 내보내 엎드려서 겨울의 추운 바람을 피하는 것이다. 이때 잎을 넓게 사방으로 뻗어서 적은 양의 햇빛이라도 최대한 받는 게 두 번째 작전이다. 세 번째는 땅에 바짝 붙은 만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이용하는 거다. 건강한 숲속 땅이라면 낙엽이나 다양한 미생물들로 인해 온도가 조금 더 높기 때문이다. 꽤 많은 종류의 로제트 식물은 몸에 잘게 솜털이 나는데 이 털도 추운 겨울을 견디는 데 활용한다. 그렇다면 로제트 식물은 왜 가을에 싹을 내서 힘든 겨울을 견디는 걸까. 다른 식물이 싹을 내기 전에 미리 싹을 내고 있다가 봄이 되어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워서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로제트 식물 대부분은 1년에 두 번 이상 번식하는데 아마도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이 번식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키도 작고 땅에 붙어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풀들에도 이렇듯 놀라운 삶의 전략이 숨어있다. 그런데 만약 춥고 힘든 겨울이 없다면 로제트 식물은 어떻게 될까. 겨울이 없다면 다른 풀들도 얼어 죽지 않고 이 시간을 지냈을 것이다. 그러면 애초에 경쟁을 피해 누구보다 빨리 꽃가루받이를 하려던 로제트 식물들은 유리한 위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대부분 풀은 죽게 되고 로제트 식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시련이지만 이 시련을 기회로 삼아버린 로제트 식물. 우리 목사의 삶 또한 이와 같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을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작은 냉이 같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아는 믿음이다. 뛰어난 실력과 엄청난 운이나 타고난 재능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을 이루는 믿음 앞에선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는 2021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시 삼천동에 있는 전북신학교에 도착했다. 전북신학교는 1971년 3월 25일에 전주 북문교회에서 개교하여 1972년 9월23일 제57회 총회에서 총회 인준을 받았다. 1988년 현 위치인 전주시 삼천동 11,000여 평 대지 450평 본관을 지닌 학교다. 2층 학장실에서 한기영 목사(전주은강교회 총신 84회 61세)를 만났다. 그는 한때 전북을 기반으로 총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김백경 목사(총신 73회)의 혹독한 시절을 잘 견딘 냉이 같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의 용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내면은 크다. 그래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임이나 공동체를 화합시키고 세우는 조정 역할을 잘 감당해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이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리폼드투데이)가 한기영 목사와의 대담을 이끌었다. 1. 제106회 총회 임원 후보로 준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합동 총회의 목사로서 총회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여러 회 총회를 출입하면서 저에게도 앞서서 총회를 섬길 기회가 오겠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년 106회기는 순환적 임원 구성이 우리 중부호남지역 회원들 사이에 제가 임원 후보로 거명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좀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만일 기회가 주어지면 총회 공동체를 위해서 부회록 서기로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합동 총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임원으로 섬길 기회를 주면 그동안 생각했던 아쉬움과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미력이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섬겨볼 각오입니다. 화평과 화합의 균형추(조정자)가 되겠습니다. 2.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첫째로 부임원으로 섬길 때는 함께 묶인 임원들을 잘 섬기며 좋은 호흡을 맞춰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 믿음의 원리와 상식이 통하는 임원회가 총회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우리 총회가 사무 행정을 펼쳐 나감에 있어서 먼저 교회와 노회를 돕고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정직하고 바르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함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제 임무를 은혜롭고 덕스럽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총회에 큰 그림을 그리고 회기별 연계성이 있게 서로를 존중하며 진행해 가자고 제안하고 곁에서 돕고 섬기려고 합니다. 지금의 시대 변화와 현실적 필요를 잘 분석하고 정말 선진 총회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논쟁과 싸움은 그치고 보다 발전적 전략을 수립하게 모든 기관이 통합적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처럼 저는 소박하게 세워주신 총회장을 잘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3. 교단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소견이 있다면? 우리 교단 리더들의 생각이 건강한 개혁주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총신신대원과 신학교들을 다시 잘 살펴서 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솔선해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총회도 이제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섬겨오고 현재도 학장을 맡고 있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이미 있는 좋은 인프라를 잘 활용하여 우리 지도자들을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총회가 더욱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행정과 정치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해주는 총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나아갈 방향과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1) 목회자 수급에 대한 조사와 신대원의 운영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2) 도시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의 목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합니다.(다양한 목회 전략과 좋은 콘텐츠 제공, 자립 방안의 구체적 사례 연구와 적용) 3)목회자 은퇴자를 위해 상설위원회를 설치하여 은퇴를 앞둔 목회자의 처우를 준비해야 합니다. 5.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목회의 위기감이 엄습해 옵니다. 교회의 장래가 염려되는 것을 넘어 교회의 무너짐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 가지 교회의 연약함이 더욱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그 어려움은 공교회 예배와 주일성수, 모이는 교회와 봉사와 섬김에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청년들의 신앙교육, 전도 등이 어려움으로 다가와 많은 지역 교회들이 소멸할 것 같습니다. 지역 노회들이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여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교회 합병, 교회 연합 등). 6.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오랫동안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 왔습니다. 저 자신이 개척하여 섬긴 교회도 있지만 개미목(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후배 개척 목회자들을 다각적으로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이사 임원으로 학생처장으로 실무를 감당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미력하지만 돕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 왔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교회 세움과 성장 컨설팅을 하고 싶습니다. 제 목회 철학은 골3:23 말씀을 모토로 ‘성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자’입니다. 전주은강교회 한기영 목사 프로필 ◆총회 주요이력 : 현)총회 정치부 서기, 경기북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총회실행위원, GMS이사, 호남협의회 감사총회인준전북신학교 학장. 총회지방신학교협의회 회장. ◆전)제103회 면려부 부장, 평서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산서노회조사처리위원회 서기, 대구동노회조사처리위원장, 학원선교위원, 개혁사상특별위원, 전북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호남제주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제105회 총회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사회기관 : 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 원장, 사)나눔과기쁨 전북상임대표, 전주시장로교연합회 선임회장 전주완산경찰서 경목위원 ◆학력 : 경기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북신학교 대학부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84회 졸업, 칼빈대학교 대학원(Th.M) 플러신학대학 대학원(D.min)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같은 믿음의 목사들은 시련을 견디고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티며 실패에서 배우고 끝까지 해내며 마침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취를 제104회 총회장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처럼 손에 넣는다. 그렇듯 목회자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한 가지는 바로 믿음이다. 교회를 살리는 목회와 총회를 세우는 정치에 있어 실력과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믿음이 약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돌아오는 길은 서설(瑞雪)인 듯 눈이 드문 전주임에도 큰 눈이 내렸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1-4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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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5
  • 살림 이종석 목사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물음에 이종석 목사는 이런 뜻의 대답을 했다.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 잠깐 하늘과 땅이 기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년 10월 16일 - 1900년 11월 30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가는 곳마다 행복이 되고,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이 된다 Some cause happiness wherever they go. Others whenever they go.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살림’이란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다. 즉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사람을 잘 살리고 있다’라는 말이다. 예로부터 한글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 말은 ‘돈을 많이 아꼈다’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은 은덕을 잘 쌓았는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개의 가정은 '살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무턱대고 돈을 아끼는 것을 살림으로 착각하고 있고, 아내는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만을 살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돈 몇 푼 때문에 소중하게 맺은 부부의 인연까지 흔들리고 있다. 살림은 여자만 하는 것도, 남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잘 살리는 일은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돈만으로는 남을 살릴 수 없다. 우선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 교인의 삶을 돌보아야 한다. 목회자에게 살림은 가정을 잘 살리는 일이고 동시에 내 교회를 잘 살리고 잘 다스리는 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의 살림을 잘 해야 인생의 살림꾼을 넘어 믿음의 살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종석 목사는 살림꾼이다. 의사가 돌보던 어떤 환자는 임종 직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가까이 오자 “내 돈 2억 갚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환자들은 “10년 더 살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의사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곤 한다고 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소망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 회원사(더굳뉴스, 리폼드투데이, 좋은신문, 합동투데이)는 신년을 맞이하여 제106회 총회 임원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을 차례로 인터뷰하고 있다. 세 번째 순서로 부서기에 도전하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를 만나기 위해 2021년 2월 2일 11시 광교제일교회를 찾았다. 총회 두루 발길이 닿는 박철수 목사가 평생 동지 이종석 목사(총신 80회)를 돕기 위해 함께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가 대담을 이끌었다. 1. 금년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교회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교회 또한 세상을 향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우리 교단 내 목사님들이나 총대들도 현 총회 운영에 대해 신뢰보다는 불신이 더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일까요? 그것은 법과 규칙의 자의적 해석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도 흔히 들립니다. 부족하지만 법학사로서의 지식과 총신인으로서의 신앙 양심을 통하여 총회를 좀 더 깨끗하게 섬겨보고 싶고, 특히 약자의 편에 서서 저들의 소리를 듣고, 총회 안에 억울한 사람이나 노회가 없도록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임원으로 출마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아웃사이더(outsider)에게 비난은 할 수 있지만 세워 가는 일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총회 임원이라고 해서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한 욕심 내지 않겠습니다. 할 수 없는 약속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물으셨으니까 적어도 이 세 가지는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 총회 화합입니다. 먼저는 임원들 간에 화합을 도모하는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섬기겠습니다. 총회장님을 비롯해 임원들 상호 간에 협력하고 잘 도우면서 일을 하겠습니다. 서기 일을 하다 보면 각 노회에서 올라오는 여러 사건이나 서류를 접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정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법과 규칙을 따라 물 흐르듯 하는 행정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힘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대들에게 나서는 일보다는 섬기는 일을 하려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총회가 끼어들어 노회나 개 교회의 일을 더 큰 문제로 만드는 정치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는 분쟁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해결의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지 오히려 문제를 재생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 2). 교회의 예배 회복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작금 한국 교회는 예배의 위기 앞에 서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지만, 예배에 대한 바른 지침이 별로 없습니다. 당장 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에 대한 우리 총회의 명확한 기준이나 입장 표명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총회 임원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교단 내 교회를 지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예배의 회복입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고른 인재의 등용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를 보면 늘 그 인물에 그 인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경험과 경륜이 중요하다 보니 쓰던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인물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각 위원회나 특별 위원 배정을 할 때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 찾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임원들에게 부여된 최고의 사명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편향된 인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선거에서 같이 경쟁했던 인물이라도 유능한 인물을 고르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3. 교단 차원에서 시급한 선결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뢰 회복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 일도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 교단의 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던 은급재단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총신 문제도 결국은 서로가 믿지 못함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지금 총회 회관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이전이냐를 두고도 많은 논의가 있고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 일도 모든 총회 구성원 간에 믿음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선관위도 그렇고 재판국의 판결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총회 임원회도 총대들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뢰 회복이라는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믿음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약속한 것은 손해가 나도 지키고 서로가, 아니 총회 임원들부터 지도자들이 먼저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우리 합동 교단은 정말 큰일도 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코로나 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 되는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교인 수의 감소일 것입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어느 정도 회복 되어진다 해도 많은 수의 교인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 헌금의 감소로 직결될 것이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서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나아가 예배 형태도 많은 변화가 올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이미 많은 성도들이 비대면 예배라는 달콤함에 맛 들어 버렸습니다. 온라인 예배, 방송 전파를 통한 유명 목사님들의 예배가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서는 아무래도 교회의 주일학교일 것입니다. 어른들보다 더 심각하지요. 다음 세대가 걱정입니다. 이를 어떻게 다시 세울지 많은 기도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우리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하고 싶었고,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하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새벽 기도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지시보다는 솔선수범하고, 섬김의 목회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 절대 주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 여생은 한국 교회를 위하여 조그만 보탬이 되고 싶고, 정년이 끝나면 시골로 내려가 아내와 함께 시골 교회를 섬기며 조용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허락된다면 구약성경 공부를 위한 책을 써 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6.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녀교육이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자녀교육이라고 해서 제가 특별히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잘해줬어요. 지금 딸은 결혼해서 초등학교 4학년 되는 아들과 일곱 살 아들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지금 현재 목사입니다. 제가 개척하는 걸 다 본 아들인데 홍익대 사범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가서 3학년 때 군대 다녀와서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중국 우루무치에 계시는 선교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 가서 선교사님 자녀들 교육도 하고 선교사님도 도우면서 선교를 좀 배우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일테니까 그래서 보냈습니다. 한 6개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루무치 현지 대학에서 언어 공부도 했습니다. 6개월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온 김에 6개월만 더 있다 오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을 갔다 오더니 저한테 ‘대학 졸업을 하고 신학을 하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한 번도 신학을 하라는 말을 안 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너 신학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정말 가서 보니 선교사들이 너무 어렵고 힘드시더라. 그래서 한국에 있는 교회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느라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선교사들이 정말 선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국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너 나중에 선교사로 갈 생각이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자기는 선교사 스타일이나 체질이 아니고 자기는 선교사를 보내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겁니다. 네 뜻이 그러면 한번 공부해 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홍익대 졸업하고 총신신대원을 갔는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저 제주도에 가겠습니다.’ 왜 제주도에 가느냐 했더니 제주도의 작은 교회가 교육전도사를 구하고 있는데 교육전도사를 못 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게 너한테 좋은 기회일 수 있다며 허락했습니다. 제주도를 가니까 교육전도사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됩니다. 여기 광교에서 김포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로 제주도에 갑니다. 그리고 교회까지 버스로 가는 겁니다. 주일날 교회 사역을 하고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오는 겁니다. 그걸 한 1년, 저 녀석이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 하고 나더니 하는 말이 ’아버지. 아무래도 제가 떠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졸업하고 김종준 목사님의 꽃동산교회 부임해서 초등부를 맡아 1년 하고 사랑의교회로 갔습니다. 사랑의교회에서 지금 4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했는데 제 며느리도 총신신대원 졸업했는데 둘이 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녀교육에 대해 특별한 것은 없는데 아이들이 볼 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죠. ‘좋은신문’의 지용길 목사가 말을 거들었다. “삶으로 다 보여주셨네요.” 최장일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 다 하셨네요.” 일동 웃음. 이종석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를 말씀하시는데 세상 적으로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뭘 가지고 교회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척하러 올 때에도 제가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고 와서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하고 중도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해주셨습니다. 그때그때마다. IMF 만나 여기 땅을 사러 올 때도 교회 건축하는 것도 돈이 있어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뭔 돈으로 할 거냐,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랬습니다. ‘나도 무슨 돈으로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하면 될 것 같아.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하니 되더라고요. 새로 이 교회를 지을 때도 그 당시 적립된 돈이 잘 해야 한 2억 정도였습니다. 그건 설계비 정도밖에 되지 않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다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 그러다 큰코 다친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으니까 절대로 잘못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은퇴준비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잘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설날 아침, 주위를 둘러보면 북적북적 마주 앉은 친지들,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 식당과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이리라 믿는다. 일 년 뒤 오늘의 모습은 일 년 전 오늘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꿈만 꿀 것인가, 꿈을 이뤄낼 것인가. 작가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에서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썼다. ‘당신은 꿈을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했나요.’ 그날의 빛... 광교제일교회 예배당에 들어선 순간 벅차오르던 잔잔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 1월 한낮의 태양 빛이 벽에 뚫린 창틈으로 들어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양식의 예배당을 비추고 있었다. 처음엔 투명한 빛이었다가 틈새 사이로 흔들리는 조명 빛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인류가 세운 모든 종교 건축의 지향점이 똑같지 않을까. 신성하면서 미적으로 뛰어난 공간,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행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건물. 인도의 아잔타 석굴부터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까지 수많은 종교 건축물이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새로운 기준이 된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 건축에도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가 됐다. 예배를 드리되 접촉은 피하기, 2m씩 떨어져 앉기... 바이러스 전파는 최대한 막아내면서 '믿음'과 '신앙'이란 목적을 담아내는 기발한 상상력이 등장하지 않을까. 먼 훗날, 이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새 건축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지. 건축가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 이종석 목사 프로필 총신 신대원 80회 졸업 총회 정치부장(제102회기) 총회 특별 재판국원(제104회기) 총회 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실행위원, GMS 이사 역임 현 기독신문 이사 한장총 부흥사회 제34대 대표회장 재경영남교직자 협의회 상임회장 AGM(아시아 복음 선교회) 상임회장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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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4
  • 대나무 한종욱 목사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대나무는 곧고 높아진다. 대나무는 이름에 나무가 들어가 있어 나무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라 풀 종류에 속한다. 풀과 나무를 가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단단한 부분(목질부)이 있느냐, 또 하나는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하느냐다. 대나무는 단단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형성층이 없다. 이 말은 키는 커지지만 굵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대나무의 구조와 나이테를 이해하면 바로 감이 올 수 있다. 식물의 ‘나이테’라는 것은 옆으로 성장하면서 계절의 차에 의해 생기는 흔적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으니 나이테가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곧고 높아질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나무는 불에 타도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1년 우리는 전 세계적 감염 위기를 만났다. 하지만 더 자라고 단단해졌다.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면서도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제퍼슨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직(Honesty)을 최선의 정책으로 중시했다. 그렇듯 리더의 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정직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조국 사태에서 정직과 거리가 먼 위선과 이중잣대의 심연을 봤고 추미애를 통해 말이 굽은 독선과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를 목도했다. 이런 시대 우리 총회에 대나무 같은 모습과 성정을 닮은 인물이 있다. 그는 1994년 4월 22일 군산노회 등대교회를 개척해 26년째 주민과 함께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신장염에 걸렸다. 그 병의 치료 과정은 그를 믿음과 목사의 길로 이끌었다. 군산에서는 ‘거리의 전도자’로 유명해 오가는 택시 기사들이 그에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는 제102회 총회 상비부 사회부장 역임한 한종욱 목사이다. 2021년 1월 26일 오전 11시 인천 영종도에 있는 웨스턴 그레이스호텔에서 제37회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육수복 목사가 취임했다. 그 모임의 식사 뒤 오후 1시 12분 제106회 총회 부서기 후보 출마 예정자 한종욱 목사(58)와 ‘총신언론인회’가 회장 최장일 목사의 사회로 공동 인터뷰를 했다. 아름다운 바다의 밀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호텔 로비 창가였다. 1. 금년에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합동총회 임원이 된다는 것은 ‘예장합동 산하 전체 노회와 교회 및 기관’이라는 하나 된 교회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전체로서의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가 되는 것입니다. 총회의 임원이 되려는 뜻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함이며, 총회라는 보다 큰 “교회”를 통해 전국교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또한 전북기독교총연합회 상임총무, 군산기독교연합회사무총장, 군산시장로교연합회 회장, 전북장로교연합회 회장 등 지역교회 연합운동의 경험으로 총회에서도 각 교단과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아울러 본 교단의 위상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합니다. 제가 임원이 되면, 기능적으로 총회의 행정과 역량을 강화하고 질서를 바르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열정을 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에 소명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저는 부서기로 출마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당선하게 된다면, 제게 주어진 직무에 집중할 것입니다. 교단 헌법이 제시하는 바를 따라 총회가 위임해 준 사항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 총회 행정시스템의 현대화.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정보를 지니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성공과 실패의 관건입니다. 즉 정보와 처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현대를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행정시스템 자체의 개편과 그것을 뒷바침하는 전산정보시스템의 구축을 비롯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 방안까지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운영자 중심의 즉흥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총회의 행정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총회의 시스템이 운용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인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교단 내의 모든 인재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2) 교단 내 각종 분쟁의 최소화와 신속한 해결 교단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전쟁터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분쟁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총신 사태가 그러했고 각 교회 및 노회의 분쟁이 그러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기독신문의 갈등도 있습니다. 지금 화해조정위원회가 있고 또 헌법자문위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특별위원회들이 만들어져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주어진 자리를 통해서 각종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며, 최소화하고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그것을 총회의 분쟁관리 매뉴얼로 확립하고 싶습니다. 3) 교단 내 목회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수립 초기에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은급재단의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지만, 납골당 사태가 발생함으로 어느 누구도 은급재단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단 산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안정적 생활기반 위에서 소신 있는 목회를 해가며,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교회미래자립위원회에서 미자립교회에 재정적 지원과는 별도로 농촌에서는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땅을 무상으로 빌려서 화초, 건강식품 등을 무농약재배, 유기농산물 재배하여 도시교회와 연결하여 서로 상생하는 것을 구축할 것입니다. 도시교회 미자립교회는 바리스타, 컴퓨터 강사, 디자인 강사, 개인특기조합을 결정하여 틈나는 대로 소득을 올려 스스로 일어서도록 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교단 적 차원에서의 대사회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거나, 교단 산하 지교회들이 효율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교육과 활동, 대사회적 섬김과 봉사시스템의 구축(대사회적 복지재단운영), 교단법의 제도적 발전과 권징 체계의 개편을 위해 교단신학교에 교회법전문대학원 개설 등과 같은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3. 합동교단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교단은 대한민국 최대의 교단이며,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선도해야 하며, 또 한국사회를 향해 기독교적 가치를 선명하게 제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예배회복을 위한 회개와 성결 운동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회개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대단한 일을 이룬다고 해도 회개가 없다면 모래 위에 세운 집에 불과합니다. 목회자들이 경건을 회복하고, 당회가 경건을 회복하고, 교단의 모든 지도자가 다시금 경건을 회복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다시금 교단과 교회를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4.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여야 하는 교회가 더 이상 모일 수 없게 되고,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간접적 만남을 추구할 뿐입니다. 다행히 현대적 기술의 발전으로 실시간 방송 예배, 또는 줌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활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코로나19는 예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배의 회복과 대사회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코로나는 유튜브를 통한 영상예배와 줌을 통한 교육 등 단지 교회의 시설물에 갇혀 진행되던 모든 것을 보다 폭넓게 열어두었으며, 동시에 영상 기술의 활용을 통한 교회 교육의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위기에서 배운 다양한 기술을 통해 교육과 선교사역에서 더 큰 발전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목사들을 돕고 싶다.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주민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여 개방하고, 주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길거리 전도를 수년간 해왔고, 지금은 맨투맨으로 전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윈윈해야 합니다. 지역교회에 꾸준히 협력과 봉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전도입니다. 전국 5일장 마다 다니면서 생선도 팔고, 복음도 전하면서 지역에 맛있는 것도 먹고 전국을 다닐 것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십자가가 굳게 서고, 복음의 깃발이 휘날릴 수 있다면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김준곤 목사님이 주장하셨던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건강비결을 물었다. 그는 새벽기도가 끝나면 헬스장에서 2시간가량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평생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대나무 같은 어조와 꼿꼿한 자세로 말했다.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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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9
  • 영광대교회 김용대 목사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라고 윤동주는 노래했다.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 도입부는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린다.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의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 묘사를 수행의 간결체를 통해 서술함으로써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설국’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조에쓰선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오면 펼쳐지는 그곳은 일본의 니가타(新潟)현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에치고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작가는 ‘국경을 넘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동해에서 몰아치는 눈바람은 에치고산맥을 넘지 못하고 니가타에 눈을 쏟아낸다. 니가타는 하룻밤 새 1m가 넘는 눈이 내리는 대설지역이다. 눈(雪)은 기상 현상의 한 종류로 기온이 섭씨 0℃ 아래로 떨어져 구름 안의 물 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결정화된 것이다. 남극·북극의 두터운 얼음층과 빙하는 오랜 기간 눈이 쌓여 형성되었다. 눈은 여러 가지의 결정이 단독으로 내리는 경우와 여러 개의 결정이 붙어서 눈송이가 되어 내리는 경우가 있다. 송이로 된 눈을 함박눈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 때 내린다.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들이 눈을 생성하는 핵의 역할을 한다. 미세한 핵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 알갱이가 되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계속 달라붙어 결정이 커지게 된다. 눈이 많이 내리는 서해안 같은 경우 물론 저기압 또는 전선에 의해 눈이 오기도 하겠지만 대기 온도와 해수 온도 경도가 발생하여 생기는 해기 차이가 대부분 서해안에서 내리는 눈의 원인이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도 원래 三白(삼백)이 으뜸이라고 했다. 삼백이란 눈(雪), 소금(鹽), 쌀(米)이라고 한다. 전남 서해안에 눈이 내리면 적설량이 가장 많은 곳이 영광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1월 3일 전남 영광의 영광대교회 앞엔 아무 표정 없이 눈이 소금과 쌀처럼 하얗게 수북했다. 영광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 20분이었다. 1905년 5월 7일 배유지(Eugene Bell) 선교사의 전도 열매로 영광읍 무령리에 세워진 영광대교회는 설립 116년 되는 교회다. 한국교회 역사의 초창기 기억부터 소중히 간직한 교회에 시무하는 김용대 목사는 2009년 7월 1일 부임했다. 2021년 1월 3일 영광대교회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 예배라 20명만 참석하는 데 감사원의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총회 감사부 오광춘 장로의 배려로 다른 분을 내려오시게 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 준비 찬송이 끝나고 김용대 목사가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된 강단에 섰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주일입니다. 이렇게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성탄 무렵 어떤 분이 제게 글을 보냈는데요. ‘성탄절을 맞이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렇게 방역지침이 확대되어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인지 무엇인지 너무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다’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했습니다. 코로나든 전쟁이든 기근이든 무엇이든 성탄절의 기쁨을 바꿀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도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주일은 코로나든 전쟁이든 지진이든 기근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주일의 의무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덮을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각 처소에서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그 무엇도 덮을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만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은혜가 새해 첫 주일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 같이 묵상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르간 전주가 ‘만세 반석 열리니’로 예배의 문을 묵직하게 열었다.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김용대 목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소강석 총회장의 활동 범위가 제약을 받는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소강석 목사님이 활동을 많이 하셔야 되는데.” 김용대 목사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소강석 총회장은 내가 볼 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끌어내시더라고요. 어찌 됐든 소 목사님은 활동적인 분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둬야 됩니다.” “그렇죠. 그게 좀 아쉽다는 거죠. 활동을 많이 하실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어서 제한된 가운데 하시긴 하지만...” “그게 좀 아쉬워요.” “가장 능력있는 분이 가장 어렵게 됐어요. 교단이나 교계에서도 바람직한 일인데... 하나님 뜻이죠.” “그러고 보니까 식사대접도 못 하네. (사모님에게 뭐라 말한다.) 어허 세상에.” “차 한 잔이면 되죠.” “어허 이거 어쩌지. 많이 드시지도 않지만.” “말씀 받았잖아요.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오셨다.) 저한테도 필요한 말씀이었는데.” “광주에도 큰 교회들이 많은데 시골까지 오셔서.” “시골이 아니라 영광대교회에 김용대 목사님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진 기본적인 신앙과 자원이 있는데 저는 제 앞에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거의 그럽니다. 안 그러면 화병(火病) 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지난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정리가 됐었는데 우리 오광춘 장로님이 엄청 서운했던 거 봐요. 우리 지역에는 같은 노회 한기승 목사님 계십니다. 2년 뒤에는 차례가 돌아오죠. 2년 전에 한 번 도전해서 물론 후보도 못 됐지만, 그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니까 가려지더라고요. 그때 어려웠잖아요. 정치 공학적인 어려움이었죠. 저는 한 번도 누구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돌아와서 내가 마음속에 약속한 것은 우리 교단 안에서 할 일이 있다면 겸손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아주 많이 부름을 받아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그래도 말씀 사역 기회를 하나님 주셔서 감사하고 그걸로 교단을 섬기니까 그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보면 교단 정치를 현실적으로 뛰어다니는 소모적인 부분도 많잖아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을 정의하는 가치로 기회, 안전, 자유, 존엄성, 존중, 명예, 그리고 진실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국인, 특히 헌법을 존중하고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선서한 지도자들은 진실을 수호하고 거짓을 물리쳐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평생 불운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이든 편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늘 털고 일어나 한 걸음 전진했다. 바이든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1917∼2010)이 심어준 긍정의 신앙 덕분이라고 미 언론들은 평한다. 바이든 여사는 아들 조가 어린 시절 말더듬증으로 인해 “모스 부호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할 때 “머리가 뛰어나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29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는 말씀에 근거해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시련을 주시진 않는다.” 그의 시련은 이어졌다. 1988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무렵 유세 후 쓰러졌던 바이든은 그 자신도 뇌혈관 부종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다. 가톨릭 신부가 임종 미사 준비까지 하던 위급 상황이었다고 에번 오스노스는 최근 펴낸 ‘조 바이든’ 전기에 기록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가 우려됐지만, 말더듬이 시절 어머니의 격려를 떠올리며 이겨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 때 “어머니는 정치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누구도 너보다 뛰어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너보다 못하지 않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도덕적 나침반이자 정치의 좌표가 됐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자택 주차장을 별채로 개조해 말년의 어머니를 모셨다. 2010년 어머니 별세 때 애도 성명에선 “헌신은 최고의 가치이며 신념은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한다는 어머니 말씀 덕분에 세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바이든은 2015년 뇌종양을 앓던 장남 보를 가슴에 묻으며 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때 주변에선 “시련이 바이든을 더 결단력 있고 더 겸손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리고 5년 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미국을 치유할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뒤 더욱 단단한 믿음의 낮아짐으로 견딘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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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1
  • 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홍해 사건은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 듯 고요 그는 호수에 파문 일 듯 입 열어 보수교단은 나날이 퇴색되는 보수 신앙 기치 다시 세울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코로나 팬데믹 총회 총신 혼돈해결할 총회 지도자로 필요 절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간절한 바람 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 마음에 오래 갇혀 있던 기도가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바람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쉬엄쉬엄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월의 나무들은 수락산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아주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하얀 빛이 된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바람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바람 하나 있음을 안다. 2018년 12월 16일 11시 30분 양문교회 예배는 이영신 목사가 내 자신 젊었을 때 듣던 보수의 아이콘 김창인 목사처럼 설교를 하는 설교자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1970년 시작된 양문교회의 원우연 목사와 서공섭 목사를 이어 2004년 11월 7일 부임한 제3대 목사다. 그는 본문 출애굽기 14:26-31을 봉독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성가대 찬양의 은혜에 대한 감사기도 후 이영신 목사는‘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는 듯 고요했다. 그는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 묻는다면 ‘일상생활에서 감탄하는 습관을 길러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어느 칼럼니스트가 말했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감탄하게 되면 그 안에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어린아이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게 별 것이 되고 그래서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감탄할 거리를 찾아서 감탄해보신다면 행복해지실 겁니다. 저는 주초에 아내와 예술의전당에서 서울모테트합창단(Seoul Motet Choir)이 연주하는 ‘메시아’ 전곡 연주를 관람했습니다. 그 후 3부 53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 시간이 장장 두 시간 삼사십 분 되는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어제까지 들었습니다. 정말 헨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메시아’라는 오라토리오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절대로 처서는 안 될 곳에 장막을 치고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600대의 정예 병거를 앞세우고 추격해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외쳤습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어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까 하노라 하지 않았느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인을 섬기며 사는 게 더 낫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 모세를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에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모세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던 것 같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 붙잡고 그 모든 상황을 여호와께 아뢰며. 지도자로서 간절히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향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부르짖지만 말고 행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르짖고 있을 때만 아니고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영혼의 호흡 같은 게 기도이기에 늘 기도해야 하고 또 위기를 만났을 때는 더욱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고 행동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그 다음에 행동해야 합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에서 포로임에도 왕의 큰 신임을 받고 있던 느혜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 성과 동족에 관한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에게 나아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무너진 성을 건축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역시 포로로 붙잡혀 가있던 시절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로 유대인 전체가 멸절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모든 동족과 함께 사흘 밤낮을 기도한 후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아하수에로 왕 앞에 목숨 걸고 나아갔습니다. 그처럼 기도했으면 지금은 부르짖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때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손에 든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키면 바다가 갈라질 것이고 그러면 백성은 마른 땅 육지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전쟁의 최고 지휘관이시고 사령관이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지도자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모세는 그대로 수행만 하면 됐습니다. 이어지는 17절에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여러분 이 말씀에서 누가 주어입니까. 바다가 갈라지게 만들고 애굽의 병거와 마병을 따르는 바로의 모든 군대를 수장시키고자 했던 분이 누구이십니까. 내가. 내가. 하나님. 애굽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들어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리하여 바로와 그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18절 또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갔던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다 죽게 될 때야 그들이 하나님이 여호와 참 신이신 줄 알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직후였습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뒤로 옮겨갔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하나님의 사자는 미디안 광야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던 그 여호와의 사자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탄생하시기 전의 성자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군대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뒤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자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섰습니다. 어떻게요. (회중은 미동도 없이 강단을 주목했다)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쪽은 대낮같이 밝았지만 애굽 진영 쪽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흑암이 깊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래야 할 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 사이 모세가 바다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내민 것은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닷가 해변에 물이 빠지고 나면 진흙투성이 개펄이 됩니다. 그런데 그걸 아시는 하나님께서 큰 동풍이 불게 하시어 바다 한 가운데가 갈라져 물이 물러가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진흙투성이 바닥이 육지처럼 마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육지처럼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 사이 물은 그들의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그들의 뒤를 추격해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 사이에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동 트기 전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혼비백산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어렵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친다.’ 그들 입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기들 밑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노예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과의 싸움이라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줄행랑을 치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비하히롯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말씀하실 때도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투루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회중 아멘)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자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었습니다. 역시 이 장면에서도 하나님이 총지휘관이셨고 모세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새벽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셨습니다.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애굽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장정만 60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넜지만 바로와 그가 이끄는 강력한 애굽 군대는 하룻 밤 사이에 바다에 수장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큰 일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과 그가 세우신 종 모세를 굳게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함께하시면 바다 한가운데도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중 아멘) 바닷가에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자 애굽 사람들은 길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그곳에 진을 치게 되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애굽 군대 칼에 죽게 하느냐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는 경외를 받으셨습니다. 또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셨습니다.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말씀하심으로 태초에 땅과 바다가 생기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큰 동풍을 불게 하사 바다를 가르시고 그 한가운데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는 것쯤이야 왜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쯤이야 어떻게 못하시겠습니까. 만들기도 하셨는데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인 진퇴양난의 상황에 하나님의 백성이 처하게 되면 그 바다를 가르시던지 아니면 바다 위를 걷게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다를 반드시 통과한 다음 가나안 복지 들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회중 아멘) ... 천지를 창조하신 인류의 생사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얼마든지 능력과 기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행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지은 죄를 모두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쉴 새 없이 중보하고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고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중 아멘) 그 진리를 깨닫게 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면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될 것입니다. 그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이영신 목사는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이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라고 갈파했다. 이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전략의 출발은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앞의 것이 '지리(地理) 감각'이고, 뒤의 것이 '역사 감각'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나를 바로 아는’ 것도 이 두 가지 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한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을 잃으면 홍해에 수장된 애굽 군대처럼 될 것이다. 보수의 아이콘처럼 말씀을 전한 이영신 목사가 지향하는 ’보수의 메시지‘는 기득권 옹호, 기복 신앙, 수구적 사고가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신앙적 삶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에 반하는 풍조에 대한 이런 말이 있다. ‘사회주의자는 (정권 장악에)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주의는 (국민을 고루 배부르게 한다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래서 기독교를 폄하하고 경제를 어렵게 하는 사회주의자들로 인해 지금 나라 형편이 아주 어렵다. 세계 모든 개발경제학 교과서에는 ‘한국 성공’과 ‘북한 실패’ 스토리가 체제(體制) 간 우열을 비교하는 대표 사례로 실려 있다. 한국은 이와 정반대로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부인하는 북한을 호도하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있다. 한국 보수교단인 우리는 나날이 깊어가는 국민의 이런 시름과 걱정에 희망의 출구(出口)를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 활로(活路)를 위해 이영신 목사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전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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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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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자의 마음 이건영 목사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에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지혜자의 마음을 지닌 이건영 목사에게 목회 성공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에게 목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화장터에 가서 뼈 몇 줌으로 바뀌어 나온 어머니를 상수리나무 아래 뿌리던 일은 크나큰 슬픔이다. 전도국장 시절 원자력병원에 가서 환자복 입고 곧 나을 것이라며 다짐하는 독일 병정 허봉춘 목사를 보던 기억은 기나긴 슬픔이다. 내 삶의 원천이며 원동력인 슬픔은 남의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 숙이고 몸 더욱 낮추어 눈물을 삼키게 한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랑은 나를 끊임없이 구속했으나 사랑할 수 없는 미움은 이날 이때껏 나를 키웠다. 그리고 대상을 알 수 없는 막막한 슬픔이 나를 일으켜 세우곤 했다. 어금니 꽉 깨물고 응시하리. 목사로서 오늘이 있게 한 선지동산 총신과 목사인 우리를 두른 거룩한 총회를. 2016년 1월 8일(금) 3월 6일(주일) 두 차례 이건영 목사(총신 75회)를 인천시 중구 인중로에 있는 인천제2교회 당회장실에서 만나 대담을 했다. -선교나 전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도 보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이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복지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복지가 상당히 많은 효과를 거두는 모양이던데요. “그러니까 효과가 이제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이 장애우들을 평일에 교회로 초청을 합니다. 교육관에서 하고 있습니다. 장애우 사역을 하다보면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사오 년 걸립니다.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꾸준히 하고 있기는 합니다.” -어떻게 그런 사역을 생각하시게 되었습니까. “이제 인천제2교회 1대 이승길 목사님은 전쟁 직후 남편 없고 모자들만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돌보는 마르다 모자원을 운영하셨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물품이나 식품을 가지고 불쌍한 모자들을 돌보셨는데 그것이 우리 교회 사회복지의 시작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 교회 2대 이삼성 목사님 그분은 우리 교회 내에 그 당시(70년대) 드물던 교회에 삼일유치원을 열었습니다. 우리 이 지역에서는 사립 유치원으로 꽤 유명한 유치원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유치원이니 유아원 선교원이 많지만 말입니다. 그 당시는 거의 없다시피 했죠. 그런 사회복지를 이삼성 원로목사님이 하셨죠. 그 정신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몇 가지 사역을 교육관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사회복지 사역에 우리 교인들 마음이 많이 열려 있고 헌금도 많이 합니다. 그 종류가 열 몇 가지가 됩니다. 지역사회를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지만 이 지역은 재개발 지역입니다.” (인천제2교회는 숭의로터리를 중심으로 주변에 공구업체와 인천중앙여자상업고, 인천시립도원체육관이 있다. 인천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라는 뜻에서 ‘인천제2교회’란 이름으로 1948년 세워진 교회는 68년이 됐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인천 주변 지역은 숨 가쁘게 변했다. 많은 이들이 주변 신도시로 떠났고, 관련 기관과 시설도 자리를 옮겼다. 교회가 있던 지역은 점점 문화 혜택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남았다. 그래서 2010년 새 예배당을 건축하며 지역사회를 향한 사역의 지향점을 더 분명히 했다. 주 중에도 주민에게 열린 교회,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교회를 지향한 것이다. 과감하게 4000석 규모의 예배당을 1700석으로 줄였다. 그 대신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확보했다. 완공된 예배당에선 어린이 도서관,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센터, 노숙인과 어르신을 위한 목욕탕,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치과와 미용실, 헬스장 등에서 21가지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공장 가게들 공구 상가들이 많더군요. “공구 상가 음식점들이 많죠. 사실 이 지역은 인천에서 아주 낙후된 지역입니다. 그래서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눈을 뜨게 된 겁니다. 저희 교회가 송도 신도시라든지 영종 신도시에 있다 하면 사회복지가 필요 없죠. 재개발지역이라 사회복지가 필요합니다.” -지금 이 교회 오신 지 몇 년 되셨어요. “저는 여기에서 태어났어요. 이 교회 유아세례 출신입니다.” -아버님이 장로님이셨나 보죠. “장로님이셨죠. 돌아가셨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준경 장로님이라고 옛날에 경기도 제5대 교육감(1980. 2. 11. ~ 1983. 2. 27)을 하셨죠. 한명수 목사님 계실 그 때 경기도 교육감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 교회가 점점 성장을 했어요. 저는 27살까지 여기 교인으로 있었죠. 그러다 소명을 받아 총신 신대원가서 서울서 칠팔 년 부교역자 생활을 했습니다.” -서울 어디서 하셨습니까. “혜성교회 박광옥 목사님 밑에 있었고 장충체육관 앞 장충교회 이규일 목사님 밑에도 있었죠. 거기서 부목사로 있다가 여기 이삼성 목사님이 내려오라고 해서 오게 됐습니다. 그 당시야 목사님 말씀하시면 하나님 하시는 걸로 알았죠. 장충교회에서 여기 본교회로 오라고 하니까 그냥 온 겁니다. 어르신 말씀이니까. 그때 와서 부목사(부임 1987. 6. 28) 6년 그리고 담임목사 23년(위임 1993. 12. 9) 넘어가네요. 그러니까 거의 30년 됐네요. 제가 52년 2월 14일 생이거든요. 제가 64세죠. 64세 가운데 이 교회에서 교인으로 27년 목회자로 30년 그러니 57년을 여기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뭐 권위도 없어요. 여기는 다 동기들 선배 스승 같으신 어른들인데 어느 날 건영이가 목사로 온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키워주신 어르신이 오시라고 해서 왔지만 몇 년 있다 서울로 도로 올라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 2년 지나니까 초청해 주신 이삼성 목사님(1992. 9. 22 제77회 총회장 취임)이 저한테 후임자가 돼주면 좋겠다고 하신 겁니다. 그리고 저를 유학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삼성 목사님이 대단하시네요. “유학 다녀온 다음에 본인이 만 70세에 은퇴하시겠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셨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는 거죠.” -그 때가 언제죠. “그러니까 그게 87년입니다. 장충교회에서 87년에 왔습니다. 한참 민주화 운동할 때죠. 설마 제가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어요. 있을 수가 없는 건데 교인들이 좋아서 있을 수 있었죠. 시골 교회처럼 순수해요.” -이삼성 목사님이 언제 돌아가셨죠. “한 7년 넘었죠. 제가 여기 재직한 것도 부목사 6년 담임목사 23년 29년이네요. 정말 꿈만 같네요.” (그는 파안대소했다.) -총신은 몇 회세요. “75회입니다. 지금은 제 마음속에 하나님 은혜 주시면 이 교회에서 은퇴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시면 지금 또 어디로 부임해 가시겠다는 겁니까. “저는 좀 일찍 은퇴를 해 힘이 있을 때 다른 사역을 좀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나 교인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제가 보니 한 교회에서 지도력을 키우신 목사는 영적 지도자라 연륜이 더할수록 더 지도력이 성숙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력을 다른 데 쓰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지만 인천에는 신도시가 많이 생겼습니다. 여기 교회 근처에서 걸어 교회 나오는 교인은 5퍼센트도 안 됩니다. 나머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먼 데서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복음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는 청계천처럼 공구상가가 많습니다. 500개가 넘어요. 저 구석구석까지 성탄절 날 수건을 돌리면 500개가 부족해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죽어도 안 옮기려고 해요. 이미 다 자리가 잡혔으니까요. 저희 교회는 공구상가와 주위 식당들과 같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임스 보이스가 30년간을 담임목사로 섬긴 필라델피아 제10장로교회는 장장 현재는 190년을 개혁주의 청교도 신앙을 전수하고 있는 뿌리 깊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필라델피아의 명동이라는 월넛 스트리트에 있습니다. 제임스 보이스는 선교를 위해 교회가 그 지역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가 중구니까 옛날에는 인천의 번화가였죠. 제 어렸을 때 추억이 다 있습니다. 학교도 가고 병원도 가고 음식점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다 신도시로 나갔습니다.” -교회로서는 딱 좋은 환경이네요. 교회가 땅값이 오르면 문제가 생기더군요. “교회가 땅 사기는 좋습니다. 평당 600이면 삽니다. 다른 지역은 굉장히 비싸지요. 그런데 파는 데는 600밖에 안 하니까요. 내놓으면 팔리는 건 공구상가입니다. 그러나 안 팔려고 하지요.” -시카고의 무디 바이블 교회도 시내에 있는데 목회자에 따라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온답니다. 거기 교인이 말하길 온 지역에서 몰려오는 교인들을 보면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그 교회는 변두리로 이사 가려고 하지를 않아요. 인천제2교회도 그럴 것 같네요. “아멘. 목사님 잘 모르시겠지만 실제로 송도 신도시하고 연수동에 수 만 채 아파트 대단지가 있습니다. 고 가운데 3000평 땅이 나왔어요. 경매로 80억에 나온 거예요. 일부 장로님들이 그 쪽으로 가자고 말씀 했어요. 한 10년 전일 겁니다. 그 때 거기로 갔다면 지금 엄청난 교회가 됐을 겁니다. 송도 신도시가 엄청나고 연수동 수 만 채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이니까요. 많은 교인들이 가자고 했는데 최종적으로 장로님들을 설득해 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나중에 장로님들이 이유라도 좀 알자고 했어요. 내가 이유를 말씀 드릴 테니까 그 이유를 듣고 포기하는 것으로 하면 말씀 드리겠다고 했어요. 장로님들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어요. 아내랑 그 곳에 가봤더니 이미 작은 교회 개척교회 상가교회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 작은 교회들이 없다고 하면 가도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들이 반경에 엄청나게 많은 데 이 대지를 팔고 거기 가서 큰 교회를 지어놓으면 교인 간에 수평이동이 생기고 작은 교회 개척 교회 상가 교회들이 엄청나게 타격을 받을 겁니다. 장로님들 아시지 않느냐 우리 교회가 나쁜 소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그곳으로 가면 우리는 엄청 큰 교회가 될 것이지만 주위에 많은 교회들이 말로 할 수 없는 피해를 볼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맙시다. 제가 연구하고 현장 조사를 한 걸 말씀 드리는 겁니다. 여기에서라도 오겠다는 교인만 받읍시다. 우리가 인천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된다고 해서 천국 가서 더 큰 면류관을 교인들이나 장로님들이 받는 건 아닙니다. 목사가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인천에서 제일 큰 교회가 못 되더라도 여기서 오는 교인만 받고 거기 작은 교회들 살려줍시다. 그랬더니 이제 많이 얘기들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장로님들이 제 말씀을 들어주셨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희 교회는 34년 된 아주 낡은 건물이었습니다. 여기다 새로운 건물을 짓자 해서 지금 이 교회를 건축하게 된 겁니다. 입당해서 5년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속에서는 제 나이로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였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결정하고 나서 그 땅 근처로 심방 가는 일이 생기면 가슴이 아려오면서 잘못했나 하는 자책이 생기는 겁니다. 이거 결정을 잘못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겁니다. 6개월이 지나니 괜찮아지더군요.” -정말 잘 하신 일이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신 거죠. “장로님들에게 감사하죠. 그분들이 저희 교회 제 선배님들이시고 주일학교 스승들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들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목사님 말씀이 옳은 듯 하다고 교회 앞에 광고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다음 주 광고해도 될까요 물었더니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저희들이 목사님 말씀이라면 인정하고 따라야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 신도시로 안 간다고 광고하고 우리 교회에 오시는 분들만 받자고 했더니 교인들도 다 따라주는 겁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잘 한 일이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지금보다 더 젊었으니까 잘못 결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겁니다.” -그게 주님이나 사도들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결정을 하고 나니 그 땅값이 70억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3000평이라는 땅이 학교도 안 되고 큰 식당도 안 되고 천상 교회 거예요. 그 유혹이 내 마음속에서 많은 투쟁을 일으켰습니다. 내 자신과 싸우는 거죠.” -제 생각에 교회는 가난한 사람이 많아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지역으로 가면 가난한 사람이 적어요. 병원에 환자가 많아야 하듯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아야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크게 웃었다.) 여기는 그냥 평범한 지역이라 제가 골프를 안 쳐요. 제가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 있는 리폼드신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환율이 1달러에 8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5달러면 하루 종일 골프를 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누구나 골프를 치는 겁니다. 그 당시 그곳에 노수길 집사님이라고 가발 사업을 하는 분이 계셨는데 골프를 치라고 골프채를 선물하더라고요. 그래 그 정성에 못 이겨 골프채를 그냥 놔둘 수도 없어서 미국에서 한 3년 골프를 쳤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주말에 골프를 쳤습니다. 제가 잘 쳐요. 저희 교회에 와서 느낀 게 뭐냐 하면 여기서 골프 쳤다가는 귀족 중에 귀족이겠구나. 그래서 골프채를 버리고 오늘까지 동기들 후배들 골프 치자고 얼마나 전화가 오는지 모릅니다. 수원에 있는 모 목사님은 골프채를 하나 선물로 가져왔어요. 그가 이거 가져왔는데 내가 전도사입니다 말하는 거예요. 무슨 전도사냐고 했더니 골프전도사라는 겁니다(그가 누군지 아는지라 같이 웃었다). 내가 이 사람도 전도했고 저 사람도 전도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골프채를 받으라고 하는데 나는 안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한사코 받아 두시기만 하라는 겁니다. 제가 골프를 한 달만 치면 그 분들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교회에 여러 가지로 덕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골프는 치지 않습니다. 은퇴하면 칠겁니다. 워낙 제가 운동을 좋아해 은퇴하면 잘 치겠죠. 이 지역을 생각하면 골프 친다 안 친다를 떠나 제가 섬기는 이 교회 교인 수준하고 안 맞습니다.” -신도시도 안 맞습니다. “(웃는다) 그래요.” -미국에서도 영적으로 사는 목사는 골프 안 칩니다. 이게 사실은 운동이 되질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골프는 점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근육을 단련하는 헬스클럽은 점수가 없어요. 이건 자기 혼자하고의 싸움이고 훈련인데 골프는 점수가 있어 반드시 내기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가난한 노인들도 몇 불이라도 걸거나 식사 내기라도 하더군요. 게임이라 경쟁심이 생겨요. 우리 목사들도 골프를 치면 내기를 합니다. 게다가 필드에서 목사라고 할 수 없으니까 교수니 박사니 하며 젊은 캐디들한테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처럼 농담 던지고 합니다. 무엇보다 골프는 목사에게 덕이 안 됩니다. 골프 전도사 필리핀 가서 뭐 하고 지내는지 잘 압니다. “잘 아시네요.” -그 전도사 주선으로 필리핀에 골프 약속들 잡아놓고 주일 예배 끝나면 골프채들 챙겨들고 공항에 모여 있는 모습 본 적 있습니다. 참으로 목사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언제 우리 목사들이 돈이 많아졌다고 그러는 겁니까. 그거 영적인 성직자 목사들이 할 짓이 아닙니다. 사도 시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구제는 집사를 뽑아 맡긴 건 아닙니까. 그처럼 목사도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골프도 집사들에게 맡기는 건 성경적이 아니겠습니까. 건강이라는 게 사실 경건에 힘쓰면 더 건강해지는 거 아닙니까. “(쾌할하게 웃으며) 어쨌든 저는 제 자신 목회 현장이라든지 형편이 골프가 맞질 않습니다. 골프치는 다른 분들을 뭐라고 할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 십일조 내시는 분들을 봐서 나는 골프를 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실 수 있는데 안 하시는 건 굉장한 결단입니다. 그거 한번 빠지면 재미 탓에 못 빠져나옵니다. “정말 재미있긴 하죠.” -좋아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잠언 16장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목사가 ‘지혜자의 마음’을 가졌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는 그가 목회나 설교에 탁월한 테크닉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비범한 지성과 의지를 가졌다는 의미도 아니다. ‘마음’을 가졌다는 건 특별하고 고귀한 정신을 가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 이건영 목사의 경이로움은 그의 정신적 위대함에 있다.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이뤄낸 위대함이라 더욱 값지다. 그는 세상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성경의 진리를 앎으로 얻은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건영 목사가 지난 2월 16일자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행한 그의 자유로운 마음을 보여 주는 말 한마디를 소개한다. “교회가 마련한 공간과 시설들은 이용자의 대다수가 교회 외부 사람들이므로 그 공간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슬픔을 경유하지 않고 믿음의 바닥에 이를 수 없다. 성경은 말씀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도서 7:3-4 슬픔은 이웃의 아픔에 ‘나’를 겹쳐놓는 일이다. 슬픔을 “응시”할 때, ‘나’는 이웃에게로 건너가 이웃과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슬픔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기나긴 미움”은 “막막한 슬픔” 앞에 무력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권면한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갈라디아서 5:14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에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지혜자의 마음을 지닌 이건영 목사에게 목회 성공은 아무것도 아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목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2016-06-26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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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27
  •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
    예수 믿는 사람은 단순해야 하고 하나님 잘 섬겨야 '우리 교회가 한인사회의 랜드마크가 되자'는 큰 소명을 받아 IRUS(The International Reformed University & Seminary)를 통해 미국과 한국 더 나아가 세계 개혁주의 장로교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길 심리학자 카렌 호나이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가 치료자를 찾는 이유는 신경증을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우리는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더 나아가 매 순간 새로 태어나기 위해,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닮은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그 소중한 하루하루가 모여 ‘나다움’을, ‘내 나이’를 만들어 갈 것이다. 칼빈(John Calvin)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약 100km 떨어진 피카데리(Picardy) 지방 노용(Noyons)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제라드 칼빈(Gerard Calvin)은 부모가 경영하는 통을 만드는 공장에서 도제 교육을 받은 평민 출신이었지만 후에는 시청 서기와 교구의 서기 임무를 거쳐 교구 성직자의 사업 담당자가 됨으로써 귀족계급으로 신분이 상승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잔느(Jeanne Le Franc)도 음식점을 경영했던 노용 시의회 의원의 딸로서 신앙심이 돈독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만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칼빈은 사리를 판단하는 데에는 정확했다. 그리고 그의 지적 능력은 아주 뛰어났으므로 아버지의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칼빈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칼빈을 파리에 있는 대학으로 보냈다. 14세 때 그는 파리로 가서 라 마르셰 대학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그는 라틴어를 배웠다. 그러나 칼빈은 다시 몽테규 대학으로 옮겼는데, 몽테규 대학은 중세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금욕적이고 엄격한 훈련을 요구하는 대학이었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6시 아침 미사를 드릴 때까지 2시간 강의, 미사 후에는 아침 식사, 그리고 8-10시까지는 오전 강의, 그리고 1시간 동안 토론, 11시에 점심 식사(점심시간에는 성경이나 위인전기가 읽혀지고 기도하고 대학 내의 광고 사항을 알려줌), 12시에는 오전을 반성하고, 1-3시까지는 일반 독서시간과 자유시간, 3-5시 다시 오후 강의, 5시에 저녁 식사, 그리고 기도회를 가진 후, 다시 오후 강의에 대한 토론을 하고 겨울에는 8시, 여름에는 9시 취침을 하는 등 아주 엄격하고 꽉 짜인 교육을 실시했다. 여기에서 그는 금욕주의적인 삶과 장시간 공부하는 습관을 익혔다. 그는 5년간의 대학생활을 통해 종교개혁의 새로운 사상들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19살의 칼빈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제가 되기 위한 다음 단계로써 신학 연구 자격시험에 통과하게 된다. 그런데 칼빈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칼빈을 성직자로 키우기 위해 무척 노력했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꿔 아들에게 신학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꿀 것을 요구하였다. 그 이유로는 흔히 칼빈의 아버지가 재정문제로 교회 참사회와의 사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칼빈의 자서전적인 시편 주석의 서론을 보면, 법조계로 나가는 것이 부와 명성을 얻게 하는데 확실한 보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1532년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23세의 나이로 세네카의 <관용론> 주해서를 출판하게 되는데, 세네카의 <관용론>은 로마 황제 네로가 기독교를 무참하게 박해하자 네로의 마음을 돌이키려는 의도에서 쓴 책이었다. 칼빈이 주해서를 쓴 것은 프랑스 왕 프란시스1세가 개신교도들을 박해하는 것에 대한 의분에 왕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유창한 라틴어로 이 책을 기록했다고 한다. 1533년경에 칼빈은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하였으며 종교개혁 운동에 합세했다. 그는 자신의 개종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칼빈의 회심은 사도 바울이나 성 어거스틴, 그리고 루터와 같이 자세하고 극적인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또 언제 정확히 회심의 경험을 했느냐에 대해서도 기술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시편 주석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회심에 대해 ‘뜻밖의 회심’이란 말을 쓰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기치 못한 회심으로 오랫동안 완악해져 있던 마음을 온순하게 길들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칼빈은 철저히 말씀에 순종하고 열심히 연구함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 대로 이해하고자 했고, 이러한 생활을 위해서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며 통회하는 생활을 했다. 1533년 11월 1일에 파리 대학 총장으로 취임하는 콥의 취임 연설의 원고를 칼빈이 작성하게 되는데, '기독교 철학'이란 제목의 이 연설은 루터가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과 율법을 비교해서 복음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강조했다. 그리고 종교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박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연설 이후 그들에 대한 비난과 핍박이 가해졌다. 콥은 바젤로 피신하였고 칼빈도 파리 남서부 400km에 위치한 친구의 집으로 피신하게 되는데, 그 집에는 약 4천여 권의 장서가 있었다. 여기에서 칼빈은 세상 편하게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칼빈은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을 이루는 ‘기독교 강요’라는 대저작의 체계를 세웠다. 1534년 스물다섯의 칼빈은 공식적으로 가톨릭교회와 결별하게 되는데, 그해 10월 개신교인들에 대해 비난하는 삐라가 프랑스 전역에 살포되었고, 개신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칼빈도 결국 망명자가 되어 고국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1534년 공식적으로 제네바의 목사가 된 파렐은 칼빈이 제네바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칼빈에게 찾아가 제네바에 남아서 이 도시의 종교계를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거절하던 칼빈은 결국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에 그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썼다. “기욤 파렐은 조언과 간곡한 경고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저주로 나를 제네바에 붙들어 두었다. 이는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나에게 얹어 잡으시려는 것 같았다.” 1534년 당시의 제네바는 약 1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프랑스 사람인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혁운동을 전개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칼빈은 참으로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칼빈의 저술이나 설교에 대해 트집 잡고 비판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반대파들의 공갈과 협박은 끊일 새가 없었고, 주민들 중에는 자기 개의 이름을 칼빈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를 혐오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도 열 번씩이나 죽음을 동경할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칼빈은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미사 대신 예배를 갱신해 나갔으며, 어른은 물론 어린이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칼빈은 어린이에게 신앙의 핵심인 요리문답을 가르치지 않고는 교회 개혁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27세인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을 출판한 2년 후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바젤로 갔다. 1538년 9월에 마르틴 부서와 볼프강 카피토는 그에게 슈트라스부르크로 올 것을 여러 차례 종용했다. 칼빈은 마침내 부서의 강요에 승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400-500명의 프랑스 망명객으로 설립된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쟝 스또르되르는 재세례파였지만 칼빈의 영향을 받아 부인과 두 아이(아들 하나 딸 하나)와 함께 슈트라스부르크의 회중에 합류했다. 1540년 봄에 그가 흑사병으로 죽자 1540년 8월 6일에 칼빈은 그의 부인이었던 이델레뜨 드 뷔르와 결혼했다. 1542년 7월 28일 칼빈과 이델레뜨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 이름은 자끄(Jacques)였다. 하지만 조산아였던 자끄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 이델레뜨 역시 1549년 3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칼빈은 아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언제나 그녀는 나의 직무를 완성시키는 조력자였습니다. 그녀는 아주 사소한 것조차도 나의 길을 방해한 적이 없습니다.” 칼빈의 저서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는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주제별로 저술하였는데, 그 내용의 탁월한 구성이나 내용의 깊이를 후대의 수많은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 저술로 칼빈은 종교개혁시대의 유일한 신학자로 꼽히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틴 루터가 행동을 통해 종교개혁을 실천해 나갔다면, 칼빈은 개혁신학을 통해 종교개혁을 완성시킨 개혁자였다. ‘기독교강요’를 비롯, 그의 탁월한 저서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 종교개혁은 유럽전역으로 확산되어 나갈 수 있었고, 시대를 초월해서 개혁교회의 전통을 세울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그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의 시각에서 그 때까지 드러난 기독교 진리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논술하려고 하였다. 개혁교회라는 말은 쯔빙글리와 칼빈을 따른 스위스,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교회들을 가리킨다. 개혁이란 말은 그들이 루터주의를 다시 개혁하려 했음을 의미한다. 즉 개혁이란 종교개혁의 개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개혁주의란 루터주의(Lutheranism)보다 더 철저한 성경중심을 위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성경에 기초하여 신관과 우주관, 신앙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규명한다. 개혁주의를 보통 칼빈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칼빈이 성경의 가르침을 해설하고 이 신학을 체계화하였다는 점에서 비롯된 말이다. 쯔빙글리가 칼빈보다 한 세대 앞선 인물이었으나, 칼빈이 보다 선명히 이 신학을 해설하고 체계를 세웠기 때문에 칼빈주의로 불리게 된 것이다. 결국 개혁주의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인 그리고 유일한 권위로 삼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정치제도에 있어서도 인간 중심의 위계제도나 특권층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의 사제주의나 교권주의를 배격한다. 이 개혁주의 신학을 보통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사상으로 말하고 실제적 삶의 신학으로 강조해 왔는데 이것은 개혁주의 신학을 따르는 교회적 삶을 간명하게 정리한 마디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 중심(God-centered)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중심일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16세기 상황에서 말하면 교황이 중심일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개혁주의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을 엄격하게 구별해 인간을 특수한 위치에 두는 신학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 중심이란 바로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창조주 하나님은 자연과 인간과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이 하나님 중심 사상이다. 성경중심(Bible-centered)이란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이란 점을 강조한다. 성경 외의 그 어떤 것도 신앙의 표준일 수 없고 신학의 원천일 수 없다. 개혁주의는 “성경은 성경 자신이 해석한다”(Scripturae scriptura interpretum)는 원리를 고수한다. 루터나 칼빈 등 개혁자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복음주의 혹은 개혁주의 신학이 옳다는 점을 성경에 근거하여 성경에 호소하였다. 개혁주의는 바로 성경중심주의 신학이다. 그래서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강조한다. 교회중심(Church-centered)이란 개혁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은 하나님의 교회였고,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 건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자들에게 신학은 근본적으로 교회를 위한 학문이며,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점을 강조한다.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견적 교회안에서 실현된다고 하여 가견적 교회와 신국을 동일시하지만,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오직 선택된 자들로 구성되는 우주적인 교회, 곧 무형교회 혹은 불가견적 교회(invisible church)를 말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도 회원이 될 수 있는 제도적인 지상의 교회, 곧 유형교회 혹은 가견적 교회(visible church)로 구분했다. 지상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다. 개혁주의는 지상교회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의 완전을 향한 추구를 경시하지 않는데, 이것이 교회개혁운동이다. 교회중심사상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사이에 서 있는 이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적 삶을 추구하며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고 힘쓴다. 개혁주의는 현재의 삶과 무관한 공허한 이념이나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 삶의 신학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속에 살면서도(conform)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transform) 문화적 소명을 지니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신자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인데, 이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개혁주의 신학을 복음주의, 근본주의, 혹은 보수주의와 혼돈하거나 혼용하고 있음을 본다. 이런 한국의 현실에서 개혁주의가 근본주의나 보수주의 혹은 복음주의와 어떻게 다른 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란 그 이름처럼 헬라어 ‘복음’이란 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이미 16세기 개혁자들이 주창했지만 18세기 영국과 미국의 부흥운동 혹은 대각성운동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구체적으로 생성되었고, 20세기 후반인 1952년 조직된 세계복음주의 협의회와 1974년의 로잔 세계복음화 위원회에 의해 보다 명료하게 발전된 신학을 의미한다. 복음주의는 역사적 기독교의 신앙과 가르침을 중시하면서 전도나 선교를 강조하고, 신자의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는 신앙체계를 의미한다.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무시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 그리고 개혁주의는 동일하다. 그러나 개혁주의나 복음주의는 분리주의적 혹은 반문화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복음전도와 함께 신자의 사회적 책임과 봉사를 강조하는데, 이 점은 근본주의와 다르다. 복음주의 신앙은 사회에 대한 분리주의적 입장을 취하지 않지만 개인적 체험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감성주의라는 점이 그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의 전통이나 의식에 무관심하고 이를 간과함으로 개인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결국 이런 입장은 교회관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교회의 신앙전통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지 않는다. 특히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 하나님의 영광을 신자의 삶의 목표로 여긴다. 개혁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때문에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는 문화변혁의 성격을 지닌다. 이제 그러한 노정에 선 목회자 한 사람을 개혁주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미국시간 2016년 2월 12일 오전 6시 로스앤젤레스 중심가 지하철역 윌셔 앤 버몬(Wilshire/Vermont) 근처에 있는 나성열린문교회(LA Open Door Presbyterian Church; 1993년 2월28일 설립, 3281 W. 6th st. Los Angels, CA 90020) 새벽기도회. 주일 대예배처럼 성가대 찬양이 끝나고 담임 박헌성 목사가 1층 예배실을 가득 채운 회중과 누가복음 20장을 교독했다. 박 목사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는 주제로 설교를 시작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좋은 면을 보십니다. 좋게 보면 항상 좋고 나쁘게 보면 늘 나쁘기 마련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항상 예수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공관복음 전체를 보면 항상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들은 예수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자신들의 질문에 걸려들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런 마음은 사단의 마음입니다. 성도는 항상 선한 마음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매사를 보아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예와 아멘만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22절에서 묻습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이런 말은 함정적 질문이라고 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법을 어기는 것이고 바치라 하면 반민족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간계가 담긴 속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2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지혜로우신 대답입니까. 우리 성도들은 악한 간계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쓸데없는 일에 논쟁하는 일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박 목사의 강론에 회중은 자주 아멘으로 화답했다. “사단에게 빠진 사람과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어요. 나만 힘들고 상처받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말씀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믿음의 지혜로운 태도가 필요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성직자가 세금을 바쳐야 되냐 안 바쳐야 되냐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미국은 성직자들이 대부분 바칩니다. 80년대 미시시피에서 리폼드 신학대학원 다닐 때 반 올랜이라는 교수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가르치시면서 강의시간에 ‘세금 바치는 것이 옳으냐’ 물었습니다. 미국은 거의 다 바칩니다. 그런데 그분도 바치는 게 좋다 말하셨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성직자가 세금을 안 바친다고 제재를 가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적으로 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 싫은 사람은 안 바쳐도 됩니다. 이것이 미국의 정책입니다. 그러나 성직자 거의가 세금을 바치죠. 국가에 세금을 안 바치면 혜택을 못 받습니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병원 같은 공공장소에 가면 장애인 주차석이 있고 성직자 주차석도 있었어요. 미국이 그렇게 좋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게 점차 줄어들고 있어요. 미국은 돈에 하나님을 믿는다(We trust in God)고 새긴 나라지만 무신론자들이나 다원주의자들이 성직자에 대한 혜택이나 예우를 없애자고 자꾸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도 미국은 아직도 중부나 동남부 쪽으로 가면 보수 성향이 강합니다. 미국은 성직자의 세금 문제는 자율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 직원은 세금을 떼는 걸 원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정장 차림을 해 로스앤젤레스의 랍비라는 별명을 가진 단정한 모습의 박 목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성경적으로 보면 세금을 떼는 게 정상입니다. 성직자라고 해서 국가의 의무를 피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성도는 국가의 의무를 다 감당해야 합니다.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등 모든 의무를 감당하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천국의 시민권 가진 사람은 미국의 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그런 게 성직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하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이사의 것이라고 하는 세상의 일들을 담당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똑같이 사회와 국가의 의무를 똑같이 짊어져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또 우리는 천국시민이기 때문에 교회일도 다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 오면 장로나 권사나 집사 직분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지 않습니까. 세상은 일을 하면 보수를 받는데 교회는 일을 해도 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훨씬 힘든 삶을 삽니다. 한 세상의 일을 더 해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 세상의 일을 등한시할 수도 없고 저 세상의 일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저 세상의 일을 모르니까 한 세상의 일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사람이라 이 세상과 저 세상 두 세상의 일을 다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적당히 해서는 안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보고 기도해 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두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도 우리는 늘 힘들다 생각을 안 합니다.” “보다 더 까다로운 문제가 있는데 국가와 교회의 관계입니다. 국가가 미국 같은 선한 정부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국가가 기본적으로 교회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정부와 교회가 분리되어 선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정부와 교회 간에 대립이 생기게 됩니다. 미국 같은 국가에는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국가로부터 어떤 압박을 받지 않으니까요. 중국 같은 국가는 선교사를 감시하고 추방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선한 정부입니다. 우리는 사실 너무 좋은 세상에 와서 사는 겁니다. 정부가 신앙을 압박하면 우리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면 안 믿으면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세상마다 다 좋은 나라가 아니라 조금씩 다르고 억압하는 나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국가에 협조한다든가 무조건 반대한다든가 해서는 안됩니다. 국가의 장점은 감사하고 격려해야 됩니다. 그러나 국가가 단점이 있고 신앙을 핍박하면 당연히 맞서야 합니다. 교회사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일본 식민지 시절 1938년 제27회 총회(총회장 홍택기)는 신사참배를 가결했습니다. 1941년 제30회 총회(총회장 최지화)는 총대 일동이 개회 다음 날 아침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주기철 목사님은 면직을 당하고 투옥을 당해 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자기들이 우상한테 절해놓고 거기에 절하지 않겠다는 목사를 벌주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거 잘했다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다 회개했습니다. 지금 주기철 목사님은 추앙받고 순교자로 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절했던 사람들은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은 나중 잘못했다고 회개하셨습니다.” “미국을 보면 동쪽은 그래도 양반들이 좀 사는데 서쪽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우리가 여기 살기는 하지만 여기는 교회 건축을 하면 세금을 붙여요. 동쪽에는 세금이 없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여기 살기가 좋으니까 자꾸 몰려와요. 동쪽에 있는 교회는 5천명이 모여도 남자들이 다 양복을 입고 여자들은 정장을 해요. 여기는 더워서 그런지 그렇지 않아요. 어쨌든 미국은 아직도 하나님 믿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가 이런 걸 보면서 미국이 하나님 더 잘 섬기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야 복을 받아요.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잘 다니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문제가 저절로 잘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이 남자가 남자끼리 살면 되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둘 중에 하나는 여자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신앙으로 살면 그런 문제로 갈등할 필요가 없어요. 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러면 태어나길 그러니 불쌍하다는 겁니다. 아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성경을 보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남자는 남자로 살아가고 여자는 여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연극을 해보면 여자 역을 잘하는 남자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연극이지 삶을 그렇게 살면 안되는 겁니다.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화장하고 다니면 되겠어요. 체질적으로 그렇게 맞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살면 됩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며 살아야 합니다.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정확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과 교회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믿음으로 살아가야지 이것저것 섞어서 살면 안 되는 겁니다. 유대인들 유대주의가 제일 싫어하는 게 혼합주의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단순해야 하고 하나님 잘 섬겨야 하고 세상 것이 들어오면 버려야지 갈등하면 안 되는 겁니다. 세상 것이라면 탁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박헌성 목사는 총신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 건너와 공부를 하고 부목사로 사역을 한 뒤 38살 되던 1993년 2월28일 로스엔젤레스에서 가장 중심지인 윌셔에 나성열린문교회(The Los Angeles Open Door Church)를 개척 설립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배, 교육, 선교, 봉사라는 교회의 비전을 가지고 나성열린문교회를 설립해 3천여 명의 성도가 모이는 신앙의 공동체로 크게 부흥시킨 탁월한 목회자다. 2001년 교인수 3500여명으로 성장한 나성열린문교회는 LA 동쪽 끝자락인 6가와 보니브레아 스트리트가 만나는 부지에 2011년 3월 LA한인타운 인근 최대 규모의 한인교회 성전이 건축 10년 만에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5000만달러가 투자된 건축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풋볼구장(5만8000스퀘어피트) 2개가 들어가고도 남는 12만6000스퀘어피트 부지위에 빌딩 11층 높이의 성전이 솟아있다. 타운 인근 한인교회 예배당 중 가장 크다. 건물 외벽과 강단 계단도 모두 이스라엘에서 특별 주문한 화강암으로 장식했다. 2001년 1월 성전 부지와 현재 예배장소인 교육센터를 540만 달러에 구입하고 공사는 2005년 5월 시작했다. 땅 매입부터 따진다면 꼭 10년이고 공사는 6년 걸렸고 공사비만 5000만 달러 투입됐다. 본당은 1층과 2층 합해 2000석, 친교실은 1000석, 주차장은 500대 주차할 수 있는 대형 파킹장에 실내 체육관까지 완비한 예배당이었다. 본당은 빌딩 11층 높이로 천장이 높아 시원하고 내부에 기둥이 하나도 없과 외벽과 강대상 계단은 모두 이스라엘에서 특별 주문한 화강암을 입혔다. 햇빛을 받으면 황금색을 띈다. 본당 정면 벽에는 관이 22개인 대형 파이프 오르간도 놓여진다. 타운 한인교회로는 가장 컸다. 그 완공을 몇 달 앞두고 박헌성 목사는 2011년 3월 1일 당시 로스앤젤레스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건축의 소명에 대해 말했다. "지난 18년간 우리 교회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큰 어려움 없이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교인이 많아졌고 큰 예배당이 필요했습니다. 장소를 찾다보니 LA 한인타운 내 대형집회를 열 만한 예배장소가 하나도 없더군요. 기도 중에 '우리 교회가 한인사회의 랜드마크가 되자'는 큰 소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눈물어린 어려움에 대해서도 술회했다. "융자금 이자만 매달 16만달러다. 공사가 한달 연기되면 7~8만달러 추가된다. 난 집이 없다. 팔아서 건축헌금으로 냈다. 성도들의 눈물로 기적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2011년 5월말 입주 예정이던 교회는 7년간 5000만 달러를 투자한 초대형 성전을 차압당했다. 당시 은행 측이 밝힌 차압 이유는 8개월간 180만 달러의 융자 페이먼트를 연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 9월 사용 중이던 건물에서도 퇴거를 당하고 채권은행인 ‘기독교 신용조합’(ECCU) 측과 2016년 지금까지 소유권을 놓고 소송 중에 있다. 박헌성 목사는 교회 성장과 교회 건축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다 이제 61세가 되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박헌성 목사는 힘차게 목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한인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그 학교를 맡아 IRUS(The International Reformed University & Seminary; 125 S. Vermont Ave. Los Angeles, CA 90004)라는 어엿한 대학으로 성장시켰다. IRUS(The International Reformed University & Seminary)는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설립되어 지난 38년 동안 이민교회에 필요한 개혁주의 지도자를 배출, 양성해 왔다. 총신대 총장을 지낸 김의환 목사를 초대 교장으로, 이진태 목사를 초대 학감으로 시작된 이 신학대학은 1987년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정식학위 (B.A., M.A., M.Div., D.Min.)를 줄 수 있는 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97년 미국 국토안보부로부터 F-1 비자를 발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또한 2013년 2월에는 연방정부교육부가 인정하는 신학대학 인준기관인 ABHE로부터 정회원 인준을 받았다. 2016년 2월달에는 연방정부 교육부 인준기관인 ABHE로부터 BACM (교회음악 학사) MACM (교회음악 석사) MAC (상담학 석사) 학위과정을 인가받았다. 현재는 총장에 박헌성 박사가 섬기고 있다. IRUS는 개혁주의 신학과 성경이 지향하는 신학을 교회와 세상에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취함에 있다. 본교는 칼빈주의 유산인 하나님 주권, 하나님 중심적 예배, 성경중심적 교육과 교회중심적인 사역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에 열린교육을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침으로 실질적인 사역의 능력을 갖춘 사역자와 평신도 지도자로 하여금 세계선교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 이제 박헌성 목사는 어느 목회자도 감당하기 힘든 성장과 역경을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모태에서부터 60여년의 신앙의 삶을 통해 더욱 성숙해진 신앙과 개혁주의 신학으로 제네바의 개혁주의 창시자 칼빈처럼 LA의 개혁주의자 칼빈 박헌성 목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과 한국의 칼빈주의 랜드마크로 우뚝 서리라 믿는다. 랜드마크(landmark) 또는 경계표(境界標)는 원래 탐험가나 여행자 등이 특정 지역을 돌아다니던 중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식을 해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 그 뜻이 더 넓어져 박헌성 목사가 IRUS(The International Reformed University & Seminary)를 통해 미국과 한국 더 나아가 세계 개혁주의 장로교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2016-05-08
    • G.PEOPLE
    • G.PEOPLE
    2016-05-11
  • 나다나엘 최우식 목사
    청년 때 가정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세상 밑바닥을 보면서 하나님을 찾게 돼이영수 목사 시절 총회 회록서기 김원범 목사 영향 해남에서 최우식 목사 혼자만 주류 최우식 목사는 주님의 제자 나다나엘처럼 속임이 없는 진실하고 좋은 목회자 꽃이 피어 세상이 한층 밝다. 온갖 꽃이 피어 하나님 지으신 세계가 화단 같다. 어떤 꽃은 일찍 피고, 또 어떤 꽃은 늦게 핀다. 그러나 각각의 그 꽃핌이 화단을 채색하고, 화단의 봄을 완성한다. 교회 화단에 목련이 피었다. 그 앞에 서본다. 은혜로운 주일 예배에 참여해 사도신경을 고백하듯 서보는 것이다. 만개한 목련 한 송이를 잠깐 바라보다 죽어도 헛것을 산 것은 아니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하나님을 모시는 믿음이 있고 추억과 미래라는 느낌 사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너무 가뿐한 삶이다. 젊고 예쁜 얼굴이 웃으며 지나가고 있다. 나를 보고 웃는 것은 아니다. 도착하자마자 사실 그 순간부터 목련처럼 우리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얀 꽃잎 뒤에 아쉬운 얼굴을 감추고 주일 아침 우리가 예배당 가는 사이 가자! 말하고는 떠나고 있다. 주님 만나 눈뜬 맹인의 지팡이 더듬어 잡은 듯 꽃들이 왔다 가고 있다. 아이들 주먹만 한 꽃숭어리에 꽃잎들이 각각 살아서 재잘대는 듯하다. 모란은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않는다. 가자! 말하고는 떠나는 듯 허무하다. 젊음의 모습 같고 나아가 인생의 모습 같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기도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저기 홀로 서서 제자리 지키는 목련처럼. 기도는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저기 흙 속에 뿌리 내리고 꽃 피어내는 목련처럼. 기도는 땅에다 이마를 겸허히 묻고 숨을 죽인 바위들처럼 고개 숙이는 것이다. 기도는 간절한 발걸음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깊고 편안한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목련꽃처럼. 그래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기도는 다만 주님의 침묵에 귀 기울여 스스로 고요해지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깊고 편안한 꽃나무의 침묵에 도달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3-51 예수께서 무화과나무 아래서 빌립이 그에게 주님 만나러 가자고 말하기 전에 나다나엘을 보셨다. 무화과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이다. 봄에서 여름에 걸친 시기에 엷은 흥색의 꽃이. 무화과나무의 열매인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는 과실이라고 해서 무화과라고 한다. 실제로 꽃은 과실 내에서 피며 외부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열매는 씨방이 큰 꽃받침 속에 형성되고 살이 많은 은화과(隱花果)이며 가을에 검은 자색으로 익는다. 무화과를 따보면 열매처럼 생겼지만 사실 속의 먹는 부분이 꽃이다. 즉 우리의 눈에 보이는 열매 껍질은 사실 꽃받침이고 내부의 붉은 융털들이 꽃이다 AD 27년경 예수님의 공생애 개시 얼마 후에 제자로 부름 받아 AD 1세기 중반 이후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당시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 사이에는 여러 형태의 종말론적인 메시야 대망 사상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정치적 메시야로서 이스라엘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어 행복을 누리게 할 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다니엘과 같은 일부 경건한 사람들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장차는 천국으로 인도하실 메시야를 기다렸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이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나를 좇으라” 말씀하셨다. 빌립은 예수님의 최초의 제자 중 한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빌립은 나다나엘을 만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증거하며 전도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말했다. 빌립이 “와 보라” 말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말씀하셨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놀라 예수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그 날까지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다나엘이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이며, 예수님께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까지 다 알고 계셨다. 나다나엘이 더욱 놀라 베드로처럼 외쳤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간사(奸詐)하다는 것은 나쁜 꾀가 있어 거짓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는 태도를 말한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말씀하셨다. 나다나엘에게 간사한 것이 없다는 예수님 말씀은 그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약시대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구약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만과 교만에 빠져 있었다. 말하자면 껍데기만 하나님의 백성인 거짓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땅에 가득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앞에 나타난 나다나엘을 보시자마자 예수님은 그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보셨다. 참 이스라엘 사람은 간사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거짓이나 위선, 또는 잔꾀를 부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간사함이 없는 인격, 이것은 참 이스라엘 사람, 즉 참된 하나님 백성의 특징이다. 그래서 시편 32:2에서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했다. 3월 13일 새벽 5시 예손교회 1층 40여명 교인들 방석에 앉아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교회 이름 예손은 마태복음 17장 7-8절 말씀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에서 따라 지었다. 신앙고백,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시편 25편 교독을 했다. 시 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예손교회 설립 23주년 되는 새벽 최우식 목사(제98회 총회 회록서기)의 설교 음성은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다윗의 영혼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우러러보고 의지해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합니다. 그는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간구했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어쩔 수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님을 우러러볼 때 주의 진리의 지도와 가르침을 간구하게 됩니다. 그럴 때 주께서 성실과 정직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도 주님처럼 성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이스라엘 백성된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구속해 주실 것입니다. 어디에서도 우리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다윗처럼 주를 우러러볼 때 주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기도합시다. 23년 동안 우리 교회 지켜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최명률 장로, 박정희 권사 예물을 드립니다. 이경환 장로, 이한순 권사, 양성표 집사 헌물을 바칩니다. 그들의 기도와 소원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리고 새벽에 무릎 꿇은 성도들 축복하여주십시오. 23년 우리 교회 지켜주신 주님 우리 교회 물댄 동산 같게 해 주십시오. 주님 오실 때까지 복된 교회로 인도해 주십시오. 이 나라도 주님께서 안돈시켜주십시오. 평양에도 길을 내주십시오.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길을 찾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후 불이 꺼지고 찬송 반주 가운데 교인들은 개인 기도를 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최우식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신학을 하게 됐습니까. “청년 때 가정이 아주 망가지고 어려움이 생겼어요. 그 바람에 세상의 밑바닥을 보면서 그때부터 하나님을 찾게 되었죠. 군대 가기 전이죠. 그렇게 해서 신학을 하게 되는 길이 열렸 습니다. 신학교는 군대 가기 전에는 지금의 광신대를 다녔어요. 군대 다녀와서는 학교가 나누어졌기 때문에 최기채 목사 측 광주신학교를 나왔죠. 총신은 79회입니다. 제가 86년에 강도사가 됐어요.” -예손교회는 1993년 3월 14일 설립됐는데 23년 됐는데 7년 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78년 1월 1일부터 전도사 생활 시작을 했어요. 저 해남 시골교회에 있었는데 그 때 주류와 비주류가 갈라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목포는 아주 비주류 판이었습니다. 목포 시온교회에 김원범 목사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이영수 목사 시절 1979년 제64회 총회부터 제66회 총회까지 회록서기를 하셨어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회록서기를 하면서 주류 측에 딱 서서 주도했습니다. 해남에 30교회이상 됐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 영향으로 나 혼자만 주류 측이었습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무안 일로 초곡교회에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전도사를 하다가 목포대학 건너편 청계중앙교회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큰 교회가 되었죠.” -그런데 어떻게 이 교회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거기서 목회를 하는데 지금 이 작은 교회가 분쟁으로 새로 분립이 되었습니다. 몇 명이 거기서 뛰쳐나왔어요. 나온 사람들이 다락방처럼 어느 처소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온 교회가 비주류 소속이었는데 나온 분들이 주류에 속하기를 원했어요. 나올 때 아예 그러기로 작정을 했던 모양입니다. 교인 몇 명이 백영규 목사를 찾아가 교역자를 보내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그때는 백영규 목사와 양근실 목사가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아주 힘이 황소처럼 셀 때였습니다. 그래서 양근실 목사가 저보고 가 볼 의사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기성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데 어떻게 개척교회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갈 이유가 없죠. 청계중앙교회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으니까요. 아주 평탄한 교회인데요. 목포대학교도 바로 건너편에 있는 목회 환경이 아주 좋은 곳이죠. 그런데 목회자는 이상하더라고요. 아무리 어려운 교회에서 청빙이 와도 고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 나이가 40이나 41살이었을 겁니다. 그때 그냥 과감하게 개척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사임을 하고 나와 개척을 하게 된 겁니다. 오늘까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건축을 언제 하게 되었습니까. “막 개척해 나와 1993년 3월 14일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5월에 이곳으로 오게 되고 몇 개월 지나서 지금 있는 땅을 사게 됩니다.” -교인들이 꽤 됐던 모양입니다. “(생각에 잠긴 웃음)땅은 빚으로 샀습니다. 그래서 부지 매입이 가능했죠. 사실 교회 있는 곳이 매립지입니다. 원래는 바다였죠. 그 위에 목포 쓰레기를 다 부었죠. 지하를 파보면 온통 쓰레기입니다. 황무지와 같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땅을 사고 1차 건물을 지었습니다. 지하 40평 바닥 100평이었습니다. 그 뒤 2000년도에 지금의 완전한 건물로 증축하게 되었습니다. 2단계로 건축이 이루어졌습니다. 옛날에는 지하실이 본당이었습니다. 오늘 새벽예배 드린 곳 왼편에 사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은행이 교회 대출을 해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아마 목포에서 우리 교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 돈으로 교회 건축을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이 헌신적으로 헌금을 해 대출을 거의 다 갚았습니다.” 3월 13일 오전 11시 예손교회 설립 23주년 기념예배 사회 최우식 목사 본문 마가복음 10:35-45찬양대의 마무리는 좋~다였다. 교회 23주년이면서 최우식 목사의 재직 23주년이기도 한 날이다. 그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 어조의 말씀 증거가 시작됐다. 오늘은 특별한 주일입니다. 1993년 3월 13일 창립되어 23년 세월이 숨가쁘게 흘러갔습니다. 수많은 성도가 오고갔습니다. 또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해외로 나가기도 하고 직장 때문에 옮기기도 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참으로 23년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금년 우리 교회 표어는 하나님 칭찬받는 교회입니다. 첫째 예배를 통해 하나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는 구령사업을 통해 하나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 인정하고 칭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시고 관계를 맺게 해 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덴에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사단이 뱀의 모습으로 에덴에 들어와 하와를 유혹해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타락으로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심지어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져 땅은 엉겅퀴를 내고 여인은 해산의 고통을 겪고 남자는 노동을 해야 합니다. 복음만이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5절에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습니다. 37절에서 그들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41절에서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45절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예수님은 인간의 본성과 배치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은 야고보와 요한처럼 욕심을 내는가하면 나머지 열 제자처럼 높아지는 일에서 배제되면 분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성령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성령이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성도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열매는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고 좋아지게 만듭니다. 즉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능력도 좋고 집안도 좋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일지라도 관계가 틀어지거나 깨어지면 모든 게 허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깨질 때 교회 안에 생깁니다. 우리 모두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23년을 지내고 보니 교인이 떠나는 것은 목사의 설교가 못 마땅해서가 아니라 관계가 깨질 때였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상황에서 목사와 장로 직분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그것이 무슨 덕이 있겠습니까.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자각하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김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섬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제 23주년을 지나 30주년을 향하는 우리 예손교회의 비전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섬김이 우리 성도의 비전이 되게 합시다. 앞의 성도는 눈물을 닦았다. 제98회 총회(총회장 안명환 목사)에서 회록서기를 지낸 최우식 목사(목포서노회)는 목포의 인물 전 대통령 김대중 씨의 풍모를 닮았다. 그는 임원회가 맡겨주는 일은 무엇이든 나다나엘처럼 진실하게 처리했다. 분쟁으로 앓고 있는 전주서문교회와 관련해서 총회결의집행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최우식 목사는 김승연 목사가 6개월 혹은 1주일 간 한시적으로 당회장직에 복귀하도록 하고, 이후 양측 합의 하에 교회 개척 등의 방식으로 분리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 그러나 김승연 측과 장로 측의 고집스러운 요구조건의 대립으로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아쉽게 결렬됐다. 교회 정상화와 합법적인 분립문제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은 위원장 최우식 목사의 설득에도 끝내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처리를 통해 호남에서 모처럼 좋은 재목이 될 풍모와 심지를 지닌 총회 정치인이 나왔다는 인상을 전국 교회에 각인시켰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말씀하셨다. 최우식 목사는 총회 대들보 정용환 목사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진실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듯 주님의 제자 나다나엘 같은 목회자다.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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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15
  • 함성익 목사 모친 소천
    함성익 목사(황해노회 노회장, 창성교회)의 모친 김영숙(故 함영진 목사의 사모)께서 2015년 12월 26일 오후 3시 45분 88세를 일기로 소천하셨다. 입관예배는 12월 27일 오후 5시 30분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총회 부총회장 김선규 목사의 주례로 드렸다. 발인 및 천국환송예배는 12월 28일 오전 9시 창성교회(도봉구 창동 448-42)에서 음악예배로 드린다. 세계적인 성악가 김순영, 추희영, 김세일 등과 현악 4중주와 금관 5중주의 협연으로 故 김영숙 사모의 천국 환송식이 아름다운 선율 속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아들로는 함성익 목사 외에 세계적인 지휘자 함신익(미국 예일대 교수)이 있고 사위로는 김일규 목사(광명소하교회 담임)가 있다. 201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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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7
  • 박명곤 목사의 문서선교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대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질이 좋은 점토가 많이 생산 되어 이를 점토판 형태로 만들어 최초의 책을 만들게 되었다. 그 방법은 적당한 크기와 두께를 가진 점토판을 만들어 양면이 굳기 전에, 갈대나 나뭇조각을 뾰족하게 깎아 펜으로 당시의 문자인 설형문자를 적어 넣었다. 이것을 햇볕에 말려 가마에 넣고 구우면 돌처럼 굳어지는데,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젖지도 않으며, 동물로부터의 해도 막을 수 있고, 땅 속에 묻어 두면 전쟁도 피할 수 있으며, 또 깨어진다 해도 파편을 모으면 복원도 가능하기 때문에 수천 년에 걸쳐 점토판을 통한 책문화가 발전하였다. 기독교 책문화의 발전을 위해 총신대, 장신 신대원, 휘튼의 문서선교학까지 전공하고 평생을 기독교문서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있다. 그는 2015년 11월 5일 오후 2시 분당의 구미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크리스찬다이제스트 대표 박명곤이다. 그가 목사들의 강단을 위해 발행한 책은 라틴어 원본으로 번역하고 있는 성서주석을 비롯해 300여 종이 넘는다.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은 말했다. “한 권의 좋은 책은 위대한 정신의 귀중한 활력소이고, 삶을 초월하여 보존하려고 방부 처리하여 둔 보물이다.”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책읽기의 기쁨은 두 배가 된다고 한다. 교회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목회자들이 있다. 그러나 문서를 통해 한국기독교에 기여를 한 인물로 이제 안수를 받은 박명곤 목사를 꼽는다 해도 그들 목회자들에 비해 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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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3
  • 대한기독교서회와 김계원
    대한기독교서회는 1890년 설립된 기독교계열 출판사이자 연합기관이다. 옛날에는 책(서적, 잡지 등)을 파는 소매점은 책방이라 부르고 출판사를 서점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은 지금도 소매점과 출판사를 뭉뚱그려 서점으로 칭하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출판사가 서점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한 탓이다. 그중 대한기독교서회는 기독교출판사와 서점이 동일시되는 흔하지 않은 경우다. 대한기독교서회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기독교서회 서점이 지난해 2014년 12월 29일 한국기독교회관 1층에서 지하로 자리를 옮겨 서울대 입구의 종로5가를 영성과 지성으로 빛내던 명소의 자리를 내줬다. 이 서점과 평생을 같이 한 서점인이 있다. 그는 김계원 국장이다. 그는 1990년 6월 대한기독교서회 계장으로 입사해 과장, 부장, 부국장, 국장 등을 25년 동안 역임하고 2015년 12월 말 상무보로 퇴직할 예정이다. 문서선교의 병참인 서점에서 퇴직하는 그는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교인들이 성경을 가슴에 안고 교회 출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교회는 영상으로 성경 말씀과 찬송가 가사를 안 보여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성도들의 영적 믿음의 질이 높아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반듯한 성도가 될 것이다.” 김창국(金昶國) 목사의 아들 김현승(1913-1975) 시인의 “책”이라는 시가 있다. 가장 고요할 때가장 외로울 때내 영혼이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나는 책을 연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조심스러이 연다. 가장 기쁠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선물을 기다리고나와 같이 그 기쁨을 노래할 영혼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갈 나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간나의 친구들을 거기서 만난다. 아,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주택들아,가장 높은 정신의 성(珹)들그리고 가장 거룩한 그들의 일생은거기에 묻혀 있다. 나의 슬픔과 나의 괴롬과 나의 희망을노래하여 주는 내 친구들의썩지 않는 영혼을 나는 거기서 만난다.그리고힘주어 손을 잡는다. 20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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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2
  • 총회 대들보 정용환 목사
    목포 시온聖교회 당회는 12월 4일(금) 연말당회를 갖고 수석장로 김민용 장로의 제안으로 당회장 정용환 목사의 제101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 추대를 만장일치로 결의 목포시를 지나 황해로 흐르는 영산강(榮山江)이 휘어서 구부러진 곳에 쌓인 모래밭이 보인다. 물에 닦이고 닦여 이루어진 고운 모래가 넓게 덮여 이른 겨울 햇살에 가볍게 잇따라 반짝인다. 목포 시온聖교회 당회는 12월 4일(금) 연말당회를 갖고 수석장로 김민용 장로의 제안으로 당회장 정용환 목사의 제101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 추대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호남 대들보로 알려진 정용환 목사가 총회 대들보로 자리매김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는 명실상부한 총총 출신의 첫 번째 총회장이 될 것 같다. 더 나아가 그는 총회의 유리창 김선규 목사를 뒤이어 한옥의 기둥과 기둥을 이어주는 큰 들보처럼 교회와 노회를 튼튼하게 이어주는 명실상부한 총회 정도정치의 대들보가 될 역량과 비전을 가진 인물이다. 그 누구와도 소유 관계가 없는 모래밭은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산통을 겪으면서 낳아 품은 것이다. 그 모래밭이 우리 믿음의 영혼이 살다 가는 교회당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금빛의 모래밭은 우리 믿음의 영혼이 기도하는 기쁨과 평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강물처럼, 인생의 시간은 모래밭을 돌아 무심하게 흘러간다. 그렇게 영산강처럼 흘러가며 목포 시온聖교회에서 33여년 목회로 닦이고 닦여 금모래처럼 반짝이는 영혼을 지닌 정용환 목사가 우리 교단의 대들보가 될 것이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그의 시 《나는 누구인가》에서 자신을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누구인가그들이 종종 말하기를내가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왕이 자기 성에서 걸어 나오듯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나는 누구인가이 외로운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내가 그의 것임을 《나는 누구인가》의 시처럼 정용환 목사는 자신과 목회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해군사관학교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저하고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아들을 낳으면 목사 시키겠다고 서원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해군사관학교 31기 시험을 봤는데 합격할 리가 있겠습니까. 낙방하고 말았죠. 하는 수 없이 어머니 서원대로 신학대학 가서 목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해군 군목이 되게 하시더군요. 목포에서 근무한 그 해군 인연으로 제대하자마자 31살 나이로 목포에서 제일 큰 이 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입니다. 참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입니다. 제가 지금 한 교회에서 30년 넘게 목회하고 있는데 성실과 진실로 목회했습니다. 설교 못 해서 실패하는 목사 없어요. 이성 문제 돈 문제 때문에 다 무너져요. 목사는 시무하는 교회에서 그만 둔다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됩니다. 끝날 때 끝나더라도 말입니다. 교회에서 집 두 채 사줬어도 다시 헌납했어요. 장로님들이 저를 믿어요. 개인을 위해서 돈을 쓸 목사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정용환 목사는 《나는 누구인가》의 시에서처럼 언제 어디서나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 2015-12-22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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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2
  •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
    제100회 총회 끝나고 199,000원 내고 예약한 패키지여행 상품에 실려 마닐라에 도착했다. 저녁 먹고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마닐라 거리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차가 막힌 길에 배수로가 힘에 겨워 물을 게워내자 길가는 개울이 되었다. 차가 다니는 차창 밖 흐르는 그 개울에 아이들이 남녀가릴 것 없이 한 여름 뚝섬 야외 수영장처럼 뛰어들어 물놀이했다. 그 빗물은 하늘에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쏟아지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땅에서 그들의 기쁨을 위해 괴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안다. 비가 새는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걱정이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안다. 그런데 이 필리핀 마닐라의 아이들은 지붕이 없는 거리가 그들의 집이고 빗물은 그들의 샤워기다. 그래서 비가 새는 집이 없는 그들은 비오는 날이면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매년 그렇듯이, 10월 31일이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수없이 듣게 된다. 다소 촌스러운 피아노 솔로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는 아무리 거지같이 끝난 인연이라도 코끝 찡한 기억이 되게 한다. 그 노래는 들을 때마다 ‘지금도 기억하느냐’고, 꼭 그렇게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었냐고 묻게 만든다. 그러나 떨어지는 낙엽에 늙어가는 것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 가을에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만 기억해야 한다. 또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할 만한 것들을 죽어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앞으로도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제101회 총회에서 75세 정년제도 결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라고 낙엽도 지고 단풍도 드는 거다. 10월 31일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들어야 할 날 계룡시 금암동 홈플러스 앞에 있는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를 만나러 갔다. 점심시간이라 김상윤 목사는 나와 더굳뉴스 편집장을 맡고 있는 아내를 교회 바로 옆의 ‘맛나감자탕’ 식당으로 안내했다. 이 식당은 나중 알고 보니 감자탕을 파는 음식점인데도 스타벅스처럼 2014년 12월 기준으로 전국 56개 체인점이 있고 중국과 필리핀 등의 해외에도 진출했다. 창업자 이경섭 장로가 감상윤 목사에게서 은혜를 받고 그의 권면을 따라 1998년 1월 감자탕 양념소스 연구개발을 시작해 2002년 11월 맛나감자탕 개인 식당을 창업(천안, 쌍용동 30평 규모)했다. 감자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뭐 전공하셨어요. “나는 전자공학 했어요. 사업기질이 있어가지고 고2 때부터 특허내가지고 생산해내고 영업사원들 데리고 사업하는 게 좋았어요.” -그럼 목회는 어떻게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목회야 뭐 선조들이 계시니까 내가 3대째인데 안 할 수 있나요. 그런데도 신앙생활하기 싫어서 교회 안 다니고 도망갔다가 두 손 들고 회초리로 맞은 기억도 있어요.” 먹음직스러운 감자탕이 우거지와 함께 보글보글 끓었다. -이런 감자탕집이 많은데 이 집은 뭐가 다른 가요. “이 집 이 감자탕이 아주 특별합니다. 감자탕 관련 발명특허만 2개입니다. 잡숴보시면 맛이 전혀 다르다는걸 아시게 될 겁니다. 나도 이경섭 장로님에게 이 사업 해라 해 놓고 나도 옛날에 사실 감자탕을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원래 돼지고기 좋아하는데. 먹어보면 돼지고기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요. 내가 천안에서 교회하고 있다가 10년 전에 계룡에 다시 개척한다고 내려올 때 이경섭 장로님이 따라 내려왔어요. 내가 가는 곳은 다 따라간다고 따라와서 두 가정 위해서 다시 개척한 거예요. 개척하게 된 동기는 사람들이 도무지 설교 듣고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나도 그랬지만. 꼭 성경공부를 해야만 되고 제자 교육을 해야만 되냐 이거예요. 설교만 들으면 좀 바뀌어야지.” -그렇지요. 원래 그래야 되는 거죠. “그게 원안 아닙니까. 성경공부가 아니고 설교를 통해 변화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유가 뭔가. 설교만 가지고 한번 해 보자. 그래서 천안은 다른 목회자한테 주고 나는 이리 빈손 쥐고 이리 왔지요. 나는 빈손 쥐고 다녀요. 와가지고 10년 됐는데 지금 짓고 있는 게 세 번째 짓는 예배당이에요. 여기 짓고(감자탕식당 있는 건물에 교회가 있었다), 건너편에 지금 있는 교회 짓고, 그리고 저기 옆에 1540평 교회 지금 짓고 있어요. 아니 식당에서 뭘 찍어요.” -식당이지만 기념이니까 한 장만 찍어요. “나는 목사님 사진 찍는 거 보면 늘 힘들더라고요. 저는 하나님께 안 가고 사업을 하려고 그랬어요. 군대 생활을 8년 조금 넘어 했는데 퇴직금 340만원 갖고 얼마 안 되어 적지 않은 돈을 만졌습니다. 86년도였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사업하고 기획하고 이런 거는 좀 잘해요. 그런 게 저한테 좀 맞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신학은 몇 년도에 시작하신 거예요. “벌써 21년 되었지요 원래. 저는 재건파 출신이에요. 저희 집안이 재건파입니다. 제가 해방둥이죠. 저희 할머니가 재건파 개척에 아주 선두적인 역할을 했죠.” -재건파 교인들은 아주 진득하죠. “진득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좀 모자라죠. 하나밖에 모르는 외곬입니다.” -총신 총장 김영우 목사 때문에 제가 재건파 교회 다녔었죠. 김영우 목사가 총신 신학생 때 남대문에 있는 재건파 교회 담임 전도사가 된 인연으로 교사로 잠간 봉사했지요. “김영우 목사가 그런 경력도 있군요. 저는 총신은 편목 과정을 했지요. 104회죠. 식사기도 해 주세요. (내가 식사기도를 했다. 감자탕 요리는 김상윤 목사가 집게와 국자를 들고 조절을 했다.) 이건 제가 전문가입니다.” -마을이 아주 아늑하네요. “오래 되긴 했는데 발전이 안 되고 있어요. 여기 제가 10년 전에 왔을 때 허허벌판이었어요. 홈플러스도 10년 만에 들어온 겁니다. 먼저 국물을 좀 떠서 드세요. 고기를 양념장 찍어 드시면 맛있어요.” -감자탕 집에 교회 간판이 붙어 있어요. “장로님이 저쪽에도 감자탕 집을 해요. 왜냐하면 돈이 없으니까요. 이쪽에 교회 지었을 때도 2층에 감자탕 집을 하다가 이 건물을 지었어요. 저한테 은혜 받고 저를 따라다녀서 제가 감자탕을 해보라고 권해서 감자탕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여기 와서 장로님이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 돈 제가 다 갖다 썼어요.” -그 장로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경섭 장로님입니다.” -그럼 목사님 만난 지 몇 년이 되신 겁니까. “29살에 나를 만나서 지금 51세니까 만 21년 됐네요.” -이경섭 장로님은 이 방면에 연구를 많이 하신 모양이죠. “이 감자탕 공장을 4개나 가지고 있어요.” -감자탕 식당을 하는데 공장이 필요합니까. “이게 그냥 식당이 아니고 기업이고 경영입니다. 연구 엄청 합니다. 여기에 딸려있는 공장이 고춧가루공장, 여기 들어가는 양념장공장, 커피공장이 있어요.” -감자탕 사업을 이렇게 하실 줄은 아무도 생각 못했겠는 데요. “고춧가루도 전부 자체에서 농사지어 생산해서 해썹(HACCP) 인증을 정부로부터 받아서 합니다.” -해썹(HACCP)이 뭡니까. “해썹(HACCP)은 정부가 인정하는 기준치입니다(해썹, HACCP은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s의 약자인데 생산-제조-유통의 전 과정에서 식품의 위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해요소를 분석하고, 이러한 위해 요소를 제거하거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계에 중요 관리점을 설정하여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식품의 안전을 관리하는 제도). 그래서 식품류 이런 것들은 KS가 아니고 해썹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업체를 청정업체로 인증을 합니다.” -감자탕을 먹어도 이런 것은 새까맣게 몰랐네요. “일반 감자탕은 경쟁력에서 못 따라옵니다. 체인점(chain store)을 내줄 때 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고 경영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봅니다. 장사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는 게 아니라 경영능력을 봅니다.” -그럼 본사에서 자재를 다 공급해 줍니까. “자재와 기술 노하우를 제공합니다.” -그럼 맥도날드에 햄버거 학교가 있듯이 여기에도 감자탕 학교가 있습니까. “학교는 없지만 여기 와서 3주간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물도 알칼리수예요. 이거는 정수기가 아니고 의료기기예요. 이거는 보사부에서 인증하는 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가 이걸 가져가서 대장균 검사나 농약 검사를 하면 278가지가 제로로 나와요. 여기서 나오는 산성수가 다 씻어버리니까.” -이 감자탕 많이 알려졌겠네요. “그럼요. 저 밑으로는 경남 부산 이쪽으로는 아주 유명하죠. 서울에는 아직 없어요. 서울에 아직 올라가지 못한 이유가 인력이 없어서 못 갔습니다. 거기 올라가 체인점 막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감당을 못하니까요. 인력 구성이 어지간히 됐을 때 올라가려고 합니다.” -이 뼈도 양돈업체에서 남는 거 가져오는 게 아니라 ‘맛나감자탕’에서 생산을 해내겠네요. “일반 양돈업체에서는 여기 물량을 댈 수가 없어요. 국내산이 아니고 캐나다에서 직접 들어오는 거예요. 돼지고기는 캐나다를 최고로 알아주죠. 한국 종돈이 거의 다 수입한 캐나다 종돈입니다. 돼지 파동이 나서 다 죽으면 캐나다에서 수놈을 다 들여옵니다. 국산보다 더 비쌉니다.” -그럼 캐나다에서 뼈만 가져옵니까. 아니면 돼지 자체를 가져옵니까. “돼지 자체를 가져와서 서로 나누죠. 여기는 여기 필요한 거 여기서 쓰고 그래서 몸도 살이 많잖아요. 그리고 나머지는 딴사람들이 가져갑니다. 맛있지요. 이게 먹기가 편하지 않긴 하지만 참모총장님도 이거 먹으러 여기 옵니다. 회식하러 오고 정부 인수팀들이 국방부 내려오면 여기 와서 이거 먹으러 옵니다.” -이 ‘맛나감자탕’이 여기 특산물이겠네요. “아주 유명하죠. 뼈가 잘 떨어지죠. 소화가 빨리 됩니다 이게. 저희 교회가 호남 초입이다 보니까 호남 계신 분들이 내려가다 들리고 올라오다 들릅니다. 나만 있으면 들릅니다.” -우리 집 근처에도 잘 되는 감자탕 집이 둘이나 있는데 비교가 안 되네요. “여기 감자탕은 살점이나 뼈나 국물이나 우거지나 맛이 똑같습니다. (면 사리를 넣었다.) 우리 조카 세 명이 다 엘리트예요. 영어 잘 하고 일어 잘 해요. 그런데 전부 회사를 그만두고 감자탕집해요. 근데 우리 큰 조카가 제일 많이 팔아요. 하루에 부산에서 700만원 800만원 팔아요. 그 식당들은 기업이에요. 주일날 쉬니까 한 달 매출이 거의 1억 6, 7천 돼요. 그런데 또 건물 하나 사가지고 울산에서 신규 점포를 또 하나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큰조카가 부산 경남지사, 둘째 조카가 울산지사, 막내 조카가 본사 파견 본부장입니다.” -결국 김상윤 목사님이 사업을 하고 계시는 거네요. “그 다음 여기 본사 총괄 본부장이 우리 큰아들입니다. 그다음 고춧가루공장 그 법인장이 우리 작은아들입니다. 얘들 연봉이 7000넘습니다. 31살에 삼성에서 연봉 7000받았어요. 근데 문제는 주일을 쉬지 못했어요. 작은애는 케이씨 구미 기획실에 있었는데 주일을 쉬지 못 하니까 사표 내버렸어요. 장로님이 그렇잖아도 우리 사람 필요하니까 너 사표내고 와라 한 겁니다. 큰아들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작은놈이 왔습니다. 세금이 워낙 많이 나오니까 법인을 여럿 만들었어요. 알칼리수 만드는 공장은 OEM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인재들이 모여 있네요. “그래서 여담이지만 이건 밥장사가 아닙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거죠. 애들이 한국 최고의 자기 분야에서 대기업에서 일하던 애들이요. 우리 조카도 연봉이 5000이 넘었어요. 대기업에서 선박회사에서 일하던 ‘맛나감자탕’에서 일하면서 조카 셋이 지금 화순에서 300평 교회 하나 짓고 있어요. 그 일은 우리 조카들에게 너희 돈 벌면 뭐 할래 하나님 일이나 하자고 해서 시작된 겁니다. 저희들이 필리핀에 교회 13개 지어놓았어요. 그리고 학교가 10개예요. 유치원 3개, 초등학교 3개, 고등학교 2개, 비인가 신학교 하나 엠디비 대학 하나를 세웠어요. 해마다 건물 짓고 있어요.” -필리핀 선교하는 사람이 많은데 특별히 필리핀에 어떤 관심을 가지고 선교를 하십니까. “그 나라 사람들은 성경이 있고 예수님 알고 하나님 알아요. 그러니 구원의 길만 가르치면 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도하려고 접근하면 됐어요 이러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친절하고 사탕봉지만 들고 가면 어린아이들이 다 모여요. 벌려놓은 밥상이죠. 수저만 들면 잔칫상입니다. 이런 데를 안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점을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극동방송에서 필리핀에 있다 나온 선교사님이 필리핀 선교는 끝났다하는 겁니다. 그때 한참 그런 말이 돌았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아직 안 오셨는데 어떻게 선교가 끝났다고 선교사가 말할 수 있느냐. 그래서 필리핀에 가보자 하고 갔습니다. 가보니까 여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하구나. 우리나라는 접촉점 때문에 세미나 사탕 화장지 별걸 다 동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필리핀은 접촉점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는 이미지 하나만 가지고 접촉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걸 못하느냐. 그래서 영어공부를 위해 한국 선교사가 하는 영어 캠프에 지원을 했어요. 갔더니 이유를 알았어요. 접촉을 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선교사가 단절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너는 필리핀 사람이잖아. 한국 사람이 먹는 밥상에 올라오면 안 돼. 너 필리핀인이니까 그 음식 먹어. 우리는 이거 먹을래. 스스로가 담을 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집일하는 여자가 주일에 교회 가냐고 하니까 갔다 안 갔다 한데요. 왜 안 가냐니까 우리처럼 손님이 오면 집에서 음식하며 시중들어야 하니까 못 간다는 겁니다. 문제점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가까이 있구나. 석 달 과정의 영어 공부하러 갔다가 두 달 등록금 포기하고 체류비만 받아 가지고 나와 마닐라 시립대학으로 다시 갔어요. 역사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무시험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대학이 800개나 되는데 그 대학은 상위권에 속하는 괜찮은 학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따갈로그와 영어를 익히게 됐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접근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제대로 필리핀 선교를 하게 된 거죠.”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과 같이 무어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러나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종류의 기억을 심리학에서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향수' 혹은 '그리움'으로 번역된다. 이 찬란한 가을에 잘 읽지도 않는 신학서적이 늘비한 당회장실에 틀어박혀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가 실행위원회에서 남다른 부흥사 이승희 목사의 대독을 통해 규제하기로 통과시키고 결의한 각종 사설언론의 뜬금없는 이야기나 들여다보며 매번 믿음을 떠난 이야기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성경 묵상이나 기도가 아닌 손바닥 만한 스마트폰에 온종일 머리 처박고 눈알 굴리지 말자. 나름 성공한 목사들도 풍요로운 '노스탤지어'의 가을을 보내야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다. 곧 추워진다. 계룡시를 지나는 길이면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에게 전화해 ‘맛난감자탕’의 뜨거운 돼지뼈 국물과 우거지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는 향수에 젖어 필리핀선교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2015-11-23
    • G.PEOPLE
    • G.PEOPLE
    2015-11-23
  •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
    비가 그치고 늦가을 바람이 분다. 총회 앞 오래된 은행나무 숲을 쓰다듬으며 가을이 동쪽으로 기울어진 소리를 내며 가을이 제100회 총회 일정 속에 지나가고 있다. 가을 찬비 지나가고 나면 훨씬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많다. 가을바람은 냉담하다. 가을바람은 옹색하다. 한 채의 빈집 같다. 그러나 가을바람은 으스스하긴 해도 흐리터분하지는 않다. 흐린 정신을 바로 세운다. 가을바람은 서리처럼 흰빛이다. 이처럼 가을이 기울어져 지나가고 나면 나무는 앙상한 가지로 차림차림이 간편해지고, 숲의 살림은 더욱 단출해질 것이다. 그것이 나무와 숲의 본래 면목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있던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길을 떠났던 사람이 그 행로를 되짚어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듯이 이제 해는 일찍 떨어진다. 가을의 주위는 점점 일찍 어두워진다. 내 바로 맞은편을 바삐 지나가는 허활민 목사 같은 가을의 얼굴을 본다. 대치동 하늘 아래 총회의 결의가 흐르고 우리들의 시간도 흘러간다. 허나 의견의 대립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섭리의 세월은 흐르고 우리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기억 밑으로 미세한 음성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교회는 외로워 보이지만 사랑을 늘 묵상하는 목사 같기도 하다. 사랑의 교회가 사랑을 잃고 난 후의 통성 기도 같기도 하고, 말씀에 대한 사랑 혹은 순종의 자세 같기도 하다.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날을 몰라 우리는 거기 머물며 교회 밖에서 노회로 총회로 허둥대고 있다. 2007년 9월 12일 분당 수내동에 있는 연정교회(김용실 목사)에서 열린 제92회 총회에서 총회 서기로 선출된 백남선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선임자들이 이루어놓은 토대 위에 힘을 더해 교단 행정의 신속성과 신뢰성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이 말은 7년 후 2014년 9월 22일 광주 겨자씨교회에서 열린 제99회 총회장이 된 백남선 목사에게 더욱 절실한 말이었던 것 같다. 그는 2013년 9월 23일 수원 라비돌에서 열린 제98회 총회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저력을 보여 주었다. 백남선 목사는 김영우 목사와 경합하여 총 득표수 1446표 중 828표를 얻어 618표를 얻은 김영우 목사를 200여 표차로 당선됐다. 그는 사심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백남선 목사는 당선 후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많은 분들의 기대대로 총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주력할 것입니다. 우리 교단의 추락한 공신력과 도덕성을 다시 회복시켜 반석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인적 쇄신이 필요하며, 총회를 사심 없이 섬길 수 있는 인물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제도 자체보다는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불신을 없애 투명한 총회를 만들겠다는 약속, 법이 지켜져 공의가 서는 총회를 이루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교단의 발전을 위해 생명을 다하는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2014년 9월 22일 광주 겨자씨교회에서 열린 제99회 총회에서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길자연 목사 이후 간선제로 인한 15년간의 산적한 문제들을 쾌도난마(快刀亂麻)로 처리했다. 쾌도난마는 잘 드는 칼로 마구 헝클어진 삼 가닥을 자른다는 뜻으로, 어지럽게 뒤얽힌 사물과 사건을 강력한 힘으로 명쾌하게 처리함을 이르는 말이다. 실례로 총회 개회 둘째 날 각 위원회 보고 가운데 납골당에 안치된 임태득 목사 때 시작해 12년을 끌어온 핵심 비리 세력의 사건 은폐 음모를 총회장 백남선 목사의 쾌도난마 사회로 단칼에 베었다. 역대 총회장의 사적인 감정과 생각은 억제되고 공적인 총회 헌법과 신앙이 드러나는 총회장 백남선 목사의 사회는 총회 99년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쾌거(快擧)로 기록될 것이다. 가히 그의 쾌거는 그동안 각종 비리로 점철된 죽은 총회가 비리와 의혹을 걷어내고 바르게 다시 일어나는 부활 총회라 칭할만했다. 2014년 11월 25일(화) 대전중앙교회에서 제99회 총회(총회장 백남선 목사) 제1차 실행위원회가 소집되어 97명이 참석했다. 대전중앙교회의 우람한 파이프오르간을 배경으로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예배 후 회의를 시작하면서 차분하고 겸손한 어조와 태도로 입을 열었다. “총회의 결의는 총회의 신학교인 총신대학교가 총회의 필요에 따라 정관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총신을 위한 총회 결의 시행에 있어서 총회와 재단이사회(이사장 김영우 목사)가 충돌해서는 안 됩니다.” 김영우 목사는 뒷자리에 병풍처럼 앉아 있었다. 첫 발언자 문찬수 목사는 국가가 인정한 사립학교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서 그동안 발언에 나서지 않던 위원이 등장했다. 그는 경기남노회의 오인호 목사였다. 그는 총회 결의 사항을 실행위원회에서 변경할 수 있는가? 총회의 결의를 집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뒤에 앉아 있던 하귀호 목사는 사회석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형만 목사는 차분한 어조로 발언했다. “총회는 대의정치이고 대의민주제다. 그러므로 운영이사회(이사장 김종준 목사)에 지시를 내려 재단이사회가 정관 개정을 하게 하면 된다. 최병남 목사 때 총신 문제로 2억 3천만원의 소송비가 들어갔다. 더 이상 소모전은 되풀이하지 말자. 총회는 법적 대응을 잘 하고 있는가. 가처분은 가처분일 뿐이다. 이 일은 임원회에서 진행하면 된다. 위원을 내서 은혜롭게 진행했으면 좋겠다.” 정중헌 목사는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실행위원회에서 인사를 다룰 수 없다. 위원 선임은 정관에 위배된다.” 서광호 목사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말했다. “세상법과 총회가 충돌할 때 목사는 총회를 따라야 한다. 그리고 총신 정관과 총회 규칙이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 위원의 생각은 총회도 존중해야 하고 총신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을 내서 이 일을 처리하기로 동의합니다.” 백남선 총회장이 말했다. “재청 있습니다.” … 하귀호 목사가 발언에 나섰다. “잘 하자고 모였다. 앞의 동의에 대해 개의를 하겠다. 실행위원회는 소총회라고 할 수 있으니 현장에서 3구도에 따라 3명씩 9명의 위원을 내도록 하자.” 오인호 목사가 다시 발언대에 섰다. “정관 개정 불가라는 말은 웃기는 얘기다. 재단이사들이 사임하기 전에 총회 결의를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총회법을 거부하는 무언의 행위다. 총회 결의대로 진행해야 한다.” 총회장이 발언했다. “이사 사임 처리 안 되었다. 아직 교육부에 보고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사회의 이성적 협조가 필요하다.” … 서광호 목사가 다시 발언에 나섰다. “중지를 모을 목적으로 모든 권한을 임원회에 맡겨 처리하기로 동의한다.” 총회장이 가부를 물었다. 가결되었다. 김영우 목사의 도봉산의 바위 같은 병풍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백남선 목사는 평소 앞에 나서 많은 말을 하는 대신, 조용히 일을 진행하고 수습해나가는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논리적이고 냉정한 율사(律師)의 풍모가 풍긴다. 2014년 6월 12일 총신대총장 길자연 목사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임원취임승인취소가처분취소’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결심공판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2014년 교육부가 길 목사의 칼빈대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총신대로 보낸데 대해 길 목사가 가처분과 본안 소송을 차례로 제기하므로 진행되어왔다. 재판부는 길 목사의 가처분은 받아들였으나 이번에 본안 소송은 거부했다. 총신대 총장 길자연 목사가 6월 25일 사임했다. 재단이사회(이사장:김영우 목사)는 6월 25일 길자연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심상법 대학원 부총장을 총장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교계의 일세를 풍미(風靡)한 길자연 목사는 말했다. "총회와 총신대의 화합을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 교단이 정상화 되어 100회 총회가 '화합총회'로 진행되길 바란다." 6월 27일 토요일 오후 4시 총신 이사장실에서 김영우 재단이사장은 기자 간담회를 갖고 제99회총회 총신대 관련 결의 가운데 소급 적용 조항만 빼고 제99회 총회 결의대로 총신대 정관을 개정하겠다는 당연한 입장을 밝혔다. 이 소식이 즉각 전국 교회와 총대들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백남선 총회장의 비선 실세들과 김영우 목사의 밀사가 움직이게 만들었다. 6월 30일 화요일 광주에서 비선 실세들을 통해 물밑에서 백남선 총회장과 총신대 재단이사장이 의견을 나눈 뒤 만나 그들 나름의 측근들이 배석한 가운데 총회와 총신 양측의 이른바 합의서라는 것을 발표했다. 합의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와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는 아래와 같이 합의한다. 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는 김영우 재단이사장을 길자연 전 총장 잔여 임기동안 총장으로 운영이사회에서 선출하여 재단이사회에서 최종결정하는 사항을 추진한다. 2. 총신대학교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는 총장으로 선출될 경우 재단이사장직과 이사직을 사퇴 하고 재단이사회에 관한 것을 관여하지 않는다. 3.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운영이사회를 소집하여 관련 사항을 처리한다. 2015년 6월 3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 총신 문제는 몇 차례의 사퇴 발언 끝에 결국 사퇴한 길자연 총장의 잔여 임기 2년 4개월을 생각지 않게 물려받은 김영우 목사가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와 제99회에 이어 제100회의 여전한 실세로 알려진 허활민 목사와의 원만한 타협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즉 김영우 목사의 전임 길자연 총장의 잔여임기는 보장하되 재단이사회의 구성은 전임 총회장 백남선 목사와 현 총회장 박무용 목사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 결과를 보면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그의 날카로운 면모대로 오랜 세월 갈고닦은 총회 정치의 올곧은 연륜과 지혜가 돋보인다. 백남선 목사는 제99회 총회 내내 그리고 제100회 총회 벽두의 실세는 소문에 따른 허활민 목사가 아니라 바로 그였다. 그리고 허활민 목사는 소문과 달리 실세(實勢)가 아니라 허세(虛勢보다 許勢)였다. 얽힌 실타래 같은 교착상태의 총신 문제를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그의 장기(長技)인 쾌도난마(快刀亂麻)로 처리했다. 2015년 7월 6일 오전 10시 30분 유성 관광호텔 8층 스타볼룸에서 전국호남협의회(대표회장 최병남 목사) 제16차 정기총회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전국의 회원들이 좌석이 모자라 따로 식사 자리를 마련할 정도였다. 접수대에는 제100회 총회부서기 후보로 나선 이형만 목사(전호협 회록서기), 총회장로부총회장 후보로 나선 신신우 장로(전호협 회계), 총회부회계 후보로 나선 양성수 장로(전호협 부회계) 등이 전호협 총회에 참석하는 회원들의 접수와 안내를 맡아 봉사하고 있었다. 제16기 대표회장에 백남선 목사가 선임되었다. 그는 취임 인사에서 전국호남협의회의 앞날이 아니라 총신 총장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제까지 누구한테 로비를 받아 일해 본 적도 없고 마음도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냐 총회 결의에 맞는 일이냐 그것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일했습니다…총신 정관을 총회 직할이라 고치고 앞으로는 총회 허락 없이는 재단이사들이 마음대로 재단의 법을 고칠 수 없게 하려고 합니다…정부에서 앞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구조 조정한다고 합니다. 우리 총신이 지금 316명 허락받아 모집합니다. 10프로 감축이 4개 학년에 적용되면 120여명 줄어들게 됩니다. 지금 우리 총신은 총신 자체로는 운영이 어렵습니다. 타산이 안 맞다고 대학부를 없앨 수도 없습니다. 분규 대학이 되면 형편이 더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생겨 김영우 목사가 한 2년 총장을 하고 물러나면 재단이사를 다 바꿀 수 있어요. 사실 김영우 목사가 능력은 있어요. 총회 화합도 이루고 총신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협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분쟁과 갈등 해소를 강조하고 실행하는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요엘 선지자 같다. 요엘의 이름은 주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이다. 선지자 요엘은 가뭄과 메뚜기 재앙이 살기 어렵게 만든 시절의 유다에서 활동했다. 그는 아주 감정표현이 능숙한 선지자였다. 그는 비유가 풍부하고 묘사가 생생했다. 요엘서에는 잊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두 사건이 비유로 묘사되고 있다. 한 사건은 선지자 당시의 유다를 휩쓴 메뚜기 재앙이었다. 다른 한 사건은 주의 날에 대한 것이다. 주의 날이 메뚜기 재앙의 비유 속에 나타난다. 그것은 현재의 재앙과 온 세상에 내릴 미래의 심판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목적은 주의 날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 나라가 하나님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듯 제99회 총회 한 회기 동안 분쟁과 갈등 해소에 힘쓴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우리 총회와 노회와 교회가 다시 하나님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 예언한 요엘 선지자의 영감을 이어갔다고 믿어도 좋을 것 같다. 이제 백남선 목사에게 남아 있는 일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23개 장로교단이 모여 이루어진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다. 11월 16일 한장총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대표회장 후보 신청서를 접수한 백남선 목사는 말했다. “대표회장이 된다면 장로교단들이 힘을 합쳐 이단에 대처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며 위기 상황에서 한국교회를 지키는 일에 힘쓰고 싶습니다.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 한국교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습니다. 특히 한기총이 이단문제로 힘을 잃은 상황에서 한장총은 한교연과 힘을 합해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일에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서만종 목사(광주단비교회)가 백남선 총회장은 후배이고 같은 노회원인 우리를 늘 아끼고 키워주셨다고 말하듯 전남노회와 총회를 위해 얼굴에 잔줄이 생긴 사람이 여기 있다. 주름을 펴고 주름을 없애는 이들도 있으나 주름은 솔직해서 얼마나 좋은가. 더울 때에도 추울 때에도 자연스레 맞추어 응할 줄 아는 사람이 여기 있다. 어느 때에는 시원스럽고, 어느 때에는 온화하고 화창한 기색이다. 빙긋이 웃을 때에도 크게 웃을 때에도 주름이 잘 생긴 얼굴에 물결처럼 인다. 그런 백남선 목사에게는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두 개의 가방이 있다. 하나는 교인 심방을 갈 때 성경과 찬송가를 담은 어깨에 메는 가방이다. 다른 하나는 주일마다 들고 다니는 가방이다. 그 하늘색 가방에는 성경과 찬송가, 설교 노트, 사탕 등이 담겨 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과 인사가 끝나면 교회 어디나 그 가방을 들고 다닌다. 아이들을 만나면 그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준다. 이 가을 제100회 총회 실행위원회의 서늘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허공에 제 몸을 던져 날리는 총회 앞 낙엽들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마주할 뿐이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들뿐이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계산 정도다. 총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좀 큰 것들은 이해의 대상을 넘어서 놀라움의 대상이 된다. 아침 기도를 한다. 아침이 어디서 왔지.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 욥에게 말씀하셨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고 말하거나 먹을 것은 고마운 농부의 손에서 왔다고 가르쳐서는 만의 하나만 가르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곧 하나님의 섭리고 구원이다. 두 개의 가방을 사랑하는 광주미문교회 목회자이고 제99회 총회장이었고 한장총 대표회장이 될 백남선 목사는 총회 100년 역사의 한 획(劃)을 긋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201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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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21
  • 개혁주의 법통 한기승 목사
    2012년 7월 14일 광주광역시 서구 운암동 네거리에 마련한 연건평 5000평 규모의 새예배당에서 광주신일교회의 한기승 목사는 “하나님의 셈법과 사람의 셈법은 다르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 그의 기도제목은 교단과 국가에 쓰임 받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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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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