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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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샘광천교회 이문희 목사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웃음과 웃음소리가 태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1972년 3월 12일 성북구 석관동 소재 건물 2층에서 97명이 창립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해 1973년 4월 23일 박병진 목사가 제1대 위임을 받았다. 박병진 목사는 1924년 평남 출생으로 남산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저서로는 ‘교회정치 문답 조례’, ‘권징 조례-교회재판 편람’, ‘예배와 예식’, ‘교회헌법 대전’ 등 20여 권의 교회헌법 관련 저술을 펴낸 98세 현역 교회헌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 이후 1980년 제2대 윤도영 목사에 이어 1986년 제3대 장정일 목사 때 광천교회 성장의 틀과 토대가 완전히 잡혔다. 평소 선교의 열망이 커 해외 선교에 많은 후원을 하던 장정일 목사 자신이 선교사로 떠나면서 대학부 지도 부목사 이문희 목사가 1990년 제4대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문희 목사의 목회로 광천교회가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에는 한국 최대 장로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4회 총회(총회장 김도빈 목사) 때 광천교회 정동원 장로가 부총회장에 선출되는 쾌거도 있었다. 이문희 목사는 교세에 맞는 지금의 새 성전을 건축하고 2009년 8월 2일 맑은샘광천교회로 개명했다. 이문희 목사는 부임 28년째 되던 2018년 8월 2일 원로목사로 추대받는 날 후임 김현중 목사를 제5대 위임목사로 세웠다. 교인들이 결정한 김현중 목사는 후임 후보 가운데 일인으로 이문희 목사와 일면식도 없는 목사였다. 이문열의 장편 소설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이동영이 말했다. "언제든 때가 오면 나는 맑고 깨끗한 이념, 자유와 평등에 대한 더렵혀지지 않은 열정을 품은 채 이 대지를 떠나겠다." 그렇듯 이문희 목사도 표연히 떠났다. 물러난 뒤 죽기까지 자신이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 앞 건물 사무실을 떠나지 않은 조용기 목사와 달리... 이문희 목사가 광천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몇 년 뒤 같은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직원 기독인 회 회원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고 한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 카이스트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광천교회 이문희 목사님 설교가 좋아 좋은 설교 들으려고 주일마다 강남에 가지 않아도 돼." 2017년 9월 1일 기독신문에 실린 '자살 예방과 교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시론에 그런 이문희 목사 설교의 편린을 엿볼 수 있겠다.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의 의미는 이제 국가가 직접 자살을 예방하고 사회에 생명존중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를 표명한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불과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약 6000여 명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시무하는 맑은샘광천교회도 지난 4월 부활주일에 생명보듬페스티벌(Life Walking)을 시행했다. 개 교회에서 진행한 행사지만 생명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행사였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를 부여하면서 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했다. 특별히 안전사고예방 차원에서 경찰서에서 교통 안내를 해 주고 중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거 참여시켜 생명의 가치를 나누며 행진하는 뜻깊은 행사를 했다... 교회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그분을 우리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생명의 가치를 이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절망하며 삶조차 버겁게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를 전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자살 예방 활동이라고 믿는다. 이 일에 한국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도전하고 싶다." 이문희 목사는 교회 이름을 맑은샘광천교회로 바꾸고 그렇게 실천했다. 샘 (泉)은 지하수가 지표로 흘러나오는 곳이다. 지하를 지나는 동안 불순물이 여과 되어서 광물 성분이 녹아 있는 물이 되고 그래서 샘에서 나오는 물을 샘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지 4년 2022년 3월 12일 설립 50주년이 됐다. 제주도 해풍에 세진듯 흰머리가 안개처럼 자욱한 이문희 목사가 5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해 축사를 맑고 잔잔하게 전했다. "축하드립니다. 90여 분이 박병진 목사님과 교회를 시작해 참 많은 수고와 눈물들이 마침내 열매를 맺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희 맑은샘광천교회는 참 좋은 풍토가 있습니다. 세 분 목사님이 떠나가신 다음에 제가 부임을 했습니다. 전임자가 떠나고 후임자가 올 때는 갈등이 많습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다툼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저희 교회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임해서 보니까 전임 세 분이 모두 교회를 부흥시키셨습니다. 부흥시키지 않은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남겨놓고 가셨고 제가 그 풍토 밑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다 오시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상징을 꼽자면 틀림없이 ‘하트’가 첫손에 들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워도 문자에 하트를 붙이거나 손 하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뭇잎 모양 빨간 하트가 사랑의 상징으로 통용된 건 14세기 초부터다. 그 전까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하트는 진짜 심장을 닮은 긴 솔방울 모양으로 그려졌고 이는 예수님의 ‘성심(聖心)’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맑은샘 이문희 목사에게 진심으로 예수님의 성심을 본뜬 손 하트를 보낸다.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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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점차 변한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바로 지구가 자전하는 축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 있다. 이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고, 태양 광선이 지표면을 비추는 일조시간에 햇볕이 얼마나 세게 얼마나 오래 내리쬐는지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선 일 년을 24절기로 나눠 한 달에 두 번씩 절기가 찾아온다. 2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있다. 올해의 경우 2월에 설날도 있었다. 설날은 달의 움직임을 따른 음력의 1월 1일이다. 이와 달리 절기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상에서 태양의 위치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돌 때마다 하나씩 해서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기준을 세웠다. 그래서 설날은 절기가 아니라 명절이다. 우리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모두 달력을 보고 안다. 그러나 자연에 사는 생명체들은 달력 없이도 기가 막히게 시간의 흐름을 알고 저마다 계절에 맞게 적응해 살아간다. 일 년 중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입춘을 지나 나들이를 나서면 땅속에서 솟아 나올 준비를 하는 새싹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고 여린 새싹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꽤 자라 큰 모습의 풀을 만날 수도 있다. 도심에서도 공원이나 화단을 보면 살아있는 풀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시장에 가면 벌써 냉이가 나와 있다. 그걸 보고 ‘벌써 냉이가 나왔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이의 내력을 알면 아마 아! 하는 탄성이 새싹처럼 나올 것이다. 사실 봄나물 냉이는 지난해 가을에 이미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싹이 돋아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라나 꽃을 피우는 거다. 이런 풀들은 바닥에 붙어 수평으로 나온 잎이 장미꽃 모양이어서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이라고 부른다. 또한, 잎이 방석같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방석 식물’이라고도 한다. 민들레, 냉이, 달맞이꽃, 질경이와 같은 로제트 식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쉽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그들의 전략은 참 놀랍다. 풀이지만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몇 가지 멋진 작전을 세운다. 첫 번째는 키를 낮추고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작전이다. 줄기가 짧고 잎을 땅에 붙은 듯이 내보내 엎드려서 겨울의 추운 바람을 피하는 것이다. 이때 잎을 넓게 사방으로 뻗어서 적은 양의 햇빛이라도 최대한 받는 게 두 번째 작전이다. 세 번째는 땅에 바짝 붙은 만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이용하는 거다. 건강한 숲속 땅이라면 낙엽이나 다양한 미생물들로 인해 온도가 조금 더 높기 때문이다. 꽤 많은 종류의 로제트 식물은 몸에 잘게 솜털이 나는데 이 털도 추운 겨울을 견디는 데 활용한다. 그렇다면 로제트 식물은 왜 가을에 싹을 내서 힘든 겨울을 견디는 걸까. 다른 식물이 싹을 내기 전에 미리 싹을 내고 있다가 봄이 되어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워서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로제트 식물 대부분은 1년에 두 번 이상 번식하는데 아마도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이 번식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키도 작고 땅에 붙어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풀들에도 이렇듯 놀라운 삶의 전략이 숨어있다. 그런데 만약 춥고 힘든 겨울이 없다면 로제트 식물은 어떻게 될까. 겨울이 없다면 다른 풀들도 얼어 죽지 않고 이 시간을 지냈을 것이다. 그러면 애초에 경쟁을 피해 누구보다 빨리 꽃가루받이를 하려던 로제트 식물들은 유리한 위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대부분 풀은 죽게 되고 로제트 식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시련이지만 이 시련을 기회로 삼아버린 로제트 식물. 우리 목사의 삶 또한 이와 같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을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작은 냉이 같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아는 믿음이다. 뛰어난 실력과 엄청난 운이나 타고난 재능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을 이루는 믿음 앞에선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는 2021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시 삼천동에 있는 전북신학교에 도착했다. 전북신학교는 1971년 3월 25일에 전주 북문교회에서 개교하여 1972년 9월23일 제57회 총회에서 총회 인준을 받았다. 1988년 현 위치인 전주시 삼천동 11,000여 평 대지 450평 본관을 지닌 학교다. 2층 학장실에서 한기영 목사(전주은강교회 총신 84회 61세)를 만났다. 그는 한때 전북을 기반으로 총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김백경 목사(총신 73회)의 혹독한 시절을 잘 견딘 냉이 같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의 용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내면은 크다. 그래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임이나 공동체를 화합시키고 세우는 조정 역할을 잘 감당해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이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리폼드투데이)가 한기영 목사와의 대담을 이끌었다. 1. 제106회 총회 임원 후보로 준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합동 총회의 목사로서 총회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여러 회 총회를 출입하면서 저에게도 앞서서 총회를 섬길 기회가 오겠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년 106회기는 순환적 임원 구성이 우리 중부호남지역 회원들 사이에 제가 임원 후보로 거명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좀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만일 기회가 주어지면 총회 공동체를 위해서 부회록 서기로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합동 총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임원으로 섬길 기회를 주면 그동안 생각했던 아쉬움과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미력이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섬겨볼 각오입니다. 화평과 화합의 균형추(조정자)가 되겠습니다. 2.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첫째로 부임원으로 섬길 때는 함께 묶인 임원들을 잘 섬기며 좋은 호흡을 맞춰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 믿음의 원리와 상식이 통하는 임원회가 총회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우리 총회가 사무 행정을 펼쳐 나감에 있어서 먼저 교회와 노회를 돕고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정직하고 바르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함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제 임무를 은혜롭고 덕스럽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총회에 큰 그림을 그리고 회기별 연계성이 있게 서로를 존중하며 진행해 가자고 제안하고 곁에서 돕고 섬기려고 합니다. 지금의 시대 변화와 현실적 필요를 잘 분석하고 정말 선진 총회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논쟁과 싸움은 그치고 보다 발전적 전략을 수립하게 모든 기관이 통합적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처럼 저는 소박하게 세워주신 총회장을 잘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3. 교단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소견이 있다면? 우리 교단 리더들의 생각이 건강한 개혁주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총신신대원과 신학교들을 다시 잘 살펴서 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솔선해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총회도 이제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섬겨오고 현재도 학장을 맡고 있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이미 있는 좋은 인프라를 잘 활용하여 우리 지도자들을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총회가 더욱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행정과 정치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해주는 총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나아갈 방향과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1) 목회자 수급에 대한 조사와 신대원의 운영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2) 도시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의 목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합니다.(다양한 목회 전략과 좋은 콘텐츠 제공, 자립 방안의 구체적 사례 연구와 적용) 3)목회자 은퇴자를 위해 상설위원회를 설치하여 은퇴를 앞둔 목회자의 처우를 준비해야 합니다. 5.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목회의 위기감이 엄습해 옵니다. 교회의 장래가 염려되는 것을 넘어 교회의 무너짐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 가지 교회의 연약함이 더욱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그 어려움은 공교회 예배와 주일성수, 모이는 교회와 봉사와 섬김에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청년들의 신앙교육, 전도 등이 어려움으로 다가와 많은 지역 교회들이 소멸할 것 같습니다. 지역 노회들이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여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교회 합병, 교회 연합 등). 6.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오랫동안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 왔습니다. 저 자신이 개척하여 섬긴 교회도 있지만 개미목(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후배 개척 목회자들을 다각적으로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이사 임원으로 학생처장으로 실무를 감당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미력하지만 돕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 왔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교회 세움과 성장 컨설팅을 하고 싶습니다. 제 목회 철학은 골3:23 말씀을 모토로 ‘성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자’입니다. 전주은강교회 한기영 목사 프로필 ◆총회 주요이력 : 현)총회 정치부 서기, 경기북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총회실행위원, GMS이사, 호남협의회 감사총회인준전북신학교 학장. 총회지방신학교협의회 회장. ◆전)제103회 면려부 부장, 평서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산서노회조사처리위원회 서기, 대구동노회조사처리위원장, 학원선교위원, 개혁사상특별위원, 전북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호남제주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제105회 총회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사회기관 : 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 원장, 사)나눔과기쁨 전북상임대표, 전주시장로교연합회 선임회장 전주완산경찰서 경목위원 ◆학력 : 경기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북신학교 대학부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84회 졸업, 칼빈대학교 대학원(Th.M) 플러신학대학 대학원(D.min)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같은 믿음의 목사들은 시련을 견디고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티며 실패에서 배우고 끝까지 해내며 마침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취를 제104회 총회장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처럼 손에 넣는다. 그렇듯 목회자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한 가지는 바로 믿음이다. 교회를 살리는 목회와 총회를 세우는 정치에 있어 실력과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믿음이 약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돌아오는 길은 서설(瑞雪)인 듯 눈이 드문 전주임에도 큰 눈이 내렸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1-4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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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5
  • 살림 이종석 목사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물음에 이종석 목사는 이런 뜻의 대답을 했다.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 잠깐 하늘과 땅이 기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년 10월 16일 - 1900년 11월 30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가는 곳마다 행복이 되고,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이 된다 Some cause happiness wherever they go. Others whenever they go.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살림’이란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다. 즉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사람을 잘 살리고 있다’라는 말이다. 예로부터 한글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 말은 ‘돈을 많이 아꼈다’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은 은덕을 잘 쌓았는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개의 가정은 '살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무턱대고 돈을 아끼는 것을 살림으로 착각하고 있고, 아내는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만을 살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돈 몇 푼 때문에 소중하게 맺은 부부의 인연까지 흔들리고 있다. 살림은 여자만 하는 것도, 남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잘 살리는 일은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돈만으로는 남을 살릴 수 없다. 우선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 교인의 삶을 돌보아야 한다. 목회자에게 살림은 가정을 잘 살리는 일이고 동시에 내 교회를 잘 살리고 잘 다스리는 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의 살림을 잘 해야 인생의 살림꾼을 넘어 믿음의 살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종석 목사는 살림꾼이다. 의사가 돌보던 어떤 환자는 임종 직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가까이 오자 “내 돈 2억 갚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환자들은 “10년 더 살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의사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곤 한다고 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소망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 회원사(더굳뉴스, 리폼드투데이, 좋은신문, 합동투데이)는 신년을 맞이하여 제106회 총회 임원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을 차례로 인터뷰하고 있다. 세 번째 순서로 부서기에 도전하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를 만나기 위해 2021년 2월 2일 11시 광교제일교회를 찾았다. 총회 두루 발길이 닿는 박철수 목사가 평생 동지 이종석 목사(총신 80회)를 돕기 위해 함께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가 대담을 이끌었다. 1. 금년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교회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교회 또한 세상을 향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우리 교단 내 목사님들이나 총대들도 현 총회 운영에 대해 신뢰보다는 불신이 더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일까요? 그것은 법과 규칙의 자의적 해석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도 흔히 들립니다. 부족하지만 법학사로서의 지식과 총신인으로서의 신앙 양심을 통하여 총회를 좀 더 깨끗하게 섬겨보고 싶고, 특히 약자의 편에 서서 저들의 소리를 듣고, 총회 안에 억울한 사람이나 노회가 없도록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임원으로 출마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아웃사이더(outsider)에게 비난은 할 수 있지만 세워 가는 일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총회 임원이라고 해서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한 욕심 내지 않겠습니다. 할 수 없는 약속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물으셨으니까 적어도 이 세 가지는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 총회 화합입니다. 먼저는 임원들 간에 화합을 도모하는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섬기겠습니다. 총회장님을 비롯해 임원들 상호 간에 협력하고 잘 도우면서 일을 하겠습니다. 서기 일을 하다 보면 각 노회에서 올라오는 여러 사건이나 서류를 접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정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법과 규칙을 따라 물 흐르듯 하는 행정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힘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대들에게 나서는 일보다는 섬기는 일을 하려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총회가 끼어들어 노회나 개 교회의 일을 더 큰 문제로 만드는 정치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는 분쟁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해결의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지 오히려 문제를 재생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 2). 교회의 예배 회복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작금 한국 교회는 예배의 위기 앞에 서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지만, 예배에 대한 바른 지침이 별로 없습니다. 당장 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에 대한 우리 총회의 명확한 기준이나 입장 표명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총회 임원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교단 내 교회를 지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예배의 회복입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고른 인재의 등용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를 보면 늘 그 인물에 그 인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경험과 경륜이 중요하다 보니 쓰던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인물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각 위원회나 특별 위원 배정을 할 때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 찾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임원들에게 부여된 최고의 사명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편향된 인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선거에서 같이 경쟁했던 인물이라도 유능한 인물을 고르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3. 교단 차원에서 시급한 선결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뢰 회복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 일도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 교단의 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던 은급재단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총신 문제도 결국은 서로가 믿지 못함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지금 총회 회관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이전이냐를 두고도 많은 논의가 있고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 일도 모든 총회 구성원 간에 믿음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선관위도 그렇고 재판국의 판결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총회 임원회도 총대들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뢰 회복이라는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믿음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약속한 것은 손해가 나도 지키고 서로가, 아니 총회 임원들부터 지도자들이 먼저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우리 합동 교단은 정말 큰일도 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코로나 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 되는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교인 수의 감소일 것입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어느 정도 회복 되어진다 해도 많은 수의 교인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 헌금의 감소로 직결될 것이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서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나아가 예배 형태도 많은 변화가 올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이미 많은 성도들이 비대면 예배라는 달콤함에 맛 들어 버렸습니다. 온라인 예배, 방송 전파를 통한 유명 목사님들의 예배가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서는 아무래도 교회의 주일학교일 것입니다. 어른들보다 더 심각하지요. 다음 세대가 걱정입니다. 이를 어떻게 다시 세울지 많은 기도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우리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하고 싶었고,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하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새벽 기도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지시보다는 솔선수범하고, 섬김의 목회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 절대 주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 여생은 한국 교회를 위하여 조그만 보탬이 되고 싶고, 정년이 끝나면 시골로 내려가 아내와 함께 시골 교회를 섬기며 조용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허락된다면 구약성경 공부를 위한 책을 써 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6.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녀교육이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자녀교육이라고 해서 제가 특별히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잘해줬어요. 지금 딸은 결혼해서 초등학교 4학년 되는 아들과 일곱 살 아들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지금 현재 목사입니다. 제가 개척하는 걸 다 본 아들인데 홍익대 사범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가서 3학년 때 군대 다녀와서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중국 우루무치에 계시는 선교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 가서 선교사님 자녀들 교육도 하고 선교사님도 도우면서 선교를 좀 배우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일테니까 그래서 보냈습니다. 한 6개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루무치 현지 대학에서 언어 공부도 했습니다. 6개월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온 김에 6개월만 더 있다 오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을 갔다 오더니 저한테 ‘대학 졸업을 하고 신학을 하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한 번도 신학을 하라는 말을 안 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너 신학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정말 가서 보니 선교사들이 너무 어렵고 힘드시더라. 그래서 한국에 있는 교회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느라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선교사들이 정말 선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국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너 나중에 선교사로 갈 생각이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자기는 선교사 스타일이나 체질이 아니고 자기는 선교사를 보내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겁니다. 네 뜻이 그러면 한번 공부해 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홍익대 졸업하고 총신신대원을 갔는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저 제주도에 가겠습니다.’ 왜 제주도에 가느냐 했더니 제주도의 작은 교회가 교육전도사를 구하고 있는데 교육전도사를 못 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게 너한테 좋은 기회일 수 있다며 허락했습니다. 제주도를 가니까 교육전도사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됩니다. 여기 광교에서 김포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로 제주도에 갑니다. 그리고 교회까지 버스로 가는 겁니다. 주일날 교회 사역을 하고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오는 겁니다. 그걸 한 1년, 저 녀석이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 하고 나더니 하는 말이 ’아버지. 아무래도 제가 떠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졸업하고 김종준 목사님의 꽃동산교회 부임해서 초등부를 맡아 1년 하고 사랑의교회로 갔습니다. 사랑의교회에서 지금 4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했는데 제 며느리도 총신신대원 졸업했는데 둘이 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녀교육에 대해 특별한 것은 없는데 아이들이 볼 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죠. ‘좋은신문’의 지용길 목사가 말을 거들었다. “삶으로 다 보여주셨네요.” 최장일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 다 하셨네요.” 일동 웃음. 이종석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를 말씀하시는데 세상 적으로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뭘 가지고 교회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척하러 올 때에도 제가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고 와서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하고 중도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해주셨습니다. 그때그때마다. IMF 만나 여기 땅을 사러 올 때도 교회 건축하는 것도 돈이 있어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뭔 돈으로 할 거냐,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랬습니다. ‘나도 무슨 돈으로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하면 될 것 같아.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하니 되더라고요. 새로 이 교회를 지을 때도 그 당시 적립된 돈이 잘 해야 한 2억 정도였습니다. 그건 설계비 정도밖에 되지 않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다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 그러다 큰코 다친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으니까 절대로 잘못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은퇴준비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잘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설날 아침, 주위를 둘러보면 북적북적 마주 앉은 친지들,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 식당과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이리라 믿는다. 일 년 뒤 오늘의 모습은 일 년 전 오늘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꿈만 꿀 것인가, 꿈을 이뤄낼 것인가. 작가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에서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썼다. ‘당신은 꿈을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했나요.’ 그날의 빛... 광교제일교회 예배당에 들어선 순간 벅차오르던 잔잔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 1월 한낮의 태양 빛이 벽에 뚫린 창틈으로 들어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양식의 예배당을 비추고 있었다. 처음엔 투명한 빛이었다가 틈새 사이로 흔들리는 조명 빛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인류가 세운 모든 종교 건축의 지향점이 똑같지 않을까. 신성하면서 미적으로 뛰어난 공간,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행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건물. 인도의 아잔타 석굴부터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까지 수많은 종교 건축물이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새로운 기준이 된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 건축에도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가 됐다. 예배를 드리되 접촉은 피하기, 2m씩 떨어져 앉기... 바이러스 전파는 최대한 막아내면서 '믿음'과 '신앙'이란 목적을 담아내는 기발한 상상력이 등장하지 않을까. 먼 훗날, 이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새 건축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지. 건축가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 이종석 목사 프로필 총신 신대원 80회 졸업 총회 정치부장(제102회기) 총회 특별 재판국원(제104회기) 총회 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실행위원, GMS 이사 역임 현 기독신문 이사 한장총 부흥사회 제34대 대표회장 재경영남교직자 협의회 상임회장 AGM(아시아 복음 선교회) 상임회장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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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4
  • 대나무 한종욱 목사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대나무는 곧고 높아진다. 대나무는 이름에 나무가 들어가 있어 나무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라 풀 종류에 속한다. 풀과 나무를 가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단단한 부분(목질부)이 있느냐, 또 하나는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하느냐다. 대나무는 단단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형성층이 없다. 이 말은 키는 커지지만 굵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대나무의 구조와 나이테를 이해하면 바로 감이 올 수 있다. 식물의 ‘나이테’라는 것은 옆으로 성장하면서 계절의 차에 의해 생기는 흔적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으니 나이테가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곧고 높아질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나무는 불에 타도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1년 우리는 전 세계적 감염 위기를 만났다. 하지만 더 자라고 단단해졌다.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면서도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제퍼슨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직(Honesty)을 최선의 정책으로 중시했다. 그렇듯 리더의 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정직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조국 사태에서 정직과 거리가 먼 위선과 이중잣대의 심연을 봤고 추미애를 통해 말이 굽은 독선과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를 목도했다. 이런 시대 우리 총회에 대나무 같은 모습과 성정을 닮은 인물이 있다. 그는 1994년 4월 22일 군산노회 등대교회를 개척해 26년째 주민과 함께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신장염에 걸렸다. 그 병의 치료 과정은 그를 믿음과 목사의 길로 이끌었다. 군산에서는 ‘거리의 전도자’로 유명해 오가는 택시 기사들이 그에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는 제102회 총회 상비부 사회부장 역임한 한종욱 목사이다. 2021년 1월 26일 오전 11시 인천 영종도에 있는 웨스턴 그레이스호텔에서 제37회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육수복 목사가 취임했다. 그 모임의 식사 뒤 오후 1시 12분 제106회 총회 부서기 후보 출마 예정자 한종욱 목사(58)와 ‘총신언론인회’가 회장 최장일 목사의 사회로 공동 인터뷰를 했다. 아름다운 바다의 밀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호텔 로비 창가였다. 1. 금년에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합동총회 임원이 된다는 것은 ‘예장합동 산하 전체 노회와 교회 및 기관’이라는 하나 된 교회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전체로서의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가 되는 것입니다. 총회의 임원이 되려는 뜻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함이며, 총회라는 보다 큰 “교회”를 통해 전국교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또한 전북기독교총연합회 상임총무, 군산기독교연합회사무총장, 군산시장로교연합회 회장, 전북장로교연합회 회장 등 지역교회 연합운동의 경험으로 총회에서도 각 교단과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아울러 본 교단의 위상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합니다. 제가 임원이 되면, 기능적으로 총회의 행정과 역량을 강화하고 질서를 바르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열정을 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에 소명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저는 부서기로 출마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당선하게 된다면, 제게 주어진 직무에 집중할 것입니다. 교단 헌법이 제시하는 바를 따라 총회가 위임해 준 사항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 총회 행정시스템의 현대화.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정보를 지니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성공과 실패의 관건입니다. 즉 정보와 처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현대를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행정시스템 자체의 개편과 그것을 뒷바침하는 전산정보시스템의 구축을 비롯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 방안까지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운영자 중심의 즉흥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총회의 행정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총회의 시스템이 운용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인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교단 내의 모든 인재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2) 교단 내 각종 분쟁의 최소화와 신속한 해결 교단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전쟁터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분쟁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총신 사태가 그러했고 각 교회 및 노회의 분쟁이 그러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기독신문의 갈등도 있습니다. 지금 화해조정위원회가 있고 또 헌법자문위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특별위원회들이 만들어져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주어진 자리를 통해서 각종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며, 최소화하고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그것을 총회의 분쟁관리 매뉴얼로 확립하고 싶습니다. 3) 교단 내 목회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수립 초기에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은급재단의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지만, 납골당 사태가 발생함으로 어느 누구도 은급재단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단 산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안정적 생활기반 위에서 소신 있는 목회를 해가며,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교회미래자립위원회에서 미자립교회에 재정적 지원과는 별도로 농촌에서는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땅을 무상으로 빌려서 화초, 건강식품 등을 무농약재배, 유기농산물 재배하여 도시교회와 연결하여 서로 상생하는 것을 구축할 것입니다. 도시교회 미자립교회는 바리스타, 컴퓨터 강사, 디자인 강사, 개인특기조합을 결정하여 틈나는 대로 소득을 올려 스스로 일어서도록 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교단 적 차원에서의 대사회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거나, 교단 산하 지교회들이 효율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교육과 활동, 대사회적 섬김과 봉사시스템의 구축(대사회적 복지재단운영), 교단법의 제도적 발전과 권징 체계의 개편을 위해 교단신학교에 교회법전문대학원 개설 등과 같은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3. 합동교단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교단은 대한민국 최대의 교단이며,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선도해야 하며, 또 한국사회를 향해 기독교적 가치를 선명하게 제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예배회복을 위한 회개와 성결 운동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회개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대단한 일을 이룬다고 해도 회개가 없다면 모래 위에 세운 집에 불과합니다. 목회자들이 경건을 회복하고, 당회가 경건을 회복하고, 교단의 모든 지도자가 다시금 경건을 회복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다시금 교단과 교회를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4.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여야 하는 교회가 더 이상 모일 수 없게 되고,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간접적 만남을 추구할 뿐입니다. 다행히 현대적 기술의 발전으로 실시간 방송 예배, 또는 줌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활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코로나19는 예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배의 회복과 대사회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코로나는 유튜브를 통한 영상예배와 줌을 통한 교육 등 단지 교회의 시설물에 갇혀 진행되던 모든 것을 보다 폭넓게 열어두었으며, 동시에 영상 기술의 활용을 통한 교회 교육의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위기에서 배운 다양한 기술을 통해 교육과 선교사역에서 더 큰 발전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목사들을 돕고 싶다.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주민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여 개방하고, 주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길거리 전도를 수년간 해왔고, 지금은 맨투맨으로 전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윈윈해야 합니다. 지역교회에 꾸준히 협력과 봉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전도입니다. 전국 5일장 마다 다니면서 생선도 팔고, 복음도 전하면서 지역에 맛있는 것도 먹고 전국을 다닐 것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십자가가 굳게 서고, 복음의 깃발이 휘날릴 수 있다면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김준곤 목사님이 주장하셨던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건강비결을 물었다. 그는 새벽기도가 끝나면 헬스장에서 2시간가량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평생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대나무 같은 어조와 꼿꼿한 자세로 말했다.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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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9
  • 영광대교회 김용대 목사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라고 윤동주는 노래했다.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 도입부는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린다.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의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 묘사를 수행의 간결체를 통해 서술함으로써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설국’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조에쓰선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오면 펼쳐지는 그곳은 일본의 니가타(新潟)현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에치고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작가는 ‘국경을 넘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동해에서 몰아치는 눈바람은 에치고산맥을 넘지 못하고 니가타에 눈을 쏟아낸다. 니가타는 하룻밤 새 1m가 넘는 눈이 내리는 대설지역이다. 눈(雪)은 기상 현상의 한 종류로 기온이 섭씨 0℃ 아래로 떨어져 구름 안의 물 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결정화된 것이다. 남극·북극의 두터운 얼음층과 빙하는 오랜 기간 눈이 쌓여 형성되었다. 눈은 여러 가지의 결정이 단독으로 내리는 경우와 여러 개의 결정이 붙어서 눈송이가 되어 내리는 경우가 있다. 송이로 된 눈을 함박눈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 때 내린다.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들이 눈을 생성하는 핵의 역할을 한다. 미세한 핵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 알갱이가 되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계속 달라붙어 결정이 커지게 된다. 눈이 많이 내리는 서해안 같은 경우 물론 저기압 또는 전선에 의해 눈이 오기도 하겠지만 대기 온도와 해수 온도 경도가 발생하여 생기는 해기 차이가 대부분 서해안에서 내리는 눈의 원인이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도 원래 三白(삼백)이 으뜸이라고 했다. 삼백이란 눈(雪), 소금(鹽), 쌀(米)이라고 한다. 전남 서해안에 눈이 내리면 적설량이 가장 많은 곳이 영광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1월 3일 전남 영광의 영광대교회 앞엔 아무 표정 없이 눈이 소금과 쌀처럼 하얗게 수북했다. 영광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 20분이었다. 1905년 5월 7일 배유지(Eugene Bell) 선교사의 전도 열매로 영광읍 무령리에 세워진 영광대교회는 설립 116년 되는 교회다. 한국교회 역사의 초창기 기억부터 소중히 간직한 교회에 시무하는 김용대 목사는 2009년 7월 1일 부임했다. 2021년 1월 3일 영광대교회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 예배라 20명만 참석하는 데 감사원의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총회 감사부 오광춘 장로의 배려로 다른 분을 내려오시게 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 준비 찬송이 끝나고 김용대 목사가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된 강단에 섰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주일입니다. 이렇게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성탄 무렵 어떤 분이 제게 글을 보냈는데요. ‘성탄절을 맞이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렇게 방역지침이 확대되어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인지 무엇인지 너무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다’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했습니다. 코로나든 전쟁이든 기근이든 무엇이든 성탄절의 기쁨을 바꿀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도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주일은 코로나든 전쟁이든 지진이든 기근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주일의 의무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덮을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각 처소에서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그 무엇도 덮을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만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은혜가 새해 첫 주일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 같이 묵상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르간 전주가 ‘만세 반석 열리니’로 예배의 문을 묵직하게 열었다.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김용대 목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소강석 총회장의 활동 범위가 제약을 받는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소강석 목사님이 활동을 많이 하셔야 되는데.” 김용대 목사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소강석 총회장은 내가 볼 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끌어내시더라고요. 어찌 됐든 소 목사님은 활동적인 분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둬야 됩니다.” “그렇죠. 그게 좀 아쉽다는 거죠. 활동을 많이 하실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어서 제한된 가운데 하시긴 하지만...” “그게 좀 아쉬워요.” “가장 능력있는 분이 가장 어렵게 됐어요. 교단이나 교계에서도 바람직한 일인데... 하나님 뜻이죠.” “그러고 보니까 식사대접도 못 하네. (사모님에게 뭐라 말한다.) 어허 세상에.” “차 한 잔이면 되죠.” “어허 이거 어쩌지. 많이 드시지도 않지만.” “말씀 받았잖아요.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오셨다.) 저한테도 필요한 말씀이었는데.” “광주에도 큰 교회들이 많은데 시골까지 오셔서.” “시골이 아니라 영광대교회에 김용대 목사님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진 기본적인 신앙과 자원이 있는데 저는 제 앞에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거의 그럽니다. 안 그러면 화병(火病) 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지난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정리가 됐었는데 우리 오광춘 장로님이 엄청 서운했던 거 봐요. 우리 지역에는 같은 노회 한기승 목사님 계십니다. 2년 뒤에는 차례가 돌아오죠. 2년 전에 한 번 도전해서 물론 후보도 못 됐지만, 그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니까 가려지더라고요. 그때 어려웠잖아요. 정치 공학적인 어려움이었죠. 저는 한 번도 누구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돌아와서 내가 마음속에 약속한 것은 우리 교단 안에서 할 일이 있다면 겸손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아주 많이 부름을 받아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그래도 말씀 사역 기회를 하나님 주셔서 감사하고 그걸로 교단을 섬기니까 그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보면 교단 정치를 현실적으로 뛰어다니는 소모적인 부분도 많잖아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을 정의하는 가치로 기회, 안전, 자유, 존엄성, 존중, 명예, 그리고 진실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국인, 특히 헌법을 존중하고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선서한 지도자들은 진실을 수호하고 거짓을 물리쳐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평생 불운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이든 편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늘 털고 일어나 한 걸음 전진했다. 바이든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1917∼2010)이 심어준 긍정의 신앙 덕분이라고 미 언론들은 평한다. 바이든 여사는 아들 조가 어린 시절 말더듬증으로 인해 “모스 부호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할 때 “머리가 뛰어나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29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는 말씀에 근거해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시련을 주시진 않는다.” 그의 시련은 이어졌다. 1988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무렵 유세 후 쓰러졌던 바이든은 그 자신도 뇌혈관 부종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다. 가톨릭 신부가 임종 미사 준비까지 하던 위급 상황이었다고 에번 오스노스는 최근 펴낸 ‘조 바이든’ 전기에 기록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가 우려됐지만, 말더듬이 시절 어머니의 격려를 떠올리며 이겨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 때 “어머니는 정치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누구도 너보다 뛰어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너보다 못하지 않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도덕적 나침반이자 정치의 좌표가 됐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자택 주차장을 별채로 개조해 말년의 어머니를 모셨다. 2010년 어머니 별세 때 애도 성명에선 “헌신은 최고의 가치이며 신념은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한다는 어머니 말씀 덕분에 세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바이든은 2015년 뇌종양을 앓던 장남 보를 가슴에 묻으며 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때 주변에선 “시련이 바이든을 더 결단력 있고 더 겸손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리고 5년 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미국을 치유할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뒤 더욱 단단한 믿음의 낮아짐으로 견딘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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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1
  • 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홍해 사건은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 듯 고요 그는 호수에 파문 일 듯 입 열어 보수교단은 나날이 퇴색되는 보수 신앙 기치 다시 세울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코로나 팬데믹 총회 총신 혼돈해결할 총회 지도자로 필요 절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간절한 바람 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 마음에 오래 갇혀 있던 기도가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바람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쉬엄쉬엄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월의 나무들은 수락산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아주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하얀 빛이 된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바람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바람 하나 있음을 안다. 2018년 12월 16일 11시 30분 양문교회 예배는 이영신 목사가 내 자신 젊었을 때 듣던 보수의 아이콘 김창인 목사처럼 설교를 하는 설교자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1970년 시작된 양문교회의 원우연 목사와 서공섭 목사를 이어 2004년 11월 7일 부임한 제3대 목사다. 그는 본문 출애굽기 14:26-31을 봉독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성가대 찬양의 은혜에 대한 감사기도 후 이영신 목사는‘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는 듯 고요했다. 그는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 묻는다면 ‘일상생활에서 감탄하는 습관을 길러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어느 칼럼니스트가 말했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감탄하게 되면 그 안에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어린아이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게 별 것이 되고 그래서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감탄할 거리를 찾아서 감탄해보신다면 행복해지실 겁니다. 저는 주초에 아내와 예술의전당에서 서울모테트합창단(Seoul Motet Choir)이 연주하는 ‘메시아’ 전곡 연주를 관람했습니다. 그 후 3부 53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 시간이 장장 두 시간 삼사십 분 되는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어제까지 들었습니다. 정말 헨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메시아’라는 오라토리오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절대로 처서는 안 될 곳에 장막을 치고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600대의 정예 병거를 앞세우고 추격해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외쳤습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어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까 하노라 하지 않았느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인을 섬기며 사는 게 더 낫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 모세를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에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모세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던 것 같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 붙잡고 그 모든 상황을 여호와께 아뢰며. 지도자로서 간절히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향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부르짖지만 말고 행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르짖고 있을 때만 아니고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영혼의 호흡 같은 게 기도이기에 늘 기도해야 하고 또 위기를 만났을 때는 더욱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고 행동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그 다음에 행동해야 합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에서 포로임에도 왕의 큰 신임을 받고 있던 느혜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 성과 동족에 관한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에게 나아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무너진 성을 건축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역시 포로로 붙잡혀 가있던 시절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로 유대인 전체가 멸절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모든 동족과 함께 사흘 밤낮을 기도한 후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아하수에로 왕 앞에 목숨 걸고 나아갔습니다. 그처럼 기도했으면 지금은 부르짖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때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손에 든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키면 바다가 갈라질 것이고 그러면 백성은 마른 땅 육지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전쟁의 최고 지휘관이시고 사령관이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지도자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모세는 그대로 수행만 하면 됐습니다. 이어지는 17절에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여러분 이 말씀에서 누가 주어입니까. 바다가 갈라지게 만들고 애굽의 병거와 마병을 따르는 바로의 모든 군대를 수장시키고자 했던 분이 누구이십니까. 내가. 내가. 하나님. 애굽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들어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리하여 바로와 그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18절 또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갔던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다 죽게 될 때야 그들이 하나님이 여호와 참 신이신 줄 알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직후였습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뒤로 옮겨갔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하나님의 사자는 미디안 광야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던 그 여호와의 사자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탄생하시기 전의 성자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군대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뒤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자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섰습니다. 어떻게요. (회중은 미동도 없이 강단을 주목했다)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쪽은 대낮같이 밝았지만 애굽 진영 쪽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흑암이 깊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래야 할 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 사이 모세가 바다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내민 것은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닷가 해변에 물이 빠지고 나면 진흙투성이 개펄이 됩니다. 그런데 그걸 아시는 하나님께서 큰 동풍이 불게 하시어 바다 한 가운데가 갈라져 물이 물러가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진흙투성이 바닥이 육지처럼 마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육지처럼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 사이 물은 그들의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그들의 뒤를 추격해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 사이에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동 트기 전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혼비백산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어렵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친다.’ 그들 입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기들 밑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노예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과의 싸움이라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줄행랑을 치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비하히롯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말씀하실 때도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투루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회중 아멘)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자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었습니다. 역시 이 장면에서도 하나님이 총지휘관이셨고 모세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새벽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셨습니다.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애굽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장정만 60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넜지만 바로와 그가 이끄는 강력한 애굽 군대는 하룻 밤 사이에 바다에 수장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큰 일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과 그가 세우신 종 모세를 굳게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함께하시면 바다 한가운데도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중 아멘) 바닷가에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자 애굽 사람들은 길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그곳에 진을 치게 되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애굽 군대 칼에 죽게 하느냐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는 경외를 받으셨습니다. 또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셨습니다.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말씀하심으로 태초에 땅과 바다가 생기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큰 동풍을 불게 하사 바다를 가르시고 그 한가운데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는 것쯤이야 왜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쯤이야 어떻게 못하시겠습니까. 만들기도 하셨는데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인 진퇴양난의 상황에 하나님의 백성이 처하게 되면 그 바다를 가르시던지 아니면 바다 위를 걷게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다를 반드시 통과한 다음 가나안 복지 들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회중 아멘) ... 천지를 창조하신 인류의 생사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얼마든지 능력과 기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행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지은 죄를 모두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쉴 새 없이 중보하고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고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중 아멘) 그 진리를 깨닫게 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면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될 것입니다. 그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이영신 목사는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이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라고 갈파했다. 이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전략의 출발은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앞의 것이 '지리(地理) 감각'이고, 뒤의 것이 '역사 감각'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나를 바로 아는’ 것도 이 두 가지 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한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을 잃으면 홍해에 수장된 애굽 군대처럼 될 것이다. 보수의 아이콘처럼 말씀을 전한 이영신 목사가 지향하는 ’보수의 메시지‘는 기득권 옹호, 기복 신앙, 수구적 사고가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신앙적 삶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에 반하는 풍조에 대한 이런 말이 있다. ‘사회주의자는 (정권 장악에)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주의는 (국민을 고루 배부르게 한다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래서 기독교를 폄하하고 경제를 어렵게 하는 사회주의자들로 인해 지금 나라 형편이 아주 어렵다. 세계 모든 개발경제학 교과서에는 ‘한국 성공’과 ‘북한 실패’ 스토리가 체제(體制) 간 우열을 비교하는 대표 사례로 실려 있다. 한국은 이와 정반대로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부인하는 북한을 호도하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있다. 한국 보수교단인 우리는 나날이 깊어가는 국민의 이런 시름과 걱정에 희망의 출구(出口)를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 활로(活路)를 위해 이영신 목사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전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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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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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렐 이건영 목사
    부총회장 후보 될 마음 없어 다른 분야에서 총회를 섬기겠다 우리 총회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갈 지도자 탄생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 목회자 많을 것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 드물 것 지도자가 없다는 건 좀 외로운 노릇이다. 지도자를 둔다는 건 더 외로운 노름이다. 탕진한 기다림 같은 흰 터럭 믿음을 줍다 말고 외롭다. 벚꽃 흩으는 바람은 혀끝 쓰린 독백이다. 외롭다 다문 것은 시울 시린 성령의 방언이다. 자목련 혈흔을 읽다 바람이나 또 성령에 취하듯. 아니면 두 획의 굵은 먹이 맞닿아 수묵화의 거대한 봉우리를 이룩하듯. 인간은 하나하나의 음률이고 관계는 악보이다.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둘이 잘못된 악보를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가 없는 음악은 잡음에 불과하다. 타인의 음정에 끌려 다녀서는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화음을 이룰 수 있다. 어쨌든 칼빈주의가 배태된 우리의 총회는 우리의 분위기가 우리의 공기가 우리의 믿음이 배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노회나 교회들은 우리 교단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이어야 한다. 얕은 산등성이와 개울과 벌판 그리고 그곳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작은 집 같은... 그 뒤로 압도적 경사에 좌우로 교차하며 쏟아지는 적묵의 암석이 시야를 장악하듯. 힐렐(Hillel HaGadol 또는 Hillel HaZaken)은 주전 110년 경 바빌론에서 태어나 주후 10년 예루살렘에서 죽은 유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교 지도자였다. 그는 미쉬나와 탈무드 저작에도 관여한 유대교 학자이자 현자였다. 그의 유명한 일화들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다. 하루는 유대교에 관심이 깊은 이방인 한 사람이 힐렐에 버금가는 다른 한 파의 유대교 지도자 샤마이를 찾아가서 말했다. “랍비여, 제가 이렇게 한발을 들고 서있는 동안에 당신이 가르치는 율법 전체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면 유대교로 개종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샤마이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아니 여보시오. 내가 한 평생 공부하고 연구해도 부족한 이 율법을 그렇게 간단하게 한 마디로 설명을 해 달라니 말이 됩니까. 거 참 아주 무례하기 짝이 없구려. 당장 여기서 꺼지시오.” 실망한 이방인은 다시 힐렐을 찾아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 “랍비여, 제가 이렇게 한 발을 들고 서있는 동안에 당신이 가르치는 율법 전체가 무엇인지 가르처 주시면 유대교로 개종하겠습니다.” 힐렐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 오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에게 싫은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요, 그 밖의 것은 주석에 불과합니다.” 이 말에 크게 감동받은 그 이방인은 유대교에 귀의했다 한다. 그리고 후세인들은 그 교훈을 ‘힐렐의 황금률‘이라 했다. 2016년 1월 8일(금) 3월 6일(주일) 두 차례 이건영 목사(총신 75회)를 인천시 중구 인중로에 있는 인천제2교회 당회장실에서 만나 대담을 했다. ... -지금 이 교회 오신 지 몇 년 되셨어요. “저는 여기에서 태어났어요. 이 교회 유아세례 출신입니다.” -총신은 몇 회세요. “75회입니다. 지금은 제 마음속에 하나님 은혜 주시면 이 교회에서 은퇴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시면 지금 또 어디로 부임해 가시겠다는 겁니까. “저는 좀 일찍 은퇴를 해 힘이 있을 때 다른 사역을 좀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나 교인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제가 보니 한 교회에서 지도력을 키우신 목사는 영적 지도자라 연륜이 더할수록 더 지도력이 성숙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력을 다른 데 쓰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지만 인천에는 신도시가 많이 생겼습니다. 여기 교회 근처에서 걸어 교회 나오는 교인은 5퍼센트도 안 됩니다. 나머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먼 데서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복음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는 청계천처럼 공구상가가 많습니다. 500개가 넘어요. 저 구석구석까지 성탄절 날 수건을 돌리면 500개가 부족해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죽어도 안 옮기려고 해요. 이미 다 자리가 잡혔으니까요. 저희 교회는 공구상가와 주위 식당들과 같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 -시카고의 무디 바이블 교회도 시내에 있는데 목회자에 따라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온답니다. 거기 교인이 말하길 온 지역에서 몰려오는 교인들을 보면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그 교회는 변두리로 이사 가려고 하지를 않아요. 인천제2교회도 그럴 것 같네요. “아멘. 목사님 잘 모르시겠지만 실제로 송도 신도시하고 연수동에 수 만 채 아파트 대단지가 있습니다. 고 가운데 3000평 땅이 나왔어요. 경매로 80억에 나온 거예요. 일부 장로님들이 그 쪽으로 가자고 말씀 했어요. 한 10년 전일 겁니다. 그 때 거기로 갔다면 지금 엄청난 교회가 됐을 겁니다. 송도 신도시가 엄청나고 연수동 수 만 채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이니까요. 많은 교인들이 가자고 했는데 최종적으로 장로님들을 설득해 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나중에 장로님들이 이유라도 좀 알자고 했어요. 내가 이유를 말씀 드릴 테니까 그 이유를 듣고 포기하는 것으로 하면 말씀 드리겠다고 했어요. 장로님들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어요. 아내랑 그 곳에 가봤더니 이미 작은 교회 개척교회 상가교회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 작은 교회들이 없다고 하면 가도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들이 반경에 엄청나게 많은 데 이 대지를 팔고 거기 가서 큰 교회를 지어놓으면 교인 간에 수평이동이 생기고 작은 교회 개척 교회 상가 교회들이 엄청나게 타격을 받을 겁니다. 장로님들 아시지 않느냐 우리 교회가 나쁜 소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그곳으로 가면 우리는 엄청 큰 교회가 될 것이지만 주위에 많은 교회들이 말로 할 수 없는 피해를 볼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맙시다. 제가 연구하고 현장 조사를 한 걸 말씀 드리는 겁니다. 여기에서라도 오겠다는 교인만 받읍시다. 우리가 인천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된다고 해서 천국 가서 더 큰 면류관을 교인들이나 장로님들이 받는 건 아닙니다. 목사가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인천에서 제일 큰 교회가 못 되더라도 여기서 오는 교인만 받고 거기 작은 교회들 살려줍시다. 그랬더니 이제 많이 얘기들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장로님들이 제 말씀을 들어주셨어요.” ... -좋아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잠언 16장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목사가 ‘지혜자의 마음’을 가졌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는 그가 목회나 설교에 탁월한 테크닉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비범한 지성과 의지를 가졌다는 의미도 아니다. ‘지혜자의 마음’을 가졌다는 건 특별하고 고귀한 정신을 가졌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 이건영 목사의 경이로움은 그의 정신적 위대함에 있다.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이뤄낸 위대함이라 더욱 값지다. 그는 세상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성경의 진리를 앎으로 얻은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건영 목사가 지난 2016년 2월 16일자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행한 그의 자유로운 마음을 보여 주는 말 한마디를 소개한다. “교회가 마련한 공간과 시설들은 이용자의 대다수가 교회 외부 사람들이므로 그 공간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슬픔을 경유하지 않고 믿음의 바닥에 이를 수 없다. 성경은 말씀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도서 7:3-4 2019년 3월 24일 오후 예배 시작 전 잠깐 이건영 목사를 만나 물었다. -총회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혀 생각이 없다가 어떤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총회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다고 믿습니다.” 2019년 4월 첫째 주 총회 기관지 기독신문은 이런 기사를 게재했다. 2019년 4월 9일 인천제2교회에서 열린 인천노회 제110회 정기회에서 신상 발언한 이건영 목사는 “저는 지금까지 사적, 공적 모임에서 교단 부총회장으로 출마할 것을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목사는 “모 언론 기사를 통해 저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전달된 후, 각자 의견들이 계신 것 같다”면서, “하지만 저는 부총회장 후보가 될 마음이 없다. 저는 총회장이 되겠다는 기도와 목표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총회를 섬기겠다는 기도와 행동으로 지금까지 지내왔다”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아울러 이건영 목사는 제104회 총회 부총회장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소강석 목사를 의식한 듯 “총회가 개혁측을 복음의 동역자로 받아 드린 지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며, “이제는 그 형제들 중에 총회장이 선출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더 하나 되고, 더 화목한 총회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했다. 끝으로 이건영 목사는 “저는 지금까지 부총회장 출마를 거론한 적이 없었기에 지금 드리는 말씀은 불출마 선언이 아니고, 다만 제 입장을 밝힌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총회와 교단을 위해 기도하며 협력하겠다”며 발언을 마쳤다. 그 순간의 이건영 목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말씀 잠언 16장 9절을 그대로 이루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에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의 마음을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에게 목회와 총회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2019-04-12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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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2
  •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메시지 하나님의 백성 웃고 울게 하면서도 믿음 세계 인도하는 성령의 감동이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의 설교가들로 아우구스티누스, 크리소스톰, 루터, 칼빈, 스펄젼, 무디, 빌리 그래함 그리고 한국의 길선주, 한경직, 김창인 등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상 최초 최고의 하나님의 광대로는 소강석 목사일 것이다. 그의 설교와 사역을 들여다보면 그는 하나님 백성을 웃고 울려 즐겁게 하고 기독교 대적자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목숨을 걸고 전달하는 하나님의 광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찬양하는 광대이다. 서양에서 광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Clown(클라운)으로서의 광대, 다른 하나는 Pierrot(피에로)로서의 광대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광대들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광대들은 대부분 Clown인데 서커스 같은 공연에서 등장하는 이들은 복식의 규제가 없고 따로 정해진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Pierrot의 개념은 다르다. 피에로의 개념은 비극적인 광대이기 때문에,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웃으면 안 된다. 주로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입술을 위한 빨간색으로 색이 정해져 있으며, 눈 밑에 항상 눈물을 그려 넣는다. 서커스에 나오는 마스코트이자 웃음을 주는 직업이다. 오늘날 연예인(예능인)의 조상 격 되는 직업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옷과 행동과는 다르게 광대도 상당히 어려운 수준의 기술들을 터득해야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흔히들 광대를 문학적으로 ‘얼굴로는 웃지만 마음으로는 우는 사람들’ 이란 식으로 표현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순 우리말인 ‘얼굴’이란 말에는 그 사람의 ‘얼’이 들어있는 ‘굴’, 즉 마음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영혼이 거기 담겨 있는 굴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보다는 남의 얼굴을 더 여기며 자신의 얼굴을 낮추는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목사야말로 어쩌면 더 귀한 영혼을 지닌 그런 얼굴의 소유자가 아닌가 싶다. 그의 얼굴은 하나님의 백성을 웃기고 즐겁게 하기 위해 웃기고 노래하고 시를 읊지만 주님의 십자가 대속을 전하기 위한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순종의 믿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광대로서. 나 이제 내가 되었네./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시간이 많이 걸렸네./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없어져/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나 이제 내가 되었네... 2019년 1월 3일 27일 그의 설교를 듣고 미국의 시인 메이 사튼(May Sarton)의 ‘나 이제 내가 되었네’의 구절이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목사의 얼굴과 오버랩 된다. 이제 이 세상 떠날 즈음 그가 어떤 시를 남길까 궁금해 괴테와 더불어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년 12월 13일 뒤셀도르프 ~ 1856년 2월 19일 파리)의 시가 떠올랐다. 파리 몽마르트르의 하이네 무덤 묘비 삼 면에 덴마크의 유명한 조각가 루이(Louis Hasselriis)가 새긴 시다. ‘어디에?’(독일어 Wo? 영어 Where?)라는 제목의 독일어 시를 영역한 것을 나름 번역해봤다. Where? Where shall I, the wander-wearied,/Find my haven and my shrine?/Under palms will I be buried?/Under lindens on the Rhine?/Shall I lie in desert reaches,/Buried by a stranger's hand?/Or upon the well-loved beaches,/Covered by the friendly sand?Well, what matter ! God has given/Wider spaces there than here./And the stars that swing in heaven/Shall be lamps above my bier. 지친 방랑자 나는 어디에서/나의 안식처와 성소를 발견할까?/종려나무 아래 나는 묻힐까?/라인강 보리수 아래 묻힐까?/나는 광활한 사막에 뉘여/친절한 모래에 덮힐까?/그래 어쨌든! 하나님께서 여기보다 더 넓은 그곳을 주시겠지./그리고 하늘에서 흔들거리는 별들이 내 영구차 위 등불들이 되겠지. 세계 최고의 광대 채플린의 유명한 어록 중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그의 영화들은 위트가 넘치면서도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중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듯 세계 최초 최고의 하나님의 광대 소강석 목사의 메시지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웃고 울게 하는 희극과 비극이 넘치면서도 우리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성령의 감동이 있다. 2019-01-30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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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30
  • 牧使 박춘근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 외침(外侵)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 이반(離反) 목사(牧使)란 고려 중기 이후와 조선 때, 관찰사 아래에서 지방의 각 목을 맡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목민관을 위해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년 8월 5일 ~ 1836년 4월 7일)이 저술한 책이 목민심서(牧民心書)다. 제목의 뜻은 목민관이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에 관한 책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저자인 정약용은 1801년 순조 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조선 순조 원년 1801년 신유년에 일어난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에 휘말린다. 이 사건은 노론 벽파의 주도로 남인을 주축으로 한 정조의 친위세력인 시파(時派)를 완전히 몰락시킨 사건으로 남인 청류당 계열 가운데 서학에 물든 진보적 인사들이 살육 당했다. 정약용은 겨우 살아남아 16년간 귀양살이를 한다. 이런 유배 생활에서 그가 쓴 게 바로 목민심서다. 그 목민심서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침(外侵)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의 이반(離反)이다.” 당시 다산은 조선 사회의 부패한 세상에 분노하고 자신의 큰 뜻을 펴지 못한 절망을 시로 달랬다. 약은 놈 비단옷 찬란히 빛나는데못난 놈 가난을 괴로워하네 커다란 강령이 이미 무너졌으니만사가 막혀서 통하지 않네 한밤중에 책상 치고 벌떡 일어나높은 하늘 우러러 길이길이 탄식하네 우리 총회에서 저런 비탄을 말할 수 있는 다산 같은 목민관 목사(牧使)를 들자면 그는 박춘근 목사(牧師)일 것이다. 다산의 목민심서의 주제는 청심(淸心) 즉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마음가짐이 언제나 청렴결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춘근은 마음가짐이 언제나 청렴결백한 목사(牧使) 즉 주님이 가르치는 마음이 가난한 청심(淸心)한 목사(牧師)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양을 돌보는 목사(牧師)로서 언제나 교인을 사랑하고 생활은 언제나 검소하다. 그리고 노회나 총회의 목사(牧使)로서 다른 사람의 청탁을 받지 않고 일을 처리할 때는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한다. 15년 동안 교단의 골칫거리였던 은급재단 납골당 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총회 관련 기관과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은급재단 납골당문제 후속사법처리전권위원회(위원장 박춘근 목사)와 은급재단 발전위원회(위원장 김종학목사)는 지난 2015년 6월 26일 총회회관에서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연석회의는 양 위원회 위원뿐만 아니라 은급재단이사와 총회 연급가입자, 총회직원, 납골당 관계자등 60여명이 참석해 납골당 문제 전반에 대한 공청회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연석회의에서 쟁점이 된 것은 납골당 문제의 사법처리 여부와 연금가입자 확대를 비롯한 은급재단 발전방안이었다. 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 박춘근 목사는 말했다. “납골당 문제의 현안에 대한 이해를 돕고 발전 방향이 무엇인지 논의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광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연금 가입자들에게 혜택을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문제를 처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납골당 문제의 사법처리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입장을 밝혔다. 손해가 되더라도 소송을 진행하라고 하면 해야 하지만,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총회연금가입자협의회에서 패소하더라도 소송을 진행하라고 결의하면 진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할 말이 별로 없는 발전위원회위원장 김종학 목사 대신 정치와 계산에 밝은 서기 김정호 목사가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총회 연금가입자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연금 가입자를 확대하는 일로 강도사 인허 시 무조건 연급가입에 한해서 인허를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중입니다. 우선 무엇보다 은급재단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회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 납골당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날 연석회의에 참석한 총회연금가입자협의회 부회장 권의수 목사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은급재단의 잘못된 운영으로 발생한 손실 모두를 연금 가입자들이 지고 있는데 그 누구도 가입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줄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 가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은급재단이사장과 이사, 사법처리전권위원회와 발전위원회 위원들부터 연금에 가입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권의수 목사는 은급재단 이사장은 물론 상임이사인 김창수 총무도 은급재단 연금에 가입을 하지 않았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제99회 납골당문제 총회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춘근 목사(남부전원교회)를 찾아가 2016년 7월 21일 오전 10시30분 남부전원교회 1층의 당회장실에서 만났다. 박 목사는 사람 좋은 이훈복 목사 후임으로 남부전원교회 부임초기 겪었던 재판 에피소드로 대담에 임해 주었다. 남부전원교회는 그 이름에 어울리게 주택가에서 뚝 떨어진 평택시 지산동 산자락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에 쓰던 주차장 수용으로 주차공간이 모자라 교회 건너편에 새 주차장을 마련했다. 겨울 추위 속에 봉사하는 교회 주차안내원들의 편의를 위해 컨테이너를 유사휘발유 장사를 하던 사람으로부터 500만원에 구입해 주차안내원의 몸도 녹이고 쉬는 공간으로 사용하게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교회에 깍두기 머리 차림의 건장한 사내가 찾아와 말했다. “저 컨테이너는 내 것인데 불법으로 거래된 장물을 구입했으니 3천만 원을 변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습니다.” 건장한 깍두기가 유유히 돌아간 뒤 이 모습을 본 한 당회원이 박 목사에게 말했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주먹인데 한 천만 원이라도 주고 끝내지요.” 박춘근 목사는 다산이 말하는 목민관 목사(牧使)답게 걱정스러운 당회원들에게 말했다. “교회 돈을 그렇게 쓸 수 없습니다.” 얼마 뒤 헌금을 그렇게 쓸 수 없는 교회와 돈을 못 받은 깍두기와의 재판이 시작됐다. 다시 당회원들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사님, 변호사를 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박 목사는 덤덤하게 판에 박은 말을 했다. “교회 돈을 그렇게 쓸 수 없습니다.” 그 후 1년 이상 변호사 없이 재판정을 오간 박 목사는 1심 판결을 앞둔 어느 날 재판의 변론에서 판사에게 말했다. “재판장님, 저희가 구입해 지금 주차장 관리실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에 대하여 지금까지 팔았던 사람의 것이 아니고 원고의 것이라 하였으니, 원고로 하여금 장물이라고 한 컨테이너에 대하여 원고의 소유임을 입증하도록 해 주십시오.” 판사는 잠시 생각한 뒤 원고인 깍두기에게 말했다. “원고 들으셨지요. 피고가 소송 대상인 컨테이너가 원고의 소유임을 입증하라고 하니 다음 재판 때 까지 그렇게 하십시오. 아셨죠.” 깍두기는 무엇으로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수요일 저녁 깍두기 가 다시 박 목사를 찾아와 말했다. “제 아내도 교회를 다닙니다. 목사님, 1000만 원만 주시면 소를 취하하도록 하겠습니다.” 박 목사는 웃으며 교회 돈을 그렇게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다음 주일 밤 깍두기가 또다시 박 목사를 찾아와 5백만 원만 주면 소를 취하하겠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교회 돈을 그렇게 쓸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 후 재판정이나 교회에서 그 깍두기의 모습은 다시 보이거나 나타나지 않고 그 재판은 종결됐다. 제99회 납골당문제 총회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의 납골당 총회사법처리전권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하~하(시원한 웃음). 글쎄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시작과 진행과정부터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총회장님과 총회 총무님은 디테일하게 인식도 못하면서 총회 은급관계에 있는 직원들 말에 휘둘려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라며 자초지종 말을 이었다. “... 이처럼 교단을 오욕의 구렁텅이에서 뒹굴게 만드는 이런 일은 빨리 끝내야 됩니다. 이번 100회기에는 끝내야 해요. 정말 손해가 나도 끝내야 돼요. 그런데 왜 안 끝내는 줄 아세요. 끝냈다간 돈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바로 그 점 때문에 안 끝내는 겁니다. ... 어쨌든 저도 교회와 노회를 위해 정치를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오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사람에게 맞추어 가는 정치라면 저는 할 마음이 없어요. 또 자리에 연연해서 총회 상비부 부장 한 번 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누가 나더러 농어촌부 부장에 몇 번이고 나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안 나갔습니다. 내가 실력이 없어서 그거 안 하는 게 아닙니다. ... 총회가 바로 가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모 장로의 경우는 공소시효가 형사소송은 7년이고 민사소송은 10년인데 이거 뭐 벌써 넘었지요. 게다가 납골당에 50억 내지 70억의 손실을 보았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원금이 아니라 사업상의 이익에 관한 이야기지 사실 원금 손해는 아닙니다. 사업이란 여차하면 원금도 다 날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수도 있겠죠. 다행히 납골당의 경우 잘 매각하면 아직도 받을 돈이 상당합니다. 최춘경 권사도 공청회 시 아직도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 개인적인 부정혐의에 대한 개연성은 분명히 보이긴 해요. 그런데 총회조사위가 4번째 조사하는 동안 어느 조사위에서도 조사한 바대로 돈 먹었다 한 사람이 없고 돈 줬다는 사람도 없어요.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설만 무성합니다. 그러니 그걸 무슨 수로 처벌을 하겠느냐 그 말입니다. 형사 고소도 안 되고 또 총회 특별 조사로도 안 됩니다. 사법처리조사만도 이태희 목사, 정중헌 목사, 문세춘 목사, 저까지 네 번째입니다. 세 차례 조사했지만 돈 먹었다는 사람들이 하나도 조사에 걸린 건 어떤 서류나 조사에도 없다 이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먹었을 것이라는 의혹의 개연성이나 설만 가지고 어떻게 사법처벌이든 총회 헌법의 시벌이든 할 수가 있습니까. 설을 가지고는 하나도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런 것은 있습니다. 은급재단이사회가 결정을 잘못해서 큰 손해를 끼친 문제는 분명하게 있습니다. 또한 법적 소송에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사법조사처리 위원회가 손해 볼 당사자도 아닌데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냐 하는 문제로서 소송을 재단이사회를 거쳐서 재단이사장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책임자인 총회장이요 총회장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사장은 총회장인데 당대의 잘못은 총회장이 자기를 걸어서 고소를 해야 해요. 그거 자가당착인데 말이 됩니까? 또 과거의 일이라면 전 총회장의 잘못을 현 총회장이 고소를 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쉽지 않겠지요. ... 납골당문제는 15년이라는 세월 속에 처리되지 못하고 100회기 총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해결점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소송은 계속됨으로 (금년 감사부 보고 내용처럼 수천만 원 소송비) 총회의 명예의 실추도 있거니와 동업은 형제간에도 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듯이 매우 어려운 사업에 체계적인 매뉴얼도 없이 운행함으로 해결점이 요원함으로 고법에 집중하여 소유권이전 등기 항소심에서 승리하고, 제100회기 총회에서 다시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총회결의를 해서 은급재단으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1안/ 최춘경과 동업은 불가하며 전체를 매수하여 은급재단이 독자적으로 영업 운영하는 방안. 제2안/ 고법에 승리 후 동업자와 관계청산 후 동업자에게 매각하는 방안. 제3안/ 제3자에게 제97회기 총회결의처럼 매각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으로서 100회기에 재결의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2015년 9월 제100회 총회(총회장 박무용)에서 청렴하고 지혜로운 목민관 목사(牧使) 박춘근 목사(牧師)는 총회를 위해 납골당 문제를 바르게 처리했음에도 1년 공직 정지 징벌을 받았다. 정작 박무용과 허활민은 제100회 총회와 실행위원회를 통해 납골당을 27억 매도를 결의하고 최춘경 권사 측에 매도 권유 내용증명서까지 발송하고도 매도하지 않았다. 이어서 2017년 제101회 총회 김선규 총회장은 제100회 총회와 제101회 총회의 27억 매도 결의에 따라 최춘경 측에 계약금을 받고 매매 계약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제102회 총회는 그것을 거부하고 계약서에 따른 계약 이행을 하지 않아 소송 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목사(牧使) 박춘근의 청렴과 지혜가 돋보인다. 목사(牧使) 박춘근은 지난 2016년 5월 16일 서울 산정현교회(김관선 목사)에서 ‘하나님께 걸작으로 인정받는 목회’(God’s Masterpiece)의 가치를 나누겠다는 비전으로 창립한 GM선교회 대표를 맡고 있다. 이제 1년을 조금 넘긴 기관이지만, 동역하는 목회자들과 사역의 성과는 만만치 않다. GM선교회는 미래 한국교회와 총회를 책임질 신학생과 젊은 목회자들에게 목양의 본질을 일깨우고 실전목회 경험을 전하는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아울러 총회목회대학원(원장 김선규 목사)은 2018년 4월 18일 총회회관 6층에서 총회목회대학원 이사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총회 유리창 김선규 목사를 강원도 동향 선배로 잘 섬기는 목사(牧使) 박춘근이 총회목회대학원 이사회 이사장을 맡기로 했다. 총회 목회대학원의 내실 있는 발전이 김선규 원장과 박춘근 이사장 체제에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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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6
  • 총회제일목사 김승동
    까마득한 태초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어데 말씀 소리 들렸으랴.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말씀을 연모해 휘달릴 때도 끊임없는 주의 종들의 말씀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 같은 은혜가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꽃샘바람 나리고 철쭉향기 홀로 아득하니 다시 천고의 뒤에 성령의 감동을 타고 말씀 전하는 목사 있어 이 강산에서 하나님 뜻 목 놓아 부르짖게 하리라. 3월 25일 주일 오전 10시 구미상모교회에서 총회제일목사(總會第一牧師) 김승동은 성성한 영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날 거룩한 제단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본당을 가득 메운 회중 아멘) 말씀이 그립고 은혜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발걸음 복되고 아름답게 하시고 주신 말씀에 아멘 하여 복을 받게 해주시옵소서. 삶 속에 승리를 얻는 길은 오직 말씀을 먹는 길밖에 없사오니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시간 되게 하시고 주님의 영 가운데 마음이 뜨겁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뜨겁게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드립니다. 아멘.” 총회제일목사 김승동 교인들 서로 인사를 나누게 하고 온 교인이 집중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전했다.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말씀을 전하는 그의 음성과 모습 하나도 놓치랴 교인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 말씀의 감동과 여운에 눈시울을 적셨다. 이제 몸도 여위고 정년이 다 된 그 뒤를 뉘 이을까... 201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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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8
  • 이단대책위원장 김영남
    2018년 4월 3일 12시 송내역 근처 한정식집에서 총회 이단대책위원장 김영남 목사를 만났다. 총회 최근 10년사를 꿰고 있고 돌솥밥을 좋아하는 김영남 목사와 여러 반찬을 섭렵하며 총회 여러 관심사를 음료수처럼 나누었다. 이단(heresy)은 보편적으로 정통 이론에서 많이 벗어난 교리, 주의, 주장 등을 총칭한다. 사이비와 이단은 겹치는 경우는 있어도 다른 개념이다. 사실상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 이단이 존재한다. 다른 종교를 뜻하는 이교와는 다르다. 외부의 종교인 이교와 달리 이단은 내부의 적이라 아주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단은 해당 종교나 교단 내부의 중요 가르침을 왜곡하여 해당 조직을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이단대책워원회는 상비부가 아닙니다. 여기는 3년 임기 상설워원회입니다. 제가 맡게될 일을 총회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실히 소신껏 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이단대책 위원장들은 무능하고 게을렀다. 그러나 매사 성실한 김영남 위원장은 행정과 법과 이론에서 총회 이단과 자유주의 사상을 거르고 총회 개혁신학과 보수신앙을 지킬 수호자로서 적임자임을 실증할 것이다. 5월 3일 이단대대책위 모임 이후 진면목을 드러낼 것이다. 2018-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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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7
  • 제일 법관 조대현
    하나님께서 내 모든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일을) 하게 하시나봅니다 로마의 황제 첫 번째 칭호 로마의 제일 시민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 그의 경력 신앙 세상 삶에서 대한민국 제일 법관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겨울 끝물. 때 아닌 천둥소리에 놀라 내린 눈발에 철 지난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그분처럼 저도 말없이 그냥 조용히 내려 잊히지 않는 뇌리 속에 그냥 있다. 생각하면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기 때문일까. 그저 마음의 정처가 없는 것인가. 모든 일이 꽉 막혀 손 써볼 방도가 없는 것인가. 그냥 있음은 아주 힘없는 상태 같기도 하고, 무언가 참기 힘든 걸 참고 있는 뜨거운 견딤의 시간 같기도 하다.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맥 놓은 이 순간에 미묘한 서글픔이 어린다. 피가 빠져나가 버린 듯 이 쓸쓸한 믿음에 어떤 말도 손길도 부질없는 염려일 것 같다. 그저 슬며시 내려앉는 것, 그 또한 그렇게 있어 볼 길밖에 없어 그냥 있는 믿음의 ‘있음’만이 그 마음의 믿음에 어울리리라.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었다. 그는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가 독학으로 1975년 4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75년 3월 27일자 경향신문 맨 왼쪽 아래 제17회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 60명 중 한 사람으로 ‘고졸=노무현’ 바로 위에는 당시 이화여대 89년사에 첫 사법고시 합격생인 ‘이화여대=전효숙’의 이름도 그리고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단국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적을 두고 사시에 합격한 ‘단국대학원=조대현’의 이름이 적혀있다.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수료해야 하는 2년의 사법연수 시절 고졸 출신 사법연수생으로 서울 서소문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노무현은 명문 고등학교도 마땅한 대학교도 내세울 게 없어 어울릴 사람이 없었다. 그때 조대현이 노무현을 자신이 좌장격인 7명이 모이는 토론회 멤버로 끼워주었다. 그렇게 사법연수원 시절 같은 반의 비슷한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언론에 의해 ‘8인회’로 명명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조대현과 노무현의 인연은 노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사석에서 동기 중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했다. 노 대통령은 나중에 자서전에 "얼마나 고마웠던지 연수원 시절 내내 가깝게 지냈고, 지금까지도 가끔씩 만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적었다. 조대현은 법관 시절 조용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선ㆍ후배들의 존경과 두터운 신망을 샀으며 변호사 개업 후에도 사건을 가려서 맡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법조인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제신문 주필을 지낸 후배 김인모가 한국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이다. 그가 용산고 동창 조대현 판사의 청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조 판사야말로 어떤 경우에도 그럴 정도로 청렴하신 바로 그런 분입니다.”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은 유명한 법조인이었고 지금은 존경받는 법조인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가 장로이기에 목사들의 소식지 ‘더굳뉴스’에 소개할 마음이 생겨 인터뷰 요청을 하고 세상에 대해 겸손한 그가 쾌히 허락을 했다. 2017년 1월 22일 주일 그가 장로로 시무하는 일원동의 개포감리교회(당시 담임 안성욱 목사)에서 만났다. 11시 예배가 시작되기 전 개포교회 사무실에서 만나 용산고 20회 동기 동창 사이라 격의 없이 신앙생활에 대해 말을 나누었다. 조대현 장로는 87년 말 망우동 살 때 금란교회 다니다가 일원동으로 이사 와서 개포교회를 다니게 됐다. 개포교회는 1985년 1월 6일 안성옥 목사가 대신교회 개포 구역을 중심으로 일원1동 654-2호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같은 해 1월 20일 일원1동 677-1 소재 건물 지하 35평을 얻어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7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0년부터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대현 장로는 판사가 된 지 5년째일 때 교회가 설립된 지 2년 된 개척교회에 다닌 초창기 교인인 셈이다. 그로부터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치고 헌법재판관 재직 중인 24년 뒤 그는 2009년 12월 6일 감리교 교회 권사에서 장로로 피택을 받아 장로안수를 받았다. 그는 2018년 1월 9일 자신의 신앙생활의 변환기에 대해 행한 간증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로가 되어 헌법재판관 임기가 끝나기 두 달 전인 2011년 5월 초 아내에게 끌려서 처음으로 기도원에 가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면 무슨 일을 할까요’하고 기도했는데 두 말씀이 제 마음에 박혔습니다. 첫날 저녁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었고 다음날 새벽에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라’는 여호수아 24장 14절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판사로 일하기 시작한 뒤 1981년 서른 살이 넘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1주일에 60시간 이상 판사 일을 했기 때문에, 주일 예배만 간신히 참석할 뿐, 성경을 읽지도 못했고 성경공부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동안 공직 업무에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으니 이제는 열심히 믿으라고 하시는 당연한 말씀이네라 생각하고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임 후 여행을 다니기로 하고 첫 번째로 2011년 8월 터키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1시간이상 걸을 수가 없어 정작 그렇게 원하던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자 허리 치료를 받느라고 잔뜩 세웠던 여행계획을 모두 접어야 했습니다.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려고 이제는 제대로 믿으라고 일깨우는 말씀을 2011년 5월 기도원에서 석 달 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내가 무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대로 세운 인생계획을 수정하도록 몰아가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치료하느라 돌아다니지 못하니 기도원에서 은혜 받은 말씀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제대로 믿는 게 뭐지. 믿는다는 게 뭐지. 무얼 믿는 거지. 왜 믿어야 하지. 그런데 평생 법관을 지낸 제가 아무 것도 대답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성경을 읽고 신앙서적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남짓 공부하던 중 2012년 2월 말경 예수전도단 김지태 대표님으로부터 시니어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12 주간의 강의와 가르침으로 시작하여 약 12주의 전도여행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예수전도단의 집중적인 제자훈련 프로그램) 학교가 3월 5일 개학한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시니어 DTS학교에 지원했습니다. 60세 이상 성도들이 8개월간 예수제자훈련을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니어 DTS학교에 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간사님들이 여호수아 24:14 말씀대로 하나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제자의 모습을 보고 배우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시니어DTS학교에서 말씀 묵상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훈련을 받게 하셔서,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는 방법을 배우게 하셨고, 2012년 8월 10일간의 전도여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DTS의 전도여행은 여행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고 지갑과 휴대폰 없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어디로 갈지, 며칠간 머물지, 무엇을 할지 등을 그때그때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그 후 기도를 많이 하는 아들이 2014년 2월부터 3월 복음학교에 가라고 강권했습니다. 복음학교에 가서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6월 2일부터 7일까지 순회선교단 복음학교에 가서 복음 공부를 했습니다. 김용의 선교사님 혼자서 하루 15시간씩 강의를 하시더군요.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 일꾼은 저런 분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강의 내용은 단순하고 강력했습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복음만이 살 길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라. 제대로 믿어라. 세상의 가치에 이끌려서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복음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2014년 6월 11일 제가 형사피고인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공직에서 퇴직한 제가 대한감리회 재판위원으로 봉사하던 중 2013년 9월 감독회장 당선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에 불복한 당선자가 그 판결이 무효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서, 제가 감리회의 당선무효판결은 정당하다는 답변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그 답변서를 작성하면서 감리회 직원이 저의 요청과 감독회장 직무대행의 지시로 감독회장 부하인 행정실장의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증거서류를 꺼내왔다는 이유로, 그 직원과 감독회장 직무대행과 제가 공모하여 행정실장 사무실에 무단침입을 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제가 기소되자, 모든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했습니다. ‘재판관이 재판받다.’ 빅 뉴스였죠. 그 결과 제가 평생 쌓은 명예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제가 기소된 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마 10:29)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버지를 손대기 시작했으니 기뻐하고 감사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니, 불평하는 마음이 사그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법관의 경력과 명예를 나에게 내놓으려 했느냐.’ 저는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지내면서 저의 명예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제가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력이나 명예를 제가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망각하고 나의 공적이라고 내세우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에서 거주하며 네 소유가 풍부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2-14)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신 8:17)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살이가 형통할 때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인데 제가 바로 거기에 걸린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저를 형사피고인으로 세우시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끼는 세상 명예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고 생각하니, 형사피고인 처지에서도 마음이 평안해졌고, 기자들이 심경을 물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 명예를 내려놓게 하신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학교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가치 있는 것,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깨닫고자 노력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의 깨우치심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 앉아 있으면, 목사님을 통하여 필요한 말씀과 교리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제가 찾던 성경 말씀이 저절로 생각나기도 하고, 제가 알지 못하던 진리가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원고 정리 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의 신앙생활이 너무 부족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합격 판정을 받으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가 자신의 소속 감리교 교단 교권 다툼 끝에 피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2014년 7월 3일 오전 11시 올곧은 법관 조대현이 서울법원종합청사 522호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모든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나중 무죄가 되었지만 그 때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심경을 묻는 신문기자에게 전 대통령 이명박 장로와 달리 한국 교회 신앙 역사에 남을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일을) 하게 하시나봅니다.” 개포교회 장로(長老) 조대현(曺大鉉, 1951년 2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1951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 197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0년부터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 변호사는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수학 교사로 시작해 서울 언주중학교 교장을 지낸 헌신적 사랑과 눈물의 기도로 평생 내조한 서외순 권사와 두 아들을 두었다. 조대현 장로가 그 바쁜 법관 생활 속에서도 어릴 적부터 책상을 마주하고 직접 가르친 쌍둥이 아들 둘 다 직업도 쌍둥이 법조인(변호사)으로 활동 중이다. 로마의 황제 첫 번째 칭호는 princeps 즉 제일(第一) 시민(市民)이다. 그렇듯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는 그의 법관 경력이나 기독교 신앙이나 세상 삶에서 대한민국 제일(第一) 법관(法官)이라 말해도 그를 아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2018-02-25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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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1
  • 꽃동산교회 김종준
    서기행 회상 30년 전 김종준 전도사 어린이 교육 선교 돈이 없어 자기 피 팔아 경비 조달 영적인 교육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배워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것 보다 더 큰 저주 없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죄악을 멀리 하고 성결한 종들이 되어야 하나님의 일은 말이 아니라 행동 그리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솔방울 하나 떨어져도 믿음이 깨어지는 세상. 갈라진 빛으로 가득한 교회의 가슴에 지상에서 제일 먼저 치유의 은혜가 밀려온다. 잠에서 깬 참새 몇 마리 교회 마당 솔가지 흔들지 않으려 조심스레 포르릉 기도의 길이 사라진 고독한 기도원으로 나른다. 어둠이 숨겼던 소망의 속살들 주님의 영광 터뜨리듯 온 마디마다 햇살을 튕긴다. 이 세상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아지는 것도 나는 아직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벗어놓은 믿음이 총신 뒷산처럼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우리가 빠져나온 이후에 그리운 고향이 되었다. 2000년 전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의 유적들은 발굴 200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이 비극의 고도(古都)에 가면 폼페이 시민들의 절망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잿빛 화산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낸 유적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슬퍼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성공이란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이란 일류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거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었다는 따위가 아니라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온다는 얘기일 것이다.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끈기 있고 한결같은 것 악천후도 견뎌낸 든든한 믿음 같은 것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삼십 년 복음을 전한 그 기념으로 한 교회를 개척해 삼십 년 목회한 그 기념으로 그 교회에서 온 몸으로 설교하고 기도한 삼십 년 그 기념으로 빛나는 면류관 하나씩 또 마련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말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한 성도들에게도 더불어 꽃은 한 송이 또 곱게 피어나 꽃동산교회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꽃동산교회는 1986년 6월 15일 서울 중구 신당동 402-13번지의 건물 64평을 임대해 김종준 전도사가 개척을 했다. 개척 당시 당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제89회 총회장)가 2016년 6월 15일 대지 700평에 지하 3층 지상 11층 연건평 3,300평의 꽃동산교회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전달한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창립 30년인데 제 나이 50살에 꽃동산교회 당회장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김종준 그 당시 전도사께서 어린이 교육 선교에 재원이 없어 자기 피를 팔아서 그 경비를 조달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꽃동산교회는 30년 역사 가운데 2004년 12월 16일 김종준 목사는 학교법인 천호학원(위례정보산업고등학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현재 20,000여명의 등록 교인 가운데 매주일 11,000여명이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하여 어린이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7년 9월 4일과 5일 전북 부안군 ‘대명리조트변산’ 태평소룸에서 전국호남협의회(대표회장 소강석 목사) 교직자 수련회가 열렸다. 4일 저녁 7시 유쾌한 목사 소강석의 유머와 복음의 능력이 휩쓴 다음날 5일 새벽 6시 30분 김상현 목사의 사회로 김승규 목사가 새벽을 깨우는 목소리로 말씀을 봉독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20-21 김종준 목사가 변산 대명리조트 태평소룸에 마련된 새벽 강단에 섰다. 그는 얌전한 평소의 모습과 달리 역동적인 몸짓으로 힘 있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들을 종의 반열에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부름 받은 종들 가운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쓰시다가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다니엘이나 바울사도 같은 경우는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훌륭하게 사용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나 가롯 유다 같은 경우는 하나님께 쓰시다가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 사용된 사람들은 승승장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여 버림받은 사람들은 비참 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 왕을 보십시요. 자기 칼로 자기가 자결하는 비참한 말로를 고하지 않습니까. 주님께 버림받은 가롯 유다도 마찬 가지 입니다. 자기가 목매달아 땅에 떨어져 창자가 터져 비참하게 죽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것만큼 큰 저주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능한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고 무능한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고 부족한 것 투성이라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그 시대에 영향력을 끼치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디엘 무디를 보십시요. 그는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입니다. 집도 가난하여 구둣방 직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들어 쓰시니까 세계적인 부흥사로 얼마나 훌륭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도 요셉도 다니엘도 베드로도 본래 많이 배운 사람들도 아니고 환경과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들어 쓰시니까 그 시대에 훌륭한 인물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많이 가졌느냐 배웠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들어 쓰시느냐 버리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쓰임 받았다 할지라도 폐기 처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7:22절 이하에 보면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23절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했습니다. 이 경우는 실컷 일하고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버림받지 않고 쓰임 받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가. 오늘 본문에 보니까 큰집에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이 있는데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은 그릇의 재질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릇이 깨끗하면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외형적인 학벌이나 가문이나 인물을 보고 사용 하지만 하나님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을 쓰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되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죄를 멀리하고 항상 성결해야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실 때도 모세를 불러 뭐라 말씀하십니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의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죄악 된 상태에서는 너를 사용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깨끗한 그릇이 될 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진두지휘로 요단강까지 갔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요단강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3:5절에 보니까 ‘자신을 성결케 하라 그리하면 내일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성결케 하니까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같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쓰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간을 버리셨습니까. 바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잘 나가던 웃시아 왕을 버리셨습니까.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청소년 사역의 스타강사로 훌륭하게 하나님께 쓰임 받던 사람들이 왜 무너졌습니까. 음란 죄 때문이었습니다. 몸과 마음과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더러워지면 하나님께서 가차 없이 버리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 받고 버림받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역대하 33:12~13절에 보면 남유다 14대 므낫세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버리셔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환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가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버리시지만 회개하고 성결케 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사용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3에 ‘너희들이 나를 주라 선생이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면서 너희들도 나처럼 행하기 위해서 본을 보였노라’ 했습니다. 선생은 본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선생은 먼저 된 자 즉 지도자를 말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도사 때 이 말씀으로 엄청난 도전을 받았습니다. 조그만 교회 주일학교 전도사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떠들어도 그렇게 떠드는 얘들은 처음 봤습니다. 설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 교회에서는 어린이 전문가인 저를 초빙하면 어린이들이 떠들지 않고 예배도 잘 드리고 주일학교도 부흥할 것으로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해도 얘들은 똑 같이 떠들고 주일학교는 부흥이 안 되니까 교사들이 나를 향해서 눈총을 쏘는데 그 눈총에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더 이상 그 교회에서 사역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사임해야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이 교회 올 때도 기도하고 왔는데 그만 두더라도 기도하고 응답받고 그만 두자 하고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새벽 집회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요한복음을 읽다가 요한복음 13:13을 읽으면서 깨우쳤습니다. ‘네가 전도사냐 그동안 말로만 가르쳤지 행동으로 실천한 적이 있느냐’ 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뒤를 돌아보니까 정말 말로만 가르쳤지 삶으로 보여 준 적이 없었습니다. 많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교사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말로만 가르쳤지 삶으로 보여 주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부터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는 교육을 합시다 하고 표어를 바울처럼 전하자 정했습니다. 그리고 엎드리면 기도하고 앉으면 성경보고 일어서면 전도하자 하고 예배시간마다 구호를 외쳤습니다. 어린이들이 떠들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말고 표어대로 교회 와서 엎드리면 기도하고 앉으면 성경보고 일어서면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 줍시다 하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간섭하지 않으니까 어린이들은 더 떠들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3개월 정도 지나니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예배 분위기가 조용하게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적인 교육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배운다는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제가 일반 교육을 하는 학교 선생님들과 영적 교육을 하는 교회 선생님들과 비교 연구를 해 본적이 있습니다. 학교선생님들을 접촉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25시간 이상입니다. 그런데 교회선생님들을 접촉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두 시간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많은 시간을 접촉하는 학교 선생님을 닮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을 접촉하지만 교회 선생님들의 모습을 닮는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영적인 교육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 가지고 할 수가 없습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세상 교육과 기독교교육은 원리부터 다릅니다. 일반 교육은 원리가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을 중심 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을 중심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머리로 이해하고 외워서 전달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은 하나님의 계시를 중심 원리로 삼습니다. 계시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고 머리로 외워서 전달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전달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 전달로 끝납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을 키우는 교육이 되고 맙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안식일도 잘 지키고 십일조 생활도 잘 하고 이례에 두 번씩 금식 기도도 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고 외식자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신자인데 심령은 썩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심령의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심령이 뜨거워져서 가슴으로 일을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 받아서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해야지 머리로 경험으로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500여 성도들과 제자들을 향해 ‘너희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8절에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설령의 능력을 받지 않고는 할 수 없기에 성령의 권능을 받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3년 반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배운 지식과 경험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문제만 일으키고 말썽만 부렸습니다. 말고 귀를 짜르지를 않나. 변화산에서 엉뚱한 괴변만 늘어놓지를 않나.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자기만 똑 독 한 체 하고 다른 사람을 다 버릴 찌라도 나는 죽을 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지 않나, 결국은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던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문도와 함께 기도 하다가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가슴으로 외치니까 한꺼번에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머리로 경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 받아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이 사용 하십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저를 놀랍게 사용하시는 것을 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친구들과 중량교 뚝방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다가가 보았습니다.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 메타 정도를 붕붕 떠다니지를 않나 작두칼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지를 않나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귀신이 들려서 그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젠가 목사님 설교를 듣는 중에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장난삼아서 한번 해 봤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마귀야 물러가라 그런데 그 말을 무당이 듣고 나를 째려보는데 너무 무서웠습니다. 순간 예수 이름이 빠졌다는 것을 알고 겁이 나서 큰소리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붕붕 떠다니며 굿을 하던 무당이 그 자리에 덥석 주저앉더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그 당시 중량천 물이 지저분했었는데 그곳에 손을 씻고 도망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또 신학교를 들어가서 2학년 때부터 교육전도사를 했는데 맡은 부서마다 폭발적으로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 4학년 때 한국 어린이 교육 선교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어린이 전도와 교사교육의 사역을 하는데 하는 일마다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교사강습회를 열면 교사들이 구름 떼 같이 모여 드는 것입니다. 그 당시 중앙 성결교회를 빌려서 강습회를 하는데 3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가 없어서 여름 성경학교 교사 강습회를 4차로 나누어서 실시했는데 여름에 만 명 이상이 모일 정도로 성황을 이뤘습니다. 또 어린이 주보가 없는 시대에 꽃동산 만화 주보를 만들어서 히트를 쳤습니다. 한쪽에는 성경만화 동화 퀴즈 퍼즐 같은 것으로 재미있게 꾸미고 한쪽에는 주일 예배순서로 사용 하도록 한 꽃동산 주보가 한 주에 40만 명의 어린이가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이 사역자를 양성하는 한국 어린이 교육 신학교를 운영 했는데 학생수가 2500명까지 모였습니다. 그리고 여름성경학교를 교회에서 하다보니까 점점 줄어들고 집중적인 신앙교육이 안되어 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의 집중적인 신앙 교육을 위해서 성경학교를 캠프로 실시했는데 그것 또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한 해 여름에 3만 명의 어린이가 참여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 했는데 짧은 기간에 대교회로 부흥을 했습니다. 제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까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뜨거운 가슴으로 일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이 시대에 사용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조그만 단칸방 같은 데서 여섯 명이 시작한 꽃동산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크게 번창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그동안 어린이 선교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소명을 가지고 어린이 교회로 시작을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더불어 많은 장년도 보내 주셔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31살 먹은 청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힘 있게 남은 사역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꽃동산교회와 같은 비전과 신앙을 가진 많은 교회를 세워서 이 땅에 어린이선교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금도 아홉 군데 지역에 꽃동산교회 지교회를 세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 꽃동산교회를 세워 죽어가는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종들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것 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쓰임받기 위해서 죄악을 멀리 하고 성결한 종들이 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인간적인 얄팍한 계산으로 하지 말고 믿음으로 합시다. 또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합시다. 그리고 머리로 하지 말고 가슴으로 합시다. 그래서 이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017-09-13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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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16
  • 총회제일주필 이종찬
    정치력은 미약해도 역사신학 전공과거와 미래 연결 역사 잘 알아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구원이 창조주 절대주권에서 나온다는 사상 예정의 유무는 사치와 방종이 아닌 청빈과 절제 열매 통해 알 수 있어 칼빈주의 사상 지배 사회사치와 낭비 근절 저축과 근면 미덕 칼빈의 자본주의는 배금주의 배격축적된 자본 바탕 경제발전 토대 돼 이종찬 목사 기독신문 역대 52년 주필 중 글이나 성격이나 태도 總會第一主筆 기독신문사는 2014년 4월 10일 총회회관에서 제49회기 임시이사회를 열고 만장일치 박수로 단독 입후보한 이종찬 목사(수원 권선제일교회)를 주필(임기 2014년 4월 16일~2016년 4월 16일)로 선정했다. 이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77회)을 졸업했으며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총회100년사 집필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등을 역임했다. 또 “북동구 개혁교회 역사기행” “제3의 로마 방문기” 등의 저서와 “빛을 노래한 사람” 등의 시집을 다수 출간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풀잎처럼 맑은 심상과 아름다운 시의 정신을 가진 문인에게 주는 제13회 ‘풀잎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필(主筆)은 신문사 잡지사 등에서 행정이나 편집을 책임지는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이다. 논설주간이라고도 한다. 발행인으로부터 편집에 관한 권리를 위임받아 그 신문이나 잡지의 논조와 편집 방침을 결정하고 모든 책임을 진다. 유력 일간지 주필을 지낸 한 언론인이 주필에 관해 이렇게 술회했다. “제가 처음 기자가 됐을 때 주필이라면 정말 하늘같이 높아 보였는데요. 주필은 한자로 主筆 영어 표기는 여러 가지이지만 저는 chief editorial writer라고 쓰고 있습니다. 한 신문사의 논조를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알기 쉬울는지. 논설위원실 회의를 주재해 그날 사설로 뭘 쓰고 누가 쓰고 어떻게 쓰고를 결정한 뒤 논설위원들이 쓴 사설을 데스킹(글을 고치거나 첨삭하는 일)하고 걸맞은 제목을 붙이는 게 제 임무입니다...” 2014년 4월 주필로 임명된 뒤 이종찬 목사는 기독신문 강석근(한 달 뒤 편집국장 임명됨)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총회 산하에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목회자가 참 많습니다. 메가 처치는 아니더라도 작은 교회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괜찮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부각되어야 합니다. 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면 어떻습니까. 지금 기독신문은 지나치게 정치 중심적이며 이슈에 따라 보도하는 시각이 다릅니다. 무릇 교단지는 긍정적인 방향에서 신문의 논조를 정립하여 밝게 가야 합니다... 현재 기독신문은 목회자와 장로 중 총회에 관심 있는 몇몇 분들만 구독하고 있는 신문이 되었습니다. 바른 정치를 소망하는 총회 지도자와 많은 목회자 및 성도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신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단지의 주필은 시각이 건전해야 합니다. 편협된 생각이나 자기중심적인 함몰된 사고로는 신문의 방향을 제시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정치력은 미약할지 몰라도 역사신학을 전공하여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역사는 압니다.” 이종찬 주필은 백영우를 이은 사장 이재천에 의해 기독신문 주필에 재임용되었다. 그의 온건한 자세와 능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작은 교회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겠다는 취지를 잘 살린 그의 ‘백향목’ 칼럼에 자신의 칼빈주의관이 담긴 글을 실었다. “개혁자 칼빈은 세계가 신적인 절대 질서 아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율(神律)을 통하여 세상은 통치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가 뿌리요 그 열매라고 생각했던 중세기 군주들은 왕명을 신율로 내세웠다. 하지만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의 사상이 퍼진 곳에서는 그런 독재적 발상은 저항을 받아야 했다. 청교도들은 타운미팅(town meeting) 즉 마을회의를 시작하면서 이것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되게 하였다. 따라서 영국식 민주주의도 미국식 민주주의도 칼빈의 후예들의 유산이었다... 칼빈의 사상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영향을 주었다.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구원 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인데 구원이 창조주의 절대주권에서 나온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예정의 유무는 사치와 방종이 아닌 청빈과 절제의 열매를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것이 예정론이다. 이러한 사상은 칼빈주의 사상이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사치와 낭비가 근절되었고 저축과 근면이 삶의 미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칼빈의 자본주의는 배금주의를 배격하면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재투자를 통한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사치를 위한 것 보다는 꼭 필요한 생활용품의 생산을 꾀하면서 상품의 표준화를 낳게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상품의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자본주의 경제 발전으로 그 결실을 보았다...” 1959년 제44회 총회 시 통합 측의 이탈로 총회의 눈과 귀가 될 언론기관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하지만 당시는 주간신문의 신규허가를 받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때 총회는 안용준 목사가 발행인으로 있던 “파수꾼”을 인수하였고 제46회 총회시 “파수꾼”을 기관지로 인준하였다. 통합측의 이탈 후 6년이라는 기간 동안 기관지가 없던 총회는 1965년 1월 타블로이드 배판 2면으로 된 기독신문을 발행했다. 기독신문은 1965년 10월 25일 제33호부터 4면을 발행했고 다음해인 1966년 “기독신보”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 후 기독신보는 시설 미비로 326호를 발행하고 폐지되었는데 그때가 1972년 5월이었다. 그러나 5개월 뒤 1972년 10월 7일 타블로이드 4면으로 복간됐다. 1987년 2월 기독신보는 1000호를 발행하였고 2015년 3월 4일 2000호를 발행했다. 1997년 1월 1일 한명수 주필(12년 재임)과 박 에스더 편집국장(17년 재임) 체제에서 20면으로 증면 된 기독신보는 그 해 4월 2일에 제1152호 통권 1472호부터 기독신문(기독신문 제호 1년 사용 뒤 30여년 기독신보 제호 사용)으로 개명하여 창간 제호로 환원한다. 이때부터 전 지면을 가로쓰기로 하면서 24면으로 증편됐다. 그런데 2016년 10월 기독신문 제호가 1997년 4월 2일 제1152호(통권 1472호)부터 창간 제호 기독신문으로 환원했다던 제호가 실제는 ‘주간 기독신문’이었고 2016년 총회 직원 실수로 폐간되었다가 곧 ‘주간 기독신문’으로 서울시에 등록되는 해프닝 발생. 이종찬 목사는 박윤성 채기은 김남식 한명수 변순재 김영우 등의 역대 52년 주필 중 글이나 성격이나 태도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총회제일주필(總會第一主筆)이다. 아마 향후에도... 20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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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02
  • 총회 피스메이커 김재호
    함마슐트는 당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위해 일한 화평케 하는 자 김재호 목사 첫째 소통과 대화둘째 신뢰와 사랑 셋째 정직과 투명계속 지키고 주장 GMS숙원 해결 총회 분쟁과 어려움이 있는 곳 하나님의 피스메이커 사명 감당 소망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화평케 하는 자는 평화를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쟁과 야만성과 무력 충돌 등은 어느 세기나 인류의 해묵은 관습이었다. 그러나 명백히 추악하고 잔인하고 지긋지긋한 전쟁의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종교적인 면에서 한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그래서 뉴욕시 유엔 광장 벽에 성경 말씀을 끌로 새겨놓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이사야 2:4 현세의 평화는 기독교 성경의 가능한 선포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이 평화를 사랑하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이 평화에 이르는 길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평화의 왕의 말씀으로 나라들이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게 될 그 날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누가 사도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 탄생을 기록하면서 천사들의 합창을 통해 지상의 평화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고 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3-14 마태복음 5:9에서 사용된 ‘화평’(peace)은 히브리어 샬롬을 번역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샬롬은 완전함(completeness) 온전함(wholeness)을 의미한다. 그러나 샬롬은 완전한 세상을 만드는 인간의 능력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샬롬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샬롬메이커(shalom-maker)의 모본이시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은 이 모본을 따르려고 노력하며 모든 정치와 개인의 관계들 속에서 평화의 기치를 높이 치켜드는 샬롬 군단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엔 2대 사무총장 스웨덴의 다그 함마슐트(Dag Hammarskjold, 1953.4∼1961.9)는 몸을 사리지 않고 분쟁지역들을 돌며 적극적인 중재를 시도하고 유엔 사무총장의 권위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1961년 9월 20일 가을 회기 첫째 날 유엔 총회는 마라톤 회의를 열고 있었다. 사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엔 사무총장 함마슐트가 이틀 전 9월 18일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가다 비행기가 추락해 숨졌기 때문이다. 유엔 회의장에서 각국의 유엔 대사들은 이 스웨덴 외교가를 칭송하기 위해 차례로 일어섰다. 특별히 신민 통치에서 갓 벗어나고 가난한 나라들 대표의 찬사는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의” 권리에 대한 함마슐트의 옹호와 관심을 기억했다. 미국 대표 스티브슨(Adlai Stevenson)은 그 말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의 당대 누구도 무력이 아니라 평화로운 수단으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탐구와 노력을 함마슐트보다 더 많이 증진시킨 사람은 없다.” 사실 함마슐트는 당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위해 일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였다. 이 세계의 대표적인 외교가가 결코 세상의 명예나 칭송을 바라지 않고 평화와 정의를 위해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 사실은 그의 사후 2년 뒤인 1963년 뉴욕의 그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일기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일기장은 ‘표적들’(Markings)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으로 출간됐다. 이 자서전이 함마슐트의 공적인 봉사가 ‘하나님의 소명 즉 하나님에게 바친 그의 헌신’이었음을 밝혀주었다. 그는 죽기 4개월 전 일기에 화평케 하는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썼다. “나는 누가 또는 무엇이 그 문제를 제기했는지 모른다. 나는 언제 그것이 제기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 대답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한 순간 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예(yes)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그 체험이 의미 있기에 나 자신을 포기한 나의 인생은 목표가 생겼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1952년 그는 일기에 썼다. “너의 고독을 위해 살 수 있는 어떤 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위대한 것을 발견할 수 있게 열심히 기도하자.” 그의 기도는 응답됐다. 1953년 함마슐트는 유엔 사무총장 제안을 받았다. 그는 허약한 인간의 창안물 유엔을 위한 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기에 “인류 최대의 창조물이고 인류의 꿈인 유엔을 위해 일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공의롭고 평화로운 세계의 꿈을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 제의를 수락하고 일기에 썼다. “그 길이 너를 선택했다... 그러니 너는 감사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선한 일은 하나님의 자신의 사역이며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라는 함마슐트 자신의 신앙고백이었다. 사무총장으로서 그는 모든 사자들이 양들과 함께 누워 지낼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없었고 설득하지 못했다. 그는 국제 외교의 밀고 당기는 것이나 주거나 받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신임 사무총장으로서 기적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개별적인 사무실 방문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높였고 솔선수범해서 남들이 꺼리는 아주 어려운 일들을 맡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한 태도는 직원들을 감화시켰다. 그는 국제적인 분쟁들에서 실패들도 경험했고 부분적인 성공들도 거두었다. 그는 한국동란에서 포로로 잡힌 미국 공군 12명의 석방 협상을 중공과 직접 했다. 그 결과 1954년 중공과 최초의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1957년 수에즈 운하를 영국과 프랑스에서 빼앗은 이집트와의 분쟁을 캐나다의 피어슨(Lester Pearson)과 해결했다. 그는 그 다음 해 1958년 요르단과 레바논 간의 긴장을 진정시키고 이스라엘과 아랍 세력과의 전쟁을 막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때 함마슐트는 일기에 썼다. “내 자신의 노력들은 그것을 이루지 못했지만 오직 하나님만은...” 1961년 9월 18일 그가 탑승한 비행기가 원인불명의 추락을 했을 때 그는 콩고(현재의 자이레)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면서 개인적인 외교 사명을 수행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때 그가 가져간 유일한 책은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고 한다. 그는 사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함마슐트 같이 가는 곳마다 화평케 하는 피스메이커가 우리 총회에도 있다. 그는 현재 GMS사회복지재단 이사장 김재호 목사(동산교회)이다. 그는 2000년 처음 GMS에 들어와 여성분과위원회 서기를 시작으로 4개 위원회와 회계 부이사장 등을 거쳐 14년간 섬기다가 2014년 9월 30일 이사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뒤늦게 신학을 시작하고 총신 시절 고 천정웅 교수님을 만나 선교에 대한 눈을 처음 떴다. 80년대 선교사 500명 파송 당시 선교목회에 대한 비전을 꿈꿨고 2000년대 1만 명을 돌파하는 선교폭발을 눈으로 경험하며 목회의 마지막을 선교로 불태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1년에 1억 가까이를 선교헌금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GMS 이사장이 된 것은 그 선교에 대한 꿈을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난리도 아닌 2015년 6월 4일 오후 1시 화성시 월문리에 자리한 당시 GMS 이사장 김재호 목사(동산교회)가 선교센터에서 열린 북한선교전략회의에서 환영사를 전했다. “그 동안 17년에 걸쳐 GMS가 발전해 오는 가운데 금년 1월 27일 이 예배당의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30년 넘은 아주 낡은 예배당이었습니다. 여기서 선교사 훈련생들이 훈련을 받고 파송을 받는 귀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낡아 어려운 가운데 8억의 예산을 들여 이 선교센터를 완공했습니다. 4억 정도 모금이 되고 현재 4억이 부채로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5월 7일 제5회 선교사 부모 초청 위로회를 가진 뒤 두 번째 행사 북한선교전략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4년 9월 30일부터 2016년 9월 1일까지 지난 2년 동안 제9대 이사장으로서 화평케 하는 피스메이커 역할을 감당한 김재호 목사(동산교회)는 총회와 GMS 실세들의 묵인과 방조아래 하귀호 등이 저지른 GMS의 해묵은 난제 중의 난제였던 GMS미주선교센터 매각을 김재호 목사는 끈기 있게 추진해 임기 말에 해결했다. 더불어 그는 불의한 세력과 무능한 세력이 결탁해 해임한 강대흥 선교사도 복직시키고 GMS본부 월문리 이전 GMS 새예배당 건축 GMS선교전략연구소 설립 선교사 계속교육 공명선거 실시 등 역대 어느 이사장도 해결 못한 일들을 처리했다. 그 동안 그는 3가지를 계속 주장했다. 첫째는 소통과 대화. 둘째 신뢰와 사랑. 셋째 정직과 투명. 그는 임기 내내 이것을 지키고 열매를 맺었다. 2006년 선교사 퇴직기금 29억원으로 구입한 선릉힐은 52억원에 매각했는데 이로 인해 세금이 적게는 6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본부는 세무사와 함께 백방으로 노력했고 그 결과 양도차액에 대한 부분에만 세금을 내고 법인세 과세는 면제되는 것으로 지난 연말에 최종 통보를 받았다. 약 4억 6200만원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GMS는 하귀호가 주동이 돼 2011년 미주선교센터 구입으로 큰 홍역을 치른 이후 혼란은 사라졌지만 해결 못한 숙제가 몇 가지 있었다. 가장 큰 숙제는 관리비 명목으로 돈 잡아먹는데다 몇 사람의 별장 역할과 명목상 주재 선교사의 유급 거주지가 된 미주선교센터 매각 문제가 골치였다. 그래서 GMS는 센터 매입 이듬해인 2012년 매각을 결의했지만 그동안 매각을 시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6년 6월 10일 이번 회기 마침내 매각을 진행했다. 김재호 이사장을 중심으로 GMS 임원들이 여러 가지 정치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매각을 진행한 것이 주효했다. 매각 가격은 94만 4000달러로 매입 당시 금액보다 11만 달러가량 많았다. 그러나 그간 들어간 제반비용을 고려하면 손익은 별로 발생하지 않았다. 난제 중 난제 강대흥 선교사 복직도 해결했다. 무더운 2016년 9월 1일 화성 GMS선교센터의 제16차 정기총회 전에 총회 서기 이승희 목사 사회로 가진 예배에서 박무용 총회장이 목이 좀 잠긴 걸걸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감격”에 대한 설교를 했다. 이어서 이사장 김재호 목사가 환영사를 전했다. “먼저 오늘 제16차 정기총회를 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정기총회가 나보다 더 훌륭한 이사장을 뽑아 잘 됐으니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선교사가 바로 내게 방금 기도를 했다고 답장을 했습니다. 내가 감사를 표했습니다. 정말 가슴이 벅찹니다. 우리 GMS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마치면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선교기관이 될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GMS가 기도로 계속 발전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GMS사회복지재단에 출연했던 산 80번지 부지도 다시 돌려받기로 했다. 직전 GMS이사장이었던 김재호 목사는 당연직 GMS사회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회의를 열고 산 80번지 부지를 GMS로 환원시키기로 결정했다. 김재호 목사는 하귀호 같은 무리들이 총회 내 무자격 제비뽑기 임원들을 끼고 15년여 저지르고 어지럽힌 일들을 말끔히 해결했다. 이후 김재호 목사가 총회 내 분쟁과 어려움이 있는 곳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화평케 하는 자 피스메이커 사명도 감당하기를 소망한다. 2017-04-28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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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30
  • LA Preacher 고귀남 목사
    배재철 목사한테 아쉬운 것은 환경이 10배는 더 좋아졌는데천 명이 넘는 교회를 이삼백 명 모이는 교회로 만들어 미국에서 사업가로 편히 살기보다어려운 교회목회와 완전 장학 제도신학교 운영의 꿈을 꾸고 있다그래서 그는 LA Dreamer 고귀남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 수록곡 ‘별들의 도시’(City of Stars)는 이렇게 시작한다. “별들의 도시여, 넌 나만을 위해 반짝이는가... 난 느꼈어. 당신과 나눈 첫 포옹에서 우리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질 거란 예감을.” 이 별들의 도시는 천사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미국 LA를 지칭한다. 이 영화의 감독 차젤레는 “꿈과 열망의 힘으로 살아가고 이 때문에 함께하기도 또 헤어지기도 하는 드리머(dreamers)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굵직한 영화 제작사가 몰린 이 도시는 수많은 감독·배우·음악가 지망생으로 언제나 북적인다. 차젤레 감독이 바라본 LA는 “예술과 창작을 향한 열정과 꿈이 부서지고 태어나길 반복하는” 곳이다. 이 LA에 그들 말고도 요셉같은 드리머 목사(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창세기 37:18-19)도 있다. 2017년 2월 2일 미국시간으로 수요일 오후 6시 30분 11년째 살고 있는 LA의 언약교회에서 내가 설교를 한 수요예배 후 사무실에서 고귀남 목사를 만났다. -기독신문에 인터뷰하신 적도 있으셨다면서요. “인터뷰라기보다는 이길환 기자의 이민 목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죠. 그때는 미국에 9년째 살고 있을 때였죠. 그래서 이민 목회의 상황을 아는 대로 말을 한 기억이 나네요. ‘한국에서 온 이민 목회자들에게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수한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원천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세계교회가 인정하는 하나님 중심의 순수 신앙이 한국교회에는 남아있으니 복음적인 한국교회의 전통을 이제는 신앙이 무너져 가는 선진국에 다시 심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뭐 간단한 말이었죠.” -고향은 어디세요. “충청남도 부여입니다. 부여의 어린 시절 빨간 우체통 널찍한 평상 처마 밑 외등 녹슨 자전거와 리어카 그리고 이 모든 풍경을 든든히 지키고 선 나무가 그림처럼 생각나요. 소박해서 더 애틋했던 시절 저희 집안은 딸만 여섯이고 제가 일곱째입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고 목사가 문을 여니 사모님이 쟁반에 받친 둥글레 차를 내왔다. -저는 한국에서 ‘더굳뉴스’라는 신문사를 합니다. “아 그러세요.” -LA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님 통해 소개를 받았습니다. 참 훌륭하신 목사님이시죠. “한국에 계시는 목사님들이 박헌성 목사님을 좀 가까이 지내라 말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저는 사실 미국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제가 박헌성 목사님한테 마음을 주고 가깝게 지낸 게 4년 됐습니다.” -중고등학교는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부여 임천면이 있어요. 부여에서 19킬로 더 시골로 들어가면 임천중학교도 있고 임천고등학교도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부여고등학교도 못 갔습니다. 임천중학교를 나와 공부는 좀 해서 유한공고를 합격했습니다. 사실 거기는 기숙사비만 있으면 되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님이 기숙사비도 걱정이 되시니까 포기하라고 하셨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생 가야할 시기에 돈이 없으니까 직장생활을 하려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당시 목동이라는 데에 크라운제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들어간 날 일하면서 베벨기어(회전력을 평행하지 않은 축 방향으로 전달하는 삿갓 모양의 기어)에 손가락 넷이 잘렸습니다. 그 기어는 좌회전을 우회전으로 바꾸는 것인데 과자가 익혀 나오면 아주 뜨겁습니다. 과자가 베벨기어 때문에 자동적으로 우회전 해 가는데 기어에 과자 부스러기가 있어 그걸 청소하려다 사고가 났습니다. 장갑을 끼고 해야 하는데 입사 첫날이라 없으니까 옆의 여직원이 자기 것을 빌려주었습니다. 장갑 낀 손이 기어에 물리면 장갑에서 손만 빼면 되는데 순간적으로 그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장갑을 틀어 뽑으려는 사이에 집게손가락이 베벨기어에 물리고 만 것입니다. 이 왼손 여기가 가루가 돼버린 겁니다. 열다섯 살에 그랬죠.” -그 뒤 어떻게 됐습니까. “그래가지고 경희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모태신앙이긴 했지만 그때 주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제 눈으로 예수님을 보는 체험도 했습니다. 은혜 때문에 뒹굴기도 했습니다. 수술도 여러 번 다시 했죠. 두 손가락이 살아났는데 이 새끼손가락이 주님을 본 증거입니다. 목사가 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누님들이 풀빵을 구워 팔며 나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임천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주 시골입니다. 거의 학비가 없는 시골 학교였습니다. 그 뒤 라보도 신학교를 잠시 거쳐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님을 소개로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입학원서를 쓰고 반고소 고려파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가 청와대 근처에 있다가 동도교회 교육관도 사용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굉장히 큰 신학교가 됐죠. 지금은 반고소 고려파 신학교는 성경찬송만 가지고 가면 공부를 그냥 시켜주죠. 사실 그게 제 꿈입니다.” -그게 몇 년도입니까. “그게 79년도부터 4년을 거기 다녔습니다. 그 신학교가 삼각산에 있을 때 입학하고 동도교회에 있을 때도 다녔고 청량리로 옮겼을 때까지 다녔습니다. 그 뒤 학교를 지었죠. 그때는 석원태 목사님이 큰 교회를 짓기 전이었습니다. 제가 당시 4년 동안 학생회 회장을 했습니다. 제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석원태 목사님이 직접 임명을 하셨기 때문에 투표도 없어서 가능했습니다. 제가 신학부는 사당동 극장에 있던 비주류 신학교에 들어가 3년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최의원 교수가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최의원 교수님이 제가 2학년 때 총장님으로 오셨죠. 제가 군대를 안 가서 1984년도였을 겁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3년 내지 4년 빠릅니다. 제가 꿈꾸는 학교는 반고소 고려파 유형의 학교입니다. 성경 찬송가만 가져오면 7년 무료로 할 수 있는 신학교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학비 내는 것은 제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언제 안수 받으셨습니까. “저는 84년 4월 16일 받았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비주류 박요한 목사 측에서죠. 마포중앙교회에서 받았죠.” -하귀호가 있는 동인천노회로는 언제 들어왔습니까. “그 뒤 7년 지나서였을 겁니다. 90년도로 기억됩니다. 하귀호 목사가 큰일을 하려면 합동 측으로 와야 된다고 권해서 그렇게 된 거죠. 우리 교회가 인천에서 크고 제가 사업을 하니까 인천 지역에서는 대우를 받았죠. 목사님들과 어울리지 않고 일반 사업가들과 많이 어울렸죠. 구청장 국회의원 사업가들하고...” -그러면 개척하신 교회가... “언약교회죠. 인천시 남구 용현 5동에 있었습니다. 그 땅은 제 손가락 잘린 보상금과 제 아내 결혼 자금을 합쳐 교회 부지를 샀습니다. 교인 한 명도 없을 때죠. 제가 신비적인 성향이 있어 합동 측과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한얼산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하는데 이 땅의 환상을 보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 땅을 사게 되었는데 당시는 낙섬이라는 섬이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의 산이었죠. 낙섬이라는 조그만 언덕이었죠. 지금은 매립이 되어 다 없어졌죠. 바다가 육지가 되었으니까요. 용유도와 영종도 사이에 있던 바다는 메워져서 거대한 공항이 생겼으니 그 사이의 낙섬과 소원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 당연하죠. 그 낙섬을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 주셔서 거길 가게 되고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개척한 지 한 5년 되니까 그 주변이 거의 다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한 주에 새신자 최고 기록이 50명 등록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금호아파트 영락아파트 부성아파트 하여튼 아파트가 새까맣게 들어왔습니다. 그게 지금 개발하는 송도 입구입니다. 경인고속도로 끝나는 지점 그리고 제2고속도로 출발하는 곳이었습니다. 너무너무 요지죠. 사실 내가 배재철 목사한테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은 제가 있을 때보다 환경이 10배는 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천 명이 넘는 교회를 이삼백 명으로 줄여놓고 그랬으니 솔직히 아쉽고 어떨 때는 가슴도 아프죠.” -그게 몇 년 된 겁니까. 교회 이름도 언약교회에서 새소망교회로 바꾸고 노회도 동인천노회에서 용천노회로 옮겼던데요. “정확히 기억났는데 2003년도였습니다.” -그러면 2001년도 쯤 떠났습니까. “아닙니다. 2003년도였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떠난 것도 그 해였습니다. 한 달 사이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5억을 받고 공동의회를 한 뒤 진짜 하루도 틀리지 않은 한 달입니다. 공동의회 1차 2차 서류를 저희 집에 다 가지고 있습니다. 딱 한 달 만에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교회를 살리기 위해 할 수없이 제가 포기한 거죠.” -결혼은 언제 하셨습니까. “저를 키우신 목사님이 곧 개척시대가 지나갈 터이니 빨리 개척하라고 해서 신학교 1학년 때 제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79년 3월 25일이었습니다. 그때 설립예배 설교자로 석원태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양가 허락을 받고 지금 제 아내를 만나고 있을 때인데 그 날 석원태 목사님이 양쪽 집안에 얘기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한국 기독교 교회 설립 200년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교회를 개척한 인물로 고귀남 전도사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결혼을 안 하면 목회 연수(年數)에 안 들어가니 결혼을 시켜야 한다고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때 제 나이 24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양가 집안 앞에서 석원태 목사님이 약혼 주례를 해주셨습니다.” -교회 성장은 얼마나 걸렸습니까. “개척 5년 뒤인 83년에 꽉 차기 시작해서 일천 번제를 마친 4년 동안 성장이 계속된 것 같습니다. 제가 3년 동안 외박하지 않고 교회 강단에서만 일천 일을 보냈습니다.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학교가는 것만 제외하고 교회 강대상에서만 지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막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국에 온 지 11년 만인 작년 2016년 11월 미국 영주권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2백만 불 상당의 건물을 소유한 언약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그는 살기 좋은 미국에서 아무런 꿈도 없이 편히 살기 보다는 어려운 이민교회 교인을 성장시키고 전액 장학생(full scholarship)의 신학교를 운영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 LA preacher 고귀남 목사이다. 2017-04-26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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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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