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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희와 김태현의 성막과 건축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물건은 사용되는(be used) 것이고, 사람은 사랑받는(be loved) 존재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선 사람이 사용되고, 물건이 사랑을 받는다. 그 반대가 성막과 건축의 디자이너 tBD(The Basic Design) 대표 서정희와 총괄대표 김태현 건축가의 관계다. 건축가(Architect)의 영어 어원은 '계획과 과제를 도안하고 지도하는 사람'(a person who designs and guides a plan, project, etc.)이다. 실제로 고대 건축가들은 '건축'일만 하지 않았다. 이런 전통은 현대까지도 이어지며 지폐에 자국의 건축가를 새긴 나라도 많다. 사실상 고대에는 거의 모든 왕이 통치자이자 동시에 건축가였다. 자신의 업적과 신에 대한 찬양, 자신의 예술 감각을 나타내기 위한 용도로 건축을 이용하였다. 물론 이런 왕들 중에 대중을 위한 건축을 한 왕들도 있다. 성막은 길이가 약 45.6m(100규빗), 폭이 약 22.8m(50규빗)인 뜰 가운데 세워졌고 뜰 사면은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이 휘장은 청동으로 만든 기둥 60개로 지탱되었다(출 27:9-19). 뜰(마당) 안에는 번제를 위한 큰 제단이 있었고(출 27:1-8), 제사장들이 제사를 위하여 자기 몸과 제물을 씻는 청동 물두멍이 있었다(출 30:17-21). 뜰의 서쪽 끝에 세워진 성막의 성소는 목재 구조로 길이 약 14m(너비 1규빗 반의 판자 20개) 너비 약 4m(1규빗 반 되는 판자 6개를 나란히 놓은 폭)였으며, 두꺼운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였다(출 26:15-30). 성소 지붕은 제일 안쪽(덮개)에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 모양의 자수를 놓은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출 26:1-6), 그 바로 위에는 보온을 위해 염소 털 휘장이(출 26:7-13), 또 그 위에는 붉은 물 들인 숫양 가죽이(출 26:14), 그리고 제일 바깥에는 방수를 위해 해달의 가죽(출 26:14)이 덮인 4중 지붕 구조를 하고 있었다. 또 성소 내부에는 휘장 오른편에 진설 병상, 휘장 왼편에 금 등대, 그리고 휘장 바로 앞 가운데 분향 단이 놓여 있었다(출 25장). 또 휘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는데 거기에는 오직 언약궤만 있었다. 성소에는 제사장이 매일, 그리고 안식일마다 제사를 드릴 때 들어갔지만(출 27:21; 30:7; 24:3,8)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갔다 (레 16:1-34, 히 9:7). 이것은 성소와 지성소의 거룩함의 차이 때문이었다. 즉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봉사하는 예물과 기구가 놓여 있었으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언약궤(법궤, 증거궤)가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두 장소는 단지 휘장 하나로만 가려져 있을 뿐인데 이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예표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이 휘장은 둘로 찢겨 졌다.(마 27:51, 막 15:38) 따라서 이제는 제사장과 일반인 사이의 구별이 없어지고 누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졌다(히 10:19-22). 이 사건은 성도들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제까지 제한되었던 하나님의 존전(尊前)에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2023년 11월 21일 11:00 아차산로 345 tBD 사무실. tBD(the Basic Design) 대표 서정희 총괄대표, 김태현(콜롬비아 건축대학원 졸업) 기독언론인협회(회장 황규학) 회원 고정양, 김영배, 김효정, 소재열 간의 신앙과 교회 건축에 대한 대담이 이루어졌다. 김영배: 서정희 씨는 전공을 안 하셨는데 건축에 대해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요. 황규학: (총괄대표 김태현) 옆에 따라 다니다 보니까. (일동 웃음) 서정희: (손사래를 치며) No, No. 정보를 잘 아시고 말하세요. 김효정: 허위 보도. 허위 보도. (일동 웃음) 서정희: 저는 젊었을 때부터 집에 관심이 많아서 집안에서 많은 일들을 했잖아요. 김태현: 공간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서정희: 그렇죠. 공간 디자인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저는 그 기초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믿고 있습니다. 김영배: 그 기초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죠? 서정희: (1962년생) 1981년 19살 때 주님을 믿고 지금까지 저는 예화를 들 때 누구한테 얘기를 하면 브살렐과 오홀리압(출 31:2-6)을 꼭 예로 들어요.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와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막 건축을 맡기잖아요. 성소(聖所, Sanctuary)는 '거룩한 장소'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백성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처소(處所)'다. 성소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을 보관하는 장소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사함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외소(外所)와 내소(內所)로 분리된 구조였고 최초의 성소는 이동이 가능한 천막 형태였기 때문에 성막이라고 불렸다. 성소를 지을 때 실을 꼬아서 만든 천막으로 지었기 때문에 이를 장막(帳幕)이나 성막(聖幕)이라고 했다. 서정희 씨가 말을 이었다. 서정희: 그 성막을 그에게 맡긴 이유가 딱 하나예요. 많은 사람에게 성막 짓는 이야기를 해봐야 성령의 감동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령 감동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감동 때문에 여러 가지 일 그러니까 여러 가지 재주가 있었다고 출애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실 짜는 일 가구 짓는 일 모든 것들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령께서 임했던 것처럼 저에게도 그들의 영을 부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영이 제게 임해서 남들보다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그 다음에 성막을 보지 않아도 성령의 감동으로 지은 것처럼 우리 건축가 선생님들이 하지 못 하는 것까지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열어주셨고 계시의 영을 부어주셨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창의적인 영도 주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랜 세월 살림하면서 훈련을 했더니 그 열매로 국제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공간디자인을 3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받았습니다. 저도 외부로 다니면서 강사를 했었는데 결국 정교수가 될 정도로 주님이 인도해주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배워서 한 것보다 더 많은 일곱 권의 책을 냈는데 다 집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도 처음 만들었고 무크 형태의 책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었고, 그리고 글을 써도 자서전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다 집 안에서 썼고 묵상도 집 안에서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결국은 우리의 가정 교회가 점점 확대되어 작은 교회가 되는 것처럼 작은 것을 귀히 여기고 그 작은 것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만 담겨진다면 크든 작든 금그릇이든 은그릇이든 질그릇이든 저는 같다고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도했던 것들이 꾸준한 훈련과 그 공교함과 정교함이 결국은 건축팀을 만나서 더 성숙 되고 확대된 것 같아요. 그래서 감히 제가 함께할 수 있는 이런 영광을 누린 거죠. 김태현 대표님이 저를 써주신 거죠. (웃으며) 감사하게 된 거죠. 소재열: 궁금한 게 있는데 저는 항상 실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돈을 벌 수 있습니까? 서정희: 저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우리가 정말 묵직하게... 주님은 간사함을 싫어하시잖아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7, 48) 말씀하시잖아요. 간사하지 않고 성실하고 정말 주님의 눈을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 실익이 생기지 않을까요. 황규학: 신앙적으로 굉장히 훌륭하네요. 서정희: 내가 이 건으로 당장 이익이 없어도 그러나 결국에는... 소재열: 믿음이 좋은 분들하고 대화하면 제가 힘들어하거든요. 그러나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지되기 위해서는 뭔가 이익이 창출되어야 하거든요. 서정희: 그렇지 않으면 엄청 고달프죠. 김태현: 건축 디자인 회사가 베이직(기본)을 잘 고수하면 큰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벌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저희는 이 건축 디자인 공동체를 만들었을 때 돈을 버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기본에 충실하고 인내하면서 디자인을 해나가면서 우리(회사) 식구들이 먹고 살면 돼요. 황규학: 철학이 분명하네. 서정희: 그러면 우리는 하늘나라의 상급이 많고 하나님이 보고를 열으시면... 김태현: 이걸 사업으로 일으키고 하는 문제보다 저희는 신앙으로 멀리 보고... 소재열: 그렇게 말씀하셔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죠. 서정희: 주님이 보고를 열으셔야지, 사람을 통해 사람을 설득시키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황규학: 소 박사가 보고 배워야 돼요. 소재열: 그러니까 나머지는 하나님 주신다니까. 그러나 그걸 무시할 수는 없어요. 김태현: 부끄러운 과거지만 소위 명예와 돈 이런 걸 건축 디자인의 하나님 주시는 달란트로 여기고 그것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던 세월이 많이 있었어요. 선배님들 앞에서 죄송한 말씀인데 제가 부끄러운 과거를 지나고요. 느낀 것이 많이 있어요. 서정희: (웃으며) 깨졌다는 얘기에요. 김태현: 그걸 쫓아 올라가다가 상당히 어느 정도까지 접근을 했어요. 그런데 한순간에 무너지더라고요. 한순간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이유로 그렇게 됐어요. 해외 일을 많이 했었어요. 제가 주로 일했던 나라들이 러시아 연방 우즈베키스탄, 카지스탄 전쟁 나기 전 우크라이나, 몽골, 이런 러시아 언어를 쓰는 나라들, 러사아를 큰형님으로 여기는 나라들, 중앙아시아를 포함해서 최근까지도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통령 관련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새로운 정부 출범과 동시에 건설부에 자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일들을 해나가면서 그때 당시 명예와 돈을 하나님 주신 달란트를 이용해서 추구를 했어요. 그렇게 여러 일을 추진하다 자금력이 모자라 중단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중국과 터키 정부가 들어오게 됐어요. 그 두 정부가 들어오면 프로젝트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자기들 자원과 인력이 전부 들어와요. 그렇게 되니까 제가 했던 일이 중국과 터키 기업들이 들어와서 다 넘어가게 되죠. 그런 과정에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저랑 멀어지게 되죠. 그렇게 되면서 2, 3년 어렵게 되죠. 싱가폴에 본사가 있고 거의 100명 정도 직원이 있었는데 다 손을 놓게 됩니다. 그런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일의 공간을 만들어 주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tBD를 기점으로 작지만 성실하게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황규학: 건축과 다른 문제인데 두 사람이 언제부터 알게 되었습니까? 서정희: 이 문제는 30년 전으로 돌아가야 돼요. 우리 친정하고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았어요. 그런 거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소재열: 교회를 상대로 일을 하시면 아까 말한 것처럼 돈이 개입되잖아요. 시험 많이 듭니다. 감당하셔야 될 겁니다. 서정희: 그런데 우리는 지금 꼭 교회만 하는 건 아니예요. 교회는 저도 개인적으로 겪어봤는데 경력이 40년이니 안 겪어봤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저희에게 주신 것들이 다른 거예요. 저는 어제도 묵상하면서 '주님 저를 영화롭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제게 주신 것들 다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알았고 그것들을 통해서 제가 흘려보내야 될 것들도 주님이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전파되는 것으로 저를 다시 영화롭게 해주소서. 저는 그렇게 기도를 해요. 그러니까 모든 기준을 세상으로 삼으면 저는 시험 들어서 하루도 못 살아요. 그러나 주님과 저와의 교제 가운데서만 머물면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사단이 밀 까부르듯 우리를 까부를 것입니다(눅 22:31-32). 그러나 내가 믿음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전신갑주를 입고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이길 수 없다면 들어서지도 말았어야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무장하고 나가듯 영적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는 겁니다. tBD를 세우셨을 때는 주님께서 믿고 맡기실 일들이 있을 거고, 보내주시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맡겨주시는 기업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저를 유방암에서 다시 살리셨다면 주님이 저에게 주시는 일이 있다는 것으로 믿습니다. 또 주님 앞에 갈 때는 어떤 말들을 해야 될까, 생각한다면 제가 부끄럽지 않도록 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그런 마음과 각오로 지금 살고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고 행하시고 성취하신다는 겁니다. 누가 물 주고 자라게 합니까. 여호와께서 자라게 하시는 거잖아요. 내가 감히 어떻게 합니까. 주님 그렇지 않습니까.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Tadao Ando, 1941년 9월 13일~ )는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이다. 안도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는데, 건축가가 되기 전에 트럭 운전사와 권투선수로 일했고, 건축에 대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일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1969년에 그는 회사를 설립했고(firm Tadao Ando Architects & Associates), 1995년에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상금 십만 달러를 고베 지진 고아들에게 기부하였다. 그의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그의 건축물 속의 '물'은 얕고 조용하며 잔잔하다. 또한, 건축물과 매우 인접하여 하나로써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편안함과 경건함을 준다. 자연과의 조화와 함께 큰 특징으로 보여지는 것은 건축작품이 기하학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유사한 면을 보이고 있다. 건축교육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오사카 '촌놈' 안도는 건축 여행을 하면서 롱샹과 라투레트를 오랜동안 혼자 공부했다. 스위스 예술고등학교에서 배운 그림이 건축교육의 전부였던 시골뜨기 코르뷔지에는 안도의 롤모델이자 영웅이었다. 안도 다다오의 대표적인 설계작품으로는 1988년에 지은 오사카의 갤러리아 아카와 1989년에 건설된 '빛의 교회'(光の教会, 히카리노쿄카이)가 있는데 그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정식 명칭은 '이바라키 가스가오카(茨木春日丘)'로 1989년 준공되었다. 예배당, 홀, 목사관은 모두 안도 다다오 씨의 설계다. 보통의 경우라면 십자가가 걸려있는 예배당 대신에 정면 벽면에 십자 모양의 틈을 만들어 놓아 그곳으로부터 빛이 들어와 아름다운 십자가가 나타나도록 설계됐다. 예배당 제단 뒤 벽면에 가로와 세로로 만들어진 틈, 외부로부터 빛이 들어와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십자가가 나타난다. 예배당의 바닥과 의자 등은 빛의 십자가가 자아내는 빛을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심플한 구조인 만큼 모든 것이 철저히 계산된 설계, 간소하면서 작은 예배당이면서도 명암의 조절로 차분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공간이다. 끌려서 안으로 들어가 음미하기 시작하면 계속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떠나기가 어려워진다.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모든 걸작들이 그렇듯이... 서정희 씨는 tBD 건축사무소 대표이며 국제대학교 산업디자인 초빙교수, 영동대학교 협력 교수이다. 김태현 씨는 우즈베키스탄 건설부 수석자문이면서 콜럼비아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이다. 서정희 씨는 첫 프로젝트로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 소속된 캠퍼스 복음화와 온 가족을 위한 전략적인 교회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전의 오메가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고 한다. tBD 대표 서정희 씨는 "시골이든지, 작은 교회이든지, 그 공간에 맞게 인테리어나 교회 건축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tBD 총괄대표 김태현 씨는 "하나님 말씀, 십자가로 이루어진 예배당, 자연, 미래에 대한 공간을 만드는 경건성과 실용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윤동주 시인은 ‘바람이 불어’에서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라고 자신의 괴로움을 성찰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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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8
  • 함신익의 전도 심포니
    함신익(咸信益, 1957년 10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관현악단 지휘자이다. 현재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이며 그 외 국내에서는 대전시립교향악단과 KBS 교향악단에서 지휘봉을 잡았었다. 그는 1995년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됐다. 2010년 10월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상임 지휘자 함신익과 KBS 교향악단의 연주는 New York Times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연주”라는 평론을 받았다. 영국의 The Financial Times는 함신익과 대전시향의 카네기홀 연주를 "확실한 자부심과 확실한 헌신, 열정과 뛰어난 정교함이 어울린 음악"으로 평가하였다. 예일대 명물 교수 함토벤으로도 불리는 세계적 지휘자 함신익은 합동 교단의 중진 함성익 목사의 친동생이다. 심포니 송(Symphony S.O.N.G;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 오케스트라는 2014년 8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창단연주회를 개최하였다. 그 오케스트라가 2023년 10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 인근 창성교회(담임 함성익 목사)에서 연주를 했다. 함성익 목사가 성경 누가복음 15:11-24 제목 '돌아온 둘째 아들' 설교하고 축도했다. 이어진 창성교회 행사는 삼양교회 설립자 성자의 풍모를 지닌 함영진 목사의 둘째 아들로 세계적 지휘자가 된 함신익의 '심포니 송' 연주가 이어졌다. 그와 함께 피날레로 '새 생명 축제 VIP 초청 주일'을 위해 창성찬양대도 피터슨의 '아름답다 저 동산'을 함신익 지휘로 찬양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의 모델로도 알려진 바가 있는 마에스트로 함신익은 그의 친형 함성익 목사가 젊은 찬양대 지휘자 시절 제일 좋아하는 '아름답다 저 동산'으로 각종 경연대회에 참여해 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함신익은 예일대 지휘과 교수로 20년 넘게 교육현장에서 우수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배출시켰고 그의 지휘 문하생들은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오케스트라를 구축하기 위해 함신익은 현대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한국오케스트라에 기품 있는 새로운 음악을 전달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상하이 심포니와의 현대음악제 개막연주를 지휘하고 있으며 우루과이 국립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받아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은 보편적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함토벤이라는 평을 받는 함신익이 연주 홀이 아닌 교회 '새 생명 축제 VIP 초청 주일' 연주회에서 지휘하는 전도 심포니 음악을 듣고 지휘 몸짓을 보니 감흥이 달랐다. 그는 선율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지휘자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선율을 발전시켜 나가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능력을 발휘한 지휘자 같았다. 성경은 말씀한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 15:20-24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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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이승만은 누구인가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열차에 탔다. 첫 번째 정차 역은 전 총신재단이사장 김기철 목사가 목회하는 정읍.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남한만이라도 선거해서 정부 세우자’고 연설한 정읍동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 훌륭한 역사적 용단이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또래의 목사일지라도 우파와 좌파가 만난다면 그것에 대해 이런 말이 오갈 수 있을 것 같다. “6·25 터지니깐 국민들 보고 안심하라 방송해놓고 다리 끊고 도망쳤는데 뭘 잘해?” “전쟁 나면 당연히 ‘우리 군이 잘할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방송하지 ‘큰일 났으니 도망가세요’라고 방송하냐? 갑자기 밀고 내려오니깐 반복해서 틀어주던 라디오도 못 끄고 화급히 후퇴한 거지. 한강 철교도 이승만이 끊으라고 한 게 아니고 군에서 안 되겠다 싶어 끊은 거야.” “이승만은 반민특위(제헌국회에서 1948년 9월 7일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를 해산시킨 친일파잖아.” “그때는 국민 80%가 글도 못 읽고, 제주 4·3 여순 사건 터져서 혼란스러운데 정치인들끼리 테러하고 조폭이 주름잡던 시대였어.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랑 일 좀 같이 했다고 관료들 다 내쳐버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 이승만은 일본이 반대해도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 주장하면서 대한해협에서 고기 잡던 일본 어선들 막 잡아들였어. 이래도 이승만이 친일파냐? 네 말대로면 이승만보다 친일파 훨씬 많이 기용한 김일성도 친일파겠다.” “미국 꼭두각시 노릇 하느라 민족이 분열되고 전쟁까지 했는데?” “남한에서 선거도 하기 전에 김일성은 이미 소련 지원 받아서 군대 만들고 정부 만든 상태였어. 이런 상황에서 김구랑 김규식이 김일성을 만나봐야 협상이 되겠냐? 난 전 세계 절반이 공산화되는 이 거대한 물줄기를 조그만 반도 끄트머리에서 온몸을 바쳐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게 민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봐. 그 과정에서 이승만은 미국에 전혀 순종적이지 않았어. 오히려 빨리 휴전하고 싶은 미국이 이승만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정권 세우려 했을 정도지. 굴하지 않고 직선제 개헌해서 2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불리하게 진행되는 휴전 협상을 뒤집으려 반공 포로를 석방해버리는 벼랑 끝 전술을 썼어. 그렇게 미국한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 내 대한민국 침범은 곧 최강대국 미국 침범과 같게 되는 시스템을 만든 거라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언제 먹힐지 모르던 나라가 안보 문제를 해결해서 번영의 기반을 마련한 거야. 우크라이나 봐. 미군이 주둔했다면 감히 러시아가 쳐들어오기나 했을까?” “어떻게 부정선거 저지른 독재자를 전광훈처럼 옹호하냐?” “뜬금없이 전광훈은 왜 나오냐. 이승만은 경쟁 후보였던 조병옥 사망으로 당선 확정이었어.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사람들이 장난친 거지. 독재자는 말이야, 국민의 재산을 국유화해놓고 제 맘대로 해. 김일성이 한 무상 몰수, 무상 분배가 바로 그거야. 맘대로 매매·상속도 못 하는데 뭔 분배? 독재 강화 수단이지. 이승만은 유상 몰수, 유상 분배해서 국민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사유재산을 늘려줬어. 국민에게 ‘지켜야 할 나의 것’을 만들어줘서 6·25 때 용감히 싸울 원동력이 된 거야. 그리고, 세상 어느 독재자가 시위 좀 한다고 하야하냐? 소강석이 칭송하는 등소평이 천안문에서 한 것처럼 탱크로 밀어버리지. 이승만은 시위하다 다친 학생이 있는 병원에 가서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학생들이 참으로 장하다’라고 말했어. 게다가 국민이 한 사람이라도 더 똑똑해지길 바라며 부족한 재정에도 초등 의무교육을 시행한 이승만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을까.” “그래도 초대 대통령은 목숨 바쳐 무장 투쟁한 김구였어야 해!” “당신은 왜 잘사는 대한민국에서 문재인처럼 누릴 거 다 누리면서 건국에 몸 바친 이승만은 싫어하고 김구만 좋아하냐? 국제정세를 잘 알고 활용한 이승만 아니었으면 우리는 김씨 왕조 밑에서 노예로 굶주리고 있었을 거야. 이승만이 원자력을 육성했으니깐 이렇게 싼값에 고속열차도 탈 수 있는 거지. 물론 이승만이 잘못한 점도 있었지만 넌 구구단도 못하는 상태에서 바로 미적분 할 수 있냐? 미국도 1965년에 흑인한테 처음 투표권 줬고 스위스는 1971년에 여성한테 처음 투표권 줬어. 식민지를 막 벗어나서 모든 게 취약했던 나라의 첫 지도자가 생존 문제를 해결했으면 잘한 거 아니야.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게 ‘정읍 선언’이야. 이승만이 옳았다고!” “와, 너 고등학생 때는 안 그랬을 것 아니야. 이해찬과 달리 같은 용고 나온 놈이 어쩌다 극우로 변해버렸냐.” “이승만 존경하면 다 극우냐? 3대 대통령 선거 때 보면 오히려 대구가 좌익 조봉암을 72% 지지하고 전라남도가 이승만을 72% 지지했어. 전라도가 우파의 본산이었다고.” 이승만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승만은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 아버지 흥선 대원군과 달리 무능하고 비굴한 고종의 양위 문제에 연루돼 1899년 1월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근대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1875년 전주이씨 몰락, 양반의 ‘6대 독자’로 출생하여 아버지 종교인 유교와 어머니 종교인 불교에서 영향을 받아 유년기를 보낸 그는 어려서부터 과거시험을 위해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영어를 배워 출세할 목적으로’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미감리회 선교부가 설립한 이 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영어공부에 몰두하였고 선교사와 토착 전도자들이 전하는 기독교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소개한 서구 국가의 정치적 기본 개념인 ‘자유와 평등’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협성회와 독립협회에 관여, 급진적 정치 개혁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그 일로 1899년 수구파에 의해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갇혔다. 어두운 감방 안에서 “사형을 받을 수도 있다.”라는 절망과 두려움 속에 배재학당 시절 들었던 선교사의 설교가 기억나면서 기도를 하였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느끼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선교사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사라지고 오히려 절대자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로 종교적 개종을 하였다. 그런 이승만이 1904년 2월 7일 수감 된 한성감옥에서 러일전쟁 발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그는 12일 뒤인 2월 19일부터 넉 달 동안 비장한 심정으로 '독립정신'(獨立精神, The Spirit of Independence)을 저술했다. 당시 대한제국의 문제점과 주변 열강의 움직임 및 대한제국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저술하였으며 기독교 입국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조선 성리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서구 열강이 기독교에 기초하여 발전된 문명을 이룩한 것을 서술하면서 한반도에 기독교를 이념으로 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중등 이상 사람이나 한문깨나 안다는 사람은 대부분 다 부패하고 타락하여 대한의 장래가 맨 아래 인민들에게 달려 있기에 이승만은 무식하고 천하고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순 한글로 이 책을 집필했다. 집필 중 이승만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읽혔으며 탈고한 1904년에는 그에게 적대적이었던 환경 때문에 대한제국 내에서 출판할 수 없었다. 이후 이승만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10년 2월 10일 로스앤젤레스 대동신서관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제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서문에서 그는 집필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 우리나라에 독립이 있다, 없다 함은 외국이 침범함을 두려워 함도 아니요, 정부에서 보호하지 못함을 염려함도 아니요, 다만 인민의 마음속에 독립 두 글자가 있지 아니함이 참 걱정이라...” 구성은 51장과 후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0장에는 조선이 처한 상황을, 11~25장에는 민주주의와 자유·백성의 권리·의무를, 26장부터는 국제정세를 기록했다. 주요 내용은 외국의 침범이나 정부의 무능보다 더 큰 문제는 백성이 독립심을 갖지 못하는 상태, 곧 인민의 심성에 뿌리내린 노예근성이라는 지적이다. 인민이 독립심을 갖기 위해선 스스로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한 강렬한 믿음 위에서만 백성은 권리를 가진 근대적 자유인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의 주장은 모든 것의 근본을 기독교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청년 이승만은 감옥 속에서 근대 구미 문명의 기초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계몽된 개인(enlightened individual)이 놓여 있음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 모두가 계몽된 개인으로 거듭나지 않고선 제대로 된 근대국가가 세워질 수 없음을 내다보았다. 조선은 한때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0~40%를 넘어섰던 신분제 사회였다. 소수 엘리트를 제외한 기층 민중은 신분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 속에서 정신적 노예근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승만은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서 스스로 자기 의지를 발휘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무식하고 천하고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모두 스스로 하늘이 준 인권을 갖고 태어난 자유인임을 자각해야만 국가의 독립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승만은 몰락한 왕족의 후예로 태어나 유교 경전을 익히며 과거시험을 준비했던 인물이다. 그런 이승만은 감옥 속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간절한 기도 속에서 내면의 절대자 하나님과 직면하고 스스로 독립적 개인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전향의 체험은 단순한 개인사에 머물 수 없다. 이따금 한 사람의 온전한 전향은 역사적 큰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1945년 분단 이래 북한의 지도부는 공산주의 명령경제, 폐쇄적인 고립주의, 반민주적 집단주의, 일인 지배 수령유일주의, 공격적 종족주의를 채택해왔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세상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가난한 전체주의 세습 전제 정권으로 남아 있다. 정반대로 남한의 지도부는 인류적 보편가치를 선양하며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아래 개방적 시장 경제, 수출주도 산업화 전략, 창의적 개인주의, 경쟁적 다원주의, 범인류적 국제 연대를 추구했기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세계 10위권의 경제 부국으로 성장해 있다. 결론적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오늘날 북한을 만든 악마적 이념이었고 이승만의 독립정신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건전한 국가 철학이었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모택동이라는 독재자의 정신적 노예가 되어 좀비 떼처럼 날뛰었다. 마찬가지로 1980-90년대 대한민국에도 김일성의 홍위병을 자처했던 주사파가 있었다. 중국의 홍위병과 한국의 주사파는 과연 왜 그토록 어리석은 개인숭배의 노예가 되고 말았나? 독립정신을 버린 채 좀비 정신에 빠져 스스로 생각하길 멈췄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독립심을 잃은 개인은 자유와 인권을 빼앗긴 채 전체주의 정권의 노예가 되고 만다. 청년 이승만이 7년 감옥살이에서 깨달은 진리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 칭송했던 전직 대통령 문재인이 새로 책방을 열은 모양이다. 그 책방 맨 앞 진열대에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놓아두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책이 있다는 사실이라도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롬 8:31-32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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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27
  • 하나님 외교관 손문수 목사
    19세기 프랑스 외교관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는 외교적 수사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외교관의 '그렇다'라는 말은 '고려해 본다'라는 의미이고 '고려해 보겠다'라고 말하는 건 '안 된다'는 의미다. ‘기도해 보겠습니다’도 그런 의미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안 된다'고 말하는 자는 외교관이 아니다. 그렇듯 목회에 있어서도 손문수 목사의 경우처럼 외교적 수사의 효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손문수 목사의 행동 지침은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저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는 외교관을 닮았다. 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원장 장혜경 박사) 총동문회 회장연임 감사예배 및 정기총회가 2023년 6월 12일 오전 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 대예배실에서 개최되어 손문수 목사(동탄순복음교회)가 취임감사예배를 드리고 정기총회를 가졌다. 이날 감사예배는 이평수 목사(총무, 다산충만한교회)의 사회로 드렸다. 편정자 목사(부회장, 주신은혜교회)의 대표기도 후 주미 목사(서기)가 마 28:18-20 성경을 봉독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손문수 목사(회장, 동탄순복음교회)가 ‘지상명령’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목회자들이 실천해야 할 유일한 목회방법이 지상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가장 중요한 핵심내용을 알아야합니다. 먼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것으로 그 방법은 눅 24:49(능력), 행 1:4-5, 8(성령), 2:1-4 말씀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면 권능이 생겨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역사가 일어나 사람들이 몰려오게 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믿게하고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말씀을 한 말씀도 빼지 않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환영사는 장혜경 박사(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 원장), 박영숙 목사(순복음삼마교회)와 연충복 목사(증경회장, 금촌순복음교회)가 축사하고 주술람미 목사(증경회장)와 윤석원 목사(1기 회장)가 격려사를 하고 손문수 목사(회장, 동탄순복음교회)가 순복음영산목회대학원(원장 장헤경 박사)에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평수 목사(총무, 다산충만한교회)가 광고 후 헌금축복 및 축도로 감사예배를 마쳤다. 정기총회는 손문수 회장의 진행으로 서기 주미 목사가 회원 점검, 부회장 문명자 목사가 대표기도, 서기 주미 목사가 서기보고, 재무 조순옥 목사가 재무보고, 회계 조미자 목사가 회계보고, 감사 정길영 목사가 감사보고, 회장 손문수 목사가 안건처리, 총무 이평수 목사가 광고 후 하나님 외교관 손문수 목사의 폐회선언으로 정기총회를 마쳤다. 예술계 거장들의 운명에서 아주 큰 공통점은 그 예술의 스펙트럼이 평범한 이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고 실체가 단단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작 예술가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겨 조바심을 내며 일평생을 예술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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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25
  • 김종철 목사 총회 임원 추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가 2년여 공들여 조각한 "다윗" 상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작업을 의뢰한 피렌체 시장이 방문해 코가 조금 큰 것 같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 작품은 높이가 5미터에 달하는 데다 좌대 위에 올려질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아래에서 조각을 올려다보게 되면 원근감으로 인해 얼굴이 작게 보일 것을 계산해 일부러 조금 크게 만든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원리를 설명하는 대신 조각대 위에 올라가서 코를 손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는지 한번 봐 달라고 묻자, 시장은 한결 낫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난다. 미켈란젤로는 사실 조각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대리석 가루를 가지고 올라가서 조금씩 뿌리면서 작업하는 척 연기를 했을 뿐이다. 시장과 논쟁을 벌여봐야 그가 한낱 예술가의 말에 자신의 주장을 굽힐 리도 없고 또한 설사 그랬다고 한들 미켈란젤로에게는 아무 득이 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예술가 한 명이 한 도시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가!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년 12월 7일 ~ 1680년 11월 28일)는 오늘날 로마의 모습을 거의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처에 장대한 교회와 회화, 조각과 분수가 있는 로마는 도시 공간 전체가 극적이어서 여행자 자신이 로마라는 거대한 우상숭배의 연극에 동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베르니니의 "다윗"(1624) 상과 120년 전의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1504)을 비교해 보자. 미켈란젤로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움을 하기 직전 팽팽한 긴장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투석기와 돌을 어깨너머로 멘 채 형형한 눈으로 적을 노려보는 모습이다. 미켈란젤로가 이처럼 정적(靜的)인 모습을 표현한 데 비해 베르니니는 몸을 틀어 골리앗을 향해 투석기로 돌을 던지는 역동적 장면을 표현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다윗의 표정은 목숨 걸고 싸우는 전사의 투혼(fighting spirit)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이 작품은 일종의 자화상으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이 멈추어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작가 베르니니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담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베르니니는 바로크 예술의 선두에 서 있었다. 바로크 예술은 이 시대 가톨릭 종교개혁의 강렬한 에너지를 표출한다. 16세기에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인해 유럽의 기독교는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로 양분되었다. 가톨릭으로서는 신교의 충격으로 한 세기 정도 휘청거렸다. 그러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자체의 개혁(예전에는 ‘반동 종교개혁’이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가톨릭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를 주로 쓴다)을 추진하여 교리와 조직을 재정비했다. 그 결과 17세기에 들어서서 자신감을 회복한 가톨릭계의 열망이 바로크 예술로 나타났다. 신교라는 ‘이단’이 패배하고 성상 숭배에 쪄든 가톨릭 신앙이 승리했다고 스스로 선언하고 이를 화려하고도 장엄하게 확인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새로 정비한 로마의 성당들이 그것이 우상숭배인 줄도 모르고 조각이나 회화, 장식예술을 총동원하여 놀라운 정도로 장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그런 이유다. 그 가운데 최정상의 활약을 선보인 예술가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예장합동 김종철 목사(큰빛교회)가 2023년 9월 제108회 총회 부회록서기에 출마한다. 용천노회(노회장 채수영 목사)는 2023년 4월 10일 경기 성남시 세광교회(채수영 목사)에서 제131회 정기회를 갖고 31대 노회장을 지낸 김종철 목사를 총회 부회록서기 후보로 추천했다.. 노회원들의 만장일치 기립박수 속에 추천을 받은 김종철 목사는 말했다. “노회원들께서 부족한 종을 너무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작년에 낙마했을 때도 너무 안타까워해 주시고 다시 도전하면 당선될 것이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용천노회의 위상을 높이고 총회를 최선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이날 총회 부회록서기 후보로 추천받은 김종철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 85회 졸업생이다. 총회 주요 활동은 2014년 총회 아이티사법처리전권위원회(위원장 신규식 목사) 서기, 교단교류협력위원, 교회실사처리위원회 서기, 총회선거관리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제107회 총회(총회장 권순웅 목사) 연기금제도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서북지역노회협의회 상임총무로도 활동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고양시기독교총연합회와 일산기독교연합회 임원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2005년 고양시에 개척한 큰빛교회를 18년째 섬기며 지역사회를 밝히는 큰 빛이 되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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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3
  • 제비뽑기 사도 박광재 목사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탁월한 예술가 한 명이 한 도시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는 오늘날 로마의 모습을 거의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처에 장대한 교회와 회화, 조각과 분수가 있는 로마는 도시 공간 전체가 극적이어서 여행자 자신이 로마라는 거대한 연극에 동참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이 베르니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말했다. “로마는 당신을 위해 있고 당신은 로마를 위해 있다.” 여러 개체에 무언가를 표기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뽑아 벌칙이나 차례를 정하는 놀이를 이른다. 한자어로는 추첨(抽籤)이라고 한다. 제비뽑기에 쓰이는 물건을 '제비'라고 한다. '제비' 자체로도 '제비뽑기'의 뜻이 된다. 주로 운에 맡기는 놀이이고 승부를 쉽게 내고 싶을 때 쓰는 놀이이다. 어원상 조류 제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제비뽑기에서 '제비'는 중세 한국어에서 '져비'로 나타난다. 종이에 내용을 적어놓은 뒤 접어놓고 섞어서 뽑은 것에서 따와, 접다의 옛말 '졉다'에 접미사 '-이'를 붙인 '져비'가 되어 지금의 '제비'가 됐다고 한다. 로마 제국이 유대 지역을 지배할 때 한 유대인이 누명을 쓰고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의 형 집행일이 되자 로마 병사가 그에게 다가와서 제비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제비 2개 중에 하나를 뽑아라. 이 두 제비 중 하나엔 붉은 표시가 있는데 네가 뽑은 제비에 붉은 표시가 되어 있으면 넌 죽을 것이지만 표시가 없으면 넌 풀려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 제비들은 모두 붉은 표시를 한 것들이었고 유대인 또한 그걸 예상하고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농락당하게 된 그는 고민 끝에 제비 하나를 뽑고는 확인도 하지 않고 그것을 곧바로 입안에 넣고 삼켜버렸다. 당황한 병사는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제비를 삼켜버리면 네가 죽을지 살지 알 수 없지 않느냐." 그러자 유대인이 말했다. "병사님의 손안에 있는 남은 제비를 보십시오. 둘 중 하나에만 표시가 되어 있다고 병사님이 말하셨으니 그 남은 제비에 표시가 있으면 제가 뽑은 것은 표시가 되지 않은 것일 테고 표시가 없으면 그 반대겠지요." 당연히 병사의 손안에는 표시된 것이 있었고 유대인은 풀려났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그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할 때 제비뽑기를 실시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수 14-19장). 그리고 아간이 범죄했을 때 범인을 찾아내는 데에도 제비뽑기가 사용되었다(수 7:14-18). 뿐만 아니라 속죄제를 위해 바쳐진 두 염소 중에서도 제비를 뽑아 한 마리를 제물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냈다(레 16:7-10). 그 밖에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을 세울 때도 제비를 뽑았다(삼상 10:21,22). 그리고 제사장, 찬양하는 자, 성전 문지기 등의 직무를 위임할 때에도 제비를 뽑았으며(대상 24:5; 25:8; 26:13) 정해진 기간 동안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하는 데에도 제비를 뽑았다(느 10:34; 11:1). 구약 성경과 달리 신약 성경에서 제비뽑기를 시행한 예가 사도행전 1:26에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한 번 언급되어 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사도를 세울 때였다. 이때 열한 명의 사도들은 기도를 한 후 제비를 뽑았다. 그렇듯 총회 공정 선거 개혁을 위해 성경의 '제비뽑기'를 시행해야 한다고 평생 외친 인물이 있다. 그는 영광교회 박광재 목사이다. 오늘날 교회나 노회나 총회에서는 어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주로 거수나 투표를 한다. 이것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며 인본주의적인 결정 방법이라는 것이 박광재 목사의 주장이다. 물론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수야 있겠지만,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결정권을 맡기는 제비뽑기 방법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가 40년 목회 사역을 마치고 2023년 4월 1일 오전 11시 영광교회 본당에서 원로목사 추대를 받고 제비뽑기로 결정된 후임 하만규 목사의 위임 감사예배를 드리고 또한 박광재 목사 기념관 개막식도 가졌다. 1부 예배는 박광재 목사의 사회로 남평양노회 전 부노회장 김승석 목사의 기도, 사회자의 성경 봉독, 영광교회 시온 성가대의 감동적인 메들리 찬양으로 은혜를 끼쳤다. 전 총신대 총장 정성구 목사가 히 11: 24-26을 본문으로 ‘거룩한 꿈을 꾸자’란 제목의 힘찬 말씀을 예전보다 더 알차고 은혜롭게 전했다. 2부 원로목사 추대식은 남평양노회 전 노회장 임중근 목사의 사회 가운데 사회자의 추대 기도, 김지영 장로의 추대사, 사회자의 공포, 추대 패 전달, 축하 패 전달로 마쳤다. 3부 담임목사 임직식은 위임국장 한창호 목사의 사회 가운데 후임 제비뽑기 영상 시청, 위임 기도, 목사 서약, 교인 서약, 위임국장 공포, 위임 패 전달로 마쳤다. 제4부 축하 및 인사는 옥토교회 원로목사 김신성 목사의 권면, 총신신대원 전 총동창회장 이춘복 목사의 축사 및 자랑스런 동문 상패 증정, 총신신대원 총동창회장 김진하 목사의 축사 및 축하 패 증정, 총신신대원 제75회 동창회장 오세광 목사의 축사 및 축하 패 증정, 총아협 대표회장 배만석 목사의 축사 및 축하 패 증정, 필리핀복음주의신학교 이갑형 교수, 증경 부총회장 이완수 장로의 축사, 박재천 목사, 소망교회 원로 이실태 목사의 축시, 박광재 원로목사의 회고사, 하만규 위임 목사의 답사, 성문교회 성자 풍의 원로 황정식 목사가 축도로 모든 순서를 은혜롭게 마무리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6:33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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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7

실시간 G.PEOPLE 기사

  • 송태근 목사 총회와 총신 소망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 진짜 재난이 시작된다. 재난(disaster)은 별(aster)이 없는(dis) 암흑의 상태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별이 사라져버린 어둠의 시대가 주사파의 민노총이나 민주당처럼 우리 총회를 엄습하고 있다. 실제 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사문난적 논란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고 실제로는 다 정치적인 이유로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이용한 것이지만 부작용으로 조선의 학풍을 더욱 보수적으로 만들었다. 그렇듯 총회에서도 언어의 객관성과 신뢰성은 붕괴 직전이다. 옳고 그름을 토론하고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공론 영역이 마비 상태다. 이익 집단과 지역에 따라 흑이 백으로 백이 흑으로 순식간에 표변하지만, 목사·장로 그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진정한 정치의 가능성도 소멸한다. 총체적 아노미(Anomie: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가 아닐 수 없다. 총회 산하 교인의 신앙 기본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경쟁 당파를 사문난적(斯文亂賊:진리인 유교'斯文'를 어지럽히는'亂' 도적'賊'. 정확히 말해서 주자의 해석을 벗어난 학설을 펼치는 사람을 비방할 때 쓰는 말)으로 몰아 숙청했을 때 중세 한반도에 어둠이 짙게 깔리긴 했었다. 그러나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총회와 총신이 신학 논쟁은커녕 배금주의에 빠져 총회나 총신에서 그마저도 잊은 지 오래다. 그런데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듯 어지럽고 어두운 총회와 총신에 빛(light)이 나타났다. 사문난적에 버금갈 전병욱이 어지럽히고 어둡게한 삼일교회를 바로 잡고 밝힌 송태근 목사가 총신대 총장후보추천위원장에 선임됐다. 아사(餓死) 직전의 총신대학교를 기사회생(起死回生)시킨 이재서 총장에 이어 제22대 총장 선출을 위한 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는 제1차 회의를 2023년 1월 5일 총신대 주기철기념홀에서 가졌다. 총추위는 위원 23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김영우 세력이 개악한 법인이사회 정관을 변경하지 않는 김기철 법인이사장의 사회로 개회한 회의에서 총추위원장에 송태근 목사를 선임했다. 송태근 목사는 삼일교회를 안정 발전시키고 국내외 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송태근 목사는 혼돈하고 어두운 총신을 위한 향후 총추위 운영 방향과 원칙에 대해 표리부동한 배광식과 달리 자신의 설교나 행동처럼 기독신문을 통해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이렇게 밝혔다. “(총장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은 무엇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23명의 위원들이 최대 공약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자리입니다. 일각에서 말하는 계파나 한 개인의 고집이 작용되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섬기겠습니다. 교단 내 논란이 되고 있는 특정인 총장 내정설을 인지하고 있고 그런 의혹이 전혀 작용하지 않도록 공정한 진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 상황에서 건강하고 좋은 의견이 모아지도록 섬기는 것이 위원장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최대한 청취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의심을 안 해도 좋습니다." 제102회 총회를 불과 3일 앞둔 2018년 9월 15일 총신재단이사회는 총신대 정관에서 교단성을 지우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총신대 학생들이 “김영우 총장 사퇴, 정관 원상복귀”를 외치며 10월 25일부터 ‘총신 운영 정상화를 위한 집회’를 이어갔다. 무슨 흑심인지 지금도 그 정관 내용을 김기철 재단이사회도 바꾸지 않고 있다. 그러나 총신재단이사회는 학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학내 시위의 원인이 된 김영우 총장을 재선임하고 핵이라도 확보한듯 김정은처럼 막 나갔다. 그러자 학생들은 전산실을 점거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을 몰아내기 위해 2018년 3월 17일 사당캠퍼스에 용역이 투입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교육부는 총신대 실태 조사를 실시했고 2018년 4월 8일 김영우 총장 파면과 재단이사 취임 승인 취소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어 총신에 이어 총회까지 장악하려고 총회 부총회장에 출마한 김영우의 박무용 총회장 2천만 원 배임건으로 법정 구속된 뒤 재단이사 전원이 물러나고 분규 사학이 된 총신대에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임시이사를 파송했다. 이스라엘인의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기원전 6세기 느부갓네살에게 멸망 당하고 시드기야 왕과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억류되어 약 70년 간 포로 생활을 했던 사건) 같은 파란을 겪은 총회와 총신에 이제 송태근 목사라는 소망이 떠올랐다. 성경은 말씀한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4-5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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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9
  • 시인 소강석의 헤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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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9
  • 총회장 권순웅의 가치관
    약 400평 되는 정원을 가꾸는 기업가가 있었다. 그는 거기에 소나무, 향나무 등을 심었다. 정원을 둘러보면서 그 대를 이어 성공한 아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갓 심은 소나무가 운치 있을 정도로 크려면 족히 7~8년은 걸린다. 뿌리가 돌아가는 데 3~4년, 새순이 가지로 자라는 데 2~3년, 그리고 돌에 이끼도 끼어야 하고, 그게 시간이다.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다. 시간의 무게를 돈으로 사려는 건 만용이다." 시장에서 제품을 사거나 팔 때 거래하고자 하는 가격을 호가라고 한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서 주로 사용된다. 시장에서 고객이 사고 싶은 가격은 매수 호가, 팔고 싶은 가격은 매도 호가라고 한다. 주식시장에서는 거래를 원하는 주식의 가격과 수량을 호가라고 하는데 가장 낮은 매도 호가와 가장 높은 매수 호가가 일치할 때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가 이루어진다. 가격(價格 price)이란 경제, 비즈니스 면에서 물건, 용역, 자산의 금전적 수적 가치를 따지는 것으로 값 또는 가액(價額)이라고도 한다. 한 제품 및 서비스의 가격이란 소비자가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한 단위로 구매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화폐의 양을 말한다. 어떤 한 재화나 서비스가 지닌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것을 말한다. 생산자들은 생산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고려하여 가격을 결정하며, 소비자들은 각자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가격을 결정한다. 가격은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생산자들은 가격을 보고 생산량을 결정하며 소비자들은 가격을 보고 구매량을 결정한다. 이것이 합리적인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이 가격의 신호전달기능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격에 반해 "시간의 무게를 돈으로 사려는 건 만용"이라 말한 기업가는 가치(價値 value)에 대해 말한 것이다. 가치는 일반적으로 좋은 것, 값어치 · 유용(有用) · 값을 뜻하며 인간의 욕구나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 충족시키는 성질, 충족시킨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성질을 말한다. 인간의 욕구나 관심은 경제적이냐, 사회적이냐, 이론적이냐, 도덕적이냐, 종교적이냐에 따라 제각기 가치의 종류가 있다. 상품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며 또한 일정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이론적인 가치는 진(眞)이고 도덕적인 가치는 선(善)이며 미적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은 미(美)이다.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조물도 역사적 · 사회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일이 있다. 가치란 무엇이냐, 가치는 어떻게 인식되느냐는 등 가치와 사실과의 관계 따위를 연구하는 것이 가치론(價値論)이며 사물이나 성질에 관하여 좋다 · 나쁘다 · 멋지다 · 옳다 · 틀렸다 등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치판단(價値判斷)이다. 가치판단에 근거한 생각을 가치관(價値觀)이라고 한다. 즉 가치에 대한 관점을 말한다. 가치 의식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사회사상과 일상 생활의 의식의 결합 속에서 형성되며 그 개념은 두 가지의 측면을 내포한다. 첫째는 그것은 어떠한 행위가 옳고 어떠한 행위가 틀린 것이냐 하는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다. 둘째는 어떠한 상태가 행복하고 어떠한 상태가 불행한가를 판단하는 가치관이다. 양자는 서로 함께 생활이나 행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박식가로 플라톤의 제자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년 ~ 322년)에 의하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추구라고 한다. 행복은 궁극적 목적이며 최고선이라고 한다. 행복은 일시적 쾌락이나 충동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원리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타의 동물들과 인간의 구별 점은 오직 '이성'의 작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50억 클럽에 현혹돼 해괴한 법리로 대법 판결을 굽혀 이재명을 거짓의 늪에 처박은 권순일 대법관이나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나 거짓 대가 배광식의 경우에서 보듯 사실 선악(善惡)의 판단은 현대에서는 입장을 달리하는데 따라서 아주 역전(逆轉)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 즉 가격에 따라 권순일의 대법원 판결이나 총회 재판 브로커 남서호의 판결문이 달라지는 것을 볼 때 좋고 나쁜 것을 확실하게 가릴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는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다만 ‘나’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만 생활의 기준을 찾게 된다. 그러나 사회와의 결합 관계를 잃은 가운데서 구하는 이 기준은 불안정한 것이고 그만큼 한편에서는 사람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간이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서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 인간이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서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 철학과 인격의 목적을 가치관의 정립에 둘 정도로 가치관은 신앙과 철학의 주요 주제이다. 총신 목사 후보생 시절부터 총회 불꽃이었던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개혁 운동 "샬롬 부흥"의 심볼은 칼빈(Jean Calvin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이 자신의 심장을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상징이다. 그것은 칼빈이 그를 쫓아낸 스위스 제네바 시의회 요청을 받고 개혁을 위해 1541년 9월 13일 귀환할 때 주님께 자신의 생명을 두 손으로 받들어 바치겠다는 결심을 표현한 심벌이었다. 1540년 9월 21일, 제네바 시의회는 기예르맹 파인 시의원 아미 페랭에게 칼빈을 소환할 방법을 찾도록 명령한다. 한 대사가 칼빈이 보름스에서 종교 대담을 하는 동안 그에게 도착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 제안에 대해 하루에도 천 번씩 죽었던 그 십자가(제네바의 1차 체류) 위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식으로 백 번 죽는 게 낫다는 식의 공포 어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칼빈은 1540년 10월 24일에 파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러나 제 자신의 주인이 제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저는 제 심장을 도려내어 희생 제물로 주님께 바칩니다. ” 그 편지에서 칼빈은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나의 뜻과 나의 애틋한 감정들을 바치오며, 복종시킬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뜻을 버려야만 할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말씀하실 것을 소망하면서 나 자신을 복종시키고자 합니다.” _칼빈, 파렐에게 보낸 10월 24일 자 편지 그리고 해가 바뀐 1541년 9월 13일 공식 호위와 마차를 가지고 제네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이끄심에 떨리는 마음으로 귀환한다. 제107회 총회준비위원회(위원장 김진하 목사)가 2022년 9월 14일 오전 11시 예수님 모습이 흑백으로 새겨진 공릉 예수사랑교회에서 선포했다. "...총회는 하나님의 사람이 섬기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섬기고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총회를 보면 정말 목회를 잘하시는 귀한 목사님들과 정말 귀한 장로님들이 총회를 섬기는데 있어서 혼자 계십니다. 혼자 큰 교회 하시고 혼자 큰 영광 받으시는 그 사이에 악화가 양화를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총회 안에는 그야말로 거미줄 네트웍 하듯이 총피아가 잡아버립니다. 총피아 하면 누구라고 지칭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총회를 바로 세우지 않는 분들은 다 총피아이기 때문입니다. ...총회 안에 보면 정치가 사명이고 본질과 정말 다르고 우리 사상을 떠난 오직 정치 이니셔티브만 가진 분들이 우리 총회를 끌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서기 선거 나갈 때 공약을 했습니다. 그게 3R입니다. 첫 번째 R은 리포메이션(Reformation) 개혁입니다. 두 번째 R은 리빌드(Rebuild) 세우겠습니다. 세 번째 R은 리스펙트(Respect) 존중하겠습니다. 우리 총회가 부패하고 타락하고 이권과 관계되고 세상에서 손가락질받는 그런 어둠에 다 연루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프로테스탄티즘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이번 총회를 섬길 때 총회장이 개인 이권에 연루되거나 어떤 금권에 관계 되거나 또는 제가 어떤 폭력에 굴복하거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비제이알(BJR 배째라)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부총회장 되고 총회장 될 때까지 발톱을 숨기고 있었지만 (회중 웃음) 불의한 세력이 총회를 공격하고 협박하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총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회중 아멘) 그리고 저는 토마토가 있습니다. 토마토는 앞글자나 뒷글자가 똑같습니다.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뒤에 가서 딴소리 안 하겠습니다. ... 우리가 리포메이션(Reformation) 개혁해서 총회가 바로 세워야 합니다. 지금 생각나는 게 있는데 제주도 땅입니다. 그 땅을 왜 팔려고 합니까. 제주도 땅은 수양관 지으려고 목적헌금으로 구입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팝니까. (아름다운동행의 배광식 패거리는 총회 총무 관사로 마련된 강남 요지의 아파트도 팔아먹었고 우리 총회 랜드마크인 강남 요지의 총회 회관도 팔아먹으려 했다.) 그래서 14일 계약자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견 발표하는데 그만 내려가라고 종을 막 치더라고요. 저는 안 내려간다 했습니다. 역대 부총회장이 총회장 정견 발표하는데 종 치고 내려오라고 하는 건 처음입니다. 안 내려갑니다. 어찌 됐든 우리가 본래 목적대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로 나아가는 일에 제가 진력을 다하겠습니다. (회중 아멘) 그런데 함께해 주셔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습니다. 두 사람이 힘을 모을 때는 기도의 삼겹줄이라 했습니다. 함께해 주셔야 합니다. 두 번째 리빌드(Rebuild), 총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이번 제107회 총회가 '샬롬 부흥' 총회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와 사람과의 평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이 샬롬을 제대로 하면 모든 노회 문제가 해결됩니다. 노회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기에 이 사람은 숟가락 놓고 저 사람은 젓가락 놓고 해서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나중에는 매듭이 꼬여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샬롬 하면 그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는 총회가 문제만 해결하는 총회가 아닙니다. 하나님 주신 비전 가지고 총회가 나아가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문제는 문제대로 해결을 하고 이 샬롬 하나님과의 평화를 모범 전도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에서 한 번도 전 총회가 전도를 선포한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 총회에서 전도를 선포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배만석 목사님이 설교 중에 하셨던 말씀인데요. 아마 우리 비전을 각 교회마다 품으면 교회에 하나님 축복과 부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리스펙트(Respect), 존중하자 입니다. 우리 장로님들 존중합니다. 우리 목사님들 존중합니다. 총회가 노회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회라고 지배적 리더십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고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고통받고 있는 총회 모든 분을 존중하고 총회장이 되면 저부터 한 분 한 분 존중하면서 그렇게 나아갈 때 우리 총회가 '샬롬 부흥'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목사님 장로님 기대하시고 저 멀리 제주에서 광주에서 부산에서 달려오셔서 지지하고 기도해주신 그 열매가 있을 줄 믿습니다." 목사와 총회장의 본분을 맨돈 소강석과 이재명처럼 저버린 배광식이 좋아하는 가격(price)은 유형의 돈의 수량에 대한 기준이다. 그러나 칼빈의 심장을 주님께 바친다는 각오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이 지향하는 가치(value)는 무형의 실재에 대한 진리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이다. 그것이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샬롬 부흥"이 내재하고 추구하는 가치관일 것이다. 그것은 총회와 총회 산하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공의, 질서, 화평을 회복하여 다시 부흥의 역사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과 이재명 좌파의 허위와 맨돈 소강석의 금권이 설치는 총회를 말씀에 근거한 신앙의 회복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가치관을 품고 있다. 그는 한 걸음씩 하나씩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slow and steady) 칼빈처럼 총회 개혁을 이룰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4-27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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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24
  • 찬양전도 원로 안홍대 목사
    그림의 시인 마르크 샤갈은 말했다. "성경과 모짜르트가 없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 그렇듯 안홍대 목사는 말하고 실천하며 살고 있다. "찬양과 전도가 없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 1994년 미국을 방문한 안홍대 목사는 찬양으로 크게 부흥하는 교회들을 목격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주일 예배에 경배와 찬양을 도입해 지금의 안정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 찬양하고 교회가 성경을 더 전하기 위해 예배를 변화시키라는 성령의 감동으로 그는 받아들였다. 겉보기와 다른 외유내강의 그는 귀국하자 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는 찬양대의 찬양 외에 예배의 경배와 찬양을 지휘자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강단에 서서 음악적인 재능이 아니라 기도와 연습을 통한 말씀과 믿음의 능력으로 스스로 인도했다. 천광교회는 1986년 6월 15일 30여 명의 교인들이 이리시 신흥동 483번지에 외딴집 옆 마당을 빌려 천막을 설치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개척 설립 첫 설교에 23명이 모인 자리에서 안홍대 목사는 이렇게 선포했다. "천광교회는 앞으로 1천 성도가 모일 것입니다." 1986년 6월 15일 개척한 천광교회는 교회 성장과 함께 예배당이 좁고 주차장 시설이 없어서 기도하던 중 2003년 6월 15일 현재 2,600평 대지와 400평의 예배당 건물을 마련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 천광교회는 2009년에 6층으로 교육문화센터를 건축(800평)하여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익산시에서 익산천광교회는 안홍대 목사의 경배찬양 예배를 통해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익산천광교회가 2021년 12월 18일 안홍대 원로목사 추대 및 안상훈 담임목사 위임 감사예배를 시무 장로들의 전폭적인 만장일치의 지지로 드리게 됐다.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된 안상훈 목사는 말했다. “지난 35년 역사는 하나님이 이루셨으며 앞으로도 그분을 의지해 목회하겠습니다.” 익산천광교회 제2대 안상훈 목사는 갈 길을 못 정하던 때 어학연수를 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결심이 생겨 어학연수를 마친 세리토스 커뮤니티 컬리지를 졸업했다. 공부하던 중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미국의 명문 UCLA를 졸업하고 114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탈봇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았다, 미국 남가주사랑의교회와 얼바인사랑의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원로목사로 추대된 안홍대 목사는1986년 천광교회를 개척해 지역 복음화와 국내외 선교와 전도에 힘써 익산 통합 측 이리신광교회 다음으로 합동 측 익산천광교회로 성장시켰다. 하늘나라 빛 되신 주님을 찬양하는 천광(天光)교회로 부흥시킨 안홍대 목사는 원로목사 추대식에서 말했다. “50년 목회 여정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서울로 올라가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견디기 힘들어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고자 했지만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주의 종으로 쓰시기 위해 살려주셨습니다. 죽도 먹을 수 없는 위장병으로 힘들어할 때 오직 믿음으로 고침 받는 기적을 체험하고 신학을 하게 됐습니다. 늘 기도하게 하시고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인도하심이었습니다. 50여 년간 목회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백프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함께해 준 성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022년 10월 9일 예배를 마치고 다른 지역 전도일정에 쫓기는 가운데 안홍대 목사는 후임 안상훈 목사에 대해 말했다. "대학도 신학교도 미국에서 공부해 여기는 친구가 없어요. 그란게 오직 기도하고 성경만 파고 교회 관리만 하고 살아요." "서울 큰 교회를 맡을 수 있는 목회자이신데 인구가 줄고 있는 익산에서 목회하시네요." "그러게요. 청년 때 남가주에서 오정현 목사 교회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근디 우리 장로님들이 강하게 원해서 그렇게 됐어요. 어찌겄어요. 내가 억지로 할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하면 부작용도 생기고 창피당하잖아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셔서... 저는 이제 100명 이하 나오는 미자립교회를 다니면서 오후에 예수 초청 전도 집회를 열어줘요. 경비는 우리가 다 부담해요. 다 짜여 있어요. 그런 교회들은 간증자, 복음 가수를 형편상 초청할 수가 없으니까요. 대한민국 판소리 명창 조통달(어려서부터 명창 미산 박초월 여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정성껏 지도한 수제자. 1967년 신인 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1968년 창극 배우로도 데뷔한 그는 1982년 제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영광의 대통령상을 받게 되어 그 명성이 알려졌다) 장로가 우리 교회 장로거든요. 제가 부탁해서 전도지에 가서 흥부전도 하고 판소리도 해주는 무보수 전도자 역할을 해줘요. 가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모릅니다. 어는 시골 교회에 갔더니 저 양반이 갔더니 21명이 새로 나왔어요. 그리고 영접을 시켰는데 5명이 계속 나옵니다. 열매가 맺혀지고 있어요. 울가 선물까지 다 준비해 가지고 가서 이웃 초청 잔치를 해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지금 잘 되고 있습니다. 주일 오후에는 그렇게 다니고 있습니다. 의정부제일교회 서재훈 목사는 이걸 알고 이 팀이 와주되 가수 조관우까지 포함해 우리를 초청했어요. 조관우는 조통달 장로 아들이거든요. 그래서 조관우까지 청했어요. 거기는 11월 7일 월요일 밤 7시에 한대요." 안홍대 목사는 다음 전도지로 떠나기 위해 점심도 버스에서 김밥으로 먹는다며 자리를 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20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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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5
  • 부서기 후보 김한욱 전도 열정
    “일요일 논문을 쓰기 위해 학교 연구실 책상 주위를 배회했지만 두 줄을 넘길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초기 사학계에 영향을 미쳤고 민족사학을 개척하고 그리고 그 한국사의 대중화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학자 고 이기백(李基白, 1924년 10월 21일 ~ 2004년 6월 2일) 교수의 수필에 나온 한 문장이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렇듯 "총회에 대한 사랑과 구원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신앙을 드러낸 목사가 총회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2022년 9월 6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정적인 정견발표를 외친 신예 제107회 총회 부서기 후보 김한욱 목사다. 그는 예전에 제101회 총회 부서기 후보로 등장해 돌풍을 일으킨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16년 9월 8일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혁, 바로 세우기, 품격 회복 등 이른바 3R을 통해 성숙한 총회가 되는 일에 헌신하겠다'라고 정견발표를 했다. 그리고 9월 26일 부서기 선거에서 신예 권순웅 목사가 총 1369표 중 808표를 얻어 558표에 그친 관록의 김상현 목사를 제치고 당선됐다. 역시 신예 김한욱의 정견발표는 이렇다. "저는 정견발표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습니다. 그 준비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귀 기울였습니다.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아무리 좋은 청사진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네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공약을 일단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우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총회는 정말 일꾼, 정말 총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일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골 조그만 교회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출석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너무 가난해 열여덟 살에 외항선 선원으로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외항선을 타고 어둠의 그늘을 지나기 위해서 놓치 않은 것이 있다면 성경책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30명이 탄 배에서 저 혼자 예배를 드리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원들을 전도하게 해주십시오.' 결국에는 30명 가운데 27명이 모여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1년 뒤 한 달을 쉬게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육지에서 전도 훈련과 영적 사역을 배웠습니다. 22살, 25살 청년의 시대에 거리로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26살에 교회를 개척하고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저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어두운 광야에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전도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 위한 두 가지 뜻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24년 전(1998년)에 새안양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제2 새안양교회’를 세우고 안양에서 멀리 떨어진 하남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다 당회가 구성되고 독립했습니다. 저는 총회를 위해서도 바르고 정직하게 일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해피데이 전도시스템'을 개발해 불신자를 전도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제 공약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107회 '샬롬 부흥'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때를 위하여 김한욱을 준비시켜주셨고 총회장 이하 임원들을 잘 섬겨서 제107회 총회를 아름답게 끝맺는 일을 뒷바라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힘찬 박수) 신앙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엔 한계가 있지만 신앙은 세상을 감싸고 하나님과의 샬롬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김한욱 목사에게 어울리는 소강석의 주보 1면 아포리즘(경구)일 듯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이여 저를 기억하시고 은총을 내리소서 느 13:31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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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8
  • 윤희원의 총회개혁론
    2022년 8월 7일 오후 예배 시간 전 전주효성교회 당회장실에서 대위법 기술의 정연한 음악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같은 논리 정연한 설교가 윤희원 목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조용한 어조로 종교개혁을 얘기했다. "종교개혁이 지탱하고 성공했다는 것은 16세기 당대 인문학적 의식이 아주 높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혁을 부르짖지만 합동 측 교단은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논리 정연한 설교가 윤희원 목사의 이어지는 총회개혁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에 대해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 맨돈 소강석 류가 판치는 우리 교단에 이제는 아득하게 여겨지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강제적인 면죄부 판매는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 당시 34세의 혈기왕성한 루터(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일)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왜냐하면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라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그는 순응할 수 없었고 나아가 침묵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깊이 연구해온 루터는 자신이 가르치고 돌보는 많은 사람을 위한 목회적 양심과 책임을 느끼고 설교를 통해 면죄부 판매를 목숨을 걸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자 드디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문에 면죄부를 반박하는 ‘95개 논제’를 게시했다고 한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다. 면죄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곱 성사들 가운데 하나인 고해성사와 연관된 것이다. 사제는 통회하는 고해자의 죄 고백을 듣고 죄 사면을 한 뒤 죄책에 대한 보속으로 순교, 시편 낭송, 특별 기도 등의 행위를 하게 하였는데 면죄부는 이러한 보속을 면해주는 증서였다. 그런데 면죄부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작금의 무료가 아닌 유료 안수기도와 축복 기도처럼 중세 교회는 면죄부 영업에 열을 올렸다. 실제로 각종 요직을 거쳐 면죄부 판매위원장이 된 요한 테첼(Johann Tetzel 1465년 - 1519년 8월 11일)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금화가 헌금 궤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연옥을 벗어나 천국을 향해 올라갈 것이다.” 면죄부 판매위원장 테첼은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작센 영내에서의 면죄부 판매를 거부하자 경계 근처에다 면죄부 판을 벌여 놓고 성서도 적절히 인용하고 연옥에서 당신들의 부모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감정적 호소로 순진한 신자들을 현혹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타락에는 요즈음 맨돈 소강석과 그의 장모에게 거금을 내고 축복 기도를 받듯 당시 교인들도 원인을 제공하였다. 실제로 중세 교회의 신자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진지한 신앙생활보다는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죄의식을 면하려는 손쉬운 신앙생활을 좋아하고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교회의 주장이 과연 성서의 가르침에 부합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투철한 루터는 면죄부 판매 반박문에서 “우리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라고 논제(제1조)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복음의 재발견을 면죄부 문제에 적용하여 “교회의 참 보고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제62조)이라고 역설하고 면죄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자비에 비할 바가 아님을 천명하였다(제68조). 마지막 논제(제95조)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와 같은 행위의 의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고난과 믿음의 의를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라고 결론 내린다. 만일 루터가 속죄권 판매를 정당시한 테첼과의 대결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늦어졌을런지 모를 일이다. 교회가 신령한 축복을 돈 받고 파는 장사를 하면서도 그것을 합리화시키려 할 때 루터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외에도 성직매매가 성행했다. 그리고 신부의 문란한 생활과 사회의 지탄을 받는 생활을 했다. 이러한 도덕적 타락은 일부 주교들이 교회개혁을 교황 바울 3세에게 정식으로 건의하기까지 했다. 종교개혁은 어떤 사상이나 제도든지 원래의 순수하였던 이념을 상실하고 그 이념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에 매이게 되면 내부적으로 썩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유대교의 전통과 제도에서 썩어버린 복음을 예수님께서 새롭게 개혁하셨듯이 언제나 스스로를 개혁함으로서 제도 속에 살면서도 제도에 메이지 않고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종교가 참다운 종교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르네상스(Renaissance) 또는 문예 부흥(文藝復興)은 유럽의 지적인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한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정신을 되살리려 하였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 문학에로의 복귀, 개인주의적 각성, 지리상의 발견에 따라 동서문화의 교류, 봉건제도의 붕괴에 뒤따른 상업인구의 격증, 스콜라 철학의 퇴조와 함께 득세한 오컴주의의 득세 등 이 모든 것들이 중세의 사상적 기초를 흔들었다. 중세의 긴 지적인 통제는 성서적 인문주의의 세찬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대성하여 유명론을 실념론과 대비되는 하나의 큰 학파로 형성시킨 사람은 14세기 잉글랜드의 프란치스코회 탁발수도사, 신학자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1287년경 - 1347년 4월 10일)이었다. 그는 영국인 특유의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그 무렵 옥스퍼드에 일어난 과학적 연구를 신학·철학에 응용하여 새로운 경험과학의 길을 열었다. 유명론은 스콜라학파(기독교의 신학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일반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 탐구와 인식의 문제를 신앙과 결부시켜 생각하였으며 인간이 지닌 이성 역시 신의 계시 혹은 전능 아래에서 이해하는 사조)의 벽을 뚫고 근대과학·근대사상의 길을 준비했다. 루터에게도 영향을 끼친 오컴주의는 개체는 언제나 지각(知覺)의 대상이라 하였고, 이성에 의존하는 것이 권위에 의존하는 것보다 옳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에 이어 정연한 설교가 윤희원 목사는 교단 개혁을 위한 개혁주의 설교론을 피력했다. "우리가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무엇보다 설교가 바뀌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80년대는 대부분 제목 설교였습니다. 삼지창 설교라고 하는 3대지 설교였습니다. 그러다가 강해 설교가 유행했습니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해 설교가 대세인데 사실상 그렇게 할 만큼의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해 설교를 한다고 헬라어 히브리어 동사형이니 수동태, 능동태 따진다고(대학 시절 헬라어 원서 강독 시간이 그랬고 신학원 시절 히브리어 원서 강독 시간도 그 모양이라 원어는 한 줄도 맛을 보지 못 했다) 누가 그걸 듣냐고요. 요즈음 우리 한국 교회가 침체 된 이유가 나는 설교에 있다고 봅니다. 강해 설교 때문에 교회가 침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에세이를 읽어보면 짧은 글인데 깨우침도 있고 감동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강해 설교보다 에세이(essay 기본적으로 서론-본론-결론의 구조를 따른다) 설교를 권장합니다. 그리고 에세이 설교를 하려면 목사에게 상당한 고민을 요구하는 부문이 있습니다. 강해 설교한다고 해석만 하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깨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깨우침도 없고 감동도 없으니 교인들이 맥이 풀리고 신앙의 성장이 없는 것입니다. 78년도에 총신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최훈 목사님이 총회장으로 총신 개강 부흥회를 했어요. 그때 설교가 모세 신발 사건에 관한 것이었어요(출 3:5). ‘신발을 벗으라’에서 신발은 경험의 신발이었고 이성의 신발이었고 감정의 신발이었다는 세 대지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 신학교에 들어왔으니까 이거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의 개념으로 내가 살아야지. 그렇게 큰 은혜를 받고 4층 채플실을 내려올 때였습니다. 그 생각이 안 들었어야 했는데 모세가 그 신발을 다시 신었을 것 아닌가. (웃음) 그런 식이라면 다시 신을 신었다는 게 아닌가. 경험의 신발 이성의 신발 감정의 신발을 다시 신었을 것 아닌가. 이건 아닌데 하면서 고민을 했습니다. 주석을 뒤지고 책들을 찾다가 폰 라트(Gerhard von Rad 1901년 10월 21일 ~ 1971년 10월 31일 독일의 성직자이자 구약학에서 흥미로운 논문과 연구를 남긴 유명한 구약학자) 책을 읽게 됐습니다. 폰 라트의 '육경 신학' 등의 저서를 보다가 '전승사 신학'에서 딱 한 줄 나온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모세가 신발을 벗었는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애굽의 관습은 종은 주인 앞에서 신발을 신을 수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요구하시는 것이 '너는 내 종이다'라는 뜻으로 신발을 벗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루터에 이어 중세 종교개혁가들의 사상을 집대성하고 실천해 종교개혁을 완성 시켜 우리가 존경하고 따르는 칼빈(Jean Calvin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제네바에서 칼빈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목회에 임했었다.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던 1536년으로부터 3년간 의욕에 찬 목회를 감행하다가 슈트라스부르크로 ㅤㅉㅗㅈ겨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1541년 다시금 제네바로 부임해서 처음 14년 동안은 반대자들로부터 어려움을 겪으면서 목회를 했다.그러다가 1555년부터 1564년 사망 시까지 최후적으로 9년 동안 소신 있는 목회를 할 수 있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목회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월급의 증액을 거부하였고 그나마도 구제와 헌금으로 거의 다 바쳐 버렸다. 그는 매일같이 저술 활동, 설교, 강의, 교회법원의 회의참석, 목사회의 참석, 손님 접대, 각종 자문 등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감당하기 벅찬 일을 했다. 그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병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걸을 수 없게 되자 설교단 의자로 옮겨줄 것을 부탁하였다. 1564년 2월 6일 마지막 설교를 하였고 4월 2일에는 교회로 옮겨가 베자로부터 마지막 성찬을 받았다. 그는 1564년 4월 25일 자신의 마지막 소원과 증언이 담긴 글을 남겼다. 하나님께 대한 송구스러움과 감사로 가득 찬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부족함,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의 선택, 그리스도의 넘치는 공로 등을 부드럽게 회상하면서 이제는 세상의 모든 논쟁과 다툼을 그치고 저 멀리 하늘나라를 바라본다고 하였다. 그는 4월 26일 소위원회로부터 친구들에게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작별인사를 하였다. 5월 19일에는 목회자들을 다 초청해서 저녁을 나누었다. 칼빈을 제네바로 이끈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은 80세가 넘은 나이로서 칼빈의 임종을 보러 왔다. 칼빈은 마지막 며칠 동안 기도와 시편의 위로의 시를 암송하는 일에 전념하다가 5월 27일 동녁에서 뜨는 해를 받으면서 54년의 삶과 사역을 마쳤다고 한다. 제네바에서 평생을 보낸 종교개혁가 칼빈처럼 윤희원 목사는 1990년부터 전주에서 사역하고 있다. 어린 시절 어려웠던 생활고와 부친의 목회에 대한 반발심이 잠재해 있어 목회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점차적으로 목회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다. 그 동기에 대해 그는 술회했다. “부친이신 윤남중 목사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실 신학을 전공하기 전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총신대학교 1학년 초기에도 갈등이 있었지만 부친의 권고로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부친께서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신학을 전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네바의 칼빈처럼 전주에서만 사역자로 32년을 지낸 논리 정연한 설교가 윤희원 목사는 '총회를 위해 총신을 사생결단의 각오로 지켜야겠다'라는 뜻의 다짐을 했다. 하나님 은혜로 맨돈 소강석의 봉투가 전혀 먹히지 않는 김기철 목사(정읍성광교회)가 제18대 총신대 재단이사장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뒤에는 청년의 사도 송태근 목사가 버티고 있다. 게다가 총신 개혁의 불꽃 권순웅 목사가 제107회 총회장이 된다. 이에 더해 진정한 총신대와 총신대학원을 거쳐 칼빈의 개혁신학으로 무장된 총회의 심장 윤희원 목사가 총회와 총신을 지키기 위해 힘을 다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9-12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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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4
  • 구원 찬양자 김희정
    인간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쓴맛이 있다. 단맛 수용체는 딱 한 종류다. 하지만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25종이나 된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그대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대중음악에는 크로스오버(Crossover)라는 장르가 있다. 분명히 장르는 장르인데 크로스오버는 록, 블루스, 재즈, 포크, 힙합처럼 단일한 장르가 아니다. 크로스오버는 여러 장르가 섞여서 만들어진 음악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복합 음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장르의 영어 뜻처럼 여러 장르를 가로지르고 넘어서는 음악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대중음악의 대부분의 장르들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대로 완성되어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의 장르가 다른 장르를 만나서 섞이면서 지금 같은 모습이 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중음악은 기본적으로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크로스오버는 장르와 장르가 섞여서 완전히 새로운 장르가 되어버렸다기보다는 섞인 장르의 문법과 질감이 여전히 살아있는 음악들을 일컫는 것이다. 가령 재즈 같기도 하고 록 같기도 한 음악, 록 같기도 하고 찬양 같기도 한 음악, 재즈 같기도 하고 클래식 같기도 한 음악, 바로 이런 음악들이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르가 섞인 음악, 장르가 옮겨간 음악이 크로스오버라고 한다면 대표적인 크로스오버의 스타일이 있다. 재즈와 록이 만난 퓨전 재즈는 가장 대표적인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퓨전 재즈는 록에 밀려 위축되었던 재즈가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재즈의 언어를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초에는 컨트리 음악과 팝 음악이 섞이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고 1980년대 중반에는 이른바 세계 3대 테너 중 한 명이었던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와 포크 싱어송라이터 존 덴버(John Denver)가 <퍼햅스 러브>라는 노래를 불러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해외의 대중음악에서는 여러 장르가 섞이는 실험과 모색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르가 풍부하지 않고 장르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풍토가 강해서 크로스오버 음악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악을 다른 장르와 접목시키는 흐름은 꾸준히 이어졌다. 국악이 바로 한국의 음악이었고 가장 몸에 밴 음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경우처럼 한국에서도 성악가와 대중음악인이 만나 크로스오버적인 음악을 들려준 경우도 있었다. 바로 1989년에 발표된 <향수>라는 곡이다. 작곡가 김희갑이 시인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성악가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부른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시에 성악과 대중음악의 어법을 접목시켜 만든 이 곡은 당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대중들의 호평과는 달리 클래식 음악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숭고해야 할 클래식 음악가가 왜 대중음악을 했냐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이었다. 허나 클래식 음악을 고급 음악으로 규정하고 대중음악을 상업적인 음악으로 천시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박인수 씨는 대중들에게 크로스오버 음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린 죄 아닌 죄로 국립오페라단 활동을 스스로 중단하게 되기도 했다. 지금은 팝페라라는 이름으로 팝과 오페라를 섞은 크로스오버 음악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일천한 한국의 크로스오버 음악 장르에 이들 같은 뮤지션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손꼽을만한 크로스오버 뮤지션이 많지 않은 현실은 그만큼 크로스오버 음악이 어렵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 가지 장르만 알아서는 할 수 없는 음악이고 모델을 찾기도 어려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크로스오버적인 시도가 현재의 장르들을 만들어 냈듯 현재의 크로스오버 역시 미래의 또 다른 장르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현재의 크로스오버를 좀 더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이유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기교가 아닌 기도로 부르는 크로스오버 가수 김희정이 오페라와 가곡과 팝송을 넘나들며 찬양을 선포해오고 있다. 세계적 프리마 돈나 마리아 칼라스가 1964년 1월 코벤트 가든에서 부른 토스카 열창만큼이나 음역이 높고 다양하다는 평이다. 오페라, 가곡, 찬양 등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소프라노 김희정은 경희대 음대와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태리 NinoRota와 Arts, Ottorino Respighi 음악원을 졸업했고 Atri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그 후 American Liberty University에서 음악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황규학 박사의 기사에 따르면 그녀는 지난 1997년 귀국하여 천여 회 이상의 공식 무대와 수백 회 이상의 비공식무대를 통해 음악문화의 전령으로서 왕성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클래식계의 주목받는 오페라의 정상급 프리마 돈나이고 가곡 팝송 찬양을 아우르는 믿음의 크로스오버 가수이다. 뉴욕 카네기 홀, 링컨센터 공연을 비롯하여 미국 10개 도시 순회연주와 리사이틀 그리고 이태리, 오스트리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및 동-서 유럽투어 공연을 하였다. 국립 오페라단과 김자경오페라단, 서울오페라단, 국제오페라단 등 국내 수십 개 오페라단과 해외 여러 오페라단의 초청으로 <라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라보엠>, <투란도트>, <돈 죠반니>, <사랑의 묘약>, <카르멘>, 한국 창작 오페라 <춘향전>, <정조대왕> 등 수많은 작품의 프리마 돈나로 출연하여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언제나 아낌없는 호평을 받아왔다. 또한 미디어 플레이어로서 KBS교향악단, 서울, 부산, 인천, 수원, 대천, 부천 시립 교향악단과 KBS 국악, 중앙국악, 안산시립 국악관현악단 등 국내 백여 개 이상의 단체들과 협연하였고 KBS-TV 김동건의 "한국-한국인"에 선정되어 출연한 바 있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풍부한 기량과 아름다운 음색, 완벽한 표현력을 지닌 소프라노 김희정은 전국의 주요 극장들과 미국, 이태리,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지에서의 여러 독창회 그리고 다양한 연주 무대를 통해 음악 전문가들과 일반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 외 장애인,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기금마련 음악회와 각종 무대에 독창자 및 협연자로서 연주하였고 미국 우호 백주 년 기념 해에 시카고에서 가진 초청 콘서트를 비롯하여 여러 오라토리오 솔리스트로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성악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의 폭넓은 성역(聲域)과 뛰어난 기교, 그리고 훌륭한 무대에서의 연기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을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3막의 <리골레토>에서의 중후한 질다 역에서 <라보엠>에서의 가련한 미미까지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더구나 그 뛰어난 극적 표현과 완벽한 가창은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집 음반으로 제1집 - '별들은 따뜻하다', 제2집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제3집 'VOICE OF SPRING', 제4집 '그리운 얼굴' 한국가곡집을 출반하였다. 2009년 제17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성악부문 최우수상과 2010년 제3회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 대한민국 예술문화인 대상(도전한국인운동본부)을 수상하였고 2014년 제2회 예술·문화 공헌 대상 수상과 2015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인증 및 수상, 2019년 대한민국브랜드 대상을 하였다. KBS 열린음악회" MBC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 자문위원과 tvN '퍼펙트싱어'에 출연하였다. 2008년 설립된 SH오페라단의 단장과 한국국제대학교 예술체육대학 음악학과 석좌교수 그리고 강동아트센터 착한공연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컬리넌아트컴퍼니 대표이며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포스트모던 음악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식물처럼 인생의 쓴맛은 <라보엠>의 가난한 인물들처럼 다양하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미식가가 느끼는 쓴맛을 나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남들은 다 좋아하는 음식을 나는 쓰다고 싫어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르게 세상을 감각 한다. 그래서 무대 위 그림자 같은 인생의 쓴맛은 말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는 구원의 믿음을 전하는 김희정의 찬양을 진리로 받아들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 시편 103:1 ♣ 구원 찬양자 김희정 관련 연락 > HP 010-7933-7086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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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0
  • 맑은샘광천교회 이문희 목사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웃음과 웃음소리가 태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1972년 3월 12일 성북구 석관동 소재 건물 2층에서 97명이 창립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해 1973년 4월 23일 박병진 목사가 제1대 위임을 받았다. 박병진 목사는 1924년 평남 출생으로 남산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저서로는 ‘교회정치 문답 조례’, ‘권징 조례-교회재판 편람’, ‘예배와 예식’, ‘교회헌법 대전’ 등 20여 권의 교회헌법 관련 저술을 펴낸 98세 현역 교회헌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 이후 1980년 제2대 윤도영 목사에 이어 1986년 제3대 장정일 목사 때 광천교회 성장의 틀과 토대가 완전히 잡혔다. 평소 선교의 열망이 커 해외 선교에 많은 후원을 하던 장정일 목사 자신이 선교사로 떠나면서 대학부 지도 부목사 이문희 목사가 1990년 제4대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문희 목사의 목회로 광천교회가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에는 한국 최대 장로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4회 총회(총회장 김도빈 목사) 때 광천교회 정동원 장로가 부총회장에 선출되는 쾌거도 있었다. 이문희 목사는 교세에 맞는 지금의 새 성전을 건축하고 2009년 8월 2일 맑은샘광천교회로 개명했다. 이문희 목사는 부임 28년째 되던 2018년 8월 2일 원로목사로 추대받는 날 후임 김현중 목사를 제5대 위임목사로 세웠다. 교인들이 결정한 김현중 목사는 후임 후보 가운데 일인으로 이문희 목사와 일면식도 없는 목사였다. 이문열의 장편 소설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이동영이 말했다. "언제든 때가 오면 나는 맑고 깨끗한 이념, 자유와 평등에 대한 더렵혀지지 않은 열정을 품은 채 이 대지를 떠나겠다." 그렇듯 이문희 목사도 표연히 떠났다. 물러난 뒤 죽기까지 자신이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 앞 건물 사무실을 떠나지 않은 조용기 목사와 달리... 이문희 목사가 광천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몇 년 뒤 같은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직원 기독인 회 회원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고 한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 카이스트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광천교회 이문희 목사님 설교가 좋아 좋은 설교 들으려고 주일마다 강남에 가지 않아도 돼." 2017년 9월 1일 기독신문에 실린 '자살 예방과 교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시론에 그런 이문희 목사 설교의 편린을 엿볼 수 있겠다.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의 의미는 이제 국가가 직접 자살을 예방하고 사회에 생명존중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를 표명한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불과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약 6000여 명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시무하는 맑은샘광천교회도 지난 4월 부활주일에 생명보듬페스티벌(Life Walking)을 시행했다. 개 교회에서 진행한 행사지만 생명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행사였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를 부여하면서 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했다. 특별히 안전사고예방 차원에서 경찰서에서 교통 안내를 해 주고 중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거 참여시켜 생명의 가치를 나누며 행진하는 뜻깊은 행사를 했다... 교회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그분을 우리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생명의 가치를 이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절망하며 삶조차 버겁게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를 전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자살 예방 활동이라고 믿는다. 이 일에 한국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도전하고 싶다." 이문희 목사는 교회 이름을 맑은샘광천교회로 바꾸고 그렇게 실천했다. 샘 (泉)은 지하수가 지표로 흘러나오는 곳이다. 지하를 지나는 동안 불순물이 여과 되어서 광물 성분이 녹아 있는 물이 되고 그래서 샘에서 나오는 물을 샘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지 4년 2022년 3월 12일 설립 50주년이 됐다. 제주도 해풍에 세진듯 흰머리가 안개처럼 자욱한 이문희 목사가 5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해 축사를 맑고 잔잔하게 전했다. "축하드립니다. 90여 분이 박병진 목사님과 교회를 시작해 참 많은 수고와 눈물들이 마침내 열매를 맺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희 맑은샘광천교회는 참 좋은 풍토가 있습니다. 세 분 목사님이 떠나가신 다음에 제가 부임을 했습니다. 전임자가 떠나고 후임자가 올 때는 갈등이 많습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다툼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저희 교회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임해서 보니까 전임 세 분이 모두 교회를 부흥시키셨습니다. 부흥시키지 않은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남겨놓고 가셨고 제가 그 풍토 밑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다 오시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상징을 꼽자면 틀림없이 ‘하트’가 첫손에 들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워도 문자에 하트를 붙이거나 손 하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뭇잎 모양 빨간 하트가 사랑의 상징으로 통용된 건 14세기 초부터다. 그 전까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하트는 진짜 심장을 닮은 긴 솔방울 모양으로 그려졌고 이는 예수님의 ‘성심(聖心)’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맑은샘 이문희 목사에게 진심으로 예수님의 성심을 본뜬 손 하트를 보낸다.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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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점차 변한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바로 지구가 자전하는 축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 있다. 이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고, 태양 광선이 지표면을 비추는 일조시간에 햇볕이 얼마나 세게 얼마나 오래 내리쬐는지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선 일 년을 24절기로 나눠 한 달에 두 번씩 절기가 찾아온다. 2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있다. 올해의 경우 2월에 설날도 있었다. 설날은 달의 움직임을 따른 음력의 1월 1일이다. 이와 달리 절기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상에서 태양의 위치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돌 때마다 하나씩 해서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기준을 세웠다. 그래서 설날은 절기가 아니라 명절이다. 우리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모두 달력을 보고 안다. 그러나 자연에 사는 생명체들은 달력 없이도 기가 막히게 시간의 흐름을 알고 저마다 계절에 맞게 적응해 살아간다. 일 년 중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입춘을 지나 나들이를 나서면 땅속에서 솟아 나올 준비를 하는 새싹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고 여린 새싹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꽤 자라 큰 모습의 풀을 만날 수도 있다. 도심에서도 공원이나 화단을 보면 살아있는 풀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시장에 가면 벌써 냉이가 나와 있다. 그걸 보고 ‘벌써 냉이가 나왔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이의 내력을 알면 아마 아! 하는 탄성이 새싹처럼 나올 것이다. 사실 봄나물 냉이는 지난해 가을에 이미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싹이 돋아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라나 꽃을 피우는 거다. 이런 풀들은 바닥에 붙어 수평으로 나온 잎이 장미꽃 모양이어서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이라고 부른다. 또한, 잎이 방석같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방석 식물’이라고도 한다. 민들레, 냉이, 달맞이꽃, 질경이와 같은 로제트 식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쉽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그들의 전략은 참 놀랍다. 풀이지만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몇 가지 멋진 작전을 세운다. 첫 번째는 키를 낮추고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작전이다. 줄기가 짧고 잎을 땅에 붙은 듯이 내보내 엎드려서 겨울의 추운 바람을 피하는 것이다. 이때 잎을 넓게 사방으로 뻗어서 적은 양의 햇빛이라도 최대한 받는 게 두 번째 작전이다. 세 번째는 땅에 바짝 붙은 만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이용하는 거다. 건강한 숲속 땅이라면 낙엽이나 다양한 미생물들로 인해 온도가 조금 더 높기 때문이다. 꽤 많은 종류의 로제트 식물은 몸에 잘게 솜털이 나는데 이 털도 추운 겨울을 견디는 데 활용한다. 그렇다면 로제트 식물은 왜 가을에 싹을 내서 힘든 겨울을 견디는 걸까. 다른 식물이 싹을 내기 전에 미리 싹을 내고 있다가 봄이 되어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워서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로제트 식물 대부분은 1년에 두 번 이상 번식하는데 아마도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이 번식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키도 작고 땅에 붙어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풀들에도 이렇듯 놀라운 삶의 전략이 숨어있다. 그런데 만약 춥고 힘든 겨울이 없다면 로제트 식물은 어떻게 될까. 겨울이 없다면 다른 풀들도 얼어 죽지 않고 이 시간을 지냈을 것이다. 그러면 애초에 경쟁을 피해 누구보다 빨리 꽃가루받이를 하려던 로제트 식물들은 유리한 위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대부분 풀은 죽게 되고 로제트 식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시련이지만 이 시련을 기회로 삼아버린 로제트 식물. 우리 목사의 삶 또한 이와 같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을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작은 냉이 같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아는 믿음이다. 뛰어난 실력과 엄청난 운이나 타고난 재능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을 이루는 믿음 앞에선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는 2021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시 삼천동에 있는 전북신학교에 도착했다. 전북신학교는 1971년 3월 25일에 전주 북문교회에서 개교하여 1972년 9월23일 제57회 총회에서 총회 인준을 받았다. 1988년 현 위치인 전주시 삼천동 11,000여 평 대지 450평 본관을 지닌 학교다. 2층 학장실에서 한기영 목사(전주은강교회 총신 84회 61세)를 만났다. 그는 한때 전북을 기반으로 총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김백경 목사(총신 73회)의 혹독한 시절을 잘 견딘 냉이 같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의 용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내면은 크다. 그래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임이나 공동체를 화합시키고 세우는 조정 역할을 잘 감당해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이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리폼드투데이)가 한기영 목사와의 대담을 이끌었다. 1. 제106회 총회 임원 후보로 준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합동 총회의 목사로서 총회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여러 회 총회를 출입하면서 저에게도 앞서서 총회를 섬길 기회가 오겠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년 106회기는 순환적 임원 구성이 우리 중부호남지역 회원들 사이에 제가 임원 후보로 거명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좀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만일 기회가 주어지면 총회 공동체를 위해서 부회록 서기로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합동 총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임원으로 섬길 기회를 주면 그동안 생각했던 아쉬움과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미력이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섬겨볼 각오입니다. 화평과 화합의 균형추(조정자)가 되겠습니다. 2.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첫째로 부임원으로 섬길 때는 함께 묶인 임원들을 잘 섬기며 좋은 호흡을 맞춰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 믿음의 원리와 상식이 통하는 임원회가 총회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우리 총회가 사무 행정을 펼쳐 나감에 있어서 먼저 교회와 노회를 돕고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정직하고 바르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함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제 임무를 은혜롭고 덕스럽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총회에 큰 그림을 그리고 회기별 연계성이 있게 서로를 존중하며 진행해 가자고 제안하고 곁에서 돕고 섬기려고 합니다. 지금의 시대 변화와 현실적 필요를 잘 분석하고 정말 선진 총회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논쟁과 싸움은 그치고 보다 발전적 전략을 수립하게 모든 기관이 통합적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처럼 저는 소박하게 세워주신 총회장을 잘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3. 교단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소견이 있다면? 우리 교단 리더들의 생각이 건강한 개혁주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총신신대원과 신학교들을 다시 잘 살펴서 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솔선해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총회도 이제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섬겨오고 현재도 학장을 맡고 있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이미 있는 좋은 인프라를 잘 활용하여 우리 지도자들을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총회가 더욱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행정과 정치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해주는 총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나아갈 방향과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1) 목회자 수급에 대한 조사와 신대원의 운영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2) 도시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의 목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합니다.(다양한 목회 전략과 좋은 콘텐츠 제공, 자립 방안의 구체적 사례 연구와 적용) 3)목회자 은퇴자를 위해 상설위원회를 설치하여 은퇴를 앞둔 목회자의 처우를 준비해야 합니다. 5.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목회의 위기감이 엄습해 옵니다. 교회의 장래가 염려되는 것을 넘어 교회의 무너짐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 가지 교회의 연약함이 더욱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그 어려움은 공교회 예배와 주일성수, 모이는 교회와 봉사와 섬김에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청년들의 신앙교육, 전도 등이 어려움으로 다가와 많은 지역 교회들이 소멸할 것 같습니다. 지역 노회들이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여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교회 합병, 교회 연합 등). 6.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오랫동안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 왔습니다. 저 자신이 개척하여 섬긴 교회도 있지만 개미목(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후배 개척 목회자들을 다각적으로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이사 임원으로 학생처장으로 실무를 감당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미력하지만 돕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 왔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교회 세움과 성장 컨설팅을 하고 싶습니다. 제 목회 철학은 골3:23 말씀을 모토로 ‘성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자’입니다. 전주은강교회 한기영 목사 프로필 ◆총회 주요이력 : 현)총회 정치부 서기, 경기북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총회실행위원, GMS이사, 호남협의회 감사총회인준전북신학교 학장. 총회지방신학교협의회 회장. ◆전)제103회 면려부 부장, 평서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산서노회조사처리위원회 서기, 대구동노회조사처리위원장, 학원선교위원, 개혁사상특별위원, 전북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호남제주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제105회 총회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사회기관 : 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 원장, 사)나눔과기쁨 전북상임대표, 전주시장로교연합회 선임회장 전주완산경찰서 경목위원 ◆학력 : 경기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북신학교 대학부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84회 졸업, 칼빈대학교 대학원(Th.M) 플러신학대학 대학원(D.min)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같은 믿음의 목사들은 시련을 견디고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티며 실패에서 배우고 끝까지 해내며 마침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취를 제104회 총회장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처럼 손에 넣는다. 그렇듯 목회자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한 가지는 바로 믿음이다. 교회를 살리는 목회와 총회를 세우는 정치에 있어 실력과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믿음이 약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돌아오는 길은 서설(瑞雪)인 듯 눈이 드문 전주임에도 큰 눈이 내렸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1-4 2021-02-25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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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5
  • 살림 이종석 목사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물음에 이종석 목사는 이런 뜻의 대답을 했다.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 잠깐 하늘과 땅이 기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년 10월 16일 - 1900년 11월 30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가는 곳마다 행복이 되고,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이 된다 Some cause happiness wherever they go. Others whenever they go.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살림’이란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다. 즉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사람을 잘 살리고 있다’라는 말이다. 예로부터 한글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 말은 ‘돈을 많이 아꼈다’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은 은덕을 잘 쌓았는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개의 가정은 '살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무턱대고 돈을 아끼는 것을 살림으로 착각하고 있고, 아내는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만을 살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돈 몇 푼 때문에 소중하게 맺은 부부의 인연까지 흔들리고 있다. 살림은 여자만 하는 것도, 남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잘 살리는 일은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돈만으로는 남을 살릴 수 없다. 우선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 교인의 삶을 돌보아야 한다. 목회자에게 살림은 가정을 잘 살리는 일이고 동시에 내 교회를 잘 살리고 잘 다스리는 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의 살림을 잘 해야 인생의 살림꾼을 넘어 믿음의 살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종석 목사는 살림꾼이다. 의사가 돌보던 어떤 환자는 임종 직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가까이 오자 “내 돈 2억 갚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환자들은 “10년 더 살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의사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곤 한다고 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소망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 회원사(더굳뉴스, 리폼드투데이, 좋은신문, 합동투데이)는 신년을 맞이하여 제106회 총회 임원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을 차례로 인터뷰하고 있다. 세 번째 순서로 부서기에 도전하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를 만나기 위해 2021년 2월 2일 11시 광교제일교회를 찾았다. 총회 두루 발길이 닿는 박철수 목사가 평생 동지 이종석 목사(총신 80회)를 돕기 위해 함께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가 대담을 이끌었다. 1. 금년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교회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교회 또한 세상을 향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우리 교단 내 목사님들이나 총대들도 현 총회 운영에 대해 신뢰보다는 불신이 더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일까요? 그것은 법과 규칙의 자의적 해석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도 흔히 들립니다. 부족하지만 법학사로서의 지식과 총신인으로서의 신앙 양심을 통하여 총회를 좀 더 깨끗하게 섬겨보고 싶고, 특히 약자의 편에 서서 저들의 소리를 듣고, 총회 안에 억울한 사람이나 노회가 없도록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임원으로 출마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아웃사이더(outsider)에게 비난은 할 수 있지만 세워 가는 일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총회 임원이라고 해서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한 욕심 내지 않겠습니다. 할 수 없는 약속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물으셨으니까 적어도 이 세 가지는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 총회 화합입니다. 먼저는 임원들 간에 화합을 도모하는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섬기겠습니다. 총회장님을 비롯해 임원들 상호 간에 협력하고 잘 도우면서 일을 하겠습니다. 서기 일을 하다 보면 각 노회에서 올라오는 여러 사건이나 서류를 접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정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법과 규칙을 따라 물 흐르듯 하는 행정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힘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대들에게 나서는 일보다는 섬기는 일을 하려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총회가 끼어들어 노회나 개 교회의 일을 더 큰 문제로 만드는 정치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는 분쟁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해결의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지 오히려 문제를 재생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 2). 교회의 예배 회복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작금 한국 교회는 예배의 위기 앞에 서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지만, 예배에 대한 바른 지침이 별로 없습니다. 당장 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에 대한 우리 총회의 명확한 기준이나 입장 표명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총회 임원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교단 내 교회를 지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예배의 회복입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고른 인재의 등용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를 보면 늘 그 인물에 그 인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경험과 경륜이 중요하다 보니 쓰던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인물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각 위원회나 특별 위원 배정을 할 때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 찾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임원들에게 부여된 최고의 사명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편향된 인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선거에서 같이 경쟁했던 인물이라도 유능한 인물을 고르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3. 교단 차원에서 시급한 선결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뢰 회복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 일도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 교단의 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던 은급재단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총신 문제도 결국은 서로가 믿지 못함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지금 총회 회관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이전이냐를 두고도 많은 논의가 있고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 일도 모든 총회 구성원 간에 믿음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선관위도 그렇고 재판국의 판결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총회 임원회도 총대들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뢰 회복이라는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믿음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약속한 것은 손해가 나도 지키고 서로가, 아니 총회 임원들부터 지도자들이 먼저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우리 합동 교단은 정말 큰일도 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코로나 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 되는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교인 수의 감소일 것입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어느 정도 회복 되어진다 해도 많은 수의 교인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 헌금의 감소로 직결될 것이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서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나아가 예배 형태도 많은 변화가 올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이미 많은 성도들이 비대면 예배라는 달콤함에 맛 들어 버렸습니다. 온라인 예배, 방송 전파를 통한 유명 목사님들의 예배가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서는 아무래도 교회의 주일학교일 것입니다. 어른들보다 더 심각하지요. 다음 세대가 걱정입니다. 이를 어떻게 다시 세울지 많은 기도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우리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하고 싶었고,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하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새벽 기도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지시보다는 솔선수범하고, 섬김의 목회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 절대 주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 여생은 한국 교회를 위하여 조그만 보탬이 되고 싶고, 정년이 끝나면 시골로 내려가 아내와 함께 시골 교회를 섬기며 조용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허락된다면 구약성경 공부를 위한 책을 써 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6.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녀교육이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자녀교육이라고 해서 제가 특별히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잘해줬어요. 지금 딸은 결혼해서 초등학교 4학년 되는 아들과 일곱 살 아들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지금 현재 목사입니다. 제가 개척하는 걸 다 본 아들인데 홍익대 사범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가서 3학년 때 군대 다녀와서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중국 우루무치에 계시는 선교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 가서 선교사님 자녀들 교육도 하고 선교사님도 도우면서 선교를 좀 배우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일테니까 그래서 보냈습니다. 한 6개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루무치 현지 대학에서 언어 공부도 했습니다. 6개월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온 김에 6개월만 더 있다 오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을 갔다 오더니 저한테 ‘대학 졸업을 하고 신학을 하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한 번도 신학을 하라는 말을 안 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너 신학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정말 가서 보니 선교사들이 너무 어렵고 힘드시더라. 그래서 한국에 있는 교회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느라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선교사들이 정말 선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국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너 나중에 선교사로 갈 생각이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자기는 선교사 스타일이나 체질이 아니고 자기는 선교사를 보내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겁니다. 네 뜻이 그러면 한번 공부해 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홍익대 졸업하고 총신신대원을 갔는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저 제주도에 가겠습니다.’ 왜 제주도에 가느냐 했더니 제주도의 작은 교회가 교육전도사를 구하고 있는데 교육전도사를 못 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게 너한테 좋은 기회일 수 있다며 허락했습니다. 제주도를 가니까 교육전도사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됩니다. 여기 광교에서 김포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로 제주도에 갑니다. 그리고 교회까지 버스로 가는 겁니다. 주일날 교회 사역을 하고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오는 겁니다. 그걸 한 1년, 저 녀석이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 하고 나더니 하는 말이 ’아버지. 아무래도 제가 떠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졸업하고 김종준 목사님의 꽃동산교회 부임해서 초등부를 맡아 1년 하고 사랑의교회로 갔습니다. 사랑의교회에서 지금 4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했는데 제 며느리도 총신신대원 졸업했는데 둘이 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녀교육에 대해 특별한 것은 없는데 아이들이 볼 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죠. ‘좋은신문’의 지용길 목사가 말을 거들었다. “삶으로 다 보여주셨네요.” 최장일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 다 하셨네요.” 일동 웃음. 이종석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를 말씀하시는데 세상 적으로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뭘 가지고 교회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척하러 올 때에도 제가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고 와서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하고 중도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해주셨습니다. 그때그때마다. IMF 만나 여기 땅을 사러 올 때도 교회 건축하는 것도 돈이 있어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뭔 돈으로 할 거냐,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랬습니다. ‘나도 무슨 돈으로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하면 될 것 같아.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하니 되더라고요. 새로 이 교회를 지을 때도 그 당시 적립된 돈이 잘 해야 한 2억 정도였습니다. 그건 설계비 정도밖에 되지 않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다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 그러다 큰코 다친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으니까 절대로 잘못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은퇴준비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잘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설날 아침, 주위를 둘러보면 북적북적 마주 앉은 친지들,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 식당과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이리라 믿는다. 일 년 뒤 오늘의 모습은 일 년 전 오늘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꿈만 꿀 것인가, 꿈을 이뤄낼 것인가. 작가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에서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썼다. ‘당신은 꿈을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했나요.’ 그날의 빛... 광교제일교회 예배당에 들어선 순간 벅차오르던 잔잔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 1월 한낮의 태양 빛이 벽에 뚫린 창틈으로 들어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양식의 예배당을 비추고 있었다. 처음엔 투명한 빛이었다가 틈새 사이로 흔들리는 조명 빛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인류가 세운 모든 종교 건축의 지향점이 똑같지 않을까. 신성하면서 미적으로 뛰어난 공간,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행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건물. 인도의 아잔타 석굴부터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까지 수많은 종교 건축물이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새로운 기준이 된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 건축에도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가 됐다. 예배를 드리되 접촉은 피하기, 2m씩 떨어져 앉기... 바이러스 전파는 최대한 막아내면서 '믿음'과 '신앙'이란 목적을 담아내는 기발한 상상력이 등장하지 않을까. 먼 훗날, 이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새 건축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지. 건축가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 이종석 목사 프로필 총신 신대원 80회 졸업 총회 정치부장(제102회기) 총회 특별 재판국원(제104회기) 총회 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실행위원, GMS 이사 역임 현 기독신문 이사 한장총 부흥사회 제34대 대표회장 재경영남교직자 협의회 상임회장 AGM(아시아 복음 선교회) 상임회장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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