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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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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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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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윤희원의 선거 변혁 제안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이 총회 상비부 임원 같은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배광식이나 고광석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6일 전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 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표로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했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 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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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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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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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0
  • 성경에 잡힌 우주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간의 기원’의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를 만나 던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사망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시간의 기원’은 교양과학서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신학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렌즈를 깨끗이 닦아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목사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목회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사역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이 명하신 소중한 목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믿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분수령이 될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허영의 시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세비 값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휴대폰 렌즈에 잡힌 총회의 목사와 장로도 유권자이기에 2024년 4월 10일 믿음의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겠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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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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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7월 21일 제102회 총회장 김선규 17년 납골당 적폐 해결 문재인 정권 대표 상품 적폐 청산 용어를 발명 정치 옷을 입혀 처음 정치 무기 활용 박근혜 은급재단 이사 관련 정관 변경 계약 이후 한 것 때문에 2심 최춘경 권사 측에 진다면 총회 측 매매 대금 27억원에서 하루 270만원 계약 강제 이행금으로 별로 받을 게 없는 사태 벌어질 수도 차가운 대치동 도로 위에 하늘은 멀어 잿빛 비둘기가 구슬피 울음 운다. 차가운 구름 흘러가는 하늘 길은 무역센터 굴뚝 너머 까마득히... 불신 익는 총회 회관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교회에 소망은 지리라. 신실하고 소망 많음도 병인 양 하여 찬란한 가로등 아래로 조는 듯 흔들리며 지하철 타고 간다. 문재인 정권은 과거 어느 정권과 가장 닮았을까. 물론 노무현 정권이다. 같은 피, 같은 DNA를 물려받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노무현 시절 솜털 뽀얗던 행정관들이 이마에 가로 주름살을 계급장처럼 붙이고 수석비서관으로 되돌아왔다. 무슨 위원장, 어느 기관 감사 자리가 빌 때마다 옛 얼굴들이 다시 피어나고 있다. 두 정권은 청와대 덩치도 닮았다. 2018년 1월 비서실 정원은 443명, 국가안보실(NSC) 정원이 43명이다. 최근 비서관 자리를 더 늘렸으니 500명에 육박할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는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 553명이었다. 한국보다 인구가 7배, 경제 규모가 12배인 트럼프 백악관 비서실 2017년 정원이 377명이다. 정치학자 박상훈씨의 최신 저서 ‘청와대 정부’에 따르면 정치 행태, 정치 스타일에서 문재인 정권과 가장 닮은 정권은 노무현 정권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이다. 문 정권의 대표 정치 상품은 적폐 청산이다. 얼마 전 검찰이 외교부 청사를 압수 수색했다. 외교문서에는 상대국과의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은밀히 나눈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국과는 비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定說)로 굳어지면 한국 외교는 벽에 부딪힐 게 뻔하다. 현 정권의 적폐 청산 집념은 이런 위험도 불사한다. 문재인 정권의 대표 상품인 적폐 청산이란 용어를 발명하고 거기에 정치 옷을 입혀 처음으로 정치 무기로 활용한 정치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한국 언론 재단 기사 검색 프로그램을 통해 보면 1950년부터 40년 동안 ‘적폐’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10건에 불과했다. 국회 발언 속기록에도 1987년 민주화 이전 40년 동안 ‘적폐’라는 단어가 들어간 국회의원 발언은 총 15회에 지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나자 그 원인으로 ‘적폐’를 지목하고 ‘적폐 청산’을 국정 목표의 하나로 내걸었다. 그러고 한 달 만에 국회와 언론에는 1000건이 넘는 발언과 기사가 넘쳐났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 청산 용어 사용 저작권료를 박 전 대통령에게 지불해야 할 처지다. 지금 대한민국은 적폐 청산에 여념이 없다. 과거 정권에서 적극적으로 일했던 공무원은 직권남용으로 몰리고, 그게 두려워 발을 뺐던 사람들은 직무유기라는 덫에 걸렸다. 감사원 감사를 받고 검찰에 불려가고 법정에 선 공무원들 대부분의 겉 ‘죄목’(罪目)은 여러 가지지만 속 ‘죄목’은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둘 중 하나다. 지금 무사한 공무원이라 해서 다음 정권에서도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다. 4대강 사업 관련 공무원들은 세 정권을 거치면서 네 차례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감사 결과는 정권 따라 달라졌다. 현재 원전(原電) 정책을 만지는 공무원들이 다음 정권에선 4대강 관련 공무원 처지가 될지 모른다. 대학 입시 정책에서 에너지 정책까지 정부가 결정해야 할 국가 기본 정책을 급조(急造)한 각종 위원회에 떠넘기는 사태를 예사로 봐선 안 된다. ‘책임 정부’는 사라지고 ‘위원회 정부’가 곳곳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직접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여당·야당·국회를 건너뛰어 국민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것도 박근혜 정권을 닮았다. 박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적폐 국회 청산 ‘국민 서명 운동’을 연상시킨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학 사전에 없는 ‘간접 민주 정치’라는 용어로 ‘대의(代議) 정치’ ‘정당 정치’를 규탄했던 첫 사례가 1975년 유신헌법 국민투표 때였다. 박사모 극성에 국민들이 고개를 저으면서 박근혜 정권의 황혼이 시작됐다. 지금 ‘문빠’ 행태도 그때 박사모 이상이다. 다들 지긋지긋해 한다.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 확대 명분은 ‘일하는 청와대’다. 그것도 박근혜 정권의 재판(再版)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의 비서실장·수석비서관 이름은 기억해도 장관이 누구였는지는 모른다. 설치는 청와대가 노는 내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적폐 청산에서 ‘적폐’는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 고질화한 우리 사회의 폐단과 문제를 말한다. 적폐 청산의 최종 목표는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정책·제도·관행을 바로잡는 데 있다. 또 적폐 청산에 있어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경구처럼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남의 티끌만 한 잘못에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기의 들보 같은 잘못에는 눈감아 버리는 비성경적 적폐를 양산하고 있다. 2017년 7월 21일 금요일 오전 11시 총회 5층 회의실에서 총회은급재단이사회가 열렸다. 이사회를 마치기 전 은급재단 이사장 김선규 총회장이 과거 16년 동안 역대 총회장들이 해결 안 하거나 못 한 적폐를 해결하는 총회 개혁의 쾌거를 이루는 발언을 했다. “혹시 이것이 총회보고서 이사회 보고에 첨부가 될 수 있다면 여기서 발의해 올리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다른 게 아니고 통합과 합동이 은급재단을 거의 같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금 현황을 물어봐도 됩니까. 얼마죠. (박상범이 보고했다) 우리는 320억 자산이고 통합측은 4000억입니다. 이것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제는 우리가 이것을 마무리하면서 많은 분들이 은급 가입을 하고 우리도 1000억대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총대로 오시는 모든 분들은 은급 가입을 하도록 하고 두 번째 교회가 제증명을 떼기 위해서는 은급 기금을 필히 다 들도록 하고 세 번째 목사가 안수 받을 때는 은급을 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번 총회에 올려서 우리 교단 허락을 받으면 은급이 제102회부터는 탄력을 받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은급재단 이사회는 제102회 총회 개회일인 2017년 9월 18일 낮 12시 익산 전복궁 식당에서 8회 차 전체이사회를 열고, 벽제 납골당을 27억원을 최춘경 씨에게 매각하는 건을 표결에 붙였다. 이날 이사회에는 감사 2명을 제외하고 13명 이사 전원이 참석했다. 표결 결과 3분의 2에 해당하는 9명이 매각 찬성 의사를 표시해 최종 매각이 재차 확정됐다. 은급재단은 또 논란이 됐던 미정산금 7억원은 매매대금에 포함된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은급재단은 8월 11일 최춘경 권사와 27억원 매매계약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총회 측이 빠져나갈 수 있는 충성 측과의 청산 과정 담보문제 안전장치를 위해 재차 은급재단 이사 3분의 2(9명) 동의를 계약 단서조항으로 명기한 바 있다. 이번 결의로 2009년 납골당 1차 매각 후 표류하던 은급재단 납골당 사업은 큰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2018년 9월 21일 현명한 총회유리창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납골당 16년 적폐 청산 총회 결의 이행 결과를 제102회 총회에 보고했다. 은급재단이사회 보고 때 논란이 일자 제102회 총회장 전계헌 목사는 말했다. “총회는 어떠한 손해가 있더라도 팔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현명한 김선규 은급재단 이사장이나 전 납골당 조사처리위원장을 역임한 박춘근 목사의 “매각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 제102회 총회장 전계헌은 각고(刻苦)의 산물 은급재단이사회의 매각 체결 보고를 기각하고 납골당 16년 적폐 연장과 총회 결의 역행 결의를 했다. 더욱이 그 다음 날 9월 22일 총회 마지막 날 정치부 보고에서 전서노회장이 헌의한 총회은급재단 개편에 관한 건에 대해 총대들은 토론을 거쳐 27억 원 매각을 중단하고 비리 의혹자들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을 하기로 했다. 또 이를 위해 목사 5인, 장로 4인 등 9인 전권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그러나 제102회기 내내 이 위원회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런데 2018년 7월 18일 오전 10시 총회회관 4층 회의실에서 열린 은급재단 이사회에서 이사장 전계헌 총회장이 뜻밖의 행보를 보였다. 전날 7월 17일 WCC 반대 본교단(전계헌 총회장)과 WCC 소속 예장통합(총회장 최기학)의 총회임원 연석회의가 그랜드앰배서더호텔에서 열렸다고 한다. 이 회동에서 WCC 소속 예장통합 최기학 총회장이 WCC 반대 본교단 전계헌 총회장에게 사적으로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우리 교단 연금은 4100억 원인데 귀 교단은 얼마입니까.” 전계헌 총회장은 일순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우리는 372억 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은급재단 이사회가 2시간 여 이어진 부수적인 문제에만 매달려 맴도는 일부 이사와 은급재단 직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의 말미에 이사장 전계헌 총회장이 작심한 듯 발언을 했다. “그런 발언만 계속 하시면 납골당 문제가 이제까지 그랬듯 앞으로 10년이 가도 제자리일 것입니다. 선매각 후소송을 진행해야 합니다. 오늘 결정을 합시다.” 은급재단 박상범 국장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증경부총회장 김성태 장로가 직원을 만류하며 말했다. “지난번 회기의 매각 결정은 합법적이었습니다. 매각 결의를 한 뒤에 다 끝났으니 이제 더 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서 제가 구두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게다가 납골당은 유지재단의 기본자산이 아니라 유동자산이기 때문에 재적 이사 50프로의 동의만 있으면 되는데도 3분의 2의 동의를 얻은 것이고 두 명의 이사 구두 사임으로 자격이 있니 없니 하면서 말하는데 사실 당시 이사 사임 수리가 안 됐기 때문에 그것도 합법적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납골당 문제를 털어버려야만 은급재단이 신뢰를 회복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계약이행소송으로 질 확률이 많은 소송에서 지면 하루 270만 원의 물어야 할 강제이행금이 8억 원 수준입니다. 그것도 지금 300일이 지났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사장 전계헌 총회장이 17년 째 이어지는 총회 적폐를 척결하는 용단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것은 다음 8월 22일 은급재단 이사회에서는 납골당 매각을 반드시 종결한다는 결의를 하고 회의를 마쳤다. 그러나 해를 넘겨 계약 이행을 하지 않자 최춘경 권사 측에서 납골당 계약이행 청구 소송을 냈는데 1심에서 졌다. 이유는 2017년 9월 18일 은급재단 이사회 결의 때 9명의 이사가 찬성해 결의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결격 사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앞서 김성태 증경부총회장의 발언대로 두 사람의 구두 사임이 있었지만 아직 사표 처리가 안 된 합법적인 결의였음에도 그리 되었다. 나중 알고 보니 총회 은급재단 측에서 계약이 체결 된 이후 2018년 5월 재단이사회 정관을 개정해 이사회에서의 사표 수리가 아니라 사표를 구두로 말하기만 해도 이사회 결의 없이 처리하는 학교 재단 이사회처럼 도달주의로 변경한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해 인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마치 그런 내용의 정관이 계약 이전에 있었던 것처럼 재판부에 제출해 제101회 총회장의 합법적 납골당 계약의 적법성을 해치는 증명을 버젓이 하는 행태를 하나님의 총회 당국이 저지른 것 같다. 2018년 12월 은급재단 담당 국장 박상범에게 물었다. “앞으로 그 정관 변경이 문제가 될 경우 항소심에서 진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는 펄쩍 뛰었다. “질 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대비는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아니 2심이 있고 대법도 있습니다.”“1심 판결에서 대법원 판례를 적용했기 때문에 다 이긴 겁니다.” 그러니 대법까지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실무자 박상범 국장의 생각이었다. “계약 이후에 정관이 바뀌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그렇다는 생각은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과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에 대해서처럼 확고한 것 같았다. 사랑의교회 경우 1심과 2심에서 다 이겼는데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이 되어 오정현 담임목사 대신 노회에서 임시당회장이 파송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만일 총회 은급재단 측이 이사 관련 정관 변경을 계약 이후에 한 것이 문제가 돼 최춘경 권사 측에 진다면 충성교회 측이 안 내도 될 4억원 상당을 물게 돼 충성교회 측 건물이 경매 절차에 들어간 것처럼 총회 측은 매매 대금 27억원에서 하루 270만원씩 내야하는 계약 강제 이행금 때문에 별로 받을 게 없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102회 전계헌 총회장이 2018년 8월 22일 은급재단 이사회에서는 납골당 매각을 반드시 종결한다는 결의를 하고 그리고 실제로 그날 이기든 지든 팔아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러나 그때도 박상범 국장이 1심 판결 뒤에 그렇게 하자는 단서를 붙여 연기하게 하고 또 연기하고 또 연기하고 해를 넘겨 오늘에 이르렀다. 2월에 항소심이 열린다. 여전히 박상범 국장이 실무를 맡은 은급재단은 370여억원의 은급재단기금에 머물러 있을 것이고 통합 측은 우리와 같이 시작했는데도 그 기금이 작년의 4100억원에서 훨씬 늘어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재판에만 매달려 은급재단 돈으로 변호사비는 엄청 지불하면서 재단 가입자의 형편에 대해서는 어떤 경황이나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는 것 같다. 실무 국장은 건강도 좋지 않은 가운데 그런 격무에 시달리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 총회 측이 충성교회처럼 항소심 재판에서 지면 어떻게 감당할지 아득하다. 제101회 총회 유리창 김선규 총회장이 투명하게 적폐를 청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층회 측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선규 총회장을 제외하고 계속 이어지는 총회장과 실무 국장이 자청해서 총회 결의를 어겨가며 적폐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 납골당을 총회가 직영한다는 빌미로 담당 직원 임해순 장로가 행한 일을 목격했음에도 말이다. 선박 조타실에는 배가 좌우로 어느 정도 기울었는지 알려주는 클리노미터(Clinometer)라는 계기(計器)가 달려 있다. 보통 선박은 35도까지 기울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세월호처럼 불법 시설이 증축(增築)됐거나 짐을 과적(過積)할 경우 더 낮은 각도에서도 복원력을 상실하고 침몰한다. 세월호는 선박 관제센터에 ‘배가 기울어 승객이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라고 보고한 뒤 뒤집혔다. 우리 총회가 세월호처럼 될까봐 심히 걱정스럽다. 1945년 2월 16일 죽기 3년 전 윤동주가 쓴 이 시는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이 불가피하던 1942년 1월 말의 시이자 조국에서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기인 소강석 시인이 사랑하는 그는 후쿠오카 감옥으로 잡혀가 군수 의약품용 생체실험으로 죽었다. 참회록 - 윤동주(1917~45)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ㅡ만 24년 1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ㅡ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는 여전히 피 흐르는 우리의 소망이다. ‘이다지도 욕됨’으로부터 그를 지켜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슬픔 속에서 그러나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으며’ 치욕에 맞섰던 저 선량함과 신실함이 결국 세상을 살리는 힘임을 믿고자 한다. 그럼 목사와 장로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2019-01-2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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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21
  • 이효상 컬럼 - 성탄절에는 마굿간으로 갑시다
    성탄절을 맞으며 동역자에게 샬롬(평화)!, 성탄의 절기에 얼마나 바쁘십니까?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 하루입니다. 차 한 잔의 온기를 나누듯 역사의 지평을 넘어 우리에게 다시는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 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동역자님과 교회와 북녘동포, 그리고 민족과 세계 곳곳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며 편지를 써봅니다. 동역자님. 성탄절은 그분을 반기고 행동으로 뜨겁게 맞이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성탄을 맞을 때마다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처음 예수님이 오신 곳은 특급호텔 파티의 상석이 아니라 ‘마굿간’이었습니다. 오늘 한국에 오실 예수님도 서울역의 노숙자로, 거리의 나사로로, 죄수의 옷을 입고 아니면 병자의 몸으로 오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크리스마스 행사에 정신없어 그분을 쫓아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마굿간’을 부담스러워하고 오히려 외면한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그렇게 세상의 명예와 출세ㆍ성공을 얻기 위해 줄서고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되 ‘장성한 분량’에 이르려고 몸부림치고, 영원한 하늘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사역자였으면 합니다. 그런데 온갖 화려한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가려는 것을 너무도 갈망하기에,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한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동역자님. 다시 야성과 영성을 회복하고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사랑을 실천하는 사마리아 사람들로 교회가 채워진다면, 그래도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여리고 언덕에서 강도만나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소외당하는 이들의 억울한 자리로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나누며 붙들어 주므로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그래서 그들에게 참된 기쁨을 되돌려주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역자님.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추운날씨입니다. 따뜻한 말과 작은 배려가 큰 힘이 됩니다. 주님 사랑이라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성탄, 바쁘다는 핑계로 달려가다 놓쳐버린 우리 곁의 소중한 사람들이나 서울역이나 시청지하도에서 또는 달동네 냉방에서 겨울을 나는 독거노인들과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나누며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붙돋아 줄 수 있는 가슴이 따뜻한 신앙인, 그런 성탄절 말입니다. 독역자님. 매년 성탄절을 맞이하지만 오늘 이 시대에 주시는 성탄의 의미를 다시 깊이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오심이 왜 기쁘고 복된 소식이 되어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동역자님에게 더 이상 성탄이 ‘앎’이 아니라 ‘삶’으로 느끼고 체감 되도록 했으면 합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같이 마굿간으로 내려갑시다. 슬픔이 있는 그곳이 기쁨의 성지가 되게 합시다. 낮은 곳을 향하여 내려가기 위해선, 신앙의 깊이와 가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선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만날 때 부끄럽지 않도록... 동역자님.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의 화해자로 오신 뜻을 시대상황에서 깊이 이해함으로, 갈등과 분열, 분단을 넘어 샬롬의 전파자로 서기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재확인 하였으면 합니다. 하나된 교회가 분단된 조국의 평화를 위해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뛰겠다는 각오로 저 낮은 곳을 향해 나갔으면 합니다. 동역자님.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뜨겁게 사모하다 그분을 만난 신앙의 선배들처럼, 그런 ‘예수쟁이’들로 인하여 2019년에는 한국사회가 더욱 밝아지고 건강해지기를 소원해 봅니다. 한국교회에는 교회건강연구원이 있습니다. 한 해 동안도 베풀어 주신 관심과 사랑,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날씨는 쌀쌀하지만 마음은 훈훈하게, 눈빛은 따뜻하게 전하시길 빌며 주님의 평화를, 샬롬! 글쓴이: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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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3
  • 총회재판국 재판이 없다
    총회재판국 보고서 재판 판결 없고 회의 기록만 나열 윤익세 김영범 허은 재임 3년 총회 재판 재심 이루어져야 3인이 주장하는 재판 슬로건법과 증거 근거 판결 아니라 협박과 거래의 협상과 상담 원평교회 영동중앙교회 전주동부교회 등의 재판 그런 실례 최적 본보기 사람이라면 누구나 쓰면 쓴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돈봉투 감투를 쓰고 있다. 모든 사람은 제 돈봉투 감투를 쓰고서 믿음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들 간다. 인간들은 모두 돈봉투 감투를 쓰고 있다. 이 세상에 믿음이 아니라 돈으로만 사는 줄로 알게 된다는 돈봉투 감투를 쓰고서 투명인간처럼 나아간다. 돈봉투 감투를 쓰면 제가 안 보이니 사람들은 제멋대로 살아간다. 심판의 믿음이 없이 저만 아는 눈엔 다른 이들이 뵈지 않는다. 돈봉투 감투를 모두가 쓰면 인간 전부가 안 보이니 인간들은 제멋대로 살아간다. 인간만 아는 눈엔 하나님의 심판과 세상의 법이 뵈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 감투 같은 건 없다. 그는 땅이 입을 열어 삼킨 아간처럼 흉한 맨몸의 탐욕을 내놓고 활보 중일 뿐. 어제 제103회 총회 재판국 보고서를 새삼 읽다가 울컥 울음을 삼켰다. 판결이 없고 회의 기록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100년 역사의 총회에 정의로운 판결이 없는 거짓이나 거래 담합만 오랫동안 반복될 것 같아 밤새 잠을 못자고 뒤척여야 했다. 그러나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목사를 아이처럼 울게 만드는 총회에서 지금 슬픔을 견뎌야 하는가. 아니면 희망을 견뎌야 하는가. 어쨌든 사실을 알리는 일에 인내를 가져야 할 것이다. 윤익세 김영범 허은 등이 재임한 3년간의 총회재판국 재판은 거의 전부 재심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인이 주장하고 내세우는 재판의 관행은 법과 증거에 근거한 판결이 아니라 협박과 거래에 가까운 협상과 상담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감출 길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실제로 취재하고 겪은 원평교회 영동중앙교회 전주동부교회 등의 재판은 그런 실례의 최적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는 총회의 변화를 위해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힘쓰고 있다. 차제에 총회 재판이 일반 재판처럼 누구에게나 공개되고 판결문을 신청하면 발급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결혼 허가증을 발급받으러 갔다가 미국 거주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카슈쯔기(Khashoggi)가 토막 살해당했다. 그 사건에 대한 사우디 왕세자의 혐의에 대해 지난 12월 4일 CIA 국장 하스펠(Gina Haspel)의 압축적인 브리핑을 받고 미국 상원의원 그래햄(Mr Graham)이 이렇게 말했다. “There is not a smoking gun - there is a smoking saw.” (결정적 단서) 연기 나는 권총 스모킹 건(a smoking gun)은 없다 - (토막 살인 비유) 연기 나는 톱 스모킹 소(a smoking saw)가 있다. 마찬가지로 상기의 총회재판국 삼인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살해한 결정적 증거 스모킹 건(a smoking gun)은 없지만 주님의 몸을 토막 낸 연기 나는 톱 스모킹 소(a smoking saw)에 대한 교회 분열의 증거는 확실하다. 교육 도시로 유명한 보스턴은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허브이기도 하다. 작지만 아름다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이 있다. 그리고 규모나 역사적으로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 보스턴 미술관이 있다. 특히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한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서양 미술사의 중요 작품 중 하나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질문은 자본주의, 공산주의, 무(無)정부주의, 나치주의를 탄생시켰고 인류는 지난 200년 동안 서로 다른 모습의 미래를 원하는 자들의 끝없는 전쟁과 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듯 우리 보수교단 합동 총회도 이단에 앞서 진보주의 한신, 장신 등과 싸우고 분열도 했다. 공산주의와 나치주의의 몰락, 그리고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역대 누구보다 젊고 유능한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의 지도 아래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 교단의 21세기 최고의 투쟁은 어쩌면 다른 과거를 가진 사람들과의 싸움도 서로 다른 미래를 추구하는 자들과의 투쟁도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정작 지향해야 할 미래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끝없이 질문하는 서로 다른 신앙과 정체성을 주장하는 자들과의 투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내부든 외부든...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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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2
  • 이효상 컬럼 - 문화 복음으로서 ‘성탄절’
    문화 복음으로서 ‘성탄절’ 부산시에선 지역교회들이 연합하여 ‘부산시민 트리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10년째 성탄축제를 열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도 예상외로 반응이 너무 좋다. 서울에서는 시청과 국회앞에 트리를 점등하였고, 청계광장에는 등불축제인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을 열어 관심을 끌었다. 이런 성탄축제가 더 활성화되고 서울, 경기, 인천,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지역마다 더 확산되었으면 한다. 역사의 지평을 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전하고 그 분의 오심을 모르던 백성들에게 그분을 만나도록 전하는 문화로서의 복음이 ‘성탄’이 아닐까 싶다. 선교사들로부터 전해진 문화 복음으로서의 ‘성탄절’은 참으로 소중하다. 우리나라의 첫 성탄소개는 서재필박사에 의하여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만들어진 그해였다. 1986년 12월 24일자에 ‘내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일이라’는 성탄 소개 기사가 처음으로 실렸다. 한민족 역사에서 최초로 성탄절을 소개하고 기념한 곳이 <독립신문>이었고. 당시 크리스마스를 ‘휴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듬해 10월에 첫 한국교회인 정동에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각각 설립된 후, 1987년 12월 25일 언더우드 선교사는 성탄절 주일 예배에서 한국인을 위한 첫 장로회 성찬식을 거행했다. 이와같이 아펜젤러 선교사도 아이들을 모아서 성탄절에 대해서 전했고, 양말에 선물을 담아 배재학당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소년들은 산타클로스가 준 선물로 알고 기뻐했다고 한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이날 김명옥에게 첫 여성 세례를 베풀었다. 성탄절기가 되자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의 집으로 평소 고마웠던 분들이나 교인들을 초청하여 성탄절기를 보내며 성탄의 의미를 초대받은 이들에게 전하고 음식을 베풀며 즐거워했다. 그때에 스크랜턴 선교사도 이화학당 소녀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고 한국의 첫 산타클로스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그 역할을 맡았다고 전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첫 번째 성탄절 모습이었다. 그런가하면 언더우드 선교사와 결혼하여 부부선교사가 된 릴리아스 홀턴 의료선교사가 쓴 <상투의 나라>에는 첫 성탄트리를 1894년 궁중에 설치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고종황제의 왕비 명성황후를 치료하며 돈독한 관계가 형성되었고, 명성황후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몹시 궁금해 했다. 홀튼 선교사는 매번 가마를 보내어 궁정으로 초대하는 황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소나무와 촛불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궁에 설치하며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다. 그녀는 기독교전파의 가장 적절한 문화적 방법으로 성탄절을 알린 것뿐만 아니라, 진료소를 설치하여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였으며 여성성경반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계몽하기도 했다. 1896년 <대한 그리스도인회보>에 보면 최병헌 목사는 “대한 천지에도 성탄일에 기념하는 정성과 경축하는 풍속이 점점 흥왕할 줄로 믿노라”며 성탄문화의 확산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그 이듬해, 1897년에는 배재학당의 성탄절이<독립신문>과 <대한그리스도인회보>에 소개되는데, 이 행사는 대한제국 첫 공식 성탄절 행사라 할 수 있다. 주로 연등을 달고 성탄극을 공연하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었다. 1950년대 크리스마스 성극집 _하늘엔 별 총총_ 이렇게 전파된 성탄절은 1898년 12월27일자 <대한 그리스도인회보>에 따르면 크리스마스가 한국인에게 중요한 축일로 정착했다는 평가가 이뤄진다. “서울 성 안과 성 밖에 예수교 회당과 천주교 회당에 등불이 휘황하고 여러 천만 사람이 기쁘게 지나가니 구세주 탄일이 대한국에도 큰 성일이 되었더라” 성탄절기 행사를 교회교육에 적용하고 전파하는데 앞장 선 이가 정동감리교회 한석원 목사이다. 그는 성탄 성극을 만들기도 하였고 어린이 잡지를 발간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성탄을 널리 가르쳐주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1900년대에는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성탄절에 사람들이 교회당에 몰려드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선교차 방한했던 노블 부인의 일기 <승리의생활>에는 ‘회당문이 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라고 밝혔다. 백성들은 성탄절에 교회당에서 행해졌던 성탄극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전통적인 명절과는 다른 축제일의 성격을 띠어갔다. 1938년 크리스마스예배순서지 성탄절 하면 떠오르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1928년부터 성탄절기에 맞춰 모금을 전개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첫 크리스마스 씰은 카나다 의료선교사로 온 셔우드 홀 박사가 결핵의 예방과 계몽을 위해 도입하였다. 그는 1932년 발행한 크리스마스 씰에 조선인의 자랑 거북선을 그려 넣었다. 그는 거북선의 포를 결핵마크에 조준하여 결핵을 무찌른다는 의도로 디자인을 만들었으나 일제치하에 저항정신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남대문으로 교체되는 수난을 겪으며 발표되었다. 1935년 발행된 크리스마스씰 이런 성탄절기 문화는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인 상업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에서는 서구와는 달리, 크리스마스가 연인들의 날로 자리 잡기 시작됐다. 1936년, <매일신보>에는 ‘기독교인의 손에서 상인의 손으로 넘어간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그러던 크리스마스는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일제의 규제하에 철퇴를 맞으며 수그러들었고 크리스마스에 자유와 기쁨을 잃어버리고 우울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은 평소 야간통행 금지를 실시했으나 성탄절과 12월 31일에는 예외를 적용했다.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성탄절을 휴일로 법제화했다. 6·25 전쟁 기간 중에는 미군들로부터 그 의미가 새롭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전쟁의 영향은 성탄절을 일제강점기의 소비와 여흥의 문화에서, 새로 태어난 어린이들을 위한 기쁨과 축복의 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쟁이후 경제발전과 유신정권이 들어서며 야간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시기에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송은 자유와 기쁨의 상징이었으나 1982년 1월, 야간통행금지가 풀리면서 그 의미도 크게 퇴색되어 졌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연말연시엔 춥고 배고픈 이웃에게 나눔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어졌다. 이렇듯 한국교회가 전할 문화 복음의 콘텐츠는 ‘성탄’과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성탄과 그분의 부활은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 중 복음이다. 2018-12-12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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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2
  • 이효상 칼럼 - 한국교회싱크탱크,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한국교회싱크탱크,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정체’및 ‘침체’라는 한계상황에 놓인 한국교회는 다른 전략이 없는 것인가? 그래도 향후 미래 생존과 부흥의 가능성은 있는 것인가? 지금처럼 지성인과 다음세대는 그냥 방치 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이런 여러 담론생성의 한계에 갇혀 있다. 이슈에 대한 공론화의 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간혹 필요시 외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 의미 있는 통계자료를 제공해왔지만 이 또한 간헐적이었다. 총체적으로 볼 때 한국 기독교는 교회 영역을 뛰어넘어 대정부, 대사회를 향한 소통자가 되기엔 힘이 부친다. 현실은 안티 기독교 운동, 동성애차별금지법 논란, 교회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이단의 발호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녹록지 않다.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사안에 무조건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 것이 아니라 균형감을 지닌 대안제시로 기독교내 지성인들이나 젊은 세대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싱크탱크가 정말 필요한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현재 교계는 다양한 기관과 그룹을 보유하고 있다. 정치행위로서의 연합은 있었지만 구체성을 띤 아젠다 설정에는 후진성을 보여 왔다.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네트워크로 한국사회를 견인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지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기에 지도자들이 교회를 위해 쏟는 에너지의 100분의 1만이라도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아젠다를 설정할 수 있는 싱크탱크를 만드는 데 참여한다면 안티 기독교 득세, 타 종교와의 갈등 등을 적잖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싱크탱크란 특정 사항에 대한 조사, 분석 및 연구 등을 통해 각종 정책 계발뿐 아니라 정책 실행 피드백, 지속적인 개선 유도까지 수행할 수 있는 고급 두뇌집단을 일컫는다. 그러면 싱크탱크의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교회의 싱크탱크모델로는 미국의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바나리서치그룹’은 미국 교회 및 사회에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또 영국에서는 CCFON(Christian Concern For Our Nation)이 있다. 안드레 월리엄스 변호사가 설립한 이 단체는 영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정책 및 법률이 국회에서 제정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미국의 기독법조인단체 ADF(Alliance Defense Fund)도 교 자유와 관련한 소송과 법률, 분쟁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런 서구 기독교의 다양한 형태의 경험을 배워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담론까지 형성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한국교회싱크탱크’를 만드는 일은 교계 지도자들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사안이다. 한국교회의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나 ‘기독교세계관’은 NGO형태이면서도 목회자 중심을 넘어 학술 전문가들이 참여한 복합적이고 균형적인 싱크탱크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새로 출범할 ‘한국교회싱크탱크’는 좌표설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 비정치지향의 전문인 사역자들로 구성된 다양한 본부(NGO)와 네트워크하여 앞으로 변화와 그 변화를 가리킬 방향을 가늠할 수 있도록 나침반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국교회싱크탱크’로 불확실성의 시대에 향후 10년을 준비하려 는 것이다. 현재 당면한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대안을 제공하며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지금 교회의 모습을 넘어 다음세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좀 더 보다 명확하게 앞을 예측하고 함께 고민하고 그 답을 찾으려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여론조사와 학술포럼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출판과 언론. 방송의 콘텐츠를 통하여 다원화, 글로벌화 된 사회에서 교회는 고유의 복음전파 외에도 성경적 가치를 변증하고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떠안고 있다. 가능하다면 국가에 정책을 건의하고 법안과 입법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며 외국의 입법사례까지 사전 조사, 검토, 정책제시까지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통전적 시각에서 교단과 교파, 개교회 주의를 뛰어넘는 객관적인 데이터 산출과 의미 분석, 정책계발과 추진 등을 위한 기독교내 고급자원의 네트워킹과 더불어 미래의 전문가와 언론. 방송의 전문사역자들 양성도 병행되도록 해야 한다. ‘한국교회싱크탱크’ 출범을 위해 종교교회 최이우 목사와 거룩한 빛 광성교회 정성진 목사님을 비롯한 각 교단의 여러 중견목회자들과 의견을 나누었고, 또 각 기관, 단체의 오랜 경험을 가진 다수의 브레인들이 함께 참여하여 다양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중견 목회자들보다 차세대목회자들이나 평신도 지도자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필요성에 공감하고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관심은 쇠락하는 한국교회가 과연 기독교 가치관을 수호할 수 있는 싱크탱크를 어떤 형태로 보유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한국교회싱크탱크’는 하나의 방향, 하나의 길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며 다양한 안목과 방식으로 내일을 준비하며, 한국교회가 세상의 흐름을 선점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싱크탱크가 될 것을 예상하기에, 여기에 교회 목회자만이 아니라 평신도지도자들의 반응과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다. 3.1운동 100주년을 넘어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한국교회 안에 변화를 이끌 차세대 공동체리더십이 절실하다. ‘대안’없는 ‘미래’에 ‘전략’과 ‘동역’이라는 양면을 지닌 싱크탱크와 함께 가는 것이 필수적 조건이 될 것이다. 리더십 발휘 영역이 크면 클수록 지도자는 혼자가 아닌 지혜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싱크탱크는 없어서는 안될 ‘한국교회전략발전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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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30
  • 김종준 vs 민찬기 리더십 경선
    그들의 ‘경청’과 ‘순수’의 지도력보수 총대들에 신뢰의 상상력 줄 것 그러한 그들의 정치력 권력 남용을 혐오하고 음모 정치꾼 참지 못할 것 정치적 부패 관행에 맞추려는 진실의 왜곡 익숙해지면 보수 신앙 덕목 작동하지 않아 명예는 진실한 경쟁에서 얻게 돼 그 열매 보수신앙 지평 넓혀줄 것 김종준 목사와 민찬기 목사의 차이그들의 진정성과 신앙은 동일교단의 리더십 총대들 열망으로 각인될 것 리더십의 요소는 무엇인가. 지도력은 어떻게 작동하나. 솔선수범이다. 김종준 목사와 민찬기 목사는 목회와 사회봉사에 솔선수범으로 열매를 거둔 인물들이다. 용기는 지도력의 으뜸 덕목이다. 용기는 무엇으로 생산되는가. 용기는 자기희생이다. 김종준 목사와 민찬기 목사는 총회 안이나 밖에서 이기적인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다. “명예와 고귀함은 김종준 목사와 민찬기 목사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검소함으로 치열하게 교회를 세우고 사회봉사를 한 목회자였다. 그들은 도덕적 의무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가졌다. 신앙, 명예, 품격, 도덕적 의무는 지도력의 요소다. 거기에서 보수 신앙의 힘은 자라난다. 그들은 우리 칼빈주의 교단에서 직선제 덕에 오랜만에 마주 대하는 성공한 보수목회의 상징이다. 명예는 의무가 아니라 무형의 자질(intangible quality)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이익에서 벗어난 내적 신앙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부총회장 경선과 맞물리면서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명예는 앞선 간선제 형식의 총회 정치에서 무능과 부패로 밀려났다. 그간 총회 정치에서 아득한 일이었다. 총회 정치의 부패를 걱정해 간선제를 입한 인사들의 기대와 달리 오히려 보수 신앙의 덕목인 용기와 희생, 명예와 품격, 도덕적 의무에서 실패했다. 그것들은 총회 정치 리더십의 작동 장치다. 우리는 그 지점에서 재출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103회 부총회장 경선은 김종준 목사와 민찬기 목사로 말미암아 희망적이다. 그 둘 중 누가 부총회장으로 선출되든 우리 교단은 지혜와 결단력을 겸비한 이승회 총회장 체제와 어울려 칼빈의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열매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김종준 목사는 ‘경청’의 덕을 가지고 있다. 민찬기 목사는 ‘순수’의 열정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경청’과 ‘순수’에서 나오는 지도력은 교단 보수 총대들에 신뢰의 상상력을 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정치력은 권력 남용을 혐오하고 편견이 심한 사람과 음모를 꾸미는 정치꾼을 참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 편의주의나 부패 관행에 맞추려는 진실의 왜곡에 익숙해지면 보수 신앙의 덕목인 용기와 희생, 명예와 품격, 도덕적 의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경쟁자의 찬사를 듣는 자다. 명예는 진실한 경쟁 속에서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열매는 칼빈주의를 믿고 지향하는 보수신앙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라 믿는다. 김종준 목사와 민찬기 목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진정성과 신앙은 동일하다. 우리는 같은 보수신앙의 팀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교단의 표상 ‘합동의 리더십’은 제103회 총대들의 열망으로 각인될 것이다. 그들의 공약은 기호 순에 따라 다음과 같다. 기호 1 김종준 부총회장 출마 목적 교권장악 NO교단섬김 AMEN 1. 총회 핵심 가치가 되는 개혁주의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 계승하겠습니다. 그 기반 위에 총회 헌법과 규칙과 결의를 준수하며 공정한 행정을 집행하겠습니다. 2. 총신대 문제가 총회 가장 큰 이슈입니다. 총신을 교단의 신학교로 반드시 되돌려 놓겠습니다. 3. 다음 세대 부흥운동을 통해 교단과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첫째,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해 상설기구로 ‘주일학교부흥운동본부’ 설립둘째, 사립학교 미션스쿨화 운동 전개셋째, 지역별 거점 주일학교 설립해 주일학교 예배 못 드리는 교회 예배와 교육 지원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으로 부총회장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온유와 겸손의 경청하는 리더십으로 총회다운 총회를 만들겠습니다. 기호 2 민찬기 부총회장 출마 목적 보다 더 나은 총회의 미래를 위해 1. 총회의 발전적 미래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2. 열악한 목회자들의 실제적 도움을 지원하겠습니다. 3. 100세 시대에 걸맞는 정년제 대안을 논의하겠습니다. 4. 총회를 축제적이고 미래 대안을 제시하는 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비상하는 독수리는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폭풍은 순수한 독수리를 더 높이 날아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2018-09-08
    • G.OPINION
    • G.OPINION
    2018-09-08
  • 총회 공직자 자릿값 이름값
    총회 ‘안수증명 사실 확인서’선관위 제출용 발급 밥값이라면 그 근거 서류 필요 밝히는 건총회 고위 공직 국장 이름값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서 말했다. “내 말이 진실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내가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난이 곧 신뢰를 증명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돈과 철학이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반면 소피스트들은 여러 도시에서 강의하면서 수업료로 높은 금액을 불렀다. 일부 부흥사의 은혜와 감동처럼 지식 활동을 금전 척도로 따진 것이다. 어렸을 때 집에 일꾼이 오면 무거운 짐을 다 옮긴 뒤에도 그는 “더 할 일 없소.” 하고 팔을 걷었다. “이제 그만 됐다”는 어머니에게 일꾼은 말했다. “아이고 밥값은 해야지요.” 서로 웃는 낯이었지만 ‘밥값’의 뜻은 엄정했다. 무릇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받은 만큼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의 도리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네받은 품삯을 구태여 밥값이라 부르는 속뜻도 깊었다. 나이가 들어 총회에 나와 보니 밥값 말고도 ‘이름값’이 중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조직에서 다들 크고 작은 이름을 내걸고 살았다. 자신이 잘나서 세운 이름은 일부분이고 대부분 주변에서 거들고 대접해줘서 생긴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값’을 치러야 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닌 ‘나’였던 셈이다. 요즘 총회 지도층 총회 본부 고위 공직자 교단 유명 인사들을 보면서 그들의 ‘밥값’과 그들의 ‘이름값’을 떠올린다. 밥값을 하려면 그 자리에 앉혀준 임명권자가 지시한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할 것이다. 그게 밥값이다. 그러나 총회 공직자로서 이름값을 하려면 임명권자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서 총회와 신앙의 기대치에도 부응해야 한다. 밥값은 기본 필수요 이름값은 그 너머 알파요 신자의 명예라고 할 수 있다. ‘밥값’의 의무감과 ‘이름값’의 신앙 양심이 충돌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총회 국장 노재경이 말하듯이 총회 선관위에 제출할 ‘안수증명서 사실 확인서’라는 해괴한 증명서를 총회장 이름으로 발급하는 것이 밥값이라면 그 서류의 정당성을 입증할 근거서류가 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히는 것이 총회 고위 공직 국장으로서 당연한 책무요 이름값일 수도 있다. 이걸 조화롭게 해결하는 정답이 ‘자리값’이다. 그러나 총회 서류 발급을 관장하는 국장은 정당한 서류인지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전문성과 책임을 당연히 지니고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근거서류의 확인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민감한 사안이라서 거부하는 직권남용을 넘어 더 나아가 10년간의 관행이라면서 목사의 생명인 ‘안수증명서’에 대해 노회가 해야 할 일을 그 일을 해서는 안 될 총회가 증명해 주는 어처구니없는 서류를 엄정한 총회 선관위에 제출하게 하는 것은 사법에서도 중한 죄로 여기는 ‘사문서위조’의 불법을 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서류의 어이없는 내력은 이렇다. 2018년 7월 3일 총회장 이름으로 증명해 주는 총회 임원 후보의 목사 안수는 1995년 3월 9일 안수를 받았는데 영어로 된 졸업증명서는 영어로 ‘fifteenth June of nineteen ninety six’(1996년 6월 15일)로 기록되어 있었다. 신학교 졸업 1년 3개월 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어떤 서류에 근거해 총회 선관위에 제출할 서류로 총회가 2018년 7월 3일 총회장 이름으로 발급해주었는지 기사를 써야하는 기자로서 궁금했다. 반드시 확인을 하고 써야 한다는 소재열 박사의 충고에 따라 총회로 갔다. 총회 총무가 휴가 중이라 그 확인을 전화로 물었더니 출타 중인 담당 국장 노재경에게서 “민감한 사안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을 총무에게서 전화로 전해 들었다. 나중 다른 사람이 노재경에게 물었더니 처음에는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다가 그 서류를 디밀자 10년 전부터의 관행이라 그리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잘못을 범하는 총회 공직자가 또 있다. 임해순이 자기 아들 친구라 데려오고 건강도 여의치 않은 박상범은 오랜 세월 부장과 국장으로 은급재단을 오래 관장하면서 은급사업을 같이 출발한 통합 교단은 4100억이고 우리 합동 교단은 372억에 불과한 사실에 대한 책임 의식은커녕 일말의 양심과 부끄러움도 없다.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총회와 실행위원회와 8회에 걸친 은급재단이사회 결의에 따라 매매계약을 제102회 총회 며칠 전에 체결했다. 그러나 17년 해묵은 납골당 적폐 해소를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기가 바뀌자 총회 결의와 총회장 김선규 재단이사장의 1년에 걸친 재단이사회 해결과정을 보고도 총회 고위 공직자임에도 제102회 회기 내내 신성한 총회 결의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이제 납골당 적폐를 털고 통합 교단처럼 앞으로 나아가자”고 외치고 개혁을 실천한 김선규 총회장의 합법적 매매 계약과 17년 적폐해소 업적을 모독하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 진행 중인 납골당 매매계약 강제 이행 소송으로 재판에 질 경우 하루 270만원 씩 지불해야 하는데도 재판을 이리저리 질질 끌고 있다. 그 재판이 일 년이 다 돼가니 300일만 잡아도 강제 이행금 지불액이 8억 천만 원이다. 다행히 다윗의 별 전계헌 총회장이 지난 번 8월 은급재단이사회 때 은급재단 이사장으로서 1심에서 질 경우 재판을 더 이상 끌지 않고 매각하기로 했으니 그나마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공직을 맡아 자릿값을 못하면 ‘꼴값 떤다’는 소리를 듣다가 종당에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된다. 아니 그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들통 나면 ‘죗값’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세상에서 많이 봤듯이 자릿값 못하면 시간이 흐른 뒤 다음 정권이 반드시 죗값을 묻는다. 택배 기사에겐 밥값을 하는 게 그의 성실이라면 고위 공직자는 자릿값을 하는 게 그의 성실이다. 그렇듯 총회 직원도 총회 공직을 맡아 자릿값 못하고 시간이 흘러 들통 나면 사법에 고발 고소를 당하는 일이 생기고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우리 교단은 정권이 바뀐다는 개념이 없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 실적이 없는 박상범처럼 문책은커녕 총회구정조정위원회 서슬 속에서 국장 진급도 하고 총회 결의를 무시하고 총회 결의와 재단이사회 결의에 따라 매매계약을 한 전임 김선규 총회장의 명예를 모독하는 언행을 일삼고 있어도 별 탈 없이 잘 지낸다. 총회 일이란 그러려니 하니 물론 나도 잘 지내고 있다. 지금 총회 선관위 제출용 ‘안수증명 사실 확인서’라는 해괴한 증명서를 떼 준 일로 그 고위 공직자가 이번 8월 28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 고발을 당했다는 말이 들린다. 성경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한다. 말씀과 총회에 충성하지 아니하고 잘못된 관행에 의지해 반역하는 자는 사법의 책벌과 하나님의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될 것이다. 스웨덴에선 ‘적당히’를 뜻하는 ‘러곰’(Lagom)이란 말을 숭상한다. 식사는 적게 하고 생각은 많이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조화를 중시한다.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어우러져 음악을 만들어내듯 사회 구성원들은 증오를 드러내지 않고 공존을 모색한다. 스웨덴의 가장 큰 자산은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103회 총회에서는 이러한 총회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제도 개선의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자리보전이나 어두운 대가에 길들어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총회의 앞날을 위해 할 일 하는 게 바로 “자릿값을 한다”는 것이다. 노재경처럼 워낙 잘못된 관행에 쪄들어 총회를 이용하는 자에게는 그 꿀맛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고 소태를 씹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총회도 총회 지도자와 총회 공직자가 자릿값과 이름값을 해 전국 교회와 노회가 총회를 신뢰하는 날이 이 사건의 해결을 통해 필히 오기를 바란다.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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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29
  • 김종희 칼럼 - 총회 후보 살리기
    억울한 후보, 총회 현장에서 살리면 된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입후보자 심사가 오는 금요일 오후 3시로 연기되었다고 들었다. 만약 선관위가 떨궈서는 안되는 후보를 떨궈 억울한 후보가 있다면 총회에서 살리면 된다. 총회에서 살릴 수 있는 경우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Ⅰ. 총대 자격을 문제삼아 떨군 후보는 총회 현장에서 살릴 수 있다. ①총회 규칙 제3장 제10조 2. 위원의 임무 6)항에 보면 “천서검사위원은 총회 총대의 천서를 검사하여 적당하지 못한 총대가 있을 때에는 해 노회에 통고하여 재 보고토록 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총회에 보고하여 그 지시대로 한다.”고 되어 있다. ②그러므로 총대의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는 천서검사위원(이하 천서위)의 권한이다. 아무리 선관위가 후보자격이 있다고 합격을 시켜도 천서위가 총대 자격이 없다고 천서를 하지 않으면 후보 자격은 무산이 된다. 그러나 만약 선관위가 총대 선출에 이런 저런 흠을 잡아 후보 자격을 박탈하였는데 천서위가 총대 선출에 문제가 없다고 하면 후보 자격은 다시 살아난다. 그러므로 선관위는 입후보자의 총대 자격에 대하여 의문점이 있을 때는 천서위가 총대 자격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기까지 유보해야 하며 섣불리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 ③헌법 제12장 제6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총회는 매년 1회 정례로 회집하되 예정한 날짜에 회장이 출석하지 못할 때는 부회장 혹은 전회장이 개회하고 신 회장을 선거할 때까지 시무할 것이요, 각 총대는 서기가 천서를 접수 호명(呼名)한 후부터 회원권이 있다.” ④또한 제12장 제7조에는 “...지금 총회는 파(罷)함이 가한 줄로 알며...” 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교단 총회는 폐회하는 것이 아니라 파회하기 때문에 총대권이 없어지고 다시 총회가 회집되어 서기가 호명을 한 후 총대권이 다시 부여된다. ⑤그러므로 선관위가 모든 후보를 확정하여 발표한다 할지라도 총대권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기로부터 호명을 받아 총대권(회원권)을 받을 것으로 간주하여 발표하는 것이다. 총대권의 심사는 천서위에 있다. 그러므로 선관위는 총대 선출 과정의 문제나 총대권에 흠집을 잡아 후보자를 떨궈서는 안된다. 천서위가 선관위와 견해를 달리하여 총대권을 주고 이 사실을 서기가 총회 현장에서 보고하면 뒤집혀진다. Ⅱ. 개혁교단 때 총대권 문제로 떨군 후보는 총회 현장에서 살릴 수 있다. ①2005년 6월 21일 합동교단 총회장 서기행목사님과 개혁교단 총회장 홍정이목사님이 작성한 문건에는 ‘합동 원칙 합의서’라고 되어 있다. 또한 제90회 총회때 받은 보고에 보면 “ 1) 본 교단 영입위원(합동)의 보고는 받고 합동한다.”로 되어 있다. ②개혁교단과 합동교단이 합동하였다는 사실을 총회 현장에서 한번 더 확인하고 개혁교단에 있을 때 총대권을 인정하자고 가결하면 총대 횟수 때문에 떨어진 후보를 살릴 수 있다. ③Ⅰ항 Ⅱ항 모두 총회장이 선관위원장에게 선거에 대한 업무를 넘기기전에 해야 한다. 선관위원장이 바톤을 받으면 선거에 영향을 주는 발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총회 화합에 해되게 행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총회장님과 총대들의 열심이 있기에 가능하다. Ⅲ. 선관위원장에게 총회 현장에서 살릴 억울한 후보가 없는 심사를 주문한다. ①모노회가 총회 임원회에 청원하기를 선관위원장인 이목사가 속한 한서노회가 임시목사 신분이었던 이 목사를 6차례나 총대로 파송하고, 노회장으로 선출했다며, 이는 “미조직교회(임시목사)는 노회장과 총대가 될 수 없다”는 제87회 총회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선관위원장 교체를 요구하였다. ②그러나 선관위원장은 과거 이 문제로 98회 총회에 부서기로 출마했다가 후보 자격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총회 결의를 위반한 것에 대하여 댓가를 받은 셈이다. 헌법 제13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이 있다. 한번 댓가를 받은 과거사를 꺼내 인격적 모독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앞으로 남은 업무를 현명하게 처리하여 역대 존경받는 선관위원장으로 남기를 바란다. Ⅵ. 결론 ①선관위는 무조건 밀어 붙이면 끝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무리 확정을 해도 본 회에서 뒤집혀지면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②제100회 총회때 선관위에서는 다 확정된 후보였지만 본 회에서 자격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적이 있다. 반대로 선관위가 자격이 없는 것으로 탈락시켰지만 본 회에서 후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총대 선출 문제나 총대권에 흠을 잡아 탈락시켰을 경우 본회에서 뒤집힐 수 있다. 총대권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리는 권한은 천서위에 있기 때문이다. ③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왠만하면 모두 후보가 되게하여 총대들의 선택을 받도록 하자. 단일후보 만들고 붙일려고 하는 측에 더 큰 흠이 있을 수 있다. 김종희목사(부산 성민교회 당회장)201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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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14
  • 김종희 칼럼 - 선거관리 제언
    ‘목사안수 증명서’ 안수 받은 노회에서 발급받아야 편목과정 한 분들 과거 교단 안수증명서 제출해야 가입 노회 안수증명서 제출한다면 안수 받지 않은 노회 안수 받은 듯 허위 서류 제출해 떨궈야 모든 총대원이 인정할 결정적 하자 아니라면 단일 후보 만들려 하지 말고 모두 후보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 뜻 따라 선출 바람직 팔이 안으로 굽어서는 안 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이 있다. 팔이 자기 쪽으로 굽듯이 누구나 친한 사람을 더 챙겨주고 싶고 정이 더 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에도 이 속담이 끼어들 때가 많다는 것이. 이왕이면 같은 기수를, 같은 지역 사람을, 같은 모임의 멤버를, 평소 안면이 있는 사람을, 챙겨주고 덕을 볼 수 있는 사람 쪽으로 팔은 굽으려고 한다. 그래서 혈연과 지연과 학연을 따져 가며 팔을 뻗치고, 아예 다른 팔들은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아낸다. 팔이 안으로 굽을 경우는 이미 누구 손을 들어 줄 것인가를 정해 놓고 하는 까닭이다. 이기게 하려는 쪽은 어떤 이유로든 이기게 하고 지게 할 쪽은 이런 저런 흠을 잡아 기어이 지게하고 만다. 선관위가 모든 후보를 동일 선상에 놓고 팔이 안으로 굽는 심사만 하지 않는다면 지탄받을 일이 없다. 사전에 누구는 이런 저런 사유로 떨궈야 하고 누구는 붙여야 한다는 식으로 이미 팔이 안으로 굽어 있다면 비난받을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Ⅰ. 총대 선출 문제로 떨궈서는 안 된다. ① 총대 선출방법은 각 노회가 정한 투표 방법으로 하면 되는 것이 총회 결의이다. 이렇게 결의한 것은 총회 때마다 총대 선출에 대한 문제로 발목을 잡으려는 시빗거리를 없앤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투표 방법에는 무기명 비밀투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명 공개투표, 기립투표, 거수투표 등등. 어떤 투표로 했든 상관이 없다. ② 또한 임원회, 증경회장단, 전형위원회 등에 맡겨 해도 상관없다. 노회가 대표자를 선정하여 선출하는 간접투표 방법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를 대표자를 선정하여 맡겼기 때문에 곧 자신이 투표한 원리이다. 선출의 방법을 해당 노회가 만장일치 결의로 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각 노회가 방법을 정하여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총회 결의이기 때문이다. ③ 혹 이의가 있어 소원을 할 때는 권징조례 제86조에 의하여 노회에서 결정할 때 참석하였던 자 중에 3분의 1이 연명하여 소원을 선언하면 소원이 성립하지만 소수의 회원이 하는 소원은 성립될 수 없다. 그리고 소원을 할 때도 하회 결정 10일 이내 해야 한다. ④ 또한 노회에서 올린 총대 중 문제성이 있는 인물이 있다고 하여 전체 총대를 무효로 할 수 없다. 총회규칙 제3장 10조 2. 6에 보면 “천서검사위원은 총회 총대의 천서를 검사하여 적당하지 못한 총대가 있을 때에는 해 노회에 통고하여 재 보고토록 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총회에 보고하여 그 지시대로 한다.”고 되어 있기에 다시 보고토록 하면 된다. 총대 교체는 헌법 제22장 제2조에 따라 총회 현장에서까지 할 수 있으므로 해당 노회 총대 중에 문제성이 있는 총대가 혹 있다하여도 그 총대가 입후보자가 아닌 이상 입후보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 Ⅱ. 개혁교단 때 총대 횟수를 인정하지 않는 심사(審査)로 떨궈서는 안 된다. ① 이미 필자는 지난 글에서 “개혁교단과 합동이 합동했기 때문에 두 교단의 헌법과 역사는 총회가 하나 되기로 한 가결 속에 두 교단 헌법과 역사가 일시 정지되거나 일시 폐기되면서 합동교단 헌법과 역사를 따라 다시 시작하였다. 역사와 헌법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② ‘합동원칙 합의서’ 3항은 “합동총회 대의원(총대)은 제90회 합동 총회에 한하여 양 교단이 인정한 자로 한다.”고 되어 있다. 3항의 의미는 이전에는 양 교단이 아닌 자기 교단에서 인정받으면 되었다. 합동을 하고 난 후에도 한 교단이 되었으니 한 교단에서 인정받으면 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합동하는 총회에는 서로 각자 교단에서 뽑아 왔으므로 이 총회에서 만큼은 양 교단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조항은 개혁교단의 총대 횟수가 90회 총회부터 출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합동교단이나 개혁교단 구성원 모두가 90회 총대는 양 교단이 인정하므로 허락되었다는 것이고 그 이전이나 이후는 한 교단에서 허락하면 인정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합동 전 개혁교단에 있을 때 나간 개혁교단 총대횟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합동 전 합동교단에 있을 때 나간 합동교단 총대횟수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 ③ 개혁교단으로 있을 때 총대로 나간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회의록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회의록이 없다면 다른 증거로 증명력을 보이면 된다. 증거의 종류에는 크게 3종류가 있다. 회의록이나 계약서나 확인서 등으로 증명하는 서증이 있다. 사건 현장을 목격하거나 함께 참석한 증인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검증이나 사실조회 등을 통한 기타증거들이 있다. ④ 당시 총대로 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인을 세우면 된다. 그 증인의 말이 논리적 경험칙에 반하지 않으면 된다. 그 증인의 말이 논리적 경험칙에 부합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선관위 몫이다. 오로지 서증(書證)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문서에는 있는데 그 당시 사정으로 참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서증의 방법보다 증인의 증명력이 더 신뢰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에 ‘사실조회신청서’를 청구하여 선관위가 어떤 방법으로든 사실 조회를 하여 총대권을 인정하여 주는 것이 합동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⑤ 상황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 이미 출생을 하였는데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을 때는 동거하는 친족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사나 조산사 기타의 자가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는 법이 있다. 사람과 현실은 존재하고 있는데 과거 상황이 문제라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과 현실을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합동이 되었고 합동정신을 살려 나가야 한다면 꼭 서증의 방법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고 사료된다. Ⅲ. 팔이 안으로 굽어 반드시 떨궈야 할 입후보자를 붙여서는 안 된다. ① 회전문(回轉門) 입후보자는 누구든 떨궈야 한다. 총회규칙 8조 7항 정치, 교육, 고시, 신학, 재판, 재정, 감사(7개) 등의 상비부에서 나온 후 2년 이내 그 부서에 들어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감사부에는 평생 1회만 들어갈 수 있다.) 회전문 인사는 총회 사무국에 자료를 요청하면 금방 알 수 있다. ② 노회 당회수를 정확히 파악하여 21당회 미만 노회에서 입후보한 후보자는 떨궈야 한다. 총회 일을 해 보면 애로사항이나 의심점이 있는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가 참으로 문제이다. 과연 21당회가 되는 노회인가 하는 의심스러운 노회에 대하여는 선관위, 교회실사후속처리위원회, 천서위원회가 합동으로 조사하기를 제안하며 사실로 들어나면 총대 파송도 할 수 없고 해당 노회의 입후보자도 떨궈야 한다. ③ ‘목사안수 증명서’는 반드시 목사안수를 받은 노회에서 발급받아야 한다. 편목과정을 한 분들은 과거 안수 받은 교단에서 안수증명서를 떼서 제출해야 한다. 만약 가입 노회에서 안수증명서를 받아 제출한다면 안수를 받지도 않은 노회에서 안수를 받은 것처럼 허위 서류를 제출한 것이기에 떨궈야 한다. Ⅳ. 동일노회에서 기관장과 임원이 출마할 경우는 떨궈야 하나? 붙여야 하나? ① 총회 선거규정 제5조 5항에 “위원이 시무하는 동일노회에서 총회임원 및 기관장 입후보자 등록과 동시에 자동으로 해임된다.”는 규정이 있다. 이는 선관위원과 임원 또는 선관위원과 기관장을 동일 노회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논리라면 임원과 기관장이 같은 위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원과 기관장이 동일노회에서 입후보하는 것은 동일노회에서 임원이 두 명 입후보하는 것, 또는 기관장이 두 명 입후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사료된다. ② 총회 선거규정 제4장 제14조 4항에 “동일 노회에서 총회임원 1인과 상비부장 1인을 초과한 경우(단, 입후보자 중 총회 임원이 목사인 경우 상비부장은 장로로 하고 총회 임원이 장로인 경우 상비부장은 목사로 한다.)”로 되어 있다. 이는 동일 노회에서 임원 1명과 상비부장 1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은 목사여야 하고 한 명은 장로여야 한다. 목사 둘이 임원과 상비부장으로 나오거나 장로 둘이 임원과 상비부장으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둘이 나올 수는 있으나 목사 1인 장로 1인의 규정을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동일노회에서 목사 두 명이 기관장과 임원으로 나오거나 장로 두 명이 기관장과 임원으로 나오는 것은 이 법정신에 맞지 않는다. 백분 이해하여 임원이 목사이면 기관장이 장로이거나 임원이 장로이면 기관장이 목사인 경우라면 몰라도 동일노회 동일직분으로 2명은 설득력이 없다. ③ 또 총회 선거규정 제20조에 보면 총회장과 부총회장을 제외한 여타 임원은 입후보자 발전기금 및 등록금이 2천만 원이고 기관장도 2천만 원이다. 임원과 기관장 금액이 동일하다. 2천만 원 등록금인 임원과 2백만 원 등록금인 상비부장이 동일 노회에서 나올 경우도 직분이 중복되지 않도록 하였다면 하물며 동일한 2천만 원의 임원과 기관장이 동일노회에서 동일 직분으로 나오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Ⅴ. 결론 금번 선관위는 팔이 안으로 굽지 않기를 기대한다. 필자가 과거 정치부장으로 나왔을 때 경쟁후보가 4명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상대 후보가 다 떨어지고 나 혼자 단독 후보가 되어 제비도 뽑지 않고 투표도 없이 당선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4명 모두 후보자가 되어 제비도 뽑고 투표도 하여 당선되니 일절 잡음이 없고 기쁨도 컸다. 털어보면 조금씩은 다 먼지가 나게 마련이다. 모든 총대원이 인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하자가 아니라면 단일 후보 만들려고 하지 말고 모두 후보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출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된다. 김종희목사(부산 성민교회 당회장) 201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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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4
  • 교수 윤익세 목사
    교수 윤익세 목사 자신에 관한 제102회 총회 결정 문제 삼아 총회와 선관위 정면 도전 기사 게재 이런 행위는 자신의 문제를 빌미 자신의 정당성과 정치적 입지를 알리는 고도의 선거운동이기도 해 총회재판국 국장 허은 전주동부교회 분쟁 상소 건 부당 처리 항의 답변권징조례 76조 판결 전 선전 금지 위반 아주 바쁜 그에게도 보이지 않는 구석이 있다. 미국에서 불의의 사로로 떠난 아내를 잊고 다시 결혼하려는 마음이 있다. 칼빈대에도 사무실이 있으며 교회에도 사무실이 있다.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올라갈 수 없는 계단이 있으며 성장을 위해 시간이 무한정 들어가는 믿음도 있다. 맞물린 교수와 목사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의 경력의 대부분은 거기서 쌓았으며 신학대 교수이고 교회 목사이니 둘 다 사실 믿음과 관련된 일이다. 물고기도 아니고 밀가루도 아니니까 붕어빵의 깊은 고민과 비슷한 처지다. 붕어빵은 늘 같은 모양이다. 제가 붕어빵이라는 데 한 점의 의문도 없다. 그도 그렇다. 나는 칼빈대 교수이고 아산사랑의교회 목사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나 교수와 목사인 그리고 총대로서 재판국원이고 부서기 후보인 그는 그인가. 믿기 어려운 때가 있다. 부인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 안에 다른 시간들과 온갖 장소들에서 변하는 낯선 인격들이 우글거린다. 그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2018년 7월 6일 하야방송 - 예장합동 103회 총회 앞두고 ‘이중직’에 대한 총대권 ‘이중잣대’ 논란 제하의 단독 특종 기사를 내보냈다. 그 주장의 개략은 이렇다. 헌법에 이중직은 총대 될 수 없다는 조항 없어 예장합동(총회장 전계헌 목사)이 9월에 개최되는 103회 총회를 앞두고 ‘이중직’에 대한 “이중 잣대를 헌법에 이중직은 총대 될 수 없다는 조항 없어 예장합동(총회장 전계헌 목사)이 9월에 개최되는 103회 총회를 앞두고 ‘이중직’에 대한 “이중 잣대를 대지 말라”는 주장과 함께 이 문제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2회기 총회에서 김선규 총회장은 교수와 목회를 하는 이중직이 있다며 103회 총회 전에 교수를 할 것인지, 목회를 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노회에서는 이중직을 정리해서 올리는 것으로 결정한 바 있다... 헌법에 이중직은 총회 총대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이 없는 상황이기에 ‘이중직’ 총대 자격에 대한 기준은 정치적인 논리보다는 형평성 부분으로 처리해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이와 관련해 충남노회(노회장 윤익세 목사)는 ‘이중직에 대한 질의 건’이라는 제하로 총회에 질의서를 접수했다. 질의서에 명시된 질의 내용은 ▲이중직은 총회 총대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이 헌법 어디에 등재되어 있는지 답변해줄 것과 ▲헌법에 없는 내용을 총회가 결의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사례비를 받지 않아도 직이 두 개이면 이중직에 해당하는 것인지, ▲이중직이 있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물었다. 이같은 질의에 대한 답을 6월 15일까지 총회에 요구했지만 총회에서는 아직 답이 없으며 현재 이와 관련해 규칙부로 넘겨져 진행가운데 있다. 교수 윤익세 목사는 총회 임원 후보로서 어떤 언론 플레이도 하면 안 된다. 더욱이 선거 후보 등록기간에 재판국장 경력의 엄격한 법통 경력의 그가 기독신문도 안 되는데 사설 언론에 위법인 줄 알면서 왜 자신의 문제를 항변했을까. 칼빈대는 교수 윤익세 관련 총회의 질의에 윤익세 목사는 칼빈대 교수라고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선관위는 왜 말이 없는가. 102회기 총회에서 김선규 총회장은 교수와 목회를 하는 이중직이 있다며 103회 총회 전에 교수를 할 것인지 목회를 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노회에서는 이중직을 정리해서 올리는 것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선관위는 차세대 총회 지도자로 떠오르는 김용대 목사의 부서기 후보직은 구개혁 측 총대 문제를 인정할 수 없어 총대 자격이 미달된다며 전체 투표까지 해 반려 결정을 재빨리 공지했다. 그런데 그와 달리 교수 윤익세 목사 문제는 총회 결의 문제이니 제103회 총회 현장까지 가져가기 위해서인가. 총회선거관리규정 제26조 (선거운동의 범위와 한계) 5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노회 추천을 받은 입후보자는 추천을 받은 날로부터 개회 전까지, 그 외의 입후보자는 등록마감일로부터 개회 전까지 모든 언론에 광고 및 인터뷰 등을 통해 본인과 소속 교회를 알리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단, 언론을 통한 선거운동은 등록마감일부터 총회 개회 전까지 총회 기관지를 통해서만 할 수 있고, 5단 광고(경력사항 포함) 4회까지 게재할 수 있다. 교수 윤익세 목사는 자신에 관한 제102회 총회 결정(자신의 문제 현장 처리를 모면하게 해 준)을 문제 삼아 총회와 선관위에 정면 도전하고 항변하는 기사를 단독 게재했다. 게다가 이런 행위는 자신의 문제를 빌미로 자신의 정당성과 정치적 입지를 알리는 고도의 선거운동이기도 하다. 그가 소속한 총회재판국 국장 허은에게 전주동부교회 분쟁 상소 건을 부당하게 처리한 항의를 했다. 그의 대답인즉 이렇다. 허은: ... 14인 장로 측에서 제기한 모 언론 기사 보도와 함께 제출된 76조 위반 건에 대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76조는 무슨 내용입니까. 허은: 권징조례 76조에 대하여 판결 전 선전 금지 위반에 대한 건입니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9장 상소하는 규례 제 76 조상회는 어느 때를 물론하고 그 소속 하회가 헌법에 위반되게 처리한 사건이 있는 줄을 확인하면 하회로 하여금 정한 처소에 그 문부를 가지고 와서 처리한 형편을 보고하게 할 것이요, 그 착오된 사실이 명백히 발견되면 상회가 직접 변경하든지 하회에 환송하여 처단할 것을 지도할 수 있다. 혹시 어떠한 소원이나 상소를 불문하고 본 치리회나 혹 그 재판국에서 재판하는 중 판결 언도 전에 피고 혹 원고가 상회원에게나 일반 민중에게 대하여 변론서나 요령서를 출간 혹 등사하여 직접 혹 간접으로 선전하면 치리회를 모욕하는 일이니 그 행동을 치리하고 그 상소를 기각할 수 있다. 법에 정통한 허은은 언론 자유에 근거한 언론 비판이나 정황 보도를 지례 판단한 것까지는 좋은 데 장로 측 옹호 최성관 기사는 문제 삼지 않았다. 게다가 그 법을 따라 그 상소를 기각하지 않고 법을 초월하는 불법적 합의문으로 절대 다수의 상대를 교회에서 축출했다. 한 교회가 세 교회로 분리되는 이만 교회 운동에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 합의서 내용은 뭘 모르는 순박한 목사와 장로는 겁박해 얻어낸 합의서임을 그 합의 7개 조항마다 총회재판국장 허은과 중전주노회장 김형래와 상소인 김중경 등의 붉은 인주 자국처럼 교인들의 통한의 피와 하나님의 진노가 서려있다. 그 사실을 당사자들이 모른다면 그 처리는 제103회 총회와 하나님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으리라. 어쨌든 그들은 권징조례 적용으로 한 개인이 아닌 한 교회를 삼분(三分)시키는 처리를 감행했다. 그 사건에 직간접으로 간여했을 총회와 총회재판국원 실세이고 칼빈대 교수 충남노회장 윤익세 목사는 총회 임원 후보로서 총회선거관리규정이 금한 자신의 문제를 항변하고 자신의 위세를 기관지 기독신문이 아닌 사설 언론에 선전했다. 더욱 궁금한 것은 어떻게 그 사설 언론은 이러한 은밀한 특종을 단독으로 입수했을까. 그리고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구개혁 측까지 들먹이며 막가는 지엄한 선관위 이은철 위원장은 총회선거관리규정 제26조 (선거운동의 범위와 한계) 5항을 위반한 교수 윤익세 목사의 사설 언론 항변 사실을 몰랐을까. 그래서 지금까지 교수 윤익세 목사의 그 사실을 뭉개고 있는 것일까. 유신 반대 유인물을 돌린 경기고 학생 노회찬이 드루킹 관련 4000만 원 강연료 문제로 2018년 7월 23일 국회의원 직에도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 노회찬은 여성·장애인·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눈물 흘리고 힘겨운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에 전력을 다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 2004년 호주제 폐지 법안 대표 발의자가 바로 노회찬이었다. 보수정치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비판을 하되 적대적이 아니었고 물러서지 않았지만 상대를 모욕하지 않았다. ‘깨인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노회찬은 밑창까지 닳아버린 구두와 지구에서 달나라까지 가고도 남는 거리를 11년간 달린 낡은 승용차로 힘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찾아다녔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했던 노회찬은 우리 총회 차원에서 바라보면 얼마 안 되는 하찮은 과오를 자책하고 스스로를 정죄(定罪)했다. 교수 윤익세 목사 그가 교수와 목사로서 무얼 가르치는지는 몰라도 그가 무얼 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한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 목사 이제 돈 안 먹어.”“(칼빈대) 총장에 선출되면 정치를 그만 두겠다.”“월급은 사실 ...다.”“분쟁 교회 해결은 재판이 아니라 상담이 최고다.” 이중직 어디에서도 돈을 안 받는다는 의사를 사설 언론에서 피력한 그는 고급 새 차를 타고 다닌다. 그의 자녀는 미국에서 학교 다니며 살고 있다고 한다. 교인은 얼마 되지 않는다. 노회찬은 강연료 고작 4000만 원 때문에 부끄럽고 후회스럽다며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교수 윤익세 목사에게는 후회스러운 일이 없었을까. 그는 각종 병아리 분양을 즐긴다. 그래서 여느 목사 사무실과 달리 그의 교회 사무실에는 병아리들이 부화해 자라고 있는 유리 상자가 있다. 아마 그런 그는 또 다른 분야의 학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교수로서의 저서나 논문에 대해 본인이나 타인이 말해 준 적이 없다. 그의 큰 후원자는 얼마 전 제주도 농장으로 은퇴한 김희태 목사이다. 앞으로 그에게서의 후원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칼빈대 당국자가 그가 교수가 맞느냐는 총회 질의에 교수가 맞는다고 답변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총회가 묵묵부답이라고 그는 항변한다. 허은은 전주동부교회 목사 측에 상소를 기각시키고 불리한 합의를 한 근거가 언론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7월 6일 후보 등록기간 중에 기독신문도 아닌 다른 언론에 언론플레이를 한 교수 윤익세 목사는 괜찮은가 아니면 선관위 자체가 모르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심의 중인가. 세상이라는 공간에 역사라는 시간이 거쳐 가다 보면 원한이 쌓이기 마련이다. 원한 중에서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을 누군가가 해치는 일이다. 해서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는 ‘부지수 불여공대천(父之讐 不與共戴天)’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갈갈이 찢어놓고 사랑하는 신자들의 믿음을 죽이는 사람들과 어찌 하늘을 같이 할 수 있겠는가. 그 교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한데 주님의 몸을 해하는 불법을 저지르고도 이죽거리며 활개치고 다니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도 이 총회다. 한번 거짓을 눈감아주면 다른 거짓이 우후죽순 생겨날 수밖에 없다. 거짓말로 얻는 이익이 그것으로 잃게 되는 대가보다 크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총회가 그렇다. 법정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도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작년에만 1516명이다.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수사기관에서의 허위 진술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우리 총회도 믿음과 양심을 떠난 거짓말을 죄악시하지 않는 행습이 그런 세상 문화 속에서 싹텄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출 20:16)이다. 열매로 그 나무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다는 주님 말씀의 시금석은 이 계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짓을 태연히 말하는 사람은 며칠 뒤에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그러면 그 신앙 나무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다. 총회 지도자의 입후보 자격은 무엇보다도 세상처럼 거짓이 드러나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준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자괴감(自愧感)이 든다. 이제 지하철에서의 다툼으로 가해자가 되어 벌금 30만 원 형을 받았다. 그래서 기다리던 끝에 오늘 나는 ‘벌금을 가납하지 아니하면 1일 10만 원 상당의 노역에 처한다’는 그 선고문에 기록된 대로 의정부 교도소로 입소하여 죄수의 체험과 회개 기도하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부족한 총신 72회 동료 목사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란다. 2018-07-3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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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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