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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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 정치가 김상현에게 묻는다
    총회 무게 있는 부서의 장을 용하게 맡는 재주의 정치가 김상현이 총회 화합의 사도 박병석 목사 방장 카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죄송합니다만 될 수 있으면 정치 이야기하지 말고 은혜받는 혹은 미담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에 근거하고 그간의 유력 신문 기사를 살펴 카톡방에 올린 다음과 같은 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이나 배광식의 서사는 극적이지만 진실에 대한 믿음이 없다. 비겁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 집착했으면서 초연한 척하고 사익를 탐했으면서 개결한 척한다. 무사안일을 갈구하면서 당당한 척하고 잘못했으면서 정당한 척한다. 그들의 재임은 의심과 허위의 기간이다. 맥베스에서의 셰익스피어 표현을 빌리면 “아라비아의 향수도 그의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을 내려다보며 손을 씻는 빌라도처럼 능청스레 변명해도 후일 역사는 바르게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정치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바르게 하도록 회초리로 치는 것을 뜻하는 합성어이다.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스러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물(水)이 넘쳐 생긴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하고 부조화한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다른 말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게 정치다. 따라서 정치가(政治家)는 먼저 세상과 자연의 이치에 조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스려 극복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 곤란함, 부조화로운 면을 제거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즉 군자 또는 의인을 의미한다. 배광식이 총신 졸업생들에게 전한 성경 말씀 내용이 정치의 본뜻이고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도 그런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신 졸업식장의 배광식을 통해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김상현의 말이나 행동과 달리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 노회) 시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최초의 헌장에 근거해 제정되고 공표된 총회 헌법 정치편에서 정치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1장 원리 예수교 장로회 정치의 일정한 원리 8개 조가 있으니 이것을 이해하여야 교회의 성질을 알 것이다 제1조 양심 자유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過分)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人類)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侵害)하지 못한다. 제2조 교회 자유 1. 전조(前條)에 설명한 바 개인 자유의 일례(一例)로 어느 교파 어느 교회든지 각기 교인의 입회 규칙과 입교인 및 직원의 자격과 교회 정치의 일체(一切)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설정(設定)할 자유권이 있다. 2. 교회는 국가의 세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국가에서 각 종교의 종교적 기관을 안전 보장하며 동일시(同一視)함을 바라는 것뿐이다. 제3조 교회의 직원과 그 책임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지체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직원을 설치(設置)하사 다만 복음을 전파하며 성례를 시행하게 하실 뿐 아니라 신도로 진리와 본분을 준수하도록 관리(管理)하게 하신 것이라. 이러므로 교우 중에 거짓 도리를 신앙하는 자와 행위가 악한 자가 있으면 교회를 대표한 직원과 치리회가 당연히 책망하거나 출교할 것이라. 그러나 항상 성경에 교훈한 법례(法例)대로 행한다. 제4조 진리와 행위의 관계 진리는 선행의 기초라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으로 성결하게 하는 경향(傾向)에 있으니 주 말씀하시되 ‘과실로 그 나무를 안다’ 하심과 같으니 진리와 허위(虛僞)가 동일(同一)하며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든지 관계없다 하는 이 말보다 더 패리(悖理)하고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신앙과 행위는 연락하고 진리와 본분은 서로 결탁(結託)되어 나누지 못할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리를 연구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또한 김상현의 말대로라면 세례 요한은 당시 집권자인 헤롯의 비리를 정치적으로 지적한 죄로 목이 잘렸다. 성경은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마 14:3-12 성경은 김상현의 말대로라면 그가 지적하는 정치 기사로 넘친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에서 그 부분들은 제하고 읽고 따라야 하는 것인가. 총회 산하 수도노회 소속 목사인 김상현은 무엇을 믿고 살고 총회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위해 왜 정치하는지를 총회 정치가 김상현에게 묻는다. 세례 요한처럼 목이 잘릴 염려는 전혀 없겠지만 대한민국의 법정에 피소당할 수도 있는 각오는 가지고...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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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6
  • 총회장이 되려는 이유
    얼마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2021년 12월 5일)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캔자스주를 대표하여 연방 하원 (1961년~1969년)과 연방 상원(1969년~1996년)을 지냈으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였다. 2021년 12월 5일 (98세)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결점이 될 때까지(to a fault).”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 ‘결점이 될 때까지’라는 표현은 밥 돌에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며 “타협(compromise)은 결코 더러운 단어가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노(老) 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다.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무지 신경을 씀.’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총회장을 지낸 소강석, 현재 총회장 배광식, 그리고 2년 뒤 총회장이 되고 싶은 장봉생 등에게 총회장을 하려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목사가 되어 총회장이 되려면 공부 잘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믿음의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마음껏 꿈꿀 수 있다고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모사를 다른 총회장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우리 솔직히 말하자. 죽음 앞에 선 이번 증경 총회장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결점이 될 때까지(to a fault).” 202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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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30
  • 총회와 사회 사문서위조 차이
    고3 학생이 성적이 안 좋아 정경심 조국 자녀와 달리 정원 미달인 학교만 찾고 있었다. 하루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물으셨다. “너는 천국에 가고 싶냐, 지옥에 가고 싶냐.” 그러자 학생이 잠결에 말했다.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가 인원 미달이에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이른바 대학 입학을 위한 ‘7대 스펙’에 대해 1.2심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에서도 모두 허위라고 판정했다. 대법원이 자녀 입시 부정과 사모펀드 불법 투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장관 아내 정경심(60) 동양대 교수에 대해 징역 4년형을 확정하면서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2년 1월 27일 오전 10시 15분 사문서위조 및 행사,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및 업무방해와 자본시장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총 15개 혐의로 기소된 정 전 교수에 대해 징역 4년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1.2심과 마찬가지로 정 교수의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한 7가지 혐의 모두를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앞서 1.2심 재판부는 여론을 둘로 쪼갠 시발점이 된 입시 비리에 허위와 뻔뻔한 태도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했다. “입시제도 자체의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과 기대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재판 내내 입시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태도로 범행의 본질을 흐리면서 정 교수 가족에 대한 선의로 사실과 다른 확인서를 작성했을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2019년 10월 23일 구속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 전 교수는 2024년 5월경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정 전 교수는 2020년 5월 19일 구속기한 만료로 석방돼 같은 해 12월 23일 실형 선고 때까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동양대는 자녀 입시 비리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1.2심 판단 등을 근거로 정 전 교수를 지난해 8월 31일 면직처리 했다. 대법원이 동양대 PC 증거 능력을 인정하면서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21-1부(부장판사 마성영)에서 공전 상태였던 조 전 장관의 아들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진행된 재판도 속도를 내게 됐다.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은 27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은 데 대해 “정의와 상식에 맞는 결과”라고 했다. 한 검사장은 당시 수사팀을 이끌었다. 한 검사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말했다. “2019년 8월 이후 오늘까지 더디고 힘들었지만 결국 정의와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 첫 압수수색은 2019년 8월 27일에 이뤄졌다. 시간이 꽤 흐른 셈이다. 한동훈(48)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찰 내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밑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이른바 ‘적폐 수사’를 총괄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9년 ‘조국 일가 수사’를 지휘한 이후 작년에만 세 번 좌천됐고 1년 내내 ‘채널A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2021년 2월 15일 여권에선 윤 총장이나 당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정권 수사’를 했다고 의심한다는 조선일보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윤 총장이나 저나 눈 한번 질끈 감고 조국 수사 덮었다면 계속 꽃길이었을 겁니다. 권력의 속성상 그 수사로 제 검사 경력도 끝날 거라는 거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하나 덮어 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겁니다. 직업윤리죠.”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도 4년을 확정받은 것과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고통스럽다”라며 마음을 밝히며 27일 오후 조 전 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렸다. “오늘 저녁은 가족이 모여 따뜻한 밥을 같이 먹을 줄 알았으나 헛된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도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아직 젊은 자녀들은 자신이 느끼는 애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슬픔을 다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당혹스러울 것이다. 애도, 고통, 슬픔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줄 누군가가 그들에겐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은혜로운동행 기도운동 본부장 장봉생의 기도와 위로가 절실할지도 모르겠다. 조국은 자녀를 위해서 사문서위조를 범한 까닭에 그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 반면 박상범은 총회를 위해서 사문서위조를 범해서인지 정년을 1년 연장해 채우고도 또 1년을 계약직으로 연장해 평직원이 아닌 국장대행까지 버젓이 맡게 된 것은 배광식의 은혜로운동행의 은혜 탓일까. 그래서 박상범보다 입사 연도가 빠른 박영신 부장을 법인국으로 전보시켜 그의 지시를 받게 하는 건가... 배광식이나 박상범에게는 한동훈 검사 같은 직업윤리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총회 생태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총대나 지도자가 안 보인다. 총회 선거의 선별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언론과 총대의 직업과 신앙 윤리가 실종됐다. 불의를 예방하는 양심이 사라졌고 돈만 앞세운 총회 후보·총대만 있고 당연히 있어야 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비전과 양심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신앙을 위해 순교하는 신앙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교단의 회원이다. 그리고 교회를 위한 진리 수호를 위해 이단 판결 권한과 의무를 가진 총회 소속이다. 그래서 WCC 문제로 1959년 통합 측과 결별할 때 우리는 재산을 포기하고 빈 몸으로 나와 지금의 총회를 이루었다. 그런 우리 총회가 은급재단 납골당 문제로 사문서위조를 한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목사와 장로 가운데 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조국 사태처럼 우리는 정의와 상식 그리고 신앙 윤리에 맞는 결과를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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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8
  • 배광식과 장봉생의 기도운동
    어떤 기업인이 기도를 하려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는데 누군가 먼저 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십만 원만 주세요. 십만 원만 주세요.” 그래서 그 기업인은 지갑에서 십만 원을 꺼내 기도하던 사람에게 주었다. 기도하던 사람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나갔다. 그 기업인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제 기도에만 집중해 주십시오.” 언어는 마음을 감추는 수단이다. 거짓말이나 허언( 虛言)을 꿰뚫지 못하면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흐려진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이 '뒤통수를 맞는 것'인데 눈이 흐려지면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육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갈수록 도진다. 돌이켜보면 거짓말의 달콤한 유혹보다 그 말에 미혹 당하는 내 욕심과 잘못이 크다. 보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들어서 자초한 탓이기 때문이다. 유교의 시조(始祖) 공자(BC551년~BC479년)와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발전시킨 유학자 맹자(BC372년?~BC289년?)는 사람 공부와 세상 공부의 요체로 '지언'(知言) '말을 듣고 아는 것'을 꼽았다. 공자는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맹자 역시 '지언'(知言)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내세운다. 공자와 맹자는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찾는 연대를 마흔으로 잡는 데서도 일치했다. 나이 마흔에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분명해졌다는 이야기다. 지언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 못지않게 내가 불혹과 부동심의 올바른 잣대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공자라고 처음부터 사람 보는 데 눈 밝고 귀 밝은 것은 아니었다. 구변 좋은 제자 재아에게 혹했다가 된통 당하고선 토로했다. "내가 예전에는 사람을 볼 때 말만 듣고도 믿었는데 이제는 그 말을 들으면 실제 행동까지 대조해 보고서야 그 사람을 믿게 되었다." 공자는 제자 재아에게 속은 덕에 바뀐 것이라고 토로한 것이다. 맹자는 철학자답게 지언의 4가지 요점을 분석적으로 제시한다. 첫째 치우친 말(피辭)을 들으면 어느 부분이 가려졌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둘째 과장된 말(淫辭)을 들으면 어느 부분에 빠져들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셋째 거짓말(邪辭)을 들으면 어느 부분이 상식과 괴리되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넷째 변명을 들으면 어느 부분이 궁색한지를 알아내야 한다. 맹자의 지언을 질문으로 바꿔보자. 첫째, 논점이 편파적이지 않은가. 둘째, 사실을 과장 왜곡하지 않는가. 셋째, 정도에서 벗어난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넷째, 곤경에 처할 때마다 오락가락 말이 바뀌지 않는가이다. 맹자는 이재명식의 허언에 대한 '이 같은 판단 근거는 성인이 다시 나와도 동의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흔히 '언어는 생각을 표현한다'라고 하지만 '마음을 감추는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이때 상대의 감춰진 생각과 욕망을 속속들이 읽어내는 판단력이 '지언'이다. 정년을 앞둔 강태구 위원장하에서 구조조정 중에 있는 교단 기관지는 은혜로운동행 기도운동본부장 장봉생과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의 설교를 전했다. 1월 16일 목포 사랑의교회(백동조 목사)에서 설교자로 나선 기도운동본부장 장봉생 목사(서대문교회)는 ‘합심하여 기도하자’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간구하는 자리에서는 커다란 영적 동력이 일어난다”라면서 “우리의 기도를 모아 세상을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1월 23일 대한교회(윤영민 목사)에서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그발 강가의 기도’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코로나19를 핑계로 우리의 가슴이 식어졌다. 예배를 축소하고 기도회를 축소했다. 이것이 사명자의 모습인가?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나?”라며 회개를 촉구했다. 배 목사는 “기도하면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면 땅이 열린다”라며“다시 한 번 우리를 고쳐달라고 부르짖는 기도의 역사가 서북지역 목사와 장로들에게 흘러나오기를 바란다”라고 권면했다. 몸이 안 좋다더니 건강을 회복한 것인지 장봉생 목사가 차차기 제108회 부총회장 후보로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기도운동본부장으로서는 “우리의 기도를 모아 세상을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하면서 속마음은 자신의 선거운동을 위해 돌아다닌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그리고 은혜로운동행 운동을 주창한 배광식은 “코로나19를 핑계로 우리의 가슴이 식어졌다. 예배를 축소하고 기도회를 축소했다. 이것이 사명자의 모습인가?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나?”라며 회개를 촉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배광식 자신은 회개가 필요 없는 은혜로운동행을 하나님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거운동을 하는 장봉생이나 국장 정년연장도 모자라 계약직으로 직책을 연장한 뒤 국장대행을 맡은 음흉한 총회 직원과 은혜로운동행을 꾀하고 있는 것인가. 문재인과 이재명에 대항해 분투하고 있는 국민의힘 원내대표 김기현 장로를 위해 당회장으로서 총회장으로서 진정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기도해도 모자랄 판이다. 자신의 설교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다시 한번 장봉생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고 총회와 국가의 안위를 살펴보기를 총신 선배로서 바란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과 운동을 가다듬어 바른 기도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 4:20-22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 18:21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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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OLUMN
    2022-01-25
  • 감사부장은 왜 실패하는가
    검고 하얀 붉고 파란 믿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 보이지 않는 기도를 그의 말씀으로 이루리라 신앙촌에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차디찬 종소리 그러나 아침에는 유다의 황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욕망 불완전한 총회 역사는 모든 것을 다 비추지 않는 거울이다. 김영우 같은 사람을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는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106회 총회 이후 역사를 향해 다른 거울을 들어 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모든 사람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을 말이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고 한다. 우리 삶은 더 좋아질까 나빠질까. 코로나로 촉발된 변혁의 힘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 있다. 14세기 흑사병(黑死病 plague) 이후 서유럽과 동유럽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듯이 말이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페스트"는 독일어로 우리말대로 "pest"인데 영어로는 "plague(플래그)"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 plague가 "전염병"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변한 것을 보면 중세 페스트 대유행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을 말 그대로 "검은 죽음의 병"이라고 할 정도로 참혹하고 무서운 병이다. 실제로 그 병은 혈관 내 피가 응고되며 신체 말단이 괴사하면서 검은색으로 변해 사망하는 끔찍한 질병이다. 흑사병이 유럽에 상륙한 건 1346년. 그때까지만 해도 동유럽과 서유럽은 정치 경제 제도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양쪽 모두 영주가 다수의 소작농을 착취했다. 소작농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영주에 예속돼 있었다. 이른바 농노(農奴)였다. 흑사병의 피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동유럽이든 서유럽이든 흑사병이 창궐한 곳은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따라 들끓던 검은 쥐들을 통해 지중해 해운 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흑사병으로 유럽 총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줄어든 인구는 300여 년이 지난 17세기가 되어서야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 미친 흑사병 피해가 낳은 결과는 아주 달랐다. 서유럽에서는 중세의 억압적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보다 포용적 사회로 진화했다. 산업혁명의 바탕이 만들어졌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봉건 제도가 강화됐다. 사람들이 영주에 더욱더 예속됐다. 보다 억압적인 사회로 퇴행했다. 양쪽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기득권과의 싸움에 승리해 개인의 자유를 확보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달랐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면서 노동 인구가 급감했다. 일손이 부족해졌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당시 영국 엔셤 수도원(Eynsham Abbey) 영지에는 소작농이 겨우 두 명만 남았다고 한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탓이다. 노동력이 희소해져 가치가 오른 소작농은 협상력을 갖게 됐다. 더 많은 권리를 주장했다. 부역과 벌금을 대폭 줄여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지를 떠나겠다고 했다. 엔셤 수도원은 소작농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른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작농의 임금이 올랐다. 강제 노역을 비롯한 온갖 부담에서 풀려나 자유와 여유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동유럽은 협상이 아니라 강제력을 지닌 법에 의지했다. 기득권 수호는 잘못된 선택이다. 흑사병 이후 동유럽 역시 흑사병 탓에 노동 인구가 감소했다. 영주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더 쥐어짰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무임금 강제 노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자녀까지 몇 년은 영주를 위해 무료로 노역을 해야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1년에 며칠에 그쳤던 체납임금이 일주일에 나흘로 늘어났다. 이런 착취 제도에서는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서유럽에 철도가 깔린 한참 뒤에도 동유럽은 기득권에 손해가 될까 걱정해 철도 부설을 거부했다. 2022년 1월 11일 자 기관지를 통해 총회장 배광식은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회개하고 은혜를 구한다며 총회 유지재단 이사에 감사부장이 들어가고 총회 임원이 자리 잡았다. 일례로 총회 각 부서의 감사로 비리와 부패를 막고 시정해야 할 감사부장이 유지재단에 들어가면 유지재단 감독과 감사는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 게 은혜로운 동행인가. 또한 혹독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독신문 사장 대행 김상현은 총회회관 리모델링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데 그것도 은혜로운 동행을 위한 것인가. 은혜로운 동행을 제106회 총회 슬로건으로 내건 1년 임기의 배광식 총회장은 구조조정 대상 기관지를 통해 5년 임기 대통령처럼 바벨탑 같은 총회타운 건설안을 발표했다. 사당동에 있는 총신에 총회타운을 건설하자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교단 발전은 물론 총신도 사는 길입니다. 과거 제가 총신법인이사를 할 때 이미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총신에 총회 랜드마크를 세워야 합니다. GMS센터와 총신 양지캠퍼스를 사당동으로 집약하면 교단 운영 효율성과 역량결집, 총신 미래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전략적 연구를 주문해 놓은 상태입니다. 충실한 총회행사 안내지 개혁타임즈 1월 14일 자 기사를 친절하게도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가 18일 내게 보내줬다. 그 기사는 목사로서 장로신문(이름 그대로 장로신문은 장로가 해야 한다는 경영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취재국장이면서 개혁타임즈 대표인 김창연이 배광식 목사와 오광춘 장로의 뜻을 다음과 같이 충실히 안내했다. 총회 감사부(부장: 오광춘 장로)가 1월 13일 오전 당일 일정으로 총회 본부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먼저 오전 10시 30분 서기 황석산 목사의 사회 가운데 회계 김경환 장로의 기도, 부원 강희섭 목사의 성경 봉독 후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겔 47: 1~11;2을 본문으로 ‘총회를 아름답게 하는 감사부’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부장 오광춘 장로의 인사, 총회 총무 고영기 목사의 축사, 총무 이영민 목사의 광고 후 부원 한진희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의 사회로 총회장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됐다. 감사 대상인 총회장 배광식이 모두 발언을 통해 말했다. "감사부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감사부가 총회 총무의 지출에 대해 지적한 건에 대해서는 시정토록 했으나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과정이니 총회 규정을 약간 벗어나도 양해를 구한다. 감사부는 총회를 정화 시키며 경각심을 주는 중요한 기구다. 총회장부터 모든 총회 임원들이 규정을 잘 따르고 조심하겠다. 그리고 지적하면 시정 하겠다." 총회장과 감사부원들과 대화에서는 먼저 감사부가 총회 임원회에 요청한 제105회기 총회선거관리위원회 특별감사 요청한 건에 대해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총회 임원회 결의를 전제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감사부와 선관위, 재판국을 제외한 다른 상비부나 위원회들이 자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총회장은 총회의 재정 지출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재정을 조달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달리 총회에서 달리 제지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감사부장이면서 피감 기관인 총회유지재단 이사가 된 오광춘은 말했다. “감사부원들뿐만 아니라 제106회 총회에 참석한 많은 총대들이 지난 총회 선관위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목사 부총회장 후보가 선거에 불복하는 사태까지 야기한 선거 과정과 절차의 난맥상을 포함해 선거 준비부터 진행 전체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제105회기 선관위가 8월 초부터 9월 총회 직전까지 지출한 재정 건에 대해서는 제106회기 감사부에서 충분히 감사가 가능한 것으로 본다." 오광춘 감사부장은 계속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3년 동안 문제가 없었던 상비부나 위원회는 비대면 감사로 진행할 것이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비부와 위원회는 철저히 살펴보겠다. 모든 것을 ‘총회 규칙’대로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잘하는 부서는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문제가 있는 부서는 철저하게 감사 하겠다”라고 밝혔다. 개혁타임즈 말로는 오광춘 장로가 문재인에 맞선 전 감사원장 최재형 장로처럼 철저한 감사 정신을 가진 것 같다. 그런 그가 총회 직원의 사문서 위조 제보를 받고도 살펴보겠다더니 빈말로 뭉개고 그 직원이 근무했고 다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기관의 이사가 되고 정년 퇴직자의 계약직 직원이 된 의혹도 살펴보겠다더니 뭉개고 있다. 교회 봉사하랴 사업하랴 그런 처지의 장로께서 생각이 모자란 것인지 믿음이 유별난 것인지 무슨 꿍꿍이인지... 그런데 총회 18년 은급부 적폐를 해결한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의 제105회 선거관리워원장 시절의 일도 감사하겠노라 공표했다. 유유상종의 배광식 앞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월 15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의 부당성을 밝혀낸 책임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현 정권의 행태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아닌 정권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되라는 무언의 압력”이라고 했다. 2020년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 요구로 시작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감사가 난항을 겪자 담당 국장을 유 국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유 국장은 그해 10월 산업부 담당 국장 등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일부 산업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문서 삭제 등 증거인멸 혐의 관련 자료를 검찰에 이첩하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의식이 없거나 습관이 바뀌기 전까지는 행동은 무의식이 지배하고 과거의 습관을 따른다. 우리가 걸으면서도 휴대폰으로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습관화된 걷기를 무의식이 "자율주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배광식과 오광춘 같은 유유상종의 무리 역시 허위가 습관화된 행위를 하나님이 없는 무의식이 "자율주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지적하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흑사병 대처의 차이처럼 "감사부장은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세상과 다른 대처 근거와 결과를 성경은 밝히 말씀한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7-2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2022-01-19
    • G.OPINION
    • G.COLUMN
    2022-01-20
  • 나라의 재난과 총회 사명
    나라의 재난과 총회 사명 지난 1월 15일 남태평양 통가의 수도 누쿠알로파에서 북쪽 65km 해역에서 해저에 있는 통가 훙가 하파이 화산이 대규모 분화를 일으켰다. 화산 분출의 여파는 일본과 미국, 뉴질랜드 등 태평양 인접 국가들로도 이어졌다. 일본은 남동부 해안 전역 곳곳에서 쓰나미가 관측되면서 2016년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5년여 만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일본은 지난 주말 23만여 명에게 대피령을 내리는 비상이 걸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16년 후쿠시마현과 미야기현에 경보가 내려진 역사를 떠올린다면 5년 주기로 재난의 그림자가 일본 열도에 드리우고 있다. 다행히 이번 쓰나미는 큰 피해를 일으키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의 재난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적이 필요한 시간. 그렇다. 인간의 대응 능력을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기도뿐일 것이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적뿐일지도 모르겠다. 기적이 필요한 바로 지금 이 순간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인류가 겪는 재난에 대한 법칙을 소개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Travelers Insurance Company)라는 회사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업무 성격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했던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으로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 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가슴 아픈 대형 사고를 많이 경험했는데 1990년대가 특히 그랬다. 1993년 구포 열차 사고, 아시아나 추락 사고, 서해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8년 IMF 금융 사태, 1999년 씨랜드 화재, 인터넷 대란과 같은 재난 사고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을 때 또 다른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사고는 왜 지속적으로 일어날까. 어떤 이는 과거 압축 성장의 부작용이라 하고, 성장 위주 경제정책으로 인한 폐해라고도 한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성장에 바빴던 우리 사회는 사회 전 분야에서 안전을 가볍게 여기고 안전을 문화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인적 재난관리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것도 1995년 508명이 희생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이후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13년까지 발생한 사망자 10인 이상의 대형 재난 276건 중 42%가 인적 재난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인적 재난은 줄어들지 않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등 많은 사고가 일어나자 정부는 본격적인 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소방방재청 신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수립 등 국가 안전관리 계획이 마련됐다. 그런데도 대형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05년 양양 산불, 서해대교 29중 추돌, 2007년 허베이 스피릿호 기름 유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숭례문 방화 사건,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2013년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화수소 누출 사고 등이 발생했고, 2014년 2월 경주 마리나리조트 붕괴 사고, 같은 해 4월에는 전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고난의 단초가 됐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분명히 제도적인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하겠으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된 안전 관련 가치관 미흡과 이로 인해 형성되는 안전 문화의 부재에 있다고 판단된다. 안전은 법과 제도나 사회적 인프라 같은 하드웨어만 갖춘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가치관, 국민의 의식과 그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도덕의식을 배양하는 신앙적 정직이다. 문재인식의 무책임한 발언, 이재명식의 부정직한 둘러대기, 성직자의 지역 편향이나 좌경화, 사회 구성원의 신분 여부와 지위고하를 막론한 배금주의 등의 문제점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 상황의 타개책은 감사부장이 피감기관 총회 유지재단 이사가 되어 총회 리모델링 공사를 밀어붙이고 총회장이 감사부에 감사를 지시하는 월권의 제106회 총회(총회장 배광식)부터 짜고 치는 은혜로운 동행을 넘어 성경으로 돌아가 회개운동을 펼치는 길뿐이라는 자각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최근에 발생했던 광주의 건물 철거 붕괴사고나 건설 중인 아파트 붕괴 등 정.재계의 각종 재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물론 총회가 새로운 각오로 대한민국의 정신문화를 더욱 성숙시키고 정직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되새겨야 할 인물이 있다. 그는 도산 안창호다. 도산 안창호는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로서 흥사단, 국민회와 같은 단체를 조직, 주관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분이다. 말년에 윤봉길 의사의 상해 폭탄 사건과 동우회 사건으로 5년간 옥살이를 하던 중 1938년 60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으로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분이다. 그의 시신은 현재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에 아내와 더불어 안장되어 있다. 그의 민족 사랑의 깨달음과 신념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그것은 18세의 나이로 서울에 올라와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구세학당과 정동학당에서 배운 기독교의 가치관과 예수 신앙이었다.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그가 구세학당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 모습과 정동학당에서 전도하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전도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열심히 있었던지 당시 발행된 신문에 리석관이라는 하는 선비가 그 이전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다가 안창호라는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후 고향인 평안남도 강서군 송만리에 학교와 교회를 세워 교육과 전도를 함께 하였다. 안창호는 자신이 믿는 기독교의 복음이 자신을 구하고 민족을 구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널리 전파하는 데에 앞장을 섰다. 도산은 1936년 10월 죽기 1년 반 전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청년회 연합 집회에 강사로 서게 되었다. 이날 소문을 듣고 모인 청중이 교회당 밖 뜰까지 가득 차서 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이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모세가 히브리 노예 백성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건너 애굽으로부터 해방 받는 장면을 출애굽기 14:21-28 본문으로 선택하여 병약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장장 두 시간이 넘게 말씀을 전하고 다음의 말로 끝맺었다고 한다. 묻노니 여러분이시여! 오늘 대한 사회의 주인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그 민족 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이가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손님입니다... 진정한 주인에게는 비관도 없고 낙관도 없고 제 일인 고로 오직 어찌하면 우리 민족 사회를 건질까 하는 책임감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아 진정한 주인이 적다 싶으면 빨리 나부터 참 주인이 되도록 합시다. “나가자”라는 제목으로 두 시간에 걸친 그의 설교를 마친 뒤 도산은 모든 회중에게 다 기립하기를 청하고 “나가자!”는 구호를 세 번 외치게 하였다고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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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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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희 칼럼 - 실행위원회인가? 임원회인가?
    실행위원회인가? 임원회인가?총회임원회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제105회 총회 일정을 1박2일로 결정하였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필자가 먼저 글에서 언급한대로 임원회의 결정으로 총회 일정을 단축한 것은 법리에 어긋남이 없다. 문제는 회기 연장을 하면서까지 회무를 진행하던 총회를 1박2일로 마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난 103회 총회를 수요일에 마친 것을 감안할 때 조금만 더 스피드 있게 진행하면 어려울 것도 없다. 그러나 만약 1박2일 기간중에 회무를 다 처리하지 못할 경우 방법은 무엇인가? 실행위원회 몫인가? 임원회 몫인가? Ⅰ. 실행위원회는 권한이 없다. ① 실행위원회는 총회가 파한 후 발생하는 긴급한 사항을 처리하는 위원회이다. 총회 규칙 제3장 제11조 실행위원회 임무 2항에 보면 “총회가 파한 후 대내외적으로 발생한 긴급한 사항이 있을시 총회적 차원에서 이를 처리한다.”고 되어 있다. 총회 중에 일어난 일을 처리하는 위원회가 아니라 총회가 파한 후 긴급하게 발생한 사항을 처리하기 때문에 총회 중에 못다한 업무를 실행위원회로 념겨 처리하는 것은 실행위원회 법에 맞지 않다. ② 또한 실행위원회 임무 3항에 “타 교단과의 교류나 우호 단절 또는 노회의 통폐합과 분립에 관한 일과 인사 처리는 본 위원회가 행사치 못한다.”고 되어 있다. 총회에서 처리하다 못한 안건 중에는 상기 범위안에 들어 있는 안건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인사 처리를 할 수 없다면 실행위원회에서 특별위원회 조직을 만들거나 위원을 선정하는 처리를 할 수 없다. ③ 또한 실행위원회 임무 1항에 보면 “총회의 정책을 연구하되 총회에 헌의한다.”로 되어 있다. 실행위원회는 총회 일을 맡아 마무리하는 성격의 회(會)가 아니라 일을 추진하여 총회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회(會 )이므로 총회 규칙에 명시되어 있는대로 ‘총회 파회 후 대내외적으로 발생하는 긴급한 사항’ 외에는 총회적인 차원에서 일을 처리할 수 없다. ④ 정치 제12장 제2조 총회의 조직에 보면 “총회는 각 노회에서 파송한 목사와 장로로서 조직하되 목사와 장로는 그 수를 서로 같게 하고”라고 하였다. 실행위원회는 목사와 장로의 수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목사의 수가 월등하게 많은 이유는 지도위원이 증경총회장 중에서 선정되는 점, 소속기관장도 거의 다 목사라는 점, 상비부장도 목사가 많다는 점, 거기에다 노회에서 1명씩 선출하는 정책위원도 대부분 목사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의 수가 같은 총회에서 처리할 일을 목사 장로 균형이 깨진 실행위원회에서 처리한다는 것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고 장로의 의견수렴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다. ⑤ 코로나19로 집단 모임에 의한 감염을 피하기 위하여 총회를 단축하는 입장에서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200명 이상의 실행위원을 소집한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100여명 이하가 모이는 노회도 날짜를 연기하고 일정을 단축하며 조심하지 않았던가. Ⅱ. 임원회에 권한이 있다. ① 임원회는 숫자도 실행위원회보다 적고 목사 장로의 수를 따져도 역시 목사 수가 많은데 실행위원회는 목사 장로 수를 따져 안되고 임원회는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항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임원회는 이미 법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이 있기에 형평성이 부족한 것 같아도 법리를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임원회가 권한을 가져야 하는 법리는 무엇인가? ② 총회 규칙 제7장 제24조(임원회) 1항 “총회가 파했을지라도 총회 수임사항을 위하여 임원회를 가동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실행위원회가 총회가 파한 후 발생하는 일을 처리하는 위원회라면 임원회는 총회 수임사항을 맡는다고 하였으니 총회가 미쳐 다 처리하지 못하고 수임해 주는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③ 또한 제102회 총회에서 “파회 후 총회 수임사항과 총회 이후 올라오는 질의, 긴급한 제반 현안과 각종 상정 건까지 총회임원회가 다루도록 가결하다.” 로 결의하였다. 그러므로 총회 결의도 총회의 미진 사항을 임원회에 수임하여 주는 것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④ 또한 총회규칙 제7장 제24조(임원회) 2항 “총회로부터 수임받은 안건 처리를 위하여 임원 2명 이하가 포함된 소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단 임원은 2개 이내의 소위원회 위원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실행위원회는 인사처리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임원회는 인사에 대한 조직과 선정을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총회가 수임하여 준 안건에는 인사의 조직과 선정이 필요한 업무가 있다고 보기에 임원회에 수임하여 주는 것이 마땅하다. Ⅲ. 결론 1박2일 동안의 일정속에서 스피드하게 총회를 진행하여 모든 안건을 다 처리하면 좋겠다. 특히 재판국 보고와 정치부 보고는 본회에서 반드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당 위원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보고서를 만들어 본회에 배부하고 토론은 가급적 제한하고 찬반으로 결정하는 것이 시간을 단축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총회를 준비하는 측에서 미리부터 실행위원회로 넘길 플랜을 세워서는 곤란하고 법도 아니다. 최선을 다해 안건을 모두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부득이 못다한 사항은 임원회로 수임하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된다. 김종희목사(총회정치부장 역임.성민교회)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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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3
  • 김종희 칼럼 - 0곡교회 화해 중재 9분 능선 넘었다
    0곡교회 화해 중재 9분 능선 넘었다 0서울노회 0곡교회 화해 중재를 맡아 해당 노회장과 서기, 그리고 양측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화해중재안을 제시한 결과 한가지 문제만을 남겨 놓고 합의가 되었다. 9분 능선을 넘은 셈이다. 본 위원회가 제시한 화해중재안의 핵심 골자를 언급하고자 한다. 1. 성경 갈라디아서 5;15절의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는 말씀을 따라 분쟁을 그치고 화해한다.”를 제시하여 양측이 그대로 수용하였다. 분쟁의 당사자들은 서로 자기편이 옳다고 할 수 있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자기 의를 주장할 사람은 없다. 화해해야 마땅하다. 2. 양측이 제기한 소송은 성경 고린도전서 6장 7절의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는 말씀을 따라 소송 자체가 허물임을 깨닫고 정한 날까지 취하한다를 제시하여 양측이 수용하기로 하였다. 상대방 눈치 보지 말고 양측은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3. 화해의 방법은 한 공동체로 가기가 어려움으로 부득이 아브라함과 롯의 모형을 따라 분립하기로 한다를 제시하여 양측이 수용하였다. 본 위원회가 분립을 제시한 이유는 양측이 불협(grievance 서로 맞지 아니하는 일)하기 때문이다. 정치문답조례 590문에 보면 목사의 부도덕한 일이나 이단은 불협한 일에 해당되지 않아 재판을 통하여 다루게 되지만 목사와 교인이 서로 맞지 않고 협력하지 아니하는 문제로 불협하는 것이므로 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서로 분립을 하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4. 분립의 방법은 목사측이 현 교회에 남고 상대측이 나가서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제시하여 양측이 수용하였다. 이렇게 제시한 이유는 헌법 권징조례 제4장 제19조와 헌법정치 제10장 제6조 3항과 정치문답조례 제599문과 제600문에 보면 담임목사에 관한 사항은 노회가 처리하며 목회 관계를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은 노회에 있다고 하였다. 특히 제599문에 보면 교인 소수의 청원에 의하여도 목회적 관계를 해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본 조항의 의미는 교인의 절대다수가 목사를 지지하여도 목사에게 담임목사 지위를 잃을 수밖에 없는 범죄 사실이 있다면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역으로 교인의 절대다수가 목사를 반대하여도 담임목사 지위를 잃을만한 범죄가 없다면 해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0서울노회가 한다. 0서울노회가 담임목사 지위를 인정하고 있기에 반대측이 나가는 것이 맞다. 5. 0곡교회를 떠나 새롭게 교회를 설립하는 측도 같은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여 양측이 수용하였다. 그러나 0서울노회에 같이 소속할 경우는 나가는 측이 교회 명칭을 변경하기로 하여 이도 양측이 수용하였다. 이렇게 제시한 이유는 노회가 다르면 본 교단 총회 안에도 교회명이 같은 교회가 많아 문제는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같은 노회 안에 소속할 경우는 혼란이 있을 수 있기에 바꾸도록 한 것이다. 같은 명칭을 주는 이유는 나가는 측도 한평생 0곡교회를 섬기며 수고하였기에 명예 부분을 존중하는 차원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6. 0서울노회 노회장과 서기도 참석하여 이와같이 진행한 합의사항에 대하여 적극 동의하였다. 그리고 나가는 측이 0서울노회에 소속하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수용하겠다고 하였다. 7. 이제 한 가지 남은 문제는 잔류하는 측이 나가는 측에 대하여 금전적으로 배려하는 것이다. 나가서 교회를 세우려면 당장 예배 처소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 위원회가 제시한 금액이 있고 잔류하는 측이 제시했던 금액이 있으므로 그 범위 안에서 양측이 내리고 올리고를 조정하면 될 것 같다. 양측이 교회 재정 상황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무리한 자기 입장만 주장하지 않으리라고 여겨진다. 잔류 측은 너그럽게 배려하여 마치 형제를 빈손으로 쫓아내는 형국이라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고 나가는 측은 마치 돈이나 탐내어 나가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서도 안될 것이다. 제시한 기간까지 잘 조정되리라 믿는다. 8. 양측에서 나온 분들이 자신들 측의 대표성을 받아 나왔다고 공언하였기에 혹 자기 측의 여론이 이렇다며 합의를 뒤엎으려 해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합의가 목사 장로 간에 이루어진 합의이기에 지켜져야 한다. 끝까지 약속을 지켜 줄 것을 신뢰한다. 결론: 0곡교회 화해중재가 이제 9분 능선을 넘었다. 한 번 더 만나 합의서를 작성하면 끝난다고 본다. 더 이상 소모적인 분쟁을 중단하고 양측이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하기를 기도한다. 금전적인 문제로 시간을 끌면 양측이 추해 보일 뿐이다. 양측의 교회가 서로서로 양보하고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아름다운 교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종희목사 (총회정치부장 역임.화해중재위원회 서기.성민교회)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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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2
  • 김종희 칼럼 - 코로나19로 인한 총회 일정 단축 어떻게 결정하나
    코로나19로 인하여 교단들이 총회 일정을 단축하고 있다. 본 교단도 총회 일정을 단축해야 되지 않을까 고민하는 분위기이다. 만약 일정을 단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Ⅰ. 임원회 결의로 단축하면 된다. ① 헌법정치 제12장 제6조 “총회는 매년 1회 정례로 회집하되 예정한 날짜에 회장이 출석하지 못할 때는 부회장 혹 전 회장이 개회하고 신 회장을 선거할 때까지 시무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정례(定例)란 ‘정기적 또는 계속적으로 행해지는 사례’로 그동안 본 교단 총회는 5일 동안 진행되어 온 것이 정례이다. 부득이 정례대로 못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② 총회규칙 제7장 제22조 “총회는 매년 9월 3차 주일 후 월요일 오후 2시에 개회한다. 총회 소집 장소는 전회에서 미리 정한다. 단, 부득이한 일로 장소를 변경하게 될 경우에는 임원회의 결의로 장소를 변경한다.”라고 되어 있다. 부득이한 일로 장소를 변경하게 되는 경우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 이 규칙을 해석한다면 부득이 일정을 변경하는 경우도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총회 개최 문제로 부득이한 일이 발생한 경우 의논의 주체는 임원회가 된다. 그러므로 임원회의 결정으로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 ③ 총회규칙 제7장 제24조(임원회) 1항 “총회가 파했을지라도 총회 수임 사항을 위하여 임원회를 가동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차기 총회는 임원회에 수임된 사항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제102회 총회에서 “남전주노회장 함현진 씨가 헌의 한 총회 파회 이후 임원회, 상비부, 위원회, 이사회의 역할(임무, 권한, 책임)에 관한 건과, 목포서노회장 모상규 씨가 헌의 한 총회 파회 이후 올바른 총회 역할에 대한 헌의 건과, 함동노회장 김용철 씨가 헌의 한 총회 파회 이후 올바른 총회 역할에 대한 헌의 건은 파회 후 총회수임 사항과 총회 이후 올라오는 질의, 긴급한 제반 현안과 각종 상정 건까지 총회임원회가 다루도록 가결하다.” 고로 총회 파회 후 임원회가 올바른 총회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하여 임무를 맡길 때 ‘긴급한 제반 현안’도 맡겼다. 코로나19로 총회 일정 변경도 긴급한 제반 현안에 해당한다. ④ 임원회가 변경한 일정을 총회를 개회하여 채용해 주면 된다. 헌법 정치 제12장 제6조 “각 총대는 서기가 천서를 접수 호명(呼名)한 후부터 회원권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총회가 개회되기 전에는 회원권이 주어지지 않기에 미리 허락을 받을 회(會)가 없다. ⑤ 총회 일정이 정례대로 열릴 경우에도 절차를 미리 만들고 개회하여 그 절차를 임시채용하여 회의를 진행한다. 절차를 허락을 받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허락을 받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의 기간을 단축하는 경우에도 단축하는 절차로 만들고 본회에서 임시 채용하여 회의를 진행하면 된다. 임시 채용이란 유동적으로 회의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즉 필요한 경우에는 회의 절차를 바꿀 수도 있고 일정을 당기기도 하고 늘이기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례적인 일정을 줄여서 마치는 것이나 처음부터 일정을 줄여 마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일정을 줄여 1박 2일로 회의를 진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Ⅱ. 실행위원회나 규칙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치 않다. ① 총회규칙 제3장 제11조 실행위원회는 “총회가 파한 후 대내외적으로 발생한 긴급한 사항이 있을 시 총회 적 차원에서 이를 처리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제102회 총회에서 긴급한 제반 현안을 임원회에 맡긴 이상 임원회가 처리하면 되고 실행위원회까지 열어, 해야 할지는 임원회가 판단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코로나19 사태는 감염을 우려하여 모임을 자제시키는 경우인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실행위원들을 소집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② 혹자는 총회 일정 단축을 규칙부에 넘겨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나 틀린 말이다. 총회규칙 제3장 제9조 3의 9) “규칙부는 총회의 규칙을 포함한 총회 산하 각 상비부, 위원회 및 기관의 제 법규(규정,내규 등)에 관한 일을 연구.심의.제안하며, 본회에서 맡긴 규칙에 관한 문제를 결의 보고한다.”라고 되어 있다. 규칙부는 맡기지 않은 규정은 연구.심의.제안할 수 있고 본 회에서 맡긴 것은 결의할 수 있다. 심의와 의결(결의)는 다르다. 경상남도교육청 정책기획관실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의하면 ‘심의 결과는 일반적으로 기관의 장을 구속하지 않는 반면 의결 결과는 기관의 장을 구속’ 한다고 되어 있다. 고로 규칙부는 총회가 맡긴 사항은 결의하여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고 맡기지 않은 사항은 연구 및 심의를 하여 제안할 수 있지만 구속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난 총회에서 일정 단축 문제를 규칙부에 맡기지 않았는데 규칙부가 일정 단축을 결의하여 구속력 있는 결정을 할 수 없다. Ⅲ. 결론 코로나19로 인하여 총회 일정을 단축하여 진행하는 것은 총회 안에 어떤 부서의 허락을 받을 사항이 아니다. 총회 임원회가 단축하는 결정을 하고 단축하여 진행하는 절차를 만들어 본회가 개회된 후 절차 보고할 때 회원들이 채용하여 주면 된다. 절차를 채용하는 권리는 회원에게 있는데 호명 이전에는 회원이 없기 때문에 총회 개회 후 허락을 받으면 된다. 김종희목사(총회정치부장 역임.성민교회)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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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4
  • 김종희 칼럼 - 총회임원회를 흔들어서는 안된다
    총회가 파한 후 항상 논란이 되는 문제는 임원회가 월권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회가 파한 후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차기 총회로 미루고 임원회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아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면 임원회가 직무유기를 했다고 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총회임원회는 총회가 파한 후 총회를 바로 세워나가기 위하여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Ⅰ. 총회를 파한 후 임원회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근거 ① 총회 규칙 제7장 제24조(임원회) 1항 “총회가 파했을지라도 총회 수임사항을 위하여 임원회를 가동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② 제102회 총회에서는 “남전주노회장 함현진 씨가 헌의한 총회 파회 이후 임원회, 상비부, 위원회, 이사회의 역할(임무, 권한, 책임)에 관한 건과, 목포서노회장 모상규 씨가 헌의한 총회 파회 이후 올바른 총회 역할에 대한 헌의의 건과, 함동노회장 김용철 씨가 헌의한 총회 파회 이후 올바른 총회 역할에 대한 헌의의 건은 파회 후 총회 수임 사항과 총회 이후 올라오는 질의, 긴급한 제반 현안과 각종 상정 건까지 총회임원회가 다루도록 가결하다”로 결의하였다. 즉 파회 후 수임 사항과 총회 이후 올라오는 질의, 긴급한 제반 현안과 각종 상정 건까지 총회임원회가 다루면서 올바른 총회 역할을 다하도록 결의한 것이다. 이는 총회임원회에 총회가 파한 후 총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 분명하다. Ⅱ. 총회 임원회가 행정중지 명령을 할 수 있다. ① 총회 이후 올라오는 긴급한 제반 현안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예를 들어 긴급한 현안이란 노회가 불법으로 칼을 휘두를 때가 포함된다. 노회가 분쟁 중에 불법으로 권징을 행하여 서로 치리한다든지 파송한 당회장이 지교회에 가서 회원권이 없는 자들을 참석시켜 공동의회를 진행하고 교회 분쟁의 원인을 제공하고 사직하고 떠났던 회원권이 상실된 자들을 법 절차 없이 복직을 허락하는 등 교회의 분쟁을 더 악화시키는 노회가 있을 경우 더 이상 불법한 칼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제지할 수밖에 없다. ② 제8회 총회에서 “만국 장로교회 정치문답조례 책은 참고서로 쓸 일”이라고 결의하였는바 정치문답조례 제428문에 “총회의 권한이 어떠하냐?”에 대해 5항 “도리와 권징에 관한 모든 쟁론을 해결한다.” 10항 “교회를 분열케 하는 쟁론을 금지하며 진압한다”라고 하였다. 진압(鎭壓)이란 사전적 의미는 ‘폭동이나 시위 따위를 강압적이고 물리적인 힘으로 억눌러 가라앉힘’이라고 되어 있다. 다음 총회가 다가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있는데 현재 긴급한 상황이라면 총회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칼을 강제로 뺏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행정중지이다. ③ 행정중지 명령을 받았다고 해서 총회장을 상대로 고소를 하게 되면 본인은 물론 소속 노회에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제104회 총회는 총회(총회장, 임원, 직원)를 상대로 개인이나 노회가 사회법에 소송할 경우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제99회, 제101회 총회 결의와 임원회 청원의 건(보고서 147쪽) 대로 지금부터 시행하기로 하는 것이 가한줄 아오며”로 결의하였다. 제99회 총회 결의와 제101회 총회 결의는 고소 접수일로부터 목사에게는 소속노회의 공직과 2년간 총대권을 정지한다는 것이고 임원회 보고서 147쪽에 있는 내용은 하회가 이를 불이행할 때는 해당 노회의 총회 총대권을 정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④ 그러므로 노회 안에 총회(총회장, 임원, 직원)를 상대로 고소한 사람이 있을 경우 총회가 해당 노회에 지시하여 공직을 정지하라고 명하였는데 어겼을 경우 해당 노회는 총회 총대권이 정지된다. 총회 총대권이 정지됨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회명령을 어기면 더 큰 페널티를 줄 수 있다. 정치문답조례 제438문에 “총회가 노회에 대한 직접 권한이 무엇이냐?” “총회가 대회 설립 전에는 직접 노회를 설립하며 분립하며 합병하며 폐지할 수 있다”라고 하였기에 노회를 폐지할 수 있는 진압을 할 수도 있다고 사료된다. 행정 중지된 노회의 노회원은 상회의 명령과 지시에 순응하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유념하는 것이 지혜있는 처신이다. ⑤ 또한 정치문답조례 487문 “노회가 당회의 청구 없이 장로나 집사의 퇴직을 명령할 수 있느냐?”에 대하여 답하기를 “노회가 그 직무상 관하 지 교회를 방문하며 그 상황을 조사하며 악한 것을 바로 잡으며 신령한 번영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당회의 청구가 없어도 장로 집사의 퇴직 등 무엇이든지 명령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해당 노회가 행정중지를 당하였고 총회 파회 후 일어난 일이라면 총회임원회나 임원회가 전권을 부여한 위원회가 장로 집사의 퇴직은 물론 분쟁 주동자에 대하여 출교를 명할 수도 있다. Ⅲ. 총회 임원회의 결정은 총회의 결정과 같다. ① 물론 지난 총회에서 수임해 준 사항에 대하여 처리하고 차기 총회에 보고하여 총회의 인준을 받음으로서 결정이 되는 사안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총회가 파한 후 올라오는 질의, 긴급한 제반 현안과 각종 상정 건은 임원회가 처리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② 특히 금번 화해중재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은 총회 임원회가 보고를 받음으로 확정된다. 제104회 총회 결의는 “강중노회장 박기준 씨가 헌의한 교회, 노회 분쟁 시(법원 소송 시 포함) 총회 서류 발급금지와 후속 조치를 위해 총회임원회로 3인 조정처리위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헌의의 건과 동한서노회장 채종성 씨가 헌의한 교회, 노회 분쟁 시(법원 소송 시 포함) 총회서류 발급 금지(단, 연말정산 서류발급은 한시적으로 발급한다)하고, 후속 조치를 위해 총회임원회가 총대 중에 3인 합의조정위원을 선정하여 합의조정 후 총회임원회로 보고하여 결정토록 헌의의 건은 화해중재위원회 신설 건이 총회임원회로 넘겨졌으므로, 본 건도 총회임원회로 넘겨 병합처리 하되 3인 화해중재위원 구성은 총회임원회에 맡겨 처리하기로 가결하다”이다. 헌의안의 내용이 3인 합의조정위원을 선정하여 합의조정 후 총회임원회로 보고하여 결정토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해중재위원회가 합의조정 후 그 보고를 임원회에 하고 임원회가 보고대로 받으면 이는 총회의 결정이 된다. Ⅳ.결론 총회가 파한 후에는 임원회가 총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부득이 노회에 대한 행정 중지를 해야 될 때도 있다. 노회가 행정 중지된 경우 지교회의 분쟁에 대하여 총회는 분쟁의 주동자에 대하여는 어떤 명령도 내릴 수 있다. 헌법이나 권징조례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긴급한 상황일 때는 평상시와 다르게 대처할 수 있다. 또한 총회가 파한 후 임원회에 올라온 사항은 임원회가 처리함으로 종결된다. 임원회의 권위가 무너지면 총회의 위상이 흔들린다. 총회가 파한 후 총회임원회의 권위가 세워져야 총회가 바로 세워진다. 총회임원회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총회임원회를 흔들어서는 안된다. 김종희목사 (총회정치부장 역임.화해중재위원회 서기.성민교회)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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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5
  • 김종희 칼럼 - 영덕교회 화해중재 문제될 것 없다
    총회 화해중재위원회가 2020년 5월 29일 영덕교회 양측과 합의서를 작성하고 법률사무소에서 공증을 한 후 6월 3일 총회 임원회가 본 위원회 보고를 그대로 받음으로 확정되었다. 이제 합의서대로 양측이 지키면 된다. 영덕교회 화해중재에 대하여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 가지 오해가 있는 듯하여 위원회 서기로써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Ⅰ. 본 위원회는 재판국이 아니다. ① 재판국이 아닌 위원회가 어떻게 목사와 장로를 12개월씩 정직을 할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오해이다. ② 본 위원회가 목사를 정직한 것은 경안노회 재판국이 목사에게 12개월 정직 판결을 내린 것에 근거한 것이며 장로에게 시무장로직을 정직한 것은 합의로 결의한 성격을 가진다. 정치 제13장 제5조 제6조에 보면 자유휴직과 사직, 권고 휴직과 사직이 나온다. 이는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행정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당회가 협의 결정하여 휴직 혹 사직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시무장로 정직은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해 교회 당회가 협의 결정한 성격을 가진다. 왜냐하면 본 합의서에 당회장과 당회원 전원이 서명하였기 때문에 당회가 협의 결정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본인들이 원하여 서명을 하고 공증을 하였으므로 12개월간 자유휴직(정직)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도 있다. ③ 재판국은 당사자들의 의견과 관계없이 재판하여 언도(言渡)하면 끝난다. 그러나 본 위원회는 재판국처럼 당사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시무장로직 정직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 아니다. 문서의 명칭 그대로 당사자들과 합의로 한 것이기에 문제없다. Ⅱ. 목사의 12개월 정직을 18개월로 한 것이 아니다. ① 경안노회 재판국이 목사에 대하여 2019년 11월 20일자로 12개월 정직 판결을 하였기에  2020년 11월 19일까지면 12개월이 되는데 합의서에 2020년 6월1일부터 2021년 5월 31일까지 정직을 하라고 하였으므로 약 18개월이 된다는 오해이다. ② 이에 대하여는 목사가 정직을 준수하면서 합의서를 작성하는 시점까지 왔다면 당연히 남은 기간만 정직을 준수하면 된다. 그러나 목사는 사법에 제소하여 정직을 준수하지 않은 상태로 왔기에 합의서를 작성하는 시점부터 12개월간 정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Ⅲ. 위임목사의 조기은퇴를 언급한 것은 월권이 아니다. ① 합의서 9항에 보면 “조0배 목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년 3년 전 원로목사로 추대에 대한 예우를 받고 조기 은퇴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를 두고 위원회가 위임목사의 정년까지 간섭하는 월권을 했다는 오해를 한다. ② 그러나 이미 조0배 목사는 경안노회 화해중재위원회 중재안에 정한 금액을 받고 즉시 은퇴하는 합의서에 서명한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본 위원회가 월권하여 조기은퇴를 거론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대하여 위원회가 목사를 더 배려한 차원이다. Ⅳ. 위원회가 대리당회장 선임권을 가진 것은 위법이 아니다. ① 합의서 5항에 “위임목사 정직기간 동안은 대리당회장으로 하여금 설교권을 행사하도록 한다. 단 대리당회장은 영덕교회 행정과 치리권을 행사할 수 없다.(대리당회장은 영덕교회 당회가 화해중재위원회에 일임하여 선임하기로 한다)”고 하였다. ② 영덕교회는 목사의 직무가 정직되었어도 위임목사 신분은 가지고 있기에 담임목사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목사가 없을 때 노회가 파송하는 임시당회장은 파송할 수 없다. 정치 제9장 제3조에 의하여 목사가 있을 때는 교회가 대리당회장을 청할 수 있다. 이에 의하여 영덕교회 당회가 대리 당회장을 노회 안에 있는 목사 중 한 사람을 청할 수 있다. ③ 그러나 당회장과 당회원 전원이 정직 상태가 됨으로 대리당회장을 청할 수 있는 권한을 화해중재위원회에 일임한 것이다. 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합의서에 당회장과 당회원 전원이 서명날인하였으므로 당회로부터 선임권을 받았다. Ⅴ. 위원회가 목사 장로를 대하는 형평성에 문제가 없다. ① 혹자는 목사, 장로를 동일하게 12개월 정직을 한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죄가 더 많은 쪽에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전반적인 사정을 살필 때 양측의 잘못이 뚜렷하다. ② 그리고 위원회가 재판국이 아니기에 치리할 수 없다고 하면서 면직 운운하며 더 큰 벌을 줘야 한다는 논리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이 아닌가. 본 위원회는 재판국이 아니기 때문에 총회로부터 위임을 받은 위원회로써 행정적으로 처리하였다. Ⅵ. 사모를 제명에서 정직으로 처리한 것은 법리에 맞다. ① 경안노회 재판국은 영덕교회 이0자 사모를 제명하였다. 제명은 영덕교회 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담임목사가 교인이 아닌 사모와 함께 목회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모는 노회 관할이 아니므로 노회에서 제명할 수 없다. ② 이에 경안노회를 대표하는 노회장과 서기의 동의(同意)하에 관할권을 가진 당회로 돌려 당회장과 당회원이 동의(同意)하여 정직 처리를 한 것은 법리에 맞다. 더구나 중한 제명에서, 보다 가벼운 정직으로 결정한 것은 선처의 의미가 담겨있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 Ⅶ. 중재위원의 협박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① 합의서를 작성할 때 본위원회 위원장이 양측에게 맘에 들지 않으면 서명을 안 해도 된다고 몇 차례 말했고 아주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서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같은 승합차를 타고 법률사무소에 가서 1시간 이상 머물며 담소하고 공증을 했다. ② 더구나 공증사무실에서 조0배목사가 장로 측을 바라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말했고 장로 측도 1년간 휴가 다녀오시는 것으로 생각하며 바람 쐬고 오시라고 하였고 조0배목사와 이0화 장로가 서로 포옹까지 했는데 무슨 협박인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Ⅷ. 경안노회 재판국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① 목사가 정직을 당하고 총회 재판국에 상소하더라도 정직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법이다. 그런데 재판국장이 총회에 상소하면 정직이 효력을 잃는다고 선언함으로 법리를 오해하였다. ② 권징조례 제100조에는 “상소를 제기한다 할 때는 하회에서 결정한 것이 권계나 견책이면 잠시 정지할 것이요 그 밖의 시벌은 상회 판결나기까지 결정대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위임목사가 정직 판결을 받으면 총회에 상소를 제기하였어도 정직 판결은 그대로 유지된다. 즉 상소를 제기하여도 정직을 당한 상태로 있게 된다는 것이다. ③ 그런데 권징조례 제45조를 오해하여 혼란을 일으켰다. 제45조는 “담임목사를 정직할 때는 그 담임까지 해제할 수 있으나 상소한다는 통지가 있으면 그 담임을 해제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상소를 하면 담임을 해제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정직을 당해도 상소를 하면 위임목사직을 해제하지 못하므로 위임목사 권한을 계속 행사할 수 있다고 오해하였다. ④ 정직과 해제의 의미를 착각하였다. 권징조례 제100조와 제45조는 서로 상충되는 조문이 아니라 정직과 해제를 구별하는 조문이 된다. 위임목사가 정직을 당하여 상소할지라도 정직 상태는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이 제100조의 내용이고 그러나 정직은 되었지만 위임목사 신분은 해제되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이 제45조의 내용이다. ⑤ 즉 위임목사 신분은 유지되고 있지만 위임목사 권한은 정직되어 있다. 정직되었어도 해교회 위임목사는 맞다. 다만 직무가 정직되어 있다. 예로 어떤 회사에서 직무정지를 당했다면 직무정지 기간에는 업무도 볼 수 없고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파면이 되지 않은 한 그 회사의 신분은 유지된다. 직무정지와 파면은 다르다. 위임목사 정직을 직무정지로 보면 되고 위임해제를 파면으로 보면 된다. 그러므로 위임해제가 되지 않으면 해교회 목사 신분은 갖게 되고 목사 직무만 정직된다. 이를 오해하여 총회에 상소하면 직무를 행할 수 있다는 선언을 함으로 혼란을 일으켜 교회 분쟁을 심화시킨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한다. Ⅸ. 영덕교회 양측에 대하여 드리는 말씀 ① 화해중재는 전 교인을 상대로 화해중재를 할 수 없습니다. 장로교 정치는 교회 대표인 목사와 교인의 대표로 구성된 당회를 통하여 결정하고 전 교인이 이 결정에 순복하는 것으로 교회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② 정치 제9장 제5조 당회의 직무 1항에 보면 “교인의 신앙과 행위를 총찰:당회의 직무는 신령상 모든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니(히13;17) 교인의 지식과 신앙상 행위를 총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특히 히13;17절의 말씀을 명기하였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교인은 당회의 인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③ 그러므로 당회장과 당회원 모두가 서명날인한 합의서는 당회의 결정과 같습니다. 이에 순종하고 복종해 주시는 것이 도리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예배를 방해하거나 총회나 노회 인사나 화해중재위원 교회를 방문하여 시위를 할 경우 교인의 자격이 3년간 정지된다고 당회가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정직기간이 끝나고 바로 임직자를 피택할 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Ⅹ. 결론 “싸움은 말리고 불은 끄랬다”는 속담이 있다. 화해중재위원회가 한 일이 문제 될 것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장과 서기가 협박을 당하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제 영덕교회가 화평하게 되는 일을 위하여 협조해 주었으면 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peacemaker)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이다. 영덕교회 화평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 김종희목사(총회정치부장 역임.현 총회 화해중재위원회 서기)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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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5
  • 이효상 원장 칼럼 - 책 읽는 즐거움 속으로 빠지다.
    코로나 시대, 다들 사는 게 궁금한지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 비대면과 차단의 시대를 극복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책 읽기'의 즐거움에 푹 빠져 사는 것이다. 좋은 책을 접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더 이상 ‘독백’이 아닌 상호소통이 되고, 거꾸로 좋은 관계에 익숙해진 이들은 바람직한 ‘독서’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매일 신문과 성경을 정독하고 책 한 권 정도를 읽으려 한다. 이미 벌어져서 지나간 과거의 사건을 알려 주는 것이 신문(新聞)이라면 성경은 과거에 쓰여진 책이지만 사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우리가 시간을 쓰는 방법에 따라 금도 되고 은도 되는 것처럼 하루의 생활을 신문과 성경으로 거룩한 독서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인지의 문제는 본인의 선택이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한 손에 신문을, 한 손에 성경’을 이라고 말했던가. 신문은 현 시대의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이 현 시대의 인간 사회의 모습이다. 이 신문과 책을 통해 인간사의 사고방식, 인간의 고통, 사유방식, 문제의식을 캐치하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성경을 통해 찾아보려 한다. 독서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특히 유아와 청소년의 독서는 그들에게 많은 지적 소산을 안겨줌과 동시에 다양한 창조력을 키우고 풍요로운 감성을 보살펴준다. 하지만 현실은 스마트폰이나 방송 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독서 시간은 하루 평균 6분이라면, TV 앞에서는 2시간 이상이라고 한다. 스마트폰 없이 살아가기 힘든 세대를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라 하는데 혹시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에 중독된 신인류 ‘포노사피엔스’는 아닌가. 인문, 사회, 자연, 과학 등 다양한 융합을 통해 시대를 읽는 혜안을 가지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책읽기’이다. “오직 독서 이 한 가지가 큰 학자의 길을 좇게 하고, 짐승과 구별되는 인간다움을 만든다.”라는 다산(茶山) 선생의 말처럼, 선생의 첫 번째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배 생활 중 그의 방을 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1,304권의 책을 구비했고 선생의 책 읽는 삶이 그러했다. 평생 저술한 500여 권만 봐도 얼마나 많은 책 읽기와 연구 집필에 매진했는지를 보여준다. 수도권 동북부 거점도시 남양주시는 다산 선생의 얼과 정신을 담은 ‘정약용 박물관’에 이어 ‘정약용 도서관’을 개관한다. 국내 6번째 규모의 22만3천 권의 장서를 갖춘 지식의 보물창고(寶庫)이다. 경기도민으로 자랑스러울 정도로 참 아름다운 명품도서관이다. 찾는 이들이 즐거운 명소가 될 전망이다. 그래서 책 읽기는 더욱 깊어지고 즐거워진다. 우리나라 선진들은 일찍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였다. 집을 나가서는 천하의 뜻있는 벗들과 사귀고 집에 들어와서는 옛 성현들의 책을 읽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신라시대에 관리를 등용할 때에는 그 사람의 독서 범위와 수준을 헤아려 인재를 등용하는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 독서를 권장하였다. 고구려에서는 태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을 두어 경학(經學: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문학 방면의 책을 강독하게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이미 우수한 종이를 만들고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성경 보다 빠른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드는 등 인쇄술의 발달로 ‘직지’와 ‘자치통감’ 등 많은 책들을 간행하였다. 성종 때는 수서원(修書院: 학교와 도서관을 겸한 기관)을 창설하고 역사책을 등사하고 소장하게 하여 열람하도록 하였다. 책 읽기(독서;讀書)는 가장 넓은 세계를 가장 손쉽게 경험하고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가장 좋은 스승이자 자기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삶에 대한 통찰력과 안목을 길러준다. 또한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 우리나라의 책 읽는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성리학이 들어온 뒤이다. 성리학적 이념으로 무장한 신흥 사대부 계층이 역사 담당 계층으로 성장해 간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이르러서였다. 이 사대부들은 박지원(朴趾源)이 “독서를 하면 사(士)요,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大夫)이다.”라 지적한 바와 같이, 평소에는 유가 경전과 시문·사서(史書) 등을 읽으며 한문 교양을 쌓다가 기회가 닿으면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이들 선비계층은 주업이 독서였고, 독서를 통해 그들의 덕행과 학식을 쌓았던 것이다. 이런 책 읽는 문화는 유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발전하였다. 그들의 독서토론과 연구발표도 자연히 유가적 교육기관인 서당·서원·향교·성균관 등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다. 조선조는 유학을 건국이념으로 하고 역대의 임금들이 학문을 장려하였으므로 중국으로부터 많은 서적이 수입되고, 국가적인 도서편찬사업이 활발히 추진되어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민간에서도 수많은 문집들과 사서들이 간행되었다. 또한, 집현전·홍문관·규장각 같은 일종의 도서관시설이 설치되어 많은 문헌들을 수집, 정리, 보관하여 당시 관료 지식인들이 열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책 읽는 문화를 찬란히 꽃피웠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책 읽는 현실은 어떠할까. 1년간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의 비율은 성인이 60%, 학생이 92%로 각각 나타난다. 성인의 40%는 1년에 한 권도 안 읽는다는 말이다. 참으로 '책 안 읽는 한국인'이다. 1909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독일의 물리 화학자 프레드릭 오스트발트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책 읽기'라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그 세계는 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시인 볼테르가 말했던가. 하루 20분만 책 읽기에 투자하면 안 될까. 1년이면 300페이지짜리 책 12권을 읽을 수 있다. 하루 20분 책 읽는 즐거움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우리의 삶과 지성을 건강하게 일으켜 세워보는 건 어떨까. 건강한 지성의 인생의 코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개관하는 다산 선생의 얼이 담긴 정약용도서관 전경 글쓴이: 이효상 원장(근대문화진흥원/ 한국교회건강연구원)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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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2
  • 이효상 칼럼 - 선지자적 지성 담론이 사라진 시대
    선지적 지성, 담론이 사라진 시대인가?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하고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라고 삶의 이유를 묻자 이를 위해 철학자 윌 듀런트(Will Durant )는 이 문제를 혼자 고민할 게 아니라 당대 지성인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여겼다.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당대 지성인 100인에게 편지를 썼고 거기서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렇듯 전통적으로 ‘지성인’이란,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공적인 참여와 활동을 담당할 때 그렇게 칭한다. ‘지성인’은 문인, 성직자, 철학자, 사상가, 대학교수 등 공적 담론을 이끌어 나가는 이들이다.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이런 지성인을 가리켜 사회의 “파수꾼”(Wachter)이라 불렀다. 자발적이었건, 강요되었건 일제 강점기 말 식민지 조선에서는 지식인만 넘쳐날 뿐 지성인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시국도 있었다. 그것은 다만 그때만이 아니다. 과거 혼란한 6.25 전란과 민주화 시절 대중들은 지식인들을 사회의 길잡이로 삼아 한 시기를 헤쳐 나가기도 했다. 1970년 이후 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지며 한국사회는 지성인의 현실 참여의 비중이 커졌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지성인의 사회 참여가 감당해 온 역할과 비중은 오히려 작아지고 희미해졌다. 아니, 어쩌면 지성인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정도인지도 모른다. 공적 영역에서 무책임하며 도덕적으로 오류를 범하는 이들을 향해 엄중히 비판하고 올바른 대안과 길을 제시하는 선지자적 지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치열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지성적 담론이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이다. 지성인에 속하는 이들이 정치적 입장에 서서 지향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향한 비난과 협박만으로 그 담론을 대체하고 있다. 오늘날 지성인이 아무리 객관성과 보편성을 주장해도, 그 발언은 간단히 어느 한 ‘편’의 것으로 매도당하고 만다. 지성인들의 숙명이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책임 윤리와 신념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며 참여할 수도 있다. 지성인의 덕목은 이성적이고 도덕적 균형 감각을 갖춘 독립된 파수꾼 역할에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지성계는 도덕적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양극화된 정치문화는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라는 갈등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강단 지성인들이 이제는 SNS와 유튜브 채널에서 활약하며 선과 악을 이분법으로 규정하고 심판하는 검사의 역할까지 하려 한다. 내 편이면 옳은 선이고, 반대편은 그른 악으로 규정하는 식이다. 최근 386세대 동료를 만나보면 그새 다들 교수가 되어 있고, 수도권 웬만한 대학에선 교수연봉이 1억이 넘는다고 자랑한다. 그들은 교수는 기능이 아니라 신분. 그 신분의 유지를 위해 그들은 자기들끼리도 안 읽는 논문을 써 가며 그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줄 궁리를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누리는 특권은 희생양인 시간강사의 노동에 대한 착취를 통해 유지된다. 이들이 침묵하는 데에는 진보나 보수나 차이가 없다. 이른바 ‘진보적’ 지성인들은 지배층이 되었고 이미 기득권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그저 자기 계급을 대변할 뿐이다. 그들은 더 이상 문제를 ‘비판’하지 않는다. 비판해야 할 그 현실을 자신이 만들었고 막아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계, 언론계, 문화계, 종교계 등 사회 전반에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그 막강한 영향력으로 대중을 장악해 얼마 남지 않은 희미한 ‘비판’의 목소리마저 잠재우려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의 문제점과 허구성이 폭로되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기들만의 지식이 아니라 서로 함께 손잡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지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해서 소위 진보 지식인 그룹의 진영논리는 극심했다. 이들은 기이할 정도로 당파적 편향성을 띄었다. 특정 정당과 지역으로 나눠 한쪽 편만 들며 상대편을 폄하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지성인 스스로가 나서서 케케묵은 지역갈등의 망령을 되살리거나 한쪽만의 견해를 진실처럼 말해선 안된다. 반대편의 위선에 대해 말하려면 자기편의 위선도 고백해야 한다. 그것이 이성에 바탕을 둔 지성인이 지녀야 할 도덕적 의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적지 않게 일어난다. 지성인들마저 권력에 줄을 서고 손을 잡기 시작한다. ‘비판’을 사명으로 알던 진보 지식인들이 정부 기관에 진출한다. 그러면서 친정부를 표방하며, SNS를 이용해 쏟아내는 정치적 발언은 살벌하기 짝이 없다. 친정부 편향적 미디어의 주장만 받고 옹호하며 SNS에 공유한다. 이런 지성인이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이끌어 낸다. 그들의 역할이 선동적으로 크나큰 위력을 발휘한다. 추종자들은 SNS에서 강화된 응집력으로 매스컴들과 상호작용을 발휘하며 여론을 주도한다. 언제부터인가 ‘지성인’이라는 말을 듣기 힘들어졌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실제로 지성인이나 논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혹독한 여론과 언론 앞에 고뇌하고 침묵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는 시류에 영합하는 정치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오늘날 행동하는 지성인 중에 ‘어용’이 많다. 지성인이 침묵하거나 어용 지식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지성의 무덤이요, 지식인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자나 권력기관에 영합하며 자리를 보장받고 줏대 없이 줄서기 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어용’이라 부른다. 물론 아직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인’이 아닌 ‘지성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더러 남아 있긴 한 것인가. 가령, 스스로 지성인이라 일컫는 성직자가 자리를 탐하거나 이권에 개입하고 비즈니스맨(businessman)으로 전락한다면, 선지자적 지성을 포기하고 이런 지식인들이 어떤 편에 서는 것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는 지성인은 더 이상 ‘계층’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익집단’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진보는 정치적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가치집단’으로서 진보는 죽었다”라는 진중권 교수의 지적처럼 전통적 지성인은 멸종한 것일까. 가히 지성인들에게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서 도덕적·지성적으로 냉정한 평론과 진지한 토론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전통적인 관점의 지성인은 사라져 간다. 현대 지식인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등 SNS에서 많은 팔로워 구독자를 가진 사용자나 포털사이트에서 큰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 등에 영향을 미치는 ‘메가 인플루언서(Mega-Influencer)’로 형태로 대체된다. 교수, 문인, 성직자, 철학자 등이 이 역할에 해당된다. 최근 친정부 성향의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SNS상에서 자기만의 전문성을 지닌 ‘마이크로 인플루언서(Micro-Influencer)’들과 조응하며 영향력을 확대한다. 여기에 소위 ‘셀럽(Celeb)’이라 불리는 집단이 지식인 대열에 가세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식인은 많지만 이성적이고 깊은 사유(思惟)를 갖춘 지성인들은 침묵하고 자연히 사라지고 만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로 『지식인의 아편』을 쓴 레몽 아롱(Raymond Aron)의 명언이 떠오른다. “정치란 선악의 투쟁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의 투쟁은 더욱 아니다. 정치란 좀 더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선택일 뿐이다. 정치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지난해 9월 소설가 황모(某)씨는 1,267명이나 되는 문인들을 모아 서명을 받고 ‘조모(某)지지’ 성명을 주도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랴. 조모(某)를 졸지에 한국의 드레퓌스, 죄 없는 의인으로 추앙받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어용’이 되어간다. 심지어 ‘어용 지식인’임을 자랑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어용’이 투사가 되고, 가슴에 빛나는 훈장을 달고, 그 공으로 자리가 보장된다. 이렇게 한국 사회는 중요한 쟁점마다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뉘어 갈등과 대립, 분열의 중심에 어용 지식인들이 있다. 지성인이나 논객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난세(亂世)에 침묵하고 현실을 외면한다. 한국사회에 지성과 도덕적 윤리에 충실한 지성인이 생존하기는 한 것인가. 이 시대 지성인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용기와 고뇌가 있는가. 권력자 헤롯이나 바로, 혹은 네로의 눈치를 보다 그 목소리를 잃지 않았는가. 가십(gossip)과 먹방(먹는 방송)으로 일관하는 언론 방송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보는가. 선지자적 지성과 메시지가 사라지는 시대, 현실의 부정과 부패, 구조적 모순에 대해 누구도 바른 말하지 않는 침묵의 사회는 과연 건강한 것인가. 오늘 하늘의 소리를 듣고 시대정신을 가리키는 선지자와 예언자적 메시지는 누가 말 것인가. 광야의 들소리처럼, 세례요한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혹독한 비난 가운데서도 작은 신음소리라도 내는 그런 지성으로 인해 역사는 치유되고 발전한다. 지성인들은 당대에 평가받지 않고 다음 세대에 평가될 것이다. 다음 세대는 지금의 한국사회와 지성인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글쓴이: 이효상 원장 (칼럼니스트/ 근대문화진흥원/ 한국교회건강연구원)
    • G.OPINION
    • G.COLUMN
    2020-05-13
  • 이효상 칼럼 - 빚 가운데로 걸어가는 대한민국, 미래는?
    저 출산율, 암 사망율, 음주 소비량, 양주 수입률, 교통사고율, 청소년 흡연율, 이혼율, 국가부채… 이런 각종 타이틀은 손가락 순위권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중에 하나가 국내 총생산(GDP)에 비해 국가부채, 가계부채 증가 폭도 코로나19 위기 이후에 경고음이 더 크게 울렸다. 2019년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보면 국가부채가 2019년도 1743조6천억 원으로, 그 전년보다 60조2천억 원이 늘면서 국민 1인당 1,409만 원 상당의 빚을 떠안고 전 국민이 3년 동안 한 푼도 안 써야 다 갚을 수 있는 상태이다. 국가채무 급증은 재정수지 악화로 국채 발행이 늘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재정안정 마지노선’인 40%를 넘어 41.4%로 치솟고 있다. 하지만 이는 향후 예상되는 6월 추경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로 추경이 반영되면 국가채무비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늘고 있는 나랏빚, 경기 불황으로 세수마저 줄면 나랏빚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게 된다. 국가 채무에 국세마저 1조3000억 원 덜 걷히는 세수 결손까지 발생하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의 먹구름은 언제 걷힐지 아무도 모른다. 고용부가 발표한 ‘3월 사업체 노동력’발표에 3월 한 달 새 강제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59만 명이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전 산업으로 번진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앞으로 재정 지출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코로나충격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을 돕는 것은 마땅히 할 일이지만, 부유층에도 재난지원금을 뿌려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해 본 영화 ‘국가부도’가 생각나면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불과 20년 전 1998년 IMF 현실을 소재로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던 상황을 그린 영화였는데 어찌나 실감나든지, 어떻게 예나 지금이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아니다”.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인지 참 모를 일이다. 모두들 힘들다 어렵다고만 하는데 당국자나 정치권만 여전히 괜찮다고 하니 도무지 무엇을 보고 괜찮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더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 나서 깨닫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6월, 3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서두르고 있다. 1969년 이후 처음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동 제한 장기화에 따른 내수 위축과 전 세계적 경제 추락으로 인한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각국이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게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 추경도 적정 규모를, 적기에 처리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재정 건전성 악화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재정 쓰임새가 커질수록 재정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유지하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데 그 누가 감당할 것인가. 국민 혈세는 꼭 써야 할 곳에 써야 한다. 빚낸 돈을 자기 주머니 쌈짓돈 쓰듯 선심성으로 뿌린다면 국가 미래는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브레이크 없는 재정 질주 및 1당 독주는 미래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그래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선명 야당의 역할이 더 기대된다. 하지만 이 지경이 되면 나라 살림을 관리하는 정부와 정치인이 무슨 대책이라도 내놔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6월 21대 개원국회는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운영하도록 여야 없이 지혜를 모으고 협치하는 새 풍속도를 기대하면서도 이미 두 차례 추경 과정에서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쥐어짠 상황이겠지만 공기업 등 강도 높은 추가 세출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계속 적자 국채 발행만 늘릴 경우 통화 팽창과 국제 신인도 추락 등의 부작용이 예상된다. 정부투자 대부분 비생산적 혈세 낭비로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릴수록 세금이 늘어나고 그만큼 민간은 새로운 투자 기회를 잃게 된다. 결국 정부의 확장정책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국가의 부담만 늘리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512조 원 규모 슈퍼 예산에서 불요불급한 지출을 삭감하는 등 과감한 세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나라 곳간을 맡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다. ‘빚 살림살이’는 정부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340개 공공기관의 부채는 지난해 21조 원 이상 불어 사상 최대인 525조1000억 원에 달했다. 당기 순이익은 2016년 15조4천억 원에서 6천억 원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지난 4년간 임직원을 10만 명이나 늘렸다. 경영이 얼마나 방만한지를 말해주는 수치다. 근거도 없고 기준도 애매한 나라빚 불리기는 정부나 공공기관이나 똑같다. ‘전시상황(戰時狀況)’이라는 대통령의 간곡한 발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改憲) 군불 때는 여(與)당은 개헌안 처리를 들고 나왔다. 어차피 재적 3분의 2를 얻어 국회를 통과하기는 힘들다. 국민들은 4.15 총선에서 개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여당에게 주었다. 그만큼 경제 위기극복과 책임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당부였다. 장차 개헌 논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선순위는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일 것이다. 지금 개헌 논의에 국력을 쏟을 여력이 없다. 경제 위기극복에 총력을 기울여도 부족할 판에 여당이 개헌 논의로 국력을 분산 시키는 행동이나 궁리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장기집권을 대비한 권력의 오만함으로 비춰질 것이다. 대통령이 현 경제상태를 ‘전시상황’이라고 하는데, 여당은 왜 그렇게 반대로 가야 하나. ‘국민개헌발의’와 통합당 일부 의원들을 흔들어 보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라 두 동강 내는 진보의 폭주, 극단의 정치는 더 이상 안된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아마 이런 돈 걱정일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라고 하지만 결론은 돈 걱정이다. 돈에 신경을 쓰고 걱정하고 힘들어하며 스트레스도 받지만 우리로 하여금 각성(覺醒;깨달아 앎)케 한다. 코로나 보다 빚이 더 겁난다고들 한다. 코로나 충격속에 서민들은 빚으로 버틴다. 실물경제 침체로 사회취약 계층은 생활고와 빚으로 살아간다. 민생경제가 응급상황에서 1700조 넘는 국가부채, 선심성 긴급재난지원금으로 과연 발등의 불은 꺼질까?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양극화는 더 심각해진다. 어차피 70% 국민은 대출 깔고 사는 서민이다. 빚 가운데서 빚으로 산다. ‘재난 지원금’으로 인해 경기부양이라는 큰 도움이 되기보다는 어려움 당한 사람들에게 심리적 위로는 될 듯하다. 국가가 공짜 돈을 준다는데 싫어할 국민은 없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배급과 할당 등을 공유하는 국가 주도형 사회경제가 형성되고, 정부의 선심성 퍼주기 정책이 오히려 정부의 의존도만 높여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환상 속에 국민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제 위기극복을 핑계로 ‘묻지마 지원’은 안 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개인적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노력의 엄중함과 노동 창의력 등이 상실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지 염려된다. 서민들은 일자리와 빚 상환 걱정뿐이다. 올해 1분기 파산신청이 5년 새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도 돈이 없고 국가도 돈이 없다. 국민은 은행 이자내기 바쁘고 국가는 매년 늘어나는 국가부채를 부담스러워 한다. 이렇게 늘어난 빚은 누가 갚을 것인가? 향후 계속되는 적자 국채발행은 향후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될 잠재적인 빚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선심성 퍼주기가 마냥 환영할 일만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4인가구 기준 최대 100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대신 돈 많은 사람은 알아서 자발적으로 기부하라며 주었다.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세액공제를 해주는 특별법까지 만들면서, 빚 낸 돈을 무차별 살포한다는 비판을 면하려는 황당무계한 ‘기부 운동’을 벌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재정정책은 끝없는 ‘땜빵식’, ‘돌려막기식’으로 이어져 혼란을 부른다. 돈이 ‘빚’이 되면 어떻게 될까. ‘빚 진게 죄인’이라는 말이 있다. ‘죄인’ 되고, 자유함을 잃고 매이는 ‘노예’가 된다. 그래서 성경에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빚의 대물림은 불행이다. 지금 우리는 후손들에게 너무나도 큰 빚을 안겨주고 있다. 이 기회에 ‘포퓰리즘 정치’에 맛을 들인 그리스 ‘국가부도’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아르헨티나도 부도국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빚’ 가운데로 걸어가는 대한민국, 후손들에게 ‘빚’이 아니라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 이효상 원장 (칼럼니스트/ 근대문화진흥원/ 한국교회건강연구원)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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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6
  • 엄상익 칼럼 - 기독교당
    이천십구 년 말 어둠이 내린 저녁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으로 갔었다.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거리에 꽉 차 있었다. 연단 위에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찬송이 거리에 흘러넘쳤다. 그 사람들이 기독교당을 만들었다. 그들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오십 년 전 중학을 다닐 때였다.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온 무장공비가 서울 거리를 휘젓고 북한군이 얼어붙은 임진강 위로 탱크를 몰고 내려올 것이라는 공포가 우리들을 얼어붙게 했다. 그런 속에서도 선생님은 꿈을 심어주었다. 앞으로 마이카시대가 올 거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잘살아 보세’라는 깃발을 들고 모세같이 국민들을 이끌었다.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로 가서 노동을 팔고 군인들이 월남에 가서 피를 팔았다. 간호사로 간 친척 이모는 병자들의 똥을 닦아주다가 얻어맞고 병자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우리 또래의 시골 소녀들이 청계천 봉제 공장에서 노예같이 일했다. 우리들은 모두 거대한 기계 안의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 메마른 소리를 내며 앞으로 진군했다. 그런 우리들이 세월의 강을 흘러 어느새 노년의 언덕에 도달했다.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세상이 됐다. 사람들은 명품을 걸치고 세계 곳곳으로 관광을 가기 시작했다. 턱없이 교만한 한국인들이 생겼다. 돈을 벌면 인간 품질이 상승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소련이 무너진 후 얼마 안 되어 시베리아를 철도로 횡단할 때였다. 빛바랜 머플러에 낡은 코트를 입고 상점 앞에 줄지어 있는 러시아 여성들은 가난하고 불쌍해 보였다. 시골의 자그마한 박물관 입구를 지키던 한 러시아 여자로부터 우연히 이런 말을 들었었다. “우리는 한 달에 백 불 정도 가지고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암시장에 나가면 문학 서적들이 산 같이 쌓여 있어요. 문화 공연도 거의 돈을 안 내고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달러를 얼마나 가졌느냐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러시아는 가난해도 뿌리 깊은 문화가 있습니다.” 그녀의 말은 나의 가슴에 강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태리를 여행하다가 카프리 섬의 선착장에서 한 이태리인으로부터 비아냥 비슷한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을 보면 주머니는 꽉 차 있는데 머릿속은 뭐가 들어 있는지 잘 모르겠어.” 시큰둥하게 내뱉은 말이지만 의미를 던져주는 말이었다. 일본의 작가 야마자키 도요코는 경제번영과 함께 양심을 잃어가는 일본의 정신적 불모를 주제로 ‘불모지대’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잘살아 보자고 했는데 정신적 빈곤은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다. 광장에서 생긴 기독당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예수는 빵 만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가도 경제만으로 존재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종종 정치인들을 만나면 “당신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까?”라고 물어본다. 그들의 정치철학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연다고 했다. 신선한 구호였다. 그러나 그는 보통사람이 아닌 귀족 같았다. 그가 주장하는 구호는 숙성되지 않은 공허한 관념 같은 느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다. 가난과 차별을 경험한 속에서 숙성된 정치철학이라고 공감했다. 그러나 그는 기득권층의 두꺼운 벽을 깨지 못하고 자신이 부서져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나오는 연설문에서는 피부에 와 닿는 간절한 염원을 느끼지 못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문재인 변호사와 둘이서만 봤을 때 당신은 어떤 나라를 만들어 보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었다. 기독교당의 이념적 지향은 무엇일까. 예수는 정치세력을 조직해 당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들을 모아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았다. 강대국 로마에 대해 유대의 주체성과 독립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개인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했다.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임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정신적 불모지대에 불과하다. 사회가 개량되고 국가가 성숙하려면 먼저 개개인의 영혼이 변화되는 게 맞다. 기독교당이 정치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소금 같은 그 본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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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3
  • 배재군 칼럼 - 미래 통합당(보수 정당)의 몰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모 일간지 칼럼니스트는 총선의 결과에 대해 "민주당이 나라를 망쳤는데도 180석이면 이 나라의 미래는 절망이다. 이제 국민은 경제와 안보, 자유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 상태에서 살게 됐다"라고 했습니다. 보수 정당의 패인이 무엇일까요? 여론은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보수 골통 꼰대 짓만 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 과거에 안주하거나 각자의 환상 속에 빠져 꼰대 짓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목회자(목회자 집단)의 의식은 어떠한가요? 신앙의 본질, 신앙의 형태는 보수 골통을 사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틀, 신앙의 양식마저 변질되지는 않았습니까? 복음의 본질은 변할 수 없지만 적용에 있어선 ‘네모난 그릇에 담을 수도, 둥근 그릇에 담을 수도 있듯이’란 예를 들어가면서 ..., (경계해야 할 상황윤리에 맞추어 가면서) 목회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그러진 군상들을 보세요. 그 모든 것을 담기에는 지면이 부족하고 부끄럽기가 그지없습니다. 만일 교회 존재 가치에 대한 국민투표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존재의 찬성, 아니면 반대일까요?, 한번 생각해 볼까요? 개인적으로 그 결과를 생각하면 신경계통에 오싹하는 전율의 흐름(무서움)을 느낍니다. 맘모스, 초대형, 대형이란 틀 안에서 자신을 우상화하는 유혹, 큰 인물인 듯하는 유혹, 반대로 그렇지 못한데 대한 자괴감, 자존감의 상실 또한 경계해야 할 일들이 아닐까요? 개혁자들이 부르짖었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외침은 지금에도 외쳐야 할 소리, 귀 기울어야 할 소리인 듯합니다. 2020-04-18대한예수교장로회 동원교회 배재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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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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