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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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 정치가 김상현에게 묻는다
    총회 무게 있는 부서의 장을 용하게 맡는 재주의 정치가 김상현이 총회 화합의 사도 박병석 목사 방장 카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죄송합니다만 될 수 있으면 정치 이야기하지 말고 은혜받는 혹은 미담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에 근거하고 그간의 유력 신문 기사를 살펴 카톡방에 올린 다음과 같은 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이나 배광식의 서사는 극적이지만 진실에 대한 믿음이 없다. 비겁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 집착했으면서 초연한 척하고 사익를 탐했으면서 개결한 척한다. 무사안일을 갈구하면서 당당한 척하고 잘못했으면서 정당한 척한다. 그들의 재임은 의심과 허위의 기간이다. 맥베스에서의 셰익스피어 표현을 빌리면 “아라비아의 향수도 그의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을 내려다보며 손을 씻는 빌라도처럼 능청스레 변명해도 후일 역사는 바르게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정치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바르게 하도록 회초리로 치는 것을 뜻하는 합성어이다.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스러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물(水)이 넘쳐 생긴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하고 부조화한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다른 말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게 정치다. 따라서 정치가(政治家)는 먼저 세상과 자연의 이치에 조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스려 극복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 곤란함, 부조화로운 면을 제거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즉 군자 또는 의인을 의미한다. 배광식이 총신 졸업생들에게 전한 성경 말씀 내용이 정치의 본뜻이고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도 그런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신 졸업식장의 배광식을 통해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김상현의 말이나 행동과 달리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 노회) 시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최초의 헌장에 근거해 제정되고 공표된 총회 헌법 정치편에서 정치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1장 원리 예수교 장로회 정치의 일정한 원리 8개 조가 있으니 이것을 이해하여야 교회의 성질을 알 것이다 제1조 양심 자유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過分)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人類)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侵害)하지 못한다. 제2조 교회 자유 1. 전조(前條)에 설명한 바 개인 자유의 일례(一例)로 어느 교파 어느 교회든지 각기 교인의 입회 규칙과 입교인 및 직원의 자격과 교회 정치의 일체(一切)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설정(設定)할 자유권이 있다. 2. 교회는 국가의 세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국가에서 각 종교의 종교적 기관을 안전 보장하며 동일시(同一視)함을 바라는 것뿐이다. 제3조 교회의 직원과 그 책임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지체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직원을 설치(設置)하사 다만 복음을 전파하며 성례를 시행하게 하실 뿐 아니라 신도로 진리와 본분을 준수하도록 관리(管理)하게 하신 것이라. 이러므로 교우 중에 거짓 도리를 신앙하는 자와 행위가 악한 자가 있으면 교회를 대표한 직원과 치리회가 당연히 책망하거나 출교할 것이라. 그러나 항상 성경에 교훈한 법례(法例)대로 행한다. 제4조 진리와 행위의 관계 진리는 선행의 기초라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으로 성결하게 하는 경향(傾向)에 있으니 주 말씀하시되 ‘과실로 그 나무를 안다’ 하심과 같으니 진리와 허위(虛僞)가 동일(同一)하며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든지 관계없다 하는 이 말보다 더 패리(悖理)하고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신앙과 행위는 연락하고 진리와 본분은 서로 결탁(結託)되어 나누지 못할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리를 연구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또한 김상현의 말대로라면 세례 요한은 당시 집권자인 헤롯의 비리를 정치적으로 지적한 죄로 목이 잘렸다. 성경은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마 14:3-12 성경은 김상현의 말대로라면 그가 지적하는 정치 기사로 넘친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에서 그 부분들은 제하고 읽고 따라야 하는 것인가. 총회 산하 수도노회 소속 목사인 김상현은 무엇을 믿고 살고 총회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위해 왜 정치하는지를 총회 정치가 김상현에게 묻는다. 세례 요한처럼 목이 잘릴 염려는 전혀 없겠지만 대한민국의 법정에 피소당할 수도 있는 각오는 가지고...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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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6
  • 총회장이 되려는 이유
    얼마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2021년 12월 5일)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캔자스주를 대표하여 연방 하원 (1961년~1969년)과 연방 상원(1969년~1996년)을 지냈으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였다. 2021년 12월 5일 (98세)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결점이 될 때까지(to a fault).”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 ‘결점이 될 때까지’라는 표현은 밥 돌에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며 “타협(compromise)은 결코 더러운 단어가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노(老) 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다.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무지 신경을 씀.’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총회장을 지낸 소강석, 현재 총회장 배광식, 그리고 2년 뒤 총회장이 되고 싶은 장봉생 등에게 총회장을 하려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목사가 되어 총회장이 되려면 공부 잘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믿음의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마음껏 꿈꿀 수 있다고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모사를 다른 총회장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우리 솔직히 말하자. 죽음 앞에 선 이번 증경 총회장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결점이 될 때까지(to a fault).” 202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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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30
  • 총회와 사회 사문서위조 차이
    고3 학생이 성적이 안 좋아 정경심 조국 자녀와 달리 정원 미달인 학교만 찾고 있었다. 하루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물으셨다. “너는 천국에 가고 싶냐, 지옥에 가고 싶냐.” 그러자 학생이 잠결에 말했다.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가 인원 미달이에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이른바 대학 입학을 위한 ‘7대 스펙’에 대해 1.2심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에서도 모두 허위라고 판정했다. 대법원이 자녀 입시 부정과 사모펀드 불법 투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장관 아내 정경심(60) 동양대 교수에 대해 징역 4년형을 확정하면서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2년 1월 27일 오전 10시 15분 사문서위조 및 행사,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및 업무방해와 자본시장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총 15개 혐의로 기소된 정 전 교수에 대해 징역 4년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1.2심과 마찬가지로 정 교수의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한 7가지 혐의 모두를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앞서 1.2심 재판부는 여론을 둘로 쪼갠 시발점이 된 입시 비리에 허위와 뻔뻔한 태도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했다. “입시제도 자체의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과 기대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재판 내내 입시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태도로 범행의 본질을 흐리면서 정 교수 가족에 대한 선의로 사실과 다른 확인서를 작성했을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2019년 10월 23일 구속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 전 교수는 2024년 5월경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정 전 교수는 2020년 5월 19일 구속기한 만료로 석방돼 같은 해 12월 23일 실형 선고 때까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동양대는 자녀 입시 비리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1.2심 판단 등을 근거로 정 전 교수를 지난해 8월 31일 면직처리 했다. 대법원이 동양대 PC 증거 능력을 인정하면서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21-1부(부장판사 마성영)에서 공전 상태였던 조 전 장관의 아들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진행된 재판도 속도를 내게 됐다.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은 27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은 데 대해 “정의와 상식에 맞는 결과”라고 했다. 한 검사장은 당시 수사팀을 이끌었다. 한 검사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말했다. “2019년 8월 이후 오늘까지 더디고 힘들었지만 결국 정의와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 첫 압수수색은 2019년 8월 27일에 이뤄졌다. 시간이 꽤 흐른 셈이다. 한동훈(48)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찰 내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밑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이른바 ‘적폐 수사’를 총괄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9년 ‘조국 일가 수사’를 지휘한 이후 작년에만 세 번 좌천됐고 1년 내내 ‘채널A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2021년 2월 15일 여권에선 윤 총장이나 당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정권 수사’를 했다고 의심한다는 조선일보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윤 총장이나 저나 눈 한번 질끈 감고 조국 수사 덮었다면 계속 꽃길이었을 겁니다. 권력의 속성상 그 수사로 제 검사 경력도 끝날 거라는 거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하나 덮어 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겁니다. 직업윤리죠.”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도 4년을 확정받은 것과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고통스럽다”라며 마음을 밝히며 27일 오후 조 전 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렸다. “오늘 저녁은 가족이 모여 따뜻한 밥을 같이 먹을 줄 알았으나 헛된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도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아직 젊은 자녀들은 자신이 느끼는 애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슬픔을 다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당혹스러울 것이다. 애도, 고통, 슬픔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줄 누군가가 그들에겐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은혜로운동행 기도운동 본부장 장봉생의 기도와 위로가 절실할지도 모르겠다. 조국은 자녀를 위해서 사문서위조를 범한 까닭에 그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 반면 박상범은 총회를 위해서 사문서위조를 범해서인지 정년을 1년 연장해 채우고도 또 1년을 계약직으로 연장해 평직원이 아닌 국장대행까지 버젓이 맡게 된 것은 배광식의 은혜로운동행의 은혜 탓일까. 그래서 박상범보다 입사 연도가 빠른 박영신 부장을 법인국으로 전보시켜 그의 지시를 받게 하는 건가... 배광식이나 박상범에게는 한동훈 검사 같은 직업윤리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총회 생태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총대나 지도자가 안 보인다. 총회 선거의 선별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언론과 총대의 직업과 신앙 윤리가 실종됐다. 불의를 예방하는 양심이 사라졌고 돈만 앞세운 총회 후보·총대만 있고 당연히 있어야 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비전과 양심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신앙을 위해 순교하는 신앙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교단의 회원이다. 그리고 교회를 위한 진리 수호를 위해 이단 판결 권한과 의무를 가진 총회 소속이다. 그래서 WCC 문제로 1959년 통합 측과 결별할 때 우리는 재산을 포기하고 빈 몸으로 나와 지금의 총회를 이루었다. 그런 우리 총회가 은급재단 납골당 문제로 사문서위조를 한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목사와 장로 가운데 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조국 사태처럼 우리는 정의와 상식 그리고 신앙 윤리에 맞는 결과를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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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8
  • 배광식과 장봉생의 기도운동
    어떤 기업인이 기도를 하려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는데 누군가 먼저 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십만 원만 주세요. 십만 원만 주세요.” 그래서 그 기업인은 지갑에서 십만 원을 꺼내 기도하던 사람에게 주었다. 기도하던 사람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나갔다. 그 기업인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제 기도에만 집중해 주십시오.” 언어는 마음을 감추는 수단이다. 거짓말이나 허언( 虛言)을 꿰뚫지 못하면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흐려진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이 '뒤통수를 맞는 것'인데 눈이 흐려지면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육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갈수록 도진다. 돌이켜보면 거짓말의 달콤한 유혹보다 그 말에 미혹 당하는 내 욕심과 잘못이 크다. 보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들어서 자초한 탓이기 때문이다. 유교의 시조(始祖) 공자(BC551년~BC479년)와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발전시킨 유학자 맹자(BC372년?~BC289년?)는 사람 공부와 세상 공부의 요체로 '지언'(知言) '말을 듣고 아는 것'을 꼽았다. 공자는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맹자 역시 '지언'(知言)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내세운다. 공자와 맹자는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찾는 연대를 마흔으로 잡는 데서도 일치했다. 나이 마흔에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분명해졌다는 이야기다. 지언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 못지않게 내가 불혹과 부동심의 올바른 잣대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공자라고 처음부터 사람 보는 데 눈 밝고 귀 밝은 것은 아니었다. 구변 좋은 제자 재아에게 혹했다가 된통 당하고선 토로했다. "내가 예전에는 사람을 볼 때 말만 듣고도 믿었는데 이제는 그 말을 들으면 실제 행동까지 대조해 보고서야 그 사람을 믿게 되었다." 공자는 제자 재아에게 속은 덕에 바뀐 것이라고 토로한 것이다. 맹자는 철학자답게 지언의 4가지 요점을 분석적으로 제시한다. 첫째 치우친 말(피辭)을 들으면 어느 부분이 가려졌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둘째 과장된 말(淫辭)을 들으면 어느 부분에 빠져들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셋째 거짓말(邪辭)을 들으면 어느 부분이 상식과 괴리되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넷째 변명을 들으면 어느 부분이 궁색한지를 알아내야 한다. 맹자의 지언을 질문으로 바꿔보자. 첫째, 논점이 편파적이지 않은가. 둘째, 사실을 과장 왜곡하지 않는가. 셋째, 정도에서 벗어난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넷째, 곤경에 처할 때마다 오락가락 말이 바뀌지 않는가이다. 맹자는 이재명식의 허언에 대한 '이 같은 판단 근거는 성인이 다시 나와도 동의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흔히 '언어는 생각을 표현한다'라고 하지만 '마음을 감추는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이때 상대의 감춰진 생각과 욕망을 속속들이 읽어내는 판단력이 '지언'이다. 정년을 앞둔 강태구 위원장하에서 구조조정 중에 있는 교단 기관지는 은혜로운동행 기도운동본부장 장봉생과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의 설교를 전했다. 1월 16일 목포 사랑의교회(백동조 목사)에서 설교자로 나선 기도운동본부장 장봉생 목사(서대문교회)는 ‘합심하여 기도하자’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간구하는 자리에서는 커다란 영적 동력이 일어난다”라면서 “우리의 기도를 모아 세상을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1월 23일 대한교회(윤영민 목사)에서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그발 강가의 기도’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코로나19를 핑계로 우리의 가슴이 식어졌다. 예배를 축소하고 기도회를 축소했다. 이것이 사명자의 모습인가?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나?”라며 회개를 촉구했다. 배 목사는 “기도하면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면 땅이 열린다”라며“다시 한 번 우리를 고쳐달라고 부르짖는 기도의 역사가 서북지역 목사와 장로들에게 흘러나오기를 바란다”라고 권면했다. 몸이 안 좋다더니 건강을 회복한 것인지 장봉생 목사가 차차기 제108회 부총회장 후보로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기도운동본부장으로서는 “우리의 기도를 모아 세상을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하면서 속마음은 자신의 선거운동을 위해 돌아다닌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그리고 은혜로운동행 운동을 주창한 배광식은 “코로나19를 핑계로 우리의 가슴이 식어졌다. 예배를 축소하고 기도회를 축소했다. 이것이 사명자의 모습인가?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나?”라며 회개를 촉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배광식 자신은 회개가 필요 없는 은혜로운동행을 하나님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거운동을 하는 장봉생이나 국장 정년연장도 모자라 계약직으로 직책을 연장한 뒤 국장대행을 맡은 음흉한 총회 직원과 은혜로운동행을 꾀하고 있는 것인가. 문재인과 이재명에 대항해 분투하고 있는 국민의힘 원내대표 김기현 장로를 위해 당회장으로서 총회장으로서 진정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기도해도 모자랄 판이다. 자신의 설교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다시 한번 장봉생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고 총회와 국가의 안위를 살펴보기를 총신 선배로서 바란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과 운동을 가다듬어 바른 기도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 4:20-22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 18:21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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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OLUMN
    2022-01-25
  • 감사부장은 왜 실패하는가
    검고 하얀 붉고 파란 믿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 보이지 않는 기도를 그의 말씀으로 이루리라 신앙촌에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차디찬 종소리 그러나 아침에는 유다의 황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욕망 불완전한 총회 역사는 모든 것을 다 비추지 않는 거울이다. 김영우 같은 사람을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는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106회 총회 이후 역사를 향해 다른 거울을 들어 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모든 사람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을 말이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고 한다. 우리 삶은 더 좋아질까 나빠질까. 코로나로 촉발된 변혁의 힘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 있다. 14세기 흑사병(黑死病 plague) 이후 서유럽과 동유럽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듯이 말이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페스트"는 독일어로 우리말대로 "pest"인데 영어로는 "plague(플래그)"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 plague가 "전염병"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변한 것을 보면 중세 페스트 대유행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을 말 그대로 "검은 죽음의 병"이라고 할 정도로 참혹하고 무서운 병이다. 실제로 그 병은 혈관 내 피가 응고되며 신체 말단이 괴사하면서 검은색으로 변해 사망하는 끔찍한 질병이다. 흑사병이 유럽에 상륙한 건 1346년. 그때까지만 해도 동유럽과 서유럽은 정치 경제 제도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양쪽 모두 영주가 다수의 소작농을 착취했다. 소작농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영주에 예속돼 있었다. 이른바 농노(農奴)였다. 흑사병의 피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동유럽이든 서유럽이든 흑사병이 창궐한 곳은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따라 들끓던 검은 쥐들을 통해 지중해 해운 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흑사병으로 유럽 총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줄어든 인구는 300여 년이 지난 17세기가 되어서야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 미친 흑사병 피해가 낳은 결과는 아주 달랐다. 서유럽에서는 중세의 억압적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보다 포용적 사회로 진화했다. 산업혁명의 바탕이 만들어졌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봉건 제도가 강화됐다. 사람들이 영주에 더욱더 예속됐다. 보다 억압적인 사회로 퇴행했다. 양쪽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기득권과의 싸움에 승리해 개인의 자유를 확보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달랐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면서 노동 인구가 급감했다. 일손이 부족해졌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당시 영국 엔셤 수도원(Eynsham Abbey) 영지에는 소작농이 겨우 두 명만 남았다고 한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탓이다. 노동력이 희소해져 가치가 오른 소작농은 협상력을 갖게 됐다. 더 많은 권리를 주장했다. 부역과 벌금을 대폭 줄여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지를 떠나겠다고 했다. 엔셤 수도원은 소작농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른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작농의 임금이 올랐다. 강제 노역을 비롯한 온갖 부담에서 풀려나 자유와 여유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동유럽은 협상이 아니라 강제력을 지닌 법에 의지했다. 기득권 수호는 잘못된 선택이다. 흑사병 이후 동유럽 역시 흑사병 탓에 노동 인구가 감소했다. 영주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더 쥐어짰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무임금 강제 노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자녀까지 몇 년은 영주를 위해 무료로 노역을 해야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1년에 며칠에 그쳤던 체납임금이 일주일에 나흘로 늘어났다. 이런 착취 제도에서는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서유럽에 철도가 깔린 한참 뒤에도 동유럽은 기득권에 손해가 될까 걱정해 철도 부설을 거부했다. 2022년 1월 11일 자 기관지를 통해 총회장 배광식은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회개하고 은혜를 구한다며 총회 유지재단 이사에 감사부장이 들어가고 총회 임원이 자리 잡았다. 일례로 총회 각 부서의 감사로 비리와 부패를 막고 시정해야 할 감사부장이 유지재단에 들어가면 유지재단 감독과 감사는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 게 은혜로운 동행인가. 또한 혹독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독신문 사장 대행 김상현은 총회회관 리모델링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데 그것도 은혜로운 동행을 위한 것인가. 은혜로운 동행을 제106회 총회 슬로건으로 내건 1년 임기의 배광식 총회장은 구조조정 대상 기관지를 통해 5년 임기 대통령처럼 바벨탑 같은 총회타운 건설안을 발표했다. 사당동에 있는 총신에 총회타운을 건설하자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교단 발전은 물론 총신도 사는 길입니다. 과거 제가 총신법인이사를 할 때 이미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총신에 총회 랜드마크를 세워야 합니다. GMS센터와 총신 양지캠퍼스를 사당동으로 집약하면 교단 운영 효율성과 역량결집, 총신 미래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전략적 연구를 주문해 놓은 상태입니다. 충실한 총회행사 안내지 개혁타임즈 1월 14일 자 기사를 친절하게도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가 18일 내게 보내줬다. 그 기사는 목사로서 장로신문(이름 그대로 장로신문은 장로가 해야 한다는 경영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취재국장이면서 개혁타임즈 대표인 김창연이 배광식 목사와 오광춘 장로의 뜻을 다음과 같이 충실히 안내했다. 총회 감사부(부장: 오광춘 장로)가 1월 13일 오전 당일 일정으로 총회 본부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먼저 오전 10시 30분 서기 황석산 목사의 사회 가운데 회계 김경환 장로의 기도, 부원 강희섭 목사의 성경 봉독 후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겔 47: 1~11;2을 본문으로 ‘총회를 아름답게 하는 감사부’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부장 오광춘 장로의 인사, 총회 총무 고영기 목사의 축사, 총무 이영민 목사의 광고 후 부원 한진희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의 사회로 총회장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됐다. 감사 대상인 총회장 배광식이 모두 발언을 통해 말했다. "감사부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감사부가 총회 총무의 지출에 대해 지적한 건에 대해서는 시정토록 했으나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과정이니 총회 규정을 약간 벗어나도 양해를 구한다. 감사부는 총회를 정화 시키며 경각심을 주는 중요한 기구다. 총회장부터 모든 총회 임원들이 규정을 잘 따르고 조심하겠다. 그리고 지적하면 시정 하겠다." 총회장과 감사부원들과 대화에서는 먼저 감사부가 총회 임원회에 요청한 제105회기 총회선거관리위원회 특별감사 요청한 건에 대해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총회 임원회 결의를 전제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감사부와 선관위, 재판국을 제외한 다른 상비부나 위원회들이 자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총회장은 총회의 재정 지출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재정을 조달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달리 총회에서 달리 제지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감사부장이면서 피감 기관인 총회유지재단 이사가 된 오광춘은 말했다. “감사부원들뿐만 아니라 제106회 총회에 참석한 많은 총대들이 지난 총회 선관위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목사 부총회장 후보가 선거에 불복하는 사태까지 야기한 선거 과정과 절차의 난맥상을 포함해 선거 준비부터 진행 전체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제105회기 선관위가 8월 초부터 9월 총회 직전까지 지출한 재정 건에 대해서는 제106회기 감사부에서 충분히 감사가 가능한 것으로 본다." 오광춘 감사부장은 계속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3년 동안 문제가 없었던 상비부나 위원회는 비대면 감사로 진행할 것이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비부와 위원회는 철저히 살펴보겠다. 모든 것을 ‘총회 규칙’대로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잘하는 부서는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문제가 있는 부서는 철저하게 감사 하겠다”라고 밝혔다. 개혁타임즈 말로는 오광춘 장로가 문재인에 맞선 전 감사원장 최재형 장로처럼 철저한 감사 정신을 가진 것 같다. 그런 그가 총회 직원의 사문서 위조 제보를 받고도 살펴보겠다더니 빈말로 뭉개고 그 직원이 근무했고 다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기관의 이사가 되고 정년 퇴직자의 계약직 직원이 된 의혹도 살펴보겠다더니 뭉개고 있다. 교회 봉사하랴 사업하랴 그런 처지의 장로께서 생각이 모자란 것인지 믿음이 유별난 것인지 무슨 꿍꿍이인지... 그런데 총회 18년 은급부 적폐를 해결한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의 제105회 선거관리워원장 시절의 일도 감사하겠노라 공표했다. 유유상종의 배광식 앞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월 15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의 부당성을 밝혀낸 책임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현 정권의 행태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아닌 정권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되라는 무언의 압력”이라고 했다. 2020년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 요구로 시작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감사가 난항을 겪자 담당 국장을 유 국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유 국장은 그해 10월 산업부 담당 국장 등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일부 산업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문서 삭제 등 증거인멸 혐의 관련 자료를 검찰에 이첩하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의식이 없거나 습관이 바뀌기 전까지는 행동은 무의식이 지배하고 과거의 습관을 따른다. 우리가 걸으면서도 휴대폰으로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습관화된 걷기를 무의식이 "자율주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배광식과 오광춘 같은 유유상종의 무리 역시 허위가 습관화된 행위를 하나님이 없는 무의식이 "자율주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지적하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흑사병 대처의 차이처럼 "감사부장은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세상과 다른 대처 근거와 결과를 성경은 밝히 말씀한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7-2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2022-01-19
    • G.OPINION
    • G.COLUMN
    2022-01-20
  • 나라의 재난과 총회 사명
    나라의 재난과 총회 사명 지난 1월 15일 남태평양 통가의 수도 누쿠알로파에서 북쪽 65km 해역에서 해저에 있는 통가 훙가 하파이 화산이 대규모 분화를 일으켰다. 화산 분출의 여파는 일본과 미국, 뉴질랜드 등 태평양 인접 국가들로도 이어졌다. 일본은 남동부 해안 전역 곳곳에서 쓰나미가 관측되면서 2016년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5년여 만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일본은 지난 주말 23만여 명에게 대피령을 내리는 비상이 걸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16년 후쿠시마현과 미야기현에 경보가 내려진 역사를 떠올린다면 5년 주기로 재난의 그림자가 일본 열도에 드리우고 있다. 다행히 이번 쓰나미는 큰 피해를 일으키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의 재난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적이 필요한 시간. 그렇다. 인간의 대응 능력을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기도뿐일 것이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적뿐일지도 모르겠다. 기적이 필요한 바로 지금 이 순간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인류가 겪는 재난에 대한 법칙을 소개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Travelers Insurance Company)라는 회사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업무 성격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했던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으로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 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가슴 아픈 대형 사고를 많이 경험했는데 1990년대가 특히 그랬다. 1993년 구포 열차 사고, 아시아나 추락 사고, 서해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8년 IMF 금융 사태, 1999년 씨랜드 화재, 인터넷 대란과 같은 재난 사고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을 때 또 다른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사고는 왜 지속적으로 일어날까. 어떤 이는 과거 압축 성장의 부작용이라 하고, 성장 위주 경제정책으로 인한 폐해라고도 한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성장에 바빴던 우리 사회는 사회 전 분야에서 안전을 가볍게 여기고 안전을 문화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인적 재난관리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것도 1995년 508명이 희생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이후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13년까지 발생한 사망자 10인 이상의 대형 재난 276건 중 42%가 인적 재난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인적 재난은 줄어들지 않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등 많은 사고가 일어나자 정부는 본격적인 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소방방재청 신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수립 등 국가 안전관리 계획이 마련됐다. 그런데도 대형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05년 양양 산불, 서해대교 29중 추돌, 2007년 허베이 스피릿호 기름 유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숭례문 방화 사건,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2013년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화수소 누출 사고 등이 발생했고, 2014년 2월 경주 마리나리조트 붕괴 사고, 같은 해 4월에는 전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고난의 단초가 됐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분명히 제도적인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하겠으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된 안전 관련 가치관 미흡과 이로 인해 형성되는 안전 문화의 부재에 있다고 판단된다. 안전은 법과 제도나 사회적 인프라 같은 하드웨어만 갖춘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가치관, 국민의 의식과 그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도덕의식을 배양하는 신앙적 정직이다. 문재인식의 무책임한 발언, 이재명식의 부정직한 둘러대기, 성직자의 지역 편향이나 좌경화, 사회 구성원의 신분 여부와 지위고하를 막론한 배금주의 등의 문제점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 상황의 타개책은 감사부장이 피감기관 총회 유지재단 이사가 되어 총회 리모델링 공사를 밀어붙이고 총회장이 감사부에 감사를 지시하는 월권의 제106회 총회(총회장 배광식)부터 짜고 치는 은혜로운 동행을 넘어 성경으로 돌아가 회개운동을 펼치는 길뿐이라는 자각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최근에 발생했던 광주의 건물 철거 붕괴사고나 건설 중인 아파트 붕괴 등 정.재계의 각종 재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물론 총회가 새로운 각오로 대한민국의 정신문화를 더욱 성숙시키고 정직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되새겨야 할 인물이 있다. 그는 도산 안창호다. 도산 안창호는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로서 흥사단, 국민회와 같은 단체를 조직, 주관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분이다. 말년에 윤봉길 의사의 상해 폭탄 사건과 동우회 사건으로 5년간 옥살이를 하던 중 1938년 60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으로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분이다. 그의 시신은 현재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에 아내와 더불어 안장되어 있다. 그의 민족 사랑의 깨달음과 신념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그것은 18세의 나이로 서울에 올라와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구세학당과 정동학당에서 배운 기독교의 가치관과 예수 신앙이었다.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그가 구세학당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 모습과 정동학당에서 전도하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전도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열심히 있었던지 당시 발행된 신문에 리석관이라는 하는 선비가 그 이전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다가 안창호라는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후 고향인 평안남도 강서군 송만리에 학교와 교회를 세워 교육과 전도를 함께 하였다. 안창호는 자신이 믿는 기독교의 복음이 자신을 구하고 민족을 구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널리 전파하는 데에 앞장을 섰다. 도산은 1936년 10월 죽기 1년 반 전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청년회 연합 집회에 강사로 서게 되었다. 이날 소문을 듣고 모인 청중이 교회당 밖 뜰까지 가득 차서 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이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모세가 히브리 노예 백성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건너 애굽으로부터 해방 받는 장면을 출애굽기 14:21-28 본문으로 선택하여 병약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장장 두 시간이 넘게 말씀을 전하고 다음의 말로 끝맺었다고 한다. 묻노니 여러분이시여! 오늘 대한 사회의 주인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그 민족 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이가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손님입니다... 진정한 주인에게는 비관도 없고 낙관도 없고 제 일인 고로 오직 어찌하면 우리 민족 사회를 건질까 하는 책임감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아 진정한 주인이 적다 싶으면 빨리 나부터 참 주인이 되도록 합시다. “나가자”라는 제목으로 두 시간에 걸친 그의 설교를 마친 뒤 도산은 모든 회중에게 다 기립하기를 청하고 “나가자!”는 구호를 세 번 외치게 하였다고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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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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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효상 칼럼 - 한국교회, ‘성장주의’ 이대로 좋은가?
    지난해 가을, 모 기독교방송사에서 ‘이 땅을 치유하소서’라는 토크 프로를 방송한 적이 있다. 토론자로 고신대 석좌교수 손봉호 박사와 필자도 토론자로 함께 참석했다. 화두는 ‘성장주의의 문제점’이었다. 손 박사의 예리하고도 비판적 시각에 맞서 건강한 성장이 필요하다는 필자의 견해가 맞불을 놓으며 열띤 토론을 가졌다. 두세 시간을 훌쩍 넘기며 서로 공감대를 가지며 엄청 친밀해졌다. 물론 방송은 한 시간 이내로 나갔지만 말이다. 한국교회의 성장주의는 시대마다 역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 1884년 초기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학교와 병원, 교회와 한글 성경 보급 등을 통해 민족을 계몽했고, 이것이 1919년 3.1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고난 속에서 민족과 함께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핍박 속에서 소망이 없었던 교회는 오직 재림을 대망하는 종말론적 신앙을 지녔다. 1938년 신사참배 결의 후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하여 일사각오 순교신앙을 지켰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경직 목사님, 빌리 그레이엄 중심으로 반공과 부흥 운동을 통해 엑스포 74와 77년 5천만 민족 복음화 성회를 통해 부흥을 경험했다. 1980년대 옥한흠 목사를 중심으로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지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제자훈련이 유행된 적도 있었지만, 1970년대 풀러신학교 맥가브란 박사와 제자 피터 와그너에 의해 시작된 교회 성장학이 국내에 전파되면서 오순절 은사 운동 즉 정적 신사도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한편 성장에 목마른 교회에 기름에 성냥불을 끄듯 성장주의 불길로 나타났다. 하지만 2000년대 성장이 멈추고 오히려 성장에서 추락하자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멈추면 비로소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런 성장의 반사작용으로 자각으로 일어난 것이 ‘교회건강’이다. 교회는 고혈압, 당뇨의 원인이 되는 덩치를 키우는 성장에서 건강으로 가야 한다. 비만은 건강이 아니었다. 군대 있을 때 ‘전방이 살아야 후방이 산다’라는 말이 있었다. 한국교회는 작은 교회가 살아야 큰 교회도 살고, 큰 교회가 살아야 작은 교회도 살 수 있다. 교회 성장, 이제는 경쟁 구도가 아니라 상생 관계이다. 한국에 6만 교회가 있는데 큰 교회. 작은 교회의 각자 역할이 있다. 간혹 이런 착각에 빠질 수 있다. 큰 교회도 문제가 있고, 작은 교회는 문제가 없다는 식 말이다. 큰 교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도 문제가 있다. 작은 교회도 아름답다면, 큰 교회도 아름다운 점이 있다. 큰 교회 다니면 큰 믿음이고, 작은 교회 다니면 작은 믿음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큰 교회 목회하면 큰 목사 되고 작은 교회 목회하면 작은 목사가 아니다. 이런 동역자 의식을 잃어버린 차별이 교계를 양극화 시킨다. 문제는 작은 교회가 무조건적으로 큰 교회를 흉내 내고 따라했다. 교회는 찍어낸 붕어빵이 아니다. 교회마다 주신 비전이 다르다. 예를 들면 10명 교인인데 허구헌날 1만 명 초대형교회 성장 노하우 배우러 다니다 보니 ‘경영학에 물든 기독교’가 되었다. 두 날개, 세 날개, 전도폭발, 총동원 등 이런 관념도 벗어나는 것이 좋다. 각자의 교회에 주신 고유의 정체성, 공동체 문화,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내야 건강한 교회로 나갈 수 있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더 실감하게 된다. 코로나 상황에서 성장은 생존이다. 그러다 보니 성장시키기 위해 목회자 스스로 ‘성장’이라는 강박관념에 늘 시달린다. 개인주의(스타의식, 영웅)는 개 교회주의를 심화시키고 교회가 상호 연합이 되지 않는다. 물량을 투입하면서 52주 성장용 이벤트를 가동했다. 전도폭발, 총동원 전도 등으로 성장 피로감으로 성도들도 못 버텨낸다. 더 큰 문제는 목사와 장로 갈등요인으로 자리하였다. 성장프레임에 갇혀 성장을 못 시키면 목사를 내보내고 그러다 보니 차량운행 교인쟁탈전을 하기도 하고, 교회의 기업화 촉진하는 지성전 즉 프렌차이즈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역사와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건강한 역사의식, 애국심. 자유, 정의, 생명, 진리, 평화 등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사회적 책임과 기여를 상실했다. 이제는 ‘성장’에서 ‘건강’으로 영적 부흥으로 돌아서야 한다. 코로나는 우리를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가 되게 했다. 어찌 보면 1만 명 모이는 한 교회보다는 100명 모이는 100 교회가 더 건강한 구조이다.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건강해지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상생이 가능하다. ‘성장’에서 ‘건강’으로 캐치프레이즈를 전환하고, 분립개척, 분가독립을 모색해야 한다. 꾸준한 의식개혁과 설득 노력을 통해 상생 추진해야 한다. 로마의 핍박에서도 카타콤교회가 그 시대를 살려낸 것에 주목하게 된다.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교회의 지향점이 달라진다. 요즘은 교회의 공교회성의 필요성에 더 주목하게 되면서, 바른 교회,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묻게 된다.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교회의 본질이자 교회의 표지 3가지 정도를 짚어 본다면 성경적으로 베드로나 스데반 집사처럼 성경적 바른 신앙고백과 바른 말씀선포가 전제되어야 한다. 삶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교회여야 한다. 선교적으로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교회가 정답일 것 같다. 코로나로 한국교회의 민낮이 그대로 드러났다. 신천지나 이단, 사이비 및 돌팔이 같은 회복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남겼다. 코로나로 한국교회가 참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위기는 코로나가 아니다. 외적인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하나 됨과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늘 고백하던 그 예배를 잃어버린 데 있다. 머리 잘리고 두 눈 뽑힌 삼손처럼 야성과 영성을 잃어버린 교회가 건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핏값 위에 오늘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 새삼 묻게 된다. 진정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고 있는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신앙을 이어받고 있는가. 6·25전쟁 당시의 이념 앞에 신앙과 양심의 갈등을 그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재미작가 김은국의 ‘순교자’란 작품에서 보듯 숨은 순교자들이 곳곳에 아직도 있다. 일사 각오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십자가 신앙으로 교회폐쇄에 맞서 한 몸을 던진 손현보 목사와 부산 세계로교회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세상 적 시각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라면 그 길을 그렇게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님 이 땅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주님 교회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주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주님의 가슴에 품고 있는 그 교회가 우리의 소망이 될 때 그래도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지 않겠는가. 글쓴이: 이효상 원장 (한국교회건강연구원) 20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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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4
  • 김종희 칼럼 - 이명서 없는 장로 취임할 수 없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니던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함부로 교회를 옮기는 경우들이 많다. 특히 당회원이 교회를 옮기므로 시무하던 본 교회에도 어려움을 주고 본 교회 목회자와 옮겨가는 교회의 목회자 간에도 좋은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일반 교인들도 그래서는 안 되지만 장로는 더욱 이명서 없이 교회를 옮겨 다녀서는 안 된다. Ⅰ. 이명서 없는 장로 취임할 수 없다. ① 제84회 총회 결의는 남부산노회장 조남수 씨가 헌의한 장로가 같은 노회 안에서 이명 없이 옮긴 후 취임할 때 고시부에 면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건은 “이명은 반드시 하고 고시 건은 해 노회 규칙대로 하기로 가결하다.”이다. ② 동일 노회 안에서 교회를 옮겨 취임할 경우 세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이명을 해야 한다. 둘째 옮긴 교회에서 노회에 장로 증선(선택) 청원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공동의회를 개최하여 선택을 받아야 한다. 셋째는 노회 고시를 보아야 한다. 동일 노회일 때는 고시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면접을 하는 일이다. 그런데 면접을 하는 경우는 해 노회 규칙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러니 규칙에 면접을 하도록 되어 있으면 하고 생략하도록 되어 있으면 생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은 반드시 하라고 되어 있다. ③ 그러므로 이명서를 받지 않고 취임을 할 수 없다. 만약 이명서 없이 불법으로 취임을 한 장로가 당회에 참석하여 결의한 것은 무효가 될 수 있다. 그 당회에서 결의하여 청원한 안건을 노회가 다룰 때 다툼이 될 수 있으며 총회 결의를 어기고 불법 취임을 시킨 당회장이 노회에서 공적인 직책을 맡으려고 할 때 자격 시비가 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Ⅱ. 노회나 교회 간에 이명서를 주고받는 것은 필수이다. ① ‘면직을 당한 목사를 해 벌하는 길은 원 치리회의 권고와 허락이 없는 이상 다른 치리회가 행할 수 없다. 과거 소속된 치리회에서 면직을 받은 목사는 그를 시벌한 노회 관할에 묶였은 즉 다른 노회로 이명 할 수 없고 오직 판결에 의해서만 이명 할 수 있다.’(정치문답조례 230문 참조) 그러므로 책벌을 받은 자가 이명서 없이 다른 노회에 가입하는 것은 무효이다. 오직 원심 치리회가 해 벌을 하여 이명서를 해 줄 때 다른 노회에 가입할 수 있다. ② 그러나 제3회 독 노회 회의록에 보면 ‘각 당회에서 책벌 된 교우가 이사할 때에 천서 중에 책벌까지 기록함은 이후 회개하면 책벌 푸는 권한까지 허락하는 줄로 인증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명을 해 줄 때 책벌 사실까지 기록하여 이명 하면 이명을 허락하는 당회에서 회개를 확인하고 책벌을 풀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의는 받은 책벌을 원심 치리회가 아닌 다른 치리회에서 풀 수도 있다는 결의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이사를 하는 특별한 경우에 해당 되고 이명서에 책벌 받은 사실을 기록하여 보낼 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드시 이명서에 의해 해야 하므로 이명서를 주고받는 것은 필수 조건이 된다. Ⅲ. 결론 노회나 교회 간에 이명서를 주고받는 것은 필수이다. 상식적으로 A 지역에서 B 지역으로 주민등록이 옮겨질 때 B 지역 주민이 되는 것이다. 그냥 B 지역에 살고 있다고 B 지역 주민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장로가 이명서도 없이 교회를 옮기고 옮긴 교회에 소속 교인이 되어 장로 취임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불법을 행하는 본인은 물론 그런 일을 행한 당회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일날은 임직식을 거행하지 못하도록 총회가 결의를 하였는데 이를 어겼을 때 제88회 총회에서 징계를 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그러므로 총회 결의를 어기고 이명서 없이 장로 취임을 한 당회장은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명서 없이 함부로 교회를 옮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함부로 받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김종희 목사(정치부장 역임. 헌법자문위원장. 성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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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2
  • 이효상 칼럼 - 가장 낮은 절망의 자리에서 하늘을 본다.
    가장 낮은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예수 탄생 김기창 화백의 그림 ‘희망’은 있는가? 다들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굳게굳게 다짐하건만 지나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지나간들 다시 회복이 될 것인가? 그뿐이랴. 나라의 두 축인 안보와 경제가 무너져 내려도 “괜찮아, 다 잘 될꺼야”라는 희망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으니 말이다. 경제에도 가짜 희망이 판을 친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나랏빚이 올해 100조 원 이상을 넘는다지만, 직업 없는 백수들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지만 다들 천하태평이다. 정치권은 ‘추경’이라는 퍼주기 경주에 나섰고 국민은 달콤한 돈 맛이 좋아졌다. 포퓰리즘 (Populism)으로 망한 나라들이 즐비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굳게 믿는다. “설마, 우리나라가 망하겠어?”라는 막연한 희망이 국민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뻔한 사실을 간과할까.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에바 메나세는 “사람들이 풍요로움에 빠져 주어진 호사의 의미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현대의 뇌과학은 그 이유를 이렇게 풀어놓는다. 인간의 뇌는 저장 용량이 제한적이므로 과거의 묵은 기억을 지우거나 외진 곳으로 옮기고, 그 공간을 새로운 기억으로 채운다. 수십 년 전 전쟁이나 가난의 기억보다 현재의 평화와 풍요 문제가 더 부각 될 수밖에 없다. 양적으로도 후자에 관한 정보는 넘쳐난다. 인간이 균형감을 잃고 현재의 상황에 쉽게 매몰되는 이유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교회도 막연한 희망을 노래할 것인가. 만약 오늘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어디로 임하실까. 성탄절이 다가온다. 처음 예수님이 오신 곳은 가장 낮은 절망의 자리 누울 곳이 없는 ‘마굿간’이었다. 특급호텔의 상석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고 길바닥 인생인 서울역의 노숙자로, 거리의 나사로로, 죄수의 옷을 입고 아니면 병자의 몸으로 오실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는 별 관심들이 없다. 온갖 화려한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다보니 이제는 날마다 좀 더 저 높은 곳만 향해 가려 한다. 고통받는 밑바닥 인생들, 민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래된 것일까. 이렇듯 ‘교회가 희망’이라는 불씨가 꺼져가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세상은 강하게 비판의 소리를 내고 있다. 가장 낮고 처절한 절망의 자리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삶의 열정이자 현장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가장 낮은 자리, 밑바닥을 치고 나면 다시 솟아날 힘과 용기가 생긴다. 그러니 꼭 진실하게 절망하고 낮아지라 권하고 싶다. 다시 교회는 야성과 영성을 회복하고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사랑을 실천하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강도 만난 사람들로 채워져야 한다. 강도 만나 경제적으로, 육신 적으로 소외당하는 이들의 억울한 자리로 다가가 아픔에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나누며 붙들어 주므로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그래서 그들에게 참된 기쁨과 회복을 되돌려주는 기회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천하 대혼돈’이라는 저서로 코로나 시대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의 글에 “변화는 절망에 지쳐 더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타난다.”는 말로 희망보다 절망의 가치를 제시했다. 그는 “진정한 용기는 터널 끝에 보이는 빛이 어쩌면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는 기차의 헤드라이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희미한 불빛을 찾는 식의 ‘거짓 희망’을 단호히 뿌리치라는 것이다. 아직 희망이 있다는 안일함이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방해하고 변화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지금 벼랑 끝에 있다는 끔찍한 절망을 받아들일 때 돌아설 용기가 생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젝의 진단은 거짓 희망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더없는 고언이다. 한국교회! 이대로는 안 된다. 강도 만나, 모든 것을 다 털리면서도 하나 되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무능한 민낯을 보고 있다. 더 이상 주변 눈치 볼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하나 됨을 위해 어떻게 몸을 던질 것인가를 고민하고 몸소 실천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와 변신을 가로막는 주범은 누구인가. 자칭 지도자라는 이들이 “이대로,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생각과 자신들이 가진 철밥통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기에, ‘저들 탓’이라고 여전히 고함만 치는 것 아닐까. 내 탓으로 알고 가슴을 쳐야 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나 사회, 혹은 교회를 바닥에서 끌어 올려줄 구세주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범사에 때와 기한이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분이 오시려면 말세의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윤리와 도덕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부조리가 춤추고, 국민은 수백 번 더 찢어져야 한다. 교회는 더 낮아져야 한다. 마침내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절규와 아우성이 터질 것이다. 공동체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의 건강한 연대의식이 움트는 것은 바로 그 시점이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어설픈 ‘희망’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잘못, 교회의 사유화에 침묵한 잘못, 자신 이익 챙기느라 한국교회 전체 이익을 돌보지 않은 잘못, 하나 되어 제대로 싸우지도 대응하지도 대안 제시도 못 한 잘못, 품격 없는 행동으로 신뢰도를 떨어뜨린 잘못,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잘못, 다음 세대에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잘못 등 말이다. 감히 ‘희망’을 얘기하지 말라. “설마 괜찮겠지”하는 어설픈 희망으로 때우려 하지 마라. 우리는 그간 신앙의 선배들이 피땀으로 일군 희망을 함부로 낭비했다. 그 희망은 이제 바닥이 났다. 현재의 가짜 희망으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요나가 배에서 떨어져 가장 밑바닥인 고기 뱃속에 들어가자 ‘더 이상은 안 되겠구나, 나는 죽었다’라고, 불난 집에서 뛰쳐나와 몸둥아리 하나 남았을 때처럼 절망하고 절망해야 한다. 세상에 절망하고 사람에 절망하란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이란 악몽에서 깨어나는 법이 있다면, 절망하고 절망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바닥이어서 또 절망일 때 그 때 홀로 선 절망 하나가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다. “이러다간 죽겠구나!” “정말 망하는구나!” 이런 절망적 두려움이 몰려올 때, 사람은 극한 상황에서 새로운 신앙의 눈을 뜨게 된다. 진정한 변화와 변신은 거기서 시작된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시대 어떤 일이든 극에 달해야 반전이 생긴다. 아래로 떨어지는 공도 바닥까지 완전히 닿아야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멈추지 않고 계속 터져 나오므로 신뢰를 잃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세상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단이나 사이비와 같다는 세상이 보는 이미지를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교회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막연한 희망을 논하며 위기를 탈출하지 못했다. 비대면 또는 20명 미만이라는 기준에 발목이 잡혔다.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건강한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성도들의 헌금이 재정의 20% 선에 멈춰서 있고, 중대형 교회들이 소유한 건물과 땅을 내놓고 있다. 교회 건물 임대 및 매매 사이트에는 내놓은 물건으로 차고 넘친다. 결국 교회는 코로나에 갇히고 말았다. 2020년 성탄절을 앞두고 아직도 더 낮아지고 더 정신 차려야 할 것 같다는 지적들은 먼 나라 이야기인가. ‘복음으로’ ‘복음만이’에 공감하면서 이제 가장 낮은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하늘을 보면 어떨까. 글쓴이 이효상 원장(시인/ 칼럼니스트/ 한국교회건강연구원 / 근대문화진흥원)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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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19
  • 김종희 칼럼 - 시찰회 합리적인 운영방법
    N 노회의 L 목사께서 시찰회의 합리적인 운영방법에 대한 질의가 있어 이 글을 쓴다. Ⅰ. 시찰회 조직 ① 노회마다 시찰회 구성이 다를 수 있다. 어떤 노회는 시찰 안의 목사 장로 부목사를 모두 포함하여 시찰회를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 제10장 제6조 9항에 보면 “그 소속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시찰위원을 선택하여”라고 하였고 “위원의 정원과 시찰할 구역은 노회에서 작정한다.”라고 하였으니 일정한 수로 위원을 선택하여 시찰회를 조직하는 것이 맞다. ② 예로 필자의 노회는 각 지교회 담임목사와 각 지교회가 총대 장로 중 1인을 파송하도록 하여 시찰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몇 명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각 노회가 결정하여 하면 된다. 노회 규칙이 있으면 명시된 대로 하고 규칙이 없으면 노회가 결의하여 구성하면 된다. 시찰회의 구역을 정하는 일이나 인원수를 구성하는 일은 노회의 권한이다. Ⅱ. 시찰회 임시 당회장 배정 ① 갑자기 목사가 공석이 되고 노회를 개최할 기간도 먼 경우 임시 당회장 한 건을 배정하기 위하여 노회를 열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까. 임시 당회장 파송은 노회만이 할 수 있다. 정치 제9장 제4조 당회 임시회장 “당회장은 목사가 되는 것이므로 어떤 교회에서든지 목사가 없으면 그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 할 때까지 노회가 당회장 될 사람을 파송할 것이요”라고 하였기 때문에 임시 당회장은 노회만 파송할 수 있다. ② 그러나 정치 제10장 6조 10항 “노회는 허위 교회를 돌아보기 위하여 시찰 위원 혹은 특별 위원에게 위탁하여 노회 개회 때까지 임시로 목사를 택하게 할 수 있고 혹 임시 당회장도 택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노회가 임시 당회장 배정 권한을 시찰회에 위탁하였을 경우는 지교회 목사가 공석이 되었을 때 시찰회가 임시 당회장을 배정할 수 있다. ③ 단 정기노회 때 당회장 배정권을 시찰회에 위탁하는 것은 단회적으로 준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시찰회에 임시 당회장 배정을 위탁하려면 목사가 갑자기 공석이 될 경우 해당 시찰회에서 임시 당회장을 배정할 수 있다는 노회 결의가 분명하게 있어야 하고 회의록 근거도 필요하다. 시찰회에 위탁하되 시찰 임원으로 하여금 할 수 있다는 결의까지 해 주면 임시 당회장 파송 건 하나의 의제로 시찰회를 소집하는 번거로움도 피할 수 있다. ④ 또한 10항에 “시찰 위원 혹은 특별 위원에게 위탁”할 수도 있다고 하였으므로 임원회나 임사부나 정치부 등에 위탁하여 임시 당회장 배정 특별 위원 자격을 주어 배정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려면 노회에서 그렇게 하기로 결의한 확실한 자료(회의록)가 필요하고 특별위원회가 배정하고 배정한 기록이 특별위원회 회의록에도 남겨져 있어야 한다. ⑤ 노회 파송도 없고 시찰회에도 위탁이 없어 파송할 수 없다면 정치 제9장 제4조 “노회의 파송이 없는 경우에는 그 당회가 회집할 때마다 임시 당회장 될 목사를 청할 수 있으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당회장 될 목사가 없을지라도 재판 사건과 중대 사건 외에는 당회가 사무를 처리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해 교회 당회가 임시 당회장을 청하면 된다. Ⅲ. 시찰회 월권 ① 시찰회는 치리권을 행사할 수 없다. 정치 제10장 제6조 9항에 보면 “시찰위원은 치리회가 아니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치리권을 행사한다면 월권이다. ② 또한 9항에 보면 “목사 청빙 청원을 가납(可納 )하거나 목사에게 직전(直前)하지 못하고 노회가 모이지 아니하는 동안 임시목사라도 택하여 세울 권한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시찰회가 목사의 청빙이나 목사의 신상에 관한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은 월권이다. ③ 시찰회는 각 당회가 노회로 올리는 서류를 경유할 뿐이다. 정치 제10장 제6조 10항 “시찰위원은 그 구역 안 교회 형편과 위탁받은 사건을 노회에 보고할 것이나 당회나 교회 헌법에 의하여 얻은 직접 청구권을 침해하지 못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류를 받지 않거나 찬반 토론을 하여 기각하거나 반려하는 것은 월권이다. Ⅳ. 시찰회의 임무 ① 정치 제10장 제6조 10항 “시찰위원을 두는 목적은 교회와 당회를 돌아보고 노회를 위하여 교회 형편을 시찰하는 것이니”라고 하였고 “시찰위원은 그 구역 안 교회 형편과 위탁받은 사건을 노회에 보고할 것”이라고 하였으니 주된 업무는 노회에 보고하는 임무이다. ② 정치 제10장 제6조 9항에 보면 “허위 당회에서 강도 할 목사를 청하는 일을 같이 의논할 수 있고”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당회장이 배정되었다면 그 당회장과 당회가 의논하여 설교 목사를 청할 수 있겠지만 당회장이 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강도 할 목사를 청하는 문제를 당회가 시찰회와 의논할 수 있다. ③ 또 한 정치 제10장 제6조 9항 “그 지방의 목사와 강도사의 일할 처소와 봉급에 대하여 경영하여 노회에 보고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목사나 강도사의 임지 문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봉급에 대하여 경영하여 노회에 보고한다”라고 하였다. 정치 제15장 제4조(청빙 서식) “주택과 매달 생활비 00를 드리기로 서약”하는 부분이 있다. 목사 청빙을 할 때 교회가 책정한 생활비 부분이 교회 형편에 맞게 되었는지를 노회보다 가까운 지경에 있는 시찰회가 잘 경영하여 보고하면 유익할 것이다. 김종희목사(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20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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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4
  • 김종희 칼럼 -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의 적용 문제
    제104회 총회 결의로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연구위원회에서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이하 시행세칙)을 제정하여 규칙부 심의를 받은 후 제105회 총회에 보고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보고하였고 제105회 총회는 이 보고를 받으므로 시행세칙이 만들어졌다. 주요한 골자를 짚어 보며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을 해야 할지를 피력하여 보고자 한다. Ⅰ. 사회소송에 대한 정의 시행세칙 제1장 제4조 2항 “사회소송이란 법원에 제출하는 민사소송, 가처분신청, 가압류 신청뿐만 아니라 검찰청이나 경찰서에 제출하는 고소 진정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이며 사회법소송 또는 사회 법정 고소도 사회소송과 동일한 의미이다.” Ⅱ. 사회소송의 적용 범위 시행세칙 제2장 제5조 “총회 결의에 대한 소송, 총회 선출직 선거와 관련한 소송, 전․현직 총회 임원의 직위 직무에 대한 소송, 총회 재판국 판결에 대한 소송, 노회.교회.개인 간 분쟁으로 인한 행정 처리와 관련하여 전․현직 총회 임원과 직원에 대한 소송, 총회 직원의 직무에 대한 소송, 실질적으로 전항에 관한 소송이지만 형식적으로는 개인을 상대로 소송한 경우 본 시행세칙이 적용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Ⅲ. 임원회의 결의로 대응하는 대상 시행세칙 제2장 제7조 1항에는 “총회 결의에 대한 소송, 총회 선출직 선거와 관련한 소송, 전현직 총회 임원의 직위 직무에 대한 소송은 임원회의 결의로 총회 부담으로 총회가 대응한다.” 2항 “총회 재판국 판결에 대한 소송의 경우 소의 이익을 가지는 당사자가 그 부담으로 대응한다. 다만 소의 이익을 가지는 당사자가 없으면 총회가 부담하여 대응할 수 있다.” 3항 “총회 전․현 직원의 직무에 대한 소송은 총회 총무가 총회 임원회에 보고하고 총회 임원회의 결의로 총회의 부담으로 총회가 대응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Ⅳ. 임원회의 대응방법 1. 징계 결정에 대한 통보 ① 시행세칙 제3장 제11조(징계결정) 1항 “소송 제기자가 목사의 경우 그 목사는 소제기일로부터 소속 노회의 공직과 총회 총대권이 2년간 정지된다.” 2항 “소송제기자가 장로의 경우 그 장로는 소제기일로부터 소속 당회에서의 직무와 노회 총대권이 2년간 정지된다.” ② 3항 “총회가 노회나 당회에 소송접수 사실을 통보하면 노회나 당회는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8주 내에 권징조례에 따른 조치 결과를 총회에 보고해야 한다.” “하회가 3항을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총회는 노회의 총회 총대 파송권을 정지시킨다.”라고 되어 있다. 징계 통보와 징계 결정을 총회가 한다고 되어 있으나 총회가 파한 후 일어나는 일들은 임원회가 처리할 수 있다는 제102회 총회의 결의를 따라 임원회가 처리할 수 있다. 2. 소송제기자에 대한 행정보류 시행세칙 제3장 제9조(행정보류) 2항 “총회는 소송접수일로부터 소송제기자의 각종 청원서, 질의서 등 서류를 접수하지 아니한다.” 3항 “총회는 소송접수일로부터 소송제기자에게 각종 증명서 발급을 중지한다.” 그러므로 임원회는 소송제기자가 소송을 접수하는 날부터 그가 접수하는 모든 서류를 받지 않고 각종 증명서를 청원할 때 발급을 중단할 수 있다. 3. 승소한 자에 대한 조치 ① 시행세칙 제3장 제9조 3항 “소송제기자가 사회소송에서 승소한 경우 총회는 그에게 행정보류를 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사회소송에서 승소한 경우는 그동안 묶어 놓았던 행정을 풀어주어야 한다. 각종 청원을 받아주고 전산도 복원시켜 증명서도 발급하여 주어야 한다. ② 그러나 분쟁 중에 승소한 경우 권한을 부여할 경우 상대방에 대한 치리나 행정적인 조치를 행하여 또다시 분쟁의 가능성이 있을 경우 임원회는 소위원을 파송할 필요성이 있다. 총회규칙 제24조 3항 “분쟁이 발생한 노회를 수습하기 위하여 총회의 결의로 수습처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수습케 할 수 있으며 총회 파회 후에는 총회임원회가 수습처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승소한 자에 대하여는 제재를 풀어주되 양측이 화합할 수 있도록 총회 임원회가 위원을 파송하여 중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4. 사법에 계류 중인 경우 조치 ① 시행세칙 제3장 제15조(승소 시) 2항 “해당 재판국 판결 및 관련 결의는 소송제기자가 승소 판결을 받은 날로부터 효력이 정지된다.”라고 하였다. 즉 ‘갑’이 총회 재판국 판결이나 관련 결의에서 ‘을’을 이겼다고 하더라도 ‘을’이 ‘갑’을 상대로 사회소송을 하여 승소를 하였다면 ‘갑’이 이겼다는 총회재판국 판결이나 관련 결의는 효력이 정지되므로 총회는 ‘갑’에 대한 재판국 판결이나 관련된 총회 결의대로 문서를 발급하여 줄 수 없다. ② 승소의 의미는 시행세칙 제1장 제4조 4항 사회소송에서 승소한 경우란 “민사소송에서 원고가 승소 판결을 받은 경우 가처분 신청, 가압류 신청에서 신청인(채권자)이 인용 결정을 받은 경우 고소인의 고소로 피고소인이 유죄(벌금, 집행유예, 실형)로 처벌된 경우”를 포함한다. 즉 상대방이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서 인용 결정만 받아도 승소로 본다. ③ 그러므로 재판국 판결이나 관련 총회 결의에서 유리한 판결이나 결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하여 인용을 받았다면 총회나 임원회는 문서를 발급할 수 없다. 현재 상태로는 재판국 판결이나 관련 총회 결의가 효력이 정지되고 있기 때문에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Ⅴ. 글을 마치며 본 시행세칙은 “총회 임원과 직원을 상대로 한 민사상 형사상 사회소송이 증가함에 따라 총회 위상과 대외 신임도가 하락하고 업무 수행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기에 총회의 위상과 대외 신임도를 제고하고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시행세칙의 목적대로 잘 운영되어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김종희 목사(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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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8
  • 김종희 칼럼 - 동사목사 제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본 교단에서 부목사를 담임목사로 바로 청빙할 수는 없다. 제88회 총회에서 ‘부목사는 동일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할 수 없다.’라고 결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04회 총회에서는 ‘해당 교회 담임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전 3년 동안 동역하게 하는 후임 목사는 제88회 총회결의(부목사는 동일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할 수 없다)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결의 청원의 건은 허락하기로 가결하다(동일 교회 부목사에 대하여는 제88회 총회 결의를 그대로 유지하나, 후임 목사로 동역하는 목사의 경우는 허락)하도록 하였다. 즉 부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 할 수는 없으나 후임 목사로 동역하는 경우는 허락하였다. 소위 동사목사 제도를 허락한 것이다. 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법리에 맞고 유익한 절차인가를 피력해 본다. Ⅰ. ‘동사목사’의 자격 부여에 대하여 ① 교회의 청빙위원회나 당회에서 동사목사가 결정되면 소속 노회에 동사목사 청원을 해야 한다. 절차는 부목사를 청빙 하는 절차를 따르면 된다. 당회의 결의로 당회장이 노회에 청원하되 동사목사로 허락해 달라고 청원하여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한다. ② 노회의 허락을 받지 않고 부목사 형식으로 시무하게 하다가 동사목사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목사나 교회의 생각일 뿐 인정을 받지 못한다. 부목사는 동일교회 담임목사가 될 수 없다는 총회 결의에 걸리고 만다. 노회에 부목사로 청원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해도 부목사로 시무한 현실이 있기에 어쩔 수 없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남이라고 주장을 할지라도 함께 살고 있다면 사실혼 관계를 부인할 수 없는 것과 같다. Ⅱ. ‘동사목사’란 명칭 문제에 대하여 ① ‘동사목사’란 명칭보다는 ‘후임 목사’라는 명칭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동사목사’라는 표현이 널리 알려져 그대로 한다면 노회에서 결의하여 줄 때 “동사목사로 하되 위임목사 지시하에 사역하며 청빙 수속을 밟아 위임목사가 된다.”로 해야 한다. ② 그 이유는 정치문답조례(이하 정문)에 동사목사 서문에는 “다른 목사와 협동 시무하되 그 권리는 동일하니 순번으로 당회장이 되고, 한편이 사면하면 특별 수속 없이 자연히 전권으로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고 정문 제72문에는 “동사목사가 무엇이냐?” “목사 2인 이상이 한 지 교회나 여러 지 교회를 동등한 권리로 시무하는 목사를 동사목사라 한다.”고 하였으므로 그냥 동사목사라고 하면 위임목사와 동등한 권한이 주어지고 순번으로 당회장이 되며 위임목사가 사면하면 자동 적으로 권한이 주어지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안된다. Ⅲ. 동사목사를 두는 기간에 대하여 ① 제104회 총회에서 ‘해당 교회 담임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전 3년 동안 동역하게 하는 후임 목사는 제88회 총회결의(부목사는 동일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할 수 없다)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결의 청원의 건은 허락하기로 가결하다(동일 교회 부목사에 대하여는 제88회 총회 결의를 그대로 유지하나, 후임 목사로 동역하는 목사의 경우는 허락)하도록 하였다. ② 여기 동사목사는 3년 동안 동역하게 하는 후임 목사라고 하였다. 이는 꼭 3년을 채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노회에서 시무 사면을 하고 원로목사 추대 청원을 허락하는 기점에서 거슬러 올라가 3년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주의할 것은 원로목사의 명예는 노회의 결정으로 주는 것이므로(헌법 제4장 제4조 4항 참조) 추대식을 기점으로 하지 않고 노회 허락을 기점으로 한다. 즉 기간은 3년도 되고 2년도 되고 1년도 되고 몇 달이 되어도 괜찮다. Ⅳ. 동사 목사를 담임 목사로 청빙 하는 절차에 대하여 ①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위임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건과 동사목사의 위임목사 청빙 건을 함께 처리한다. 위임목사가 시무 사면을 먼저 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받은 후 노회에서 임시당회장을 파송하여 후임 청빙을 할 수 있으나 담임목사 공백으로 인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고 20년 이상 목회한 위임목사로서 후임을 선정하여 안정적으로 물려주며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므로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공동의회의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② 먼저 할 일은 대리 당회장을 청해야 한다. 이유는 제104회 총회에서 “위임목사가 사임 전에 후임목사 청빙을 위한 공동의회를 소집하고 사회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질의의 건은 헌법대로(헌법은 불가) 함이 가하다”로 하였다. 그러므로 원로목사 추대 건은 자신의 문제이고 후임목사 청빙을 위해서는 공동의회를 소집하거나 사회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 제15장 제2조(목사 선거)에 ‘지 교회에 목사를 청빙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당회의 결의로 공동의회를 소집하고 임시당회장이 강도 한 후 투표를 한다.’라고 하였다. 임시당회장이 해야 한다고 하였다. 임시당회장은 노회가 파송한 당회장만이 임시당회장이 아니라 그 안건 처리를 위하여 청한 대리 당회장도 임시 당회장이므로 청빙 건을 처리할 수 있다. ③ 그러므로 현재 위임목사는 당회를 하여 그 노회에 속한 목사 1인을 청하여 대리 당회장이 되게 한다. (정치 제9장 제3조) 대리 당회장이 와서 해 교회 당회원과 당회를 하여 공동의회 안건으로 원로목사 추대 건과 위임목사 청빙 건을 결정한다. 그리고 대리 당회장 이름으로 1주일 전에 공동의회 소집을 공고한다. (일시, 장소, 안건을 명시한다.) 그다음 대리 당회장이 예정된 날짜에 와서 공동의회를 하여 안건이 결정되면 노회에 청원해 주면 된다. ④ 공동의회 의사정족수는 출석 세례교인으로 하면 된다. 출석 세례교인이 원만하게 모였는지는 공동의회 의장이 판단한다. 제13회 총회에서 “공동의회가 개회 시에 모인 수가 너무 적으면 회장이 권하여 다른 날로 다시 모일 것이라 함에 대하여 어떠한 범위까지 적은 수라고 하겠느냐 함에는 회장의 생각대로 할 일이오며”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결 정족수는 원로목사 추대 건은 과반수 찬성(정치 제4장 제4조 4항 참조)으로 하고 위임목사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입교인 과반수의 승낙을 요 한다. (정치 제21장 제1조 5항 참조) ⑤ 노회가 처리할 때는 위임목사 시무 사면서를 먼저 받고 원로목사 추대 청원을 처리한 후 위임목사 청빙을 허락하면 된다. 예로 ‘갑’ 교회의 A목사가 ‘을’ 교회로 부임을 하려면 정치 제16장 제2조 “본 교회의 결의로 청빙서와 청원서를 노회 서기에게 송달하고 노회 서기는 그 청빙 사유를 청빙 받은 목사와 해 교회에 즉시 통지할 것이요 합의하면 노회는 그 교회를 사면케 하고 청빙을 허락한다.” 대로 진행하면 된다. 즉 같은 회기에 사면서와 청빙서가 함께 올라오면 사면서 먼저 받고 청빙서를 받으면 된다. 이와 같은 원리로 위임목사 사면과 원로목사 추대를 먼저 허락하고 후임 목사 청빙을 차서를 따라 허락하면 된다. ⑥ 위임목사 사면 없이 청빙을 하면 한 교회에 목사가 두 명 있게 된다고 하나 노회에서 접수하여 결의하기 전에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일 뿐 효력은 없다. 노회에서 위임목사 사면을 받으므로 직이 없어지고 청빙을 받음으로 직이 주어지게 됨으로 여전히 목사는 한 명이다. Ⅴ. 원로목사 추대식과 위임목사 위임식 ① 원로목사 추대식은 명예 적인 예식일 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노회가 추대를 받아주므로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임목사는 위임식을 통하여 자격이 부여된다. 제90회 총회 결의는 “위임목사에 대한 질의 건은 위임목사 청빙은 했으나 위임식을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회장이 될 수 없으므로 중요한 치리 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하다”이다. ② 노회에서 허락을 받은 후 짧은 기간 안에 추대식과 위임식을 거행하는 것이 좋다.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고 위임식을 거행하지 않은 기간은 사실상 해 교회에 당회장이 없는 기간이다. 기간이 길면 임시당회장을 파송할 수밖에 없다. 임시당회장 파송이 뜻하지 않게 불미스런 일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간이 짧을 때는 당회가 필요할 때 당회에서 임시당회장을 청하여 하면 된다. (헌법 제9장 제4조) 그러므로 정기노회 후 바로 예식을 거행할 수 있으면 원로목사와 위임목사 문제를 정기노회에서 처리하고 정기노회 후 사정상 몇 달이 지난 후 하게 될 경우는 예식이 임박한 시점에 임시노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좋다. 김종희 목사(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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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3
  • 김종희 칼럼 - 총회장 이취임식에 대한 견해
    그동안 우리 총회는 총회가 끝난 후 총회장 이취임식을 거행하였다. 지난 제104회 총회 때는 총회장 이취임식을 총회 기간에 가졌다. 그런데 이번 제105회는 총회장 이취임식을 가지지 않고 새에덴교회에서 총회장 취임식(감사예배)을 드렸다. 문제가 있는가. 전혀 없다. Ⅰ. 이취임식으로 권한이 이동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① 총회장은 선관위원장이 총회장 당선자를 총회장에게 상정하여 공포하므로 총회장으로 확정되고 직전 총회장으로부터 성경과 헌법과 고퇴를 물려받으므로 권한이 이동된다. 사실상 총회장 이취임식과 관계없이 이때부터 총회장이다. 총회장 이취임식을 해야지만 비로소 총회장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면 총회 때 사회를 보며 처리한 모든 안건은 무효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취임식과 관계없이 총회장의 신분과 권한은 총회 때부터이다. ② 역시 이임하는 총회장도 후임 총회장에게 성경과 헌법과 고퇴를 물려 줌으로 이임이 된다. 반드시 이취임식을 해야지만 이임이 되고 취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Ⅱ. 이취임식이 아니라 사실상 감사예배이다. ① 이취임은 이미 총회 석상에서 이루어졌다.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이취임식은 아니다. 그러므로 감사예배의 장소를 꼭 총회회관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총회장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드리는 것도 의미 있는 예배가 된다. ② 감사예배를 드린 것은 법리상으로도 문제가 전혀 없다. 총회 선거규정 제29조에 ‘당선 확정 후 30일 이내에 총회 임원회에 당선무효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총회가 끝난 후 30일이 지난 때에 감사예배를 드린 것은 잘한 일이다. Ⅲ. 아쉬운 점은 보충하면 된다. ① 이미 취임식(감사예배)을 드렸는데 이제 와서 이취임식을 다시 한다면 웃을 일이 아닌가. 또한 취임식만 하였기에 이임식을 한다면 이것도 웃을 일이다. 이임을 먼저하고 취임을 하는 것인데 이미 취임을 하였는데 이임을 나중에 한다는 것도 맞지 않다. ② 그러나 이임하는 총회장에게 섭섭함이 있고 감사예배에 총회의 직책을 맡은 인사들을 초청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면 “신구총회장 환영 및 위로 만찬”의 자리를 만들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이임사와 취임사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별도의 모임을 만드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총회가 소집하는 모임이 있을 때 진행해도 될 것이다. 김종희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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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김종희 칼럼 - 헌법자문위원회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나
    필자는 얼마 전 헌법자문위원회 설치를 보류하자는 글을 썼다. 그 이유는 헌법자문위원회가 유권 해석을 내리는 대로 총회의 각 기관이 따르기는 쉽지 않고 법을 다루는 부서에는 법을 판단하고 유권 해석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헌법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건과 이번에 ‘자문’이란 단어를 넣어 헌법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맥락이 다르다는 의견으로 필자를 설득하여 맡게 되었다. 헌법위원회는 해 위원회가 내리는 결정이 헌법재판소와 같이 구속력을 가지는 반면 헌법자문위원회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문이란 의미가 “어떤 일을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기 위해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나 기관에 의견을 물음”이므로 참고하여 일을 바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의견이 분분할 때 그냥 두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참고할 수 있도록 의견을 내는 기관이 있으면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헌법자문위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위원의 한 사람으로 제시하여 본다. 첫째 법의 보편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을 참고하면 ‘법은 원칙적으로 불특정 다수 인에 대하여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이므로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법의 표준적 의미를 밝혀 객관적 타당성이 있도록 하여야 하고, 가급 적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파격적인 해석이 아니라 일관성과 안정성의 기조를 유지하도록 하여 법 자문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불러오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둘째 법을 해석함에 있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역시 대법원 판결을 참고하면 ‘어떠한 법률의 규정에서 사용된 용어에 관하여 그 법률 및 규정의 입법 취지와 목적을 중시하여 문언의 통상적 의미와 다르게 해석하려 하더라도 당해 법률 내의 다른 규정들 및 다른 법률과의 체계적 관련성 내지는 전체 법체계와의 조화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법 자문이 같은 법체계 하에서 다른 법률과 관련하여 조화가 무시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법을 취급하는 부서와 소통이 필요하다. 재판국은 총회의 위탁을 받아 헌법과 권징조례를 해석하고 적용하여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헌의부는 부당한 서류를 기각하거나 적당한 헌의를 총회에 제출할 수 있다. 그리고 총회 서기는 총회로 오는 서신, 헌의, 청원, 보고, 문의, 소송 등 모든 서류를 접수하여 헌의부에 전한다. 여기서 ‘접수(接受)’라는 말의 의미는 신청서나 신고 따위를 일정한 형식 요건 아래 받는다는 말이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문서인가, 받아도 되는 요건을 갖춘 문서인가를 법리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런 법리를 다루는 부서들과 소통을 한다면 헌법자문위원회는 원만한 일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헌법자문위원회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부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김종희 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성민교회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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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0
  • 김종희 칼럼 - 부전지 붙은 상소장 구별 잘 해야 한다
    D 노회의 K 목사 “치리회가 다른데 상대방 치리회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는가.” 즉 A 노회가 B 노회를 걸어 총회에 고소 고발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또 N 노회 J 목사 “치리회가 다른 회원 간에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느냐.” 즉 A 노회의 ‘갑’ 회원이 B 노회의 ‘을’ 회원을 걸어 ‘을’ 회원이 소속한 B 노회에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할 수 없다. 그 이유를 아래에 언급하고자 한다. Ⅰ. 고소 고발은 치리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① 헌법적 규칙 제3조 교인의 권리에 보면 1항 “교인은 교회 헌법대로 순서를 따라 청원(請願), 소원(訴願), 상소(上訴)할 권리가 있다.” 2항 “교인은 지 교회에서 법규대로 선거 및 피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무고히 6개월 이상 본 교회 예배회에 계속 출석치 아니한 교인은 위의 권리가 중지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치리회 안에 있는 회원도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모든 권리가 중지된다. 하물며 다른 치리회에 속한 자는 치리회 안에서 주어진 권리가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나. 고소 고발은 치리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② 권징조례 제15조에 보면 “기소인이 치리회에서 선정한 위원이 아니요, 자의(自意)로 소송하는 자의면 개심(開審)하기 전에 치리회는 먼저 경계하되 ‘송사가 허망하여 너의 악의와 경솔한 심사가 발현되면 형제를 훼방하는 자로 처단하겠다’ 언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치리권 밖에 있는 자의 고소 고발을 받을 경우 송사가 허망한 것이 발견된들 무슨 권한으로 처단할 수 있나. 그러므로 치리권 밖의 사람이 고소 고발하는 것은 받을 수가 없다. 치리권이란 고소, 고발자와 피고소, 피고발자에게 다 같이 미쳐야 한다. 그런데 다른 치리회 회원이 고소, 고발하면 그 회원에게 잘못이 있어도 치리권이 미치지 못하므로 받아서는 안된다. ③ 권징조례 제10장 제106조 “본 치리회 내 결의 사건에 대하여 투표권이 없는 자는 이의서와 항의서를 제출하지 못하고...”라고 하였다. 같은 치리회 안에서도 자격이 제한되고 있는데 하물며 다른 치리회 회원이 다른 치리회에 이의나 항의할 수 없다. ④ 정치 제10장 제6조 2항 “노회는 각 당회에서 규칙대로 제출하는 헌의와 청원과 상소 및 소원과 고소와 문의와 위탁 판결을 접수하여 처리하며...”라고 하였기에 소속되어 있는 하회 치리회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고소, 고발을 받을 수 없다. ⑤ 제102회 총회 결의에 “산서노회장 조영기 씨가 헌의 한 특정 개인이나 교회 및 타노회를 상대로 한 무분별적 긴급동의안 처벌 규정의 건은 현행대로(타 노회가 소속이 안 된 회원을 처벌할 수 없음) 하기로 하다.”이므로 타 노회원을 처벌해 달라고 할 수 없다. Ⅱ. 권징조례 제38조를 오해하면 안 된다. ① 권징조례 제38조 “목사가 본 주소에서 떠나 먼 곳에 있어 피소된 때 그 본 노회가 실정은 알 도리가 없고 그 소송 발생한 지방을 관할하는 노회가 유죄 한 줄로 생각하면 그 사건의 성질이 어떠한 것을 당연히 그 본 목사의 노회에 통지할 것이요, 본 노회는 그 통지를 접한 후에 그 사건이 종교상 명예에 관계되는 것이면 즉시 재판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② 위 조문을 오해하여 A 노회 목사가 B 노회에 속한 목사를 B 노회에 고소, 고발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위 조문이 말하는 내용은 이렇다. B 노회에 속한 ‘갑’이라는 목사가 자신의 소속 노회 지역이 아닌 A 노회 관할 지역에서 죄를 범하여 B 노회에 피소가 되었다. 이때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본 노회인 B 노회가 알 길이 없다. 이럴 때는 A 노회에서 ‘갑’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B 노회에 통지해 주는 것에 의하여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③ 더 부연하면 B 노회에 소속된 ‘갑’이 미국에서 일어난 일로 같은 B 노회 ‘을’에 의하여 피소가 되었다. 이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B 노회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런때는 미국의 그 지역을 관할하는 노회에서 ‘갑’을 유죄로 인정하여 B 노회로 통지하여 줄 때 그 사건이 종교상 명예에 관계되는 것이면 즉시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관할 지역 노회가 B 노회에 ‘갑’을 고소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조문은 다른 치리회 회원을 걸어 그 치리회에 고소나 고발을 할 수 있다는 조문이 아니다. Ⅲ. 치리회 간에 소원은 할 수 있다. ① 권징조례 제84조에 규정된 ‘소원’이라 함은 “서면으로 상회에 제출하는 것이니 하회 관할에 속하여 그 치리권에 복종하는 자 중 1인 혹 1인 이상이 행정 사건에 대하여 하회가 그 책임을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위법한 행동이나 결정에 대하여 변경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원도 치리회 안의 사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② 또한 권징조례 제114조에 ‘치리회 간의 재판 규례’는 “어느 회든지 그 동등된 회를 상대로 소원할 일이 있으면(제84조, 제93조 참조) 한층 높은 상회에 기소할 것이나 이런 경우에 사건 발생 후 1년 이내에 피고 된 회의 서기와 그 상회 서기에게 통지한다”라고 규정되었다. 그러므로 동등한 다른 치리회 간에 소원은 할 수 있으되 고소 고발은 할 수 없다. ③ 분명하게 권징조례 제114조의 치리회 간의 재판규례는 고소, 고발하여 재판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말한다. 제114조의 조문에 제84조, 93조를 참조하라는 토를 달았는데 이 84조와 93조는 소원을 말하는 조문이기 때문이다. 소원이란 행정 건을 바로 잡아 달라는 것이지 누구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소원은 가능해도 누구를 처벌해 달라는 고소 고발은 불가능하다. Ⅳ. 부전지 붙은 상소장 구별 잘 해야 한다. ① 하회에서 고소, 고발을 받아 주지 않으면 부전지를 붙어 상회에 상소하는 경우가 있다. 본 교단 헌법은 권징조례 제94조에 부전(附箋)하여 상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A 노회의 ‘갑’ 회원이 B 노회의 ‘을’ 회원을 걸어 ‘을’ 회원이 소속한 B 노회에 고소, 고발하였다가 B 노회가 거절하면 부전지를 붙여 총회에 상소하려고 할 것이다. ② 이럴 때 총회 서기는 부전이 붙은 서류이니 합법적인 서류라고 인정하여 헌의부로 보내서는 안된다. 헌의부도 이런 서류를 재판국으로 보내도 안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부전지는 상소인이 소속된 하회가 상소를 거부할 때 붙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③ 권징조례 제94조 3항 “상소인이 소속된 하회가 상소인의 상소통지서 접수를 거부하면 부전(附箋)하여 상회에 상소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이 소속되지 않은 남의 치리회에 고소, 고발하였다가 안 들어 준다고 부전지를 붙여 상소는 할 수 없다. 부전지는 자신이 소속한 치리회가 받아 주지 않을 때 붙이는 것이다. Ⅴ. 결론 소속이 다른 치리회가 받아 주지 않았다고 부전지를 붙여 한층 높은 상회에 상소할 수 없다. 치리회가 다르면 서로 고소나 고발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동일 치리회가 한층 높은 치리회에 행정소원은 할 수 있다. 행정소원은 잘못된 행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것일 뿐 누구를 처벌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만약 서로 다른 치리회 간에 고소, 고발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상대방 치리회에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 고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리회가 다르면 고소, 고발을 받아 주면 안 된다. 안받아 준다고 부전지를 붙여 상회로 가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이런 질서가 확립되어야 무분별한 소송이 난무하지 않아 시끄러운 총회를 방지할 수 있다. 김종희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성민교회)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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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7
  • 김종희 칼럼 - 편목의 정회원권 문제
    질문; M 노회의 K 목사께서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의를 하여 답변한다. ① 타 교단 목사가 본 교단에 가입할 때 언제부터 정회원이 되는가. 노회에 가입할 때부터인가. 강도사 인허를 받고 난 후부터인가. ② 그리고 시무 연한을 따질 때 타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시무한 기간을 인정해야 하나. 본 교단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은 날부터 인정해야 하나. Ⅰ. 강도사 인허를 받고 난 후부터 정회원이 된다. ① 정치 제15장 제13조에 의하면 “다른 교파에서 교역하던 목사가 본 장로교회에 속한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본 장로회 신학교에서 총회가 정한 소정의 수업을 한 후 총회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여야 한다. 한국 이외 다른 지방에서 임직한 장로파 목사도 같은 예(例)로 취급한다. 또 한 본 장 10조에 규정한 각 항의 서약을 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다. ② 위 조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 총회가 정한 소정의 수업을 한 후 ⒝ 총회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여 노회에서 인허를 받아야 하고 ⒞ 인허를 받을 때 정치 제15장 제10조에 해당하는 목사 서약을 하면 정회원이 된다. ③ 그러나 상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노회에 가입한 경우는 정 회원권을 줄 수 없다. 제104회 총회 결의 “동한서노회장 채종성 씨가 헌의 한 ‘타 교단 목사가 교회와 함께 정치 제15장 제13조 가입 시 교회 대표 건은 임시로 인정한다.’라는 결의 청원의 건은 허락하기로 가결하다.”로 받았다. 본 결의의 의미는 확실한 정회원일 경우는 대표권을 임시로 인정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정회원이면 대표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회원이 못되므로 임시로 교회 대표자의 자격을 인정해 준 것뿐이다. ④ 예외로 제92회 총회에서 “황동노회장 장 융 씨가 헌의 한 총회 산하 정치 제15장 13조로 가입한 회원에게 단 일회적으로 정회원 자격부여의 건은 제90회(2005년 9월) 총회에서 영입한 개혁교단 목사회원 전원에게 정 회원권을 준 바 있으므로 이와 동등한 자격을 주되 교단 가입 후 5년 무흠 만45세 이상 된 분으로 해당 노회에서 심사하여 처리하기로 가결하다.”의 결의가 있었다. 그러나 단 일회적으로 끝났기에 지금은 정치 제15장 제13조를 이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강도사 인허를 받고 목사 서약을 한 후에 정 회원권이 인정된다. Ⅱ. 강도사 인허를 받고 난 후부터 시무 연한이 계산된다. ① 제82회 총회 “군산노회장 정주우 씨가 청원한 편목의 목사 임직과 위임기간에 관한 질의 건은 정치 제15장 13조에 의하여 하기로 가결하되 ‘강도사 인허 때부터 교단 가입으로 한다’를 삽입키로 하다.”로 결의하였다. 그러므로 이 결의에 따라 교단에서 시무 연한은 강도사 인허 때부터 시작된다. ② 그러므로 타 교단에서 시무한 연수는 본 교단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는 원칙이다. 헌법 제4장 제4조 4항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목사가 연로하여 노회에 시무 사면을 제출하려 할 때는 본 교회에서 명예 적 관계를 보존하고자 하면 공동 의회를 소집하고 생활비를 작정하여 원로목사로 투표하여 과반수로 결정한 후 노회에 청원하면 노회의 결정으로 원로목사의 명예직을 준다. 단 정년이 지나면 노회의 언권만 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동일한 교단’이라는 단서는 없다. 그러나 단서가 없다고 해서 동일한 치리회가 아닌데 교단을 달리한 시무 연한을 인정한다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 ③ 또한, 안 되는 이유로 총회 선거규정 제3장 제10조 1항에 “합법적인 분립 및 합병의 절차를 거친 교회는 동일교회로 간주한다.”라고 하였고 2항에 “합법적인 분립 및 합병의 절차를 거친 노회는 총회 보고 이전이라도 동일 노회로 간주한다.”라고 하였다. 이 규정의 이면에는 합법적인 분립이나 합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교회는 동일 교회로 볼 수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합법적인 분립이나 합병의 절차로 본 교단에 들어온 편목은 이전 교단의 교회와 함께 들어온 경우 시무 연한을 인정받을 수 있겠으나 개별적으로 본 교단에 들어온 편목은 이전 교단의 소속으로 있을 때 교회의 시무 연한을 인정받을 수 없다. ④ 또한 제74회 총회에서 “서울노회장 이덕수 목사가 청원한 정치 5장 4조 장로 자격을 무흠 5년에 대한 질의는 본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무흠 5년으로 해석함이 옳다고 가결하다.”로 하였고 제96회 총회에서 “서중노회장 민경대 씨가 헌의 한 헌법 정치 제5장 제3조 장로의 자격에서 무흠 5년이 타 교회 출석 기간 포함인지 해 교회 출석만 인정하는지에 대한 질의의 건은 본 교단에서 이명서를 첨부하여 이동한 경우에 인정하기로 가결하다.”로 하였다. 그러므로 시무 연한을 계산할 때는 본 교단 안에서 시무한 연한으로 계산하는 것이 총회 결의 정신이다. Ⅲ. 결론 편목으로 본 교단 노회에 가입한다고 곧 바로 정회원 권이 부여될 수 없다. 총회가 정한 소정의 신학 과정을 공부하고 강도사 고시에 합격한 후 인허를 받고 목사 서약을 해야 정회원이 된다. 그리고 시무 연한은 강도사 인허 때부터 본 교단 가입이 인정되므로 그때부터 시무 연한이 시작된다. 본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와 다른 점은 본 교단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때부터 목사 시무 연한이 시작되지만 편목은 본 교단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은 때부터 목사 시무 연한이 시작된다. 그리고 합법적인 분립이나 합병으로 인한 경우가 아니면 이전 교단에 있을 때 시무 연한은 인정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본 교회가 이전 교단에 있을 때 시무 연한과 본 교단에서 시무 연한을 합하여 원로목사로 추대하려고 하고 노회가 명예를 보존해 주기를 원할 때 시비가 없고 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김종희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 20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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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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