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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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중공파 소강석과 문재인
    지난 6월 9일 한국의 전직 대통령 문재인이 “보수주의자들이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짱개주의’를 내세웠다”라고 주장하는 친 중공 성향의 책을 한 권 추천하면서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라는 말을 트윗에 날렸다. 우리가 전직 대통령 문재인의 그 발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짧은 글귀 속에 대한민국 친 중공 세력의 편견과 아집, 모순과 불합리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등은 서구만의 가치가 아니라 유엔 헌장에 명기된 인류의 보편가치이다. 세계 196개 유엔 회원국은 유엔 헌장에 따라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하물며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인 중화인민공화국임에랴! 중국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실태를 고발하는데 “제국주의적 내정간섭”이라는 중공의 반발은 궁색하기만 하다. 14억 중국 인민은 “보편가치”에서 벗어난 예외적 인류라는 말인가? 근대 서구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설파한 공자(孔子)의 휴머니즘에 따라도 중국공산당의 인권유린과 정치범죄는 용납될 수 없다. 문재인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 교단의 전직 총회장이고 한교총의 전직 대표회장이면서 한기총을 한교총에 흡수 통합해 잡수시려는 맨돈 소강석은 친 중공파로서는 문재인보다 한 수 위다. 성경의 다윗에 빗대 천안문 학살 총지휘자 등소평에 대한 칭송은 가히 주사파의 김일성급이다. 맨돈 내고 차지했을 소강석의 설교를 통한 등소평 예찬을 들어보자. 세기총(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은 6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제10차 정기총회 및 대표회장 이·취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신임 대표회장에 신화석 목사(안디옥성결교회 원로)가 취임했다. 성경 봉독 후 찬양이 있었다. 그리고 등소평 만한 소강석이 나타나 입을 열었다. "제 고향 선배 취임예배라고 해서. 아이쿠. (지방 원로 목사 위로회도 돈 내고 설교하려고 하는 등 바빠서) 금요일 오기가 힘든데 기쁜 마음으로 왔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파괴적 혁신"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agleby Christensen 수년간의 연구 끝에 출간한 '혁신기업의 딜레마'로 일약 미국 비즈니스 업계의 새로운 경영철학자로 떠올랐다. 21세기 초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로 불려온 '파괴적 혁신' 이론을 개발 한 미국의 학계 및 비즈니스 컨설턴트) 교수가 제일 먼저 추천하는 이론입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회사가 저렴한 가격이나 단순하고 파격적인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새로운 시장 경영 전략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클레이튼 교수에게 어느날 펜타곤에서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펜타곤에 말했습니다. 왜 나 불렀느냐. 나는 시장 경영을 얘기하는 사람이지 군사 전력가가 전혀 아니다. 그랬더니 평소 하던 얘기만 해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가보니 전부 삼성 사성 장군들만 모여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던 얘기를 그대로 했답니다. 강의 골자는 뭐냐. 조직이 거대할수록 오래된 기업일수록 '파괴적 혁신'을 단행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신생 기업이나 갓 출발한 회사들은 '파괴적 혁신'을 하기가 쉽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 '파괴적 혁신'을 한국 교회 연합기관에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세기총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왜 이러한 시기에 한국교회가 뭐라고 할까요, 쇠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를 허락하셨을까요. 세상을 향해서는 인간의 오만을 꺾기 위함일 것이고 우리에게는 영적인 파괴적 혁신을 하기 위함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 교회가 출애굽적 원형 교회로 사도행전 적 원시 교회로 다시 돌아가서 교회가 개혁되어 교회 부흥의 전성기로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책이 있는데 '등소평 문선'(82년부터 92년까지 전국의 각종 당 모임과 산업현장에서 행한 당의 연설과 담화문 119편을 모아 지난해 중국공산당 중앙문헌편집위원회가 엮은 것이다. 덩이 생각하는 대만.홍콩과의 통일안, 경제특구의 건설방안, 대내외적 개혁과 개방책, 예상되는 일련의 사회적 변화와 반동에 대한 대비책 등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그를 좋게 생각하든 않든 이 책은 등소펑의 "생각의 실체"를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입니다. 등소평의 개혁개방을 어디서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등소평은 확실한 것은 키가 5척 단신 저보다도 훨씬 작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에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택동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는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을 지지했습니다. 흑묘백묘론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이 한마디가 모택동의 마음을 거슬렸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박수를 쳤죠.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자본주의건 시장경제건 중국의 인민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죠. 모택동이 가만히 보니 저놈이 반기를 든다고 생각했죠. 나중에 중국 남청이라는 곳으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그 중국의 공산당 실세가 완전히 루저가 돼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큰아들 덩푸팡(1944년-)이 베이징대학교를 다니는데 얼마나 왕따를 당했는지 건물에서 뛰어내려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그리고 24시간 계속 감시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유물사관이나 모택동 어록 같은 책만 읽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는 척하는 거지 그의 마음속은 무엇을 구상하고 있느냐 하면 중국의 개혁개방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서적을 읽는 척했지만 그러나 그의 생각은 언제나 어떻게든 흑묘백묘론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오늘의 중국 개혁개방을 설계했던 작은 산책로가 있습니다. 그건 공산당 간부들이 허락해줬습니다. 그때 그 산책로를 걸으면서 머릿속에 있는 것까지 공산당이 어쩔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 하면 굶어 죽어가는 인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지 말하자면 시장경제에 골몰한 것이죠. 그러면서도 모택동에게 얼마나 감동적인 편지를 보내는지 모릅니다. 존경하는 모택동 주석님 저의 충성심은 절대 변함이 없으니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라는 똑같은 내용을 매일 보냅니다. 그런데 이게 모택동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수차례 자아비판을 하고 마오쩌둥에게 반성문을 보냈지만 이미 삐칠 대로 삐친 마오쩌둥은 그런 등소평의 말을 듣지 않았다. 1976년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하였으나 1978년 복권되었고 1982년까지 당 부주석·총참모장·부총리·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 등을 지냈다. 1978년부터는 중국 중앙인민협상회의 주석직을 겸하였으며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직은 1983년까지 유지하였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비서실이 방심한 사이에 편지가 딱 한 번 전달됩니다. 이것을 읽은 모택동이 감동을 받고 어느 누구도 이 편지를 없애는 자는 내가 당장 등소평보다 더 심한 숙청을 하겠다고 합니다. 모택동은 감동 받고 등소평을 북경으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공산당 간부들에게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아! 정말! 그 연설을 하면서 장내가 눈물바다가 됩니다. 공산당 실세가 숙청을 당해가지고 남청에 가서 고생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그를 존경하는 모택동 주석께서 끌어올려서 아주 인자한 은혜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감동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택동이 죽고 마침내 등소평이 중국의 실권자가 됩니다. 그가 소평소도(小平小道 등소평이 부총리에서 공장 노동자로 추락해 고난의 시절을 보낸 3년 4개월 매일 걸었던 공장 근처 2킬로미터 산책로)’에서 설계한 개혁개방을 이뤄서 오늘의 중국의 기초를 쌓게 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등소평은 살았을까요. 그것은 그가 자기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굶어 죽어가는 인민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랬다는 이 한마디 그리고 미국과 겨루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아! 정말 오늘 이 말씀을 본문과 연결을 지어보려고 합니다. 한 사람의 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그런 위대한 퍼스트 미션(first mission) 여러분 그 한 사람의 퍼스트 미션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얼마나 중국이 발전하게 됐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소평소도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제국의 황제가 되게 하기 위해서 다윗을 훈련 시키셨던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베들레헴의 목장입니다. 그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소평소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소평소도! 그 작은 목장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옮기신 하나님의 이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광대 소강석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속삭인다) 이것이 하나님의 '파괴적 혁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이 양을 친 베들레헴은 나중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곳을 등소평이 숙청 당해 지내던 곳의 산채로 소평소도에 빗대는 '파괴적 혁신'의 신성모독과 성경 비하를 맨돈 소강석이 범하고 있다. 그걸 무릅쓰고 목사라는 신분을 가진 소강석이 예찬하는 등소평은 어떤 자인가. 89년 천안문 대학살 이후 중국의 인민은 민주를 향한 “타는 목마름”을 억누를 수밖에 없을 뿐이다. 탱크와 장갑차로 중무장한 20만 병력을 투입해서 수도를 통째로 점령하는 광폭한 권력 앞에서 비무장의 시민들이 저항을 이어갈 수는 없는 까닭이다. 1970-80년대 한국과 대만 등의 권위주의 독재 하에선 민주화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지만, 북한이나 중국 같은 전체주의 체제 아래서는 민주화 운동의 불길조차 일어날 수가 없다. 특히 1989년 천안문 대학살은 민주의 싹을 자르고 불사르는 전체주의적 인권유린이었다. 중공중앙은 대체 왜 그토록 잔악무도한 대학살을 감행해야만 했는가. 1989년 “베이징의 봄”이 전 세계에 보도되고 있을 때, 중국공산당은 민주, 자유, 부패 척결을 외치며 평화롭게 시위하는 학생과 시민을 향해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20만 병력을 투입했다. 그 20만 병력은 국가의 수도를 에워싸고 들어와서 점점 포위망을 좁혀가다가 일격에 도심을 탈취하는 군사작전으로 시위 군중을 무력으로 학살하고 진압했다. 진정 중공중앙이 대학살을 감행할 때 시위를 해산하고 인민을 겁줘서 굴복시키려는 일차원적 의도밖에 없었을까? 그 목적이 다였다면 인명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시위대를 해산하는 전술이 없었을 리 없다. 비근한 예로 1976년 4월 천안문의 시위를 진압할 때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13년 전 이미 군 동원 없이 천안문 광장의 시위를 큰 무리 없이 진압했던 중공중앙이 1989년 6월에는 20만 병력을 동원하는 실로 대규모의 군사작전을 전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49년 1월 국공내전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의 군대가 베이징을 “해방”한 후, 그토록 대규모의 병력이 수도를 점령한 사례는 없었다. 소강석에게 고개 숙인 사진이 찍힌 문재인을 내려다보는 맨돈 소강석이 찬양하는 등소평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20만 병력의 출동을 명했는가. 베이징 주위 경기(京畿) 지역 방위 부대 외에도 랴오닝성의 선양(瀋陽), 상둥성의 지난(濟南), 심지어는 베이징에서 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난징(南京)에서도 차출된 대규모의 군부대가 20만 이상 동원되었다. “천안문 대학살”의 연구자 우런화(吳仁華, 1952- )는 천안문 대학살의 최종결정자인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소평과 중공중앙의 보수파에겐 두 가지의 더 큰 이유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등소평과 양상쿤(楊尙昆, 1907-1998)이 이처럼 방대한 병력을 동원해서 이처럼 주도면밀한 군사작전을 진행한 것은 분명 평화롭게 시위하는 학생들과 학생들을 성원하는 시민들을 진압하는 목적뿐 아니라 동시에 그들은 중공 당내에서 정변(政變)을 막고, 군대의 병변(兵變)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吳仁華, 六四事件中的戒嚴部隊, 27쪽) 등소평과 양상쿤의 입장에서 당내에서 “정변”을 획책할 수 있는 요주의(要注意)의 인물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 1919-2005)과 중공중앙 정치국 상위의 후치리(胡啓立, 1929- ), 중앙서기처 서기 루이싱원(芮杏文, 1927- ), 통전부(統戰部) 부장 옌밍푸(閻明複, 1931- ) 등이었다. “정변”이란 권력투쟁을 통해 정부의 권력이 교체되는 상황을 이른다. 만약 1989년 상황에서 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이 정권의 구심을 탈환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1979년부터 개혁개방 초기부터 등소평은 흡사 두 날개의 새처럼 좌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견지하는 “보수파”와 시장주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개혁파”를 끌어안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보수파에 기운 등소평은 이미 1987년 1월 15일 개혁파의 영수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을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파면했다. 후야오방에 이은 개혁파 영수 자오쯔양 역시 6.4 대학살 이후 가택 연금을 당해야만 했다. 등소평으로선 군대의 동원이야말로 일거에 개혁파를 제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등소평은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국무원 총리의 직책을 모두 밑 사람에 양보한 채로 오직 중앙군사위 주석의 직위만을 견지하고 있었다. 본래 어떤 국가든 군권을 장악하고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게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군대의 최상위 통수권자이지만 동시에 의회가 군사 명령계통을 결정하고 군사 조직을 창설하거나 개편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해서 군의 정치적 개입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근대 입헌주의의 군사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정부 내 권력분립을 이념적으로 부정하기에 270만 중국 인민해방군은 중국공산당에 귀속된다. 1989년 톈안먼 대학살은 최고 영도자가 정변의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20만 병력을 통원해 수도를 통째로 점령하는 대규모 무력 시위를 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민주적 절차의 국민 총선거가 아니라 내전을 통해 군사작전으로 건설된 나라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중국에서조차 군권의 장악은 절대로 쉬운 일일 수 없다. 당내 권력의 역학관계에 따라서 군대에 대한 당의 지배력 자체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등소평은 분명 마오쩌둥의 선례를 통해서 “정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사실을 증험했던 듯하다. 73세의 고령으로 전 중국으로 문혁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고 정적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던 마오쩌둥의 정치 권력도 실은 그의 군사 대권에서 나왔음을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등소평이 몰랐을 리 없다. 문화혁명 관련 야사(野史)에 따르면, 문혁의 공식적 개시를 3개월 앞둔 1966년 2월 모택동은 이미 대규모의 병력을 움직여서 베이징을 통째로 포위하는 친위(親衛)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른바 모택동의 “2월 병변(兵變)”이다. 1965년 11월 베이징을 떠나 남방에 머물던 모택동은 현실적으로 남방의 병력을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닫고 국방장관 린뱌오(林彪, 1907-1971)와의 긴밀한 조율 아래 랴오닝성 선양(瀋陽) 군구의 정예부대 제38군을 베이징으로 진격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선양 제38군은 본래 1950년 한국전쟁에 투입됐던 병력으로 전 중국 육군 유일의 기계화 부대였다. 모택동은 1644년 만주족이 진입했던 바로 그 산해관(山海關)으로 선양 제38군을 진입시켜서 베이징을 포위하는 작전을 짰다. 소련의 침략에 대비하라며 베이징의 수도방위부대를 산시(山西)와 네이멍구(內蒙古)의 중·소와 중·몽의 국경지대로 “천릿길 야영” 훈련을 보낸 후, 모택동이 베이징의 빈틈을 위협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는 이야기다. 이 가설의 진위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군에 대한 막강한 장악력이 없었다면 모택동은 결코 문혁을 일으키고 이끄는 정치 권력을 발휘할 수 없었음엔 틀림없다. 모택동의 권력 기반을 꿰뚫고 있었던 등소평은 1989년 상황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이야말로 군부의 병변(兵變), 곧 쿠데타를 막기 위한 최선의 묘수라 여겼을 수 있다. 등소평으로선 군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선 군사 훈련을 넘어 실제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1989년 5월 말부터 천안문 진압의 명령을 받은 군부 장성들이 중공중앙의 부당한 명령에 항거하는 조짐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민해방군 참모총장 뤄루이칭(羅瑞卿, 1906-1978) 문혁 당시 최초로 군부의 반혁명 수정주의자로 지목됐던 비운의 장성이었다. 홍위병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투신한 후 불구가 되었음에도 그는 들것에 실려 다니면서 계속 조리돌림을 당해야만 했다. 그의 딸 뤄뎬뎬(羅點點, 1951- , 본명 峪帄)은 1989년 당시 해군 병원 문진과의 주임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중공중앙이 군대를 투입해 시위 군중을 진압하려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뤄뎬톈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뤄뎬뎬은 아버지 뤄루이칭의 군맥(軍脈)을 총동원하여 군부의 중요한 인물들을 곧바로 접촉했다. 1989년 5월 22일 단 하루 만에 그는 1955년 장군 직위를 수여 받았던 해방군 상장(上將, 중장과 대장 사이 계급) 중에서 7명의 서명을 받아 냈고, 곧이어 계엄 지휘부에 천안문 광장에의 군대 투입을 반대하는 연명(聯名) 성명서를 작성해 올렸다. 물론 해방군 원로 상장 7인의 연명 성명서 관련 뉴스는 중국 관영 매체에선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다만 무력 진압을 주장해 온 등소평 등 중공중앙의 강경파는 군부의 반대 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뤄뎬뎬은 그 후 긴급 체포되어 1년 이상 수감 생활을 한 후에야 등소평 딸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지만 군 직은 박탈당했다.) 군부 원로의 반발에 부딪혀 무력 진압을 포기한다면 중공중앙의 군권 장악력은 급속히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등소평과 양상쿤은 더욱 강경한 무력 진압을 결정한다. 1983-1988년 등소평의 아래서 국가주석직을 맡았던 리셴녠(李先念, 1909-1992)의 조카딸 류야저우(劉亞洲, 1952- )는 공군(空軍)의 요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내부 보고서에서 당시 베이징 군구 병력은 지역 사정에 영통(靈通)한데다 학생들과 연계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톈안먼 무력 진압에 적합하지 않다며 다른 지역의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계엄군의 구성이 베이징 부대뿐만 아니라 선양, 지난, 난징의 부대까지 혼합된 다지역의 복합 부대로 구성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병사와 시민 사이의 유대를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실제로 1989년 5월 말 계엄군을 1차 투입했을 때, 학생과 시민들은 군사 차량을 몸으로 막으면서 굶주린 병사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절대로 시민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 설득했다. 이에 진입이 막혀버린 계엄군은 즉각 군부대를 철수해야 하는 긴급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1989년 6월 초 계엄군을 새로 정비한 후 중공중앙은 새로운 기동 전술을 펼쳐서 천안문 대학살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천안문 대학살을 감행함으로써 등소평은 당내의 반대 세력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군부의 저항 집단을 선제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등소평으로선 일거양득의 권력 게임이었지만, 중국의 민주화 운동은 비참하게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인권유린과 정치범죄에 대한 비판은 자유와 민주를 중시하는 세계시민의 당연한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짱개주의”를 내세운 게 아니라 낡고 부패한 좌파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시대착오적 “친중공 사대주의”를 내세웠다. 중국 현대사의 참상을 직시한다면 그 누구도 “높은 산봉우리의 나라”라 칭송하는 비례(非禮)의 우(愚)를 범할 순 없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공식 외교 석상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그 나라의 지식정보 체계가 마비되었음을 보여준다. 진정 전직 대통령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소강석이 천안문 학살자 등소평을 자신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조다윗이 아닌 성경의 다윗에 빗대는 참람함은 그 속내와 성향이 문재인과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는 문재인을 간첩이라고 몰아세웠는데 천안문 학살자 등소평을 성경의 다윗에 빗대 예찬한 맨돈 소강석은...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0 2022-06-21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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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1
  • 이승희 금품수수 7
    어려서부터 지바고는 숲속의 저녁놀을 좋아했다. 살아있는 영혼이 그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어 몸을 꿰뚫고 어깻죽지에서 나래를 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렇게 진한 흑갈색의 마치 녹아내리는 금덩이 같은 보리를 본 적이 없었다. 불길 없이 타고 있는 넓은 밭, 소리 없이 구원을 청하고 있는 드넓은 밭들이 차가운 적막에 잠겨 겨울빛이 감도는 하늘과 잇닿아 있었다. '닥터 지바고'의 저자 파스테르나크는 유명한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음악과 철학을 공부한 후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광주신학교를 나온 뒤 맨손 맨발 맨몸으로 맨돈을 이룬 뒤 시인이 된 소강석과 달랐다. 반혁명적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한 ‘닥터 지바고’가 노벨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자 그에게는 조국의 배신자란 낙인이 찍혔다. 투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정부의 위협에 굴복해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고 얼마 후 세상을 하직했다. 그가 모스크바 근교 작가 촌 페레델키노의 묘지에 묻힐 때 추모객들은 흐느끼며 그의 시 ‘햄릿’을 함께 낭송했다. “하지만 연극의 순서는 이미 정해진 것/종막은 피할 길 없다/나는 혼자다, 세상엔 바리새인들만 득실거리고.” 그날 천지에 라일락과 사과나무 꽃잎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던 날, 눈물 속에서 울려 퍼지던 ‘햄릿’은 서정시로 역사의 무게를 견뎌낸 한 위대한 시인에게 바쳐진 무형의 기념비였다. “제가 후보 부활 된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노회 총대님 및 주변 분들께도, 송병원 장로 배상” 2020년 9월 21 오후 2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제105회 총회가 개회하기 전 제104회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이승희, 심의분과위원장 진용훈)에 의해 8월 31일 제105회 총회 장로 부총회장 후보 탈락을 선고받은 송병원 명의의 괴이한 문자가 전국 총대들에게 괴이한 전화로 발송됐다. 어찌 된 일인가. 주님의 부활은 주님 자신이 죽으시기 전에 하나님이시기에 예언할 수 있으셨다. 그런데 송병원이 일개 장로로서 총회 선거법상 죽은 자인데 총회 선거법상 어떻게 부활할 수 있다고 예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총회 개회를 이삼일 앞두고 일개 장로가 주님처럼. 총회 기관지 주간 기독신문 8월 31일 자 기사는 다음과 같다. 제105회 총회 임원과 기관장 선거 후보들이 대부분 확정됐다.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이승희 목사·이하 선관위)는 8월 31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제13차 전체회의를 열고, 배광식 목사(대암교회·남울산노회)를 목사부총회장 후보로, 양성수 장로(신현교회·서울노회)를 장로부총회장 후보로 최종확정했다. 그런데 정말 죽은 자가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고 선거운동까지 한 그 괴이한 정체불명의 문자대로 송병원은 그 번들거리는 이마처럼 제105회 총회 개회 후 선거 당일 현장에서 부활했다. 반대로 제105회 장로부총회장 단독 후보로 확정됐던 양성수 장로는 총회 개회를 1시간여 앞두고 총회 선거법상 죽었다. 그가 무덤에 머물다가 총회 개회 후 선거관리위원도 아니고 재판국원도 아닌 맨돈 소강석의 법을 잠재우자는 말대로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양성수 장로는 오뚝이 윤익세가 반대하고 장봉생이 찬성한 경선으로 다시 죽었다. 그 배후 인물로 제104회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이승희, 심의분과장 진영훈, 영동중앙교회 이계도, 공익실천 미명 하에 피켓 시위로 잘 먹고 잘산다는 김화경 등이 출연진으로 줄줄이 엮여 있다는 의혹이 피해자 양성수 장로의 진술로 밝혀졌다. 몸이 안 좋았다는 이승희 외 선거관리위원 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총회 자문 변호사의 스피커폰을 통해 문제가 있다는 공개적인 지적과 한 위원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주 불법한 송병원 부활 흑막을 위한 불법 고발 서류에 대한 십자가를 공익 차원의 알릴 권리를 위해 심의분과장 진용훈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며 짊어졌다고 한다. 그 자세를 본받아 시간을 두고 총회 장로부총회장 불법 선거 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자. 성경은 말씀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2022-06-17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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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7
  • 소강석 주사파 의혹
    총신재단이사회가 오늘 6월 16일 저녁 7시에 열렸다. 송태근 목사가 기도하고 김기철 이사장이 말씀을 전한 뒤 서기 류명렬 목사가 출석을 점검하고 개회를 했는데 맨돈 소강석은 보이지를 않는다. 과도기 때 대통령을 한 이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10명인데 7명의 인생이 비참했다. 객지에서 죽거나 총에 맞거나 사형선고를 받는 등 청와대 집터가 좋지 않은 걸까. 그건 무속 관점이고 권력을 잘못 운용했기에 그렇게 된 탓일 것이다.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관여했음에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 세상은 진화해도 권력은 퇴행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총회 권력 진들도 세상 권력자들의 비참한 말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권력은 이승희나 소강석처럼 성직자인데도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고 중독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강석이 존경하고 전파하는 등소평의 경우를 보자. 중공 정부가 인민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은 쉽고도 간단하다. 중국 헌법 총강 제1조에는 “사회주의 제도를 파괴하는 조직이나 개인의 모든 활동은 금지된다”라고 적혀 있다. 바로 그 조항에 따라 헌법 35조에 보장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가두) 행진 및 시위” 등 공민의 자유를 제약하면 된다. 자유를 제약하는 방법도 지극히 단순하다. 중공 중앙이 과거사에 대한 유권해석을 제시한 후 정부의 공식 발표에 어긋나는 말이나 생각을 표현한 사람들을 샅샅이 찾아내서 가둬버리면 된다. 1989년 6월 3일 밤에서 6월 4일 새벽까지 중공중앙은 20만의 군 병력을 동원해서 베이징을 점령하고 평화적 시위를 이어가던 학생과 시민들을 학살했다. 그 직후 민주화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공 중앙은 본격적인 선전전에 돌입했다. 대학살 닷새 후 6월 9일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등소평은 계엄군의 공로를 치하하며 “인민해방군은 진정 당과 국가를 지키는 철의 장성”이라 치켜세웠다. 그의 딸 덩룽(鄧榕, 1950- )에 따르면 등소평은 죽을 때까지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유혈 진압 결정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그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했다. 등소평의 의도에 따라 중공중앙 선전부는 강력한 이념교육과 선전·선동을 이어갔다. 1989년 6월 30일 중공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베이징 시장 천시통(陳希同, 1930-2013)은 “동란 제지와 반혁명 폭란(暴亂)의 종식에 관한 정황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9년 6월 3일 오후 다섯 시 경, 불법조직 ‘베이징시 고교(대학교 이상) 학생 자치 연합회(고자련)’와 ‘베이징 공인(노동자) 자치 연합회(공자련)’의 우두머리들이 톈안먼 광장에서 과도, 비수, 쇠몽둥이, 철제 체인, 죽창 등을 나눠주며 군경을 모두 잡아서 죽여버리자고 외쳐댔다!” “권력과 인간의 투쟁은 망각과 기억의 투쟁이다.” 체코 출신 작가 쿤데라(Milan Kundera, 1929- )의 명언이다. 32년간 망명객으로 미국에 체류해온 역사·문헌학자 우런화(吳仁華, 1956- )는 쿤데라의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 1989년 당시 그는 중국 정법대학의 젊은 교수였던 우런화는 대학살 이후 중공 당국의 수배령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우런화는 거짓과 모략에 맞서 진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30년에 걸친 그의 기록 투쟁은 급기야 201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과 64대학살에 관한 3권 방대한 역사서로 정리되었다. 우런화가 그의 첫 책에서 1989년 6월 3일 저녁부터 6월 4일 아침까지의 짧은 시간에 거의 5백 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중공중앙의 교묘한 역사 왜곡과 조직적인 선전·선동을 진실의 힘으로 해체하기 위해서였다. 톈안먼 시위 진압을 위해 중공 당국은 해군을 제외한 전군의 각종 부대를 출동시켰다. 그중엔 장갑병, 탱크병, 육군, 공군, 포병부대도 속해 있었다. 1989년 6월 4일 새벽 6시경, 계엄부대 수만 명 병력이 톈안먼 광장을 전면 통제했다. 광장의 모든 진입로는 봉쇄되었다. 탱크와 장갑차가 도열하고 중무장한 계엄군이 광장을 점령했다. 계엄군은 단식투쟁을 이어가던 톈안먼의 시위대를 향해 최후통첩을 선포했다. 그들의 임무는 6월 4일 아침까지 시위대를 모두 내쫓고 광장을 완벽하게 비우는 것이었다.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즉시 광장에서 떠나지 않으면 즉각 무차별 발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시위대의 다수가 결사 항전을 외쳤으나 지난밤 11시 무렵부터 들려오는 총성은 갈수록 더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학생들은 해산을 결정했고 광장 한 모퉁이로 열을 맞춰 모두 빠져나갔다. 7주 동안 이어진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운동은 그렇게 군대의 총칼 앞에서 서글프게 막을 내렸다. 학생들과 함께 톈안먼 광장을 빠져나온 우런화는 북서쪽으로 10.5킬로 떨어진 중국 정법(政法)대학의 숙소로 향했다. 1989년 6월 4일 새벽 6시경 톈안먼 광장에서 서쪽으로 불과 1.5킬로 떨어진 류부커우(六部口)를 지날 때였다. 3대의 탱크가 황색 매연을 뿜는 독기탄(毒氣彈)을 쏘면서 달려와선 인도 위에서 줄 맞춰 걷고 있는 수천 명 학생의 대오를 들이받아 깔아뭉개고 갔다. 우런화는 수많은 학생 틈에서 그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는 눈물을 쏟으며 공포에 질린 학생들과 함께 정법대학의 캠퍼스로 돌아갔다. 그날 아침 10시경 톈안먼 광장에서 마지막까지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학생과 교수들이 중국정법대학의 캠퍼스에 도착했을 때 전날 밤 계속되는 날카로운 총성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수천 명의 정법대 교수와 학생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캠퍼스 동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런화는 캠퍼스 중앙 건물 앞 의자 위에 눕혀진 다섯 구의 시신을 보았다. 바로 그날 아침 탱크에 깔려서 급사한 다섯 명의 학생들이었다. 일순간 캠퍼스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우런화는 그 참혹한 현장에서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서 목 놓아 통곡했다. 그의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한 마디를 읊조렸다. “영불유망(永不遺忘, 영원히 잊지 않으리)!” 30년에 걸친 그의 기록 투쟁은 2019년 3부작의 방대한 역사서로 정리되었다. 톈안먼 대학살에 대해 아예 말도 꺼낼 수 없게 하는 중국공산당의 부당한 폭력 앞에서 집체적인 망각에 맞서는 한 지식인의 무서운 저항이 아닐 수 없다. 막강한 중국공산당의 권력 앞에서 미국에 체류하는 일개 망명가의 기록이 미약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역사는 동시대인의 생생한 기록이 모여서 흘러가는 도도한 강물과도 같다. 막강한 중국공산당이지만, 우런화의 진실한 기록을 이길 수는 없다. 중국공산당의 인권 유린과 정치범죄를 직시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런화의 기록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등소평을 칭송하고 주님의 사도에 빗대고 다니는 맨돈 소강석의 본심이 좌파를 넘어선 주사파인 것 같아 우려스럽다. 주사파란 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의 줄임말로 민족해방파(NL)에서 비롯된 운동권 계열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친북(親北) 성향을 특징으로 한다. 맨돈 소강석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배웠기에 목사임에도 등소평을 전파하고 맨손 맨발 맨몸으로 이룬 맨돈으로 교단 교계 정치계를 오염 타락시키는 저의는 무엇일까. 그런 저의가 없다면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가 맨돈 살포는 그만하고 하나님의 광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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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6
  • 이승희 금품수수 6
    총회가 밟아온 길과 걸어갈 길을 함께 봐야 총회가 걸을 역사적 전망(展望)이 열릴 것이다. 왜냐하면 총회 정치인 가운데 여러 사람이 지나간 일인데 이제 와서 들춰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가 하면 이 기사가 언제까지 이어지느냐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기대에 부응해 본 시리즈에서 익명 처리된 무명 부패 용사들의 실명도 밝혀져 이승희와 소강석 반열에 서게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김화경이나 고광석처럼 수치를 아는 신앙 양심이 안 보이는 걸로 미루어 에서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김명수가 대법원장이긴 하지만 사법의 심판도 받게 될 것이다. 2019년 9월 10일 퇴임 앞둔 102회 부총회장 부정선거 당선한 103회 총회장 이승희를 주필 김관선이 봉투를 뿌리게 해준 자신의 보스를 인터뷰했다. 김관선은 최근 2022년 맨돈 소강석 기독신문 광고주 덕에 유력자를 제치고 기독신문 주필 2년 연임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뻗대 나도 주필 자리 좋은 것이라며 설득에 나섰었는데. 그런 그가 내가 그도 연루된 이승희 선거부정 기사 건으로 맨돈 소강석에게서 은밀한 맨돈 봉투 수수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볼멘소리를 했던 어투와 상이하게 이승희에게 뇌까렸다. 103회기 기치는 변화와 희망이었습니다. 회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평가하신다면. =대부분 변화에만 방점을 두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변화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103회기 방점은 희망이었습니다. 희망을 위해 변화를 외쳤던 것입니다. 총회를 향해 실망하고 기대가 떨어진 것은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며, 희망을 주는 첫걸음은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신뢰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먼저 총회 임원들이 바른길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총회회관의 분위기에 신경을 썼습니다. 고성이나 다투는 모습도 사라졌고 특정인의 놀이터가 되는 것도 사라졌습니다. 계파와 계보에 의해 총회가 좌지우지되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103회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구성원들에 대한 감사와 향후 계획을 나누신다면. =먼저 교단 구성원들이 총회장 직무를 잘 감당하도록 협력하고 응원해 준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임원들에게는 한마음을 지켜 사명 감당한 점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동안 총회를 섬기느라 반야월교회 교인들과 살가운 소통이 부족했는데, 목회에 집중하며 교인들을 섬기겠습니다. 총회를 섬기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총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도록 기도하며 헌신하겠습니다. 이승희는 목회 집중과 교인 섬김보다 총회 신뢰회복과 총회를 섬기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총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도록 기도하며 헌신하겠다는 말을 실천하는데 힘을 기울였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제104회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금품수수 신뢰회복과 맨돈 소강석과 협력해 총회 부패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전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 활약상을 제105회 개최지 새에덴교회 무대에서 2022년 5월 22일 주일날 열린 미스 트롯 콘서트처럼 2020년 9월 21일 광대 소강석과 촉새 이승희의 투맨쇼로 열연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은 팬덤 정치와 반지성주의 진영 논리가 폭민정(mobocracy)으로 질주한 암흑의 시대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정치 권력과 한 몸이 된 지식인들이 궤변과 요설(妖說)로 팬덤 정치에 앞장서며 총회 석상에서의 소강석과 이승희처럼 사실과 진실을 파괴했다는 점이다. 그처럼 권력이 던져준 떡고물에 취한 어용 지식인들처럼 맨돈 소강석이 쥐여 준 봉투에 목사와 장로의 최후 보루(堡壘)인 신앙의 진실성과 공공성을 해체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신앙인의 존재 근거인 비판적 개혁주의를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총회의 숙제다. 그 숙제를 풀기 위해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가 주사파 문재인 비판으로 세 차례 투옥도 감내한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팬덤 정치와 반지성주의는 개혁주의 총회와 민주공화국의 적이기 때문이다. 지성의 원천인 사실과 합리성에 대한 존중 없이 개혁주의와 민주주의는 실현 불가능하다. 정치 팬덤의 황금 우상은 출애굽을 넘어선 어두운 시대의 급소다. 그 우상을 망치로 부수지는 못해도 손가락질이라도 하는 목사와 장로야말로 106년 전통의 개혁주의 보수 총회 총대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8-9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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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5
  • 소강석과 윤시내의 ‘열애’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에게 가족 교육을 잘 받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위권은 곧 국권 수호 문제”라며 “우리의 국권을 수호하는 데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우리 당의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월 11일 전했다. 누가 감히 그리고 무슨 이익이 된다고 북한을 건드릴 것이라고 그런 말을 무력 없는 평화나 북한과의 종전선언에 목맨 문재인처럼 하는지. 또는 목회생태계 보전과 개선을 위해 교계 연합을 외치며 온갖 설교 자리를 돈 들고 차지해 등소평이니 뭐니 주절거리는 애먼 맨돈 소강석이 하는 것처럼 그러지는 않고. 윤시내는 1980년대 이후 ‘DJ에게’ ‘공부합시다’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연말 가수상을 휩쓸었다.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라고 외치는 노래엔 일상에 지친 주부들이 열광했고 “안돼 안돼, 내일모레면 시험 기간이야, 열심히 공부하세”라는 가사엔 당시 학부모들과 교사, 독서실 원장들이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장르도, 팬층도 다양했지만 가수 윤시내를 만든 단 하나의 인생 곡은 ‘열애’였다. 시한부 삶의 절망 앞에서 쓴 한 남자의 유서가 윤시내의 대체 불가능한 가창과 만나 가요의 고전이 된 노래다. 부산 MBC 인기 DJ였던 배경모 선생이 암에 걸려 죽음을 대면하고 아내를 향해 써 내려간 연서다. 윤시내는 말한다.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같은 뜨거운 글에 최종혁이 멜로디를 입히고 내게 곡을 주셨다. 그때는 녹음 시설이 지금 같지 않아서 한번 틀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불러야 했다. 수십 번 다시 부른 끝에 완성됐는데 최 선생님이 들으면서 ‘됐다!’ 하시는 거다. 그땐 뭐가 됐다는 건지 의미를 몰랐다. 나중에 회사에서 테이프가 트럭으로 실려 나가는 걸 봤다. 그다음부터 최절정기가 시작된 것 같다.”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같은 맨돈을 열애하는 소강석에게 평생 노래만 부르고 산 윤시내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수줍음을 잘 타는 소강석보다 나이가 10여 년 많은 윤시내가 이거 하나는 꼭 말하고 싶다며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왜 자주 방송에 안 나오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써 달라. 사람들이 왜 벚꽃에 열광하는 줄 아시냐. 그저 꽃이 예뻐서, 분홍색이어서가 아니다.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만큼 귀하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거라고.”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9-21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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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1
  • 소강석의 아포리즘
    공간은 사고(思考)를 규정한다. 낡은 공간에 있으면 생각마저 낡아진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를 벗어나 영 부인실을 없앤 윤석열 정부의 결정은 ‘신선’하게 보인다. 그런데 생명 나무는 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없는 것 같은 새에덴교회에는 소강석 장모 정 권사의 비서가 있는 모양이다. 그의 교회 주보 1면에 실린 그의 '영혼 아포리즘'에서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장모 정 권사의 사무실도 있을 텐데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효도의 표상이고 그가 추구하는 목회생태계 개선의 '신선'한 모범이 될 것이다. 아포리즘이란 명언(名言)이나 격언(格言), 잠언(箴言)은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는 말 또는 학문 등의 핵심을 간략하게 외우고 말하기 쉽게 그 내용을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 것을 가리킨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명한 아포리즘은 히포크라테스의 '아포리즘' 첫머리에 나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다. 맨돈 소강석에 어울리는 아포리즘이 있다면 이런 것일 것이다. 돈이란 힘이고 자유이며 모든 악의 근원이기도 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최대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 -칼 샌드버그 돈은 바닥이 없는 바다와도 같은 것이다. 양심도 명예도 거기에 빠져서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벤자민 프랭클린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김남국-이탄희-황운하 의원 등이 "검찰 개혁"을 위한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처럼회’로 생소하다. 한자어나 무슨 약어를 따서 만든 게 아니라, 그냥 ‘모양이 서로 비슷하거나 같음을 나타내는 뜻"의 ‘처럼’이라는 조사를 끌어다 썼다. 이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윤석열 검찰’을 반면교사로 삼아 적어도 그들처럼 돼서는 안되겠다는 의지를 바탕에 깔아 이름을 "처럼회"로 지었다. 최강욱 의원은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로 일하던 2017년 10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청맥에서 인턴 활동을 했다는 허위 확인서를 발급해 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 이어 2022년 5월 20일 2심에서도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최 의원은 2018년 9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그런 그가 페이스북에서 “저희가 모임을 만들어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기로 했다”라며 “본받을 분들에겐 배우고 ‘누구’처럼 못된 짓은 하지 말자는 다짐도 있고 늘 근본을 생각하자는 뜻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소강석이 매주 새에덴교회 주보 1면에 게재하는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을 "맨돈 소강석의 처럼회 아포리즘"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최강욱 의원의 “본받을 분들에겐 배우고 ‘누구’처럼 못된 짓은 하지 말자는 다짐도 있고 늘 근본을 생각하자는 뜻도 있다”라는 말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금권 선거 달인 길자연 같은 본받을 분들에겐 배우고 김영우처럼 못된 짓은 하지 말자는 다짐도 하게 되고 광주신학교를 나와 맨발 맨손 맨몸으로 맨돈을 이룬 근본을 늘 생각하는 뜻을 새기지 않겠는가. 교회 강단에서 미스트롯을 주최하는 영광스러운 광대답게... 그래야 희극 인장을 눈물 속에 치른 위대한 송해 선생처럼 훗날 광대 인장을 웃음 속에 치르지 않겠는가... 이제 교단과 교계를 부패시키는 맨돈 살포는 그만하고 촉새 이승희처럼 부끄러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도 때려치우고 베드로처럼 돌이켜 조용기 목사도 웃고 경청하게 만든 교인들도 울고 웃는 하나님의 위대한 광대 소강석 목사로 돌아가 진실 된 영혼의 아포리즘을 쓰기를 빌고 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2022-06-1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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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0

실시간 G.OPINION 기사

  • 전계헌 은급재단 사문서위조 범죄와 검증
    김창수, 박상범 2017년 9월 8일 사문서위조 전결처리 건 이사장 김선규 목사외 2017년 9월 18일 은급재단 이사회는 물론 무임승차 102회 전계헌 총회 9월 21일 납골당 논쟁 당시도 보고하지 않아 그뒤 해가 바뀐 2018년 2월 전계헌 주재 은급재단 이사회에서 김창수, 박상범 사문서위조 공모 혐의 그리고 그 서류 법원 제출 사법 당국 진실 규명 업무방해 김성태 이사 사임 도달주의 위조 문건 지시 총회 은급재단 비리 누가 지시하고 그 더럽고 악한 안을 냈는지 규명 필요 12월 4일 오전 11시 10분경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55·수감 중)의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관계자 9명은 청와대 서편 시화문에 도착했다. 이들은 청와대 측에 “압수수색하러 왔다”고 밝히고 곧바로 청와대 내부로 들어갔다. 검찰 측은 민정수석실이 위치한 여민2관과 대통령집무실이 있는 여민1관에서 멀지 않은 서별관에 머물렀다고 한다. 여기서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자료를 청와대 측에 제시하면서 관련 문건을 가져와 달라고 요구했다. 압수수색이 집행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업무시간이어서 여민1관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겨냥한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논란과 관련해 문건 작성자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라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추가 강제수사가 예상된다고 한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현대 과학 수사의 개척자로 불리는 프랑스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가 "접촉한 두 물체 사이엔 반드시 물질 교환이 일어난다."며 남긴 말이다. '조국 사태에 대한 동아일보 취재의 시작은 단순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평소 언론과 저서 등을 통해 자녀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었다. 2010년 한 인터뷰에서 조 장관이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의 행복을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이슈에선 강한 어조였던 조 장관이 자녀 교육에선 자연인의 모습이었다. 조 장관의 딸이 인터넷에 올린 자기소개서 입수를 시작으로 동아일보의 조국 인사 검증은 시작됐다. “단국대 의료원 의과학연구소 소속 인턴십의 성과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으며”라고 쓴 문장이 실마리였다. 취재팀은 탐색 끝에 조씨가 제1저자로 등재된 논문을 어렵사리 찾아냈다. 그다음은 ‘검증의 시간’이었다. 논문 저자가 동명이인일 가능성, 고등학생이 해당 논문을 실제로 쓸 수 있는지 병리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었다. 영어 논문을 아예 번역했고 1저자의 의미까지도 새로 검증했다. 논문 저자로 추정되는 인사들의 현 근무지까지 파악했다. 결국 8월19일 충남 천안시 단국대병원에서 장영표 교수와 만나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대학가에서 조 장관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병리학회는 논문을 취소했다. 취재팀은 이후 ‘조국 부인, 딸 허위 인턴증명서 조작 개입’ ‘조국 PC에 장 교수 아들 인턴활동증명서’ 등 기사를 보도했다. 선거 공작과 권력의 비리 은폐는 대통령 측근들이 권력을 자의적으로 남용한 것이다. 대통령이 취임 때 국정 과제 1호로 내걸었던 적폐 청산은 바로 전 정권의 이런 행태를 겨냥한 것이다. 두 사건 모두 민정수석과 대통령 측근 실세 비서관을 넘어서는 윗선이 얽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러 정황이 그 윗선으로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다. 선거 공작으로 당선된 민주당 소속 울산시장은 대통령과 30년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그의 당선을 "가장 큰 소원"이라고 했다. 조국 전 민정수석은 일면식 없는 유재수씨에 대해 처음에는 강한 감찰을 주문했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유씨는 문 대통령을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두 사건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가 사건의 핵심이다. 직접 관여했으면 실정법 위반이다. 실정법을 위반한 대통령에게 어떤 벌이 부여되는지는 국민 모두가 안다. 검찰의 범죄 수사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이 검찰을 공격하고 비난하며 결과적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해괴한 상황이 또 빚어지고 있다. 조국 사태에 이어 ‘울산시장 하명 수사’ 사건과 관련해서도 같은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 때도 검찰과 언론 탓을 했지만 진실을 숨기지는 못했다. 조국 사태가 그 일가의 범법 문제라면 울산 선거공작 의혹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본거지’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청와대가 스스로 조사해 국민 앞에 정직하게 밝히고 수사에 적극 협력하는 것이 정도(正道)인데 정반대 행태를 보인다. 결백하다면 결코 그러진 않을 것이다. 청와대가 12월 4일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최초 제보를 받아 요약·편집했다고 밝힌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고교 동문인 문모 행정관(전 검찰 수사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행정관은 6급 검찰 수사관 출신으로 주로 부산 지역 검찰청에서 일했었다. 2000년대 후반 서울로 올라와 주로 대검찰청 범죄정보과 등에서 정보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 반년 언저리를 맞던 문재인 정부는 한 손으론 전 정권 때려잡는 적폐 사냥을 하면서 또 한 손으론 적폐보다 더 몹쓸 짓을 하고 있었다. 배짱이 좋은 건지 양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머리가 나쁜 건지 보통 사람들은 헤아릴 길이 없다. 자신들의 정권이 천년만년 갈 거라고 자신했던 모양이다. "백원우 별동대"에서 활동했던 검찰 수사관은 주변 사람들에게 "청와대 파견 근무가 위험하다. 겁이 난다"고 했다고 한다. 문재인 청와대가 법과 규정을 넘나들며 권력을 휘둘렀다는 얘기다. 그가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입으로는 순교의 믿음을 본받겠다는 우리 총회 관계자와 직원들에게는 그런 양심 고뇌의 비극은 전혀 또는 결코 그럴 일이 없지만 말이다. 신앙이 없는 건지 양심이 없는 건지... 비리로 허덕이는 믿음의 단체 우리 총회는 어찌 해야 할까. 우선 총회장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거나 권한 행사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고 감사부장·재판국장 등 고위 총대와 직원에 대한 총회 인사청문회를 개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총대가 깨어 있어야 한다. 총회 민주주의의 기본은 총대가 선출된 대표자를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되는 진리 가운데 하나는 국민이 주권자로서 감시와 통제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주권자로서 대접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총회도 그렇다. 총회 상비부의 비리나 총회 행정 당국자들의 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총회 감사부나 각 기관의 감사들의 행위를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국가와 같은 검찰 기구는 없지만 검찰 기능과 권한을 가진 무소불위의 총회 임원회가 있다. 마침 진실을 추구하는 신앙의 회복을 외치는 총회장 김종준이 등장했다. 그를 중심한 총회 각 부의 비리와 총회 행정 당국자, 특히 은급재단 담당자와 전 총무 김창수와 은급재단 이사들의 사문서위조 지시와 공모와 행사에 대한 조사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청와대와 권력자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시민 단체들의 고발 같은 사법 당국에 호소하는 고발, 고소를 의식 있는 총대들이 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본연의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고 전하는 사역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시인 소강석 부총회장은 사막같은 거룩한 총회를 노래한다. 꽃밭은 노래했으면 사막으로 가라사막을 다녀왔으면 다시 꽃밭으로 가라...꽃밭에는 사막의 별이 뜨고사막에는 꽃밭의 꽃잎이 날리리니 2019-12-0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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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5
  • '크투'와 황규학이 제기한 이재록 사건의 진실(4) - 최삼경 목사
    먼저 <크리스천 투데이>(크투)가 제기한 금품 문제 중에 이재록 건부터 답하겠다. <크투>의 이대웅 씨와 김진영 씨가 필자와 <교회와 신앙> 관계자들에게 문자와 전화 폭탄을 보내고, 무엇보다 비판의 글들을 소나기처럼 쏟아 부었다. 저들은 10일 동안에(2019년 10월 4일부터 10월 15일까지) 무려 11회나 비판의 글을 썼으니 하루 한 개 이상의 글을 쓴 셈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지금까지 겨우 3회의 글을 썼고(10월 16일, 10월 25일, 11월 6일) 이 글이 필자의 4번째 글이다. 그 후에 크투 기자들은 10월 16일과 10월 25일에 각각 2회의 글을 더 썼는데 하루에 한 꼭지씩 써대던 글을 필자의 글이 나간 후에는 한 달 동안 겨우 두 번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중 첫 번째는 전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두 번째 글 하나만은 자신들이 제기한 금품 수수 문제 대하여 쓰되 필자가 대답한 핵심 사안은 피하고 동문서답식 글을 썼다. 바로 <최삼경 목사, “‘한 사람’에게 ‘5천만원’”의 주인공 밝혀야>라는 글이다.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6324 위 글에 대하여 대답할 거리가 많지만, 그러다 보면 되레 본질을 흐릴 위험성이 있어 필요하면 후에 다시 답하겠다. 우선 독자들이 비교하여 읽어주기 바란다. 그동안 크투 기자들이 문제 삼은 돈 문제는 네 가지다. 첫째는 명성교회에서 돈을 받았다는 것, 둘째는 광성교회(김창인 목사님)로부터 수억의 금품을 받았다는 것, 셋째는 이재록 건이고, 넷째는 이인강 건이다. ‘명성교회’ 건 문제는 앞에서 충분히 답을 하였다. 이제 남은 세 가지 중에 ‘이재록’ 건부터 대답하겠다. 이재록 건은 17년 전 ‘명성’ 건보다 시간적으로 3-4년 더 앞선 20-22년 전 사건이다. 시간적으로 가장 오래된 사건이기에 이 건부터 취급하기로 한다. 본론: <크투>와 황규학 씨가 문제 삼은 이재록 건의 진실은 이렇다. 문제의 이재록 사건은 지금부터 20-22년 전(1996-1999년)의 일이다. 앞선 명성교회 건은 세습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17년 전(2002년) 일임을 필자는 밝혔고 그것도 명성교회가 공적으로 <교회와 신앙>에 해준 헌금이었음도 충분히 밝혔다. <크투>는 표현의 차이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3류급 기자의 기질을 벗어나서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기사를 쓸 줄 아는 1류급 기자가 되기 바란다. 그러나 이재록 건은 그보다 더 전인 1996-1999년의 일이다. 저들이 명성교회 건은 그 시기를 몰라서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처럼 핑계 댈 수 있다고 해도, 이재록 건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첫 번째 이유는 황규학 씨를 비롯한 이단옹호자들과 이단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제기해 필자를 20여년이 넘도록 괴롭혔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목사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온갖 죄들을 다 지은 (지하철 성추행범, 지하철 절도미수범, 상습적 이단옹호자, 상습적 이단옹호 언론을 운영하는 자 등) 황규학 씨가 필자를 공격할 때마다 사용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둘째로 <크투> 기자의 글만 보아도 그 시기를 모르지 않음이 충분히 나타난다. 이대웅 씨가 쓴 글 중에 “<교회와 신앙>의 전 대표 이사장이자 전 편집국장인 남광현 씨의 경우 과거 만민중앙교회 측에게서 비판 중지를 명목으로 1,600만원을 받았다가 문제가 되자 돌려줬고 사과문을 발표했으며”라고 한 것이 그렇다. 이대웅 씨는 돈을 돌려준 것도 알고 있고 사과문을 발표한 것까지도 알고 있다. 돈을 돌려준 것도 알고 사과문을 발표한 것도 안다면 그 시기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연대를 뺐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독자들이 “20년 전에 노루 친 몽둥이를 3년 동안 삶아서 먹으려는 거냐?”라 하거나 “명성교회 건도 그랬는데 과거 얘기를 가지고 웬 난리냐?” 등으로 의문을 제기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알지만 모른 체하면서 필자를 금품이나 받는 사람으로 매도하려는 데 혈안이 되어서 생긴 미련이고 악이다. 이재록 사건이 20년도 더 된 일이란 것을 아는 자는 다 안다.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이고, 그보다도 이미 철저히 고백하고 회개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대웅 씨는 ‘재림주’ 장재형 씨의 이단성을 밝히는 필자의 의도에 ‘물 타기’를 하기 위하여 연도를 알고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 삼은 이대웅 씨의 글 전체를 보면, 더 선명하게 알 것이다. <최삼경 목사, “김삼환 목사에게서 5천만원 받아” 주장 파문>(2019년 10월 4일)이란 글이다. 이대웅 씨의 글이다.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5831 최삼경 목사는 그 동안 수 차례 직·간접적으로 금품수수 논란에 휩싸여 왔다. 최 목사가 운영하는 <교회와 신앙>의 전 대표이사이자 전 편집국장인 남광현 씨의 경우 과거 만민중앙교회 측에게서 비판 중지를 명목으로 1,600만원을 받았다가 문제가 되자 돌려줬고 사과문을 발표했으며 아멘충성교회 측에게서는 이단성 논란 해결을 위한 교계 및 <교회와 신앙> 기자 로비 명목으로 억대의 금품을 요구했다. 또 <교회와 신앙>은 광성교회 측에서도 김창인 담임목사 시절 사이비이단대책비 명목으로 수억의 금품을 받았다. 김 목사가 은퇴하고 이성곤 목사가 부임하면서 그 지원이 끊기는데 공교롭게도 그 얼마 뒤부터 최삼경 목사와 친분이 있는 기자가 재직하던 한 매체에서 이성곤 목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해 광성교회 사태가 발생했고 <교회와 신앙>도 광성교회에 비판적 논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광성교회(김창인 목사) 건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취급하겠다. 그러나 우선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이대웅 씨가 쓴 위의 글을 보면 그가 어떻게 광성교회 회계장부를 입수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황규학 씨가 이미 사용한 것임도 안다. 광성교회 헌금 출납 장부인데 이 씨는 그것을 ‘헌금’이라고 하지 않고 ‘금품’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크투>의 부정직함이요 악이다. 이대웅 씨는 읽을 눈이 없는가? 아니면 그것을 해석한 능력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교계 언론들이 헌금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은 기본 상식이다. 물론 이단옹호 언론들은 이단의 돈을 받아서 운영할 것이지만 정상적인 언론들은 교회의 헌금 의존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정상이다. 만일 헌금을 ‘금품’이라고 할 수 있다면 <크투>는 얼마나 많은 금품을 받고 있는지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아니면 <크투>는 별도로 딴 돈벌이를 하고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크투> 기자들은 다른 언론들보다 수입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그럴까? 금품 수수가 안 돼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인지 알고 싶다. 홍콩의 토마스 왕 목사를 중심한 목회자들은 홍콩에서 활동하던 예청회(장재형이 만든 핵심 단체로 이들이 미국, 호주, 일본, 한국의 <크투>와 자매 언론들에서 기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 회원들이 하도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보고,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의 일부 일을 맡겼다고 한다. 그 때 ‘헌금을 거두지 말라’는 원칙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헌금을 거두는 것을 보고, 맡겼던 일을 취소하였다고 한다. (그 내용을 공증까지 해 주어서 가지고 있다.) 왜 예청회원들은 헌금을 모았는가? 아니 그야말로 금품 수수를 하였는가? <크투>는 헌금으로 경영하는가? 아니면 금품 수수로 운영하는가? 아니면 통일교처럼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가? 물론, 20년이 아니라 200년 전 일이라고 하여도 회개하지 않은 죄라면 공격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건은 다르다. 회개를 했다. 회개를 하여도 충분하게 하였다. 필자는 언론이나 기자들 중에 이와 유사한 일이 있을 때 이렇게 철저히 회개한 기자나 언론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런데도 저들은 ‘사과문을 냈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회개’라고 하지도 않고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헌금을 '금품'이라고 했다. 이런 엉터리 기준은 기독언론의 기자가 아닌 세상 언론에도 없을 것이다. 남광현 장로는 충분히 회개하였다. 남광현 장로(당시 본지 대표이사)는 이재록 교회(만민중앙교회)로부터 책값 조로 1,60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을 뉘우치고 그 후에 돈을 다 돌려준 것은 물론 철저히 회개하였다. 회개하되 넘치도록 하였다. 본 글 하단에 게재될 전문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교계에서 이렇게 철저하게 회개한 예가 있으면 <크투>가 한 번 보여주기 바란다. 남광현 장로(당시 대표이사)는 자신이 받은 돈은 되돌려주고 1999년에 필자 소속 교단지인 기독공보에도 회개문까지 냈고 또 본 <교회와 신앙>(1999년 1월호)에는 그 구체적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회개문을 게재하였다. 남 장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한국교회 앞에 용서를 구하였다. 여기서 그러면 두 사람, 장재형 씨와 황규학 씨는 어떻게 하였는가? 한 번 남광현 장로와 비교해 보자. 과연 <크투>의 창시자 장재형 씨는 통일교 전력을 남 장로처럼 회개하였는가? 장재형 씨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통일교에 얼마나 깊이 관련되었느냐?’는 문제와 하나는 ‘그는 재림주인가?’의 문제이다. 장재형 씨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재림주’로 인정하는 것을 딱 한 번 공적으로 인정한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여 그가 재림주가 되었는가(?)는 말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다음에 본격적으로 취급하겠다. 우선 그의 통일교 전력에 대한 회개를 충분히 하였는가는 확인해야 한다. 이대웅 씨도 남 장로가 이미 회개한 이재록 건을 또다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장재형 씨는 통일교 내에서 핵심적 자리를 두루 섭렵하다시피 했고 선문 대학 교수까지 하였지만 그의 주장처럼 통일교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고 오히려 통일교에서 많은 사람을 꺼냈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니면 그는 비록 통일교 출신이고 통일교 핵심 멤버 중에 하나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지만 그 죄에 맞는 회개를 하였느냐’는 것이다. 물론 장재형 씨는 처음에는 통일교 교리를 가르친 일이 없다고 하다가 후에는 회개하였다고 하고 그러면서도 어떤 부분은 시인을 하고 어떤 부분은 변명을 한다. 따라서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위 두 가지 견해를 갖고 있음이 자연스런 일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은 서로 모순된다. 즉 장재형 씨는 자신이 ‘통일교에 있을 때 통일교 교리를 가르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많은 통일교인들을 통일교에서 빼냈다’고 하면서도 장재형 씨가 문선명 주례 하에 1,800쌍 합동결혼식을 하였던 사실에 대하여 그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것은 통일교도였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그리고 <크투>의 이사장인 천환 목사(고신측)에게는 “사랑이 죄죠”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통일교도인 아내와 결혼을 하기 위하여 자신은 통일교인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합동결혼을 하는 죄를 지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장 씨가 선문대학 교수로 재직한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자신이 문선명을 따르고 그를 아버지로 모시는 통일교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 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자연히 통일교 쪽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한 기자에게 말하였다고 들었다. 또 필자와 이단연구가들에게는 ‘월급을 받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월급을 받기 위하여 교수로 있었다’고 하였다. 두 가지 답은 일맥상통하는 논리다. 그러면 장재형 씨가 비록 통일교에서 활동하였지만 회개하고 나왔다는 말이 맞다면 마땅히 회개도 철저하게 했어야 한다. 물론 이는 두 가지 주장을 억지로 맞출 수 있을 것이니 추후에 <크투> 기자들과 장재형의 변명이 기대되는 바이다. 만약 장재형 씨가 통일교 교리를 가르친 일이 없고 오히려 통일교 교인들을 많이 빼냈다는 주장이 맞다면 장재형 씨는 전혀 회개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하고 상급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반대로 장재형 씨가 아무리 통일교에서 핵심 멤버로 활동을 다 하였고 많은 정통교인들, 특별히 청년들을 통일교도로 만들었다고 하여도 거기에 맞는 회개만 하였다면 더 이상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둘 중에 어느 것이 맞을지 후에 장재형 씨와 그 측근들의 다른 꼼수 논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필자의 은사이신 김명혁 교수(합신대 전 학장, 강변교회 원로 목사)는 장재형 씨가 회개하였다고 확실히 믿는 분이다. 회개하였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는 것도 분명하다. 물론 김 교수는 장재형의 ‘재림주’ 활동은 아예 믿지 않을 것이다. 김명혁 교수는 물론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 목사, <크투> 편집고문, 기독교선교횃불재단 이사)도 장재형 씨의 재림주 역할은 믿지 않고 단지 그의 과거 통일교 전력은 이미 회개하였다고 믿는 한 분이다. 그래서 이 두 분 때문에 한국교회가 장재형 문제에 대하여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하여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럼 장재형 씨의 회개와 남광현 장로의 회개와 비교해 보자. 장재형 씨가 언제부터 얼마나 어떻게 통일교에서 무슨 활동을 하였고 언제 무슨 동기로 통일교를 이단이라고 깨달았고 통일교에서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통일교에서 나온 후에 그 큰 죄를 어떻게 회개했는가 하는 점이다. 장재형 씨는 자신의 회개한 점을 기록한 근거가 있는지 회개에 합당한 무슨 활동을 하였는지 보아야 한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에서 나와서 그들과 싸웠고 루터는 천주교에서 나와서 그들과 싸워 이렇게 개신교의 초석을 이루었고 이단 연구가 정동섭 목사는 구원파에서 나와서 구원파와 피터지게 싸웠고 진용식 목사는 안식교에서 나와서 안식교의 이단성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장재형 씨의 회개는 선명하지 않다. 그는 이 때는 이렇게 말하고 저 때는 저렇게 말하였다. 어쩌다가 그의 통일교의 화려한 전력이 밝혀지면 그제서야 겨우 소극적 변명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 대표적 케이스가 그의 1,800쌍 합동결혼식 사건이고 선문대학 교수 건이기도 하다. 적어도 통일교의 핵심 요직을 두루 다 거쳤던 그가 ‘선문대학을 이루는 데 최고의 공로자 중에 하나’라면 거기에 걸맞은 회개를 했어야 한다. 존경하는 김명혁 목사와 김상복 목사는 장재형이 무슨 회개를 하였는지 어떻게 하였기에 그를 그렇게 믿어주고 그처럼 들러리(?)를 서 주고 계시는지 밝히실 때가 되었다. 필자가 보기에 장재형 씨에게는 이렇다 할 회개가 없는 것으로 안다. 회개하였다고 구실을 삼을 정도의 미미한 수준의 회개만 있다. 그것도 초기의 장재형 씨는 아예 통일교 교리도 가르친 일이 없고 통일교인들을 빼냈음을 강조하였기에 회개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 후에야 회개를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자 전술적으로 회개를 하였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김명혁 교수나 김상복 목사님은 혹시 장재형을 ‘회개했다고 여겨 주자’고 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재형 씨에 비하면 남광현 장로의 회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확실한 회개요, 철저한 회개라고 할 수 있다. 이대웅 씨가 이재록 건을 가지고 이렇게 필자와 본 <교회와 신앙>을 공격하는 것은 남 장로의 회개를 회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어쩌면 이대웅 씨는 <교회와 신앙>은 회개도 하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철저하게 회개하여도 그것을 회개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필자는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회와 신앙> 기자는 천을 회개하여도 회개가 아니고 장재형 씨는 하나만 회개하였어도 회개다’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광현 장로는 철저히 회개하였다. 삭개오처럼 4배로 갚지는 않았지만 받은 돈을 다 돌려주었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 내용까지 소상하게 밝혀가며 회개하였다. 그 회개가 부족하다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한다면 다시 더 회개하도록 하겠다. 성추행범, 절도미수범, 명예훼손범, 금품수수범 등의 온갖 찬란한 범죄 경력들을 다 가진 황규학 씨는 과연 남 장로처럼 회개하였는가? 황교학 씨는 <크투>와 함께 이 이재록 건을 가지고 필자를 줄기차게 공격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황 씨는 앞으로도 죽기 전까지 그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황규학 씨는 과연 자신이 지은 그 더러운 죄들을 회개하는 사람인가? 우선 본 글에서는 ‘지하철 성추행죄’와 ‘지하철 절도 미수죄’만 살펴보자. 황 씨에게 회개란 없어 보인다. 그에게 ‘회개’란 단어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죄를 지어도 항상 뻔뻔하다. 황규학 씨는 목사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절도미수와 성추행을 지하철에서 하고도 그것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도 않은 성추행을 회개하라고 한다면 회개하라는 사람이 오히려 회개를 해야 한다는 말이 되고 만다. ‘절도미수죄’에 대하여는 ‘했다’ ‘안 했다’ ‘오해다’ 등의 변명도 못하고 있다. 회개하려면 먼저 자백을 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황 씨는 아예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는 2008년 4월 14일 18시 50분에 지하철에서 한 여성을 성추행하였다. 수치스러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부끄럽다. 법정 판결은 ‘황규학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15-9 소재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서 고속버스 터미널역 방면으로 운행하는 전동차에서 혼잡한 틈을 이용하여 모 여자 뒤에 바짝 붙어 서서 왼쪽다리를 피해자 다리사이에 끼워놓고 성기를 엉덩이에 밀착시켜 비벼대는 방법으로 2분가량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주는 등 추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가 추행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근거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피해 여성이 황규학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며 둘째는 성추행이 일어난 시간에 황 씨는 여러 사람들과 수차에 걸쳐 전화 통화했기 때문에 성추행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노회로부터 무죄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엉터리 변명은 오히려 성추행을 사실로 믿어지게 하지만 여기에서 분석하고 비판하지는 않겠다. 만일 필자가 황 씨처럼 만일 세상 법정으로부터 대법원까지 성추행과 절도미수가 확정되었다면 황 씨와 <크투>와 이단 옹호자들과 이단들이 어떻게 하였겠는가? 아마 필자는 매장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절도미수 건도 그렇다. 성추행 판결 1주일 후인 2010년 7월 22일에 절도미수로 또 3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이 때 그가 목회자란 사실을 숨겼다가 뒤늦게 들통 난 점도 한없이 수치스럽다! 황 씨가 “성추행 재판 이후에 목회자 신분을 감추고 잘못을 저질러 죄송하다.”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자신의 사전에는 회개란 없기 때문에 남이 회개한 죄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이런 황 씨는 약방의 감초처럼 한국교회에 끼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런 자가 세습 옹호를 하고 그의 옹호를 받아주고 그를 후원해주는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에 대한 실망이 크다. 명성교회가 그가 쓴 책을 얼마나 많이 팔아주었는지 모른다. 정직한 사람은 배가 아무리 고파도 도적해서 먹지 않는 법이다. 본 <교회와 신앙>지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언론보다 앞장서서 이재록의 이단성을 줄곧 밝혀왔다. 본 <교회와 신앙>만큼 이재록 씨의 이단성을 밝힌 언론은 없다. 96년부터 99년까지 총 19개의 글을 썼고 95년부터 99년까지는 총 23개의 글을 썼다. 최근에 이재록 씨가 성폭행범으로 구속되면서 본지가 이재록 반대편을 돕고 또 이 사실을 한국교회에 알리는 것도 가장 앞장서서 한 일임을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재록 씨에게 금품을 받고 회개하지 않았거나 떳떳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음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1999년에 한기총에서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데 필자가 앞장섰고 한기총에서 이재록 씨를 이단으로 규정한 자료 또한 본지가 제공하였고 필자의 주도 아래 보고서도 작성하여 이재록을 최초로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래도 본지가 이재록 씨에게 금품을 수수하여 그를 봐주었다고 할 수 있는가? 황규학 씨와 <크투>가 본지처럼 이단을 규정하고 이단을 막는 데 앞장섰다면 그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기 바란다. 그 때까지 이재록 씨를 핵심 교단들이 이단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그 때까지 오직 예성 교단에서 이재록을 이단으로 한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교회 이단은 통합, 합동, 고신, 합신에서 95%를 할 때다. 그런데 본지의 이 사건이 터지던 1996년까지 위 4개 교단에서 이재록을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순서는 먼저 한기총에서(1999년 봄)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 후에 통합측 9월 총회에서(84회) 이단으로 하고 그 다음 해인 2000년도에 합신에서(85회)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 여러 교단들의 이단 연구에 본 <교회와 신앙>지가 그 자료를 제공하였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1999년 5월 10일에 MBC PD 수첩에서 이재록의 사이비성을 고발하려고 하자 이재록 측 교인들이 MBC 방송실을 점유하고 기물을 파괴하여 방송을 못하게 한 큰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이 방송을 위하여 MBC PD 수첩의 윤 PD에게 이재록 씨에 대한 모든 자료들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아예 기자들이 따라다니며 도왔던 것도 본지였다. 그 후 1999년에 MBC PD 수첩 기념 리셉션을 할 때 MBC에서 필자를 기독교 대표자로 초청하여 참석하였다. 결론: 원수가 가진 장점이라도 그 장점은 장점으로 인정해야 하나님의 사람이다. <크투>나 황규학 씨는 필자가 이것을 "희다"고 하면 "'검다'고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다가 필자가 그것을 “검다”고 하면 이제 “'희다'고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적이나 다름없는 바리새인의 장점도 장점으로 지적하셨다. 필자는 누구를 공격할 때 알면서 거짓을 이용하여 공격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크투>는 큰 실수를 하였다. 이제 전처럼 필자를 공격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친(親) <크투>측 사람들도 17년 전 20년 전 일을 가지고 현재의 일처럼 한 것을 잘못이라고 하였다고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지 한국교회와 함께 두고 보기로 하자. 부록: 남광현 장로의 사과문(1999년 1월)한국교회 앞에 엎드려 사과 드립니다남광현(교회와 신앙 대표이사) <교회와 신앙>이 이재록 목사와 교리적인 문제점을 비판한 것은 96년 7월호가 처음입니다. 최삼경 목사의 연구 분석이었습니다. 이후로 이 목사 측의 반론이 있어 96년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목사측에서 9월호 2,500부를 주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생각 끝에 저는 그 주문을 받아드렸고 책값으로 1,000만원(권당 4,000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 목사에 대한 최 목사의 추가적인 비판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나중에 밝혔지만 책 판매는 경영자의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10월호를 통해 이 목사 측의 반론에 대한 재판론의 비판을 강행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저는 만민중앙교회의 기획실장과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주로 이재록 목사가 지적받고 있는 문제점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목사의 문제점이 속히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고 그는 최삼경 목사가 지적하는 바와 같은 정도의 문제는 없고 몇몇 부분은 주의하고 있다고 거듭 해명하였습니다. 그렇게 해명하는 그는 시종 확신에 차있었고 진실해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목사에 대한 저의 비판적인 인식은 상당 수준 완화되었고 결국 1년이 넘도록 직원들의 월급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등의 어려운 운영 사정을 견디지 못해 잘못된 판단을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목사측으로부터 4차례에 걸쳐 후원금 명목으로 1,600만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최삼경 목사가 다른 연구 일정에 쫓겨 이 목사에 관한 추가 연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틈타 그의 문제점에 대한 편집부 자체적인 비판기사조차 더 이상 나가지 않도록 기자들을 통제해왔습니다. 이목사측에게 약속해준 대로였습니다. 이제 한국교회 앞에 이 사실을 밝힙니다. 이단 문제를 취급하는 공적 언론 활동과 관련하여 저지른 잘못이기에 더욱 재를 뒤집어쓰는 심정에서 공적으로 사실을 밝히며 사과드립니다. 어려운 운영 사정이 결코 핑계가 될 수 없음을 시인합니다. 비록 잘못 판단한 연유였지만 이 목사에 대한 완화된 시각, 즉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주관적 사연도 결코 정상참작의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점 역시 시인합니다. 무슨 비난이라도 아무런 변명 없이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메시지를 이목사가 말하고 그 교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96년 7월 초순에 처음 받았습니다. 만민중앙교회의 기획실장으로부터 줄곧 들은 해명도 있고 해서 처음에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지 기자에게 확인토록 했습니다. 물론 취재된 내용이 이번 호에서 고발하는 바와 같은 결정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었으나 도무지 용인될 수 없는 내용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 자료를 접하고 나서야 저의 지난 처세가 참으로 그릇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고 이 목사 측으로부터 받은 후원금 1,600만원 전액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민중앙교회 기획실장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에게 이 목사가 자칭 메시아를 향해 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이 목사가 만일 소위 자칭 신적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선포한 근거가 나올 시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교회와 신앙>을 통해 한국교회 앞에 고발할 것이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끝내 그 같은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잘못된 처세로 인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먼저 본지의 사역에 찬동하여 후원 차원에서 정기구독 회원이 되어주신 많은 독자님들께 실망감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사역을 함께 감당해 주시는 목사님들께 충격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본지의 하는 일에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배신감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필설로 다 말할 수 없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묵묵히 수고를 아끼지 않은 직원 동역자들께 곤혹스러움을 안겨 드렸습니다. 최근에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본지 발행인 최삼경 목사님께 깊은 상처를 드렸습니다. 93년 창간 이래 지금껏 사례비 한 푼 받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밤낮 없이 국내외를 돌려 <교회와 신앙>을 살리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어떠한 고충이 따를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방법으로 이 사명을 감당하고자 자신과의 수없는 싸움을 다해 오신 최 목사님께 누구보다도 크나큰 배신감과 불명예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분들께 엎으려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본지 외에도 이단 연구 활동을 해오고 있는 여러 기관과 사명자들이 있는데, 이분들께도 참으로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행여 저의 잘못이 빌미가 되어 그분들 모두가 함께 비난 받거나 이단 연구 자체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무조건적으로 부정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만 저의 잘못이요, 제가 비난 받을 일이지 저의 잘못이 사이비이단을 정당화해 주는 하나의 근거가 결단코 될 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이 사역을 위해 가능한 대로 가진 것 다 바치고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부끄러움 앞에 서야 할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이러 저러한 일들이 차질을 빚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마음도 큽니다. 그렇지만 긴 시간 옆구리를 찌르고 번민의 근원이 되었던 저의 가시를 이렇게 빼내어 버릴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같은 죄가 이것으로 처음이요 마지막이 되도록 기도해 주실 것을 한국교회 앞에 간절히 요청 드립니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 근신하는 가운데 사명 수행에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전국의 모든 교회 앞에 다시 한 번 엎드려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9년 11월 14일 (목) 10:25:29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최삼경 목사 / 본지 편집인, <빛과소금교회> 담임 목사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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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9
  • '크투'와 황규학이 제기한 광성교회와 이인강 문제의 진실(5) - 최삼경 목사
    <크투>와 황규학이 제기한 <광성교회> 문제도 <명성교회> 건처럼 공적 헌금이었으며 이인강 문제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충분히 회개한 문제다. 본 글에서 크투가 제기한 두 가지(광성교회, 이인강) 건에 대하여 동시에 답하겠다. 크리스천투데이(크투)가 제기한 돈 문제 4가지 중에 두 가지(명성교회 건, 이재록 건)는 충분히 진실을 알렸다고 본다. 본 5번째 글에서 나머지 두 문제를 동시에 답하려는 것은 그래야 장재형 씨가 통일교 내에서 어떻게 문선명 씨를 섬기면서 무슨 일들을 해 왔는가와 그가 했던 재림주 노릇을 빨리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크투의 기자들과 황규학 씨처럼 되든 안 되든, 알든 모르든 무조건 필자를 문제 삼아 진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고 필자를 공격해온 사람들은 없었다. 저들의 그 허위 기사들 때문에도 언론 자체가 가진 우상성과 또 필자를 미워하는 사이비 이단들과 사이비 이단 옹호자들의 바람과 그리고 삼류급 잡지에서 정보를 취하고 사는 삼류급 인생들의 무지한 인격 탓에 그것을 믿고 신뢰하고 거짓인줄 알고도 인터넷을 통하여 그것을 퍼트려 필자를 힘들게 해왔다. 그것이 저들이 얻은 성공이라면 성공일 것이다. 그러나 아는 자는 진실을 알고 있고 알아가고 있음이 다행이다. 크투의 실수는 어쩌다 한 실수가 아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진실한 사람도 물론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짓된 사람의 실수와는 다르다. 거짓된 사람은 본질 자체가 거짓되기 때문에 여기서도 거짓되고 저기에서도 거짓되며 어쩌다 진실을 보여도 자신의 거짓을 선으로 포장하여 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적 선으로 진실 속에 거짓이 숨어 있다. 크투가 그동안 필자에게 쏟아놓은 저질스럽고 사악한 글들을 보면 진실을 추구하려다 한 실수가 아니라 본질적 거짓으로부터 나온 악들이다. 필자를 좌파 빨갱이로 몰려는 사악한 의도만 보아도 그 점이 명약관화해진다. 그리고 명성교회 건도 이재록 건도 광성교회 건도 이인강 건도 마찬가지다. 먼저 앞의 두 건(명성교회 건, 이재록 건)을 간단하게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명성교회 건이다. 크투는 17년 전 일을 마치 현재의 일처럼 느끼도록 글을 꾸며 썼고 거기에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김삼환 목사로부터 5천만 원의 뇌물을 받고 세습을 비판하는 것처럼 모함의 글들로 도배질하였다. 필자의 글에 ‘헌금’이라는 말이 분명히 나와도 ‘헌금’이란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점은 저들의 거짓된 인격과 잘 어울리는 짓이다. 그리고 필자의 글과 김기홍 교수와의 전화를 통하여 5천만 원은 명성교회가 <교회와 신앙>에 해준 공적 헌금이었다는 점을 선명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일말의 언급초자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앞의 글을 수정하든지 사과하든지 아니면 달리 믿지 못할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저들은 목사도 아니지만 정직한 사람도 정직한 기자도 정직한 크리스천도 아니다. 그것이 크투 기자들의 본질이다. 이재록 건도 마찬가지다. 명성교회 건은 17년 전 일이지만 이재록 건은 그보다 앞선 20-22년 전의 일이다. 이 때는 대부분의 이단 연구를 하는 주요 교단들(통합, 합동, 고신, 합신) 어디에서도 이재록 씨를 이단으로 규정한 일이 없을 때이다. 그 때 본지 발행인이었던 남광현 장로가 이재록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으나 이내 잘못을 깨닫고 받은 돈을 모두 돌려주었으며 기독공보와 본지 <교회와 신앙>에 잘못을 사과하고 충분한 회개까지 하였다. 그 후 1999년에 필자가 앞장서서 한기총에서 이재록 씨를 이단으로 규정하였고 그 후에 필자와 본 지가 나서서 각 교단과 MBC PD 수첩에 자료를 제공하였고 더욱이 최근 이재록 씨의 성폭행 문제와 이재록 씨의 구속과 만민중앙교회 문제를 가장 앞장서 보도한 언론 역시 본지다. 그래서 필자는 크투가 독자적으로 이재록 씨의 이단성을 밝힌 글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재록에 대한 기사들은 충분하지만 그러나 크투 자체가 이 씨의 이단성을 밝혔다고 여길 만한 글을 찾지 못하였다. 크투 기자들의 신학과 사상이 들어간 연구와 평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하기야 저들이 장재형 씨의 이단성을 옹호하는 자들임을 볼 때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크투가 이재록 씨나 다른 사람의 이단성을 밝히고 비판한 글이나 기사가 있다면 제시해주기 바란다. 크투가 능동적으로 정작 이단을 비판한 글, 특히 통일교를 비판한 글을 찾을 수 없다. 적어도 통일교의 핵심 멤버로 일하였던 장재형 씨가 만든 언론이요, 그의 주장대로 그가 비록 통일교 요직을 두루 맡았지만 통일교 교리를 가르친 일이 없고 오히려 그들을 그곳에서 꺼냈다는 주장이 진실이라면 크투만은 대한민국의 어떤 언론보다 통일교의 이단성을 밝히는 데 가장 앞장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대신 크투에는 필자를 비롯하여 이단연구가들을 비판한 글은 넘친다. 그 중에도 필자를 비판한 글들은 산더미와 같다. 인터넷에 필자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게 1만여 건 이상 떠 있을 때 절반 이상은 크투와 자매 언론들이 재생산한 글들이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황규학 씨가 만든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크투는 황규학 씨를 황규학 씨도 크투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필자가 황규학 씨처럼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하고 절도미수죄를 짓고 그것이 대법원까지 유죄로 인정을 받았다고 가정한다면 크투가 어떻게 하였을지 짐작하는 것은 가히 어렵지 않다. 필자는 거짓에 근거하여 빨갱이로 몰려고 하면서도 황규학 씨의 성추행 죄나 절도미수 같은 죄는 대수롭게 않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크투가 추구하는 것은 진실이 아님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증거 할 것이 무엇일지 모르겠다. 크투가 한국교회에 존재해야 하는 최대 최고의 목적은 ‘장재형 보호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연히 그 장재형의 이단성을 밝히려는 필자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것이다. 크투가 알아야 할 사건이 하나 있다. 당시 침례교의 권 모 목사가 이재록 1,600만원 건을 가지고 필자를 ‘가롯 유다’에 비유하는 글을 써서 필자가 그 돈을 받은 것처럼 몰아가려다가 법정에서 필자와 관련 없음이 밝혀져 민형사 간에 벌금을 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본론: 광성교회 헌금 건과 이인강 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1. 광성교회(김창인 목사) 건도 명성교회 건처럼 당시 광성교회 담임목사였던 김창인 목사가 본지(교회와 신앙)의 이사장직을 수락하고 해준 고마운 헌금이었다. 이건도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와 관련이 있다. 교계 언론들이 너무 혼란스러운 점을 보고 교계정화 차원에서 김삼환 목사가 힘 있는 기독언론을 만들고 싶어 했다. 2001년에 김 목사는 황공하게도 필자를 그 적임자로 여겼는지 주간지를 함께 만들 것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본지 이사들과 협의하고 특히 이 문제를 이 모 교수와 상의하자 다음과 같은 긍정적 충고했다. “김삼환 목사가 언론을 만들면 큰 언론이 될 것인데 최 목사가 가까이에서 일하면 바른 언론이 될 가능성이 크고 최 목사는 강한 언론이 필요한 입장으로 만일 잘못된 언론이 만들어지면 그것도 최 목사를 힘들게 할 것이니 긍정적으로 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김 목사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이 일을 위하여 김삼환 목사는 2002년 봄에 성지 순례를 가자고 제안하였다. 필자는 그곳에서 구체적으로 일정과 방법을 협의하자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필자가 알고 있는 참석자들은 이미 고인이 되신 김의환 목사(총신대총장) 외에 본지에서는 김0홍, 유0모, 정0택 그리고 필자와 명성교회측 사람들이(누군지 모르지만)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삼환 목사는 어떤 이유도 변명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여행도 취소하고 이 일을 없던 것으로 하고 말았다. 당시 필자는 인간적으로 섭섭하였지만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고 그 후 2013년 세습방지법을 제정하기 전까지 김삼환 목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명성교회에 초청되어 금요 모임과 주일저녁 예배에 설교도 하였고 종종 식사 초대도 받았으며 2013년 6월에도 김기홍 교수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자고 하여 함께 한 일도 있다. 김삼환 목사가 주간신문 창간을 제안하고도 비록 취소했지만 신문의 필요를 느껴 결국 본지(교회와 신앙) 이사들과 협의하여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님을 찾아가 이사장을 맡아달라고 요구하게 되었고 김 목사님은 기꺼이 이사장을 맡아주시고 월 1천만 원의 헌금을 약속하고 신실하게 헌금해주셨다. 필자는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한다. 그리고 주간지가 시작되자 김삼환 목사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때문인지 나와 김기홍 교수를 불러 매월 5백만 원의 헌금을 해 주겠다고 하고 열 달 동안(합 5천만 원) 헌금을 해 주다가 중단하였다. 물론 주간지를 하면서 말로 할 수 없는 고생을 하였고 빚까지 졌다. 결국 주간지를 중단하고 지금의 인터넷 신문으로 전환하였지만 필자는 그가 누구든지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기억하고 있다. 크투 기자들은 명성교회 헌금도 뇌물이나 금품수수로 보게 하려고 혈안이 되었으니 광성교회 헌금도 뇌물 내지 금품수수로 보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크투의 주장처럼 금품수수가 아니라 광성교회가 결의하고 정식으로 해준 헌금이었다. 필자도 묻고 싶다. 크투는 크투 외에 20여개나 되는 자매 언론들을 가지고 있는데(이름을 수시로 바꾸어서 혼란스럽다) 헌금이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 그것들을 운영하고 있는지 밝혀주기 바란다. 크투는 모든 헌금을 다 금품으로 여겨 누가 하겠다는 헌금이 있어도 무조건 거절하는가? 아니면 이름은 헌금이라도 그것을 금품으로 알고 받아서 사용하는가? 그보다 헌금해 주려는 사람이나 교회가 미래에 무슨 실수도 하지 않을 것에 대한 충분한 계시라도 받고 헌금을 받고 안 받고는 결정하는가? 아니면 도적질이라도(?) 하여 그렇게 많은 언론들을 운영하는 것인가? 하기야 장재형 씨를 재림주로 믿었던 이동준 씨의 경우 ‘카드깡’을 해서 헌금을 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고 하니 예청 회원들이 같은 방법으로 헌금을 하여 언론들도 운영되는지 묻고 싶다. 필자의 경우 같은 교단 교회와 헌금을 해 주는 시점에 문제가 없는 교회가 해주는 헌금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일단 헌금을 받으면 그가 어떤 잘못을 하여도 눈감아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받을 때는 이단이 아니거나 이단인지 몰랐는데 헌금을 받은 후 그가 이단이란 점일 밝혀지면 헌금도 돌려줬다. 그런 언론도 있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비록 명성교회로부터 헌금을 받았지만 세습 문제를 취급한 것은 헌금과 잘못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투는 필자가 수억의 금품을 <광성교회>로부터 받았다고 글을 썼다. 앞의 명성교회 같은 시각에서 나온 실수요 미련이요 그리고 의도적인 범죄다. 사두개인이나 제사장의 눈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죽여야 할 죄인으로 보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교회는 이것이 크투의 본질이라는 점을 알고 대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깨끗한 것이라도 더러운 눈으로 보면 더럽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색맹이 본 색깔은 주관적 확신이 아무리 넘친다고 하여도 바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육적 성도는 육적인 것도 육적으로 보지만 영적인 것조차 육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마저도 육체로 보았던 점과 같다. 크투 기자들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진실을 진실로 볼 눈이 없고 그것을 시인할 정직함도 없고 지혜도 없어 보인다. 2. 이인강 씨 건의 진실을 밝힌다. 먼저 밝혀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한국교회는 본지 <교회와 신앙>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부터 알았으면 한다. 본 <교회와 신앙>은 1993년도에 남광현 장로가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수억)을 투자하여 시작된 언론이다. 사람들은 필자가 <교회와 신앙>을 창간한 줄 알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필자는 무슨 단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세이연>도 필자가 만든 줄 아는 자가 많은데 오해다. 필자가 주도하여 만든 단체나 언론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교회와 신앙>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 필자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필자도 소극적으로 본지 창간에 참가하였지만 1993년에 남광현 장로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교회와 신앙>이 만들어졌다. 현 시세로 환산하면 20억 정도 되는 큰 돈이었다. 만일 지금 본 <교회와 신앙>이 한국교회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면 필자는 그 공로의 일부가 남광현 장로에게 있음을 한국교회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필자는 죽을 때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2012년에 이인강 건이 터지기 전까지 <교회와 신앙>의 기사도 잘 보지 않을 정도로 본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필자는 2012년까지 소극적으로 본지에 관여하였다. 필요에 의하여 글을 쓰면서도 그때까지 본지 기사조차 잘 읽지 않았을 정도였다. 본지 기자들이 필자가 쓴 글조차 읽지 않는다고 불평과 원망(?)을 종종 하였다. 필자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본지에 발을 디뎠지만 이단 연구에 절대적으로 언론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보니 많은 고소 건이 발생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필자는 그것을 반격해야 하고 또 필자가 세계 도처에 다니며 적지 않은 집회를 하였기 때문에 구독자도 필자가 확보하게 되고 모금도 필자가 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사까지 관여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니었다. 2012년에 이인강 건이 터졌다. 지금부터 7년 전인 2012년에 누군가가 필자에게 ‘남광현 장로가 이인강 씨로부터 2천 여 만원의 금품을 받은 것 같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필자는 제일 먼저 당시 본지에서 일하던 전 기자에게 사실관계를 물어보고 그리고 당사자인 남광현 장로에게 물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 장로가 이인강 씨로부터 받은 돈은 550만원이었음도 알았다. 후에 듣고 보니 이인강 씨 측에서는 2,350만원을 뇌물로 주었는데 이 일을 주선한 지미숙 씨가(크리스챤연합신문 발행인, 카이캄 홍보부장) 1,800만원을 중간에서 가로챘고 남광현 장로에게 550만원을 준 것이었다. 필자는 <교회와 신앙>의 문을 닫으려고 결심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목회와 이단연구를 동시에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오래전 일이지만 이재록 건으로 인하여 황규학 씨와 같은 인간들이 필자를 괴롭히고 있는데 또 다시 이런 일이 있게 되자 받은 심적 고통은 너무나 커서 본지를 폐간하려고 결심하였다. 당시 필자는 울며 살았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흘렀다. 필자의 눈물을 본 이단연구가들과 필자를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기자들은 필자에게 이렇게 용기를 주었다. 첫째는 “교신이 문을 닫으면 이단들과 이단 옹호언론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힘써 도울 것이니 문 닫지 말고 해보자”는 것이었다. 남 장로는 모든 책임을 지고, 자신이 가진 권리도 주식도 다 내어놓고 본지를 떠나갔다. 결국 남광현 장로는 전처럼 그 돈을 돌려주고 그로 인하여 자기가 본지에 가진 모든 권리들을 다 포기하고 주식까지 다 다른 사람들에게 양도하고 떠나갔다. 그래서 필자는 그 후부터 어쩔 수 없이 본지를 적극적으로 맡아서 이끌게 되었다. 당시 남광현 장로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날 것이니 문만 닫지 말아주세요”라고 간곡하게 요구하였다. 결국 남 장로는 550만원의 돈 때문에 본 교회에서 치리를 당하였고 몇 년 동안 몸무게가 20여 Kg이 빠지도록 하루 밤에 2천여 개의 물품을 운반을 해야 하는 택배회사에 나가 속죄하는 맘으로 막 노동을 하였다. 크투는 필자가 “남광현 장로를 희생시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지금도 남장로로 본지에서 대표이사로 일하도록 한다면 크투의 기자들은 필자를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과연 칭찬할까? 털끝만큼도 그러리라 믿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공격할 것이다. 크투에게 중요한 것은 돈 문제도 아니고 남광현 장로의 문제도 그렇다고 이인강 문제도 아니다. 오직 최삼경을 잡기 위한 거리가 된다는 점이다. 무엇을 보아서 알 수 있는가? 크투나 황규학 씨는 돈을 준 이인강 씨나 중간에 돈을 떼먹은 지미숙 씨에 대한 공격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을 증명한다. 누가 누구에게 뇌물을 주었다면 그 죄는 결코 받은 자만의 죄가 아니다. 준 자의 죄도 같다. 아니 그 일을 주선하고 심부름을 한 자의 죄도 죄다. 거기에다 중간에서 많은 돈을 떼먹은 사람(지미숙)의 죄는 더 크게 물어야 옳다. 의를 추구하고 추구하는 그 의가 목적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크투도 황규학 씨도 돈으로 이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이인강 씨를 공격한 일을 보지 못하였고 그 일을 주선하고 남 장로에게 준 돈보다 3배나 더 많은 돈을 떼먹은 지미숙 씨를 공격하는 것도 본 일이 없다. 자신의 전재산을 다 투자하였고 본지를 끌어오느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생을 다 하고도 550만원 때문에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가진 주식까지 다른 사람에게 다 양도하고 떠나간 남광현 장로만 공격하는 것이다. 사실 남장로를 공격하는 것도 그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일로 필자를 공격하기 위함이다. 더러운 기름옷에는 김치 국물을 한 병 부어도 그 옷은 입을 수 있지만 깨끗한 와이셔츠는 김치 국물 한 방울만 묻어도 입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 성숙한 기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교계에 언론과 기자를 두 종류로 나누고 싶다. 하나는 정직한 언론과 깨끗한 기자요 하나는 거짓된 언론과 거짓된 기자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성숙한 언론이냐 성숙하지 못한 언론이냐’, ‘성숙한 기자냐 성숙하지 못한 기자냐’의 문제다. 언론의 기초는 정직이다. 모든 것은 정직과 진실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록 정직하다고 해도 성숙하지 못하면 한국교회에 이롭지 못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 언론 중에 정직한 언론도 많지 않지만 성숙한 언론을 찾기는 그보다 더 어렵다. 이는 ‘성숙한 목회자나 성숙한 신학자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언론과 기자에게 성숙함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어떤 언론이 성숙한 언론이라고 한다면 그 언론에 성숙한 리더가 있을 것이다. 필자도 ‘내가 과연 성숙한 목회자요 성숙한 언론인인가’를 늘 반성해야 하고 특히 언론의 영향이 커져갈수록 진실 위에서 성숙하기를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남광현 장로 사건에서 때로 필자가 앓아야 할 병을 남장로가 대신 앓은 것은 아닌가 반성하고 회개한다. 참으로 30여 년간 본지를 끌어오느라 힘들었다. 항상 적자였고 거기에다 120-130여건의 고소 건으로 법정에 끌려 다녀야 했고 변호사 비용에 시달려야 했고 황규학 씨나 크투 같은 형편없는 이단옹호언론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필자는 이 이인강 건에서도 크투나 황규학 씨에게 비난을 받아야 할 잘못을 하지 않았다. 이 때 이인강 건과 필자가 관련이 있다면 누구보다 지미숙 씨가 이를 가장 잘 알 것이고, 필자를 폭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지미숙 씨가 홍보부장으로 있는 카이캄도 여지없이 공격하였고 또 지미숙 씨의 죄를 덮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샅샅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크투 기자는 일련의 일들에 대하여 필자에게 도의적 책임을 묻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필자도 크투 기자들과 장재형 씨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끔찍한 점이 있다. 장재형 씨는 자신은 재림주 노릇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재림주로 섬기는 사람이 있음을 딱 한 번 인정한 일이 있다.(후에 하나씩 자세히 취급할 것이다.) 필자에게 도의적 책임을 물으려면 장재형 씨에게는 더 큰 도덕적 책임을 물어야 햘 것이다. 장재형 씨는 재림주도 아니고 재림주 노릇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재림주로 섬기는 그런 미친 인간들에게(?)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도의적 책임을 묻기로 하면 필자보다 장재형 씨에게 백배나 더 물어야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성구 하나로 결론을 삼고 글을 맺고 싶다. "너는 허망한 풍설(風說)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誣陷)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출 23:1) 최삼경 목사(<교회와 신앙> 편집인, <빛과소금교회> 담임 목사) 2019-11-26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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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6
  • 청와대 유재수와 수서경찰서 박상범 뒷배
    총회의 불빛은 아버지 팔뚝처럼 든든하다. 겨울녘에 들어선 저녁은 야곱의 팥죽 한 그릇처럼 조용히 끓고 접시에 놓인 불빛을 김종준은 에서처럼 게걸스레 핥는다. 그리고 위선의 입을 틀면 쏴아 거짓말이 쏟아진다. 그 위선을 삼킨 개가 하늘을 향해 짖어대면 그래도 하늘에선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첫 별이 다가올 진리의 구주를 기리는 성탄절을 밝히려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검찰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씨는 금융위 국장으로 있을 때 세금 감면 등 기업 편의를 봐준 대가로 골프채, 항공권, 자녀 유학 비용 등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혐의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작년 말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이 "조국 민정수석 지시로 유씨 감찰이 중단됐다"고 폭로하면서 밝힌 내용 그대로다. 특감반 보고 문건을 보면 기업·기업인 이름과 함께 유씨가 받은 금품 종류까지 나와 있다. 특감반원들이 유씨를 몇 차례 대면 조사까지 하면서 파악한 내용인데 검찰 수사로 실제 근거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조국 수석은 "경미한 품위 유지 위반 수준이었다"며 특감반 조사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사실을 호도한 것이다. 그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 비리를 알면서도 덮었다면 직권 남용이다. 청와대 특감반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씨는 특감반에서 3번째 조사를 받은 직후 75일간 병가를 냈다. 그 사이 '조사 중단' 지시가 있었다. 유씨가 누군가에게 구명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갑작스러운 조사 중단 지시에 특감반장조차 "굉장히 분개했다"고 한다. 금융위는 구체적 비위 내용은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유씨의 사표를 받았다. 청와대가 공무원 비위를 적발하면 검찰에 수사 의뢰하거나 소속 부처에 문서로 내용을 알려 징계토록 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금융위는 유씨가 사표를 내자 금융위를 감독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비위가 있다는 이유로 물러난 공직자에게 알짜배기 자리를 주선한 것이다. 몇 달 뒤 유씨는 부산시 경제부시장까지 됐다. 단순히 민정수석실 차원이 아니라 이 정권의 권력자가 유씨 뒤를 봐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유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 파견됐고 대통령 일정을 담당하는 제1부속실에서도 근무했다고 한다. 이 정권 실세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감반이 유씨 휴대전화를 분석했더니 유씨가 현 정권 실세 정치인,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과 보안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금융위 인사 문제 등을 상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특감반원의 증언이다. '조국 사태'보다 더 크고 심각한 사안이다. 검찰이 끝까지 추적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총회 박상범 국장이 김성태 은급재단 이사 사임서 관련 김창수 전결 위조사문서 및 동행사로 수서경찰서에 고발당했다. 그런데 김창수와 박상범은 피고발인 조사도 안 받고 21일 중앙지검에 각하 의견 송치됐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박상범과 김창수는 그러면 그렇지 총회가 어떤 곳인데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사법제도가 그리 녹록치 않음을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유재수의 청와대 특별감찰반 감찰을 덮은 청와대 뒷배가 누구인지를 검찰이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듯 총회 박상범 국장과 총회 자체의 비리를 봐주는 총회 관내 수사경찰서의 뒷배를 누가 봐주는지를 사문서위조 사건 각하송치를 받은 중앙지검 검찰에서 수사하게 될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총회 비리 당사자와 수서경찰서 뒷배가 누구인지를 이번에는 반드시 밝혀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김창수와 박상범 사문서위조 사건 고발이 검찰로 넘어갔고 수서경찰서 부실 수사 의혹 수사관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당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흑막이다. 장막 안은 어둡다. 총회장 취임예배 순서자 사례 봉투를 직접 챙겨 들고 다니는 김종준의 임원회 내막도 침침하다. 그 색채는 그의 불통 독주로 짙어진다. 자신이 1년짜리가 아닌 만년 총회장이라며 떠들고 다니는 총회 국장 박상범과 언론과 법률 자문 측근 소재열은 치졸한 위선을 생산한다. 그의 거짓말은 조건반사적이다. 교활함은 악성 진화한다. 김종준은 미스터리다. 그는 왜 그런 박상범과 소재열에 집착할까. 김상윤의 명품가방 수수 전계헌이 어불성설 본받는다는 JP는 명언을 남겼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JP의 허업을 세상사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정치라는 게 매일매일은 역동적이고 뭔가 세상을 바꾸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결과적으로는 허망한 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따지면 인생사 허망하지 않은 일이 없지만 특히 정치가 더욱 그렇다는 말이다. 총회 비리를 덮으려는 김종준도 겉으로는 신앙의 회복을 외치면서도 속은 신앙을 버린 총회 정치의 허망함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이제는 제102회 총회 사문서위조 몸통 전계헌을 고스란히 이어 그 비리를 덮고 방조하는 제104회 총회 김종준은 그 책임으로 인한 불법의 처절한 대가를 혹독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제104회 총회장이랍시고 불법을 하지 않겠다며 총회 행사 관련 설교마다 신앙의 회복을 외치면서 정작 에서같은 목사인 자신이 뉘우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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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3
  • 김종준 혹은 소강석
    총회에선 법원에 명품 총회장 전계헌 허락을 얻어 위조 사문서를 낼 정도로 미친 법인국 붙박이 박상범 행정도 믿음이다. 믿음을 거스르는 불의를 방조하지 않았다면 총신 동문 그늘 아래서 김종준 당신과 오래 교류를 나누고 싶었다. 불의한 자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총신 동문이 아닌 소강석 당신과는 총회 날개 아래 평생 충심과 존경 어린 기사를 쓰고 싶었다.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르는 쪽을 보는 당신들의 먼 눈. 허나 믿음이란 에녹처럼 참이신 하나님과 함께 걷는것. 나는 나이든 귀. 당신들 거짓을 비호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총회에서 존경과 존중은 비루해진다. 총회라 소리 내어 부른 목사. 하나님의 거룩한 모임이라 믿음을 끌어와 젖은 소망 건져 올리고 심령이 젖었을 것이다. 주께서 빛나는 이마를 총회에 대시던 길자연 이전 시절은 참으로 높고 밝았을 것이다. 햇빛과 달빛이 엇갈리는 혀와 어금니에 아려오는 박상범의 검은 믿음. 김종준 혹은 소강석. 나는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문서위조의 전계헌과 김창수와 박상범의 총회의 믿음을 빠져나가고 있다. 음악전문 케이블 채널 엠넷(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프듀)’ 시리즈의 투표 순위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CJ ENM 고위 관계자 등 10여 명을 입건해 혐의를 확인 중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11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까지 CJ (고위)관계자, 기획사 관계자 등 10여명이 입건됐다"고 밝혔다. 입건자 명단에는 엠넷을 보유한 CJ ENM의 고위 관계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듀’ 순위 조작 논란은 지난 7월 ‘프듀X’ 마지막 생방송 경연에서 유력한 데뷔 후보로 점쳐지던 연습생들이 탈락하고 의외의 인물이 데뷔 조에 포함되면서 불거졌다. 엠넷 측은 7월 초 경찰에 정식 수사의뢰를 했다. 시청자들도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엠넷 소속 제작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그렇듯 납골당 소유권이전 소송 1심 2018년 11월 1일, 그리고 2심 2019년 8월 29일에 대비해 은급재단 김성태 이사 사임 건에 관해 법적 인사권자인 은급재단 이사장 김선규 총회장의 사전 허락이나 사후 보고 없이 2017년 9월 15일자 전결처리 위조 문서를 2018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김창수와 박상범도 고발당했다. 조만간 피고발인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혀야 할 거룩한 총회가 방송사 PD나 조국처럼 거짓을 뻔뻔하게 일삼아서야 되겠는가. 그 사실을 몇 차례 말해도 눈만 멀뚱거리는 김종준은 어느 교단 총회장이고 그런 비리를 조장한 전계헌을 위해 총회장 면전에서 설교하는 부총회장 소강석의 목회생태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을 따르는 신자인가 혹은 거짓의 아비 마귀를 본받는 자들인가. 납골당 소유권이전소송 1심 판결이 어이없게도 매수인 측 패소로 끝난 2018년 11월 1일. 그날 서울지방법원 복도에 다른 교단 출신 기자 유현우와 송상원 그리고 김종준과 소강석 이름으로 총회 석상에서 6천만 원 상당의 것을 총대들에게 나눠준 책의 저자 소재열이 있었다. 다른 교단 기자 둘은 하나님은 정의 편이라며 이죽거렸다. 무슨 연유인지 총회장과 부총회장의 상당한 후원 혜택을 누린 법학박사 소재열은 팔장을 낀 채 빙긋이 웃기만 했다. 내 법 상식이나 믿음의 수준에서는 총회 결의에 따른 매매라 기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소재열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성태 이사 사임 건 위조 전결 처리 문서 까닭이었다. 김종준과 소강석이 거금을 들여 총대들에게 나눠준 소재열의 법서의 법 상식과 법 지식은 위조사문서 동행사와 허위에 의한 사법의 공무방해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지를 조국이나 문재인처럼 무시하는 수준의 것이란 말인가. 조국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거짓투성이 가족 비리에 대해 ‘재판을 통해 책임이 가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교묘하고 교활하다. 프랑스의 비리 정치인이 법망을 빠져나갈 때 쓰는 말이 있다. ‘레스퐁사블, 메 농 꾸파블.’ 책임은 있다, 그러나 유죄는 아니다, 이런 뜻이다. 조국이 이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아내의 혐의에 대해 ‘책임이 가려진다’고 했다. 김종준이 박상범이 사문서위조를 했어도 1심과 2심에 이겼으니 괜찮다는 식이다. 기소와 재판은 책임을 묻는 절차가 아니라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가리고 유죄일 때 형량을 정해 감옥살이를 시키는 절차다. 더욱 하나님께서는 그 절차를 넘어서 신앙으로 거짓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 양심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다. 이제 그 납골당 소유권이전소송 재판의 패소 원인이 거룩한 총회 측의 사문서위조에 의한 것이었음이 그 과정과 제반 법 규정 문서나 회의록을 통해 드러나 사법 당국에 우선 김창수와 박상범이 고발을 당한 상태이다. 조만간 전계헌은 사문서위조 공모 내지 지시 혐의로 김종준은 사문서위조 방조 혐의로 고발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의 그런 믿음에 반하는 어두운 행위들이 기관지 기독신문이 아닌 사설 언론을 통해서도 총회와 세상에 길이 남아 전해진다는 사실을... 더하여 기회와 과정은 조국스럽고 결과는 문재인스럽다는 국민 목소리가 조국과 문재인에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가를 비리를 방조하고 후원하는 김종준 혹은 소강석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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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2
  • 문재인과 김종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資質)은 우선순위(priority)를 정확히 매기는 것이다.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도 문제점 중에서 무엇을 먼저 해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도 기준이 되는 것이 우선순위다. 엉뚱한 데 조직의 에너지를 탕진(蕩盡)하면 김정은이나 전계헌처럼 쇠퇴(衰退)와 쇠망(衰亡)의 길로 들어선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원균을 종종 흉(凶)하다고 했다. 납골당 관련 사문서위조 전결 혐의 김창수처럼 무능하고 무책임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을 닮기란 어렵고 흉한 자가 되기는 쉽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흉한 자가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우리 총회를 돌아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이 보일 것 같다. 현재 상황에서 납골당 관련 은급재단 사문서 위조 기안 혐의의 박상범은 조국처럼 무죄(無罪)다. 아직은 혐의자(嫌疑者)·용의자(容疑者)일 뿐이다. 헌법 27조의 "모든 형사 피고인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규정 덕분이다. 조국씨의 아내·아들·딸·어머니·동생·제수·5촌 조카·처남 및 그들의 범죄를 거든 사람들도 "무죄 추정 원칙"의 그늘 아래 있다.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중대 범죄 혹은 잡스러운 여러 범죄에 연루(連累)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은 국무위원 또는 정부 중요 직책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우리 총회 헌법이나 규칙처럼 없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유형은 세 가지다. '탁월한 지도자'는 나라가 자유롭게 번영할 뼈대를 멀리 보며 설계하고 치밀하게 시공(施工)한다. 법률도 제도도 세월이 흐르면 헐거워지고 현실과 맞지 않게 된다. 도로나 건물처럼 주기적 보수(補修) 공사가 필요하다. '보통 지도자'는 보수할 때를 놓치지 않고 나라가 굴러가게 한다. 그러나 '참 나쁜 지도자'는 자신의 역량(力量)과 국가가 놓인 환경을 오판(誤判)하고 나라의 골조(骨組)를 바꾸겠다고 덤비다 건물을 무너뜨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시도 때도 없이 모든 것을 뒤집어 아수라장을 만든다. 문재인은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를 두고 "국민의 뜻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못지않게 검찰 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엔 총회에 가서 "북한은 작년 9·19 군사 합의 이후 단 한 건의 위반이 없었다"고 했던 대통령이다. "우리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을 수시로 되풀이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의 굉음(轟音)도 세종로의 함성도 청년 실업자의 비명도 듣지 못하는 은급재단 사문서위조에 대한 김종준의 태도처럼 "선택적 난청(難聽)" 증상이다. 설득은 "귀[耳]로 시작해서 입[口]으로 마무리한다"는데 그래서야 설득의 첫걸음이라도 뗄 수 있겠는가. 조국의 위선(僞善)은 지난 두 달 양파처럼 벗겨졌다. 위선이란 영어 단어(hypocrisy)는 원래 '배우의 연기(演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위선은 탈을 쓰고 사는 것이다. 대통령은 그런 조국의 탈위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우산을 받쳐 주고 있다. '대통령 사람', '대통령 편' 말고 그 우산을 빌려 써본 사람이 있는가. 역대 우리 총회장들도 은급재단의 박상범에 대해 문재인처럼 굴었다. 그래서 은급재단 기금이 통합 측의 십분의 일이고 허구헌날 끝을 모르는 재판에 매달려 사는데도 자리 보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작금의 은급재단 사문서위조 건에 대해 그 위중성을 여러 번 설명하고 설득해도 김종준은 마이동풍이다. 그의 인식에 따르면 명예훼손 벌금 확정이 된 나는 죄인, 고소해 이긴 송상원은 의인이라는 식이다. 사설 언론 기자 사이에 범용되고 있는 ‘작전’이라는 관습에 대해 그는 작전의 '작' 자도 모르고 작전을 해본 적도 없다는 형사 법정 증언으로 그 실체를 증명하지 못한 나를 증거 중심의 재판에서 이겼다. 나는 송상원처럼 그와 관련해서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녹음이나 영수증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속도 없이 부총회장 선거 관련 기사에 대해 크로스뉴스의 송상원에게 "너 작전했지"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온갖 모욕을 해 어리숙한 내 화를 돋군 뒤 송상원은 첩보 작전하듯 비밀리 녹음한 녹취록까지 증거로 제출해 고소했다. 그 덕에 나는 훨씬 영리해졌고 벌금 100만 원에 대한 배상 노역으로 9박 10일 교도소에서 기도하는 체험을 하게 됐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항간에 김종준이 부총회장 선거 때 길자연에 버금가는 적지 않은 돈을 뿌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고 고무줄 총회선거법에 걸리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김영란 법’ 저촉으로 사법 당국에 기소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김종준은 자신이 흠없는 의인이라 불법을 않겠다며 임원회 때도 실행위원회 때도 전국 노회장 상비부장 회의 때도 공언하는가. 총회 정치꾼들 사이에 회자되는 '들키지 마라'는 열한 번째 계명에 안 걸린 총회장임을 버젓이 자랑하느라 '회복'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가. 미국 대통령 링컨의 말이다. "나는 공화국의 헌법을 생명처럼 수호하겠다고 선서했다. 그러나 나라가 무너진 다음 헌법을 수호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재인과 김종준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국가의 국민과 총회의 총대가 마음으로 새길 말이다. 무슨 말인가. 총회가 사문서위조의 불법으로 납골당 관련 소송에서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배신하고 헌법을 어기는 행위를 통해 총회가 망하는 사건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나 총회가 망하지 않으려면 국민과 총대가 진실해야 할 것이다. 조국 일가의 각종 문서 위조를 일삼은 거짓 행위를 두둔한 대통령 문재인이 어떤 형식으로든 책임을 져야하듯 전 총무 김창수외 박상범의 ‘김성태 사임서 전결 사문서위조’에 대한 방조와 두둔에 대해 회복의 총회장 김종준 역시 어떤 형식으로든 회복할 수 없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조국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는 대통령이 거짓의 아비 마귀에 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라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걸 보면서도 그토록 거짓말에 이골이 난 조국에 집착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았다. 조국처럼 문재인과 김종준이 유유상종 (類類相從)이라는 걸..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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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30
  • 납골당 총회 추파(秋波)
    해마다 바뀌는 일 년짜리 총회장 김종준 무능 비웃으며 자칭 만년 총회장 박상범 떠벌림 상관없이 거기 잔잔히 일어나는 개혁 물결 총회 추파(秋波) 총회 유리창 김선규 총회장 적폐 해소 납골당 대법원 판결 기다리며 참으로 오래 잃어버렸던 웃음 한 움큼 되찾고 싶은 가을날 여름내 거룩한 총회 물든 김종준 마음 창에도 초록은 조금 남아 있다. 꽃동산 양심나무 빈 둥지에 고이는 늦은 밤 회개 빛에도 초록은 조금 남아 있다. 소재열 입발림 마른 아부 꽃 아슬한 갈길 먼 104회 총회. 해남 해안 미역 냄새에도 초록은 조금 남아 속 끓이는 김종준 쪼들린 마음에도 초록은 조금 남아 불법을 맴돈다. 사설 언론 총회 회의실 금지 구역 우두커니 혼자 매여 있는 총회장 양심 없는 표정에도 초록은 조금 남아 있다. 주인 없는 대치동 총회나무 잎사귀 뒤에 숨은 자벌레 같은 박상범 등허리에도 초록은 조금 남아 총회의 초록 계절은 이제 다 지나갔다. 산골짜기의 가을 물은 풍성하고 맑다. 겨울을 대비하느라 산도 머금었던 물기를 뱉어내느라 그러하다. 해마다 바뀌는 일 년짜리 총회장 김종준의 무능을 비웃으며 자칭 만년 총회장이라는 박상범의 떠벌림과 상관없이 거기 잔잔히 일어나는 개혁 물결을 일러 총회 추파(秋波)라고 한다. 그런데 그 추파의 이편에 앉아 제101회 총회 유리창 김선규 총회장 적폐 해소 납골당 대법원 판결 기다리며 참으로 오래 잃어버렸던 웃음 한 움큼 되찾고 싶은 가을날이다.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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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3
  • 조국과 총회은급재단 수치
    옛날엔 여름이 이렇게 덥지 않았어. 가만히 있으면 시원했거든. 대신 겨울엔 추웠지. 그리고 총회 전 추석은 그리움과 사랑의 성묘가 있지. 어릴 적 할아버지 따라 할머니 산소에 간 강석. 할아버지의 푸념 소리를 듣지. 할아버지는 푸념으로 속울음을 풀어내지. 할머니에게 무엇을 잘 못 했길래. 무엇이 그리도 고마웠길래. 푸념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한다, 눈물을 대신한다, 산소 앞에 꼼짝 않고 앉아서 듣는 할아버지 푸념은 할머니에게 띄워 보내는 아린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산소를 둘러싸고 있다. 강석의 하모니카처럼. 제104회 총회를 앞두고 총대들도 추석맞이 성묘가 한창일 것이다. 산소를 찾아가 덥수룩이 자란 잔디와 풀을 베어 내리고 깊은 절을 올리리라. 생전에 조금이라도 더 잘해 드릴 걸…. 스미는 후회에 몸을 적실 게다. 이즈음의 성묘 모습은 바뀌고 있지만 조상에게 올리는 그리움이야 믿음의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6년 10월 31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동생 부부는 52억 원대의 밀린 공사비를 달라며 자신의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 웅동학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날 웅동학원이 이사들에게 조 후보자 동생을 법인 사무국장으로 뽑는 안건을 상정한 이사회 개최를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웅동학원은 이사회를 열어 이사장을 대신해 법원 및 부동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법인 사무국장에 조 후보자 동생을 앉혔다. 조 후보자 동생이 소송을 걸고 그 소송을 맡을 담당자로 조국 동생이 정해지면서 결국 웅동학원은 52억원이나 되는 소송에서 변론하지 않고 패소했다. 1일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이 경남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웅동학원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웅동학원은 조 후보자의 동생 부부가 웅동학원을 상대로 52억 원대 소송을 건 2006년 10월 31일 이사들에게 회의를 통보했다. 이후 11월 10일 오후 3시 열린 이사회에서 조 후보자 동생을 ‘이사장을 대신하여 법원 및 부동산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할’ 책임자로 뽑았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조 후보자의 부친 조모 이사장은 “두 번째 안건은 이사장을 대신하여 법원 및 부동산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할 신임 법인사무국장 선임 건을 상정하였습니다. 법인 사무국장에는 본인의 둘째 아들인 조0을 추천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기 아들이 웅동학원을 상대로 10일 전에 52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했다는 설명은 회의록에는 없었다. 이어 한 이사가 “법원 및 부동산 관련 업무는 이사장과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이사장님이 추천하였으니 별 무리가 없다고 본다”고 말하자 다른 이사들이 재청과 삼청을 하면서 조 후보자 동생이 법인 사무국장으로 선임된다. 결국 조 후보자 일가가 운영하는 웅동학원은 2007년 2월 조 후보자 동생 부부로부터 제기된 채권 청구 소송에서 한 번도 변론하지 않고 패소해 52억원을 조 후보자 동생 부부에게 줘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조 후보자 외삼촌인 박 모 전 행정실장이 정년 만기(2006년 12월 31일)가 되면서 신임 행정실장을 뽑는 안건도 상정됐다. 신임 행정실장 후보로는 조 후보자 동생의 처제인 조00씨를 추천했다. 당시 조 이사장은 “신임 행정실장으로 본인의 사돈관계인 조00씨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조00씨는 1970년생으로 경륜은 짧지만 성실한 자세로 이전 회사에서 10년간 재직했습니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다른 이사들이 찬성, 재청과 삼청이 이어지면서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행정실장은 재단의 돈을 관리하는 자리다. 조 후보자는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웅동학원 이사였다. 윤한홍 의원은 “조 후보자가 당시 웅동학원 이사였는데 과연 동생이 소송을 제기하고 그 소송의 웅동학원 측 담당자로 지정된 이런 일을 몰랐는지 의문이다”며 “사실상 이때부터 학교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조 후보자 온 가족이 동원된 것이 아닌지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 동생은 지난달 20일 입장문을 내고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드린다”며 “운영하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웅동학원에 대한 채권 모두를 저와 제 가족 등이 기술신용보증에 부담하고 있는 채무를 변제하는 데 내놓고 남는 채권도 모두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 관계자는 “조 후보자는 ‘동생이 받을 돈이 있어 재단에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안다는 정도만 알 뿐 그 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2017년 9월 8일 기독신문 사장 출마 등록을 위한 김성태 이사의 재단이사 사임 건을 도달주의 빌미로 은급재단 상임이사 김창수 총무가 법인국장 박상범이 기안해 올린 서류에 전결 처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7년 9월 18일 은급재단 이사회 회의 시 그 사임 전결처리 건에 대한 상임이사 김창수의 보고도 없었고 그 전, 그 후, 김선규 이사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그 회의 자리에는 기독신문 송상원 기자도 참석해 취재를 했다. 그렇다면 이제 2017년 9월 은급재단 이사회 회의록에 대한 확인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총회 은급재단 측의 계획적인 김성태 이사 사임 전결처리에 대한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와 상임이사 김창수와 국장 박상범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의 죄를 사법당국에 물어야 할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8월 29일 원고인 최춘경과 온세교회가 은급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벽제중앙추모공원의 ‘소유권이전등기’ 소송(2018나2064451)에서 김성태 이사 사임 민법 규정 도달주의에 의거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제100회 총회(총회장 박무용) 27억 매각 결의에 따라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총회은급재단 이사장으로서 2억 7천 계약금을 받고 매각 계약을 체결한 것이 정지가 됐다. 은급재단의 납골당 매각보고에 대해 매매의 핵심조건인 ‘51억 담보 설정’도 하지 않고 매각한 은급재단 이사회를 성토하며 ‘매각 불가’를 결의했다. 당시 2017년 9월 18일 은급재단 이사회에서도 제102회 총회 석상에서도 김성태 이사 사임 도달주의를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2019년 8월 29일 판결 이후 기독신문은 이런 말을 전하고 있다. 은급재단 사무국 관계자는 “너무 어려운 재판이었다. 이번 승소로 납골당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앞으로 이 소송 결과가 장부열람가처분을 비롯한 추가적인 법률조치를 진행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된 우리 총회에 총회 결의는 무엇이며 신앙 양심은 어디 필요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게다가 18년을 끌어온 납골당 문제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총회 직원 임해순을 통해 직영했을 때 적지 않은 문제와 손해와 부정도 겪었고 성결 교단 충성교회에 매각을 통해 잔금을 받지 못해 계약 해지도 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납골당 운영 동업자이고 우리 교단 목사와 권사가 관련된 납골당 측에 총회 결의와 은급재단 이사회 8차에 걸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누구 발상인지 김성태 이사 사임 도달주의 빌미로 계약 효력을 정지시키고 무슨 경사라도 났다고 난리다. 총회의 목사 일원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총회 유리창 김선규 총회장의 18년 적폐청산과 은급재단 이익을 위한 총회 결의에 따른 계약을 이겼다고 좋아하는 자들이 알아야 할 일이 있다. 혹여 그들이 소송 과정의 서류에 대한 불법한 일에 연루 의혹이 있다면 조국씨 관련자자들의 경우처럼 사문서위조와 업무방해에 대한 사법의 고발과 고소를 반드시 겪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과 세상 앞에서 거짓말의 씨와 열매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체험해야 할 것이다. 신앙인에게는 약속과 양심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인간 서로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인류문회사적인 태도이다. 싸움에서 우리가 이겼지만 쟤네도 우리 집단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가자고 누군가 말해온 덕분에 인류는 지구상의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꿔 말해 그런 배려와 협력의 마음이 없는 인간은 동물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일 터다. 17여 년 간선제에서 벗어나 갈피를 못 잡는 총회를 3S(Smile Speed Spirit) 슬로건을 통해 상식(common sense)의 궤도로 올려놓은 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는 제104회 총회준비위원회 설교에서 총회 변화의 핵심을 갈파했다. “제도와 사람 일부를 바꾼다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희생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더 활기찬 총회로 회복할 것입니다.” 2019-09-1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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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10
  • 조국과 윤익세 조사처리
    신학의 짐이 버거워 총신 뒷산에 올랐다. 신학을 멀리 하려고 풀밭에 누웠더니 허름한 총신이 내 눈에 밟혔다. 총신을 가까이 잡으려고 나무에 올랐더니 호롱불 밝히고 등록금이 버거운 총신이 저만치 물러난다. 이것이 신학이었다. 이제까지 신앙이 길을 이끌었다. 이 우울한 날들에 그래도 잠시 웃게 해주는 인터넷 유머는 '최순실 딸한테 승마 배울래, 조국 딸한테 수술 받을래'이다. 조국의 딸은 28년이라는 세월을 철저하고 용의주도한 아빠 덕에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시달리다가 의사가 될 문턱에서 이제 고졸(중졸) 학력으로 몰락할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의사 노릇을 안 하게 된 것이 그녀 자신과 그녀의 애꿎은 환자들을 위해서는 다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가짜 뉴스란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를 뜻한다. 윤익세를 지지하는 가짜 뉴스 전파자같은 자들처럼. 모두가 "집단적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사회는 한 명의 개인으로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체주의의 진정한 해악은 안보나 경제 실패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활기를 죽이는 행위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문재인의 조국 법무장관 지명을 계기로 "죽은 시민의 사회"가 소생하고 "죽은 개인의 사회"가 회생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청문회를 앞두고 "운동권 전체주의"가 마침내 투우사처럼 소 정수리에 칼을 꽂아야 하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윤익세 조사처리위원회 위원장 신규식 목사의 윤익세 고별 조사 같이. 본질은 조국 지명자 개인이 아니라 그가 상징해 왔던 좌파 기득권 세력의 총체적 민낯이다. 이번 일로 많은 국민은 여태까지의 막연한 "진보 콤플렉스"를 벗게 되었다. 양비론(兩非論)의 강박 혹은 중도론의 유혹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되었다. 조국 후보자의 정치적 죽음과 삶은 이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한국 정치사의 결정적 변곡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검찰이 8월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해 압수 수색을 한 곳은 20여 곳이다. 검찰 관계자는 "의혹을 받는 곳은 사실상 거의 다 포함됐다"고 했다. 법무장관 후보자 비리 의혹과 관련한 검찰 압수 수색에 대해 여권(與圈)에서 잇따라 비난 발언이 나오자, 검찰 내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 "자기들 수사하면 검찰 개혁 방해하는 것이냐"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번 검찰의 압수 수색이 조 후보자에게 오히려 시간을 벌어주거나, 보호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검찰 내부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검찰이 보여주기 식으로 100명씩 동원해서 압수 수색을 나갈 만큼 할일 없는 조직 같으냐"며 "20곳 넘게 압수 수색을 하려면 며칠 전부터 사전답사도 가고, 각 지방검찰청에 지원 요청도 해야 하고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양 철학에서 사람 팔자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선곤후태(先困後泰)와 선태후곤(先泰後困)이다. 인생 전반부에 곤란했던 팔자가 후반부에 좋아진다는 것이 선곤후태이다. 반대로 전반부에는 잘나가다가 후반부에 곤란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팔자가 선태후곤이다. 초년부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계속 잘나가는 사람은 없다. 계속 잘나가려면 8분 능선에서 멈추는 절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은 "선태후곤" 유형에 속하지 않나 싶다. 조국, 그는 그럼에도 "저의 가족이 고통스럽다 해도 제가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는 없다"란다. 처자 목을 베었다는 계백 장군도 아니고 어느 출사표가 이토록 비장할까. 그가 그동안 SNS와 기고문을 통해 쏟아낸 무수한 위선적 발언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인사들의 불운이나 몰락을 비웃는 잔혹한 말들은 그가 지극히 위험한 반사회적 인간임을 입증해준다. "법과 제도를 따라"서 국고를 축내고 서민을 울리는 자가 법무장관이 되면 나라가 무사할 수 있을까. 목사 안수증명 서류조차 적법하게 뗄 수 없는 자가 총회재판국장이 되어 불의한 의도에 따라 주님의 몸 된 여러 교회를 산산조각 내지를 않나, 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 직무정지 고소를 하지를 않나. 그런 자가 있는 곳이 온전할까. 조국이 자기의 국기 문란 행위를 국민 앞에서 뉘우치거나 윤익세가 교회와 총회를 어지럽힌 죄과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날이 있을까.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맥베스는 거대한 대양(大洋)도 자기 손에서 반역의 피를 씻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바다가 붉게 물들 것이라고 통탄했다. 위원장 신규식 박사의 건투를 빈다. 그 조사처리의 적법성 여부조차 제104회 총회 보고 현장에서 총대들 함성으로 결판날 것이다. 201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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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8
  • 총회장 이승희 정치적 결단의 때
    연암은 1780년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사절단의 일원으로 다녀와 쓴 견문록 ‘열하일기’에서 청(?)의 연호인 ‘건륭’을 사용했다. 명(明)은 망한 지 130여 년이 지났지만 조선에서는 건재했다. 조선은 명의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 ‘숭정’을 쓰면서 대의를 따른다는 문재인 행세를 했다. 시대착오적 허위의식이었다. 그는 북벌(北伐)의 대상인 청을 ‘되놈’이 아닌, 조선이 만성적 빈곤을 타개하기 위해 본받아야 할 나라로 평가했다. ‘열하일기’는 명분과 관념에 포획돼 살아 꿈틀거리는 천하의 현실을 외면한 조선의 각성을 촉구한 문명비평서였다. 하지만 그 책은 청나라 오랑캐 연호를 쓴 불온원고로 몰려 조선이 일본에 망한 뒤인 1911년에야 활자로 간행됐다.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현실에 직면한 우리는 먼저 상대의 실체와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일본은 미국이라는 거울에 비춰볼 때 확실하게 파악된다. 미국과 전쟁도 했지만 미국의 마음을 사는데 도가 통한 나라가 일본이다. 미국은 한·일 관계를 설계하고 좌지우지하는 나라다. 그래서 미국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국을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일본은 믿는다. 지금 아베의 일본과 트럼프의 미국은 문재인과 달리 속이 시커먼 트럼프와 천둥벌거숭이 김정은처럼 사실상 한통속이다. 한국이 아무리 읍소해도 미국은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보다 경제력과 정보력이 부족한 우리는 미국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우리와 달리 일본은 필요할 때마다 미국을 우군으로 만들었다. 1905년 을사늑약 직전의 장면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04년 미국화한 가네코 남작을 파견해 하버드 법대 동문인 루스벨트를 구워삶았다. 주미 일본대사는 루스벨트를 ‘일본 치어리더’라고 본국에 보고했다. 김상윤에 매달린 전계헌처럼 물정 어두운 고종은 미국에 매달렸다. 그러나 일본을 키워서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했다. 일본은 수년 전부터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메시지를 워싱턴을 향해 줄기차게 발신했다. 2차 대전 A급 전범용의자가 세운 사사카와 평화재단 미국지부가 움직였다. 책임자는 미국인이다. 오바마 행정부 국가정보국(DNI) 국장 출신인 데니스 블레어다. 일본이 미국을 다루는 방법은 한 세기 전보다 진화했다. 우리는 100년 전 3월 1일 독립선언서에서 일본을 배타적 감정으로 단죄하지 않았다. 동양평화와 세계평화 건설에 함께 나서자고 했다. 지금 일본은 다른 나라로부터 인정받는데 목말라 있다. 섬나라 ‘왜놈’이 아닌 같은 섬나라지만 영국처럼 2차 대전 이후 크게 성장한 문명국이자 경제 대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임기 말의 무지개 총회장이 신학도 정치도 비전도 미숙한 총장을 맞이한 혼돈의 총신과 이해관계로 얽힌 사고 노회들과 노회한 총대들의 협량(狹量)을 용서하고 변화와 개혁을 위한 신앙적인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화난다고 무시하면 지도자의 인정을 받는데 목말라 있는 라이벌들을 미래의 총회 정치 파트너로 대우해야 총회 난맥 현상이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103년 기다림 끝에 세움 받은 화려하고 다재다능한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의 총회 10년 대계를 위한 정치적 결단의 때라고 본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같은 우리 교단을 위해서 섭리하신... 201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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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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