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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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중공파 소강석과 문재인
    지난 6월 9일 한국의 전직 대통령 문재인이 “보수주의자들이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짱개주의’를 내세웠다”라고 주장하는 친 중공 성향의 책을 한 권 추천하면서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라는 말을 트윗에 날렸다. 우리가 전직 대통령 문재인의 그 발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짧은 글귀 속에 대한민국 친 중공 세력의 편견과 아집, 모순과 불합리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등은 서구만의 가치가 아니라 유엔 헌장에 명기된 인류의 보편가치이다. 세계 196개 유엔 회원국은 유엔 헌장에 따라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하물며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인 중화인민공화국임에랴! 중국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실태를 고발하는데 “제국주의적 내정간섭”이라는 중공의 반발은 궁색하기만 하다. 14억 중국 인민은 “보편가치”에서 벗어난 예외적 인류라는 말인가? 근대 서구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설파한 공자(孔子)의 휴머니즘에 따라도 중국공산당의 인권유린과 정치범죄는 용납될 수 없다. 문재인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 교단의 전직 총회장이고 한교총의 전직 대표회장이면서 한기총을 한교총에 흡수 통합해 잡수시려는 맨돈 소강석은 친 중공파로서는 문재인보다 한 수 위다. 성경의 다윗에 빗대 천안문 학살 총지휘자 등소평에 대한 칭송은 가히 주사파의 김일성급이다. 맨돈 내고 차지했을 소강석의 설교를 통한 등소평 예찬을 들어보자. 세기총(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은 6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제10차 정기총회 및 대표회장 이·취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신임 대표회장에 신화석 목사(안디옥성결교회 원로)가 취임했다. 성경 봉독 후 찬양이 있었다. 그리고 등소평 만한 소강석이 나타나 입을 열었다. "제 고향 선배 취임예배라고 해서. 아이쿠. (지방 원로 목사 위로회도 돈 내고 설교하려고 하는 등 바빠서) 금요일 오기가 힘든데 기쁜 마음으로 왔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파괴적 혁신"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agleby Christensen 수년간의 연구 끝에 출간한 '혁신기업의 딜레마'로 일약 미국 비즈니스 업계의 새로운 경영철학자로 떠올랐다. 21세기 초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로 불려온 '파괴적 혁신' 이론을 개발 한 미국의 학계 및 비즈니스 컨설턴트) 교수가 제일 먼저 추천하는 이론입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회사가 저렴한 가격이나 단순하고 파격적인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새로운 시장 경영 전략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클레이튼 교수에게 어느날 펜타곤에서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펜타곤에 말했습니다. 왜 나 불렀느냐. 나는 시장 경영을 얘기하는 사람이지 군사 전력가가 전혀 아니다. 그랬더니 평소 하던 얘기만 해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가보니 전부 삼성 사성 장군들만 모여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던 얘기를 그대로 했답니다. 강의 골자는 뭐냐. 조직이 거대할수록 오래된 기업일수록 '파괴적 혁신'을 단행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신생 기업이나 갓 출발한 회사들은 '파괴적 혁신'을 하기가 쉽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 '파괴적 혁신'을 한국 교회 연합기관에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세기총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왜 이러한 시기에 한국교회가 뭐라고 할까요, 쇠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를 허락하셨을까요. 세상을 향해서는 인간의 오만을 꺾기 위함일 것이고 우리에게는 영적인 파괴적 혁신을 하기 위함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 교회가 출애굽적 원형 교회로 사도행전 적 원시 교회로 다시 돌아가서 교회가 개혁되어 교회 부흥의 전성기로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책이 있는데 '등소평 문선'(82년부터 92년까지 전국의 각종 당 모임과 산업현장에서 행한 당의 연설과 담화문 119편을 모아 지난해 중국공산당 중앙문헌편집위원회가 엮은 것이다. 덩이 생각하는 대만.홍콩과의 통일안, 경제특구의 건설방안, 대내외적 개혁과 개방책, 예상되는 일련의 사회적 변화와 반동에 대한 대비책 등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그를 좋게 생각하든 않든 이 책은 등소펑의 "생각의 실체"를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입니다. 등소평의 개혁개방을 어디서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등소평은 확실한 것은 키가 5척 단신 저보다도 훨씬 작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에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택동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는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을 지지했습니다. 흑묘백묘론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이 한마디가 모택동의 마음을 거슬렸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박수를 쳤죠.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자본주의건 시장경제건 중국의 인민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죠. 모택동이 가만히 보니 저놈이 반기를 든다고 생각했죠. 나중에 중국 남청이라는 곳으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그 중국의 공산당 실세가 완전히 루저가 돼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큰아들 덩푸팡(1944년-)이 베이징대학교를 다니는데 얼마나 왕따를 당했는지 건물에서 뛰어내려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그리고 24시간 계속 감시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유물사관이나 모택동 어록 같은 책만 읽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는 척하는 거지 그의 마음속은 무엇을 구상하고 있느냐 하면 중국의 개혁개방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서적을 읽는 척했지만 그러나 그의 생각은 언제나 어떻게든 흑묘백묘론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오늘의 중국 개혁개방을 설계했던 작은 산책로가 있습니다. 그건 공산당 간부들이 허락해줬습니다. 그때 그 산책로를 걸으면서 머릿속에 있는 것까지 공산당이 어쩔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 하면 굶어 죽어가는 인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지 말하자면 시장경제에 골몰한 것이죠. 그러면서도 모택동에게 얼마나 감동적인 편지를 보내는지 모릅니다. 존경하는 모택동 주석님 저의 충성심은 절대 변함이 없으니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라는 똑같은 내용을 매일 보냅니다. 그런데 이게 모택동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수차례 자아비판을 하고 마오쩌둥에게 반성문을 보냈지만 이미 삐칠 대로 삐친 마오쩌둥은 그런 등소평의 말을 듣지 않았다. 1976년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하였으나 1978년 복권되었고 1982년까지 당 부주석·총참모장·부총리·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 등을 지냈다. 1978년부터는 중국 중앙인민협상회의 주석직을 겸하였으며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직은 1983년까지 유지하였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비서실이 방심한 사이에 편지가 딱 한 번 전달됩니다. 이것을 읽은 모택동이 감동을 받고 어느 누구도 이 편지를 없애는 자는 내가 당장 등소평보다 더 심한 숙청을 하겠다고 합니다. 모택동은 감동 받고 등소평을 북경으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공산당 간부들에게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아! 정말! 그 연설을 하면서 장내가 눈물바다가 됩니다. 공산당 실세가 숙청을 당해가지고 남청에 가서 고생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그를 존경하는 모택동 주석께서 끌어올려서 아주 인자한 은혜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감동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택동이 죽고 마침내 등소평이 중국의 실권자가 됩니다. 그가 소평소도(小平小道 등소평이 부총리에서 공장 노동자로 추락해 고난의 시절을 보낸 3년 4개월 매일 걸었던 공장 근처 2킬로미터 산책로)’에서 설계한 개혁개방을 이뤄서 오늘의 중국의 기초를 쌓게 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등소평은 살았을까요. 그것은 그가 자기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굶어 죽어가는 인민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랬다는 이 한마디 그리고 미국과 겨루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아! 정말 오늘 이 말씀을 본문과 연결을 지어보려고 합니다. 한 사람의 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그런 위대한 퍼스트 미션(first mission) 여러분 그 한 사람의 퍼스트 미션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얼마나 중국이 발전하게 됐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소평소도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제국의 황제가 되게 하기 위해서 다윗을 훈련 시키셨던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베들레헴의 목장입니다. 그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소평소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소평소도! 그 작은 목장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옮기신 하나님의 이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광대 소강석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속삭인다) 이것이 하나님의 '파괴적 혁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이 양을 친 베들레헴은 나중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곳을 등소평이 숙청 당해 지내던 곳의 산채로 소평소도에 빗대는 '파괴적 혁신'의 신성모독과 성경 비하를 맨돈 소강석이 범하고 있다. 그걸 무릅쓰고 목사라는 신분을 가진 소강석이 예찬하는 등소평은 어떤 자인가. 89년 천안문 대학살 이후 중국의 인민은 민주를 향한 “타는 목마름”을 억누를 수밖에 없을 뿐이다. 탱크와 장갑차로 중무장한 20만 병력을 투입해서 수도를 통째로 점령하는 광폭한 권력 앞에서 비무장의 시민들이 저항을 이어갈 수는 없는 까닭이다. 1970-80년대 한국과 대만 등의 권위주의 독재 하에선 민주화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지만, 북한이나 중국 같은 전체주의 체제 아래서는 민주화 운동의 불길조차 일어날 수가 없다. 특히 1989년 천안문 대학살은 민주의 싹을 자르고 불사르는 전체주의적 인권유린이었다. 중공중앙은 대체 왜 그토록 잔악무도한 대학살을 감행해야만 했는가. 1989년 “베이징의 봄”이 전 세계에 보도되고 있을 때, 중국공산당은 민주, 자유, 부패 척결을 외치며 평화롭게 시위하는 학생과 시민을 향해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20만 병력을 투입했다. 그 20만 병력은 국가의 수도를 에워싸고 들어와서 점점 포위망을 좁혀가다가 일격에 도심을 탈취하는 군사작전으로 시위 군중을 무력으로 학살하고 진압했다. 진정 중공중앙이 대학살을 감행할 때 시위를 해산하고 인민을 겁줘서 굴복시키려는 일차원적 의도밖에 없었을까? 그 목적이 다였다면 인명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시위대를 해산하는 전술이 없었을 리 없다. 비근한 예로 1976년 4월 천안문의 시위를 진압할 때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13년 전 이미 군 동원 없이 천안문 광장의 시위를 큰 무리 없이 진압했던 중공중앙이 1989년 6월에는 20만 병력을 동원하는 실로 대규모의 군사작전을 전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49년 1월 국공내전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의 군대가 베이징을 “해방”한 후, 그토록 대규모의 병력이 수도를 점령한 사례는 없었다. 소강석에게 고개 숙인 사진이 찍힌 문재인을 내려다보는 맨돈 소강석이 찬양하는 등소평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20만 병력의 출동을 명했는가. 베이징 주위 경기(京畿) 지역 방위 부대 외에도 랴오닝성의 선양(瀋陽), 상둥성의 지난(濟南), 심지어는 베이징에서 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난징(南京)에서도 차출된 대규모의 군부대가 20만 이상 동원되었다. “천안문 대학살”의 연구자 우런화(吳仁華, 1952- )는 천안문 대학살의 최종결정자인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소평과 중공중앙의 보수파에겐 두 가지의 더 큰 이유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등소평과 양상쿤(楊尙昆, 1907-1998)이 이처럼 방대한 병력을 동원해서 이처럼 주도면밀한 군사작전을 진행한 것은 분명 평화롭게 시위하는 학생들과 학생들을 성원하는 시민들을 진압하는 목적뿐 아니라 동시에 그들은 중공 당내에서 정변(政變)을 막고, 군대의 병변(兵變)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吳仁華, 六四事件中的戒嚴部隊, 27쪽) 등소평과 양상쿤의 입장에서 당내에서 “정변”을 획책할 수 있는 요주의(要注意)의 인물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 1919-2005)과 중공중앙 정치국 상위의 후치리(胡啓立, 1929- ), 중앙서기처 서기 루이싱원(芮杏文, 1927- ), 통전부(統戰部) 부장 옌밍푸(閻明複, 1931- ) 등이었다. “정변”이란 권력투쟁을 통해 정부의 권력이 교체되는 상황을 이른다. 만약 1989년 상황에서 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이 정권의 구심을 탈환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1979년부터 개혁개방 초기부터 등소평은 흡사 두 날개의 새처럼 좌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견지하는 “보수파”와 시장주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개혁파”를 끌어안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보수파에 기운 등소평은 이미 1987년 1월 15일 개혁파의 영수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을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파면했다. 후야오방에 이은 개혁파 영수 자오쯔양 역시 6.4 대학살 이후 가택 연금을 당해야만 했다. 등소평으로선 군대의 동원이야말로 일거에 개혁파를 제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등소평은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국무원 총리의 직책을 모두 밑 사람에 양보한 채로 오직 중앙군사위 주석의 직위만을 견지하고 있었다. 본래 어떤 국가든 군권을 장악하고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게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군대의 최상위 통수권자이지만 동시에 의회가 군사 명령계통을 결정하고 군사 조직을 창설하거나 개편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해서 군의 정치적 개입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근대 입헌주의의 군사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정부 내 권력분립을 이념적으로 부정하기에 270만 중국 인민해방군은 중국공산당에 귀속된다. 1989년 톈안먼 대학살은 최고 영도자가 정변의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20만 병력을 통원해 수도를 통째로 점령하는 대규모 무력 시위를 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민주적 절차의 국민 총선거가 아니라 내전을 통해 군사작전으로 건설된 나라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중국에서조차 군권의 장악은 절대로 쉬운 일일 수 없다. 당내 권력의 역학관계에 따라서 군대에 대한 당의 지배력 자체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등소평은 분명 마오쩌둥의 선례를 통해서 “정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사실을 증험했던 듯하다. 73세의 고령으로 전 중국으로 문혁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고 정적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던 마오쩌둥의 정치 권력도 실은 그의 군사 대권에서 나왔음을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등소평이 몰랐을 리 없다. 문화혁명 관련 야사(野史)에 따르면, 문혁의 공식적 개시를 3개월 앞둔 1966년 2월 모택동은 이미 대규모의 병력을 움직여서 베이징을 통째로 포위하는 친위(親衛)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른바 모택동의 “2월 병변(兵變)”이다. 1965년 11월 베이징을 떠나 남방에 머물던 모택동은 현실적으로 남방의 병력을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닫고 국방장관 린뱌오(林彪, 1907-1971)와의 긴밀한 조율 아래 랴오닝성 선양(瀋陽) 군구의 정예부대 제38군을 베이징으로 진격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선양 제38군은 본래 1950년 한국전쟁에 투입됐던 병력으로 전 중국 육군 유일의 기계화 부대였다. 모택동은 1644년 만주족이 진입했던 바로 그 산해관(山海關)으로 선양 제38군을 진입시켜서 베이징을 포위하는 작전을 짰다. 소련의 침략에 대비하라며 베이징의 수도방위부대를 산시(山西)와 네이멍구(內蒙古)의 중·소와 중·몽의 국경지대로 “천릿길 야영” 훈련을 보낸 후, 모택동이 베이징의 빈틈을 위협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는 이야기다. 이 가설의 진위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군에 대한 막강한 장악력이 없었다면 모택동은 결코 문혁을 일으키고 이끄는 정치 권력을 발휘할 수 없었음엔 틀림없다. 모택동의 권력 기반을 꿰뚫고 있었던 등소평은 1989년 상황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이야말로 군부의 병변(兵變), 곧 쿠데타를 막기 위한 최선의 묘수라 여겼을 수 있다. 등소평으로선 군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선 군사 훈련을 넘어 실제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1989년 5월 말부터 천안문 진압의 명령을 받은 군부 장성들이 중공중앙의 부당한 명령에 항거하는 조짐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민해방군 참모총장 뤄루이칭(羅瑞卿, 1906-1978) 문혁 당시 최초로 군부의 반혁명 수정주의자로 지목됐던 비운의 장성이었다. 홍위병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투신한 후 불구가 되었음에도 그는 들것에 실려 다니면서 계속 조리돌림을 당해야만 했다. 그의 딸 뤄뎬뎬(羅點點, 1951- , 본명 峪帄)은 1989년 당시 해군 병원 문진과의 주임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중공중앙이 군대를 투입해 시위 군중을 진압하려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뤄뎬톈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뤄뎬뎬은 아버지 뤄루이칭의 군맥(軍脈)을 총동원하여 군부의 중요한 인물들을 곧바로 접촉했다. 1989년 5월 22일 단 하루 만에 그는 1955년 장군 직위를 수여 받았던 해방군 상장(上將, 중장과 대장 사이 계급) 중에서 7명의 서명을 받아 냈고, 곧이어 계엄 지휘부에 천안문 광장에의 군대 투입을 반대하는 연명(聯名) 성명서를 작성해 올렸다. 물론 해방군 원로 상장 7인의 연명 성명서 관련 뉴스는 중국 관영 매체에선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다만 무력 진압을 주장해 온 등소평 등 중공중앙의 강경파는 군부의 반대 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뤄뎬뎬은 그 후 긴급 체포되어 1년 이상 수감 생활을 한 후에야 등소평 딸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지만 군 직은 박탈당했다.) 군부 원로의 반발에 부딪혀 무력 진압을 포기한다면 중공중앙의 군권 장악력은 급속히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등소평과 양상쿤은 더욱 강경한 무력 진압을 결정한다. 1983-1988년 등소평의 아래서 국가주석직을 맡았던 리셴녠(李先念, 1909-1992)의 조카딸 류야저우(劉亞洲, 1952- )는 공군(空軍)의 요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내부 보고서에서 당시 베이징 군구 병력은 지역 사정에 영통(靈通)한데다 학생들과 연계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톈안먼 무력 진압에 적합하지 않다며 다른 지역의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계엄군의 구성이 베이징 부대뿐만 아니라 선양, 지난, 난징의 부대까지 혼합된 다지역의 복합 부대로 구성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병사와 시민 사이의 유대를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실제로 1989년 5월 말 계엄군을 1차 투입했을 때, 학생과 시민들은 군사 차량을 몸으로 막으면서 굶주린 병사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절대로 시민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 설득했다. 이에 진입이 막혀버린 계엄군은 즉각 군부대를 철수해야 하는 긴급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1989년 6월 초 계엄군을 새로 정비한 후 중공중앙은 새로운 기동 전술을 펼쳐서 천안문 대학살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천안문 대학살을 감행함으로써 등소평은 당내의 반대 세력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군부의 저항 집단을 선제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등소평으로선 일거양득의 권력 게임이었지만, 중국의 민주화 운동은 비참하게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인권유린과 정치범죄에 대한 비판은 자유와 민주를 중시하는 세계시민의 당연한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짱개주의”를 내세운 게 아니라 낡고 부패한 좌파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시대착오적 “친중공 사대주의”를 내세웠다. 중국 현대사의 참상을 직시한다면 그 누구도 “높은 산봉우리의 나라”라 칭송하는 비례(非禮)의 우(愚)를 범할 순 없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공식 외교 석상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그 나라의 지식정보 체계가 마비되었음을 보여준다. 진정 전직 대통령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소강석이 천안문 학살자 등소평을 자신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조다윗이 아닌 성경의 다윗에 빗대는 참람함은 그 속내와 성향이 문재인과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는 문재인을 간첩이라고 몰아세웠는데 천안문 학살자 등소평을 성경의 다윗에 빗대 예찬한 맨돈 소강석은...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0 2022-06-21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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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1
  • 이승희 금품수수 7
    어려서부터 지바고는 숲속의 저녁놀을 좋아했다. 살아있는 영혼이 그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어 몸을 꿰뚫고 어깻죽지에서 나래를 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렇게 진한 흑갈색의 마치 녹아내리는 금덩이 같은 보리를 본 적이 없었다. 불길 없이 타고 있는 넓은 밭, 소리 없이 구원을 청하고 있는 드넓은 밭들이 차가운 적막에 잠겨 겨울빛이 감도는 하늘과 잇닿아 있었다. '닥터 지바고'의 저자 파스테르나크는 유명한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음악과 철학을 공부한 후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광주신학교를 나온 뒤 맨손 맨발 맨몸으로 맨돈을 이룬 뒤 시인이 된 소강석과 달랐다. 반혁명적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한 ‘닥터 지바고’가 노벨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자 그에게는 조국의 배신자란 낙인이 찍혔다. 투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정부의 위협에 굴복해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고 얼마 후 세상을 하직했다. 그가 모스크바 근교 작가 촌 페레델키노의 묘지에 묻힐 때 추모객들은 흐느끼며 그의 시 ‘햄릿’을 함께 낭송했다. “하지만 연극의 순서는 이미 정해진 것/종막은 피할 길 없다/나는 혼자다, 세상엔 바리새인들만 득실거리고.” 그날 천지에 라일락과 사과나무 꽃잎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던 날, 눈물 속에서 울려 퍼지던 ‘햄릿’은 서정시로 역사의 무게를 견뎌낸 한 위대한 시인에게 바쳐진 무형의 기념비였다. “제가 후보 부활 된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노회 총대님 및 주변 분들께도, 송병원 장로 배상” 2020년 9월 21 오후 2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제105회 총회가 개회하기 전 제104회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이승희, 심의분과위원장 진용훈)에 의해 8월 31일 제105회 총회 장로 부총회장 후보 탈락을 선고받은 송병원 명의의 괴이한 문자가 전국 총대들에게 괴이한 전화로 발송됐다. 어찌 된 일인가. 주님의 부활은 주님 자신이 죽으시기 전에 하나님이시기에 예언할 수 있으셨다. 그런데 송병원이 일개 장로로서 총회 선거법상 죽은 자인데 총회 선거법상 어떻게 부활할 수 있다고 예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총회 개회를 이삼일 앞두고 일개 장로가 주님처럼. 총회 기관지 주간 기독신문 8월 31일 자 기사는 다음과 같다. 제105회 총회 임원과 기관장 선거 후보들이 대부분 확정됐다.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이승희 목사·이하 선관위)는 8월 31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제13차 전체회의를 열고, 배광식 목사(대암교회·남울산노회)를 목사부총회장 후보로, 양성수 장로(신현교회·서울노회)를 장로부총회장 후보로 최종확정했다. 그런데 정말 죽은 자가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고 선거운동까지 한 그 괴이한 정체불명의 문자대로 송병원은 그 번들거리는 이마처럼 제105회 총회 개회 후 선거 당일 현장에서 부활했다. 반대로 제105회 장로부총회장 단독 후보로 확정됐던 양성수 장로는 총회 개회를 1시간여 앞두고 총회 선거법상 죽었다. 그가 무덤에 머물다가 총회 개회 후 선거관리위원도 아니고 재판국원도 아닌 맨돈 소강석의 법을 잠재우자는 말대로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양성수 장로는 오뚝이 윤익세가 반대하고 장봉생이 찬성한 경선으로 다시 죽었다. 그 배후 인물로 제104회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이승희, 심의분과장 진영훈, 영동중앙교회 이계도, 공익실천 미명 하에 피켓 시위로 잘 먹고 잘산다는 김화경 등이 출연진으로 줄줄이 엮여 있다는 의혹이 피해자 양성수 장로의 진술로 밝혀졌다. 몸이 안 좋았다는 이승희 외 선거관리위원 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총회 자문 변호사의 스피커폰을 통해 문제가 있다는 공개적인 지적과 한 위원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주 불법한 송병원 부활 흑막을 위한 불법 고발 서류에 대한 십자가를 공익 차원의 알릴 권리를 위해 심의분과장 진용훈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며 짊어졌다고 한다. 그 자세를 본받아 시간을 두고 총회 장로부총회장 불법 선거 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자. 성경은 말씀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2022-06-17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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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7
  • 소강석 주사파 의혹
    총신재단이사회가 오늘 6월 16일 저녁 7시에 열렸다. 송태근 목사가 기도하고 김기철 이사장이 말씀을 전한 뒤 서기 류명렬 목사가 출석을 점검하고 개회를 했는데 맨돈 소강석은 보이지를 않는다. 과도기 때 대통령을 한 이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10명인데 7명의 인생이 비참했다. 객지에서 죽거나 총에 맞거나 사형선고를 받는 등 청와대 집터가 좋지 않은 걸까. 그건 무속 관점이고 권력을 잘못 운용했기에 그렇게 된 탓일 것이다.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관여했음에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 세상은 진화해도 권력은 퇴행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총회 권력 진들도 세상 권력자들의 비참한 말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권력은 이승희나 소강석처럼 성직자인데도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고 중독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강석이 존경하고 전파하는 등소평의 경우를 보자. 중공 정부가 인민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은 쉽고도 간단하다. 중국 헌법 총강 제1조에는 “사회주의 제도를 파괴하는 조직이나 개인의 모든 활동은 금지된다”라고 적혀 있다. 바로 그 조항에 따라 헌법 35조에 보장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가두) 행진 및 시위” 등 공민의 자유를 제약하면 된다. 자유를 제약하는 방법도 지극히 단순하다. 중공 중앙이 과거사에 대한 유권해석을 제시한 후 정부의 공식 발표에 어긋나는 말이나 생각을 표현한 사람들을 샅샅이 찾아내서 가둬버리면 된다. 1989년 6월 3일 밤에서 6월 4일 새벽까지 중공중앙은 20만의 군 병력을 동원해서 베이징을 점령하고 평화적 시위를 이어가던 학생과 시민들을 학살했다. 그 직후 민주화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공 중앙은 본격적인 선전전에 돌입했다. 대학살 닷새 후 6월 9일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등소평은 계엄군의 공로를 치하하며 “인민해방군은 진정 당과 국가를 지키는 철의 장성”이라 치켜세웠다. 그의 딸 덩룽(鄧榕, 1950- )에 따르면 등소평은 죽을 때까지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유혈 진압 결정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그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했다. 등소평의 의도에 따라 중공중앙 선전부는 강력한 이념교육과 선전·선동을 이어갔다. 1989년 6월 30일 중공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베이징 시장 천시통(陳希同, 1930-2013)은 “동란 제지와 반혁명 폭란(暴亂)의 종식에 관한 정황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9년 6월 3일 오후 다섯 시 경, 불법조직 ‘베이징시 고교(대학교 이상) 학생 자치 연합회(고자련)’와 ‘베이징 공인(노동자) 자치 연합회(공자련)’의 우두머리들이 톈안먼 광장에서 과도, 비수, 쇠몽둥이, 철제 체인, 죽창 등을 나눠주며 군경을 모두 잡아서 죽여버리자고 외쳐댔다!” “권력과 인간의 투쟁은 망각과 기억의 투쟁이다.” 체코 출신 작가 쿤데라(Milan Kundera, 1929- )의 명언이다. 32년간 망명객으로 미국에 체류해온 역사·문헌학자 우런화(吳仁華, 1956- )는 쿤데라의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 1989년 당시 그는 중국 정법대학의 젊은 교수였던 우런화는 대학살 이후 중공 당국의 수배령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우런화는 거짓과 모략에 맞서 진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30년에 걸친 그의 기록 투쟁은 급기야 201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과 64대학살에 관한 3권 방대한 역사서로 정리되었다. 우런화가 그의 첫 책에서 1989년 6월 3일 저녁부터 6월 4일 아침까지의 짧은 시간에 거의 5백 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중공중앙의 교묘한 역사 왜곡과 조직적인 선전·선동을 진실의 힘으로 해체하기 위해서였다. 톈안먼 시위 진압을 위해 중공 당국은 해군을 제외한 전군의 각종 부대를 출동시켰다. 그중엔 장갑병, 탱크병, 육군, 공군, 포병부대도 속해 있었다. 1989년 6월 4일 새벽 6시경, 계엄부대 수만 명 병력이 톈안먼 광장을 전면 통제했다. 광장의 모든 진입로는 봉쇄되었다. 탱크와 장갑차가 도열하고 중무장한 계엄군이 광장을 점령했다. 계엄군은 단식투쟁을 이어가던 톈안먼의 시위대를 향해 최후통첩을 선포했다. 그들의 임무는 6월 4일 아침까지 시위대를 모두 내쫓고 광장을 완벽하게 비우는 것이었다.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즉시 광장에서 떠나지 않으면 즉각 무차별 발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시위대의 다수가 결사 항전을 외쳤으나 지난밤 11시 무렵부터 들려오는 총성은 갈수록 더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학생들은 해산을 결정했고 광장 한 모퉁이로 열을 맞춰 모두 빠져나갔다. 7주 동안 이어진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운동은 그렇게 군대의 총칼 앞에서 서글프게 막을 내렸다. 학생들과 함께 톈안먼 광장을 빠져나온 우런화는 북서쪽으로 10.5킬로 떨어진 중국 정법(政法)대학의 숙소로 향했다. 1989년 6월 4일 새벽 6시경 톈안먼 광장에서 서쪽으로 불과 1.5킬로 떨어진 류부커우(六部口)를 지날 때였다. 3대의 탱크가 황색 매연을 뿜는 독기탄(毒氣彈)을 쏘면서 달려와선 인도 위에서 줄 맞춰 걷고 있는 수천 명 학생의 대오를 들이받아 깔아뭉개고 갔다. 우런화는 수많은 학생 틈에서 그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는 눈물을 쏟으며 공포에 질린 학생들과 함께 정법대학의 캠퍼스로 돌아갔다. 그날 아침 10시경 톈안먼 광장에서 마지막까지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학생과 교수들이 중국정법대학의 캠퍼스에 도착했을 때 전날 밤 계속되는 날카로운 총성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수천 명의 정법대 교수와 학생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캠퍼스 동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런화는 캠퍼스 중앙 건물 앞 의자 위에 눕혀진 다섯 구의 시신을 보았다. 바로 그날 아침 탱크에 깔려서 급사한 다섯 명의 학생들이었다. 일순간 캠퍼스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우런화는 그 참혹한 현장에서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서 목 놓아 통곡했다. 그의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한 마디를 읊조렸다. “영불유망(永不遺忘, 영원히 잊지 않으리)!” 30년에 걸친 그의 기록 투쟁은 2019년 3부작의 방대한 역사서로 정리되었다. 톈안먼 대학살에 대해 아예 말도 꺼낼 수 없게 하는 중국공산당의 부당한 폭력 앞에서 집체적인 망각에 맞서는 한 지식인의 무서운 저항이 아닐 수 없다. 막강한 중국공산당의 권력 앞에서 미국에 체류하는 일개 망명가의 기록이 미약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역사는 동시대인의 생생한 기록이 모여서 흘러가는 도도한 강물과도 같다. 막강한 중국공산당이지만, 우런화의 진실한 기록을 이길 수는 없다. 중국공산당의 인권 유린과 정치범죄를 직시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런화의 기록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등소평을 칭송하고 주님의 사도에 빗대고 다니는 맨돈 소강석의 본심이 좌파를 넘어선 주사파인 것 같아 우려스럽다. 주사파란 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의 줄임말로 민족해방파(NL)에서 비롯된 운동권 계열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친북(親北) 성향을 특징으로 한다. 맨돈 소강석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배웠기에 목사임에도 등소평을 전파하고 맨손 맨발 맨몸으로 이룬 맨돈으로 교단 교계 정치계를 오염 타락시키는 저의는 무엇일까. 그런 저의가 없다면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가 맨돈 살포는 그만하고 하나님의 광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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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6
  • 이승희 금품수수 6
    총회가 밟아온 길과 걸어갈 길을 함께 봐야 총회가 걸을 역사적 전망(展望)이 열릴 것이다. 왜냐하면 총회 정치인 가운데 여러 사람이 지나간 일인데 이제 와서 들춰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가 하면 이 기사가 언제까지 이어지느냐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기대에 부응해 본 시리즈에서 익명 처리된 무명 부패 용사들의 실명도 밝혀져 이승희와 소강석 반열에 서게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김화경이나 고광석처럼 수치를 아는 신앙 양심이 안 보이는 걸로 미루어 에서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김명수가 대법원장이긴 하지만 사법의 심판도 받게 될 것이다. 2019년 9월 10일 퇴임 앞둔 102회 부총회장 부정선거 당선한 103회 총회장 이승희를 주필 김관선이 봉투를 뿌리게 해준 자신의 보스를 인터뷰했다. 김관선은 최근 2022년 맨돈 소강석 기독신문 광고주 덕에 유력자를 제치고 기독신문 주필 2년 연임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뻗대 나도 주필 자리 좋은 것이라며 설득에 나섰었는데. 그런 그가 내가 그도 연루된 이승희 선거부정 기사 건으로 맨돈 소강석에게서 은밀한 맨돈 봉투 수수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볼멘소리를 했던 어투와 상이하게 이승희에게 뇌까렸다. 103회기 기치는 변화와 희망이었습니다. 회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평가하신다면. =대부분 변화에만 방점을 두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변화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103회기 방점은 희망이었습니다. 희망을 위해 변화를 외쳤던 것입니다. 총회를 향해 실망하고 기대가 떨어진 것은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며, 희망을 주는 첫걸음은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신뢰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먼저 총회 임원들이 바른길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총회회관의 분위기에 신경을 썼습니다. 고성이나 다투는 모습도 사라졌고 특정인의 놀이터가 되는 것도 사라졌습니다. 계파와 계보에 의해 총회가 좌지우지되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103회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구성원들에 대한 감사와 향후 계획을 나누신다면. =먼저 교단 구성원들이 총회장 직무를 잘 감당하도록 협력하고 응원해 준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임원들에게는 한마음을 지켜 사명 감당한 점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동안 총회를 섬기느라 반야월교회 교인들과 살가운 소통이 부족했는데, 목회에 집중하며 교인들을 섬기겠습니다. 총회를 섬기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총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도록 기도하며 헌신하겠습니다. 이승희는 목회 집중과 교인 섬김보다 총회 신뢰회복과 총회를 섬기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총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도록 기도하며 헌신하겠다는 말을 실천하는데 힘을 기울였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제104회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금품수수 신뢰회복과 맨돈 소강석과 협력해 총회 부패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전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 활약상을 제105회 개최지 새에덴교회 무대에서 2022년 5월 22일 주일날 열린 미스 트롯 콘서트처럼 2020년 9월 21일 광대 소강석과 촉새 이승희의 투맨쇼로 열연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은 팬덤 정치와 반지성주의 진영 논리가 폭민정(mobocracy)으로 질주한 암흑의 시대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정치 권력과 한 몸이 된 지식인들이 궤변과 요설(妖說)로 팬덤 정치에 앞장서며 총회 석상에서의 소강석과 이승희처럼 사실과 진실을 파괴했다는 점이다. 그처럼 권력이 던져준 떡고물에 취한 어용 지식인들처럼 맨돈 소강석이 쥐여 준 봉투에 목사와 장로의 최후 보루(堡壘)인 신앙의 진실성과 공공성을 해체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신앙인의 존재 근거인 비판적 개혁주의를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총회의 숙제다. 그 숙제를 풀기 위해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가 주사파 문재인 비판으로 세 차례 투옥도 감내한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팬덤 정치와 반지성주의는 개혁주의 총회와 민주공화국의 적이기 때문이다. 지성의 원천인 사실과 합리성에 대한 존중 없이 개혁주의와 민주주의는 실현 불가능하다. 정치 팬덤의 황금 우상은 출애굽을 넘어선 어두운 시대의 급소다. 그 우상을 망치로 부수지는 못해도 손가락질이라도 하는 목사와 장로야말로 106년 전통의 개혁주의 보수 총회 총대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8-9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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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5
  • 소강석과 윤시내의 ‘열애’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에게 가족 교육을 잘 받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위권은 곧 국권 수호 문제”라며 “우리의 국권을 수호하는 데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우리 당의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월 11일 전했다. 누가 감히 그리고 무슨 이익이 된다고 북한을 건드릴 것이라고 그런 말을 무력 없는 평화나 북한과의 종전선언에 목맨 문재인처럼 하는지. 또는 목회생태계 보전과 개선을 위해 교계 연합을 외치며 온갖 설교 자리를 돈 들고 차지해 등소평이니 뭐니 주절거리는 애먼 맨돈 소강석이 하는 것처럼 그러지는 않고. 윤시내는 1980년대 이후 ‘DJ에게’ ‘공부합시다’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연말 가수상을 휩쓸었다.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라고 외치는 노래엔 일상에 지친 주부들이 열광했고 “안돼 안돼, 내일모레면 시험 기간이야, 열심히 공부하세”라는 가사엔 당시 학부모들과 교사, 독서실 원장들이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장르도, 팬층도 다양했지만 가수 윤시내를 만든 단 하나의 인생 곡은 ‘열애’였다. 시한부 삶의 절망 앞에서 쓴 한 남자의 유서가 윤시내의 대체 불가능한 가창과 만나 가요의 고전이 된 노래다. 부산 MBC 인기 DJ였던 배경모 선생이 암에 걸려 죽음을 대면하고 아내를 향해 써 내려간 연서다. 윤시내는 말한다.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같은 뜨거운 글에 최종혁이 멜로디를 입히고 내게 곡을 주셨다. 그때는 녹음 시설이 지금 같지 않아서 한번 틀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불러야 했다. 수십 번 다시 부른 끝에 완성됐는데 최 선생님이 들으면서 ‘됐다!’ 하시는 거다. 그땐 뭐가 됐다는 건지 의미를 몰랐다. 나중에 회사에서 테이프가 트럭으로 실려 나가는 걸 봤다. 그다음부터 최절정기가 시작된 것 같다.”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같은 맨돈을 열애하는 소강석에게 평생 노래만 부르고 산 윤시내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수줍음을 잘 타는 소강석보다 나이가 10여 년 많은 윤시내가 이거 하나는 꼭 말하고 싶다며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왜 자주 방송에 안 나오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써 달라. 사람들이 왜 벚꽃에 열광하는 줄 아시냐. 그저 꽃이 예뻐서, 분홍색이어서가 아니다.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만큼 귀하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거라고.”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9-21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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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1
  • 소강석의 아포리즘
    공간은 사고(思考)를 규정한다. 낡은 공간에 있으면 생각마저 낡아진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를 벗어나 영 부인실을 없앤 윤석열 정부의 결정은 ‘신선’하게 보인다. 그런데 생명 나무는 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없는 것 같은 새에덴교회에는 소강석 장모 정 권사의 비서가 있는 모양이다. 그의 교회 주보 1면에 실린 그의 '영혼 아포리즘'에서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장모 정 권사의 사무실도 있을 텐데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효도의 표상이고 그가 추구하는 목회생태계 개선의 '신선'한 모범이 될 것이다. 아포리즘이란 명언(名言)이나 격언(格言), 잠언(箴言)은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는 말 또는 학문 등의 핵심을 간략하게 외우고 말하기 쉽게 그 내용을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 것을 가리킨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명한 아포리즘은 히포크라테스의 '아포리즘' 첫머리에 나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다. 맨돈 소강석에 어울리는 아포리즘이 있다면 이런 것일 것이다. 돈이란 힘이고 자유이며 모든 악의 근원이기도 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최대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 -칼 샌드버그 돈은 바닥이 없는 바다와도 같은 것이다. 양심도 명예도 거기에 빠져서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벤자민 프랭클린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김남국-이탄희-황운하 의원 등이 "검찰 개혁"을 위한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처럼회’로 생소하다. 한자어나 무슨 약어를 따서 만든 게 아니라, 그냥 ‘모양이 서로 비슷하거나 같음을 나타내는 뜻"의 ‘처럼’이라는 조사를 끌어다 썼다. 이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윤석열 검찰’을 반면교사로 삼아 적어도 그들처럼 돼서는 안되겠다는 의지를 바탕에 깔아 이름을 "처럼회"로 지었다. 최강욱 의원은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로 일하던 2017년 10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청맥에서 인턴 활동을 했다는 허위 확인서를 발급해 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 이어 2022년 5월 20일 2심에서도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최 의원은 2018년 9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그런 그가 페이스북에서 “저희가 모임을 만들어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기로 했다”라며 “본받을 분들에겐 배우고 ‘누구’처럼 못된 짓은 하지 말자는 다짐도 있고 늘 근본을 생각하자는 뜻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소강석이 매주 새에덴교회 주보 1면에 게재하는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을 "맨돈 소강석의 처럼회 아포리즘"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최강욱 의원의 “본받을 분들에겐 배우고 ‘누구’처럼 못된 짓은 하지 말자는 다짐도 있고 늘 근본을 생각하자는 뜻도 있다”라는 말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금권 선거 달인 길자연 같은 본받을 분들에겐 배우고 김영우처럼 못된 짓은 하지 말자는 다짐도 하게 되고 광주신학교를 나와 맨발 맨손 맨몸으로 맨돈을 이룬 근본을 늘 생각하는 뜻을 새기지 않겠는가. 교회 강단에서 미스트롯을 주최하는 영광스러운 광대답게... 그래야 희극 인장을 눈물 속에 치른 위대한 송해 선생처럼 훗날 광대 인장을 웃음 속에 치르지 않겠는가... 이제 교단과 교계를 부패시키는 맨돈 살포는 그만하고 촉새 이승희처럼 부끄러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도 때려치우고 베드로처럼 돌이켜 조용기 목사도 웃고 경청하게 만든 교인들도 울고 웃는 하나님의 위대한 광대 소강석 목사로 돌아가 진실 된 영혼의 아포리즘을 쓰기를 빌고 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202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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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0

실시간 G.OPINION 기사

  • 시진핑과 이만희의 악마
    위기에 몰려 악마 불러낸 시진핑 이만희적그리스도이고 반 기독교 세력의 머리들책임 회피한 악마는 거짓말쟁이 그들 아비 독일 철학자 칸트가 말했다. “시는 천재만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예술 장르다.” 다행히 우리는 출근길 거리에서도 시 글줄을 접할 수 있을 만큼 시가 대우받는, 어쩌면 흔한 나라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외벽에 큼지막하게 걸린 광화문 글판 말이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에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지금 걸린 문안은 윤동주의 동시다. 슬그머니 번지는 미소는 희망을 부른다. 그러고 보니 광화문 글판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척박한 땅을 적셔온 시원한 찬물 한 그릇이다. 기적 같은 그 한 사발 받아들고, 힘내자, 총회.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윤동주를 사랑하는 시인 소강석 부총회장도 있지 않은가. 기술의 발달은 눈부시다. 하지만 철학까지 담보하진 않는다. 마이클 센델이 예로 들었던 것처럼 다수의 성인을 구하는 게 정의인지, 한 명의 어린이를 구하는 게 정의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결국 인간의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신도들 중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2020년 2월 21일 신도들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특별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방송(CBS) 등에 따르면 그는 편지에서 "금번 병마(病魔)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짓"이라며 "이 모든 시험에서, 미혹에서 이깁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라며 "전도와 교육은 통신으로 합시다"라고 말했다. 개신교계에서는 신도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쓴 내부 단속용 편지가 유출된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신천지 이만희처럼 아니면 이만희가 시진핑처럼 둘러댔든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생물로 밝혀지고 이름도 가진 “바이러스는 악마”라며 “반드시 악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재앙에 대처하는 전근대적 상황 인식이 명징하게 드러났다. ‘악마’는 근대의 아침이 밝아오기 전 힘없는 백성을 공포에 떨게 한 광신(狂信)의 상징이다. 15세기 말 교황 이노켄티오 8세가 인증한 마녀사냥 지침서는 “악마와 계약을 맺은 사람”을 마녀로 규정했다. 재앙이 발생하면 운수 사나운 사람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시진핑은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반(半)생명체인 바이러스를 ‘악마’라고 명명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인민과 유리된 중세의 권좌로 숨어버렸다.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한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아 민심과 멀어진 황제임을 실증했다. 2003년 사스 사태 때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서 지휘하던 후진타오와 대비된다. 세계 여론은 “시진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유언비어는 바이러스보다 나쁘다”라며 쉬쉬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 가장 큰 책임은 완벽한 1인 권력체제를 거머쥔 시진핑에게 있다. 그런데도 ‘악마’를 소환해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 소재를 실종시키고 무오류의 존재로 남으려 한다. 대안의 집권세력이 없는 일당제는 이렇게 위험하다. 우환의 재앙을 감지하고 최초로 문제제기를 한 젊은 의사는 경찰에 체포돼 반성문을 썼고, 진료 중 감염돼 사망했다. 억압적 체제가 초래한 비극이다. 감염자가 발생한 지 50일이 넘어서야 시진핑은 처음으로 총력대응을 촉구하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우한에선 4만 가구가 함께 식사하는 만인연(萬家宴)이 열리고, 봉쇄 전에 500만 명이 연휴를 맞아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 이후였다. 우한 역병은 초기 대응이 잘못돼 지구적 재앙이 됐다. 2002년 사스 사태 때도 중국은 5개월이 지나서야 발생 사실을 인정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우리를 죽이는 건 박쥐가 아니라 정부가 강요한 침묵”이라며 분노한다. 독재국가 중국의 심리와 행동은 미숙하고 그 비용을 전 세계가 치르고 있다.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까지도 자국 대변인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는데 사무총장은 “중국 정부의 대처로 신종 코로나가 해외로 확산하는 것을 막았다”라고 우긴다. 미국이 예산지원을 줄인 틈을 파고들어 돈의 힘으로 WHO를 장악해서 벌어진 소극(笑劇)이다. 국제기구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흔든 중국의 탐욕은 전 인류에게 독이 될 것이다. 중국은 자국 내 70개가 넘는 도시를 봉쇄하거나 주민의 이동을 제한했다. 이런데도 한국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우습게 알면서 “한국은 운명공동체”라고 한다. 대사의 오만방자한 언행은 19세기 조선을 속국으로 취급하던 위안스카이와 닮았다. 문 정권은 총선 전에 시진핑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저자세를 취했다. “운명공동체” 발언도 문 대통령이 먼저 꺼냈다. 미국은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중국의 맹방인 북한과 러시아도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했다. 한국은 관광 목적의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마저도 발표 2시간 만에 번복했다. 중국이 그렇게 무서운가. 나를 무시하는 상대와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은 노예가 되는 길이다. 중국은 힘이 커지면 은혜를 잊어버린다. 한국은 중국이 인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천안문 사태로 고립됐을 때 손길을 내밀어 국교를 맺은 나라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자 4년 만에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했다. 미국·일본·EU는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핵 위협에 맞서 사드를 들여왔다고 경제보복을 했다. 그런 나라와 운명을 함께할 수는 없다. 악마를 소환해도 역병은 소멸되지 않는다. 중국은 전근대적 주술이 아닌 민주주의와 과학으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감염증 정보는 즉시 투명하게 공개해 전 세계가 대처하게 해야 한다. 성경과 그것에 근거한 총회 헌법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악마 소행 운운한 이만희와 시진핑이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르는 자들임을 그들의 거짓말과 위선을 통해 그들이 적그리스도이고 반 기독교 세력의 머리들임을 확실히 깨우쳐야 한다.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뽑아 세운 문재인이 거짓을 일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만희나 시진핑이나 김정은 등과 같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문재인은 시진핑과 김정은을 한국에 불러들이지 못해 애걸복걸 안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 2020-02-23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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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4
  • 개혁과 통일
    2016년 11월 8일 미국 대선에 나온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장로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감리교 신자였다. 신앙도 없고 정신도 없는 문재인도 대권을 쥘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아직 대놓고 무신론을 표방하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1546년 2월 18일)가 종교개혁을 촉발하지 않았다면 장로교도 감리교도 없었을 것이다. 2020년은 종교개혁 503주년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오후 2시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의 대문에 면죄부(indulgence)의 문제점을 지적한 ‘95개 논제’를 붙였다. 하나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 면죄부를 ‘망치로 붙였다’느니 ‘접착제로 붙였다’느니 하는 설과 함께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루터에게 불굴의 용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루터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라고 논제(제1조)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복음의 재발견을 면죄부 문제에 적용하여 “교회의 참 보고(寶庫)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제62조)이라고 역설하면서 면죄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자비에 비할 바가 아님을 천명하였다(제68조). 1518년 4월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루터는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십자가 신학’을 발표하여, 스콜라주의 영광의 신학 즉 힘과 정복을 추종하던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학을 비판하였다. 그의 십자가 신학은 인간은 구원을 받을만한 도덕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던 영광의 신학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을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강조한 은혜의 신학이기도 하였다. ‘십자가의 신학’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진노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하나님의 선물과 복은 십자가 아래, 말하자면 ‘불행과 재난’ 아래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의 눈에는 거짓(Luge)으로 보이고 세상의 거짓은 진리로서 드러난다. 십자가 신학의 사고에 의하면 하나님은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여서 열광하고 설교자가 스타처럼 청중의 환호성을 자아내게 하는 설교단에 계시기보다는 인간적으로는 너무나도 초라한 소수의 무리들이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말씀을 듣는 세상적으로는 너무나도 초라한 설교단에 임재해 계신다. 설교자가 마치 황제처럼 청중들을 종교적 열광으로 몰아가고 번영과 성공을 나누어주는 설교단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을 지닌 소수의 청중에게 재난과 어려움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진실한 설교단에 하나님은 임재해 계신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십자가의 낮아지심과 수치 속에서 인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그의 영광과 존엄성 속에서 인식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충분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길이다. 영광의 신학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요 14:8) 라고 간청하는 빌립의 요구에 상응하는 신학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말씀하신다.” 용기는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제국과 교회를 상대로 싸운 루터는 어떻게 그의 선배들과 달리 화형당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그리스도교인은 하나님 섭리(攝理)의 원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속인들의 눈은 다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종교의 생존과 부흥을 결정하는 것은 국내·국제 차원의 정치 상황이다. 루터교는 유럽 종교전쟁(1524~1648)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의 이면에는 종교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로 무장하기 시작한 국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럽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년)와 베스트팔렌조약(1648년)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스도교는 종교의 자유라는 원칙과 가치의 보호 속에 유럽의 팽창과 함께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도달했다. 2016년 말 발표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는 종교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신자 수에서 개신교(967만6000명, 19.7%)가 불교(761만9000명, 15.5%)를 앞서 1위로 발표됐다. 종교가 없는 국민(56.1%)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는 종교 인구가 차츰 줄고 있는 유럽형 종교 지형을 닮아가고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유럽에서처럼 젊은이들이 종교에 관심이 없다. 무신론이 유입돼 종교 지형에서 한자리를 확보했다. 역사를 따져보면 다른 측면이 떠오른다. 1945년 광복 당시 2,500만 인구 중 종교가 있는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조선왕조와 함께 붕괴한 유교가 남긴 종교 공백을 일제강점기부터 개신교·불교·가톨릭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종교의 자유가 중시되는 미국의 영향권에 우리나라가 포함된 덕분에 모든 종교는 친종교 환경을 누렸다. 보수정권이 진행한 산업화 또한 종교의 급성장에 유리했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 발표 이후에 1위 자리를 내준 불교와 자체 집계(565만 명)와 비교했을 때 통계청 수치(389만 명)가 너무 낮은 가톨릭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여진이 좀 있다. 하지만 종교는 부침을 거듭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한때 융성하다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게 종교이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15일 총선을 앞둔 종교개혁 503주년은 개신교에 새로운 개혁을 요구한다. 종교개혁 505주년과 한국 개신교 선교 135주년을 맞아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도 개혁이다. 물론 선교·전도를 열심히 하고 바르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신앙인들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개혁은 정치 상황과도 맞아야 한다. 개혁은 통일 친화적이어야 한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정치 흐름을 타면 흥하고 못 타면 쇠퇴할 것이다. 언젠가는 북한이라는 ‘거대 종교 권역’이 열린다. 통일 전후로 종교 순위는 바뀔 가능성이 크다. 각 개신교단이 할 일이 많다. 뭔가 역할을 찾아내면 살고, 못하면 밀릴 것이다. 국가와 정부만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종교계 1위 개신교단이 일정 부분이라도 김일성 일가 독재 폭정에 시달린 옛 북한 주민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통일준비위원회’(위원장 김재호 목사)는 항상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루터교를 믿는 미국 병사들이 많이 참전했다.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를 이겨낼 수 있는 병력 자원을 5대호 지역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마침 그 지역은 루터교 신자들이 밀집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종교계에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좌파 정권의 무리한 우파 적폐 청산과 무모한 장기 집권 꼼수 밀어붙이기가 야기한 ‘분노의 정치’에 기독교가 해답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루터는 ‘분노의 사도’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나는 분노했을 때 기도도 더 잘하고 설교도 더 잘한다.” 이 말은 2020년 한국에도 묘한 울림이 있다. 어느 쪽 입장에 속하건 촛불 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감정을 대표하는 것은 분노다. 통일 이후에도 남한 출신이건 북한 출신이건 극심한 분노를 느끼게 될 정국이 들이닥칠 수 있다. 하루빨리 분노를 넘어 한국을 개혁하는 프로세스가 시작돼야 한다. 우리 개혁주의 교단의 활약이 필요한 시대다. 지도자에겐 책임감 못지않게 반응성도 중요하다. 최근 유행하는 농담이란다. 청와대 뒷산이 ‘적폐청산’, 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조로남불’이라고 한다. 권력은 애정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언정 경멸당하거나 미움받는 일을 경계해야 하고 때론 과감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제104회 총회엔 그리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2020-02-03
    • G.OPINION
    • G.OPINION
    2020-02-03
  • 국가 난국을 위한 보수 교단의 사명
    문재인은 고슴도치 쪽일까 아니면 여우에 가까울까. 조금 실례되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인간 유형론(類型論)을 학문 세계에 처음 도입한 인물은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1909~1997)이다. 고슴도치는 한 가지 이론으로 복잡한 세상만사를 설명한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 효과와 역(逆)효과라는 양면성(兩面性)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책과 예측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면 부인한다. 예측이 빗나가면 타이밍이 이상하게 꼬였다거나 예상 밖 요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라며 틀린 생각을 고집한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취업률이 떨어진 이유를 장마 탓으로 돌리는 식(式)이다. 의견이 다른 두 마리 고슴도치가 부딪치는 TV 시사토크쇼는 재밌고 시청률도 높다. 여우는 다르다. 눈앞에 보이는 사태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원인을 탐구한다. 최저임금만 인상하면 가계소득이 절로 높아진다는 단순 이론을 거부한다. 무한히 긴 지렛대와 그만한 받침점만 가져오면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간(肝) 큰 고슴도치와 붙으면 백전백패(百戰百敗)다. 문재인은 프랑스 방문에서 "프랑스혁명과 광화문 촛불이 시공간(時空間)을 뛰어넘어 깊이 연결돼 있음을 느꼈다"면서 "프랑스혁명 정신은 한국 국민이 들었던 촛불 하나하나에서 혁명의 빛으로 되살아났다"고 했다. 외교적 수사법(修辭法)이라 해도 프랑스혁명은 이렇게 단순한 미화(美化)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역사다. 미국역사학회(AHA) 회장의 2003년 취임 연설을 들어보자.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의미는 인정받고 있지만 평판(評判)은 추락했다. 이제 프랑스혁명은 폭력·공포 정치·전제주의 그리고 집단 학살의 전조(前兆)로 다가선다." 왕과 백성에서 혁명 주동자까지 1만 명 이상의 목이 단두대에서 잘려나갔으니 평가가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1957년 6월 마오쩌둥(毛澤東)은 고위 당직자 회의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중국이 지향하는 정치체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중앙집권적이면서도 민주적이고, 기율(紀律)이 엄격하면서도 자유스럽고, 뜻을 하나로 모으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분방(奔放)하게 발휘될 수 있는 정치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발언을 계기로 봄이 찾아왔다. 반동(反動)이란 딱지가 붙어 무수한 사람이 희생된 엄동설한(嚴冬雪寒) 뒤의 봄이라서 지식인들은 특히 환호했다. 주석(主席)의 뜻이 '민주적' '자유스러운' '개성이 분방하게 발휘되는'이란 단어에 있다고 믿은 일부는 공산당의 비(非)민주성을 개혁하라는 데까지 나갔다. 봄은 갑자기 끝났다. 수천 명이 처형되고 수만 명이 감옥에 갇혔다. 이것이 '뭇꽃이 핀다'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결말이다. 이런 결말이 마오(毛)가 의도적으로 덫을 놓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공산당 독재에 대한 불만이 그렇게 큰지 몰랐다가 비판의 홍수에 당황했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다. 노 대통령은 2003년 중국 칭화대(淸華大) 방문 때 "가장 존경하는 중국 정치인으로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을 꼽고 "두 분이 시대를 나눠 중국 역사를 새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천윈(陳雲)은 혁명 원로로서 마오쩌둥 사후(死後) 덩샤오핑과 함께 권력의 양축(兩軸)을 이뤘다. 천윈의 마오쩌둥 평가는 이렇다. "마오 주석이 1956년에 죽었더라면 업적은 불멸(不滅)로 남았을 것이다. 1966년에만 죽었어도 과오도 많지만 공(功)이 더 크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1976년까지 살아있었으니…." 대약진운동·인민공사·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최소 4,500만 명이 굶어 죽고, 맞아 죽은 마오의 시대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고슴도치의 과욕(過欲)이다. 고슴도치 시대에 여우들 목소리는 여론 대접도 받지 못한다. 그 결과 앞뒤가 어긋나는 말과 행동이 탱크처럼 굴러간다. 현 정권은 역사 교과서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표현을 삭제키로 했다. 북한을 합법 정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래놓고 대통령 대변인은 "북한은 우리 법률 체계에선 국가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북한과 합의는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고 한다. 북한을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非核化)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한국은 '동맹 관계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줘도 된다' 식의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재판의 독립'과 '법관 인사의 독립'이 사법부 독립의 기둥이다. 정권은 이 두 기둥을 뽑으면서 사법부를 개혁한다고 한다. 현 정권을 비판·공격·조롱하면서 국고 지원을 받는 예술가는 없다. 예술계의 굵직굵직한 의자에는 한자리 예외 없이 자기편을 앉혔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리스트'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리스트를 인쇄했던 미련한 전(前) 정권 인사들은 엄중 처벌을 받았다. '인쇄된 리스트' 와 '인쇄되지 않은 리스트'의 차이가 무엇인가. 우익 독재와 좌익 독재는 힘의 방향이 다를 뿐 작동(作動) 원리는 같다. 나치 독재 시대를 몸으로 뚫고 나온 독일 어느 법학자는 그 시대를 이렇게 요약했다. '"명령은 명령이다" "법률은 법률이다"라는 구호로 군(軍)과 사법부를 무력화(無力化)시키고 "정의는 정의다"라는 구호로 '불의(不義)의 시대'를 완성했다.' 권력이 휘두르는 동어반복(同語反復)의 최면술은 일종의 사기(詐欺)다. 이런 시대를 뚫고 나가려면 여우들은 '근거'를 물어야 한다. '명령의 합리성'과 '법률의 정당성'의 근거를 묻고 권력이 내세우는 '정의의 실체'를 의심해봐야 한다. 전략의 출발은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앞의 것이 '지리(地理) 감각'이고, 뒤의 것이 '역사 감각'이다. '상대를 바로 알고 나를 바로 아는 것'도 이 두 가지 위에서 가능하다. 역사는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을 잃은 국가들의 무덤이다. 1871년 독일을 처음 통일했던 비스마르크는 후대(後代)에 두 가지 생존의 지혜를 물려주었다. 하나는 서쪽 프랑스, 동쪽 러시아와 이룬 국경이 산맥이나 바다처럼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당부다. 양쪽을 적으로 삼거나 양쪽과 동시에 전쟁을 벌이는 것은 '국가의 자살'과 같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내부가 분열됐을 땐 어김없이 외세(外勢)가 개입했다는 교훈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남긴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은 곧 잊혔고, 독일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양면(兩面) 전쟁을 벌이다 패배했다. 2018년 6월 13일 수요일에 대한민국 전역에서 치러진 6·13 지방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싹쓸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를 딱 한 달 앞둔 대통령 지지도가 최고 86%를 기록했다. 취임 당시(84%)보다 더 높다. '대통령 우산' 속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55%가 나왔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4당 지지율을 모두 합친 것의 2배였다. 반면 2020년 1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인 34%로 떨어졌다는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힌 무당층(無黨層)은 현 정권 출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 정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둘러싼 여권과 검찰의 충돌, 부동산 정책 논란,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등이 여권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 전날 6월 12일에는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3월부터 이어져 온 북핵 드라마의 정점(頂點)을 찍는 날이었다. 지 고모부를 박격포로 죽인 천인공노할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억류 미국인 석방이라는 선물을 보냈고 뒤든 앞이든 이익만 밝히는 거래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은 '생큐(Thank you)' '나이스(nice)'라는 단어로 감사를 표시했다. 오가는 말에서는 미·북 간 중대 거래(去來)가 익어가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代案)'을 제시한 데 대해 사의를 표한다'(김정은) '우리가 한반도 전체(entire peninsula)를 비핵화 할 때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 이뤄질 것'(트럼프). 트럼프의 표현도 지금까지의 '북한 비핵화'에서 김정은식 용어(用語)인 '한반도 비핵화'로 옷을 갈아입었다.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듯 했지만 실상은 있으나마나 한 것의 비유인 개뿔 변화였다. 모든 거래의 기본 원칙은 등가(等價) 교환이다. 김정은이 확실히 핵과 미사일을 내려놓는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북(對北) 제재 완화, 경제 지원과 국제 경제 기구 참여 허용, 미·북 수교(修交)를 비롯한 북한 체제 보장 방안,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축소, 한·미 연합훈련 축소, 주한 미군 감축 등 모든 메뉴가 정상회담과 후속 회담 탁자에 오른다고 봐야 한다. 이들 메뉴는 트럼프식 '신속한 일괄 타결'과 김정은이 희망하는 '단계적 동시 타결' 방식을 혼합한 조리법(調理法)으로 굽거나 익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 코스 요리가 자신이 재선에 도전하는 2020년 11월 이전에 제공된다는 시한(時限)만 명시되면 조리법의 배합(配合) 비율에는 융통성을 보일 공산이 컸다. 개뿔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 보수(保守)는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속내를 감출 줄 모르는 위선의 중독자 문재인의 고공(高空) 지지율을 떠받치는 핵심 기둥은 남북 관계 변화다. 그러나 실상은 선제공격, 예방전쟁이란 살벌한 단어들이 오가는 전쟁 분위기에서 벗어난 듯한 빈말의 성찬으로 일시적 안도감(安堵感)이 불러온 착각 비슷한 것이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은 전쟁 승리 두 달 후 선거에서 졌다. 1차 이라크 전쟁 승리로 지지율이 89%로 치솟았던 아버지 부시도 재선에 실패했다. 선거정치에선 평화도 승리만큼 덧없는 물거품이다. 브란트 총리의 동방(東方) 정책을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그 위에서 자유민주주의적 독일 통일의 길을 닦았던 헬무트 콜 총리의 비전과 전략이 담긴 말을 참고할 일이다. “사회주의자는 (정권 장악에)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주의는 (국민을 고루 배부르게 한다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 100원에 사들여 80원에 파는 기업은 없다. 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에선 80원의 세금을 걷어 100원어치 복지를 베풀겠다는 정치인이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과는 정치인 대신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경제와 담쌓은 사람도 일거리가 늘어야 일자리가 는다는 원리는 알고 있다. 이 정부는 거꾸로 간다. 세계 모든 개발경제학 교과서에는 '한국 성공'과 '북한 실패' 스토리가 체제(體制) 간 우열을 비교하는 대표 사례로 실려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이와 정반대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있다. 우리 보수 교단은 나날이 깊어가는 국민의 이런 시름과 걱정에 희망의 출구(出口)를 위한 기도의 사명이 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2019년 10월 광화문 집회 뒤 한기총 회장 전광훈이 약속보다 늦게 나타나 인터뷰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출발하려는데 취재진이 빙 둘러쌌다. 내가 스타가 됐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다 나를 보겠다며 온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 화가 나서 광화문에 몰려나왔지 목사님을 보러 나온 것은 아니다. 그걸 착각하면 안 된다." "적어도 80%는 나를 보러 나왔다." "분노하는 국민을 위해 자리를 깔아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해라.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파국이 시작된다." 문재인을 탄핵한다는 그는 "나라를 위해 내 한 몸 바치려는 것뿐이다. 세속 정치에 대한 욕심은 털끝만치도 없다"고 문재인 어법으로 말했다고 한다. 이런 전광훈 목사와 손잡고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신당을 창당한다고 한다. 요즘 보수층이 가장 열광하는 진보층의 폭격기 '문재인 정권 공격수' 진중권씨가 이런 말을 했다. “탄핵 이후 보수의 환골탈태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결국 그들에게 발목을 잡혀 개혁에 실패하고 말았죠. 그런 의미에서 태극기 부대야말로 문재인 정권을 지탱해주는 최대의 버팀목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그들이 보수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친문 헤게모니도 영원할 겁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진보주의 교단과 신학대학은 용감하게 시위에 앞장섰다. 이제 공법의 철옹성 윤석열 검찰총장과 촌철살인의 성웅 진중권 교수 외에 공산주의 행태를 빼닮은 친문 헤게모니를 침묵으로 지원하는 진보 진영 교단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믿는 보수 교단이 나서야 할 갈 것이다. 보수교단의 선봉장 제104회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신앙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를 따르고 추구하는 세력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교단은 구태의연한 태도를 벗어나 태극기 부대를 넘어서는 자유 민주주의 토대의 신앙을 위한 회복 기도회를 광화문 광장에서 열고 찬송과 기도로 국가와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해 성령의 투혼 김종준 총회장과 목회생태계 퍼스트무버 소강석 부총장이 함께 나서야 할 것이다. 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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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1
  • 총회 안에서 우린 누구
    성령의 불로 정재된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의 제104회 총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로 마주치곤 하는 우린 서로 다른 주장을을 하고 서로 다른 가을을 보내고 서로 다른 선교지를 생각했다. 우리는 여러 노회에서 드디어 외로운 노후를 맞고 드디어 이유 없이 가난해지고 드디어 맞이한 은퇴를 수긍했다. 우리는 여러 노회에서 모여들었다. 그분께서 결연히 뒤돌아서시자 그는 우연히 같은 멜로디로 찬송을 하고 그리고 우리 중 누구는 재판국 농단자 김영범처럼 생각나지 않는 믿음을 찾아 다른 교단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내년 사순절에는 뜨거운 겨울이 끝날 거다. 우리는 여러 노회에서 모여들어 여전히 만남을 하곤 할 것이다. 외롭고 달콤하고 또 긴 후회와 소망을 나눴다. 기도하다가 불현듯 뇌리에 막연히 떠오르는 사람, 그가 그리우면 나는 울며 회개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속쓰림으로 피아노 흑백 건반을 치듯 너를 향한 기다림이 소망이 되는 날 우리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소망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유대 들과 이스라엘 산굽이 떠돌며 예루살렘 성전 근처에서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그 벽에 기대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변화산에 올라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우리에게 총회란 무엇인가. 총회는 부총회장 소강석 시인의 시 같은 이름붙이기에 따른 ‘꽃밭이거나 사막의 별’이기도 하다. 가끔 우리에겐 신앙이 먼저인지 명목이 먼저인지 모를 정도로 이름 붙이기는 중요하다. 총회 안에서도 그렇고 총회를 넘어서도 그렇다. 총회 이름은 신앙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우리 존재 의미의 첫 출발점 즉 빌미가 되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삶은 생각보다 길고, 황규철이나 김영우에게서 보듯 우리는 믿음을 생각보다 쉽게 잃고 조국이나 유재수에게서 목격하듯 성령의 마지막 아홉 번째 열매 절제(갈 5:22-23)를 상실한다. 우리는 오늘도 일어나 세수를 하고 하루의 일과를 보내면서 믿음을 잃은 사람을 잊고 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잊었던 그 얼굴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애잔하다. 아마 하나님 앞에서 서로 보고 싶어도 하나님을 떠나 놋 땅에 거하는 가인처럼 볼 수 없는 사람일텐데. 그러나 동탁 같은 문희상의 뱃살에 눌려 공수처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2019년 12월 30일 어제처럼 아무리 우리 사는 세상이 어둡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이고 문재인이 마치 파리오처럼 너희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며 이죽거린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섭리와 사랑을 멈출 수는 없다. 이 생각을 하고 믿음으로 돌아서게 되면 나는 감사에 목이 메어 꼭 울게 된다. 결국 총회 안에선 우린 믿음의 존재이어야한다. 하나님과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그리고 어렵고 병들고 전광훈 목사처럼 갇히게 될지라도.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의 개혁 신앙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2020년 새날 목전. 믿음의 영혼을 흠뻑 적신 눈물을 훔치며. 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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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31
  • 부활 소망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1913~1974)의 대작(大作) "우주"(Universe)가 홍콩 경매에서 132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 미술 경매사상 최고가다. 값을 떠나 이 작품은 광활하고 오묘하다. 하지만 이론물리학이 그리는 우주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과학으로 관측할 수 있는 물질(별과 은하+성간물질)은 우주 전체의 4%에 불과하다. 우주의 대부분은 불가해한 암흑물질(23%)과 암흑에너지(73%)이거니와 정말로 놀라운 건 나의 탄생이다. 이 우주에서 내가 태어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우주가 생겨날 확률, 생명체가 진화할 확률, 지구에서 내가 수태될 확률을 곱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은 "이 우주가 왜 있는가"를 묻는다. 인간의 마음이 우주와 일대일(一對一)로 만나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수학에서 "구골(Googol)"이라는 단어가 있다. 구골은 10의 100 제곱을 가리키는 숫자이다. 즉 1 뒤에 0 이 100개나 달린 거의 무한대 숫자이다. 그래서 이 구골은 우주의 모든 원자의 수보다 많은 엄청나게 큰 숫자이다. 바로 이 "구골"이라는 단어를 따서 현재의 글로벌 선두 기업인 "구글(Google)"이라는 회사명이 탄생했다.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을 통해 알파고(Alphago)를 목격한 우리 사회에선 미래에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는 이가 많다. 그러나 난 요즘 영화에서처럼 자기성찰과 공감능력을 지닌 기계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연산 능력과 추론은 지능의 주요 기능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계산 능력으로 환원할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 형상을 닮은 피조물 인간은 삶과 우주의 의미에 대해 궁극적 질문을 던지고 이웃의 고통을 공감하며 연민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2019년 보수 교단이 기도하는 대한민국에선 공감과 연민은커녕 생각이 다른 이들을 난폭한 말로 서로 난자(亂刺)했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해야 할 언어가 흉기가 되어 서로를 베었다. 하늘을 찌른 진영 간 적대와 증오 앞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마음자리가 초토화되었다. 진영 논리가 비판적 사유(思惟)와 상상력을 질식시켰다. 오직 "우리 편" 여부만 따지는 세태 속에서 정치는 전쟁으로 타락하고 정의는 허공에 흩어졌다. 총회는 납골당 매매 등기이전 소송을 하면서 드러낸 믿음에 근거한 진실한 자기성찰과 공감 능력이 사라진 곳에 신자의 죄의식은 물론이고 인간다운 염치와 부끄러움이 남아날 리 없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한국 사회는 벌거벗은 동물의 세계로 추락했다. 말 그대로 헬조선이 되었다. 총회가 이 시대 빛이 되어야 할텐데 하나님 말씀 그대로 거짓의 아비 마귀 자식들이 되어 거짓을 일삼으며 권력과 황금에 갇힌 자들처럼 어둠 속을 활보한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에서 나라를 세웠고 국가 멸절(滅絶) 직전의 6·25전쟁에서도 살아남아 믿음으로 세계 제일의 기독교계를 세우고 열정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을 일구고 바른 지성과 행동으로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한국의 기적"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던 한국 기독인의 믿음과 기도와 땀이 오늘의 성취를 추동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는 자기 불신을 허락하지 않는 믿음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축복과 선택을 받은 우리에겐 절망하거나 타락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 세밑과 새해로 분별한다. 우리네 삶에다 의미와 소망의 무늬를 입히기 위해서다. 한 해의 끝, 밤하늘의 별빛에서 "우주 속의 나"를 보는 건 절망을 딛고 희망을 확인하는 일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미미한 인간이 만나는 체험이다. 이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다. 현대 과학이 뒷받침하는 실존 경험이다. 인간은 잠깐이나마 나사로가 내려다 본 지옥 같은 현실을 넘어선 성찰의 순간을 가져야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김환기는 작품 "우주"와 함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걸작을 남겼다. 시인 김광섭(1906~1977)의 시에서 빌려온 제목 자체가 존재 물음에 대한 심원한 응답이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 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 우리 모두 국가와 총회의 내년 전망은 어떨지 역사와 현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자.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구나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걸 바꾸는 순간 자신이 평생 쌓아온 세계관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통령과 조국이 그리고 전계헌과 박상범이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니라는 점이다. 권력자와 실세가 가상현실의 나라를 향해 치달을수록 진짜현실의 민초들은 고단해지기 십상이다. 특히 나라의 지도자가 외교와 안보의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못 보면 국민은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전성기를 연 7대 술탄 메흐메드 2세. 이후에도 서방 기독교세계 정복사업을 펼친 그는 잔인했다.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약속하곤 정복지의 지배층을 모조리 살해하기도 했다. 이를 전해들은 다른 곳에서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전을 펼치자 ‘항복하면 알라께 맹세코 목을 베지 않겠다’고 약속해 문을 열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는 신에 대한 맹세를 지켰다. 목이 아닌 몸통을 베어 수비군 전원을 살해했다. 역사는 잔인했던 메흐메드 2세를 정복자로, 공포심에 눌려 그의 약속을 믿고 무장해제를 결정한 사람은 무능한 지도자로 기억한다. 북한 김정은이 바로 메흐메드 2세 같은 잔학무도한 그런 놈이고 그런 놈을 믿거나 언행이 닮은 작자는 무능한 지도자이거나 거짓 목사일 것이다. 인간은 상상력 말고도 날개가 있다. 미국 시인 랭스턴 휴스는 "꿈(Dreams)"에서 그걸 노래한다. 꿈을 단단히 붙잡아요 꿈을 잃으면 삶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와 같으니까요 그래서 믿음의 독수리 날개( 사 40 : 31)를 가지고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바라는 부활 소망을 믿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계 22:21).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 말씀을 들은 자가 대답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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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8
  • 성탄에 내가 가장 원하는 건 당신
    이건 기도다. 풍진 세상 딛고 참은 울먹임이다. 돌 많은 너덜겅 걷다 헐거운 다리품이 믿음 아래 감춰졌다가 바어져 나온 소망. 믿음의 가족 잠 보듬고 가만히 나가 어둑발 훔치며 새벽기도 펼치는 목사의 걸음새에 겨울을 미는 힘으로 솟은 햇귀가 속 깊이 쟁여 준 사랑이다. 24일 대구 강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9분쯤 대구 북구 한 주택에서 40대 초반 부부와 중학생 아들 A군(14), 초등학생 딸 B양(11)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죽음은 A군의 담임교사의 신고로 밝혀졌다. 지난 21일까지만 해도 등교했던 A군이 학교에 나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담임교사가 A군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담임교사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유가족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10년 전쯤 개인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난 뒤 계속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24일 숨진 유가족이 발견된 주택 현관문은 경찰 통제선이 여러 겹으로 둘러진 채 잠겨 있었다. 주택 건물 입구에는 이 가족 앞으로 온 독촉장이 수십 장 쌓여 있었다. 시중 은행과 대부업체 등에서 온 독촉장과 세금 미납 고지서 등에는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금액이 적혀 있었다. 가정이 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듯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날을 찬양하는 캐럴은 4세기 로마에서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의 시대를 지나며 각종 캐럴이 쏟아졌다. 교회와 성당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에 걸맞은 노래는 한 해도 빠짐없이 필요했던 것이다. 근대 이후에는 19세기 미국 작곡가 제임스 피어폰트가 만든 ‘징글벨’이 캐럴 세계 ‘왕좌의 게임’을 100년 이상 좌지우지했다. 캐럴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눈 내리는 전장에서 울리고 퍼졌다. 그러다 마침내 그것이 태어났다. 1994년 11월 1일. 미국 가수 머라이어 캐리가 캐럴 앨범 ‘Merry Christmas’를 발표한 날. 캐럴의 세계, 캐럴의 역사는 뒤집어진다. 음반은 지금껏 전 세계에서 1,500만 장 이상 팔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캐럴 음반. 특히나 수록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내가 성탄에 가장 원하는 건 당신이다)가 ‘물건’이었다. 가수인 캐리와 작곡가 월터 아파나시에프가 함께 만든 이 곡은 수백 년간 불린 캐럴들을 하나둘 물리치고 감히 인간 캐럴 역사의 대명사가 됐다. 캐럴의 주인공 아기 예수는 왜 곧 새해와 새벽을 맞을 엄동설한 캄캄한 밤에 태어나셨을까. 메시아가 사람의 모습으로 혼돈과 고난의 세상에 오신 건 아마도 모든 걸 새로이 시작하자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대가 사는 그곳에서, 모두가 편견 없이 새로운 눈으로 그대와 사람들을 바라보길 바라는 아기 예수의 순수한 마음’처럼 말이다. 가장 고귀한 성탄 선물은 바로 세상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고 천하보다 귀한 사람, 자기 자신의 생명이다. 그래서 성탄이 거짓의 아비 마귀를 추종하는 총회은급재단의 사문서위조 비리와 청와대의 각종 불법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김창수, 유장춘, 박상범, 당신의 남은 생애 중 첫 번째 날’이 되길 기도해 본다. 내가 성탄에 가장 원하는 당신을 위해 영국 왕실 전통을 따라 해피 크리스마스! 2019-12-24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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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4
  • 은급재단 비리 기사 진정성
    어이, 소 목사 한 이십 일 전 만 70이 된 한 해를 보내며 당신 시 가장 귀한 걸로 한 편만 기억하겠소. 그러고는 죄다 간직하겠소. 꽃밭에 여행길 그 믿음 한 움큼만 새김질하며 시방은 그 꽃 다시 필 그 사막에 숨어 기다리겠소. 문권모라는 방송인이 프로그램 진정성 여부에 대해 동아일보에 이런 말을 했다. 기획 회의 등 방송국의 콘텐츠 회의에 들어가다 보면 일반인 입장에선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의외의 단어’가 곧잘 등장한다. 이 단어는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회의에서도 자주 이슈가 된다. 바로 진정성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성 얘기를 하면 “방송은 어차피 다 연출 아닌가” “화면을 통해 보는데 어떻게 진정성을 알아챌 수 있는가”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나도 TV 프로그램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다가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무언가 어설프거나 꾸민 듯한 장면이 나오면 시청자들이 바로 알아채서다.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처럼 요즘 시청자들은 ‘방송국 놈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이때 뭐가 진짜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독버섯 같은 가짜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시청자들은 진짜 콘텐츠가 가짜보다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인간을 비롯해 공동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공정성이란 개념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공정성은 집단생활의 경쟁구도 속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2003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Monkeys reject unequal pay’)에 명확한 사례가 나온다. 똑같은 과제를 수행한 두 원숭이 중 한 마리에게는 맛이 밍밍한 오이를, 다른 한 마리에게는 달콤한 포도를 줬다.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어느 순간 실험을 진행하던 사람에게 오이를 던져버렸다. 매체의 발달에 따라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진정성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눈을 통해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다루는 사극이나 공상 과학물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은 그 나름의 진정성, 즉 정확한 고증이나 그럴듯한 설정을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이를 설명하는 문학 비평 용어가 핍진성(逼眞性)이다. 핍(逼)에는 핍박하다, 강제로 받아내다 등의 뜻이 있다. 핍진성은 쉽게 말해 ‘진실성을 짜내어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성질’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동전 크기만큼만 모발을 남기고 머리를 미는 청나라 초기의 변발이나 지나치게 넓어 보이는 도포의 소맷자락 등 고증의 정확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객들도 작품의 사실성이 높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일반 방송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기관지 기독신문에도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없는 빈약한 인터넷 사설언론 더굳뉴스의 기사의 진정성 여부야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요즘 세간의 청와대 비리 혐의 사태에 대한 주요 일간지 같이 연일 총회은급재단 비리 혐의 사태를 다루고 있다. 그에 대한 총회 관계자 가운데 더굳뉴스 기사의 진정성을 문제 삼으며 이런 말을 내게 대놓고 했다. "납골당 측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들 말한다." 기자가 그렇게 기자를 썼을 때 다음과 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첫째, 김영란법 상의 금품수수 혐의로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위험이 따른다. 둘째, 허위 사실의 가짜 뉴스로 인한 명예훼손 고소를 면할 길이 없다. 셋째, 진실을 먹고 살아야 하는 기자의 진정성 여부를 독자들이 알게 되어 기자 생명인 신용을 잃게 된다. 넷째, 더욱 경계해야 될 사실은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르는 좌파 사회주의자들처럼 역 가짜 뉴스에 휘둘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은급재단 비리를 불독처럼 물고 늘어지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평생에 걸쳐 자랑스럽게 사랑하는 총회의 거룩성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해 목숨까지라도 내놓을 각오로 지위고하 막론 총회 관련 비리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은급재단 사문서위조 근거는 이렇다. 1. 2017년 9월 8일 김성태 이사 9월 15일 한 건도 아닌 두 건의 은급재단 이사 사임 전결처리를 전후해 은급재단 이사장 김선규 제101회 총회장의 사전 허락이나 사후 보고가 김창수 박상범 김은미 누구에게서나 없었다. 2. 2017년 9월 18일 납골당 매매계약 의결 은급재단 이사회에서도 상임이사 김창수나 법인 직원 김은미에게서 일체 보고가 없었다. 3. 2017년 9월 18일 오후 2시부터 개회되어 22일 금요일까지 이어진 제102회 총회에서조차 보고되지 않았다. 유장춘 이남국 김기철 주도의 납골당 매각 불법 조사처리위원회의 구성 의결되는 순간에도 그 중요한 결격사유 이사 사임 전결처리 건을 보고하지 않았다. 집요한 반대자 유장춘의 입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4. 2018년 납골당 불법 매각 조사처리위원회 활동 중에 이사 사임 전결처리 건에 대해 조사나 보고가 일체 없었다. 5. 그러다 2019년 5월 계약금을 주고받은 매매계약에 따른 납골당 등기이전 소송을 다루는 중앙지법 민사법정에 전 총무 김창수와 법인직원 박상범에 의해 이사장을 배제한 전결처리 문서와 그 당위성에 대한 김창수의 사실확인서와 박상범의 진술서를 소송 대리 변호사를 통해 제출했다. 이상의 정황으로 미루어 은급재단 이사회 공모 이사 사임 사문서위조와 법원의 업무 방해 범죄를 파악하게 되고 전광훈 목사에 비할 바 안 되는 용기를 가지고 기관지 기독신문의 조족지혈에 불과한 '더굳뉴스'에 끈질기게 고발하게 되었다. 어쨋든 하나님 은혜로 100년 총회 역사상 초유의 도저히 밝히기 어려운 비리가 사문서위조 전결처리 문서에 대한 사실확인서와 진술서 증거를 전 총회총무 김창수 총회직원 박상범, 김은미 등의 살신성인( 殺身成仁 )의 변호사 조력 법원 제출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 비리를 공모해 저지른 혐의의 은급재단 이사회 범법자들이 자신들의 비리 행각을 뉘우치지 않고 그 비리 고발 상대방을 매도하는 행습을 일삼고 있다. 그런 비열하고 불신앙적인 행태는 마치 이 혼탁한 시대를 빛내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청와대 비리를 향한 수사가 한나라당의 돈이나 사주를 받고 한 것으로 말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더불어민주당 대표 용고 후배 이해찬의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말투는 그런 식이긴 하지만...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과 교회의 하나님 살아 계시어 어제나 오늘이나 오늘도 굽어보고 계시고 또 하나님 없는 문재인 동류 좌파들이 외치지만 지키지 않는 정의도 사실 살아 움직이며 윤석열 검찰총장의 서슬 퍼런 수사를 통해 역사하고 있다. 더하여 나는 시덥지않게 보는 길자연을 가장 존경한다는 전광훈 목사의 종잡을 수 없지만 목숨을 건 것 같은 청와대 앞에서의 질타를 통해서도 촛불을 가장한 불의의 빛이 흔들리고 있다. 눈주름 골진 데 꽃잎을 날리니 문득 스멀스멀 기어드는 사막의 침묵들. 뜨겁디뜨거운 해나래를 접고 향내 나는 침묵 번져 꿈처럼 금강석 별 흐르는 시내산 사막 한 귀퉁이에서 이제 딱 하나 믿음만 남기고 다 잊을 때가 됐다. 솔로몬의 말처럼 기쁨도 슬픔도 지나갔다. 어떤 의미로는 아니 언제나 하나님 은혜 고마웠고 감사했던 한 해였다. 딱 하나 남길 그 고마움의 씨앗을 고르기로 하자. 씨앗이라도 품어야 긴 겨울을 지낼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노을 물드는 총회 꽃밭에 꽃잎으로 눕고 싶다. 2019-12-22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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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2
  • 문재인 운명 그리고 김창수 박상범 김은미 헌신
    울산 대암교회 하나님의 장로 김기현을 이긴 문재인 친구 송철호 시장의 당선 직후 언론 인터뷰도 새삼 화제다. 배광식 목사의 가르침을 따르는 김기현 장로가 믿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 문재인의 운명적 친구 권유로 송철호가 선거에 출마했다는 내용이다. “저는 집도 이사하고 더 이상 (선거) 안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가 찾아왔다. 만났더니 ‘형, 이사했다며? 다시 이사 가소’ 그래서 ‘내는 내 맘대로 못 사나?’ 하니까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 그래서 다시 이사를 갔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은 민주당 경선뿐만 아니라 울산시장 본선과도 연결되는데 이른바 ‘하명수사’ 의혹이다. 송 부시장이 2017년 10월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관련 비위 정보를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에 보냈고 이 내용은 청와대 반부패비서관-경찰청 등을 거쳐 울산지방경찰청으로 하달됐다는 내용이다.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은 원래 수사팀을 좌천시키고 새로 A 경위 등을 발탁해 수사를 맡겼다. 이후 김기현 울산시장이 한국당 공천을 확정 지은 2018년 3월 16일, 울산경찰청은 김 시장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한국당 ‘울산시장 불법 선거개입 의혹 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인 주광덕 의원은 “문 대통령의 30년 절친을 당선시키기 위해 당과 정부, 청와대 그리고 경찰이 동원된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명구가 있다. "비관주의자가 바람을 불평하고 낙관주의자가 바람이 바뀌길 기대할 때 리더는 돛을 조성한다." "위기가 왔을 때 가장 훌륭한 배는 리더십이라는 이름의 배다." 운명을 뇌까리는 문재인과 달리 나폴레옹은 말했다. "리더는 희망을 나른다(A leader is a dealer in hope)." 위기가 왔을 때 시험해봐야 리더의 진짜 점수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이제 운명을 믿는 문재인의 권유를 따랐다 울산 시장 당선의 굴레를 목에 건 송철호와 그 오랜 벗은 어떤 하나님의 섭리를 맛보게 될까.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른 효심어린 자식들로서. 언제 이런 총회를 볼 수 없을까. "총회는 눈이 오면 그냥 받아들여요. 눈이 쌓인 총회가 되는 거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총회가 되지요. 새가 앉으면 새가 앉은 총회가 되는 거죠." 비가 오면 젖을까 싶어 당장 우산을 펴고 바람이 불면 시리게 스며들까 바로 옷깃을 저민다. 우리는 고통이나 시련 같은 자극에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나무처럼 내게 오는 것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어떤 세계가 열릴까. 비 오면 비 내리는 나무, 그늘이 오면 그늘진 나무로, 같은 자리에서 오래도록 한결같은 삶이지만 나무는 하루도 같은 모습이 아니고 때로 꽃으로 때로 낙엽으로 물들고 변해간다. 하나님의 은혜로. 섬진강 시인 김용택 은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70년 넘게 같은 동네 사람, 같은 학교, 같은 길이 너무 심심해서, 심심하니까 뭐든 자세히 보게 됐다고. 자세히 보니 달리 보이고 달리 보이니 새롭게 보이고 그걸 끄적이다 보니 시가 되었다. 1972년부터 40년 넘게 10년 근무까지 해가며 총회를 들락거렸는데 아직 70년이 안 돼 고런지 시가 솟는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해 안타깝다. 올해 가장 기억나는 것이 어디를 가던 중 만난 시골 교회 근처에서 폭우 속을 우산 없이 천천히 걸었던 일이었다. 뛰지 않고 걷고자 하는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보니 그때 젖은 비를 가득 품고 올라온 흙냄새, 꽃 냄새 그리고 비가 흘러내리는 십자가 때문이었다. 그때 나무처럼 느릿했던 그 걸음이 2019년 내가 겪은 가장 시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총회 비리 척결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은급재단 사문서위조 및 법원 업무방해 증거 서류를 법원에 사실확인서와 진술서를 제출한 김창수와 박상범의 헌신 그리고 김은미의 총회 개혁을 위한 눈물겨운 서류 작성 조력은 문재인처럼 민형사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이기에 놀라운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수사와 재판은 든든한 총회 관할이 아닌 각자 주소지 관할 경찰서와 검찰에서 받아야 할 것이다. 눈자락 날리는 오후 1호선 지하철 차창을 바라보며... 2019-12-21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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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1
  • 하나님의 총회 성탄 선물
    하나님의 총회 크리스마스 선물총회 개혁 위해 썩고 곪은 은급재단 이사 공모 사문서위조와 전 총무 거짓 사실확인서변호사 통해 중앙지법 제출 사실로 드러나. 우리도 이제 성탄절에 영국 왕실 관습처럼 "Happy Christmas"라고 하면 어떨까. 진보 좌파처럼 거짓을 일삼는 총회 부패한 계층의 소란스러움을 연상시키는 천박함을 서로 느끼지 않으려면 말이다. 크리스마스에 주고받는 선물은 김상윤과 전계헌처럼 은밀히 물건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마음이 담긴 뜻을 전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물자가 부족했던 근대 이전 사회에서 선물은 빈한한 일상을 보완하는 경제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음식과 문구류, 의복과 가축 등 생활에서 필요한 물건들이 선물로 사용되었다.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술잔과 도검, 벗에게 보내는 종이와 벼루 등에는 충성과 우정을 담보하는 사회적 상징이 담겨 있었다. 어쨌든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을까.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들은 역시 퓨리탄 puritan이라는 그 이름답게 성경적 믿음에 근거해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했었다. 예수 탄생일이 12월 25일이라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평일로 지정하고 적발되는 자에게는 벌금까지 부과했다. 제네바의 칼빈처럼. 당시 많은 주민은 오랜 전통에 따라 겨울 동지 축제를 구실 삼아 술에 취해 흥청거렸는데 크리스마스도 핑계가 됐다. 교회는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런 전통을 뿌리 뽑지 못했고 결국 12월 25일을 기독교 명절로 전용하게 됐다. 그 과정에 "메리 크리스마스"는 이런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무례한 민중이 술에 취해 고함치던 인사말이었다는 것이다. 실상은 신앙적 역행과 흥청거림의 세속적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19세기 들어 분위기를 들뜨게 해 소비를 부추기려는 상업주의에 따라 확산되면서 가장 선호하는 구호가 됐다. 이어 1843년에 등장한 크리스마스 카드 문구와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라는 캐럴송을 통해 세계 공통 인사말로 대세가 기울었다. 그러자 교회는 1940년대 들어 논쟁을 포기하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용어에 포함하기로 했다. 대신 그 대책으로 백화점 등 상가 진열장과 광고에 예수의 탄생 장면 등 기독교 이미지를 최대한 사용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자 노골적으로 기독교 표현물을 치우기 시작했다. 다른 종교 신자나 무신론자 고객들에게 거부감을 줘 매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다. 1990년대 이후엔 "Happy Holidays"로 바꿔 다는 곳도 많아졌다. "holiday"라는 단어도 "holy day(거룩한 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종교 색채가 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일 축하 때 "Happy Birthday" 등은 "happy"를 쓰는데 왜 유독 성탄절만 "Merry Christmas"라고 하는 걸까. "happy"는 감정적 상태를 나타내는 데 비해 "merry"는 동사 느낌의 활동적인 어감을 풍긴다.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어가자는 활동성을 가미한 것이다. "Happy Christmas"라고 하면 틀리는 걸까. 영국과 아일랜드 등에선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특히 왕실에선 꼭 "Merry" 대신 "Happy"를 쓴다. "Merry"는 하층 계급의 소란스러움을 연상시키는 천박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음은 덧셈보다 뺄셈이 좋다. 외식 같은 군더더기를 빼 단순할수록 실용적이고 아름답다. 목사는 마음에 담긴 영혼을 믿음으로 구현하려는 일을 해야 한다. 여백 가득한 들판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느껴지듯. 가난한 심령이 말로 가득 찬 신앙보다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제 그림을 그렸으면 지나간 화가, 오늘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누구나 화가, 어제 시를 썼으면 지나간 시인, 오늘 시를 쓰고 있으면 누구나 시인. 어제 설교를 듣기만 했으면 지나간 신자, 오늘 설교를 실천하고 있으면 누구나 목사. 이해관계가 인간의 양심을 빼앗아가는 시대, 목사로서의 경쟁력은 정서적 문해력과 공감 능력에 달려있다. 신세대로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고 일하기 위해서도 공감 능력은 필수다. 하지만 단순한 동정심의 "동조(sympathy)"는 금물. 이는 오히려 진심 어린 동병상련 감정이입의 "공감(empathy)"을 가로막는다. "그래 정말 힘들겠어!"라며 건성으로 안쓰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래(Me, too)"라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암시를 주는 것이 "공감"이다. 교인에 공감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감정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명확한 경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총회 회복에 딱 맞는 선물을 주셨다. 그것은 제104회 총회장 김종준이 외치는 회복이 총회의 칼빈주의 회복에 아주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썩고 곪은 총회 은급재단(이사장 김종준) 이사회 공모 사문서위조와 전 총무 거짓 사실확인서를 빼도박도 못 하게 변호사를 통해 중앙지법에 제출한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교단 개혁의 불쏘시개가 되리라 믿는다. 우리도 이제 성탄절에 영국 왕실 관습처럼 "Happy Christmas"라고 하면 어떨까. 진보 좌파처럼 거짓을 일삼는 총회 부패한 계층의 소란스러움을 연상시키는 천박함을 서로 느끼지 않으려면 말이다. 나아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주인공 지독한 스쿠르지 영감의 개과천선을 하고 구원 받는 체험을 하기 위해.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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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8
  • 문재인과 전계헌
    세계 제일 보수 교단의 총회 총대는 조국 식의 전계헌과 유장춘과 박상범에 의한 총회장과 은급재단 이사와 총회 행정 직원의 드러난 사문서위조 의혹의 명백한 불법과 불의를 제네바의 칼빈처럼 묵과해서는 안 돼 조국 사태는 서막에 불과했다. 따지고 보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비리 의혹은 비리를 고발한 불의 사자 김화경 목사와 재판 중인 김상윤과 전계헌 간의 돈다발이 든 ‘명품가방 수수’ 같이 대부분 개인 문제였다. 감히 의병 죽창을 외친 조국, 그가 보여준 불의와 불공정을 통해 좌파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공정한 공권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국민이 분노한 것은 거짓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거짓의 아비 마귀를 추종하는 위선이었다. 좌파에겐 내 편은 정의로워서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그들 나름의 믿음이 있다. 그는 ‘내 편’이다. 그래서 그와 가족을 수사하는 검찰이 나쁘다고 한다.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며 내세우는 이유다. 또 다른 아주 심각한 비리의 전형 2017년 울산시장선거에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르는 이 정권 최대의 비리 사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배광식 목사 시무 대암교회의 신실한 장로 김기현 울산시장의 비리 첩보를 청와대에 제보한 사람은 송철호 울산시장 후보의 측근이었다. 청와대가 첩보 문건을 경찰에 이첩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했으며 경찰이 압수수색 전부터 9번이나 청와대에 정보 보고를 했다면 청와대와 경찰, 송 후보 측이 공모한 선거 공작의 냄새가 짙게 난다. 따라서 청와대가 개입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후안무치로 뇌물을 뜯은 유 전 부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형’이라 불렀고 송 시장은 사석에서 문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유유상종 ‘30년 지기 절친’이라고 한다. 두 사건 모두 정권이 내 편을 위해 개입한 공정한 선거법 위반과 불법 사례다. 총회 기획행정국 직원과 성만 다른 새로 지명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첫 마디는 ‘검찰 개혁’이었다. 처음부터 검찰 개혁을 꺼내는 걸 보면 그가 장관이 되는 경우 인사권 행사를 통해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윤석열 사단을 교체해 수사력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저급한 정치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더구나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 행사는 그 재량이 크지 않다. 법무부 장관은 독단으로 검찰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반드시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고 대통령에게 검사의 보직을 제청해야 한다.(검찰청법 제34조) 우리 교단 산하 대암교회(배광식 목사) 장로를 모해한 울산 시장 선거 공작에 흔들리는 촛불 대통령이 관여했는지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수사 과정에서 검찰 조사가 대통령을 향한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윤석열 검찰총장 휘하 검찰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항상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고 말해 왔다. 그 성역이 어디까지인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선거 공작은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르는 하만 같은 불의한 정치권력의 음모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패역한 권력이 개입한 선거는 민심을 왜곡시켜 민주주의와 국민의 의식을 뿌리째 흔든다. 그러므로 모든 신실한 국민은 진실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가려야 할 시대적 의무가 있다. 김정은 식의 내 편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에 미치면 국가 통치에 결함이 생기게 된다. 불의한 정권은 비리에 무감각해지고 거짓말을 예사로 하며 불법을 저지르게 된다. 순교의 각오로 주사파 문재인을 앞장서 대적하는 전광훈 목사가 존경하는 대통령이 계시다. 그는 하나님의 믿음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이다. 그가 시작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지금 여태 경험하지 못한 위선과 패역의 위험에 처해 있다. 권력의 핵심이 포진해 있는 청와대가 내 편의 비리를 은폐하고 내 편의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정치 공작이 영구히 은폐된 경우는 없다. 정권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렇듯 세계 제일 보수 교단의 총회 총대는 전가족이 일심으로 거짓을 일삼는 조국 식의 전계헌과 유장춘과 박상범에 의한 총회장과 은급재단 이사와 총회 행정 직원의 드러난 사문서위조 의혹의 명백한 불법과 불의를 제네바의 칼빈처럼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가 연합한 노회의 민의와 성경의 참되신 하나님 뜻을 대변하기 위해 총대가 끝까지 지켜야 할 성경 중심의 칼빈주의다. 우리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주권에 따르는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2019-12-1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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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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