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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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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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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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0
  • 성경에 잡힌 우주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간의 기원’의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를 만나 던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사망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시간의 기원’은 교양과학서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신학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렌즈를 깨끗이 닦아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목사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목회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사역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이 명하신 소중한 목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믿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분수령이 될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허영의 시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세비 값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휴대폰 렌즈에 잡힌 총회의 목사와 장로도 유권자이기에 2024년 4월 10일 믿음의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겠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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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의사 파업과 장기려 박사
    1976년 남미의 콜롬비아에서는 의사들이 52일 동안 파업을 하여 응급치료 이외의 진료 활동을 전부 중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는 의사의 파업으로 야기된 예기치 못한 놀라운 사실을 보도했다.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사망률이 35%가 감소하였으며 일손을 놓게 된 국영장의협회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사실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같은 해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의사들 파업이 있었다. 그로 인해 17개의 주요 병원에서 수술 건수가 평소보다 60%가 줄었는데 그 결과 “전체 사망률이 18%나 감소했다”라는 발표가 보고되었다. 의사들 파업이 끝나고 진료가 다시 시작되자 사망률은 다시 파업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40년 동안 진료에 임하고 있는 일본 의사 곤도 마코토는 솔직하게 임상 경험을 고백한 책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에서 말했다. “병원에 자주 갈수록 불필요한 약이나 과잉 진료행위로 오히려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환자를 상품으로 취급하듯 병원 환자를 떠나 파업하는 의료 현실은 병원 위주의 진료가 아닌 진정한 환자 중심의 헌신적인 진료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2024년 개혁 자유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에 반발해 일어난 초유의 전공의 집단 사직 ‘의료 파행’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파행이 역설적으로 상급종합병원, 중형병원(병원·종합병원), 의원으로 이어지는 의료 전달 체계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있는 점은 하나님 은혜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서울 ‘빅5′ 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은 수술실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환자들은 중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환자가 자연스럽게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 모습이다. 평소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절반 안팎이 응급실에 올 필요가 없는 경증 환자라고 한다. 전공의 집단 사직이 상급종합병원이 제 역할을 찾게 한 것이다. 대형병원들은 하루빨리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고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번에 역할을 재발견한 곳이 전문병원을 비롯한 중형병원이다. 중형병원은 평소에도 전문의 위주로 운영해 전공의들 집단행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번 사태와 관계없이 정상 진료와 수술도 가능하다. 대형병원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곳도 많아 대형병원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특정 질환이나 진료 과목에 대형병원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그동안 빅5 병원에 경증 환자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난 2023년 서울대학교병원 노조는 국립대 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의사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환자들에게 적정 의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파업을 단행하였다. 서울대병원이 검사 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한 이후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진료하기보다 검사 건수를 늘리는 데 주력해왔고 이에 따라 ‘1분 진료’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월 14일 오전 회의를 열어 정부와의 협의체에서 논의할 큰 주제로 보건의료정책 개선, 건강보험체계 개선, 전문성 강화, 기타의료제도 개선 등 네 가지를 정했다고 한다. 의사들 총파업이 추구하는 속뜻을 헤아릴 길이 없지만 의사의 역할인 사회의 공공성을 무시하여 총파업을 빌미로 이윤 추구를 노리고 있다면 국민들은 의료 업계에 냉철하게 등을 돌릴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공공병원으로서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의사협회 자세는 국민의 지탄을 면키 어렵다. 병원 수익금을 늘리기 위해 환자에게 위험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하면서 어떻게 ‘신뢰받는 병원’, ‘생명의 미래를 여는 병원’, ‘의료선진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인가. 더 나아가 독일 출신 프랑스의 의사, 음악가, 철학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인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년 1월 14일 ~ 1965년 9월 4일)가 실천한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고유한 철학을 본받을 수 있을까. 그는 아프리카 의료 봉사에서 더 나아가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작금의 형태는 핵 소유 북한 도당을 코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사라면 장기려(張起呂, 1911년 8월 14일 ~ 1995년 12월 25일) 박사의 헌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1932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였던 백인제 교수의 지도를 받아 외과학에 입문했다. 1936년까지 약 270건의 실험에 바탕한 “충수염 및 충수염성 복막염의 세균학적 연구”로 1940년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0년 12월 한국동란의 혼란 중에 처자를 두고 차남 장가용과 함께 월남하였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가 되었다. 1951년 1월 부산 서구 암남동에 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피난민 등 가난한 사람을 무료진료하면서 1976년 6월까지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서 인술을 베풀었다.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외과 의사였지만 평생 낮은 곳에서 청빈한 삶을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인술을 베푼 사회봉사자였다. 1951년 복음진료소(현재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개설을 시작으로 청십자사회복지회, 장애자재활협회 등 각종 복지단체를 세우고 1976년에는 청십자병원을 설립하여 소외계층과 지역사회의 복지증진에 헌신했다. 일생동안 불우한 이웃을 위해 몸소 사랑을 실천했다. 특히, 가난한 환자를 구제하기 위해 1968년 한국 최초의 사설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해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이자 현행 의료보험제도의 효시를 탄생시켰다.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 65년간 인술을 베풀며 봉사, 박애, 무소유를 실천했으며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돈으로 수술을 해주고 그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않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던 그는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서울백병원에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현재까지 이영춘, 문창모, 안영모, 김찬우, 이태석, 안수현 등과 함께 "한국의 슈바이처"라 칭송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송정한 분당서울대병원장,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은 이날 소속 전공의 전원에게 이메일로 ‘서울대병원 전공의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보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전공의 여러분, 병원장으로서 저희는 당부드린다”라며 “이제 여러분이 있어야 할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다. 이어 “여러분의 진심은 충분히 전달이 됐다. 중증·응급 환자와 희소 난치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환자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는 돌아와 달라”고 했다. “전공의 여러분의 꿈과 희망은 환자 곁에 있을 때 빛을 발하고 더욱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믿고 있다”라고도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5-8 2024-03-13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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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3
  • 핵 보유 북한과 중국 실상
    김일성이 소련 88여단 대대장일 때 거느렸던 한인 부하는 60여 명이었다. 김일성은 광복 후 소련의 비호와 빨치산 출신들에 의지해 권력을 장악했다. 그때부터 북한은 80년 넘게 물갈이가 되지 않았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특징은 첫째로 형편없이 무식했다는 것이다. 김일성보다 투쟁 경력이 더 긴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일성이 대장 노릇을 한 것은 그나마 글을 알았다는 이유가 컸다. 빨치산 출신 가운데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자는 손꼽을 정도였고 대다수가 글을 읽지 못했다. 6·25전쟁 때 빨치산 출신 북한군 장성 다수는 지도도 볼 줄 몰랐다. 1960년대 초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 빨치산 출신들이 권력을 장악했지만, 장관급 자리에 오른 자들이 글을 몰라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가나다라’부터 공부해야만 했다. 하지만 머리가 굳어 끝내 배우지 못한 자도 많았다. 그들을 가르친 교장은 일제 때 공부했다는 이유로 나중에 양강도 오지로 추방됐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두 번째 특징은 강한 권력욕과 무자비한 정적 숙청이었다. 한때 사지를 함께 넘었던 이들은 위기 때마다 똘똘 뭉쳐 때로는 암살로, 때로는 회의장에 총을 들고 들어가 협박도 하면서 반대파를 차례로 제거했다. 그나마 공부를 했던 남로당파, 연안파, 소련파, 국내파 등은 무식하고 용감한 빨치산파를 당하지 못했다. 빨치산 패거리는 전국에 정치범수용소를 만들고 정적은 물론이고 불평하는 사람과 유식한 사람들까지 모두 가둬 버렸다. 빨치산 패거리의 세 번째 특징은 조국과 민족 따윈 안중에 없었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실컷 누리고도 모자라 대대손손 대물림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2021년 마지막 빨치산 1세가 사망했다. 김주애는 빨치산 패거리의 4세이다. 현재 북한은 빨치산 2∼4세의 세상이다. 이들은 대를 이어 ‘조국과 인민’을 입에 달고 산다. 북한이 지난 2023년 3월 9일부터 2~3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런데 과거와 차이가 있었다. 북한은 과거 한미연합군사훈련 동안엔 도발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023년 2월 19일에는 해상 800m 상공에서 핵미사일 폭발 시험까지 했다. 북한은 왜 핵 야욕을 멈추지 않을까? 그 원인은 뻔하다. 미국의 핵 위협을 구실로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야욕 역사는 길고도 길다. 핵 개발 이론 연구부터 따지면 1946년부터 시작했다. 33세의 김일성은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영원할 줄 알았던 일본이 하루아침에 항복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는 그 ‘신비의 무기’에 강한 집념을 가졌다. 그 이후 몰래 숨어서 더디게 핵 개발을 하다가 가속페달을 밟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바로 1992년 8월 한·중 수교다. 1990년 한·소 수교에 이어 한·중 수교는 북한이 더는 자국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피로 맺은’ 북·중 관계를 뿌리째 뒤흔드는 사건이었으며 북한으로서는 중국의 배신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핵 개발은 유일한 안보적 대안이 돼 버렸다. 김정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기대할 수 없고 앞으로는 중국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우리는 정신적 원자탄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사상과 제조과정에 있는 물질적 원자탄과 노동 3호 미사일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1979년 미·중 수교에 이어 1992년 한·중 수교로 중국으로부터 포기의 두려움을 더 갖게 됐다. 김정일 말대로 결국 믿을 것은 원자탄과 미사일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2024년 3월 미국 안보 전문지 ‘National Interest’(국가 이익)의 최신호 기사 제목이다. '그렇다, 중국이 북한을 침략할 수도 있다.' ‘Yes, China could invade North Korea.’ 돌연 대한민국이라 호칭하며 무력 통일을 외치는 북한에서 정권 붕괴 등 돌발 상황이 발발할 경우, 중국군이 북한을 급습해 꼭두각시 정권을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안보 전문지 ‘National Interest’(국가 이익)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은 북한과 1300㎞ 넘는 기나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한이 미국 영향력에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중국에 북한은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하다. 북한이 중국에 기대는 의존국이기는 하지만, 근래 껄끄러운 양상이 산발적으로 이어져 왔다. 북한의 맹렬한 반미 언사와 핵 프로그램이 미국을 자극해 미·중 관계의 주요 쟁점으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중국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도발적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북한 정권이 붕괴하거나 중국에 확실한 위협을 가할 경우에 대비해 군사적 개입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중 하나가 군사 쿠데타, 반란, 경제 내부 파열, 식량 배급 체계 와해 등으로 인한 북한 정권 붕괴 대응 전면적 침공이다. 자국 내 안정에 강박관념이 있는 중국은 북한 난민 수백만 명이 유입되는 사태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난민촌 수용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고 평양까지 중국군을 진격시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난민 이탈을 단속하려 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북한 침공을 감행하게 되면 미리 포섭해 놓은 북한군 지휘부와 내통해 저항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중국에 의존해온 연료 공급을 차단해 북한군을 완전히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북한주도 정권은 김정은 추종 잔당이든, 새로운 군부 세력이든,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다만 당장 중국군이 북한에 진주할 가능성은 작다. 아직은 미국 방패막이로 효용 가치가 있고, 지금으로선 현재 이득이 침공에 따른 정치·경제·군사적 비용보다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욥기 7:1-3 2024-03-11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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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총회의 본질을 위해
    본래의 총회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치적으로 노회적으로 교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계층을 보호하고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견제하고 막는 명실상부한 보수와-진보를 아우르는 믿음의 모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회에도 젊은 지성은 있고 참다운 개혁 정치인들이 있다. 밀실 담합정치의 횡포나 일탈을 견제하는 정신은 살아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총회의 권력 다툼이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차원을 넘어 지역 노선의 물갈이 또는 개혁 세력의 확장이라는 더 넓고 더 의미 있는 개혁 신앙의 판으로 갔으면 한다. 본성과 사상은 변하지 않고 정치인의 선택이 자신의 출세와 동료를 얻으려는 수단이 될 때 정치는 타락한다. 지켜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은 포용과 화합이란 명분으로 끌어안으면 더 큰 분열과 혼란이 닥친다. 이이복 장로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처리는 하나님 나라와 총회를 위한 결단인가, 선하고 믿음직한 정치가 아쉽다. 신자를 정의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는 성경 이야기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성경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퍼뜨리면서 조금씩 더 신앙적인 존재가 된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대서부터 시작된다. 꽃을 좋아해 꽃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화가 이중섭이 남긴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가 있던 시절, 그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는데 하루는 친구 아내가 식탁에 꽃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간 이중섭이 한참 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 빈손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모든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꺾을 꽃이 없었다.” 이런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오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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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PINION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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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대통령과 전광훈 목사
    혼돈의 시대에 한국 사회에 ‘혁명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군(軍)과 대학(大學)뿐이었다. 대학은 4·19 혁명으로 민주당 정부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1년 뒤 군부에 권력을 빼앗겼다. 대학은 조직화 된 세력이 아니었고 군은 조직화 된 세력이었다. 결국 조직된 힘이 이겼다. 그것은 정치 권력이라는 것이 그 시대 필연(必然)의 산물(産物)이라는 데 근거한다. 깨어있는 의식, 조직의 힘, 권력의지, 국민적 요구, 이런 것이 권력을 장악하게 만든다. 군부는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욕구와 효율적 정부를 원하는 정치적 요청을 배경으로 조직적 추진력 그리고 구성원의 권력욕을 잘 조합해 집권에 성공했고 30여 년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25년 후 대학의 좌파 운동권을 조직화한 586(대한민국의 세대 중 하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생을 지칭하는 표현. 1990년대 중후반에는 30대여서 '386세대'라고 불렸고, 2022년 기준으로는 50대여서 '586세대'라고 불린다. 인텔의 CPU 80386를 탑재한 386 컴퓨터에 빗대어 1960년대생 전체를 386세대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시초)세력이 마침내 한국의 정치 권력을 장악했다. 문재인 좌파 정권의 등장이 그것이다. 그러면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가 일조한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이 기성 정치권 출신이 아니고 검찰 수장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것은 어떤 시대적 요청과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 자신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공정과 법치를 앞세웠다. 반면 전광훈은 자유와 신앙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리고 둘 다 국가 안보와 나라의 이념적 정체성 회복을 강조했다. 운동권 정권과 좌파 교계의 내로남불, 유아독존적 비리를 사정(司正)하라는 국민의 요청이 팽배했다. 그래서 검찰이라는 사정 기관 수장이 청소 전문가로 등장하고 세례 요한 같은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가 친북 좌파를 비판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 개혁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국방·노동·교육 등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시대적·국민적 요청에 응한 것이다. 또한 전광훈 목사도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자유 민주 통일을 외치고 추구하는 것도 계시적·교회적 사명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는 2021년 6월에는 국민혁명당을 창당하고 의석확보와 남북 자유 통일을 위해 조직을 다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좌·우는 그동안 크게 왜곡돼왔다. 좌는 친북·용공·반일의 늪에 빠져있고 보수·우파는 친미·친일·반북의 프레임에 방치돼왔다. 특히 좌파 운동권이 신주처럼 모셔온 친북·반미 일변도의 이념적 고질화에서 탈피해 좌파 본래의 진보로 복귀하는 변화를 기대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한다.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앞세워 공정·정의·법치의 날개로 난다면 문재인과 이재명으로 인해 그 본질과 방향성을 잃은 더불어민주당도 정직과 평등과 분배에 중점을 둔 본래 진보의 날개로 나는 것이 한국의 ‘두 날개’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백 년(고려·조선) 중국의 지배하에 ‘속국’처럼 살았다. 그리고 근세에 와서 36년 간 일본에 합병되었다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국의 기독교 정신에 이끌려 대륙을 벗어나 태평양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 70여 년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의해 수백 년을 한반도에 갇혀 살다가 미국과 국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안내로 세계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사는 것은 우리 노력과 지혜의 결산이지만 청교도의 나라 미국과 기독교인 이승만이 그 문을 열고 이끌었음은 '광장의 소리' 전광훈의 외침처럼 진실이다. 이 역사는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 서고 어떻게 처신해야 나라와 민족을 보존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지를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한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는 하나님 형상의 인간다운 삶을 부리가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중국을 선택하면 중국 인민의 현실에서 보듯 믿음이 없이 독재의 압제로 신음하게 되고 미국을 선택하면 미국 국민의 현실에서 보듯 자유 민주주의 국민으로 믿음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자기 백성을 압제하는 중국이 숭배하는 마르크스는 영혼이란 기껏 물질적 현상이거나 종교적 환상이라 하지 않았나. 1843년 스물다섯 살의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비정한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조건의 영혼이며 인민의 아편이다." 마르크스 유물론의 가장 큰 맹점은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과연 왜 목숨을 걸고 이타적인 혁명 투쟁에 나서야 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인간의 도덕적 의무감이나 사명감은 칸트의 표현을 빌자면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어도 이념으로서 요청할 수밖에 없는” 초월적 존재나 형이상학적 가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 말기의 혼란 속에서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장남 이반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게 허용된다.” 이 한 마디로 당시 서유럽에 널리 퍼져나가던 유물론적 인간관의 모순과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의 우려는 20세기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간 좌·우파 전체주의 정권의 정치범죄와 인권 유린으로 실현되었다. 영혼이 없는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과연 어떻게 혁명적 사명감과 숭고한 도덕심을 불어넣을 수 있겠나. 불멸의 영혼도 없고 초월적 존재도 없고 현생 이상의 그 어떤 세계도 없고 천당도 없고 성령의 거듭남이나 성화도 불가능하다면 인간이 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전제는 이재명이나 대장동 무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인간을 더 세속적이고 더 이기적이고 더 탐욕적으로 더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언정 고매한 이타적 영혼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마르크시즘의 최대 모순이자 맹점은 바로 인간을 물질적 존재라 단정하고 그러한 김만배 같은 인간에게 이재명을 위해 물질적 본성에 반하는 자살을 요구하는 혁명적 자기희생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바로 그러한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의 부조리와 모순 때문에 현실의 공산정권은 두 가지 방법으로 “영혼을 주조하고 인민을 훈육”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영혼 속까지 파고드는 강력한 세뇌 교육이고 둘째는 반대자를 색출해서 처벌하는 공포의 정치 운동이다.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 이어지는 70여 년에 걸친 중국의 현대사가 그 점을 웅변한다. 인류 역사에 출현한 모든 공산주의 정권은 예외 없이 국가가 절대 진리를 독점한 후 인민의 의식에 허위로 가린 “올바른” 생각, “올바른” 가치, “올바른” 목적의식을 주입하고 세뇌하는 전체주의 체제였다. 물론 그러한 “올바름”을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은 문빠나 개딸처럼 그 정권의 수혜자들과 용병들밖엔 없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현재 상황을 안정적인 사회로 보고 점진적 변화를 중시한다. 과거에 축적된 전통과 경험을 존중해 오히려 급격히 변할 경우 부작용을 걱정한다. 반면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기존 체제나 제도를 바꿔 새로운 사회를 추구한다. 그러한 성향이 1843년 스물다섯 살의 “종교는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비정한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조건의 영혼이며, 인민의 아편”이라고 외친 마르크스를 문재인이나 이재명 같은 자들이 숭배하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그런 자들과 가까운 맨돈 소강석과 짝을 이룬 불신자 김현성의 임시체제 한기총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평범한 격언을 잊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의도만 강조하면 의도하지 않은 의외의 결과를 마주친다. 그래서 널리 봐야 한다. 최근 북한의 도발에 대해 문재인식의 '예의주시’란 말 대신 윤석열 대통령같이 한기총 사태에 대해 ‘일전불사’의 각오로 대응하겠다는 전광훈 목사 측의 목소리를 듣게 된 건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0~12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욥 7:1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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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5
  • 권순웅 총회장 '샬롬 부흥' 2023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1924년 세상에 나온 동요 '설날'은 100년 가까운 세월을 한국인과 함께한 명곡이다. 매년 한 해를 돌아볼 때면 우리는 심심찮게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 말하곤 한다. 매년 우리 사회에는 어떤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르면 몰라도 내년 또한 다사다난할 것이다. 지난 2022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조사에서 한국이 6위에 올랐다고 미국 US뉴스앤월드리포트(USNWR)가 지난 12월 31일 전했다. USNWR은 이날 ‘2022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the planet’s most powerful countries) 순위를 발표했다. 이는 1만7천 명의 응답을 바탕으로 군사력·경제력·외교력 등을 합산해 85개국을 평가한 것이다. 그것을 USNWR이 매년 발표한다. 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1위는 미국이었다. 2·3위는 중국과 러시아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6위를 차지했다. 4위는 독일, 5위는 영국, 7위는 프랑스, 8위는 일본, 9‧10위는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이었다. USNWR은 설명했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과 빈곤 감소를 경험했으며 현재는 세계 최대 경제국 중 하나이고 세계 최대의 국민 총저축(GNS)과 높은 외환보유고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이 증가했다. 그리고 유엔, G-20, 동남아국가연합, 세계무역기구 등 많은 국제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이 ‘세계 가장 강력한 국가’ 6위로 일본을 앞질렀다. 실로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가 외친 '샬롬 부흥'의 은혜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년이 올해인 것처럼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래야 중심을 잃지 않고 뭔가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열심히 따르고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축복이라는 교훈을 생각해 본다. 개척해서 지금의 주다산교회를 이룬 청년 시절 권순웅 목사의 신앙과 용기는 다른 목사나 교인을 위해 반드시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신을 다져주는 거울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냉혹한 세상에서 오직 성경의 진실과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좌절과 패배에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일어서는 힘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믿음의 용기는 힘든 세상에 지지 않고 끝내 다시 일어서고 살아가는 힘이다. 기도로 반성하고 예측하고 소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용기를 투자하는 사람만이 훌륭해진다. 새해 당신은 무엇에 용기를 내려 하는가. 지금까지 미뤘던 일을 2023년에는 기필코 시작이라도 해보려 한다. 그러노라면 내 나이가 80, 90이겠지만 10년, 20년 그 일을 지속할 시간이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모두가 그렇게 기운을 내서 새로운 2023년 총회 불꽃 말대가리(말씀 대가리) 권순웅 총회장이 전하는 '샬롬 부흥'을 따라 축복과 은혜의 한 해를 보내기를 기도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슥 8:20-23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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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2
  • 불의에 맞선 전광훈 목사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사람은 늘 착잡하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짧은 시간을 푸념하는 표현이 발달했을 듯하다. 순식(瞬息)이 우선 그렇다. 눈 한 번 깜빡이고[瞬] 숨 한 차례 쉬는[息] 시간이다. ‘순식간(間)’, 또는 줄여서 ‘순간(瞬間)’으로 적는다. 눈동자 한 번 굴리는 일은 전순(轉瞬)이자 별안(瞥眼)이다. 우리는 ‘별안간(間)’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가장 짧은 시간은 찰나(刹那)라고 한다. 중국에 전해진 불교의 영향으로 한자(漢字) 권역에 자리를 잡은 음역(音譯) 단어다. 한 차례의 마음이 일었다 사라지는 일념(一念)도 있다. 고대 인도의 시간 기준으로는 찰나가 가장 짧고 그다음이 일념, 이어 순간의 순서란다. 비의 모습에서 유래한 삽시라는 단어도 있다. 앞글자 ‘삽’은 조금 내리다가 곧 그치고 마는 비다. 따라서 ‘삽시’는 역시 길지 않은 시간의 지칭이다. ‘삽시간’이라는 말로 자주 쓴다. 1989년 1월 한경직 목사는 용공적인 WCC에 맞서 반공을 위한 새로운 개신교 연합기관을 만들기 위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韓國基督敎總聯合會, Christian Council of Korea, CCK) 약칭 한기총(韓基總)을1989년 12월 28일 공식 출범시켰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44년째고 한기총 탄생이 33년째다. 그에 견주면 최근 1~2년은 ‘삽시’라고 할 만하다. 길지 않은 그 시간에 활력 넘치던 중국이 크게 생기를 잃었고 반공을 기치로 실립된 한기총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고 보수적인 신학 사상을 지닌 전광훈 목사를 이단으로 모는 등 제정신이 아니다. 그로 인해 한기총 흥망(興亡)과 성쇠(盛衰)의 고비 또한 어느 한 ‘순간’의 마음먹기에 달렸을지 모른다. 교계 정치에서 무질서만큼 두려운 게 없다. 무질서가 휩쓸고 간 교계에 희망의 싹은 돋지 않는다. 무질서는 약한 사람을 더 힘들게 하고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다. 무질서가 낳은 괴물들은 무질서에 지치고 시달린 약하고 힘든 사람들의 절망을 양식(糧食) 삼아 몸을 부풀린다. 히틀러·마오쩌둥·스탈린이 그런 경로를 밟았다. 그들은 전쟁 중에 또는 전쟁 후 적군(敵軍) 숫자보다 많은 자기 국민을 살해했다. 작은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혁명을 찬양하지 않는다. 자유·평등·박애라는 깃발을 휘날리던 프랑스 혁명 다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두대(斷頭臺)에서 목이 잘리고 노동자 천국(天國)을 선포한 볼셰비키 혁명 후 무수한 노동자들이 총살당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무질서와 혼돈(混沌)의 자식인 독재자들은 국민의 귀와 입을 막고 ‘새로운 질서’라고 우긴다. 혁명 귀족, 노동 귀족들은 약한 사람, 어려운 사람 위에 멍석을 깔고 저희들끼리 권력과 이익을 분배하는 독식(獨食) 잔치를 벌인다. 이것이 혁명의 타락 과정이고 촛불 이후 우리 국민이 목격한 진실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어떤 혁명, 어떤 촛불은 우러르고 다른 혁명, 다른 촛불은 위험시하는 분류법(分類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거창한 혁명과 반짝이는 촛불에 감춰진 동일한 덫을 뚫어본다. ‘질서 있는 혁명’은 ‘질서 있는 혼란’만큼 역사에 드물다. 국민이 군중(群衆)을 이루면 달뜬 흥분에 등 떠밀려 폭중(暴衆)으로 바뀐다. 인터넷 군중은 더 빨리 폭중이 된다. 선동가들의 평등은 느리게 뛰는 사람 기운을 북돋워 빨리 달리도록 부축하는 평등이 아니다. 빨리 달리는 사람 발목에 무거운 쇠뭉치를 매달거나 돈에 목을 매게하는 평등이다. 하향(下向) 평준화나 의식의 배금화가 국가나 교계 기관운영의 기본 원리로 정착하면 사회 모든 부분이 생명력을 잃고 정체(停滯)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쇠락(衰落)의 내리막을 구른다. 어느 흥망사(興亡史)든 줄거리는 비슷비슷하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작은 불의(不義)보다 법이 무너진 다음의 큰 무질서를 더 경계한다. 법이 무너진 공백(空白)을 무질서가 메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용의주도(用意周到)한 개혁주의자다. 아둔하고 게으른 보수주의자처럼 변화의 때를 놓치고 뒤늦게 과격한 방법으로 혁명을 진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작은 불씨와 불쏘시개를 적시(適時)에 치워 큰불을 예방한다. 가속(加速)페달만 달린 차를 모는 위선적 좌파와 다르다. 변화가 더딜 땐 가속페달을 밟고 속도가 지나칠 땐 브레이크를 밟는 개혁주의자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혁명 구호가 아니라 착실한 실천에 의해서만 진보는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한다. 역사 속 실례(實例)가 그들의 자신감을 받쳐 준다. 그러기에 ‘민주화 운동가’라고 찍힌 명함을 들이미는 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 설익은 이해찬 류의 ‘20년 계속 집권’ 운운하는 과욕(過慾)도 부리지 않는다. 과욕을 부리지 않기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찰 위에 고위 공직자 수사처 신설, 이단 온상의 한기총이 이단 전문가를 배제하고 이단 감별사를 활용한 이단 정죄 등 곧 드러날 거짓을 행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없다. 적의 위협을 정시(正視)하지 못하는 유화주의자(宥和主義者)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 서야만 현실을 깨닫는다. 문재인같이 대한민국의 선출된 대통령임에도 김정은 앞에서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이라고 비하(卑下)한다 해서 위협은 줄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동맹의 효용과 그 한계(限界)를 안다. 김정은은 핵무기로 한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언(公言)한다. 미국은 북이 서울을 핵 공격하면 북한에 핵 보복을 가하겠다는 확장억제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게 정말 실행 가능할까. 목회자임에도 문재인의 불의에 당당하게 맞선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 같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이 비극적 시나리오에 질문을 던지며 나라를 지키고 자유 통일을 이룰 현실적 대안(代案)을 절박하게 고민한다. 무질서의 해일(海溢)이 세계에 넘실댄다. 휴전선 이북·대만 해협·우크라이나의 무질서는 ‘냉전(冷戰) 질서’도 질서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만든다. 세계 경제는 ‘힘 있는 나라는 책임감이 없고 책임감이 있는 나라는 힘이 없었다’라던 1930년대 대공황 전후를 방불케 한다. 지난 5년 우리 내부 법치주의·노동 현실·교육 현장은 차례로 무질서에 자리를 내주며 허물어졌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무질서를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세우고 가시덤불 위를 뒹굴며 길을 뚫어온 선인(先人)들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다. 번영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다. 나라를 또다시 무질서에 내어줄 수는 없다. 그래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이 16일 동안 이어진 뒤 2022년 12월 8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법과 질서'를 앞세운 지도력은 좌파 세력으로 인한 무질서를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세우고 가시덤불 위를 뒹굴며 길을 뚫어온 선인(先人)들의 초심(初心)을 되살렸다. 그러므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준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살신성인의 공로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시 101:7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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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3
  • 총회 선거 전략
    참 묘한 것이 바둑은 상대가 잘 둬서 지는 경우는 백에 한 판도 없다. 모두가 자신의 잘못으로 진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듯 바둑 한 판에도 수많은 실수가 있다. 결정적 실수는 패착(敗着)이고 사소한 건 실착(失着)이다. 그래서 바둑에 지고 나면 자책을 한다. 화가 난다. 이길 수 있었던 판이라고 생각하기에 분한 것이다.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는 기사도 있다. 왕십리 한국기원 화장실은 대국을 마친 기사들의 흐느낌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이번 총회 임원 선거를 지켜보면서 기자는 김종철 목사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걸 발견했다. 그건 작게는 선거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고 약간 넓히면 승부를 겨루는 모든 게임의 세계, 더 크게 보면 믿음으로 세상을 사는 데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그런 깨달음은 선거 자체에 대한 요령과 전략보다도 훨씬 상위의 개념이기도 하고 믿음의 본질이기도 하다. 바둑의 전략과 기술의 압권은 중국 북송시대인 980년께 반신수(潘愼修)라는 사람이 태종에게 헌상한 것으로 전해지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입계의완(入界宜緩), 상대방 세력권에 뛰어들 때는 너무 깊지 않게 완만하게 착수하라.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해라.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의 허점을 살피라. 이런 비법 10가지가 있다. 바둑계 프로들에겐 이런 것들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모두가 다 안다. 물론 실천은 다른 영역이다. 그러나 정작 큰 승부가 펼쳐질 때 중요한 것은 마음 자세다. 감정을 억제하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겁먹지 않고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않는 자세. 그게 바둑이 세상 사는 지혜와 연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프로 바둑 기사가 이길 수 있는데 진 뒤 이런 말을 했다.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질까 봐 두려워진 거죠. 전투 바둑이 제 장기인데 복잡한 전투에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삐끗하면 낭떠러지입니다. 그게 두려웠던 거죠. 이길 확률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쉽게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려고 둔 게 아니라 지지 않으려고 둔 것입니다. 움츠러들었습니다. 어리석은 거지요." 교만이 느슨함을 낳았고 느슨함은 패배를 부르기 시작했다. 전략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실용 지식이다. 오늘날의 문화는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가치를 장려하며 집단에 적응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조하며 살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호전적이거나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지 말도록 배워왔다. 남들에게 인기도 못 끌고 고립되는 등의 사회적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조화와 협동을 중시하는 이러한 가치는 불여우 김영우가 좋아하는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통해, 의뭉스러운 문재인 같은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 대중에게 보여 주는 평화로운 외양을 통해, 때로는 거짓 변설가 이재명같이 교묘하게 또 때로는 노골적으로 그 허위를 통해 우리들 삶에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는 이런저런 훈련도 받고 준비도 하는데 반해 실제 세상에서 대면하는 것, 즉 인생의 전쟁이나 경쟁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욥 7:1 BC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기에 활동했던 전설적인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Iliad)는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다. 이름은 트로이인들의 왕성인 ‘일리온’에서 유래하였다. '일리아스'란 이름은 '일리온의 노래'란 뜻이다. 오디세이아(Odysseia)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양의 문학예술과 문화의 전범(典範)으로 여겨지고 있다. 10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의 50일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노래한 것으로, 모두 1만 5693행으로 되어 있다. 주제는 그리스의 전설적인 전쟁인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51일간의 사건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의 장군인 아킬레우스가 중심이 되어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을 다뤘다. 그 작품에서 전략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좋다. 내 아들아. 네 전략을 발전시켜 게임의 상이 네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무나. 힘보다 전략이 더 나은 나무꾼을 만들게 마련이다. 전략은 청포도 빛 바다에 세찬 바람이 몰아치더라도 키잡이가 뱃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해주느니라. 또한 전략은 이륜 전차 경주에서도 승리를 안겨준다. 어떤 기수는 말들과 마차를 믿고서 생각 없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경주 내내 고삐를 조이지 못한다. 그러나 더 적을 말로도 이기는 법을 아는 자는 말뚝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모퉁이를 돌 때 바싹 붙으며 처음부터 선두를 주시하면서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군대의 지도자’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strategos'에서 유래한다. 전략은 이런 의미에서 지휘의 기술, 즉 전쟁을 통솔하며 어떤 대형으로 배치하고 어떤 지형에서 싸우며 우위를 점하기 위해 어떤 책략을 써야 하는지 등을 결정하는 병술을 뜻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군 지휘관들은 상대보다 앞서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계획할수록 이길 확률도 더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년 7월 20일 ~ 기원전 323년 6월 10일)이 페르시아 군대에 승리를 거뒀던 것처럼 기발한 전략을 동원하면 규모가 더 큰 군대를 격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전략을 활용하는 꾀바른 상대를 맞이하는 경우에는 고전을 겪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장수는 상대편보다 더욱 전략적이고 더운 우회적이며 더욱 영리해져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휘의 기술도 복잡해졌고, 더불어 더욱 많은 전략이 고안되었다.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만 그 개념은 전 문화, 전 시대에 걸쳐 나타난다. 전쟁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다. 전쟁은 인간 본성의 악함과 선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적인 격전장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비전통적이고 더 더러운 전략들(게릴라전, 테러 등)로 진화하는 모습은 온갖 것들이 다 통하는 사회의 진화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전쟁에서 성공하는 전략들은 전통적이든 비전통적이든 시대를 초월한 심리학에 기반한다. 한편 군사상의 커다란 실패 사례는 어떠한 격전장에도 힘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준다. 전쟁에서의 전략적 이상, 즉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며 최소한의 인명 및 자원 손실로 승리를 거두는 전략은 우리 일상의 전투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으며 얼마든지 거기에 적용할 수 있다. 자아는 그 자아를 통해 스스로를 극복한 사람에게는 친구이나 자아를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는 전쟁터의 적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3-27 2022-11-22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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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총신대 존재 이유
    "文"의 어원은 "인간이 만든 무늬"라는 뜻이다. 흔히 우리가 입는 옷에 그려진, 즉 인간에 의한 무늬라는 말이다. 인간과 사회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으로 문학(文)·역사(史)·철학(哲)으로 대표된다. 최근에는 법률·경제학·언어·지리 등도 포함해 인문학(人文學)으로 불린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져 버리면 그것들도 함께 없어져 버리는 것, 그것들에 대해 배우는 것이 문과이다. 반면 "理"는 "돌에 새겨진 무늬"를 말한다. 즉 자연이 그린 무늬이다. 자연계의 원리나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물리학·화학·동물학·천문학 등이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전부 사라져 버려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 그것들을 배우는 것이 이과이다. 오랫동안 철학이란 바로 앎의 추구고 그 앎은 과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문학의 사유와 과학의 실험이 합해서 진리와 진실에 다가서며 통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얼마 전까지도 자연과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불렀던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 들어 학문 분야에 변화가 생긴다. 학문이 발전하고 분화를 거듭하면서 철학과 과학이 분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학문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으로 근본적으로 구분됐다. 인문과학에서도 사회과학 등이 자립하게 된다. 철학이라는 하나의 나무에서 여러 갈래의 학문이 파생된 것이다. 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은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神學, theology)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신, The Divine, The God) 그 자체를 성경이나 이성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연구하거나 신과 관련된 교리와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방 기독교에서 쓰이는 신학(theology)이라는 낱말은 테오스(theos 신)에 로고스(logos 학문, 말)가 결합 된 단어이다. 한국어에서 특별한 수식어 없이 신학이라는 낱말을 쓸 때는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을 가리킨다. 단어 의미로는 종교적 초월자로서 신개념이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서 다루는 신에 관한 학문을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용어 그대로 기독교의 신과 율법, 교리에 대한 모든 연구이다. 좁은 의미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를 의미한다. 기독교의 성장과 함께 2-3세기부터 학문으로서 틀을 갖추기 시작해 중세시대에 유럽인의 관점에서 기독교의 신과 관련된 일체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신학이라는 용어는 원칙적으로 기독교 신학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 기독교 신학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학문체계에서의 신학 역시 흔히 기독교 신학을 가리킨다. 교파에 따라 개신교 신학, 로마 가톨릭 신학, 정교회 신학, 성공회 신학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좀 더 세밀하게 분류가 된다. 구약신학, 신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선교신학, 기독교 상담학 등으로 나뉜다. 대학의 전통이 가장 똑바르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제도에 있어서다. 우선 첫째로, 학문의 조직체로서의 대학(university)이라고 하는 명칭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널리 조합(corporation)이나 길드를 의미하며 중세에는 그렇게 불린 공동체가 많았다. 그러므로 학도들의 공동체는 점차 한정되어 그것이 곧 "교사와 학생의 학문적 공동체 내지는 조합"(universitas societas magistrorum discipulorumque)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게 발전해 세워진 세계 최초의 대학은 1088년에 세워진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이다. 당시 유럽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인 베네치아, 볼로냐 등에 교회 자금과 세상의 온갖 물자가 몰렸다. 여기서 복잡한 "상법(商法)"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관계자들은 "상법"을 공부하기 위해 전문가를 초빙했다. 이 모임이 수사학, 논리학 등으로 범위가 넓어져 오늘날 대학이라는 근대 교육기관이 탄생했다. 신학교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313년 유럽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보편교회 시기에 전문적인 성직자를 육성하기 위한 훈련 학교를 각 지역 교회인 콘스탄티노플, 로마, 안디옥,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교회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한 것이 기원이다. 최초의 정식 신학교 설립 기록은 4세기 성 대 바실리우스(라틴어: Sanctus Basilius Magnus 329년 또는 330년 - 379년 1월 1일 또는 2일)의 활동으로 로마제국의 갈라티아 주의 앙키라(현재, 터키 앙카라)에 성직자 육성을 위해 학생을 모아 가르친 학교가 최초였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와 라오디케이아의 아폴리나리스 등 초기 그리스도교의 이단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니케아 신경을 지지한 유명한 신학자였다. 그는 뛰어난 신학 지식과 더불어 정치적으로도 유능한 인물로서 자신의 능력으로 니케아 신학을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그가 세운 학교들을 '신학교'(Seminary)라 했는데 라틴어로 '세미나리움'(seminarium: 씨앗을 키워 가꿈)에서 기원한 단어이다. 성직자들을 육성하는 학교의 의미로 일찍이 사용되었다. 현대적인 신학대학원의 원형은 16세기 서방교회의 종교개혁 이후 유럽 개신교에서 목사를 육성하기 위한 전문 개신교 신학교를 설립하며 나타났고, 현재의 신학대학원의 뿌리가 되었다. 그러면 한국의 장로교 선교와 신학교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미국 북장로교는 1884년, 호주 장로교는 1889년, 미국 남장로교는 1892년부터 대한제국에 선교를 시작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내한하여 선교를 시작한 초기의 장로교 선교사들은 1889년 미국 북장로교선교회와 호주 빅토리아 장로회 간의 '장로교선교연합공의회'(The United Council of Presbyterian Missions)를 결성했다. 그리고 1893년 미국 북장로교, 남장로교, 호주 장로교 소속 선교사들 간의 '장로교선교공의회'(The Council of Missions)를 결성하여 효율적인 선교 활동을 추구하였다. 이후 조선인 장로교인들이 늘어나면서 1901년 9월 20일 선교공의회 소속 선교사 25명은 조선인 3명의 장로 및 6명의 조사들과 함께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를 결성하였다. 초창기 한국교회의 신학교육은 1890년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선교사들이 학생들을 서울로 보내 '신학반'(神學班)이라는 이름으로 1개월씩 공부시키던 과정이 있었으나 이는 단기 과정에 불과하여 체계적인 한국인 목회자 양성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후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가 신학교 설립을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1901년 5월 15일 평양에 '최초 학교의 공식명은 '대한야소교장로회신학교'(大韓耶蘇敎長老會神學校)였지만 1910년 한일합방 후 일제의 강요로 '대한' 대신에 '조선'이란 교명을 사용하였다.'를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으로는 모펫(S. A. Moffet, 한국명 마포삼열) 선교사가 취임했다. 평양 대동문 옆 술막골에 있던 마포삼열 선교사 집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한옥이었는데 1924년에 철근콘크리트 4층 건물로 증축한다. 첫 학생은 방기창·김종섭 2명이었고, 1907년 6월 제1회 졸업생으로 서경조·방기창·한석진·양전백·송인서·길선주·이기풍 등 7명을 배출하였다. 1908년 미국인 여성 맥코믹(Nettie F. Mccomick)의 기부금으로 평양 하수구리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일제가 폐교했다. 광복 후 제35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결의로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장로회신학교'로 재개교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침공(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으로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교로 개편하고 대구시 중구 대신동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다가 1953년 7월 27일 22시 (오후 9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다시 서울 중구 회현동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1955년 4월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가 인가되었다. 1959년 장로교회는 합동과 통합이 분열하였다. WCC문제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단이 되어 서로 이탈한 것이었다. 또한 박형룡 교수의 3천만 환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총회신학교 건축기념 3천만 환을 사기당한 박형룡 교장에 대한 인책문제와 관련한 대립도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었다. 결국 승동과 연동으로 분리되었고 재결합의 노력도 있었지만 지금의 합동과 통합으로 나뉘어지는 결과가 되었다. 이들이 각기 서울의 승동교회와 연동교회에서 별도의 총회를 개최함으로서 결국 승동 측과 연동 측 즉 합동과 통합으로 분리됐다. 1965년 백남조 장로(초대 재단 이사장)의 헌납으로 사당동 산 31-3 소재의 교사를 신축해 이전하고 1969년 12월 4년제 정규대학인 총신대학으로 개편하였다. 2022년 9월 23일 교단 기관지와의 대담에서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총신 총장 길자연(2013.12.30 ~ 2015)과 김영우(2015.8 ~ 2018.10)로 엉클어진 총신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문제해결에서 관계자의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추구적이어야 하고 목적이 고상해야 한다. 총신대 발전을 위한 논의도 어떻게 하는 것이 총신과 교단에 유익할지를 염두에 두고 논의하고 협력해야 한다. 특히 재단이사 증원은 중요한 현안이며 총회의 결의이기도 하다. 앞으로 총신대재단이사회와 총회는 이 문제를 위해 긴밀히 소통하며 협력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이때 총회는 이해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재단은 협조의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4세기 성 대 바실리우스가 성직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세운 학교들을 '신학교'(Seminary)라 했는데 라틴어로 '세미나리움'(seminarium: 씨앗을 키워 가꿈)에서 기원한 단어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권순웅 총회장이 강조한 총신의 태도가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럴듯한 직업을 얻기 위해 신학을 배운다면 그건 이미 신학이 아니다. 성경과 산학을 통해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며 자기 삶을 바꾸어나갈 힘을 얻고 그것을 실천하고 전하는 것이 신학을 공부하는 목적이고 그것을 가르치고 익히게 하는 것이 총신대의 존재 이유여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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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0
  • 지도자의 호칭
    일상에서 잠시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묻고 답을 들으며 교제를 나누노라면 산란한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생각조차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아니던가. 조선 시대 궁궐엔 건물에도 품계가 있었다. 왕이 업무를 보던 전(殿), 왕족이나 정승이 쓰던 합(閤), 판서급이 쓰던 각(閣) 등이다. 임금이 묵던 전과 ‘그 아래 엎드려 아뢴다(下)’라는 말을 합쳐 왕을 ‘전하(殿下)’라고 불렀다. 황제를 뜻하는 ‘폐하(陛下)’는 궁전의 ‘섬돌(陛)’ 즉 계단 아래에서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년 3월 17일~ 1598년 9월 18일))를 이르던 ‘합하(閤下)’는 왕족이나 정승을, ‘각하(閣下)’는 판서 이상 대신을 지칭하던 호칭이었다. 일본 메이지 시대엔 고위급 군 장성을 각하라고 했다. 일본 식민지 시절 총독을 ‘갓카’라고 불렀다. 이승만 정부에선 대통령을 각하로 부르도록 했다. 한때 부통령, 총리, 고위 장성까지 각하로 불러 각하 호칭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들어 각하는 대통령만의 고유 존칭이 됐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할 때도 “각하”라고 불렀다. '보통 사람’을 강조한 노태우 정부는 각하를 가급적 쓰지 않도록 했다. 김영삼 정부는 공식 석상에서 금지했다. 그래도 청와대 내에서 자신들끼리는 모두 ‘각하’라고 했다. 시중에선 ‘가카’란 말로 비하하기도 했다. 테디 베어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봉제 곰 인형이다. 테디라는 이름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년 10월 27일 ~ 1919년 1월 6일)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유래했다. 1902년 사냥을 나간 루스벨트는 사냥꾼들이 곰을 잡아 와 총을 쏘라 했지만 페어플레이가 아니라며 거부했다. 이 일화를 신문 만평으로 본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곰 인형에 루스벨트의 애칭인 ‘테디’를 붙이면서 테디 베어가 탄생했다. 기독교의 사도는 신약의 그리스어로 '아포스톨로스'이고 영어로는 Apostle이다.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께서 직접 파견하신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도(使徒)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 역을 번역하며 '파견된 자', '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샬리아'를 번역하는 단어로 사용된 데서 유래했다. 기독교의 신약성경에서 사도의 자격은 성육신하여 역사 인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 즉 역사적 예수를 만났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다. 이후 성령 강림하신 오순절에 탄생한 교회를 탄압하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바울을 넓은 의미에서의 사도로 인정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로써 말 많았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 “한나라당이 정권 잡으면... 토론 한번 해보고 싶은데 캬, 그놈의 헌법이 못 하게 해요.” 속내를 드러내는 데 당당했던 그도 임기 말엔 “언어와 태도에서 (대통령다운) 품위를 만들어나가는 준비가 부족했던 점은 인정한다”라고 했다. 문재인은 고 노무현의 정반대되는 ‘안티테제’(反定立, antithese)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상주 역할을 하면서 ‘대통령다운’ 태도로 주목받았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적도 없다. 즉흥 발언 없이 주로 A4 용지에 적힌 원고만 읽었기 때문이다. 얼굴도 ‘스펙’인 문 대통령이 반듯한 태도로 또박또박 읽는 원고에 거짓이 섞였다고 착한 국민은 도저히 상상을 못 한다. 2017년 6월 문재인은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 순위였다”라며 고리1호기를 영구정지시키는 탈원전 정책을 발표했다. 40년간 방사능 유출 사고 한번 없었던 세계적 수준의 원자력발전 기술과 국가 인프라를 무너뜨리는 역사 퇴행의 시작이었다. 2022년 4월 11일 문재인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역사는 때로는 정체되고 퇴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막말도 말실수도 아니다. 대선에서 패하고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의 눈에는 역사가 정체되거나 심지어 퇴행할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찍은 국민이 무려 1639만여 명(48.56%)이다. 문 대통령이 5년 전 받은 1342만여 표(41.08%)보다 297만여 표나 많다. 임기 말인데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44%의 지지율을 누리는 문 대통령의 괜한 걱정이다. 하지만 긍정 평가의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답변이 ‘모름·응답거절’(24%)이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임기 말 대통령들은 아들 비리 등 주변 비리 때문에 곤경에 처하곤 했다. 문재인은 한사코 특별감찰관을 두지 않았다. 검찰과 사법부까지 장악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원전 경제성 판단 문제 등에 대한 수사를 피했기 때문일 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지키겠다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한 게 얼마나 부끄러운지 거울 한번 들여다봤으면 한다. 이미 ‘문빠’들은 왜 문 대통령을 못 지키냐고 문자폭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문빠의 특징이 맹목적 지지라고 전북대 오현철 교수는 2021년 논문 ‘문재인 정치 팬덤의 복합적 성격’에서 분석했다. 문빠가 위험한 건 대통령 친위대처럼 불충의 정치인에게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자행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이를 ‘양념’이라고 부추김으로써 ‘봉건적 인치(人治)’의 시대로 역사를 퇴행시켰다. 국민주권과 법치주의라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2017년 대선 전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에서 문재인은 “우리 권력의 기반은 도덕성과 역사적 소명의식”이라고 했다. ‘운동권 정부’의 도덕성은 조국, 윤미향 등에서 바닥까지 보여준 상태다. 북한이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항일독립운동세력에 의해 세워졌고 대한민국은 정통성 없는 나라처럼 취급하는 당신들의 ‘좌파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용서하기 어렵다. 독립투사 후손을 대대손손 우대하는 세습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불평등한 ‘신 양반 사회’다. 역사를 조선시대까지 후퇴시킨 문재인은 자신의 뼈아픈 정치 실패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해 주었으면 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의 대선 패널 조사에 따르면 투표에 영향을 미친 이슈 1위가 ‘부동산정책 실패’였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규제와 세금 정책만 쏟아낸 장본인이 문재인이었음을 시사했다. 전문가를 무시하고 문 대통령의 고집으로 온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것을 진심으로 사과할 때가 됐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겠다던 취임사를 한번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아무리 ‘쇼통’에 능했던 문재인이었다 해도 “정치의 역할이 크다”라며 “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배려하고 포용하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또박또박 읽는 식은 더는 봐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국민을 갈라치기 하며 5년간 너무나 깊은 혐오와 차별의 정치를 해왔다. 윤 당선인의 취임식 슬로건이 ‘다시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문재인의 서슬 퍼렇던 시절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은 주사파 간첩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투쟁한 광화문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목사로서 ‘자유의 사도’라는 칭호를 들을만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는 말씀을 전하고 실행했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의 진리에 근거한 ‘자유 통일’을 위한 투쟁 덕에 윤석열 대통령이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가 지금껏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남쪽의 여야 대립을 넘어 북한의 이념적 대리(代理)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0여 년 한쪽엔 미국과 동맹을 기조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세력, 다른 쪽엔 북한의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이 결합한 김일성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 6·25 전쟁이 그중의 하나다. 종북 운동권이 좌파를 장악했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대안 없는 통일과 굴욕적 평화론은 이제 볼 만큼 봐왔다. 결과는 북한의 전쟁력 강화에 이바지했을 뿐이다. 5~6건의 범법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명 씨를 당 대표로 뽑은 운동권 정당은 이제 한계에 왔다. 민주당에도 젊은 세대가 있다. 이들은 일반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친숙하고 또 정직하다. 이 나라 좌파·진보의 본령을 철 지난, 효율성을 상실한 구시대적 이념·운동권의 횡포에 더 이상 맡겨둘 수 없다. ‘자유의 사도’ 전광훈 목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성경은 말씀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 9:17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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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3
  • 배광식 "범죄의 재구성" 2
    위대한 인간은 악당과 싸우고 저열한 인간은 악당에게 아부한다. 히틀러를 대하는 태도에서 처칠과 체임벌린의 "급"이 갈렸다. 106회 총회장 배광식은 총회 역사의 처칠이었을까, 체임벌린이었을까, 아니면 국민의 힘 김기현 장로가 대적하는 이재명이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능규 목사가 들려주는 녹취록에서 들리는 배광식의 목소리는 화자에게 아부하는 소리로 넘쳤다. 2022년 8월 18일 순천노회 모임에서 참람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불의한 자들의 허물을 덮는 "은혜로운 동행"의 빌어먹을 기개는 온데간데 없었다.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 거짓은 부패보다 위험하고 성경이 금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하얀 거짓말(white lie)처럼 선의로 할 때도 있고 천진한 아이들이 하는 노란 거짓말, 허세에서 나오는 파란 거짓말도 있다. 가장 경악할 일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작금에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대는 한국형 후흑(厚黑 사전적인 의미로는 관리의 파렴치한 작태, 즉 아첨을 일컫고, 윗사람을 속이며 아랫사람을 업신여기는 태도)들이 크게 성업 중이다. 그중 이재명, 문재인, 소강석, 배광식 등이 압권이다. 그러나 앞으로 그들이 받게 될 최고 벌은 그 어떤 말을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2022년 9월 21일 제107회 총회장 이취임식에서 행한 배광식 이임사에 담긴 거짓은 최악의 프레임이다. 선진국에서 공인의 그런 거짓말은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우리 총회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년 5월 25일 ∼ 1882년 4월 27일)은 말했다. “정직은 가장 확실한 자본이다.” 더 나아가 성경은 거짓 증언을 십계명 계율로 금하고 있다.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출 20:16 주님은 배광식과 이재명 같은 자들을 친히 정죄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한복음 8:44-47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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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7
  • 돌이킬 수 없는 총대들
    ‘둠스데이(최후의 날)’라는 별명을 가진 핵 어뢰를 장착한 러시아 최첨단 스텔스 핵잠수함 ‘벨고로드(Belgorod)’가 러시아 백해 기지에서 돌연 자취를 감췄다고 2022년 10월 3일(현지 시간) 미국 폭스뉴스, 이스라엘 내셔널뉴스 등이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벨고로드의 핵 어뢰가 항공모함뿐만 아니라 해안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위력을 가졌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ㆍNATO)를 향해 핵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문재인이 굽신거리던 북한이 2022년 10월 4일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쏜 것은 2017년 9월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지역에 한때 피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한미 간 공조 회의를 통해 상황을 긴밀히 공유하고 “북한의 어떠한 위협과 도발에도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굳건히 할 것”을 확인했다고 합참이 전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30차례 넘게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가운데 4일 문제의 당사자는 문제를 삼지 않고 문재인은 딴 나라에 사는 자처럼 “남북한 모두 더이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멈추고 대화 모색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참으로 이재명처럼 낯 두꺼운 자다.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 대변인은 10월 3일(현지시각) 성명에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멈추고 핵실험을 삼가며 미국과 한국, 그리고 다른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표명한 대화 제의에 건설적으로 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뚱보 김정은은 이판사판이니 삶은 소 대가리 같은 자들의 말을 들을 리 없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럴만한 위인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처럼 돌이킬 수 없는 목사 칠십 정년제를 반대하는 이순우 같은 교단 총대들이 후회하지 않는 비결은 단 하나, 지금 바로 그들이 북한처럼 신앙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14세기 중세 영국의 프란치스코회 탁발수도사, 신학자인 오캄의 윌리엄(William of Occam 1287년경 - 1347년 4월 10일)은 체계적 사색가라기보다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수도사였다. 중세 시대에 성씨는 귀족들이나 가질 시기라 이름은 윌리엄이고 오컴은 성이 아니라 고향 마을의 지명이다. 윌리엄이 죽은 후로도 윌리엄의 방법론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온다. 마르틴 루터만 해도 윌리엄의 열렬한 추종자라 그를 나의 스승(Magister Meum)이라 부를 정도. 새로운 길은 기존 학문 질서에 대항하여 새로운 학파가 개설되었고 당연히 종교개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신학적 방법으로 모두 윌리엄의 새로운 길, 노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마르틴 루터는 신학적으로는 윌리엄을 비롯한 새로운 길 학자들과 1510년 중반에 완전히 결별했다. 루터의 신학 이신칭의는 기존의 아퀴나스 학문과 오컴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으로 돌아간 것이다. "실체를 필요 이상으로 복잡화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명제는 그의 이름을 따서 '오컴의 면도날'이라 일컬어진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또는 Ockham's Razor)은 흔히 '경제성의 원리' (Principle of economy), 검약의 원리(lex parsimoniae), 또는 단순성의 원리라고도 한다. 유명한 두 명제는 다음과 같다. "많은 것들을 필요 없이 가정해서는 안 된다."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간단하게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하자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쉬운 말로 번역하자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given two equally accurate theories, choose the one that is less complex)'라는 뜻이다. 여기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 버린다는 비유로, 필연성 없는 개념을 배제하려 한 "사고 절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라고도 불리는 이 명제는 현대에도 과학 이론을 구성하는 기본적 지침으로 지지받고 있다. 예컨대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는 나무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어떤 장치를 이용해서 나무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지 않도록 적절히 그을린 다음 자신이 그을렸다는 흔적을 완전히 없앤 것일 수도 있다. 이 상황을 판단할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해 본다면 나무가 그을린 것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나무가 벼락에 맞아서 그을린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적은 수의 가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논쟁 속에서 오컴은 1324년의 어느 날 무의미한 진술들을 토론에서 배제 시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지나친 논리 비약이나 불필요한 전제를 진술에서 잘라내는 면도날을 토론에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오컴은 "쓸데없는 다수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를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바꾸면 "무언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가정을 사용하여 설명해야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더 짧게 말하면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은 다음과 같이 일종의 계율처럼 말해지기도 한다. "가정은 가능한 적어야 하며 피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적은 가정(假定)으로도 충분하다면 불필요하게 많은 가정은 사유의 면도날로 다 잘라내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단순성 내지 간결함의 원리는 오늘날 미니멀리즘의 사조나 이른바 단색화의 미학으로도 우리 주위에 알게 모르게 밀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심각하다고 할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최근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검찰과 법원의 독립과 중립성을 근저에서 뒤흔들고 있다. 정치적 분란을 사법부로 가져가는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양당 구도가 고착화하고 법조인들의 정치권 진입이 늘어나면서 온갖 고소·고발과 가처분의 싸움터로 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정의를 수단화하고 거래하여 법적 정의를 무력화시키는 일들이 서슴없이 도모되고 있는 징후이다. 얼굴의 피부를 상하게 하지 않고 수염을 깔끔히 깎아내려면 면도날이 예리하면 예리할수록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든 날카로운 칼날에 자상을 입을 위험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불의의 치명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난 정권 말 쫓기듯이 통과시킨 소위 "검수완박" 입법의 경우와 같이 법이면 다 된다는 도그마로 칼을 휘두르거나 타협과 조정의 정도를 저버리고 사법을 마치 용병처럼 부리려고 한다면 스스로의 존재 이유도 부정될 따름이다. 법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지언정 최선의 수단일 수는 없다. 대철학자 칸트가 면도날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남긴 말을 오늘의 우리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실체의 다양성은 섣불리 깎아내려서는 아니 된다." 윌리엄은 신앙 주의자였다. 그는 “오로지 신앙을 통해서만 신학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논리나 합리성이 밝혀낼 수 있는 어떠한 법칙도 필요 없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다. 그러니 하느님의 그 길은 이성에는 열려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윌리엄은 학문은 발견의 문제이지만 신은 유일한 존재론적 필연성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윌리엄 본인이 형식화한 오리지널 오컴의 면도날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 증거되거나 경험으로 알려졌거나 신성한 경전의 권위로써 증명되지 않은 한 그 무엇도 이유가 주어지지 않으면 사실로 상정될 수 없다.” 윌리엄에게 있어 유일하게 진실로 필연적인 존재자는 기독교의 신, 하나님 한 분뿐이었고 그 밖에 다른 모든 것은 우발적인 것이었다. 윌리엄이 충족이유의 원리를 수용하지 않은 것, 본질과 실존의 구분을 거부한 것, 토마스주의를 반대한 것이 모두 그런 이유에서였다. 윌리엄의 존재론적 검약성은 인간의 이성이 영혼의 불멸,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로 이어진다. 그러나 윌리엄의 결론은 그런 것들을 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신론이 아니라 그런 것들은 오로지 계시에 의해서만 가르침 받을 수 있는 신앙의 영역이라서 이성이 범접할 수 없다는 신앙 주의였다. 윌리엄이 죽은 후로도 윌리엄의 방법론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온다. 마르틴 루터만 해도 윌리엄의 열렬한 추종자라 그를 나의 스승(Magister Meum)이라 부를 정도. 새로운 길은 기존 학문 질서에 대항하여 새로운 학파를 개설되었고 당연히 종교개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신학적 방법으로 모두 윌리엄의 새로운 길 노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마르틴 루터는 신학적으로는 윌리엄을 비롯한 새로운 길 학자들과 1510년 중반에 완전히 결별했다. 루터의 신학 이신칭의는 오정호 목사가 좋아할 마태복음 7:21-23 KRV 것 같은 기존의 아퀴나스 학문과 오컴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으로 돌아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2022-10-04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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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4
  • 배광식 동행 누구
    1952년 25세에 국왕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70년이라는 영국 최장 재위 기록을 세우고 96세에 영원히 잠들었다. 진단서에는 여왕이 2022년 9월 8일 오후 3시 10분 숨졌다고 나와 있다. 영국 왕실이 서거를 발표하기 3시간 20분 전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와 그의 뒤를 이을 리즈 트러스 총리를 만났다. 이날 트러스 총리와 찍은 사진 속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손등은 보라색으로 멍들어 있었다. 지난 70년 동안 영국과 영욕을 함께했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주검을 실은 관이 9월 19일(현지시각) 오전 장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들어섰다. 여왕의 뒤로 국왕 찰스 3세, 왕비 커밀라, 앤 공주 등 왕실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여왕은 이곳에서 결혼했고 여왕으로 즉위했으며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됐다. 여왕의 관은 이날 저녁 윈저성 안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 지하 영묘에 먼저 잠든 남편 필립 공 옆에 놓였다. 런던에는 교회 종소리가 96차례 울려 퍼졌다. 여왕의 생애를 상징하는 종소리는 장례 시작 시각인 오전 11시가 되기 96분 전부터 매분 울려 도시를 가득 채웠다. 오전 11시. 세계 200여 개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여왕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찰스 3세 국왕을 비롯한 왕실 일가가 사원 안으로 아주 천천히 들어서는 여왕의 관 뒤를 따랐다. 1947년 ‘젊은 여왕’은 이곳에서 남편 필립 공과 결혼했고 1953년 대관식을 치렀다. 여왕을 마주한 조문객들은 모두 일어나 첫 번째 찬송 ‘주님, 주님께서 주신 날이 끝났습니다’를 함께 불렀다. 왕비 커밀라는 눈물을 훔쳤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데이비드 호일 사제가 장례를 집전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설교에서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여왕이 전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다시 전했다.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가 성경을 읽었다. 이날 장례에선 75년 전 여왕이 필립 공과 결혼식에서 부른 찬송가가 다시 불렸다. 이날 장례식에는 한·미 정상 등 전 세계에서 모인 500여 명의 정상급 인사가 참여했다. 영국 언론들은 장례식이 열린 사원 주변에 100만여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모였다고 전했다. 여왕이 얼마나 존경스러웠으면 온 세계와 온 국민이 이토록 큰 애도를 표했을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역경을 딛고 살아간다. 그 끝에는 한 줄기 희망이 있다.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를 기억해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달리 거짓의 아비가 마귀인지 모르는 것 같은 이재명은 9월 3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 대해 “국민도 귀가 있다”라며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고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말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처리한 데 대해 정부·여당이 반발했다. 그러자 여러 엄청난 거짓말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기소된 것도 있는 이재명이 직접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게 없어 양심적인 국민과 광야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윤석렬 대통령을 비판한 것일까. 그것도 사실이 아니고 광우병 파동처럼 조작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이재명은 이날 자신이 장악한 정당 회의에서 “국민도 귀가 있고 국민도 판단할 지성을 갖고 있다”라며 “거짓말하고 겁박한다고 해서 생각이 바뀌거나 또는 들었던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문재인처럼 뻔뻔하게 말했다. 이어 “지금 들어도 (윤 대통령이 한 논란의 발언은) ‘바이든’이 맞지 않습니까, (이새끼라고) 욕했지 않습니까”라며 “적절하지 않은 말을 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잘못했다고 해야지요(자기는 하지 않으면서)”라고 말했다. 적반하장의 이재명은 “진상 규명의 첫 번째 길은 ‘내가 뭐라고 말했으니 그것과 다르다’ 이렇게 말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본인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한 말이 맞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억 못하겠는데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게 대체 상식에 부합하는 말인가 의문이 간다”라면서 “국민을 존중하기 바란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뉴욕 순방 때 한 언급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밝히고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상 말이 그 사람을 규정할 때 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자신에 대한 수사기관과 언론에 대해 말했다. “먼지 털어도 안 나오니 꼬투리 잡는다.” 자신을 잡으려고 온갖 혐의를 뒤졌지만 허탕을 쳤다는 뜻이다. 수사 대상에 오른 이재명 의혹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다. 그것이 맨돈 소강석처럼 잔꾀를 모르는 윤석열 정부가 맨돈 소강석과 가까운 이재명을 어떻게든 엮어 보려고 몸부림친 결과물일까. 이재명 의혹은 작년 여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불거졌다. 2021년 8월 29일 이낙연 캠프 일요 기자 간담회가 신호탄이었다. 캠프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의 형 강제 입원, 아내 김혜경 씨의 ‘혜경궁 김 씨’ 법정 다툼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 30여 명의 수임료가 수십억일 텐데 이 대표 재산은 변동이 없다”라고 했다. 누군가 대신 내준 게 아니냐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년형을 선고받은 핵심 혐의가 변호사비 대납이었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재명은 자신의 돈으로 변호사비 3억 원을 부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친문(親文) 시민 단체는 이 대표가 검찰 출신 변호사 한 명에게 준 것만도 현금과 주식 20억 원이 넘는다고 폭로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이 곧장 뒤를 이었다. 경기도 지역 신문은 8월 31일 자에 “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과거 민주당이 영리하지만 소심한 이명박에게 “다스는 누구 것이냐”고 추궁했던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대장동 사업으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화천대유가 이재명 후보 당신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칼럼 필자는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경쟁했던 핵심 후보 진영에서 제보해온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재명에 대한 대법원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낸 권순일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된 사실은 2021년 9월 16일 보도됐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판결 전후로 권 대법관 사무실을 8차례 방문한 사실도 확인됐다. 화천대유 고액 연봉을 사후 뇌물로 재판 거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9월 30일엔 ‘대장동 말고 백현동도 있다’라는 보도가 나왔다. 대장동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성남시장 때 백현동 사업으로 3천억 원대 특혜 수익이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성남시장 선거 때 선대본부장 지낸 사람이 개발 업체로 영입되자 성남시가 부지 용도를 변경해 준 덕분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구단주였던 성남FC 축구팀이 성남시 소재 기업 여섯 곳에서 후원금 160억 원을 받고 성남시는 해당 기업에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변경 등의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있다. 이 의혹은 당초 2018년 장영하 변호사가 이재명 시장을 특가법 뇌물죄 혐의로 성남지청에 고발했던 것인데 대선 국면에서 다시 쟁점이 됐다. 민주당 출신인 장 변호사는 한때 이재명 변호사와 동지 관계였으나 2010년 성남시장 선거를 계기로 원수 사이로 바뀌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이 대표를 저격한 ‘굿바이, 이재명’을 발간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 임기에 터져 나온 의혹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한 건도 없었다. 의혹을 제기한 주체도 윤 정부 쪽 사람들이 아니다. 민주당 경쟁 후보 진영 또는 이 대표와 일했던 사람들이 직접 폭로했거나 언론에 제보했다. 문 정부 사람들은 차기 주자 이 대표를 보호하려고 의혹을 덮고 진상 규명을 막았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열쇠를 쥔 쌍방울그룹 관계자가 검찰 귀띔을 받고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검찰 라인은 문 정부 때 한직으로 쫓겨났다가 복귀해 막 수사를 시작하는 참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오랫동안 먼지 털듯 수사했는데도 아무 진척이 없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간다. 수사를 종결하라는 압박이다.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며 제집 쓰레기를 남의 집 앞마당에 던졌던 이재명식 방탄(防彈) 화법의 변주곡이다. 2022년 9월 21일 제107회 총화장 이취임식에서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도 이재명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게 없다는 내용의 이임사를 뇌까렸다. 배광식 역시 이재명처럼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는 성경 말씀을 믿지 않거나 모르는 모양이다. 차마 그 이임사 녹취를 풀지 않는 것은 구역질이 나기 때문이다. 퇴직한 불의한 직원을 계약직으로 고용해 국장대행직을 주고 뭐가 그리 급해 그를 앞세워 대치동 총무 관사도 팔아먹고 총회회관 리모델링도 주관하게 하고 제주도 수양관 부지를 왜 서둘러 매각하려 했는지 조사하면 어찌 될까. 그 교회 장로 김기현 의원이 규탄하는 문재인과 이재명 짝 나지 않을까 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 8:44-47 2022-09-3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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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30
  • 총회 불꽃 권순웅의 위엄
    오르막과 내리막을 구분하는 판단력은 개인은 물론이고 총회나 국가의 성쇠(盛衰)를 좌우한다. 눈을 감아도 틀리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에 대한 판단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제106회 총회에서 배광식의 행태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의 처지를 보면 분명하다. 배광식처럼 '은혜로운 동행' 어쩌구 하면서 배임 혐의의 일을 저지르거나 푸틴처럼 허울은 '특수 군사 작전'이라면서 이기기 힘든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된다. 배광식은 총회 돈을 자기 주머니 돈인양 챙기기도 하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쓰고 다녔다고 한다. 총회 재산 현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전횡과 배임 혐의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배광식은 울산 큰바위 밑이나 위에서 기도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전황(戰況)이 불리한 전쟁을 질질 끌어선 안 되는데 푸틴의 거듭된 판단 착오는 러시아의 운명을 바꾸고 나아가 유럽과 세계의 판도를 다시 그려야 할지 모를 사태에 이르렀다. 국가와 총회는 왜 오르막 내리막에 대한 판단을 그르쳐 자신을 수렁으로 밀어 넣을까. 한 장로가 산다는 제주에는 경사(傾斜)길 아래 세워둔 자동차가 저절로 언덕을 기어오른다는 ‘도깨비 도로’가 있다. 측량 결과 오르막으로 보이는 쪽이 실제론 경사 3도 정도의 내리막으로 나타났다. 주변 지형 때문에 내리막이 오르막으로 뒤집혀 보이는 착시(錯視) 현상이란 것이다. 국가 역량(力量)이나 총회 상황은 도깨비 도로와 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을 판단하기 어렵다. 국제 정세나 국내와 총회 정치 수준을 재는 측정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경제 상황·교육의 질(質)·노동 효율을 진단하는 수단인 통계가 있고 총회도 나름 교회와 교인 수를 가늠하는 빈약한 자료가 있긴 하나 불완전하다. 국가 상황판의 모든 등(燈)이 온통 빨간불이거나 파란불 일색(一色)인 경우는 드물다. 낭떠러지에 선 나라 상황판에도 파란 등 몇 개는 불이 들어오고 기세(氣勢) 좋게 달리는 나라 상황판에도 빨간불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상황판은 과거의 성공 경험과 지나간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읽을 수밖에 없고 총회는 오직 성경의 가르침과 믿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각계 지도자의 몫이다. 그런데 배광식과 푸틴은 그러지 않았다. ‘엘리트 없는 사회’ ‘모두가 엘리트인 사회’라고 하거나 '믿음이 없는 총회' '모두가 믿음이 없는 총회'라는 역설은 모든 분야의 지도자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는 하나님의 경고다. 한국과 우리 총회는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까, 내리막을 구르고 있을까. 파란불이 많다며 등을 두드리고 용기를 북돋는 소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빨간 등의 크기가 훨씬 크다며 낙담(落膽)하며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정반대의 두 이야기를 합쳐야 상승(上昇)하면서 추락(墜落)하는 한국과 우리 총회의 모순된 현실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희망과 불안의 엇갈린 진단에서 공통된 부분은 추락하는 것의 대표가 정치라는 점이다. 정치는 그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다. 한국의 근본 위기는 문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의 저하(低下)다. 상승하는 힘이 추락하는 힘을 이기고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추락하는 힘이 상승하는 힘을 꺾어 함께 주저앉느냐가 문제다. 다행히 우리는 배광식과 장봉생의 불의한 '은혜로운 동행'이 아니라 총회를 살리고 밝힐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샬롬 부흥'이 있다. 배광식처럼 허울뿐인 '은혜로운 동행'으로 맨돈을 탐하는 목사나 장로를 위하는 것이 아닌... 민주 정치에서 선거는 어느 쪽이 민의(民意)인가를 매듭짓는 수단이다. 패자의 승복(承服)으로 선거 결과가 확정된 토대 위에서 승자의 관용(寬容) 범위를 논의하는 순서를 밟는다. 한국 정치에서 선거는 매듭짓는 역할을 상실했다. 실정법 위반으로 여러 수사를 받는 이재명 씨는 대선 패배 후 뻔뻔하게 국회의원이란 방탄복을 입고 이번에는 후안무치의 제1야당 대표 자리에 올라 주위를 모래성 같은 방탄벽으로 둘러쌌다. 피의자 신분으로 거듭 대통령과 양자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관련으로 수사를 받는 트럼프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회담을 제안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관용이 법치(法治)의 울타리를 넘을 수는 없다. 그건 대통령 권한 밖이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폐쇄 정책이 얼마나 어리석은 집착(執着)이었는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범죄가 아니다. 원전 폐쇄를 위해 통계를 조작한 것이 범죄다. 맨돈 소강석이 내려보며 악수를 나눈 문재인은 한일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나서 대통령이랍시고 남은 임기 내내 일본과 정상회담에 목을 맸다. 그로 해서 양국 역사 문제가 한국이 칼날을 잡고 일본이 거꾸로 칼자루를 쥐는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 그래도 그건 범죄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중립적 인사를 임명해야 할 중앙선관위·방송통신위와 그 심사위원회의 장(長)에 가장 파당적(派黨的)인 사람을 골라 꽂았다. 그들 대부분이 임기 보장을 방패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KBS, MBC 등 통칭 공영방송도 그중 하나다. 그 진지(陣地)마다 전 정권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포위된 꼴이다. KBS 이사회의 야당 측 인사를 쫓아내기 위해 김밥값을 감사하고 집은 물론 강의하는 대학까지 쫓아가 꽹과리를 울렸던 그들이다. 정권에게 최상의 선택은 위엄(威嚴)이 있으면서도 사랑받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라면 위엄을 골라야 한다. 위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총회장 권순웅은 107년 역사 총회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갈리는 지금 왜 번번이 총회장들이 위엄을 잃고 있는가를 엄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반성과 개혁에 예외(例外)를 둬선 안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 4:20-22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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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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