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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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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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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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0
  • 성경에 잡힌 우주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간의 기원’의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를 만나 던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사망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시간의 기원’은 교양과학서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신학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렌즈를 깨끗이 닦아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목사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목회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사역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이 명하신 소중한 목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믿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분수령이 될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허영의 시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세비 값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휴대폰 렌즈에 잡힌 총회의 목사와 장로도 유권자이기에 2024년 4월 10일 믿음의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겠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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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의사 파업과 장기려 박사
    1976년 남미의 콜롬비아에서는 의사들이 52일 동안 파업을 하여 응급치료 이외의 진료 활동을 전부 중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는 의사의 파업으로 야기된 예기치 못한 놀라운 사실을 보도했다.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사망률이 35%가 감소하였으며 일손을 놓게 된 국영장의협회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사실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같은 해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의사들 파업이 있었다. 그로 인해 17개의 주요 병원에서 수술 건수가 평소보다 60%가 줄었는데 그 결과 “전체 사망률이 18%나 감소했다”라는 발표가 보고되었다. 의사들 파업이 끝나고 진료가 다시 시작되자 사망률은 다시 파업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40년 동안 진료에 임하고 있는 일본 의사 곤도 마코토는 솔직하게 임상 경험을 고백한 책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에서 말했다. “병원에 자주 갈수록 불필요한 약이나 과잉 진료행위로 오히려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환자를 상품으로 취급하듯 병원 환자를 떠나 파업하는 의료 현실은 병원 위주의 진료가 아닌 진정한 환자 중심의 헌신적인 진료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2024년 개혁 자유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에 반발해 일어난 초유의 전공의 집단 사직 ‘의료 파행’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파행이 역설적으로 상급종합병원, 중형병원(병원·종합병원), 의원으로 이어지는 의료 전달 체계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있는 점은 하나님 은혜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서울 ‘빅5′ 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은 수술실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환자들은 중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환자가 자연스럽게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 모습이다. 평소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절반 안팎이 응급실에 올 필요가 없는 경증 환자라고 한다. 전공의 집단 사직이 상급종합병원이 제 역할을 찾게 한 것이다. 대형병원들은 하루빨리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고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번에 역할을 재발견한 곳이 전문병원을 비롯한 중형병원이다. 중형병원은 평소에도 전문의 위주로 운영해 전공의들 집단행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번 사태와 관계없이 정상 진료와 수술도 가능하다. 대형병원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곳도 많아 대형병원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특정 질환이나 진료 과목에 대형병원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그동안 빅5 병원에 경증 환자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난 2023년 서울대학교병원 노조는 국립대 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의사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환자들에게 적정 의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파업을 단행하였다. 서울대병원이 검사 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한 이후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진료하기보다 검사 건수를 늘리는 데 주력해왔고 이에 따라 ‘1분 진료’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월 14일 오전 회의를 열어 정부와의 협의체에서 논의할 큰 주제로 보건의료정책 개선, 건강보험체계 개선, 전문성 강화, 기타의료제도 개선 등 네 가지를 정했다고 한다. 의사들 총파업이 추구하는 속뜻을 헤아릴 길이 없지만 의사의 역할인 사회의 공공성을 무시하여 총파업을 빌미로 이윤 추구를 노리고 있다면 국민들은 의료 업계에 냉철하게 등을 돌릴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공공병원으로서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의사협회 자세는 국민의 지탄을 면키 어렵다. 병원 수익금을 늘리기 위해 환자에게 위험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하면서 어떻게 ‘신뢰받는 병원’, ‘생명의 미래를 여는 병원’, ‘의료선진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인가. 더 나아가 독일 출신 프랑스의 의사, 음악가, 철학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인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년 1월 14일 ~ 1965년 9월 4일)가 실천한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고유한 철학을 본받을 수 있을까. 그는 아프리카 의료 봉사에서 더 나아가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작금의 형태는 핵 소유 북한 도당을 코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사라면 장기려(張起呂, 1911년 8월 14일 ~ 1995년 12월 25일) 박사의 헌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1932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였던 백인제 교수의 지도를 받아 외과학에 입문했다. 1936년까지 약 270건의 실험에 바탕한 “충수염 및 충수염성 복막염의 세균학적 연구”로 1940년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0년 12월 한국동란의 혼란 중에 처자를 두고 차남 장가용과 함께 월남하였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가 되었다. 1951년 1월 부산 서구 암남동에 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피난민 등 가난한 사람을 무료진료하면서 1976년 6월까지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서 인술을 베풀었다.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외과 의사였지만 평생 낮은 곳에서 청빈한 삶을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인술을 베푼 사회봉사자였다. 1951년 복음진료소(현재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개설을 시작으로 청십자사회복지회, 장애자재활협회 등 각종 복지단체를 세우고 1976년에는 청십자병원을 설립하여 소외계층과 지역사회의 복지증진에 헌신했다. 일생동안 불우한 이웃을 위해 몸소 사랑을 실천했다. 특히, 가난한 환자를 구제하기 위해 1968년 한국 최초의 사설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해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이자 현행 의료보험제도의 효시를 탄생시켰다.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 65년간 인술을 베풀며 봉사, 박애, 무소유를 실천했으며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돈으로 수술을 해주고 그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않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던 그는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서울백병원에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현재까지 이영춘, 문창모, 안영모, 김찬우, 이태석, 안수현 등과 함께 "한국의 슈바이처"라 칭송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송정한 분당서울대병원장,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은 이날 소속 전공의 전원에게 이메일로 ‘서울대병원 전공의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보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전공의 여러분, 병원장으로서 저희는 당부드린다”라며 “이제 여러분이 있어야 할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다. 이어 “여러분의 진심은 충분히 전달이 됐다. 중증·응급 환자와 희소 난치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환자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는 돌아와 달라”고 했다. “전공의 여러분의 꿈과 희망은 환자 곁에 있을 때 빛을 발하고 더욱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믿고 있다”라고도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5-8 2024-03-13
    • G.OPINION
    • G.OPINION
    2024-03-13
  • 핵 보유 북한과 중국 실상
    김일성이 소련 88여단 대대장일 때 거느렸던 한인 부하는 60여 명이었다. 김일성은 광복 후 소련의 비호와 빨치산 출신들에 의지해 권력을 장악했다. 그때부터 북한은 80년 넘게 물갈이가 되지 않았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특징은 첫째로 형편없이 무식했다는 것이다. 김일성보다 투쟁 경력이 더 긴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일성이 대장 노릇을 한 것은 그나마 글을 알았다는 이유가 컸다. 빨치산 출신 가운데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자는 손꼽을 정도였고 대다수가 글을 읽지 못했다. 6·25전쟁 때 빨치산 출신 북한군 장성 다수는 지도도 볼 줄 몰랐다. 1960년대 초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 빨치산 출신들이 권력을 장악했지만, 장관급 자리에 오른 자들이 글을 몰라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가나다라’부터 공부해야만 했다. 하지만 머리가 굳어 끝내 배우지 못한 자도 많았다. 그들을 가르친 교장은 일제 때 공부했다는 이유로 나중에 양강도 오지로 추방됐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두 번째 특징은 강한 권력욕과 무자비한 정적 숙청이었다. 한때 사지를 함께 넘었던 이들은 위기 때마다 똘똘 뭉쳐 때로는 암살로, 때로는 회의장에 총을 들고 들어가 협박도 하면서 반대파를 차례로 제거했다. 그나마 공부를 했던 남로당파, 연안파, 소련파, 국내파 등은 무식하고 용감한 빨치산파를 당하지 못했다. 빨치산 패거리는 전국에 정치범수용소를 만들고 정적은 물론이고 불평하는 사람과 유식한 사람들까지 모두 가둬 버렸다. 빨치산 패거리의 세 번째 특징은 조국과 민족 따윈 안중에 없었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실컷 누리고도 모자라 대대손손 대물림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2021년 마지막 빨치산 1세가 사망했다. 김주애는 빨치산 패거리의 4세이다. 현재 북한은 빨치산 2∼4세의 세상이다. 이들은 대를 이어 ‘조국과 인민’을 입에 달고 산다. 북한이 지난 2023년 3월 9일부터 2~3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런데 과거와 차이가 있었다. 북한은 과거 한미연합군사훈련 동안엔 도발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023년 2월 19일에는 해상 800m 상공에서 핵미사일 폭발 시험까지 했다. 북한은 왜 핵 야욕을 멈추지 않을까? 그 원인은 뻔하다. 미국의 핵 위협을 구실로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야욕 역사는 길고도 길다. 핵 개발 이론 연구부터 따지면 1946년부터 시작했다. 33세의 김일성은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영원할 줄 알았던 일본이 하루아침에 항복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는 그 ‘신비의 무기’에 강한 집념을 가졌다. 그 이후 몰래 숨어서 더디게 핵 개발을 하다가 가속페달을 밟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바로 1992년 8월 한·중 수교다. 1990년 한·소 수교에 이어 한·중 수교는 북한이 더는 자국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피로 맺은’ 북·중 관계를 뿌리째 뒤흔드는 사건이었으며 북한으로서는 중국의 배신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핵 개발은 유일한 안보적 대안이 돼 버렸다. 김정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기대할 수 없고 앞으로는 중국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우리는 정신적 원자탄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사상과 제조과정에 있는 물질적 원자탄과 노동 3호 미사일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1979년 미·중 수교에 이어 1992년 한·중 수교로 중국으로부터 포기의 두려움을 더 갖게 됐다. 김정일 말대로 결국 믿을 것은 원자탄과 미사일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2024년 3월 미국 안보 전문지 ‘National Interest’(국가 이익)의 최신호 기사 제목이다. '그렇다, 중국이 북한을 침략할 수도 있다.' ‘Yes, China could invade North Korea.’ 돌연 대한민국이라 호칭하며 무력 통일을 외치는 북한에서 정권 붕괴 등 돌발 상황이 발발할 경우, 중국군이 북한을 급습해 꼭두각시 정권을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안보 전문지 ‘National Interest’(국가 이익)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은 북한과 1300㎞ 넘는 기나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한이 미국 영향력에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중국에 북한은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하다. 북한이 중국에 기대는 의존국이기는 하지만, 근래 껄끄러운 양상이 산발적으로 이어져 왔다. 북한의 맹렬한 반미 언사와 핵 프로그램이 미국을 자극해 미·중 관계의 주요 쟁점으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중국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도발적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북한 정권이 붕괴하거나 중국에 확실한 위협을 가할 경우에 대비해 군사적 개입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중 하나가 군사 쿠데타, 반란, 경제 내부 파열, 식량 배급 체계 와해 등으로 인한 북한 정권 붕괴 대응 전면적 침공이다. 자국 내 안정에 강박관념이 있는 중국은 북한 난민 수백만 명이 유입되는 사태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난민촌 수용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고 평양까지 중국군을 진격시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난민 이탈을 단속하려 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북한 침공을 감행하게 되면 미리 포섭해 놓은 북한군 지휘부와 내통해 저항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중국에 의존해온 연료 공급을 차단해 북한군을 완전히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북한주도 정권은 김정은 추종 잔당이든, 새로운 군부 세력이든,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다만 당장 중국군이 북한에 진주할 가능성은 작다. 아직은 미국 방패막이로 효용 가치가 있고, 지금으로선 현재 이득이 침공에 따른 정치·경제·군사적 비용보다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욥기 7:1-3 2024-03-11
    • G.OPINION
    • G.OPINION
    2024-03-12
  • 총회의 본질을 위해
    본래의 총회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치적으로 노회적으로 교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계층을 보호하고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견제하고 막는 명실상부한 보수와-진보를 아우르는 믿음의 모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회에도 젊은 지성은 있고 참다운 개혁 정치인들이 있다. 밀실 담합정치의 횡포나 일탈을 견제하는 정신은 살아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총회의 권력 다툼이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차원을 넘어 지역 노선의 물갈이 또는 개혁 세력의 확장이라는 더 넓고 더 의미 있는 개혁 신앙의 판으로 갔으면 한다. 본성과 사상은 변하지 않고 정치인의 선택이 자신의 출세와 동료를 얻으려는 수단이 될 때 정치는 타락한다. 지켜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은 포용과 화합이란 명분으로 끌어안으면 더 큰 분열과 혼란이 닥친다. 이이복 장로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처리는 하나님 나라와 총회를 위한 결단인가, 선하고 믿음직한 정치가 아쉽다. 신자를 정의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는 성경 이야기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성경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퍼뜨리면서 조금씩 더 신앙적인 존재가 된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대서부터 시작된다. 꽃을 좋아해 꽃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화가 이중섭이 남긴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가 있던 시절, 그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는데 하루는 친구 아내가 식탁에 꽃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간 이중섭이 한참 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 빈손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모든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꺾을 꽃이 없었다.” 이런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오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2024-03-11
    • G.OPINION
    • G.OPINION
    2024-03-11

실시간 G.OPINION 기사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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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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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0
  • 성경에 잡힌 우주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간의 기원’의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를 만나 던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사망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시간의 기원’은 교양과학서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신학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렌즈를 깨끗이 닦아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목사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목회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사역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이 명하신 소중한 목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믿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분수령이 될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허영의 시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세비 값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휴대폰 렌즈에 잡힌 총회의 목사와 장로도 유권자이기에 2024년 4월 10일 믿음의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겠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3-18
    • G.OPINION
    • G.OPINION
    2024-03-18
  • 의사 파업과 장기려 박사
    1976년 남미의 콜롬비아에서는 의사들이 52일 동안 파업을 하여 응급치료 이외의 진료 활동을 전부 중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는 의사의 파업으로 야기된 예기치 못한 놀라운 사실을 보도했다.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사망률이 35%가 감소하였으며 일손을 놓게 된 국영장의협회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사실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같은 해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의사들 파업이 있었다. 그로 인해 17개의 주요 병원에서 수술 건수가 평소보다 60%가 줄었는데 그 결과 “전체 사망률이 18%나 감소했다”라는 발표가 보고되었다. 의사들 파업이 끝나고 진료가 다시 시작되자 사망률은 다시 파업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40년 동안 진료에 임하고 있는 일본 의사 곤도 마코토는 솔직하게 임상 경험을 고백한 책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에서 말했다. “병원에 자주 갈수록 불필요한 약이나 과잉 진료행위로 오히려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환자를 상품으로 취급하듯 병원 환자를 떠나 파업하는 의료 현실은 병원 위주의 진료가 아닌 진정한 환자 중심의 헌신적인 진료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2024년 개혁 자유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에 반발해 일어난 초유의 전공의 집단 사직 ‘의료 파행’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파행이 역설적으로 상급종합병원, 중형병원(병원·종합병원), 의원으로 이어지는 의료 전달 체계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있는 점은 하나님 은혜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서울 ‘빅5′ 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은 수술실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환자들은 중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환자가 자연스럽게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 모습이다. 평소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절반 안팎이 응급실에 올 필요가 없는 경증 환자라고 한다. 전공의 집단 사직이 상급종합병원이 제 역할을 찾게 한 것이다. 대형병원들은 하루빨리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고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번에 역할을 재발견한 곳이 전문병원을 비롯한 중형병원이다. 중형병원은 평소에도 전문의 위주로 운영해 전공의들 집단행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번 사태와 관계없이 정상 진료와 수술도 가능하다. 대형병원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곳도 많아 대형병원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특정 질환이나 진료 과목에 대형병원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그동안 빅5 병원에 경증 환자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난 2023년 서울대학교병원 노조는 국립대 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의사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환자들에게 적정 의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파업을 단행하였다. 서울대병원이 검사 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한 이후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진료하기보다 검사 건수를 늘리는 데 주력해왔고 이에 따라 ‘1분 진료’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월 14일 오전 회의를 열어 정부와의 협의체에서 논의할 큰 주제로 보건의료정책 개선, 건강보험체계 개선, 전문성 강화, 기타의료제도 개선 등 네 가지를 정했다고 한다. 의사들 총파업이 추구하는 속뜻을 헤아릴 길이 없지만 의사의 역할인 사회의 공공성을 무시하여 총파업을 빌미로 이윤 추구를 노리고 있다면 국민들은 의료 업계에 냉철하게 등을 돌릴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공공병원으로서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의사협회 자세는 국민의 지탄을 면키 어렵다. 병원 수익금을 늘리기 위해 환자에게 위험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하면서 어떻게 ‘신뢰받는 병원’, ‘생명의 미래를 여는 병원’, ‘의료선진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인가. 더 나아가 독일 출신 프랑스의 의사, 음악가, 철학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인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년 1월 14일 ~ 1965년 9월 4일)가 실천한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고유한 철학을 본받을 수 있을까. 그는 아프리카 의료 봉사에서 더 나아가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작금의 형태는 핵 소유 북한 도당을 코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사라면 장기려(張起呂, 1911년 8월 14일 ~ 1995년 12월 25일) 박사의 헌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1932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였던 백인제 교수의 지도를 받아 외과학에 입문했다. 1936년까지 약 270건의 실험에 바탕한 “충수염 및 충수염성 복막염의 세균학적 연구”로 1940년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0년 12월 한국동란의 혼란 중에 처자를 두고 차남 장가용과 함께 월남하였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가 되었다. 1951년 1월 부산 서구 암남동에 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피난민 등 가난한 사람을 무료진료하면서 1976년 6월까지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서 인술을 베풀었다.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외과 의사였지만 평생 낮은 곳에서 청빈한 삶을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인술을 베푼 사회봉사자였다. 1951년 복음진료소(현재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개설을 시작으로 청십자사회복지회, 장애자재활협회 등 각종 복지단체를 세우고 1976년에는 청십자병원을 설립하여 소외계층과 지역사회의 복지증진에 헌신했다. 일생동안 불우한 이웃을 위해 몸소 사랑을 실천했다. 특히, 가난한 환자를 구제하기 위해 1968년 한국 최초의 사설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해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이자 현행 의료보험제도의 효시를 탄생시켰다.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 65년간 인술을 베풀며 봉사, 박애, 무소유를 실천했으며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돈으로 수술을 해주고 그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않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던 그는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서울백병원에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현재까지 이영춘, 문창모, 안영모, 김찬우, 이태석, 안수현 등과 함께 "한국의 슈바이처"라 칭송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송정한 분당서울대병원장,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은 이날 소속 전공의 전원에게 이메일로 ‘서울대병원 전공의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보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전공의 여러분, 병원장으로서 저희는 당부드린다”라며 “이제 여러분이 있어야 할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다. 이어 “여러분의 진심은 충분히 전달이 됐다. 중증·응급 환자와 희소 난치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환자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는 돌아와 달라”고 했다. “전공의 여러분의 꿈과 희망은 환자 곁에 있을 때 빛을 발하고 더욱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믿고 있다”라고도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5-8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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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3
  • 핵 보유 북한과 중국 실상
    김일성이 소련 88여단 대대장일 때 거느렸던 한인 부하는 60여 명이었다. 김일성은 광복 후 소련의 비호와 빨치산 출신들에 의지해 권력을 장악했다. 그때부터 북한은 80년 넘게 물갈이가 되지 않았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특징은 첫째로 형편없이 무식했다는 것이다. 김일성보다 투쟁 경력이 더 긴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일성이 대장 노릇을 한 것은 그나마 글을 알았다는 이유가 컸다. 빨치산 출신 가운데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자는 손꼽을 정도였고 대다수가 글을 읽지 못했다. 6·25전쟁 때 빨치산 출신 북한군 장성 다수는 지도도 볼 줄 몰랐다. 1960년대 초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 빨치산 출신들이 권력을 장악했지만, 장관급 자리에 오른 자들이 글을 몰라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가나다라’부터 공부해야만 했다. 하지만 머리가 굳어 끝내 배우지 못한 자도 많았다. 그들을 가르친 교장은 일제 때 공부했다는 이유로 나중에 양강도 오지로 추방됐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두 번째 특징은 강한 권력욕과 무자비한 정적 숙청이었다. 한때 사지를 함께 넘었던 이들은 위기 때마다 똘똘 뭉쳐 때로는 암살로, 때로는 회의장에 총을 들고 들어가 협박도 하면서 반대파를 차례로 제거했다. 그나마 공부를 했던 남로당파, 연안파, 소련파, 국내파 등은 무식하고 용감한 빨치산파를 당하지 못했다. 빨치산 패거리는 전국에 정치범수용소를 만들고 정적은 물론이고 불평하는 사람과 유식한 사람들까지 모두 가둬 버렸다. 빨치산 패거리의 세 번째 특징은 조국과 민족 따윈 안중에 없었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실컷 누리고도 모자라 대대손손 대물림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2021년 마지막 빨치산 1세가 사망했다. 김주애는 빨치산 패거리의 4세이다. 현재 북한은 빨치산 2∼4세의 세상이다. 이들은 대를 이어 ‘조국과 인민’을 입에 달고 산다. 북한이 지난 2023년 3월 9일부터 2~3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런데 과거와 차이가 있었다. 북한은 과거 한미연합군사훈련 동안엔 도발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023년 2월 19일에는 해상 800m 상공에서 핵미사일 폭발 시험까지 했다. 북한은 왜 핵 야욕을 멈추지 않을까? 그 원인은 뻔하다. 미국의 핵 위협을 구실로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야욕 역사는 길고도 길다. 핵 개발 이론 연구부터 따지면 1946년부터 시작했다. 33세의 김일성은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영원할 줄 알았던 일본이 하루아침에 항복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는 그 ‘신비의 무기’에 강한 집념을 가졌다. 그 이후 몰래 숨어서 더디게 핵 개발을 하다가 가속페달을 밟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바로 1992년 8월 한·중 수교다. 1990년 한·소 수교에 이어 한·중 수교는 북한이 더는 자국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피로 맺은’ 북·중 관계를 뿌리째 뒤흔드는 사건이었으며 북한으로서는 중국의 배신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핵 개발은 유일한 안보적 대안이 돼 버렸다. 김정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기대할 수 없고 앞으로는 중국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우리는 정신적 원자탄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사상과 제조과정에 있는 물질적 원자탄과 노동 3호 미사일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1979년 미·중 수교에 이어 1992년 한·중 수교로 중국으로부터 포기의 두려움을 더 갖게 됐다. 김정일 말대로 결국 믿을 것은 원자탄과 미사일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2024년 3월 미국 안보 전문지 ‘National Interest’(국가 이익)의 최신호 기사 제목이다. '그렇다, 중국이 북한을 침략할 수도 있다.' ‘Yes, China could invade North Korea.’ 돌연 대한민국이라 호칭하며 무력 통일을 외치는 북한에서 정권 붕괴 등 돌발 상황이 발발할 경우, 중국군이 북한을 급습해 꼭두각시 정권을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안보 전문지 ‘National Interest’(국가 이익)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은 북한과 1300㎞ 넘는 기나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한이 미국 영향력에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중국에 북한은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하다. 북한이 중국에 기대는 의존국이기는 하지만, 근래 껄끄러운 양상이 산발적으로 이어져 왔다. 북한의 맹렬한 반미 언사와 핵 프로그램이 미국을 자극해 미·중 관계의 주요 쟁점으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중국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도발적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북한 정권이 붕괴하거나 중국에 확실한 위협을 가할 경우에 대비해 군사적 개입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중 하나가 군사 쿠데타, 반란, 경제 내부 파열, 식량 배급 체계 와해 등으로 인한 북한 정권 붕괴 대응 전면적 침공이다. 자국 내 안정에 강박관념이 있는 중국은 북한 난민 수백만 명이 유입되는 사태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난민촌 수용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고 평양까지 중국군을 진격시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난민 이탈을 단속하려 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북한 침공을 감행하게 되면 미리 포섭해 놓은 북한군 지휘부와 내통해 저항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중국에 의존해온 연료 공급을 차단해 북한군을 완전히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북한주도 정권은 김정은 추종 잔당이든, 새로운 군부 세력이든,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다만 당장 중국군이 북한에 진주할 가능성은 작다. 아직은 미국 방패막이로 효용 가치가 있고, 지금으로선 현재 이득이 침공에 따른 정치·경제·군사적 비용보다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욥기 7:1-3 2024-03-11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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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총회의 본질을 위해
    본래의 총회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치적으로 노회적으로 교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계층을 보호하고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견제하고 막는 명실상부한 보수와-진보를 아우르는 믿음의 모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회에도 젊은 지성은 있고 참다운 개혁 정치인들이 있다. 밀실 담합정치의 횡포나 일탈을 견제하는 정신은 살아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총회의 권력 다툼이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차원을 넘어 지역 노선의 물갈이 또는 개혁 세력의 확장이라는 더 넓고 더 의미 있는 개혁 신앙의 판으로 갔으면 한다. 본성과 사상은 변하지 않고 정치인의 선택이 자신의 출세와 동료를 얻으려는 수단이 될 때 정치는 타락한다. 지켜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은 포용과 화합이란 명분으로 끌어안으면 더 큰 분열과 혼란이 닥친다. 이이복 장로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처리는 하나님 나라와 총회를 위한 결단인가, 선하고 믿음직한 정치가 아쉽다. 신자를 정의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는 성경 이야기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성경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퍼뜨리면서 조금씩 더 신앙적인 존재가 된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대서부터 시작된다. 꽃을 좋아해 꽃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화가 이중섭이 남긴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가 있던 시절, 그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는데 하루는 친구 아내가 식탁에 꽃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간 이중섭이 한참 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 빈손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모든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꺾을 꽃이 없었다.” 이런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오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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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1
  • 저출생 대책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현실적인 답은 번식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꽃이 피는 시기를 생각하면 그리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봄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잎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잎이 무성해야 할 자리를 꽃이 차지하고 있어서 더 풍성하고 화려함을 뽐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봄에 피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함께 뭉쳐서 피며 향기가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5월 이후에 피는 진한 향과 꿀로 나비나 벌들을 유혹하는 장미나 아카시아 등과 번식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식물과 달리 국가 소멸까지 우려하는 한국의 저 출생에는 우리가 체면 때문에 잘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지금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은커녕 연애조차 잘 하지 않는다. 이 그늘엔 오프라인의 실제 삶보다 심하게 과 대표된 온라인의 미남·미녀, 그리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기력과 허탈감은 스마트폰에서 비롯된다. 연예인이 아닌데도 연예인보다 더 예쁘고 매력적인 남녀가 그 안에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AI 연인도 있다. 하지만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현타’가 시작된다. 진실의 시간. 그런 선남선녀는 오프라인 내 주변에 없다. 배우보다 더 매력적인 남녀가 늘 잡힐 듯 손안에 있는데. 이 ‘왜곡된 평균’이 한국인을 우울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한참 더 아래인데 상위 10%의 외모와 라이프스타일이 평균인 것처럼 올려치고 압력을 가하는 분위기. 신혼집으로 신축 아파트 전세 정도는 평균 아니냐, 가전 빼고 결혼식 비용 7천만 원이면 중산층 최저 아니냐, 이 ‘왜곡된 평균’이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를 위축시킨다. 저 출생은 OECD 국가 대부분의 고민이지만, 한국의 출생률이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와 기업의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는데도 작년 4분기는 0.65로 더 떨어졌다. 유난히 심한 우리의 세계기록은 이 ‘왜곡된 평균’이 큰 이유다.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할 묘책은 없겠지만, 일단 남들과 비교하는 소셜미디어부터 끊어보자. 나도 월세로 신혼을 시작해 딸을 셋이나 낳았다. 부디 스스로를 불행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 악순환은 그만두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삶의 진실’이라는 저출생 해결이 담긴 글을 끊어야 할 소셜미디어에서 읽었다. “지잡대(지방 소재의 잡다한 대학) 가거나 대학 안 가도 인생 안 망함. 돈 없는데 결혼해도 인생 안 망함. 돈 없는데 애 낳아도 인생 안 망함. 나이 많은데 뭔가 시작해도 인생 안 망함. 대신 인터넷에서 남들 사는 거랑 비교하기 시작하면 내 정신은 반드시 망함.” 성경은 말씀한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1-6 2023-03-09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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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총회의 젖과 꿀
    중·고등학교 시절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조례가 열렸다. 강단 앞 학생이 “기준”을 외치면 그 학생 위치에 맞춰 전교생이 오와 열을 맞췄다. 정글 같은 국제사회 속에서 기준 역할을 해온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이 정하는 입장이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의 표준 답안이었다. 각국 사정에 따라 미세 조정하는 정도였다. 반대 진영 국가들도 미국의 동향에 맞춰 대항 좌표와 수위를 저울질했다. 당시 미국 같은 이집트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 11:8-12 독일 통일 이전 1973년 6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다. 양국 수교 8년 만의 방문이었다. 학살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서독 총리의 이스라엘 방문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가 환영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은 그가 이스라엘인들을 중동에서 석유가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40년 동안 사막을 통과했다는 점입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리면서 경직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중동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석유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었다. 안정적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던 이스라엘의 약점은 1973년 4차 중동 전쟁 당시 산유국들이 이스라엘 및 서방국들에 석유 금수 조치를 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이스라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졌다. 1984년 이스라엘의 물가 상승률은 445%에 이르기도 했다. 사람들이 찾던 젖과 꿀은 육지가 아닌 바다에 있었다. 1999년 6월 해안에서 40km 떨어진 곳에서 첫 번째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했다. 노아-1 가스전을 발견한 것이다. 뒤이어 2000년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가스전인 마리-B 가스전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2004년부터 많은 기업이 몰려들어 인근 해역을 탐사하면서 2009년 타마르 1, 다릿-1 등의 대형 가스전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2010년 발견된 레비아탄 가스전은 매장량이 605bcm(1bcm=10억㎥)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가스전이었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2020년부터 에너지 순수출 국가로 전환되었다. 2022년 이스라엘은 22bcm 규모의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이 가운데 9.2bcm을 수출하였다. 대규모 가스전의 발견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변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게 해줬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문제로 갈등 관계였던 요르단과 2016년 가스 거래 협정을 체결하여 15년 동안 45bcm 규모의 가스를 공급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양국 간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집트에 대해서도 대등한 협력 관계를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는 2000년대 초반 대규모 가스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파이프라인과 수출용 LNG 터미널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시행하였다. 2003년 총연장 1200km의 아랍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한 이집트는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에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100km의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스라엘에도 가스를 공급하면서 동지중해 가스 허브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이집트는 2011년 혁명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더불어 인구 증가에 따른 가스 수요 확대로 오히려 가스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2018년 이집트와 가스 수출 협정을 체결하고 2020년 1월부터 기존 파이프라인을 역류시켜 이집트에 가스를 수출함으로써 이집트의 가스 수요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필요한 파이프라인이나 액화 시설 등을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액화 설비를 이용하여 LNG 형태로 수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양국은 상호 이익을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양국 협력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중단되어 어려움을 겪는 EU에 대량의 LNG를 수출함으로써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스라엘로서는 가스 수출을 통해 주변국 및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가자지구 앞바다에서 2000년에 발견된 가자 마린 가스전에 대해서도 개발을 반대하던 이스라엘 정부가 2023년 6월 입장을 바꿔 개발을 허용하면서 천연가스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선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적 이스라엘 공격과 이어진 이스라엘의 대규모 보복으로 인해 힘겹게 만들어놓은 평화 무대는 무너지게 되었다. 진정 이스라엘과 총회의 젖과 꿀은 무엇일까. 모세 같은 교단 총회장은 이스라엘 백성 같은 목사와 장로들을 어디로 인도해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하리라 신 8:3 2024-03-08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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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8
  • 총회장을 꿈꾸는 분을 위해
    ‘밤의 사색’에서 헤르만 헤세는 홀로 밤을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불행에도 지지 않고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씨앗을 틔운다. 혹독한 밤을 지나며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힘껏 줄기를 일으켜 자기만의 꽃을 피운다. 넌 어떻게 피어날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나 아름다웠구나.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겐 꽃을, 고유한 작품을 꽃피운 나의 후배들에게 마음의 프리지어를 안겨 주었다. 프리지어의 꽃말은 ‘당신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다가올 너의 모든 앞날에 나는 꽃을 보낼게. 순도 100%의 믿음을 건네며 마음껏 기뻤다. 받은 꽃다발을 한참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그동안 고생했고 앞으로 어떤 비바람이 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대, 반드시 피어나시라! 그대는 꽃처럼, 아니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이다. 그러니 그대, 반드시 피어나시라, 졸업과 입학 그리고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그대가 받은 그 꽃다발은 그대를 향한 활짝 핀 응원이라는 걸 꼭 기억하시라. 박정희와 전두환의 강권 통치도 결국 민심을 이기지는 못했다. 참 대단한 전통이다. 바야흐로 총선의 계절이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총선은 그 유명한 2·12총선이다(1985년). 김대중과 김영삼이 연합한 신한민주당(신민당)이 전두환 정권에 일격을 가한 선거로 투표율 84.6%는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김영삼의 대리인으로 출마한 이민우 후보가 사자후를 토하던 유세장에서 정치의 후끈함을 느꼈다. 선거 결과 창당한 지 보름도 안 된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특히 서울 득표율은 43.9%(민정당 27.3%)로 중선거구제가 아니라 소선거구제였다면 신민당이 싹쓸이했을 것이다. 수감 대신 국외 추방을 택한 푸틴 반대자들은 아무런 전망이 없는 희생은 무익하다고 주장했다. Opposition figures who"ve chosen exile over imprisonment argue that sacrifice with no prospect of change is futile. 그러나 감옥 내 사망이 지난 2월 16일 발표된 푸틴의 정적 나발니(Alexei Anatolievich Navalny)는 다르게 생각했다. "당신의 신념이 어떤 가치 있는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If your beliefs are worth something, you have to be prepared to stand up for them. And if necessary, make some sacrifices," 향년 47세의 그가 죽기 얼마 전 짧게 그렇게 글을 썼다고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로니라 딤후 4:6-8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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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7
  • 전광훈과 진중권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3-5 전광훈 목사는 지난해 2019년 10월 22일 청와대 분수대 앞 집회에서 외쳤다. “대한민국은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냐.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어.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어. 나는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아.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2020년 2월 8개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협의회가 ‘한국교회에 드리는 글’을 통해 “전광훈 목사가 애국 운동을 빌미로 하여 여러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앙적으로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판단하여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8대 교단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등의 발언 동기가 반(反)성경적·비(非)신앙적·비(非)신학적이며 “전 목사의 이런 언행으로 인해 한국 교회의 신뢰와 전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전 목사로부터 신앙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9월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퇴원한 전광훈 목사가 변호인단, 8·15집회 비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신영복(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8년 북한 노동당의 지령과 자금을 받아 움직였던 반체제 지하조직)에 대해서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두 건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면 광화문 집회를 그만두겠다. 사과 안 할 거면 대통령을 그만둬라. 국가와 헌법을 부정하면서 대통령을 할 수 있겠냐... 재개발을 선동해 사랑제일교회 진입을 시도하며 우한 바이러스(코로나19)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뒤집어씌워 사기극을 펼치려 했으나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실패했다. 바이러스를 가지고 범죄 행위를 감추지 마라... 독일 히틀러가 선동할 때 온 국민이 넘어갔다. 언론도 넘어가고 성직자도 99% 넘어갔다. 본회퍼 한 사람이 반대하다 순교 당했다. 머지않아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정치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선지자 중 한 사람이다. 선지자는 국민이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하나님과 역사와 진리 앞에 잘못된 것은 책망한다. 한 달 동안 지켜보다가 한 달 뒤부터 목숨을 그야말로 던지겠다. 순교할 각오가 돼 있다.” 세례 요한처럼 문재인의 불공정 불의 지적에 목숨을 걸고 비판한 전광훈 목사의 발언 가운데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외침의 의미는 이렇다고 생각한다. “하나님한테 까불면 나한테 죽어.” 그 말은 하나님과 국민이 살아 있음을 잊었거나 무시하는 문재인 정권의 관계자들의 불법한 자들을 질타하다가 하나님 '한테'라는 조사 하나가 빠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전광훈 목사는 군중 앞에서 열정에 싸여 말의 작은 실수가 있었던 같다. 왜냐하면 그는 그 말에 앞서 한 말처럼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면서’ 하나님을 믿고 전파하는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의 참뜻을 새기려 하거나 그의 용감한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좌파 정권에 절하거나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불의와 부정에 맞선 전광훈 목사를 이단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이 불의한 시대를 눈감고 침묵하고 있는 비겁한 자들이여 전광훈 목사처럼 나서서 불의의 잘못을 외치지 못하거나 진중권 교수처럼 글과 말로 문재인의 불의를 지적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 현 여권과 586운동권 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직접 날 선 비판을 하게 된 계기로 '문자폭탄은 양념' '세월호 고맙다' '조국에 마음의 빚' 등 문 대통령의 발언 3가지를 들었다. 문재인 좌파정권을 비판하고 투쟁한 죄로 세 차례 감옥을 다녀온 전광훈 목사는 애국애족의 민주주의를 외쳐 좌파정권을 무너뜨리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oller 1892년-1984년) 독일 루터교 목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가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 니묄러는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아돌프 히틀러의 지지자였다. 하지만 성향을 바꿔 나치에 반대하는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됐고 나치에 물든 독일의 개신교를 비판했다. 또한 니묄러는 아리아인 조항과 같은 나치의 인종주의를 격렬히 반대했고 이런 활동 때문에 그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갇혀 있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마 3:7-10 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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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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