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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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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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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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윤희원의 선거 변혁 제안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이 총회 상비부 임원 같은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배광식이나 고광석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6일 전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 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표로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했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 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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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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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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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0
  • 성경에 잡힌 우주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간의 기원’의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를 만나 던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사망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시간의 기원’은 교양과학서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신학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렌즈를 깨끗이 닦아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목사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목회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사역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이 명하신 소중한 목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믿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분수령이 될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허영의 시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세비 값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휴대폰 렌즈에 잡힌 총회의 목사와 장로도 유권자이기에 2024년 4월 10일 믿음의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겠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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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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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정호 부총회장 대회제 시도
    약점을 스스로 공개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일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약점들에 국한됐다. 예컨대 연설 도중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등의 심각한 결함을 공개하는 경우에는 진정성 있게 보이지 않았으며 무례하게 대우하거나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등의 범법 행위를 공개하는 것도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리더가 약점을 자발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찰자가 어떤 인물에 대해 추론할 때는 그 인물의 의도를 고려한다. 따라서 리더가 억지로 또는 ‘들켜서’ 약점을 공유한다면 의도가 퇴색된 것이나 다름없다. 관리자가 약점을 자발적으로 공개할 때 예비 직원들은 관리자와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신뢰 게임에서 관리자에게 더 많은 액수의 돈을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진정성은 협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리더들은 ‘이미지가 전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성이 왕도’라는 마음가짐으로 다가가는 게 때론 더 유익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완벽하고 강한 이미지만 유지하려다 보면 사람들은 진정한 모습의 ‘일부분’만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인간적으로 공감이 되는 결점을 공개하며 스스로의 취약성을 개방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리더로 대할 것이다. 다른 자유도 있다. 일본 와카야마현의 76세 남성 노자키 고스케의 경우를 보자. 지난 3월 6일 방송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노자키의 꿈은 큰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다. 수중에 7억 엔의 현금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큰 부자가 된 것이다. 왜 그는 그토록 돈을 많이 벌었나? 노자키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 드는 여자와 동침하기 위해 부자가 됐다. 지금까지 4천 명의 여성에게 3백억 원을 썼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다.” 그러던 그는 55세 연하인 21세 여성과 결혼했는데, 그 젊은 부인은 돈을 노리고 늙은 노자키를 살해했다. 성욕의 자유(?)를 추구했던 어떤 남자의 불꽃 같은 생애는 이렇게 끝났다. 또 다른 자유도 있다. 정치적 신념을 옳고 그름의 절대적 가치 판단의 잣대로 삼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점은 걱정스럽다. 그 맹신이 섬뜩할 정도다. 왜곡된 이념을 받아들인 탓이다. 보수(保守)는 지키는 것이다. 진보(進步)는 나아가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수는 우파, 진보는 좌파다. 좌파 정권은 국민의 삶에 적극 개입하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 우파 정권은 시장 자율을 우선하고 간섭은 최소화한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 보수와 진보 이념은 이처럼 사회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방식 그리고 속도의 차이일 뿐이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으로 접근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진보가 보수보다 더 정의롭다거나 정의를 진보의 전유물인 것처럼 주장하는 얼치기 이념 과잉 세력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황당 궤변이다. 문재인과 이재명의 경우에서 보듯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불의는 이념과 하등 상관이 없다. 어떤 이념 지대에 속해 있든 간에 그 안에 정의로운 사람도 있고 불의한 사람도 있는 게 자연의 섭리다. 그런데도 이해관계로 갈리는 총회 정치판과 달리 일반 정치판은 돈 봉투는 물론이고 한술 더 떠 이념으로 편까지 가르는 후진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성향으로 내 편 네 편 피아를 구분하고 적은 악마 화한다. 얼치기 진보에게 보수는 수구꼴통 토착왜구, 얼치기 보수에게 진보는 빨갱이일 뿐이다. 척결 대상이지 대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듯 기독신문의 박민균 기자가 대회제 찬반에 대한 5월 9일 자 공정한 기사 '대회제 시행, 위험한가? 기우인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회제 시행연구위원회(위원장 석찬영 목사)가 목사장로기도회 개회를 앞두고 2023년 5월 8일 충현교회 갈릴리홀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발제는 오랫동안 총회의 제도와 행정을 연구하며 개선방안을 제시해 온 신현철 목사(마포중앙교회)와 수년 동안 대회제를 연구해 온 이종석 목사(광교제일교회)가 나섰다. 신 목사는 대회제 시행 반대 입장에서, 이 목사는 찬성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신현철 목사는 ‘대회제 시행 요구의 배경과 그 위험성’이란 주제로 대회제를 시행하기에 앞서 선결해야 할 문제와 위험성을 지적했다. 선결해야 할 문제는 크게 4가지다. 먼저 헌법 조문에 총회와 대회의 기능이 거의 동일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현재 헌법대로 대회제를 시행하면 사실상 각 지역의 대회가 총회와 동등한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되고 결국 총회가 여러 개 구성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신학교, 총회 재산권, 무지역 노회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위험성으로 △총회가 더욱 정치화하고 대회를 중심으로 지역 패권주의 형성 △지역(대회)의 직영 신학교 확대와 총신신대원의 약화, 총회 신학의 통일성, 정체성 약화 △총회의 권위 축소와 은급재단, 유지재단 등 재산권 다툼 △대회 내의 갈등과 분쟁으로 인한 분열(한 지역 다 대회 위험) 등을 지적했다. 이런 우려에 이종석 목사는 “지나친 염려이며 기우”라며 “염려보다는 대회제를 통해 총회가 더 발전하기를 기도하면서 시행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거대해진 총회를 분산시켜 효율적으로 운영 △지역 분권으로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창출 △다양한 인재를 개발하고 정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또한 신 목사가 제기한 여러 위험성도 사전 예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회 조직을 현재 3개 노회에서 25~30개 노회로 구성토록 하고 목사의 자격을 지금처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자’로 규정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은급재단과 유지재단은 대회에서 운영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제왕적 총회장’이란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총회장과 총회임원회의 역할을 조금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회제연구위는 2023년 2월 21일 실제로 미래지향적인 장봉생 목사가 위원장인 미래정책전략개발위원회와 연석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교단 분열’과 ‘서북지역’이었다. 교단분열은 대회제를 시행했을 때 가장 우려하는 것이다. 총대들도 설문조사에서 대회제를 반대하는 첫 번째 이유로 ‘총회가 더욱 정치화 되어 교단분열의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회제연구위의 한 위원도 “대회제를 시행할 경우 호남 지역은 정치적 갈등과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서북지역은 대회제를 시행할 때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래정책위의 한 위원은 “대회제는 지방자치제다. 현재 무지역인 서북 지역 노회들은 전국에 교회가 있다. 서북대회를 구성하면 사실상 전국 대회인 셈”이라며 “서북노회를 모두 지역화할 수 있는가? 예수님 오실 때까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총회와 총회장의 위상이 약화 돼 한국교회 연합사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미래정책위 장봉생 위원장은 “현재 총회의 중앙집권적 구조는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회제를 시행해서 나타날 문제들을 예상할 수 있다. 이 문제들을 미리 파악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고 지혜로운 지도자다운 지적이다. 덧붙이건대 문명의 발달로 즉 철도와 전화기의 발명으로 시간(현재 시각)의 차이, 지역마다 나라마다 각자의 시간관념으로 살던 인류가 공통된 24시간이라는 단위를 만들게 됐다. 말을 타고 여행하던 미국인이 기차로 LA에 아침에 도착해 뉴욕 가족에게 전화했더니 밤이라 자고 있던 사람을 깨우게 됐다. 이후 의아해 조사해보니 지구촌을 비교적 단시간에 왕래하고 통신하면서 이 24시간 또한 국가 간의 밤, 낮 차이에 따라서 서로 다른 때에 있는 것을 보고 세계 시간의 표준을 만듦과 동시에 국가마다 이 현재 시간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환산하게 됐다. 그 정도의 면적을 가진 나라는 대회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전국 세 시간 거리의 대한민국에서 경상도 말로 "무신 대회제고"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념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편을 가르는 이념확신범들이 집단 광기에 빠지면 그것보다 더 위험한 건 없다. 노조가 불법 파업을 해도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불법파업조장법은 진보·보수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근간인 법치를 훼손하는 악법일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 성향이 진보좌파니까 불법파업조장법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만큼 비상식적인 건 없다. 또 진보는 원래 핵을 반대하니, 탈원전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반과학적이고 상식에 벗어난다. 이 같은 교조적 도그마에 빠져 과학과 상식을 배척하는 순간 원리주의 광신도가 되는 것이다. 대회제 역시 상식을 벗어나면 안 될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는가. 이재명은 치밀한 두뇌로 거미줄처럼 감겨 오는 사법 리스크를 헤쳐 왔다. 반면 자신의 정치 생명을 판돈 삼아 큰 승부를 모색하는 담대한 심장을 보여준 적은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정면 승부를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치르고 나서 이재명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되돌아보며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며 한숨짓는 프로스트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총신대를 장악한 것 같은 의혹을 품게 하는 오정호가 대회제를 통해 총회를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이는 위험성 역시 내년,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되돌아보며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며 한숨짓는 프로스트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총회도 총신도 다 잃은 김영우처럼... 성경은 말씀한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 6:15-16 2023-05-1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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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0
  • 권순웅 총회장의 언어
    제대로 된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말뿐인 미사여구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국가건 총회건 개인이건 사기와 기만으로 만들어진 성은 결국 무너진다. 마지막에 살아남는 건 진짜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와 목회에서 언어(language)는 은혜와 기적의 원료다. 무엇보다 총회 리더의 언어는 가능한 한 짧고 단순 명쾌해야 된다. 특히 총회장과 총무의 언어는 총회 품격(品格)의 핵이다. 품격이란 품성과 인격을 줄인 단어로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또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를 뜻한다. 그런 점에서 제107회 권순웅 총회장의 각 모임의 설교와 강연은 정곡을 찌르는 소프트파워(Soft Power)의 백미(白眉)이고 열매가 있는 샬롬 부흥의 알곡이다. 세계적인 명설교와 명연설의 공통점은 결코 어렵지 않으며 삶의 익숙한 보편적 진리를 통해 벅찬 감동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한 설교나 연설은 중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많은 리더들이 마이크 앞에만 서면 자신을 고급스럽게 포장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지도자의 말은 언필유중(言必有中), 말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치(理致)에 들어맞아야 한다. 리더의 언어는 곧 그 조직의 품격이자 위상이기 때문이다. 깨진 종은 소리를 내지 못하는 법이다. 정치에 관한 온갖 이론이 있지만 정치의 기본 토대는 결국 ‘상식’과 ‘신뢰’다. ‘상식’과 ‘신뢰’가 흔들리면 전문 지식을 동원해 그 위에 그럴듯한 이론을 세워도 궤변(詭辯)이 되고 만다. 이재명은 경기지사 선거 토론 때도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허위 발언을 해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하면서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TV토론에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황당한 판결이었지만 대법원도 거짓말이란 점은 인정했다. 그런데도 거짓말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각종 의혹을 둘러싼 이재명의 해명은 총무 연임에 나선 고영기의 새에덴교회에서의 출정사처럼 갈수록 상식에서 벗어나고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도시의 밤 골목을 헤매다니며 두리번거렸다. 가로등도 드문 좁은 길에서 나는 누군가의 쉼터이자 희망일 수도 또 전쟁터이자 고통일 수도 있는 교회들을 보곤 했다. 가난은 감출 수 없는 것이라지만 어둠 속의 작은 교회들은 나의 눈과 마음에서 초라함을 이겨내고 아름다움을 입었다.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불빛이 흰 벽에 잔잔한 풍경화를 새겼고 석양처럼 붉은빛을 드리웠다. 벽은 희고 지붕은 푸른 집은 언뜻 지중해의 작은 섬에라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어둠은 많은 것을 가렸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듯이 그 교회들을 보았다. 비탈진 언덕 위 자리 잡은 옛날 교회들은 비좁은 땅에 알차게 들어앉아 있었다. 내부 구조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창들은 작게 나뉘어 있었다. 그 창틀 안에선 금요 철야 기도로 누군가 하루의 믿음을 달래고 있었을 테고 토요일 새벽이 오면 출입문이랄 것도 없는 교회 여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믿음으로 빛을 안고 나왔을 것이다. 무엇인들 늘 빛나기만 할까. 눈이 부시게 빛나는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귀하다. 교회의 역사는 언제나 전진의 역사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향하여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다. 계속 전진할 것을 이르셨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전진했다. 다시 유럽으로 아시아로 전 세게 교회로 전진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칼빈(John Calvin 1509년~1564)은 죽기 5년 전 1559년 8월 1일 자신의 라틴어판 저서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를 위해 쓴 ‘저자의 마지막 개정판에 덧붙인 서문’에서 말했다. I may further observe, that my object in this work has been, so to prepare and train candidates for the sacred office, for the study of the sacred volume, that they may both have an easy introduction to it, and be able to prosecute it with unfaltering step; 이 저술에 있어서 나의 목적은 신성한 책(the sacred volume 성경) 공부를 위하여 성직후보자(聖職候補者 목사후보생 candidates for the sacred office)들을 준비시키고 훈련 시키기 위해(so to prepare and train) 진술하는(observe) 것일 수 있습니다. 목사후보생들이 성경의 쉬운 개론(槪論)에 접할 수 있고 흔들림 없이(with unfaltering step) 그것을 실행할(prosecute) 수 있도록 말입니다. 칼빈은 신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순종을 가르치고, “우리는 풍부하든 풍부하지 않든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며 신자들이 서로 협력하며 살도록 가르쳤다. 그것이 칼빈의 신앙이었다. 그렇듯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샬롬 부흥'을 향한 설교와 강연은 총회 산하 교역자와 신자와 피 전도자들이 어떠한 형편에서든 서로 협력하며 살도록 가르치는 칼빈 사상의 재현이다. 총회 107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1-2 20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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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06
  • 제108회 부총회장 후보 공감 능력
    꽃한테 다가서면 믿음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이라도 한번 찔리고 볼 일이다. 생생한 꽃들일수록 슬쩍 한 귀퉁이를 손톱으로 상처 내본다, 피 흘리는지 본다. 가짜를 사랑하긴 싫다. 인생을 좋은 길로 만드는 것은 중간쯤 나 있는 근사한 비상구가 아니라 그 길을 가는 사람의 결의다. 따라서 불안하지 않는 삶을 원한다면 최대한 '직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선의 삶을 가기 위한 가장 완벽한 준비물은 ‘끈기’와 ‘결의’다. 자신의 인생길을 망치는 것은 불확실성이 던져준 혼란이나 선택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변덕 때문이다. 그 빛나는 깨달음이 참다운 지혜이다. 모든 생물은 가멸찬 삶, 즉 부를 향한 갈망을 품고 있다. 부(富)는 술 단지처럼 배가 불룩한 그릇을 뜻하는 복과 사당을 뜻하는 면이 합쳐진 말이다. 본래 신께 바치는 공물이 넉넉하다는 의미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이다. 후대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년 6월 5일 ~ 1790년 1월 12일)는 공감의 철학자였다. 스미스의 부친은 연합조약의 영향으로 스코틀랜드 해안에 밀수가 급증한 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을 지켜본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거짓됨의 참람함을 깨닫고 정부의 법과 규칙을 강화하는 방법 즉 관세보호 등을 찾게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국부론"을 쓰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다른 이의 처지에서 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큰 산이었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년 4월 26일 - 1776년 8월 25일)은 현악기가 공명하는 것과 같은 공감을 말했다. 그러나 스미스의 공감은 단순한 반향이 아니었다. 공감은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이의 자리로 가서 그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온전히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기에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나를 지켜보는 가장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고 그의 자리로 가서 그의 눈으로 자신의 행동을 보라. 그는 나의 위대한 재판관이 된다. 스미스는 자기애라는 가장 강력한 충동에 맞설 수 있는 대항력은 인간애의 부드러운 힘도, 자연이 인간의 가슴속에 피워놓은 자비심의 연약한 불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믿음의 채찍을 내려치는 공정한 성령의 감동이다. 스미스는 조선의 정조가 임금에 오른 1776년 '국부론'을 냈다. 17년 먼저 펴낸 '도덕 감정론'은 30년 넘게 다듬었다. 그는 언어와 모방예술도 탐구했다. 하지만 훗날 챗GPT나 미드저니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는 기껏 제임스 와트가 만든 원시적인 복사기를 보고 놀라워했다. 여기서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타임슬립을 한 그가 오늘날의 챗봇을 봤다면 뭐라고 할까. 노동자가 단순 작업만 되풀이하다 창의력을 잃고 무지해지는 것을 걱정했던 그는 일자리 문제부터 고민할 것이다. 가르치는 척조차 않는 옥스퍼드대의 교수들을 비난했던 스미스는 변화에 둔감한 오늘날 총신대학 교육도 질타할 것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더 근본적인 물음도 던질 것이다. 이 신기한 로봇 챗GPT는 과연 사람처럼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지닐 수 있을까. 공정한 잣대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는 있을까. 사실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인)는 오로지 경제적 합리성에만 기초를 두어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다. 때로는 놀랄 만큼 어리석고 잔인하며 파괴적이다. 그럼에도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본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라도' 그 행복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제104회 총회장 이승희 목사는 제108회 부총회장 후보 남태섭 목사와 김종혁 목사에 대해 말했다. "서로 상대가 있으니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겠죠." 제107회 감사부장 김경환 장로는 말했다. "남태섭 목사는 같은 노회 분이고 김종혁 목사는 대학교 동창입니다." 우리는 자기 삶의 저자인 동시에 독자이다. 인생을 멋진 소설로 남기고 싶다면 변덕에 휘둘리지 말고 믿음을 따라 똑바로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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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8
  • 총신 총장 후보 세이렌과 사이렌
    푸른 불 신호가 꿈처럼 어리는 거기 작은 예배당 같은 정거장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기도하거나 의지할 의자 하나 없다. 이따금 고속열차만 쾌속으로 순간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거나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정거장처럼 내가 있다. 작가는 때로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파고 새긴다. 가장 가혹한 형벌은 전혀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한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년 11월 11일 ~ 1881년 2월 9일)도 그러했다. 그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쓰고 있던 1878년 5월 16일, 막내아들 알료샤가 죽었다. 그에게서 물려받은 간질 때문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죽은 것이다. 그가 느끼는 고통과 죄의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의 소설까지 파고들었다. 아이를 잃고 비통해하는 어머니가 그의 소설에 등장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죽은 아이가 그의 아들처럼 석 달이 모자라는 세 살이었고 이름이 알료샤라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소설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는 울기만 한다. 삶은 망가지고 가정도 망가졌고 집을 나온 지 3개월이나 되었다. 조시마 장로를 찾아간 이유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장로는 의외의 말을 한다. “당신한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우세요. 다만 눈물이 나올 때마다 아들이 하나님의 천사가 되어 천국에서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그 눈물에 기뻐하고 있으며 그 눈물을 하나님께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굳이 상처를 덮으려고도 나으려고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울음은 “상처를 열려고 하는 끊임없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니 울음이 나오면 울면 되고 그 울음이 결국에는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닿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는 거다. 그는 위로의 말이 통하지 않는 그녀를 이런 식으로 위로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다 보면 비통한 눈물이 언젠가 “조용한 슬픔의 눈물”로 바뀌고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그것은 도스토옙스키가 아들을 잃고 고통스러워할 때 옵티나 푸스틴 수도원의 암브로시 장로가 해준 말이었다. 그 말을 기억했다가 소설에 등장하는 조시마 장로의 말로 바꾼 것이다.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우세요.” 위로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장로의 말이 그의 고통을 다독였다.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보는 우리는 민중이 쏟아내는 분노와 절망과 원망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재명과 종북 좌파의 소리는 세이렌(Siren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얼굴에 독수리의 몸을 가진 전설의 동물. 경보를 뜻하는 사이렌siren은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의 음성처럼 뱃전에 몸을 묶고 들어야 한다. 세이렌은 여성의 유혹 내지는 속임수를 상징하는데 그 이유는 섬에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뛰어드는 충동질을 일으켜 죽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돌아오던 오디세우스가 밧줄로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이겼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전하는 우리도 거짓과 종북 좌파의 소리에는 성경에 몸과 마음을 묶고 이겨내야 한다. 기대한 김영우가 혼란에 빠뜨리고 기대하지 않은 이재서 총장이 회생시키고 임기를 마치는 총신 총장 후보 문병호 교수 김창훈 교수와 달리 박성규는 총신 교육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런 그가 담임하던 부채 더미의 교회를 뒤로하고 총신 총장에 출사표를 용감하게 내밀었다. 그는 자신의 역량에 버거울 총신의 혁신과 도약을 위한 4대 비전(경건과 교육, 연구, 사회공헌, 산학협력)과 6대 목표(교육, 연구, 경영행정, 학생지원, 산학협력, 사회공헌)를 제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깜냥에 더하여 혁신과 도약을 추진하면서도 개혁신학과 경건 훈련을 기초로 훈련된 인재를 배출하는 전인격적인 교육지원체계 실현이라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기 힘든 총신의 교육 방향성을 견지하겠다고 했단다. 박성규는 중점추진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선 재정 마련이 필수라며 이를 위한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총회를 섬기며 신실한 네트워크와 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다”라며 “임기 내내 총회 산하 교회를 방문해 10만 재정후원 시스템을 구축하여 4년간 300억 모금을 달성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정부와 지자체를 통해서도 재정 확보에 나서겠다고 주제넘게 밝혔다고 한다. 후보 중 유일하게 목회자인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카버넌트 신학교, 칼빈 신학교 등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교에서 목회자 출신 총장을 선임하는 추세라며 그 이유로 목회 경영 능력과 모금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란다.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낭설이 정설처럼 들리는 가운데 선출 권한을 가진 분들은 전쟁에서 돌아오던 오디세우스가 밧줄로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이겼던 것처럼 그런 낭설을 물리치고 이재서 총장이 기사회생시킨 총신을 바르게 세우고 발전시킬 교수 후보에게 관심을 돌려주기를 바라고 기도드린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 8:42-45 2023-03-20
    • G.OPINION
    • G.OPINION
    2023-03-20
  • 전광훈의 보수주의
    2023년 3월 12일(현지 시각)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올라온 나발니의 아내 율리야 나발나야(46)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관객들 앞에서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내 남편(알렉세이 나발니)은 진실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당신과 우리나라가 자유로워질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내 사랑, 힘내세요(Stay Strong). 고마워요.” 러시아의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이자 푸틴의 최대 정적인 남편 나발니(46)의 삶을 다룬 ‘나발니’가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직후였다.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감옥에서 수감 중인 남편을 위해서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시상식에 참석한 이들 부부의 딸 다리야 역시 인터뷰에서 “영화가 많은 관심을 받게 되어 기쁘다. 우리는 아버지를 구출해낼 것이며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나발니는 모스크바행(行) 비행기 기내에서 독극물 중독으로 쓰러졌다. 다큐멘터리 역시 나발니가 쓰러진 직후의 상황을 다룬다. 나발니는 독일 베를린으로 응급 이송된 뒤 입원 치료 끝에 다행히 생명을 건졌다. 하지만 소련 시절에 개발된 군사용 신경 작용제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적(政敵) 제거를 위한 러시아 당국의 암살 기도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2021년 러시아 귀국과 동시에 체포된 나발니는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지난해에는 사기와 법정 모독 등의 혐의로 징역 9년형이 추가됐다. 2021년 유럽 의회가 수여하는 ‘사하로프 인권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2021년 8월 말 경기도 한 지역신문에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칼럼이 실렸을 때 이것이 훗날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시골 논밭의 화려한 변신, 대장동 미니 신도시는 ‘이재명의 업적’이었고 이걸 디딤돌로 이재명 시장은 이재명 도지사,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다. 그 시점에 의혹과 폭로가 연일 터져 나온 것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로선 당혹스러웠겠지만 고소·고발이 이어지니 수사에 나서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작은 불의(不義)보다 법이 무너진 다음의 큰 무질서를 더 경계한다. 법이 무너진 공백(空白)을 무질서가 메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용의주도(用意周到)한 개혁주의자다. 아둔하고 게으른 보수주의자처럼 변화의 때를 놓치고 뒤늦게 과격한 방법으로 혁명을 진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작은 불씨와 불쏘시개를 적시(適時)에 치워 큰불을 예방한다. 가속(加速)페달만 달린 차를 모는 위선적 좌파와 다르다. 변화가 더딜 땐 가속페달을, 속도가 지나칠 땐 브레이크를 밟는 개혁주의자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혁명 구호가 아니라 착실한 실천에 의해서만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한다. 역사 속 실례(實例)가 그들의 자신감을 받쳐 준다. 그러기에 ‘민주화 운동가’라고 찍힌 명함을 들이미는 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 ‘20년 계속 집권’ 운운하는 과욕(過慾)도 부리지 않는다. 과욕을 부리지 않기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찰 위에 고위 공직자 수사처 신설 등 곧 철거될 옥상옥(屋上屋)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없다. 적의 위협을 정시(正視)하지 못하는 유화주의자(宥和主義者)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 서야만 현실을 깨닫는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앞에서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이라고 비하(卑下)한다 해서 위협은 줄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동맹의 효용과 그 한계(限界)를 안다. 김정은은 핵무기로 한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언(公言)한다. 한미는 북이 서울을 핵 공격하면 북한에 핵 보복을 가하겠다는 확장억제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게 정말 실행 가능할까.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이 비극적 시나리오에 질문을 던지며 나라를 지킬 현실적 대안(代案)을 절박하게 고민한다. 보수(保守)는 지키는 것이다. 진보(進步)는 나아가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수는 우파, 진보는 좌파다. 좌파 정권은 국민의 삶에 적극 개입하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 우파 정권은 시장 자율을 우선하고 간섭은 최소화한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 보수와 진보 이념은 이처럼 사회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방식 그리고 속도의 차이일 뿐이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으로 접근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진보가 보수보다 더 정의롭다거나 정의를 진보의 전유물인 것처럼 주장하는 얼치기 이념 과잉세력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황당 궤변이다.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불의는 이념과 하등 상관이 없다. 어떤 이념 지대에 속해 있든 간에 그 안에 정의로운 사람도 있고 불의한 사람도 있는 게 자연의 섭리다. 이념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편을 가르는 이념확신범들이 집단 광기에 빠지면 그것보다 더 위험한 건 없다. 노조가 불법 파업을 해도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불법 파업 조장법은 진보·보수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근간인 법치를 훼손하는 악법일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 성향이 진보좌파니까 불법 파업 조장법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만큼 비상식적인 건 없다. 또 진보는 원래 핵을 반대하니 탈원전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반과학적이고 상식에 벗어난다. 이 같은 교조적 도그마에 빠져 과학과 상식을 배척하는 순간 원리주의 광신도가 되는 것이다. 한 치의 이견도 허용치 않겠다는 전체주의 광기일 뿐이다. 민주화와 선진화 산업화를 모두 이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퇴행으로 몰아가는 열린 민주사회의 적들이다. 보수, 진보 모두가 원하는 건 상식이다.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법치를 곧추세우고 권력자에게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나쁜 놈들은 지위고하·권력 유무에 상관없이 반드시 처벌해 법의 정의를 구현하고 잘못한 일은 뉘우치고 사과하고 염치를 챙기고 진영 논리와 미신 대신 과학과 상식을 따르고 위선과 내로남불을 배격하고 결과의 평등 대신 기회의 평등에 방점을 찍고 내 돈 아니라고 혈세를 무차별적으로 퍼주는 걸 막고 왜곡 선동으로 혹세무민하는 정치꾼들을 퇴출시키면 된다.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이식한다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제도가 아니며 선언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체제도 아니다. 전쟁의 참상과 극한의 빈곤, 독재를 거치며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한국의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값진 것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광훈의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를 위해서 광화문 광장에서의 외침이 문재인과 이재명의 종북 좌파를 물리친 공적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0-13 2023-03-14
    • G.OPINION
    • G.OPINION
    2023-03-14
  • 기독교의 진리
    아내를 너무 사랑한 한 남성이 이제 침대에서 깨어난 아내를 포옹하며 이렇게 말했다. “You are indeed three times a lady.”(당신은 세 번째도 나의 여인이오.) 이 장면을 지켜본 어린 아들은 나중에 뮤지션이 되어 팝 역사에 남은 명곡을 만들어 부른다. 그 꼬마는 마이클 잭슨과 경쟁했던 70~80년대의 수퍼 스타 라이오넬 리치다. 당신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나의 여인이라는 찬사. 여기서 3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영원의 시간이 된다. 자명 혹은 당연한 명제들을 거슬러 오르면, 대부분은 종교에 관련된 문헌에서 멈추게 된다. 그리고, 문맥상 자명이란 단어가 종교에서 진리(眞理, Truth)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함을 알게 된다. ‘참된 이치’라는 뜻을 지닌 진리라는 단어는 종교에서 주로 사용된다. 사실(Fact), 가설(hypothesis), 법칙(Law), 이론(Theory) 종교의 주체가 되는 신의 존재와 신성력들을 의심할 여지 없는 진리로 이해되어야만 교리와 행동 강령들을 설득시키고 이행시킬 수 있는 당위성이 생긴다. 따라서, 하나의 종교 진리로 보면 진리는 절대적이며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해야만 한다. 그래서 절대적 진리라고 하면 역전앞과 같은 겹말 오류를 범하는 개념인 듯하다. 대부분의 진리는 절대 진리로 이해함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지만 가장 혼동스러웠고 현재도 이해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11세기에 200여 년간 치룬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전쟁인 십자군 전쟁이다. 전쟁의 주체인 두 종교는 인간은 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로서 그 생명을 함부로 앗아가는 행위(살인)를 절대 진리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의 생명 존중이란 진리는 지극히 상대적이었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인 본인 생명과 동일 종교를 가진 생명과 영토들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 종교를 가진 생명이나 이념을 가차없이 배제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즉, 내 편으로 간주되는 생명은 소중하지만 적이라 간주 되는 생명을 존중하지 않았다. 생명을 가지고도 자명함을 입증하기 어려운데 수많은 다른 자명한 명제들에 대한 보편타당함에 의구심이 많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의구심과는 별개로 절대적인 보편타당함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도리어 시대적 상황이라든지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이 가정하고 있는 진리들을 참이라 가정할 수 있는 배경 혹은 조건, 상황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상대적 진리라고 한다. 물론 모든 배경과 조건, 상황에 따른 진리가 성립될 수 없기는 하다. 다만 확실하고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만한 배경과 조건, 상황이 주장하고자 하는 진리에 부연 설명을 해준다면 보편타당성을 인정받아 믿어 의심치 않는 절대적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런 발견들이 ‘자명하다’라거나 ‘당연하다’라 표현되며 과학 분야에서는 ‘사실(Fact)’, ‘가설(hypothesis)’, ‘법칙(Law)’, ‘이론(Theory)’으로 불린다.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의 차이점에 대해서 과학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 사실 :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검증한 관찰하여 얻은 결과. _물체를 손에서 떨어뜨리면, 그 물체는 아래로 떨어진다. 2. 가설 : 관찰된 결과를 테스트할 수 있는 잠정적인 설명. _물체가 떨어지는 건 물체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3. 법칙 : 자연계에서 작동하는 원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수학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한 것. _우주에 위치한 두 질량체는 두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질량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 F=G·m1·m2/r2 ) F: 힘, m1 & m2 : 질량, r : 거리, G : 만유인력상수 4. 이론 : 사실과 검증된 가설, 법칙으로 입증한 자연계의 특정 현상에 대한 설명. _질량과 에너지는 시공간에 왜곡을 일으키고 중력은 시공간의 왜곡에 의해 생긴다. 위의 모든 문장들이 일반적인 경우에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현상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이지 않고 특수한 경우에는 진위 여부가 달라진다. 아주 쉬운 예로 사실의 예로 들었듯이 물체는 보통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물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간혹 놀이동산에서나 헬륨으로 채워진 풍선이 아이 손에서 떨어져 하늘 위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체의 조건이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물체가 아닌 경우이다. 이와 같이 아래라는 전제도 일반적으로는 인간이 서 있는 상태 머리에서 발 방향을 아래라고 할 경우에나 옳지, 북에서 남쪽 방향을 아래라고 한다면 옳지 않은 상황이 된다. 따라서 위에 기재한 예들을 진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공학적이거나 과학적인 관점에서 종교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라는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모든 것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음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일반적인 생활에서는 많이 다르긴 하다. 흔히 사용하는 ‘당연한 사실’을 얼마나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는지 모든 것에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있는 공학 관점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종교라는 관점에서 벗어난 기독교의 진리는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즉 자명한 이론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실제 사실(fact)과 실체(reality)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진리는 종교개혁가 칼빈의 말같이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출 때 성령의 감동으로 자명하게 드러난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 14:6-11 20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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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14
  • 정신적 지도자
    13세기 페르시아 시인이며 이슬람 법학자인 루미의 대표작 ‘정신적 마스나비’ 1권에 이런 시가 있다. 배를 타고 있던 학자가 선원을 보며 말했다 “이제껏 공부를 해본 적이 있나요.” 뱃사람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학자가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했구려.” 뱃사람은 슬픔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순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엄청난 강풍이 불어와 배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뱃사람은 학자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수영할 줄 아십니까?” 학자가 대답했다. “못 하오.” 그러자 뱃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하셨군요. 지금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1207~1273) 가라앉고 있는 배에 탔는데 헤엄칠 줄 모른다. 그동안 읽은 그 많은 책이 무슨 소용이람. 방랑자 스승 샴스를 만난 뒤 교리 학습이나 율법보다는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영혼의 교류에 심취했다는 신비주의자 루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산문시. 어떤 설교보다도 설득력 있는 뱃사람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 교리에 얽매여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유년기에 몽골족의 침략을 우려한 부친에게 이끌려 서남아시아를 편력한 후 룸 셀주크의 도읍 코니아에 정주하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에 신비주의의 수업에 진력하여 한 파(派)를 창설하였다. 37세경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불후의 명작 《정신적 마스나비》를 완성하였다. 이 전 6권으로 된 방대한 신비주의 시집은 '페르시아어의 코란'이라고도 평가되며 그의 사상적 성전(聖典)이라 하겠다. 몇 가지의 비유·우화·전설의 형식으로 읊은 시로 외면상은 이야기 시와 같으나 그 배후에는 절대적인 신의 사랑과 그것을 구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중세의 문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루미의 주요 활동 무대가 터키였다는 사실은 그의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다. '루미'는 아랍어·페르시아어 이름의 구성 요소 중 니스바에 해당하며 그 인물의 출신지나 주요 활동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빈치의 레오나르도)'에서의 '다 빈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즉 '루미'는 '룸의-'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룸'은 '로마'를 뜻하는 단어로서 당대의 무슬림들은 동로마 제국이 점유하고 있던 아나톨리아를 '로마(인)의 땅'이라는 의미에서 '룸'이라고 불렀다. 결국 루미라는 그의 이름은 좀 더 의역하면 '아나톨리아의-'가 되는 셈이다. '비잔티움은 로마가 아니다'라는 시각은 교황이 내세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서구 가톨릭 세력의 지극히 정치적인 의견이었을 뿐 이러한 교황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았던 제3 자 세력들(슬라브인과 페르시아·이슬람 세력)은 비잔티움을 '고대부터 이어져 온 로마 제국' 그 자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루미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룸 술탄국'이라는 국호 역시 '로마의 땅 위에 세워진 술탄국'이라는 의미로서 당대의 무슬림들이 비잔티움 제국을 로마 제국으로 인식했음을 보여 주는 숱한 사례들 중 하나이다. 그의 시는 대체로 섬세한 서정시의 성격을 띄고 있었으며 인간과 사랑과 신의 합일이라는 종교적 사상을 노래했다. 이후 루미는 대표작인 6권 분량의 신비주의 시집 《정신적 마스나비》를 완성하였는데 이 작품은 아직도 불멸의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향후 중세 이슬람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종교를 초월한 신의 근본적 사랑 자체를 강조했던 그의 가르침 덕분에 수피즘 사상가와 이슬람교도 뿐 아니라 기독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유대교도 등으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은 나에게 득(得)이 된다. 상대를 부정확하게 아는 나라는 지형(地形)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낙하산병(落下傘兵)과 같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국가의 성숙과 직결돼 있다. ‘기억의 감옥’에 갇히면 ‘기억의 포로(捕虜)’가 된다. 국력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협력하며 경쟁하는 한국과 일본은 징용공 문제로 다시 시험대에 섰다. 누가 성숙한 역사의식에 먼저 도달하느냐의 경쟁이다. 대한민국이 이번만은 일본을 반드시 누르기를 기도한다. 총회는 소강석과 배광식의 무질서를 넘어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을 이어 하나님의 은혜로 김종혁 목사와 장봉생 목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치에서 무질서만큼 두려운 게 없다. 무질서가 휩쓸고 간 땅에 희망의 싹은 돋지 않는다. 대부분 괴물(怪物)이 태어난다. 무질서는 약한 사람을 더 힘들게 하고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다. 무질서가 낳은 괴물들은 무질서에 지치고 시달린 약하고 힘든 사람들의 절망을 양식(糧食) 삼아 몸을 부풀린다. 히틀러·마오쩌둥·스탈린이 그런 경로를 밟았다. 그들은 전쟁 중에 또는 전쟁 후 적군(敵軍) 숫자보다 많은 자기 국민을 살해했다. 배광식 같은 작은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무질서와 혼돈(混沌)의 자식인 독재자들은 국민의 귀와 입을 막고 ‘새로운 질서’라고 우긴다. 혁명 귀족, 노동 귀족들은 약한 사람, 어려운 사람 위에 멍석을 깔고 저희들끼리 권력과 이익을 분배하는 독식(獨食) 잔치를 벌인다. 이것이 혁명의 타락 과정이고 촛불 이후 우리 국민이 목격하고 결혼할 필요성도 못 느낀 김영우 이후 우리 총회와 총신이 체험한 진실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1-3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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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12
  • 종교개혁 운동 교육 선진화
    꽃을 기다린다. 저 멀리서 들리는 꽃 소식 말고, 마른 가지를 거짓말처럼 뒤덮어서 어느 날 문득 마음을 콩콩 두드리며 눈부신 아침을 만들어 줄 기쁜 소식 꽃을 기다린다. 곧 지고 말 잠깐의 찬란한 시간을 기다린다. 초록보다 오래지 않아서 더 애틋할 설렘을 기다린다.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시절을 그토록 빛나게 할 수 있을까.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믿음의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소망의 언덕 위에 섰다. 믿음은 죽어서 믿음 속으로 가고 소망도 죽어 소망 속으로 간다. 그렇다, 죽어 사랑은 사랑의 부활 속으로 가고 우리도 죽어서 우리 고향 하늘 속으로 가야만 한다. 종교개혁 시발은 1517년 10월 31일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당시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정치와 서방교회의 면죄부 판매, 연옥에 대한 교황권 주장, 그리고 공로 사상을 비판한 내용의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하는 사건이다. 이미 교회 개혁은 중세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영향을 받았다. 인문주의자들의 방법을 통하여 성경을 원문으로 해석하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의 기록, 성경의 권위를 16세기 서방교회의 모든 제도인 교황과 교회 직제, 교회전통보다 더 높은 권위에 두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이 불러온 교육 효과는 성경을 직접 읽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을 중시한 덕분에 문해력이 향상돼 두꺼운 인적 자본이 구축됐다는 얘기가 있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운 개신교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어 부를 쌓았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이끈 결정적 요인은 종교개혁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개혁이 불러온 교육 선진화 덕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18세기 서구 유럽의 산업화를 이끈 건 어쩌면 편지였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1694∼1778)는 1755년부터 21년 동안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에 사는 지식인들과 1만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최근 사회과학자들은 혁신을 보상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서신 교환을 통해 싹텄다고 분석한다. 의회제의 정착, 교통망 발전, 증기기관의 발명 등 이 같은 혁신들이 비슷한 시기 한꺼번에 서구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천재적인 발상을 나누는 편지의 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를 서신으로 전해 교회가 서게 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마지막 서신에서 복음을 굳게 붙잡고 사역에 충실 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굳게 서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했다. 디모데는 우유부단했고 무기력했으며 크게 낙심한 상태였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저버리고 그를 외면했다. 따라서 바울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잘못과 죄의 결과를 언급한 뒤 디모데에게 굳세게 견디라고 권고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2-17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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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12
  • 전광훈의 이승만 정신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실시한 결과 재석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기권 9명, 무효 11명으로 부결됐다. 체포동의안은 재석 의원 중 과반인 149명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이에 대해 홍준표 시장은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과반수에 못 미쳐 부결은 됐지만 민주당에서만 이탈표가 31표나 나와 찬성표가 1표가 더 많은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라며 “그런데 아직도 수사 중인 사건이 많은데 이번 사건을 검찰이 일단 불구속 기소를 하면 민주당 당헌(기소되면 당직 사퇴)에 따라 당 대표 사퇴 논쟁은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북 운동권이 좌파를 장악했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대안 없는 통일과 굴욕적 평화론은 이제 볼 만큼 봐왔다. 결과는 북한의 전쟁력 강화에 이바지했을 뿐이다. 5~6건의 범법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명 씨를 당 대표로 뽑은 운동권 정당은 이제 한계에 왔다. 4.19는 1948년 제헌 헌법의 정신을 어긴 부정부패와 부정선거에 대한 항거였지 대한민국을 뒤엎고 헌법 이념과 주권자를 교체하자는 혁명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승만 대통령은 4.19에 봉기한 학생들을 병원으로 방문하며 칭찬하고 지식인들의 요구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조용히 물러난 지도자였다. 게다가 좌파 독재에 항거하고 막은 전광훈 목사가 이어받고자 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은 4.19에 봉기한 학생들에게 맞선 독재자가 아님을 알리는 광고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안내를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문재인의 종북좌파 독재를 막은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는 자유민주주의에 근거해 이승만 정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 4대 정신으로 건국했으며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론이다. 이승만의 반공주의를 계승하여야 하나님의 나라를 지킬 수 있다." 한국의 정치가 지금껏 자리를 잡지 못하고 파국을 헤맨 데는 남쪽의 여야 대립을 넘어 북한의 이념적 대리(代理)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0여 년 한쪽엔 미국과 동맹을 기조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세력, 다른 쪽엔 북한의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이 결합한 김일성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 6·25 전쟁이 그중의 하나다. 숱한 정치적 테러와 정변 숙청도 그 결과다. 한국이 그 와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고리를 연결로 세계로 나간 덕분이다. 우리가 그런 환경에서 경제를 일구고 세계 여러 나라와 연대해 국제적으로 설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을 살린 것은 경제적 부흥이었고 이 경제적 부흥은 좌파도 먹여 살렸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친북·종북·운동권의 아지트가 아닌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한 진보·좌파·사회주의 본연의 기지(基地)로 돌아와서 좌·우의 건전한 대결과 대안(代案)의 정치를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 이제 무력(武力)으로 남의 땅을 먹으려는 제국주의적 사고는 설 자리가 없다.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에 상관없이 파멸할 것이다.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에 동조하는 이유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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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8
  • 이승만 박정희 전광훈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거친 그 세월, 옛날 가난하고 외로운 나를 지켜주는 것은 빨간 교회에서의 어린 기도뿐이었다. 놀며 기도했고 기도하며 놀았었다. 그 시절 지나고 문밖에는 늘 짐승들이 지도자 숭내를 내며 어슬렁거렸다. 독사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솔개도 있었다. 그 세월 가고 아아 조용하다. 늙어 이리 평안하고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 나이 들수록 어릴 적 그랬듯 외로움과 친해져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결국 믿는 자의 삶은 나 혼자 주님과 함께하는 성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독인의 삶은 그래서 숙연하고 아름답다. 그러니 늘 기도하며 잘 살자. 그럼에도 자신의 삶에서 선행돼야 하는 것은 내 바깥의 나(I)와 내 안의 자신(self)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와 관용도 필요할 것이다. 내가 내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은 성령께서 도와주실지라도 마치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처럼 하모니를 이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면 자신의 삶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하모니를 이루며 자아내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을 거쳐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을 세운 이승만(李承晚, 1875년 3월 26일~1965년 7월 19일)대통령 그리고 대한민국의 제5·6·7·8·9대를 지내며 국가 성장의 물적 토대를 이룬 박정희(朴正熙, 1917년 11월 14일~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을 누가 뭐래도 조국 근대화에 그들의 공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이승만은 대한제국 시절 '독립신문'과 '협성회 회보' 주필, 독립협회 활동 등 계몽운동을 하였고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도모하였다는 반역의 죄목으로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수감 시절 기독교로 개종하고 옥중 계몽 활동을 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대한제국 말기 특별사면된 후 밀사로 도미하였다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기회를 잘 활용하는 그답게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5년에 걸쳐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믿음의 예지력을 지닌 그는 일제강점기 중후반에는 일본의 미국 침략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제국의 패전을 확신하고 일제가 망하는 즉시 한국이 빼앗긴 주권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승인해야 된다는 외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그 수단으로 미국의 소리 초단파 방송을 통해 고국 동포들의 투쟁을 격려하였다. 그는 임시정부와 미군 OSS 간의 한미군사협력을 주선하는 외교력도 발휘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김구와 함께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공산 진영과의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38선 이남에 민족진영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합법 정부를 단독 수립한 뒤 38선 이북의 비합법 정부와 공산 진영 일체를 쫓아내고 한반도 통일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어서 그는 1948년 제헌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그해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냉전 시대에 발맞추어 반공주의,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1949년 농지개혁법 제정,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안팎으로 대한민국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952년 평화선을 선포하여 독도를 사수하고 일본을 견제하였다. 이승만이 하와이로 떠난 뒤 구심점을 잡는 지도자의 부재로 서울을 관할하는 제6관구의 사령관이었던 박정희 소장은 1961년 5월 15일 저녁부터 1961년 5월 18일 정오 무렵까지 서울, 부산, 대전, 광주, 김포, 인천, 포천 등에서 일어난 군사 정변을 일으킨다. 그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국가변란 성격의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어 "군으로 돌아가겠다"라는 약속을 깨면서 군복을 벗고 직선제로 치루어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등 1963년 12월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어 제5·6·7·8·9대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다. 국가재건사업을 추진하여 1968년부터 경부고속도로 기공 및 개통, 서울 지하철 기공 및 개통, 농촌의 현대화 운동이었던 새마을 운동, 대규모 중화학 공업 건설 및 육성, 민둥산의 기적인 산림녹화 사업, 식량 자급자족 실현, 자주국방 및 군대 현대화 사업 등 국가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여 국가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69년 10월 10일 박 대통령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가시밭이었음을 대국민 담화로 호소한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다 매국노라는 욕을 듣고 남의 나라, 돈 빌려와 경제 건설한다고 차관 망국이라 비난당하는 가운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분을 토해낸다. 비장하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그때 야당의 반대를 못 이겨 이를 중단하거나 포기했더라면 과연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설 땅은 어디겠습니까. 내가 만일 야당의 반대에 굴복하여 물에 물 탄 듯 소신 없는 일만 해왔더라면 나를 가리켜 그들은 독재자라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1977년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했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확보하고 복잡한 세제(稅制)를 정비하기 위한 ‘세제개혁’이었다. 부가가치세 도입을 두 주 앞두고 당정(黨政)협의회가 열렸다. 난상토론 끝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김용환 재무부 장관에게 “부가가치세를 지금 꼭 도입해야 하느냐?”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냐?”고 물었다. 김 장관이 “그렇다”라고 대답하자 박 대통령은 예정대로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내가 걱정할 테니 장관은 경제를 잘 챙기도록 하시오.”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이라는 책에 김재관(1933~2017)이란 사람의 이야기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이 담겨있다. 김재관은 서울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 산업은행과 서독 유학생 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그런데 산업은행에서 유학 기간에도 월급을 주겠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인재 양성 제도였다. 이 대통령은 과학을 몰랐지만 미국에서 MIT를 둘러보며 여기에 나라가 죽고 사는 게 달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산은은 김재관에게 출국 때까지 국내 산업 현장을 둘러보라고 알선까지 해줬다. 전쟁 직후 형편없는 시절이었지만 한국은 싹수가 있는 나라였다. 김재관은 KIST에서 ‘한국 기계공업 육성방안’을 보고하고 박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1973년 ‘중화학 공업화 선언’을 한다. 한국이 농업 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골간이 선철, 특수강, 중기계, 조선이었다. 선철과 특수강은 산업의 쌀인 동시에 대포 등 무기를 만드는 재료였다. 김재관은 뮌헨공대에서 독일군 함포와 대포의 금속 조성을 공부해놓고 있었다. 중기계는 탱크를 만드는 것과 같았다. 조선은 유조선과 동시에 군함도 만들었다. 오늘날 K방산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김재관은 부산 피란 시절 미군 부대에서 일하면서 미군 무기들이 모두 특수한 철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뮌헨공대에서 그의 전공은 이때 이미 금속학으로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적 제철소인 덴마크 종합기획실에 들어갔다. 2년 뒤 박정희 대통령이 차관을 얻으려 서독을 방문했다. 서독에 돈 벌러 간 광부, 간호사들 앞에서 눈물의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한 그 방문이다. 박 대통령은 유학생들을 초청해 조찬 모임을 했다. 박 대통령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해달라”고 하자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김재관이었다. 박정희와 김재관의 첫 만남이자 한국 산업사에 기록될 순간이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한국 철강 공업 육성방안’이라는 두툼한 논문을 전달했다. 박정희는 김재관을 눈여겨보았다. 박 대통령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첫 번째 해외 유치 과학자 18명 중 한 명으로 그를 불러 제1 연구부장을 맡겼다. 박정희는 제철소 건설을 일본에서 받아낸 대일청구권자금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놀라운 것은 30대 중반인 그가 그때 이미 10년, 20년 뒤 우리 산업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자동차와 조선에 쓰이는 특수강까지 만드는 제철소를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그 골간이 선철, 특수강, 중기계, 조선이었다. 선철과 특수강은 산업의 쌀인 동시에 대포 등 무기를 만드는 재료였다. 박 대통령은 김재관을 상공부 중공업 차관보로 임명했다. 김 차관보는 일부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박 대통령에게 독대를 청해 ‘한국형 승용차 양산화’ 계획을 채택시킨다. 조선과 자동차 모두 당시 기업인들은 손을 저었으나 유일하게 정주영 회장이 “하겠다”라고 손을 들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신화의 시작이다. 박 대통령은 김재관을 ADD(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에 임명한다. 임명된 날 당시 심문택 소장, 김재관, KIST 조선 담당 김훈철 세 사람은 남해 한산도 충무공 사당을 찾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임전무퇴로 국방기술을 완성한다”라고 맹세했다고 한다. 이 ADD에서 미사일까지 나왔다. 당시 박 대통령이 KIST 연구원들에게 밥을 사면 그 자리에서 코피를 쏟는 연구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늘의 이 나라는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이런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나타났다. 그것은 노무현과 법무법인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했고 노무현 참여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통령비서실장을 거쳐 제19대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 친공 친북을 추구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경제를 무너뜨리려는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무리였다. 그는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대권에 재도전하였고 이재명, 최성, 안희정과 겨루어 전체 표수의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가 되었다. 이어 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으로 행한 취임선서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그는 반공을 국시로 심은 대한민국을 친공 친북으로 부정하고 자유경제를 말살하려는 듯 과격 투쟁을 일삼는 좌경 노조를 지원하거나 방임하고 대표적인 기업인들을 압박하고 탈원전으로 국가 기간 산업을 고사시키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1년에는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2200조 원에 육박해 역사상 처음 ‘나라 빚 2000조 원 시대’가 열렸다. 문 정부 5년은 ‘국가경쟁력’ ‘생산성’ ‘기업환경 개선’이라는 용어 자체가 아예 사라진 한국 경제의 암흑기였다. 유다 민족을 살린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믿음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친북 주사파 문재인을 무너뜨린 투사가 나타났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내세우는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였다. 그런 문재인을 간첩으로 몰아 궁지에 몰아넣은 사생결단 전광훈 목사 때문에 거짓의 아비 마귀를 닮은 이재명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간발의 차로 떨어지고 문재인도 2022년 5월 9일에 퇴임했다. 다음날 전광훈 목사 덕에 문재인 후임으로 윤석열이 이승만이 세우고 박정희가 발전시킨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로 만들고자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 4:16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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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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