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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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대 회 사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죄와 고통으로 죽어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기독교는 죽어야 사는 종교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사랑과 용서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할 때에도 교회는 언제나 희망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믿음의 기도로 극복하였습니다. 기도는 나라를 지키는 힘이며, 기도는 모든 문제를 뛰어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하나 되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한국교회를 위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때입니다. 모든 갈등과 분열의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무너뜨리고, 교회는 다시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기도성령운동에 힘써서 이 땅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워 모든 백성들이 정직과 성실함으로 풍요로운 삶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나라, 모든 성도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어 나갑시다. 오직 부활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소망이며, 오직 생명의 복음이 민족의 희망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으로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열방의 소망으로 우뚝 서서 부활의 기쁜 소식과 예수 생명의 복음을 우리 민족에게 전할 때 대한민국은 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국민의 나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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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차금법 폐기 촉구
    이승만은 식민지로 망한 터에 공산주의 물결을 막아내는 방파제(防波堤) 국가를 세웠다. 박정희는 금고(金庫) 안에 먼지밖에 쌓인 게 없는 나라를 부자 국가로 일으켜 세웠다. ‘공칠과삼(功七過三) 평가 이론’을 적용하면 위대한 정치가다. 민주당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전쟁 목표는 당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재명의 민주당’에겐 계승해야 할 유산(遺産)이 아니라 끊어내야 할 멍에고 족쇄가 됐다. 겉으론 레닌을 받들면서 속으론 지워갔던 스탈린 권력 장악 과정과 닮았다. 두 사람 냄새는 당사에 사진을 걸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인 것 같다.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가 22대 총선을 앞두고 포괄적차별금지법(차금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2023년 3월 8일 능력 있는 목회자이고 대표적 세계 장로교 대표 교단 합동 총회 중진 총대 오범열 목사 시무 안양 성산교회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공동대표회장(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 사무총장(이승준 목사) 연석회의를 열었다. 공동대표회장 오범열 목사가 주재한 연석회의에 앞서 진행된 예배에선 서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심하보 목사가 설교했다. 충북기총 사무총장 박병식 목사가 성경 요한복음 8:31~32을 봉독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본문에 근거해 심하보 목사가 ‘KS마크 BS마크’ 제목으로 설교했다. “한국산업표준 즉 KS(Korean Industrial Standard) 마크가 붙은 생산품은 우리나라 정부가 품질을 인증하는 제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받아야 할 인생의 인증 마크는 성경표준 즉 BS(Bible Standard) 마크입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니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곧 성경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친목 하려 모인 게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엔 목회자가 필요 없습니다. 악법을 막기 위해 진리이신 주님을 믿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합시다.” 각 지역 사무총장을 대표하는 사무총장 회장 이승준 목사가 광고했다. 울산기총 대표회장 권규훈 목사가 축도했다. 이어진 연석회의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는 22대 국회에 차금법안 폐기를 비롯해 생명 존중 입법 요구를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또 오는 7월 예정된 인천여성영화제에 대해 “시민의 세금이 동성애 영화 홍보에 쓰여선 안 된다”며 “동성애는 가정·부부관계를 무너뜨리고 양성평등 정책과도 거리가 멀다. 인천여성영화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 1:21-27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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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권순웅 목사 저출산 대책
    저출생·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인구 통계는 점점 드라마틱해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3년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631만여 명으로 20대 인구(619만여 명)를 처음 추월했다. “하나님 저출산 문제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소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년 9월 18일 ~ )는 소설 ‘웃음’에서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를 꼽은 적이 있다. 2세 때는 대소변을 가리는 게, 3세 때는 치아가 나는 게, 12세 때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18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2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35세 때는 돈이 많은 것 등이 자랑거리다. 그런데 인생이 반환점을 돌면 자랑거리가 뒤집힌다. 6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70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75세 때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게, 80세 때는 치아가 남아 있다는 게, 85세 때는 대소변을 가릴 수 있다는 것 등이 자랑거리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대소변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통과하다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는 다시 대소변 가리기가 어려워진다. 2024년 국내외적으로 한국이 마주한 도전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 갈등이 심화되고 대만해협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과 양극화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국력이 피크를 지났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2024년 세계는 전쟁 2개와 50여 국의 선거로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새해로 이월돼 살상과 파괴로 치닫고 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 명이 50여 국에서 선거로 정치적 전쟁을 치를 예정이다. 20억이라는 숫자는 세계 경제 총생산의 60%에 해당한다(뉴욕타임스 집계). 선거가 있는 나라는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남아프리카·미국·대한민국 그리고 유럽 27국(의회) 등이다. 우리는 여전히 ‘배달의 민족’일 뿐 아니라 ‘바람의 민족’이기도 해서 바람이 불면 죄다 그쪽으로 쏠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새 방향을 좇는다. 이런 데 자유가 있을까. 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수긍하지 않는 것에 머리 숙이지 않을 자유, 원치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항상 그렇진 못했지만) 품은 뜻에 따라 사느라 더러 외로웠지만 자유는 외로움에 지지 않을 때 얻어진다는 체험 또한 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자유로워지는 중이구나’라고. 맞다. 당신도 믿음의 자유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대로. 2024년 2월 18일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가 ‘한국교회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전국연합기도회’를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532 육탄10용사 공원 근처 주다산교회에서 드렸다. 진용훈 목사(중앙위 서기)의 인도로 케리그마 및 기도회가 진행됐다.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는 오는 5월 19일 생명존중 주일이 있는 날까지 100일 기도 행전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권역별로 지역교회가 연합해 ‘특별기도회’로 모일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밝혔다. 인문고전을 읽는 천재들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은 보통 보이는 것(sight)에 주목한다. 그러나 천재들은 보이지 않는 것(insight)에 주목한다. 통찰력을 의미하는 “insight”는 “sight”에 “in”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다. 통찰력이란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의 총회 불꽃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강단에 서자 청년과 장년 신자들이 환호했다. 그가 그 가운데 외쳤다. "샬롬! 저한테 너무 큰 박수하면 오해합니다. (회중 웃음) 지금 대한민국은 축구협회를 고발했습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야구계를 고발하려 합니다. 대한민국 야구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종범(李鍾範, 1970년 8월 15일 ~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 외야수) 감독 때문에 이 야구계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분의 아들이 이정후(李政厚, 1998년 8월 20일 ~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외야수) 선수입니다. 이정후 선수가 1490억 이상 그렇게 전속계약이 된 선수입니다.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뛰어난 아들을 한 명밖에 못 낳았다는 것입니다. (회중 큰 웃음)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둘 낳고 다섯을 낳았으면 한국 야구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3년 전 저출산 극복 헌신예배에서 ‘홈런 가족’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야구를 보면 안타가 있는데 야구의 꽃은 홈런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보면 이 저출산 환경에 아기가 없는 가정은 스리(three) 아웃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 다산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면 홈런입니다. 여러분 출산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출산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출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번성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애굽에 살 때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민족의 핍박 가운데 살지라도 하나님은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바로(Pharaoh)가 이스라엘인의 출산을 압박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기도로 시작한 국가입니다. 애국가가 찬송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난 줄 압니다. 크게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출산 국가로 전 세계의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가운데 가장 먼저 인구가 소멸이 될 국가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라질 제1위 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녀본 제삼세계(第三世界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말)가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지만 아이들이 거리마다 가득합니다. 어디가 못사는 나라입니까. 대한민국은 미래가 있습니까,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 생각에 한국교회가 그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산아제한을 했습니다. 맬서스주의(Malthus主義: 맬서스가 저서 ‘인구론’에서 주장한 학설로 인구와 식량과의 관계에 관한 이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빈곤과 악덕이 불가피하게 초래된다’라는 내용)를 따라 한국이 주창한 ‘산아제한’과 정부의 실책에 한국교회가 침묵했습니다. 제가 30여 년 전 신학교 갈 때 신학교 전도사 한 분이 ‘산아제한,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라는 대자보를 크게 써 붙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창 1:28)대로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이 소돔의 멸망을 예고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그렇듯이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잘못을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도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불순종한 죄를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여러 시책을 제안하고 여러 사람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주셔야 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생각, 돈을 더 사랑하는 생각, 쾌락을 더 사랑하는 생각, 우상을 버리지 않는 미련을 경고하지 않는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 민족에게 성령의 바람으로 말씀 순종할 수 있도록 불붙는 마음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이여, 하나님 주신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후손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한 복된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 한국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우리 총회다음세대 운동본부에서는 이 일을 지금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다산교회부터 시작해 전국 교회가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였습니다. 먼저 느헤미야같이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한국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가 불순종하고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를 바르게 세우지 못한 죄를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회중 아멘) 회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나도록 우리가 선포하고 섬기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이어서, 2강 ‘다자녀 출산의 복’은 이승준 목사(경기총연합회 사무총장) 부부가, 3강 돌봄시설 입법화는 강유진 교수(총신대학교)가, 4강 비혼주의 극복은 이용희 교수(에스더기독운동 대표)가 강연했다. 이승준 목사 부부는 네 자녀를 세 번의 제왕절개와 한 번의 인공수정을 통해 어렵사리 출산했던 경험을 간증하며 하나님의 복을 전했다. “인간적인 환경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응답을 통해 태의 열매를 다시금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기적이자 은혜였습니다. 아이는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다음 세대가 누리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해중 장로(회계)의 헌금기도와 김영구 장로(부총회장)의 사명자 구호제창이 있었고 김진하 목사(부본부장)의 축도로 마쳤다. 우리나라 초저출산은 그 수준(2021년 기준 0.81로 OECD 최저, 홍콩 제외 세계 최저)과 지속기간(2002년부터 1.3 미만 21년 지속)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약 86.4% 감소하여 전 세계 217개 국가·지역 중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로 인구 통계를 꼽는다. 지방대학의 붕괴, 주거 불안, 연금 고갈, 노년 부양비 등은 모두 인구문제와 연관돼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인구 감소로 5년째 출산율 0%대의 ‘초저출산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문제는 ‘마땅한 대응 방안이 있는가’일 것이다.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의 회개와 더불어 다음의 교회 사례를 보면 그 방안이 있을 것 같다. 2023년 11월 8일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시작은 벽보 한 장이었다. ‘한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다른 아이는 어찌하십니까? 위급하고 답답할 때 아이를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 드립니다. 믿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당진 동일교회 이수훈 목사.’ 27년 전인 1996년 충남 당진의 야산 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개척한 이수훈 목사(67)는 인근 아파트에 이런 벽보를 붙였다. 야산에서 캔 칡으로 차를 끓여 가가호호 나누며 전도에 애썼지만 비닐하우스 교회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때 그 자신 육아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아이 돌봄’ 벽보를 붙인 것. 붙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런 비닐하우스 교회에 누가 아이를 맡길까?’ 며칠 후 두세 살짜리 아이 셋을 데리고 주부 둘이 찾아왔다. ‘시장 다녀올 동안 1시간 정도만 맡아달라’던 엄마들은 해가 진 후에야 나타났다. 미안해했지만 얼굴엔 해방감 가득했다. 이후로 아이를 맡기러 오는 부모가 줄을 이었다. 다 받았다. 부모가 천안, 대전, 서울의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킬 땐 안 아픈 아이를 며칠씩 이 목사 부부가 먹이고 재웠다. 돌봄 수요는 계속 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끼리 품앗이 돌봄도 이뤄졌다. 2004년 주 5일제가 도입될 때 ‘토요 돌봄’을 시작한 것도 부흥의 한 계기가 됐다. 현재 등록 교인 1만 5천여 명, 평균 연령 29세, 2자녀 이상 가정 3천 세대, 평균 자녀 수 2.07명, 당진 초등학생 12% 정도가 출석하는 교회, 어린이집 2백 명, 비전스쿨(방과 후 학교) 2백 명이 매일 교회 안에서 자라며 ‘저 출생 극복의 모델’로 전국 교회의 탐방이 끊이지 않는 당진 동일교회의 시작은 소박했다. 이 교회는 어린이가 중심이다.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엔 어린이집, 왼쪽엔 교육관(비전스쿨), 정면엔 비전센터(청소년수양관)가 자리 잡았다. 예배당 건물 따로 없이 비전센터 강당 8백석을 대예배실로 쓰는데 주일 오전 9시 ‘온 세대 예배’에서도 어린이들이 주요 역할을 맡는다. 어린이들은 예배 시간에 성경 구절을 암송해 봉독하고 어린이 찬양대가 찬양하고 매주 1명씩 자기 ‘꿈’을 발표한다. 다른 교회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어린이집과 비전스쿨은 오후 7시 반까지 돌본다. “불 꺼진 빈집에 부모보다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자”가 ‘교회 이모’ 마음이다. 비전스쿨은 교회 버스가 하교 시간에 맞춰 당진 초등학교 10곳을 돌면서 교문 앞에서 교회 마당까지 안전하게 데려온다. 영어, 수학뿐 아니라 인성 교육도 강조한다. ‘명심보감’을 전 학년이 배우고 밥상머리 예절도 지도한다. 어린이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워 3학년 때와 졸업할 때 연주회도 갖는다. 방학이면 영미권 대학생들을 교사로 초빙해 영어 회화 교육을 한다. 2017년엔 ‘시내산 중고등학교’라는 대안 학교도 열었다. 이 교회 성장 비결은 ‘역발상’이다. 20~30년 전만 해도 개신교계 사역은 장년 위주였다. 저 출생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도 않았다. 이수훈 목사는 말했다. “개척 당시는 한보철강이 들어왔다가 부도나면서 당진 경제가 휘청하고 어려운 가정이 많았을 때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교회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자신과 이웃에게 정직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목회의 핵심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한 생태계로 봐야 합니다. 정확히 어린이 양육에 예산이 쓰여야 저 출생 문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 127:3-5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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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8
  • [더굳뉴스] 기독언론인협회 성명서_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지 말아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발표하면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학병원 전문의 등 의료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OECD 39개국에 의하면 한국은 의사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에 대비할 때 의대 졸업생은 7.26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의사수는 OECD 평균의사 3.5명에도 못미치는 2.4명이다. 국민들도 66.7%가 의대증원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 수는 현재도 충분하며 정부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는 중요한 방안으로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의사 수 증가는 의료 수요 증가로 이어져 건보 재정 악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사 회원 대상으로 2023년 11월 10~17일 설문 조사한 결과 정부의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응답자 4010명 중 3277명(81.7%)은 반대했다.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 가운데 1517명은 ‘이미 인력이 충분하다’(46.3%)라고 답했다. ‘향후 인구 감소로 의사 수요도 감소’(15.1%), ‘의료비용 증가 우려’(13.9%), ‘의료서비스 질 저하 우려’(13.4%)가 된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의사 733명(18.3%)은 의대 증원을 찬성했다. 찬성하는 의사들은 ‘감염·외상·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 공백 해소를 위해’(49.0%) 증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24.4%)가 그 뒤를 이었다. ‘실제 의사가 부족해 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없어서’라는 응답자도 85명(11.6%)이었다. 의사들도 18.3%는 의대 증원을 찬성하였고 국민들은 70%가 지지하였다. 이는 비단 윤석열 정부만 의대 증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도 ‘문재인 캐어’라는 말도 있듯이 공공의료서비스를 강조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100대 국정과제 중 45번째로 공공의료기관 확충 및 지역사회의 의료체계 강화,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 해소를 목표로 ‘의료공공성 확보 및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러한 연속 상에서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대학병원까지 반대하고 나서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의료생산 및 공급체계는 민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국민건강 보험 방식의 보건의료체계 속에서 의사와 의료기관은 의료자본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를 확충하여 건강 보장성을 강화하려는 현 정부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학병원처럼 민간의료기관의 힘이 정부의 힘보다 막강해진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장하겠다는 것은 민간의료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의료취약지구나 부분을 위하여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공공의료서비스를 지향하고자 한다. 그러나 권력이 막강해진 의사들은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까지 여기에 동참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나타나듯이 병원이 파괴되면 가장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국민들이다. 전문적인 직종의 대표 격에 해당하는 의사는 의학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진료, 진단, 치료, 수술 등의 의료행위를 제공하고 관리하는 직업군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의사들은 대형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던 만큼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영향력이 막강해지다 보니 의사들은 환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전문성을 형성하기보다는 직종에 대한 의사 간의 길드적인 동류의식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전문성을 토대로 집단 이기주의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의사들 18.3%가 의대 증원을 찬성하였고, 국민들 70%가 의대 정원 확장을 찬성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의사증원을 확장하는 나라가 많이 있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선진국은 왜 의대 정원을 늘리겠나”라며 “인구 고령화로 인해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증가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추세면 선진국과 의사 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인구 감소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데다, 소득 수준이 성장하면서 의료 수요 역시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이유다. 지금 당장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되, 추후 인구 감소 추세를 보면서 숫자나 속도를 조절해나가는 방안도 제시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의술(의 길)은 멀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불완전하고, 판단은 어렵다. 따라서 의사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수행원, 외부인 모두가 협조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고 있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 번째로 생각하겠노라" 기독교인들 의사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신의 이권이나 기득권을 확보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하여 값없이 수많은 환자들을 치유하여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독언론인협회는 18.3%의 의사들과 기독교인 의사들에게 희망을 건다. 적어도 당신들만이라도 예수처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길 요청한다. 2024. 2. 24 기독언론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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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성명서_ 건국전쟁을 보며
    최근 개봉된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7일 만에 32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치고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건국 전쟁’은 1945년 이후 38선 북쪽에서는 공산국가 소련(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공산주의 독재국가로 전락한 북한과 반면 38선 남쪽 진영에서는 자유주의 국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성장한 남한 사회를 다루고 있다. 영화 제목의 '건국'은 임시정부가 탄생한 1919년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가 탄생한 1948년 8월 15일을 가리키고 있다. 러시아 대사와 핀란드 대사를 역임했던 이인호 서울대 서양학과 명예교수도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 8월 15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독립선포 식사(式辭)에서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하는 것을 겸하여 경축한 것입니다”라고 하여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대한민국 건국의 한가운데는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보다 정통정부의 이승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덕영 감독은 84학번으로 당초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북한이 1990년대까지도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북한이 이승만을 미워하는 이유'를 공부하여 "팩트만 보여줘도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바뀔 것이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했다. 감독은 문서라는 사실관계에 토대를 두고 백범과 이승만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장제스가 파송한 유어만과 백범의 대화 문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김구는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하더라도 공산군의 현재 수준에 대응할만한 군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지금 여기에 남한 정부가 서 있지만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 설립은 안 된다고 역설한 장면이다. 사실상 김구는 미군이 주둔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원하지 않고 북한과 통일된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이상적인 통일론을 역설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는 백범 김구야말로 독립과 남북통일을 원했던 가장 이상주의적인 정치인으로 다루었고 이승만은 독재 공화국의 지도자로서 한반도 분단의 책임자로서 부정적인 평가를 해왔다. 역사가들은 이승만의 공과가 있지만 이승만의 정치적 과만 다루어 왔다. 영화에서 보듯이 이승만은 독재 정부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27,000여 명의 거제 포로 석방을 하면서까지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이끌어 내어 지금까지 미군을 주둔시켜 제2, 제3의 6.25 전쟁을 막고 있는 애국주의자이다. 미군이 반공포로를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바로 철수하였더라면 대한민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힘으로 다시 제2의 6.25를 만나 적화되었을 것이다. 미군을 대한민국에 붙잡아 놓은 것만 하더라도 이승만의 공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은 친미주의자도 아니고 반공사상을 갖고 미국까지 끌어들여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애국주의자였다. 한강철교의 파괴도 이승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때만 되면 북한식으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이승만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하여 부정적인 인식만 갖게 하였다. 김덕영 감독은 대한민국 정부 활동 내용까지 포함해 이승만의 일생과 세간에 잘못 알려진 부분을 현대의 상황과 교차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이승만의 건국 사상과 애국 사상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다. 기독언론인협회는 윤석열 정부가 속히 1919년, 1948년이라는 건국 전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건국에 대해 역사바로세우기를 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역사학자들과 한국교회사가들 등 지식인들의 침묵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각성, 후대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도 촉구하는 바이다. 기독교계도 역사 왜곡에 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2024. 2. 16 기독언론인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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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5
  • 소강석 목사의 설교론
    식탁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쌍 나란히 올려두고 감사의 감동을 기다릴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평안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기댄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믿음이 두 입술에 나란히 맴돈다. 사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나란히 다독일 때 한 끼가 영원과 나란하다.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 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가 안식을 돕고 안식이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2023년 4월 3일 오후 2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회장 소강석)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이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이사장 소강석 목사, 원장 안준배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문학평론가 안준배 박사가 개회사를 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을 개회하겠습니다. 1988년 3월 27일 그해 부활절 다음날 아침 40대 목사 19명이 중심으로 모여 세계성신클럽 창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역 중에 1992년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이틀 동안 연인원 백만 명이 참여하는 성령 운동, 성령으로 인도하는 그런 기도성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우리 본회 34년 역사 속 세계 성령 운동사에 표지가 되시는 조용기 목사가 2021년 9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영훈 목사를 내세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승계하게 하셨고 또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담임)를 통해 조용기 목사의 핵심적인 신앙을 정리해 이끌게 하셨고 그런 가운데 한국 교회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를 내세워 성령 운동과 말씀전파를 통해 한국 교회를 연합하고 견인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세계 성령 운동 역사 34년 역사 속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조용기 목사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소강석 목사의 성령 사역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2백 석을 가득 채워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테너 박주옥 백석대 교수가 언제부터인지 꽃씨가 시랑스러워 천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소강석 작사 작곡 '꽃씨'에 이어 요즘 교회마다 애창하는 '은혜'를 열창했다. 대회장이고 주제 강연자인 소강석 목사가 ‘나는 문학, 음악, 이야기로 성경을 전한다’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곁들인 화려한 강연을 펼쳤다. "어제 정말 바쁜 부활주일을 보내시고 쉬시는 날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설교학자도 아니고 설교를 연구하는 전문교수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뛰는 한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안준배 목사께서 이런 강연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제를 주신 겁니다. '나는 문학과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전한다.' 제가 들어보니까 굉장히 매혹적이고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비롯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워낙 목회자가 바쁘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탈고를 했지만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목회자에게는 설교하면 강해 설교가 머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강해 설교 창시자로 알려진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 1931년 3월 21일 - 2017년 7월 22일)의 영향일 것입니다." 그는 뉴욕시에 출생하여 미국의 고든 콘웰 신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달라스 신학교, 써던 메쏘디스트 대학교에서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설교학의 대가로 2006년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에 '영향력있는 설교자'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하여 강해 설교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의 강해 설교론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해 오늘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경 본문의 중심사상이 곧 설교의 주제가 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하고 있다. 로빈슨 교수의 강해 설교 교본으로 알려진 저서 '성경적 설교(Biblical Preaching)'는 전 세계 목회자들이 탐독했으며 현재도 120개가 넘는 학교에서 설교학의 주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강해 설교하면 설교의 구성 방식으로만 이해를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설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3대지냐 4대지냐, 혹은 구절을 풀어 설교할 것이냐(주해설교), 그리고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대부분 한국 목회자는 여기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강해 설교에 대한 이해는 형식이 우선이 아닌 중요한 설교 신학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개혁주의 목사이며 청교도 신학자 조엘 비키(Joel R.Beeke, 1952년- )의 저서 '설교에 관하여(Reformed Preaching)'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해 설교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도 중요하고 구성 요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그것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청중의 마음으로 어떻게 그 설교 내용이 전달될 것이냐에 포커스를 맞춘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구성방식도 중요하고 콘텐츠(contents) 정말 중요하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지 무엇을 전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전달방식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문화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인지성향 등 여러 가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를 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준배 박사가 시인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 관해 말했다. "페르소나(persona 가면mask이나 인격person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개인이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연극이나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라는 말이 있는데 가면이라는 뜻도 있고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삼위 3pers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감독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기작품 '살인의 추억' 이후 오스카상은 받은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 감독의 페르소나(영화계에선 어떤 감독이 자신의 분신 혹은 상징처럼 선호하는 배우를 뜻한다)로 배우를 썼는데 송강호입니다. 이 배우는 감독의 모든 생각과 뜻을 받아들여 연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도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를 그 시대의 성령의 페르소나로 사용하셨고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소강석 목사를 성령의 페르소나로 세우셨습니다. 소 목사님은 어디에 가서 어떤 설교를 하든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합니다. 저는 소 목사님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 중에 '상 파울교회'에서의 설교를 들었고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들었는데 그 현장을 딱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합니다. 그다음에 2017년 종교개혁 5백 주년 기념대회 때 소 목사님이 주 강사로 설교를 했는데 '말씀의 근원으로' 그러니까 완전히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제와 영 관련이 없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은 어느 현장, 어떤 대회, 어떤 형식의 모임이 됐든 거기에 딱 맞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017년 12월 소 목사님과 대만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대만 까오씽이라는 곳인데 그 도시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열차로 타이페이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책을 갖고 다니는데 덩리쥔(鄧麗君,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대만 출신 가수)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 목사님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한테 물어봤습니다. '안 목사님은 이선희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덩리쥔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중화권이 사랑하는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이 노래를 부른 덩뤼쥔이라고 그랬죠. 그러니 소 목사님이 뭐라고 하냐면 '나는 이선희야. 이선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그대를 만나' (회중 웃음) 소 목사님은 별을 참 좋아하세요. 이선희를 가장 좋아한다는 거예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날 저녁 때 타이페이에 5천 명 모이는 따워줘이라는 대만 최고의 교회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소 목사님이 나와 나눈 대화 가운데서 덩뤼쥔의 노래 '첨밀밀' (蜜蜜 '티엔미미' 달콤해요)' '니 샤오 더 티엔미미(笑得蜜蜜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달콤해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대만 사람들이 음악으로 대단히 감동을 했어요. 대만 사람이 사랑하는 덩뤼쥔 자기들 노래로 불러주니까 감동을 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다음 해에 한 8천 명 수용할 수 있는 대만에서 제일 큰 허핑체육관에서 열린 성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소 목사님이 그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하모니카로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을 연주하니까 대만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아니 소 목사님은 우리 대만인이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끼더라고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소 목사님은 시대를 해석하고 말씀으로 치유하는 설교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감사예배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소천하신 이후인데 그때 '고래를 위하여'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고래'라는 시를 인용한 설교였습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라고 설교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님이 한국 교회 고래였고 그 고래가 국민일보를 낳았고 또 이영훈 목사를 낳았고 또 조민재 국민일보 회장을 낳았고 또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낳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고래'라는 시적 언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그때도 이선희 노래를 불렀는데요. (회중 웃음) '그 모든 것 기적이었네. 은혜였네. 눈물이였네. 이렇게 개사를 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소 목사님 그 음악을 그 현장에 맞게끔 사용하면서 참, 소 목사처럼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기념 예배에 딱 맞게끔 하면서 설립자 조용기 목사 그리고 이영훈 목사와 국민일보 회장을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모두 아우릅니다. 이렇게 해박하고 탁월하게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이 시대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유럽에도 같이 가서 성회를 지켜봤고 춘천순복음교회 성회도 지켜봤는데 그때마다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 포럼을 통해서 소 목사님의 그 메시지를 우리가 잘 수용해서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앞서 안준배 박사가 그 자질을 실제 목격하고 증언했다. 그렇듯 “이 세상의 광대들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기 위해 그토록 애틋함과 애절함을 갖고 노래하고 연기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구원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에게 애틋함과 애절함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스스로 광대임을 밝히고 그것을 실제로 입증해 성공한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설교관을 세 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최근 경영계에선 기업 현장에. 예술가 혹은 예술적 요소를 도입하는 예술적 개입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에도 예술적 개입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나는 문학의 옷을 입혀 성경 말씀을 전합니다. 2. 음악의 옷을 입혀 성경을 전합니다. 3. 성경을 이야기로 전합니다." 성숙(成熟)이란 ‘나’와 ‘남’ ‘우리’와 ‘그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발전의 한 단계다. ‘남’과 ‘그들’은 ‘나’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은 나에게 득(得)이 된다. 상대를 부정확하게 아는 지도자는 지형(地形)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낙하산병(落下傘兵)과 같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지도자의 성숙과 직결돼 있다. ‘기억의 감옥’에 갇히면 ‘기억의 포로(捕虜)’가 되기 십상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2-14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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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준의 이영웅 원로추대 축도
    여름하고도 아주 빛나는 여름 내리는 비는 누구에게나 슬픔을 나눠 준다. 장마철에는 오래오래 젖다가 수채화 같은 슬픔이 온다는 말.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사과나무 가지 끝 풋사과 옆이 무너졌다. 나도 저렇게 아픈 데를 씻고 기도하다가 무너졌다. 슬픔이 없다면 31년의 자유로운 목회라 슬픈 게 여럿이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없다면 줄곧 믿어 왔던 성경과 이 많은 책들과 수없이 눌렀던 어두운 기억들 그리고 내 흔들리는 맘에 내내 서성이던 사람 찬장 속의 흉터들 모두 혼자일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저렇게 여름 장맛비에 젖은 듯 흠뻑 슬플 것이다. 영생을 위해 죽을 것처럼 들고 온 것들이 저렇게 말할 수 없고 짧게 말할 수 없어서 슬픔은 압살롬처럼 머리카락이 길고 솔로몬의 잠언처럼 영롱하다. 목사이기에 허탈한 기쁨의 기도로 슬픈 걸 참아냈다. 삶의 점 하나 없는 슬픔 언제 그칠까. 자유로운 영혼의 그 슬픔 곁을 아이 둘의 아내가 믿음처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주님의 사랑과 더불어. 여름하고도 빛나는 여름 7월 13일 오전 11시 강서구 까치산로 18나길 명상교회 본당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감사예배가 있었다. 이영웅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및 그 후계자 김준석 목사위임을 위해 동한서노회 위임국(위임국장 정신길 목사) 주관으로 드린 예배였다. 채종성 목사(노회장, 열방으로교회)가 설교하고 9월 23일 제104회 총회장이 될 성령의 투혼 김종준 목사(꽃동산교회)가 축도했다. 자유로운 영혼 이영웅 목사가 70평생 31년의 목회 사역을 마치고 자유로운 목사가 되는 감회를 이렇게 피력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여름하고도 빛나는 여름 더위가 몰아치는 광야에서 야곱처럼 31년 세월을 보내며 명상교회를 돌보고 키웠습니다. 함께 웃고 더불어 울며 기도하고 헌신해 주신 성도 여러분에게 그리고 언제나 제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사역의 지팡이를 신실한 영혼 김준석 목사에게 넘깁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 나은 30년이 되길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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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24
  •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전하리교회 수련회 바보목회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다음세대일 것입니다. 많은 교회학교가 문을 닫고, 교회학교 아이들의 수가 급감하는 이 시대에, 수많은 교회에서 프로그램과 세미나, 양육과 훈육 등 여러 가지를 접목해보았지만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교회학교 살리기 운동’이 일어날 만큼 다음 세대를 세워나갈 교회학교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런데 전하리교회 교육부서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사실 전하리교회 교육부서에는 대단한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탁월한 교역자도 없습니다. 선물과 상을 줘도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는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주일학교 아이들이 죄를 짓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들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뜨거운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 열이 펄펄 끓고, 몸이 너무 아프지만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해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깁스한 발로 불편할 텐데도 몇 시간을 서서 온 마음을 쏟아 예배하는 초등부 아이들. - 유치부,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아이들이 임재 속에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해서 예배하는 초등부 아이들. - 몇 개월 동안 준비한 피아노 콩쿠르, 수학경시대회, 축구 대회를 포기하며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초등부 아이들. - 학원의 중요성을 알지만 예수님이 좋고 찬양하는 게 좋아서 불신자 부모님의 핍박을 꿋꿋하게 이겨가며 찬양과 예배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아이들. - 심한 우울증, 여러 번의 자살시도 등 상처와 어둠 가운데 살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 치유된 중고등부 아이들. - 예수님이 좋아 밤 11시가 넘도록 수원과 동탄을 오가며 눈물로 찬양하는 중고등부 아이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열악한 컨테이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저 성령의 역사, 임재를 갈망하며 찬양하는 아이들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수많은 어른들에게 감동을 주며, 뜨거운 도전과 회개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전하리교회에 있는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조한권 담임목사님께서는 청년시절에 10년 동안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병생활을 하셔서 약의 부작용으로 스스로 “저는 기억력이 없습니다. 행정력, 기획력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매일 바보처럼 하나님께 묻습니다.”라고 고백하십니다. 그리고 사역자들도 심한 우울증, 자살시도, 본드 중독, 음란, 자기 비하 등 세상적으로는 소망이 없던 자들이 어릴 때 전하리교회에 와서 “복음”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 사역자로 세워졌습니다. 부목사가 없고 연약한 자들이 모였기에, ‘과연 우리처럼 부족하고 자랑할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을 통하여 교육부서 아이들이 세워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교육부서 가운데 맺어진 열매를 바라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하리교회는 그동안 환난과 고난, 문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재정부장이 교회 돈을 다 가지고 도망을 가고, 교회를 건축하던 중에 사랑하는 故 지계연 사모님을 떠나보내는 등 여러 아픔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담임목사님께 “복음”을 열어주시고, 그 복음을 전하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한지 10년이 흐른 지금, “복음” 때문에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까지 계속해서 복음의 열매들이 맺어지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전하리교회 교육부서 아이들이 예배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보시고 한국의 수많은 교회 뿐 아니라 해외의 교회에서도, 그리고 어린이 찬양 작사가로 유명한 한 찬양 사역자도 ‘요즘 시대에 이런 아이들과 교회학교가 있을 수가 있나?’ 라고 하시며 거듭 놀라고, 충격과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최근 전하리교회 교육부서에 탐방 오셨던 분들의 고백을 잠시 소개해드립니다.> - “이렇게 뜨거운 예배를 매일 드리나요? 우리 교회에서는 1년에 수련회, 부흥회 때 한 번 있을 법한 예배를 전하리교회에서는 매 주일마다 드린다니, 너무 놀랍습니다.” - “40년 동안 전도사로 사역을 했는데, 전하리교회 담임목사님 말씀을 듣고 많이 울었습니다. 말씀이 온통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사랑밖에 없었습니다. 교육부서가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 “1~2학년 아이들이 장난치지 않고 집중해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모습이 정말 은혜가 됩니다.” - “프로그램이 없다고요? 그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은요? 선물도 없으면 말씀, 기도만으로도 아이들이 모입니까? 정말 기적입니다.” - “교회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아이들의 영성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 “사실 모든 교역자들이 너무나 추구하는 예배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가 있었네요.” - “모든 교사분들을 모시고 다시 탐방 와도 될까요? 꼭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전하리교회에 오셨던 교회와 목사님들께서 전하리교회 교회학교에 일어나고 있는 기적적인 일들을 한국교회에 꼭 한번 나눠주시기를 계속해서 요청해주셨고, 탐방하고 경험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번 수련회는 찬양하는 아이들 모습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하시는 목사님들과 교회를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전하리교회에서 드려질 수련회는 강의나 세미나가 아닙니다. 전하리교회 교육부서를 자랑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는 시간으로 드려지기에 소수의 목회자분들과 교회를 초청하고자 하오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수련회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탐방을 원하시는 목사님들과 교회의 요청에 의해 이러한 광고도 갑작스럽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시기를 희망하시는 교회가 있기에 참석에 뜨거운 마음이 있으신 목회자분들과 교회에서는 서둘러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어린 아이들을 변화시켰는가?’‘교회학교 아이들이 부흥하며, 이렇게 뜨겁게 예배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학교의 부흥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으신 분들, 교회학교의 부흥의 계기, 기대, 대안.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바로 당일, 현장에서 해답을 얻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 어린 아이들에게 하고 계신 일들을 통해 다음 세대 교회학교에 행하실 놀라운 비전을 직접 보시게 되는 자리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지금도 한 영혼을 위해 생명 다해 목회를 감당하고 계시는 귀한 목사님, 그리고 목회에 지쳐계신 목사님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사역하고 계시는 귀한 교역자, 교사분들께 큰 도전과 위로, 회복과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최 : 전하리교회 선교부- 일시 : 2019.7.29(월) 오전 9시- 장소 : 전하리교회 동탄성전 본당 (화성시 삼성1로 80번지)- 주강사 : 조한권 담임 목사- 대상 : 건전한 교단만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천지 및 이단의 등록을 철저히 금합니다.- 등록비 : 등록비는 1인 15,000원입니다. ( 점심과 저녁 식사비용으로 사용됩니다. )▶ 오신 분들을 위하여 교회학교 아이들의 찬양 영상 CD등의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미자립 교회 또는 마음은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신 교회에서는 사무실로 연락주시 면 따로 안내드리오니, 전화로 문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록방법 : 전하리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 가능 ( http://jhari.org/ ) * 신청하시는 교회의 참석인원은 담임목사를 포함하여 5명까지입니다. ▶ 부득이하게 담임목사의 참석이 어려운 경우, 교육부 담당 목사의 참석으로 대체가 가능하오니, 이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접수가 완료되며, 접수 확인 후 담당자가 개별적으로 연락드립니다. 담당자와 통화 후 등록이 완료됩니다.▶ 선착순으로 등록되며, 등록이 마감 될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드립니다.- 문의 : 031-8003-7777 * <전하리교회 교육부서 아이들의 찬양 영상 보기 및 수련회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교회 홈페이지에서 신청이 가능합니다.주소: http://jha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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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2
  • 한기총 성명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두 번째 성명서 전광훈 목사는 더 이상의 불법과 갑질을 중단하고 한기총의 정상화를 위해 즉각 사퇴하라! 작금의 한기총을 정치집단으로 전락시키고 존폐위기에 빠뜨린 전광훈 목사는 더 이상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자신의 언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 1. 전광훈 목사는 더 이상 한기총의 분열을 획책하지 말고 음주관련 루머에 대한 정확한 근거와 증인을 통해 육하원칙에 맞는 철저한 조사 할것을 요구한다. 2. 전광훈 목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회장의 업무를 집행하면서 임원회 결의 없이 특별위원회를 수시로 설치하는 등 다음과 같은 불법을 저질렀다 가.불법적인 긴급임원회. 나.비정상적인 대신교단의 가입 절차. 다.정관을 위반하고 정관에도 없는 불법 명예대표회장 임명. 라.한기총 총회대의원 가입 절차를 위반한 지역연합회의 총대권 남발. 마.상임위원장(투표권 있는 당연직 40명) 25% 이상 청교도영성훈련원 관련 인사 임명 등.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으로써 정관을 위반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지난 4개월 동안 폭언과 독선을 일삼으며 독단적으로 한기총을 운영 했다. 또한 대표회장의 직무 권한을 뛰어넘는 월권행위를 자행하여 정관에 명시된 직제에도 없는 대외 사무총장 대외총무를 임명했다. 3. 한국교회 연합단체의 중추적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할 한기총을 기독당의 하급기관으로 전락시켜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한기총 비대위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4. 전광훈 목사는 경찰 조사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한 비대위 일부 인사들이 “횡령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는 분명히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현재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이 없는데 마치 검찰에 기소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한 전광훈 목사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5. 전광훈 목사는 실촌 수양관 집회 때 “전라도 사람들은 전부 빨갱이”라는 심각한 비하 발언을 했다. 이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저속한 막말이다. 이 말이 이미 유트브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됐기 때문에 전광훈 목사는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6.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 공식문자를 통해 비대위 13명에 대하여 당일 해임한다고 했다. 한기총 정관 제6조 2항에 ‘당연직 총회대의원은 별도의 임원회 결의가 있어야 자격을 정지 또는 취소 할수 있다’고 되어있다. 당연직 총회대의원에 속하는 임원이나 위원장을 해임하고자 할 시에는 반드시 임원회 결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전광훈 목사는 임원회 결의없이 “오늘부로 해임한다”고 함으로써 임원회의 권한을 또 다시 무시했다. 한기총 정관의 운영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며 자신의 말이 곧 법으로 착각하는 전광훈 목사의 불법적인 전횡을 한기총 비대위가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 전광훈 목사는 대한민국의 6만5천 교회와 3천여 개의 기도원과 2천여 개의 선교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확대하기 위하여 전국 253개 지역연합을 조직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기독자유당의 실질적인 리더인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을 중심으로 253개 지역위원회를 조직해서 기독자유당 하부기관으로 한기총을 철저하게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전광훈 목사는 매 선거 때마다 1,200만 기독교인, 30만 목회자, 25만 장로, 50만 선교가족이라고 들먹이며 마치 한국교회 연합 기관이나 단체들이 기독자유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큰 소리치고 있다. 비대위는 전광훈 목사가 그동안 걸어왔던 행적과 그 발자취를 조명해서 얼마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에 폐악을 행했는지 낱낱이 알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장하는 헛된 망상적 목적의 허상을 밝혀서 한국교회와 한기총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조금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2019년 5월 30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김창수 목사(전 한기총 대표권한대행) 엄정묵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예장개혁혁신총회장) 박중선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예장합동진리총회장) 정학채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예장개혁증경총회장) 사무총장: 배진구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한반도복음화총재) 김명중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합동예장총회장) 정일량 목사(한기총 공동부회장, 웨신총회장) 김의웅 목사(예장합동총회장) 김병근 목사(예장고려개혁총회장) 박은총 목사(예장총신총회장) 성경모 목사(한기총 공동부회장) 김영완 목사(한기총 공동부회장) 김인기 목사(한기총 공동부회장) .... 외 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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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30
  • 광주숭일고 ‘봉사 체험의 날’ 18주년 행사
    광주숭일고 ‘봉사 체험의 날’ 18주년 행사 - 봄빛과 함께 봉사와 섬김 속으로 달려가는 행복 전도사 광주숭일고 - 봄빛이 교정을 따스하게 비추는 5월 10일 광주숭일고등학교(교장 임인호)에서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 동문, 지역대학과 함께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 양?한방 무료 진료, 위안공연, 식사대접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구성된 ‘봉사 체험의 날’행사를 실시했다. 이날 행사는 일곡동 및 인근의 65세 이상의 어르신 300여명을 초청하여 재학생들의 1대1 밀착 봉사 서비스, 학부모, 동문, 지역대학 및 지역의료진과 연계하여 이?미용봉사, 네일아트 및 어깨 마사지, 양?한방 의료봉사, 경로위안공연, 점심식사 대접, 선물 증정 등을 함으로써 경로효친 및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학생, 학부모가 독거어르신 댁을 직접 찾아가 말벗 되어 드리기 및 집안일 돕기 활동이 추가 되어 더욱 알차게 진행되었다. 또한 입시준비가 한창인 고3 학생들도 지역 환경정화활동에 참여 하였으며, 1, 2학년 일부 학급들은 시내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광주숭일고에서 벌써 18주년을 맞은 행사이다. 봉사와 섬김 속으로 달려가는 모든 이들의 행복한 미소는 천국의 모습을 연상하기까지 한다. 학교법인 숭일학원 이사장인 한기승(광주중앙교회) 목사는 “가정과 이웃이 해체되는 이 시기에 봉사체험의 날을 맞이하여 가족의 소중함과 이웃사랑을 알게 하는 뜻깊은 행사였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봄빛의 따스함은 뜨거움으로 달했다. 광주숭일고등학교 학생회장(오경명 2학년)은 “학생들이 봉사 체험의 날을 통해 사랑, 섬김, 봉사, 공동체란 단어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아울러 광주숭일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자존감까지 키워 나갔다.”라고 말한다. 광주숭일고등학교 교장(임인호)은 “이번 행사를 통해 학생들은 공동체적 자질을 함양하고 섬김과 배려를 직접 실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타인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리더십을 길러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광주숭일고는 사랑, 봉사, 공동체를 실현하며 섬김 속으로 달려가는 행복 전도사이다. 2019. 5. 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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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1
  • 칼빈의 신앙수업 - Lesson III 돌연한 회심 A sudden conversion
    Lesson III 돌연한 회심A sudden conversion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선(善)합니다’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침묵한 뒤에 하는 말로 이런 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자임에도 우리의 다른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 멀어지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싸늘한 사랑은 추억 아래 숨고 이제는 사라진 교회의 커튼도 무심한 밤 위에 드리웁니다. 그러한 허무 속에서도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학과 믿음의 드높은 주제를 말하고 또 말함이 옳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육체의 노쇠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젊은 날 우리가 사랑하고 믿고 설교했지만 무지했음을 이제 우리는 압니다. 논쟁은 때론 좋은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라도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새롭게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 용어로 풀어쓰자면 논쟁에는 ‘건강한 회의론자’(healthy skeptic)의 자세를 환기시켜 ‘증거에 기반한’(evidence-based) 합리성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배양하도록 도와주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칼빈이 가톨릭 신자에서 종교 개혁 결과 생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신교도, 항의자) 교도로 회심한 것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5,693,164 영어 항목의 무료 백과사전 Wikipedia(하와이어로 빠른‘quick’을 의미하는 ‘wiki’와 백과사전을 의미하는 ‘encyclopedia’가 합쳐진 이름)에 칼빈의 회심에 대한 논란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Alternate theories have been suggested regarding the date of Calvin's religious conversion. In this view, his resignation is the direct evidence for his conversion to the evangelical faith. Some have placed the date of his conversion around 1533, shortly before he resigned his chaplaincy. However, T. H. L. Parker argues that while this date is a terminus for his conversion, the more likely date is in late 1529 or early 1530. 칼빈의 종교적 회심(conversion 회심, 개종, 전환) 날짜에 관하여(regarding) 서로 엇갈리는(alternate) 이론(theory)들이 암암리에 주장되어(suggest 암시합니다) 왔습니다. 칼빈이 자신의 지도 신부직(chaplaincy 수도회·학교·병원·고아원·교도소·군대 따위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다스리고 이끄는 사제)을 사임하기 바로 직전인 1533년 경 회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in this view) 칼빈의 사임(resignation)이 복음주의(evangelical) 신앙으로 그가 회심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파커(Parker, T. H. L)는 그의 『칼빈 전기』(John Calvin: a Biography, Louisville, KY 199-203. Westminster John Knox: 2006)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argue). 이 날짜가 그의 회심의 종점(terminus)이라고는 해도 1529년 말이나 1530년 초가 훨씬 더 가능한(likely) 날짜인 것 같습니다. The main evidence for his conversion is contained in two significantly different accounts of his conversion. 그의 회심에 대한 주요 증거(evidence)는 그의 두 중요한 다른 회심 사건들에 들어있습니다. In the first, found in his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Calvin portrayed his conversion as a sudden change of mind, brought about by God: 그의 시편 주석(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vol. 1, p. 67, Grand Rapids: Eerdmans, 1948) 서문(preface)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사건에서(In the first) 칼빈은 자신의 회심을 하나님이 주신(brought about by God) 마음의 돌연한 변화(a sudden change of mind)로 묘사했습니다(portray): God by a sudden conversion subdued and brought my mind to a teachable frame, which was more hardened in such matters than might have been expected from one at my early period of life. Having thus received some taste and knowledge of true godliness, I was immediately inflamed with so intense a desire to make progress therein. 하나님께서 돌연한 회심(conversion)을 통해 나의 마음(mind)을 가르칠 수 있는(teachable) 구조(frame)에 복종하게(subdue)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a teachable frame) 그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내 인생 초기에 기대할 수 있었던 구조보다 훨씬 더 강하게(harden) 하는 구조였습니다. 참된 경건(godliness 신앙)의 어떤 맛과 지식을 이렇게 얻게 되자(Having thus received) 나는 그 속에서(therein 그 구조 속에서) 전진하고자(progress) 하는 아주 격렬한(intense) 열망(desire 욕구)에 즉시(immediately) 불타게(inflame) 되었습니다. 이 첫 번째 사건에서 칼빈은 참된 경건(true godliness)의 어떤 맛과 지식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언급한 경건(godliness 또는 ‘하나님 됨’)이라는 단어 godliness에 대해 『웹스터 대사전』(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godliness the conforming one’s life to the revealed character and purpose of God. 그 해석은 이렇습니다. 경건(godliness)은 ‘하나님의 계시된(revealed) 성품(character)과 목적(purpose)에 자신의 삶(one’s life)을 일치시키는(conform) 것입니다.’ 이 경건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장 2.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지식의 성향(WHAT IT IS TO KNOW GOD - TENDENCY OF THIS KNOWLEDGE)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For, first of all, the pious mind does not devise for itself any kind of God, but looks alone to the one true God; nor does it feign for him any character it pleases, but is contented to have him in the character in which he manifests himself always guarding, with the utmost diligences against transgressing his will, and wandering, with daring presumptions from the right path. 무엇보다도(first of all) 신앙심이 깊은(pious pis) 마음은 하나님을 아는 그 자체를 하나님의 어떤 종류로 궁리하지(devise) 않고 참되신 하나님에게만 향합니다. 그것(하나님을 아는 것)을 좋아하는 어떤 성품(character)으로 가장하지도(feign) 않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transgress) 것을 아주(utmost) 부지런히(diligence) 그리고 감히(daring) 건방지게(presumption) 올바른 길(path)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며(guard)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manifest) 그 성품 속에서(in the character)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만족합니다(content). 회심의 두 번째 사건에서 칼빈은 정신과 마음의 고통으로 말미암은 내적 분투의 오랜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Being exceedingly alarmed at the misery into which I had fallen, and much more at that which threatened me in view of eternal death, I, duty bound, made it my first business to betake myself to your way, condemning my past life, not without groans and tears. 영원한(eternal) 죽음(death)을 생각하면(in view of) 내가 빠졌고 나를 아주 많이 위협했던 비참함(misery)에 극도로 놀라게 된 나는 자신의 과거 생활을 비난하면서(condemn) 반드시(duty bound) 신음하고 우는 게(not without groans and tears) 나의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 And now, O Lord, what remains to a wretch like me, but instead of defense, earnestly to supplicate you not to judge that fearful abandonment of your Word according to its deserts, from which in your wondrous goodness you have at last delivered me. 그리고 오 주여, 나같이 비참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변호(defense)하는 대신에(instead of) 공적에 따라(according to its deserts) 주님 말씀의 무서운 유기(abandonment)로 심판하시지 말고 마지막에 주님의 놀라운 은혜(your wondrous goodness)로 거기에서 나를 제발 구원해 주시라고 열심히(earnestly) 애원할(supplicate) 뿐이었습니다. Scholars have argued about the precise interpretation of these accounts, but most agree that his conversion corresponded with his break from the Roman Catholic Church(Ganoczy 2004, pp. 910; Cottret 2000, pp. 6570; Parker 2006, pp. 199203; McGrath 1990, pp. 6972). 학자들이 이 두 사건에 대한 정확한(precise) 해석(interpretation)에 논란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most) 칼빈의 회심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결별(break)과 일치한다(correspond)는 데 동의합니다(agree). The Calvin biographer Bruce Gordon has stressed that “the two accounts are not antithetical, revealing some inconsistency in Calvin's memory, but rather [are] two different ways of expressing the same reality”(Bruce Gordon, Calvin, New Haven; London 2009, p. 34.). 칼빈의 전기 작가 고든(Bruce Gordon)은 “두 사건(account)들이 칼빈의 기억과 어떤 불일치(inconsistency)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정반대(antithetical)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stress).” 칼빈의 회심은 사도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루터와 같이 자세하고 극적인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또 언제 정확히 회심의 경험을 했느냐에 대해서도 기술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시편 주석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회심에 대해 ‘돌연한 회심’이란 말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기치 못한 회심으로 오랫동안 완악했던 마음을 온순하게 길들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철저히 말씀에 순종하고 성경을 열심히 연구해 하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된 대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생활을 위해서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며 통회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 근처에 사는 친구의 정원을 거닐며 로마서 13장을 읽을 때 변화되었습니다. 루터도 바르트부르크 성에 머물면서 성경을 읽고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날마다 성경의 묵상을 통하여 엘더스게이트에서 열린 작은 모임에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교훈은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무엇을 믿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무엇을 믿든지 바르게 살기만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믿든 차이가 없다고 하는 말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물을 길러온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인간이 바른 믿음이 없이도 바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8-10 둘째 교훈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명한 것을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올바른 행위와 실천의 열매와 결과가 없다면 참 믿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두 가지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믿음이 있는 사람의 행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RECOLLECTION 되·새·김 1. 논쟁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당연한 것이라도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새롭게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 용어로 풀어쓰자면 논쟁에는 ‘건강한 회의론자의 자세를 환기시켜 ‘증거에 기반한’ 합리성과 ‘비판적 사고’를 배양하게 도와주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그의 회심을 통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돌연한 회심을 통해 나의 마음을 가르칠 수 있는 구조에 복종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a teachable frame) 그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내 인생 초기에 기대할 수 있었던 구조보다 훨씬 더 강하게 하는 구조였습니다. 참된 경건의 어떤 맛과 지식을 이렇게 얻게 되자 나는 그 속에서 전진하고자 하는 아주 격렬한 열망에 즉시 불타게 되었습니다. 3. 칼빈이 언급한 경건이라는 단어 godliness에 대해 『웹스터 대사전』에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godliness: the conforming one’s life to the revealed character and purpose of God. 경건: 하나님의 계시된 성품과 목적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것. 2019-04-16
    • G.MISSION
    • G.SERMON
    2019-04-16
  • 나성에 가면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요셉이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무화과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었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화과 한 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데 환히 드러난 요셉의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화염검이 두루 도는 동산 너머 어두워진 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했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음을 아들은 보았다. 나성(羅城).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 표기다. 이런 표기를 음차라고 하는데 70년대에는 이 음을 그대로 써서 LA를 나성이라 불렀다. 낯설법한데도 거부감은 덜 하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나성열린문교회’ 같은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때문이다. 원곡은 ‘LA에 가면’인데 박정희 시대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발표한 곡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이 미국에서는 그나마 가까운 LA로 많이 이주를 했는데 그때는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나성에 가면, 그러니까 로스앤젤레스에 가게 되면 ‘잘 도착했다’, ‘나 잘 살고 있다’, ‘건강하다’ 이런 안부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이 담긴 노래가 ‘나성에 가면’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지만 1978년 ‘세샘트리오’가 당시에는 생소했던 셔플리듬으로 부르면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국민가요로 등극하게 된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 줘요. 이런 가사가 반복되고 있는 이노래. 외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둘이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 달라면서 아주 오래 못 볼 거 같은 애잔함을 담고 있는 노래다. 그러나 이제 2019년 칼빈주의를 따르는 우리 교단 목사들은 나성에 가면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 가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전하는 제네바 칼빈의 정수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에 가면 깃발을 들고 차이니스 극장 앞에서 그리고 주변을 돌며 영어로 전 세계 관광객과 미국인에게 외치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을 만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창효 목사는 박헌성 목사의 ‘나성열린문교회’ 협동 목사이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5일까지 비 내리는 나성에서 아내랑 묵으면서 겪고 은혜 받아 혼자만 간직하기에 아쉬워 전한다. 이제 우리 교단 목사들이 ‘나성에 가면’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하는 슬픈 사연의 편지를 띄우지 말고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서 은혜 받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가서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에 오면 복음과 전도의 그 열정을 전해줘요. 2019-03-31
    • G.MISSION
    • G.MISSION
    2019-03-31
  • 칼빈 신앙수업 -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 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Lesson II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프랑스 작가와 정치가 앙드레 말로(Andr Malraux 1901년 11월 3일 ~ 1976년 11월 23일)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년 2월 25일~1919년 12월 3일)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1차 대전이 일어나기 두어 해 전 동양어학교에 다니던 청년 말로가 남프랑스의 지중해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이국적인 마르세유(Marseille)나 막 요란하기 시작한 칸느(Cannes 프랑스어)를 피해 굳이 이곳에 온 것은 고운 모래에 얕은 수심을 지닌 한적한 바다가 산악과 맞닿아 있어 훨씬 드라마틱했기 때문입니다. 여관의 벨보이가 알려주는 말에 말로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르누아르가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봤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프랑스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르누아르를 어쩌면 대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당시 말로는 한창 문학·미술·역사에 대한 관심이 불타올랐고 동양 문화를 탐사하기 위해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까지 훈련하는 중이었으며 동시대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하루는 아침 식사를 마친 말로가 해초 냄새로 뒤덮인 벼랑 끝 오솔길을 산책하다가 은빛 수염을 휘날리는 한 노인의 뒤통수를 봤습니다. 노인은 잔물결 이는 바다를 마주한 채 캔버스에 몰입하는 중이었습니다. 말로는 종업원이 일러준 그 대가임을 이내 알아챘습니다. 지난 세기의 역사를 한 몸으로 지탱하고 인상주의의 한 영역을 개척한 위인을 이런 휴양지에서 단둘이 조우하게 되다니 그야말로 큰 행운이었습니다. 말로는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기 위해 조심조심 그의 등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의 집중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위대한 미술가의 제작 과정을 보기 위해서 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말로가 그의 캔버스에서 본 것은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만나는 벅찬 놀라움은 차치하고 캔버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말로는 아연실색했습니다. 바다가 그려져야 할 캔버스엔 어느 계곡을 배경으로 목욕하는 소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말로는 시선을 여러 번 그 캔버스와 그 너머 바다를 오가며 바꾸어 봤지만 그려진 장면과 그 앞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 일화는 회화의 상상력을 이야기할 때 곧잘 인용되곤 합니다. 르누아르는 망막한 바다에서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습니다. 열심히 대상을 집중해 그것과 다른 사실을 내놓은 셈입니다. 이 일은 르누아르의 의식과 그것에 반응하는 물감과 붓질에 의해 상식의 질서와 전혀 다른 논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꿈과 같습니다. 칼빈의 신학은 그의 평생에 걸쳐 사실상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강요』도 그 내용에 관한 한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시간은 기억의 시간, 믿음의 시간, 개혁의 시간입니다. 마지막 판 서문에서 그는 그 개혁의 시간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기독교강요』 저술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죽기 5년 전 1559년 8월 1일 쓴 그의 평생의 개혁주의(Protestantism prtstntizm) 회오(會悟)가 담긴 『기독교강요』 마지막 서문입니다. 뜻깊은 순간이니 기도하는 자세로 읽고 감동을 촘촘히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EPISTLE TO THE READER.[prefixed to the last edition, revised by the author.] 독자에게 드리는 서신[저자의 개정 마지막 판에 덧붙인 서문] In the first edition of this work, having not 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which God, in his boundless goodness, has been pleased to give it, I had, for the greater part, performed my task in a perfunctory manner(as is usual in trivial undertakings); but when I understood that it had been received, by almost all the pious with a favor which I had never dared to ask, far less to hope for, the more I was sincerely conscious that the reception was beyond my deserts, the greater I thought my ingratitude would be, if, to the very kind wishes which had been expressed towards me, and which seemed of their own accord to invite me to diligence, I did not endeavor to respond, at least according to my humble ability.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조차 갖지 않은 이 저작의 처음 판에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으로 기꺼이 그것을 주셨습니다. 나는 거의 대부분 형식적인 태도로 내 일을 수행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감히 결코 요하지도 않았고, 아주 조금도 바라지 않았던 어떤 호의를 거의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게서 받게 된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대접이 내 공적에 넘치는 대우라는 것을 정말 의식하면 할수록 내게 표현해 주었고 그리고 내가 노력하도록 그들이 자발적으로 부탁하는 것 같은 아주 친절한 소망들에 최소한 내 변변찮은 능력에 맞는 보답이라도 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의 더 큰 배은망덕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This I attempted not only in the Second Edition, but in every subsequent one the work has received some improvement. But though I do not regret the labour previously expended, I never felt satisfied until the work was arranged in the order in which it now appears. 이것을 나는 제2판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다음 판에서도 그 저술에 다소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들인 노동을 후회하지는 않을지라도 그 저작이 현재의 모습으로 정리될 때까지 만족한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Now I trust it will approve itself to the Judgment of all my readers. As a clear proof of the diligence with which I have laboured to perform this service to the Church of God, I may be permitted to mention, that last winter, when I thought I was dying of quartan ague, the more the disorder increased, the less I spared myself, in order that I might leave this book behind me, and thus make some return to the pious for their kind urgency. 이제 나는 그 책이 모든 나의 독자들의 판단에 스스로 입증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이 봉사를 실행하기 위하여 내가 기울인 노력의 명백한 한 증거로 다음의 것을 언급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합니다. 지난겨울 나흘마다 앓는 오한으로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그 질환이 더 심해질수록, 이 책을 내 사후에 남길 수 있고 그들 나름의 절박한 필요를 위해 경건한 신자들에게 무언가를 보답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더 아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I could have wished to give it sooner, but it is soon enough if good enough. I shall think it has appeared in good time when I see it more productive of benefit than formerly to the Church of God. This is my only wish. 나는 그것을 더 빨리 주기를 바랄 수 있었지만 그러나 어지간히 좋다면 그것도 상당히 빠른 것입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교회에 이전보다 더 생산적인 이익을 주는 걸 내가 보게 될 때 그것이 알맞은 시기에 출판되었습니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And truly it would fare ill with me if, not contented with the approbation of God alone, I were unable to despise the foolish and perverse censures of ignorant as well as the malicious and unjust censures of ungodly men.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의 허가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내가 믿음이 없는 자들의 악하고 불의한 비난들뿐만 아니라 무지한 자들의 어리석고 심술궂은 비난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면, 그 일이 여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For although, by the blessing of God, my most ardent desire has been to advance his kingdoms and promote the public good, -although I feel perfectly conscious, and take God and his angels to witness, that ever since I began to discharge the office of teacher in the Church, my only object has been to do good to the Church, by maintaining the pure doctrine of godliness, yet I believe there never was a man more assailed, stung, and torn by calumny.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의 가장 열렬한 갈망이 주님의 왕국들을 전진시키고 공공의 선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그 이후 내내 교회에서 교사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내가 완전히 자각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증거에 전념하고, 경건의 순수한 교리를 옹호함으로써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만큼 비방으로 공격받고 찔리고 찢긴 사람이 일찍이 하나도 없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as well by the declared enemies of the truth of God, as by many worthless persons who have crept into his Church - as well by monks who have brought forth their frocks from their cloisters to spread infection wherever they come, as by other miscreants not better than they]. 하나님의 진리의 공공연한 원수들뿐만 아니라 주님의 교회에 몰래 들어온 많은 무익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가는 곳마다 전염병을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수도원들에서 성직자 옷들을 만들어낸 수도사들뿐만 아니라 그들이나 다름없는 다른 이단자들에 의해서도 비방을 받았습니다. After this letter to the reader was in the press, I had undoubted information that, at Augsburg, where the Imperial Diet was held, a rumour of my defection to the papacy was circulated, and entertained in the courts of the princes more readily than might have been expected. 독자에게 쓰는 이 편지가 신문에 실린 후에 제국 의회(제국 의회는 세 개의 계열로 나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들이 참여한 신성 로마 제국의 입법 기관이자 자문 기관. 가장 유명한 의회로는 제국 개혁이 이뤄진 1495년 의회, 루터를 이단으로 선포한 1521년 의회)가 열리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내가 교황파로 변절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리고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쉽게 군주들의 궁전들에서 환대를 받았다는 확실한 정보를 받았습니다. This, forsooth, is the return made me by those who certainly are not unaware of numerous proofs of my constancyproofs which, while they rebut the foul charge, ought to have defended me against it, with all humane and impartial judges. 이것(소문)은 정말이지 내 지조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자들이 나에 대해 지어낸 보고서입니다. 한편으로 그들이 비열한 비난으로 반박하면서도 그것에 반대하는 나를 아주 인도적이고 공평한 재판관들과 함께 변호하는 것이 당연한 증거들 말입니다(대적자들의 비난으로 활용하는 증거들이 오히려 칼빈이 반대하는 주장들을 그들의 판사들과 함께 변호해 준다는 역설). But the devil, with all his crew, is mistaken if he imagines that by assailing me with vile falsehoods, he can either cool my zeal, or diminish my exertions. I trust that God, in his infinite goodness, will enable me to persevere with unruffled patience in the course of his holy vocation. Of this I give the pious reader a new proof in the present edition. 그러나 마귀가 모든 그의 패거리와 함께 야비한 거짓말들로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의 열정을 식히거나 내 노력들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 가운데 내가 그의 거룩하신 소명을 수행하는 동안에 흔들리지 않는 인내로 견딜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것에 대해 나는 경건한 독자에게 『기독교강요』 현재 판에서 새 증거를 드리고자 합니다. I may further observe, that my object in this work has been, so to prepare and train candidates for the sacred office, for the study of the sacred volume, that they may both have an easy introduction to it, and be able to prosecute it with unfaltering step; for, if I mistake not, I have given a summary of religion in all its parts, and digested it in an order which will make it easy for any one, who rightly com-prehends it, to ascertain both what he ought chiefly to look for in Scripture, and also to what head he ought to refer whatever is contained in it. 더 나아가 나는 이 저술에 있어서의 나의 목적이 성직(聖職) 후보자들이 신성한 두루마리 공부를 위해 그것(성경)의 쉬운 개론에 접할 수 있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그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한 의견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모든 분야의 개요(槪要)를 나는 제시해 주었고 그리고 그것(성경)을 바르게 파악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성서에서 주로 무엇을 찾아야 하고 성경 속에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어떤 표제로 언급해야 하는지도 확인하게 해 주기 위하여 성경이 어렵지 않게 차례대로 요약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Having thus, as it were, paved the way, as it will be unnecessary, in any Commentaries on Scripture which I may afterwards publish, to enter into long discussions of doctrinal points, and enlarge on commonplaces, I will compress them into narrow compass. 이렇게 하고 나니, 이를테면 불필요하게 될 것이지만 내가 나중에 출판할 수도 있는 어떤 성경 주석서들에서 다룰 교리적 논점들에 대한 긴 토론들에 들어가고 그리고 내가 좁은 범위로 압축하게 될 인용구들에 대해 상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In this way much trouble and fatigue will be spared to the pious reader, provided he comes prepared with a knowledge of the present work as an indispensable prerequisite. The system here followed being set forth as in a mirror in all my Commentaries, I think it better to let it speak for itself than to give any verbal explanation of it. 이렇게 하여 경건한 독자는 많은 수고와 노고를 아끼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없어서는 안 될 기초 필수 과목으로 현재 저서 『기독교강요』의 지식을 갖추고 온다면 말입니다. 모든 나의 주석들에서 거울에서처럼 분명하게 설명하게 될 다음의 체계는 그것에 대한 말의 설명보다 그것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Farewell, kind reader: if you derive any benefit from my labours, aid me with your prayers to our heavenly Father. 친절한 독자여 안녕. 당신이 내 노작(labour)들에서 어떤 이익을 얻는다면 우리의 하늘의 아버지께 당신의 기도로 나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Geneva, 1st August 15591559년 8월 1일 제네바 이렇게 죽기 5년 전 『기독교강요』 마지막 판 서문에서 칼빈 자신의 모든 심정을 털어놓은 뒤 마지막 개정 서문을 쓰고 독자들에게 안녕(Farewell, kind reader)이라는 인사까지 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추신(追伸)과 더불어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쓰기 경구(警句)를 덧붙입니다. The zeal of those whose cause I undertook, has swelled a short defense into a book. 내가 맡아서 돌보는 사람들의 주장을 위한 열정이 간단한 변호를 부풀려 한 권의 책이 되게 하였습니다. “I profess to be one of those who, by profiting, write, and by writing profit.”-Augustine, Epist. 7. “나는 이익을 얻음으로 글을 쓰고 그리고 글을 씀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서한집 7. 칼빈의 추신은 믿음으로 신자들이 당하는 오해와 어려움을 변호하다보니 그게 한 권의 책이 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진실하게 변호하고 옹호했으면 우리 개혁주의의 경전이 될 『기독교강요』를 저술해 이 세상에 남기고 전하게 됐을까요. 마치 르누아르가 망막한 바다에서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하고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는데 말로가 보기에도 놀랄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신학의 시조 칼빈 자신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어 믿음의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유익된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너무도 감동적인 경구라 다시 한 번 더 인용합니다. 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학이나 기업이 표방하는 모토 중에 영어로 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영어로 말한 것은 무엇이든 지성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듯 다른 사람에게 영어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들려준다면 그 사람은 감격하고 당신을 올려다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I profess to be one of those who, by profiting, write, and by writing profit.” “나는 이익을 얻음으로써 쓰고 그리고 씀으로써 이익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칼빈 신앙수업』을 읽는 여러분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이익을 얻음으로써(by profiting) 쓰고, 씀으로써(by writing) 이익을 얻는’ 그런 목사나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저술하면서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도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개혁주의로 변화시키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아주 작은 성공의 기대도 없이 출발하실 수 있지만 칼빈처럼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열매를 얻기를 바랍니다. RECOLLECTION 되·새·김 1. 르누아르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무엇을 상상했습니까. 르누아르는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했습니다. 2. 르누아르는 바다를 보며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습니다. 열심히 대상을 집중해 그것과 다른 사실을 내놓은 셈입니다. 이 일은 르누아르의 의식과 그것에 반응하는 물감과 붓질에 의해 상식의 질서와 전혀 다른 논리로 진행되었습니다. 3. 『기독교강요』를 처음 발간했을 때 칼빈은 어떤 기대를 했습니까.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조차 갖지 않은 이 저작의 처음 판에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으로 기꺼이 그것을 주셨습니다. 2019-02-18 LA 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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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18
  • 칼빈 신앙수업 - 칼빈은 누구 Who is Calvin
    Lesson I칼빈은 누구Who is Calvin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칠판도 없고 숙제도 없고 벌도 없는 주일학교였습니다. 교회와 집 사이는 후다닥 걸어서 가면 단 오 분 거리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걱정이 없는 늘 포근하고 선물도 심심찮게 주는 학교였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귀한 것들을 이 주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주일 저녁 텅 빈 교회 마당 구석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산 위에서 보면 교회가 나뭇가지에 달린 하얀 박꽃입니다. 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쏙쏙 얼굴을 내밉니다. 분반 공부 끝나면 오늘 외운 성경 한 절 오늘 배운 찬송 한 곡 오늘 받은 과자 한 봉지로 불룩한 마음 교회 창밖을 보면 벚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습니다. 주일학교엔 숙제도 시험도 없습니다. 고함 한번 치지 않는데 회초리 한번 들지 않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갖 꽃나무 어린 싹들 찬송하며 자랍니다. 그리고 때 되면 열매 맺어 서로 나누며 믿음의 제 몫을 합니다. 나는 교인 누구나 목사님의 말을 듣는 게 좋아서 목사가 되었고 새벽기도가 좋아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가진 것 다 주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평생을 웃습니다. 믿음 향기가 가득한 교회에서. 제 동창 친구 하나는 대학에 갈 때 영어가 싫어서 수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다보니 교과서가 전부 영어 원서였습니다. 영어는 라틴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문법이 꽤 복잡합니다. 간단한 예로 be 동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복잡함에 머리가 아플 겁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⑴ 변칙(變則)동사(anomalous verb)의 하나로 어형(語形)변화에 특징이 있음.⑵ 의문문을 만드는 데 주어와 도치되며 조동사 do를 쓰지 않음: He is busy.→Is he busy?⑶ 부정문으로 할 때에도 do를 안 씀: That is nice.→That is not 〔isn’t〕 nice. 다만, 명령형에서는 흔히 do를 쓰며, do를 쓰지 않는 것은 옛 형태: Don’t be a fool.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마라. Be not afraid. 《고어》 두려워하지 말지어다.⑷ 강조할 때 do를 사용치 않고 be 동사를 세게 발음함: She is [-z-] kind, indeed. 그녀는 정말 친절합니다. 다만, 긍정(肯定) 명령형을 강조할 때에는 do를 씀: Do be gentle to them. 제발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해 주게나. be 동사의 문법 일부가 이러니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영어 공부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기도 전에 이미 질려버립니다. 하지만 이 고비들을 잘 넘기고 복잡한 문법 체계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확실히 공부하는 훈련이 됩니다. 어렵고 미묘한 문제와 마주해도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래 해보면 깨닫게 되겠지만 영어 공부는 평범한 두뇌를 공부에 최적화된 두뇌로 활성화시키고 사고 체계를 넓혀줍니다. 실제로 영어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영문 자료를 접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대략 5-10억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선진국 국민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각 나라의 엘리트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생산해 내는 정보입니다. 신문, 잡지, 도서, 학계, 인터넷 등을 통해 영어 사용 인구가 생산해내는 정보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엄청납니다. 그러니 우리가 현대를 살면서 영어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는 사람은 개혁주의 신봉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독교강요』를 영어 번역본을 통해 그 진수(眞髓)를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교계에서 지도적 입장에 있는 엘리트(elite) 개혁주의자이거나 그것을 지향하는 신자일 것입니다. 개혁주의의 선구자(forerunner)는 누구입니까. 칼빈(John Calvin)입니다. 칼빈은 누구입니까. 인터넷 시대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5,693,164 영어 항목의 무료 백과사전 Wikipedia(하와이어로 빠른‘quick’을 의미하는 ‘wiki’와 백과사전을 의미하는 ‘encyclopedia’가 합쳐진 이름)는 칼빈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John Calvin(French: Jean Calvin; born Jehan Cauvin; 10 July 1509 27 May 1564) was a French theologian, pastor and reformer in Geneva during the Protestant Reformation. He was a principal figure in the development of the system of Christian theology later called Calvinism, aspects of which include the doctrines of predestination and of 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 in salvation of the human soul from death and eternal damnation, in which doctrines Calvin was influenced by and elaborated upon the Augustinian and other Christian traditions. Various Congregational, Reformed and Presbyterian churches, which look to Calvin as the chief expositor of their beliefs, have spread throughout the world. 칼빈(John Calvin: 프랑스 이름 쟝 칼빈 Jean Calvin; 兒名 제앙 코뱅 Jehan Cauvin; 1509년 7월 10일 1564년 5월 27일)은 개신교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 기간 제네바의 프랑스인 신학자(theologian) 목회자(pastor) 개혁가(reformer)였습니다. 그는 나중 칼빈주의(Calvinism)라고 불리는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발전시킨 주요 인물이 되었습니다. 칼빈주의는 죽음과 영원한 저주로부터 인간 영혼의 구원에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과 절대(absolute) 주권(sovereignty) 교리들을 포함시키는 견해(aspect)들입니다. 그 견해들은 칼빈이 아우구스티누스주의(Augustinian)와 다른 기독교 전통들의 영향을 받고 잘 다듬은 것들입니다. 세계로 퍼져나간 회중교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등의 여러 교파가 칼빈을 그들 신조(belief)의 대표(chief) 해설자(expositor)로 생각합니다. Calvin was a tireless polemic and apologetic writer who generated much controversy. He also exchanged cordial and supportive letters with many reformers, including Philipp Melanchthon and Heinrich Bullinger. In addition to his seminal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alvin wrote commentaries on most books of the Bible, confessional documents, and various other theological treatises. 칼빈은 많은 논쟁을 일으킨 지칠 줄 모르는 논증(polemic)과 변증(apologetic) 저술가(writer)였습니다. 그는 조직신학자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개신교 최초의 독일 루터교 조직신학자)과 불링어Heinrich Bullinger(16세기 스위스 종교개혁가)를 포함해 많은 종교개혁가들과 서신들도 주고받았습니다. 칼빈은 가장 독창성이 풍부한(seminal)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성경 주석(commentary)들과 신앙고백(confessional) 문서(document)들 및 다양한 신학 논문(treatise)들도 저술했습니다. Originally trained as a humanist lawyer, he broke from the Roman Catholic Church around 1530. After religious tensions erupted in widespread deadly violence against Protestant Christians in France, Calvin fled to Basel, Switzerland, where in 1536 he published the first edition of the Institutes. In that same year, Calvin was recruited by Frenchman William Farel to join the Reformation in Geneva, where he regularly preached sermons throughout the week; but the governing council of the city resisted the implementation of their ideas, and both men were expelled. At the invitation of Martin Bucer, Calvin proceeded to Strasbourg, where he became the minister of a church of French refugees. He continued to support the reform movement in Geneva, and in 1541 he was invited back to lead the church of the city. 원래 인문주의(humanist hjːmnist) 법률가(lawyer)로 훈련받은 그는 1530년 경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는 대폭적인 격렬한 폭력 사태로 종교적 긴장이 촉발된 후 칼빈은 스위스 바젤로 피신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27살 되는)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을 발행했습니다. 같은 해 칼빈은 제네바 종교개혁에 동참하라는 프랑스인 파렐(William Farel)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빠지지 않고 주일 내내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시의회는 그들 사상이 시행(implementation)되는 것을 거부했고 두 사람을 추방했습니다. 부서(Martin Bucer 16세기 독일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가)의 초청으로 칼빈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스 피난민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네바 개혁 운동을 계속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1541년 제네바 교회로 돌아와 지도해 달라는 청빙을 받았습니다. Following his return, Calvin introduced new forms of church government and liturgy, despite opposition from several powerful families in the city who tried to curb his authority. During this period, Michael Servetus, a Spaniard regarded by both Roman Catholics and Protestants as having a heretical view of the Trinity, arrived in Geneva. He was denounced by Calvin and burned at the stake for heresy by the city council. Following an influx of supportive refugees and new elections to the city council, Calvin's opponents were forced out. Calvin spent his final years promoting the Reformation both in Geneva and throughout Europe. 돌아온 뒤 칼빈은 그의 권위를 꺾으려는 그 도시의 몇몇 세도 가문들(several powerful families)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형식의 교회 정치(church government)와 예배 모범(liturgy)을 소개했습니다. 이 시기에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다 이단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삼위일체(the Trinity)론을 지닌 스페인 사람(Spaniard)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가 제네바에 왔습니다. 그는 칼빈의 탄핵을 받고(denounce) 시의회의 이단(heresy) 판결로 화형을 당했습니다(burned at the stake). 우호적인 피난민들의 유입(influx)과 시의회의 새 선거들이 이어져 칼빈의 반대자들이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을 제네바와 유럽 전역에 촉진시키면서 만년(final years 1564년 5월 27일 55세 소천)을 보냈습니다. 돈키호테가 그의 충실한 시종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내 친구 산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토피아도 광기의 행동도 아니야. 그건 정의라네.” 돈키호테처럼 저도 제 후배 목사와 신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여보게 내 동료와 후배들. 칼빈이 개혁주의로 세상을 바꾼 것은 사상도 행동도 아니네. 그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Righteous God)이라네.” RECOLLECTION 되·새·김 1. 영어 공부의 유익은 무엇입니까.영어 공부는 평범한 두뇌를 공부에 최적화된 두뇌로 활성화시키고 사고 체계를 넓혀줍니다. 2. 실제로 영어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영문 자료를 접하기 위해서입니다. 3. 칼빈주의는 무엇입니까.죽음과 영원한 저주로부터 인간 영혼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과 절대(absolute) 주권(sovereignty) 교리들이 포함된 견해(aspect)입니다. 2019-02-04 나성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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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04
  • 이효상 컬럼 -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역할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역할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3·1운동은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1919년 3월 1일을 전후로, 시기는 그해 5월말까지 또는 그 이듬해 3월말까지 전국방방곡곡에서는 물론 해외에 이주해 있던 동포들에게까지 확산되었던 운동이다. 50명 이상이 참여한 시위만 1,500여회를 넘었고, 참여 연인원은 202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1천 800만 정도였으니 총 인구의 10%가 넘는 참여는 우리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고, 우리 민족이 역사적 사건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 근대화를 여는 시민혁명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3·1운동은 한국교회의 적극적 참여로 이루어 졌다. 당시 총인구의 1.5%에 불과하였던 기독교인은 총 피검자의 17.6 나 차지하였던 것을 보아도 얼마나 적극성을 띠었는지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 운동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동자가 되었으며, 지도력과 조직을 제공하고 통로가 되어 기여했다. 3·1운동은 한국교회가 현실참여를 위한 결단을 내린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교회가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교분리’라는 원칙을 세워 기독교인들의 현실참여를 철저히 막은데 반해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거의 모두가 신앙적 결단에 의해 참여하였다.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정치적 기능을 제거하려 노력하였지만 교회는 저항과 투쟁이라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3·1운동은 이런 기독교적 ‘애국’, ‘애민’의 기초에 기인(起因)하였다. 한국교회는 만세운동 이전에도 독립운동의 싹은 트고 있었던 최초의 독립선언이라 할 수 있는 2·8학생 독립선언을 후원하였고, 3·1독립선언의 기초자인 최남선이 고백한대로 3·1독립선언의 기초이념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바가 컸다. 3·1운동은 한국교회가 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렇게 3·1운동 전개과정에서 보면 교역자들뿐만 아니라 의식있는 평신도들에 의해서 조직화되어 만세 시위를 벌인 경우도 적지않게 발견된다. 운동의 초기단계에서부터 모든 흐름에 직·간접으로 참여하였으며, 전국적으로 확산과정에서도 교회는 전국의 조직과 지도자를 제공하였다. 교회와 학교, 기독청년, 여전도회와 선교회 등 기독교 조직이 운동의 연락책과 동원책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었더라면 3·1운동은 그처럼 신속하게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오래 지속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3·1운동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지불한 댓가는 참으로 컸다. 교회는 평신도들 포함한 목사, 장로, 전도사, 교사 등 교역자들까지도 적극 참여하고 주동하였으므로 일제의 주목을 받아 그 핍박과 피해도 매우 많았다. 일제는 처음부터 평화적 만세시위에 헌병,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하여 무력으로 무차별 진압함으로써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체포, 구금, 고문하였다. 이러한 탄압과 학살, 파괴, 방화 등 만행의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그 대표적 사례가 1919년 4월 15일 일어난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방화사건이다, 3·1운동 참여로 인해 한국교회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장로교는 체포된 자:3,804명(목사:134명, 관계지도자:202명, 남신자:2,125명, 여신자:531명, 매맞고 방면된자:2,162명, 사살된 자:41명, 수감자 1,642명, 매맞고 죽은 자:6명)과 파괴된 교회 12개 등이다. 그런가하면 감리교는 목사, 전도사, 권사, 속장, 교사의 합수가 160명이었다. 총 피검자 19,525명중 기독교인이 3,426명으로 17.6%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직업적 종교인, 즉 목사를 포함한 교역자는 244명으로 천도교와 불교의 두배에 이른다. 특히 여성 피검자의 수는 총 471명이었는데 그중 기독교인이 309명으로 65.5%나 차지하고 있다. 이는 구한말부터 여성 인권과 지위향상, 계몽에 힘썼던 기독교의 영향이 3·1운동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가 이근 3·1운동에서 역할 못지않게 피해도 컸다. 이러한 피해는 교세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장로교는 교회수가 1,705개소, 신자가 144,062명이었으며, 감리교는 교회가472개소, 신자가 35,482명으로 이 두 교파의 합수가 교회 2,177개소, 신자가 179,544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세는 3·1운동의 피해로 인해 전년도인 1918년에 비해 교회수 88개소, 신자수 22,409명이나 줄어들었다. 여기서 그동안 교인의 자연증가 추세까지 고려해 볼 때 교회는 3·1운동참여로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항일민족저항운동의 한 방편이자 ‘민족교회’로 인식되었다. 3·1운동 당시와 지금의 한국교회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그러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당시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그 의무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민족화합을 이루는 일에 적극적이었다.우리 민족의 공공성에 대한 의무를 감당하는 일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물론 타종교인과도 연대하고 협력하였다. 그렇게 하며 복음과 정의를 위해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진정한 축복으로 여겼다. 이런 점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로 변질되어 분열된 모습을 극복하고, 어떤 이유로도 하나된 모습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하겠다. 3·1운동의 바람을 다시 불어오게 한국교회가 나서야 한다. 아니, 3·1운동의 정신을 함양하고 고취시키고 계승하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3·1운동의 정신은 단순한 애국심에서 비롯된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다스리심을 갈망하던 신앙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지킨 정신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가 먼저 3·1운동의 정신을 다시 새롭게 되살려내 교회가 이 민족을 향해 어떤 희생을 치루며 민족교회로 자리매김하여 왔는지 정확한 메시지로 사회에 전달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재현 하므로 다시 민족 속으로 들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민족의 독립과 자유, 정의와 평화 그리고 후손들의 행복을 위하여 과감히 일어섰던 신앙의 선배들, 한국교회의 3·1운동 참여와 역할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특히 기독인들에게 민족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한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기념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와 연합기관, 그리고 각 교단이 하나된 모습으로 100주년대회를 치뤄 8천만을 섬기며 통일시대를 열고 다시 도약하는 기념비적 사건이 되기를 기대한다. 거룩한 교회로,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다짐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 20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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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18
  • 칼빈 신앙수업 - 제이 계명 우상숭배
    제이 계명 우상숭배 Second Commandment Idolatry 색이 바랜 5센티 가량의 송곳니를 4억 불교도들이 지상의 가장 신성한 것으로 숭배합니다. 이 치아는 주전 543년 석가모니를 화장할 때 태운 장작더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800년이 지난 뒤 실론(Ceylon)으로 그 치아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오늘 날에는 그 치아가 실론의 칸디(Kandy)에 휘황찬란하게 건립된 치아 사원 안의 황금 연꽃 위에 얹혀있습니다. 황금 연꽃 둘레는 수많은 루비와 꽃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해마다 여러 나라에서 10만의 신실한 불교도들이 이 신성한 치아를 바라보려고 찾아옵니다. 그들은 사원에 금과 은과 보석들의 예물들을 가지고 와 바칩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을 가톨릭에서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도들이 "성물"이라고 숭배하고 보관하는 것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나폴리와 로마의 교회들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아의 머리털.- 페루기아 대성당(Cathedral Perugia)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아의 결혼반지.- 프라토(Prato)의 교회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아의 거룩한 허리띠. - 나폴리의 산 가우디오소 에파트리찌오 교회와 로마의 백성들의 마리아 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동정녀 마리아의 젖 방울들. - 주님의 마지막 만찬 때 사용된 대야가 제노아의 성 로렌조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 그리스도의 얼굴 모습이 새겨진 베로니카의 면사포 그리고 안드레 사도의 두개골이 모두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거대한 돌기둥 속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의 세마포가 투린의 세례 요한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17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Second Commandment THOU SHALT NOT MAKE UNTO THEE ANY GRAVEN IMAGE, OR ANY LIKENESS OFANYTHING THAT IS IN HEAVEN ABOVE, OR THAT IS IN THE EARTH BENEATH, OR THAT IS IN THE WATER UNDER THE EARTH: THOU SHALT NOT BOW DOWN THYSELF TO THEM, NOR SERVE THEM. 제이 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 20:4-5 17. As in the first commandment the Lord declares that he is one, and that besides him no gods must be either worshipped or imagined, so he here more plainly declares what his nature is, and what the kind of worship with which he is to be honoured, in order that we may not presume to form any carnal idea of him. 제일 계명에서 여호와께서 그는 하나이시고 그 이외에 신들을 하나도 예배하거나 상상해서 안 된다고 선포하신 것처럼 그는 여기에서 무엇이 그의 본성이시고, 그리고 그가 영광받으셔야 될 예배의 종류가 무엇이고, 순서를 따라(in order) 우리가 그에 대한 어떤 육체적인(carnal) 사상을 만들려고 추정해서는(presume) 안 된다는 것을 더 자세히 선포하십니다. The purport of the commandment, therefore, is, that he will not have his legitimate worship profaned by superstitious rites. Wherefore, in general, he calls us entirely away from the carnal frivolous observances which our stupid minds are wont to devise after forming some gross idea of the divine nature, while, at the same time, he instructs us in the worship which is legitimate, namely, spiritual worship of his own appointment. 그러므로 이 계명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의 정당한(legitimate) 예배를 미신적인 의식(rite rait)들로 불경스럽게(profane) 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체로 그는 우리가 육체적인 하찮은(frivolous) 계율(observance)들에서 완전히 떠날 것을 요청하십니다. 우리의 멍청한 마음은 신성에 대한 어떤 막돼먹은(gross grous) 사상을 따라 그런 계율들을 고안하는 데 익숙합니다(wont). 한편 그와 동시에 그는 정당한 예배 즉 그 자신이 지정하신 영적 예배 안에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The grossest vice here prohibited is external idolatry. This commandment consists of two parts. The former curbs the licentious daring which would subject the incomprehensible God to our senses, or represent him under any visible shape. The latter forbids the worship of images on any religious ground. 여기에서 금지하는 가장 막돼먹은 악은 형식적인(external) 우상숭배(idolatry)입니다. 이 계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우리의 감각에 예속시키거나 하나님을 어떤 보이는 형상으로 나타내는 방자한(licentious) 대담무쌍(daring)을 억제합니다. 둘째 부분은 어떤 종교적인 구실(religious ground)을 붙인 성상(image)들의 예배를 금지합니다(forbid). There is, moreover, a brief enumeration of all the forms by which the Deity was usually represented by heathen and superstitious nations. By “any thing which is in heaven above” is meant the sun, the moon, and the stars, perhaps also birds, as in Deuteronomy, where the meaning is explained, there is mention of birds as well as stars(Deut. 4:15). 더욱이 여기에는 이교도와 미신적인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모든 형태의 조물주(Deity)에 대한 간결한(brief briːf) 목록(enumeration)도 있습니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로 의미하는 것은 해, 달, 별들, 새들입니다. 아마도 별들뿐만 아니라 새들도 언급하고(신 4:15) 그 의미를 설명도 하는 신명기(Deuteronomy)에서처럼 말입니다. I would not have made this observation, had I not seen that some absurdly apply it to the angels. The other particulars I pass, as requiring no explanation. We have already shown clearly enough(Book 1. chap. 11, 12) that every visible shape of Deity which man devises is diametrically opposed to the divine nature; and, therefore, that the moment idols appear, true religion is corrupted and adulterated. 내가 이 목록을 천사들에다 터무니없이(absurdly) 갖다 붙인 어떤 것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소견(observation)을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이미 인간이 고안한 신에 대한 모든 형태의 보이는 모양은 하나님 신성에 전혀(diametrically) 반대되는 것(Book 1. chap. 11, 12)이라는 사실에 대해 분명하게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상들이 나타나는 순간 참 종교는 부패하고 변질된다는(adulterate) 사실을 말입니다. Recollection 되.새.김 1. 제이 계명에서 금지하는 가장 막돼먹은 악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금지하는 가장 막돼먹은 악은 형식적인 우상숭배입니다. 2. 제이 계명에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엄중한 경고가 붙을 정도로 심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어떤 형상이든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왜 칼빈은 ‘우상이 나타나는 순간 참된 종교가 부패하며 변질한다’고 가르칩니까. 제이 계명은 우리가 참 하나님을 섬길지라도 알맞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드릴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01-17 나성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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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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