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G.MISSION
Home >  G.MISSION

실시간뉴스
  • 2024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대 회 사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죄와 고통으로 죽어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기독교는 죽어야 사는 종교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사랑과 용서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할 때에도 교회는 언제나 희망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믿음의 기도로 극복하였습니다. 기도는 나라를 지키는 힘이며, 기도는 모든 문제를 뛰어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하나 되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한국교회를 위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때입니다. 모든 갈등과 분열의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무너뜨리고, 교회는 다시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기도성령운동에 힘써서 이 땅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워 모든 백성들이 정직과 성실함으로 풍요로운 삶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나라, 모든 성도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어 나갑시다. 오직 부활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소망이며, 오직 생명의 복음이 민족의 희망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으로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열방의 소망으로 우뚝 서서 부활의 기쁜 소식과 예수 생명의 복음을 우리 민족에게 전할 때 대한민국은 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국민의 나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2024.03.31.
    • G.MISSION
    • G.MISSION
    2024-03-27
  •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차금법 폐기 촉구
    이승만은 식민지로 망한 터에 공산주의 물결을 막아내는 방파제(防波堤) 국가를 세웠다. 박정희는 금고(金庫) 안에 먼지밖에 쌓인 게 없는 나라를 부자 국가로 일으켜 세웠다. ‘공칠과삼(功七過三) 평가 이론’을 적용하면 위대한 정치가다. 민주당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전쟁 목표는 당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재명의 민주당’에겐 계승해야 할 유산(遺産)이 아니라 끊어내야 할 멍에고 족쇄가 됐다. 겉으론 레닌을 받들면서 속으론 지워갔던 스탈린 권력 장악 과정과 닮았다. 두 사람 냄새는 당사에 사진을 걸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인 것 같다.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가 22대 총선을 앞두고 포괄적차별금지법(차금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2023년 3월 8일 능력 있는 목회자이고 대표적 세계 장로교 대표 교단 합동 총회 중진 총대 오범열 목사 시무 안양 성산교회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공동대표회장(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 사무총장(이승준 목사) 연석회의를 열었다. 공동대표회장 오범열 목사가 주재한 연석회의에 앞서 진행된 예배에선 서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심하보 목사가 설교했다. 충북기총 사무총장 박병식 목사가 성경 요한복음 8:31~32을 봉독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본문에 근거해 심하보 목사가 ‘KS마크 BS마크’ 제목으로 설교했다. “한국산업표준 즉 KS(Korean Industrial Standard) 마크가 붙은 생산품은 우리나라 정부가 품질을 인증하는 제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받아야 할 인생의 인증 마크는 성경표준 즉 BS(Bible Standard) 마크입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니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곧 성경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친목 하려 모인 게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엔 목회자가 필요 없습니다. 악법을 막기 위해 진리이신 주님을 믿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합시다.” 각 지역 사무총장을 대표하는 사무총장 회장 이승준 목사가 광고했다. 울산기총 대표회장 권규훈 목사가 축도했다. 이어진 연석회의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는 22대 국회에 차금법안 폐기를 비롯해 생명 존중 입법 요구를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또 오는 7월 예정된 인천여성영화제에 대해 “시민의 세금이 동성애 영화 홍보에 쓰여선 안 된다”며 “동성애는 가정·부부관계를 무너뜨리고 양성평등 정책과도 거리가 멀다. 인천여성영화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 1:21-27 2024-03-09
    • G.MISSION
    • G.MISSION
    2024-03-09
  • 권순웅 목사 저출산 대책
    저출생·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인구 통계는 점점 드라마틱해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3년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631만여 명으로 20대 인구(619만여 명)를 처음 추월했다. “하나님 저출산 문제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소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년 9월 18일 ~ )는 소설 ‘웃음’에서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를 꼽은 적이 있다. 2세 때는 대소변을 가리는 게, 3세 때는 치아가 나는 게, 12세 때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18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2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35세 때는 돈이 많은 것 등이 자랑거리다. 그런데 인생이 반환점을 돌면 자랑거리가 뒤집힌다. 6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70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75세 때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게, 80세 때는 치아가 남아 있다는 게, 85세 때는 대소변을 가릴 수 있다는 것 등이 자랑거리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대소변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통과하다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는 다시 대소변 가리기가 어려워진다. 2024년 국내외적으로 한국이 마주한 도전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 갈등이 심화되고 대만해협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과 양극화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국력이 피크를 지났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2024년 세계는 전쟁 2개와 50여 국의 선거로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새해로 이월돼 살상과 파괴로 치닫고 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 명이 50여 국에서 선거로 정치적 전쟁을 치를 예정이다. 20억이라는 숫자는 세계 경제 총생산의 60%에 해당한다(뉴욕타임스 집계). 선거가 있는 나라는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남아프리카·미국·대한민국 그리고 유럽 27국(의회) 등이다. 우리는 여전히 ‘배달의 민족’일 뿐 아니라 ‘바람의 민족’이기도 해서 바람이 불면 죄다 그쪽으로 쏠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새 방향을 좇는다. 이런 데 자유가 있을까. 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수긍하지 않는 것에 머리 숙이지 않을 자유, 원치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항상 그렇진 못했지만) 품은 뜻에 따라 사느라 더러 외로웠지만 자유는 외로움에 지지 않을 때 얻어진다는 체험 또한 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자유로워지는 중이구나’라고. 맞다. 당신도 믿음의 자유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대로. 2024년 2월 18일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가 ‘한국교회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전국연합기도회’를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532 육탄10용사 공원 근처 주다산교회에서 드렸다. 진용훈 목사(중앙위 서기)의 인도로 케리그마 및 기도회가 진행됐다.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는 오는 5월 19일 생명존중 주일이 있는 날까지 100일 기도 행전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권역별로 지역교회가 연합해 ‘특별기도회’로 모일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밝혔다. 인문고전을 읽는 천재들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은 보통 보이는 것(sight)에 주목한다. 그러나 천재들은 보이지 않는 것(insight)에 주목한다. 통찰력을 의미하는 “insight”는 “sight”에 “in”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다. 통찰력이란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의 총회 불꽃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강단에 서자 청년과 장년 신자들이 환호했다. 그가 그 가운데 외쳤다. "샬롬! 저한테 너무 큰 박수하면 오해합니다. (회중 웃음) 지금 대한민국은 축구협회를 고발했습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야구계를 고발하려 합니다. 대한민국 야구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종범(李鍾範, 1970년 8월 15일 ~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 외야수) 감독 때문에 이 야구계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분의 아들이 이정후(李政厚, 1998년 8월 20일 ~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외야수) 선수입니다. 이정후 선수가 1490억 이상 그렇게 전속계약이 된 선수입니다.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뛰어난 아들을 한 명밖에 못 낳았다는 것입니다. (회중 큰 웃음)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둘 낳고 다섯을 낳았으면 한국 야구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3년 전 저출산 극복 헌신예배에서 ‘홈런 가족’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야구를 보면 안타가 있는데 야구의 꽃은 홈런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보면 이 저출산 환경에 아기가 없는 가정은 스리(three) 아웃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 다산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면 홈런입니다. 여러분 출산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출산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출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번성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애굽에 살 때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민족의 핍박 가운데 살지라도 하나님은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바로(Pharaoh)가 이스라엘인의 출산을 압박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기도로 시작한 국가입니다. 애국가가 찬송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난 줄 압니다. 크게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출산 국가로 전 세계의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가운데 가장 먼저 인구가 소멸이 될 국가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라질 제1위 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녀본 제삼세계(第三世界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말)가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지만 아이들이 거리마다 가득합니다. 어디가 못사는 나라입니까. 대한민국은 미래가 있습니까,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 생각에 한국교회가 그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산아제한을 했습니다. 맬서스주의(Malthus主義: 맬서스가 저서 ‘인구론’에서 주장한 학설로 인구와 식량과의 관계에 관한 이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빈곤과 악덕이 불가피하게 초래된다’라는 내용)를 따라 한국이 주창한 ‘산아제한’과 정부의 실책에 한국교회가 침묵했습니다. 제가 30여 년 전 신학교 갈 때 신학교 전도사 한 분이 ‘산아제한,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라는 대자보를 크게 써 붙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창 1:28)대로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이 소돔의 멸망을 예고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그렇듯이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잘못을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도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불순종한 죄를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여러 시책을 제안하고 여러 사람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주셔야 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생각, 돈을 더 사랑하는 생각, 쾌락을 더 사랑하는 생각, 우상을 버리지 않는 미련을 경고하지 않는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 민족에게 성령의 바람으로 말씀 순종할 수 있도록 불붙는 마음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이여, 하나님 주신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후손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한 복된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 한국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우리 총회다음세대 운동본부에서는 이 일을 지금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다산교회부터 시작해 전국 교회가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였습니다. 먼저 느헤미야같이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한국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가 불순종하고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를 바르게 세우지 못한 죄를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회중 아멘) 회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나도록 우리가 선포하고 섬기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이어서, 2강 ‘다자녀 출산의 복’은 이승준 목사(경기총연합회 사무총장) 부부가, 3강 돌봄시설 입법화는 강유진 교수(총신대학교)가, 4강 비혼주의 극복은 이용희 교수(에스더기독운동 대표)가 강연했다. 이승준 목사 부부는 네 자녀를 세 번의 제왕절개와 한 번의 인공수정을 통해 어렵사리 출산했던 경험을 간증하며 하나님의 복을 전했다. “인간적인 환경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응답을 통해 태의 열매를 다시금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기적이자 은혜였습니다. 아이는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다음 세대가 누리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해중 장로(회계)의 헌금기도와 김영구 장로(부총회장)의 사명자 구호제창이 있었고 김진하 목사(부본부장)의 축도로 마쳤다. 우리나라 초저출산은 그 수준(2021년 기준 0.81로 OECD 최저, 홍콩 제외 세계 최저)과 지속기간(2002년부터 1.3 미만 21년 지속)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약 86.4% 감소하여 전 세계 217개 국가·지역 중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로 인구 통계를 꼽는다. 지방대학의 붕괴, 주거 불안, 연금 고갈, 노년 부양비 등은 모두 인구문제와 연관돼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인구 감소로 5년째 출산율 0%대의 ‘초저출산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문제는 ‘마땅한 대응 방안이 있는가’일 것이다.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의 회개와 더불어 다음의 교회 사례를 보면 그 방안이 있을 것 같다. 2023년 11월 8일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시작은 벽보 한 장이었다. ‘한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다른 아이는 어찌하십니까? 위급하고 답답할 때 아이를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 드립니다. 믿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당진 동일교회 이수훈 목사.’ 27년 전인 1996년 충남 당진의 야산 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개척한 이수훈 목사(67)는 인근 아파트에 이런 벽보를 붙였다. 야산에서 캔 칡으로 차를 끓여 가가호호 나누며 전도에 애썼지만 비닐하우스 교회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때 그 자신 육아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아이 돌봄’ 벽보를 붙인 것. 붙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런 비닐하우스 교회에 누가 아이를 맡길까?’ 며칠 후 두세 살짜리 아이 셋을 데리고 주부 둘이 찾아왔다. ‘시장 다녀올 동안 1시간 정도만 맡아달라’던 엄마들은 해가 진 후에야 나타났다. 미안해했지만 얼굴엔 해방감 가득했다. 이후로 아이를 맡기러 오는 부모가 줄을 이었다. 다 받았다. 부모가 천안, 대전, 서울의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킬 땐 안 아픈 아이를 며칠씩 이 목사 부부가 먹이고 재웠다. 돌봄 수요는 계속 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끼리 품앗이 돌봄도 이뤄졌다. 2004년 주 5일제가 도입될 때 ‘토요 돌봄’을 시작한 것도 부흥의 한 계기가 됐다. 현재 등록 교인 1만 5천여 명, 평균 연령 29세, 2자녀 이상 가정 3천 세대, 평균 자녀 수 2.07명, 당진 초등학생 12% 정도가 출석하는 교회, 어린이집 2백 명, 비전스쿨(방과 후 학교) 2백 명이 매일 교회 안에서 자라며 ‘저 출생 극복의 모델’로 전국 교회의 탐방이 끊이지 않는 당진 동일교회의 시작은 소박했다. 이 교회는 어린이가 중심이다.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엔 어린이집, 왼쪽엔 교육관(비전스쿨), 정면엔 비전센터(청소년수양관)가 자리 잡았다. 예배당 건물 따로 없이 비전센터 강당 8백석을 대예배실로 쓰는데 주일 오전 9시 ‘온 세대 예배’에서도 어린이들이 주요 역할을 맡는다. 어린이들은 예배 시간에 성경 구절을 암송해 봉독하고 어린이 찬양대가 찬양하고 매주 1명씩 자기 ‘꿈’을 발표한다. 다른 교회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어린이집과 비전스쿨은 오후 7시 반까지 돌본다. “불 꺼진 빈집에 부모보다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자”가 ‘교회 이모’ 마음이다. 비전스쿨은 교회 버스가 하교 시간에 맞춰 당진 초등학교 10곳을 돌면서 교문 앞에서 교회 마당까지 안전하게 데려온다. 영어, 수학뿐 아니라 인성 교육도 강조한다. ‘명심보감’을 전 학년이 배우고 밥상머리 예절도 지도한다. 어린이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워 3학년 때와 졸업할 때 연주회도 갖는다. 방학이면 영미권 대학생들을 교사로 초빙해 영어 회화 교육을 한다. 2017년엔 ‘시내산 중고등학교’라는 대안 학교도 열었다. 이 교회 성장 비결은 ‘역발상’이다. 20~30년 전만 해도 개신교계 사역은 장년 위주였다. 저 출생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도 않았다. 이수훈 목사는 말했다. “개척 당시는 한보철강이 들어왔다가 부도나면서 당진 경제가 휘청하고 어려운 가정이 많았을 때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교회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자신과 이웃에게 정직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목회의 핵심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한 생태계로 봐야 합니다. 정확히 어린이 양육에 예산이 쓰여야 저 출생 문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 127:3-5 2024-02-27
    • G.MISSION
    • G.SERMON
    2024-02-28
  • [더굳뉴스] 기독언론인협회 성명서_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지 말아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발표하면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학병원 전문의 등 의료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OECD 39개국에 의하면 한국은 의사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에 대비할 때 의대 졸업생은 7.26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의사수는 OECD 평균의사 3.5명에도 못미치는 2.4명이다. 국민들도 66.7%가 의대증원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 수는 현재도 충분하며 정부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는 중요한 방안으로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의사 수 증가는 의료 수요 증가로 이어져 건보 재정 악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사 회원 대상으로 2023년 11월 10~17일 설문 조사한 결과 정부의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응답자 4010명 중 3277명(81.7%)은 반대했다.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 가운데 1517명은 ‘이미 인력이 충분하다’(46.3%)라고 답했다. ‘향후 인구 감소로 의사 수요도 감소’(15.1%), ‘의료비용 증가 우려’(13.9%), ‘의료서비스 질 저하 우려’(13.4%)가 된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의사 733명(18.3%)은 의대 증원을 찬성했다. 찬성하는 의사들은 ‘감염·외상·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 공백 해소를 위해’(49.0%) 증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24.4%)가 그 뒤를 이었다. ‘실제 의사가 부족해 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없어서’라는 응답자도 85명(11.6%)이었다. 의사들도 18.3%는 의대 증원을 찬성하였고 국민들은 70%가 지지하였다. 이는 비단 윤석열 정부만 의대 증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도 ‘문재인 캐어’라는 말도 있듯이 공공의료서비스를 강조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100대 국정과제 중 45번째로 공공의료기관 확충 및 지역사회의 의료체계 강화,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 해소를 목표로 ‘의료공공성 확보 및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러한 연속 상에서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대학병원까지 반대하고 나서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의료생산 및 공급체계는 민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국민건강 보험 방식의 보건의료체계 속에서 의사와 의료기관은 의료자본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를 확충하여 건강 보장성을 강화하려는 현 정부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학병원처럼 민간의료기관의 힘이 정부의 힘보다 막강해진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장하겠다는 것은 민간의료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의료취약지구나 부분을 위하여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공공의료서비스를 지향하고자 한다. 그러나 권력이 막강해진 의사들은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까지 여기에 동참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나타나듯이 병원이 파괴되면 가장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국민들이다. 전문적인 직종의 대표 격에 해당하는 의사는 의학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진료, 진단, 치료, 수술 등의 의료행위를 제공하고 관리하는 직업군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의사들은 대형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던 만큼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영향력이 막강해지다 보니 의사들은 환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전문성을 형성하기보다는 직종에 대한 의사 간의 길드적인 동류의식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전문성을 토대로 집단 이기주의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의사들 18.3%가 의대 증원을 찬성하였고, 국민들 70%가 의대 정원 확장을 찬성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의사증원을 확장하는 나라가 많이 있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선진국은 왜 의대 정원을 늘리겠나”라며 “인구 고령화로 인해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증가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추세면 선진국과 의사 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인구 감소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데다, 소득 수준이 성장하면서 의료 수요 역시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이유다. 지금 당장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되, 추후 인구 감소 추세를 보면서 숫자나 속도를 조절해나가는 방안도 제시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의술(의 길)은 멀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불완전하고, 판단은 어렵다. 따라서 의사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수행원, 외부인 모두가 협조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고 있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 번째로 생각하겠노라" 기독교인들 의사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신의 이권이나 기득권을 확보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하여 값없이 수많은 환자들을 치유하여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독언론인협회는 18.3%의 의사들과 기독교인 의사들에게 희망을 건다. 적어도 당신들만이라도 예수처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길 요청한다. 2024. 2. 24 기독언론인협회
    • G.MISSION
    • G.MISSION
    2024-02-26
  • 성명서_ 건국전쟁을 보며
    최근 개봉된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7일 만에 32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치고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건국 전쟁’은 1945년 이후 38선 북쪽에서는 공산국가 소련(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공산주의 독재국가로 전락한 북한과 반면 38선 남쪽 진영에서는 자유주의 국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성장한 남한 사회를 다루고 있다. 영화 제목의 '건국'은 임시정부가 탄생한 1919년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가 탄생한 1948년 8월 15일을 가리키고 있다. 러시아 대사와 핀란드 대사를 역임했던 이인호 서울대 서양학과 명예교수도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 8월 15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독립선포 식사(式辭)에서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하는 것을 겸하여 경축한 것입니다”라고 하여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대한민국 건국의 한가운데는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보다 정통정부의 이승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덕영 감독은 84학번으로 당초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북한이 1990년대까지도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북한이 이승만을 미워하는 이유'를 공부하여 "팩트만 보여줘도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바뀔 것이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했다. 감독은 문서라는 사실관계에 토대를 두고 백범과 이승만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장제스가 파송한 유어만과 백범의 대화 문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김구는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하더라도 공산군의 현재 수준에 대응할만한 군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지금 여기에 남한 정부가 서 있지만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 설립은 안 된다고 역설한 장면이다. 사실상 김구는 미군이 주둔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원하지 않고 북한과 통일된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이상적인 통일론을 역설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는 백범 김구야말로 독립과 남북통일을 원했던 가장 이상주의적인 정치인으로 다루었고 이승만은 독재 공화국의 지도자로서 한반도 분단의 책임자로서 부정적인 평가를 해왔다. 역사가들은 이승만의 공과가 있지만 이승만의 정치적 과만 다루어 왔다. 영화에서 보듯이 이승만은 독재 정부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27,000여 명의 거제 포로 석방을 하면서까지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이끌어 내어 지금까지 미군을 주둔시켜 제2, 제3의 6.25 전쟁을 막고 있는 애국주의자이다. 미군이 반공포로를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바로 철수하였더라면 대한민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힘으로 다시 제2의 6.25를 만나 적화되었을 것이다. 미군을 대한민국에 붙잡아 놓은 것만 하더라도 이승만의 공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은 친미주의자도 아니고 반공사상을 갖고 미국까지 끌어들여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애국주의자였다. 한강철교의 파괴도 이승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때만 되면 북한식으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이승만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하여 부정적인 인식만 갖게 하였다. 김덕영 감독은 대한민국 정부 활동 내용까지 포함해 이승만의 일생과 세간에 잘못 알려진 부분을 현대의 상황과 교차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이승만의 건국 사상과 애국 사상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다. 기독언론인협회는 윤석열 정부가 속히 1919년, 1948년이라는 건국 전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건국에 대해 역사바로세우기를 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역사학자들과 한국교회사가들 등 지식인들의 침묵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각성, 후대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도 촉구하는 바이다. 기독교계도 역사 왜곡에 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2024. 2. 16 기독언론인 협회
    • G.MISSION
    • G.MISSION
    2024-02-15
  • 소강석 목사의 설교론
    식탁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쌍 나란히 올려두고 감사의 감동을 기다릴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평안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기댄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믿음이 두 입술에 나란히 맴돈다. 사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나란히 다독일 때 한 끼가 영원과 나란하다.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 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가 안식을 돕고 안식이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2023년 4월 3일 오후 2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회장 소강석)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이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이사장 소강석 목사, 원장 안준배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문학평론가 안준배 박사가 개회사를 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을 개회하겠습니다. 1988년 3월 27일 그해 부활절 다음날 아침 40대 목사 19명이 중심으로 모여 세계성신클럽 창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역 중에 1992년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이틀 동안 연인원 백만 명이 참여하는 성령 운동, 성령으로 인도하는 그런 기도성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우리 본회 34년 역사 속 세계 성령 운동사에 표지가 되시는 조용기 목사가 2021년 9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영훈 목사를 내세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승계하게 하셨고 또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담임)를 통해 조용기 목사의 핵심적인 신앙을 정리해 이끌게 하셨고 그런 가운데 한국 교회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를 내세워 성령 운동과 말씀전파를 통해 한국 교회를 연합하고 견인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세계 성령 운동 역사 34년 역사 속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조용기 목사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소강석 목사의 성령 사역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2백 석을 가득 채워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테너 박주옥 백석대 교수가 언제부터인지 꽃씨가 시랑스러워 천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소강석 작사 작곡 '꽃씨'에 이어 요즘 교회마다 애창하는 '은혜'를 열창했다. 대회장이고 주제 강연자인 소강석 목사가 ‘나는 문학, 음악, 이야기로 성경을 전한다’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곁들인 화려한 강연을 펼쳤다. "어제 정말 바쁜 부활주일을 보내시고 쉬시는 날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설교학자도 아니고 설교를 연구하는 전문교수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뛰는 한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안준배 목사께서 이런 강연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제를 주신 겁니다. '나는 문학과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전한다.' 제가 들어보니까 굉장히 매혹적이고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비롯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워낙 목회자가 바쁘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탈고를 했지만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목회자에게는 설교하면 강해 설교가 머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강해 설교 창시자로 알려진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 1931년 3월 21일 - 2017년 7월 22일)의 영향일 것입니다." 그는 뉴욕시에 출생하여 미국의 고든 콘웰 신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달라스 신학교, 써던 메쏘디스트 대학교에서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설교학의 대가로 2006년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에 '영향력있는 설교자'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하여 강해 설교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의 강해 설교론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해 오늘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경 본문의 중심사상이 곧 설교의 주제가 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하고 있다. 로빈슨 교수의 강해 설교 교본으로 알려진 저서 '성경적 설교(Biblical Preaching)'는 전 세계 목회자들이 탐독했으며 현재도 120개가 넘는 학교에서 설교학의 주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강해 설교하면 설교의 구성 방식으로만 이해를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설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3대지냐 4대지냐, 혹은 구절을 풀어 설교할 것이냐(주해설교), 그리고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대부분 한국 목회자는 여기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강해 설교에 대한 이해는 형식이 우선이 아닌 중요한 설교 신학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개혁주의 목사이며 청교도 신학자 조엘 비키(Joel R.Beeke, 1952년- )의 저서 '설교에 관하여(Reformed Preaching)'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해 설교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도 중요하고 구성 요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그것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청중의 마음으로 어떻게 그 설교 내용이 전달될 것이냐에 포커스를 맞춘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구성방식도 중요하고 콘텐츠(contents) 정말 중요하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지 무엇을 전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전달방식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문화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인지성향 등 여러 가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를 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준배 박사가 시인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 관해 말했다. "페르소나(persona 가면mask이나 인격person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개인이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연극이나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라는 말이 있는데 가면이라는 뜻도 있고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삼위 3pers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감독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기작품 '살인의 추억' 이후 오스카상은 받은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 감독의 페르소나(영화계에선 어떤 감독이 자신의 분신 혹은 상징처럼 선호하는 배우를 뜻한다)로 배우를 썼는데 송강호입니다. 이 배우는 감독의 모든 생각과 뜻을 받아들여 연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도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를 그 시대의 성령의 페르소나로 사용하셨고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소강석 목사를 성령의 페르소나로 세우셨습니다. 소 목사님은 어디에 가서 어떤 설교를 하든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합니다. 저는 소 목사님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 중에 '상 파울교회'에서의 설교를 들었고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들었는데 그 현장을 딱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합니다. 그다음에 2017년 종교개혁 5백 주년 기념대회 때 소 목사님이 주 강사로 설교를 했는데 '말씀의 근원으로' 그러니까 완전히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제와 영 관련이 없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은 어느 현장, 어떤 대회, 어떤 형식의 모임이 됐든 거기에 딱 맞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017년 12월 소 목사님과 대만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대만 까오씽이라는 곳인데 그 도시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열차로 타이페이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책을 갖고 다니는데 덩리쥔(鄧麗君,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대만 출신 가수)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 목사님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한테 물어봤습니다. '안 목사님은 이선희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덩리쥔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중화권이 사랑하는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이 노래를 부른 덩뤼쥔이라고 그랬죠. 그러니 소 목사님이 뭐라고 하냐면 '나는 이선희야. 이선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그대를 만나' (회중 웃음) 소 목사님은 별을 참 좋아하세요. 이선희를 가장 좋아한다는 거예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날 저녁 때 타이페이에 5천 명 모이는 따워줘이라는 대만 최고의 교회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소 목사님이 나와 나눈 대화 가운데서 덩뤼쥔의 노래 '첨밀밀' (蜜蜜 '티엔미미' 달콤해요)' '니 샤오 더 티엔미미(笑得蜜蜜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달콤해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대만 사람들이 음악으로 대단히 감동을 했어요. 대만 사람이 사랑하는 덩뤼쥔 자기들 노래로 불러주니까 감동을 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다음 해에 한 8천 명 수용할 수 있는 대만에서 제일 큰 허핑체육관에서 열린 성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소 목사님이 그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하모니카로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을 연주하니까 대만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아니 소 목사님은 우리 대만인이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끼더라고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소 목사님은 시대를 해석하고 말씀으로 치유하는 설교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감사예배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소천하신 이후인데 그때 '고래를 위하여'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고래'라는 시를 인용한 설교였습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라고 설교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님이 한국 교회 고래였고 그 고래가 국민일보를 낳았고 또 이영훈 목사를 낳았고 또 조민재 국민일보 회장을 낳았고 또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낳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고래'라는 시적 언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그때도 이선희 노래를 불렀는데요. (회중 웃음) '그 모든 것 기적이었네. 은혜였네. 눈물이였네. 이렇게 개사를 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소 목사님 그 음악을 그 현장에 맞게끔 사용하면서 참, 소 목사처럼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기념 예배에 딱 맞게끔 하면서 설립자 조용기 목사 그리고 이영훈 목사와 국민일보 회장을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모두 아우릅니다. 이렇게 해박하고 탁월하게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이 시대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유럽에도 같이 가서 성회를 지켜봤고 춘천순복음교회 성회도 지켜봤는데 그때마다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 포럼을 통해서 소 목사님의 그 메시지를 우리가 잘 수용해서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앞서 안준배 박사가 그 자질을 실제 목격하고 증언했다. 그렇듯 “이 세상의 광대들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기 위해 그토록 애틋함과 애절함을 갖고 노래하고 연기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구원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에게 애틋함과 애절함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스스로 광대임을 밝히고 그것을 실제로 입증해 성공한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설교관을 세 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최근 경영계에선 기업 현장에. 예술가 혹은 예술적 요소를 도입하는 예술적 개입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에도 예술적 개입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나는 문학의 옷을 입혀 성경 말씀을 전합니다. 2. 음악의 옷을 입혀 성경을 전합니다. 3. 성경을 이야기로 전합니다." 성숙(成熟)이란 ‘나’와 ‘남’ ‘우리’와 ‘그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발전의 한 단계다. ‘남’과 ‘그들’은 ‘나’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은 나에게 득(得)이 된다. 상대를 부정확하게 아는 지도자는 지형(地形)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낙하산병(落下傘兵)과 같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지도자의 성숙과 직결돼 있다. ‘기억의 감옥’에 갇히면 ‘기억의 포로(捕虜)’가 되기 십상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2-14 2024-02-09
    • G.MISSION
    • G.SERMON
    2024-02-09

실시간 G.MISSION 기사

  • 소강석 목사의 예언
    시인(詩人)이자 가인(歌人) 그리고 선지자(先知者) 소강석 목사 3월 8일 아침 예언 하나님께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사 평화의 꽃길 열고 통일 초석 되고 통일 이루려면 대한민국 하나 돼야 이 모든 일을 위하여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자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을 우리 민족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선택된 기업 되어야 혼란이 지배할 때 환자는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의사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국민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정치인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목사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혼란이 지배할 때 나 역시 사랑하는 총회와 총신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건 분명한 것 같다. 혼란을 불러오는 건 결국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 혼란이 또 다른 질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 칼빈의 개혁신학은 얼마나 좋은 향(向)이냐. 그 쪽으로 향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돌아오는 향이다. 남향집과 달리 지는 해가 첫 해라는 서향집. 1960년대 어렵던 시절 전라북도 남원군의 붉게 녹이 슨 양철지붕 밑에서 소강석 목사의 노모는 '석양 아래 새끼들 밥 먹이며 사는 일이 평생이었다'고 여예언자 드보라처럼 말하셨을 것이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는 3월 12일자 중앙일보의 그의 칼럼 ‘전영기의 시시각각’에서 이런 글을 썼다. 8일 새벽 일산 킨텍스에서 기독교계가 마련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소강석 목사의 설교와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에 대한 것이었다. 정의용·서훈을 미국 특사단으로 보내던 8일 새벽 일산 킨텍스 단상에 문재인 대통령은 앉아 있었다. 대통령은 ‘기적같이 다가온 소중한 기회를 도널드 트럼프가 차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복잡한 심경이 교차했을 것이다. 설교자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특사단이 오늘 출발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평화의 설국열차가 통일열차가 돼서 쾌속 질주하도록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그의 발언은 문 대통령의 마음을 대신 표현한 효과를 냈다. 스무 시간쯤 뒤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난 정의용 특사단장은 목사의 설교를 대통령의 인사말로 살짝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어제 아침 국가조찬기도회에서 5000여 명의 한국 목사들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큰 힘이 됐다.” 칭찬받기 좋아하는 트럼프의 어깨가 으쓱거렸다. 외교관 생활로 잔뼈가 굵은 정의용다운 노련함이었다. 문 대통령은 기도회에서 “남북 대화뿐 아니라 미국의 강력한 지원이 만들어 낸 성과다. 성도 여러분. 미국과 손잡고 북한과 대화하며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라는 나라 이름만 꺼냈고 소 목사는 트럼프라는 인격을 입혔다. 소강석이 한국의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미국 대통령을 끄집어낸 것은 대중적 감수성이 풍부한 복음주의 목회자의 면모다. 그러나 감수성 이상의 무엇도 감지된다. 소강석을 설교자로 내세운 한국 기독교의 본류가 북핵 문제에서 대한민국의 통합과 정체성, 한·미 동맹이 훼손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통일을 이루려면 대한민국이 하나가 돼야 한다. 평화통일의 열차 안에 탄 승객들이 서로 증오하고 충돌하고 싸워서야 되겠나. 세계 역사에서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갈등과 분열이었다.” 4, 5월 연쇄 정상회담은 핵무기를 둘러싼 한국·북한·미국 3국의 진실들이 환히 드러나는 무대다. 한국의 진실은 이 메시지에 담겼다. 특정 목사나 기독교 세력의 정치관이라기보다 한국인의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믿음이라 하겠다. 평화통일의 종착역에 이르기도 전에 열차가 내부 사정으로 탈선한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나. 우리 정부가 금언처럼 새겨 둬야 할 말이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가 앞서 쓴 글의 내용은 실제로 조찬기도회 현장에서 행한 소강석 목사의 예언은 이랬다. “...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얀 빙상에서 출발케 하였던 평화의 설국열차가 마침내 남북정상회담까지 갖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만남과 대화들을 통하여 작은 것이 큰 것이 되고 큰 것이 더 큰 것이 되면 마침내 피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이 일에 우리 하나님께서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 하셔서 평화의 꽃길을 여시고 통일의 초석을 이루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통일을 이루려면 먼저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평화통일의 열차를 달리게 하였는데 그 열차 안에 탄 승객들이 서로 증오하고 충돌하고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평화통일 열차 안이 마치 에덴의 동쪽과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세계 역사를 보면 어떤 나라나 민족도 다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망했지 않습니까.” 시인(詩人)이자 가인(歌人) 소강석 목사는 2018년 3월 8일 50년 희년을 맞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역사상 그 누구도 발산하지 못한 믿음과 끼를 대한민국 대통령의 감동을 넘어 세계 제일의 대통령 트럼프 어깨도 으쓱하게 할 정도로 한껏 발휘했다. 하나님의 예언과 주님의 위로와 성령의 치유가 있는 메시지였다. “... 평창동계올림픽은 저 강원도의 은빛 빙상에서 하얀 평화의 눈꽃을 피우고 화해의 아리아를 울려 퍼지게 한 위대한 제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하여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의 설국열차를 달리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낭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평화의 설국열차가 통일열차가 되어 하루 속히 쾌속 질주하도록 이 아침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던 중 작년에 저는 미국 LA에서 있었던 마틴 루터 킹 퍼레이드 전야제에서 미국 크렌쇼 합창단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감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함께 참석을 하신 미국 연방 하원의원인 제니스 한과 함께 무대로 올라가서 손을 잡고 통일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국민은 통일의 노래를 잊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평양을 예닐곱 번을 다녀왔는데 그곳을 갈 때도 함께 손을 잡고 통일의 노래를 목 놓아 불렀습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통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과는 아주 다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6.25전쟁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세월의 강물이 흘러갔지만 6.25전쟁의 포성소리와 절규,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아직도 우리의 귓가에 쟁쟁하게 울리고 있는 듯합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죽은 자가 백만 명이 넘었고 이산가족이 천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잃은 전쟁과부가 50만,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가 십만 명에 이르렀으니 거리와 거리마다, 마을과 마을마다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낙네의 피 토하는 애곡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는 12년 째 한국전참전용사들을 초청해서 그들을 섬겨왔습니다. 특별히 작년에는 장진호전투에서 싸웠던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이런 행사를 지상파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영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분들이 장진호전투 기념비 제막식에 저를 초청해 주신 것입니다... 올해 참전용사 행사는 흥남철수작전을 이끌었던 분들이나 그 분들의 후손을 초청해 놨습니다. 사실 흥남철수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찌 오늘날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계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희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지난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북한은 계속해서 핵무장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만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 없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자유 민주주의의 정체성 위에서 철저한 한미동맹 강화와 안보의 대비를 하면서도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강구하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에 이러한 평화와 화해의 무드가 드리워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소식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가 더욱 평화의 꽃밭을 이루고 화해의 꽃길을 여는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독일이 그랬지 않습니까. 누가 뭐라 해도 독일의 화해와 평화통일은 독일교회가 선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통일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남북은 서로 입장이 다를 수 있고 군사와 군사는 여전히 대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특히 기독교는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얀 빙상에서 출발케 하였던 평화의 설국열차가 마침내 남북정상회담까지 갖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만남과 대화들을 통하여 작은 것이 큰 것이 되고 큰 것이 더 큰 것이 되면 마침내 피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이 일에 우리 하나님께서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 하셔서 평화의 꽃길을 여시고 통일의 초석을 이루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통일을 이루려면 먼저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평화통일의 열차를 달리게 하였는데 그 열차 안에 탄 승객들이 서로 증오하고 충돌하고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평화통일 열차 안이 마치 에덴의 동쪽과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세계 역사를 보면 어떤 나라나 민족도 다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망했지 않습니까. 우리는 분명히 잘못된 적폐를 고쳐야 합니다. 긴 세월, 사회 곳곳에 누적된 병폐와 부정부패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적폐청산이 또 다른 적폐를 낳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경계해야 합니다.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이 보여준 것처럼 정의도 지나치면 잔인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진정한 정의는 사랑과 정의가 입 맞추고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최근에 헝가리 수상인 빅토르 오만께서 부다페스트의 왕궁에서 “기독교는 유럽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 일국의 수상이 국정연설에서 공개적으로 “기독교가 유럽의 희망”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까.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그랬거니와 앞으로도 한국교회가 이 민족과 대한민국에 희망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하여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아침에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킵시다.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을 우리 민족의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선택된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업인 우리 모두가 이 아침에 나라와 민족 그리고 대통령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 33:12)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지난 3월 7일 워싱턴에선 5년 임기를 마치고 워싱턴을 떠나는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를 위한 성대한 송별파티가 열렸다. 워싱턴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과 각료들이 운집한 주미대사 관저는 미·일 밀월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불과 하루 뒤인 8일. 일본은 ‘북·미 정상회담’ ‘철강 25% 관세 부과 면제 대상 제외’라는 더블펀치를 맞았다. 둘 다 예상도 못하던 것이었다. ‘워싱턴 일본 외교 참사의 날’이었다. 세상이나 총회에서 외교에는 영원한 친구가 없음을 보여준다. 영국의 BBC와 국내 주요 언론은 북·미 정상회담은 위험한 벼랑 끝 전술이라고 말한다. 성공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영웅이고 실패하면 장기판의 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절박하다. 게다가 지금은 말뿐이다. 그것도 우리의 말뿐이다. 노동신문도 조선중앙통신도 일언반구 비핵화나 정상회담 관련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은 늘 그랬듯 “우리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정색하고 나설지 모른다. 미국도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라”고 북한에 외치지만 회담 전에 진정성을 증명할 행동 따윈 없다는 걸 안다. 3월 8일 밤의 주인공은 한국이었지만 5월 말의 희생양 또한 한국이 될 수 있다. 모든 게 총회 정치처럼 깜깜이다.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건 분명한 것 같다. 혼란을 불러오는 건 결국 우리들 자신의 믿음과 기도에 달린 것이라는 것이다. 혼란이 대한민국과 세계의 또 다른 질서가 돼서는 안 되기에 시인(詩人)이자 가인(歌人) 그리고 선지자(先知者) 소강석 목사가 3월 8일 아침 예언했다. “이 모든 일을 위하여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아침에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킵시다.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을 우리 민족의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선택된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업인 우리 모두가 이 아침에 나라와 민족 그리고 대통령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2018-03-14
    • G.MISSION
    • G.SERMON
    2018-03-14
  • 명문기독사학 광주숭일고 졸업식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살린 뜻깊은 졸업식 110년의 오랜 전통을 지닌 명문기독사학 학교법인 숭일학원(이사장 한기승 목사, 광주중앙교회 담임) 산하 광주숭일고등학교(교장 임인호, 광주중앙교회 장로)가 2월 7일 오전 10시 30분 교내 대강당에서 졸업 축하예배 및 졸업식을 거행했다. 신앙과 열정을 가지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는 광주숭일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식전 행사로 재학생 찬양동아리인 ‘빛과 소금’의 찬양으로 졸업식 무대를 은혜와 감사로 시작하였다. 1부 졸업예배는 교목실장인 전교식 목사의 인도로 광주지역 각 노회장들의 기도와 성경봉독, 축도로 경건하게 진행되었고 교내 찬양동아리인 ‘리조이스’팀의 특송과 함께 하여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졸업식이 되었다 2부 졸업식에서 이사장 한기승 광주중앙교회 담임목사는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며 졸업생들이 그동안 신앙의 학교 안에서 믿음을 키우며 알게 된 하나님의 사랑을 사회에 나가서 실천하며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 자랑스런 숭일의 위상을 떨쳐줄 것을 당부했다. 임인호 교장은 졸업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지난 3년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모교에서 형성한 자존감을 가지고 멋진 사회인으로 성장해줄 것을 당부하며 사회의 첫 출발점에 선 졸업생들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축사를 하였다. 특히 서울 분당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폐교를 당했던 광주숭일고 졸업식에 참석하여 선배들의 항일 정신을 계승하며 역사의 중심에서 앞장서온 숭일고의 전통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며 졸업생들을 격려하였다. 총동창회 박철홍 회장을 대신한 송하진 부회장은 졸업생의 미래는 열려있는 창과 같지만 그 열려있는 기회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가 있다며 학생들에게 인생을 살면서 믿음, 배움, 하나님 세 가지를 절대로 놓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한 이번 졸업식에서는 전남제일노회장 윤정길 목사, 빛고을노회장 이재철 목사, 동광주노회장 이승범 목사, 호남노회장 박용민 목사, 광주제일노회장 이영만 목사 등 각 노회장들이 직접 우수학생들에게 특별상을 시상하였고, 이사장의 미래인재 장학금, 화산서부교회 당회장의 특별장학금, 그리고 총40여명의 졸업생에게 수여된 박철홍 총동창회장의 장학금 등 졸업생들을 격려하는 행사가 함께 이루어져 더욱 뜻깊은 졸업식이 되었다. 찬양과 예배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광주숭일고등학교의 졸업식은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살린 뜻깊은 행사로 진행되어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기독학교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졸업식 행사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2018-02-10
    • G.MISSION
    • G.MISSION
    2018-02-10
  • 소강석 목사 17송구18영신
    전국 CTS 생중계 새에덴교회 송구영신 3층 4층 5층 통로까지 2층 교육관도 메운 1만여 신자 소강석 목사의 손바닥 머리 안수 후 교인들 다른 말씀이 적힌 쪽지를 받고 누구나 긴장하고 그 내용에 감격 새에덴교회 축벽(祝壁)에 무시로 기원(祈願) 삼긴 복(福)이 나린다. 그 강단에 믿음의 백색 자작나무가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계시(啓示)가 순 돋아 파릇하다. 그 때 말씀 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시인(詩人) 소강석 목사의 절창(絶唱)에 교인들 귀와 마음이 흔들린다. 본당에 바람도 없이 기도로 밤을 새운 삼동(三冬)의 축복이 하이얗다. 잠자는 축복은 언제 강단에 설까. 축복은 믿음의 가장 오래된 증인이자 확고한 증거다. 축복에는 무수한 믿음이 기록되어 있다. 하물며 믿음이 없는 자의 발자국부터 믿음이 있는 자의 여름부터 겨울의 첫눈까지 보관되어 있다. 축복은 한때 믿음의 기준이었다. 비난받는 신자의 징표였고 값싼 믿음의 열매였다. 인간이 내내 떨치지 못하는 숨이 있다면 그건 축복의 숨이다. 태초의 공중을 비상하는 기억이 있는 축복은 날아오르려 틈만 나면 두 날개를 퍼덕인다. 축복의 사랑은 한없이 설레지만 또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렵고 버거운 상대다. 그 감정이 마음의 어디에서 솟는지 우리는 모른다. 떠낸 자리에 금세 괴는 샘물처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그리움이 늘 되살아난다. 아무 무게도 나가지 않는 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것도 사실은 우리 믿음이 쌓은 저 풍성한 기도의 축대들 때문일 거다. 그래서 믿음의 축복은 늘 해마다 끝나거나 시작될 때 그 열망으로 덩그럭거린다. 소강석 목사의 메시지는 프리즘을 통과하는 무지개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복잡다단한 색을 품고 있는 것처럼 시인(詩人)이고 가인(歌人)인 소강석 목사는 한 편의 설교를 통해 사랑, 실패, 성공 등 신자를 믿음의 축복으로 몰아가는 다양한 주제를 읊고 노래하고 설교한다. 그래서 2017년 12월 31일 오후 10시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 3층 4층 5층 통로까지 그리고 2층 교육관도 가득 메운 신자들로 숨 쉴 틈도 간간했다. 소강석 목사의 설교는 무대 위 연극배우의 연기처럼 다양하다. 그의 다양성을 맛보기 위해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명학수’의 당선작 ‘폴이라 불리는 명준’의 내용을 약간 비틀어 일부 소개한다. ... 브로드웨이의 한 극단이 앤디 워홀을 연기할 배우를 뽑는 공개 오디션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폴은 그것이 요절한 예술가가 뒤늦게 내민 사죄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처럼 보였지만, ‘Half and Quarter’ 이후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게 없던 폴에게 주어진 터닝포인트이자 마지막 기회라 여기는 것보다는 덜 절박해 보였다. 폴은 소파에 앉아 할머니의 스크랩북을 펼쳤다. 분주한 기념품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가 보인다. 은색의 머리카락과 마른 얼굴과 입가의 주름. 그는 할머니를 향해 미소 지으며 긴 팔을 뻗어 뭔가를 가리킨다. 움푹 들어간 두 눈에는 오래 기다려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품에 안은 어린아이의 기쁨이 가득하다. 서둘러 작업실로 돌아갔겠지, 머릿속은 이미 영감으로 가득 찼을 테고, 바로 옆에서 사신(死神)이 기회만 엿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미완의 화폭 안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폴은 생각했다. 이건 운명이야. 이마를 반쯤 덮은 은색 머리카락과 까만 선글라스와 검정 터틀넥과 블랙 슈트. 이런 것들만 있으면 누구라도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년 8월 6일~1987년 2월 22일)처럼 뉴욕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 때문에 이 옷차림으로 폴이 오디션장에 나타났을 때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폴이 입을 열어 대사를 읊기 시작하자 연출자와 작가와 제작자와 투자가들은 차례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나는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고 싶어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려 애를 쓰죠. 만약 내 어린 시절에 대해 누가 물으면 매번 다르게 지어냅니다.” 앤디 워홀로 분한 배우는 수줍은 듯 입을 조금씩 움직이며 낮고 가는 음성으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이건 단순히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말하지 않거나 감추려는 게 아니라, 전에 내가 말했던 것을 잊어버려서 다시 그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일 뿐이에요. 사실은 무엇이 진짜인지 나도 잘 모를 때가 있답니다.” 그 배우가 대사를 멈추고 선글라스를 벗어 자신의 한국인 인종을 드러냈을 때 어떤 참관인은 당황했지만 작가와 연출자는 그의 두 눈에서 앤디 워홀 특유의 거리감과 무심함을 발견했다. 그 배우는 지친 기색을 한껏 드러낸 몸짓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정면을 한번 슬쩍 바라본 다음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은색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마치 모자를 가볍게 들어 올리듯이 늘 해오던 일상인 것처럼 가발을 벗었다. 분장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약간의 옆머리만 남은 민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며 그 배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곤거리고 웅성대는 소음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러나 소음의 파문은 그를 비켜 갔다. “내 이름은 강석 소입니다. 사람들이 내게 이름을 물으면 나는 그렇게 대답합니다. 내일은 폴 조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마이클 로버트일 수도 있구요. 하지만 저는 시인(詩人)이고 가인(歌人)인 강석 소가 좋아요. 이름은 가발과 같은 것이죠. 나를 지켜주니까요.” 앤디 워홀이 대머리였음을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본 적 없는 투자자와 제작자들은 너무 놀라 말을 잃었고 작가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으며 연출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 배우를 힘껏 껴안았다. 당일 전국에 CTS를 통해 생중계된 2018 새에덴교회 송구영신예배는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강대상 뒤와 좌우에는 소 목사의 장모 정금성 권사를 비롯해 교회의 장로들과 교인들이 앉아 있었다. 소 목사 사모는 교회 뒷자리에 서있었다. 성장의 활력이 넘치는 새에덴교회의 송구영신 예배모범이 훗날 교회역사 전승과 전국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 참조를 위해 그 순서를 게재한다. 2017. 12/31(주일) 저녁 10시~2018. 1/1(월)장소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강사 소강석 담임목사 17송구예배 2017년 12월 31일 오후 10시 인도 이종민 목사 찬양과 고백의 한마당 - 글로리아 찬양단예배부름 - 묵도 - 다같이참회의 찬송 - 찬 279장 / 인애하신 구세주여 - 다같이참회와 감사의 기도 - 서광수 장로성경봉독 - 사무엘하 7:18-20 - 다같이찬양 - 주의 축복 내려주소서 - 연합성가대설교 - 유다지파의 리더가 되라 - 소강석 목사결단과 다짐의 기도 - 다같이회고와 감사의 한마당 - 영상 -. 새에덴영상팀 - 성령의 임재 속에서 새벽 0시가 되기까지 조용히 묵상으로 기도합시다 -- 0시 1분 전에 모두 기립하여 영상화면에서 알리는 시간과 집례자의 인도에 따라 새해를 맞이합니다 - (화면에 10부터 역순으로 0이 나타났다) 18영신예배 2018년 1월 1일 0시 인도 소강석 목사 타종 - 소강석 목사 (‘0’이 나타나자 소 목사 양각나팔을 불었다) 새해맞이 기도 - 소강석 목사영광의 찬송 - 찬 550장 / 시온의 영광이 - 다같이교독의 기도 - 다같이 목사: 주여 새해에는 교회를 돌보사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옵소서회중: 주여 새해에는 우리 가정을 돌보사 생명이 넘치게 하옵소서 목사: 주여 새해에는 우리 성도들을 돌보사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옵소서회중: 주여 새해에는 우리 가정이 돌보사 예배와 말씀으로 응답이 넘치게 하옵소서 목사: 주여 새해에는 우리 나라와 민족, 성도들의 자녀들과 생업을 도우사 형통하게 하옵소서회중: 주여 새해에는 우리 민족과, 자녀와 생업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사도신경 - 다같이신년의 기도 - 정금성 권사새해를 여는 인사 - 다같이 ‘새해에는 복 더 많이 받으세요. 승리와 축복의 주인공이 되세요.’성경봉독 - 창세기 1:1-5 - 다같이찬양 - 주 예수 이름 높이여 - 연합찬양대설교 - 영적 새 창조를 받자 - 소강석 목사축복의 찬양 - 2018 비전 찬양 - 다같이 1절: 우리는 생명나무로 축복을 받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믿고 충성하여 우리 복을 받아요 2절: 우리는 생명나무로 전도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상명령 순종하여 전도하겠습니다 3절: 우리는 생명나무로 지경을 넓히렵니다 경기에서 민족너머 세계로 뻗어가겠습니다 새해 비전 나눔 한마당 - 영상 - 새에덴영상팀비전선언문 - 다같이 우리는 로드십과 생명나무 신앙으로 신정주의 교회와 영광의 가문을 이루며 네트워크 영성으로 한국 교회의 공익과 하나님의 도성을 확장하며 통일 한국 시대를 열어가는 선구자적 교회를 꿈꾼다.축도 - 소강석 목사 결단과 헌신 - 인도: 소강석 목사 신년결단서약 - 신년결단서약서 작성 - 다같이결단의 찬송 - 사명의 길 - 다같이신년소원예물과 기도제목 봉헌 - 봉헌위원 새해 축복 안수기도, 약속의 말씀 받기 (줄 지어 안수 받은 후 쪽지에 적힌 말씀 받음) 교인들은 소강석 목사의 손바닥 머리 안수 후 저마다 다른 말씀이 적힌 쪽지를 받고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은 사람들처럼 누구나 긴장하고 그 내용에 감격했다. 새해 첫 기적은 총회장이 황새처럼 날아서 총대는 뛰어서 목사는 걸어서 장로는 기어서 집사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아직 젊은 새에덴교회 송구영신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혁신학을 총신 정관에 박은 김영우 총장은 앉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설적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의 명언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처럼, 2017년 말끔히 보내시고 2018년 모두 단단하게 시작하시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2018-01-07
    • G.MISSION
    • G.MISSION
    2018-01-07
  • 총회장 전계헌 목사 신년사
    “금년이 우리의 마지막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며 동역자 된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역자들과 전국 교회에 문안드립니다. 새해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한 번도 가보지 않는 이 새로운 길에 함께 나선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안정입니다. 오늘 갖고 있는 것을 내일도 갖고 있기를 원하며, 보다 견고하게 진을 쌓고 아무도 자기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쟁과 늙고 병들 것을 두려워하며, 마치 성경의 어리석은 부차처럼 쌓아둘 곳이 없을 만큼 탐욕의 창고를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이것을 지혜로운 ‘노후대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인생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인생이 주어진 생명을 다하고 천국에 이르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불어버리면 없어질 것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고 ‘배설물’로 여긴 것들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한된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2018년 새해에는 우리의 처음 고백처럼 종말론적으로 살아갑시다. 금년이 우리의 마지막인 것처럼 삽시다. 하루하루가 우리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헌신하고, 충성하고, 인내하며, 신실하고 담대하게 살아냅시다. 날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고백하면서 우리의 탐욕과 허울 좋은 겉치레를 내려놓읍시다. 불길 같은 연단 속에서도 정금 같이 변치 않을 믿음으로 살아냅시다. 그리하여 후회 없는 한 해, 감사와 은혜만 넘치는 한 해가 되게 합시다. “믿음이 이긴다”는 찬송으로 한걸음 한걸음씩 새로운 시간, 새로운 날들을 맞이합시다.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기도로 극복하고, 엄습하는 거친 파도는 주님 손 붙잡고 담대하게 넘어갑시다. 그리하여 믿음의 열매, 인내의 열매, 동행의 열매로 풍성한 한해가 되게 합시다. 전쟁과 지진과 사고와 재해의 소식이 끊어지지 않는 나날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들을 돌아보며, 그분들과 함께 고통을 이겨냅시다. 미자립교회와 농어촌에서 수고하는 목회자들과 짐을 함께 집시다. 총신문제, 납골당문제, 분쟁 중에 있는 노회와 교회들의 아픈 현실을 바라보면 눈물부터 나오지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주인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으로 채워봅시다. 오직 주님의 은혜가 우리 총회와 모든 교회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G.MISSION
    • G.SERMON
    2017-12-29
  • 한국교회총연합 성탄절 메시지
    한국교회총연합 성탄절 메시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2:14)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성탄절에 세상에 가득한 전쟁의 소문과 위협을 듣습니다. 거리에는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분주한 사람들의 소리가 요란합니다. 사랑과 평화의 복음은 길거리 소음에 묻히고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은 임마누엘의 순전한 복음과 교회의 역사를 보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볍게 여기는 무리들이 진리를 멀리하며 비방합니다. 한국교회는 나사렛의 첫 성탄절 때처럼 침묵하고 경청합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읍시다.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삼상15:22).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이웃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잘못을 나부터 회개합시다. 세상의 고단한 살림살이에 시달리며, 가난과 질병으로 탄식하는 아우성을 온몸으로 껴안읍시다. 때로는 부당한 탄압아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신음소리를 들읍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말씀에 의지하여 침묵하며 경청합시다. 온갖 소리로 시끄러운 이 시대에 침묵하며 주님 나신 복된 소식을 세상에 전합시다. 하나님과 이웃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복된 성탄절 되기를 바랍니다. 온 땅에 하늘의 평화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7년 성탄절에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전계헌 최기학 전명구 이영훈
    • G.MISSION
    • G.SERMON
    2017-12-20
  • 성탄과 복된 새해에
    성탄과 복된 새해에 가장 낮은곳으로 우리 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낮고 그늘진 곳에 임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낮고 그늘진 이들 곁에 함께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성탄과 더불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여러분의 가슴속에도 훈훈해지고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특별히 분주한 연말, 건강 챙기듯 건강한 교회를 향한 마음 잃지 마시고, 소리없이 내려 쌓이는 눈처럼 한국교회 성도들의 마음속에 행복이 소복히 쌓였으면 합니다. 한해의 마지막이라고 아쉬워하기보다는 남아있는 시간들을 알차게 성찰하고 정리하면서 새로움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2018년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하며, 한국교회가 12월까지 달려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옳게 해왔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부끄럽고 아쉬웠던 것은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라고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사교회’화를 막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참회하게 됩니다. 주님이 당부하신 연합을 이야기 하면서도 분열하고, 겸손을 말하면서도 높은 자리를 좋아하며, 사회와 소통하기 보다는 우물안 개구리로 만족해하는 그러면서도 세상적인 것들은 너무나 사랑하는 어리석은 우리의 자화상을 보며 깊이 참회합니다.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목회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당면한 과제입니다.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교회, 세상에 ‘교회는 이런 곳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교회들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교회가 그래도 이 시대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들이 많이 나타났으면 합니다. 마치 아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듯 한국교회에도 말입니다. 루터처럼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윤동주 시인처럼 어두운 시대에 자기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크리스천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2018년 새해에는 그래도 희망의 빛은 꺼지지 않고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 2018년 새해를 소망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아름답고 건강한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이사장 신상현 목사 원장 이효상 목사
    • G.MISSION
    • G.SERMON
    2017-12-20
  • 길자연 목사 설교론
    길자연 목사의 노년삶을 긍정하고 사랑해 놀라울 따름 길 목사의 좋은 설교 요령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꾸준함'이나 '성실성’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전해야 해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地表)에서 사라지고 저녁 하늘 개운하다. 개울 가까이에서 흐르는 물 냄새 맡을 때쯤 그대 홀연히 사라진 개울물처럼 담담하게 나는 흐른다. 그러다보니 하구(河口)였나 싶은 곳에 뻘이 드러나고 바람도 없는데 갈매기 하나 엷은 석양에 날개 담그고 아득하게 나른다. 낳자마자 뻘밭을 쑤셔대는 저어새 날개가 있다는 걸 죽을 때야 안다지. 십자수에서 흘러온 반대편이 그래도 가야 할 곳 수평선 있는 쪽이 그 나라였던가. 혹 어둠도 눈물도 여느 슬픔도 없는 곳. 마치 강이 지평선을 버리고 바다에 이르면 강이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바다로 스며드는 곳같은... 마음 가득 종일 그대 그리움 돌아가는 소리. 질끈 감은 두 눈썹에 남은 겨울이 마른다. 허리띠가 남아돈다. 몸이 마르는 그리움이다. 사랑이다. 기도가 더 가까이 들린다. 이리 분분히 소심한 나뭇잎들 이리 낮게 탄식하는 오래된 기도들. 마음속에서 일어난 불이 제 몸을 굴뚝 삼아 기도를 불쏘시개 삼아 타고 있다. 십자수 기도원 저 떡갈나무에게로 불타고 있다. 그대 사랑아 나를 몰아 어디로 가려오. 안개가 보이는 아침 조용히 성경을 펼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그의 성경 읽기에 손끝을 댄다. 햇살 반 먼지 반으로 들어오는 아침나절의 백색 기둥에 기대 커피를 마시며 말씀을 읽고 섬기는 시간을 사랑한다. 내려앉은 백색 바닥에 발이라도 대고 있는 발끝에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온다면 그건 그대로 성령의 감동일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크리스마스는 울면 안 되는 날이 아니다. 울고 들어온 그대를 보듬으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날이다. 눈물로 차갑게 얼어붙은 그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주고 싶은 날. 오랫동안 달을 쳐다보고 눈이 녹는 걸 구경하고 나는 어떤 어른이 될까 의문을 품던 시절이 있었다. 안개 같은 세상에서 삶은 가혹하고 지난할 텐데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믿음의 인물들이 말하고 기도하는 성경을 읽으면 자연히 하나님을 향한 기도에 잠기게 된다. 2017년 11월 6일(월) 오후 3시 청담동 길자연(吉自延)의 목사의 ‘큰 덕을 이끈다’는 뜻의 호를 딴 덕연(?延) 아카데미 2층에서 교계 거목(巨木) 길자연 목사 설교론을 들었다. “오늘 저는 전도서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달 전쯤 제가 텔레비전을 보니까 유명 철학자가 하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같은 헬라 철학자들로부터 근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이야기하는데 한마디로 인생은 철학에서 해답을 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1시간 죽 들으면서 마음속에 ‘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철학으로서는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인생의 근원을 배우죠. 성경에서 인생의 답을 얻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신학생 때 특별히 제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박형용 박사님과 박윤선 박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경신학과 조직신학이 대세였습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때는 한창 자유주의가 한국교회를 파괴하는 그 시점에서 극성스러울 때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한 것은 설교학이었습니다. 새순교회 윤 목사님 와서 설교학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제가 그 설교학을 공부하면서 낙제를 했습니다. 시험을 쳤는데 점수를 안 주는 겁니다. 그래서 애를 먹었습니다. 그 다음 대구의 서문교회 이성헌 목사님이 설교를 가르치셨는데 그때는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성헌 목사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 다음에 우리한테 헬라어를 가르치신 박희천 목사님이 설교학 강의도 했습니다. 그런데 박희천 목사님 부흥회 가시면 조금 지각하신 분이 헐레벌떡 들어오면 벌써 ‘이제는’하고 축도를 하고 계십니다. 부흥회 설교가 30분이면 끝나는 겁니다. 그러면서 설교는 짧게 하라 그러고 성경은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내 생각에 박희천 목사님에게서 설교학을 배우지 않은 걸 하나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는 박희천 목사님보다는 박윤선 박형용 목사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저희 아버님한테도 영향을 많이 받고 또 최훈 목사님도 제 은사이십니다. 이분들을 통해 설교 속에서 삶의 의미와 목회를 발견했습니다. 성경에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최훈 목사님의 목회를 배운 걸 감사히 생각합니다. 또 북한에서 최원천 목사님이라고 하는 순교자를 통해 말씀을 배우고 주일학교 시절에 공부한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목회자로서 제가 내세울만한 사람은 아니고 또 목회자로서 설교의 대가도 아닙니다. 그러나 설교 속에 목회가 있다는 걸 뼈 속 깊이 느끼는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네가 뉘게서 배운 걸 알며’ 라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최훈 목사님의 제자지 내가 박형용 박윤선 목사님의 제자지 내가 순교자 최원천 목사님의 제자지 내가 길 장로님의 아들이지 항상 그것을 마음속에 꼭 담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두 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매주일 아침이면 7시 반에 제가 왕성교회 원로목사로서 1부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여기 여러분이 앉아 있는 더웨이 채플 청담교회에서 두 시간 설교를 합니다. 제가 목회할 때는 설교 준비 시간이 평균 12시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몇 시간 준비하느냐면 30시간 넘게 걸립니다. 전반적으로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데도 설교는 그렇게 시간이 걸립니다. 일주일에 엿새 동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준비를 합니다. 특별히 서울에 나와 볼일을 보고 들어가면 십자수 기도원 책상에 앉아 명상과 성경을 봅니다. 그 가운데 30시간 정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에 늘 감격을 하곤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목회자로서의 신앙의 감격과 감사가 항상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하나님에게 너무 너무 감사를 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아침 6시나 7시에 시작해서 해질 때까지 책상에 앉아 성경을 보며 설교를 준비할 때 너무 감사한 마음에 감격하게 됩니다. 두 달 전 어느 날 십자수 기도원으로 저를 만나러 오신 세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전날 스타필드에 가서 장을 봐가지고 고기를 재웠다가 숯불에 고기를 구워 점심 대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데 중매하겠다며 여자를 소개하는 겁니다. 첫째 나이는 41세입니다. 둘째 처녀입니다. 셋째 서울대 나왔습니다. 넷째 음악을 합니다. 다섯 째 유학 갔다 왔습니다. 여섯 째 얼굴이 아주 예쁩니다. 그러면 제가 마음에 혹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만있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약혼하기 전 내 아내 25살 때 사진을 보여주며 그 여자와 한 번 살았으면 됐지 뭘 또 두 번 세 번 삽니까. 저기 앉아 사진 찍는 김영배 목사 같은 사람은 아직 젊으니까 재혼할 수 있지만 저는 이 여자와 산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하니까 오신 분들이 입만 쩍쩍 다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여자를 내 아내로 주신 걸 감사하고 두 번째 너무 이렇게 성경 삼매경(三昧境)에 젖어 사는 은혜를 주시니 이런 은혜와 사랑을 어떻게 감당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요즈음에는 인생의 황금기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절감합니다. 요즘 제 생활은 이렇게 감사와 감격입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성경을 펴놓고 명상에 잠기면 하나님께서 내게 설교할 수 있는 시간도 주시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은혜도 주신 걸 감사합니다. 교회한다고 뭐 받는 것도 없이 내 돈 팍팍 써가면서 목회를 하는 데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은 성경 보는 시간이고 그 가운데 설교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전도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전도서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모세 오경 역사서 공관복음 등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그 어떤 수준 이상을 넘어가지 못해 그렇지 이해는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니 사람이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도다 하니 인생의 허무를 강조합니다. 이 세상은 헛되니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회한 지 50년이 넘다보니 전도서는 인생론을 강조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도서에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인생과 목회의 남다른 경지를 경험한 원로 길자연 목사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전해야 합니다.막막하고 두려운 길자연 목사의 노년에 이렇게 삶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는 요령은 무엇인가. 길자연 목사는 재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제출한 정답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꾸준함'이나 '성실성'는 전도서 1:1-18 본문을 근거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제목의 설교로 다양한 접근을 통해 본질적인 인생의 답을 다음과 같이 이끌어냈다. “솔로몬은 전도서 9:11-12에서 성공은 인간의 능력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 능력이 있으면서도 실패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는 모든 수고는 헛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3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전도서의 대미(大尾)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처럼 우리의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참된 삶이며 성공과 행복의 길입니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덕연 길자연 목사의 설교론이 끝났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고 폐허에서 출발한 세계는 결코 깔끔하지 않았다. 엉킨 두 마음의 송진처럼 매우 불완전하게 출발했다. 정의를 앞세운 파괴와 복수는 또 다른 야만과 방종을 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게 절름거리며 지금까지 걸어왔다. 이상을 노래한 완벽주의자들이야말로 이 세계에 전쟁과 갈등을 불러오곤 했다. 오히려 인간의 불합리성과 결핍을 인정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막막하고 두려운 길자연 목사의 노년에 이렇게 삶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는 요령은 무엇인가. 길자연 목사는 재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제출한 정답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꾸준함'이나 '성실성'이다. 일본의 세계적 소설가 하루키에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링 위에서 버티는' 일에 비유된다. 잘 써지든 못 써지든 매일 일정한 분량을 꾸준히 써나가며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육체노동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어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남들은 어떻게 쓰나 궁금했고 남들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생각하니 살짝 기분이 좋아졌고 다들 같은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위로가 되었다." 목사의 설교도 그렇지 않을까. 오래된 사랑은 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길자연 목사의 부인 천희정 사모가 지난 2015년 8월 16일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천 사모는 1964년 길 목사와 결혼해 50여년 남편의 목회를 헌신적으로 도왔다. 말년에는 십자수기도원 경내 사택에 머물렀었다. 아마도 천희정 사모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십자수 계곡물을 보며 사랑도 이런 거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이 손바닥에 잠시 모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물이 고였던 손바닥이 뜨거워진다. 머물렀다 빠져나가는 순간 다 새어나가는 물결들을 두 손 모아 떠 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래서 인생의 답이 담긴 전도서를 깊게 깨우친 길자연 목사는 천 사모 있는 언덕에서... 그리하여 그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그가 읽는 성경 속으로 밀려들 뿐. 2017-12-07
    • G.MISSION
    • G.SERMON
    2017-12-08
  • LA 칼빈 박헌성의 새벽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면 그때그때마다 행동이 일어나 군인에게 물이 중요하듯 성도에게도 이 물이 중요 이 물은 은혜와 성령 상징 믿음의 예배 하나님 축복 받아 그래서 예배가 중요 축복을 원하시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종을 신뢰하고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통성기도 남의 기도 내 귀에 안 들리고 내 기도가 내 귀에 들려야 전경이 졸고 있는 네거리 앞 붉은 성경을 들고 버스에서 내린 맹인 소녀가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앞을 휘청거리며 지나간다. 오른손에 움켜쥔 지팡이가 갈라진 보도블록을 칠 때마다 교회 신자들의 고막이 움찔거린다. 걸음을 내딛는 소녀의 종아리가 집을 찾아가는 길에 지팡이가 닿는 곳마다 무수한 길들이 홍해처럼 갈라진다. 그때 횡성의 어미 소는 막 태어난 새끼를 핥고 있었다. 먼지처럼 흩어지는 햇빛 속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2017년 10월 31일 한국 전역을 강연회가 휩쓴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의 최대 수혜자(受惠者)는 누구였을까. 최대 수혜자는 당시의 인쇄업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고안한 것은 1440~50년대. 반세기 사이 인쇄술은 독일 여러 도시에 꽤 확산된 상태였다. 문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찍어낼 원고가 별로 없었다는 점. 인쇄업은 '굶주린' 상태였다. 이때 등장한 루터는 인쇄업자들에겐 구세주였다. 예나 지금이나 '금지''불온' 딱지가 붙으면 더 들춰보고 싶은 법. 무명의 수도사가 당대 최고 권력자 교황과 맞붙은 사건은 센세이셔널한 뉴스였다. 루터가 1517년 발표한 '95개조 논제'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논제는 이듬해 말까지 16판까지 인쇄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인쇄본은 독일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고 바젤, 스트라스부르 같은 도시의 인쇄기계도 쉴 새 없이 인쇄물을 쏟아냈다. 흔히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95개조 논제'를 망치로 못을 박아 부착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루터가 생전에 자기 입으로 그런 사실을 말한 적이 없고 이 이야기를 최초로 전했다는 루터의 동지 멜란히톤은 당시 비텐베르크에 없었다고 한다. 저돌적인 루터는 단행본 저서와 독일어 성경 등 독서 시장에 쉬지 않고 새 책을 공급하는 저자이자 번역자였다. 그의 이니셜 'M.L.'은 판매 보증 수표였다. 게다가 종교개혁 논쟁이 불붙으면서 가톨릭이 내놓은 루터에 대한 비판이나 프로테스탄트 내부의 갈라진 주장들도 모두 성명서와 책 등 인쇄물로 나왔다. 루터가 불려가 의견 철회를 요구받은 보름스 제국의회 도중에도 심문받는 루터 모습을 그린 판화들이 '갓 구운 빵'처럼 인쇄돼 나왔다. 아직 여름이 징허게 남아 있고 제102회 총회가 이틀 남아 있는 2017년 9월 16일 토요일 새벽 광주 미문교회 본당 교인들로 가득 찼다. 대쪽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성경을 펼치고 LA 칼빈 박헌성 목사의 설교 본문 열왕기상 3장 9-17절을 성도들과 한절씩 교독했다. 헌금 기도가 끝나고 백남선 목사가 말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은혜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 아내가 사랑이 식은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기억이 납니까. 제가 깨달았습니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목사님 말씀하셨는데 성령의 능력이 있으면 ‘물 좀 달라’ 하면 ‘찬물 갖다 드릴까요 더운 물 갖다 드릴까요’ 할 겁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니는 손발이 없냐 떠다 먹어라’ 한다는 겁니다. (회중 웃음) 제가 아내한테 ‘음식 좀 해달라’ 하면 ‘당신이 해서 먹어 보시오’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능력이 없는 게 아니고 성령의 능력이 없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아침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은혜 충만한 시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나오셔서 말씀 주시겠습니다. (회중 아멘)” 박헌성 목사가 설교단에 나와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밤도 단잠 이루게 하시고 새벽에도 건강 주시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 주셔서 주의 전에 나와 말씀 받고 하루 시작할 수 있도록 은혜주시니 감사합니다. (회중 아멘) 부흥회 하면서 마음의 소원 기도제목 안고 이 아침에도 귀한 물질 성별하여 주님 앞에 드리오니 하늘창고에 쌓여진 금은보화 되게 하시고 두 손 들어 복을 베풀어 주시되 신명기의 약속대로 천 배의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신령한 복 주시고 이 땅의 복 주시고 영적인 복도 주시고 육적인 복도 주시고 다함이 없도록 충만 충만 채워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박헌성 목사 고개를 들고 웃으며 인사했다. “굳 모닝. 우리 옆 사람보고 인사해요. (회중 서로 인사) 미국을 비롯해 요즘 선진국에는 지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인간 지놈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간 유전자의 종류와 기능을 밝히고, 이를 통해 개인, 인종, 환자와 정상인간의 유전적 차이를 비교하여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다)라는 것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우리 체내의 유전 정보 분석을 해서 시디롬에 싣는 것입니다. 하등동물 개나 고양이는 무어냐 하는 것이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좀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분석을 해도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사람은 선천적 유전 정보도 있지만 후천적 유전 정보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부모에게서 오는 DNA가 있는가 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DNA가 있다는 겁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중생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에 들도록 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 위해서 삶을 살면 후천적인 유전자가 생겨 선천적 유전자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조상이 하던 대로 안 따라가더라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 정보가 있지만 내가 예수님 믿고 노력할 때 이 후천적 인자가 생기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의 태도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에 따라서 축복의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따라서 삶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얼마든지 우리의 복의 근원이 될 수 있고 복 받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회중 아멘)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내 생활이 달라집니다. 나는 집안 내력이 이래서 이렇다 하는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 믿음으로 일어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이 어디 있느냐 하면 역대하 20장 20절에 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엘리사가 이렇게 이렇게 해라 개천을 많이 파라 하는 말씀을 듣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말씀에 순종해서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 이렇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역사적 배경은 전재을 앞에 두고 백성들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원수들의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마라. 이 전쟁은 너희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내게 속한 것이다.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너희는 그냥 일어나서 믿음으로 가면 된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회중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지난날의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면서 묻혀 있는 사람 주저앉아 있는 사람 염려하는 사람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믿음으로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전쟁이 앞에 있어도 전쟁을 해도 내가 너와 함께하니까 너의 구원을 보여줄 테니 너는 그냥 믿음만 가지고 일어나라. (회중 아멘) 믿습니까. (회중 아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일어나라고 하실 때 우리가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도와주시지 아무리 일어나라 말씀하셔도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일어나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저는 새벽기도가 좋아서 목사 된 사람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1970년대 초에 송정리중앙교회를 시무하시던 조동소 목사님이라고 계셨어요. 그런데 조동소 목사님이 서울 남영동교회로 올라오셨어요. 조동소 목사님은 우리나라 세계선교의 선구자이시고 KIM의 총재이셨던 조동진 목사님 동생입니다. 제가 남영동에 있는데 제가 신학대학을 가겠습니다 하니 조동소 목사님이 목사가 되고 싶으냐 교수가 되고 싶으냐 물으시며 꿈이 뭐냐는 것입니다. 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느냐. 나는 새벽기도가 좋아서 목사가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면 그때그때마다 행동이 일어나요. 군인에게 물이 중요하듯 성도에게도 이 물이 중요합니다. 은혜와 성령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축복을 원하시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종을 신뢰하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통성기도는 남의 기도가 내 귀에 들리면 안되고 내 기도가 내 귀에 들려야 한다.그러니까 저는 원래 통합측 출신이라 광나루 장로회신학대를 가야 됩니다. 그런데 조동소 목사님이 목사가 되려면 김희보 목사 계시는 사당동 총신대를 가라 하셨어요. 그래서 총신대 간 겁니다. 그때 장로회신대 학장 박창하 목사님인데 그분은 조동소 목사님하고 처남 매부 사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거기는 자유주의라고 가지 말고 보수주의인 사당동 총신대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총신대로 갔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새벽기도가 좋은 겁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 새벽기도는 제가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부목사들이 새벽기도를 못해요. 제가 없을 때 하지 못 합니다. 나는 새벽기도가 그렇게 좋은 겁니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여러분 새벽을 좋아하세요. 새벽예배를 나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 다 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성경에는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큰일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새벽에 일어난다 그 말입니다. 새벽이 힘들지 않다 그 말이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야행성 인간보다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되는 건 날이 바뀌었다 집회다 뭐 한다 아니면 새로워진다 해서 변화되는 거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오던 의식구조 그대로 가지고 있고 잘못된 생활태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우리 변화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일찍이 일어난다는 말은 믿음을 가지고 깨어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 마음 새 생활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앙의 결단을 가지고 일찍 일어나야 내가 하나님 앞에 더 놀라운 축복을 성취하는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지난날의 잘못이나 과거의 실패나 아니면 과거의 불안과 죄책감 뭐 이런 거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절대 자신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 다 잊어버리고 과거의 모든 선입견 모든 잘못된 것 다 떨쳐버리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되겠다 마음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몸에 안 좋은 음식도 많이 있지만 먹어서 몸에 좋은 음식이 훨씬 많습니다. 결혼을 해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너무 많지 않아요. 자녀를 낳아 속 썩는 경우도 있지만 자녀 때문에 얻는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사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왜 우리가 하는 일이 잘 안되느냐. 불신앙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 잘 안되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의 마음 믿음의 마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잘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일어나 들로 나가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달걀이 깨어지면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이고 누에가 고치를 벗으면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찍 일어나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우리가 얼마든지 하나님의 새로운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달라지고 축복을 받습니다. 빨리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과거의 무엇이 어쩌고저쩌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일어난다는 말은 깨어난다는 말입니다.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옛 생활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래를 모르지만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굳게 믿으니까 힘차게 전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날 계산하고 살지 않았잖아요. 지나놓고 보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라. 믿습니까. (회중 아멘) 앞으로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들로 나가는’ 그런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래 이제 새롭게 살자. 나도 이제 좀 바르게 살아보자. 나도 이제 좀 믿음으로 살아보자.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삶을 살 것이냐. 과거는 다 떨쳐버리고 이제는 미래를 향해서 복되게 한번 살아보자 그런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일어나는 행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회를 하면서 새벽을 깨우고 일어나 나와서 내가 뭔가를 얻어야 하잖아요. 내가 이제는 뭔가 바르게 살아야 하잖아요. 내가 변화된 삶을 살아야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꿈을 가지고 일어나는 삶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주위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위기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복 주실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 주실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잘되게 해 주실 거야 하고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회중 아멘) 왜 그렇습니까. 어차피 우리 인생은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회중 아멘) 항상 하나님 바라보면 안되는 게 없다 이 말입니다. (회중 아멘) 그가 어떻게 자동차를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지금은 집집마다 자동차 다 가지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만들기 전에 포드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데 말 타고 시내에 가서 의사를 모시고 오니까 어머니가 세상을 떠버리셨어요. 슬픔에 휩싸인 그는 그때 말보다 빠른 것을 만들려고 도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포드는 1903년 7월 2기통 엔진의 자동차를 생산하였고 1908년 혁명적인 자동차 포드 T형을 개발하였습니다. 디트로이트에 가면 헨리 포드의 사진이 있는데 그 밑에 ‘더 드리머’ 꿈꾸는 자라고 새겨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꿈 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일어나는 사람은 좋은 일을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꿈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칼라일은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고 해도 오직 한 가지 꿈만은 가지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다른 말로 하면 소망의 삶이 아닙니까. 희망의 삶이고 꿈의 삶입니다. 뭔가 된다고 믿는 삶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녀를 봐도 하나님이 복 주시면 잘 될 거야 그렇게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지 못하는 아이든지 상관이 없어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해서 꼭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어요. 잘될 수 있어요. 할렐루야. 우리 집도 보면 삼 남매인데 큰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에 대학원을 가라고 하니까 안 간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자기는 공부하기 싫다는 겁니다. 대학만 나왔으면 됐지 뭐 더 하라고 그러느냐는 거예요. 그러면 너는 뭐가 하고 싶으냐니까 쇼핑이나 하고 노는 게 좋겠다는 겁니다. (회중 웃음) 그래 그렇게 해라 그랬어요. 둘째 셋째는 열심히 공부해서 둘 다 변호사가 됐습니다. 둘째가 딸이고 셋째가 아들입니다. 그러다가 큰딸이 시집을 가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아 사는데 얼마나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남편 잘 만나서 쇼핑이나 하고 얘들 데리고 놀기나 하고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둘째 셋째를 보면 밤낮 서류뭉치 가지고 와 밤새도록 씨름합니다. 야 공부만 한다고 잘 사는 게 아니구나. 공부를 안 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구나. 여러분들 자녀들 볼 때 항상 잘 되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마음을 그렇게 먹어야 됩니다. 너는 하나님이 복 주시면 잘 될 거야. (회중 아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회중 아멘)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회중 아멘)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믿음으로 살게 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고 매사에 열심히 살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 받게 되는 건 순간입니다. 인생이 역전되는 건 아주 순식간입니다. 망하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잘되고 부자 되는 것도 순식간에 됩니다. 우리가 자동차 타고 가다 빨간 신호등 보면 서는 겁니다. 그냥 서는 게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파란 불로 바뀐다는 기대를 가지고 섭니다. 기대 속에 기다리게 됩니다.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믿음 가지고 꿈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 중에 한 분이 50년 전에 미국 플로리다로 이민 오셨는데 그때 우리나라가 참 가난할 때였습니다. 와서 보니까 외국 사람들이 이층 양옥집 벽난로가 있는 좋은 데서 사는 게 부러운 겁니다. 그래 이 장로님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하나님 나도 어려워서 이민을 왔는데 벽난로 있는 이층집 가지게 해 주세요. 그게 꿈이었습니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아들들이 다 성공을 하고 잘 살고 이층 양옥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간증을 하는데 ‘그때 내 꿈이 겨우 이층 양옥이었나 저 빌딩 하나 주세요 했으면 하나님 주셨을 텐데’ 라고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꿈을 크게 가지세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 영적 장자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회중 아멘) 성경의 위대한 사람들의 특징은 마음이 넓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커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커진 만큼 여러분이 가진 꿈만큼 인생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큰 꿈을 가지고 있어도 시간이 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믿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큰 축복을 성취하기를 원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활 속에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라. (회중 아멘) 다시 말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주위의 사람도 아니고 상황도 아닙니다. 오직 중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느냐 안 믿느냐의 싸움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지.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어디서나 문제는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실패와 역경이 찾아와도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의 능력은 아무렇게나 남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데 오늘 말씀에 보니까 여호사밧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하리라 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 열왕기하 말씀을 읽은 말씀의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면 그때그때마다 행동이 일어나요. 믿음 안에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해야 되고 찬송하고 싶으면 찬송해야 되고 헌금하고 싶으면 헌금해야 됩니다. 내가 월요일 날 무슨 좋은 일이 생겨서 하나님 은혜가 너무 감사해 헌금해야지 하고 봉투에 담아놨어. 그런데 다음 주일까지 기다리다 보면 금요일 토요일 돈을 써야 할 급한 일이 생기는 겁니다. 마침 헌금할 돈이 생각이 나서 봉투를 들여다보고 이거 내가 미쳤지 웬 헌금을 이렇게 많이 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 축복이 날아 가버리는 겁니다. 항상 우리는 감동되는 게 있어요. 신앙생활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감동을 주시는 겁니다. 새벽에 나가 기도하라고 감동을 주십니다. 그렇게 하면 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복이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감동을 받으면 미루지 마세요. 신앙은 미루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의 능력을 보면 자신의 인생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했으니까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아들이고 기다렸다는 말은 그렇게 살고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믿음으로 말하는 행함이 있을 때에 실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믿음은 액션 믿음은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모압과 싸울 때 출발한 지 칠 일만에 이스라엘 군대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마실 물이 떨어졌다. 전쟁하기도 전에 물이 떨어진 겁니다. 군인들이 싸우는데 물 떨어지면 큰일 아닙니까. 신앙생활에서 물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에스겔서에 보면 은혜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성령을 상징합니다. 군인에게 물이 중요하듯 성도에게도 이 물이 중요합니다. 은혜와 성령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고 은혜가 충만하지 않으면 벌써 문제가 생깁니다. 불만이 생기고 원망이 생기고 걱정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떨어졌을 때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슬프다고 탄식하고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하고 은혜 충만한 삶을 사는가 내가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뻐하고 사는가 사귀어보면 금방 아는 겁니다. 여호사밧 왕이 뭐라고 합니까.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선지자를 찾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만나면 하나님 찾아야 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의 종을 찾았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회중 아멘) 유대인의 교육은 지식이나 직업을 위한 게 아니고 하나님을 알기 위한 교육입니다. 다윗 왕이 죽을 때 솔로몬 왕에게 남긴 유언이 ‘내 하나님을 알라’였습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하나님을 몰랐을까요. 그런데 다윗이 ‘내 하나님을 알라’ 그랬습니다. 알라의 히브리말 야다의 원뜻은 부부만이 아는 성적인 관계로 알라는 것입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지 말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단지 ‘내 하나님을 알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이 뭡니까. 장로교 교인은 누구나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 말하는데 하나님 중심이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부정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나는 하나님 없이 세상 못 산다는 말입니다. (회중 아멘) 이것이 하나님 중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유대인은 이사를 갈 때도 회당 중심 즉 교회 중심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가면서 말합니다. ‘목사님 이제 교회가 멀어져서 교회 못 나오겠어요.’ 정작 교회는 늘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아니라 자기 집이 멀어진 거죠. 저는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이 말은 하려고 해요. ‘네가 섬기는 목사님하고 가깝게 지내라.” (회중 아멘) 목사님은 여러분의 영적 아버지입니다. 신자는 감각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계시적 지식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엘리사가 뭐라 말씀합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시원하게 마시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개천을 팠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주시는 축복의 비결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되면 불평합니다. 원망해요. 목사님이 하라고 했는데도 안된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주의 종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했어요. 소제를 드렸다는 것은 우리말로 감사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왜. 물 나오거든요. 우리의 신앙이 거기까지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주의 종이 말씀을 전하면 그것을 백 프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어떻게 됐어요. 열왕기하 3장 20절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예배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건 예배밖에 없습니다. 개천을 팠는데 물이 안 나오고 에돔 편에서 물이 흘러온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축복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실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십니다. 성도가 어려움을 당할 때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종을 신뢰해 믿음 생활을 더 잘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축복을 원하시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종을 신뢰하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통성기도는 남의 기도가 내 귀에 들리면 안되고 내 기도가 내 귀에 들려야 한다는 박헌성 목사의 주의와 함께 성도가 다 일어나서 통성기도를 했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설교자의 길이지만 그것을 수십 년간 계속하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일 것 같다. 실제로 한때 빛났던 설교자들이 자기 복제를 하거나 삶의 실패로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박헌성 목사는 지치지 않는 정열로 새로운 설교를 들려준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저는 무엇이든 호기심이 넘칩니다. 특히 제 자신에 관한 것들은 더욱이요. 항상 미지의 자아를 알고 싶습니다. 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제가 하지 못하는 것과 해 보지 않은 것엔 늘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매일 새벽기도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새벽을 위한 시간과 공간의 기도(Prayer Of Time And Space)를 드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게 저의 평생의 영적 원천이고 유일한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2017-11-02
    • G.MISSION
    • G.SERMON
    2017-11-02
  • 종교개혁 500주년, 개혁교회의 책임- 정일웅목사(전총신대학교총장)
    종교개혁 500주년, 개혁교회의 책임 (제54회기 목사. 장로기도회 주제 강연) 정일웅목사(전총신대학교총장) 장소: 부산부전교회당 일시: 2017.5.10. 9:30-10:30 존경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의 목사님과 장로님 여러분, 주안에서 다 평안하신지요? 저는 오늘 “종교개혁 500주년, 개혁(장로)교회의 책임”이란 주제 강연을 부탁받은 정일웅목사입니다. 강연주제의 핵심은 혼미한 이 시대에 우리 개혁교회가 짊어져야 할 막중한 복음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밝혀달라는 총회의 요구를 받게 되었고, 그 대답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의 깊은 관용(寬容)과 혜안(慧眼)의 경청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우리 개혁(장로)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하려면, 아무래도 우리 합동교단을 비롯하여 현재 경험되고 있는 한국교회전반의 목회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먼저 그 방향에서 대화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우리 합동교단, 지도자 여러분,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한국(장로/개혁)교회는 지금 어떤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큰 위기에 직면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 대부분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간 한국교회가 지난 60-90년대로 오면서, 대대적인 복음전도운동으로 선교역사상 유례없는 대 성장을 이루었지만, 이제 그러한 성장의 황금기는 지나간 듯합니다. 80년대 초만 해도, 어디든지 십자가만 세우면 교회가 부흥된다던 말이, 이제 다 옛 이야기가 된듯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결코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급변하는 우리사회의 한복판에서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물질적이며, 타락한 인간의 세속적인 가치들에 더 귀를 기울이고, 행동했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세속화된 모습이며,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의 모습임을 자책해 봅니다. 그래서 전도하기가 이전 같지 않고, 목회하기 또한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으로 매우 불신 받는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매번 교회 내적인 문제들이 세상 밖으로 노출되면서, 한국교회지도자들의 비인격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세상언론을 장식하게 되었고,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불신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안티 기독교세력까지 등장하여, 적그리스도의 노릇을 하고 있으며, 또한 가나안 성도들이 점점 늘어나 그 수가 약 100만에 이른다는 소리도 듣게 됩니다. 그래도 대형교회들은 성장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곳을 찾는 대부분은 이전 교회들에서 상처받아 수없이 갈등하며 배회하던 우리 평신도들의 수평이동현상으로 설명될 뿐입니다. 생각하면, 이러한 한국교회의 목회실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은 우리의 자업자득이 아닌가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지금 한국교회의 목회현실은 그렇게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그야말로 위기와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우리 교단 지도자 여러분, 이러한 한국교회 목회실상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참으로 지금이야말로 많은 신학적인 성찰과 목회실제의 철저한 반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의 신앙실제를 되돌아보고, 500년 전,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것처럼, 우리의 왜곡되고 뒤틀린 부분을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부단하게 고처 가는 노력을 과감하게 실천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가진 신학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신학적인 사고와 이해가 참으로 좁아져 있지 않은지? 그 좁아진 우리의 모습에서 지금 한국교회가 당면한 부정적인 문제들이 연유된 것은 아닌지? 반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재빨리 좁아진 우리의 신학적인 사고와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기를 감히 주문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때, 개혁(장로)교회가 짊어져야 할, 복음의 책임이 거기서 확인될 것이며, 나아가 참된 복음의 진리를 책임지는 우리 한국개혁교회의 모습이 거기서 가능하리라 기대하며, 또한 당면한 한국교회의 목회위기와 한계도 거기서 극복되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저는 다음의 5가지 주제를 따라, 좁아진 우리의 신학적인 사고와 이해의 지평을 넓혀야할 개혁교회의 책임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 합동교단 개혁교회의 신학정체성은 ‘개혁신학’으로 부르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단의 신학정체성의 명칭은 주로 ‘개혁주의’ 또는 ‘개혁주의신학’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언어사용은 피하고, ‘개혁신학’으로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주의’(-ism)로 불리는 ‘이념’, 즉 ‘Ideologie’란 말이 가진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며, 그 개념자체 역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데올로기’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아시지요? 그것은 “경험을 통하여 획득한 가치를 객관화하고 합리화하여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소리”로 봅니다. 물론 ‘사상체계’란 말로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어쨌든 인간의 경험에 의존된 사람의 생각이며, 사람의 주장이기에 그 자체는 참된 진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복음(Evangelium)과 이념(Ideologie)의 관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느냐고 질문하면, 그것은 이념이 아니라,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언제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인격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관계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학을 너무 이념적으로 강조하여, 그것을 믿어야 할 대상으로 삼게 되면, 바로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그 믿음은 이념을 믿는 모습이지, 주님의 참된 말씀을 믿는 종의 모습이 아니며, 오히려 이념의 종, 아바타의 모습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니, ‘개혁주의신학’이란 용어는 오늘 이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 개혁교회의 신학정체성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생각하면, 이러한 신학이념표현은 그간 기독교신앙진리에 대항하는 이단사상이나, 신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사상이 대두될 때, 진리방어목적으로 주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역사적으로 그러한 일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훌륭한 생각들은 성경의 진리이해에 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칼빈의 신학을 선호하고, 지금도 ‘칼빈신학’란 이름으로 공부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진리이해에 도움을 주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의 객체(대상)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러한 신학이념이 가장 부정적으로 사용된 것은 조금 달리 생각하는 자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를 망각하고, 마녀사냥식의 도구가 되었던 것 때문입니다. 그러한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한 구미교회들은 오늘날 이념적인 신학사상표현을 극히 자제하며, 그러한 언어사용을 피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험하나 말씀드리면, 실제로 총장재임 시에 서유럽과 북미지역의 우리 총신과 신학사상을 같이한다고 생각된, 신학교총장들을 만나 교제한 일이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 아무도, 그들 학교와 자신들의 신학을 우리와 같은 이념신학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 칼빈신학교나,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총장들은 그들 신학교가 지향하는 신학을 모두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 또는 개혁교회의 전통(Reformed Tradition)으로 표현하지, 결코 이념신학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개혁주의’는 영어로 ‘Reformism’,‘개혁주의신학’은 ‘Theology of Reformism’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그런 용어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면, 이 말은 순전히 한국교회의 사상 대립적 상황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이념적인 신학표현은 자제하고, 그냥 ‘개혁교회의 개혁신학’으로 부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총신의 신학정체성은 ‘개혁신학’이며,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신학교입니다. 이런 표현가운데 사상체계는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조직신학의 책임). 그렇게 표현할 때, 사회적으로 복음전도의 접근이 더 용이하며, 특히 지성인들에게 투쟁적이거나, 분파적이지 않고, 편 가르기가 아닌, 더 설득력을 가진 복음전달이 가능하리고 봅니다. 그런데 또 최근에 ‘복음주의’라는 주장의 소리도 듣습니다. 그것도 매우 이념적인 표현이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복음’은 복음이지, 복음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한 표현은 훨씬 교회공동체의 화해와 화평과 하나 됨을 깨는 일에 크게 기여하리고 봅니다. 더욱이 이념적인 신학사상표현이 정치적인 구호로 사용되는 일은 더더욱 삼가야 합니다. 그것을 너무 강조하면, 정말 복음보다, 이념을 더 믿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말씀하였습니다. 구원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믿음대로 행하는 순종이요, 인격적인 삶의 실천임을 일러준 것입니다. ‘개혁주의’, 또는 ‘개혁주의신학’이란 용어사용이 때때로 그를 대단한 개혁주의자로 여기게 할지모르지만, 자기과시행위일 뿐입니다. 여러분, 지나친 신학이념의 주장에서 제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그리스도복음의 진리는 이념적인 주장에서부터 왜곡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신학정체성은 ‘개혁신학’으로, ‘개혁교회의 전통’으로 분명히 할 때, 한국의 개혁교회는 한국교회전체를 품는 장자교단의 역할을 거기서 분명히 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둘째, 개혁교회의 책임은 개인의 영혼구원뿐 아니라, 사회와 자연생태계의 윤리적인 책임을 포함한 전인격적인 삶을 구원하는 복음전도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개혁교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우리 교단 지도자여러분, 현대신학은 기독교구원이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의 전인격적인 구원과 삶 전체의 구원으로 이해하고, 특히 사회와 자연생태계의 윤리적인 책임까지를 포함한 우주전체구원의 총체적인 의미가 그리스도복음의 핵심적인 구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하나님나라와 종말론적인 메시아구원관). 생각하면, 그간 이러한 총체적인 구원이해를 우리 보수적인 교회는 자유주의신학으로 단정하여 그 수용을 거부해 왔습니다. 물론 우리가 거부해야 할 것은 그들의 성경유오설주장과 만인구원론신학입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오래전부터 한국교회의 보수는 개인구원을 강조하며, 진보는 사회구원을 강조하여 서로 대립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이 문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리스도복음의 전인격적이며, 삶의 총체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새롭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개혁교회의 구원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즉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인과 하나님, 개인과 사회, 개인과 자연까지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창조세계의 구원(창1:28;눅10: 25-37;롬8:19-23)을 폭넓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 사회문화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통치)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 문화신학적인 사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사명수행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코메니우스와 카이펴의 문화신학). 이러한 이해는 신학적으로 그간 기독론적인 관점에서만 이해했던 전통적인 구원론을 뛰어넘어 창조신학의 관점에서 기독교의 구원을 새롭게 해석해 준 통전적인 구원론으로 여겨집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구원은 구체적으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서, 먼저 복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의 전인격적인 변화(회개와 믿음의 중생, 칭의)가 있어야 하며, 그렇게 변화된 사람(영혼구원의 확신)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복음의 윤리적인 책임(성화)을 짊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실재로 느끼게 해 주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즉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일로써, 기독교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도, 방관자가 아니라, 책임자로 참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학에서도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이란 이름으로 더 잘 설명되고 있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우리 개혁교회의 구원론은 전인구원적이며,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윤리적인 책임까지를 포함한 총체적인 구원을 우리의 성장세대와 평신도들에게 깨우치거나, 그렇게 잘 인식시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교회는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목표를 두었고, 신앙의 윤리는 하나님사랑의 경건윤리에만 역점을 두어, 우리 모두 경건해지도록 종교심과 기복신앙을 얼마나 부추겨 왔었습니까? 그리고 설사 이웃사랑의 책임을 알려주었다고 해도, 그것은 천천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매우 인색하고, 매우 이기적이며, 자기영혼구원만 생각하는, 마치나 한 달란트 받은 종들처럼 생활하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의 판단이 오해이기를 바랍니다만, 실제로 우리 모두 그간 영혼구원에만 목숨을 걸었고, 영혼만 구원되면, 이웃과 사회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봉사)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였습니다.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와 우리 기독인들이 사회로부터 불신 받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이웃과 사회에 대한 복음적인 사명은 망각한 채, 불신자들과 똑 같이 아옹다옹하면서, 오직 자기 것 획득에 몰두하면서 살아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음을 깊이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지도자 여러분, 이제 우리의 참으로 좁아진 구원관을 넓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자유주의라고 또 오해하지 마시구요! 우리의 ‘영혼구원의 과제실현’이 얼마나 이웃공동체를 사랑해야하는 일과 맞물린 것인지를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복음의 전인격적이며 총체적인 삶을 감당하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참으로 책임지는 개혁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복음전도방법을 새롭게 시도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교회의 주변과 사회저변에 소외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복음전도를 과감하게 시행하며, 그들을 돌보는 목회사역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그야말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고 품어주는 이웃사랑 복음전도, 사람사랑의 목양사역으로 전도와 목회방향을 새롭게 바꾸기를 바랍니다.(중서울노회 소속인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님의 우유배달사랑전도/달동네의 울보목사란 책). 우리사회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복음전도와 목회행위가 비록 재빠른 교회성장을 초래하지 못하고, 성장열매가 참으로 더딜지라도, 이러한 전인구원의 복음전도, 전인구원의 총체적인 목회를 실천할 때, 우리 개혁교회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참으로 우리의 좁아진 구원신학에 대한 사고와 이해의 지평을 활짝 넓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총체적인 복음의 폭넓은 구원관을 토대로, 복음전도와 목회를 실현하기 바라며, 또한 우리의 젊은 세대와 평신도들에게도 이러한 총체적인 복음의 전인격적인 구원관을 심어주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개혁교회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폭넓게 감당하는 모범적인 교회가 될 것이며,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는 우리의 평신도들을 만날 것이며(마5:13-16), 사회와 이웃에 감동을 주며, 마침내 하나님을 감동시켜,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들로 교회부흥(행2:47)을 이루는 놀라운 기적을 거기서 경험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여기서 신학적으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개인의 영혼구원은 오직 성령하나님이 행하시는 독자적인 일이지만, 이웃과 사회와 자연을 돌보는 총체적인 구원의 책임수행은 신인협동적인 관계에서 성취해야 할 인간의 책임이며,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총체적인 구원’임을 바르게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개혁교회는 평신도의 만인사제신분을 회복하고, 그들 평신도들이 창조세계의 한 복판에서 복음전파와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섬김의 주인공들로 활동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개혁교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세로마가톨릭교회가 성직자의 신분과 권위를 높이고, 계급화하면서, 상대적으로 평신도(Laity)신분을 낮추어 신적인 일에 무식한자들로 소외시키고 있을 때, 루터는 벧2:9-10절의 말씀을 들고 나와, 성직자만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동일한 사제신분을 가진 자들임을 천명함으로써, 교회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입니다. 루터의 ‘만인사제론’은 인간사제의 중보자적인 역할 없이, 믿는 자라면 누구나 중보자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직접나아가 예배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사제자격이 부여되었음을 밝힌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전도에서 선지자로서의 기능적인 역할과, 형제를 위로하며 돌보며, 축복하는 기도자의 제사장적인 기능과 사회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의 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일에 섬김의 왕적인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복음전파의 사명자로 보았던 것입니다. 루터의 이러한 만인사제론은 그 당시 성직자 중심의 중세교회구조를 개혁하여, 회중중심의 교회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중심의 교회로 개혁하였습니다. 칼빈은 루터의 만인사제론을 수용하면서도, 조직된 교회를 섬겨야 할 직분을 네 가지로 구분하였고(목사,교사,장로,집사), 한국장로교회는 3가지 직분(목사,장로,집사)을 항존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이러한 직분은 결코 계급적인 관계가 아니라,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성령께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세우신 직책이었습니다. 이 직분은 주님을 섬기는 직분이지, 목사를 개인적으로 섬기는 직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는 이러한 직분들이 목사를 섬기는 직책인 것처럼, 오해되어 있고, 또한 매우 계급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안에는 언제부터인가 목사직분의 권한이 강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차 그 권위가 높아지면서, 마침내 목사는 신령하고,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로, 또한 축복의 전문가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은 기복신앙의 추종자들로 만들었고, 피축복자들로 전락시켜 놓았습니다. 또한 목사의 권한은 당회장권, 강단권, 축도권, 설교권, 목양권, 안수권 등으로 강화되었고, 상대적으로 평신도는 오늘날 참으로 무능한 신자로만 머물게 해 놓은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은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바로 중세로마가톨릭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그리고 목사의 리더십은 섬기는 주님의 종의 모습이 아니라, 성도들 위에서 지배하고 군림하는 제왕(기업체회장)적인 모습으로 변질되었고, 마침내 목사의 교권남용문제가 여기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목사의 교회재정횡령, 목회세습, 목회자성윤리문제 등, 비도덕성문제들이 다 이와 같은 제왕적인 리더십의 남용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러분, 이 뿐만 아닙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교회 내적으로, 목사와 장로, 그리고 평신도사이에 발생하는 불화와 대립적인 분쟁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는 줄 압니다. 목사님들 모임에 가면, ‘장로다루는 법’이 인기 있는 특강주제라고 하며, 장로님들 모임에서는 역시 ‘목사잡는법’이 인기 있는 강연주제라고 합니다. 이 말은 웃자고 만들어낸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사실이라면 참 안타까운 목회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일반법정의 수많은 고소건과 시비 건이 대부분 한국교회에서 발생한 분쟁들이며, 목사. 장로사이에 발생한 고소 건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시 우리교단은 총회의 결의까지도 효력정지를 당하는 사태가 빈번한 줄 압니다. 존경하는 교단 지도자 여러분, 저는 이러한 행위들에서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불신당하는 연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성도들이 생산되는 원인도 여기서 생겨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복음전도의 문이 닫히고, 교회성장이 멈추어진 이유가 다 우리의 기득권을 움켜지고, 아옹다옹 하는 모습에서 귀결된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제발 양보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교회공동체의 평안을 위해서 자기주장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여러분, 왜 우리스스로 교회의 거룩성을 짓밟으며, 왜 하나님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지요? 지금이라도 이 모든 수치스런 우리의 잘못된 행위를 즉각 중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개혁교회는 권징의 권위를 시급히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교회문제를 교회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법정으로 끌고 가는 분들이 과연 개혁교회의 멤버이며, 하나님나라를 함께 짊어지고 가야할 개혁교회의 동역자인지를 심각하게 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천국열쇠인 교회의 권징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감정적으로 남용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 모두 교회의 치리와 권징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주님께 대항하는 불신앙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개혁교회는 권징을 올바르게 시행하여, 주님교회의 권위를 바로세우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존경하는 개혁교회의 목사님들, 이제 우리의 장로님들과 평신도들도 사제의 신분을 가진 자들임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역교회 내에서의 일꾼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세상의 한 복판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일로, 사회와 자연의 윤리적 책임영역에서 적극적인 섬김으로 활동하는 주인공들이 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가진 직업을 통하여 창조세계의 한복판에서 만인사제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감당하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전도의 사명수행과 이웃사랑의 책임을 감당하는 모습이 거기서 분명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루터는 그 당시 만인사제론을 말할 때, 목사와 평신도의 직분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질문 받았고,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는 지역의 교회공동체를 이끌어야 하는 선택되고 준비된 하나님사역의 책임자이며, 특히 예배에서 하나님말씀의 선포인 설교와 성례를 거행하는 책임과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목양적인 책임을 성령께서 부여하여, 세워주신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역시 이러한 목사를 세우신 성령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우리 교단지도자 여러분, 그렇습니다. 목사와 장로, 또는 평신도는 서로 대립적인 관계가 결코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와 주님의 교회를 함께 세워가야 할 복음의 동역자입니다. 목사님은 지역교회공동체를 책임진 사제들이며, 평신도들은 세상을 책임진 사제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혁교회는 평신도의 만인사제직을 인정하고, 그들이 세상의 한 복판에서 복음을 삶으로 증언하는 하나님의 일꾼의 책임을 당당히 감당하도록, 우리의 평신도들을 격려하고, 다시 깨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들 평신도사제들이야말로 이시대의 모든 직업 활동을 통하여, 우리 사회를 복음으로 이끌어가야 할 기독인리더 들입니다. 생각하면, 이들 평신도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꾼들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이웃사랑과 사회개혁과 자연생태계보호 등의 사회윤리적인 책임을 감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요, 진리의 빛을 비추는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이며, 바로 지금도 세상을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 보이는 ‘영광스러운 일’이 분명하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간 상실된 한국교회의 거룩성과 신뢰성을 회복시켜야 할 주인공들도 분명히 이들 평신도사제들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개혁교회는 모든 평신도들이 그리스도복음의 총체적인 전인구원신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 시대의 복음사역에 헌신하는 신앙실천의 인물들이 되도록, 그들에게 신앙의 본질인 믿음, 소망, 사랑을 일깨우는 성경교육의 책임을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목사님들이 공부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배우며 목회하고, 목회하면서 배우는 개혁교회의 목양적인 책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인 믿음, 소망, 사랑은 하나님의 구원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며, 살아있는 신앙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인 기독신앙인의 모습이 분명합니다. 개혁교회신자들을 이러한 신앙적인 삶으로 응답하며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사는 복된 자들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독교신앙의 본질적인 모습이 얼마나 믿음, 소망, 사랑에 연결된 것인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일깨우는 개혁교회의 목회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존경하는 목사. 장로여러분, 기독교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하는 실천입니다. 그 때문에 사도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전13: 13)고 하였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살전1:2-4절에서도, 바울은 복음전도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기억하면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는 3가지 모습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고,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이며, 또한 택함 받은 증거라는 사실도 밝혀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히10:19-25에서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교회를 통한 목양사역이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과 얼마나 연관된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바울의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을 가장 잘 계승했던 인물은 교부시대의 유명한 신학자 어거스틴(A.Augustinus)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배할 때, 믿음, 소망, 사랑으로 찬양하라”고 예배의 본질적이며, 실천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도, 여기에 목표를 두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가 쓴 ‘요리문답교육지침서’(Enchiridion)에서는 ‘믿음’을 일깨우려면 ‘사도신경’을, ‘소망’을 일깨우려면 ‘주기도문’을, ‘사랑’을 실천케 하려면, ‘십계명’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 이래로, 믿음, 소망, 사랑은 요리문답교육에서 언제나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과 연결하여 교회신앙교육의 근본토대로 삼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요리문답교육(루터/칼빈)을 그대로 계승하여, 교회신앙교육의 훌륭한 전통을 남겼습니다. 특히 칼빈은 그것을 중심하여 매 주일 오후예배에서 반복적으로 행하여야 할 교리설교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17세기, 보헤미아-모라비아형제연합교회의 마지막 감독이었던 코메니우스(J.A.Comeni- us)는 그의 유명한 책 ‘대교수학24장’에서, 성경공부의 목표는 믿음, 소망, 사랑에 두어야 할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는 성경 66권의 내용이 이 세 가지와 관계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서, 올바른 기독교신앙의 본질적인 모습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응답하는 삶이어야 함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구원계시의 핵심이요, ‘정경 중에 정경’(Canon im Canon)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우리 개혁교회 지도자여러분, 이러한 신앙본질의 이해를 종합할 때, 믿음, 소망, 사랑이야말로 바울의 구원신학의 핵심이며, 교회를 통하여 실현해가야 할 실천신학(성경교육)의 근본토대요, 전도신학의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은 우리 목사님들이 재교육과정을 통하여 새롭게 ‘오리엔테이션’ 해야 할 중요한 구원신학과 목회신학의 핵심주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적인 신앙의 핵심사상이 우리 개혁교회에 와서 지금 실종된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음의 교리만 강조하고, 구원신앙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를 분명히 깨우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보수주의는 포기하기 바랍니다. 오히려 말보다 믿음을 행동하며, 실천하는 보수주의가 되기 바랍니다. 또한 구원 얻음의 실체가 믿음의 근거와 열매로서 이 소망과 사랑과 얼마나 깊이 연관된 것인지를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은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가 짊어져야 할 성경교육의 실제적인 목표이며, 내용이며, 수단이며, 또한 복음전도와 목회사역을 꽃피게 할 실천신학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목사님들이 목회자재교육과정을 통하여 새롭게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할 구원신학과 목회신학임을 분명히 알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이야말로 오늘 우리 개혁교회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구원신학이요, 전도신학이며, 목회신학이요, 실천신학의 근본토대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개혁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을 성경교육의 전체목표로 삼고, 성도들의 신앙 일깨우기에 전력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성경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할 때도, 믿음, 소망, 사랑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설교하는 도구로 삼기 바라며, 그것을 주일예배의 목표로 삼아, 그러한 구도를 따라 예배를 시행할 때, 더 이상 은혜를 끼쳐보려고 갖은 방법으로 애쓰지 않아도,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는 성령의 은혜를 회중은 크게 경험하리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 개혁교회의 막중한 책임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세요? 역시 그것은 목회자재교육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목사님들이 다시 진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겸손히 복음을 배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교회 저변 곳곳을 한번 돌아보세요! 더 이상 한국교회가 이 상태로 주제 앉게 할 수가 없다는 심정으로, 우리 젊은 목회자들이 그룹별로 모여서, 스터디 하는 모임이 자발적으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설교크리닉’이란 이름으로, ‘율법과 복음’이란 주제로 구원론을 새롭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옛날,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오늘 목회현장에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목사님들이 스스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우리 개혁교회는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총회목회대학원이 원래 우리 총신교단 목회자재교육기관으로 설립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운영되는 모습은 겨우 타 교단목사 본 교단 가입시키는 편목교육기관으로 전락된 모습입니다. 이전 총장재임 시에 제가 목사재교육과정을 과감하게 개선하여 우리교단목사님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해보자고 운영위원회에서 수차례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바라기로는 앞으로 총신 졸업 후, 7년이 지나면 반드시 목회자재교육과정에 다시 모여, 적어도, 1개월 정도의 연수과정을 실시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장로님들을 위한 지도자연수과정도 제공해야 합니다. 총회가 너무 비대하여 움직이기 힘들면, 각 지역노회들이 서로 연합하여 목회자재교육과정을 자체적으로 각각 운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미국의 무슨 디민 학위프로그램과는 절대로 연계시키지 마시고, 목사와 장로의 직분명칭이 그 어떤 학위 명칭보다 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최고의 성직임을 기억하시며, 목양사역에 필요한 목회정보와 성경연구와 목회전략과 리더십을 훈련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제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다만 저의 충정어린 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이 시대는 배우면서 목회하고, 목회하면서 배우는 평생교육의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지도자 여러분, 시간을 선용하여, 그간 잘못배운 구원론이해를 새롭게 회복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개혁교회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게 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신앙의 본질인 믿음, 소망, 사랑 중에, 특히 이‘소망’과 관련하여 한 가지 첨언한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면서, 루터의 칭의 론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믿음대로 행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신앙태도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루터의 칭의론이 한국교회에서 값싼 은혜가 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언약백성들이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그 칭의는 마지막 심판 날까지 유보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이러한 주장은 이웃사랑에 너무 인색하고, 행동실천이 없었던 한국교회의 이기적인 신앙을 되돌아보게 하는 도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선행(사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소망을 함께 말해주지 않는다면, 이신칭의의 은혜는 또다시 왜곡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선행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선행의 공허함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 문제는 선행의 대가요구에 대한 질문으로, 그것은 세상의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스도가 약속한 하늘의 상급에 있음을 전제해야하기 때문입니다(창15:1,17:1,마6:9-13;계20:6).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구원신앙은 믿음과 선행만을 강조하는 이원적인 사고를 뛰어넘어, 믿음, 사랑, 소망의 올바른 삼각균형과 조화를 가진 전인격적인 삶의 모습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 때문에 개혁교회는 그러한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에 바탕을 둔 신앙인물을 길러내는 성경교육과 신앙교육의 책임을 지금 짊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잘 감당할 때, 현재 직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복음전도와 목회사역의 한계가 거기서 극복될 것이며, 한국교회가 새롭게 부흥되는 시대로 도약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개혁교회의 책임은 한국교회연합운동의 과제를 기꺼이 짊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역에 세워진 건물로서의 교회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언약백성들의 영적인 신앙공동체의미가 더 귀중합니다. 칼빈은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인 교회를 구별하면서,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가진 불가시적인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지금 한국교회의 나누어진 모습인 교단과 교파의 의미는 매우 좁은 교회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신자들이, 한 형제자매임을 인정해야하며, 오늘날엔 성도의 교제(Koinonia)가 교파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면, 칼빈은 종교개혁자들 가운데서 교회연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 시대적으로 연합을 가장 많이 힘썼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정신을 따르는 우리 개혁교회는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한 행동이 개혁교회 본래의 모습이요, 책임입니다. 이제 교파를 뛰어넘어 한국교회가 연대하여 이 시대에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책임지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KNCC는 우리사회의 정치민주화를 이루는 일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정치신학과 종교다원주의적인 신학고수로, 한국교회의 다수인 보수그룹과 연대하지 못해서, 그 역할이 끝난 것 같습니다. 한기총은 미안합니다만, 그동안 보수교회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다가, 이상하게도 교회의 거룩성과 권위를 상실한 불신 받는 종교단체로 전락된 모습입니다. 다행히도 최근에 ‘한국교회총연합회’란 새로운 연합기구(한교총)의 탄생소식에 저는 개인적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7개 기존교단들이 그들 각각의 역사와 현재를 존중하고, 이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더 큰 주님의 일들에 힘을 합하기 위해 연대하게 된다니, 참으로 기대됩니다. 그간 한국교회는 삼삼사오로 분리되어 서로 경쟁하다보니, 힘을 잃고 있었고,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문제들에 한목소리로 대변하는 역할을 하지 못해, 우리사회의 혼란에 기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한 교파로의 통합이 아니라, 독립된 각각의 교단을 존중하고, 하나의 협의기구로 연대하면, 우리사회가 분열되지 않고 통합되는 사회적인 안정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며, 남북통일에도 기여하리라 기대합니다. 참으로 한국교회가 대 사회, 대 정부, 대 북한, 대 국제관계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잘 수행해 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할 때, 우리사회의 한국교회에 대한 불신도 곧 회복될 것입니다. 물론 신학정체성이 빈번히 질문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념적으로 주장되었던 ‘개혁주의신학’이 아니라, ‘성경적인 개혁신학’과 복음적인 개혁교회의 전통이 한국교회연합에 분명한 빛을 발휘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또한 한국교회 전체를 품는 장자교회의 모습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제 강연을 마치려 합니다. 존경하는 우리 개혁교회 목사님과 장로님 여러분, 아무쪼록 그간 우리의 참으로 좁아진 이념신학과 구원론과 직분론과 성경교육(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과 교회론의 신학적인 사고와 이해의 폭을 활짝 넓혀서, 이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개혁교회의 막중한 복음적인 과제와 책임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G.MISSION
    • G.SERMON
    2017-09-16
  • 전국영남교직자협의회
    2017년 8월 17에서 18일 정오까지 경주 켄싱턴리조트에서 제23회 전국영남교직자협의회(대표회장 이성택) 하기수련회가 열렸다. 심야버스로 18일 새벽 2시에 도착해 잠시 눈을 붙이고 6시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사람이 없었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 순서지를 보고 새벽기도 설교담당자 채규현 목사(광주중앙교회)에게 전화를 했다. 강사께서 왜 안 내려오시느냐 물었더니 예배시간이 6시 30분이란다. 좀 있으니 이춘만 장로가 오시더니 새벽기도가 5시나 6시 이래야지 6시 30분이 뭐냐고 한마디 하셨다. 채규현 목사의 본문 다니엘 2:24-28 ‘아리옥과 다니엘’ 제목의 광주중앙교회에서의 6년간의 분쟁 경험을 곁들인 새벽기도 설교는 아주 은혜로웠다. 8월 17일 개회예배 설교는 제102회 부총회장 후보 배광식 목사의 사돈 한기승 목사였다. 순서지에 이름 올린 사람 가운데 아는 사람은 명예회장 김형국 목사 허은 목사 남서호 목사 장활욱 목사 이형만 목사 김종희 목사 등이었다. 18일 오전 11시 30분 폐회예배 설교는 이성택 목사가 했다. 그는 본문 요한복음 12:9-11 ‘나사로 때문에’ 제목의 설교를 재미있고 은혜롭게 전했다. 2017-09-14
    • G.MISSION
    • G.MISSION
    2017-09-1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