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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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대 회 사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죄와 고통으로 죽어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기독교는 죽어야 사는 종교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사랑과 용서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할 때에도 교회는 언제나 희망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믿음의 기도로 극복하였습니다. 기도는 나라를 지키는 힘이며, 기도는 모든 문제를 뛰어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하나 되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한국교회를 위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때입니다. 모든 갈등과 분열의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무너뜨리고, 교회는 다시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기도성령운동에 힘써서 이 땅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워 모든 백성들이 정직과 성실함으로 풍요로운 삶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나라, 모든 성도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어 나갑시다. 오직 부활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소망이며, 오직 생명의 복음이 민족의 희망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으로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열방의 소망으로 우뚝 서서 부활의 기쁜 소식과 예수 생명의 복음을 우리 민족에게 전할 때 대한민국은 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국민의 나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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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차금법 폐기 촉구
    이승만은 식민지로 망한 터에 공산주의 물결을 막아내는 방파제(防波堤) 국가를 세웠다. 박정희는 금고(金庫) 안에 먼지밖에 쌓인 게 없는 나라를 부자 국가로 일으켜 세웠다. ‘공칠과삼(功七過三) 평가 이론’을 적용하면 위대한 정치가다. 민주당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전쟁 목표는 당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재명의 민주당’에겐 계승해야 할 유산(遺産)이 아니라 끊어내야 할 멍에고 족쇄가 됐다. 겉으론 레닌을 받들면서 속으론 지워갔던 스탈린 권력 장악 과정과 닮았다. 두 사람 냄새는 당사에 사진을 걸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인 것 같다.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가 22대 총선을 앞두고 포괄적차별금지법(차금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2023년 3월 8일 능력 있는 목회자이고 대표적 세계 장로교 대표 교단 합동 총회 중진 총대 오범열 목사 시무 안양 성산교회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공동대표회장(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 사무총장(이승준 목사) 연석회의를 열었다. 공동대표회장 오범열 목사가 주재한 연석회의에 앞서 진행된 예배에선 서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심하보 목사가 설교했다. 충북기총 사무총장 박병식 목사가 성경 요한복음 8:31~32을 봉독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본문에 근거해 심하보 목사가 ‘KS마크 BS마크’ 제목으로 설교했다. “한국산업표준 즉 KS(Korean Industrial Standard) 마크가 붙은 생산품은 우리나라 정부가 품질을 인증하는 제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받아야 할 인생의 인증 마크는 성경표준 즉 BS(Bible Standard) 마크입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니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곧 성경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친목 하려 모인 게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엔 목회자가 필요 없습니다. 악법을 막기 위해 진리이신 주님을 믿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합시다.” 각 지역 사무총장을 대표하는 사무총장 회장 이승준 목사가 광고했다. 울산기총 대표회장 권규훈 목사가 축도했다. 이어진 연석회의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는 22대 국회에 차금법안 폐기를 비롯해 생명 존중 입법 요구를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또 오는 7월 예정된 인천여성영화제에 대해 “시민의 세금이 동성애 영화 홍보에 쓰여선 안 된다”며 “동성애는 가정·부부관계를 무너뜨리고 양성평등 정책과도 거리가 멀다. 인천여성영화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 1:21-27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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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권순웅 목사 저출산 대책
    저출생·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인구 통계는 점점 드라마틱해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3년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631만여 명으로 20대 인구(619만여 명)를 처음 추월했다. “하나님 저출산 문제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소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년 9월 18일 ~ )는 소설 ‘웃음’에서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를 꼽은 적이 있다. 2세 때는 대소변을 가리는 게, 3세 때는 치아가 나는 게, 12세 때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18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2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35세 때는 돈이 많은 것 등이 자랑거리다. 그런데 인생이 반환점을 돌면 자랑거리가 뒤집힌다. 6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70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75세 때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게, 80세 때는 치아가 남아 있다는 게, 85세 때는 대소변을 가릴 수 있다는 것 등이 자랑거리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대소변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통과하다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는 다시 대소변 가리기가 어려워진다. 2024년 국내외적으로 한국이 마주한 도전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 갈등이 심화되고 대만해협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과 양극화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국력이 피크를 지났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2024년 세계는 전쟁 2개와 50여 국의 선거로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새해로 이월돼 살상과 파괴로 치닫고 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 명이 50여 국에서 선거로 정치적 전쟁을 치를 예정이다. 20억이라는 숫자는 세계 경제 총생산의 60%에 해당한다(뉴욕타임스 집계). 선거가 있는 나라는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남아프리카·미국·대한민국 그리고 유럽 27국(의회) 등이다. 우리는 여전히 ‘배달의 민족’일 뿐 아니라 ‘바람의 민족’이기도 해서 바람이 불면 죄다 그쪽으로 쏠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새 방향을 좇는다. 이런 데 자유가 있을까. 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수긍하지 않는 것에 머리 숙이지 않을 자유, 원치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항상 그렇진 못했지만) 품은 뜻에 따라 사느라 더러 외로웠지만 자유는 외로움에 지지 않을 때 얻어진다는 체험 또한 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자유로워지는 중이구나’라고. 맞다. 당신도 믿음의 자유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대로. 2024년 2월 18일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가 ‘한국교회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전국연합기도회’를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532 육탄10용사 공원 근처 주다산교회에서 드렸다. 진용훈 목사(중앙위 서기)의 인도로 케리그마 및 기도회가 진행됐다.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는 오는 5월 19일 생명존중 주일이 있는 날까지 100일 기도 행전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권역별로 지역교회가 연합해 ‘특별기도회’로 모일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밝혔다. 인문고전을 읽는 천재들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은 보통 보이는 것(sight)에 주목한다. 그러나 천재들은 보이지 않는 것(insight)에 주목한다. 통찰력을 의미하는 “insight”는 “sight”에 “in”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다. 통찰력이란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의 총회 불꽃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강단에 서자 청년과 장년 신자들이 환호했다. 그가 그 가운데 외쳤다. "샬롬! 저한테 너무 큰 박수하면 오해합니다. (회중 웃음) 지금 대한민국은 축구협회를 고발했습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야구계를 고발하려 합니다. 대한민국 야구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종범(李鍾範, 1970년 8월 15일 ~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 외야수) 감독 때문에 이 야구계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분의 아들이 이정후(李政厚, 1998년 8월 20일 ~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외야수) 선수입니다. 이정후 선수가 1490억 이상 그렇게 전속계약이 된 선수입니다.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뛰어난 아들을 한 명밖에 못 낳았다는 것입니다. (회중 큰 웃음)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둘 낳고 다섯을 낳았으면 한국 야구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3년 전 저출산 극복 헌신예배에서 ‘홈런 가족’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야구를 보면 안타가 있는데 야구의 꽃은 홈런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보면 이 저출산 환경에 아기가 없는 가정은 스리(three) 아웃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 다산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면 홈런입니다. 여러분 출산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출산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출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번성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애굽에 살 때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민족의 핍박 가운데 살지라도 하나님은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바로(Pharaoh)가 이스라엘인의 출산을 압박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기도로 시작한 국가입니다. 애국가가 찬송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난 줄 압니다. 크게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출산 국가로 전 세계의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가운데 가장 먼저 인구가 소멸이 될 국가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라질 제1위 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녀본 제삼세계(第三世界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말)가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지만 아이들이 거리마다 가득합니다. 어디가 못사는 나라입니까. 대한민국은 미래가 있습니까,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 생각에 한국교회가 그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산아제한을 했습니다. 맬서스주의(Malthus主義: 맬서스가 저서 ‘인구론’에서 주장한 학설로 인구와 식량과의 관계에 관한 이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빈곤과 악덕이 불가피하게 초래된다’라는 내용)를 따라 한국이 주창한 ‘산아제한’과 정부의 실책에 한국교회가 침묵했습니다. 제가 30여 년 전 신학교 갈 때 신학교 전도사 한 분이 ‘산아제한,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라는 대자보를 크게 써 붙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창 1:28)대로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이 소돔의 멸망을 예고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그렇듯이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잘못을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도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불순종한 죄를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여러 시책을 제안하고 여러 사람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주셔야 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생각, 돈을 더 사랑하는 생각, 쾌락을 더 사랑하는 생각, 우상을 버리지 않는 미련을 경고하지 않는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 민족에게 성령의 바람으로 말씀 순종할 수 있도록 불붙는 마음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이여, 하나님 주신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후손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한 복된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 한국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우리 총회다음세대 운동본부에서는 이 일을 지금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다산교회부터 시작해 전국 교회가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였습니다. 먼저 느헤미야같이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한국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가 불순종하고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를 바르게 세우지 못한 죄를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회중 아멘) 회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나도록 우리가 선포하고 섬기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이어서, 2강 ‘다자녀 출산의 복’은 이승준 목사(경기총연합회 사무총장) 부부가, 3강 돌봄시설 입법화는 강유진 교수(총신대학교)가, 4강 비혼주의 극복은 이용희 교수(에스더기독운동 대표)가 강연했다. 이승준 목사 부부는 네 자녀를 세 번의 제왕절개와 한 번의 인공수정을 통해 어렵사리 출산했던 경험을 간증하며 하나님의 복을 전했다. “인간적인 환경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응답을 통해 태의 열매를 다시금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기적이자 은혜였습니다. 아이는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다음 세대가 누리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해중 장로(회계)의 헌금기도와 김영구 장로(부총회장)의 사명자 구호제창이 있었고 김진하 목사(부본부장)의 축도로 마쳤다. 우리나라 초저출산은 그 수준(2021년 기준 0.81로 OECD 최저, 홍콩 제외 세계 최저)과 지속기간(2002년부터 1.3 미만 21년 지속)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약 86.4% 감소하여 전 세계 217개 국가·지역 중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로 인구 통계를 꼽는다. 지방대학의 붕괴, 주거 불안, 연금 고갈, 노년 부양비 등은 모두 인구문제와 연관돼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인구 감소로 5년째 출산율 0%대의 ‘초저출산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문제는 ‘마땅한 대응 방안이 있는가’일 것이다.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의 회개와 더불어 다음의 교회 사례를 보면 그 방안이 있을 것 같다. 2023년 11월 8일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시작은 벽보 한 장이었다. ‘한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다른 아이는 어찌하십니까? 위급하고 답답할 때 아이를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 드립니다. 믿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당진 동일교회 이수훈 목사.’ 27년 전인 1996년 충남 당진의 야산 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개척한 이수훈 목사(67)는 인근 아파트에 이런 벽보를 붙였다. 야산에서 캔 칡으로 차를 끓여 가가호호 나누며 전도에 애썼지만 비닐하우스 교회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때 그 자신 육아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아이 돌봄’ 벽보를 붙인 것. 붙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런 비닐하우스 교회에 누가 아이를 맡길까?’ 며칠 후 두세 살짜리 아이 셋을 데리고 주부 둘이 찾아왔다. ‘시장 다녀올 동안 1시간 정도만 맡아달라’던 엄마들은 해가 진 후에야 나타났다. 미안해했지만 얼굴엔 해방감 가득했다. 이후로 아이를 맡기러 오는 부모가 줄을 이었다. 다 받았다. 부모가 천안, 대전, 서울의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킬 땐 안 아픈 아이를 며칠씩 이 목사 부부가 먹이고 재웠다. 돌봄 수요는 계속 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끼리 품앗이 돌봄도 이뤄졌다. 2004년 주 5일제가 도입될 때 ‘토요 돌봄’을 시작한 것도 부흥의 한 계기가 됐다. 현재 등록 교인 1만 5천여 명, 평균 연령 29세, 2자녀 이상 가정 3천 세대, 평균 자녀 수 2.07명, 당진 초등학생 12% 정도가 출석하는 교회, 어린이집 2백 명, 비전스쿨(방과 후 학교) 2백 명이 매일 교회 안에서 자라며 ‘저 출생 극복의 모델’로 전국 교회의 탐방이 끊이지 않는 당진 동일교회의 시작은 소박했다. 이 교회는 어린이가 중심이다.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엔 어린이집, 왼쪽엔 교육관(비전스쿨), 정면엔 비전센터(청소년수양관)가 자리 잡았다. 예배당 건물 따로 없이 비전센터 강당 8백석을 대예배실로 쓰는데 주일 오전 9시 ‘온 세대 예배’에서도 어린이들이 주요 역할을 맡는다. 어린이들은 예배 시간에 성경 구절을 암송해 봉독하고 어린이 찬양대가 찬양하고 매주 1명씩 자기 ‘꿈’을 발표한다. 다른 교회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어린이집과 비전스쿨은 오후 7시 반까지 돌본다. “불 꺼진 빈집에 부모보다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자”가 ‘교회 이모’ 마음이다. 비전스쿨은 교회 버스가 하교 시간에 맞춰 당진 초등학교 10곳을 돌면서 교문 앞에서 교회 마당까지 안전하게 데려온다. 영어, 수학뿐 아니라 인성 교육도 강조한다. ‘명심보감’을 전 학년이 배우고 밥상머리 예절도 지도한다. 어린이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워 3학년 때와 졸업할 때 연주회도 갖는다. 방학이면 영미권 대학생들을 교사로 초빙해 영어 회화 교육을 한다. 2017년엔 ‘시내산 중고등학교’라는 대안 학교도 열었다. 이 교회 성장 비결은 ‘역발상’이다. 20~30년 전만 해도 개신교계 사역은 장년 위주였다. 저 출생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도 않았다. 이수훈 목사는 말했다. “개척 당시는 한보철강이 들어왔다가 부도나면서 당진 경제가 휘청하고 어려운 가정이 많았을 때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교회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자신과 이웃에게 정직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목회의 핵심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한 생태계로 봐야 합니다. 정확히 어린이 양육에 예산이 쓰여야 저 출생 문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 127:3-5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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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8
  • [더굳뉴스] 기독언론인협회 성명서_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지 말아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발표하면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학병원 전문의 등 의료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OECD 39개국에 의하면 한국은 의사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에 대비할 때 의대 졸업생은 7.26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의사수는 OECD 평균의사 3.5명에도 못미치는 2.4명이다. 국민들도 66.7%가 의대증원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 수는 현재도 충분하며 정부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는 중요한 방안으로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의사 수 증가는 의료 수요 증가로 이어져 건보 재정 악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사 회원 대상으로 2023년 11월 10~17일 설문 조사한 결과 정부의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응답자 4010명 중 3277명(81.7%)은 반대했다.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 가운데 1517명은 ‘이미 인력이 충분하다’(46.3%)라고 답했다. ‘향후 인구 감소로 의사 수요도 감소’(15.1%), ‘의료비용 증가 우려’(13.9%), ‘의료서비스 질 저하 우려’(13.4%)가 된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의사 733명(18.3%)은 의대 증원을 찬성했다. 찬성하는 의사들은 ‘감염·외상·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 공백 해소를 위해’(49.0%) 증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24.4%)가 그 뒤를 이었다. ‘실제 의사가 부족해 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없어서’라는 응답자도 85명(11.6%)이었다. 의사들도 18.3%는 의대 증원을 찬성하였고 국민들은 70%가 지지하였다. 이는 비단 윤석열 정부만 의대 증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도 ‘문재인 캐어’라는 말도 있듯이 공공의료서비스를 강조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100대 국정과제 중 45번째로 공공의료기관 확충 및 지역사회의 의료체계 강화,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 해소를 목표로 ‘의료공공성 확보 및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러한 연속 상에서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대학병원까지 반대하고 나서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의료생산 및 공급체계는 민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국민건강 보험 방식의 보건의료체계 속에서 의사와 의료기관은 의료자본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를 확충하여 건강 보장성을 강화하려는 현 정부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학병원처럼 민간의료기관의 힘이 정부의 힘보다 막강해진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장하겠다는 것은 민간의료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의료취약지구나 부분을 위하여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공공의료서비스를 지향하고자 한다. 그러나 권력이 막강해진 의사들은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까지 여기에 동참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나타나듯이 병원이 파괴되면 가장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국민들이다. 전문적인 직종의 대표 격에 해당하는 의사는 의학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진료, 진단, 치료, 수술 등의 의료행위를 제공하고 관리하는 직업군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의사들은 대형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던 만큼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영향력이 막강해지다 보니 의사들은 환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전문성을 형성하기보다는 직종에 대한 의사 간의 길드적인 동류의식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전문성을 토대로 집단 이기주의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의사들 18.3%가 의대 증원을 찬성하였고, 국민들 70%가 의대 정원 확장을 찬성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의사증원을 확장하는 나라가 많이 있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선진국은 왜 의대 정원을 늘리겠나”라며 “인구 고령화로 인해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증가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추세면 선진국과 의사 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인구 감소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데다, 소득 수준이 성장하면서 의료 수요 역시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이유다. 지금 당장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되, 추후 인구 감소 추세를 보면서 숫자나 속도를 조절해나가는 방안도 제시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의술(의 길)은 멀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불완전하고, 판단은 어렵다. 따라서 의사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수행원, 외부인 모두가 협조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고 있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 번째로 생각하겠노라" 기독교인들 의사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신의 이권이나 기득권을 확보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하여 값없이 수많은 환자들을 치유하여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독언론인협회는 18.3%의 의사들과 기독교인 의사들에게 희망을 건다. 적어도 당신들만이라도 예수처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길 요청한다. 2024. 2. 24 기독언론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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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성명서_ 건국전쟁을 보며
    최근 개봉된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7일 만에 32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치고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건국 전쟁’은 1945년 이후 38선 북쪽에서는 공산국가 소련(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공산주의 독재국가로 전락한 북한과 반면 38선 남쪽 진영에서는 자유주의 국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성장한 남한 사회를 다루고 있다. 영화 제목의 '건국'은 임시정부가 탄생한 1919년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가 탄생한 1948년 8월 15일을 가리키고 있다. 러시아 대사와 핀란드 대사를 역임했던 이인호 서울대 서양학과 명예교수도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 8월 15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독립선포 식사(式辭)에서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하는 것을 겸하여 경축한 것입니다”라고 하여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대한민국 건국의 한가운데는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보다 정통정부의 이승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덕영 감독은 84학번으로 당초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북한이 1990년대까지도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북한이 이승만을 미워하는 이유'를 공부하여 "팩트만 보여줘도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바뀔 것이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했다. 감독은 문서라는 사실관계에 토대를 두고 백범과 이승만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장제스가 파송한 유어만과 백범의 대화 문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김구는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하더라도 공산군의 현재 수준에 대응할만한 군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지금 여기에 남한 정부가 서 있지만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 설립은 안 된다고 역설한 장면이다. 사실상 김구는 미군이 주둔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원하지 않고 북한과 통일된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이상적인 통일론을 역설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는 백범 김구야말로 독립과 남북통일을 원했던 가장 이상주의적인 정치인으로 다루었고 이승만은 독재 공화국의 지도자로서 한반도 분단의 책임자로서 부정적인 평가를 해왔다. 역사가들은 이승만의 공과가 있지만 이승만의 정치적 과만 다루어 왔다. 영화에서 보듯이 이승만은 독재 정부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27,000여 명의 거제 포로 석방을 하면서까지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이끌어 내어 지금까지 미군을 주둔시켜 제2, 제3의 6.25 전쟁을 막고 있는 애국주의자이다. 미군이 반공포로를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바로 철수하였더라면 대한민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힘으로 다시 제2의 6.25를 만나 적화되었을 것이다. 미군을 대한민국에 붙잡아 놓은 것만 하더라도 이승만의 공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은 친미주의자도 아니고 반공사상을 갖고 미국까지 끌어들여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애국주의자였다. 한강철교의 파괴도 이승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때만 되면 북한식으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이승만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하여 부정적인 인식만 갖게 하였다. 김덕영 감독은 대한민국 정부 활동 내용까지 포함해 이승만의 일생과 세간에 잘못 알려진 부분을 현대의 상황과 교차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이승만의 건국 사상과 애국 사상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다. 기독언론인협회는 윤석열 정부가 속히 1919년, 1948년이라는 건국 전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건국에 대해 역사바로세우기를 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역사학자들과 한국교회사가들 등 지식인들의 침묵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각성, 후대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도 촉구하는 바이다. 기독교계도 역사 왜곡에 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2024. 2. 16 기독언론인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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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5
  • 소강석 목사의 설교론
    식탁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쌍 나란히 올려두고 감사의 감동을 기다릴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평안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기댄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믿음이 두 입술에 나란히 맴돈다. 사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나란히 다독일 때 한 끼가 영원과 나란하다.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 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가 안식을 돕고 안식이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2023년 4월 3일 오후 2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회장 소강석)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이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이사장 소강석 목사, 원장 안준배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문학평론가 안준배 박사가 개회사를 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을 개회하겠습니다. 1988년 3월 27일 그해 부활절 다음날 아침 40대 목사 19명이 중심으로 모여 세계성신클럽 창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역 중에 1992년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이틀 동안 연인원 백만 명이 참여하는 성령 운동, 성령으로 인도하는 그런 기도성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우리 본회 34년 역사 속 세계 성령 운동사에 표지가 되시는 조용기 목사가 2021년 9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영훈 목사를 내세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승계하게 하셨고 또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담임)를 통해 조용기 목사의 핵심적인 신앙을 정리해 이끌게 하셨고 그런 가운데 한국 교회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를 내세워 성령 운동과 말씀전파를 통해 한국 교회를 연합하고 견인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세계 성령 운동 역사 34년 역사 속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조용기 목사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소강석 목사의 성령 사역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2백 석을 가득 채워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테너 박주옥 백석대 교수가 언제부터인지 꽃씨가 시랑스러워 천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소강석 작사 작곡 '꽃씨'에 이어 요즘 교회마다 애창하는 '은혜'를 열창했다. 대회장이고 주제 강연자인 소강석 목사가 ‘나는 문학, 음악, 이야기로 성경을 전한다’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곁들인 화려한 강연을 펼쳤다. "어제 정말 바쁜 부활주일을 보내시고 쉬시는 날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설교학자도 아니고 설교를 연구하는 전문교수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뛰는 한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안준배 목사께서 이런 강연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제를 주신 겁니다. '나는 문학과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전한다.' 제가 들어보니까 굉장히 매혹적이고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비롯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워낙 목회자가 바쁘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탈고를 했지만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목회자에게는 설교하면 강해 설교가 머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강해 설교 창시자로 알려진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 1931년 3월 21일 - 2017년 7월 22일)의 영향일 것입니다." 그는 뉴욕시에 출생하여 미국의 고든 콘웰 신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달라스 신학교, 써던 메쏘디스트 대학교에서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설교학의 대가로 2006년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에 '영향력있는 설교자'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하여 강해 설교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의 강해 설교론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해 오늘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경 본문의 중심사상이 곧 설교의 주제가 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하고 있다. 로빈슨 교수의 강해 설교 교본으로 알려진 저서 '성경적 설교(Biblical Preaching)'는 전 세계 목회자들이 탐독했으며 현재도 120개가 넘는 학교에서 설교학의 주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강해 설교하면 설교의 구성 방식으로만 이해를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설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3대지냐 4대지냐, 혹은 구절을 풀어 설교할 것이냐(주해설교), 그리고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대부분 한국 목회자는 여기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강해 설교에 대한 이해는 형식이 우선이 아닌 중요한 설교 신학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개혁주의 목사이며 청교도 신학자 조엘 비키(Joel R.Beeke, 1952년- )의 저서 '설교에 관하여(Reformed Preaching)'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해 설교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도 중요하고 구성 요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그것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청중의 마음으로 어떻게 그 설교 내용이 전달될 것이냐에 포커스를 맞춘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구성방식도 중요하고 콘텐츠(contents) 정말 중요하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지 무엇을 전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전달방식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문화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인지성향 등 여러 가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를 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준배 박사가 시인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 관해 말했다. "페르소나(persona 가면mask이나 인격person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개인이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연극이나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라는 말이 있는데 가면이라는 뜻도 있고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삼위 3pers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감독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기작품 '살인의 추억' 이후 오스카상은 받은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 감독의 페르소나(영화계에선 어떤 감독이 자신의 분신 혹은 상징처럼 선호하는 배우를 뜻한다)로 배우를 썼는데 송강호입니다. 이 배우는 감독의 모든 생각과 뜻을 받아들여 연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도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를 그 시대의 성령의 페르소나로 사용하셨고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소강석 목사를 성령의 페르소나로 세우셨습니다. 소 목사님은 어디에 가서 어떤 설교를 하든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합니다. 저는 소 목사님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 중에 '상 파울교회'에서의 설교를 들었고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들었는데 그 현장을 딱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합니다. 그다음에 2017년 종교개혁 5백 주년 기념대회 때 소 목사님이 주 강사로 설교를 했는데 '말씀의 근원으로' 그러니까 완전히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제와 영 관련이 없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은 어느 현장, 어떤 대회, 어떤 형식의 모임이 됐든 거기에 딱 맞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017년 12월 소 목사님과 대만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대만 까오씽이라는 곳인데 그 도시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열차로 타이페이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책을 갖고 다니는데 덩리쥔(鄧麗君,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대만 출신 가수)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 목사님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한테 물어봤습니다. '안 목사님은 이선희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덩리쥔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중화권이 사랑하는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이 노래를 부른 덩뤼쥔이라고 그랬죠. 그러니 소 목사님이 뭐라고 하냐면 '나는 이선희야. 이선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그대를 만나' (회중 웃음) 소 목사님은 별을 참 좋아하세요. 이선희를 가장 좋아한다는 거예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날 저녁 때 타이페이에 5천 명 모이는 따워줘이라는 대만 최고의 교회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소 목사님이 나와 나눈 대화 가운데서 덩뤼쥔의 노래 '첨밀밀' (蜜蜜 '티엔미미' 달콤해요)' '니 샤오 더 티엔미미(笑得蜜蜜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달콤해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대만 사람들이 음악으로 대단히 감동을 했어요. 대만 사람이 사랑하는 덩뤼쥔 자기들 노래로 불러주니까 감동을 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다음 해에 한 8천 명 수용할 수 있는 대만에서 제일 큰 허핑체육관에서 열린 성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소 목사님이 그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하모니카로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을 연주하니까 대만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아니 소 목사님은 우리 대만인이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끼더라고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소 목사님은 시대를 해석하고 말씀으로 치유하는 설교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감사예배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소천하신 이후인데 그때 '고래를 위하여'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고래'라는 시를 인용한 설교였습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라고 설교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님이 한국 교회 고래였고 그 고래가 국민일보를 낳았고 또 이영훈 목사를 낳았고 또 조민재 국민일보 회장을 낳았고 또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낳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고래'라는 시적 언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그때도 이선희 노래를 불렀는데요. (회중 웃음) '그 모든 것 기적이었네. 은혜였네. 눈물이였네. 이렇게 개사를 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소 목사님 그 음악을 그 현장에 맞게끔 사용하면서 참, 소 목사처럼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기념 예배에 딱 맞게끔 하면서 설립자 조용기 목사 그리고 이영훈 목사와 국민일보 회장을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모두 아우릅니다. 이렇게 해박하고 탁월하게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이 시대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유럽에도 같이 가서 성회를 지켜봤고 춘천순복음교회 성회도 지켜봤는데 그때마다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 포럼을 통해서 소 목사님의 그 메시지를 우리가 잘 수용해서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앞서 안준배 박사가 그 자질을 실제 목격하고 증언했다. 그렇듯 “이 세상의 광대들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기 위해 그토록 애틋함과 애절함을 갖고 노래하고 연기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구원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에게 애틋함과 애절함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스스로 광대임을 밝히고 그것을 실제로 입증해 성공한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설교관을 세 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최근 경영계에선 기업 현장에. 예술가 혹은 예술적 요소를 도입하는 예술적 개입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에도 예술적 개입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나는 문학의 옷을 입혀 성경 말씀을 전합니다. 2. 음악의 옷을 입혀 성경을 전합니다. 3. 성경을 이야기로 전합니다." 성숙(成熟)이란 ‘나’와 ‘남’ ‘우리’와 ‘그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발전의 한 단계다. ‘남’과 ‘그들’은 ‘나’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은 나에게 득(得)이 된다. 상대를 부정확하게 아는 지도자는 지형(地形)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낙하산병(落下傘兵)과 같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지도자의 성숙과 직결돼 있다. ‘기억의 감옥’에 갇히면 ‘기억의 포로(捕虜)’가 되기 십상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2-14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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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빈 신앙 수업 - 제일 계명 유일신
    제일 계명 유일신First Commandment 지난 2018년 7월 5일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었습니다. 그의 고향인 독일 트리어와 중국 공산당, 그리고 한국 일부에서 크게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의 공산주의는 그것을 따르는 사람에게 증오와 굶주림을 안겨줍니다. 그를 따르는 좌파 정권의 베네주엘라는 산유국(產油國)임에도 경제 붕괴로 망하기 일보 직전에 있습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1980년대 운동권 학생 책꽂이엔 주로 한 종류 책이 꽂혀 있었습니다. 마르크스 저작과 마르크스주의에 토대를 둔 ‘사회구성체론’과 ‘정치경제학’ 같은 책입니다. 서클 세미나에서 토론하려면 그런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 시대 청년 대학생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었습니다. 좌파 정권의 베네주엘라 지도자들처럼.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계 9:20-21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힌두교도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물경 3억 3천만에 달하는 신들과 여신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세대 당 여덟 신을 섬긴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동물의 생명이 신성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비참하게 가난한 생활을 살면서도 동물들과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며 부양을 합니다. 동물들은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들의 집에서 하인을 둔 부자 주인 노릇을 하며 빈둥빈둥 살아갑니다. 인도의 4억 5천만 힌두교도들은 거의 7천 5백만에 달하는 소들을 경배하고 섬깁니다. 더욱이 그들은 그들의 농작물들을 먹어치우고 해를 주는 원숭이들과 쥐들과 여러 해충들까지도 내버려 둔다고 합니다. 제일 계명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하는 영역에서 시작합니다. 이 계명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힘을 다해 섬길 것을 요구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2-3). 이 말씀은 다른 신이나 현대의 무수한 우상들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섬기는 것도 이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또한 성공 소유 명예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요.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그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16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First Commandment. I AM THE LORD THY GOD, WHICH BROUGHT THEE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BONDAGE. THOU SHALT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제일 계명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16. The authority of the Law being founded and established, God delivers his First Commandment THOU SHALT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The purport of this commandment is, that the Lord will have himself alone to be exalted in his people, and claims the entire possession of them as his own. That it may be so, he orders us to abstain from ungodliness and superstition of every kind, by which the glory of his divinity is diminished or obscured; and, for the same reason, he requires us to worship and adore him with truly pious zeal. The simple terms used obviously amount to this. 16. 창시되고 설립된 율법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그의 제일 계명 “THOU SHALT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출 20:3)는 말씀으로 전하십니다. 이 계명의 의미(purport)는 여호와(the Lord)께서 그의 백성 가운데에서 스스로 높임을 받으시고, 그리고 그들의 전체 소유를 그 자신의 것으로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That it may be so), 그는 모든 종류의 불신앙(ungodliness)과 미신을 끊을 것을(abstain æbstein)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그것으로(by which) 그의 신성의 영광이 감하거나(diminish) 흐려지게(obscure) 됩니다. 그래서 같은 이유로, 그는 참 경건한 열정으로 그를 경배하고(worship) 숭배하라(adore)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require). 명료하게 사용된 단순한 말씨(terms)가 결국 그 의미입니다(amount to this). For seeing we cannot have God without embracing everything which belongs to him, the prohibition against having strange gods means, that nothing which belongs to him is to be transferred to any other. The duties which we owe to God are innumerable, but they seem to admit of being not improperly reduced to four heads: Adoration, with its accessory spiritual submission of conscience, Trust, Invocation, Thanksgiving. 왜냐하면 우리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embrace embreis) 않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으므로 이상한 신들을 갖지 말라는 금지(prohibition)는 그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 어떤 다른 것에 결코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감당해야 할 의무들이 헤아릴 수 없지만(innumerable) 이것들을 네 가지로 줄인다고 해서 부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숭배(Adoration), 양심(conscience)의 보조적인(accessory) 영적 복종(submission)과 함께, 신뢰(Trust), 기원(Invocation), 감사(Thanksgiving) By Adoration, I mean the veneration and worship which we render to him when we do homage to his majesty; and hence I make part of it to consist in bringing our consciences into subjection to his Law. Trust, is secure resting in him under a recognition of his perfections, when, ascribing to him all power, wisdom, justice, goodness, and truth, we consider ourselves happy in having been brought into intercourse with him. Invocation, may be defined the retaking of ourselves to his promised aid as the only resource in every case of need. Thanksgiving, is the gratitude which ascribes to him the praise of all our blessings. 숭배로 내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위엄(majesty)에 경의를 표할(homage) 때 우리가 그에게 바치는 존경(veneration)과 예배(worship)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숭배를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게 하는 요소로 생각하겠습니다. 지혜, 정의, 선, 및 진리 등의 모든 능력을 그의 것으로 돌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게(intercourse) 되는 것으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신뢰는 그의 완전하심(perfections)에 대한 인식(recognition) 하에 하나님 안에 머무는 보증(secure)입니다. 기원은 모든 종류의 필요의 유일한 자원(resource)으로 그의 약속의 도움에 우리 자신을 다시 맡기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모든 우리의 축복의 찬양(praise)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보은의 마음(gratitude)입니다. As the Lord does not allow these to be derived from any other quarter, so he demands that they shall be referred entirely to himself. It is not enough to refrain from other gods. We must, at the same time, devote ourselves wholly to him, not acting like certain impious despisers, who regard it as the shortest method, to hold all religious observance in derision. 여호와께서 이것들이 어떤 다른 진영(quarter)에서 나오는 것을 허용하시지 않는 것처럼 그는 그것들이 온전히(entirely) 그 자신에게만 돌려질 것을 요구하십니다(demand). 다른 신들을 삼가는(refrain rifrein)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에게 우리 자신을 완전히 헌신해야만 합니다. 모든 종교적 관례를 아주 헤식은 수단으로 우습게 아는 불경건한(impious) 조롱꾼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But here precedence must be given to true religion, which will direct our minds to the living God. When duly imbued with the knowledge of him, the whole aim of our lives will be to revere, fear, and worship his majesty, to enjoy a share in his blessings, to have recourse to him in every difficulty, to acknowledge, laud, and celebrate the magnificence of his works, to make him, as it were, the sole aim of all our actions.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의 마음을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 인도할 참 종교에 선행(precedence)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에 알맞게 젖게 될 때 우리 삶의 모든 목적이 그의 위엄을 존경하고(revere) 두려워하고 예배하게 될 것이고, 그의 축복의 한 몫(share)을 향유하고(enjoy) 모든 어려움에서 그를 의지하게(recourse) 되고, 그의 솜씨(work)들의 장엄함(magnificence)을 인정하고 기리고(laud) 경축하게(celebrate) 되고, 여호와를, 말하자면(as it were), 모든 우리 행위의 유일한(sole soul) 목적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Next, we must beware of superstition, by which our minds are turned aside from the true God, and carried to and fro after a multiplicity of gods. therefore, if we are contented with one God, let us call to mind what was formerly observed, that all fictitious gods are to be driven far away, and that the worship which he claims for himself is not to be mutilated. Not a particle of his glory is to be withheld: everything belonging to him must be reserved to him entire. 그 다음 우리는 미신을 조심해야(beware) 합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마음이 참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되고 많은 신들을 이리저리 쫓아다니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therefore) 우리가 한 하나님으로 만족한다면 앞에서 말했던 것을 회상하도록 합시다. 모든 가공의 신들은 멀리 쫓아버리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위해서 요구하신 예배가 훼손되어서는(mutilate)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의 영광의 한 미립자(particle)도 공제돼서는(withhold) 안 됩니다. 그의 모든 것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확보되어야(reserve) 합니다. The words, “before me,” go to increase the indignity, God being provoked to jealousy whenever we substitute our fictions in his stead; just as an unfaithful wife stings her husband's heart more deeply when her adultery is committed openly before his eyes. “내 앞에(before me)”라는 말은 무례(indignity)가 늘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가공물들을 그를 대신해 바꿀 때마다 질투를 일으키십니다. 마치 부정한 아내가 남편이 보는 데서 간음을 범할 때 그녀 남편의 심장을 아주 깊이 찌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Therefore, God having by his present power and grace declared that he had respect to the people whom he had chosen, now, in order to deter them from the wickedness of revolt, warns them that they cannot adopt strange gods without his being witness and spectator of the sacrilege. To the audacity of so doing is added the very great impiety of supposing that they can mock the eye of God with their evasions. 그러므로 그가 선택하신 백성을 그의 현존하는 권능과 은혜로 존중하신다고 선포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반역(revolt rivoult)의 불의(wickedness wikidnis)를 제지하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신성 모독(sacrilege)의 증인과 목격자가 되지 않고는 그들이 이상한 신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그들이 이상한 신들을 받아들이면 하나님 자신이 그 신성모독의 증인과 목격자가 되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그런 짓을 하는 뻔뻔함(audacity)에 더해 그들의 핑계(evasion)들로 하나님의 눈을 속일(mock) 수 있다고 상상하고 아주 큰 불신앙(impiety)을 더합니다. Far from this the Lord proclaims that everything which we design, plan, or execute, lies open to his sight. Our conscience must, therefore, keep aloof from the most distant thought of revolt, if we would have our worship approved by the Lord. The glory of his Godhead must be maintained entire and incorrupt, not merely by external profession, but as under his eye, which penetrates the inmost recesses of his heart. 이러기는커녕(Far from this)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구상하고(design dizain) 설계하고 또는 실행하는(execute eksikjuːt) 모든 것을 그가 환히 보고 계시다고 선포하십니다(proclaim proukleim).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의 찬성을 받는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면 우리의 양심은 그런 반역의 아주 먼 생각조차 계속 초연해야(aloof)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신성(Godhead)의 영광은 외적인 신앙고백(profession)뿐만 아니라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으시는 여호와의 눈앞에서도 온전하고 청렴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칼빈의 이 가르침을 따르는 태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사귀고 일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분은 예수님 이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러한 의무를 요구하시는가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는 말씀에 담겨있습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야웨 엘로헤카(Yaweh Eloheka)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 계명을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참되신 하나님이시고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고 말씀하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신이십니다. 하나님을 존재하시게 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으시고 스스로 충족하십니다. 이렇지 못한 존재는 진정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무슨 신이라고 하는 열등한 존재들과 완전히 다르시기에 우리에게 최고의 예배를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잡다한 신들을 섬기기보다는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복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1-3 2019-01-09 나성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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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9
  • 성탄 새로남
    인류 체험 가장 놀라운 기적 중 첫 번째 기적 바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 ‘Silent Night’(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롤1818년 신부 작사 오르간 반주자 작곡2018년 12월 24일 200주년 기념식 열려 전 세계 애창 평화 캐롤로 유명1차 세계대전 시작된 1914년 크리스마스이브 군인들 전선에서 총 내려놓고 이 노래 함께 불러 다시 태어나는 새로남이란 참 신비한 일이지. 어느 봄 부활절 한나절 사과를 깎는데 껍질부터 벗기지 않고 먼저 반으로 딱 자르는데 거실 가득 넘치던 햇살 갑자기 흩어졌다. 순간 접시 위에 날아와 앉는 흰 나비 한 쌍. 그렇구나 저 봄날 사과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 한 쌍 여태도록 사과 속에 숨어 있다 사과 속을 빠져나와 딱하고 부러진 세상 날아오르는구나. 육십 몇 해 꼼짝없이 내 캄캄한 교만과 오기 그 무서운 방황과 무지 속에 갇혔던 나비 어떻게든 그 어둠 치고 나와 지금 저 식탁에 앉아 고요롭구나 새로남이구나. 2018년 12월 25일 오전 11시 새로남교회 별실은 물론 본당을 가득 채운 성탄절 네 번 예배 가운데 3부 예배. 찬양이 끝나고 요한복음 1:14-18 사회자가 낭독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2층의 왼쪽에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화 통역자가 100여명의 사람들 앞에 서서 찬양대 지휘자처럼 손짓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오정호 목사가 말씀을 증거했다. “할렐루야 성탄의 축복이 휴전서 너머 북한 동포와 전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 그리고 산촌과 어촌에서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들에게도 성탄의 은혜가 충만히 임할 줄 믿습니다. 오늘 저는 ‘상상 그 이상’이라는 제목으로 성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전하고자 합니다. 동영상을 한 편 보시죠.” 크리스마스이브만 되면 전 세계에서 온 수백 명의 군중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1.2킬로 떨어진 시골 오베른도르프(Oberndorf)에 있는 팔각 형 작은 예배당 앞에서 부르는 ‘Silent Night’(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롤이 영상 속에 들렸다. 1818년 신부 모르(Joseph Mohr)가 작사하고 오르간 반주자고 선생인 그루버(Franz Xavier Gruber)가 작곡한 이 캐롤의 200주년 기념행사가 2018년 12월 24일 잘츠부르크의 펠센라이트슐(Felsenreitschule theatre) 극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 노래는 평화를 고취하는 캐롤로도 유명하다. 왜냐하면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군인들이 플랑드르 전선에서 총을 내려놓고 이 노래를 다같이 불렀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the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목록에 들어가기도 했다. 영상이 걷히고 오정호 목사가 설교를 이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 찬양이 300여 언어로 번역되어 지구촌에 있는 모든 사람의 입술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전 지구촌 사람들이 부르는 이 찬양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14절이 성탄의 의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영어로 인카네이션(incarnation) 세 글자로는 성육신(聖肉身) 네 글자로는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었다 도성인신(道成人身). 원래 14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1:1을 이해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헬라어로 로고스(logos)입니다. 로고스로 지칭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왜 사람의 몸을 입으셨을까요. 14절 계속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 ‘거하시매’의 뜻은 여기 살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 시대와 우리 마음과 우리 가운데 주님이 임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스스로 만드신 이 지구촌에 모든 삶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기적적인 사건이 바로 무엇이냐. 첫 번째 성탄입니다. 더 퍼스트 노엘(the First Noel)이라고 하죠. 인류가 체험한 가장 놀라운 기적 중의 첫 번째 기적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 말씀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 다음 말씀을 함께 보십시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인데 ‘임’은 ‘함께’ 위드(with)라는 뜻이고 ‘마누’는 ‘우리’ 어스(us) 그리고 ‘엘’은 ‘하나님’ 가드(God)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도 하고 죄 잘 짓고 질투 잘 하고 갈등하는 연약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메리 크리스마스도 아름다운 말이지만 진실로 성탄을 위한 가장 성경적인 말은 ‘임마누엘 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 다같이 해봅시다. (회중 일제히 ‘임마누엘 크리스마스’) 하나님께서 사람의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부부가 남녀로 만나 서로의 삶에 개입하듯 심지어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에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올해 성탄절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내 삶에 하나님의 강력한 삶의 개입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회중 아멘)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확신합니다. (회중 아멘) 우리의 삶에 주님이 개입하셔서 우리 교회에도 주님이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많은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요한계시록 21:3-4 말씀합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누구와 함께)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그 다음 같이 읽으십시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 백성의 축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심에 있습니다. 천국의 황금길을 걷는 등 여러 선물이 있겠지만 그것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곳이 천국인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주님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됩니다. 그러나 초가삼간이라도 주님이 함께하셔서 나를 붙잡으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하나님의 천국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개입하셨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아멘으로 받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권세를 주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님이 허락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깊이 묵상했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33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아멘.’ 복음의 위대한 측면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줄 믿습니다. 사상도 유행도 변합니다. 정치 체제도 변합니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언엔딩 러브(unending love) 그치지 않는 사랑입니다. (회중 아멘) 우리 같이 주님 앞에서 마지막 정리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주님 그 자체이며 성탄은 온 인류가 체험한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지금도 성탄의 효력은 실제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성탄의 축복은 우리의 삶에 매일 계속 되는 축복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여러분. (회중 아멘)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날의 삶을 주님의 손을 붙잡고 새롭게 비범하게 살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올해의 성탄이 우리 가정에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도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세상의 모든 교회와 휴전선 너머 지하 교회 성도들에게도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이시여 우리 조국 우리 대한민국도 복되게 사용하시어 열방에 진리의 빛을 전하는 아름다운 국가로 우뚝 세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하며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20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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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9
  • 이효상 컬럼 - 서울역 훈훈한 미담 국밥 한그릇
    따뜻한 국밥 한그릇 하시죠? 영하 20도의 추위가 살을 파고들고 경제가 어려워서 인지 마음까지 추워지는 계절이다. 이럴 땐 따뜻한 말과 작은 격려가 큰 힘이 된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연말, 바쁘다는 핑계로 달려가다 놓쳐버린 우리 곁의 소중한 사람들이나 서울역이나 시청지하도에서 또는 달동네 냉방에서 겨울을 나는 독거노인들과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나누며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붙돋아 줄 수 있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올 해가 다가는 가운데 27일 매서운 추위도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서울역에서는 노숙자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일은 1992년부터 굶주림없는 세상을 위해 무료급식과 숙소를 제공해온 ‘사단법인 참좋은 친구들’(이사장 신석출)’의 한국교회를 십여년 이상 섬겨온 목사님들과 실무자 사무총장 등, 브레인들이 팔 걷고 나선 것이다. 한국교회 섬김운동본부(약칭, 한교섬)는 2003년부터 15년 동안 그동안 ‘노숙자 침낭 전달하기’와 ‘홀사모 김장김치 나누기’등 여러 모습으로 이름없이 빛도 없이 남모르게 봉사해온 터라 새삼 새롭지는 않다. 노숙자 식탁봉사는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이루어졌고, 새에덴교회와 대치순복음교회가 식비를 보탰다. 한교섬이 이렇게 꾸준히 매년 다양한 모습으로 봉사한다는 점은 훈훈한 미담이자 주목할 만하다. ‘한교섬’이 섬긴 이번 행사의 주요멤버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승한 목사,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이효상 원장과 CBS기독교방송 이기운 단장, 바른인권연구소 이병대 목사, 백석대학교회 이장형 목사, 대치순복음교회 한별 목사, 부흥한국의 박성준 대표, 순복음교회 박명철 홍보국차장,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이종민수석목사), 고려대의과대 엄창섭 교수 등이 참여하였고 대치순복음교회 자원봉사자들이 30여명이 배식에 참여하며, 500여명의 식탁 섬김봉사를 하였다. 이날 식사에 앞서 이효상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에서는 대치순복음교회의 찬양팀들의 찬양이 있은 후 이승한 목사가 기도하고 말씀을 전한 대치순복음교회 한별 목사는 ‘풀림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격려의 말씀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마리아 사람들로 사회가 채워진다면, 그래도 한국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여리고 언덕에서 강도 만나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소외당하는 이들의 억울한 자리로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나누며 붙들어 주므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식탁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장형 목사의 축복기도와 참석자들이 송구영신의 인사말을 전했다. 이 식탁에 참여한 한 노숙자 A씨는(62세) “사는 것이 팍팍해서인지 노숙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현실에서 모두들 자기 살기에 바쁘고, 연말 행사로 바쁠텐데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준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세상과 소통하며 사랑과 헌신의 삶을 전파해 온 ‘한국교회 섬김운동본부(02-744-5004)’는 지난 15년을 이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운동과 함께 ‘내가먼저’, ‘나부터’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마음을 나누고 봉사로 참여하기 원하는 단체나 교회는 언제든 동참할 수 있다.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이효상 원장은 “우리는 흔히 ‘노숙인’, ‘독거노인’이라고 하면 더럽고 냄새나고 게으르고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쉽게 대하는데, 그분들에게도 꿈과 소망이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과 웃으며 지냈던 행복한 삶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냥 구걸하는 걸인정도로 취급하는 사회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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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9
  • 서른 새에덴교회 임직식
    일하다 보면 ‘리워드’ 보상받고 싶은 생각보다 ‘리스펙트’ 존경받고 싶은 생각이 훨씬 많아 김관선 목사 성도에 대한 권면기인 예언자 소강석 예언대로 톡톡 튀는 수사와 은혜로 온 교인 웃음 감동 도가니 소 목사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시던 박정하 장로 홀연 떠나 그분에 대한 그 의리 그 마음 어떨까. 믿음 소망 사랑은 날개 달려 그 새벽 베드로 깨우친 닭처럼 영혼의 횃대에 앉아 가사 없는 찬양 부른다. 그치지 않는 그 찬양. 모진 바람 불 때 제일 감미롭다. 많은 사람 따뜻이 감싸준 그 작은 믿음 소망 사랑 찬양 듣고 따라 할 수 있다면 인생의 폭풍 분명 가라앉으리. 나는 아주 침침한 호롱불 총신에서도 서울역 건너 매우 허름한 건물 총회에서도 그 찬양 들었다. 믿음 소망 사랑 찬양은 시련 속에서 더 감미롭고 폭풍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믿음 소망 사랑은 왜 날개 달렸을까. 모든 고통과 절망의 지대로 날아가야 하니까. 평상시는 존재감이 없어 보여도 예배나 행사에 참여한 교인들의 시선 속에서는 항상 소강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교인들의 광선속에서 먼지 띠로 반짝이기 때문이다. 사위(四圍)가 온통 푸를 때마다 얼음장 밑 물풀처럼 사방에서 반짝이는 교인들 눈빛은 그를 믿음으로 춤추고 사랑으로 노래하게 한다. 빛나는 교인들 속에서 어른거리는 그는 누구일까. 둘이 마주보면 먼지처럼 희미하며 얼음장 밑 물풀로 흐릿한 소강석 그러나 그가 교인들의 눈빛을 받으면 그 무엇보다 더 또렷한 존재가 된다. 눈길에서 사라졌는데도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 그럴 때면 우리는 이상한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믿음의 기인이고 시인인 그는 늘 불분명한 것을 빛나게 드러내고 들리지 않는 믿음 소망 사랑을 노래한다. 2018년 12월 15일 오후 3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장로 28명 안수집사 100명 권사 154명 등 총 282명의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시대의 기인 그리고 믿음의 시인 소강석 목사 사회로 진행된 임직식의 1부 예배에서 디모데전서 1:12-14말씀 ‘주께서 직분을 맡기셨다’ 제목으로 제102회 총회장 전계헌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2부 282명의 임직 서약 후 ‘장로임직 안수와 기도’ 고영기 목사(상암월드교회) ‘집사임직 안수와 기도’ 박춘근 목사(남부전원교회) ‘권사취임기도’ 한명기 목사(성남중앙교회) 등이 했다. 안수 받을 때 감격해 우는 집사도 있었다. 3부 권면과 축하의 시간에 장로에게 이우행 목사(열린문교회), 안수집사에게 오범열 목사(성산교회) 권사에게 이규섭 목사(행복한교회) 성도에게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등이 권면했다. 그리고 오인호 목사(창대교회) 노승숙 장로(전 국민일보 회장) 김창준 장로(전 미연방하원의원) 송병원 장로(전 전국장로연합회 회장), 박성철 신원그룹회장 등이 축사를 했다. 그리고 임직자 대표로 손정완 장로가 답사를 하고 인사와 광고를 소강석 목사가 아끼는 서광수 장로가 인사와 광고를 전한 뒤 제104회 총회장이 될 김종준 목사(꽃동산교회)가 홍해 앞의 모세처럼 두 팔을 펴 축도했다. 이날 임직식에서 특별히 김관선 목사의 성도에 대한 권면은 이 시대의 기인이고 예언자인 소강석 목사의 예언대로 톡톡 튀는 수사로 온 교인을 웃음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임직자들에게 권면을 하지 않고 권면 받을 사람이 제일 많은 성도들에게 권면하게 돼 기쁩니다. (아멘) (임직자 안수가 있어)가운을 가져와야 된다는 걸 잘 모르고 그냥 왔습니다. 가운을 입어야 된다는 걸 단상에 올라서야 알았습니다. 어떤 분이 절 보고 무릎 꿇으라고 하더라고요. (박장 대소) 그래 그냥 안수 한 번 더 받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조용한 웃음) 그냥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오늘 성도들께서 많은 임직자들을 보고 계신데 이들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큰 아멘) 오늘 임직식을 보니 제가 산정현교회 임직 받은 게 생각납니다. 제가 목사 안수받은 지 일 년 밖에 안된 제가 산정현교회 담임목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너무 감사했던 건 뭐냐 하면 저보다 먼저 와있던 부목사가 저보다 먼저 안수 받고 더 오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장로님과 성도님들이 저를 얼마나 많이 존경해 주셨는지 모릅니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습니다. 저를 무조건 칭찬하고 믿어주었습니다. 그 덕에 제가 컸습니다. 키는 안 컸지만. (큰 웃음) 그리고 마음도 크고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도 다졌습니다. 정말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버님이 머리카락이 없으셨습니다. 우리 큰 형님도 머리카락이 없으시고 둘째 형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저도 사실 머리카락이 없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이 저를 격려하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소강석 목사님은 저보다 훨씬 많은 교인이 있으십니다만 제가 소강석 목사님보다 머리카락 숫자는 많습니다. (짧지만 큰 웃음) 여러분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칭찬해주면 잘 못하는 사람도 잘 하게 됩니다. (잔잔한 아멘) 제가 보니까 (형형색색 한복 차림 권사 취임석을 보며) 이쪽은 꽃밭 같습니다. 미모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꽃밭 같은 이분들이 계시니까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장로와 안수집사 석을 보며) 이쪽은 지금 안수 받으실 장로님 안수집사님들 같은데 아무리 봐도 꽃밭은 아닌 것 같고 상록수 같습니다. (잠시 회중석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웃으며) 돈밭입니까. 돈이 나오는 밭이군요. (박장대소) 갑자기 돈으로 보입니다. (큰 웃음) 꽃과 돈. 그런데 꽃밭에 들어가서 꽃을 꺾어버리면 꽃을 또 못 보게 됩니다. 나무 많은 곳에 가서 나무를 베어버리고 뽑아버리면 나무의 혜택을 볼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면 여러분은 끊임없이 꽃밭을 볼 것이고 여러분은 언제나 울창한 나무숲을 보게 될 것입니다. (큰 아멘) 격려하시고 칭찬하시고 위로하십시오. (온 회중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 마음에 안 드는 분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이들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하면 이들을 격려하고 믿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 아멘) Reward 리워드 보상입니다. Respect 리스펙트 존경입니다. 여러분 일하다 보면 ‘리워드’ 보상받고 싶은 생각보다는 ‘리스펙트’ 존경받고 싶은 생각이 훨씬 많습니다. 보상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계신 임직자들을 ‘리스펙트’ 존경해 주십시오. 격려하고 존경하십시오. (큰 아멘) 그러면 어느새 정말 존중받는 일꾼들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큰 아멘) 그러면서 이 교회가 세상에서 존경받을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건강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큰 아멘) 이 교회가 세상에 뿌리기만 하면 보상은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임직자들을 ‘리스펙트’ 존중하면서 이 교회를 잘 세우면 새에덴교회는 세상에서 존중받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큰 아멘) 여러분 세우신 일꾼들 흔들지 마시고 격려하고 존중해주셔서 이 존중 받는 일꾼들이 담임목사님 잘 섬기고 돈밭에서 돈이 되든가 꽃밭에서는 아름다운 꽃의 향기가 넘쳐나는 그런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큰 아멘 그리고 우렁찬 박수)” 소강석 목사 박수 치며 뛰어나온다. “네. 톡톡 튀면서 품위가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김관선 목사를 돌아보며) 대머리가 안 되신 것이 기적입니다. (큰 웃음)” 소강석 목사의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시던 박정하 장로 홀연 떠나 그 모습 아련했다. 그러니 이 시대의 기인 소강석 목사의 그분에 대한 그 의리 그 마음 어떨까.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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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8
  • 한기승 목사 목회 저력
    운암동 소재 광주중앙교회 장로 장립 20명을 비롯한 139명의 임직 및 은퇴식 증경총회장 중의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설교와 축사 임직식을 한껏 빛내 이날 30여명의 교단 지도자들박주선, 천정배, 김기현 울산시장 등 교계와 사회 한기승 목회 저력 입증 성령 불 들어간다. 아궁이에 들어간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불티인 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장작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뜻한 것 손목괴고 불이나 쪼여볼까. 불 앞에서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따뜻할 뿐. 주님 몸 된 성도들 성령 불로 타들어가 성화의 길 간다. 불 들어간다고 알린들 성화되지 않은 몸이 대답할 리가 있나. 믿음의 깊이는 말로 잴 수 없다. 환하고 따뜻한 교회 임직은 직분의 높낮이가 본래 없고 교회의 주인이라는 것도 없다. 그래서 사랑의 섬김만 있다는 깊은 말씀이 믿음의 온도에 온기를 더한다. 2018년 12월 1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 운암동 소재 광주중앙교회(한기승 목사)가 아픔을 딛고 일어나 장로 장립 20명을 비롯한 139명의 임직 및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임직 및 은퇴 감사예배에는 증경총회장 중의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의 설교와 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의 축사가 임직식을 한껏 빛냈다. 이날 30여명의 교단 지도자들과 박주선, 천정배 국회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등 정계 지도자들까지 순서를 맡아 축하와 격려를 더한 것은 한기승 목사의 교계와 사회에서의 목회 저력을 입증해주었다. 아울러 그는 이 시대의 기인 그리고 광대 소강석 목사의 절친(切親)이기도 하다.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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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3
  • 미문교회 임직식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대쪽 같은 사회 총회 군선교의 머릿돌 민남기 기도 제103회 총회 무지개 이승희 총회장 ‘그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살고 일하는 것 임직자 축복과 본분 온유함으로 전국을 아우르는 호남협의회 회장 김상현 축사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먹는 사람이다. 그러나 베드로 같은 반석의 피를 받아 마시는 푸른 이끼들도 있다. 주님의 피와 달리 그 단단한 피로 인해 그것들은 결국 돌 빛으로 말라 죽는다. 돌에도 피가 흐르는가 보다. 피가 단단하다니. 그걸 받아 마신다니. 그러나 돌의 피는 사랑의 독이어서 이끼는 죽는다. 푸른빛은 돌 빛으로 마른다. 이끼는 제자리에서 죽음을 타 넘는다. 그들은 베드로처럼 반석 같은 돌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돌과 하나가 된다. 돌 자체가 된다.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베드로를 만나 돈 대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일어나 뛰게 되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다 일어서게 된 걸인처럼 광주에서 살다 제99회 대쪽 총회장 백남선 목사를 만나 성도가 되어 성도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된 사람들이 있다. 2018년 12월 5일 수요일 저녁 7시 20분 광주 서구 화정동에 있는 ‘죽어도 예배’를 실천하는 미문교회(백남선 목사)에서 장로와 집사 장립 및 권사 취임 임직 감사예배가 있었다. 제1부 예배에서 추석에도 저녁예배를 빠뜨리지 않는 백남선 목사의 대쪽 같은 사회로 총회 군선교의 머릿돌 민남기 목사가 기도하고 백성철 목사가 로마서 1:5-6을 봉독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제103회 총회 무지개 이승희 총회장이 ‘그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설교했다. 그날 임직 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직분을 받았으니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고 일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 받은 자의 삶의 축복이고 본분임을 전했다. 노회장 전광수 목사 축도 뒤 제2부 임직식에서 김상신 목사가 기도하고 최인욱 목사 서한국 목사 조동원 목사 문영수 목사 등의 권면 뒤 온유함으로 전국을 아우르는 전국호남협의회 회장 김상현 목사가 축사하고 김진택 목사가 폐회기도를 하니 1시간 만에 임직식이 마무리됐다. 제99회 대쪽 총회장 백남선 목사의 대쪽 같은 예배 진행이 임직식에 빛을 더했다. 20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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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08
  • 기독교강요 제구 계명 거짓말 - 박헌성 목사
    제구 계명 거짓말Ninth Commandment Lie 사상 최대의 거짓 인생을 산 사람의 하나가 미국의 페르디난드 왈도 테마라(1921~1982)였습니다. 그는 타인 이름을 훔쳐 신학자, 심리학자, 철학박사, 교도관, 교사, 그리고 의사로서 행세하며 일생을 사기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사로 행세하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의관으로 세운 공로로 캐나다의 국민 영웅으로까지 칭송을 받을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토니 커티스가 주연한 영화 ‘위대한 악당’으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1941년 12월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던 터라 그는 이름을 바꿔 프레드 W. 테마라라는 이름으로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테마라는 승선 근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무 학교의 훈련생으로 지원했습니다. 훈련 뒤 그는 버지니아의 노퍽 인근의 해군대대에 위생병으로 배속됐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공식 서류들을 잔뜩 훔쳤습니다. 그는 아이오아 주립대학교의 졸업 앨범에서 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그 사람의 이름으로 필요한 서류들을 꾸미고 사진을 붙여서 해군 의무장교 복무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복무 결정서를 기다리는 몇 주 동안 테마라는 위조 신분증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뒤 그는 스탠퍼드 출신 심리학 박사 로버트 린턴 프렌치를 입증하는 서류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고향 로렌스로 돌아가서 교구의 신부 사무실에서 빈 서류더미를 훔쳤습니다. 테마라가 노퍽에 있는 해군부대로 돌아왔을 때 보안 조회가 끝나는 대로 장교로 임관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보안 조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겁을 먹고 그 날 밤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메인의 가톨릭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물학자 C. B. 해먼으로 변신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의사 조셉 시르 박사의 모든 신상 정보를 훔쳐냈습니다. 테마라는 조셉 시르 박사라는 신분으로 캐나다 뉴브런즈윅의 세인트존으로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왕립 캐나다 해군의 중위 계급장을 단 군의관이 되었습니다. 어떤 여자와 사랑에도 빠졌습니다. 그는 군인 복무를 마친 뒤 결혼해서 캐나다의 한적한 시골에서 개업하고 정착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달콤한 생활에 젖어있던 그에게 구축함 카유가 호에 승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테마라를 태운 구축함은 한국을 향해 유유히 출항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은 부두에서 눈물에 젖은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습니다. 군의관 테마라는 감기나 배탈 같은 가벼운 질병만 치료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상당한 한국군 세 명을 태운 배가 카유가 호에 다가왔습니다. 중상을 입은 이 세 명을 테마라가 치료해야 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심장 부근에 총알까지 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기절하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외과 수술 경험은커녕 구경도 해본 적이 없는 군의관 테마라는 진땀을 흘리며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수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총알 제거 수술을 받은 한국군 병사는 며칠 만에 회복되었습니다. 다른 한국군 두 명도 적절한 치료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테마라 자신도 놀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기적이 그에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캐나다 해군의 홍보 담당자는 이 소식을 캐나다 신문에 자세하게 게재하였습니다. 함장은 그에게 표창을 주기 위해 해군본부에 그의 이름을 상신했습니다. 이 와중에 진짜 조셉 시르 박사가 신문을 보고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테마라의 의사 행세는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정착을 하려던 그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랑하던 여자도 눈물 자국 없는 메마른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그를 떠났습니다. 데마라는 캐나다로 송환되어 파면되고 국외 추방명령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경험담을 잡지사 라이프에 팔아 많은 돈을 번 다음 유랑하던 그는 마침 텍사스주의 휴스톤에서 교도소 직원 모집 광고를 보자 응모했다. 벤 W.존스라는 이름이었다. 자기가 전에 썼던 수많은 이름으로 신원보증을 섰습니다. 교도관으로서의 그의 역량은 뛰어났습니다. 수감자를 위해 쓰기공부반을 만들고 체육의 날을 만들자는 그의 구상이 텍사스주 교도행정국장 엘리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흉악범을 수용한 헌츠빌 교도소의 개혁안을 맡기까지 해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성공이 잡지에 실리자 어느 수감자가 그가 가짜임을 알아냈습니다. 결국 그는 교도소를 떠났습니다. 그를 고용했던 다른 사람들처럼 엘리스 교도소 행정국장도 그가 진짜 증빙서류만 갖추고 돌아온다면 다시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교도관으로 일한 사람 가운데 최고였다는 거였습니다. 테마라처럼 훌륭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어째서 정식 자격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이런 질문을 받자 “순전히 악당 근성 때문이지”라고 쾌활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정식으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자기 이름으로 신분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의 마지막에는 캘리포니아의 애너하임에 있는 한 병원에서 환자와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목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테마라의 이 마지막 직업은 가짜가 아닌 진짜였습니다. 그는 61세 때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저서 ‘거짓말의 전략’에서 거짓말 방법의 원칙은 ‘모호함을 피하라’는 것이고 거짓말로 생긴 관계의 원칙은 ‘적절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인생은 이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침대에서 끝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침대에서 태어남으로써 시작하고, 30분 뒤에 사람들은 우리를 침대에 다시 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규칙적인 간격으로 침대로 돌아갑니다. 피곤하거나 매우 슬플 때 우리는 침대 위에 몸을 던집니다. 그러다 어느 멋진 날 우리는 한 아가씨를 사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한숨과 산책, 달콤한 말들로 시작하고, 나중에는 친척들이 개입하고, 급기야 옷들, 속옷들, 가구들, 주방용품들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 있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예외 없이 우리는 우리 옷들 중에 가장 좋은 수의를을 입을 것입니다. 집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 위에 누운 채 우리는 그 총체적인 혼란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할 것이며 주위 사람들의 감정들을 전혀 공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생각도 아주 조그마한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맨 처음 침대 위에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몹시도 울었는데 이제 마지막이 될 때 우리는 입가에, 비록 최상의 미소는 아닐지라도 분명 우리의 미소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모호하고 아이러니한 미소를 띨 것입니다. 거짓말로 형제 왕자들을 잔치에 초청해 죽인 다윗의 아들 압살롬처럼 바로 그 미소를 갖고 태마라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사람들을 속였고 또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심장발작으로 죽을 때 그는 진짜 목사였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제구 계명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47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THOU SHALT NOT BEAR FALSE WITNESS AGAINST THY NEIGHBOUR. 47. The purport of the commandment is, since God, who is truth, abhors falsehood, we must cultivate unfeigned truth towards each other. The sum, therefore, will be, that we must not by calumnies and false accusations injure our neighbour's name, or by falsehood impair his fortunes; in fine, that we must not injure any one from petulance, or a love of evil-speaking. To this prohibition corresponds the command, that we must faithfully assist every one, as far as in us lies, in asserting the truth, for the maintenance of his good name and his estate. The Lord seems to have intended to explain the commandment in these words: “Thou shalt not raise a false report: put not thine hand with the wicked to be an unrighteous witness." "Keep thee far from a false matter”(Exod. 23:1, 7). In another passage, he not only prohibits that species of falsehood which consists in acting the part of tale-bearers among the people, but says, “Neither shalt thou stand against the blood of thy neighbour,"(Lev. 19:16). Both transgressions are distinctly prohibited. Indeed, there can be no doubt, that as in the previous commandment he prohibited cruelty unchastity, and avarice, so here he prohibits falsehood, which consists of the two parts to which we have adverted. By malignant or vicious detraction, we sin against our neighbour's good name: by lying, sometimes even by casting a slur upon him, we injure him in his estate. It makes no difference whether you suppose that formal and judicial testimony is here intended, or the ordinary testimony which is given in private conversation. For we must always recur to the consideration, that for each kind of transgression one species is set forth by way of example, that to it the others may be referred, and that the species chiefly selected, is that in which the turpitude of the transgression is most apparent. It seems proper, however, to extend it more generally to calumny and sinister insinuations by which our neighbours are unjustly aggrieved. For falsehood in a court of justice is always accompanied with perjury. But against perjury, in so far as it profanes and violates the name of God, there is a sufficient provision in the third commandment. Hence the legitimate observance of this precept consists in employing the tongue in the maintenance of truth, so as to promote both the good name and the prosperity of our neighbour. The equity of this is perfectly clear. For if a good name is more precious than riches, a man, in being robbed of his good name, is no less injured than if he were robbed of his goods; while, in the latter case, false testimony is sometimes not less injurious than rapine committed by the hand.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구 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출 20:16 47. 이 계명의 목적은, (진리이신) 하나님이 거짓말을 증오하시므로 우리는 서로 진실을 실행하여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남을 중상하지 말며 거짓으로 남의 재산에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 함부로 거짓된 험담을 해서 남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금지에 연결된 명령은, 모든 사람의 명예와 소유에 손상이 없도록 보호하기 위해서, 진실한 말로 될 수 있는 대로 충실하게 남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에 있는 주의 말씀은 이 계명의 뜻을 표명하시려고 한 것 같습니다.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출 23:1). 마찬가지로, “거짓 일을 멀리하며”(출 23:7). 다른 구절에서는 중상과 풍설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의미의 거짓말뿐 아니라(레 19:16) 형제를 속이는 것도 금하십니다(레 19:11). 이 두 가지 일을 특별한 계명으로 금하십니다. 바로 앞의 계명들에서 야비함과 음란과 탐욕을 금지하신 것과 같이 여기서도 거짓을 금하시는 것이 확실합니다. 방금 언급한 것과 같이,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악의와 악한 중상모략으로 이웃의 명예를 해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거짓말이나 심지어 훼방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것입니다. 엄숙한 법적 증언으로서 하거나 사적인 대화중에서 하거나, 나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문제의 귀착점은 같습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서 특히 추악한 죄 하나를 예로 들어 나머지는 같은 종류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부당하게 해치는 중상과 훼방도 여기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으로 편리합니다.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에는 항상 거짓 맹세가 내포됩니다. 거짓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으로 셋째 계명에서 충분히 설명됩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을 올바로 지키려면, 진실을 말함으로써 이웃의 명예와 이익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가 더욱 귀하다면(잠 22:1) 명예 훼손은 재물 탈취보다 더 큰 상해가 됩니다. 그러나 재물을 약탈할 때에도 손으로 빼앗는 것에 못지않게 거짓 증언으로 횡령하는 때가 있습니다. 칼빈의 가르침은 항상 성경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시 31:5)이시기에 거짓을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딛 1:2). 신자의 의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온전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는 진실해야 합니다(마 5:48). 그러나 온전하지 못하게 되는 까닭은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요일 2:21). 거짓은 진리이신 하나님과 조화될 수 없습니다. 거짓은 어둡고 불안하고 파멸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진실은 밝고 평안하고 구원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고 거짓을 싫어하십니다(사 65:16).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고전 13:6). 그러나 사탄은 진리를 싫어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진실해진다고 하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알고 있듯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거짓을 말하거나 진실을 숨기는 일이 더 합당하게 생각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합니다(눅 18:27). 주님이 말씀해 주시듯이 사람은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35). 우리 마음에 믿음과 진실이 아니라 자아만이 가득 차있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리를 숨기거나 왜곡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다면 우리의 말은 날로 진실해지고 남을 유익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진실만을 말하려고 할 때 명심해야 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자신이 진실하다고 믿는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4 둘째 우리는 실제로 일어나고 목격한 일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들은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태도를 성경은 금합니다.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레 19:16). 지혜로운 사람은 듣는 것을 다 믿지 않고 특히 좋지 않은 소문일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는 들은 사실을 알아보기 전에는 함부로 말하지 않고 나쁜 이야기는 더욱 입에 담기도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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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30
  • 총회 성명서
    성명서 목회자 성추문 문제로 부끄럽고도 가슴 아픈 일에 직면해 있습니다. 먼저 이 일로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한국사회 앞에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하나님과 한국교회 앞에도 교단의 대표자로 깊이 통회합니다. 총회는 이번 사태를 주시하며 엄정한 사실규명을 통하여 해당자들에게 엄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교단 내 성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함으로 자정능력을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더욱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한국교회와 민족의 희망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8. 11. 8.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회장 이승희 목사 및 임원 일동 제103회 총회를 위해 온 힘과 마음과 뜻을 쏟는 총회 무지개 이승희 총회장 보니 괜스레 이런 글을 달고 싶었다. 가을 가고 해 질 녘 날 부르는 가는 음성 들려온다. 총신 나와 목사 된 우리 그 나라 향해 영원한 길 떠날 적 자식이니 뭐니 세상 미련 없기 바란다. 그 때 웅얼거려도 잠자는 듯 고요한 기도 소리 마음의 동요 일기에 너무 그윽하리. 가없이 깊은 눈에서 솟아난 눈물 다시금 본향 찾아 돌아갈 적 내 영혼 적시리. 길 떠나는 저녁 성전에 들려오는 맑은 찬양. 그 뒤에 밀려오는 살가운 어두움. 떠나가는 내 영혼의 발걸음 디딜 때 세상 것 이별의 아쉬움 없으리. 시간과 공간의 우주를 건너 믿음은 우리를 실어 우리 주님 뵙게 하리. 어둠 한 점 없는 얼굴과 얼굴 마주하리. 영원한 그 성전에 다다랐을 때. 그 때 생각하리. 믿음의 삶 괴로우나 그 열매 찬란한 것이라고. 20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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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10
  • 칼빈의 결혼 - 박헌성 목사
    제네바는 사계절이 분명한 곳입니다. 중세를 갓 지난 16세기 신앙 때문에 촘촘하게 중층적으로 서로 얽히게 되는 칼빈 시대에 물 같이 담백한 관계 맺음은 어떤 것일까요. 휘어진 달리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댑니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달리아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습니다. 그들 사이에 누구도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릅니다. 부부 사이의 주고받음이 달리아 이파리와 허공 같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조용한 요구에 조용한 응답이 있는 것, 어떤 부름에 낮은 목소리의 대답이 있는 것, 모자라는 것을 가만히 채워주는 것,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헤아리는 것, 거만하지 않고 정중한 것, 들으면서 기다리는 것, 마음이 굳어지지 않게 살피는 것 등이 관계를 담백하게 가꾸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계는 말로써 이뤄지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풍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칼빈은 정숙하고 자상하고 까다롭지 않고 검약하고 근면하고 그리고 자신의 건강 에 세심한 여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칼빈은 그런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샤프(Philip Schaff)는 그의 ‘기독교 교회사’(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8권에서 칼빈의 유일한 아내 이델레트에 대한 글이 이어집니다. Idelette bore Calvin one son and possibly a few daughters, all of whom died in infancy. In response to the slander of Catholics who took this for a judgment upon them for being heretics, Calvin said he was content with his many sons in the faith. 이델레트는 칼빈에게 한 아들과 아마 몇 명의 딸을 낳아주었습니다. 그들 모두 유년기에 죽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이단이 된 것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심판이 내린 것이라는 가톨릭교도들의 비방에 답하여 칼빈은 믿음 안의 많은 아들들로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Idelette busied herself attending to Calvin in his many illnesses, faithfully visiting the sick and afflicted, and making her home a refuge for those who fled for their lives and their faith. 이델레트는 칼빈 자신의 많은 질병들에도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성실하게 심방하는 칼빈의 시중을 들고 그리고 삶과 신앙을 위해 도망친 사람들을 위해 그녀의 집을 피난소로 제공하는 등의 일로 분주했습니다. Though she survived the plague when it ravaged Geneva, Idelette died after a lengthy illness in 1549. Upon her deathbed she was patient, and her words, 전염병이 제네바에 창궐했을 때 살아남긴 했지만 이델레트는 오랜 질병으로 1549년 사망했습니다. 임종에 임해서도 인내심이 강한 그녀는 말했습니다. “O God of Abraham, and of all our fathers, in thee have the faithful trusted during so many past ages, and none of them have trusted in vain. I also will hope.” “아브라함과 우리 모든 조상의 하나님이시여. 수많은 과거 시대에도 신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들의 신뢰가 한 사람도 헛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소망합니다.” What Calvin wrote to Pierre Viret some days after her death will illustrate her character further. 그녀가 죽고 며칠 뒤 칼빈이 비레(Pierre Viret 1511~1571 스위스 개혁주의 신학자)에게 이델레트의 성품에 대해 아주 깊이 설명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I have been bereaved of the best companion of my life, of one who, had it been so ordered, would not only have been the willing sharer of my indigence, but even of my death. During her life she was the faithful helper of my ministry. 나는 내 생애 가장 훌륭한 동반자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도리였다면 그녀는 내 가난뿐만 아니라 내 죽음의 자발적인 공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내 목회 사역의 신실한 조력자였습니다. From her I never experienced the slightest hindrance. She was never troublesome to me throughout the entire course of her illness; she was more anxious about her children than about herself. As I feared these private cares might annoy her to no purpose, I took occasion, on the third day before her death to mention that I would not fail in discharging my duty to her children. 그녀에게서 나는 한 번도 아주 사소한 방해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아픈 전체 기간 내내 한 번도 나를 귀찮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그녀의 아이들을 더 염려했습니다. 이런 사사로운 걱정들이 그녀를 괴롭힐까봐 걱정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 그녀의 임종 사흘 전 내가 그녀의 자녀들에 대한 나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겠노라고 언급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Taking up the matter immediately, she said, ‘I have already committed them to God.’ When I said that that was not to prevent me from caring for them, she replied, ‘I know you will not neglect what you know has been committed to God.’ Lately, also, when a certain woman insisted that she should talk with me regarding these matters, I, for the first time, heard her give the following brief answer: 그 문제를 즉시 잡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그 애들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또한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그녀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한다고 (칼빈이 재혼할 경우를 생각하고) 어떤 여인이 주장할 때 그녀에게 다음의 짤막한 대답을 들려주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Assuredly the principal thing is that they live a pious and holy life. My husband is not to be urged to instruct them in religious knowledge and in the fear of God. If they be pious, I am sure he will gladly be a father to them; but if not, they do not deserve that I should ask for aught in their behalf.’ This nobleness of mind will weigh more with me than a hundred recommendations. ‘확실히 제일 중요한 일은 그 아이들이 신앙심이 깊고 거룩한 생활을 사는 것입니다. 제 남편(칼빈)이 그 아이들에게 종교 지식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를 가르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신앙심이 깊다면 그가(칼빈) 그 아이들에게 기꺼이 아버지가 되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제가 그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요청해야 할 가치가 그들에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고매한 마음은 내게는 100개의 권고보다 더 무게가 나갈 것입니다. -John Calvin, Letter to Pierre Viret, 1549 -존 칼빈, 비레(Pierre Viret)에게 보내는 편지, 1549 아내의 유언을 전하는 칼빈의 편지는 그녀가 얼마나 고결한 마음의 신앙을 가졌는지를 동료 개혁자에게 편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아내의 마음은 자녀들의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신앙심이 깊고 거룩한 생활을 살지 않는다면 양아버지 칼빈이 그 아이들에게 종교 지식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를 가르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고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조차 말할 정도로 자녀의 신앙과 삶을 칼빈의 아내 이델레트는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6).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9). 진정한 성경적 믿음은 지적인 만족을 포함하게 됩니다. 이 점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이며 그 믿음은 경건한 무지가 아니라 올바른 지식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믿음은 확신을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믿음의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한 남녀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비유해보면 이렇습니다. 구혼의 첫 단계는 믿음의 첫 번째 요소인 알게 되는 과정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남녀가 처음 만나게 되면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상대가 좋은 결혼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상대방이 신뢰할만한 사람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구혼의 두 번째 단계는 믿음의 두 번째 요소인 마음의 감동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선 사랑에 빠지게 되는 단계입니다.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남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신실하기를 약속합니다. 두 남녀는 그 약속이 변하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에게 칼빈의 아내 이델레트처럼 신앙과 삶으로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나성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중에서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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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28
  • 총회 무지개 이승희 총회장
    103회 총회가 개회하기까지 온갖 설 난무했지만 도우시는 하나님이 삼 일 동안에 이 회무를 마감하게 해 우리의 희망의 근거가 되는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첫째 희망의 하나님둘째 도우시는 하나님셋째 약속하시는 하나님 저는 이 말씀 붙들고 103회 총회 한 회기여러분이 주신 총회장의 권위로 희망의 교단으로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나는 뛰는 가슴을 안고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나 어릴 적에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은 잘 못 보지만 그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하늘은 우리의 아버지 계신 곳. 기도하건대 총회를 위한 우리의 하루하루가 하나님을 위한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꿈꾼다. 무지개(색동다리)는 하늘에 보이는 호(弧)를 이루는 색 띠다. 색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각 문화권마다 색의 개수가 다르게 인식되기도 한다. 대부분 지표로부터 하늘에 걸쳐서 나타나는 반원형 고리로 나타난다. 공기 중에 떠 있는 수많은 물방울에 햇빛이나 달빛이 닿아 물방울 안에서 굴절과 반사가 일어날 때, 물방울이 프리즘과 같은 작용을 하여 분산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관측된 무지개는 2017년 11월 27일 중화민국 타이베이에서 관측된 것으로 9시간 내내 무지개가 떠올랐다. 103년 총회 역사에 무지개가 관측된 것은 2018년 9월 12일 반야월교회에서다. 제103회 총회가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오후 2시 개회했다. 총회는 전체 1592명 총대 중 1447명 출석했다. 총회임원 선거에 앞서 제102회 선걱관리위원회 해괴한 관리 속에 호남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한 김용대 목사의 총회임원회 부서기 입후보 건과 관련해 강재식 목사와 한기승 목사가 발언에 나섰다. 즉 구개혁 측과의 합동 정신에 따라 총대 경력을 인정해 김용대 목사를 부서기 후보로 추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102회 다윗의 별 총회장 전계헌 목사는 단호하게 “발언하신 취지나 아픔도 이해하지만 선관위 결정에 따라 달라”며 선거관리위원회에 진행을 맡겼다. 곧이어 총회임원 선거가 시작됐다. 부총회장 이승희 목사가 총회장으로 추대됐다. 이어서 김종혁 목사가 서기 진용훈 목사가 회록서기 이대봉 장로가 회계로 추대됐다. 장로부총회장 강의창 장로가 단독 출마 당선됐다. 경청의 지도자 김종준 목사가 비상하는 독수리 민찬기 목사를 총 1431표 중 720표 대 461표로 누르고 제103회기 목사부총회장으로 당선됐다. 부서기에는 예상을 깨고 정창수 목사가 605표를 얻어 이형만 목사(484표)를 제쳤다. 제103회 총회가 9월 12일 수요일 저녁회무를 끝으로 파회했다. ‘변화와 희망으로 다음 세대를 응원하라’는 배너가 강단 오른쪽에 걸려있었다. 농어촌 목회자 자녀 장학금 수여식을 마친 이승희 목사의 어조는 잔잔했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103년을 기다려 듣는 음성이었다. “어쩌면 오늘 이 예배가 총회를 파회하는 마지막 예배가 될 것입니다. 오늘 저녁 총회 모든 회무를 마치려고 합니다. (어색한 박수) 우리가 똑같은 시대 똑같은 공간을 살면서도 절망의 울음을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 절망과 희망을 나누는가. 절망은 희망을 꿈꿀 수 없을 때 생기고 희망은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때 생겨납니다. 그렇다면 지금 103회 총회를 드리고 있는 우리는 절망을 노래하는가 아니면 희망을 노래하는가. 여러분은 희망을 노래하고 계십니까. 절망을 노래하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절망을 이길 수 있는 근거가 없는가. 절망이 희망을 꿈꿀 수 없을 때 생긴다고 하면 우리에게 절망을 이길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절망을 노래하는가. 우리가 믿는 성경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제103회 총회는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멘) 또한 자라는 다음 세대 자녀 세대를 희망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희망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세 가지만 말씀을 드리고 오늘 총회를 마쳐야 되니까 설교를 5분내에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근거로 해서 절망을 이기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가. 첫째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희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멘) 103회 총회 주제 성구이기도한데 오늘 읽은 이사야서 44장 1절과 2절의 말씀을 같이 읽도록 합시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만들었고 내가 너를 지어냈다. 그러므로 내가 만들고 택한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아멘) 아무리 우리가 절망스럽고 희망을 노래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우리를 만드시고 택하신 그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것은 우리가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하니님이신가. 우리가 희망을 갖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동시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희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그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희망스럽지 않고 절망스러울지라도 우리의 손에 잡히는 것이 도저히 희망을 꿈꿀 수 없는 그런 절망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절망의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희망의 하나님이시라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아멘) 103회 총회를 통해 우리 합동 측 교단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교단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렁찬 아멘) 둘째 우리가 희망을 근거할 수 있는 근거로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 하나님이 희망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그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힘찬 아멘) 오늘 읽은 3절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으십시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른 땅에 필요한 것이 물이요 또 목마른 자에게 필요한 것이 물이라면 하나님은 그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우리의 하나니이 되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궁핍 가운데서도 어떤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강한 아멘) 그러므로 도우시는 하나님을 인하여서 우리 모두가 소망을 가지며 꿈을 꿀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육신적인 필요만 채워주시는 게 아니라 내 영을 네 후손에게 나의 복을 네 자손에게 부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도우시는 그 하나님은 내 육신의 필요를 도우실뿐만 아니라 우리 영의 필요한 것까지도 도외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큰 아멘) 영육 간에 필요를 채워주시는 도우심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면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강한 아멘) 우리가 총회를 섬기면서 우리 앞에 여러 상황이 복잡하게 놓여있다 할지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천장이 떠나갈듯 아멘) 영과 육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그 하나님 우리 교단의 필요를 모두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아주 강한 아멘) 103회 총회가 개회하기까지 온갖 설이 난무했지만 도우시는 그 하나님이 도우셨기에 우리는 오늘 삼 일 동안에 이 회무를 은혜롭게 마감하게 된 줄 믿습니다. (끊어질듯 아멘) 우리의 필요만 채워주는 게 아니고 무엇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까. 나의 복을 네 후손에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부어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힘들게 목회를 하시지만 우리 자녀를 키우는 상황이 어렵지만 오늘 장학금을 수여한 우리 모든 자녀들이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나 갖고 싶은 것 갖지 못하고 해보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제한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자손된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세찬 아멘) 여러분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4절의 말씀 103회 총회 주제 성구가 되는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시죠.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여러분 이 말씀을 믿습니까. (아멘)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서 오늘 여기 있는 우리를 향하여서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하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아멘)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는 나무가 되도록 만드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되심으로 우리는 지금의 상황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내일을 기대하며 내일을 소망하며 우리는 내일을 꿈꿀 수 있음을 믿습니다. (아멘) 저는 이 말씀 붙들고 103회 총회 한 회기 동안 여러분이 주신 총회장의 권위로 교단을 힘차게 희망의 교단으로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힘찬 바람의 아멘)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약속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그리고 희망의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고 함께 힘을 모아 우리 교단이 104회기에 이르기까지 전례에 없는 변화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 교단을 새롭게 하고 이 교계에 다시 한 번 소망을 새롭게 하는 그런 교단으로 함께 힘을 모아 세워가기를 소원합니다. (아주 힘찬 아멘) 이 하나님을 위해 희망의 꿈을 꿉시다. 희망의 총회를 꿈을 꿉시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다음 세대를 응원하십시다. (아멘)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분명히 믿습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 저희들에게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의 상황만 보고 탄식하며 절망하지 않고 우리가 믿는 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희망을 노래하며 희망을 꿈꾸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103회 총회가 희망을 꿈꾸는 총회가 되게 하시고 희망의 총회가 되게 하시어 교회와 민족의 희망이 되는 귀한 교단 되게 해 주시옵소서. (큰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유럽 고산(高山) 지대나 북아프리카 사막 언저리 목축민(牧畜民) 생활을 찍은 필름을 볼 때마다 목동(牧童) 한 사람과 몰이 개 두어 마리로 수백 마리 소 떼와 양 떼를 이끌고 이동하는 것이 신기했다. 이치는 간단했다. 맛있는 풀과 깨끗한 물을 좇아 움직이는 것이 소와 양의 본성(本性)이다. 이 본성이 이끄는 대로 놓아두고 무리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만 막아주면 되니 일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본성과 반대 방향으로 몰아가려면 목동 열 명과 몰이 개 열 마리로도 힘이 부칠 것이다. 그래서 시편 23편의 노래가 기록되었을 것이다. 총회는 당초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103회 총회는 9월 12일 수요일 저녁 9시 58분 파회했다. 이 말을 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어쨌든 총신대 6회 총신연구원 72회 출신의 내가 생각하는 총회의 희망을 좌우하는 요소는 세 가지이다. 첫째 개혁주의 교단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 활력(活力)이다. 둘째 총회장의 유능한 리더십이다. 셋째 총대의 판단력과 기백(氣魄)이다. 제103회 총회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된 총회였다. 이런 글이 있다. ‘슬픔은 바다와 같아서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거세다. 슬픔을 이기는 길은 헤엄치는 것을 배우는 것뿐이다(Grief is like the ocean. Sometimes the water is calm, and sometimes it is overwhelming. All we can do is learn to swim).’ 제103회 총회 무지개 이승희 목사의 폐회 예배 메시지를 적용하면 이 말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절망은 바다와 같아서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거세다. 절망을 이기는 길은 기도하는 것을 배우는 것뿐이다(Desperation is like the ocean. Sometimes the water is calm, and sometimes it is overwhelming. All we can do is learn to pray).’ 나는 이번 103회 총회장의 눈빛에서 항상 무지개를 느꼈다. 당신은 목사들 속에 빛없는 빛으로 묻혀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오늘 총대들의 눈빛에서 무지개로 반짝인다. 총회 기간 내내 사흘 저녁이 온통 푸를 때마다 숲속 식물처럼 강단에서 반짝이는 당신은 제103회 총회를 변화시켰다. 2019년 9월 서울 꽃동산교회의 제104회 총회에서의 그런 저녁 우리는 2018년 9월 12일 대구 반야월교회의 제103회 총회의 변화에 대한 흐뭇한 그리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을 것이다. 홍수 후 하나님께서 땅에 발을 디딘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찌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 9:11-17 무지개는 성경을 믿고 전하는 우리에게 언약의 다리이자 문이다. 그 너머에서 하나님께서 무한히 손짓하신다. 그래서 무지개는 인간의 가슴에 설렘을 안겨주고 믿는 우리에게 소망을 보여준다. 설렘과 소망이 여전한 우리는 그 순간 주일학교 어린이로 거듭 태어난다. 그런데 문득 우리는 이렇게 목사와 장로가 되었다. 제103회 부총회장에 선출된 꽃동산 교회 김종준 목사가 사랑하는 어린이를 보라. 그 눈에 빛나는 먼 무지개를 보라. 불현듯 뛰기 시작하는 심장에 손을 얹고.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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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ERMON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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