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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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대 회 사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죄와 고통으로 죽어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기독교는 죽어야 사는 종교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사랑과 용서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할 때에도 교회는 언제나 희망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믿음의 기도로 극복하였습니다. 기도는 나라를 지키는 힘이며, 기도는 모든 문제를 뛰어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하나 되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한국교회를 위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때입니다. 모든 갈등과 분열의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무너뜨리고, 교회는 다시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기도성령운동에 힘써서 이 땅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워 모든 백성들이 정직과 성실함으로 풍요로운 삶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나라, 모든 성도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어 나갑시다. 오직 부활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소망이며, 오직 생명의 복음이 민족의 희망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으로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열방의 소망으로 우뚝 서서 부활의 기쁜 소식과 예수 생명의 복음을 우리 민족에게 전할 때 대한민국은 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국민의 나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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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차금법 폐기 촉구
    이승만은 식민지로 망한 터에 공산주의 물결을 막아내는 방파제(防波堤) 국가를 세웠다. 박정희는 금고(金庫) 안에 먼지밖에 쌓인 게 없는 나라를 부자 국가로 일으켜 세웠다. ‘공칠과삼(功七過三) 평가 이론’을 적용하면 위대한 정치가다. 민주당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전쟁 목표는 당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재명의 민주당’에겐 계승해야 할 유산(遺産)이 아니라 끊어내야 할 멍에고 족쇄가 됐다. 겉으론 레닌을 받들면서 속으론 지워갔던 스탈린 권력 장악 과정과 닮았다. 두 사람 냄새는 당사에 사진을 걸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인 것 같다.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가 22대 총선을 앞두고 포괄적차별금지법(차금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2023년 3월 8일 능력 있는 목회자이고 대표적 세계 장로교 대표 교단 합동 총회 중진 총대 오범열 목사 시무 안양 성산교회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공동대표회장(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 사무총장(이승준 목사) 연석회의를 열었다. 공동대표회장 오범열 목사가 주재한 연석회의에 앞서 진행된 예배에선 서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심하보 목사가 설교했다. 충북기총 사무총장 박병식 목사가 성경 요한복음 8:31~32을 봉독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본문에 근거해 심하보 목사가 ‘KS마크 BS마크’ 제목으로 설교했다. “한국산업표준 즉 KS(Korean Industrial Standard) 마크가 붙은 생산품은 우리나라 정부가 품질을 인증하는 제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받아야 할 인생의 인증 마크는 성경표준 즉 BS(Bible Standard) 마크입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니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곧 성경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친목 하려 모인 게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엔 목회자가 필요 없습니다. 악법을 막기 위해 진리이신 주님을 믿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합시다.” 각 지역 사무총장을 대표하는 사무총장 회장 이승준 목사가 광고했다. 울산기총 대표회장 권규훈 목사가 축도했다. 이어진 연석회의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는 22대 국회에 차금법안 폐기를 비롯해 생명 존중 입법 요구를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또 오는 7월 예정된 인천여성영화제에 대해 “시민의 세금이 동성애 영화 홍보에 쓰여선 안 된다”며 “동성애는 가정·부부관계를 무너뜨리고 양성평등 정책과도 거리가 멀다. 인천여성영화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 1:21-27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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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권순웅 목사 저출산 대책
    저출생·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인구 통계는 점점 드라마틱해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3년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631만여 명으로 20대 인구(619만여 명)를 처음 추월했다. “하나님 저출산 문제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소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년 9월 18일 ~ )는 소설 ‘웃음’에서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를 꼽은 적이 있다. 2세 때는 대소변을 가리는 게, 3세 때는 치아가 나는 게, 12세 때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18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2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35세 때는 돈이 많은 것 등이 자랑거리다. 그런데 인생이 반환점을 돌면 자랑거리가 뒤집힌다. 6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70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75세 때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게, 80세 때는 치아가 남아 있다는 게, 85세 때는 대소변을 가릴 수 있다는 것 등이 자랑거리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대소변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통과하다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는 다시 대소변 가리기가 어려워진다. 2024년 국내외적으로 한국이 마주한 도전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 갈등이 심화되고 대만해협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과 양극화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국력이 피크를 지났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2024년 세계는 전쟁 2개와 50여 국의 선거로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새해로 이월돼 살상과 파괴로 치닫고 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 명이 50여 국에서 선거로 정치적 전쟁을 치를 예정이다. 20억이라는 숫자는 세계 경제 총생산의 60%에 해당한다(뉴욕타임스 집계). 선거가 있는 나라는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남아프리카·미국·대한민국 그리고 유럽 27국(의회) 등이다. 우리는 여전히 ‘배달의 민족’일 뿐 아니라 ‘바람의 민족’이기도 해서 바람이 불면 죄다 그쪽으로 쏠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새 방향을 좇는다. 이런 데 자유가 있을까. 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수긍하지 않는 것에 머리 숙이지 않을 자유, 원치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항상 그렇진 못했지만) 품은 뜻에 따라 사느라 더러 외로웠지만 자유는 외로움에 지지 않을 때 얻어진다는 체험 또한 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자유로워지는 중이구나’라고. 맞다. 당신도 믿음의 자유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대로. 2024년 2월 18일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가 ‘한국교회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전국연합기도회’를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532 육탄10용사 공원 근처 주다산교회에서 드렸다. 진용훈 목사(중앙위 서기)의 인도로 케리그마 및 기도회가 진행됐다.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는 오는 5월 19일 생명존중 주일이 있는 날까지 100일 기도 행전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권역별로 지역교회가 연합해 ‘특별기도회’로 모일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밝혔다. 인문고전을 읽는 천재들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은 보통 보이는 것(sight)에 주목한다. 그러나 천재들은 보이지 않는 것(insight)에 주목한다. 통찰력을 의미하는 “insight”는 “sight”에 “in”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다. 통찰력이란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의 총회 불꽃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강단에 서자 청년과 장년 신자들이 환호했다. 그가 그 가운데 외쳤다. "샬롬! 저한테 너무 큰 박수하면 오해합니다. (회중 웃음) 지금 대한민국은 축구협회를 고발했습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야구계를 고발하려 합니다. 대한민국 야구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종범(李鍾範, 1970년 8월 15일 ~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 외야수) 감독 때문에 이 야구계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분의 아들이 이정후(李政厚, 1998년 8월 20일 ~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외야수) 선수입니다. 이정후 선수가 1490억 이상 그렇게 전속계약이 된 선수입니다.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뛰어난 아들을 한 명밖에 못 낳았다는 것입니다. (회중 큰 웃음)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둘 낳고 다섯을 낳았으면 한국 야구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3년 전 저출산 극복 헌신예배에서 ‘홈런 가족’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야구를 보면 안타가 있는데 야구의 꽃은 홈런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보면 이 저출산 환경에 아기가 없는 가정은 스리(three) 아웃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 다산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면 홈런입니다. 여러분 출산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출산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출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번성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애굽에 살 때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민족의 핍박 가운데 살지라도 하나님은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바로(Pharaoh)가 이스라엘인의 출산을 압박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기도로 시작한 국가입니다. 애국가가 찬송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난 줄 압니다. 크게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출산 국가로 전 세계의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가운데 가장 먼저 인구가 소멸이 될 국가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라질 제1위 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녀본 제삼세계(第三世界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말)가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지만 아이들이 거리마다 가득합니다. 어디가 못사는 나라입니까. 대한민국은 미래가 있습니까,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 생각에 한국교회가 그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산아제한을 했습니다. 맬서스주의(Malthus主義: 맬서스가 저서 ‘인구론’에서 주장한 학설로 인구와 식량과의 관계에 관한 이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빈곤과 악덕이 불가피하게 초래된다’라는 내용)를 따라 한국이 주창한 ‘산아제한’과 정부의 실책에 한국교회가 침묵했습니다. 제가 30여 년 전 신학교 갈 때 신학교 전도사 한 분이 ‘산아제한,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라는 대자보를 크게 써 붙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창 1:28)대로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이 소돔의 멸망을 예고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그렇듯이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잘못을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도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불순종한 죄를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여러 시책을 제안하고 여러 사람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주셔야 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생각, 돈을 더 사랑하는 생각, 쾌락을 더 사랑하는 생각, 우상을 버리지 않는 미련을 경고하지 않는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 민족에게 성령의 바람으로 말씀 순종할 수 있도록 불붙는 마음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이여, 하나님 주신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후손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한 복된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 한국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우리 총회다음세대 운동본부에서는 이 일을 지금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다산교회부터 시작해 전국 교회가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였습니다. 먼저 느헤미야같이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한국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가 불순종하고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를 바르게 세우지 못한 죄를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회중 아멘) 회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나도록 우리가 선포하고 섬기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이어서, 2강 ‘다자녀 출산의 복’은 이승준 목사(경기총연합회 사무총장) 부부가, 3강 돌봄시설 입법화는 강유진 교수(총신대학교)가, 4강 비혼주의 극복은 이용희 교수(에스더기독운동 대표)가 강연했다. 이승준 목사 부부는 네 자녀를 세 번의 제왕절개와 한 번의 인공수정을 통해 어렵사리 출산했던 경험을 간증하며 하나님의 복을 전했다. “인간적인 환경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응답을 통해 태의 열매를 다시금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기적이자 은혜였습니다. 아이는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다음 세대가 누리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해중 장로(회계)의 헌금기도와 김영구 장로(부총회장)의 사명자 구호제창이 있었고 김진하 목사(부본부장)의 축도로 마쳤다. 우리나라 초저출산은 그 수준(2021년 기준 0.81로 OECD 최저, 홍콩 제외 세계 최저)과 지속기간(2002년부터 1.3 미만 21년 지속)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약 86.4% 감소하여 전 세계 217개 국가·지역 중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로 인구 통계를 꼽는다. 지방대학의 붕괴, 주거 불안, 연금 고갈, 노년 부양비 등은 모두 인구문제와 연관돼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인구 감소로 5년째 출산율 0%대의 ‘초저출산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문제는 ‘마땅한 대응 방안이 있는가’일 것이다.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의 회개와 더불어 다음의 교회 사례를 보면 그 방안이 있을 것 같다. 2023년 11월 8일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시작은 벽보 한 장이었다. ‘한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다른 아이는 어찌하십니까? 위급하고 답답할 때 아이를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 드립니다. 믿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당진 동일교회 이수훈 목사.’ 27년 전인 1996년 충남 당진의 야산 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개척한 이수훈 목사(67)는 인근 아파트에 이런 벽보를 붙였다. 야산에서 캔 칡으로 차를 끓여 가가호호 나누며 전도에 애썼지만 비닐하우스 교회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때 그 자신 육아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아이 돌봄’ 벽보를 붙인 것. 붙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런 비닐하우스 교회에 누가 아이를 맡길까?’ 며칠 후 두세 살짜리 아이 셋을 데리고 주부 둘이 찾아왔다. ‘시장 다녀올 동안 1시간 정도만 맡아달라’던 엄마들은 해가 진 후에야 나타났다. 미안해했지만 얼굴엔 해방감 가득했다. 이후로 아이를 맡기러 오는 부모가 줄을 이었다. 다 받았다. 부모가 천안, 대전, 서울의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킬 땐 안 아픈 아이를 며칠씩 이 목사 부부가 먹이고 재웠다. 돌봄 수요는 계속 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끼리 품앗이 돌봄도 이뤄졌다. 2004년 주 5일제가 도입될 때 ‘토요 돌봄’을 시작한 것도 부흥의 한 계기가 됐다. 현재 등록 교인 1만 5천여 명, 평균 연령 29세, 2자녀 이상 가정 3천 세대, 평균 자녀 수 2.07명, 당진 초등학생 12% 정도가 출석하는 교회, 어린이집 2백 명, 비전스쿨(방과 후 학교) 2백 명이 매일 교회 안에서 자라며 ‘저 출생 극복의 모델’로 전국 교회의 탐방이 끊이지 않는 당진 동일교회의 시작은 소박했다. 이 교회는 어린이가 중심이다.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엔 어린이집, 왼쪽엔 교육관(비전스쿨), 정면엔 비전센터(청소년수양관)가 자리 잡았다. 예배당 건물 따로 없이 비전센터 강당 8백석을 대예배실로 쓰는데 주일 오전 9시 ‘온 세대 예배’에서도 어린이들이 주요 역할을 맡는다. 어린이들은 예배 시간에 성경 구절을 암송해 봉독하고 어린이 찬양대가 찬양하고 매주 1명씩 자기 ‘꿈’을 발표한다. 다른 교회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어린이집과 비전스쿨은 오후 7시 반까지 돌본다. “불 꺼진 빈집에 부모보다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자”가 ‘교회 이모’ 마음이다. 비전스쿨은 교회 버스가 하교 시간에 맞춰 당진 초등학교 10곳을 돌면서 교문 앞에서 교회 마당까지 안전하게 데려온다. 영어, 수학뿐 아니라 인성 교육도 강조한다. ‘명심보감’을 전 학년이 배우고 밥상머리 예절도 지도한다. 어린이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워 3학년 때와 졸업할 때 연주회도 갖는다. 방학이면 영미권 대학생들을 교사로 초빙해 영어 회화 교육을 한다. 2017년엔 ‘시내산 중고등학교’라는 대안 학교도 열었다. 이 교회 성장 비결은 ‘역발상’이다. 20~30년 전만 해도 개신교계 사역은 장년 위주였다. 저 출생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도 않았다. 이수훈 목사는 말했다. “개척 당시는 한보철강이 들어왔다가 부도나면서 당진 경제가 휘청하고 어려운 가정이 많았을 때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교회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자신과 이웃에게 정직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목회의 핵심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한 생태계로 봐야 합니다. 정확히 어린이 양육에 예산이 쓰여야 저 출생 문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 127:3-5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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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8
  • [더굳뉴스] 기독언론인협회 성명서_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지 말아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발표하면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학병원 전문의 등 의료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OECD 39개국에 의하면 한국은 의사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에 대비할 때 의대 졸업생은 7.26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의사수는 OECD 평균의사 3.5명에도 못미치는 2.4명이다. 국민들도 66.7%가 의대증원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 수는 현재도 충분하며 정부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는 중요한 방안으로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의사 수 증가는 의료 수요 증가로 이어져 건보 재정 악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사 회원 대상으로 2023년 11월 10~17일 설문 조사한 결과 정부의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응답자 4010명 중 3277명(81.7%)은 반대했다.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 가운데 1517명은 ‘이미 인력이 충분하다’(46.3%)라고 답했다. ‘향후 인구 감소로 의사 수요도 감소’(15.1%), ‘의료비용 증가 우려’(13.9%), ‘의료서비스 질 저하 우려’(13.4%)가 된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의사 733명(18.3%)은 의대 증원을 찬성했다. 찬성하는 의사들은 ‘감염·외상·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 공백 해소를 위해’(49.0%) 증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24.4%)가 그 뒤를 이었다. ‘실제 의사가 부족해 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없어서’라는 응답자도 85명(11.6%)이었다. 의사들도 18.3%는 의대 증원을 찬성하였고 국민들은 70%가 지지하였다. 이는 비단 윤석열 정부만 의대 증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도 ‘문재인 캐어’라는 말도 있듯이 공공의료서비스를 강조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100대 국정과제 중 45번째로 공공의료기관 확충 및 지역사회의 의료체계 강화,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 해소를 목표로 ‘의료공공성 확보 및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러한 연속 상에서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대학병원까지 반대하고 나서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의료생산 및 공급체계는 민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국민건강 보험 방식의 보건의료체계 속에서 의사와 의료기관은 의료자본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를 확충하여 건강 보장성을 강화하려는 현 정부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학병원처럼 민간의료기관의 힘이 정부의 힘보다 막강해진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장하겠다는 것은 민간의료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의료취약지구나 부분을 위하여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공공의료서비스를 지향하고자 한다. 그러나 권력이 막강해진 의사들은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까지 여기에 동참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나타나듯이 병원이 파괴되면 가장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국민들이다. 전문적인 직종의 대표 격에 해당하는 의사는 의학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진료, 진단, 치료, 수술 등의 의료행위를 제공하고 관리하는 직업군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의사들은 대형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던 만큼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영향력이 막강해지다 보니 의사들은 환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전문성을 형성하기보다는 직종에 대한 의사 간의 길드적인 동류의식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전문성을 토대로 집단 이기주의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의사들 18.3%가 의대 증원을 찬성하였고, 국민들 70%가 의대 정원 확장을 찬성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의사증원을 확장하는 나라가 많이 있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선진국은 왜 의대 정원을 늘리겠나”라며 “인구 고령화로 인해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증가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추세면 선진국과 의사 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인구 감소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데다, 소득 수준이 성장하면서 의료 수요 역시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이유다. 지금 당장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되, 추후 인구 감소 추세를 보면서 숫자나 속도를 조절해나가는 방안도 제시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의술(의 길)은 멀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불완전하고, 판단은 어렵다. 따라서 의사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수행원, 외부인 모두가 협조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고 있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 번째로 생각하겠노라" 기독교인들 의사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신의 이권이나 기득권을 확보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하여 값없이 수많은 환자들을 치유하여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독언론인협회는 18.3%의 의사들과 기독교인 의사들에게 희망을 건다. 적어도 당신들만이라도 예수처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길 요청한다. 2024. 2. 24 기독언론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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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성명서_ 건국전쟁을 보며
    최근 개봉된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7일 만에 32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치고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건국 전쟁’은 1945년 이후 38선 북쪽에서는 공산국가 소련(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공산주의 독재국가로 전락한 북한과 반면 38선 남쪽 진영에서는 자유주의 국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성장한 남한 사회를 다루고 있다. 영화 제목의 '건국'은 임시정부가 탄생한 1919년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가 탄생한 1948년 8월 15일을 가리키고 있다. 러시아 대사와 핀란드 대사를 역임했던 이인호 서울대 서양학과 명예교수도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 8월 15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독립선포 식사(式辭)에서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하는 것을 겸하여 경축한 것입니다”라고 하여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대한민국 건국의 한가운데는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보다 정통정부의 이승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덕영 감독은 84학번으로 당초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북한이 1990년대까지도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북한이 이승만을 미워하는 이유'를 공부하여 "팩트만 보여줘도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바뀔 것이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했다. 감독은 문서라는 사실관계에 토대를 두고 백범과 이승만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장제스가 파송한 유어만과 백범의 대화 문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김구는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하더라도 공산군의 현재 수준에 대응할만한 군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지금 여기에 남한 정부가 서 있지만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 설립은 안 된다고 역설한 장면이다. 사실상 김구는 미군이 주둔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원하지 않고 북한과 통일된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이상적인 통일론을 역설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는 백범 김구야말로 독립과 남북통일을 원했던 가장 이상주의적인 정치인으로 다루었고 이승만은 독재 공화국의 지도자로서 한반도 분단의 책임자로서 부정적인 평가를 해왔다. 역사가들은 이승만의 공과가 있지만 이승만의 정치적 과만 다루어 왔다. 영화에서 보듯이 이승만은 독재 정부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27,000여 명의 거제 포로 석방을 하면서까지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이끌어 내어 지금까지 미군을 주둔시켜 제2, 제3의 6.25 전쟁을 막고 있는 애국주의자이다. 미군이 반공포로를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바로 철수하였더라면 대한민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힘으로 다시 제2의 6.25를 만나 적화되었을 것이다. 미군을 대한민국에 붙잡아 놓은 것만 하더라도 이승만의 공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은 친미주의자도 아니고 반공사상을 갖고 미국까지 끌어들여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애국주의자였다. 한강철교의 파괴도 이승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때만 되면 북한식으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이승만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하여 부정적인 인식만 갖게 하였다. 김덕영 감독은 대한민국 정부 활동 내용까지 포함해 이승만의 일생과 세간에 잘못 알려진 부분을 현대의 상황과 교차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이승만의 건국 사상과 애국 사상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다. 기독언론인협회는 윤석열 정부가 속히 1919년, 1948년이라는 건국 전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건국에 대해 역사바로세우기를 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역사학자들과 한국교회사가들 등 지식인들의 침묵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각성, 후대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도 촉구하는 바이다. 기독교계도 역사 왜곡에 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2024. 2. 16 기독언론인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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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5
  • 소강석 목사의 설교론
    식탁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쌍 나란히 올려두고 감사의 감동을 기다릴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평안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기댄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믿음이 두 입술에 나란히 맴돈다. 사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나란히 다독일 때 한 끼가 영원과 나란하다.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 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가 안식을 돕고 안식이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2023년 4월 3일 오후 2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회장 소강석)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이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이사장 소강석 목사, 원장 안준배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문학평론가 안준배 박사가 개회사를 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을 개회하겠습니다. 1988년 3월 27일 그해 부활절 다음날 아침 40대 목사 19명이 중심으로 모여 세계성신클럽 창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역 중에 1992년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이틀 동안 연인원 백만 명이 참여하는 성령 운동, 성령으로 인도하는 그런 기도성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우리 본회 34년 역사 속 세계 성령 운동사에 표지가 되시는 조용기 목사가 2021년 9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영훈 목사를 내세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승계하게 하셨고 또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담임)를 통해 조용기 목사의 핵심적인 신앙을 정리해 이끌게 하셨고 그런 가운데 한국 교회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를 내세워 성령 운동과 말씀전파를 통해 한국 교회를 연합하고 견인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세계 성령 운동 역사 34년 역사 속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조용기 목사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소강석 목사의 성령 사역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2백 석을 가득 채워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테너 박주옥 백석대 교수가 언제부터인지 꽃씨가 시랑스러워 천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소강석 작사 작곡 '꽃씨'에 이어 요즘 교회마다 애창하는 '은혜'를 열창했다. 대회장이고 주제 강연자인 소강석 목사가 ‘나는 문학, 음악, 이야기로 성경을 전한다’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곁들인 화려한 강연을 펼쳤다. "어제 정말 바쁜 부활주일을 보내시고 쉬시는 날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설교학자도 아니고 설교를 연구하는 전문교수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뛰는 한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안준배 목사께서 이런 강연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제를 주신 겁니다. '나는 문학과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전한다.' 제가 들어보니까 굉장히 매혹적이고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비롯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워낙 목회자가 바쁘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탈고를 했지만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목회자에게는 설교하면 강해 설교가 머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강해 설교 창시자로 알려진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 1931년 3월 21일 - 2017년 7월 22일)의 영향일 것입니다." 그는 뉴욕시에 출생하여 미국의 고든 콘웰 신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달라스 신학교, 써던 메쏘디스트 대학교에서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설교학의 대가로 2006년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에 '영향력있는 설교자'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하여 강해 설교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의 강해 설교론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해 오늘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경 본문의 중심사상이 곧 설교의 주제가 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하고 있다. 로빈슨 교수의 강해 설교 교본으로 알려진 저서 '성경적 설교(Biblical Preaching)'는 전 세계 목회자들이 탐독했으며 현재도 120개가 넘는 학교에서 설교학의 주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강해 설교하면 설교의 구성 방식으로만 이해를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설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3대지냐 4대지냐, 혹은 구절을 풀어 설교할 것이냐(주해설교), 그리고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대부분 한국 목회자는 여기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강해 설교에 대한 이해는 형식이 우선이 아닌 중요한 설교 신학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개혁주의 목사이며 청교도 신학자 조엘 비키(Joel R.Beeke, 1952년- )의 저서 '설교에 관하여(Reformed Preaching)'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해 설교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도 중요하고 구성 요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그것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청중의 마음으로 어떻게 그 설교 내용이 전달될 것이냐에 포커스를 맞춘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구성방식도 중요하고 콘텐츠(contents) 정말 중요하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지 무엇을 전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전달방식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문화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인지성향 등 여러 가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를 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준배 박사가 시인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 관해 말했다. "페르소나(persona 가면mask이나 인격person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개인이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연극이나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라는 말이 있는데 가면이라는 뜻도 있고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삼위 3pers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감독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기작품 '살인의 추억' 이후 오스카상은 받은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 감독의 페르소나(영화계에선 어떤 감독이 자신의 분신 혹은 상징처럼 선호하는 배우를 뜻한다)로 배우를 썼는데 송강호입니다. 이 배우는 감독의 모든 생각과 뜻을 받아들여 연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도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를 그 시대의 성령의 페르소나로 사용하셨고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소강석 목사를 성령의 페르소나로 세우셨습니다. 소 목사님은 어디에 가서 어떤 설교를 하든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합니다. 저는 소 목사님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 중에 '상 파울교회'에서의 설교를 들었고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들었는데 그 현장을 딱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합니다. 그다음에 2017년 종교개혁 5백 주년 기념대회 때 소 목사님이 주 강사로 설교를 했는데 '말씀의 근원으로' 그러니까 완전히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제와 영 관련이 없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은 어느 현장, 어떤 대회, 어떤 형식의 모임이 됐든 거기에 딱 맞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017년 12월 소 목사님과 대만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대만 까오씽이라는 곳인데 그 도시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열차로 타이페이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책을 갖고 다니는데 덩리쥔(鄧麗君,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대만 출신 가수)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 목사님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한테 물어봤습니다. '안 목사님은 이선희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덩리쥔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중화권이 사랑하는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이 노래를 부른 덩뤼쥔이라고 그랬죠. 그러니 소 목사님이 뭐라고 하냐면 '나는 이선희야. 이선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그대를 만나' (회중 웃음) 소 목사님은 별을 참 좋아하세요. 이선희를 가장 좋아한다는 거예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날 저녁 때 타이페이에 5천 명 모이는 따워줘이라는 대만 최고의 교회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소 목사님이 나와 나눈 대화 가운데서 덩뤼쥔의 노래 '첨밀밀' (蜜蜜 '티엔미미' 달콤해요)' '니 샤오 더 티엔미미(笑得蜜蜜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달콤해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대만 사람들이 음악으로 대단히 감동을 했어요. 대만 사람이 사랑하는 덩뤼쥔 자기들 노래로 불러주니까 감동을 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다음 해에 한 8천 명 수용할 수 있는 대만에서 제일 큰 허핑체육관에서 열린 성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소 목사님이 그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하모니카로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을 연주하니까 대만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아니 소 목사님은 우리 대만인이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끼더라고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소 목사님은 시대를 해석하고 말씀으로 치유하는 설교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감사예배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소천하신 이후인데 그때 '고래를 위하여'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고래'라는 시를 인용한 설교였습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라고 설교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님이 한국 교회 고래였고 그 고래가 국민일보를 낳았고 또 이영훈 목사를 낳았고 또 조민재 국민일보 회장을 낳았고 또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낳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고래'라는 시적 언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그때도 이선희 노래를 불렀는데요. (회중 웃음) '그 모든 것 기적이었네. 은혜였네. 눈물이였네. 이렇게 개사를 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소 목사님 그 음악을 그 현장에 맞게끔 사용하면서 참, 소 목사처럼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기념 예배에 딱 맞게끔 하면서 설립자 조용기 목사 그리고 이영훈 목사와 국민일보 회장을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모두 아우릅니다. 이렇게 해박하고 탁월하게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이 시대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유럽에도 같이 가서 성회를 지켜봤고 춘천순복음교회 성회도 지켜봤는데 그때마다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 포럼을 통해서 소 목사님의 그 메시지를 우리가 잘 수용해서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앞서 안준배 박사가 그 자질을 실제 목격하고 증언했다. 그렇듯 “이 세상의 광대들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기 위해 그토록 애틋함과 애절함을 갖고 노래하고 연기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구원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에게 애틋함과 애절함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스스로 광대임을 밝히고 그것을 실제로 입증해 성공한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설교관을 세 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최근 경영계에선 기업 현장에. 예술가 혹은 예술적 요소를 도입하는 예술적 개입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에도 예술적 개입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나는 문학의 옷을 입혀 성경 말씀을 전합니다. 2. 음악의 옷을 입혀 성경을 전합니다. 3. 성경을 이야기로 전합니다." 성숙(成熟)이란 ‘나’와 ‘남’ ‘우리’와 ‘그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발전의 한 단계다. ‘남’과 ‘그들’은 ‘나’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은 나에게 득(得)이 된다. 상대를 부정확하게 아는 지도자는 지형(地形)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낙하산병(落下傘兵)과 같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지도자의 성숙과 직결돼 있다. ‘기억의 감옥’에 갇히면 ‘기억의 포로(捕虜)’가 되기 십상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2-14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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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남 종교개혁 500주년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에 루터의 글들은 저렴하고 빠르게 복사되기 시작독일 전역 두 주간유럽 전역 두 달 만에 전파 칼빈은 스물다섯에 모든 교회의 기초 교리의 근간 ‘기독교강요’ 집필 스물일곱에 출판 이른 저녁 내리는 눈발은 교회 마당에 흩날린다.  이른 저녁 내리는 눈발은 교인 신발에 흩날린다. 이른 저녁 내리는 눈발은 교인 기도에 흩날린다. 이른 저녁 내리는 눈발은 변두리 교인 지붕만 다니며 흩날린다. 이른 저녁 내리는 눈이 그립고 우리와 같이 살던 교회 마당과 그 변두리 교인 지붕이 그립다. 변두리 동네는 교인들의 둥지였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새운 자에게만 온다. 바람에 떠밀려 새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나이테의 중심처럼 믿음은 중심이 있다. 사람들아 촛불이나 태극기가 아닌 믿음으로 모여라. 그리고 가자 저 믿음의 중심으로. 살아서 가자. 살아서 여럿이 얽매인 삶에서 믿음과 자유의 교회로... 지난해 말 발표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는 종교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신자 수에서 개신교(967만6000명 19.7%)가 불교(761만9000명 15.5%)를 앞서 1위로 발표됐다. 종교가 없는 국민(56.1%)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2500만 인구 중 종교가 있는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한국전쟁 당시 루터교를 믿는 미국 병사들이 많이 참전했다.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를 이겨낼 수 있는 병력 자원을 5대호 지역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마침 그 지역은 루터교 신자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루터교는 신자 수가 현재는 5000~6000명 정도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17년 10월 31일 오후 2시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대문에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의 문제점을 지적한 ‘95개 논제’를 붙였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분노하던 내용이었다. 하나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망치로 붙였다’ ‘접착제로 붙였다’는 설과 함께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루터에게 불굴의 용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1439년 구텐베르크는 유럽 첫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1492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었다. 중세기 책 한 권 가격은 오늘날 차 한 대 값과 비슷했지만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에 루터의 글들은 저렴하고 빠르게 복사되기 시작했다. 독일 전역은 두 주간 유럽 전역은 두 달 만에 전파됐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건전한 교회를 위한 총회 개혁에 뜨거운 마음을 가진 오정호 목사는 총회 산하 노회 가운데 처음으로 2월 19일 새로남교회에서 종교개혁500주년기념대회를 서대전노회(노회장:김헌섭 목사)가 개최하도록 앞장섰다. 기념대회가 열린 새로남교회 본당 아래 윗 층이 가득 찼다. 개혁주의자 오정호 목사가 종교개혁500주년기념대회 깊은 울림의 소리로 선포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나 같은 죄인은 구주를 높이고 59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이후에 주님 뵈올 때 상 받게 하소서 전국장로회 부회장 강의창 장로가 기도했다. “고맙고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귀하신 뜻이 계셔서 서대전노회를 통해 새로남교회에서 종교개혁500주년 기념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올리게 됨을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에 세우신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한국교회에 본이 되게 하시고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소서. 특별히 오정호 목사님을 주셨습니다. 말씀 전하실 때마다 크신 능력이 나타나게 도와주시옵소서(회중 아멘). 주님 나라가 매우 어렵습니다. 혼란합니다. 공의와 정의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시고 하루 빨리 이 나라에 간섭해 주소서. 정부와 위정자와 정치인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를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게 해주소서.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 믿는 백성이 기도하게 하시고 은혜가 임하게 해 주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실 정성구 목사님 주의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시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교회 개혁이라는 말씀이 우리 삶에 푯대가 되고 칼빈의 종교개혁의 삶을 깨닫는 시간되도록 은혜를 내려주소서. (회중 아멘) 또한 이 시간 찬양대를 세워 찬양으로 영광 올리오니 우리 하나님 영광 받아주소서.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의 시간 되게 역사하여 주소서. 모든 걸 우리 주님께 의지하오며 그리스도 예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오정호 목사 깊은 바리톤으로 선창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이 시간 새로남교회찬양대에서 ‘내 주는 강한 성이오’ 찬양해 주겠습니다.” 장엄한 찬양이었다. “우리 함께 한 마음 한 입술로 봉독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시간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실 목사님은 전 총신대 총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칼빈주의연구원 원장이신 정성구 박사님이십니다. 서대전노회 목사님들의 스승이시기도 할 겁니다. 귀한 목사님을 우리 강단에 허락하신 은혜를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긴 박수) 정성구 목사 소년처럼 입을 열었다. “감사드립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오정호 목사님에게 아주 작은 선물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웃음) 이것은 아주 정교하게 가져왔는데 교회 개혁이라는 말은 사실은 성경에 기초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구약에 모세오경을 토라라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토라 (포장을 버벅대며 푼다 회중 큰 웃음) 이게 양가죽 구약 토라입니다. 한국에 목사님이 많이 계십니다. 아주 정교하게 가져왔습니다. (보자기를 푸니 포장이 되어 있다. 다 벗기니 탄성이 나온다. 투명한 플라스틱 판에 검은 색 히브리어 문자가 새겨진 누런 양피지가 드러났다.) 한국에 목사님이 많이 계시지만 오 목사님처럼 교회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 없습니다. 제가 총회역사박물관 전시장에 맨처음 들어가야 할 토라 한 페이지를 목사님께 드립니다. (큰 박수) 우리가 교회 개혁을 말할 때 솔라 그라티아를 씁니다. 그냥 공짜라는 말입니다. (큰 웃음 박수) 교회 개혁기념을 위해서 드리는 겁니다. 이걸 가격으로 따지면 한 천 만원 됩니다. 그것도 오늘 뜻 깊은 날에 목사님에게 드립니다. (박수) 목사님에게 제가 부탁 받은 것은 40분 설교입니다. 저는 두 시간이고 개의치 않습니다만 맞추겠습니다. (큰 웃음) 제 시계로 지금 8시 10분 전입니다. 그러니까 8시 30분까지 정확하게 맞추겠습니다. 제가 교단에 선 지 금년 오십 년입니다. 1967년에 대학 강단에 섰으니 말입니다. 딴 건 몰라도 시간 하나는 정확합니다. (웃음) 오늘 오 목사님을 비롯해 서대전노회 모든 목사님들 장로님들 그리고 이 새로남교회 성도 여러분 특별히 오늘 청년들 중고등부 학생들 저는 청년을 제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평생을 청년들에게 강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복되고 아름다운 기억의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주최 측에서 순서를 맡아달라기에 설교를 할까요 강의를 할까요 했더니 그냥 두루뭉수리로 설교 겸 강연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설교는 설교이고 강의는 강의입니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기념일이고 노회원들이 다 모였기 때문에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강단에서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뿐입니다. 첫째 말씀 선포를 할 수 있고 둘째 성경과 기독교 교육을 할 수 있고 셋째 당회나 노회나 총회가 사회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첫째와 둘째를 할 것입니다. 끝까지 다하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냥 하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덟 시 반이면 딱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기독교가 어디서 왔느냐 결국은 하나님 말씀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핵심이 뭐냐. 성경의 핵심이 세 가지인데 하나는 창조 그리고 인간의 타락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 즉 창조 타락 구속 세 가지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생겨난 것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거이 성경의 위대한 선포입니다. 창세기 일 장 일 절에서 계시록 마지막 절까지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그 다음은 인간은 허물과 죄로 타락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이 구속을 받을 수 없음을 아시고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니 중보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계획입니까. 새로남교회 건물이 어느 날 일어나니 세워진 게 아니고 설계사가 아주 정교하게 설계를 하고 소용될 재료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시공을 해서 이 건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속량해 주시기 위해 구원의 프로젝트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핵심은 제가 토라 한 페이지를 드렸는데 세상 민족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변방에 있 유목민을 계시의 바통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장차 우리의 중보자이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록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어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세워진 겁니다. 여기 학생들이 2층에 많이 왔다는데 예수님 제자들의 제자들이 또 그들의 제자들의 제자들이 뭘 말해 줄까요. 결국은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정확하게 전파를 할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을 보내주셔서 교회를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무엇을 말했을까요.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정확하게 전달했습니다. 그러면 또 그 제자들은 무엇을 말했을까요. 그들 역시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교회사적으로 말하면 폴리캅 이후 어거스틴까지 430년을 보통 교부시대라고 합니다. 교부라는 말을 쉽게 말하면 교회의 어버이입니다. 초기 430년까지 귀한 교부가 많았습니다. 그걸 제가 오늘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는 이단도 많았고 말하자면 이상한 운동들이 많아서 그것을 변증하기 위해 책을 많이 썼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강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평생 50년 동안 여기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칼빈박물관에는 폴리캅에서 어거스틴까지의 모든 자료들이 다 있습니다. 서양학자들도 와서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코리아에 이런 것이 다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계속 칼빈의 자료를 영어로 출판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앞에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전부 영어로 집필해야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우리가 앞장서서 선교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박해가 너무 심해 예수 믿으면 죽였습니다. 어떻게 죽였는냐. 톱으로 켜 죽이고 기름 가마에 튀겨 죽이고 아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 로마인은 로마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로마인들은 시저가 최고인데 예수쟁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즈 더 킹 오브 킹스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 왕이라고 합니다. 이러니까 로마의 가장 큰 걸림돌이 기독교인이 된 겁니다. 박해를 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박해를 해도 죽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전광역시 시장님이 와 계시는데 도로는 새로 닦고 난 다음에 아스팔트가 깔리는데 아마 옥천 가는 길 같은데 비포장도로가 있을 겁니다. 아스팔트 틈 사이로 풀이 올라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은 죽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은 생명이기 때문에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습니다. 아무리 박해를 하고 짓밟아도 복음은 죽지 아니하고 계속 퍼져나갑니다. 그때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이제 로마인들이 우리는 망했다 말합니다. 전부 다 예수 믿어라 하니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옛날에는 박해받던 사람들이 교회가 오픈되니까 귀족들 요즘 말로 장군들 도지사 시장 고위층들이 전부 다 교회로 다 옵니다. 뿐만 아니라 옛날 이교도들 쉽게 말하자면 태앙신 숭배자들 그리고 여신 숭배하는 사람들도 다 교회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교회에다 여신상을 대신해 마리아상을 만든 겁니다. 여기서도 너희들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벽을 뚫어 빛이 들어오게 해 태양신을 여기서도 섬길 수 있다 했죠. 한마디로 비빔밥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혼합주의 종교가 된 겁니다. 성경이 아니고 이렇게 이방종교들하고 뒤섞이게 된 겁니다. 얼마나 오래 가느냐 8년 동안 그렇게 되니까 이건 완전히 사도들이 세운 예수님이 세우신 기독교하고는 관계가 없는 이방 종교 다른 종교 이걸 영어로 슈도 크리스티애니티 pseudo Christianity 라고 하죠. 가짜 기독교라는 겁니다... 가톨릭을 큰집 우리를 작은 집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톨릭에 뿌리를 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성경과 교부들의 신학에 근거한 종교임을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를 프로테스탄트 아니냐 하는데 그 용어도 절대 쓰시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 오늘 집회 종교개혁이라고 했는데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 루터나 칼빈이 종교를 개혁했다는 말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교회를 개혁했다고 했지 종교를 개혁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다신교를 신봉하는 일본인들의 영향으로 그렇게 번역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개혁 500주년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면죄부는 대사(大赦)로 바뀌어야 합니다. 오백 년 전인 1517년에 종교개혁 시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앞선 200년인 1300년경부터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교회개혁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 것은 여러분 아시는 대로 1440년경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매스컴이라는 게 참 놀라운 겁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95개조 요즘말로 대자보 붙였습니다. 그거 확 뜯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당대에 유럽 공통어 라틴어로 인쇄되어 전달되었기 때문에 유럽이 뒤집어 진 겁니다. 당시 라틴어 이해 가능한 사람이 20퍼센트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95개조가 전달되어 역사기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백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존 위클리프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종교가 거짓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교황 제도는 성경에 없는 거짓 제도라고 그는 비판했습니다. 면죄부는 사기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성상숭배는 우상숭배라고 질타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에 존 위클리프가 우상숭배는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는 죽은 지 30년 뒤 무덤을 파헤쳐 그의 뼈를 한 번 더 불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갈아서 강에 뿌렸습니다. 다시 그것을 체코의 후스가 외쳤습니다. 프라하에 가면 베들레헴교회에서 설교 했습니다. 1415년 로마 교황청이 그를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 시켰습니다. 그는 불더미 속에서 찬송을 부르며 옆의 지스카 장군에게 말하기를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진리를 지키세요’ 한 마디를 남기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백 년 후 그리고 지금부터 오백 년 전 마르틴 루터가 그 후스의 사상과 정신을 받아 교회개혁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카톨릭이 믿는 신학과 신앙은 전혀 기독교가 아닙니다. 전혀 복음이 아니고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요한을 들먹이고 마리아를 말해도 예수님을 내세워도 철저히 거짓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것을 즉 가톨릭은 거짓 종교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개혁을 외친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르틴 루터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라 약점이 논리가 좀 부족합니다. 그러나 논리가 뛰어난 사람은 가슴이 뜨겁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십 년 뒤 칼빈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칼빈은 스물다섯 나이에 모든 교회의 기초 교리의 근간 기독교강요를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이 년 뒤 스물일곱에 그것을 출판했습니다. 이것을 쓴 네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째 칼빈은 어학의 천재였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에 능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 번역왕이고 칼빈은 성경 주석왕이라고 하는데 사실 칼빈은 성경 번역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경번역도 라틴어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학과 신앙의 기준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그러므로 개혁하는 교회가 새로남교회이고 개혁하는 노회가 서대전노회입니다. 두 번째 칼빈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해박한 성경지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칼빈은 독서광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폴리캅에서 어거스틴까지 구덴베르크 이후 인쇄된 방대한 책을 독파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로마 가톨릭과 논쟁해 진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레토릭 즉 수사학의 천재였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3세기부터 유럽에 유행했습니다. 신학과 신앙의 계보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까지 30분이 딱 됐습니다. (웃음) 약속은 지켜야 되는데 5분만 더 주십시오. 가 하시면 예 하십시요. (웃음과 박수)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도르트신경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 등이 기독교강요를 근거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개혁이 이루어지자 카운터 리포메이션 즉 반동종교개혁이 대두합니다. 이것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일으켰습니다. 제슈이트 즉 예수회가 앞장서서 기독교와 성도들을 배멸하고자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진 프랑스 신자들을 위그노라고. 했습니다. 위그노파 수장이 폴리니 제독이었습니다. 그런데 1572년 성 바돌로매 축일에 위그노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두 달 사이 칠만 여명을 죽였습니다. 여러분 이거 아세요. 오늘 이 시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하고 기념예배. 한번 드리면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솔라 스크립투라 성경대로 산다고 해놓고 우리가 지금 성경대로 살고 있습니까. 성경을 제대로 믿기나 합니까. 목사님들 설교가 미국의 번영 신학에 물들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 된다는 건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고약한 사상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구속사적인 깊은 진리를 깨닫지 않고 인생은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복음을 믿는 게 아닙니다. 솔라 피데 오직 믿음으로만 삽니까. 솔라 그라티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은혜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솔루스 크리스투스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있습니까. 솔리 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까. 저는 이 메시지를 1977년부터 40년 동안 우리 교단 목사님들에게 외치고 발을 구르며 호소했지만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약속대로 제가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리고 축복이 넘치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이 놀라운 밤을 통해서 교회와 교단이 새롭게 변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박수) 오정호 목사가 사회석에 섰다. “순서를 바꾸어 합심 기도드리겠습니다.” 서대전노회원들의 주제 기도에 따라 새로남교회는 교회가 새로 나는 개혁의 기도로 뜨거워졌다. 새로남교회는 종교개혁 아니 교회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메달을 제작해 참석자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금색 동에 새겨져 있었다. 세계역사를 바꾼 칼빈의 기독교 교리 교범 ‘기독교강요’에 대한 칼빈연구소 원장의 소개는 정작 약했다. 종교개혁의 주제는 루터나 칼빈이 아니라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대한 깊이 있는 소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것에 정통하고 그 사상이 누구나 아는 믿음이 될 때 교회가 개혁되고 그 개혁을 유지하고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진정한 칼빈주의자 위그노가 있는 곳이 그랬고 우리도 그랬던 것처럼... 2017-03-15
    •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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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3-15
  • 한국교회 130년 좌표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놀랄 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그것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많은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1945년 해방 이전의 한국교회의 성장에 관해 간략하게 다루고 해방 이후의 한국교회의 성장과 문제점에 관해서는 장로교 중심적으로 다루고 앞으로 나아갈 좌표를 설정해보려 한다. 1. 초기 한국교회의 성경 중심적 기초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해를 1884년으로 잡는다. 그 이유는 최초의 체류 선교사인 의사 알렌(Horace N. Allen)박사가 1884년 9월 20일에 인천에 도착했고, 이틀 후 1884년 9월 22일에 서울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시점은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Rev. Horace G. 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Rev. Henry G. Appenzeller)가 도착한 1885년이다. 두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훗날 감리교인들 이나 혹은 장로교인들이 자기 교파가 먼저 도착했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게 하기 위해 그들이 손을 잡고 함께 해안으로 뛰어 내렸다는 이야기는 매력 만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적인 근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제일 먼저 해안에 발을 디딘 사람은 아펜젤러 부인이었다.”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중국(Cheefoo, China)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해 온 요한 네비우스(Rev. John Nevius)의 선교활동 원리를 수용하여 한국에서도 적용했다. 네비우스 원리는 일반적으로 “3자 원리”(three self principles)로 알려져 왔다. 그것들은 “자전”(self-propagation) “자치”(self-government) 그리고 “자립”(self-support)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선교활동의 방법을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으로 수용했다. “언더우드 박사는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주로 우리는 네비우스 방법을 수용하도록 인도 받았다”고 전한다. 네비우스(Nevius)선교정책은 사실상 성경공부가 강조된 정책이었다. “진정한 핵심은 성경공부 제도에 있었다. 이 제도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공부하도록 격려했으며 성경공부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곽안련은 네비우스 방법의 성공 비결은 자전 자치 자립이상으로 교회 사역의 각 분야에서 성경을 보편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성경 위에, 단순한 성경 본문 위에 건립되었다”고 확신한다.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성경에 권위를 부여했다. 성경은 초기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확실한 기준이 되었다. 초기 한국교회를 섬겼던 선교사들이 그 당시 한국교회의 상황을 평가한 것은 한국교회가 얼마만큼 성경중심으로 성장해 왔는지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물론 성경 그 자체가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음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이다. 그러나 한국의 성경은 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 온 것이 분명하다... 성경공부와 성경공부 반은 한국교회의 발전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들 속에서 신앙과 지식의 기초를 놓아 왔다”(S. A. Moffett, Bible Society Record of ABS, 1916. 11., p.216). “성경은 한국에서 제일 공부가 많이 되는 책이다. 교회생활의 매우 뚜렷한 특징은 성경공부에 있다. 성경공부 반은 겨울에 열흘에서 2주일 동안 중심지에서 열린다. 겨울마다 족히 12만 5천명의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목적은 단지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배운 것을 출신 교회에 전달해 주기 위한 것이다”(Annual Report of NBSS for 1917, p.32). “한국교회의 주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때문이라는 것이 충분히 관찰한 사람들의 확신이다”(Annual Report of NBSS for 1930, p.104). 그리고 초기 한국교회의 성경 강조는 그들의 신앙의 삶의 전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 선교 보고는 "성경 자체가 물론 다른 모든 나라에서처럼 복음 전도의 가장 큰 요소로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왔지만 한국의 사역에서는 이 성경이 유달리 독특한 위치를 점유해 왔다. 한국교회의 능력, 영성, 기도에 대한 큰 믿음, 후한 기부정신은, 전교회가 성경 지식에 깊이 젖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오고 있다”(북장로교 선교회 25주년 보고서, p. 17)고 평가한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중심으로 성장해 갔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생활한 초기 한국교회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영적인 성장과 함께 숫자적인 성장도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2. 한국교회 성장에 기여한 몇 가지 특이한 현상 (1) 천년기 전 재림설과 한국교회 성장 복음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한국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었다. 한반도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계속적인 충돌의 현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1910년 일본에 합병된 후 36년간 계속적인 억압과 핍박 속에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 이후도 1950-53년 사이 한국동란과 계속되는 군사 구테타 및 군부 통치는 한국 내에서의 고난과 핍박이 계속되었음을 증거 한다. 새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정부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신문과 방송을 철저하게 조종했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남한의 정치적 민주화는 신문 방송에 상응하는 자유를 가져다주었다”(The New Encyclopaedia of Britannica, p.960)라고 기록한다. 대략적인 역사적 사건만 열거해도 복음의 전파가 고난의 때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과거 역사는 복음이 이 땅에 들어 온 이래 이런 저런 모양으로 복음 전파와 한국교회에 시련의 과정이었음을 증거 한다. 이와 같이 과거의 한국 역사는 수난의 역사였다. 적어도 한국의 토양은 복음 전파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김영재 교수는 복음이 전파된 이후의 한국의 상황을 천년왕국 신앙과 연계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천년왕국 신앙과 고난을 견딘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당시부터 6.25동란을 겪을 때까지 줄곧 불안한 사회적인 상황에서 살아왔으며, 핍박 하에서와 고난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므로 불안 속에서 안정을 찾는 백성들은 쉽게 내세 지향적인 종말신앙을 복음으로 받아 들였다”(김영재, 「한국기독교의 재인식」 p.240).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신앙(전천년설)은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특히 신사참배 반대자들에게는 옥고를 이기고 순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위로와 활력을 불어 넣어 준 신앙이 되었다”(Ibid). (2) 교회 분열과 한국교회 성장 김의환 박사는 그의 저서 「기독교회사」의 한 장에서 “한국교회의 부흥과 분열”을 다룬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p.405-458). 김의환 박사는 I. 한국교회의 부흥 요인을 1. 외적인 요인들과 2. 교회의 진취적 정신으로 나누고, 교회의 진취적 정신에서 (1) 대부흥운동 (2) 전도 집회들 (3) 네비우스 선교방법 그리고 (4) 군복음화 계획을 열거한다. 그리고 II. 분열의 원인으로서 신학 논쟁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한국 장로교회가 어떻게 분열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처음 장로교 분열은 일본의 한국 점령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는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신사참배의 문제는 결국 교회를 분열하는데 일조를 했다. “일본인들은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을 당시 1937년에 한국 기독교인들을 기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1938년에 정부는 모든 교회가 그들의 예배에 참석하기 전에 먼저 신사에 참배해야한다고 명령했다”(Cf.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January 1939, p.10).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대부분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의 강요를 그대로 순응할리 없다. 결국 신학교가 둘이 되고 교단이 나누이게 된다. 한국의 청교도 칼빈주의의 중심인 평양 신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1938년 9월 30일 자진해서 무기휴학 선언을 했고, 1939년 3월부터 조직된 새로운 신학교 설립 기성위원회는 1940년 4월에 정식으로 조선신학교를 서울에서 개교하였다. 조선신학교는 서울 승동교회 하층을 사용했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 444). 조선 신학교가 시작될 당시 조선신학교는 자유주의라는 이유로 총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1945년 남쪽과 북쪽이 38선으로 나누인 이후 조선신학교가 남쪽 장로교 총회에 속한 유일한 신학교가 되었다. 조선신학교는 1946년 장로교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General Assembly Theological Seminary)로 인준을 받았다(G. T. Brown, Mission to Korea, Board of World Missions, Presbyterian Church, U.S, 1962, p.177). 하지만 조선신학교의 신학적 입장은 계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남쪽 장로교회의 좌경화를 지켜본 신사참배 반대로 옥중에서 핍박을 받은 옥중 성도들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 망명 갔던 보수신학자들이 힘을 합쳐 세운 보수 신학교가 1947년 10월에 부산에서 박형룡박사를 교장으로 모시고 문을 열었다. 이 신학교가 바로 고려신학교였다. 그런데 고려신학교 설립자이신 한상동 목사와 교장 박형룡 박사 사이에 이견이 생기게 되었다. 박형룡 박사는 자유주의 신학과 싸울 전략으로 신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한상동 목사는 과거 평양신학교가 평양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총회의 유일한 신학교로 역할을 감당한 것처럼 고려신학교가 부산에 있어도 유일한 장로교 신학교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고려신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을 반대하였다. 결국 박형룡 박사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여 1948년 6월 옛 평양신학교의 정신을 이어받은 신학교로 장로회신학교를 서울에 설립했다. 그리고 장로회신학교는 1949년 4월 19일 서울에서 모인 제 35회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로 인준 받았다. 이로써 한 총회 내에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가 총회 직영신학교로 존재하게 되었다. 총회의 주도권을 찾은 보수 쪽 인사들이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합동을 제안하였고 조선신학교 쪽 인사들은 합동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함을 알고 신학교 합동을 반대 하였다. 한국동란이 1950년 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하였다. 6.25 한국동란 직후 1951년 5월 26일 부산 중앙교회에서 제 36회 속개 총회가 모였을 때 총회가 직영 신학교로 인정한 양 신학교를 취소하고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자는 안건의 가결을 보았다. 그래서 총회의 결의대로 총회신학교가 19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교장 감부열 선교사외 교수 박형룡 명신홍 권세열 김치선 한경직 제씨를 모시고 개교하기에 이른다. 총회 내에서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조선신학교 측 인사들은 1953년 6월 10일 서울 한국신학대학(조선신학교 후신) 강당에 모여 “법통 총회”란 이름하에 제 38회 총회를 속개한 다음 그 다음 해부터 “대한기독교장로회”란 새로운 이름으로 교단을 창설하였다(김양선, 한국 기독교 해방 10년사, p. 227). 이렇게 하여 1947년 10월에 창립된 교려신학교와 19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개교한 총회신학교와 1953년 6월 10일 시작한 한국신학대학으로 나누어져 세 개의 장로교 교단이 형성되게 되었다. 자연히 한국의 장로교회의 교단은 고려 측 총회 측 기장 측으로 나누어져 존재하게 된다. 그 이후 한국장로교회는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제 44회 총회로 모여 WCC 문제로 정회되었는데 WCC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회되는 그날 1959년 9월 28일 서울로 옮겨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였고, WCC를 반대한 사람들은 1959년 11월 24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였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p. 452-457). 이로써 한국장로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혹은 승동측)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혹은 연동측)으로 둘로 나누이게 되었다. 그 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이 1979년 주류측, 비주류측, 중립측으로 나누어졌고 계속해서 합종연횡(合從連衡)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장로교만 100여 교단이 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분열이라는 아픔을 통해 숫자적으로 성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을 사용해서도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3) 십일조 강조와 한국교회의 성장 한국교회는 십일조 헌금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십일조 헌금의 강조를 위해 그 근거를 구약에서 찾는다. 특히 목회자들은 헌금 강조를 위해 말라기를 인용하곤 한다. 인용된 성구는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등이다. 말라기 3:8의 내용은 헌금을 강요할 때 사용되고, 말라기 3:10은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와 같은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십일조의 강조는 교회 안에 이상한 형태의 헌금제도를 낳게 했다. 어떤 교회는 축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 십일조”(prepaid tithe)를 강조하기도 한다. 선 십일조란 십일조의 금액에 따라 하나님이 수입을 보장해 주신다는 생각으로 수입이 있기도 전에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노름을 하는 셈이다. 하나님이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라 명하셨으니 먼저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 십일조의 십 배를 수입으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십일조 헌금과 다른 헌금이 한국교회 내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심지어 근래에는 어떤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했다. 사실상 십일조의 강조는 1950년대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 말은 일본의 36년 통치기간에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1950년 한국동란(6.25동란)을 겪으면서 교회 재정은 극도로 피폐되어졌고 재정확충의 필요가 대두되었다. 한국동란은 한국민족에게 고난과 고통을 안겨 주었고 따라서 고통 속에 처한 한국교회는 기도와 회개를 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시 인근 산 속에는 이곳저곳에 불법 기도원이 설립되고 성도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나라의 고난을 기도로 분출하게 되었다. (4) 교회당 건축과 성전의식 예배당을 구약성전으로 생각하는 관습은 예배당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부 목사들은 강대상이 있는 곳을 제단(altar)으로 생각하고 안수 받은 목사이외의 다른 성도들은 올라갈 수 없도록 한다. 특히 여자 성도들은 강대상을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런 관습이 시행되는 교회에서는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릴 때 나이 많은 할머니 회장님은 아래 강단에서 사회를 하고 아들정도 되는 젊은 청년 목사는 윗 강단에서 설교를 한다. 이런 관습이 여인은 제단에 올라 갈 수 없다는 구약 교훈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처럼 교회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예배당 건축에 자극제 역할을 했고 많은 예배당의 건축은 교인 수를 증가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에 세계 10대 교회 중의 몇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의 역사적 진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잘못을 통해서도 교회를 인도해 주셨음을 증거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못할 때 하나님은 그의 지혜로 그 잘못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성경이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참조 롬 3:5-8)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 한국교회가 지키고 취할 것 고등종교의 타락원인을 고찰하면 첫째 성직자의 급증 둘째 종교 기관수의 급증 셋째 기복주의 성향 그리고 넷째 교회 및 교회 기관들이 권익 집단으로 전환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부분에서 위험 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서구 사회는 후기 기독교 사회로 이미 접어들었다. 한국 교회도 후기 기독교 사회로 들어가는 시기가 곧 다가 올 것이다. (1)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고 성경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귀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백성을 축복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한국 교회는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의 원리에 따르기보다 편의와 실리에 따라 말씀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약시대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나에게 제물은 바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하신 상황과 비슷하다고 사료된다. 의식이 있는 목사들에게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그들은 한국교회에 현재 팽배한 것은 “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라고 답변을 한다. 이 말은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성경의 원리보다는 교회의 숫자가 증가한다면 성경원리에 맞지 않아도 좋고 심지어 이단적인 방법 일지라도 사용하겠다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신학교에서도 “역사적 비평적 해석방법”(The Historical Critical Method)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은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단순히 인간의 합리를 적용하여 성경을 해석한다. 요즈음 여러 가지 명칭으로 등장한 해석 방법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 중심적인 접근보다는 인간 이성 중심적인 접근이 많다. 한국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 갈 때 소망이 있다. (2) 순교의 정신을 계승할 것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와 같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이에 일제는 1938년 2월에 아직도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버티는 장로교회를 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일제의 압력에 밀려 1938년 2월부터 9월 총회가 열리기까지 전국의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일제에 굴복하고 신사참배를 찬성하고 말았다(김양선, 한국 기독교사 연구, p. 186 이하).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남침으로 인한 공산당 점령기간에 수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순교한 성도들의 삶은 자신의 생명보다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교회는 믿음의 선진들이 생명을 바쳐 지킨 순교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3)행사나 프로그램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바로 서야한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100주년 기념으로 2007년 7월 8일 상암 구장에서 “2007년 한국교회 대 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고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한국교회는 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고, 구제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로서 설교할 때 죄와 회개 거룩함은 할 수 있으면 언급을 피했습니다. 회개나 반성보다 듣기 좋고 부드러운 말을 골라 설교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복음을 변질시켜 갔습니다.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입만 살고 행위는 죽은 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겉모양은 돌아가지만 내면은 죄악이 쌓여 있는 한국 교회를 깨끗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옵소서”(아름다운 동행 제16호)라는 말씀의 설교를 전했다. 옥목사의 이 설교 말씀은 한국 교회 목사들을 대표해서 한 말씀이요 한국 교회가 귀 담아 들어야할 내용이다. 박윤선 목사는 생애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죄인 됨을 대중 앞에서 고백했다. 한국교회는 1907년 회개 운동을 통해 부흥운동이 확산된 것처럼 회개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에 처해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몰아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성경 말씀 안에서 내면적으로 거룩하고 충실하게 성장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4) 한국교회는 기도의 열정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한국교회의 기도의 열기가 점점 식어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회로 유명하고, 금요일 철야기도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가 철야기도를 하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 9시나 10시에 모여 12시 전으로 모든 기도회를 마친다. 그리고 예전에는 성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장소로 수많은 기도원이 있었다. 지금은 사회의 발전과 함께 그런 기도처소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물론 우리는 미신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반드시 기도처소에 가야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때나 어디에서든지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하는 백성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한국교회는 좋은 기도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니 이를 계속 전승시켜야 한다. 4. 한국교회가 버리고 개선할 것 우리는 “나는 나의 싸움에 하나님을 끌어 들이는 욕구중심의 신앙인인가?” 아니면 “나는 하나님의 싸움에 나를 헌신하는 소명 중심의 신앙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한국교회가 교정해야할 몇 가지를 함께 묵상하도록 한다. (1)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영감의 방법으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교회가 사용할 정경 66권을 주셨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가 예수님 재림 때까지 사용할 공적이고 객관적인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또 계속해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객관적 계시에 버금가는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혼돈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지 정 의를 가진 존재로 창조 받았기 때문에 감정에 많이 좌우된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의 감정도 객관적 계시에 조종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 주관적 경험을 중시 할 때 결국 그 결과는 내세 지향적이 되며 윤리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 (2) 기복신앙의 조장으로 축복받기 위해 헌금하는 경향이 한국교회 내에 많다. 헌금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마음과 몸을 바치는 뜻에서 드리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이 하나님께 바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헌금 경향은 축복을 받았음으로 감사해서 바치기보다는 축복을 받기 위해 바치는 것이다. (3) 한국 교회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 예배는 전통적으로 말씀중심의 예배였다. 성도들의 관심이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서부터 자신들의 몸 운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 운동으로 오순절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박수치는 것 손을 오리는 것, 무릎을 꿇는 것, 춤을 추는 것 등 육체적인 표현이 빈번하게 되었고,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칠레의 오순절 신자들의 경우) 등의 음성적인 표현도 곁들여 하는 경향을 낳게 했다(이재범, “현대 오순절 교회 예배의 특징”, 『성경과 신학』 6권, p. 103).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목사 혼자서 흥행하는 식의 예배는 바람직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오순절식의 예배처럼 성도들이 육체적 표현과 음성적 표현으로 예배에 참여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오순절 예배의 경우 인간 감정의 촉발을 조장하여 그 자체를 마치 신과 하나 되는 경지에 들어가는 황홀경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 예배자의 마음을 가장 소중히 여기신다. (4) 건전한 교회를 정착시켜야 한다.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가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 대형교회는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데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처신하고 다른 교회들의 필요를 채우는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때로 대형교회들이 자만에 빠져 질서를 파괴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대형교회들 중 장로교회들이 한국 명칭은 장로교회로 사용하면서 영어표기로는 “무슨 공동체 교회”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명칭을 사용하는 목사는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5) 목사의 직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종교개혁 사상은 성경에 기초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재발견하여 예수님을 중심으로 삼는 것이었다. 개혁자들은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얻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 죄인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유일한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성자숭배를 반대하고 교황주의를 반대하며 목사가 제사장이라는 교권주의도 반대했다. 목사는 말씀의 선포와 성례를 집행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이다(김영재, 한국 기독교의 재인식, p. 287). (6) 예배드릴 때 설교 본문을 교독하는 관습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범하는 것이다. 근래에 한국 교회의 예배의식을 살펴보면 목사가 설교 본문을 읽을 때 회중의 참여를 의식하여 교독이나 합독할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봉독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봉독을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이다. 성경봉독은 설교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다. 예배드릴 때 시편을 교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설교의 본문을 교독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봉독은 예배 인도자가 낭독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The Book of Church Order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Chapter 50, Verse 1). (7) 예배드릴 때 목사가 가운을 입는 일과 성찬 집례 시 흰 장갑 끼는 일은 개혁주의 전통이 아니다. 어떤 한국교회는 예배드릴 때 목사가 가운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목사와 장로가 모두 가운을 입고 예배드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상 매체를 통해 설교하는 대부분의 목사들이 가운을 입고 설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목사가 예배드릴 때 가운을 입는 것은 개혁주의 전통이 아니다. 목사가 예배드릴 때 가운을 입으면 목사와 성도들을 구별하고 목사를 특별 계층으로 인식하게 하는 잘못을 범한다. 가톨릭의 사제들은 가운을 입으므로 일반 성도들과 자신들을 구별시킨다. 그리고 목사가 성찬을 집례 할 때 흰 장갑을 끼고 집례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예식을 성스럽게 인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겠지만 “성찬식이 주일 예배보다 더 거룩하다거나 예배가 성찬식보다는 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김영재, 한국 기독교 재인식, p. 289). 성찬식을 예배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면 중세 교회의 잘못을 답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처음 성만찬을 제정해 주신 장면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눅 22:13-23). 예수님이 첫 성만찬을 제정하실 때 예수님께서 장갑을 끼셨다든지 아니면 그 당시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셔서 성만찬 집례를 하셨는지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보통 식사하시는 방법으로 성만찬을 제정해 주셨다. 목사가 설교할 때는 가운을 입지 않고 성찬을 집례 할 때는 가운을 입으면 성도들이 설교보다 성찬을 더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설교나 성찬 모두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찬은 구원받은 가족들만이 참여하는 가족 식사이지만 설교는 전도의 역할까지 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8) 교회 내에 잔존하는 여러 가지 잘못된 행태를 변혁시켜야 한다. ① 성경은 신약교회의 제도 중에 하나로 제비뽑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교단은 총회장 선거를 제비뽑기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선거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성경을 경시하는 현상이다. 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의 교훈을 에누리하고 있는 것이다. ② 무자격 신학교의 난맥상을 개선해야 한다. 일 년에 두 차례 학기 초가 되면 기독교 신문에 신학생 모집 광고가 나온다. 그런데 광고에 나온 어떤 신학교는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광고도 하지 않고 아름아름 학생을 모집하여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도 많다. 이와 같은 신학교는 어떤 한 개인이 주관하거나 어떤 한 교회가 주관하면서 자격 없는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다. ③ 후임 목회자를 선정하는데 부자 세습을 지양해야 한다. 근래에 한국교회는 1세대 목사가 은퇴하고 후임 목회자를 모시는 과정에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교회의 의사와는 다르게 거의 강제로 담임목사로 세우는 경우를 가끔 본다. 아버지 목사가 은퇴할 때 전체 교인들이 아들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겠다고 하여 공동의회를 거쳐 아들 목사를 담임 목사로 모시는 것은 크게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의 형편을 감안할 때 가능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향한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되리라 사료된다. ④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직분을 벼슬처럼 생각하는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들은 봉사의 직분들이다. 교회의 직분들은 벼슬자리가 아니다. 성경 말씀은 분명하게 교회의 직분들이 섬기는 자리요, 봉사의 자리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면서도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막 10:45). 나가는 말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겨야한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은 고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항상 성경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야 한다. 이것이 130년을 헤쳐 온 우리의 나아갈 좌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만큼 성장하고 쓰임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해 성급한 평가를 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겸손, 겸손, 또 겸손의 자세로 우리의 연약성을 개선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박형용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2017-02-13
    • G.MISSION
    • G.SERMON
    2017-02-13
  • K 선교사와 미자립교회
    중화권 선교사 언어훈련을 익힌 뒤 1997년 미국자치령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교회 개척 100여명 출석 교회로 성장시켜 좋은 업적을 남긴 오정현 총회 목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다시 밟고 다시 시작해야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유 모든 일은 기록과 역사에 남아 이번에는 정말 오만과 거짓 허울은 벗어야 그것은 김선규 총회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돼 12월 6일 아침 카톡으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평생 중화권 선교에 전념하는 K 선교사에게서였다. 안녕 하세요! ... 횃불신학교에서 “Conversion Study of the Chinese students in Korea :factors, process, and types”(한국의 중국 학생들의 회심 연구 : 회심의 요소들과 진행과 유형)이란 제목의 연구를 7년간 연구하고 금년에 은혜로 마쳤습니다. 미국 Pastoral Psychology(목회 심리학) 학술지 게재요청과 미국에서 책 출판 제안을 받았 습니다. 중국어로도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선교시대의 주인공이 될 해외유학생 사역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려고 시작했는데 근저이론으로 연구하는 후학들에게도 방법론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원에 감사드리며 복된 성탄 되시기를 바랍니다!^^ K 선교사 드림 총회 파송 K 선교사는 2001년 공식적인 선교의 문이 닫혀있는 중국을 향한 효과적인 선교모델이 되어 주목을 받았었다. 그는 언어훈련을 익힌 뒤 1997년 선교지에서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며 “태평양 화인교회”를 세워 1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교회의 성도들은 낮에 무더운 작업환경 속에서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이면서도 매일 저녁 교회에 나와 기도회에 참석하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받았다. K 선교사가 사역하던 지역에는 당시 2만여 명의 중국인들이 있었다. 이 지역은 미국의 자치령으로 무관세 및 물량 제한 없이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한국의 업체를 비롯해 대만 홍콩 미국 등의 약 40개 봉제업체가 진출해 수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선교 열정에 불타던 K 선교사는 말했다. “그동안 중국 내에서의 선교만을 중국선교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고 중국 밖에서의 중국 선교는 매우 소외되어 왔습니다. 중국 개방 이후 수많은 근로자와 유학생 및 이민자들이 전 세계로 진출하고 있어 우회적이기는 하나 저들을 통해 직접 중국 선교의 효과를 크게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2016년 현재 K 선교사는 99년간 화교들의 마음과 정신을 위로해 온 터전 인천에서 교회를 7년간 섬기고 있다. 현재 인천에 사는 화교들은 3천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들 중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5백 명 정도가 모여 산다. 30~60년대까지만 해도 차이나타운과 신포동에 사는 화교 수가 2만 명이 넘었다. 이들은 130년 전 인천항을 통해 인천에 들어왔고, 사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면서 인천에 뿌리를 내렸다. 외국이라는 이질적 환경에 적응 하고 정착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어 이들에게도 정신적 위안이 필요했다. 중국 북성동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교회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 교회는 99년간 화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오늘을 잇고 있다. 인천 유일의 그 교회는 1917년 설립되어 99년째를 맞고 있다. 국내 7개 화교교회 중 하나인 이 교회는 100여 년간 한 자리를 지키면서 한국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살아온 중국인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정신적 위안을 주는데 힘을 써왔다. 인천 중구 북성동 3가 5에 위치한 이 교회는 서양 감리교 선교사인 맥클라렌 여사와 중국인으로 기독교 신자인 손래장((??章)씨가 1917년 6월 1일 개인집을 예배당으로 임대해 화교들을 대상으로 포교를 한 것이 시초다. 현재 인천의 유일한 중국교회인 이 교회는 세계의 중화인의 선교 본부로 일을 하기 위해 인천의 새 개발지역으로 옮길 계획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실은 2015년 당시 부총회장 김선규 목사와 혼탁한 것을 맑게 바꾼 GMS 이사장 김재호 목사와 이 교회를 방문해 들었다. 이제 총회장이 된 김선규 목사는 세계선교보다 국내미자립교회 후원을 위한 밑 빠진 독 채우기 사업에 자기 코가 석자인 오정현과 매진할 모양이다. 오정현은 불완전한 서류만으로 총신을 입학하고 졸업한 사실이 드러나 훌륭한 업적이 있음에도 총회 목사 자격이 있느냐의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그는 편목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조차 출석이나 시험을 치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부산 동아대 출신의 총신 교수 김정우는 세 과목의 출석과 학점을 이화여대의 최순실 딸 담당 교수처럼 출석 참석 체크도 해 주고 점수도 다 주었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해 사랑이 많은 사랑의교회 관계자에게 이래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들었다. “비난받을 일이긴 하나 책임질 일은 아닙니다.” 나 자신도 총회 전도국장 8년을 지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미자립교회 문제는 그 교회 교역자의 자질과 기도의 문제이지 돈이 모자라 자립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전도국장 재직 시 통계를 낸 미자립교회에 대한 자립 교회의 후원 현황에는 교회 자립보다는 후원금 챙기는 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미자립교회 목사들이 아주 많은 게 드러났다. 그 자료를 당시 돈 뿌리고 당선된 길자연에게 보여 주었더니 거들떠보지도 않고 총회장 공약으로 내세운 농어촌 교회 후원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총회 돈으로 지금도 못 쓰고 있는 염곡동 부지를 많은 의혹 가운데 사들이는 데 혈안이었다. 그렇듯 그는 투자한 것 이상으로 돈을 거둬들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걸물(傑物)이다. 그런 그의 재주 덕인지 총신 음악과 교수 채용 이력서 하나가 결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길자연을 닮아 부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전 칼빈대 교수 길한나의 것이라고 했다. 총신 음악과 교수가 김영우 사퇴 시위가 한창인 2016년 11월 총신 로비에서 격한 음성으로 그 사실을 들려주었다. 길자연은 사임 압박을 받고 있는 그 와중에 그의 잔여 임기 후임자 김영우와 자신의 딸 임용 문제에 대해 무슨 말을 나누고 이력서를 내게 했을까.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다. 그런데 취임 후 6개월 안에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나머지 대통령 임기를 허송하게 된다고 한다. 총회장의 임기는 1년은커녕 10개월 남짓이다. 그러므로 임기 시작 3개월 그러니까 12월 안에 처리할 일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걸로 신년과 부활절과 목사장로기도회를 치르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12월 8일 총회회관에서 교회자립개발원(이사장 오정현) 창립감사예배를 드리고 교회자립개발원 사무실은 총회본부 사무국 안에 두고 사무국 총무까지 선임할 모양이다. 그간 총회는 총회 운영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해 오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다른 조직을 총회 안에 두고 총무 급 인원을 채용할 모양이니 총회장이 제 정신인지 고개가 흔들린다. 이런 비효율과 비리의 파행을 우리는 오랜 세월 총회선교국에서 떨어져 나간 GMS를 통해 보아왔다. 총회전도국이 있는데 무슨 이유로 또 독립된 기구와 안원이 필요한가. 김선규와 오정현은 자기 코가 석자인 자기들 교회나 제대로 자립하기 바란다. 두 교회 다 많은 부채로 허덕이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김선규와 오정현은 중화권 선교의 일인자 K 선교사와 개척 미자립교회 성장의 산 증인 총회 뉴 스파크 권순웅 목사나 유쾌한 목사 소강석에게서 조언을 듣기를 바란다. K 선교사는 중국교회 발전을 위해서는 송도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옛날엔 개항지가 인천항이었기에 중구 차이나타운이 인천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송도가 제2의 개항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 현재 송도에는 200여개의 교회가 있지만 중국교회는 하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송도에 중국교회가 있어야 할 이유로 중국 유학생과 송도신항이 생기면서 크루즈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는 중국관광객들의 증가를 들었다. 또 인천글로벌캠퍼스 뿐만 아니라 연세대 인천대 중국학술원 등에 이미 중국 유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있고 앞으로 칭화대가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에 중국교회가 하나쯤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이면 중국교회 건립 100주년이 된다. 100주년을 맞아 송도에 중국어로 예배를 드리는 예쁜 중국교회가 생기면 중국관광객은 물론 유학생들이 자주찾는 명소가 되고 교회 발전의 발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K 선교사는 현재 중화기독교교회와 송도국제도시 내 종교부지의 맞교환을 제안했다고 한다. 현재 북성동 인천중화기독교 교회의 예배시간은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중국어 설교, 오후 2시 한국어 설교로 이뤄지며 주말에만 동시통역으로 진행된다. 수요일은 오전 11시 예배 및 기도회, 금요일 저녁 9시부터 기도교회가 열린다. 이제 총회장이 되었으니 약속한 대로 그 교회를 다시 찾아 선교의 정신을 다시 다듬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정현은 무슨 일이든 총신 출신이 아니니 총회와 관계된 일을 맡으면 안 된다. 제발 좋은 자질과 좋은 풍모를 지녔고 그에 어울리는 좋은 업적을 남긴 오정현은 총회 목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다시 밟고 다시 시작하고 그것에 대한 사과를 박근혜 대통령만큼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인데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난받을 일이긴 하나 책임질 일은 아닌” 일로 탄핵까지 받은 처지다. 오정현이 총신 졸업 의혹을 안은 채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유이나 모든 일은 후일 다 기록과 역사에 남으니 명심하기 바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오만과 거짓 허울은 벗고 제대로 바로 하길 바란다. 그것은 김선규 총회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년 제102회 총회는 늘 그렇듯 순식간에 당도할 것이다. 살아 있으면 어김없이... 2016-12-11
    •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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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11
  • CBS 진주방송 개국
    그는 요령을 흔들어 돈 200원을 받으면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려고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전 세계와 전국의 교회를 누비며 온 마음과 몸과 뜻 그리고 돈까지 다해 복음을 전해 진주소싸움은 삼국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전승(戰勝)기념 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 유래가 깊다. 예전에는 진주의 "큰판(소싸움)"은 남강 백사장이었다. 소싸움이 벌어지는 며칠 동안은 싸움소가 일으킨 뿌연 모래 먼지가 백사장을 뒤덮었으며, 수만 군중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고 수백 개의 차일(遮日)이 백사장을 온통 뒤덮었다고 한다. 진주라 천리 길이 대진고속도로 개통으로 짧아진 시간 덕에 새에덴교회 봉고차로도 4시간만에 진주성남교회에 도착했다. 김문기 장로는 차 안에서도 복음송 반주를 들으며 노래연습을 했다. 성남교회에서 추천하는 진주산청각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값은 싸고 음식은 풍성하고 맛났다. 2016년 11월 17일 저녁 7시 30분 진주성남교회(양대식 목사)에서 소강석 목사의 부흥집회가 아니라 경남CBS진주방송 개국감사예배가 있었다. 윤기화 장로(경남CBS본부장)의 사회로 시작된 예배는 허영학 목사(동진주교회/설립추진위원장)의 개국감사 인사 기도 황성진 장로(진주삼일교회/설립추진부위원장) 경남CBS권사합창단의 합창이 박정렬 권사 지휘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전도에 헌신적인 소강석 목사는 본문 사도행전 16:6-10을 근거해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 예수”를 열정적으로 전했다. 그는 메시지를 전하는 가운데 하모니카를 불기도 하고 상여가 나갈 때 喪輿꾼들이 뒷소리를 받아 하는 요령을 요령잡이처럼 능숙하게 흔들기도 했다. 소강석 목사는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구슬픈 상엿소리를 요령을 흔들며 불렀다. 요령은 강대상 밑에 준비되어 있었다. 어이~야 디이~야 이~제~가면 어~디~가나~어이~야 디이~야 아멘은 아무나 하나 노래하며 아멘을 유도하고 서편제 창도 구사하는 그의 다양한 몸짓과 소리와 메시지에 회중은 넋 놓고 빠져들었다. 그의 하모니카 재주는 형의 등 너머로 배운 것이고 요령잡이는 초등학교 시절 그의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알바였다고 한다. 그가 요령을 흔들면 동네 어른들이 그에게 수고비를 주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 돈을 받으면 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고 한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전 세계와 전국의 교회를 누비며 온 마음과 몸과 뜻 그리고 돈까지 다해 복음을 전한다. 건강까지 해칠 정도로 걱정스러운 그의 복음의 열정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기를 바라고 다만 기도할 뿐이다. 201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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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ISSION
    2016-11-29
  • 영적인 만나로 만족하라 - 소강석 목사
    영적인 만나로 만족하라 민수기 11:4-9 2016년 8월 10일 오후 7시 30분 원주 오크밸리리조트 컨벤션 센터.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컨벤션 센터 안 입구에는 집회 때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교인들이 의자에 앉아 길게 기다리고 있었다. 컨벤션 센터는 새에덴교회 교인들로 가득 찼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어려운 시절 말하기 어려운 이면도 솔직하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그는 솔직한 목사다. 2016년 8월 9일부터 12일까지 원주 오크밸리리조트에서 “하나님의 세계로 떠나라”(민 14:6-9) 주제로 열린 장년여름수련회 둘째 날 저녁집회 때 밝힌 그의 미국에서의 카지노 체험기는 참으로 유쾌하다. 7시 30분 저녁집회가 시작됐다. 영적인 만나로 만족하라 민수기 11:4-9 할렐루야! 이 저녁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만나를 허락해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늘 양식을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만나로 여러분의 영혼이 오늘도 배부르게 먹고 여러분의 삶이 새로워지시길 바랍니다. ♪ 내 주린 영혼 만나로써 먹여 주시니 그 양식 내게 생명 되겠네 이 후로 생명 양식 주와 함께 먹으며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지 둘째 달 15일이었습니다. 출애굽을 한 지가 달포 정도가 되었단 말이죠. 그때 그들에게는 애굽에서 가지고 온 양식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양식이 떨어졌으니 난리가 난 거죠. 애들은 배고프다고 울어대고, 어른들도 허기를 참지 못한 거예요. 그러나 어디 가서 양식을 구해올 수가 있어야죠.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온갖 불평과 원망을 다 합니다. “아, 우리가 애굽 땅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그때는 아무리 중노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고기 가마 곁에 있으면서 고기라도 실컷 먹었는데... 왜 우리가 광야로 나와서 이토록 고생을 하는가! 이제 양식도 다 떨어져서 굶어죽게 생겼으니, 차라리 애굽에서 있었으면 좋았을걸... 모세와 아론 때문에 우리가 광야에서 굶어죽게 되었도다! 아, 그리운 애굽이여, 그리운 옛날이여!” 이렇게 이들은 온갖 불평과 원망을 내 쏟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을 그리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만나라는 양식을 내려주셨습니다. 저녁에는 하나님께서 메추라기가 진을 덮이게 하셨고 아침에는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생긴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내리신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만나를 그냥 내려주시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험의 계명과 함께 내려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나를 주시면서 그냥 주시지 않고 만나를 거둘 방법과 계명까지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명을 지키나 안 지키나 하나님이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실 때 그냥 주시지 않아요. 항상 시험을 하시면서 주시곤 하십니다. 처음에는 복을 좀 주셔놓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가 안 사는가, 십일조를 잘 하는가, 주일성수를 잘 하는가, 하나님이 항상 시험을 하시면서 복을 주세요.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하는가,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가... ♪ 내가 너를 믿고 맡긴 사명 너는 왜 잊어버렸나 나만 따르리라 하던 약속 왜 잊어버렸나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고 십자가만 면류관만 바라보며 의의 길 간다더니 위로하기 보다는 위로받고 사랑받기 원하네 그러나 백성들 가운데는 쓸데없는 탐욕이 생겨 다음날 먹을 것까지 다 가져오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게 된 것이죠.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시험에 실패를 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외를 두실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안식일 전날에는 안식일에 먹을 것까지 만나를 거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는 만나를 안 내리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안식일 전날에는 그 이튿날 먹을 것까지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때는 절대로 벌레도 안 먹고 냄새도 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만나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간섭 안에 있는 특별한 하늘양식인 것이죠. 그래도 일부 욕심 있는 인간들이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러 간 거예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는 만나를 안 내리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이 머저리들이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러 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이 사람들도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범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세계에서 살겠습니까? 어떻게 믿음의 세계에서 살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참된 가나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서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훈련시켰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잘 지키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언약 백성들에게 참 안식과 신령한 복을 허락해 주시기 위해서였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일을 잘 성수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은 온전히 예배하는 날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요, 교회에 봉사하는 날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의 육체와 영혼이 안식을 하는 날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 즐겁게 안식할 날 반갑고 좋은 날 내 맘을 편케 하니 즐겁고 기쁜 날 이 날에 천하 만민 다 보좌 앞에서 참 되신 삼위일체 다 찬송부르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냥 만나를 먹여주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면서 어떤 것을 깨닫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만나는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1)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날 기쁜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날 기쁜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2) 그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간절하게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다시피 광야에서는 농사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장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나를 안 내려주시면 그들은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만나는 한꺼번에 주시는 것이 아니잖아요. 농사를 지으면 양식을 비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일매일 만나를 딱 하루치 양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전날만 이틀 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냥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간절히 의지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만나를 안 주시면 그날은 당장 굶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일주일 이상을 안 주시면 그 일주일 동안 그들은 굶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당장 굶어 죽겠죠. 그러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주신 만나는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일용할 양식이라는 표현을 하셨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 6:11 그러니까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매일매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냥 의지하지 않아요. 그냥 기도하지 않습니다. 간이 절이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왜냐하면 일용할 양식이 없으면 그들은 굶어죽기 때문이죠.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삶의 현실이었습니다... ♪ 하나님 손길 떠나 버림받은 이 죄인이 하나님 은혜 없인 살 수도 없습니다 죄악과 욕심으로 병들었던 이 내 몸 황홀한 주의 은혜 이 죄인을 고치셨네 십자가 부여안고 주의 사랑 채운 마음 나의 왕 나의 임금 나의 사랑 드립니다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주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제가 일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음식은 두 가지 음식 즉 양식입니다. 다시 말해 일용할 양식과 한식은 생명의 떡입니다. 일식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가. 이것을 하나님이 40년 동안 매일매일 시험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고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광야훈련을 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저도 무척이나 광야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 원래 저는 목사 될 사람이 아니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살 사람이 아닙니다. 절대로 영적으로 살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양극단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엄청나게 인간적인 면이 많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광야훈련을 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김문기 장로 젊었을 때 도박으로 집 한 채 날렸대요(웃음). 여러분 내가 했다면 집 한 채만 날리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만약 도박을 알고 정말 그 뭡니까 카지노를 알았으면 아이고 배팅을 끝내주게 잘 했을 겁니다. 내가 배짱 있는 거 아시죠. 하나님께서 저를 혹독한 광야훈련을 시키셨어요. 제가 말씀드렸지만 광주 계시는 저희 문 장로님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같이 미국 라스베가스에 갔습니다. 저는 카지노 슬롯머신 앞에 섰습니다. 장로님이 가자고 해서 비위 맞추느라 갔습니다. 가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했습니다(웃음). 그런데 장로님 돈을 계속 잃어요. 계속 잃어요. 저한테도 해보라고 돈을 주는 겁니다. 속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무너지게 하는 자다 계속 그랬습니다. 장로님이 또 하라는 겁니다. 또 속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옆의 권사님이 저보고 목사님은 복 있는 분이시잖아요 그러는 겁니다(박장대소). 그런데 그게 하나님 음성으로 들리는 겁니다(웃음). 그래서 하나님 믿습니다 하고 장로님이 준 동전을 넣고 딱 땡겼습니다. 지가 떨어지데. 그 동전 떨어지는 소리 있잖아요. 그게 계속 떨어져야 하는데 이 작것이 계속해서 돈만 먹는 겁니다(박장대소). 장로님하고 방에 돌아갔는데 잠이 안 옵니다. 계속 짤각 짤각 소리가 나는 겁니다. 1시가 되고 2시가 되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모양이다(웃음). 다시 내려가 돈을 바꿔 땡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마누라하고 또 내려온 겁니다(박장대소) 쯧쯧. 그래서 제가 장로님 보고 회개합시다 하고 올라가서 잤습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도 이런 극단적인 데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나고 혹독한 광야훈련을 시키셔서 제가 이렇게 영적인 사람으로 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광주신학교에 다닐 때에는 진짜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누가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다음 달을 먹고 살 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매일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사는 거죠. 백암교회 시절을 생각해봐도 정말 혹독한 시련의 기간이었습니다.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얼마나 제가 많은 고생을 했는지. 무슨 일이든지 그냥 저절로 쉽게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맨날 기도해야 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됐습니다. 그러니까 간이 절이도록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우리 교회가 부흥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교회는 쉽게 부흥하고 저절로 부흥하는 교회도 있는데, 저는 하나님께서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힘들게 부흥시키셨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은혜로운 광야 훈련이고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만... 그러니까 제 목회는 마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 같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거예요. 조금 풍족하면 너무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또 부족하면 하나님께 간이 절이도록 기도를 합니다. 이건 권용관 장로님과 김찬호 장로님이 잘 알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왜 나도 이렇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가? 왜 이렇게 영적 만나로 살아가게 하는가? 내가 누군데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단 말인가? 은혜로 살자. 영으로 살자.” ♪ 내가 주님 앞에 무엇입니까 마른 막대기가 아닙니까 내가 주님 앞에 쓸모없었던 타다 남은 재가 아닙니까 나를 도우소서 일으키소서 나와 동행하사 힘주시고 내 영혼 기쁨을 얻게 하시어 내 영혼 만족케 하옵소서 4)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한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통하여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깨닫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요. 또 하나님을 간절하게 의지하고 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나에는 더 중요한 의미와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한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 2:17 여러분, 보세요. 이기는 자에게는 하늘 보좌에 감추었던 만나를 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또 흰 돌의 축복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은혜와 축복은 바로, 주는 자와 받는 자만 아는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추었던 만나에는 하나님의 비밀한 은혜와 축복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는 남에게 말하기도 곤란하고 또 말해서는 안 될 은혜도 있습니다. 마치 히스기야 왕이 내탕고를 보여주지 말아야 했는데 내탕고를 보여준 것이 실수였잖아요? 그 내탕고는 비밀리에 간직하고 보존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까발리는 바람에 훗날 자신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축복을 빼앗겨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비밀한 은혜는 내탕고와 같은 은혜요, 경외스럽고 신비스러운 은혜입니다. 바로 이런 은혜를 알고, 이런 은혜로 사는 사람은 절대로 주님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비밀한 은혜가 없으면 살아갈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주님을 떠나갈 수가 없습니다. 은혜로 안 살래야 안 살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있다 해도, 하나님의 비밀한 은혜와 축복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교회를 떠납니까? 주님을 떠날 수가 없죠.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이런 중독성이 강한 은혜를 떠나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 없이는 난 못 살아요. 당신의 은혜 없이는 난 못 살아요.” ♪ 밤 깊으면 너무 조용해 책 덮으면 너무 쓸쓸해 불을 끄면 너무 외로워 주님 내 곁에 있으면 좋겠네 이 세상 주님 없이 어이 살 수 있나요 다른 사람 몰라도 주님 없인 난 못살아요 한 낮에도 너무 허전해 사람 틈이 너무 막막해 오가는 말 너무 덧없어 주님 내 곁에 있으면 좋겠네 이 세상 주님 없이 어이 살 수 있나요 다른 사람 몰라도 주님 없인 난 못살아요(회중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을 훔쳤다.) 오늘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깨닫는 사람은 항상 영적인 만나로만 만족하며 삽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도 필요합니다. 집도 필요합니다. 힘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영적인 만나입니다. 우리는 만나가 없이는 못 살아요. 항상 만나의 비밀한 은혜를 소유하고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삶이 믿음의 세계에서 사는 삶이요,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영적인 만나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녁 7시 반에 시작해 10시 넘어 집회가 끝나 김문기 장로의 안내를 받아 새에덴교회로 돌아오는 교회버스에 올랐다. 맨 뒷자리에 우리 부부와 같이 탄 성도는 용인에서 서울의 집으로 돌아갈 차편을 걱정하며 딸에게 말했다. “더 들었어야 하는데 짧아서 아쉬운 설교였어. 너무 재미있고 은혜로웠어...” 2016-9-10
    • G.MISSION
    • G.SERMON
    2016-10-05
  • 광복을 넘어 통일로...
    성장주의 교회 사회와 안티크리스천의온갖 비난과 지탄을 받고 있어 이러한 한국교회의 위기유일한 타개책 통일운동 지난 9월 12일 오후 8시32분께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 지역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는 1978년 계기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지진으로 나타났다. 이번 지진으로 경주·대구는 최대 진도 6 수준 인근 지역인 부산·울산·창원은 최대 5 수준을 느낀 것으로 확인됐다. 진도 6은 무거운 가구가 움직이는 정도라 많은 사람이 놀라 밖으로 나가는 수준이다. 진도 5는 거의 모든 사람이 지진동을 느끼며 그릇이나 물건이 깨지는 위력 수준으로 전해졌다. 경주 지진에 온 국민이 놀랐다. 그런데 핵은 수십 배 더 끔찍할 것이다. 사실 한국은 역사상 핵폭탄 같은 피해를 세 번 당했다. 불가항력이 아니었다. 정신 차렸으면 막을 수 있었다. 첫 번째가 1592년 임진왜란이다. 나라 전체가 이순신처럼 방비(防備)했으면 왜군을 물리쳤을 것이다. 유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은 차마 눈뜨고 읽을 수가 없다. 임금이 피신 간 산하(山河)에서 백성들이 죽어 나갔다. 칼에 찔리거나 굶어 죽었다. 일본군이 떠난 한양성에서 “백성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유성룡은 적었다. 두 번째 핵폭탄은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선조들은 왜 일본처럼 유신(維新)을 못했나. 3차는 1950년 한국전쟁이다. 똑같이 분단됐는데 남한만 군사력 무장에 허술했다. 그 두 번째 국가 불행에서 벗어난 광복절 71주년을 기리며 ‘광복을 넘어 통일로’ 가자는 결의를 다지는 교계 차원의 행사가 있었다. 8.15 광복절은 임시정부와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해서 얻은 민족적 성과다. 광복은 문자 그대로 “빛(光)을 되찾음(復)”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을 광복절 원년으로 계산한다. 김인기 목사(성장교회, 중부협의회 대표회장)는 교계에서 말과 행실이 바르고 점잖으며 덕이 높고 손까지 큰 사람이라 하여 대인(大人)으로 통한다. 2016년 8월 14일 오후 7시 30분 군포제일교회(권태진 목사)에서 군포시기독교연합회(회장 김인기 목사)는 유쾌한 목사 소강석을 강사로 8·15광복절연합성회를 가졌다. 성장교회 찬양단 찬양인도가 있은 뒤 김인기 목사가 회장 환영사를 했다. “할렐루야! 광복 71주년 감사드리고 남북평화통일이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군포시기독교연합회에서 이런 집회를 마련해 우리가 예배드리고 은혜받고 기도드리기 때문에 그 날이 속히 오리라 믿습니다. 광복 71년을 기리는 찬양을 통해 성도들과 하나님의 기쁨이 함께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오늘 설교하실 소강석 목사님은 대단히 바쁜 분이시죠. 한 5만 명 목회하고 계십니다. 사실은 이번에 로스앤젤레스에서 8·15연합성회를 인도하셔야 하는데 제 간곡한 부탁으로 오늘 오시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와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에스라 1:1-4 본문을 이창범 목사(큰나무교회)가 봉독했다. 엘림교회(민장기 목사) 찬양대 찬양 후 교회 생태계 회복 선봉장 소강석 목사가 설교단에 섰다. 걸걸하지만 유쾌한 어조가 교회당을 휘감았다. “할렐루야! (우렁찬 박수) 오늘 군포시를 하나님 사랑하셔서 제가 이 자리에 온 줄 믿습니다. (큰 아멘) 아멘이 이 동네만 크고 저 동네는 작으니 어떻게 된 겁니까. (큰 웃음) 오늘 제가 네 번 설교를 하고 도시락을 차에서 먹고 오니 목도 가고 몸도 처지고 물 건너 간 한물 간 사람 같은데(큰 웃음) 하나님 음성 같은 은혜로운 찬양을 듣고 여러분을 보니 새로운 힘이 솟습니다(아멘에 이은 큰 박수). 김인기 목사님 목회 훌륭하게 잘 하시는 분이고 찬양대 참 훌륭했습니다. 우리 권태진 목사님(군포제일교회) 제가 개인적으로 형님이라 부르는데 사실은 아무리 봐도 동생 같아요. (큰 웃음) 잘 생기고 꼭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보이는 목사님이십니다. 사실은 오늘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저녁 집회를 하도록 선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인기 목사님께서 꼭 와야 된다 말해서 그쪽에 양해를 잘 구하고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박수) 김인기 목사님은 저희 교단에서 ‘기도한국’을 할 때 얼마나 충성스러운 귀한 동역자로 사역하시는지 모릅니다. 저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리를 따라 이리 왔습니다. 또 믿음이 없으면 의리가 없지요. 어느 장로님이 자기 분수를 알아야 되는데 집에 가서 월권을 했어요. 권사님과 사랑을 하다가 너무 세게 해서 그만 허리가 삐끗했어요. (웃음) 움직이지를 못해서 권사님에게 ‘어이 저 서랍에 파스가 있는데 좀 붙여주면 좋겠다’ 했어요. 그래서 권사님이 파스를 붙이면서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허리가 풀려서 그 파스가 좋아서 그랬나 했더니 아 글쎄 중국집 스티커였어요. (큰 웃음)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눕시다. 참 잘 오셨습니다. (모두 복창) 여러분은 덕혜옹주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이 영화는 권비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덕혜옹주’라는 소설에 기초해서 만든 영화인데요, 광복절을 전후해서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봐야할 영화라고 봅니다. 명성황후가 일본의 사무라이들에 의해서 처절하게 죽임을 당한 후, 고종황제는 다시 양귀인을 왕비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덕혜옹주를 낳은 거예요. 그녀는 고종황제의 온갖 사랑을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덕수궁의 꽃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불행하게도 아버지 고종황제의 독살과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열세 살에는 내선일체라는 명목 하에 일본으로 끌려가 갖은 냉대와 감시로 점철된 시절을 보냈습니다. 십대를 그렇게 보낸 후, 그녀는 일본 왕가의 다케유키라는 남자와 강제 결혼을 했습니다. 원래 고종황제가 조선에서 짝 지어준 남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제가 광복절 때 마다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할린 동포들의 눈물 젖은 역사입니다.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은 그야말로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탄광, 비행장, 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주먹밥을 두 개 밖에 못 먹으면서 얼마나 피눈물 나게 일한 줄 아십니까. 그러다가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해방 되었을 때 코르사코프 항구로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어요. 거기에는 우리 한국 사람도 만여 명이 족히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배가 세 척이 왔는데 그 배는 일본 배였기에 일본 사람들만 다 태워 간 거예요... 여러분, 안중근 의사(義士) 하면, 어떤 사람은 안중근 의사를 내과 의사(醫師)로 잘못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요, 안중근 의사는 내과 의사가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는 의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제국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아니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그는 이또 히로부미를 포살하려는 거사를 계획하였습니다. 그래서 1909년 10월 26일 이른 새벽, 안중근은 하얼빈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또 히로부미가 나오자 그는 곧바로 권총을 뽑아 들고 통쾌하게 세 발을 쏘아 이또 히로부미를 포살한 후 하늘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이 말은 러시아말인데 우리말로 하면 “대한민국 만세”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외쳤냐면, 자신의 행위가 대한제국을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그때 그에게 가장 그립고 가슴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던 분이 바로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왜냐면 어머니 보다 일찍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뭐라고 편지를 보낸 줄 아세요.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울먹이게도 남을 내용입니다. “아들아,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먹지 말고 죽어라!... 윤동주는 어떻습니까? 제가 요즘 시인 윤동주를 연구하며 윤동주 연작시를 쓰고 있어요. 내년이면 그의 탄생 100주년인데요, 제가 윤동주의 시적 화자와 일체화 되어서 윤동주의 고뇌와 시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시를 썼어요. 특별히 그가 쓰고 싶었지만 일제의 탄압 때문에 쓰지 못했던 시들을 제 나름대로 윤동주의 시적 화자가 되어 가지고 40여 편을 썼어요... 그는 시대적 양심과 정신과 사상 앞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려고 고뇌하고 저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더 큰 시의 세계를 알고 공부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데 창씨개명을 해야 했어요. 윤동주는 그러한 일에 대해서도 수줍어하고 고뇌하며 부끄러워했어요. 그러다 결국 일본 릿교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중, 일본 순경들에게 잡혀서 후쿠오카감옥 생활을 합니다. 그는 몇 년 수감생활을 하다가 풀려날 줄 알았는데, 생체실험의 대상이 된 거예요. 참 일본은 잔인했습니다... 그래서 이름 모를 주사를 맞고 그가 시들시들 죽어가요. 그는 정신이 가물거리면서도 항일정신을 불태우고 그의 시와 정신을 통해서 독립운동의 꽃을 피운 거예요. 한 마디로 그의 시는 민족의 제단에 화제로 드린 제물과 헌상(獻上)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그의 ‘십자가’라는 시에서 노래하듯 십자가에서 행복하게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모가지를 민족 제단에 아낌없이 바치게 됩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이 시를 윤동주 시인이 1941년에 지었습니다. 이때는 일제의 압제가 최악으로 치닫던 때입니다. 그는 서두에 이렇게 시를 시작합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렸다”고 말입니다. 그는 조국의 해방을 좇아오던 햇빛으로 이미지화했습니다. 그런데 광복의 축복이 아직은 십자가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방의 꿈과 길은 오직 저 십자가 곧 기독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윤동주 시인은 그 해방과 독립의 길을 십자가로 상징을 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고난의 상징 아닙니까? 그러니까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더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고난을 한국교회가 당해야 하고 계속해서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영광이고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도 하나님이 허락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그 고난의 영광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아낌없이 자신의 꽃처럼 피어나는 젊음의 피를 하나님 앞에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시처럼 대한독립을 위한 민족의 제단에 피의 제물이 되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십자가 시를 생각하며 ‘詩의 십자가’라는 시를 썼어요. 동주의 차갑게 식은 가슴 위에 한 가지 선물을 하고 싶네요그토록 목 놓아 울며 바라보았던 저 햇빛 걸려 있는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끝내 가슴에 안아 보지 못하고 머나먼 밤하늘 별이 되어 버린 청년 동주의 시퍼렇게 타들어간 육신 위에 햇빛 보내준 나무십자가를 목에 걸어주고 싶어요다시는 외로워하지 말라고 다시는 괴로워하지 말라고다시는 목 놓아 울지 말라고 그토록 사모했던 행복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의 곁에 놓아 주고 싶어요야수의 손톱과 발톱에 찢겨나간 검은 하늘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보혈의 붉은 사랑 한 줄기 조용히 흘리며 떠난 외로운 사내 동주에게 내 부끄러운 시(詩)의 십자가 눈물로 바치고 싶습니다. 결국 윤동주가 민족제단에 희생제물이 되던 그 해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역사적인 독립을 맞이했어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요. 그러므로 윤동주에게는 인간적으로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원자폭탄이 딱 두 개가 있었는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를 하고 더 이상 투하할 원자폭탄이 없었어요. 그런데 몇 개 더 있는 것처럼 일본에 공갈을 친 것이죠. 그리고 그 공갈에 일본 천황은 항복을 한 거예요. 그 항복으로 우리나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이루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우리 민족과 너무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하고 죄를 짓다가 바벨론에 망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끌려가기도 하고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는 사람은 바벨론의 통치를 받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영영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깨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멸망의 원인이 그들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회개운동을 하고 말씀운동과 부흥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당신의 은혜로 자유와 해방과 광복의 축복을 맞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 에스라 1:1-2 본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고토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제2의 영적 부흥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스라엘 역사와 우리민족의 역사가 비슷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어쨌든 우리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고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산화의 붉은 야욕이 동아시아 땅 끝까지 밀려오는 위기의 순간에도 이승만 박사를 통해서 자유대한민국을 세우게 되었고 6·25동란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어요. 그리고 세계의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이루어서 지금은 세계 12, 3위의 경제대국을 이루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사회와 안티크리스천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지탄을 받고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한국교회가 우리 민족의 경제발전에 정신적, 영적 진원이 되고 동력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한국교회마저 물량주의, 자본주의, 세속주의에 편승을 해 버린 거예요... 이러한 한국교회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통일운동을 하는 거예요. 통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이자 사명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각 교회 목사님들마다 설교를 통해서 먼저 교인들에게 통일 계몽운동을 시켜야 해요. “통일은 우리 민족의 미래와 후손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통일운동에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그런 통일의 열망과 바램이 국민들에게도 전이 되도록 해야 해요... 무엇보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할 때 한국교회가 욕먹는 교회에서 칭송받는 교회가 될 수 있어요. 원래 한국교회는 그런 교회였지 않습니까? 3.1운동을 비롯해서 독립운동을 하고 민족혼을 일깨웠던 것처럼 오늘도 교회가 그래야 해요.” 2016-09-17
    • G.MISSION
    • G.SERMON
    2016-09-16
  • 섬김의 지도자 류명렬
    제90회 총회장 찬송가공회 이사장총회와 오랜 소송을 벌인 황승기 이제까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자신의 후임 류명렬 목사를 세워 대전남부교회 제6대 위임목사 류명렬성경적 설교와 인품으로 그 목양지를 배가시키고 여호와의 이름을 높여 그는 총회도 섬겨 발전시킬섬김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겐 하늘이다. 우리는 날개를 펴고 마음대로 날 수 있는 새들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하고 불러 보면 내 마음은 금시로 따스해 온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하고 불러 보면 "오냐" 하고 들려오는 목소리. 참말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름. 바위도 오래 되면 깎이는데 변함없는 해와 달보다 더 오랠 하나님 아버지 이름. 2008년 10월 21일 황승기 목사(제90회 총회 총회장) 뒤를 이어 류명렬 목사가 1953년 9월 설립된 대전남부교회 제6대 위임목사로 취임했다. 이 날 원로장로가 된 임해순 장로와 함께 황승기 목사는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1973년 제58회 총회 총회장이고 아직도 살아계신 박요한 목사가 대전남부교회 제4대 위임목사다. 1991년 8월 4일 전도사로 대전남부교회에 부임해 위임목사가 된 류명렬 목사가 2016년 2월 28일 오전 11시 회중이 배가되어 가득한 본당 설교단에 섰다. 설교 본문 신명기 5장 11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치 아니하리라’ 제목 ‘주문과 거룩하신 이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제3계명이라고 하는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 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했습니다. 앞의 말씀이 명령이었다면 이어서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치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은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사람을 죄가 없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계명이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보다 지키기가 쉬운 계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 생활 가운데서 자주 범하는 계명이 이 세 번째 계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어떤 것을 가리킵니까. 오늘 이 시간 그것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셨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만 잘못 부르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인격적인 존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름이 있고 저도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으십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뜻을 가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은 이 여호와의 이름만 보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은 호칭입니다. 그래서 이름은 그 어떤 존재나 대상을 대리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이름만 보호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망령되게 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있죠. 우리는 그것을 주기도라고 합니다. 주기도에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기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뜻은 단지 여호와의 이름만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자체 즉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고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장 21절 말씀에 베드로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구원 받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입니다.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예수 예수 예수만 하면 구원받느냐 그 말이 아니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는 뜻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서 그 예수님을 대리하는 호칭인 예수여 라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회중 아멘.)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단지 이름만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정리할 것은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망령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웨입니다. 이 말이 구약에서 분명하게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거짓되다 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신명기 5장 20절에 ‘증거하지 말찌니라’ 제9계명이 나옵니다. 이 거짓이라는 말이 망령되다는 말과 동일한 샤웨입니다. 그러니까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말은 거짓되게 부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게 즉 진실하지 않게 부르는 것이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의 마당만 밟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수많은 제물을 가져온들 수양 수송아지 기름과 피와 고기를 드려 내가 배부른데 언제 이런 것들을 가져 오라 했느냐. 소용없다. 이런 행위는 너희가 다만 성전의 마당만 밟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후 13절에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 여기서 헛된 이라는 말이 망령되이 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말은 헛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생활 가운데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모습은 없을까요. 그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거짓 맹세 거짓 약속을 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말이나 주장을 확실한 것으로 보이고 또 만들기 위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함께 말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할 수 없는 약속이고 지켜질 가능성이 희박한 약속인데 마치 틀림없이 될 것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끌어들여서 약속을 하는 그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그런데 헛된 약속 거짓된 약속을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들여 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레위기 19장 12절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데 하늘에 두고 맹세하는데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등 여호와의 이름을 끌어들여 맹세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회중 아멘.) 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거짓과 함께하실 수도 없습니다. 거짓은 마귀의 습성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이 마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그러므로 거짓 약속과 거짓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24절 중요한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여러분 무서운 말씀입니다. 너희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인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이런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훼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 종교 집단에서 이런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이들이 누구인지는 설교 말미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이 사람들은 교인들을 자기 교파의 교인들로 만들기 위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릅니다. 구체적인 예는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날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만난 그 사람은 요즈음 보기 드물게 영적이고 신령하고 신실한 사람입니다. 대부분 목사이거나 선교사입니다. 아니면 사역을 하다가 지금 잠간 접어두고 기도원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신실한 전도사이거나 기도 많이 하는 권사입니다. 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이 사람이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나 우리 목사님이 내게 쉽게 이야기해 주지 않는 문제들을 내게 관심을 갖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인도가 너무 정확하고 확실한 것처럼 느껴지니까 정말 이런 신실한 분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배우자고 여러분을 어떤 곳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만난 그 사람은 영적인 목사도 선교사도 전도사도 권사도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될 것은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닙니다. 누가 보냈느냐. 그들은 나의 정보를 내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들로부터 이미 다 전달을 받고 그들의 보냄을 받은 연기자들입니다. 예를 들어 남 집사님이 옆의 조 집사님을 통해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한테 너무 잘 해주고 잘 도와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녀. 남 집사님의 정보를 조 집사님이 다 알아서 교회 밖의 사람에게 알려준 겁니다. 여러분 이런 겁니다. 어떤 상황이냐. 여러분 주변에 우리 대전남부교회 교인으로 위장해서 들어온 일명 추수꾼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 상황도 살피고 교인 상황도 다 파악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포섭할 대상을 찍어요. 저 집사님은 이런 문제도 요 집사님은 저런 문제도 있구나 하는 것을 파악하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접근하면 낚이겠구나 하는 판단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미래 기도 제목은 어떤 것인지 하는 데이터와 정보를 내가 신실하다고 믿고 만난 사람에게 다 전달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한 만남을 가장합니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나를 찾아왔던 그 집사님이 어느 날 영화관 앞이나 커피숍에서 둘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인 것처럼 그 사람을 만나고 나한테 소개시켜 줍니다. 그래서 잠시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참 지난 뒤 전화가 옵니다. 어떤 전화이냐 하면 내가 기도하는 중에 당신이 계속 생각이 납디다. 하나님이 나에게 형제에 대한 마음을 계속 주셨습니다. 내가 당신과 처음 만난 뒤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내가 도움을 드리고 싶어 전화를 했습니다. 여러분 표면적으로 보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런데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되게 이용하는 종교적인 사기극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혹하면 여러분은 그들의 낚싯줄에 걸려든 겁니다. 이제부터 그 사람은 아카데미 주연상을 탈 기세로 연기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안내해 데려가는 데가 있습니다. 그곳은 복음방입니다. 그곳에서는 성경의 비유를 가르칩니다. 씨 뿌리는 비유 등을 가르치면서 슬쩍 한마디 던집니다. 교회에 대한 비판이죠. 이 비판에 반응을 보이면 점차적으로 수위를 높여 갑니다. 결론이 어디까지 이르냐하면 교회에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동의하면 교회 비판은 중단됩니다. 여러분 이 복음방이라는 곳은 그들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학습하고 세뇌시키는 장소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이유는 우리 교회에 추수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한테 자꾸 어떤 만남을 가장해 신령한 목사님을 만나게 해 가라지니 씨 뿌리는 것이니 하는 여러 비유를 듣게 합니다. 그런데 저희 믿음의 교육과는 영 틀려서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만희를 교주로 하는 신천지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거짓말하고 이 거짓을 정당화합니다. 성경에 마귀는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거짓을 행하면서도 이것은 죽어가는 사람을 건져내기 위한 전략이고 정당한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이 신천지의 거짓말은 의를 위해서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을 도구화시킨 것입니다. 이만희를 예수님과 동일한 메시아로 만들고 교회에는 구원이 없고 이만희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 주변에 신령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믿지 마십시오. 정말 신령한 사람은 신령한 티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사람들이 신령한 티를 냅니다. 두 번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음 없이 미신적이고 마술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올바른 행위로 인정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죠. 그러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어떤 사람이 고난 중에 있는데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고난 가운데 좌절하고 낙심하지 않기 위해 탄식처럼 주여! 불렀다면 주의 이름을 부른 이 외마디는 주님을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아니라 의미 없이 함부로 주의 이름을 부르거나 마치 주의 이름이 어떤 마술을 행하는 주문인 것처럼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도박이나 범죄 행위가 드러났을 때 어떤 사람들이 주여! 읊조리는 것 같은 행위 말입니다. 이런 행위가 믿음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전락시키는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를 예전에 하신 분들은 회개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금 나와라 뚝딱 금 나와라 뚝딱 수리수리마하수리’ 정도의 주문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아무런 의미 없이 생각도 없이 주문처럼 주여! 주여!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예수님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주여! 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주여 주여 주여 했습니다. 예수님 하신 말씀은 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주문으로 외는 기독교 무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점치고 그것을 알려준다는 미신 행위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든 것에다 여호와의 이름을 갖다 붙이면 그게 믿음의 일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도 아닌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인 듯 포장해서 말합니다.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마음 이런 생각을 주셨다’ 떠벌립니다. 솔직하게 자기 생각인데 하고 말해야지 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릅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을 신학 용어로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고 나타내시는 방법을 성경에서 보면 때로는 구름으로 때로는 불로 때로는 음성으로 때로는 환상으로 때로는 꿈으로 하십니다. 어떤 때는 직접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꿈과 환상을 보고 예언하는 사람들이 기도원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꿈과 환상은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 즉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완전한 계시는 성경입니다. 꿈과 환상이 하나님의 계시의 도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귀의 도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꿈과 환상을 자기 마음대로 가공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그랬지 않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지고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어요. 역대하 18장에 보면 남 이스라엘과 북 유다가 연합군을 만들어 동편에 있는 길르앗 라못이라는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사람 여호사밧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선지자에게 물어보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 400명을 불렀습니다. 그때 제일 잘 나가는 선지자가 누구였습니까. 시드기야였습니다. 역대하 18장 10절에 보면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다른 선지자들도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예언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철로 뿔을 만들어 여호와께서 이 뿔로 저 아람 사람들을 찔러 진멸하게 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시청각 교재를 만들어 자기의 예언이 확실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이 거짓 선지자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언이 안 맞았습니다. 전쟁에서 남쪽 이스라엘과 북쪽 유다가 대패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전사했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했습니다. 여러분 가장 정확한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회중 아멘)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에 나와 있는 대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가정을 고난 가운데서 건져 주겠다 붙들어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약속하셨으면 믿고 기다리는 겁니다. 그 말씀으로 만족을 못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기도원에 가서 신령한 소리를 듣고 싶고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고 싶어 하는 이게 뭡니까. 불신앙의 행동 아닙니까. 교회 목사님들은 별로 신령하지 못해서 기도원에 가서 신령한 사람 말을 들어야 속이 좀 시원해지지 하는 겁니다. 어느 게 신앙적인 자세입니까. 말씀을 붙잡는 겁니까. 아니면 말씀에 만족을 못하니까 신령한 소리 듣고 미래에 대한 점을 치는 게 옳은 겁니까. 지금 성경에 있는 문자는 죽은 것이고 기도원의 신령한 분들의 말은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입니까. 그게 바른 믿음입니까. 그런데도 여러분 기도원 가지 않습니까. 제가 기도원 가는 거 막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쳐 복종시키고 하나님 말씀 붙들고 기도한다면 기도원 가는 거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도원 가세요. 뭔가 마음이 컬컬해서 점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면 기도원 백번 가도 소용없습니다. 옛날 경건한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라는 글자만 나와도 여호와라고 읽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이름을 그냥 부를 수 있느냐는 겁니다. 마치 오늘날 자식이 아버지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 아버지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듣고 홍길동입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예의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성함을 물으면 반드시 홍 길 자 동 자이십니다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아버지 이름만 해도 우리가 함부로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은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라고 읽지 않고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칭호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쓰고 아도나이라고 읽은 것입니다. 너무 거룩하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서기관들은 오늘날처럼 성경을 출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점 넷을 찍어 놓고 붓을 논 다음 목욕을 했습니다. 서기관은 자신을 정결하게 한 다음 그때 다시 여호와라는 글자를 썼습니다. 시편 99편 3절에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찌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41편 3졀에 보니까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라고 했습니다. 함부로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 생활 전반에 미치는 말씀입니다. 나의 행동이 로마서 2장 24절의 ‘너희 행위로 인하여 내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 모욕을 받는구나’ 하는 말씀에 적용이 되면 안 됩니다. 오늘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지 말고 여호와의 이름을 경솔하게 마치 주문처럼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는 분명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아멘)” 우리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으로 주의 영광을 보면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고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렇듯 류명렬 목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대전남부교회의 생존한 두 원로 목사 박요한 목사와 황승기 목사를 섬기고 있듯 그 노회와 우리 총회도 섬기리라.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제90회 총회 총회장을 지내고 찬송가공회 이사장을 지내며 총회와 오랜 소송을 벌인 황승기가 이제까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후임으로 2008년 10월 21일 류명렬 목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대전남부교회 제6대 위임목사 류명렬은 성경적 설교와 인품으로 그 목양지를 배가시키고 여호와의 이름을 높였다. 그렇듯 그는 총회도 섬겨 발전시키는 섬김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2016-08-11
    • G.MISSION
    • G.SERMON
    2016-08-13
  • 유태영의 메시지
    김영우와 같은 충청도 생긴 것도 비슷한 반기문 ‘애매 화법’의 한국 1인자 미국인들 가장 싫어하는 욕 “거짓말쟁이(liar)” 서천읍교회 단 1년도 제대로 시무하지 않고 총신총장도 별정직이라 이중직이 아니라는 변명의 달인 김영우 전국을 둘러보면 전국 어디에나 교회가 있고 들어보면 어디에나 메시지가 있다. 설교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주위에 있다. 메시지가 반드시 내 안에 들어와 마음을 휘저어 놓고 나갈 필요는 없다. 인생을 진지하게 묻지 않는다고 메시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소한 메시지, 평범한 메시지가 그립기도 하고 그것이 잔잔히, 그러나 더 오랫동안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유태영(서광교회)이 능력 있는 목사라는 소문을 진즉에 들었다. 이제야 인연이 닿아 그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4월 24일 주일 전주에 있는 서광교회에서였다. 그가 들려준 메시지는 본문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제목 ‘길이 있습니다’였다. 유태영의 메시지 자체는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다. 별다른 극적 사건도 없고, 생의 진리를 새삼 만나게 될 만한 기발한 사고 전환도 없다. 유태영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주제에 충실하면서 시종일관 조용하게 전하려고 애썼다. 그는 뜨거운 환호보다도 더 오래도록 가슴을 흔드는 잔잔한 마음의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그는 강조할 때도 부드럽게 말했다. 둘러보면 어디에나 메시지가 있고 들어보면 어디에나 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항상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 메시지와 메시지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고,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로 만들며 우리 마음에 잔잔히,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메시지로 바꾸어 놓는 좋은 설교자가 있어야 한다. 그 순간 ‘길이 있습니다’는 어느새 나의 길이 된다. 그것이 목사의 힘이고 좋은 설교의 신비다. 듣기 좋은 중간 톤으로 전한 그의 메시지는 20분 남짓이었다. 야곱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에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인생의 길을 걷는데 내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 입니까. ... 길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 길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통행 수단으로서의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니고 차가 다니고 기차가 다니는 통행로를 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할 사람의 도리를 길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 윤리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총회에서 교정선교회라고 하는 상비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부산교도소에 갔습니다. 거기서 설교를 하기 전 찬양 순서가 있었습니다. 모두 너무도 열심히 찬양을 합니다. 교도소 안에 가게 되면 풍금을 치는 분, 기타를 치는 분, 찬양을 인도하는 분 여러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는 한 젊은 분이 너무나 잘 해서 제가 같이 간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저 청년 너무 잘 합니다.” “저 청년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모르는데요.” “구미 어느 교회 권사님 아들인데 생활금고를 털다가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그 청년과 악수를 하면서 말을 나누는데 “목사님,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고 하는 겁니다. 얼마 전에 순천교도소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친구 목사님 교회 다니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아니 한 2년 못 봤는데 여기 있었다는 말이냐. 어떻게 여기 왔느냐.”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는데 자기 길이 맞는 것 같고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잠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것은 사망의 길이다... 여러분 길을 가는데 필요한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목적지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출발점이 있기 때문에 종착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 육신이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죠. 영혼은 하나님께로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정신없이 사는 사람은 목적지가 없이 삽니다... 여러분 인생의 종착지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천국가든지 지옥가든지 가봐야 알겠습니까. 우리 앞길에는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 마태복음 7장에서 말하는 길입니다. 좁은 길은 좁기 때문에 가기 힘들어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가면 갈수록 편해지고 축복의 길이 됩니다. 넓은 길은 넓고 평평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그 길은 어두워지고 절망과 멸망의 길이 됩니다. 여기서 좁은 길은 천국 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넓은 길은 지옥 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 말고 죄를 말하지 말고 헌금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빼면 어찌 되겠습니까. 인생의 종착역은 어디입니까.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교도소의 그 형제처럼 ‘내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말하겠습니까... 인생길에는 안내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키르케고르는 ‘우리 인간은 불안이라는 열차를 타고 절망이라는 터널을 지나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안내자 동반자가 누구이십니까. 어려서는 부모 나이가 들어서는 반려자 늙으면 자식들이 안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의 영원한 안내자는 없습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내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나와 함께하시며 인도해 주시며 붙들어 주시며 위로해 주시며 격려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황혼이 다가옵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하리라’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나를 붙잡아 주실 분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안내자와 보호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그 길‘이라는 위대한 선언을 해 주셨습니다...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이 더 행복해 질 수 있고 밀려난 사람들이 위로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있습니다. 왜 사는가.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이 고침 받고 새롭게 태어나는 아름다운 길이 있습니다. 갈등과 증오와 불평이 사라지고 화해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내가 그 길이다‘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길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길이신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길 되신 그분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길을 찾으십시오. 여기서 길 되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길 되신 주님과 함께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내자가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보호자가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 느낌표로 끝난 내 영혼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유태영의 메시지가 절대 필요한 김영우와 같은 충청도 출신이고 생긴 것도 비슷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애매 화법’의 한국 1인자다. 그런데 그런 화법의 일본 1인자는 단연 아베 신조 총리다. “지금 현재로선…” 같은 정치인 특유의 ‘조건부 어법’은 기본. 반 총장 저리 가라 할 ‘기름장어 화법’이 주특기다. 그런 아베 총리가 너무나 단호한 표현을 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1년 반 전인 2014년 11월 18일 저녁 관저 회견장에 선 아베 총리는 “원래 내년(2015년) 10월에 소비세를 8%에서 10%로 올리기로 약속했지만 연기하려 한다. 하지만 18개월 후(2017년 4월)에는 ‘반드시’ 올린다. 여러분께 분명히 ‘단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베는 1일 또다시 소비세 인상을 2년 반 연기했다. 시무도 하지 않는 서천읍교회 시무목사면서 총신 총장직이 이중직이 아니라는 김영우처럼 아베도 “지금까지의 약속과는 다른 새로운 판단”이란 알 듯 모를 듯한 이유를 댔다. 근데 ‘2년 반’ 뒤면 그가 퇴임한 후다. 더 웃기는 건 핵심 인사들이 하귀호처럼 군소리 없이 “넵. 알겠습니다”를 복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베가 용의주도하게 여권 지도부 인사들을 하귀호나 주진만처럼 다독여 주었기 때문이다. ‘네마와시(사전 정지작업)’가 ‘약속’보다 상위 가치인 일본식 ‘배려 문화’의 일단이다. 그들에게 가장 심한 욕은 “예의(배려심) 없는 놈”이다. 한국은 어떨까. 반 총장 방한 당시 야당에서 나온 “노무현과의 의리를 지켜라”는 말에 답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에서 쪽박을 차면서도 손보려 했던 것도 ‘배신의 정치’였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친구, 회사, 심지어 연예인 섭외에서도 으뜸 가치는 의리다. 일부 총회 정치꾼들도 하나님의 믿음이 아니라 시정잡배들의 이해관계에 따르는 의리에 의지해 정치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총회 정치를 한답시고 부정선거의 금권, 납골당 기금, 아이티 구제 헌금 등을 나누어 가지며 불의한 의리를 다졌다. 그러면 미국은 어떨까. 1987년 미국에 1년 살아보니 예의는 없어도 별문제 없다. 배려심이나 의리 따윈 더더욱 없다. 총회 정치권과 달리 다만 말을 뒤바꾸거나 거짓말을 하는 건 설 자리가 없다. 흥미로운 건 ‘막말 대장 트럼프’보다 ‘거짓말 대장 힐러리’에 대한 상대적 비호감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막말 100개보다 “(3만 개의 e메일이 있던) 내 개인 e메일 서버는 남편과 e메일을 주고받기 위한 것이었다(힐러리)→난 평생 단 두 통의 e메일밖에 쓴 적이 없다(빌 클린턴)”는 힐러리의 악의적 거짓말 1개에 더욱 분노한다는 말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욕이 “거짓말쟁이(liar)”인 이유를 알 것 같다. 힐러리를 ‘부정직한 힐러리(Crooked Hillary)’라 명명해 공격하는 트럼프의 감각은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압권이다. 앞으로 5개월 남은 미 대선에서 분명한 건 주위 사람들이 하도 권해서 부총회장 후보로 나왔다는 김영우 같은 반기문의 ‘애매 화법’이나 총신 총장은 별정직이라 이중직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 하귀호 같은 아베의 ‘기름장어 화법’ 같은 건 통하지 않는 진검승부의 전장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제 실제로는 서천읍교회도 제대로 시무하지 않았고 총신총장도 별정직이라 어느 법에도 걸리지 않는 변명의 달인 김영우는 이 찬란한 6월 총회 대들보 정용환과 섬뜩한 진검승부의 결투장 출전을 위해 6월 10일까지 거금 7000만 원을 내고 등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3개월 뒤 총회 현장에 후보이든 총회 결의 위반자이든 어떤 모습으로든 총회 현장에 반기문 얼굴과 혀로 서야 할 것이다. 그러면 유태영이 전하는 메시지가 그의 귀를 맴돌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는 황혼이 다가옵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하리라’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나를 붙잡아 주실 분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반기문과 아베 같은 김영우가 사법에 의지하는 가처분이나 정치꾼들을 전부 매수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총회 현장에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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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05
  • 호남 제일 미션스쿨 숭일학원
    숭일(崇一)이라는 학교 이름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학교라는 의미 광주지방 최초로 근대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곳 배유지 목사가 설립한 학교 하나님의 나라 일꾼을 양성하는 학원이 되도록 제 모든 역량을 다 할 것 1895년 2월 12일 오세아닉(Oceanic)호를 타고서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 항을 출발하였던 배유지 목사 부부는 2개월 여의 여행을 마치고 1895년 4월 9일(화요일)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광주지방 최초로 근대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곳은 배유지 목사가 설립한 두 남녀미션학교였다. 1908년 교육의 중요성을 느낀 배유지 목사는 자국 선교부의 협력을 얻어 양림동에 최초로 고층 건물을 신축하였다. 1908년 고종 황제로부터 숭일(崇一) 고등 소학교로 인가가 나자, 설립자 배유지 목사는 1909년 광주시 양림동 66번지에 종각이 있는 3층(지하실 포함)으로 된 학교 건물을 착공하여 이듬해 1910년 여름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배유지 목사의 사랑방에서 가르치던 학생들을 새 건물로 옮겨 서구식 학교의 면모를 갖추고 성경, 영어, 산술, 법제, 역사 등을 가르쳤다. 숭일(崇一)이라는 학교 이름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학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광주 숭일학원이 자리하고 있는 일곡지구는 북구 일곡동과 삼각동의 일부가 포함된 지역을 말한다. 광주광역시 북구 모룡대길 40 일곡동에 가면 숭일학원의 광주 숭일고등학교가 있다. 일곡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교는 숭일고다. 광주광역시에서 또 다른 교육특구로 꼽히는 일곡지구에 있는 살레시오고는 2007학년도에 서울대 입학생을 6명 배출했고 숭일고의 경우 7명의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했다. 국제고 6명, 고려고는 5명의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했다. 특히 숭일고의 경우 올해 2016년 서울대(6명), 연대(4명). 고대(5명), 이화여대(5명), 사관학교(8명), 한양대 (26명 중 의예과 6명)을 보냈다. 2013년 3월 26일 제 18대 이사장에 한기승 목사(광주 신일교회 담임) 취임 이후 숭일학원의 양과 질에서의 괄목할 발전을 꾀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의 확충과 우수 교사의 보완과 근속 교사를 우대함으로 학생들과 교사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남장로회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세운 숭일학원이 이제 108주년을 맞이했다. 그 건학이념과 신앙을 계승하려 힘쓰는 이사장 한기승 목사는 학생과 교사들의 신앙 성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반마다 설치된 TV에 윤형주 작사 작곡의 경쾌한 숭일의 노래가 2분간 흐르면 학생들은 아침 경건의 시간을 준비한다. 10분간 드리는 아침의 경건은 찬송과 성경봉독과 설교로 학생들의 마음과 정신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꾼다. 그리고 수요일마다 오전 11시 40분부터 12시 40분까지 1시간 동안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집이 너무 먼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과 지원은 전국 최고다. 남학생 30명 여학생 5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는 비용이 11만 5천원으로 저렴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생활 안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숭일고의 자랑이다. 냉난방 시설, 샤워 시설, 급식 환경 등이 전국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광주 숭일고등학교의 서글서글한 임인호 교장은 숭일고의 비전을 이렇게 밝힌다. 1907년 배유지 선교사가 설립한 광주 최초의 사학 광주숭일고등학교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겨레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기르는데 100여년의 세월 동안 공헌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광주숭일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사랑하는 학교,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신뢰하는 학교, 교사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이 지켜지는 학교로 거듭나면서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유능한 인재양성이라는 시대적 책무를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학생들이 인사가 밝고 왕따가 없는 숭일(崇一) 학원 학생들은 수업 마지막 끝 종이 울리면 책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외운 성구 한 절 오늘 배운 찬송 한 곡 오늘 드린 기도로 불룩한 책가방을 들고 교실 창 밖을 보면 벚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2016년 2월 5일 제65회 졸업식(365명 누계: 24,322명)의 기록을 을 노래할 것이다. 108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호남의 명문 숭일학원의 제 18대 이사장으로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본 학원의 건학이념과 미션스쿨의 정체성을 지켜 학원복음화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민족중흥, 나아가 인류번영에 이바지하는 학원으로 발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사장의 직무를 수행함에 하나님의 은혜와 동료 이사님들의 협력, 그리고 교직원 여러분들의 헌신이 합쳐지면 우리 학원은 국내 최고의 학교로 우뚝 설 것이라 확신합니다. 학교법인 숭일학원 이사장 한기승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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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09
  • 성령세례와 표징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중요한 표징은 입이 열리는 것 3월 4일 둘째 날 새벽 5시 전국남전도회연합회 회원 500여명 운집 옥성석 목사 옥한흠 목사가 환생한 듯 은혜 충만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주로 자연의 힘을 꺼내든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생이 결코 허무하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해 준다. 자연은 늘 거기 있기에 그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을 뿐이다. 어느 때부턴가 매일 해가 뜨고, 때가 되면 비가 오는 세상의 이치가 하나님께서 ‘살아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걸로 받아들였다. 봄날 돋아나는 싹이나 지난밤 비에 젖은 흙이 그렇게 반가웠다. 또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을 나의 아량으로 여기던 마음마저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새벽에 그냥 충만히 받은 옥성석 목사의 말씀의 은혜처럼. 3월 4일(목) 둘째 날 전국남전도회 새벽기도회 강사 옥성석 목사는 생전의 옥한흠 목사가 더욱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깊어져 환생한 듯 성령 충만한 말씀으로 성령 충만한 은혜를 끼쳤다. 성경 봉독 담당자가 예배 순서지와 다른 성경 본문을 읽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행전 19:1-7 옥성석 목사는 날렵한 표정에 초롱에 담긴 촛불의 눈빛으로 입을 열어 불빛이 번지듯 잔잔한 어조로 말씀을 전했다. “제가 일전에 이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캐나다에 계신 분이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내용을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부탁을 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통해 은혜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0년 6월 3일, 그리고 10일, 그리고 17일, 목사님께서 성령에 대해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중 두 개는 지금도 잘 들리는데 그 중 하나는 망가져 그 뒤의 말씀으로 연결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혹시 그 테이프를 구할 수 있는지요. 아니면 혹 설교원고라도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받고 있기에 염치없이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이메일을 받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1990년이면 언제 적입니까. 그런데 그 때 설교 테이프를 지금도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너무 듣다 보니까 설교 테이프가 망가져서 연결이 잘 안되는데 설교 테이프를 혹시 하나 다시 구할 수 있는지 없으면 설교 원고라도 보내달라는 그런 부탁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메일을 받고 한참 그 이메일을 들여다보면서 야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영적으로 갈급해 있다. 그런데 나는 과연 강단에서 어떤 내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너희들이 이렇게 살면 물질적으로 축복 받고 너희들이 이렇게 살면 행복하고 너희들이 이렇게 살면 자녀들이 잘 된다는 혹시 이런 주제만 가지고 표피를 긁어주는 그런 설교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옥 목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응시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지난 2011년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께서 64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정말 참 귀한 분이셨습니다. 정말 저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문상을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걸어 다니는 병동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간암으로 오래 동안 고생을 했고, 간암으로 무려 일곱 차례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콩팥이 좋지 못해서 투석을 해야만 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했고 한번 들어가면 네 시간씩 투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말년에 진행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년에는 자주 강단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찌어찌하여 주일날 온누리교회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오랜 만에 하 목사님이 강단에 서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강단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강단에 서신 하 목사님은 자신을 주시하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하트 모양으로 인사를 하신 뒤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전구 남전도회 회원들은 깊은 바다의 침묵 속에 옥성석 목사를 향해 눈과 귀를 집중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관심은 성령입니다. 성령 충만함입니다. 성령으로 생각하고 성령으로 행하고 성령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가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한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생사를 넘나드는 그런 긴 투병의 과정에서 그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니. 성령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나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 때문에 교회를 찾으며 무엇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옥 목사는 회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 부부가 스무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등록할 교회를 하나 찾고 있었습니다. 섬길 교회를 하나 찾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 쇼핑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면 여기에 문제가 있고 저 교회 가면 이 문제가 또 눈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부부는 그 교회에서 느꼈던 생각들을 차 속에서 토해냈습니다. 특별히 남편은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데 일가견이 있고, 아내는 아내대로 불평을 했습니다. 아들은 음악을 전공해서인지 교회 예배 분위기라든지 교회 찬양대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한 평가가 아주 탁월했습니다. 그날도 어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면서 남편은 남편대로 설교가 어떻다느니 아내는 아내대로 찬양대 곡이 느리니 어쩌니 하며 영 마음에 안 든다느니 했습니다. 그렇게 비판을 하며 가고 있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들이 한마디 던졌습니다. ‘그만 하세요. 천 원짜리 예배가 그렇지 뭐.‘ 이러는 겁니다.” 옥 목사는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장소에 오셨습니다. 이곳에 오신 관심사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목적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혹시 그 옛날 부활하신 주님 가까이에 모여든 제자들과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하지는 않았는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흩어졌던 수많은 제자들이 다시 주님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 이 말의 뜻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드디어 당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까. 이 나라의 권력을 잡는 것입니까. 우리가 드디어 외무장관도 하고 내무장관도 할 기회가 온 것입니까. 바로 이런 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호통을 치듯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의 알 바 아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너희에게 성령이 임할 때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저들의 관심사가 성령 충만해야 함을 말씀하시고 성령 충만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옥 목사는 손을 내밀며 새벽을 깨우느라 눈을 밝히는 남전도회 회원들을 둘러보았다. “사랑하는 전국 남전도회 여러분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이 한 가지에 모아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19장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시면 에베소교회에 바울이 왔습니다. 바울은 이 에베소교회를 오래 전에 세웠습니다. 그는 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어떤지 살펴보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이들에게 와서 지금 던지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2절에 보시면 너희가 믿을 때에 뭐요. 성령을 받았느냐 그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바울이 누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누구에게 하는 겁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베소에 와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말했다 말씀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말했다 말씀합니다. 여기에 너희는 누구입니까. 에베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그들은 제자들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 사도는 이 제자라는 용어를 어중이떠중이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습니다. 마태는 열두 제자에게만 제자라는 용어를 붙입니다. 누가는 좀 더 광의적으로 제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믿는 사람에게는 이 제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이 제자라는 용어를 쓸 때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던 분들이나 교회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제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시면 에베소교회 너희 성도들, 한걸음 더 나가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자들, 한걸음 더 나가서 오래 신앙생활을 한 교회 지도급 인사들에게 던진 질문이 무엇이냐. 너희가 믿을 때에 뭐요.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옥 목사는 컵을 들어 목을 축였다. “여기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는 어중이떠중이에게 바울 사도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면 우리는 그냥 넘겨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 한 이 사람들에게, 교회 지도급에 있는 이 사람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고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다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은요. 성령이 계시는 것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계심도 모른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성령을 받지 아니 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가면을 쓰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체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성령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교회 목사로 설교를 할 수 있고 장로로 대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그냥 물러서지 않습니다.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바울은 두 번째 질문을 바꿉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그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성령 받았느냐 그렇게 질문했는데 대답을 못하니까 질문을 바꿉니다.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묻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대답이 이것입니다. 네, 저희는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옥 목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바울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이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방언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본문이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 짧은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진지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받아야 할 세례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요한의 세례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무엇입니까.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줍니다. 하지만 내 뒤에 한분이 오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받아야 할 세례가 두 종류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물세례입니다. 이것은 회개하는 것과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물세례는 중생과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은 다 예외 없이 물세례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왜냐하면 공회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요한의 물세례로서 만족해야 하는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주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중이 크게 아멘을 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이 질문은 요한의 세례 회개하게 하는 물세례를 받았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바울이 하는 질문은 너희가 성령세례를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장로님 여러분에게 바울을 대신하여 묻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성령의 사람이 되어가고 계십니까. 요한의 물세례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세례를 받으셔야 해요. 성령세례를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표징이 무엇인가.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중요한 표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 입이 열려서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았느냐의 여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는 내 입이 열리느냐 안 열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신앙생활을 지금까지 해오시면서 내가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정말 입이 열렸던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증거했던가. 그래서 나로 말미암아 믿지 아니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던가. 이것이 오늘날 나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가. 바로 이 질문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아주 중요한 네 가지 역사가 내 안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첫째, 나에게 불이 일어납니다. 불이 나타납니다. 세례 요한이 말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불이 나타납니다. 둘째, 성령세례를 받으면 권능이 내게 임합니다. 우리가 권능을 받고 권능이 내게 나타납니다. 셋째, 중요한 것은 내가 능력을 입습니다. 너희들이 능력을 입게 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라.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성령 충만함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으면 뜨거워지게 됩니다. 권능이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나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그 사람에게 충만한 은혜가 나타나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오늘 이 전국남전도회라는 이름으로 참석하신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아침에 성령 충만한 역사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입이 열려 돌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옥 목사는 두 팔을 벌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실 때 저들에게 방언이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방언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저들에게 방언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순절 강림의 현장에 전 세계 흩어졌던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방언이었습니다. 때문에 그 자리에 방언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성령세례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표징이 아니라 그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령께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 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뒤 나는 입을 열어 과연 몇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지금 전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보셔야 합니다... 입을 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떻게 하면 입이 열립니까. 너희가 회개하면 성령 충만함을 입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말씀을 받으면 말씀을 받는 자에게 성령께서 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 충만함을 받아 입이 열려 우리 모두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예수 믿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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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ERMON
    201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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