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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단감별사들의 한국교회 대 사기극
    한국교회를 30년 동안 농락한 이단감별사들의 한국교회 대 사기극 황규학 지음 | 에셀나무 | 2021년 11월 24일 출간 정가 : 35,000원 ISBN 9791197046063(1197046062) 쪽수616쪽 크기181 * 256 * 38 mm /1469g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종교 > 기독교(개신교) > 교회 > 교회론/교회사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이단감별사들의 자의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면 모두 이단이 되었다. 지난 한국교회의 30년간은 그야말로 이단감별사들이 한국교회에 대한 사기극을 연출한 기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장통합교단의 100회 총회(2015년) 기념으로 채영남 목사는 그동안 이단으로 묶였던 사람들의 소명을 직접 듣고, 이대위와 특별사면위의 검증을 통하여 억울하게 이단감별사들의 영향으로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을 사면해 주고자 하였다. 이 책은 Ⅱ장에서 이단감별사들의 大 교회 사기극을 다루었고, Ⅲ장부터는 제100회기 예장통합 특별사면위의 활동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단감별사들의 공통점은 교리감별을 근거로 항시 돈과 연결을 했다. 교리의 전쟁이 아니라 교리를 빌미로 쩐의 전쟁을 하였다. 돈을 주면 정통이고, 기사도 삭제하고, 강의도 해주고, 돈을 주지 않으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언론과 소속교단의 이대위를 통하여 이단으로 낙인찍는다. 특히 최삼경과 진용식은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들어가 교단을 등에 업고 서로 연계하여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앞장을 섰다. 그러므로 이단감별사들에 대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 : 황규학 저자는 서울대학교(종교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맥매스터 대학을 수학(M.A)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Florida Center of Theological Seminary(D.Min)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강원대학교 법전문대학원(M.A)과 법대 박사과정에서 학위(Ph.D)를 마쳤다. 저서에는 ‘교회법이란 무엇인가,’ ‘당회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한국교회 상식이 운다’,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법으로 읽는 명성교회, 나의 신앙유산답사기(전북편, 전남편)’, ‘장신대 죽은 신학의 사회’가 있고, 박사 논문으로는 ‘교회분열 시 재산에 대한 한, 미 비교연구’가 있다. 현재 로타임즈, 기독공보를 운영하고 있다. 목차 I. 서론_ 25 II. 이단의 기준_ 43 1. 삼위일체론 이단_ 47 2. 기독론적 이단_ 48 1) 그리스도의 신성_ 49 2) 그리스도의 인성_ 49 3)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연합_ 49 3. 성령론, 계시론적인 이단_ 50 4. 구원론적인 이단_ 51 5. 스코트랜드 신앙고백과 헬베틱 신앙고백_ 51 6. 결론_ 60 III. 이단감별사들의 대교회 사기극_ 69 제1장 최삼경_ 71 1. 예장통합 이단감별 활동_ 71 1) 이단을 정죄하는 최삼경 73(1988년)~82회기(1997년)_ 71 2) 최삼경이 빠진 이대위 83(1998년)~92회기(2007년)_ 140 3) 이대위에 복귀한 최삼경 93(2008년)~96회기(2011년)_ 187 2. 한기총 이단감별 활동 7~19회기(1997~2009년)_ 300 3. 금품수수 및 이단 조작 활동_ 324 1) 금품수수_ 324 ① 광성교회건_ 324 ② 불법모금_ 326 ③ 땅투기_ 330 ④ 사무장병원_ 331 2) 조작_ 334 ① 박윤식 목사 이단 조작_ 334 ② 강북제일교회 이단 조작_ 335 ③ 설교 날짜 조작_ 336 3) 교사 및 망발_ 337 ① 심부름꾼 교사_ 337 ② 이단상담원 교사_ 337 ③ 망발_ 338 4. 결론_ 339 제2장 탁명환_ 349 1. 소개_ 349 2. 통일교와의 관련성_ 350 3. 박윤식 목사에 대한 이단 조작_ 352 4. 사진 조작_ 355 5. 전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허위 광고 조작_ 356 6. 이단 조작자의 최후_ 359 제3장 탁지일_ 363 1. 소개_ 363 2. 논문_ 363 3. 탁지일의 변명_ 379 제4장 탁지원_ 383 1. 소개_ 383 2. 모욕죄_ 383 3. 불법모금_ 385 4. 허위사실 유포_ 388 제5장 진용식_ 393 1. 소개_ 393 2. 형사처벌과 금품 사역_ 395 3. 고소와 무혐의_ 396 4. 강제개종_ 398 5. 교리적 이단_ 401 6. 학력_ 403 7. 이대위 활동_ 409 8. 금품수수_ 416 9. 아버지의 이단성_ 421 제6장 정윤석_ 431 1. 소개_ 431 2. 삼성교회 신천지 조작 사건_ 434 3. 강북제일교회 신천지 조작 사건_ 441 4. 세모자의 대국민 사기극 공모_ 448 5. 이단 기사 삭제 사건_ 455 6. 신천지 스티커 판매_ 459 7. 박윤식 목사, 통일교도 조작_ 460 제7장 정동섭_ 463 1. 소개_ 463 2. 한기총에서의 활동_ 463 3. 사이비성_ 465 4. 분당 가나안교회에서의 외설 강의_ 469 제8장 이인규_ 477 1. 소개_ 477 2. 이단 정죄_ 480 3. 삼위일체론의 문제점_ 487 4. ‘여호와’ 명칭의 문제점_ 490 5. 이인규 연구보고서_ 492 6. 이인규의 이단 정죄 방법과 봉변_ 495 7. 이인규의 교만_ 497 8. 법정 증언_ 500 9. 이단 비즈니스_ 501 10. 이인규의 거짓말_ 508 제9장 박형택_ 513 1. 소개_ 513 2. 한기총, 박형택은 이단 옹호자_ 514 3. 합동총신총회, 박형택은 이단_ 517 4. 학력_ 520 5. 금품수수_ 523 IV. 100회기 예장통합 특별사면위원회의 활동_ 527 1. 김기동 목사_ 537 2. 박윤식 목사_ 557 3. 류광수 목사_ 568 3. 이명범 목사_ 576 4. 변승우 목사_ 583 5. 인터콥_ 595 V. 결론_ 605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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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7
  • 송태근의 설교관
    맑은 빛 고운 햇살 소복소복 담아 두고 별들과 나눈 얘기 강물 되어 흐른다. 총신 숲 비어서 풍요롭다. 나목(裸木) 위의 까치집 돌아올 주인을 기다린다. 새해가 왔건만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공포로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병과 함께 살아야 하나. 그러나 양상만 달랐을 뿐 인류의 역사는 병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병보다 무서운 것이 절망이라는 정신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해는 이렇게 맞을 일이다. 면도 알러지가 있어 이따금 수염을 길러야 하는 송태근 목사는 ‘맑은 빛 고운 말씀’을 ‘소복소복 담아 두자’고 하는 믿음의 전파자다. 하나님과 얘기를 나누면 헐벗은 나무의 텅 빈 까치집도 그의 성근 수염처럼 풍요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시인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다’라고 노래했다. 총신대 이사로 헌신을 아끼지 않는 송태근 목사는 이 겨울이 가면 새끼를 데리고 둥지를 찾아올 까치를 미리 보는 예지를 지니고 있다. 총신의 봄은 반드시 온다. 우리는 치유의 새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헌신하고 견디어낸 자들의 축제가 될 것이다. 오늘날의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본문 중심의 강해설교를 하는 송태근의 설교는 폭이 넓고 속이 깊다. 그는 신봉하는 본문 중심 강해설교 틀에다 원숙한 믿음의 관조(觀照)로 가다듬은 말씀을 심한 아픔을 견딘 삼일교회와 치유를 바라는 전국 교회에 전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강해 설교자가 성서 권위를 힘입어 자기 우상화를 시도하는 우를 범해선 안됩니다. 강해 설교자의 권위는 그것을 청중을 섬길 때 참 의미가 있습니다. 설교자의 위대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진리를 공동체를 섬기는 사랑으로 담아낼 때 강해설교의 진수가 밝히 보일 것입니다. 송태근 목사는 계시록 8:3-5에 의지해 외친다. 성도의 기도와 함께 올라간 향이, 제단의 기도가 제단의 불과 함께 땅에 쏟아집니다. 이것은 심판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드디어 응답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응답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둠에 잠들어가는 이 시대를 기도의 부글부글 끓는... 그래서 저 에스겔의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고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는 환상을 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팬데믹으로 시대의 전환점에 선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의 메시지 소망대로 설교자가 청중을 섬기는 한해가 되기를···. 그리고 사회와 총회의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 미사일을 쏘아대고 하나님에 대항하는 북한 앞에서 ‘멸공(滅共)’이란 구호가 문제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사라지기를···.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와 총회에 성경의 정의와 신앙의 안전이 이뤄지기를···.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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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6
  • 팬데믹 시대의 신앙
    경북 영양군 영양에 가면 반딧불이생태공원이 있고 영양서부교회의 박병석 목사가 있다. 반딧불이 노래로 잘 알고 있는 ‘개똥벌레’가 반딧불이다. 옛날에는 어디서나 보일 만큼 흔해서 개똥벌레라 부르기도 했고 개똥이나 소똥에서 서식하는 줄 알아서 개똥벌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양군은 경상북도 대표적인 산간오지로 사람보다 자연이 더 풍부한 곳이다. 덕분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자연을 잘 간직하게 되었고 국내에서 밤하늘이 가장 어두워 별자리를 관측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그 중심지가 영양군 생태공원사업소가 관리하는 반딧불이생태공원이다. 사실 반딧불이는 전국 곳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하늘의 별처럼 불빛이 강한 도시에서는 발견이 어렵다는 것. 밤하늘을 보호할 정도로 어두컴컴한 영양에서는 별과 반딧불이를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발전한 이 시대 영양의 반딧불이 같은 박병석 목사의 ‘제단에 불을 끄지 마라’는 메시지가 새롭다.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찌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라 레 6:12-13 성경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제사를 드리는 백성은 항상 제물이 있어야 하고 그 제물을 태우는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제사에 순서 절차가 다 있더라도 불이 꺼지면 아주 심각합니다. 그 뜻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단에 불을 끄지 말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제단은 원래 제물로 바친 짐승이 죽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그 제물이 탈 때 그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제단에 불이 꺼지면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게 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꺼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제단에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제단에 불이 꺼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말씀합니다. 이어서 이스라엘의 패역한 시대를 향해 사무엘상 4장 21-22절에서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말씀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한때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살고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제단의 불이 꺼지듯 신앙이 식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의 형편에 처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항상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제단에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불붙는 제단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불씨를 남겨두어야 합니다. 여러분 영국의 유명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 분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신을 위해 교회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 주변을 둘러보면 ‘이가봇’ 시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믿음 없는 사람일수록 떠들기를 좋아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없는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없는 오늘의 팬데믹 시대는 확실히 ‘이가봇’ 시대입니다. 이 팬데믹 시대를 사는 우리의 신앙을 위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16-22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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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1
  • 전북노회 알깨바 발간
    아직도 대다수 인간에게 개미는 한낱 미물일 따름이고 개미 사회는 그저 곤충 집단일 뿐이다. 그러나 개미는 ‘초개체(superorganism)’라고 불린다. 개미 한 마리는 뇌의 용량이 아주 적은 곤충이지만, 그들이 집단을 이루면 각자가 하나의 체세포처럼 기능하며 뛰어난 지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게다가 생존 적응력이 뛰어난 개미가 환경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왜냐면 개미는 전체 동물 시체의 90%를 수거해 먹어치울 뿐만 아니라 흙을 갈아엎음으로써 육상 생태계의 영양소를 순환시키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개미가 파고들지 못한 곳은 고산 지대와 극지방 그리고 물속밖에 없다. 개미는 오직 추위에 약할 뿐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동물행동학을 전공하고 94년 한국에 돌아온 최재천 교수(서울대·생물학과)의 저서 ‘개미 제국의 발견’에 따르면 개미의 대표 경선(競選)은 요즘 말썽을 빗고 있는 우리 총회나 대선을 두고 대립하는 정치권과 사뭇 다른 모양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아즈텍 개미’는 지구상의 어느 개미 집단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오징어 게임 같은 특이한 선거 방식을 보여준다. 아즈텍 여왕개미들은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이종(異種)끼리도 그들이 각기 ‘개미 제국’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협동하며 공생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보기 드문 ‘적과의 동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개미 군락이 생겨나는 과정은 이렇다. 봄(5∼6월) 혹은 가을(9∼10월) 어느 날. 처녀 여왕개미와 수컷 개미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며 ‘혼인 비행’을 치른다. 혼인 비행을 마친 여왕개미는 홀로 굴을 파고 이제 더이상 소용없는 날개를 부러뜨린 다음 피하지방과 날개 근육을 녹여 일개미를 양육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키워낸 일개미들이 굴 문을 뜯고 나가면 수많은 주변 신흥 국가와 필살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여왕개미들은 여럿이 서로 손잡고 수적으로 훨씬 막강한 일개미 군대를 만들어 춘추전국시대를 구가하는 전략을 취한다. 진짜 여왕은 정권을 거머쥔 후에 정한다. ‘아즈텍 개미’ 사회에서는 승전보가 울리자마자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돌변한다. 서로 물고 뜯으며 가장 강한 여왕이 등극한다. 하지만 다른 많은 개미 국가에서는 일개미들이 여왕을 선출한다. 나라를 건설하려 함께 최선을 다한 여왕개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알을 낳아줄 것으로 기대되는 한 여왕을 옹립하고 나머지는 모두 숙청한다. 정권을 잡기도 전에 서로 치명적 흠집을 내는 우리 인간의 경선과 달리 상흔 없는 후보 중에서 가장 능력 있는 리더를 선택하는 개미의 지혜가 부럽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 사회는 송두리째 변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 총회처럼 반복된다고 한다. 그래서 혹여 총회 정치꾼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총회 헌법과 성경 중심의 총회 역사를 세속의 정치꾼들처럼 왜곡하고 이용하려 든다면 수치의 총회 역사는 언제든지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꾼들을 솎아내는 것은 오로지 총대의 몫이다. 그런 개혁 운동의 일환을 증경총회장 윤남중 목사의 아들 윤희원 목사가 제네바의 칼빈처럼 전주에서 임직자 훈련교재 '알깨바를 외치자'(알고 깨닫고 바르게 살자) 발간과 보급을 통해 펼치고 있다. 2021년 10월 12일 오전 9시 제172회 전북노회(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전주서문교회당(김석호 목사)에서 개회됐다. 노회장 김창용 목사가 성경 디모데전서 4:15-16을 읽고 “목회는 적당히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론했다. 개회 예배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찬식은 집례하지 않고 바로 회무 처리로 들어갔다. 이어서 상비부 보고와 각부 보고 후 목사 안수식과 장로 은퇴식을 가졌다. 목사 안수식에서 증경노회장 윤희원 목사가 창세기 28:16-19(‘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아는 사람’) 말씀을 증거하고 노회장 강창용 목사의 사회로 목사 임직자 김진규의 안수와 착의가 진행됐다. 장로 은퇴식에서 은급부장 최병석 목사의 사회로 고행식 김강식 배상근 홍순정 김동석 표성복 등의 장로 등에 대한 기념패와 기금전달 등으로 기념하고 증경노회장 김윤경 목사가 “장차 우리 주님께서 우리 장로님들에게 씌워주실 의의 면류관과 하늘의 상급을 받으시기를 바라면서 더욱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기를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은퇴 장로들을 대표해 팔복교회 고행식 장로가 “제172회기 정기노회에서 목사 위임과 장로 은퇴를 위해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예배 중에 하늘 문이 열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받게 해주시고 (목에 메인 음성으로) 격려의 말씀으로 큰 힘을 얻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답사를 했다.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송 후 임직자를 대표해서 제172회 전북노회에서 임직받은 김진규 목사가 전주서문교회당(김석호 목사)에서 열린 전북노회에서 난생처음 축도했다. 낭랑한 목소리로 간략하게 축도했다.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으로 맺는 한 소절의 피아노 간주가 어우러졌다. 사회자가 광고했다, “지금 11시입니다. 축하와 기념 촬영을 위해서 11시 20분까지 정회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하기로 동의 재청이 들어와 정회했다. 11시 30분 계속 회무 처리가 이어졌다. 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고시부 부장 나와서 청원한 내용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시부장 팔복중앙교회 김윤영 목사입니다. 고시 치루기 전 임직자 교육할 때 지금까지는 두 과목 이상 의무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교육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한 과목을 더 늘려 세 과목 이상 외부 강사를 모셔서 교회에서 교육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입니다.” 노회장이 이 건에 대해 보충 발언 있으면 하라고 했다. 부서기 석명규 목사가 더 상세히 설명했다. 외부 강사는 집필자뿐 아니라 전북노회 속한 목사라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동의와 재청이 들어왔다. 신 안건 토의 시간인데 신 안건이 없어 전주서문교회에 감사패 전달 시간을 가졌다. 폐회 동의와 재청이 들어왔다. 가부를 물어 허락을 받았다. 광고 시간이 이어졌다. “노회 대항 체육대회가 11월 2일 정읍에서 있습니다. 윤남중 공로목사 기념사업회 세미나가 11월 16일 있습니다. 각 상비부 통장을 농협 통장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노회 장소와 점심 식사비는 서문교회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나가실 때 명찰을 반납하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노회장이 말을 이었다. “임직자 교육을 위한 직분자 교육교재 발간으로 전북노회의 영광스러운 일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집필진과 위원장으로 수고해주신 윤희원 목사님께서 2년 동안 애쓰시고 그러시다가 입원도 하셨고 여러 가지 수고 끝에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위원장님 나오셔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필진도 다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향년 90세로 2019년 7월 12일 새벽 5시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증경총회장 윤남중 목사의 아들 윤희원 목사가 집필진이 다 나온 가운데 발언했다. “문제 출제하신 목사님들도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계속 교육했던 프로그램들 가운데 고시부에서 십몇 년 것을 추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교재로 많이 다뤘던 분야들을 고시부 목사님들 중심으로 배정을 해서 작년 2020년도에 고시 교재 발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시부 출제 위원이나 집필진이 많이 모이지를 못했습니다. 개별적으로 와서 원고 수정 등을 해서 어렵사리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발간하고 보니 잘못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교재를 만들어 놓으면 또 우리 후배 목사님이 잘 보완을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전북 지역에 기독교와 교회가 어떻게 전래가 되었는지를 제가 맡아 썼습니다. 더욱이 우리 전북 노회는 51인 신앙동지회가 주축이 되었습니다. 우리 전북노회에 이노수 전도사라고 하는 그 당시 조선신학교 사생회 회장이 있었습니다. 이노수 전도사가 김재준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고 나왔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사실상 51인 신앙동지회가 결성되게 되었습니다. 그가 목사 후보생일 때였죠. 이노수 전도사가 누구인가 계속 찾아보니 삼례중부교회 이희민 목사님 선친이셨고 현재 이영익 목사님 계시는데 그의 큰아버님이 되셨습니다. 또 정의찬 목사님은 이성근 목사님의 장인어른이시고 우이중앙교회 원로목사님으로 추대받고 계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51인 신앙동지회에 대한 간략한 역사도 뒤에 기록해놓았습니다. 우리 장로교회 개혁신학에 전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맞게 교회 역사도 소개하고 직분자들의 교육도 시킬 것인지 역점을 두었습니다. 12신조에 관한 문제는 잘 다루지를 않는데 석영규 목사님이 상당히 깊이 있게 다루어 잘 집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읽어가면서 교육받는 직분자들과 함께 장로교회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잘 확인해 갈 수 있도록 우리 집필자들이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우리 집필진 목사님들이 기도하고 땀 흘려 수고하며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이 교재를 잘 활용해 우리 장로교 신학과 신앙을 ‘알깨바’ 알고 깨닫고 바르게 사는 직분자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회중 큰 박수) 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로마서 8:35-37을 읽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멘. 축복합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전북노회 목사 회원과 장로 총대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노회장이 폐회를 못 박는 고퇴를 두드렸다. 기독신문 논단 ‘하나님의 임재와 정직한 삶’을 통해 윤희원 목사는 ‘알깨바’(알고 깨닫고 바르게 사는) 삶의 정곡을 이렇게 논했다. “사람의 안목이란, 육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볼 때 열리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하였다. 마음에 하나님 사랑하는 믿음 없이 우리는 얼마든지 외형적으로 ‘주여, 주여’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계시는 그 임재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 성도는 매 순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기에 정직하게 살아간다. 절대로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살지 않는다.” 윤희원 목사의 외침과 달리 세상에는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검은 뭉칫돈을 숨겨야 하는 범죄꾼들에게 돈 냄새는 골칫거리다. 그래서 땅에 파묻는 걸 선호한다. 1980년대 남미 마약 운반책 역할로 떼돈을 번 미국인 파일럿의 실화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에선 주인공이 집 정원에 700만 달러를 파묻었다. 반려견이 이를 파헤치는 통에 지폐가 사방에 흩날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로 떼돈을 번 일당이 현금 110억 원을 김제 마늘밭에 묻었다가 적발됐다. 한 전직 대통령 아들은 뇌물로 받은 10만 원권 헌 수표 1만 장(10억 원)을 아파트 베란다에 숨겼다 들통이 났다. 아마 냄새 때문에 그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범죄자가 주로 활용하는 현찰은 최고액권이다. 2년 전 유로존 국가들은 최고액권 500유로 지폐가 탈세와 돈세탁에 주로 활용되자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이후 250조 원이나 발행된 5만 원권이 계속 지하로 잠기고 있다. 올 1~8월 중엔 5만 원권 환수율이 역대 최저인 19%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 5만 원권이 대장동 게이트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올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수십억 원을 5만 원권 현금으로 찾아가는 바람에 성남시 일대 은행 지점들이 5만 원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이를 수상히 여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 4월 경찰에 이 사실을 통보한 것이 이 사건의 공식 시발점이 됐다. 검은돈이 풍기는 악취를 따라가면 대장동 ‘그분’이 드러날까. 도둑 정치는 이른바 ‘후진국 현상’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국가에서 곧잘 발생한다. 중국에 석탄을 팔아 스위스 시계를 구입해 당 간부들에게 나눠주는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도둑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손에 넣은 자들은 국가를 사유화하여 제 이익을 챙기고 그 돈으로 다시 권력을 움켜쥔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도둑 정치의 늪이다. 그들에게 ‘알깨바’를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단 정치판은 어떤 형편에 있을까. 우리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계시는 그 임재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 성도는 매 순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기에 정직하게 살아간다. 절대로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윤희원 목사의 말처럼 제172회 전북노회장 강창용 목사의 입을 통해 성경은 말씀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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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5
  • 2021년 종교개혁주일 대표회장 메시지
    2021년 종교개혁주일 대표회장 메시지 오는 10월 31일 주일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504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루터가 주창한 종교개혁의 정신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로 신앙의 기초와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릇된 전통이나 잘못된 종교적 관습을 성경의 가르침대로 고치고 바로 잡는 것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개혁 운동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성경의 가르침 그대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의한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고 믿음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교개혁 정신의 실천이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개혁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스스로 뼈를 깎는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 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504주년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며 한국교회는 거룩성과 공교회성을 회복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중심으로 성경적 교리를 확립하고, 성직 교권주의, 교회 안에 파고든 세속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스며든 성장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 인본주의 등 온갖 세속주의를 배격하여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합시다. 개교회 중심주의와 교회의 분열과 파벌, 부패와 타락이 가져오는 갖가지 참상들을 바로잡고 교회 연합과 일치의 바탕인 공교회성 회복에 힘씁시다.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을 통해 사회적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한국교회는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100여 년간 개혁주의 신앙에 의한 헌신과 역사의식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헌신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이제는 기복주의, 개교회주의, 성장주의, 이기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공공성을 상실하므로 사회적 신뢰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영향력이 훼손되며 교회가 외면당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교회의 공공성이란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도록 더 높은 도덕성으로 떳떳해지며, 자기성찰에 엄격해지고, 더 많이 겸손해져야 합니다. 504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지도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지도자들은 주인의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종이 되어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바로 세우며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개혁교회는 분열과 분쟁을 회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탐욕을 버리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교회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바르게 앞장서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 수가 있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를 개혁하고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정신으로 나갈 때에 한국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며 교회와 나라의 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2021년 10월 20일 (사)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김종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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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5
  • 장봉생 목사의 간구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다. 1억2000만 명이 넘는 감염자와 270만 명의 사망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내고 있다. 큰 위기를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혁신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유엔을 창설했다.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자유무역, 미 달러 중심 통화 체제, 저개발국 경제 개발을 지원하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낳은 ‘브레턴우즈 체제’도 고안해 냈다. 대한민국이 번영한 것은 이 체제에 올라탄 덕이고 북한이 허덕이는 이유는 그렇지 못한 탓이다. 이 험난한 시대 2021년 9월 2일 오후 2시 익산 북일교회에서 열린 호남 중부지역 장로회협의회(회장 원태윤 장로) 장로 세미나에서 서대문교회 장봉생 목사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라는 제목의 설교로 우리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우쳐주는 메시지를 전했다. 부회장 조길연 장로 기도 후 부회장 송하정 장로가 야고보서 5:16-18 성경을 봉독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장봉생 목사가 강단에 섰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설교를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더 힘들다는 소리를 듣곤합니다. 주일 설교 여섯 번 하고 집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제 아내가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여섯 번 설교 듣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압니까' 하는 겁니다. (회중 웃음)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라는 것은 부담입니다. 붙들고 기도해야 하고 지녀야 하는 확신이지만 말입니다. 내가 의인이냐. 나도 의인이냐. 물론 '칭의' 하나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기 때문에 신분상 의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 의인이냐' 물으실 때는 괜히 생각이 많아집니다. 간구,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구해야 간구입니까. 지금까지 내 기도의 응답을 보니 수많은 시간을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받은 게 몇 개나 될까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이 말씀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별로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3년 6개월 비가 안 내렸는데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비가 내렸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8장에 아무리 찾아봐도 엘리야가 비 내리지 않기를 기도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비오기를 갈멜산 꼭대기에서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일곱 번 기도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도대체 야고보가 엘리야가 그렇게 기도해서 안 오던 비가 내리게 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나 우리나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기도하면 비가 내리고 누구는 안 내립니까. 시나이반도까지 도망갈 수밖에 없는 그런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쓰십니다. 그런 엘리야도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도 똑같이 하나님 은혜로 의인 됐다 하는데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데 그거 우리에게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기도했길래 무슨 말이었길래 무엇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기에 그렇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서대문교회가 72년 됐는데 황해도 신천의 깡패 출신 신유 부흥사 김익두 목사님 교회 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38선 넘어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종로 바닥에서 만나 그때 시작한 교회가 지금 서대문교회입니다. 제가 20년 전 부임했을 때 1세대 어르신 몇 분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힘없는 목소리로 늘 얘기하시는 게 목사는 김익두같이 해야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 물어보니까 손만 대면 병이 나았대요. 기도만 하면 사람들이 푹푹 쓰러졌대요. 그래서 제가 아이고 이 교회 잘못 왔구나... (회중 웃음) 어쩌다 내가 걸려 가지고 나는 이제 죽었다 생각했습니다. 옛날 어른들과 목사님들은 그랬어요.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났어요. ... 제가 전도사 때 학생들을 지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7장과 18장을 설교한 다음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교회 마당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나무를 모아 오라고 했습니다. 담이 없는 교회 마당이라 장작을 쌓아 놓고 얘들을 불러모으고 ‘지금부터 기도해서 불을 내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도 불을 내렸는데 왜 지금 불이 안 내리겠느냐. 사도행전에 말씀하기를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다. 그렇듯 사도행전 역사는 지금도 일어난다,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보고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해주시옵소서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일어날 줄 믿습니다. (회중을 보며) 장로님들 불이 내렸겠습니까 안 내렸겠습니까.” 앞자리의 원태윤 장로가 대답했다. “내렸습니다. (회중 웃음)” “(원태윤 장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믿음이 좋으세요. 그러니까 회장을 하시지. 여러분 기도하면 불이 내린다. 그런데 불이 안 내렸어요. 아무리 한 시간 정도 비지땀 흘리며 애들 다 동원해 기도하는데도 불이 안 내리니까 걱정이 되는 겁니다. 얘들이 ’저 전도사 영력도 없는 게 괜히 폼만 잡고 말이야.‘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보따리 싸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얘들한테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때가 아닌가 보다. 나중에 한 번 더 하자. 그런데요. 얘들이 일어나지를 않는 겁니다. 불이 내렸어요. 그 장작더미에 불이 내린 게 아니라 아이들의 가슴에 불이 내렸습니다. (회중 아멘) 얘들이 기도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린아이들인데도 방언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그 아이들을 통해 큰 부흥을 하도록 경험을 시켜 주셨습니다. (회중 아멘) 여러분 우리 생애에 내 젊은 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 감사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하나님 앞에 갈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세월을 아끼라 하셨는데 이때에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살아 계심을 어떤 식으로든지 내 삶과 내 기도가 보여주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과 의를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 장로님들 되시면 (회중 아멘) 우리 교회들이 다시 믿음의 불이 붙을 것입니다. (회중 아멘) 불붙이는 사람, 비 내리게 하는 사람, 하나님의 응답을 가져오는 사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다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두 손 들고 기도하십시다.” 찬양 후 장봉생 목사의 인도로 ’주여 삼창‘을 외친 뒤 불을 받은 장로들의 뜨거운 통성 기도가 이어졌다. 훗날 총회에 모인 총대들도 이런 불이 내리는 기도가 그가 선 단을 통해 이루어질 것 같은 소망의 불이 타올랐다.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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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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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원목사 설교 - 삶의 끝자락에서 해야 할 고백
    삶의 끝자락에서 해야 할 고백딤후 4장 1절~8절 사람이 일생을 살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살아온 삶을 돌아봅니다. 어떤 이는 잘못 살아 후회하면서 생을 끝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한 삶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참 잘 사신 분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하고 때로 잘못된 삶이었다는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바로, 가치 있게 살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앞의 많은 분들이 값진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 중 가장 가치 있는 생을, 자랑스러운 일생을 사신 분을 손꼽는다면 아마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고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랑하는 제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한 말씀입니다. 자신의 최후를 내다보면서(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엄숙한 배경에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간단하게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하는데 이 고백이야말로 대단히 가치 있는 일생을 산 고백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어떤 면에서 오늘 우리 모두가 삶의 끝자락에서 해야 할 고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바울의 일생에 대한 고백을 생각해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고백입니다. 가장 귀한 삶은 믿음의 삶이요, 끝까지 바른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도 한때는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 유대 전통적 신앙인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길에서(사도행전 9장)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신앙이 달라졌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바른 기독론과 구원론을 확립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는 그것을 끝까지 지키고 삶의 끝자락에서 믿음으로 살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거짓되고 잘못된 신학과 신앙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소위 종교다원주의 사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즉 예수님만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유일 구세주와 구원의 절대성을 믿습니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는 예수님 외에 다른 종교에서도 구원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절대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단,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그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가는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바로 오늘 우리 신앙이 하나님 말씀, 성경 중심에 서서 결코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창세기 35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하십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10년 사는 동안 그의 신앙이 잘못 되었습니다. 드라빔을 비롯해서 세겜 땅의 우상 신앙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한 분만이 아닌 잡다한 우상을 인정하는 신앙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 즉, 벧엘에서 가졌던 신앙을 회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을 받은 야곱은 자신을 살펴보고 회개하고 이방 신상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단지 장소적 이동이 아닌 믿음을 바르게 한 것입니다. 바르게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끝자락에서 믿음을 지켰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웠다’입니다. 바울의 일생은 어떻게 보면 평생 싸우며 사는 삶이었습니다. 철저한 유대 율법주의로 무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전하는 자를 잡아 가두며 스데반을 죽이는 현장에서 박해자의 편에 섰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 뒤 그의 싸우는 삶은 계속 되었지만 싸움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후의 싸움을 그는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선한 싸움이라고 고백한 내용을 보면, 먼저 진리를 위한 싸움입니다. 수많은 이단자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율법주의를 향해서 싸웠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과 진리를 위해 대제사장 앞에서 싸우기도 했고 로마 총독에게서 미쳤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른 면에서 선한 싸움은 도덕과 영적 싸움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보다 성결하게 살고, 죄에 물들지 않은 성도답게 살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까지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선한 싸움과 성화를 위해 발버둥치는 바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거룩성입니다. 우리는 분명 의신득구를 믿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너무 칭의를 강조하고 성화를 소홀히 했다는 신학자들의 지적을 봅니다. 즉, 믿음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믿은 후의 성도의 삶, 거룩해지거나 세상과 다른 삶의 모습이 약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 안의 부끄러운 일들이 세상에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거룩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답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고 목사가 목사다워야 하며 장로가 장로다워야 합니다. 성결의 수준을 더 높여야 합니다. 모세도 출애굽 지도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많은 해석이 있으나 거룩성을 요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사야도 입술의 부정을 고백했습니다(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사 6:5). 우리 모두가 믿음과 동시에 성도다운 특히 교계 지도자다운 거룩성 회복 운동에 동참해야겠습니다. 끝으로,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달려갈 길은 무슨 길입니까? 곧 사명의 길입니다. 즉, 나는 일생을 사명 따라 살았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과 직분과 은혜와 은사를 왜 주셨는가? 곧 내게 부여하신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완수하라고 주셨다. 그러기에 나는 이 사명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언제 어디서든 늘 이 사명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다메섹 길에서 변화된 뒤 하나님이 주신 이방인의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그는 이 사명의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세 번에 걸친 전도여행과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된 로마 등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일군들을 세우는 것이 모두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명을 생명과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그러나 이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 사명 때문에 옥에 갇혔고,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기도 했고, 미쳤다는 조롱도 받았고, 여러 차례 태장을 맞고, 투옥과 파선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사하면서 섬겼습니다(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2).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와 장로로 세우시고 기대하시는 것이 있고 내가 꼭 해야 될 일도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를 많이 말합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목회자의 위기에서 온다고 봅니다. 무엇이 오늘 목회자의 위기입니까? 그것은 소명감의 상실과 거룩성의 훼손에서 오는 것입니다. 목사, 그는 목자입니다. 양을 돌보는 목양의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목사들이 제대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사는 목자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세우셨는가 스스로 묻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명의 자리를 떠났다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회복은 말씀과 기도에서 나옵니다. 말씀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의 최대 교단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자랑 보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 교단의 행보에 따라 한국 교회가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책임이 큽니다. 목사, 장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의 지금까지 삶이 바울의 이 고백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지요? 안 된다면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교회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살리소서, 회복시켜 주소서, 은혜를 베푸소서.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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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23
  • 이승구 박사의 신학논단 - 도둑질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구원함을 받은 거룩한 무리들, 즉 성도(聖徒)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행해야 할 일들 가운데 또 하나로 도둑질하지 말 것을 명하는 명령은 구약에서부터 주어져 있습니다(출 20:15; 레 19:11; 신 5:19). 구약 성도들도 이 말씀을 듣고 지켜야만 했고, 신약의 성도들도 그런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이를 명령하시는 것은 구원받았다고 해서 도둑질할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그 순간에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평생 싸워나갈 일의 하나가 바로 부패한 인간성의 발로의 하나인 도둑질하려는 성향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성령님에 의지해서 힘쓰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이런 잘못된 성향에 따라 가기 쉬운 것입니다. 지난번에 생각했던 살인, 간음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 -- 하지 말라”는 부정적 형태의 금령은 우리의 상황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어떤 방향을 나아가야 하는 지를 제시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악의 현실을 매우 현실적으로 다룹니다. 죄악된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도 성경이고, 그 죄악과 그 결과로 주어진 비참함으로부터 구원받음을 유일하게 제시하는 것도 성경이고, 구원 받음 인간의 불완전함과 죄악을 잘 드러내는 것도 성경이고, 그런 부패한 인간성과의 힘 있는 투쟁의 필요성과 그 현실을 잘 제시하는 것도 성경인 것입니다. 이 투쟁을 돕기 위해 주어진 금령 중의 하나가 이번에 우리가 생각하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이 말씀의 의미에로 들어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금령의 단순한 의미 이 금령은 일차적으로 그 어떤 형태의 도둑질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정황에도 적용되지만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을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공동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도 포함되지만, 기본적으로는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을 한이 없어서 어떤 방법으로라도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와 그런 행동이 나타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의도를 잘 알기에 성경은 그런 시도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금령의 적극적 의미 그렇다면 이 금령은 그저 그렇게 남의 것을 불법적인 방도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의미만을 지닌 것일까요? 이 금령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많으면 그렇게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절대로 남의 것을 자신이 사취하지 않는 것은 그 한도 내에서는 옳고 훌륭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남의 것을 불법적으로 사취(詐取)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들은 이를 다 지켰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기 쉽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어떤 관리는 이 계명을 포함한 말씀을 듣자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고 담대히 말한 일도 있었습니다(눅 18:21, cf. 막 10:20). 이 금령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모든 논의가 이루어진 후에 결국 그 사람은 이 계명을 다 지킨 사람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실제로 도둑질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이 금령의 더 적극적 의미를 잘 생각하지 않고, 그저 쉽게만 생각했었다는 말이지요. 우리들도 더 깊은 의미에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이 사람처럼 이런 금령은 “우리가 다 지켰습니다”라고 잘못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금령을 우리에게 내셨을 때는 단순히 그 정도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도 더 나아 가서 생각한 분들이 있지만 특히 16세기와 17세기 우리 개혁신앙의 선배들은 이 금령의 적극적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예를 들어서 ,17세기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41문에서는 “제 8 계명이 요구하는 의무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일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제 8계명이 금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142문보다 적극적 의미를 더 앞에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아주 적극적인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제 8계명에서 요구된 의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과 거래에서의 참됨과 신실함과 정의이고, 모든 사람에게 그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이며, 합법적 소유주로부터 불법적으로 점유된 것들을 그 본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이고, 우리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거저 주고 빌려주는 것과 세상 재화에 대한 판단과 의지와 감정의 조절(moderation)이고, 우리의 성질의 유지와 우리의 조건에 적합한 필요하고 적절한 재화들을 얻고, 보존하고, 사용하고, 없애는 일에 대한 신중한 관심과 연구, 그리고 합법적인 직업과 그에 대한 열심, 절약, 불필요한 소송이나 보증이나 그와 같은 관여를 피하는 것, 모든 정의롭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우리 자신들의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얻고,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일에 대한 열심입니다. 이를 잘 살펴보면, 우리들은 17세기 우리 선배들이 얼마나 깊이 있게 그리고 바르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포괄적인 지를 생각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재물관이 어떠해야 하며, 직업관이 어떠해야 하며, 이 세상에서 사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배우게 됩니다. 제 8계명의 적극적 의미의 기본적인 원칙이 제일 앞에 천명되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기본적 원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과 거래에서의 참됨과 신실함과 정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 가운데서 사는 데 그 때 그 모든 관계 가운데서 참됨(truth)과 신실함(faithfulness)과 정의(justice)를 자기고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관계 속에서 내가 참으로 참된지를, 참으로 신실한지를, 그리고 참으로 정의로운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우리의 모든 것이 죄인 것이고, 그에 대해서 우리는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의 참됨과 신실함과 의로움을 지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 받은 우리의 삶은 적극적으로 그런 참됨과 신실함과 의로움을 간직하고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구원 받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적극적 의미가 잘 드러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참됨과 신실함과 의로움을 간직하고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구원 받았음의 증거가 있고, 구원 받음 결과인 진정 구원받은 자 다운 삶이 있는 것입니다. 참됨과 신실함과 정의 드러냄의 구체적 의미 이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첫째로, 모든 사람에게 그에게 합당한 것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했을 때 그에게 보수를 주는 것은 내가 선심을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고 그에게 적합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업체의 주관자들이 그 사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보수를 줄 때에 우리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각자가 일한 것에 대해서 그에게 합당한 몫을 받는 것입니다. 마땅히 그들의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레 19:13)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저 임금 체불을 하지 말 것을 명하는 정도가 아니고, 그 임금을 그가 받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정당하게 생각하지 않고, 바르게 행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일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도 지니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과 그에 대한 열심히 제 8계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무 가운데 하나로 있다고 하는 것은 17세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신앙을 얼마나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합법적인 직업을 가지고 그에 열심을 내는 것이 우리들이 마땅히 할 바이고, 그로부터 우리가 마땅한 몫을 받은 것은 합당한 것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필요하고 적절한 재화들을 얻고, 보존하고, 사용하고, 없애는 일에 대한 신중한 관심과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가 재화에 온통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았던 우리 선배들은 “세상 재화에 대한 판단과 의지와 감정의 조절(moderation)”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나치게 재화의 문제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감당하되 우리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고 말씀하신대로 살며,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히 13:5). 또한 구약의 신실한 성도와 같이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8)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에서 적절함(moderation)을 추구하는 것이 구원함을 받은 성도의 마땅한 바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절약하여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 이 계명의 함의에 포함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불필요한 소송이나 보증이나 그와 같은 관여를 피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법정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고전 6:4)에 대한 고려와 함께 이런 소송이 대개는 재화를 더 얻으려는 마음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감안한 생각인 것입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도 상대편이 고소하여 법정에서 다투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될 수 있는 대로 세상 법정에 호소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만일에 다른 분들이 갑자기 재화를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경우에도 “우리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거저 주고 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고백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능력에 넘치게 거저 주고 빌려 주는 것은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하여 자신과 상대 모두를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에 넘치는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능력이 있으면 다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에게 재화가 주어진 중요한 목적들 가운데 하나가 결국 사람들을 잘 돕도록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편이 되는 데로 이 런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과연 왜 우리가 재화를 소유하는 지를 잘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은행 같은 것이 발달된 상황에서 그 어떤 이자도 받지 않는 것이 옳거나 더 정의롭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잘 아는 개인 간에는 능력의 한계 내에서 거저 주고 빌려 주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재화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전혀 이를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집착하지 않을 때 우리는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거저 주고 빌려주는 일에서 인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는 이런 일에 대해서 참으로 감사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회복시켜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절약과 검소하게 사는 삶의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8계명의 적극적 의미의 요약 이제까지 말한 8계명의 적극적 의미를 요약한다면 그것은 “모든 정의롭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우리 자신들의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얻고,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일에 대한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에 자신들의 재산을 정의롭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얻고,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일에 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을 근원적으로 잘 미루어 살피는 사람들의 놀라운 추론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8계명을 범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재산이 정의롭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얻어지고, 보존되고, 증진되도록 하기도 해야 합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재화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화도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합법적으로, 그리고 정의롭게 재산이 얻어 비고 보유되고, 증진 되는 것에 항상 신경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의 증진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재산이 증진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참으로 합법적이고 정의로운 경쟁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어떤 형태의 “도둑질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의 재산이 합법적으로 그리고 정의롭게 얻어지고, 보유되고, 증진 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마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리하듯이 재화 자체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 아니고, 그 모든 것이 주께서 자신들에게 부탁하고 맡기신 것이라는 것을 잘 의식하기에 주께서 맡기신 것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각자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깊이 있게 살펴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재물과 재화 자체에 대한 욕심이 없는 지를 말입니다. 그런 욕심이 전혀 없이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해 수행해 가는 사람이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11문은 이 계명의 적극적 의미에 대해서 다음 같이 묻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문: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답: 내가 할 수 있고 해도 좋은 경우에는 나의 이웃의 유익을 증진시키며,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ㄹ은대로 이웃에게 행하고,더 나아가 어려운 가운데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다.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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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0
  • 웨스트민스터 한국총동문회 2013년 동창회와 송년의 밤 행사
    웨스트민스터 한국총동문회(회장 정규남 박사) 2013년 동창회와 송년의 밤 행사가 2013년 12월 26일(목) 오후 4시 대치동 소재 서울교회(원로목사 이종윤)에서 열렸다. 30여 명이 참여한 모임은 1부 등록 2부 예배 사회 정규남 회장 3부 동문회 활동 보고: 박응규 총무 4부 동문 인사 및 만찬 사회: 안명준 협동총무 5부 동문 목회 특강 사회: 오덕교 부회장 강사 정영교 동문(산본양문교회 담임목사) “나의 목회, 나의 노래” 6부 동문 좌담회: “웨스터민스터와 나의 삶과 사역” 사회 황규명 부회장 좌담 참석자: 박형용, 전호진, 김성환, 박노철 7부 합심 기도회 인도: 안창운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모임 마무리 때 총장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형용 박사가 필라델피아 소재 모교의 재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100만원씩 후원하자고 제안했다. 20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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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0
  • 합신목회대학원 2014 동계강좌
    2014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부설 목회대학원이 주최하는 2014 동계강좌가 2014. 1. 6(월) 오후 1:30 ~ 1. 17(금) 오후 12:30까지 열렸다. 합신 생활관 대세미나실에서 열린 동계강좌에는 합신교단과 타교단 목회자 100여명이 등록해 강의를 수강했다. 1월 6일 1:30 목회대학원 원장 이승구 박사의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로 시작된 강좌가 1월 17일 11:10 ~ 12:30 강의로 끝났다. 목회대학원 4학기 이수자는 목회대학원 수료증을 받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총동문회 정회원 자격을 가지게 되는 특전이 있다. 이번 동계강좌의 강사와 강좌는 다음과 같다. 주강사 이복우 합신 교수 (목회자를 위한) 요한복음 해석과 설교강영만 서강대 교수 목회자를 위한 어거스틴의 고백론 읽기권호 국제신학대학원 교수 시편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회 회장 기독교 생명 윤리 운동과 목회안상혁 합신 교수 교회사의 터닝포인트와 설교이승구 합신 교수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이승진 합신 교수 구원의 서정과 설교현창학 합신 교수 잠언과 바른 생활 주요보직자 현황 (2013-2학기 기준)총 장 : 조 병 수 박사원장 : 오 덕 교 교무처장 : 현 창 학학생처장 : 김 학 유 연구처장 : 송 인 규도서관장 : 이 승 진 경건훈련원장 : 이 승 진목회대학원장 : 이 승 구평생교육원장 : 김 은 미 주요 연혁▶1980. 11. 11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이념으로 하여 참신한 개혁주의적 신앙운동과 생활운동을 펴 나아갈 것을 염원하면서 서울시 강남구 반포동 271-45 소재 남서울교회당에서 합동신학원을 개원▶1980. 11. 18 합동신학원 초대원장에 박윤선 박사 취임▶1981. 2. 24 제1회 졸업식이 거행되고 48명 졸업▶1982. 4. 30 교육부로부터 신학교 설립 계획 승인▶1982. 11. 9 수원시 원천동 산 42-3 소재 학교부지(75,085㎡) 매입▶1983. 9. 9 교육부로부터 학교법인 ‘자유학원’ 인가▶1984. 12. 21 교육부로부터 신학과(40명) 신설인가, 교명을 합동신학원에서 합동신학교로 변경▶1985. 3. 5 제2대 교장에 신복윤 박사 취임, 박윤선 박사를 명예교장에 추대▶1985. 4. 20 본관 건물(2,598㎡) 완공 후 준공예배▶1987. 12. 9 교육부로부터 목회학과(40명) 증과 승인▶1989. 4. 18 제3대 교장에 김명혁 박사 취임, 신복윤 박사를 명예교장에 추대▶1989. 11. 6∼7 제1회 정암신학강좌 개최▶1990. 9. 14 생활관(3,635㎡) 개관▶1993. 4. 16 제4대 교장에 윤영탁 박사 취임▶1993. 12. 8 정암신학연구소와 칼빈사상연구소 설립▶1994. 3. 2 본관 건물(2,598㎡)에 4층(1,065㎡) 증축▶1996. 12. 11 교육부로부터 합동신학대학원대학으로의 전문대학원 승격 인가▶1997. 3. 4 제5대 학장에 신복윤 박사 취임▶1997. 11. 10 교명을 합동신학대학원대학에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로 변경▶1998. 2. 2 생활관 옆 부지(28,463㎡)를 교육용지로 매입▶1999. 4. 15 Th.M.과정(정원 10명) 신설 인가▶2000. 6. 싸이버신학교육연구소를 설립▶2001. 3. 6 제6대 총장에 박형용 박사 취임, 신복윤 박사를 명예 총장에 추대▶2001. 12. 28 평생교육원 인가를 받아 여자신학연구과정, 기독교상담과정, 성경 연구과정 개설▶2003. 10. 21 박사과정(정원 6명) 신설 인가▶2004. 3. 2 변화산기념도서관(1,700㎡) 개관▶2005. 3. 22 제7대 총장에 오덕교 박사 취임▶2008. 9. 9 본관 4층에 설교센터 개관▶2009. 3. 3 제8대 총장에 성주진 박사 취임▶2011. 10. 18 본교 도서관에 10만 장서 확보▶2012. 6. 12 경기도시공사와 토지교환 계약 체결▶2012. 11. 1 영자신학연구지『H·T·R』창간호 발간▶2013. 2. 26 제9대 총장에 조병수 박사 취임▶2013. 11. 5 제25회 정암신학강좌 개최▶2013. 11. 7 개교 33주년 기념감사예배 주요 시설 ▶설비▶건물 : 본관(강의실 및 교수 연구실, 행정실, 강당), 도서관, 생활관 등 3개동▶교육용지 : 101,497㎡ 부속 기관 목록▶도서관▶목회대학원▶박사원▶싸이버신학교육연구소▶상담실▶생활관▶선교연구 훈련원▶설교센터▶신학정론사▶정암신학연구소▶출판부▶칼빈사상연구소▶평생교육원▶합동소식사 2014-01-20
    •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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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0
  • 개혁주의의 본산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바른 신학과 교회와 삶이 살아 있는개혁주의의 본산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1월 7일 수원 영통구 광교중앙로 50 길가 산자락에 자리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경이었다. 들어가다 생활관 앞 잔디에 바위가 우뚝 서 있는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이 학교의 초대 총장 박윤선 박사의 얼이 느껴지는 바위였다. 한국의 세계적 주경신학자 박윤선 박사의 호 역시 정암이시다. 다가가 보니 나다니엘 호오손의 소설에 나오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듯한 그 바위는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 검게 새겨진 비석이었다. 비석에 새겨진 이 글은 합동신학교의 설립이념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1980년 11월 11일 개교한 합동신학교의 설립이념을 이어받아,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교육이념으로 교회의 교역자와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이다. 그 이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바른 신학 "바른 신학"이란 칼빈주의 신학(혹은 개혁주의 신학)을 의미하며 성경의 객관적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롬 11:36)을 높이는 신학을 의미한다. 바른 교회 "바른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와 주인(엡 2:22)임을 인정하고 그 통치를 받는 교회를 의미한다. 바른 생활 "바른 생활"이란 신앙과 윤리가 일치한 생활을 의미한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며(마 16:24) 한국교회가 상실한 내적인 성결과 겸손으로 주님의 삶을 닮아 가는 생활을 의미한다. "바른 신학ㆍ바른 교회ㆍ바른 생활" 등 3대 개혁이념의 구현을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재확인하고, 그리스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교회를 세우며, 신앙과 윤리가 일치하는 경건 생활을 정착시키는 일이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설립이념이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시간이라며 시간을 내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조병수 박사는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소탈해 보이고 크지 않은데 부드러운 위엄이 있었다. 그에게 성경 읽기는 무엇일까? 그는 그것에 대해 그의 저서 히브리서신학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이제 많이 알겠다 싶으면 또 다시 깊은 신비의 세계로 초대한다. 때로는 그 황송한 은택(恩澤)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탄을 발하지만 때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이 당황한다. 성경이 보여주는 신비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희열이며 전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좌절이며 통증이다. 기쁨에 떠는 까닭은 전에는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은총을 허락 받기 때문이며, 부러지며 아픈 까닭은 다시금 하나님의 요청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저 너머에 있는 무변(無邊)한 세계는 절대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 말씀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저쪽의 영역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조금 더 침잠하기 위해서 오늘도 살이 마르고 머리가 희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좌절이며 통증이다. 기쁨에 떠는 까닭은 전에는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은총을 허락 받기 때문이며, 부러지며 아픈 까닭은 다시금 하나님의 요청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한 성경 연구의 시간을 빌려 조병수 총장과 그의 신앙과 삶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어떻게 총신에서 합신으로 가게 됐습니까? “총신대 4년 재학 동안 신림동 교회(길자연 목사 시무)에서 교육전도사를 했어요. 79년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부에 입학한 뒤 군대를 갔어요.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려고 와보니 80년 11월에 설립된 합동신학원으로 신망 있는 교수들이 다 가버리고 안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결정을 못하고 1년 이상을 휴학하고 번역을 하며 지냈어요. 그런 뒤 82년에 합신으로 복학하게 됐어요. 총신생은 그냥 받아주었거든요.” 조병수 총장과의 인터뷰 준비를 하다가 그의 저서 겨울 그리고 봄의 머리말을 읽게 되었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나는 나의 인생에 가장 어려운 일을 겪어야 했다. 그러니까 1996년 11월 21일 목요일 오전 8시, 나의 사랑하는 아내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결혼한 지 15년 7개월 하고 몇 날이 지난 그때... 아내는 반년에 걸친 무섭고 지겨운 항암치료 앞에서 온 몸을 전율했다. 얼굴은 초췌해지고 몸은 수척해졌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이 초췌해져도 나는 더욱 그녀를 사랑한다. 아내의 몸이 수척해져도 나는 오직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줄곧 아내를 머릿속에 떠 올렸다. 아내는 한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다. 작년 가을에 홍콩 애진교회(양영학 선교사 담임)에서 사경회를 인도했을 때 아내가 모처럼 동행하였는데, 집회를 인도하던 중 주위 사람들의 극성스러운(?) 요청에 못 이겨 아내는 바이올린 독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나는 그것이 당분간 마지막 연주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자주 아내의 바이올린을 생각했다. 그것은 참으로 나에게 신기한 힘이 되었다. 사색이 이어지지 않을 때 아내의 바이올린은 선처럼 나에게 사색의 줄이 되었다. 나는 끊임없이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한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이 사랑의 글을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드린다. 1997년 8월 북한산 자락에서 -제가 알기로 사모님이 아프시다고 하던데. “아 지금은 괜찮습니다. 재발 우려가 없는 상태입니다.”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하나님의 은혜로 섭생과 운동이 도움이 됐어요. 95년 녹번동에 있는 염광교회를 맡아 7년 동안 목회를 했어요. 그 기간 신학교는 시간 강사로 강의를 했어요. 목회하랴 강의하랴 참 바쁜 나날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 해 11월 말 아내가 입원을 하게 되었죠. 그때서야 깨달은 게 있었어요. 고린도전서 7장 4절의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라는 말씀이었어요.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의 몸을 잘 관찰해 보살피고 관리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게으르면 병에 걸리게 됩니다. 목회는 주님 뜻에 맡기고 아내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사모님하고는 어떻게 사랑하시게 되었나요? “내가 전도사로 시무하는 신림동 교회 유년부 선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음대 바이올린 전공 학생이라 교회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했어요.” -그 당시 그 교회에 그런 게 있었습니까? 신림동 교회가 제 기억으로는 언덕 끝에 자리한 작은 교회였는데요. “그건 아주 옛날이죠. 그리고 길자연 목사가 음악은 잘 몰라도 형식은 좋아하잖아요. 제 아내가 권사님 딸이었고 부서의 봉사를 아주 열심히 했어요. 저 역시 제가 맡은 부서뿐만 아니라 청년과 대학생들을 그룹별로 조직해 성경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제 아내 집은 바로 교회 뒤에 있었죠. 장인께서 서울대 약대 교수시라서 관악 캠퍼스 때문에 신림동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각 팀을 집에서 성경을 가르쳤는데 아내가 속한 팀은 아내 집에서 하게 되었어요. 아내가 성경 공부에 열성적이고 저 역시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던 터라 자연스레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저는 수업이 끝나면 매일 서너 시간씩 성경연구를 했어요. 아침 식사는 떡 두 개 차 한 잔으로 마치고 어디든 성경 강의를 갔어요. 성경 공부에 열성적이니 누구나 호감을 가졌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내하고의 관계는 성경 공부를 중심한 신앙의 일치가 사랑의 뿌리가 된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는 무엇일까요? “성경적 개혁주의는 포괄적이긴 하지만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죠. 즉 God centered theology입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 중심 신학입니다. 저는 개혁주의를 성경 중심의 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교회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혁주의는 Bible centered theology입니다.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신학은 신학이 아닙니다. 그러한 신학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개혁주의라 외친들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신학은 무늬만 개혁주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를 따르는 목사라면 자신이 성경 연구와 성경 암송에 절어 있어야만 합니다. 루터와 칼빈이 그랬습니다. 개혁주의 전사들이 다 그랬습니다. 성경의 사람이 개혁의 사람이지 개혁의 사람이 성경의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신학이 의미가 있습니다.” -총장님의 사표가 되는 분은 누구인가요? “대학 때 학문에도 굶주렸고 기도에도 굶주렸습니다. 양용의 교수와 새벽 6시 공부와 기도를 하는 팀을 만들고 기도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이는 그 시간이면 박윤선 박사님이 학교 뒷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시는 모습을 늘 마주하게 됐습니다. 50년 연상의 스승님의 경건과 마주치는 체험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윤선 교수님은 50년 차이라 사표가 되어도 늘 실루엣이었습니다. 제가 34세 때 84세로 박윤선 교수님 소천하셨습니다. 그 나이의 격차가 대화의 상대가 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학 때 제 사표가 되신 스승님은 홍치모 교수님이셨습니다.” -홍치모 교수님이라고요? “네. 제게는 홍치모 교수님이 사표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학생에게 자신을 맡기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2학년 때 홍 교수님은 자신의 방의 열쇠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교수님 방에서 자고 라면을 먹고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다 허락하시고 우리를 믿으셨습니다. 목사님도 아니시고 학문도 엷으시지만 선생과 학생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사표가 되어주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영향으로 저 역시 제 방과 책을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허용합니다. 그리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는 Rese 교수님이 학문하는 자세와 강의하는 자세의 사표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분의 학문의 자세는 아침 6시부터 12시까지 아무도 안 만나고 공부에 몰두하십니다. 또 그분의 강의 자세는 반드시 노트가 되어 있는 강의를 하십니다. 한 학기 강의안이 다 노트에 담겨 있습니다.” 조병수 총장은 갑자기 화제를 박아론 교수에게로 돌렸다. “박아론 교수는 강의 시간에 언제나 15분 늦게 들어오고 15분 일찍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박 교수 방으로 찾아가 면회 신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찾아갔습니다. 결국 만나서 등록금을 계산해서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30분씩 날짜 계산해서 돈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박 교수가 막 야단치더라고요. 안 물어주면 다시 찾아온다고 당차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조교에게 저 학생 이름 적으라고 말하더군요. 저희 합신 교수는 종치기 전에 교실에서 학생을 기다리고 종치면 마칩니다.” -어떻게 합신 교수가 되셨습니까? “합신 전통은 학생이 재학 시절부터 암묵적으로 교수 요원을 양성합니다. 자질이 있다고 인정되는 학생이 발견되면 계속 관찰합니다. 그리고 조교 생활을 거치게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교수로 합당하다고 인정이 되면 교수 자격을 갖출 때까지 계속 기다립니다. 저 역시 그런 경우에 해당이 되어 귀국했는데 먼저 교인 500명의 염광교회를 맡아야만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시간 강사로 봉사하게 되었지요.” -총신은 총장을 4년마다 선임하는데 합신은 어떻게 선출합니까? “합신은 전통적으로 순번으로 돌아가며 총장을 맡게 되어 있습니다. 교수 전체가 수직적인 순위가 직급과 학번에 따라 결정이 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초창기부터 연장순으로 총장직을 맡은 전통을 따르게 된 결과죠. 그래서 역대 총장이 박윤선 박사, 신복윤 박사, 김명혁 박사, 윤영탁 박사, 박형용 박사, 오덕교 박사, 성주진 박사 등으로 이어져 저까지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학교 재정은? “등록금 비율이 40%, 후원금이 60%입니다.” -장학금이 항목이 상당히 많은데 어떻게 모금이 됩니까? “교회와 단체와 개인의 후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합신 출신 목회자들이 앞장서 학교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학생이 다 장학혜택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 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순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입니다.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내부적으로 목회자 문제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목회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지배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낮아져야 합니다. 둘째 목회자는 양을 이리와 맹수로부터 지키고 돌보기 위한 목양자 즉 목자입니다. 셋째 목회자는 명예와 부를 좇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날마다 죽어야 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인이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의 존재를 내세워는 안 됩니다. 우리 역시 고린도교회에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한국 교회의 외부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를 공격하는 안티 기독교 세력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강하기까지 합니다. 둘째 자유주의 정신이 강하게 압박해 오고 있습니다. 셋째 이단이 흥왕합니다. 넷째 타종교가 강세입니다.” 조병수 총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장을 잠시 응시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내부적인 문제로 목회자의 치유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단 목사가 되면 치유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서 소수의 정예를 키워야 합니다. 안티 기독교 세력처럼 저희 합신은 동아리 모임을 적극 권장하고 또 다양합니다. 성경 연구, 선교, 여러 학회 등의 동아리를 비롯해 사회문제를 다루는 동아리, 청소년 문제를 위한 동아리 등의 전문 분야로 나뉘어 활동을 하게 합니다. 교수가 적극 나서서 감독하고 지도해 줍니다. 그들이 나중에 안티 기독교 세력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총신의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무엇보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단과 학교가 명예에 대한 집착과 크기에 대한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작게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교수들도 문제입니다. 홍치모 교수님은 학식이 낮으셨지만 스승의 인격과 태도가 높아 학생과 일대일의 대응관계가 가능하셨고 제자의 신뢰와 존경을 얻을 수 있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아 하시는 성경 말씀이 있다면? “사도행전 24장 16절입니다.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사람이란 하나님 앞에서는 양심이 거리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아 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진노가 더디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바로바로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우리는 다 같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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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0
  • 하나님의 연애편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리고 오랜 기간 헤어져 있을수록 전달되어온 편지야 말로 그 내용이야 어떻던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깊이 사랑하는 애인으로부터 온 편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성경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보내시는 연애편지라 할 수 있겠다. 이 땅에 어느 연인들이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을 그렇게 쉽게 내 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은 한마디로 그런 얘기다. 성경을 전체로 여러 번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구구절절한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사랑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죄를 범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원수를 위해서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원수를 위해서 대신 죽게 하시고, 그 원수를 아들로 삼아서 영원히 함께 사시겠다는 사랑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연애편지를 받게 되면 내용이 아무리 길어도,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단숨에 읽어버린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다가 나중엔 다 외워 버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연애편지(성경)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너무도 좋아서 읽고 또 읽고, 그래서 마침내 그 내용을 다 외워 버린 사람이 인류역사가운데서 과연 몇이나 될까? 하나님께서는 자주 자주 우리 자신들의 행복과 형통함을(수1:8) 위해서 날마다 읽고, 마음에 새기고(잠3:3), 묵상하며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셨다.(신6::4-9)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사랑하셔서 20여년 전부터 요한선교단을 세우시고 성경전체를 한자도 빼지 않고 사람이 다 읽고 암송하는 성경통독암송훈련의 운동을 일으키셨다. 처음에는 일주일간, 다음에는 5박6일, 다음에는 4박5일, 그리고 현재는 3박4일, 때로는 2박3일에 신구약 전체를 통독하게 하셨다. 단숨에 하나님의 사랑의 연애편지를 읽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르겠다. 우리 사람들은 연애편지를 받아 읽고 기뻐하고 감격해 하면서 행복해 한다. 그리고 반드시 답장을 한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답장을 기다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경을 여러 번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답장을 얼마나 기다리고 계신지를 알게 된다. 너무 너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더욱 더욱 사랑해 주시고 싶으셔서 그러하시단다(요14:21). 그 답장은 무엇일까? 말씀대로 구하는 기도가 아닐까(요15:7)?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로 파송된 선교사님들이 현지에서 현지어로 성경을 통독하고 암송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마침내 제2의 종교 개혁을 일으키시기를 원하신다. 이 일이 요한 선교단에게 주신 사명이지만 또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이라 확신한다. 201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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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3
  • 이승구 박사의 신학논단 -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단순한 말로 표현된 제칠계명은 상당히 포괄적인 함의를 지닌 명령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포괄적인 제1계명과 제10계명과 함께 7계명이 십계명 가운데서 가장 많이 범해 지고 있는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계명의 말씀이 얼마나 포괄적인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계명의 적극적 의미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제 7계명의 가장 적극적 의미가장 적극적인 의미에서 생각하자면 제7계명은 하나님께서 내신 성적인 정체성과 성적인 관계를 가장 제대로 드러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의도를 가지셨고(창 1:26),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창 2:18)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창 1:27; 2:7, 18-22).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으로는 남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로서의 특성(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성성)을. 그리고 여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자로서의 특성을(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성성)을 가장 충분히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조차도 무엇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성성인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성성인지 잘 모르고 제대로 드러내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심지어 하나님을 잘 섬겨나간다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과연 하나님이 의도하신 남성성, 하나님이 의도하신 여성성이라는 것이 별도로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까지는 남자는 하지 못하는 일인 아이를 낳는 것에서만 여자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를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극치 상태에서는 아이 낳는 일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다 중성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아이 낳음 이외에 남자의 남자로서의 특성, 여자의 여자로서의 특성이라는 것이 아이 낳은 일이과 그것과 연관도 기능들과 상관없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과연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고 하나님의 의도에 비추어서 남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답게, 여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자답게 나타나는 일에 힘을 쓰고, 급기야 부활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남성성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성성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모든 사람이 다 똑 같은 특성을 가지지 않을 것이므로 극치 상태의 남성성과 여성성에도 다양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기 다른 남자들이 참으로 다르지만 모두가 참된 남성성을 드러낼 것이고, 각기 다른 여자들이 역시 각기 다르지만 모두 참된 여성성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몸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늘 낙원에 있는 상태에서도 남자의 영혼은 남자의 영혼으로서의 특성을 드러내고 여자의 영혼은 여자의 영혼으로서의 특성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몸의 형태와만 연관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람의 모습을 잘 드러내되 하나님의 창조에 따라 어떤 사람은 남자로서의 인간적 특성을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여자로서의 인간적 특성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남자로 창조된 사람들은 남자로서의 사람의 온전한 특성을 드러내고, 또 여자로 창조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자로서의 특성을 드러내려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인간적 특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의식하고 구현하는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어린 아이들도 해야 할 일이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해야 할 일이며, 하늘에 있는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혼도 하는 일이며, 부활한 사람들로 할 일입니다. 우리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드러냄은 우리들의 고유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땅을 사는 동인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우리들의 정체성을 잘 구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춘기에 이른 청소년들과 혼인 이전의 청년들도 그런 의미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의 한 부분인 성정체성을 잘 의식하고, 앞으로 혼인하여 살 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적인 관계를 잘 이루기 위해서 자신들을 순결하게 하며 잘 준비하여 가야 합니다. 그것도 7계명을 잘 지켜 가는 일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이른 사람들은 이런 특성의 따라서 서로를 갈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만나 혼인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와 여자의 하나됨의 실현을 모든 측면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같이 추구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이 땅 가운데서 구현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고, 심리적으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적인 하나됨과 심리적 하나됨을 나타내는 일종의 표(sign)와 상징(symbol)으로 물리적인 하나됨(육체적 하나됨)인 성적 관계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의식하면서 성적인 관계를 하는 것이 제 7계명의 적극적 함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적 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허락된 것입니다. 혼인 관계 안에서 주어진 여러 축복들 가운데 하나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일입니다. 혼인한 사람들은 함께 하나님을 섬겨가며, 함께 공동의 사명을 이루어 가며, 함께 약속의 열매요 생명의 열매를 받아 양육하는 은혜도 얻으며, 평생 서로 의지하며 서로 돕고, 사랑하며, 가장 가까운 친구로 있는 복 등의 여러 복을 누리도록 축복 받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각자의 정체성을 분명히 의식하며 드러내는 것의 한 부분으로 자신의 창조 받은 성적인 정체성을 잘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혼인 관계 아래 있도록 하신 기간 동안 영적, 심리적 하나됨의 표로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에 따라 성적인 관계를 잘 누려 가는 것이 7계명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적인 관계는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고 하나님의 의도대로 문화 명령을 수행하여 가는 하나님을 섬기는 부부가 하나님 섬겨가는 일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관련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과 관계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관련 없이 그 사람과 혼인하여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사실은 하나님과 관련 없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제7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후에 언급할 것들만이 7계명을 범하는 죄가 아니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행위 전체가 다 7계명을 소극적으로 범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제 7계명을 적극적으로 범하는 일그렇다면 제7계명을 적극적으로 범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혼인 관계 밖에서의 모든 성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할 때 인간은 모든 타락한 마음의 생각에 그대로 노출되어(롬 1:21-32) 온갖 성적인 범죄를 범하게 되는 데 그것을 막는 명령이 제 7계명입니다. 물론 가장 현저한 것이 혼인 관계 밖에서의 성적인 행동입니다. 그것을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혼인 관계 밖에서의 성적인 행동만이 간음이라고 하기 쉬운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그런 경향을 잘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말씀하시면서 타락한 인간들의 문제를 잘 드러내신 것입니다. 혼인 관계 외의 있는 사람에게 대하여 마음속으로 성적인 생각을 하여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는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혼인 관계 밖에서의 모든 성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 7계명을 어기는 죄라고 한 것입니다. 과거의 거의 모든 시대와 마찬 가지로 우리 시대에도 성적인 죄를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성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우리들에게도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성적인 일탈들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시대에 더욱 더 기도하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를 따라 가는 것은 언제나 심각한 문제라고 성경이 늘 경고하고 있는 것인데(롬 12:1-2), 우리 시대에 우리들도 그런 상황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이 시대를 따라 가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경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부터 잘못된 생각이 나타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원칙에 충실해야만 우리들은 7계명을 범하는 일에서 멀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들과 적극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1) 우리 마음을 늘 하나님으로 가득하게 하는 일이 최선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에 대한 책들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 보며, 그런 세계관에서 세상과 관여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가정을 잘 누려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3) 건전한 교회의 구성원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여 가는 일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를 역할을 제대로 하여가면 하나님과 함께 살며, 제대로 된 가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 역할을 하지 않고, 건전한 가정을 누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교회의 지체 역할을 하여 나가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가정을 잘 지키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동성애 문제와 7계명그런 뜻에서 보면, 남성이 남성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급기야 성적인 관계를 가진다든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성적인 관계를 가기게 되는 이른 바 동성애적 정향과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내신 창조 원리에 반하는 정향과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로마서 1장 26절-27절을 잘 묵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동성애적 정향과 동성애는 7계명을 범하는 성향과 행동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죄악된 성향과 죄악된 행동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이를 인간의 악의 목록 가운데서 현저한 것의 하나로 여기면서 논의하였다는 것은 이것이 현저한 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성애만이 7계명을 어긴 죄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동성애도 타락한 사람들의 성적인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모든 죄를 다 심각한 죄로 여겨야지 그 중의 어떤 것만이 더 큰 죄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롯한 특정한 죄를 아주 심각하게 여기면서도 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죄 속에 있음을 잘 고발하는 소설들이 잘 드러내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우리가 경멸하듯이, 우리들이 동성애 같은 것을 심각한 죄라고 하면서도 우리들 가운데 심각한 죄가 있으면 이 세상은 우리들을 경멸하고, 안타깝게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경멸하고, 심지어 하나님도 경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동성애만이 아니라, 동성애를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혼인 관계 밖에서의 모든 성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 7계명을 적극적으로 어기는 죄악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동성애적 성향을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도와 관련해서 자신들의 성향을 고쳐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바르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소극적으로는 그런 성향이 실제화 되지(practice)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은 온전히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 대하여 의도하신 삶은 "영적이며-심리적이며-육체적인 삶"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게끔 애쓰는 것이 7계명을 잘 지켜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가정을 잘 드러나게 하는 일이 우리가 힘써 행할 일의 하나라는 말입니다. 가정 안에서 사랑도 있고, 같이 식사하는 일도 있듯이, 성 정체성도 있고, 성적인 관계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포함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7계명의 적극적 의도를 더 깊이 묵상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들과 여자들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과 자녀와 하나님의 의도하신 자녀 교육과 가정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7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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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ERMON
    2013-12-23
  • 필리핀 재난 그리고 교회 건립
    전국남전련 필리핀 개척교회 기공예배 전국남전련 회장 양성수 장로와 대한교회 윤영민 목사(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이재천 장로(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11월 8일(현지 시각) 휩쓸고 지나간 필리핀 중부 지역은 폐허로 변했다. 사상 최고 속도의 태풍이 불어닥치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해일이 도시 전체를 뒤덮으면서 피해 지역은 아비규환이 됐다. 하이옌이 관통한 필리핀 중남부의 섬 지역이 직격탄을 맞았다. 레이테섬의 최대 도시 타클로반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인구 22만명의 타클로반에서 1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시 관계자가 말했다. 인근 사마르섬에서도 사망·실종자가 2300여명에 이르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하이옌이 지나간 피해 현장은 참혹한 상태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시신이 물에 떠다니고 무너진 건물 잔해와 쓰러진 나무가 진흙더미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타클로반 공항은 쓰레기장처럼 변했다. 현지 주민들은 태풍이 지나간 지역은 남아 있는 건물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마누엘 로하스 필리핀 내무장관은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보니 해안에서 내륙으로 1㎞쯤 되는 지점 사이에는 서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며 "마치 쓰나미(지진해일) 현장 같다"고 말했다. 현장을 둘러본 유엔 재해조사단 관계자는 "22만명이 희생된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참사 못지않은 피해가 발생했다"며 인명 피해 규모가 크게 늘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명 관광지 보라카이에서도 관광객들이 긴급 대피했으며 일부는 일시적으로 고립되기도 했다. 피해 지역은 전기와 수도가 끊겨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부상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 지역에 도착한 한 구조대원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으며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는 하이옌의 위력 때문이다. 미국 관측 자료에 따르면 하이옌은 순간 최대 풍속이 시속 379㎞(초속 105m)로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록됐다. 이재민들로 가득 찬 대피소 여러 곳이 태풍에 휘말려 무너지기도 했다. 태풍으로 쑥대밭이 된 타클로반의 거대한 무덤에 아이들이 시체를 나르고 있다. 큰 재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필리핀에 전국남전련(회장 양성수 장로}은 12월 2일부터 5일까지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방문, 무슬림 지역인 제너럴산토스에 ‘남전교회’ 건축 기공예배를 드렸다. 제너럴산토스는 민다나오 다바오 시에서 자동차로 4시간 이상 걸리는 오지이자, 무슬림 반군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사지(死地)라 불린다. 또 교회조차 전무한 곳으로 전국남전련은 대한교회(윤영민 목사)와 힘을 합쳐 대지 600평에 건평 100평 규모의 예배당과 학교를 세울 예정이다. 예배당과 함께 세워지는 학교는 대한교회의 지원으로 컴퓨터 교육 등이 진행된다. 전국남전련은 예배당 건축 외에도 주민들을 위해 우물 파기와 농구대 설치도 약속했다. 4일 현지에서 열린 기공예배는 전국남전련과 대한교회 방문단을 비롯 현지인 300여 명이 참석해 은혜롭게 진행됐다. 예배는 양성수 장로의 사회, 이재천 장로(증경회장) 기도, 강만제 장로(서기) 성경봉독,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설교, 김상천 선교사 인사, 박영수 장로(총무) 광고 순으로 진행됐다. 전국남전련 회장 양성수 장로는 “전국남전련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예배당을 세우게 돼 감사하다”며 “이번 회기 동안 해외개척교회 건축에 더욱 힘쓰겠다”고 인사했다. 2013-12-23
    • G.MISSION
    • G.MISSION
    2013-12-23
  • 이승구 박사의 신학논단 - “살인 하지 말라”
    “살인 하지 말라” 제 육계명은 십계명 안의 많은 금령들과 같이 “-- 하지 말라”는 금령의 형태로 되어 있지만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결국 진정한 생명 신학과 생명 운동의 적극적 기초가 되는 말입니다. 현대 사회와 같이 인간의 생명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무시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들이 강조하고 나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 진술과 운동의 근거가 여기 있다고 여겨집니다. 먼지 이 계명의 단순한 의미를 생각해 보고, 더 적극적인 의미를 찾아 본 후,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해 가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살인 하지 말라”는 금령의 단순한 의미 일단 이 계명이 명령하는 바는 매우 단순하고 분명합니다(straightforward).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거나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금령을 생각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지 않기만 하면 그의 생명을 해하여도 이 금령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찬동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금령을 듣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빼앗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에 그 어떤 해를 가하는 것 모두를 이 금령이 금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금령은 모든 살인과 살인 교사, 그리고 자살과 사람들을 자살에 이르도록 하는 모든 것을 금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금령은 인간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살인 하지 말라”는 금령의 좀 깊은 의미 여기서 좀더 나아가 보십시다. 그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거나 빼앗지 않으면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일까요? 이 금령을 주신 하나님의 입법자의 의도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 명령의 법의 정신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법을 내신 하나님의 의도를 잘 밝히시면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 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지 않도록 하라고 하시고(마 5:23), 형제들과 화목하고 사화(私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24, 25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드러내주신 입법자의 의도에 의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분노하거나 욕하거나 무시하는 그 모든 일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분노의 대상, 욕의 대상, 비하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화목해야 할 상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법자의 의도에 의하면 사람들의 사회는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대립하고 욕하고 비하하는 관계 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 사회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에 의하면 인간들은 서로가 화목하고, 용서하고 감싸 주고, 서로를 높이고 존중하고, 서로 귀하게 여기는 관계를 가지여 한다는 것입니다. 욕하는 우리 사회, 서로 비방하는 우리 사회, 서로 비하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이런 입법자의 의도를 잘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살인 하지 말라”는 명령의 더 적극적 의미 더 나아가서 “살인 하지 말라”는 명령은 그저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 이에서 더 나아가서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성경의 독자들은 언제나 이 명령에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들은 그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하지 않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이 명령의 적극적 함의를 생각해서 우리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유지되고, 더 나아가 증진되도록 하는 일을 하도록 명령받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저 해를 가하지 않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를 지키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창 4:9 참조). 자신과 형제의 생명이 보존되고, 더 좋게 되도록 힘쓰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질(quality of life)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이 있도록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의미 이 모든 것의 기독교적 함의는 매우 분명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이 가장 온전한 상태에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기독교적으로 볼 때 우리 생명의 가장 온전한 상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지닌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은 결국 생명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보려는 모든 노력은 다 죄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맹목(盲目)인 채 인간의 생명 그 자체에만 몰두 하는 것은 결국 진정한 생명을 빼앗는 일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물리적 생명과 그 생명의 질에 대한 몰두가 어떻게 하면 죄이고, 사실은 진정한 생명을 앗아 가는 것이 되는 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고서 인간 생명의 질을 발전시키는 노력, 인간을 발전 시켜보려는 교육이 사실은 인간을 파괴하며 그들을 진정한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역사를 통해서도 잘 보아 왔고, 근자의 우리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피부에 와 닺게 아주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 생명의 증진시키려고 노력을 하여 진정한 생명을 죽이는 자들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단이 사람을 찔러 죽이거나 하지 않고서도 “처음부터 살인한 자”가 된 것처럼(요 8:44), 우리도 여러 방식으로 살인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을 기독교적으로 실현하려고 할 때는 결국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게 되도록 힘써야만 합니다. 여기 에서 진정한 생명 운동의 출발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엡 2:1, 5).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영적으로 다시 살아 난 사람이 그 안에 진정한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그 안에서 약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 생명인 영생을 가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생명, 즉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하는 것입니다(요 17:3).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의 더 깊은 의미 속으로 날마다 들어가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생명적 교제 관계를 계속 자져 나아가기에 날마다 더 “풍성한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더 깊이 있게 하나님과 교제하여 나간다는 말뿐이 아니라, 그 결과 이 세상 속에 진정한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잘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여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고 있는 이 진정한 생명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어서 그들도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일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며, 그 일을 위해 힘을 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전도와 선교에 힘을 다하는 이유는 이것이 진정한 생명을 전달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생명이 있도록 애쓰는 사람들은 인간의 물리적 삶(physical life)은 무시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물리적인 사람도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선의 상태에 있도록 애를 씁니다. 일단 물리적 삶이 있어야 그 안에 진정한 생명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의도에 의하면 그 어떤 사람의 물리적 생명도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물리적인 삶도 이 세상에서 일정한 한도 내에서 증진되기를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의 유지와 복지(wellbeing)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마다 병원을 세우고, 구호 기관을 마련하고, 학교를 세우는 일에 열심을 보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존중 되어야 하고, 그 삶의 질이 점점 더 나아져야 하겠다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생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물리적인 삶은 정자와 난자가 합쳐지는 수정 순간부터라는 것을 아주 자명한 것으로 여기기에 수정난과 배 속의 배어와 태아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도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낙태 반대 운동에 힘쓰고, 이혼모들이 아이를 낳도록 권면하고, 입양에 앞장서며, 그 모든 것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과 재정적 지원을 감당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끝은 영혼이 몸으로부터 떠나가는 순간인 심폐사의 순간으로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형태의 안락사에 찬동하거나 동의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존엄사가 진정 존엄사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신 물리적 생명이 자연스럽게 그쳐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생명의 근원이시요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생명의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육계명과 성경 전체의 뜻에 근거해서 이 땅 가운데 진정한 생명 운동에 힘쓰는 사람이 됩니다. 진정한 생명운동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시작하여 창조와 구속으로 지금까지 하고 계신 일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생명 운동, 살리시며 살아가게 하시는 살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생명 운동, 참된 살림의 꿈틀거림은 인간 스스로가 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운동을 발견하고 하나님에 의해 살게 되었고, 스스로 죽었으나 다시 살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리시는 살림 운동에 동참하여 가는 일일 뿐입니다. 일반은총적 함의: 사회적 생명 운동의 토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그 생명이 참으로 인간 생명답게 되도록,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 경배 하며 찬양하고, 기도하고 의존하며, 그 하나님의 뜻을 가르침 받아서 그 뜻이 이 땅 가운데 구현 되도록 하는 일에 힘쓰지만, 불신자들은 믿고 돌아 올 때까지는 계속해서 서로 죽이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그 런 사망운동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깊이 있게 살펴보면, 결과적으로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이 복음에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지옥과 같은 사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죄악이 성행해도 지옥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나아가면 지옥에 던져진다는 사살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궁극적 지옥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아직은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 차이가 있지만, 첫째로 이 세상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생명 운동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작용해서 죄악이 극단적인 상황에 까지는 가지 않도록 억제 하시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살인 하지 말라”는 금령의 일반은총적 함의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살인하지 말아야 하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주 극악무도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느슨한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일반 은총 가운데서 이 사회가 그래도 유지되도록 하신 죄의 억제의 한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가 주어질 때 저할 할 수 없는 특별은총과는 달리, 일반은총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저항할 수 있으므로, 어떤 사회에서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좀 더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어떤 사회에서는 그것이 상당히 무시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로서는 위에서 언급한 기독교적 관점에 근거해서 사람들의 생명을 해하지 않고, 더 온전히 해 가는 진정한 생명 운동의 길로 나아가면서, 그것을 일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따라 오도록 하는 폭 넓은 사회 운동을 하게 됩니다. 같은 생명 운동인데 그것이 그리스도인 안에서는 구속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여 자신을 헌신하여 하나님의 생명 운동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지만, 이 세상 속에서는 그저 인간 생명을 존중하게 그것을 위한 운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동기가 다르고 궁극적인 방향이 다르지만, 이 세상 속에서는 그저 인간 생명을 위하는 생명운동에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협력해 가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낙태 반대 운동이나 모든 종류의 “생명을 위하는 입장”(pro-life position)에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같이 참여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다른 비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생명을 위하는 활동에 참여 할 수 있도록 권하고 노력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때에는 기독교에서는 인간 생명을 수정 순간부터 심폐사의 순간까지를 온전한 인간 생명으로 보기에 존중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가치를 보급하기도 해야 하지만, 이런 가치를 확산하는 비기독교적 설명도 같이 시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기독교적 이해를 가지지 않고서도 수정 순간부터 심폐사의 순간까지를 인간의 물리적 생명으로 여기면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적기는 하지만 있으므로 그런 분들의 설명의 시도를 도와서 인간의 물리적 생명도 여러 방도로 보호해 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사유와 활동의 종국적이고 분명한 근거는 이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제 육계명은 오늘도 이 세상 속에서 강하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2013-11-25
    • G.MISSION
    • G.SERMON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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