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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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교총 광복 77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
    한교총 광복 77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 “과거 기억하며, 미래 대한민국의 꿈을 꾸자” 성명서에서는 분열 멈추고 협력의 길 모색 촉구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이 10일 10시 30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8.15 광복 77주년을 기념하며 <광복 77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를 가졌다. 공동대표회장 이상문 목사(예성 직전총회장)의 인도로 진행된 기념예배는 김주헌 목사(기성 총회장)의 대표기도와 김명희 목사(예장보수개혁 총회장)의 성경봉독, 베데스다 찬양대의 특별찬양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설교를 맡은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예장통합 총회장)는 ‘야드바셈: 꿈엔들 잊을건가?’라는 제목으로 한민족과 유대인의 역사를 설명하며 “그날의 해방은 인간 자체의 해방이며 신사참배의 강요를 벗어나는 ‘종교의 자유’를 찾은 해방이었다.”라고 해방의 의미를 강조하였고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한국교회를 눈물로 지켜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 다음세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김원광 목사(예장합신 총회장)의 헌금기도 후 이영훈 목사(기하성 대표총회장)는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대한민국이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수고와 성도님들의 눈물의 기도의 결과이다. 최근 여러 재난을 겪으며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며 피해를 입은 이웃을 주의 사랑으로 돌보자”라고 환영사를 마무리하였다. 고명진 목사(기침 총회장)는 “일제의 강제 병합과 침탈에 항거하며 위대한 꿈을 꾼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다. 광복 77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되는 위대한 꿈을 꾸길 바란다.”라고 기념사에서 밝혔으며 배광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는 인사를 통해 “잃었던 나라와 주권을 되찾은 광복의 기쁨과 만세의 함성이 멈춘 후 77년이 지났다. 국내, 국제적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으며 절망의 탄식이 나오고 있는 시기에 한민족의 희망은 교회다. 다시 한번 희망을 외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특별기도시간에는 참석한 교단장과 교단의 총무/사무총장들이 단상에 올라가 광복에 대한 감사, 나라를 위한 기도, 남북의 평화와 사회 갈등의 해소, 한국교회의 연합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기도하였고 본회 공동대표회장인 강학근 목사(예장고신 총회장)와 김기남 목사(예장개혁 총회장)가 8.15 광복 77주년 한국교회 성명서를 낭독했으며 모두 함께 일어서서 이철 감독(기감 감독회장)의 선창을 통해 만세삼창 후 애국가를 제창하고 장종현 목사(예장백석 총회장)의 축도로 마무리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물리치고 자유의 빛을 되찾은 광복 77주년을 맞이하였다.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겨내며 자랑스럽게 민주화와 경제부흥을 이룬 지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국내 정치의 분열로 내우외환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2:25).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화합과 협치의 정신은 사라지고 스스로 분쟁을 야기하는 지도자들로 인해 국민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감사와 기쁨과 희망으로 충만해야 할 광복 77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총연합은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점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폭압 속에서 노예로 살았던 지난 날의 역사를 기억한다. 창씨개명과 강제징용, 위안부와 생체 실험, 신사참배를 강제한 일제의 무단통치는 지울 수 없는 폭력과 치욕의 역사이다. 일본 정부는 군국주의자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평화로운 관계 정립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2. 우리는 정부와 국회 기업과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상호 분쟁을 멈추고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대화를 통해 공존과 통합의 미래를 위해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 현재와 같은 비방과 분열의 정치는 선열과 다음세대에 대한 범죄행위다. 즉시 분쟁을 멈추고 화합과 협력의 길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3. 우리는 빼앗긴 조국의 국권 회복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기도와 꿈과 지혜와 열정에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대한민국의 안정된 발전과 새로운 부흥을 꿈꾸며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2022년 8월 10일 사단법인 한국교회총연합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912호 E-MAIL : ucck6200@gmail.com 홈페이지 : ucck.org 전화: 02)744-6200 FAX: 02)744-6202 모바일: 010-7440-6202(문자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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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0
  • 이연정의 영어찬양교실
    이연정 집사의 ‘영어찬양교실’ 우리가 부르는 많은 찬양은 번역된 곡이 많다. 그런데 번역되어서 부르는 찬양보다 원곡이 작사가의 뜻을 더 잘 담고 은혜로울 때가 있다. 저서 ‘걸음마 영어’를 저작하면서 누구나 영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뜻으로 이번에도 본인이 좋아하는 찬양과 영어를 접목하여 멋진 강의를 기획했다. 은혜로운 찬양을 하면서 영어 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도서출판 봄비 발행인, 교회 집사(여의도순복음교회), 코치합창단 멤버이기도 한 이연정 집사가 이 기간 이후로도 계속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 콘서트: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 10/23 오후 2시 이연정 청산여자상업학교 야간부를 나와 서울신탁은행에 입행한 후 일과 병행하며 성균관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영어를 새롭게 접하게 된다. 이후, 은행 지원으로 한국금융연수원 국제금융 MBA(6개월) 및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재무학 석사(Master of Science in Finance)과정에서 수학하였으며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 국제재무분석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서울은행 및 하나은행(현 KEB하나은행) 국제업무부, 경영기획팀, 업무지원팀, 경영관리부, 압구정PB센터, 홍콩지점 등에 근무한 후 2019년 초에 퇴직하여 “도서출판 봄비”를 설립하였다. 저서 걸음마 영어 인생 자산 20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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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5
  • 김춘식 목사 종말론
    마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조금씩 돕는 게 최선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자신을 친절하게 돌보아야 한다. 소나기 멎자 찬송 소리 젖은 교회 뜰을 다시 적신다. 비 오다 멎고 기도 소리 그쳤다 다시 일고 또 한여름 이렇게 지나가는가. 소나기 소리, 찬송 소리에 아직은 성한 귀 기울이며 1999년 김제에서 시작된 또 한여름 2022년 또 이렇게 지나 보내는가. 그는 생각한다. 누구도 세계 최고의 지도자, 세계 최고의 학생이거나 세계 최고의 목사로서 번듯한 기록 하나 세워놓지 못했음에도 저마다 글로 풀자면 책 몇 권을 써도 부족한 감동과 희열과 분노를 품은 귀한 삶들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한때의 세상은 소낙비에 듬뿍 젖어 있고 다음 세상은 찬송 소리에 담뿍 물들어 있을 것이다. 이후의 세상은 또 다른 무엇으로 가득 채워질까. 하나님의 다정한 자연의 원리들이 있어서 이 세상을 차례차례 채우고 사라진다. 그 흐름을 고요히 보고 있는 목사는 ‘그래, 너희가 또 찾아왔구나’ 미소 짓는다. 목사의 창밖에서 만나는 비와 더위는 꼭 와야만 해서 다시 온 것들이다. 잘 왔다가 잘 가기를, 내년에 우리 또 만나기를, 그리운 아버지 김정호 목사님을 꿈에서 만나듯... 그가 부임한 교회는 1910년 7월 7일 김제 옥산리에서 옥산교회로 출발해 1925년 김제읍교회, 1929년에 김제중앙교회로 각각 명칭을 변경했었다. 그가 부임 당시 김제시 인구는 15만이었는데 2022년 7월 지금은 8만 선에 머물고 있다. 2022년 7월 17일 은퇴하는 그는 재직 기간 장례만 600건을 치렀다고 한다. 부임한 뒤 김춘식 목사와 어려울 때 함께한 800여 교인들은 예배에 대한 강한 열정과 사모함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 분립으로 교회 건축을 위해 잠시 천막생활을 하면서도 예배는 뜨겁게 이어졌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천막 하나를 치고 모인 교인이 800여 명이었다. 이러한 교인들의 예배에 대한 사모와 열정은 담임인 김춘식 목사의 목회에서 힘을 얻는다. 김 목사는 남다른 목회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한다. “목회자 자신이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만 생명력 있는 말씀을 전하고 살아있는 목회를 할 수 있다.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서 어떻게 교인들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목회자의 카리스마는 목회자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말씀의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잊지 않고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에게 생명의 꼴을 먹이려 하고 있다.” 그런 목사를 따르는 교인들은 불평 하나 없이 기쁘게 예배를 드리며 예배당이 새로이 완공되기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도했다. 2009년 9월 착공하여 2010년 7월 입당한 지금의 예배당은 강도 7의 지진에도 견디는 내진설계로 시공된 너른 주차장과 부속 건물을 갖춘 복합 건축물이다. 그는 20년째 교인들과 동고동락하며 목회를 했다. 교회 분열의 아픔을 딛고 새 예배당을 완공한 다음 해인 2011년 4월 7일 미국 뉴욕의 기독 언론 '아멘넷 뉴스'(USAamen.net)는 김춘식 목사의 부흥회 초청 기사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퀸즈장로교회(장영춘 목사) 춘계부흥회의 강사가 화제가 됐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설교가 이야기의 기교나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예화 없이 진솔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2011년 4월 7일(목)부터 4일간 계속 될 퀸즈장로교회 춘계부흥회는 뉴욕 교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김춘식(김제중앙장로교회) 목사를 강사로 초청했다. 첫날 김 목사는 요즘같이 어려운 난세에 "하나님이 우리를 찾고 계신다"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목사는 누가복음 3장 1-14절 말씀을 본문으로 "크고 두려운 날"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세례 요한이 외치는 독사의 자식들이란 파워게임에 눈이 어두워져 있는 세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외치는 소리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알려면 그 시대의 사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디베로 가이사가 누구인가. 헤롯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또한 본디오 빌라도는. 모두 권력에 혈안이 되어 있던 정신병자, 이기주의자, 백성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우민정책을 쓰며 그들을 음란과 타락으로 몰아넣었던 인물들입니다. 바닷물의 소금은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3%가 온 바닷물을 짜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둠은 절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왜 우리는 진실하지 못할까요. 적어도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있는지 돌아보고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란 구원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을 들어 광야에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광야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시며, 개입하시고 약속하시고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아멘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완성되어있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것뿐입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히 자유함을 얻는 것이 구원입니다. 혹시 위험한 회개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위선적인 회개를 돌아봅시다. 한순간에 지푸라기로 변하고 마는 것이 인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회개할 싸인이 느껴지면 과감하게 돌아설 줄 알아야 합니다." 김 목사는 한 시간 동안 회개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간절히 찾고 있는 사람이 우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코로나가 ‘심각한 병’에서 ‘일상의 병’으로 급수가 하향된 2022년 7월 3일 11시 김제 중앙장로교회는 맥추감사절예배를 드렸다. 맥추감사절은 유월절이 끝난후 7주가 끝난 50일째 되는 날 곡식을 처음 거두어 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기리는 절기이다. 성도들이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찬송 후 이규수 장로가 대표기도를 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거룩하고 복된 날, 주의 전으로 불러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자녀 삼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하나님 은혜 속에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오늘 맥추감사주일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게 해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도 한 제단 한 제단 쌓아갈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게 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들은 한 주간 살면서 주님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 따라 살다가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오늘도 주님의 사자(使者) 목사님 단 위에 세워주셨사오니 강건함으로 붙잡아 주시고 성령으로 붙잡아 주시어 이 시간 능력의 말씀을 증거 하실 때 우리 눈이 열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 귀가 열려 하나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코로나로 인해 우리 주위를 떠난 자들이 하루속히 주의 전으로 나와 주님 앞에서 찬송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신령과 진정과 찬양으로 경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중앙의 일꾼들은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우리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해 주시옵소서. 연로하신 분들 맑은 영도 주시고 강건함으로 붙잡아 주시고 원치 않는 병으로 치료 중인 우리 성도들을 일일이 기억해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사의 손을 빌어 깨끗하게 치료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임마누엘 찬양대 세우시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저들이 부르는 찬양 기쁘시게 받으실 줄 믿사오며 (회중 아멘)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임마누엘 찬양 대의 기도 송이 울렸다. 우리의 기도 들어주시어 우리의 음성 영광되게 하소서 아멘 김춘식 목사가 성경을 봉독했다. “창세기 6장 5절로 8절까지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아멘. 찬양대 찬양이 있겠습니다.” 임마누엘 찬양대가 단 앞으로 나와 정렬하고 ‘공중 나는 새를 보라’를 찬양했다. 김춘식 목사가 설교단에 서고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는 믿음의 손을 가지고 은혜의 하나님 앞에 오늘도 헌금을 드렸사오니 마음의 문 열리게 하시고 진리로 충만하게 해 주십시오. 말씀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능력이 되게 하시고 (회중 아멘) 복이 되게 하시고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영생을 믿사오며 성령의 도구가 되게 해 주실 것을 믿사오며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난 시간 창세기 3장 15절 말씀에서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사단이 여인의 후손 발뒤꿈치를 물게 될 것이라고 하는 가운데 열정적으로 사단의 세력을 정복하신 구주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사단의 무리를 괴롭히는 세력임을 믿고 믿음의 경고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섬겨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늘 계속해서 창세기 4장 5장 6장 7장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맥추감사절 말씀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창세기 4장과 5장을 지나가는 동안 가정에서 첫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지만 불순종함으로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이제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을 통해 인생이 점점 악해져 가는 모습을 창세기 4장 5장 6장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버린 인생들에게 충격과 부패와 성적 타락이 따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도 4장 5장에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가인의 후손 가운데 음악을 하고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타락하고 불순종했어도 하나님의 형상이 더럽혀지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이런 지혜로운 일들을 하면서 음악을 하고 기계를 만들어 삽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에 가서 오래 산 사람들 얘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800년을 살고 이제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782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고 969세를 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800년 900년 969세를 살았다고 하니 근 천 년을 산 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 년을 살았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단지 그 사람들이 천 년을 살았지만 죽지 않은 에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장수하시기를 바랍니다. 천 년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어디 있느냐.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간 것처럼 여러분의 영혼이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리고 이제 창세기 6장으로 넘어와서 보면 하나님의 인간 죄에 대한 대처방법은 크게 첫째는 심판이고 둘째는 은혜입니다. 창세기 6장 11절에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말씀합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계획이 악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락하고 부패한 속성을 지니고 사는 인생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회중 아멘) 이렇게 부패하고 폭력적인 사회가 되었을 때 대표적인 것이 성적 문란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말씀합니다.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후손과 아벨을 대신해 태어난 셋의 후손을 구별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가능성은 천사들입니다. 두번 째 가능성은 하나님을 잘 믿는 신실한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란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녀들이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배우자를 선택하게 될 때도 세상 사람들처럼 사회 신분이나 외모나 세상 적인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패한 사람들의 특징은 4절에 나옵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그들은 용사였고 세상 명성이 높았습니다. 네피림은 남을 넘어뜨리는 자들입니다. 건장한 육체를 가지고 남을 죄에 빠지게 하는 영향을 가진 자들입니다. 크고 강하고 소문났을지라도 그 은사를 가지고 죄를 짓게 한다면 파멸입니다. 그들의 대표적 특징은 폭력과 성적 문란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폭력과 부패와 성적 타락의 근본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가 건강하고 세상 물질이 만족스러울지라도 이것으로 죄를 지으면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것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것보다 본질은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죄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예수님은 우리 구주이시고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날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데 하나님을 속이고 불순종하고 세상과 짝하고 사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부패한 사람입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신앙고백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행복하지 못합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얘기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감당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인생의 종말은 두 가지입니다. 내 개인의 종말이 오고 인생 최후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한다고 말씀하실 때 세상 사람들은 조롱하고 멸시하고 자기들과 상관이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심판은 있습니다.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은 한순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세월은 너무 빠르게 흐릅니다. 심판은 나와 상관없고 죽음은 나랑 상관없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훗날이라고 생각하는 종말이 오늘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에 그 영혼을 거두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긴급합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누구에게나 심판은 긴급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 짐승들이 임종과 종말이 가까운 것을 우리보다 더 먼저 알고 피합니다. 신문에서 보면 어디 화산이 터진다든지 지진이 난다든지 하면 쥐가 도망가고 짐승들이 달아납니다. 개미들이 이동을 합니다. 노아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들과 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들도 다 심판이 있는데 오직 구원받은 사람들 구원받은 짐승들은 구원받은 새들은 노아의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짐승도 심판의 때를 알고 모여들었다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물의 심판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남은 세계에 불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6절과 7절에 '이로 말미암아 그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심판의 때에 교회가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물이 넘침으로 멸망했다'라는 말씀은 노아의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이 넘침으로 다 멸망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이라는 것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우리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교회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변절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하나님이 보존해 주시는데 어렵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데 예수 믿는데 되는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돼지를 키워 살찌우는 것이 도살하기 위한 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이 세상을 불사르기 위해서 심판의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잘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이제 침공했습니다. 푸틴이 전세가 불리해 버튼만 누르면 핵전쟁이 일어납니다. 전 세계에서 너도 나도 핵을 터뜨리면 이 세상을 수천 번 폭파하고 불태워버리고 남을 폭탄이 이미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불사르기 위해 보존하셨다고 하는데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우리가 이런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주님 오신다면 아멘 할렐루야 찬미하며 주님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한 손에 심판이 있지만 다른 한 손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장 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을 제일 처음 쓰는 데가 바로 이 구절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다 심판받고 멸망하는데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구원받은 백성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다 멸망하는데 그중에서 노아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노아가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75억 인구(세계 인구는 특정한 시간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의 전체 수)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불러주신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중 아멘) 또 놀라운 사실은 7장 16절에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아' 넣어주시니라 하신 것입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와 정결한 짐승들과 부정한 짐승들이 일곱 쌍씩 다 노아의 방주로 싹 들어가게 되니까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아주셨다는 것입니다. 한번 닫힌 문은 열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여덟 식구와 짐승들은 하나님이 다 보존하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국 갈 것을 확신하십니까. 나같이 연약하고 나같이 부족하고 나같이 부끄러움이 많은데 하나님이 날 구원해 주실까 하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하나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 약속입니다. 구원 받은 자녀인 것을 확신하십시요. (회중 아멘) 목사님. 예수 믿고 살아가는데 왜 이렇게 답답합니까. 아들딸은 왜 이 모양입니까.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건강은 왜 이 모양입니까. 실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있는 짐승이 비가 오는 기간만 6개월이고 다 마르게 될 때까지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방주 안에서 아주 많은 짐승들과 노아의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하루하루 지나가는데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노아도 하나님이 방주 속의 우리를 잊어버리신 게 아닌지 버리신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는데 답답하다고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노아를 기억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잊어버리신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차츰차츰 변화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어의 바람(루아흐)이라는 말은 영(spirit)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복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이 버리시거나 잊어버리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남편을 믿습니까. 아내를 믿습니까. 이 세상 정치인들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말씀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마지막으로 죽음을 통한 구원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노아를 새로운 삶으로 초청합니다. 홍수가 다 지나간 다음에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새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초청해서 다시 번성하고 성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한 손에는 심판이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방주에 들어가라니 들어갔고 나오라니 나왔습니다. 이게 순종이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에 대해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리라 하셨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노아를 멸시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긴 사람들이 생각할 때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노아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어버린 사람은 세상이 무어라고 한다 할지라도 간섭할 것이 없습니다. 목사로서 제일 듣기 거북한 이야기는 세상 사람이 우리를 멸시하고 조롱한다고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할 우리가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정신 바짝 차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회중 아멘) 세상 여론이 어떻고 신문이 어떻고 티브이가 어떻고 세상이 다 우리를 조롱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회중 아멘) 한국 정통 초대 장로교회의 신학을 완성하신 박형용 박사는 그의 조직신학 서론에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머리를 하늘을 향해 세우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두 손을 땅에 대고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산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세상 따라 살지 못해 안달인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조롱받고 멸시당할 때 노아는 세상에 대해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죽음을 뚫고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갔을 때 비가 위에서 쏟아지고 땅에서 솟아나고 온 세상 천지가 높은 산꼭대기까지 다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 죽음 속에서 방주에 들어가 있는 노아가 구원받았다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죽음에 휩쓸려 들어가게 될 때 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방주 안에서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천국 가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교회 일원 되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이 교회 떠나면 죽음입니다. 구원의 방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파멸입니다. 사는 길은 주님과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서 자기 마음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가시기를 바랍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어야 하지만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우리의 모든 심판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그 속에서 나도 죽은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고 심판에 이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베드로는 이 심판에 대해 노아의 홍수를 우리가 세례받는 모습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19-20) 죽음이 다 휩쓸어 갈 때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는 것입니다. 노아와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그 부인들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라는 것은 우리의 죄가 다 물에 잠겨버리고 씻음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표시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노아가 창세기 8장 18절에서 20절에 보면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 경배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정결한 짐승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렸습니다. 짐승을 잡아 내장을 꺼내고 물로 깨끗이 씻어서 불로 태워서 하나도 남김없이 향기로운 냄새의 연기로 하나님 앞에 올라갔습니다. 다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은혜를 입고 죽음에서 구원을 받은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다 드리는 것입니다. 신약에 가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말씀합니다. 너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맥추감사절입니다. 하나의 행사로 지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너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번제를 드렸던 노아처럼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진심으로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 감격하면서 이 맥추감사절을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이는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모든 심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죽음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이 진리를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파스퇴르유업과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세웠던 최명재(崔明在·95) 민사고 이사장이 2022년 6월 26일 오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 이사장은 1927년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을 나와 경성경제전문학교(현 서울대 경영대)를 중퇴했다. 상업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돈을 더 벌겠다는 각오로 은행도 그만두고 택시 운전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얻은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1960년대 운수회사(성진운수)를 세웠고, 1970년대엔 물류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모았다. 60세 되던 1987년 강원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설립하고, ‘저온살균 우유’를 앞세워 기존 우유 업계를 공격하는 직설적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으며 급성장했다. 1996년에는 횡성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127만2700㎡(38만5000평) 땅에 민사고를 세웠다. ‘민족 주체성 교육’을 통해 세계적인 지도자와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였다. 1970년대 영국 이튼스쿨을 방문했을 때 넬슨 제독 전승 기념행사를 보면서 “한국에는 넬슨보다 훌륭한 이순신 장군이 있는데 이튼 같은 학교는 없다”라고 생각하며 가진 필생의 꿈을 실천에 옮겼다. 최 이사장이 파스퇴르유업 수익을 매년 30억~50억 원 민사고에 투자하면서 우수 학생을 뽑아 기숙사비를 포함, 교육비를 받지 않고 운영했다. 모두 천억 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라남도 장흥이 고향인 김춘식 목사는 2010년 7월 김제에 중앙장로교회를 세웠다. 왜냐하면 김춘식 목사가 지난 1999년 7월 16일 미국에서 전라북도 김제시의 김제중앙교회로 부임한 뒤 분쟁을 겪고 분리의 아픔을 이기고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2022년 7윌 19일 김제를 떠나는 김춘식 목사는 김제중앙교회를 거쳐 중앙장로교회를 통해 20년 목회 여정에 너른 곡창 김제에 새로운 건실한 예배당만 아니라 말씀 중심의 설교로 합동 교단에 드문 영적 교회를 세우는 업적을 세웠다.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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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 송태근의 설교관
    맑은 빛 고운 햇살 소복소복 담아 두고 별들과 나눈 얘기 강물 되어 흐른다. 총신 숲 비어서 풍요롭다. 나목(裸木) 위의 까치집 돌아올 주인을 기다린다. 새해가 왔건만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공포로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병과 함께 살아야 하나. 그러나 양상만 달랐을 뿐 인류의 역사는 병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병보다 무서운 것이 절망이라는 정신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해는 이렇게 맞을 일이다. 면도 알러지가 있어 이따금 수염을 길러야 하는 송태근 목사는 ‘맑은 빛 고운 말씀’을 ‘소복소복 담아 두자’고 하는 믿음의 전파자다. 하나님과 얘기를 나누면 헐벗은 나무의 텅 빈 까치집도 그의 성근 수염처럼 풍요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시인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다’라고 노래했다. 총신대 이사로 헌신을 아끼지 않는 송태근 목사는 이 겨울이 가면 새끼를 데리고 둥지를 찾아올 까치를 미리 보는 예지를 지니고 있다. 총신의 봄은 반드시 온다. 우리는 치유의 새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헌신하고 견디어낸 자들의 축제가 될 것이다. 오늘날의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본문 중심의 강해설교를 하는 송태근의 설교는 폭이 넓고 속이 깊다. 그는 신봉하는 본문 중심 강해설교 틀에다 원숙한 믿음의 관조(觀照)로 가다듬은 말씀을 심한 아픔을 견딘 삼일교회와 치유를 바라는 전국 교회에 전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강해 설교자가 성서 권위를 힘입어 자기 우상화를 시도하는 우를 범해선 안됩니다. 강해 설교자의 권위는 그것을 청중을 섬길 때 참 의미가 있습니다. 설교자의 위대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진리를 공동체를 섬기는 사랑으로 담아낼 때 강해설교의 진수가 밝히 보일 것입니다. 송태근 목사는 계시록 8:3-5에 의지해 외친다. 성도의 기도와 함께 올라간 향이, 제단의 기도가 제단의 불과 함께 땅에 쏟아집니다. 이것은 심판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드디어 응답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응답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둠에 잠들어가는 이 시대를 기도의 부글부글 끓는... 그래서 저 에스겔의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고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는 환상을 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팬데믹으로 시대의 전환점에 선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의 메시지 소망대로 설교자가 청중을 섬기는 한해가 되기를···. 그리고 사회와 총회의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 미사일을 쏘아대고 하나님에 대항하는 북한 앞에서 ‘멸공(滅共)’이란 구호가 문제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사라지기를···.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와 총회에 성경의 정의와 신앙의 안전이 이뤄지기를···.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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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6
  • 팬데믹 시대의 신앙
    경북 영양군 영양에 가면 반딧불이생태공원이 있고 영양서부교회의 박병석 목사가 있다. 반딧불이 노래로 잘 알고 있는 ‘개똥벌레’가 반딧불이다. 옛날에는 어디서나 보일 만큼 흔해서 개똥벌레라 부르기도 했고 개똥이나 소똥에서 서식하는 줄 알아서 개똥벌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양군은 경상북도 대표적인 산간오지로 사람보다 자연이 더 풍부한 곳이다. 덕분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자연을 잘 간직하게 되었고 국내에서 밤하늘이 가장 어두워 별자리를 관측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그 중심지가 영양군 생태공원사업소가 관리하는 반딧불이생태공원이다. 사실 반딧불이는 전국 곳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하늘의 별처럼 불빛이 강한 도시에서는 발견이 어렵다는 것. 밤하늘을 보호할 정도로 어두컴컴한 영양에서는 별과 반딧불이를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발전한 이 시대 영양의 반딧불이 같은 박병석 목사의 ‘제단에 불을 끄지 마라’는 메시지가 새롭다.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찌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라 레 6:12-13 성경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제사를 드리는 백성은 항상 제물이 있어야 하고 그 제물을 태우는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제사에 순서 절차가 다 있더라도 불이 꺼지면 아주 심각합니다. 그 뜻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단에 불을 끄지 말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제단은 원래 제물로 바친 짐승이 죽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그 제물이 탈 때 그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제단에 불이 꺼지면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게 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꺼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제단에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제단에 불이 꺼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말씀합니다. 이어서 이스라엘의 패역한 시대를 향해 사무엘상 4장 21-22절에서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말씀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한때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살고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제단의 불이 꺼지듯 신앙이 식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의 형편에 처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항상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제단에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불붙는 제단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불씨를 남겨두어야 합니다. 여러분 영국의 유명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 분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신을 위해 교회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 주변을 둘러보면 ‘이가봇’ 시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믿음 없는 사람일수록 떠들기를 좋아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없는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없는 오늘의 팬데믹 시대는 확실히 ‘이가봇’ 시대입니다. 이 팬데믹 시대를 사는 우리의 신앙을 위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16-22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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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1
  • 전북노회 알깨바 발간
    아직도 대다수 인간에게 개미는 한낱 미물일 따름이고 개미 사회는 그저 곤충 집단일 뿐이다. 그러나 개미는 ‘초개체(superorganism)’라고 불린다. 개미 한 마리는 뇌의 용량이 아주 적은 곤충이지만, 그들이 집단을 이루면 각자가 하나의 체세포처럼 기능하며 뛰어난 지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게다가 생존 적응력이 뛰어난 개미가 환경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왜냐면 개미는 전체 동물 시체의 90%를 수거해 먹어치울 뿐만 아니라 흙을 갈아엎음으로써 육상 생태계의 영양소를 순환시키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개미가 파고들지 못한 곳은 고산 지대와 극지방 그리고 물속밖에 없다. 개미는 오직 추위에 약할 뿐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동물행동학을 전공하고 94년 한국에 돌아온 최재천 교수(서울대·생물학과)의 저서 ‘개미 제국의 발견’에 따르면 개미의 대표 경선(競選)은 요즘 말썽을 빗고 있는 우리 총회나 대선을 두고 대립하는 정치권과 사뭇 다른 모양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아즈텍 개미’는 지구상의 어느 개미 집단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오징어 게임 같은 특이한 선거 방식을 보여준다. 아즈텍 여왕개미들은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이종(異種)끼리도 그들이 각기 ‘개미 제국’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협동하며 공생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보기 드문 ‘적과의 동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개미 군락이 생겨나는 과정은 이렇다. 봄(5∼6월) 혹은 가을(9∼10월) 어느 날. 처녀 여왕개미와 수컷 개미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며 ‘혼인 비행’을 치른다. 혼인 비행을 마친 여왕개미는 홀로 굴을 파고 이제 더이상 소용없는 날개를 부러뜨린 다음 피하지방과 날개 근육을 녹여 일개미를 양육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키워낸 일개미들이 굴 문을 뜯고 나가면 수많은 주변 신흥 국가와 필살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여왕개미들은 여럿이 서로 손잡고 수적으로 훨씬 막강한 일개미 군대를 만들어 춘추전국시대를 구가하는 전략을 취한다. 진짜 여왕은 정권을 거머쥔 후에 정한다. ‘아즈텍 개미’ 사회에서는 승전보가 울리자마자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돌변한다. 서로 물고 뜯으며 가장 강한 여왕이 등극한다. 하지만 다른 많은 개미 국가에서는 일개미들이 여왕을 선출한다. 나라를 건설하려 함께 최선을 다한 여왕개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알을 낳아줄 것으로 기대되는 한 여왕을 옹립하고 나머지는 모두 숙청한다. 정권을 잡기도 전에 서로 치명적 흠집을 내는 우리 인간의 경선과 달리 상흔 없는 후보 중에서 가장 능력 있는 리더를 선택하는 개미의 지혜가 부럽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 사회는 송두리째 변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 총회처럼 반복된다고 한다. 그래서 혹여 총회 정치꾼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총회 헌법과 성경 중심의 총회 역사를 세속의 정치꾼들처럼 왜곡하고 이용하려 든다면 수치의 총회 역사는 언제든지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꾼들을 솎아내는 것은 오로지 총대의 몫이다. 그런 개혁 운동의 일환을 증경총회장 윤남중 목사의 아들 윤희원 목사가 제네바의 칼빈처럼 전주에서 임직자 훈련교재 '알깨바를 외치자'(알고 깨닫고 바르게 살자) 발간과 보급을 통해 펼치고 있다. 2021년 10월 12일 오전 9시 제172회 전북노회(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전주서문교회당(김석호 목사)에서 개회됐다. 노회장 김창용 목사가 성경 디모데전서 4:15-16을 읽고 “목회는 적당히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론했다. 개회 예배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찬식은 집례하지 않고 바로 회무 처리로 들어갔다. 이어서 상비부 보고와 각부 보고 후 목사 안수식과 장로 은퇴식을 가졌다. 목사 안수식에서 증경노회장 윤희원 목사가 창세기 28:16-19(‘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아는 사람’) 말씀을 증거하고 노회장 강창용 목사의 사회로 목사 임직자 김진규의 안수와 착의가 진행됐다. 장로 은퇴식에서 은급부장 최병석 목사의 사회로 고행식 김강식 배상근 홍순정 김동석 표성복 등의 장로 등에 대한 기념패와 기금전달 등으로 기념하고 증경노회장 김윤경 목사가 “장차 우리 주님께서 우리 장로님들에게 씌워주실 의의 면류관과 하늘의 상급을 받으시기를 바라면서 더욱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기를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은퇴 장로들을 대표해 팔복교회 고행식 장로가 “제172회기 정기노회에서 목사 위임과 장로 은퇴를 위해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예배 중에 하늘 문이 열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받게 해주시고 (목에 메인 음성으로) 격려의 말씀으로 큰 힘을 얻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답사를 했다.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송 후 임직자를 대표해서 제172회 전북노회에서 임직받은 김진규 목사가 전주서문교회당(김석호 목사)에서 열린 전북노회에서 난생처음 축도했다. 낭랑한 목소리로 간략하게 축도했다.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으로 맺는 한 소절의 피아노 간주가 어우러졌다. 사회자가 광고했다, “지금 11시입니다. 축하와 기념 촬영을 위해서 11시 20분까지 정회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하기로 동의 재청이 들어와 정회했다. 11시 30분 계속 회무 처리가 이어졌다. 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고시부 부장 나와서 청원한 내용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시부장 팔복중앙교회 김윤영 목사입니다. 고시 치루기 전 임직자 교육할 때 지금까지는 두 과목 이상 의무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교육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한 과목을 더 늘려 세 과목 이상 외부 강사를 모셔서 교회에서 교육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입니다.” 노회장이 이 건에 대해 보충 발언 있으면 하라고 했다. 부서기 석명규 목사가 더 상세히 설명했다. 외부 강사는 집필자뿐 아니라 전북노회 속한 목사라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동의와 재청이 들어왔다. 신 안건 토의 시간인데 신 안건이 없어 전주서문교회에 감사패 전달 시간을 가졌다. 폐회 동의와 재청이 들어왔다. 가부를 물어 허락을 받았다. 광고 시간이 이어졌다. “노회 대항 체육대회가 11월 2일 정읍에서 있습니다. 윤남중 공로목사 기념사업회 세미나가 11월 16일 있습니다. 각 상비부 통장을 농협 통장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노회 장소와 점심 식사비는 서문교회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나가실 때 명찰을 반납하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노회장이 말을 이었다. “임직자 교육을 위한 직분자 교육교재 발간으로 전북노회의 영광스러운 일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집필진과 위원장으로 수고해주신 윤희원 목사님께서 2년 동안 애쓰시고 그러시다가 입원도 하셨고 여러 가지 수고 끝에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위원장님 나오셔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필진도 다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향년 90세로 2019년 7월 12일 새벽 5시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증경총회장 윤남중 목사의 아들 윤희원 목사가 집필진이 다 나온 가운데 발언했다. “문제 출제하신 목사님들도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계속 교육했던 프로그램들 가운데 고시부에서 십몇 년 것을 추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교재로 많이 다뤘던 분야들을 고시부 목사님들 중심으로 배정을 해서 작년 2020년도에 고시 교재 발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시부 출제 위원이나 집필진이 많이 모이지를 못했습니다. 개별적으로 와서 원고 수정 등을 해서 어렵사리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발간하고 보니 잘못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교재를 만들어 놓으면 또 우리 후배 목사님이 잘 보완을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전북 지역에 기독교와 교회가 어떻게 전래가 되었는지를 제가 맡아 썼습니다. 더욱이 우리 전북 노회는 51인 신앙동지회가 주축이 되었습니다. 우리 전북노회에 이노수 전도사라고 하는 그 당시 조선신학교 사생회 회장이 있었습니다. 이노수 전도사가 김재준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고 나왔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사실상 51인 신앙동지회가 결성되게 되었습니다. 그가 목사 후보생일 때였죠. 이노수 전도사가 누구인가 계속 찾아보니 삼례중부교회 이희민 목사님 선친이셨고 현재 이영익 목사님 계시는데 그의 큰아버님이 되셨습니다. 또 정의찬 목사님은 이성근 목사님의 장인어른이시고 우이중앙교회 원로목사님으로 추대받고 계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51인 신앙동지회에 대한 간략한 역사도 뒤에 기록해놓았습니다. 우리 장로교회 개혁신학에 전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맞게 교회 역사도 소개하고 직분자들의 교육도 시킬 것인지 역점을 두었습니다. 12신조에 관한 문제는 잘 다루지를 않는데 석영규 목사님이 상당히 깊이 있게 다루어 잘 집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읽어가면서 교육받는 직분자들과 함께 장로교회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잘 확인해 갈 수 있도록 우리 집필자들이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우리 집필진 목사님들이 기도하고 땀 흘려 수고하며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이 교재를 잘 활용해 우리 장로교 신학과 신앙을 ‘알깨바’ 알고 깨닫고 바르게 사는 직분자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회중 큰 박수) 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로마서 8:35-37을 읽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멘. 축복합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전북노회 목사 회원과 장로 총대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노회장이 폐회를 못 박는 고퇴를 두드렸다. 기독신문 논단 ‘하나님의 임재와 정직한 삶’을 통해 윤희원 목사는 ‘알깨바’(알고 깨닫고 바르게 사는) 삶의 정곡을 이렇게 논했다. “사람의 안목이란, 육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볼 때 열리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하였다. 마음에 하나님 사랑하는 믿음 없이 우리는 얼마든지 외형적으로 ‘주여, 주여’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계시는 그 임재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 성도는 매 순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기에 정직하게 살아간다. 절대로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살지 않는다.” 윤희원 목사의 외침과 달리 세상에는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검은 뭉칫돈을 숨겨야 하는 범죄꾼들에게 돈 냄새는 골칫거리다. 그래서 땅에 파묻는 걸 선호한다. 1980년대 남미 마약 운반책 역할로 떼돈을 번 미국인 파일럿의 실화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에선 주인공이 집 정원에 700만 달러를 파묻었다. 반려견이 이를 파헤치는 통에 지폐가 사방에 흩날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로 떼돈을 번 일당이 현금 110억 원을 김제 마늘밭에 묻었다가 적발됐다. 한 전직 대통령 아들은 뇌물로 받은 10만 원권 헌 수표 1만 장(10억 원)을 아파트 베란다에 숨겼다 들통이 났다. 아마 냄새 때문에 그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범죄자가 주로 활용하는 현찰은 최고액권이다. 2년 전 유로존 국가들은 최고액권 500유로 지폐가 탈세와 돈세탁에 주로 활용되자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이후 250조 원이나 발행된 5만 원권이 계속 지하로 잠기고 있다. 올 1~8월 중엔 5만 원권 환수율이 역대 최저인 19%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 5만 원권이 대장동 게이트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올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수십억 원을 5만 원권 현금으로 찾아가는 바람에 성남시 일대 은행 지점들이 5만 원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이를 수상히 여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 4월 경찰에 이 사실을 통보한 것이 이 사건의 공식 시발점이 됐다. 검은돈이 풍기는 악취를 따라가면 대장동 ‘그분’이 드러날까. 도둑 정치는 이른바 ‘후진국 현상’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국가에서 곧잘 발생한다. 중국에 석탄을 팔아 스위스 시계를 구입해 당 간부들에게 나눠주는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도둑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손에 넣은 자들은 국가를 사유화하여 제 이익을 챙기고 그 돈으로 다시 권력을 움켜쥔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도둑 정치의 늪이다. 그들에게 ‘알깨바’를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단 정치판은 어떤 형편에 있을까. 우리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계시는 그 임재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 성도는 매 순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기에 정직하게 살아간다. 절대로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윤희원 목사의 말처럼 제172회 전북노회장 강창용 목사의 입을 통해 성경은 말씀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2021-10-25
    • G.MISSION
    • G.MISSION
    2021-10-25

실시간 G.MISSION 기사

  • 한국교회총연합 성탄절 메시지
    한국교회총연합 성탄절 메시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2:14)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성탄절에 세상에 가득한 전쟁의 소문과 위협을 듣습니다. 거리에는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분주한 사람들의 소리가 요란합니다. 사랑과 평화의 복음은 길거리 소음에 묻히고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은 임마누엘의 순전한 복음과 교회의 역사를 보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볍게 여기는 무리들이 진리를 멀리하며 비방합니다. 한국교회는 나사렛의 첫 성탄절 때처럼 침묵하고 경청합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읍시다.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삼상15:22).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이웃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잘못을 나부터 회개합시다. 세상의 고단한 살림살이에 시달리며, 가난과 질병으로 탄식하는 아우성을 온몸으로 껴안읍시다. 때로는 부당한 탄압아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신음소리를 들읍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말씀에 의지하여 침묵하며 경청합시다. 온갖 소리로 시끄러운 이 시대에 침묵하며 주님 나신 복된 소식을 세상에 전합시다. 하나님과 이웃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복된 성탄절 되기를 바랍니다. 온 땅에 하늘의 평화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7년 성탄절에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전계헌 최기학 전명구 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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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ERMON
    2017-12-20
  • 성탄과 복된 새해에
    성탄과 복된 새해에 가장 낮은곳으로 우리 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낮고 그늘진 곳에 임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낮고 그늘진 이들 곁에 함께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성탄과 더불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여러분의 가슴속에도 훈훈해지고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특별히 분주한 연말, 건강 챙기듯 건강한 교회를 향한 마음 잃지 마시고, 소리없이 내려 쌓이는 눈처럼 한국교회 성도들의 마음속에 행복이 소복히 쌓였으면 합니다. 한해의 마지막이라고 아쉬워하기보다는 남아있는 시간들을 알차게 성찰하고 정리하면서 새로움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2018년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하며, 한국교회가 12월까지 달려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옳게 해왔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부끄럽고 아쉬웠던 것은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라고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사교회’화를 막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참회하게 됩니다. 주님이 당부하신 연합을 이야기 하면서도 분열하고, 겸손을 말하면서도 높은 자리를 좋아하며, 사회와 소통하기 보다는 우물안 개구리로 만족해하는 그러면서도 세상적인 것들은 너무나 사랑하는 어리석은 우리의 자화상을 보며 깊이 참회합니다.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목회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당면한 과제입니다.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교회, 세상에 ‘교회는 이런 곳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교회들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교회가 그래도 이 시대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들이 많이 나타났으면 합니다. 마치 아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듯 한국교회에도 말입니다. 루터처럼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윤동주 시인처럼 어두운 시대에 자기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크리스천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2018년 새해에는 그래도 희망의 빛은 꺼지지 않고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 2018년 새해를 소망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아름답고 건강한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이사장 신상현 목사 원장 이효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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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ERMON
    2017-12-20
  • 길자연 목사 설교론
    길자연 목사의 노년삶을 긍정하고 사랑해 놀라울 따름 길 목사의 좋은 설교 요령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꾸준함'이나 '성실성’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전해야 해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地表)에서 사라지고 저녁 하늘 개운하다. 개울 가까이에서 흐르는 물 냄새 맡을 때쯤 그대 홀연히 사라진 개울물처럼 담담하게 나는 흐른다. 그러다보니 하구(河口)였나 싶은 곳에 뻘이 드러나고 바람도 없는데 갈매기 하나 엷은 석양에 날개 담그고 아득하게 나른다. 낳자마자 뻘밭을 쑤셔대는 저어새 날개가 있다는 걸 죽을 때야 안다지. 십자수에서 흘러온 반대편이 그래도 가야 할 곳 수평선 있는 쪽이 그 나라였던가. 혹 어둠도 눈물도 여느 슬픔도 없는 곳. 마치 강이 지평선을 버리고 바다에 이르면 강이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바다로 스며드는 곳같은... 마음 가득 종일 그대 그리움 돌아가는 소리. 질끈 감은 두 눈썹에 남은 겨울이 마른다. 허리띠가 남아돈다. 몸이 마르는 그리움이다. 사랑이다. 기도가 더 가까이 들린다. 이리 분분히 소심한 나뭇잎들 이리 낮게 탄식하는 오래된 기도들. 마음속에서 일어난 불이 제 몸을 굴뚝 삼아 기도를 불쏘시개 삼아 타고 있다. 십자수 기도원 저 떡갈나무에게로 불타고 있다. 그대 사랑아 나를 몰아 어디로 가려오. 안개가 보이는 아침 조용히 성경을 펼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그의 성경 읽기에 손끝을 댄다. 햇살 반 먼지 반으로 들어오는 아침나절의 백색 기둥에 기대 커피를 마시며 말씀을 읽고 섬기는 시간을 사랑한다. 내려앉은 백색 바닥에 발이라도 대고 있는 발끝에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온다면 그건 그대로 성령의 감동일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크리스마스는 울면 안 되는 날이 아니다. 울고 들어온 그대를 보듬으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날이다. 눈물로 차갑게 얼어붙은 그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주고 싶은 날. 오랫동안 달을 쳐다보고 눈이 녹는 걸 구경하고 나는 어떤 어른이 될까 의문을 품던 시절이 있었다. 안개 같은 세상에서 삶은 가혹하고 지난할 텐데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믿음의 인물들이 말하고 기도하는 성경을 읽으면 자연히 하나님을 향한 기도에 잠기게 된다. 2017년 11월 6일(월) 오후 3시 청담동 길자연(吉自延)의 목사의 ‘큰 덕을 이끈다’는 뜻의 호를 딴 덕연(?延) 아카데미 2층에서 교계 거목(巨木) 길자연 목사 설교론을 들었다. “오늘 저는 전도서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달 전쯤 제가 텔레비전을 보니까 유명 철학자가 하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같은 헬라 철학자들로부터 근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이야기하는데 한마디로 인생은 철학에서 해답을 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1시간 죽 들으면서 마음속에 ‘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철학으로서는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인생의 근원을 배우죠. 성경에서 인생의 답을 얻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신학생 때 특별히 제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박형용 박사님과 박윤선 박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경신학과 조직신학이 대세였습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때는 한창 자유주의가 한국교회를 파괴하는 그 시점에서 극성스러울 때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한 것은 설교학이었습니다. 새순교회 윤 목사님 와서 설교학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제가 그 설교학을 공부하면서 낙제를 했습니다. 시험을 쳤는데 점수를 안 주는 겁니다. 그래서 애를 먹었습니다. 그 다음 대구의 서문교회 이성헌 목사님이 설교를 가르치셨는데 그때는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성헌 목사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 다음에 우리한테 헬라어를 가르치신 박희천 목사님이 설교학 강의도 했습니다. 그런데 박희천 목사님 부흥회 가시면 조금 지각하신 분이 헐레벌떡 들어오면 벌써 ‘이제는’하고 축도를 하고 계십니다. 부흥회 설교가 30분이면 끝나는 겁니다. 그러면서 설교는 짧게 하라 그러고 성경은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내 생각에 박희천 목사님에게서 설교학을 배우지 않은 걸 하나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는 박희천 목사님보다는 박윤선 박형용 목사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저희 아버님한테도 영향을 많이 받고 또 최훈 목사님도 제 은사이십니다. 이분들을 통해 설교 속에서 삶의 의미와 목회를 발견했습니다. 성경에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최훈 목사님의 목회를 배운 걸 감사히 생각합니다. 또 북한에서 최원천 목사님이라고 하는 순교자를 통해 말씀을 배우고 주일학교 시절에 공부한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목회자로서 제가 내세울만한 사람은 아니고 또 목회자로서 설교의 대가도 아닙니다. 그러나 설교 속에 목회가 있다는 걸 뼈 속 깊이 느끼는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네가 뉘게서 배운 걸 알며’ 라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최훈 목사님의 제자지 내가 박형용 박윤선 목사님의 제자지 내가 순교자 최원천 목사님의 제자지 내가 길 장로님의 아들이지 항상 그것을 마음속에 꼭 담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두 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매주일 아침이면 7시 반에 제가 왕성교회 원로목사로서 1부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여기 여러분이 앉아 있는 더웨이 채플 청담교회에서 두 시간 설교를 합니다. 제가 목회할 때는 설교 준비 시간이 평균 12시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몇 시간 준비하느냐면 30시간 넘게 걸립니다. 전반적으로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데도 설교는 그렇게 시간이 걸립니다. 일주일에 엿새 동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준비를 합니다. 특별히 서울에 나와 볼일을 보고 들어가면 십자수 기도원 책상에 앉아 명상과 성경을 봅니다. 그 가운데 30시간 정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에 늘 감격을 하곤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목회자로서의 신앙의 감격과 감사가 항상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하나님에게 너무 너무 감사를 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아침 6시나 7시에 시작해서 해질 때까지 책상에 앉아 성경을 보며 설교를 준비할 때 너무 감사한 마음에 감격하게 됩니다. 두 달 전 어느 날 십자수 기도원으로 저를 만나러 오신 세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전날 스타필드에 가서 장을 봐가지고 고기를 재웠다가 숯불에 고기를 구워 점심 대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데 중매하겠다며 여자를 소개하는 겁니다. 첫째 나이는 41세입니다. 둘째 처녀입니다. 셋째 서울대 나왔습니다. 넷째 음악을 합니다. 다섯 째 유학 갔다 왔습니다. 여섯 째 얼굴이 아주 예쁩니다. 그러면 제가 마음에 혹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만있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약혼하기 전 내 아내 25살 때 사진을 보여주며 그 여자와 한 번 살았으면 됐지 뭘 또 두 번 세 번 삽니까. 저기 앉아 사진 찍는 김영배 목사 같은 사람은 아직 젊으니까 재혼할 수 있지만 저는 이 여자와 산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하니까 오신 분들이 입만 쩍쩍 다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여자를 내 아내로 주신 걸 감사하고 두 번째 너무 이렇게 성경 삼매경(三昧境)에 젖어 사는 은혜를 주시니 이런 은혜와 사랑을 어떻게 감당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요즈음에는 인생의 황금기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절감합니다. 요즘 제 생활은 이렇게 감사와 감격입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성경을 펴놓고 명상에 잠기면 하나님께서 내게 설교할 수 있는 시간도 주시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은혜도 주신 걸 감사합니다. 교회한다고 뭐 받는 것도 없이 내 돈 팍팍 써가면서 목회를 하는 데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은 성경 보는 시간이고 그 가운데 설교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전도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전도서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모세 오경 역사서 공관복음 등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그 어떤 수준 이상을 넘어가지 못해 그렇지 이해는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니 사람이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도다 하니 인생의 허무를 강조합니다. 이 세상은 헛되니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회한 지 50년이 넘다보니 전도서는 인생론을 강조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도서에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인생과 목회의 남다른 경지를 경험한 원로 길자연 목사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전해야 합니다.막막하고 두려운 길자연 목사의 노년에 이렇게 삶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는 요령은 무엇인가. 길자연 목사는 재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제출한 정답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꾸준함'이나 '성실성'는 전도서 1:1-18 본문을 근거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제목의 설교로 다양한 접근을 통해 본질적인 인생의 답을 다음과 같이 이끌어냈다. “솔로몬은 전도서 9:11-12에서 성공은 인간의 능력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 능력이 있으면서도 실패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는 모든 수고는 헛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3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전도서의 대미(大尾)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처럼 우리의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참된 삶이며 성공과 행복의 길입니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덕연 길자연 목사의 설교론이 끝났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고 폐허에서 출발한 세계는 결코 깔끔하지 않았다. 엉킨 두 마음의 송진처럼 매우 불완전하게 출발했다. 정의를 앞세운 파괴와 복수는 또 다른 야만과 방종을 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게 절름거리며 지금까지 걸어왔다. 이상을 노래한 완벽주의자들이야말로 이 세계에 전쟁과 갈등을 불러오곤 했다. 오히려 인간의 불합리성과 결핍을 인정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막막하고 두려운 길자연 목사의 노년에 이렇게 삶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는 요령은 무엇인가. 길자연 목사는 재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제출한 정답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꾸준함'이나 '성실성'이다. 일본의 세계적 소설가 하루키에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링 위에서 버티는' 일에 비유된다. 잘 써지든 못 써지든 매일 일정한 분량을 꾸준히 써나가며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육체노동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어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남들은 어떻게 쓰나 궁금했고 남들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생각하니 살짝 기분이 좋아졌고 다들 같은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위로가 되었다." 목사의 설교도 그렇지 않을까. 오래된 사랑은 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길자연 목사의 부인 천희정 사모가 지난 2015년 8월 16일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천 사모는 1964년 길 목사와 결혼해 50여년 남편의 목회를 헌신적으로 도왔다. 말년에는 십자수기도원 경내 사택에 머물렀었다. 아마도 천희정 사모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십자수 계곡물을 보며 사랑도 이런 거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이 손바닥에 잠시 모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물이 고였던 손바닥이 뜨거워진다. 머물렀다 빠져나가는 순간 다 새어나가는 물결들을 두 손 모아 떠 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래서 인생의 답이 담긴 전도서를 깊게 깨우친 길자연 목사는 천 사모 있는 언덕에서... 그리하여 그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그가 읽는 성경 속으로 밀려들 뿐. 2017-12-07
    • G.MISSION
    • G.SERMON
    2017-12-08
  • LA 칼빈 박헌성의 새벽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면 그때그때마다 행동이 일어나 군인에게 물이 중요하듯 성도에게도 이 물이 중요 이 물은 은혜와 성령 상징 믿음의 예배 하나님 축복 받아 그래서 예배가 중요 축복을 원하시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종을 신뢰하고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통성기도 남의 기도 내 귀에 안 들리고 내 기도가 내 귀에 들려야 전경이 졸고 있는 네거리 앞 붉은 성경을 들고 버스에서 내린 맹인 소녀가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앞을 휘청거리며 지나간다. 오른손에 움켜쥔 지팡이가 갈라진 보도블록을 칠 때마다 교회 신자들의 고막이 움찔거린다. 걸음을 내딛는 소녀의 종아리가 집을 찾아가는 길에 지팡이가 닿는 곳마다 무수한 길들이 홍해처럼 갈라진다. 그때 횡성의 어미 소는 막 태어난 새끼를 핥고 있었다. 먼지처럼 흩어지는 햇빛 속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2017년 10월 31일 한국 전역을 강연회가 휩쓴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의 최대 수혜자(受惠者)는 누구였을까. 최대 수혜자는 당시의 인쇄업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고안한 것은 1440~50년대. 반세기 사이 인쇄술은 독일 여러 도시에 꽤 확산된 상태였다. 문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찍어낼 원고가 별로 없었다는 점. 인쇄업은 '굶주린' 상태였다. 이때 등장한 루터는 인쇄업자들에겐 구세주였다. 예나 지금이나 '금지''불온' 딱지가 붙으면 더 들춰보고 싶은 법. 무명의 수도사가 당대 최고 권력자 교황과 맞붙은 사건은 센세이셔널한 뉴스였다. 루터가 1517년 발표한 '95개조 논제'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논제는 이듬해 말까지 16판까지 인쇄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인쇄본은 독일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고 바젤, 스트라스부르 같은 도시의 인쇄기계도 쉴 새 없이 인쇄물을 쏟아냈다. 흔히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95개조 논제'를 망치로 못을 박아 부착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루터가 생전에 자기 입으로 그런 사실을 말한 적이 없고 이 이야기를 최초로 전했다는 루터의 동지 멜란히톤은 당시 비텐베르크에 없었다고 한다. 저돌적인 루터는 단행본 저서와 독일어 성경 등 독서 시장에 쉬지 않고 새 책을 공급하는 저자이자 번역자였다. 그의 이니셜 'M.L.'은 판매 보증 수표였다. 게다가 종교개혁 논쟁이 불붙으면서 가톨릭이 내놓은 루터에 대한 비판이나 프로테스탄트 내부의 갈라진 주장들도 모두 성명서와 책 등 인쇄물로 나왔다. 루터가 불려가 의견 철회를 요구받은 보름스 제국의회 도중에도 심문받는 루터 모습을 그린 판화들이 '갓 구운 빵'처럼 인쇄돼 나왔다. 아직 여름이 징허게 남아 있고 제102회 총회가 이틀 남아 있는 2017년 9월 16일 토요일 새벽 광주 미문교회 본당 교인들로 가득 찼다. 대쪽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성경을 펼치고 LA 칼빈 박헌성 목사의 설교 본문 열왕기상 3장 9-17절을 성도들과 한절씩 교독했다. 헌금 기도가 끝나고 백남선 목사가 말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은혜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 아내가 사랑이 식은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기억이 납니까. 제가 깨달았습니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목사님 말씀하셨는데 성령의 능력이 있으면 ‘물 좀 달라’ 하면 ‘찬물 갖다 드릴까요 더운 물 갖다 드릴까요’ 할 겁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니는 손발이 없냐 떠다 먹어라’ 한다는 겁니다. (회중 웃음) 제가 아내한테 ‘음식 좀 해달라’ 하면 ‘당신이 해서 먹어 보시오’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능력이 없는 게 아니고 성령의 능력이 없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아침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은혜 충만한 시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나오셔서 말씀 주시겠습니다. (회중 아멘)” 박헌성 목사가 설교단에 나와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밤도 단잠 이루게 하시고 새벽에도 건강 주시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 주셔서 주의 전에 나와 말씀 받고 하루 시작할 수 있도록 은혜주시니 감사합니다. (회중 아멘) 부흥회 하면서 마음의 소원 기도제목 안고 이 아침에도 귀한 물질 성별하여 주님 앞에 드리오니 하늘창고에 쌓여진 금은보화 되게 하시고 두 손 들어 복을 베풀어 주시되 신명기의 약속대로 천 배의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신령한 복 주시고 이 땅의 복 주시고 영적인 복도 주시고 육적인 복도 주시고 다함이 없도록 충만 충만 채워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박헌성 목사 고개를 들고 웃으며 인사했다. “굳 모닝. 우리 옆 사람보고 인사해요. (회중 서로 인사) 미국을 비롯해 요즘 선진국에는 지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인간 지놈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간 유전자의 종류와 기능을 밝히고, 이를 통해 개인, 인종, 환자와 정상인간의 유전적 차이를 비교하여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다)라는 것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우리 체내의 유전 정보 분석을 해서 시디롬에 싣는 것입니다. 하등동물 개나 고양이는 무어냐 하는 것이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좀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분석을 해도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사람은 선천적 유전 정보도 있지만 후천적 유전 정보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부모에게서 오는 DNA가 있는가 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DNA가 있다는 겁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중생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에 들도록 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 위해서 삶을 살면 후천적인 유전자가 생겨 선천적 유전자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조상이 하던 대로 안 따라가더라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 정보가 있지만 내가 예수님 믿고 노력할 때 이 후천적 인자가 생기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의 태도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에 따라서 축복의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따라서 삶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얼마든지 우리의 복의 근원이 될 수 있고 복 받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회중 아멘)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내 생활이 달라집니다. 나는 집안 내력이 이래서 이렇다 하는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 믿음으로 일어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이 어디 있느냐 하면 역대하 20장 20절에 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엘리사가 이렇게 이렇게 해라 개천을 많이 파라 하는 말씀을 듣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말씀에 순종해서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 이렇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역사적 배경은 전재을 앞에 두고 백성들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원수들의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마라. 이 전쟁은 너희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내게 속한 것이다.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너희는 그냥 일어나서 믿음으로 가면 된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회중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지난날의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면서 묻혀 있는 사람 주저앉아 있는 사람 염려하는 사람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믿음으로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전쟁이 앞에 있어도 전쟁을 해도 내가 너와 함께하니까 너의 구원을 보여줄 테니 너는 그냥 믿음만 가지고 일어나라. (회중 아멘) 믿습니까. (회중 아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일어나라고 하실 때 우리가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도와주시지 아무리 일어나라 말씀하셔도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일어나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저는 새벽기도가 좋아서 목사 된 사람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1970년대 초에 송정리중앙교회를 시무하시던 조동소 목사님이라고 계셨어요. 그런데 조동소 목사님이 서울 남영동교회로 올라오셨어요. 조동소 목사님은 우리나라 세계선교의 선구자이시고 KIM의 총재이셨던 조동진 목사님 동생입니다. 제가 남영동에 있는데 제가 신학대학을 가겠습니다 하니 조동소 목사님이 목사가 되고 싶으냐 교수가 되고 싶으냐 물으시며 꿈이 뭐냐는 것입니다. 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느냐. 나는 새벽기도가 좋아서 목사가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면 그때그때마다 행동이 일어나요. 군인에게 물이 중요하듯 성도에게도 이 물이 중요합니다. 은혜와 성령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축복을 원하시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종을 신뢰하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통성기도는 남의 기도가 내 귀에 들리면 안되고 내 기도가 내 귀에 들려야 한다.그러니까 저는 원래 통합측 출신이라 광나루 장로회신학대를 가야 됩니다. 그런데 조동소 목사님이 목사가 되려면 김희보 목사 계시는 사당동 총신대를 가라 하셨어요. 그래서 총신대 간 겁니다. 그때 장로회신대 학장 박창하 목사님인데 그분은 조동소 목사님하고 처남 매부 사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거기는 자유주의라고 가지 말고 보수주의인 사당동 총신대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총신대로 갔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새벽기도가 좋은 겁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 새벽기도는 제가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부목사들이 새벽기도를 못해요. 제가 없을 때 하지 못 합니다. 나는 새벽기도가 그렇게 좋은 겁니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여러분 새벽을 좋아하세요. 새벽예배를 나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 다 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성경에는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큰일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새벽에 일어난다 그 말입니다. 새벽이 힘들지 않다 그 말이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야행성 인간보다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되는 건 날이 바뀌었다 집회다 뭐 한다 아니면 새로워진다 해서 변화되는 거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오던 의식구조 그대로 가지고 있고 잘못된 생활태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우리 변화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일찍이 일어난다는 말은 믿음을 가지고 깨어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 마음 새 생활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앙의 결단을 가지고 일찍 일어나야 내가 하나님 앞에 더 놀라운 축복을 성취하는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지난날의 잘못이나 과거의 실패나 아니면 과거의 불안과 죄책감 뭐 이런 거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절대 자신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 다 잊어버리고 과거의 모든 선입견 모든 잘못된 것 다 떨쳐버리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되겠다 마음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몸에 안 좋은 음식도 많이 있지만 먹어서 몸에 좋은 음식이 훨씬 많습니다. 결혼을 해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너무 많지 않아요. 자녀를 낳아 속 썩는 경우도 있지만 자녀 때문에 얻는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사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왜 우리가 하는 일이 잘 안되느냐. 불신앙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 잘 안되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의 마음 믿음의 마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잘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일어나 들로 나가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달걀이 깨어지면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이고 누에가 고치를 벗으면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찍 일어나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우리가 얼마든지 하나님의 새로운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달라지고 축복을 받습니다. 빨리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과거의 무엇이 어쩌고저쩌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일어난다는 말은 깨어난다는 말입니다.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옛 생활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래를 모르지만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굳게 믿으니까 힘차게 전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날 계산하고 살지 않았잖아요. 지나놓고 보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라. 믿습니까. (회중 아멘) 앞으로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들로 나가는’ 그런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래 이제 새롭게 살자. 나도 이제 좀 바르게 살아보자. 나도 이제 좀 믿음으로 살아보자.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삶을 살 것이냐. 과거는 다 떨쳐버리고 이제는 미래를 향해서 복되게 한번 살아보자 그런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일어나는 행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회를 하면서 새벽을 깨우고 일어나 나와서 내가 뭔가를 얻어야 하잖아요. 내가 이제는 뭔가 바르게 살아야 하잖아요. 내가 변화된 삶을 살아야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꿈을 가지고 일어나는 삶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주위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위기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복 주실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 주실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잘되게 해 주실 거야 하고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회중 아멘) 왜 그렇습니까. 어차피 우리 인생은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회중 아멘) 항상 하나님 바라보면 안되는 게 없다 이 말입니다. (회중 아멘) 그가 어떻게 자동차를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지금은 집집마다 자동차 다 가지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만들기 전에 포드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데 말 타고 시내에 가서 의사를 모시고 오니까 어머니가 세상을 떠버리셨어요. 슬픔에 휩싸인 그는 그때 말보다 빠른 것을 만들려고 도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포드는 1903년 7월 2기통 엔진의 자동차를 생산하였고 1908년 혁명적인 자동차 포드 T형을 개발하였습니다. 디트로이트에 가면 헨리 포드의 사진이 있는데 그 밑에 ‘더 드리머’ 꿈꾸는 자라고 새겨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꿈 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일어나는 사람은 좋은 일을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꿈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칼라일은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고 해도 오직 한 가지 꿈만은 가지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다른 말로 하면 소망의 삶이 아닙니까. 희망의 삶이고 꿈의 삶입니다. 뭔가 된다고 믿는 삶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녀를 봐도 하나님이 복 주시면 잘 될 거야 그렇게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지 못하는 아이든지 상관이 없어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해서 꼭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어요. 잘될 수 있어요. 할렐루야. 우리 집도 보면 삼 남매인데 큰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에 대학원을 가라고 하니까 안 간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자기는 공부하기 싫다는 겁니다. 대학만 나왔으면 됐지 뭐 더 하라고 그러느냐는 거예요. 그러면 너는 뭐가 하고 싶으냐니까 쇼핑이나 하고 노는 게 좋겠다는 겁니다. (회중 웃음) 그래 그렇게 해라 그랬어요. 둘째 셋째는 열심히 공부해서 둘 다 변호사가 됐습니다. 둘째가 딸이고 셋째가 아들입니다. 그러다가 큰딸이 시집을 가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아 사는데 얼마나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남편 잘 만나서 쇼핑이나 하고 얘들 데리고 놀기나 하고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둘째 셋째를 보면 밤낮 서류뭉치 가지고 와 밤새도록 씨름합니다. 야 공부만 한다고 잘 사는 게 아니구나. 공부를 안 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구나. 여러분들 자녀들 볼 때 항상 잘 되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마음을 그렇게 먹어야 됩니다. 너는 하나님이 복 주시면 잘 될 거야. (회중 아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회중 아멘)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회중 아멘)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믿음으로 살게 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고 매사에 열심히 살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 받게 되는 건 순간입니다. 인생이 역전되는 건 아주 순식간입니다. 망하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잘되고 부자 되는 것도 순식간에 됩니다. 우리가 자동차 타고 가다 빨간 신호등 보면 서는 겁니다. 그냥 서는 게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파란 불로 바뀐다는 기대를 가지고 섭니다. 기대 속에 기다리게 됩니다.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믿음 가지고 꿈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 중에 한 분이 50년 전에 미국 플로리다로 이민 오셨는데 그때 우리나라가 참 가난할 때였습니다. 와서 보니까 외국 사람들이 이층 양옥집 벽난로가 있는 좋은 데서 사는 게 부러운 겁니다. 그래 이 장로님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하나님 나도 어려워서 이민을 왔는데 벽난로 있는 이층집 가지게 해 주세요. 그게 꿈이었습니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아들들이 다 성공을 하고 잘 살고 이층 양옥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간증을 하는데 ‘그때 내 꿈이 겨우 이층 양옥이었나 저 빌딩 하나 주세요 했으면 하나님 주셨을 텐데’ 라고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꿈을 크게 가지세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 영적 장자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회중 아멘) 성경의 위대한 사람들의 특징은 마음이 넓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커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커진 만큼 여러분이 가진 꿈만큼 인생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큰 꿈을 가지고 있어도 시간이 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믿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큰 축복을 성취하기를 원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활 속에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라. (회중 아멘) 다시 말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주위의 사람도 아니고 상황도 아닙니다. 오직 중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느냐 안 믿느냐의 싸움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지.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어디서나 문제는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실패와 역경이 찾아와도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의 능력은 아무렇게나 남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데 오늘 말씀에 보니까 여호사밧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하리라 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 열왕기하 말씀을 읽은 말씀의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면 그때그때마다 행동이 일어나요. 믿음 안에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해야 되고 찬송하고 싶으면 찬송해야 되고 헌금하고 싶으면 헌금해야 됩니다. 내가 월요일 날 무슨 좋은 일이 생겨서 하나님 은혜가 너무 감사해 헌금해야지 하고 봉투에 담아놨어. 그런데 다음 주일까지 기다리다 보면 금요일 토요일 돈을 써야 할 급한 일이 생기는 겁니다. 마침 헌금할 돈이 생각이 나서 봉투를 들여다보고 이거 내가 미쳤지 웬 헌금을 이렇게 많이 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 축복이 날아 가버리는 겁니다. 항상 우리는 감동되는 게 있어요. 신앙생활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감동을 주시는 겁니다. 새벽에 나가 기도하라고 감동을 주십니다. 그렇게 하면 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복이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감동을 받으면 미루지 마세요. 신앙은 미루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의 능력을 보면 자신의 인생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했으니까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아들이고 기다렸다는 말은 그렇게 살고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믿음으로 말하는 행함이 있을 때에 실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믿음은 액션 믿음은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모압과 싸울 때 출발한 지 칠 일만에 이스라엘 군대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마실 물이 떨어졌다. 전쟁하기도 전에 물이 떨어진 겁니다. 군인들이 싸우는데 물 떨어지면 큰일 아닙니까. 신앙생활에서 물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에스겔서에 보면 은혜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성령을 상징합니다. 군인에게 물이 중요하듯 성도에게도 이 물이 중요합니다. 은혜와 성령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고 은혜가 충만하지 않으면 벌써 문제가 생깁니다. 불만이 생기고 원망이 생기고 걱정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떨어졌을 때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슬프다고 탄식하고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하고 은혜 충만한 삶을 사는가 내가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뻐하고 사는가 사귀어보면 금방 아는 겁니다. 여호사밧 왕이 뭐라고 합니까.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선지자를 찾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만나면 하나님 찾아야 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의 종을 찾았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회중 아멘) 유대인의 교육은 지식이나 직업을 위한 게 아니고 하나님을 알기 위한 교육입니다. 다윗 왕이 죽을 때 솔로몬 왕에게 남긴 유언이 ‘내 하나님을 알라’였습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하나님을 몰랐을까요. 그런데 다윗이 ‘내 하나님을 알라’ 그랬습니다. 알라의 히브리말 야다의 원뜻은 부부만이 아는 성적인 관계로 알라는 것입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지 말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단지 ‘내 하나님을 알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이 뭡니까. 장로교 교인은 누구나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 말하는데 하나님 중심이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부정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나는 하나님 없이 세상 못 산다는 말입니다. (회중 아멘) 이것이 하나님 중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유대인은 이사를 갈 때도 회당 중심 즉 교회 중심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가면서 말합니다. ‘목사님 이제 교회가 멀어져서 교회 못 나오겠어요.’ 정작 교회는 늘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아니라 자기 집이 멀어진 거죠. 저는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이 말은 하려고 해요. ‘네가 섬기는 목사님하고 가깝게 지내라.” (회중 아멘) 목사님은 여러분의 영적 아버지입니다. 신자는 감각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계시적 지식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엘리사가 뭐라 말씀합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시원하게 마시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개천을 팠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주시는 축복의 비결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되면 불평합니다. 원망해요. 목사님이 하라고 했는데도 안된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주의 종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했어요. 소제를 드렸다는 것은 우리말로 감사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왜. 물 나오거든요. 우리의 신앙이 거기까지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주의 종이 말씀을 전하면 그것을 백 프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어떻게 됐어요. 열왕기하 3장 20절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예배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건 예배밖에 없습니다. 개천을 팠는데 물이 안 나오고 에돔 편에서 물이 흘러온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축복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실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십니다. 성도가 어려움을 당할 때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종을 신뢰해 믿음 생활을 더 잘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축복을 원하시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종을 신뢰하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통성기도는 남의 기도가 내 귀에 들리면 안되고 내 기도가 내 귀에 들려야 한다는 박헌성 목사의 주의와 함께 성도가 다 일어나서 통성기도를 했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설교자의 길이지만 그것을 수십 년간 계속하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일 것 같다. 실제로 한때 빛났던 설교자들이 자기 복제를 하거나 삶의 실패로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박헌성 목사는 지치지 않는 정열로 새로운 설교를 들려준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저는 무엇이든 호기심이 넘칩니다. 특히 제 자신에 관한 것들은 더욱이요. 항상 미지의 자아를 알고 싶습니다. 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제가 하지 못하는 것과 해 보지 않은 것엔 늘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매일 새벽기도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새벽을 위한 시간과 공간의 기도(Prayer Of Time And Space)를 드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게 저의 평생의 영적 원천이고 유일한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2017-11-02
    • G.MISSION
    • G.SERMON
    2017-11-02
  • 종교개혁 500주년, 개혁교회의 책임- 정일웅목사(전총신대학교총장)
    종교개혁 500주년, 개혁교회의 책임 (제54회기 목사. 장로기도회 주제 강연) 정일웅목사(전총신대학교총장) 장소: 부산부전교회당 일시: 2017.5.10. 9:30-10:30 존경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의 목사님과 장로님 여러분, 주안에서 다 평안하신지요? 저는 오늘 “종교개혁 500주년, 개혁(장로)교회의 책임”이란 주제 강연을 부탁받은 정일웅목사입니다. 강연주제의 핵심은 혼미한 이 시대에 우리 개혁교회가 짊어져야 할 막중한 복음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밝혀달라는 총회의 요구를 받게 되었고, 그 대답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의 깊은 관용(寬容)과 혜안(慧眼)의 경청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우리 개혁(장로)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하려면, 아무래도 우리 합동교단을 비롯하여 현재 경험되고 있는 한국교회전반의 목회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먼저 그 방향에서 대화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우리 합동교단, 지도자 여러분,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한국(장로/개혁)교회는 지금 어떤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큰 위기에 직면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 대부분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간 한국교회가 지난 60-90년대로 오면서, 대대적인 복음전도운동으로 선교역사상 유례없는 대 성장을 이루었지만, 이제 그러한 성장의 황금기는 지나간 듯합니다. 80년대 초만 해도, 어디든지 십자가만 세우면 교회가 부흥된다던 말이, 이제 다 옛 이야기가 된듯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결코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급변하는 우리사회의 한복판에서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물질적이며, 타락한 인간의 세속적인 가치들에 더 귀를 기울이고, 행동했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세속화된 모습이며,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의 모습임을 자책해 봅니다. 그래서 전도하기가 이전 같지 않고, 목회하기 또한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으로 매우 불신 받는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매번 교회 내적인 문제들이 세상 밖으로 노출되면서, 한국교회지도자들의 비인격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세상언론을 장식하게 되었고,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불신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안티 기독교세력까지 등장하여, 적그리스도의 노릇을 하고 있으며, 또한 가나안 성도들이 점점 늘어나 그 수가 약 100만에 이른다는 소리도 듣게 됩니다. 그래도 대형교회들은 성장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곳을 찾는 대부분은 이전 교회들에서 상처받아 수없이 갈등하며 배회하던 우리 평신도들의 수평이동현상으로 설명될 뿐입니다. 생각하면, 이러한 한국교회의 목회실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은 우리의 자업자득이 아닌가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지금 한국교회의 목회현실은 그렇게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그야말로 위기와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우리 교단 지도자 여러분, 이러한 한국교회 목회실상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참으로 지금이야말로 많은 신학적인 성찰과 목회실제의 철저한 반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의 신앙실제를 되돌아보고, 500년 전,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것처럼, 우리의 왜곡되고 뒤틀린 부분을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부단하게 고처 가는 노력을 과감하게 실천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가진 신학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신학적인 사고와 이해가 참으로 좁아져 있지 않은지? 그 좁아진 우리의 모습에서 지금 한국교회가 당면한 부정적인 문제들이 연유된 것은 아닌지? 반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재빨리 좁아진 우리의 신학적인 사고와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기를 감히 주문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때, 개혁(장로)교회가 짊어져야 할, 복음의 책임이 거기서 확인될 것이며, 나아가 참된 복음의 진리를 책임지는 우리 한국개혁교회의 모습이 거기서 가능하리라 기대하며, 또한 당면한 한국교회의 목회위기와 한계도 거기서 극복되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저는 다음의 5가지 주제를 따라, 좁아진 우리의 신학적인 사고와 이해의 지평을 넓혀야할 개혁교회의 책임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 합동교단 개혁교회의 신학정체성은 ‘개혁신학’으로 부르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단의 신학정체성의 명칭은 주로 ‘개혁주의’ 또는 ‘개혁주의신학’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언어사용은 피하고, ‘개혁신학’으로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주의’(-ism)로 불리는 ‘이념’, 즉 ‘Ideologie’란 말이 가진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며, 그 개념자체 역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데올로기’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아시지요? 그것은 “경험을 통하여 획득한 가치를 객관화하고 합리화하여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소리”로 봅니다. 물론 ‘사상체계’란 말로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어쨌든 인간의 경험에 의존된 사람의 생각이며, 사람의 주장이기에 그 자체는 참된 진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복음(Evangelium)과 이념(Ideologie)의 관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느냐고 질문하면, 그것은 이념이 아니라,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언제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인격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관계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학을 너무 이념적으로 강조하여, 그것을 믿어야 할 대상으로 삼게 되면, 바로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그 믿음은 이념을 믿는 모습이지, 주님의 참된 말씀을 믿는 종의 모습이 아니며, 오히려 이념의 종, 아바타의 모습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니, ‘개혁주의신학’이란 용어는 오늘 이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 개혁교회의 신학정체성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생각하면, 이러한 신학이념표현은 그간 기독교신앙진리에 대항하는 이단사상이나, 신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사상이 대두될 때, 진리방어목적으로 주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역사적으로 그러한 일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훌륭한 생각들은 성경의 진리이해에 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칼빈의 신학을 선호하고, 지금도 ‘칼빈신학’란 이름으로 공부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진리이해에 도움을 주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의 객체(대상)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러한 신학이념이 가장 부정적으로 사용된 것은 조금 달리 생각하는 자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를 망각하고, 마녀사냥식의 도구가 되었던 것 때문입니다. 그러한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한 구미교회들은 오늘날 이념적인 신학사상표현을 극히 자제하며, 그러한 언어사용을 피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험하나 말씀드리면, 실제로 총장재임 시에 서유럽과 북미지역의 우리 총신과 신학사상을 같이한다고 생각된, 신학교총장들을 만나 교제한 일이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 아무도, 그들 학교와 자신들의 신학을 우리와 같은 이념신학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 칼빈신학교나,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총장들은 그들 신학교가 지향하는 신학을 모두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 또는 개혁교회의 전통(Reformed Tradition)으로 표현하지, 결코 이념신학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개혁주의’는 영어로 ‘Reformism’,‘개혁주의신학’은 ‘Theology of Reformism’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그런 용어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면, 이 말은 순전히 한국교회의 사상 대립적 상황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이념적인 신학표현은 자제하고, 그냥 ‘개혁교회의 개혁신학’으로 부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총신의 신학정체성은 ‘개혁신학’이며,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신학교입니다. 이런 표현가운데 사상체계는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조직신학의 책임). 그렇게 표현할 때, 사회적으로 복음전도의 접근이 더 용이하며, 특히 지성인들에게 투쟁적이거나, 분파적이지 않고, 편 가르기가 아닌, 더 설득력을 가진 복음전달이 가능하리고 봅니다. 그런데 또 최근에 ‘복음주의’라는 주장의 소리도 듣습니다. 그것도 매우 이념적인 표현이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복음’은 복음이지, 복음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한 표현은 훨씬 교회공동체의 화해와 화평과 하나 됨을 깨는 일에 크게 기여하리고 봅니다. 더욱이 이념적인 신학사상표현이 정치적인 구호로 사용되는 일은 더더욱 삼가야 합니다. 그것을 너무 강조하면, 정말 복음보다, 이념을 더 믿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말씀하였습니다. 구원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믿음대로 행하는 순종이요, 인격적인 삶의 실천임을 일러준 것입니다. ‘개혁주의’, 또는 ‘개혁주의신학’이란 용어사용이 때때로 그를 대단한 개혁주의자로 여기게 할지모르지만, 자기과시행위일 뿐입니다. 여러분, 지나친 신학이념의 주장에서 제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그리스도복음의 진리는 이념적인 주장에서부터 왜곡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신학정체성은 ‘개혁신학’으로, ‘개혁교회의 전통’으로 분명히 할 때, 한국의 개혁교회는 한국교회전체를 품는 장자교단의 역할을 거기서 분명히 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둘째, 개혁교회의 책임은 개인의 영혼구원뿐 아니라, 사회와 자연생태계의 윤리적인 책임을 포함한 전인격적인 삶을 구원하는 복음전도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개혁교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우리 교단 지도자여러분, 현대신학은 기독교구원이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의 전인격적인 구원과 삶 전체의 구원으로 이해하고, 특히 사회와 자연생태계의 윤리적인 책임까지를 포함한 우주전체구원의 총체적인 의미가 그리스도복음의 핵심적인 구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하나님나라와 종말론적인 메시아구원관). 생각하면, 그간 이러한 총체적인 구원이해를 우리 보수적인 교회는 자유주의신학으로 단정하여 그 수용을 거부해 왔습니다. 물론 우리가 거부해야 할 것은 그들의 성경유오설주장과 만인구원론신학입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오래전부터 한국교회의 보수는 개인구원을 강조하며, 진보는 사회구원을 강조하여 서로 대립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이 문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리스도복음의 전인격적이며, 삶의 총체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새롭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개혁교회의 구원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즉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인과 하나님, 개인과 사회, 개인과 자연까지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창조세계의 구원(창1:28;눅10: 25-37;롬8:19-23)을 폭넓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 사회문화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통치)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 문화신학적인 사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사명수행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코메니우스와 카이펴의 문화신학). 이러한 이해는 신학적으로 그간 기독론적인 관점에서만 이해했던 전통적인 구원론을 뛰어넘어 창조신학의 관점에서 기독교의 구원을 새롭게 해석해 준 통전적인 구원론으로 여겨집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구원은 구체적으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서, 먼저 복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의 전인격적인 변화(회개와 믿음의 중생, 칭의)가 있어야 하며, 그렇게 변화된 사람(영혼구원의 확신)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복음의 윤리적인 책임(성화)을 짊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실재로 느끼게 해 주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즉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일로써, 기독교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도, 방관자가 아니라, 책임자로 참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학에서도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이란 이름으로 더 잘 설명되고 있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우리 개혁교회의 구원론은 전인구원적이며,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윤리적인 책임까지를 포함한 총체적인 구원을 우리의 성장세대와 평신도들에게 깨우치거나, 그렇게 잘 인식시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교회는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목표를 두었고, 신앙의 윤리는 하나님사랑의 경건윤리에만 역점을 두어, 우리 모두 경건해지도록 종교심과 기복신앙을 얼마나 부추겨 왔었습니까? 그리고 설사 이웃사랑의 책임을 알려주었다고 해도, 그것은 천천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매우 인색하고, 매우 이기적이며, 자기영혼구원만 생각하는, 마치나 한 달란트 받은 종들처럼 생활하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의 판단이 오해이기를 바랍니다만, 실제로 우리 모두 그간 영혼구원에만 목숨을 걸었고, 영혼만 구원되면, 이웃과 사회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봉사)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였습니다.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와 우리 기독인들이 사회로부터 불신 받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이웃과 사회에 대한 복음적인 사명은 망각한 채, 불신자들과 똑 같이 아옹다옹하면서, 오직 자기 것 획득에 몰두하면서 살아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음을 깊이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지도자 여러분, 이제 우리의 참으로 좁아진 구원관을 넓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자유주의라고 또 오해하지 마시구요! 우리의 ‘영혼구원의 과제실현’이 얼마나 이웃공동체를 사랑해야하는 일과 맞물린 것인지를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복음의 전인격적이며 총체적인 삶을 감당하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참으로 책임지는 개혁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복음전도방법을 새롭게 시도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교회의 주변과 사회저변에 소외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복음전도를 과감하게 시행하며, 그들을 돌보는 목회사역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그야말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고 품어주는 이웃사랑 복음전도, 사람사랑의 목양사역으로 전도와 목회방향을 새롭게 바꾸기를 바랍니다.(중서울노회 소속인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님의 우유배달사랑전도/달동네의 울보목사란 책). 우리사회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복음전도와 목회행위가 비록 재빠른 교회성장을 초래하지 못하고, 성장열매가 참으로 더딜지라도, 이러한 전인구원의 복음전도, 전인구원의 총체적인 목회를 실천할 때, 우리 개혁교회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참으로 우리의 좁아진 구원신학에 대한 사고와 이해의 지평을 활짝 넓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총체적인 복음의 폭넓은 구원관을 토대로, 복음전도와 목회를 실현하기 바라며, 또한 우리의 젊은 세대와 평신도들에게도 이러한 총체적인 복음의 전인격적인 구원관을 심어주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개혁교회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폭넓게 감당하는 모범적인 교회가 될 것이며,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는 우리의 평신도들을 만날 것이며(마5:13-16), 사회와 이웃에 감동을 주며, 마침내 하나님을 감동시켜,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들로 교회부흥(행2:47)을 이루는 놀라운 기적을 거기서 경험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여기서 신학적으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개인의 영혼구원은 오직 성령하나님이 행하시는 독자적인 일이지만, 이웃과 사회와 자연을 돌보는 총체적인 구원의 책임수행은 신인협동적인 관계에서 성취해야 할 인간의 책임이며,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총체적인 구원’임을 바르게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개혁교회는 평신도의 만인사제신분을 회복하고, 그들 평신도들이 창조세계의 한 복판에서 복음전파와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섬김의 주인공들로 활동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개혁교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세로마가톨릭교회가 성직자의 신분과 권위를 높이고, 계급화하면서, 상대적으로 평신도(Laity)신분을 낮추어 신적인 일에 무식한자들로 소외시키고 있을 때, 루터는 벧2:9-10절의 말씀을 들고 나와, 성직자만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동일한 사제신분을 가진 자들임을 천명함으로써, 교회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입니다. 루터의 ‘만인사제론’은 인간사제의 중보자적인 역할 없이, 믿는 자라면 누구나 중보자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직접나아가 예배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사제자격이 부여되었음을 밝힌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전도에서 선지자로서의 기능적인 역할과, 형제를 위로하며 돌보며, 축복하는 기도자의 제사장적인 기능과 사회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의 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일에 섬김의 왕적인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복음전파의 사명자로 보았던 것입니다. 루터의 이러한 만인사제론은 그 당시 성직자 중심의 중세교회구조를 개혁하여, 회중중심의 교회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중심의 교회로 개혁하였습니다. 칼빈은 루터의 만인사제론을 수용하면서도, 조직된 교회를 섬겨야 할 직분을 네 가지로 구분하였고(목사,교사,장로,집사), 한국장로교회는 3가지 직분(목사,장로,집사)을 항존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이러한 직분은 결코 계급적인 관계가 아니라,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성령께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세우신 직책이었습니다. 이 직분은 주님을 섬기는 직분이지, 목사를 개인적으로 섬기는 직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는 이러한 직분들이 목사를 섬기는 직책인 것처럼, 오해되어 있고, 또한 매우 계급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안에는 언제부터인가 목사직분의 권한이 강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차 그 권위가 높아지면서, 마침내 목사는 신령하고,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로, 또한 축복의 전문가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은 기복신앙의 추종자들로 만들었고, 피축복자들로 전락시켜 놓았습니다. 또한 목사의 권한은 당회장권, 강단권, 축도권, 설교권, 목양권, 안수권 등으로 강화되었고, 상대적으로 평신도는 오늘날 참으로 무능한 신자로만 머물게 해 놓은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은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바로 중세로마가톨릭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그리고 목사의 리더십은 섬기는 주님의 종의 모습이 아니라, 성도들 위에서 지배하고 군림하는 제왕(기업체회장)적인 모습으로 변질되었고, 마침내 목사의 교권남용문제가 여기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목사의 교회재정횡령, 목회세습, 목회자성윤리문제 등, 비도덕성문제들이 다 이와 같은 제왕적인 리더십의 남용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러분, 이 뿐만 아닙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교회 내적으로, 목사와 장로, 그리고 평신도사이에 발생하는 불화와 대립적인 분쟁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는 줄 압니다. 목사님들 모임에 가면, ‘장로다루는 법’이 인기 있는 특강주제라고 하며, 장로님들 모임에서는 역시 ‘목사잡는법’이 인기 있는 강연주제라고 합니다. 이 말은 웃자고 만들어낸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사실이라면 참 안타까운 목회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일반법정의 수많은 고소건과 시비 건이 대부분 한국교회에서 발생한 분쟁들이며, 목사. 장로사이에 발생한 고소 건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시 우리교단은 총회의 결의까지도 효력정지를 당하는 사태가 빈번한 줄 압니다. 존경하는 교단 지도자 여러분, 저는 이러한 행위들에서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불신당하는 연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성도들이 생산되는 원인도 여기서 생겨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복음전도의 문이 닫히고, 교회성장이 멈추어진 이유가 다 우리의 기득권을 움켜지고, 아옹다옹 하는 모습에서 귀결된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제발 양보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교회공동체의 평안을 위해서 자기주장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여러분, 왜 우리스스로 교회의 거룩성을 짓밟으며, 왜 하나님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지요? 지금이라도 이 모든 수치스런 우리의 잘못된 행위를 즉각 중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개혁교회는 권징의 권위를 시급히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교회문제를 교회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법정으로 끌고 가는 분들이 과연 개혁교회의 멤버이며, 하나님나라를 함께 짊어지고 가야할 개혁교회의 동역자인지를 심각하게 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천국열쇠인 교회의 권징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감정적으로 남용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 모두 교회의 치리와 권징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주님께 대항하는 불신앙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개혁교회는 권징을 올바르게 시행하여, 주님교회의 권위를 바로세우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존경하는 개혁교회의 목사님들, 이제 우리의 장로님들과 평신도들도 사제의 신분을 가진 자들임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역교회 내에서의 일꾼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세상의 한 복판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일로, 사회와 자연의 윤리적 책임영역에서 적극적인 섬김으로 활동하는 주인공들이 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가진 직업을 통하여 창조세계의 한복판에서 만인사제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감당하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전도의 사명수행과 이웃사랑의 책임을 감당하는 모습이 거기서 분명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루터는 그 당시 만인사제론을 말할 때, 목사와 평신도의 직분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질문 받았고,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는 지역의 교회공동체를 이끌어야 하는 선택되고 준비된 하나님사역의 책임자이며, 특히 예배에서 하나님말씀의 선포인 설교와 성례를 거행하는 책임과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목양적인 책임을 성령께서 부여하여, 세워주신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역시 이러한 목사를 세우신 성령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우리 교단지도자 여러분, 그렇습니다. 목사와 장로, 또는 평신도는 서로 대립적인 관계가 결코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와 주님의 교회를 함께 세워가야 할 복음의 동역자입니다. 목사님은 지역교회공동체를 책임진 사제들이며, 평신도들은 세상을 책임진 사제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혁교회는 평신도의 만인사제직을 인정하고, 그들이 세상의 한 복판에서 복음을 삶으로 증언하는 하나님의 일꾼의 책임을 당당히 감당하도록, 우리의 평신도들을 격려하고, 다시 깨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들 평신도사제들이야말로 이시대의 모든 직업 활동을 통하여, 우리 사회를 복음으로 이끌어가야 할 기독인리더 들입니다. 생각하면, 이들 평신도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꾼들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이웃사랑과 사회개혁과 자연생태계보호 등의 사회윤리적인 책임을 감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요, 진리의 빛을 비추는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이며, 바로 지금도 세상을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 보이는 ‘영광스러운 일’이 분명하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간 상실된 한국교회의 거룩성과 신뢰성을 회복시켜야 할 주인공들도 분명히 이들 평신도사제들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개혁교회는 모든 평신도들이 그리스도복음의 총체적인 전인구원신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 시대의 복음사역에 헌신하는 신앙실천의 인물들이 되도록, 그들에게 신앙의 본질인 믿음, 소망, 사랑을 일깨우는 성경교육의 책임을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목사님들이 공부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배우며 목회하고, 목회하면서 배우는 개혁교회의 목양적인 책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인 믿음, 소망, 사랑은 하나님의 구원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며, 살아있는 신앙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인 기독신앙인의 모습이 분명합니다. 개혁교회신자들을 이러한 신앙적인 삶으로 응답하며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사는 복된 자들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독교신앙의 본질적인 모습이 얼마나 믿음, 소망, 사랑에 연결된 것인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일깨우는 개혁교회의 목회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존경하는 목사. 장로여러분, 기독교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하는 실천입니다. 그 때문에 사도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전13: 13)고 하였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살전1:2-4절에서도, 바울은 복음전도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기억하면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는 3가지 모습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고,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이며, 또한 택함 받은 증거라는 사실도 밝혀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히10:19-25에서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교회를 통한 목양사역이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과 얼마나 연관된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바울의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을 가장 잘 계승했던 인물은 교부시대의 유명한 신학자 어거스틴(A.Augustinus)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배할 때, 믿음, 소망, 사랑으로 찬양하라”고 예배의 본질적이며, 실천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도, 여기에 목표를 두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가 쓴 ‘요리문답교육지침서’(Enchiridion)에서는 ‘믿음’을 일깨우려면 ‘사도신경’을, ‘소망’을 일깨우려면 ‘주기도문’을, ‘사랑’을 실천케 하려면, ‘십계명’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 이래로, 믿음, 소망, 사랑은 요리문답교육에서 언제나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과 연결하여 교회신앙교육의 근본토대로 삼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요리문답교육(루터/칼빈)을 그대로 계승하여, 교회신앙교육의 훌륭한 전통을 남겼습니다. 특히 칼빈은 그것을 중심하여 매 주일 오후예배에서 반복적으로 행하여야 할 교리설교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17세기, 보헤미아-모라비아형제연합교회의 마지막 감독이었던 코메니우스(J.A.Comeni- us)는 그의 유명한 책 ‘대교수학24장’에서, 성경공부의 목표는 믿음, 소망, 사랑에 두어야 할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는 성경 66권의 내용이 이 세 가지와 관계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서, 올바른 기독교신앙의 본질적인 모습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응답하는 삶이어야 함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구원계시의 핵심이요, ‘정경 중에 정경’(Canon im Canon)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우리 개혁교회 지도자여러분, 이러한 신앙본질의 이해를 종합할 때, 믿음, 소망, 사랑이야말로 바울의 구원신학의 핵심이며, 교회를 통하여 실현해가야 할 실천신학(성경교육)의 근본토대요, 전도신학의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은 우리 목사님들이 재교육과정을 통하여 새롭게 ‘오리엔테이션’ 해야 할 중요한 구원신학과 목회신학의 핵심주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적인 신앙의 핵심사상이 우리 개혁교회에 와서 지금 실종된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음의 교리만 강조하고, 구원신앙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를 분명히 깨우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보수주의는 포기하기 바랍니다. 오히려 말보다 믿음을 행동하며, 실천하는 보수주의가 되기 바랍니다. 또한 구원 얻음의 실체가 믿음의 근거와 열매로서 이 소망과 사랑과 얼마나 깊이 연관된 것인지를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은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가 짊어져야 할 성경교육의 실제적인 목표이며, 내용이며, 수단이며, 또한 복음전도와 목회사역을 꽃피게 할 실천신학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목사님들이 목회자재교육과정을 통하여 새롭게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할 구원신학과 목회신학임을 분명히 알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이야말로 오늘 우리 개혁교회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구원신학이요, 전도신학이며, 목회신학이요, 실천신학의 근본토대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개혁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을 성경교육의 전체목표로 삼고, 성도들의 신앙 일깨우기에 전력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성경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할 때도, 믿음, 소망, 사랑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설교하는 도구로 삼기 바라며, 그것을 주일예배의 목표로 삼아, 그러한 구도를 따라 예배를 시행할 때, 더 이상 은혜를 끼쳐보려고 갖은 방법으로 애쓰지 않아도,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는 성령의 은혜를 회중은 크게 경험하리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 개혁교회의 막중한 책임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세요? 역시 그것은 목회자재교육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목사님들이 다시 진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겸손히 복음을 배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교회 저변 곳곳을 한번 돌아보세요! 더 이상 한국교회가 이 상태로 주제 앉게 할 수가 없다는 심정으로, 우리 젊은 목회자들이 그룹별로 모여서, 스터디 하는 모임이 자발적으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설교크리닉’이란 이름으로, ‘율법과 복음’이란 주제로 구원론을 새롭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옛날,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오늘 목회현장에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목사님들이 스스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우리 개혁교회는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총회목회대학원이 원래 우리 총신교단 목회자재교육기관으로 설립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운영되는 모습은 겨우 타 교단목사 본 교단 가입시키는 편목교육기관으로 전락된 모습입니다. 이전 총장재임 시에 제가 목사재교육과정을 과감하게 개선하여 우리교단목사님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해보자고 운영위원회에서 수차례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바라기로는 앞으로 총신 졸업 후, 7년이 지나면 반드시 목회자재교육과정에 다시 모여, 적어도, 1개월 정도의 연수과정을 실시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장로님들을 위한 지도자연수과정도 제공해야 합니다. 총회가 너무 비대하여 움직이기 힘들면, 각 지역노회들이 서로 연합하여 목회자재교육과정을 자체적으로 각각 운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미국의 무슨 디민 학위프로그램과는 절대로 연계시키지 마시고, 목사와 장로의 직분명칭이 그 어떤 학위 명칭보다 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최고의 성직임을 기억하시며, 목양사역에 필요한 목회정보와 성경연구와 목회전략과 리더십을 훈련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제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다만 저의 충정어린 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이 시대는 배우면서 목회하고, 목회하면서 배우는 평생교육의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지도자 여러분, 시간을 선용하여, 그간 잘못배운 구원론이해를 새롭게 회복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개혁교회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게 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신앙의 본질인 믿음, 소망, 사랑 중에, 특히 이‘소망’과 관련하여 한 가지 첨언한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면서, 루터의 칭의 론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믿음대로 행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신앙태도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루터의 칭의론이 한국교회에서 값싼 은혜가 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언약백성들이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그 칭의는 마지막 심판 날까지 유보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이러한 주장은 이웃사랑에 너무 인색하고, 행동실천이 없었던 한국교회의 이기적인 신앙을 되돌아보게 하는 도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선행(사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소망을 함께 말해주지 않는다면, 이신칭의의 은혜는 또다시 왜곡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선행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선행의 공허함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 문제는 선행의 대가요구에 대한 질문으로, 그것은 세상의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스도가 약속한 하늘의 상급에 있음을 전제해야하기 때문입니다(창15:1,17:1,마6:9-13;계20:6).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구원신앙은 믿음과 선행만을 강조하는 이원적인 사고를 뛰어넘어, 믿음, 사랑, 소망의 올바른 삼각균형과 조화를 가진 전인격적인 삶의 모습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 때문에 개혁교회는 그러한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에 바탕을 둔 신앙인물을 길러내는 성경교육과 신앙교육의 책임을 지금 짊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잘 감당할 때, 현재 직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복음전도와 목회사역의 한계가 거기서 극복될 것이며, 한국교회가 새롭게 부흥되는 시대로 도약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개혁교회의 책임은 한국교회연합운동의 과제를 기꺼이 짊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역에 세워진 건물로서의 교회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언약백성들의 영적인 신앙공동체의미가 더 귀중합니다. 칼빈은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인 교회를 구별하면서,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가진 불가시적인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지금 한국교회의 나누어진 모습인 교단과 교파의 의미는 매우 좁은 교회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신자들이, 한 형제자매임을 인정해야하며, 오늘날엔 성도의 교제(Koinonia)가 교파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면, 칼빈은 종교개혁자들 가운데서 교회연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 시대적으로 연합을 가장 많이 힘썼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정신을 따르는 우리 개혁교회는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한 행동이 개혁교회 본래의 모습이요, 책임입니다. 이제 교파를 뛰어넘어 한국교회가 연대하여 이 시대에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책임지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KNCC는 우리사회의 정치민주화를 이루는 일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정치신학과 종교다원주의적인 신학고수로, 한국교회의 다수인 보수그룹과 연대하지 못해서, 그 역할이 끝난 것 같습니다. 한기총은 미안합니다만, 그동안 보수교회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다가, 이상하게도 교회의 거룩성과 권위를 상실한 불신 받는 종교단체로 전락된 모습입니다. 다행히도 최근에 ‘한국교회총연합회’란 새로운 연합기구(한교총)의 탄생소식에 저는 개인적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7개 기존교단들이 그들 각각의 역사와 현재를 존중하고, 이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더 큰 주님의 일들에 힘을 합하기 위해 연대하게 된다니, 참으로 기대됩니다. 그간 한국교회는 삼삼사오로 분리되어 서로 경쟁하다보니, 힘을 잃고 있었고,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문제들에 한목소리로 대변하는 역할을 하지 못해, 우리사회의 혼란에 기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한 교파로의 통합이 아니라, 독립된 각각의 교단을 존중하고, 하나의 협의기구로 연대하면, 우리사회가 분열되지 않고 통합되는 사회적인 안정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며, 남북통일에도 기여하리라 기대합니다. 참으로 한국교회가 대 사회, 대 정부, 대 북한, 대 국제관계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잘 수행해 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할 때, 우리사회의 한국교회에 대한 불신도 곧 회복될 것입니다. 물론 신학정체성이 빈번히 질문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념적으로 주장되었던 ‘개혁주의신학’이 아니라, ‘성경적인 개혁신학’과 복음적인 개혁교회의 전통이 한국교회연합에 분명한 빛을 발휘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또한 한국교회 전체를 품는 장자교회의 모습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제 강연을 마치려 합니다. 존경하는 우리 개혁교회 목사님과 장로님 여러분, 아무쪼록 그간 우리의 참으로 좁아진 이념신학과 구원론과 직분론과 성경교육(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과 교회론의 신학적인 사고와 이해의 폭을 활짝 넓혀서, 이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개혁교회의 막중한 복음적인 과제와 책임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G.MISSION
    • G.SERMON
    2017-09-16
  • 전국영남교직자협의회
    2017년 8월 17에서 18일 정오까지 경주 켄싱턴리조트에서 제23회 전국영남교직자협의회(대표회장 이성택) 하기수련회가 열렸다. 심야버스로 18일 새벽 2시에 도착해 잠시 눈을 붙이고 6시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사람이 없었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 순서지를 보고 새벽기도 설교담당자 채규현 목사(광주중앙교회)에게 전화를 했다. 강사께서 왜 안 내려오시느냐 물었더니 예배시간이 6시 30분이란다. 좀 있으니 이춘만 장로가 오시더니 새벽기도가 5시나 6시 이래야지 6시 30분이 뭐냐고 한마디 하셨다. 채규현 목사의 본문 다니엘 2:24-28 ‘아리옥과 다니엘’ 제목의 광주중앙교회에서의 6년간의 분쟁 경험을 곁들인 새벽기도 설교는 아주 은혜로웠다. 8월 17일 개회예배 설교는 제102회 부총회장 후보 배광식 목사의 사돈 한기승 목사였다. 순서지에 이름 올린 사람 가운데 아는 사람은 명예회장 김형국 목사 허은 목사 남서호 목사 장활욱 목사 이형만 목사 김종희 목사 등이었다. 18일 오전 11시 30분 폐회예배 설교는 이성택 목사가 했다. 그는 본문 요한복음 12:9-11 ‘나사로 때문에’ 제목의 설교를 재미있고 은혜롭게 전했다. 2017-09-14
    • G.MISSION
    • G.MISSION
    2017-09-15
  • 부울경 김영우 소강석
    김영우 길은 대전에서부터 고속도로 쫙 깔려 있는데 부울경 오는 길 사정은 아주 복잡 소강석 말도 많고 압력도 많은 부울경 욕먹어도 좋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와서 욕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우리가 가치적 신앙을 가지고 총회를 섬기고 더불어 한국교회를 살리는 저수지가 되기를 2017년 8월 29일 오후 2시부터 8월 30일 정오까지 경남 거제시 호텔오션베스트에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교직자협의회(회장 김유식 열방교회) 제15회 하기수련회가 열렸다. 아직 여름이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거제 고현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고현 능포를 오가는 10번 버스로 12시경 한일비치 정류장에 내렸다. 좀 걸어 흰색 타원형 호텔오션베스트 입구에 다다르니 부울경 개회예배 강사로 총회 정치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총신 총장 김영우 목사가 부울경 관계자들과 점심 식사를 하러 나서고 있었다. 근처 식당에 들어서니 부울경 회원들이 식사를 하고 일어서는 사람 가운데 그간 총회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던 서광호가 보였다. 식사 후 김영우는 총회선거관리위원 윤희원 목사(효성교회)와 다과를 곁들여 담소했다. 오후 3시 사회 황재열 목사(총회교육부 회계 세광교회) 기원으로 개회예배가 시작됐다. “살아계신 하나님 예정된 장소와 시간에 귀한 사자 목사님 보내주셔서 이제 개회예배 드립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고 함께하는 모든 교직자들에게 큰 은혜의 시간 되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321장 ‘나 구주 위해 살리라’ 찬송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후 남은 생명 바쳐서라도 총회 섬기고자 하는 곽병오 장로(총회감사부 부장 칠암교회)가 기도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을 사랑하시사 제15회 하기수련회를 예정된 시간 예정된 장소에서 시작하게 하시고 좋은 날씨를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우리 모두를 경성케 하시고 모든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마음속에 좋지 못한 모든 계획들을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깨끗케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부울경 12개 노회 소속 교회들의 평안과 부흥의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총회에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지도자들의 숨겨진 죄악을 회개케 하옵시고 이 시대의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임원으로 세워주시옵소서. 이번 총회에서 부울경이 크게 쓰임 받는 종들이 많이 배출되게 해 주시옵소서. 총신을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교단에 주신 축복입니다. 사당동 대지를 헌물한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 땅을 지키기 위해 눈물로 투쟁했던 종들에게 복을 내려주옵소서. 지금 세계적인 명문 신학교로 성장하게 하시어 훌륭한 목사와 교사들을 양성하게 하시고 많은 학생들이 말씀대로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로 자리 잡고 있사오니 학원 선교의 복을 내려주시기를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총신 재단이사 선임에 하나님 친히 역사하시어 총신을 사랑하며 기쁨으로 헌신할 자들이 선임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총신을 위해 수고하시는 김영우 목사님을 단에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드시어 성령이 인도하시는 말씀으로 증거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겸손히 은혜 받는 귀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부울경 27회기 김유식 대표회장과 모든 임원들에게 충성되게 헌신하는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수련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끝까지 성령님 인도하시어 귀한 은혜로운 수련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옵고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중부산노회장 정두영 목사의 순서지 성경과 다른 시편 112:1-3 봉독하고 사회자 선창에 따라 ‘복음에 합당하게 살자’ 표어를 3번 제창했다. 서부경남목회자전도회의 특송 후 총신 총장 김영우 목사가 ‘오늘날 한국의 치유책’ 제목으로 설교했다. “참 어렵게 왔습니다. 간당간당 간신히 간신히 왔습니다. 길은 대전에서부터 진주 고성 통영 거쳐 고속도로 쫙 깔려 있는데 사정은 옛날 시골 버스길보다 더 복잡해 참 어렵게 왔습니다. 저는 전국협의회 가운데에서도 제가 속한 중부협의회보다 이 부울경협의회에 많이 왔었고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제2고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한국교회 특히 한국사회의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런데 저는 첫 번째 문제가 이 인구문제 자녀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울경 동역자 여러분들께서 성도들에게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입각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우리가 확실하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귀하신 주님 사랑과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언제 어느 시대든 어떤 문제든 하나님 안에는 답이 있고 해결책이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 일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 체계를 가질 수 있는 목회자들 되게 해 주옵소서. 또 그런 설명 체계 안에서 교회를 섬겨나가고 목사들 서로 함께 도우면서 우리 후손들의 강성함을 가져 이 나라의 넉넉함이 지속되는 그런 교회 그런 사회 만드는데 앞장 서는 우리 장로님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이어서 대표회장 김유식 목사의 대회사 진주노회장 이상의 목사의 환영사 영남교직자협의회 회장 이성택 목사 총회부총회장 김성태 장로 전국남전도회연합회회장 박종화 장로 등의 축사 증경총회장 김동권 목사(2006년 제85회 총회장)의 격려사 등이 이어졌다. 부울경 상임총무 장활욱 목사(동평교회)의 광고 후 경남동노회에서 그의 생존여부가 불분명한 서광호(부울경 명예회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서광호는 예배를 마친 뒤 떠나는 김영우의 검은 밴으로 다가가 창문을 통해 김영우와 굳은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일주일 뒤 경남동노회(노회장 김신환 목사) 허락 없이 통영 중앙시장 근처에서의 개척교회 설립예배 설교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오후 4시 30분 총회 건강부흥사 박병석 목사(영양서부교회)의 ‘약용 식물학’ 특강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오후 7시 30분 사회자 김유식 목사(부울경 대표회장)의 기원으로 저녁집회가 진행됐다. “개인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아버지께서 이번에 부산 울산 경남 교직자협의회 27회기 15번째 집회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서 저녁예배를 드립니다. 이곳에 친히 임재하시어 저희들의 예배를 받으시며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505장 ‘온 세상 위하여’ 찬송 경상노회 이익도 장로의 대표기도 남부산동노회장 심욱섭 목사의 누가복음 10:38-42 성경봉독 울산부노회장 노도영 목사의 선창에 따라 ‘복음에 따라 합당하게 살자’ 3번 제창했다. 전국 순회 유명 복음 가수 김문기 장로의 ‘광야같은 세상 예수님만 의지하니’ 특송이 회중의 마음을 녹였다. 사회자가 설교자를 소개했다. “말씀 듣는 시간입니다. 오늘 저녁집회 소강석 목사님께서 오셔서 섬겨주시게 됐습니다. 개회예배에서 김영우 목사께서 ‘오는 길은 고속도로라 참 편했는데 오는 마음은 힘이 들고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집회 오신 소강석 목사님은 오시는 길이 아주 평탄하고 좋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서시기까지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목사님께서 오셔서 귀한 말씀 전해주셔서 대표회장으로서 감사함을 드립니다. 또 저는 소강석 목사님을 늘 목회현장에서 목회하시면서 책을 저술하시어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늘 책을 통해 관계를 맺고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님 섭외를 하면서 카톡을 했는데 기도원에서 성대결절 수술을 마치고 치료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카톡을 통해 허락을 하시는 내용이 시적이라 제가 ‘시인이십니다. 너무 훌륭하십니다.’ 인사를 드렸습니다. 오늘도 오시는 길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오늘 저녁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나오실 때 할렐루야로 영광돌리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회중 박수 우렁찬 할렐루야) 전 세계 전국 방방곡곡을 목회 생태계 회복을 위해 누비는 유쾌한 목사 소강석(세에덴교회)이 ‘마르다 교회 마리아 교회’ 제목의 설교를 전하기 위해 단에 섰다. 목이 좀 잠겼다. “심욱섭 목사님이 이렇게 착실하게 참석을 하십니까. 부총회장 나오신 분들은 땡땡이... 아니 계시네. 김정훈 목사님하고 또 누구 계신가요.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아 네. 성경을 다시 또 보십시다. 고린도후서 5장 9절로 10절 봉독하겠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아멘. 성경을 읽는데 아멘을 안 하십니까. (회중 웃으며 아멘) 할렐루야. 성대 수술을 할 때가 행복하리라고 예견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침묵보다는 웅변을 많이 하고 다니고 바쁘다보니 주님과의 묵상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기도원에서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리라 기대하며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대 수술 막 할 즈음부터 국회 개헌특위가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부산에서 개헌특위 동성애 토론한 것 알고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알고 계시죠. 네. 다른 분들이 고춧가루만 뿌리지 않으면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몸으로 뛰어야 되는데 조직해놓은 조직이 있고 제 아바타들이 많아서 여러분 제가 하루에 문자를 300통 이상 주고받았습니다. 존경하는 이성택 목사님이 자리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성택 목사님 외모를 봤는데 별 볼 일없어 보이는데 교회 가서 봤더니 대단하시고 내공이 저보다 더 훌륭하시고. 제가 외모를 보는데 김유식 회장님도 인물이 훤칠하시고 경상도 사투리 팍팍 쓰면서 ‘잔말 말고 내려오이소’ (회중 웃음) 그런데 문자를 주고받으며 보니까... 사실은 두 달 말을 안 해야 하는데 한 달부터 조금씩 말을 하다 보니 저를 가만 두지를 않아요... 제가 이래 뵈도 남자입니다. 여기 올 때 참 그렇게 부울경 가는 걸 간섭을 합니까. ‘여기 가면 너 죽는다.’ 뭐 이런다 저런다 가지 마라 막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저한테 막 연락을 하고 그래서 사실 헷갈렸어요. 그리고 또 총회 실세 이런 분들이 가면 안 된다 그래서 왜 그러냐 그랬더니. 김영우 총장님이 오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그분은 그분이고 나하고 짜고 간 것도 아니고. 우리 제석동 목사님이 또 생색내시면서 막 내려오라고 그러시고. 저는 김유식 목사님한테 약속이 잡혀버리고. 그런데 김영우 목사님이 안 내려올 수 있다고 이런 언질을 주고. 에라 까짓것 가도 욕먹고 안 가도 욕먹는다면 차라리 가서 욕먹자. 여러분 잘 왔죠... (박수) 제가 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참석하신 분이 김정훈 목사님밖에 안 계시죠. 끝까지 계셔서 참 대단하시고 감사합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제가 잃지 않는 세 가지 신앙이 있습니다. 첫째가 주영신학입니다. 주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입니다. 김문기 장로님이 나이 먹는 줄은 모르고 노래만 시켜주면 삽니다. 저분이 붙임성도 있고 아주 좋은데 안 좋은 게 있어요. 성깔이 있어요. 가끔 저한테 섭섭해가지고. 그런데 요것만 안 잃으면 돼요. 주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김정훈 목사님은 사랑의교회 포럼에서도 끝까지 계시고 제가 다시 봤습니다. 제가 선거운동 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우리 개혁주의 칼빈주의가 위대한 게 뭡니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런 말씀 듣는데 눈을 지그시 감는 분은 오늘 밤 요단강 건너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회중 웃음) 우리 부울경 말도 많고 압력도 많은 부울경 욕먹어도 좋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와서 욕먹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밤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이 세 가지 가치적 신앙을 가지고 총회를 섬기고 더불어 한국교회를 살리는 데 저수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경남노회 정경섭 목사 ‘제102회 총회를 위하여’ 하석봉 목사 ‘총회 산하기관을 위해’ 동부산노회 조평제 장로 ‘총회파송선교사와 전도를 위하여’ 남부산남노회 김진묵 목사 ‘부울경 교직자협의회를 위하여’ 특별기도를 했다. 서기 제석동 목사의 광고 후 전략적인 이성택 목사 축도로 저녁집회를 마쳤다. 2017-09-14
    • G.MISSION
    • G.MISSION
    2017-09-15
  • 불탄 진양교회 후원자들
    7월 16일 진양교회 화재 소식 접한 총회 유리창 김선규 총회장 호소문 발표 8월 22일 다윗의 별 부총회장 전계헌 목사동산교회 성도 10명 1000만 원 전달 2014년 4월 29 총회실행위원회 세월호 안건 표류총회 버팀목 오정호 목사 총회에 2억 빌려주고2천만 원 제일 먼저 쾌척 새로남교회 중등센터를 건축 중 진양교회 피해 소식 당회 성금 결의 8월 24일 성금 2천만 원 전달 지붕도 없이 그을린 강대상 의자가 햇볕을 받고 있다. 누군가 읽다 만 성경이 그 위에 뒤집혀진 채 놓여 있다. 슬픈 기도가 금세 의자를 덮칠 것이다. 미색 주보를 주고받던 교인들 재잘거리며 더위와 장난치던 아이들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하던 사람들 타다 만 벽돌 잔재 시커먼 서까래 서로 엉클어져 교회 마당에 덤덤하게 남아 있다. 믿음이 녹아버릴 만큼 뜨거운 화재였다. 불이 예배당을 지워버렸다. 파란 구름이 바람에 밀려갈 때마다 마당에 널린 자갈돌이 색색으로 선명하게 빛난다. 그을린 의자는 쉬지 않고 교회로 돌아올 사람들을 기다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소망이 물려 있다. 석양의 발꿈치가 소망에 닿자 소식이 번진다. 그을린 강대상 의자가 기도 속으로 서서히 잠긴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설교가 의자 위에 구름처럼 둥둥 떠 있다. 가난한 교회에 해를 담은 밥 한 그릇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쌀 한 줌은 눈송이처럼 얼마나 금세 사라지는지. 살아가는 일은 매일 기도하는 일이었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생각이 깊어지지 않지만 내일은 힘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기도한다. 온 힘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은 주변 풍경을 바꾼다. 온 힘을 다해 노을이 지고 밤이 내리듯 온 힘을 다해 기도해도 어려움은 반복된다. 그래서 교회 어려움의 힘은 그래도 살아가며 기도하는 것이다. 함평군 함평읍 진양리 소재 함평노회 소속 진양교회(허기녕 목사)가 지난 7월 16일 오후 4시 교회식당에서 발생한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사택과 식당 등 교회 건물 전체가 전소되어 교인이 마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아픔을 겪고 있다. 화재원인은 전기누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피해금액은 약 8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 60만원의 사례비를 받으며 목회 중인 담임 허기녕 목사와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에게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총회 유리창 김선규 총회장은 긴급 호소문을 발표했다. “갑작스런 화재로 인해 예배당과 사택을 잃고 비통함과 슬픔에 처해 있는 진양교회 담임목사를 비롯한 성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총회의 한 지체요 형제인 진양교회의 아픔을 함께 하고, 전국교회가 십시일반 사랑의 손길을 펼쳐 폐허된 예배당과 사택을 신속하게 복원하기를 바랍니다.” 이에 호응해 총회를 빛낼 다윗의 별 부총회장 전계헌 목사가 시무하는 익산 동산교회가 성금을 전달했다. 전 목사를 비롯한 동산교회 성도 10명은 8월 22일 진양교회 화재 현장을 찾아가 허기녕 목사와 진양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동산교회 온 교우들이 정성을 모아 준비한 성금 1000만원을 전했다. 성금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전계헌 목사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진양교회의 재난을 같은 총회의 한 지체로서 안타깝고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복구가 이루어질 때까지 앞으로도 열심히 기도하고 성원하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 4월 18일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는 탑승인원 476명을 수용한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했다.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총회실행위원회가 2014년 4월 29일 세월호 침몰사고 유족을 돕기 위해 지원금을 아이티구호헌금에서 차용하는 안건을 놓고 설왕설래 우왕좌왕했다. 그 때 총회 버팀목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가 총회에 2억 원을 빌려주고 1억 8천만 원만 받겠다며 제일 먼저 위로와 실행의 큰손을 폈었다. 이번에도 오정호 목사는 새로남교회도 중등센터를 건축하는 가운데 있지만 진양교회의 피해 소식을 듣고 당회를 열어 성금 기탁을 결의했다. 그리고 2017년 8월 24일 진양교회에 화재 복구 새 예배당 건축을 위한 성금 2천만 원을 전달했다. 이날 전달식에는 새로남교회 당회장 오정호 목사 당회 서기 김용태 장로 함평노회장 이상백 목사 복구위원장 서종석 목사가 참석했다. 전달식에서 오정호 목사는 학개 2:5-6 말씀을 통해 회복의 은혜를 전했다. “이 성전의 나중 광이 이전 광보다 더하기를 바라며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하루 속히 예배당이 더욱 아름답고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간절하게 축복합니다. 그리고 후원도 이어지기를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새로남교회의 섬김이 마중물이 되어 우리 총회와 한국교회가 진양교회를 돕는데 더욱 힘쓰게 되기를 바랍니다.” 2017-08-26
    • G.MISSION
    • G.MISSION
    2017-08-26
  • 소강석 독수리 신앙
    장내와 통로를 가득 메운 5000여 교인들 소강석 목사의 메시지와 동작마다 아멘 성대 수술로 목을 아끼는 탓에 감동적인 그의 찬송은 들을 수 없어 약간 잠긴 목소리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헌금자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다 중간에 마쳐 율법은 감시자에 불과우리는 언제나 복음을 따라야 소강석 목사는 최소 2개월 성대를 사용하면 안 되는 상황의사들은 여름수련회를 만류 소강석 목사 그렇게 안 되는 까닭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 독수리는 일평생의 중반쯤 도달하면 최고의 맹수가 된다. 눈 감고도 쏜살같이 먹이를 낚아챈다. 그런 때가 오면 독수리는 반평생 종횡무진 누비던 하늘에서 스스로 떨어져 외진 벼랑이나 깊은 동굴로 사라진다. 거기서 제 부리로 자신을 쪼아댄다. 무시무시하게 자라버린 암갈색 날개 깃털을 뽑고 뭉툭하게 두꺼워진 발톱을 하나씩하나씩 모조리 뽑아낸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며칠 동안 피를 흘린다. 숙달된 비행을 포기한 채 피투성이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독수리는 ‘최고의 맹수’가 된 순간 그것을 포기한다. 혹독한 자기 파괴를 거쳐 자기 재탄생을 기다린다는데 무섭고 숭고하다. 이런 부정적 숭고를 거쳐야 맑은 자아가 새로 서리라. 세계의 여름 광장은 분수를 중심으로 뜨겁다. 분수는 언제나 한순간에 전부를 산다. 그리고 또 일시에 전부가 부서져 버린다. 부서짐이 곧 삶의 전부인 분수의 모순의 물보라 그 속엔 하늘을 건너는 무지개 같은 설교가 서 있다. 그러나 분수는 꿈에 취하지 않는다. 열띠지도 않는다. 서늘하게 깨어 있는 천개 만개의 눈빛을 반짝이면서 다만 은혜를 꽃피우는 분수 같은 냉담한 설교. 오크밸리 컨벤션 센터 오늘은 은혜의 목쉰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그 은혜의 말을 한 움큼 한 움큼 호흡한다. 아픈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나은 곳이 생겨난다. 그 은혜는 새로 돋은 소망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사랑의 눈 그리고 믿음을 주겠다고 했다. 한 여름 은혜의 뜨거운 열기는 분수 같은 기세로 내 앞을 지나간다. 벌건 회개의 나목은 다 벗고 먹먹한 믿음의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방언은 종일 누구와도 말한 적이 없는 표정으로 집회 한 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기도의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회개를 말할 때 은혜는 생겨난다. 헤아려 올려다볼 수 없는 곳에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가 8월 8일부터 11일까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리조트에서 주제 ‘참 자유와 승리의 삶으로’(갈 5:13, 6:14) 장년여름수련회를 3박 4일 개최했다. 비내리는 8월 9일 수요일 둘째 날 오후 7시 30분 장내와 통로를 가득 메운 5000여 교인들은 소강석 목사의 메시지와 동작마다 아멘으로 화답했다. 성대 수술로 목을 아끼는 탓에 감동적인 그의 찬송은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송원중 장로 사회로 이경재 장로가 기도하고 최규영 권사가 중간에 끊기기는 했지만 갈라디아서 3:23-25;4:1-7 성경을 합독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3:23-25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4:1-7 에스더 찬양대가 듬직한 지휘자의 귀여운 손짓에 따라 열정적으로 손뼉을 치며 동작을 섞어 합창했다. 소프라노 정유근 권사가 독창했다. 충청북도 제천 이근규 시장(민선 6기)이 축사를 했다. 사회자가 환영의 박수를 유도했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깜짝 놀랐습니다. 소강석 목사님 말씀 듣고 은혜 받으러 왔는데 저를 이렇게 불러내주신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회중 박수) 제가 누구인가 궁금하시겠지만 저도 새에덴교회 성도와 같은 성도입니다. 충청북도 제천이 보수적인 곳입니다. 그런데 제천에서 처음으로 해방 이후 처음 민주당으로 시장에 당선된 사람입니다. 제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워주셨고 4년 전인가 소강석 목사님이 갑자기 제천에 오셨어요. 기독교연합회 초청 강사로 오신 거죠. 그 자리에 제가 앉아 있었는데 저를 딱 부르시더니 ‘너 앞으로 뭐 하겠다’ 그러시는 거예요. (회중 웃음) 제 가슴속에 뜨거운 게 임하더니 ‘내가 너를 지목하여 불렀노니 너는 내 것이다’ 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회중 아멘) 저는 소강석 목사님의 제자입니다. 어려웠지만 소강석 목사님의 지도 덕분에 우리 제천은 3년 만에 매우 놀라운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회중 아멘) 새에덴교회 성도 여러분의 기도와 많은 성원에 힘입어 열심히 일해 사랑 받고 귀여움 받는 자랑스러운 시장이 되렵니다. 그래서 소강석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축복을 받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우렁찬 박수)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제가 오늘 여기 와서는 안 되는 형편입니다. 내일부터 제천에서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립니다. 그래서 오늘 세계에서 많은 영화배우 감독들이 와서 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 두 시간만 어디 갔다 오겠노라 말하고 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회중 웃음) 이미 주민께서 그들에게 선포했습니다. 이근규 시장은 국제영화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제천에 있을 것이 아니라 세에덴교회 성도 여러분 곁에 가서 소강석 목사님의 은혜를 받으라고 선포했습니다. 제가 잘 왔습니까. 소강석 목사님의 기도 없이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습니다. (우렁찬 박수) (고개를 돌리며)목사님 기도해 주실 거죠. (소강석 목사 고개를 들고 손을 쳐들었다) 저도 참 자유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제천의 작은 교회에서 섬기며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故) 서영춘과 이주일을 합쳐놓은 것 같은 강기석 안수집사가 나와 간혹 말실수로 박수와 웃음을 자아내는 광고를 전했다. 송원중 장로가 나와 사회를 강기석 집사에게 맡기고 자기가 광고를 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사회자는 ‘세계 최고요 천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목사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말 오크밸리 컨벤션센터 천정이 열릴 정도의 큰 환호 속에 소강석 목사가 설교단에 섰다. “우리 이근규 시장 정말 바쁘신데 우리 교회가 약간 이상하게 보이시죠. (회중 웃음) 지금 로비에도 의자가 모자라다는데. 더 이상 의자가 없어 어떻게 할 수가 없다네요. 우리가 제천에 있는 대명콘도도 써봤는데 좁아서 이리 왔는데 여기도 좁으니...” 약간 잠긴 목소리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헌금자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다 중간에 마쳤다. “오늘 안 부른 분들은 내일 새벽에 호명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주여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함께하시고 축복하시기를 바라오며 오늘 드린 예물마다 도장 찍어 주시옵소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백보컬이 나와 찬양을 선도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한없는 축복을 우리게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어떤 부부가 동네에 이사를 왔습니다. 과일가게를 했습니다. 남편이 과일가게를 하면서 아내에게 말합니다. ‘이 동네 인심이 너무너무 좋은가 봐. 나만 보면 다 좋다고 막 웃는 거야.’ 그런데 그 부인이 자기 남편 남대문을 보니 뭐가 붙어 있는 겁니다. 자세히 보니 ‘씨 없는 수박’이라고 쓰인 게 붙어 있는 겁니다. (회중 웃음) 혹시 저한테 그런 일이 있더라도 웃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옆 사람과 인사하세요. ‘어쩌면 그렇게 웃음이 넘치게 생기셨습니까.’ (일동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한 번 더 인사하세요. ‘집사님이 옆에 계셔서 저는 너무너무 행복해요.’ (모두 따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위대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17장 7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세기 22장 15절로 18절 시작.”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어주시기 위하여 애굽에서 신음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한 이후에 율법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 뒤 43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선을 행하고 공로 쌓은 것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을 가장 싫어하시느냐 공로로 의를 세우려하는 것 이걸 가장 싫어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도 바울이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언제나 뭘 강조합니까. 복음을 강조합니다. 할렐루야. 은혜를 강조합니다. 율법은 감시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복음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언제나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백보컬이 찬양을 선도했다. 생명을 위해 주님 찾아오셨네 주 안에 생명이 있네생명을 위해 주님 찾아오셨네 나는 영접하겠네주님 안에 생명 있네 주님이 빛이 되시네예수 안에 생명 있네 주님이 빛이 되시네 “또 강조하고 강조합니다. 여러분의 행위를 자랑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여러분의 윤리나 도덕성을 앞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앞세우세요. 성령을 앞세우세요. 복음을 앞세우세요. 이런 사람에게는 저절로 윤리도 따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남보다 은혜도 더 받고 싶고 내가 남보다 더 귀하게 쓰임 받고 싶어. 할렐루야. 남보다 십일조도 더 많이 하고 싶어. 감사헌금도 더 많이 하고 싶어. 주의 종에게 칭찬도 받고 싶어. 이건 공로심이 아니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기에 인간인지라 그런 열심이 있을 수 있어요.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내가 이걸 통해 의로워져. 내가 이걸 통해 교권을 잡아. 그래서 내가 교회에서 대장 노릇을 해. 내가 하나님보다 높고 목사보다 높은 주인이야. 이건 안 됩니다. 여러분 언제나 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 안에 산다고 하면서 율법으로 돌아가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같은 예수를 믿고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 경계선에 딱 걸려요. 율법은 마귀처럼 속삭일 때가 있어요. ‘너 괜찮은 사람이야. 너 이 정도면 훌륭해.’ 이렇게 우쭐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내 의를 내세우고 교만해집니다. 나밖에 없는 줄 알고 나만 하나님의 종인 줄 알고 엘리야도 그러다 넘어졌어요. 사탄이 율법을 통해 엿보고 있다가 우쭐하면 그걸로 넘어뜨리는 겁니다. 그러면 스스로 의롭다하는 척 하려다 율법의 속박에 갇히고 맙니다. 그래서 곤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복음 안에서 온전히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시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룹시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나 자유 얻었네 나 자유 얻었네...’ 할렐루야 (목이 잠겨) 원래 율법을 시내산에서 주신 목적은 구원사적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초등교사 초등학문 오늘날 율법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걸 알아야 신앙의 참 자유와 승리를 누릴 수 있어요. (회중 아멘) 그러니까 내일 새벽도 나와야 되겠죠. 저를 보세요. 아슬아슬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복음의 능력을 압니다. (회중 아멘) 성령의 법을 알아요. 우리 행복하게 삽시다. 서로 견제하거나 경계하지 말고 행복하게 삽시다. 그런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여 삼창 외치고 통성기도가 시작됐다. 소강석 목사는 3박 4일 새벽 낮 저녁 집회를 통한 8회 설교를 1시간 30분씩 했다. 사실 소강석 목사는 최소 2개월 동안 성대를 사용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의사들은 “충분한 안정을 취해야 한다”면서 여름수련회를 만류했다. 그러나 소강석 목사가 그렇게 안 되는 까닭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이사야 40:31)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비오는 밤 교회 버스에 편승해 돌아오는 길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아무리 설교해도 곤비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목회생태계를 위해 동분서주해도 피곤하지 아니하기를’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201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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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2
  • 설동주목사 초청 우간다 현지 목회자 대상 쉐마 컨퍼런스
    우간다 현지 목회자 대상 쉐마 컨퍼런스 과천약수교회 담임목사이며 쉐마학당연구원장인 설동주목사 초청 쉐마 컨퍼런스가 우간다 미라클 리치 라이프 교회(윌리암 차고라니 목사 시무)에서 8월 7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다. 첫날 7일에는 아프리카 현지 기독교방송과의 인터뷰가 있으며, 8일에는 우간다 쉐라톤 호텔에서 언론사 기자단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10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컨퍼런스가 진행된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우간다 현지 목회자 1400여명이 참여할 것이며,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설동주목사는 성경적 자녀교육인 쉐마교육의 비전을 우간다 목회자들에게 심어줄 예정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12기 글로벌 쉐마학당 세미나는 11월 13일(월)~15일(수)에 진행될 예정이며 현재 쉐마학당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등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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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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