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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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교총 광복 77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
    한교총 광복 77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 “과거 기억하며, 미래 대한민국의 꿈을 꾸자” 성명서에서는 분열 멈추고 협력의 길 모색 촉구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이 10일 10시 30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8.15 광복 77주년을 기념하며 <광복 77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를 가졌다. 공동대표회장 이상문 목사(예성 직전총회장)의 인도로 진행된 기념예배는 김주헌 목사(기성 총회장)의 대표기도와 김명희 목사(예장보수개혁 총회장)의 성경봉독, 베데스다 찬양대의 특별찬양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설교를 맡은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예장통합 총회장)는 ‘야드바셈: 꿈엔들 잊을건가?’라는 제목으로 한민족과 유대인의 역사를 설명하며 “그날의 해방은 인간 자체의 해방이며 신사참배의 강요를 벗어나는 ‘종교의 자유’를 찾은 해방이었다.”라고 해방의 의미를 강조하였고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한국교회를 눈물로 지켜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 다음세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김원광 목사(예장합신 총회장)의 헌금기도 후 이영훈 목사(기하성 대표총회장)는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대한민국이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수고와 성도님들의 눈물의 기도의 결과이다. 최근 여러 재난을 겪으며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며 피해를 입은 이웃을 주의 사랑으로 돌보자”라고 환영사를 마무리하였다. 고명진 목사(기침 총회장)는 “일제의 강제 병합과 침탈에 항거하며 위대한 꿈을 꾼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다. 광복 77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되는 위대한 꿈을 꾸길 바란다.”라고 기념사에서 밝혔으며 배광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는 인사를 통해 “잃었던 나라와 주권을 되찾은 광복의 기쁨과 만세의 함성이 멈춘 후 77년이 지났다. 국내, 국제적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으며 절망의 탄식이 나오고 있는 시기에 한민족의 희망은 교회다. 다시 한번 희망을 외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특별기도시간에는 참석한 교단장과 교단의 총무/사무총장들이 단상에 올라가 광복에 대한 감사, 나라를 위한 기도, 남북의 평화와 사회 갈등의 해소, 한국교회의 연합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기도하였고 본회 공동대표회장인 강학근 목사(예장고신 총회장)와 김기남 목사(예장개혁 총회장)가 8.15 광복 77주년 한국교회 성명서를 낭독했으며 모두 함께 일어서서 이철 감독(기감 감독회장)의 선창을 통해 만세삼창 후 애국가를 제창하고 장종현 목사(예장백석 총회장)의 축도로 마무리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물리치고 자유의 빛을 되찾은 광복 77주년을 맞이하였다.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겨내며 자랑스럽게 민주화와 경제부흥을 이룬 지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국내 정치의 분열로 내우외환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2:25).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화합과 협치의 정신은 사라지고 스스로 분쟁을 야기하는 지도자들로 인해 국민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감사와 기쁨과 희망으로 충만해야 할 광복 77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총연합은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점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폭압 속에서 노예로 살았던 지난 날의 역사를 기억한다. 창씨개명과 강제징용, 위안부와 생체 실험, 신사참배를 강제한 일제의 무단통치는 지울 수 없는 폭력과 치욕의 역사이다. 일본 정부는 군국주의자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평화로운 관계 정립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2. 우리는 정부와 국회 기업과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상호 분쟁을 멈추고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대화를 통해 공존과 통합의 미래를 위해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 현재와 같은 비방과 분열의 정치는 선열과 다음세대에 대한 범죄행위다. 즉시 분쟁을 멈추고 화합과 협력의 길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3. 우리는 빼앗긴 조국의 국권 회복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기도와 꿈과 지혜와 열정에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대한민국의 안정된 발전과 새로운 부흥을 꿈꾸며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2022년 8월 10일 사단법인 한국교회총연합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912호 E-MAIL : ucck6200@gmail.com 홈페이지 : ucck.org 전화: 02)744-6200 FAX: 02)744-6202 모바일: 010-7440-6202(문자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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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0
  • 이연정의 영어찬양교실
    이연정 집사의 ‘영어찬양교실’ 우리가 부르는 많은 찬양은 번역된 곡이 많다. 그런데 번역되어서 부르는 찬양보다 원곡이 작사가의 뜻을 더 잘 담고 은혜로울 때가 있다. 저서 ‘걸음마 영어’를 저작하면서 누구나 영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뜻으로 이번에도 본인이 좋아하는 찬양과 영어를 접목하여 멋진 강의를 기획했다. 은혜로운 찬양을 하면서 영어 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도서출판 봄비 발행인, 교회 집사(여의도순복음교회), 코치합창단 멤버이기도 한 이연정 집사가 이 기간 이후로도 계속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 콘서트: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 10/23 오후 2시 이연정 청산여자상업학교 야간부를 나와 서울신탁은행에 입행한 후 일과 병행하며 성균관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영어를 새롭게 접하게 된다. 이후, 은행 지원으로 한국금융연수원 국제금융 MBA(6개월) 및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재무학 석사(Master of Science in Finance)과정에서 수학하였으며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 국제재무분석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서울은행 및 하나은행(현 KEB하나은행) 국제업무부, 경영기획팀, 업무지원팀, 경영관리부, 압구정PB센터, 홍콩지점 등에 근무한 후 2019년 초에 퇴직하여 “도서출판 봄비”를 설립하였다. 저서 걸음마 영어 인생 자산 20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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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5
  • 김춘식 목사 종말론
    마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조금씩 돕는 게 최선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자신을 친절하게 돌보아야 한다. 소나기 멎자 찬송 소리 젖은 교회 뜰을 다시 적신다. 비 오다 멎고 기도 소리 그쳤다 다시 일고 또 한여름 이렇게 지나가는가. 소나기 소리, 찬송 소리에 아직은 성한 귀 기울이며 1999년 김제에서 시작된 또 한여름 2022년 또 이렇게 지나 보내는가. 그는 생각한다. 누구도 세계 최고의 지도자, 세계 최고의 학생이거나 세계 최고의 목사로서 번듯한 기록 하나 세워놓지 못했음에도 저마다 글로 풀자면 책 몇 권을 써도 부족한 감동과 희열과 분노를 품은 귀한 삶들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한때의 세상은 소낙비에 듬뿍 젖어 있고 다음 세상은 찬송 소리에 담뿍 물들어 있을 것이다. 이후의 세상은 또 다른 무엇으로 가득 채워질까. 하나님의 다정한 자연의 원리들이 있어서 이 세상을 차례차례 채우고 사라진다. 그 흐름을 고요히 보고 있는 목사는 ‘그래, 너희가 또 찾아왔구나’ 미소 짓는다. 목사의 창밖에서 만나는 비와 더위는 꼭 와야만 해서 다시 온 것들이다. 잘 왔다가 잘 가기를, 내년에 우리 또 만나기를, 그리운 아버지 김정호 목사님을 꿈에서 만나듯... 그가 부임한 교회는 1910년 7월 7일 김제 옥산리에서 옥산교회로 출발해 1925년 김제읍교회, 1929년에 김제중앙교회로 각각 명칭을 변경했었다. 그가 부임 당시 김제시 인구는 15만이었는데 2022년 7월 지금은 8만 선에 머물고 있다. 2022년 7월 17일 은퇴하는 그는 재직 기간 장례만 600건을 치렀다고 한다. 부임한 뒤 김춘식 목사와 어려울 때 함께한 800여 교인들은 예배에 대한 강한 열정과 사모함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 분립으로 교회 건축을 위해 잠시 천막생활을 하면서도 예배는 뜨겁게 이어졌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천막 하나를 치고 모인 교인이 800여 명이었다. 이러한 교인들의 예배에 대한 사모와 열정은 담임인 김춘식 목사의 목회에서 힘을 얻는다. 김 목사는 남다른 목회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한다. “목회자 자신이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만 생명력 있는 말씀을 전하고 살아있는 목회를 할 수 있다.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서 어떻게 교인들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목회자의 카리스마는 목회자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말씀의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잊지 않고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에게 생명의 꼴을 먹이려 하고 있다.” 그런 목사를 따르는 교인들은 불평 하나 없이 기쁘게 예배를 드리며 예배당이 새로이 완공되기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도했다. 2009년 9월 착공하여 2010년 7월 입당한 지금의 예배당은 강도 7의 지진에도 견디는 내진설계로 시공된 너른 주차장과 부속 건물을 갖춘 복합 건축물이다. 그는 20년째 교인들과 동고동락하며 목회를 했다. 교회 분열의 아픔을 딛고 새 예배당을 완공한 다음 해인 2011년 4월 7일 미국 뉴욕의 기독 언론 '아멘넷 뉴스'(USAamen.net)는 김춘식 목사의 부흥회 초청 기사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퀸즈장로교회(장영춘 목사) 춘계부흥회의 강사가 화제가 됐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설교가 이야기의 기교나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예화 없이 진솔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2011년 4월 7일(목)부터 4일간 계속 될 퀸즈장로교회 춘계부흥회는 뉴욕 교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김춘식(김제중앙장로교회) 목사를 강사로 초청했다. 첫날 김 목사는 요즘같이 어려운 난세에 "하나님이 우리를 찾고 계신다"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목사는 누가복음 3장 1-14절 말씀을 본문으로 "크고 두려운 날"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세례 요한이 외치는 독사의 자식들이란 파워게임에 눈이 어두워져 있는 세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외치는 소리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알려면 그 시대의 사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디베로 가이사가 누구인가. 헤롯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또한 본디오 빌라도는. 모두 권력에 혈안이 되어 있던 정신병자, 이기주의자, 백성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우민정책을 쓰며 그들을 음란과 타락으로 몰아넣었던 인물들입니다. 바닷물의 소금은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3%가 온 바닷물을 짜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둠은 절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왜 우리는 진실하지 못할까요. 적어도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있는지 돌아보고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란 구원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을 들어 광야에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광야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시며, 개입하시고 약속하시고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아멘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완성되어있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것뿐입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히 자유함을 얻는 것이 구원입니다. 혹시 위험한 회개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위선적인 회개를 돌아봅시다. 한순간에 지푸라기로 변하고 마는 것이 인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회개할 싸인이 느껴지면 과감하게 돌아설 줄 알아야 합니다." 김 목사는 한 시간 동안 회개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간절히 찾고 있는 사람이 우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코로나가 ‘심각한 병’에서 ‘일상의 병’으로 급수가 하향된 2022년 7월 3일 11시 김제 중앙장로교회는 맥추감사절예배를 드렸다. 맥추감사절은 유월절이 끝난후 7주가 끝난 50일째 되는 날 곡식을 처음 거두어 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기리는 절기이다. 성도들이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찬송 후 이규수 장로가 대표기도를 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거룩하고 복된 날, 주의 전으로 불러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자녀 삼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하나님 은혜 속에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오늘 맥추감사주일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게 해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도 한 제단 한 제단 쌓아갈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게 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들은 한 주간 살면서 주님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 따라 살다가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오늘도 주님의 사자(使者) 목사님 단 위에 세워주셨사오니 강건함으로 붙잡아 주시고 성령으로 붙잡아 주시어 이 시간 능력의 말씀을 증거 하실 때 우리 눈이 열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 귀가 열려 하나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코로나로 인해 우리 주위를 떠난 자들이 하루속히 주의 전으로 나와 주님 앞에서 찬송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신령과 진정과 찬양으로 경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중앙의 일꾼들은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우리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해 주시옵소서. 연로하신 분들 맑은 영도 주시고 강건함으로 붙잡아 주시고 원치 않는 병으로 치료 중인 우리 성도들을 일일이 기억해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사의 손을 빌어 깨끗하게 치료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임마누엘 찬양대 세우시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저들이 부르는 찬양 기쁘시게 받으실 줄 믿사오며 (회중 아멘)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임마누엘 찬양 대의 기도 송이 울렸다. 우리의 기도 들어주시어 우리의 음성 영광되게 하소서 아멘 김춘식 목사가 성경을 봉독했다. “창세기 6장 5절로 8절까지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아멘. 찬양대 찬양이 있겠습니다.” 임마누엘 찬양대가 단 앞으로 나와 정렬하고 ‘공중 나는 새를 보라’를 찬양했다. 김춘식 목사가 설교단에 서고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는 믿음의 손을 가지고 은혜의 하나님 앞에 오늘도 헌금을 드렸사오니 마음의 문 열리게 하시고 진리로 충만하게 해 주십시오. 말씀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능력이 되게 하시고 (회중 아멘) 복이 되게 하시고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영생을 믿사오며 성령의 도구가 되게 해 주실 것을 믿사오며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난 시간 창세기 3장 15절 말씀에서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사단이 여인의 후손 발뒤꿈치를 물게 될 것이라고 하는 가운데 열정적으로 사단의 세력을 정복하신 구주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사단의 무리를 괴롭히는 세력임을 믿고 믿음의 경고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섬겨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늘 계속해서 창세기 4장 5장 6장 7장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맥추감사절 말씀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창세기 4장과 5장을 지나가는 동안 가정에서 첫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지만 불순종함으로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이제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을 통해 인생이 점점 악해져 가는 모습을 창세기 4장 5장 6장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버린 인생들에게 충격과 부패와 성적 타락이 따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도 4장 5장에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가인의 후손 가운데 음악을 하고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타락하고 불순종했어도 하나님의 형상이 더럽혀지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이런 지혜로운 일들을 하면서 음악을 하고 기계를 만들어 삽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에 가서 오래 산 사람들 얘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800년을 살고 이제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782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고 969세를 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800년 900년 969세를 살았다고 하니 근 천 년을 산 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 년을 살았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단지 그 사람들이 천 년을 살았지만 죽지 않은 에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장수하시기를 바랍니다. 천 년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어디 있느냐.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간 것처럼 여러분의 영혼이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리고 이제 창세기 6장으로 넘어와서 보면 하나님의 인간 죄에 대한 대처방법은 크게 첫째는 심판이고 둘째는 은혜입니다. 창세기 6장 11절에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말씀합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계획이 악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락하고 부패한 속성을 지니고 사는 인생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회중 아멘) 이렇게 부패하고 폭력적인 사회가 되었을 때 대표적인 것이 성적 문란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말씀합니다.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후손과 아벨을 대신해 태어난 셋의 후손을 구별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가능성은 천사들입니다. 두번 째 가능성은 하나님을 잘 믿는 신실한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란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녀들이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배우자를 선택하게 될 때도 세상 사람들처럼 사회 신분이나 외모나 세상 적인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패한 사람들의 특징은 4절에 나옵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그들은 용사였고 세상 명성이 높았습니다. 네피림은 남을 넘어뜨리는 자들입니다. 건장한 육체를 가지고 남을 죄에 빠지게 하는 영향을 가진 자들입니다. 크고 강하고 소문났을지라도 그 은사를 가지고 죄를 짓게 한다면 파멸입니다. 그들의 대표적 특징은 폭력과 성적 문란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폭력과 부패와 성적 타락의 근본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가 건강하고 세상 물질이 만족스러울지라도 이것으로 죄를 지으면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것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것보다 본질은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죄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예수님은 우리 구주이시고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날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데 하나님을 속이고 불순종하고 세상과 짝하고 사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부패한 사람입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신앙고백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행복하지 못합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얘기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감당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인생의 종말은 두 가지입니다. 내 개인의 종말이 오고 인생 최후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한다고 말씀하실 때 세상 사람들은 조롱하고 멸시하고 자기들과 상관이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심판은 있습니다.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은 한순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세월은 너무 빠르게 흐릅니다. 심판은 나와 상관없고 죽음은 나랑 상관없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훗날이라고 생각하는 종말이 오늘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에 그 영혼을 거두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긴급합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누구에게나 심판은 긴급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 짐승들이 임종과 종말이 가까운 것을 우리보다 더 먼저 알고 피합니다. 신문에서 보면 어디 화산이 터진다든지 지진이 난다든지 하면 쥐가 도망가고 짐승들이 달아납니다. 개미들이 이동을 합니다. 노아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들과 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들도 다 심판이 있는데 오직 구원받은 사람들 구원받은 짐승들은 구원받은 새들은 노아의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짐승도 심판의 때를 알고 모여들었다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물의 심판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남은 세계에 불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6절과 7절에 '이로 말미암아 그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심판의 때에 교회가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물이 넘침으로 멸망했다'라는 말씀은 노아의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이 넘침으로 다 멸망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이라는 것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우리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교회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변절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하나님이 보존해 주시는데 어렵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데 예수 믿는데 되는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돼지를 키워 살찌우는 것이 도살하기 위한 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이 세상을 불사르기 위해서 심판의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잘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이제 침공했습니다. 푸틴이 전세가 불리해 버튼만 누르면 핵전쟁이 일어납니다. 전 세계에서 너도 나도 핵을 터뜨리면 이 세상을 수천 번 폭파하고 불태워버리고 남을 폭탄이 이미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불사르기 위해 보존하셨다고 하는데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우리가 이런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주님 오신다면 아멘 할렐루야 찬미하며 주님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한 손에 심판이 있지만 다른 한 손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장 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을 제일 처음 쓰는 데가 바로 이 구절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다 심판받고 멸망하는데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구원받은 백성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다 멸망하는데 그중에서 노아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노아가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75억 인구(세계 인구는 특정한 시간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의 전체 수)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불러주신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중 아멘) 또 놀라운 사실은 7장 16절에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아' 넣어주시니라 하신 것입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와 정결한 짐승들과 부정한 짐승들이 일곱 쌍씩 다 노아의 방주로 싹 들어가게 되니까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아주셨다는 것입니다. 한번 닫힌 문은 열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여덟 식구와 짐승들은 하나님이 다 보존하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국 갈 것을 확신하십니까. 나같이 연약하고 나같이 부족하고 나같이 부끄러움이 많은데 하나님이 날 구원해 주실까 하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하나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 약속입니다. 구원 받은 자녀인 것을 확신하십시요. (회중 아멘) 목사님. 예수 믿고 살아가는데 왜 이렇게 답답합니까. 아들딸은 왜 이 모양입니까.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건강은 왜 이 모양입니까. 실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있는 짐승이 비가 오는 기간만 6개월이고 다 마르게 될 때까지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방주 안에서 아주 많은 짐승들과 노아의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하루하루 지나가는데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노아도 하나님이 방주 속의 우리를 잊어버리신 게 아닌지 버리신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는데 답답하다고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노아를 기억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잊어버리신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차츰차츰 변화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어의 바람(루아흐)이라는 말은 영(spirit)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복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이 버리시거나 잊어버리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남편을 믿습니까. 아내를 믿습니까. 이 세상 정치인들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말씀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마지막으로 죽음을 통한 구원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노아를 새로운 삶으로 초청합니다. 홍수가 다 지나간 다음에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새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초청해서 다시 번성하고 성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한 손에는 심판이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방주에 들어가라니 들어갔고 나오라니 나왔습니다. 이게 순종이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에 대해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리라 하셨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노아를 멸시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긴 사람들이 생각할 때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노아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어버린 사람은 세상이 무어라고 한다 할지라도 간섭할 것이 없습니다. 목사로서 제일 듣기 거북한 이야기는 세상 사람이 우리를 멸시하고 조롱한다고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할 우리가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정신 바짝 차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회중 아멘) 세상 여론이 어떻고 신문이 어떻고 티브이가 어떻고 세상이 다 우리를 조롱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회중 아멘) 한국 정통 초대 장로교회의 신학을 완성하신 박형용 박사는 그의 조직신학 서론에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머리를 하늘을 향해 세우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두 손을 땅에 대고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산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세상 따라 살지 못해 안달인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조롱받고 멸시당할 때 노아는 세상에 대해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죽음을 뚫고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갔을 때 비가 위에서 쏟아지고 땅에서 솟아나고 온 세상 천지가 높은 산꼭대기까지 다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 죽음 속에서 방주에 들어가 있는 노아가 구원받았다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죽음에 휩쓸려 들어가게 될 때 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방주 안에서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천국 가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교회 일원 되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이 교회 떠나면 죽음입니다. 구원의 방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파멸입니다. 사는 길은 주님과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서 자기 마음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가시기를 바랍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어야 하지만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우리의 모든 심판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그 속에서 나도 죽은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고 심판에 이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베드로는 이 심판에 대해 노아의 홍수를 우리가 세례받는 모습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19-20) 죽음이 다 휩쓸어 갈 때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는 것입니다. 노아와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그 부인들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라는 것은 우리의 죄가 다 물에 잠겨버리고 씻음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표시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노아가 창세기 8장 18절에서 20절에 보면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 경배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정결한 짐승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렸습니다. 짐승을 잡아 내장을 꺼내고 물로 깨끗이 씻어서 불로 태워서 하나도 남김없이 향기로운 냄새의 연기로 하나님 앞에 올라갔습니다. 다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은혜를 입고 죽음에서 구원을 받은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다 드리는 것입니다. 신약에 가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말씀합니다. 너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맥추감사절입니다. 하나의 행사로 지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너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번제를 드렸던 노아처럼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진심으로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 감격하면서 이 맥추감사절을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이는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모든 심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죽음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이 진리를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파스퇴르유업과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세웠던 최명재(崔明在·95) 민사고 이사장이 2022년 6월 26일 오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 이사장은 1927년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을 나와 경성경제전문학교(현 서울대 경영대)를 중퇴했다. 상업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돈을 더 벌겠다는 각오로 은행도 그만두고 택시 운전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얻은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1960년대 운수회사(성진운수)를 세웠고, 1970년대엔 물류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모았다. 60세 되던 1987년 강원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설립하고, ‘저온살균 우유’를 앞세워 기존 우유 업계를 공격하는 직설적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으며 급성장했다. 1996년에는 횡성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127만2700㎡(38만5000평) 땅에 민사고를 세웠다. ‘민족 주체성 교육’을 통해 세계적인 지도자와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였다. 1970년대 영국 이튼스쿨을 방문했을 때 넬슨 제독 전승 기념행사를 보면서 “한국에는 넬슨보다 훌륭한 이순신 장군이 있는데 이튼 같은 학교는 없다”라고 생각하며 가진 필생의 꿈을 실천에 옮겼다. 최 이사장이 파스퇴르유업 수익을 매년 30억~50억 원 민사고에 투자하면서 우수 학생을 뽑아 기숙사비를 포함, 교육비를 받지 않고 운영했다. 모두 천억 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라남도 장흥이 고향인 김춘식 목사는 2010년 7월 김제에 중앙장로교회를 세웠다. 왜냐하면 김춘식 목사가 지난 1999년 7월 16일 미국에서 전라북도 김제시의 김제중앙교회로 부임한 뒤 분쟁을 겪고 분리의 아픔을 이기고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2022년 7윌 19일 김제를 떠나는 김춘식 목사는 김제중앙교회를 거쳐 중앙장로교회를 통해 20년 목회 여정에 너른 곡창 김제에 새로운 건실한 예배당만 아니라 말씀 중심의 설교로 합동 교단에 드문 영적 교회를 세우는 업적을 세웠다.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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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 송태근의 설교관
    맑은 빛 고운 햇살 소복소복 담아 두고 별들과 나눈 얘기 강물 되어 흐른다. 총신 숲 비어서 풍요롭다. 나목(裸木) 위의 까치집 돌아올 주인을 기다린다. 새해가 왔건만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공포로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병과 함께 살아야 하나. 그러나 양상만 달랐을 뿐 인류의 역사는 병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병보다 무서운 것이 절망이라는 정신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해는 이렇게 맞을 일이다. 면도 알러지가 있어 이따금 수염을 길러야 하는 송태근 목사는 ‘맑은 빛 고운 말씀’을 ‘소복소복 담아 두자’고 하는 믿음의 전파자다. 하나님과 얘기를 나누면 헐벗은 나무의 텅 빈 까치집도 그의 성근 수염처럼 풍요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시인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다’라고 노래했다. 총신대 이사로 헌신을 아끼지 않는 송태근 목사는 이 겨울이 가면 새끼를 데리고 둥지를 찾아올 까치를 미리 보는 예지를 지니고 있다. 총신의 봄은 반드시 온다. 우리는 치유의 새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헌신하고 견디어낸 자들의 축제가 될 것이다. 오늘날의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본문 중심의 강해설교를 하는 송태근의 설교는 폭이 넓고 속이 깊다. 그는 신봉하는 본문 중심 강해설교 틀에다 원숙한 믿음의 관조(觀照)로 가다듬은 말씀을 심한 아픔을 견딘 삼일교회와 치유를 바라는 전국 교회에 전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강해 설교자가 성서 권위를 힘입어 자기 우상화를 시도하는 우를 범해선 안됩니다. 강해 설교자의 권위는 그것을 청중을 섬길 때 참 의미가 있습니다. 설교자의 위대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진리를 공동체를 섬기는 사랑으로 담아낼 때 강해설교의 진수가 밝히 보일 것입니다. 송태근 목사는 계시록 8:3-5에 의지해 외친다. 성도의 기도와 함께 올라간 향이, 제단의 기도가 제단의 불과 함께 땅에 쏟아집니다. 이것은 심판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드디어 응답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응답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둠에 잠들어가는 이 시대를 기도의 부글부글 끓는... 그래서 저 에스겔의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고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는 환상을 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팬데믹으로 시대의 전환점에 선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의 메시지 소망대로 설교자가 청중을 섬기는 한해가 되기를···. 그리고 사회와 총회의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 미사일을 쏘아대고 하나님에 대항하는 북한 앞에서 ‘멸공(滅共)’이란 구호가 문제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사라지기를···.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와 총회에 성경의 정의와 신앙의 안전이 이뤄지기를···.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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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6
  • 팬데믹 시대의 신앙
    경북 영양군 영양에 가면 반딧불이생태공원이 있고 영양서부교회의 박병석 목사가 있다. 반딧불이 노래로 잘 알고 있는 ‘개똥벌레’가 반딧불이다. 옛날에는 어디서나 보일 만큼 흔해서 개똥벌레라 부르기도 했고 개똥이나 소똥에서 서식하는 줄 알아서 개똥벌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양군은 경상북도 대표적인 산간오지로 사람보다 자연이 더 풍부한 곳이다. 덕분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자연을 잘 간직하게 되었고 국내에서 밤하늘이 가장 어두워 별자리를 관측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그 중심지가 영양군 생태공원사업소가 관리하는 반딧불이생태공원이다. 사실 반딧불이는 전국 곳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하늘의 별처럼 불빛이 강한 도시에서는 발견이 어렵다는 것. 밤하늘을 보호할 정도로 어두컴컴한 영양에서는 별과 반딧불이를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발전한 이 시대 영양의 반딧불이 같은 박병석 목사의 ‘제단에 불을 끄지 마라’는 메시지가 새롭다.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찌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라 레 6:12-13 성경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제사를 드리는 백성은 항상 제물이 있어야 하고 그 제물을 태우는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제사에 순서 절차가 다 있더라도 불이 꺼지면 아주 심각합니다. 그 뜻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단에 불을 끄지 말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제단은 원래 제물로 바친 짐승이 죽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그 제물이 탈 때 그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제단에 불이 꺼지면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게 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꺼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제단에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제단에 불이 꺼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말씀합니다. 이어서 이스라엘의 패역한 시대를 향해 사무엘상 4장 21-22절에서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말씀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한때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살고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제단의 불이 꺼지듯 신앙이 식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의 형편에 처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항상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제단에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불붙는 제단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불씨를 남겨두어야 합니다. 여러분 영국의 유명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 분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신을 위해 교회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 주변을 둘러보면 ‘이가봇’ 시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믿음 없는 사람일수록 떠들기를 좋아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없는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없는 오늘의 팬데믹 시대는 확실히 ‘이가봇’ 시대입니다. 이 팬데믹 시대를 사는 우리의 신앙을 위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16-22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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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1
  • 전북노회 알깨바 발간
    아직도 대다수 인간에게 개미는 한낱 미물일 따름이고 개미 사회는 그저 곤충 집단일 뿐이다. 그러나 개미는 ‘초개체(superorganism)’라고 불린다. 개미 한 마리는 뇌의 용량이 아주 적은 곤충이지만, 그들이 집단을 이루면 각자가 하나의 체세포처럼 기능하며 뛰어난 지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게다가 생존 적응력이 뛰어난 개미가 환경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왜냐면 개미는 전체 동물 시체의 90%를 수거해 먹어치울 뿐만 아니라 흙을 갈아엎음으로써 육상 생태계의 영양소를 순환시키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개미가 파고들지 못한 곳은 고산 지대와 극지방 그리고 물속밖에 없다. 개미는 오직 추위에 약할 뿐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동물행동학을 전공하고 94년 한국에 돌아온 최재천 교수(서울대·생물학과)의 저서 ‘개미 제국의 발견’에 따르면 개미의 대표 경선(競選)은 요즘 말썽을 빗고 있는 우리 총회나 대선을 두고 대립하는 정치권과 사뭇 다른 모양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아즈텍 개미’는 지구상의 어느 개미 집단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오징어 게임 같은 특이한 선거 방식을 보여준다. 아즈텍 여왕개미들은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이종(異種)끼리도 그들이 각기 ‘개미 제국’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협동하며 공생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보기 드문 ‘적과의 동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개미 군락이 생겨나는 과정은 이렇다. 봄(5∼6월) 혹은 가을(9∼10월) 어느 날. 처녀 여왕개미와 수컷 개미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며 ‘혼인 비행’을 치른다. 혼인 비행을 마친 여왕개미는 홀로 굴을 파고 이제 더이상 소용없는 날개를 부러뜨린 다음 피하지방과 날개 근육을 녹여 일개미를 양육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키워낸 일개미들이 굴 문을 뜯고 나가면 수많은 주변 신흥 국가와 필살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여왕개미들은 여럿이 서로 손잡고 수적으로 훨씬 막강한 일개미 군대를 만들어 춘추전국시대를 구가하는 전략을 취한다. 진짜 여왕은 정권을 거머쥔 후에 정한다. ‘아즈텍 개미’ 사회에서는 승전보가 울리자마자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돌변한다. 서로 물고 뜯으며 가장 강한 여왕이 등극한다. 하지만 다른 많은 개미 국가에서는 일개미들이 여왕을 선출한다. 나라를 건설하려 함께 최선을 다한 여왕개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알을 낳아줄 것으로 기대되는 한 여왕을 옹립하고 나머지는 모두 숙청한다. 정권을 잡기도 전에 서로 치명적 흠집을 내는 우리 인간의 경선과 달리 상흔 없는 후보 중에서 가장 능력 있는 리더를 선택하는 개미의 지혜가 부럽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 사회는 송두리째 변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 총회처럼 반복된다고 한다. 그래서 혹여 총회 정치꾼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총회 헌법과 성경 중심의 총회 역사를 세속의 정치꾼들처럼 왜곡하고 이용하려 든다면 수치의 총회 역사는 언제든지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꾼들을 솎아내는 것은 오로지 총대의 몫이다. 그런 개혁 운동의 일환을 증경총회장 윤남중 목사의 아들 윤희원 목사가 제네바의 칼빈처럼 전주에서 임직자 훈련교재 '알깨바를 외치자'(알고 깨닫고 바르게 살자) 발간과 보급을 통해 펼치고 있다. 2021년 10월 12일 오전 9시 제172회 전북노회(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전주서문교회당(김석호 목사)에서 개회됐다. 노회장 김창용 목사가 성경 디모데전서 4:15-16을 읽고 “목회는 적당히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론했다. 개회 예배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찬식은 집례하지 않고 바로 회무 처리로 들어갔다. 이어서 상비부 보고와 각부 보고 후 목사 안수식과 장로 은퇴식을 가졌다. 목사 안수식에서 증경노회장 윤희원 목사가 창세기 28:16-19(‘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아는 사람’) 말씀을 증거하고 노회장 강창용 목사의 사회로 목사 임직자 김진규의 안수와 착의가 진행됐다. 장로 은퇴식에서 은급부장 최병석 목사의 사회로 고행식 김강식 배상근 홍순정 김동석 표성복 등의 장로 등에 대한 기념패와 기금전달 등으로 기념하고 증경노회장 김윤경 목사가 “장차 우리 주님께서 우리 장로님들에게 씌워주실 의의 면류관과 하늘의 상급을 받으시기를 바라면서 더욱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기를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은퇴 장로들을 대표해 팔복교회 고행식 장로가 “제172회기 정기노회에서 목사 위임과 장로 은퇴를 위해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예배 중에 하늘 문이 열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받게 해주시고 (목에 메인 음성으로) 격려의 말씀으로 큰 힘을 얻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답사를 했다.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송 후 임직자를 대표해서 제172회 전북노회에서 임직받은 김진규 목사가 전주서문교회당(김석호 목사)에서 열린 전북노회에서 난생처음 축도했다. 낭랑한 목소리로 간략하게 축도했다.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으로 맺는 한 소절의 피아노 간주가 어우러졌다. 사회자가 광고했다, “지금 11시입니다. 축하와 기념 촬영을 위해서 11시 20분까지 정회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하기로 동의 재청이 들어와 정회했다. 11시 30분 계속 회무 처리가 이어졌다. 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고시부 부장 나와서 청원한 내용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시부장 팔복중앙교회 김윤영 목사입니다. 고시 치루기 전 임직자 교육할 때 지금까지는 두 과목 이상 의무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교육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한 과목을 더 늘려 세 과목 이상 외부 강사를 모셔서 교회에서 교육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입니다.” 노회장이 이 건에 대해 보충 발언 있으면 하라고 했다. 부서기 석명규 목사가 더 상세히 설명했다. 외부 강사는 집필자뿐 아니라 전북노회 속한 목사라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동의와 재청이 들어왔다. 신 안건 토의 시간인데 신 안건이 없어 전주서문교회에 감사패 전달 시간을 가졌다. 폐회 동의와 재청이 들어왔다. 가부를 물어 허락을 받았다. 광고 시간이 이어졌다. “노회 대항 체육대회가 11월 2일 정읍에서 있습니다. 윤남중 공로목사 기념사업회 세미나가 11월 16일 있습니다. 각 상비부 통장을 농협 통장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노회 장소와 점심 식사비는 서문교회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나가실 때 명찰을 반납하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노회장이 말을 이었다. “임직자 교육을 위한 직분자 교육교재 발간으로 전북노회의 영광스러운 일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집필진과 위원장으로 수고해주신 윤희원 목사님께서 2년 동안 애쓰시고 그러시다가 입원도 하셨고 여러 가지 수고 끝에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위원장님 나오셔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필진도 다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향년 90세로 2019년 7월 12일 새벽 5시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증경총회장 윤남중 목사의 아들 윤희원 목사가 집필진이 다 나온 가운데 발언했다. “문제 출제하신 목사님들도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계속 교육했던 프로그램들 가운데 고시부에서 십몇 년 것을 추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교재로 많이 다뤘던 분야들을 고시부 목사님들 중심으로 배정을 해서 작년 2020년도에 고시 교재 발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시부 출제 위원이나 집필진이 많이 모이지를 못했습니다. 개별적으로 와서 원고 수정 등을 해서 어렵사리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발간하고 보니 잘못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교재를 만들어 놓으면 또 우리 후배 목사님이 잘 보완을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전북 지역에 기독교와 교회가 어떻게 전래가 되었는지를 제가 맡아 썼습니다. 더욱이 우리 전북 노회는 51인 신앙동지회가 주축이 되었습니다. 우리 전북노회에 이노수 전도사라고 하는 그 당시 조선신학교 사생회 회장이 있었습니다. 이노수 전도사가 김재준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고 나왔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사실상 51인 신앙동지회가 결성되게 되었습니다. 그가 목사 후보생일 때였죠. 이노수 전도사가 누구인가 계속 찾아보니 삼례중부교회 이희민 목사님 선친이셨고 현재 이영익 목사님 계시는데 그의 큰아버님이 되셨습니다. 또 정의찬 목사님은 이성근 목사님의 장인어른이시고 우이중앙교회 원로목사님으로 추대받고 계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51인 신앙동지회에 대한 간략한 역사도 뒤에 기록해놓았습니다. 우리 장로교회 개혁신학에 전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맞게 교회 역사도 소개하고 직분자들의 교육도 시킬 것인지 역점을 두었습니다. 12신조에 관한 문제는 잘 다루지를 않는데 석영규 목사님이 상당히 깊이 있게 다루어 잘 집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읽어가면서 교육받는 직분자들과 함께 장로교회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잘 확인해 갈 수 있도록 우리 집필자들이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우리 집필진 목사님들이 기도하고 땀 흘려 수고하며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이 교재를 잘 활용해 우리 장로교 신학과 신앙을 ‘알깨바’ 알고 깨닫고 바르게 사는 직분자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회중 큰 박수) 노회장 강창용 목사가 로마서 8:35-37을 읽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멘. 축복합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전북노회 목사 회원과 장로 총대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노회장이 폐회를 못 박는 고퇴를 두드렸다. 기독신문 논단 ‘하나님의 임재와 정직한 삶’을 통해 윤희원 목사는 ‘알깨바’(알고 깨닫고 바르게 사는) 삶의 정곡을 이렇게 논했다. “사람의 안목이란, 육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볼 때 열리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하였다. 마음에 하나님 사랑하는 믿음 없이 우리는 얼마든지 외형적으로 ‘주여, 주여’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계시는 그 임재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 성도는 매 순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기에 정직하게 살아간다. 절대로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살지 않는다.” 윤희원 목사의 외침과 달리 세상에는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검은 뭉칫돈을 숨겨야 하는 범죄꾼들에게 돈 냄새는 골칫거리다. 그래서 땅에 파묻는 걸 선호한다. 1980년대 남미 마약 운반책 역할로 떼돈을 번 미국인 파일럿의 실화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에선 주인공이 집 정원에 700만 달러를 파묻었다. 반려견이 이를 파헤치는 통에 지폐가 사방에 흩날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로 떼돈을 번 일당이 현금 110억 원을 김제 마늘밭에 묻었다가 적발됐다. 한 전직 대통령 아들은 뇌물로 받은 10만 원권 헌 수표 1만 장(10억 원)을 아파트 베란다에 숨겼다 들통이 났다. 아마 냄새 때문에 그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범죄자가 주로 활용하는 현찰은 최고액권이다. 2년 전 유로존 국가들은 최고액권 500유로 지폐가 탈세와 돈세탁에 주로 활용되자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이후 250조 원이나 발행된 5만 원권이 계속 지하로 잠기고 있다. 올 1~8월 중엔 5만 원권 환수율이 역대 최저인 19%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 5만 원권이 대장동 게이트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올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수십억 원을 5만 원권 현금으로 찾아가는 바람에 성남시 일대 은행 지점들이 5만 원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이를 수상히 여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 4월 경찰에 이 사실을 통보한 것이 이 사건의 공식 시발점이 됐다. 검은돈이 풍기는 악취를 따라가면 대장동 ‘그분’이 드러날까. 도둑 정치는 이른바 ‘후진국 현상’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국가에서 곧잘 발생한다. 중국에 석탄을 팔아 스위스 시계를 구입해 당 간부들에게 나눠주는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도둑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손에 넣은 자들은 국가를 사유화하여 제 이익을 챙기고 그 돈으로 다시 권력을 움켜쥔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도둑 정치의 늪이다. 그들에게 ‘알깨바’를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단 정치판은 어떤 형편에 있을까. 우리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계시는 그 임재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 성도는 매 순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기에 정직하게 살아간다. 절대로 거짓이나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윤희원 목사의 말처럼 제172회 전북노회장 강창용 목사의 입을 통해 성경은 말씀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2021-10-25
    • G.MISSION
    • G.MISSION
    2021-10-25

실시간 G.MISSION 기사

  • 주석큐티 더굳뉴스 발행 축하 - 장봉생 목사
    서양음악에서 새로움을 추구한 역사는 오래지 않은 18세기 후반부터의 일입니다. 바흐만 해도 그의 작품이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에게는 좋은 음악 기술을 습득해서 필요한 음악을 잘 쓰는 것이 중요했읍니다. 마침 그의 시대에는 유럽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보편적인 음악 언어가 있었고 그는 그 언어들을 모두 마스터한 마이스터였읍니다. 바흐는 봉직했던 궁정과 교회에 필요한 음악을 성실히 작곡해 많은 음악을 남기면서도 스스로를 음악의 봉행자라고 여겼지 창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19세기 초에 활동한 베토벤은 궁정이나 교회를 위하여 일하지 않았읍니다. 누구의 요청을 받지 않고 교향곡을 작곡하였읍니다. 새로운 착상이 생기기 전에는 교향곡을 착수하지 않았던 그는 창조자로서의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읍니다. 그의 음악은 의식이나 행사를 위해서 쓰인 후 남은 것이 아니었고 오로지 감상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미적 대상’이었읍니다. 그 안에는 시간이 있었고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교차했고 정신과 역사가 공존했고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무엇이 꿈틀댔읍니다. 그는 그러한 대상물의 창조자였고 음악은 그 손에 빚어진 작은 우주였읍니다.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새로움이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가치였읍니다. 그들이 만든 작은 우주들은 제각기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는 소우주였읍니다. 그렇지 못한 작품은 중심 없이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의미 없는 물질처럼 취급되었읍니다. 새로움의 추구는 작곡가마다 개성 있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읍니다. 보편적인 음악 언어는 차츰 개인적인 언어로 대체되었고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이르면서 보편적인 언어 자체를 거부하고 완전히 혁신적인 새로운 언어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이 나타났읍니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업도 있었읍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 20세기 후반에는 급기야 새로움의 추구 자체가 진부한 패션이라는 반성까지 나오게 됩니다. 새해 새 날이라고 하지만 실은 수억 년 반복되고 있는 현상의 일순간입니다. 새 싹의 움틈과 새 아기의 탄생도 지구상에 생명이 나타난 이래 수없이 되풀이 되는 일입니다. 나는 어제 또는 지난해와 다름없이 나의 몸과 나의 기억을 지닌 채 해와 달과 날을 관통하며 살고 있읍니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라고 솔로몬의 전도서 1장 8절이 말씀하지만 우리는 해돋이를 보러 얼어붙은 어둠을 무릅쓰고 동해로 갑니다. 또 새 아기를 보면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새로움을 찾는가요. 나의 몸과 나의 기억은 늘 그대로인 것 같아도 조금씩 변합니다. 몸은 하루만큼 나이를 먹고 기억은 하루 어치의 정보를 저장합니다. 또 내 몸 안에서 세포들은 매순간 죽고 또 태어납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생명이 지속되고 있읍니다. 그렇다면 새로움은 지속됨과 더불어 생명을 있게 하는 두 계기 중 하나라는 말이 됩니다. 새로움을 찾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본능인가요. 진리를 깨우치고 전달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 주석을 필요로 하는 목회자들도 그와 마찬가지 아닐까요. 흥미롭게도 오늘 우리 시대의 음악 사회를 특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옛날 음악에 대한 소비입니다. 18~19세기의 청중들이 대체로 당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을 들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청중은 과거의 음악을 신자의 성경처럼 듣습니다. 예레미야서나 마태복음처럼 바흐, 베르디, 말러를 들으러 연주회장을 찾고 미디어를 통해 듣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듣습니다. 한 곡 안에는 수백만 수천만 개의 음들이 들어 있읍니다. 베토벤의 음악 뿐 아니라 바흐의 음악, 또 그 이전의 음악에도 들어있는 그 음들은 작곡된 이래 변함없이 있지만 그 소리 하나를 내는 방법 또한 무한합니다. 사실 음악이 기록된 악보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의 설계도면입니다. 이 설계도에 의거하여 소리의 집을 지어 들리는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 연주가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경험과 맥락 속에서 그 설계도를 이해합니다. 지휘자마다 곡의 빠르기와 강약이 달라지고 섬세한 표현법이 달라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에 의하여 음악은 새로운 생기를 얻습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합니다. 나는 풀러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2001년 4월 첫 주일 서울 서대문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고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서대문교회에 부임하면서 예배부흥, 거목양성, 세계선교 3대 비전을 제시하고 예배와 교육과 선교의 균형 잡힌 목회철학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읍니다. 1949년에 설립된 서대문교회는 정통신앙과 열린 의식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건실한 교회였습니다. 나는 제6대 담임목사로 19년째를 맞이했읍니다. ‘더디 가도 함께 한다’는 목양정신으로 하나님의 가족성을 강조하는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나의 목회 사역에는 교인들과 함께하는 큐티 책을 통한 목회를 빼놓을 수 없읍니다. 그 사역을 통해 교인들의 영적 성장과 교세 성장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더굳뉴스'의 김영배 목사가 작년 말 서대문교회를 방문했다가 나의 그 사역에 감동을 받고 '더굳뉴스'에 큐티를 접목시키겠다고 하더니 이제 해가 바뀌어 2019년 12월부터 ‘주석큐티 더굳뉴스’ 발행을 시작하게 된 모양입니다. 김영배 목사가 주도하는 ‘주석큐티 더굳뉴스’는 교인이 아닌 목사 중심의 목회 전문인 대상이라고 합니다. 목회자인 나로서도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발행을 축하합니다.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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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9
  • 대구서부교회 설립 71주년 영성수련회
    장맛비가 오락가락. 매미 소리 또한 오락가락. 한창 비가 쏟아질 땐 매미가 잠잠. 잠깐이나마 비가 멈추면 영락없이 매미가 울어 댄다. 장마에도 매미가 우는 걸 보면 이즈음에 세상에 나오는 녀석들도 있을 것이다. 장마가 잠시 멈춘 저녁 숲 비 머금은 나무에서 매미가 숨죽인 채 쉬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보슬비 부슬부슬 한데 막 껍질을 째고 나오는 녀석이 있다. 땅속에서 수년을 살다 땅으로 오른 날이 하필 비 오는 날. 장마에도 아랑곳없이 숱한 애벌레가 나무를 오른다. 보슬비에도 밤새 매미로 탈바꿈한다. 젖은 채 돋고 펴진 그들의 날개 젖었지만 영롱하다. 젖었기에 더딜 뿐 오래지 않아 날갯짓 할게다. 대구서부교회(남태섭 목사)는 지난 7월 27일부터 28일까지 경북 경산에 있는 대신대학교에서 교회설립 71주년 기념 제15회 영성수련대회를 열었다. 매미 탈바꿈하듯 성령의 거듭남을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에게 칭찬을」이라는 주제와 “수련대회 하나 되어 꿈의 성전 건축하자”, “영성회복 수련대회 성전건축 주께 영광”, “함께 가자 수련대회 함께하자 성전건축” 을 표어로 성도 약 1000여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대회장 남태섭 목사는 개회예배, 주일예배, 폐회예배 등을 인도하면서 ‘새 성전건축과 이 시대를 향한 성도의 사명, 개인의 경건의 훈련,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의 준비’ 등을 강조하였으며 성도들은 이에 적극 화답해 탈바꿈해 영롱한 매미 날개짓처럼 단결하는 모습이었다.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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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30
  • 김종준의 이영웅 원로추대 축도
    여름하고도 아주 빛나는 여름 내리는 비는 누구에게나 슬픔을 나눠 준다. 장마철에는 오래오래 젖다가 수채화 같은 슬픔이 온다는 말.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사과나무 가지 끝 풋사과 옆이 무너졌다. 나도 저렇게 아픈 데를 씻고 기도하다가 무너졌다. 슬픔이 없다면 31년의 자유로운 목회라 슬픈 게 여럿이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없다면 줄곧 믿어 왔던 성경과 이 많은 책들과 수없이 눌렀던 어두운 기억들 그리고 내 흔들리는 맘에 내내 서성이던 사람 찬장 속의 흉터들 모두 혼자일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저렇게 여름 장맛비에 젖은 듯 흠뻑 슬플 것이다. 영생을 위해 죽을 것처럼 들고 온 것들이 저렇게 말할 수 없고 짧게 말할 수 없어서 슬픔은 압살롬처럼 머리카락이 길고 솔로몬의 잠언처럼 영롱하다. 목사이기에 허탈한 기쁨의 기도로 슬픈 걸 참아냈다. 삶의 점 하나 없는 슬픔 언제 그칠까. 자유로운 영혼의 그 슬픔 곁을 아이 둘의 아내가 믿음처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주님의 사랑과 더불어. 여름하고도 빛나는 여름 7월 13일 오전 11시 강서구 까치산로 18나길 명상교회 본당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감사예배가 있었다. 이영웅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및 그 후계자 김준석 목사위임을 위해 동한서노회 위임국(위임국장 정신길 목사) 주관으로 드린 예배였다. 채종성 목사(노회장, 열방으로교회)가 설교하고 9월 23일 제104회 총회장이 될 성령의 투혼 김종준 목사(꽃동산교회)가 축도했다. 자유로운 영혼 이영웅 목사가 70평생 31년의 목회 사역을 마치고 자유로운 목사가 되는 감회를 이렇게 피력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여름하고도 빛나는 여름 더위가 몰아치는 광야에서 야곱처럼 31년 세월을 보내며 명상교회를 돌보고 키웠습니다. 함께 웃고 더불어 울며 기도하고 헌신해 주신 성도 여러분에게 그리고 언제나 제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사역의 지팡이를 신실한 영혼 김준석 목사에게 넘깁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 나은 30년이 되길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2019-07-24
    • G.MISSION
    • G.MISSION
    2019-07-24
  •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전하리교회 수련회 바보목회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다음세대일 것입니다. 많은 교회학교가 문을 닫고, 교회학교 아이들의 수가 급감하는 이 시대에, 수많은 교회에서 프로그램과 세미나, 양육과 훈육 등 여러 가지를 접목해보았지만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교회학교 살리기 운동’이 일어날 만큼 다음 세대를 세워나갈 교회학교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런데 전하리교회 교육부서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사실 전하리교회 교육부서에는 대단한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탁월한 교역자도 없습니다. 선물과 상을 줘도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는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주일학교 아이들이 죄를 짓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들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뜨거운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 열이 펄펄 끓고, 몸이 너무 아프지만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해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깁스한 발로 불편할 텐데도 몇 시간을 서서 온 마음을 쏟아 예배하는 초등부 아이들. - 유치부,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아이들이 임재 속에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해서 예배하는 초등부 아이들. - 몇 개월 동안 준비한 피아노 콩쿠르, 수학경시대회, 축구 대회를 포기하며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초등부 아이들. - 학원의 중요성을 알지만 예수님이 좋고 찬양하는 게 좋아서 불신자 부모님의 핍박을 꿋꿋하게 이겨가며 찬양과 예배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아이들. - 심한 우울증, 여러 번의 자살시도 등 상처와 어둠 가운데 살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 치유된 중고등부 아이들. - 예수님이 좋아 밤 11시가 넘도록 수원과 동탄을 오가며 눈물로 찬양하는 중고등부 아이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열악한 컨테이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저 성령의 역사, 임재를 갈망하며 찬양하는 아이들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수많은 어른들에게 감동을 주며, 뜨거운 도전과 회개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전하리교회에 있는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조한권 담임목사님께서는 청년시절에 10년 동안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병생활을 하셔서 약의 부작용으로 스스로 “저는 기억력이 없습니다. 행정력, 기획력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매일 바보처럼 하나님께 묻습니다.”라고 고백하십니다. 그리고 사역자들도 심한 우울증, 자살시도, 본드 중독, 음란, 자기 비하 등 세상적으로는 소망이 없던 자들이 어릴 때 전하리교회에 와서 “복음”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 사역자로 세워졌습니다. 부목사가 없고 연약한 자들이 모였기에, ‘과연 우리처럼 부족하고 자랑할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을 통하여 교육부서 아이들이 세워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교육부서 가운데 맺어진 열매를 바라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하리교회는 그동안 환난과 고난, 문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재정부장이 교회 돈을 다 가지고 도망을 가고, 교회를 건축하던 중에 사랑하는 故 지계연 사모님을 떠나보내는 등 여러 아픔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담임목사님께 “복음”을 열어주시고, 그 복음을 전하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한지 10년이 흐른 지금, “복음” 때문에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까지 계속해서 복음의 열매들이 맺어지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전하리교회 교육부서 아이들이 예배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보시고 한국의 수많은 교회 뿐 아니라 해외의 교회에서도, 그리고 어린이 찬양 작사가로 유명한 한 찬양 사역자도 ‘요즘 시대에 이런 아이들과 교회학교가 있을 수가 있나?’ 라고 하시며 거듭 놀라고, 충격과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최근 전하리교회 교육부서에 탐방 오셨던 분들의 고백을 잠시 소개해드립니다.> - “이렇게 뜨거운 예배를 매일 드리나요? 우리 교회에서는 1년에 수련회, 부흥회 때 한 번 있을 법한 예배를 전하리교회에서는 매 주일마다 드린다니, 너무 놀랍습니다.” - “40년 동안 전도사로 사역을 했는데, 전하리교회 담임목사님 말씀을 듣고 많이 울었습니다. 말씀이 온통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사랑밖에 없었습니다. 교육부서가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 “1~2학년 아이들이 장난치지 않고 집중해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모습이 정말 은혜가 됩니다.” - “프로그램이 없다고요? 그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은요? 선물도 없으면 말씀, 기도만으로도 아이들이 모입니까? 정말 기적입니다.” - “교회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아이들의 영성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 “사실 모든 교역자들이 너무나 추구하는 예배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가 있었네요.” - “모든 교사분들을 모시고 다시 탐방 와도 될까요? 꼭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전하리교회에 오셨던 교회와 목사님들께서 전하리교회 교회학교에 일어나고 있는 기적적인 일들을 한국교회에 꼭 한번 나눠주시기를 계속해서 요청해주셨고, 탐방하고 경험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번 수련회는 찬양하는 아이들 모습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하시는 목사님들과 교회를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전하리교회에서 드려질 수련회는 강의나 세미나가 아닙니다. 전하리교회 교육부서를 자랑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는 시간으로 드려지기에 소수의 목회자분들과 교회를 초청하고자 하오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수련회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탐방을 원하시는 목사님들과 교회의 요청에 의해 이러한 광고도 갑작스럽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시기를 희망하시는 교회가 있기에 참석에 뜨거운 마음이 있으신 목회자분들과 교회에서는 서둘러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어린 아이들을 변화시켰는가?’‘교회학교 아이들이 부흥하며, 이렇게 뜨겁게 예배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학교의 부흥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으신 분들, 교회학교의 부흥의 계기, 기대, 대안.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바로 당일, 현장에서 해답을 얻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 어린 아이들에게 하고 계신 일들을 통해 다음 세대 교회학교에 행하실 놀라운 비전을 직접 보시게 되는 자리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지금도 한 영혼을 위해 생명 다해 목회를 감당하고 계시는 귀한 목사님, 그리고 목회에 지쳐계신 목사님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사역하고 계시는 귀한 교역자, 교사분들께 큰 도전과 위로, 회복과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최 : 전하리교회 선교부- 일시 : 2019.7.29(월) 오전 9시- 장소 : 전하리교회 동탄성전 본당 (화성시 삼성1로 80번지)- 주강사 : 조한권 담임 목사- 대상 : 건전한 교단만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천지 및 이단의 등록을 철저히 금합니다.- 등록비 : 등록비는 1인 15,000원입니다. ( 점심과 저녁 식사비용으로 사용됩니다. )▶ 오신 분들을 위하여 교회학교 아이들의 찬양 영상 CD등의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미자립 교회 또는 마음은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신 교회에서는 사무실로 연락주시 면 따로 안내드리오니, 전화로 문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록방법 : 전하리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 가능 ( http://jhari.org/ ) * 신청하시는 교회의 참석인원은 담임목사를 포함하여 5명까지입니다. ▶ 부득이하게 담임목사의 참석이 어려운 경우, 교육부 담당 목사의 참석으로 대체가 가능하오니, 이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접수가 완료되며, 접수 확인 후 담당자가 개별적으로 연락드립니다. 담당자와 통화 후 등록이 완료됩니다.▶ 선착순으로 등록되며, 등록이 마감 될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드립니다.- 문의 : 031-8003-7777 * <전하리교회 교육부서 아이들의 찬양 영상 보기 및 수련회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교회 홈페이지에서 신청이 가능합니다.주소: http://jha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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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2
  • 한기총 성명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두 번째 성명서 전광훈 목사는 더 이상의 불법과 갑질을 중단하고 한기총의 정상화를 위해 즉각 사퇴하라! 작금의 한기총을 정치집단으로 전락시키고 존폐위기에 빠뜨린 전광훈 목사는 더 이상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자신의 언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 1. 전광훈 목사는 더 이상 한기총의 분열을 획책하지 말고 음주관련 루머에 대한 정확한 근거와 증인을 통해 육하원칙에 맞는 철저한 조사 할것을 요구한다. 2. 전광훈 목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회장의 업무를 집행하면서 임원회 결의 없이 특별위원회를 수시로 설치하는 등 다음과 같은 불법을 저질렀다 가.불법적인 긴급임원회. 나.비정상적인 대신교단의 가입 절차. 다.정관을 위반하고 정관에도 없는 불법 명예대표회장 임명. 라.한기총 총회대의원 가입 절차를 위반한 지역연합회의 총대권 남발. 마.상임위원장(투표권 있는 당연직 40명) 25% 이상 청교도영성훈련원 관련 인사 임명 등.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으로써 정관을 위반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지난 4개월 동안 폭언과 독선을 일삼으며 독단적으로 한기총을 운영 했다. 또한 대표회장의 직무 권한을 뛰어넘는 월권행위를 자행하여 정관에 명시된 직제에도 없는 대외 사무총장 대외총무를 임명했다. 3. 한국교회 연합단체의 중추적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할 한기총을 기독당의 하급기관으로 전락시켜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한기총 비대위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4. 전광훈 목사는 경찰 조사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한 비대위 일부 인사들이 “횡령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는 분명히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현재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이 없는데 마치 검찰에 기소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한 전광훈 목사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5. 전광훈 목사는 실촌 수양관 집회 때 “전라도 사람들은 전부 빨갱이”라는 심각한 비하 발언을 했다. 이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저속한 막말이다. 이 말이 이미 유트브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됐기 때문에 전광훈 목사는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6.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 공식문자를 통해 비대위 13명에 대하여 당일 해임한다고 했다. 한기총 정관 제6조 2항에 ‘당연직 총회대의원은 별도의 임원회 결의가 있어야 자격을 정지 또는 취소 할수 있다’고 되어있다. 당연직 총회대의원에 속하는 임원이나 위원장을 해임하고자 할 시에는 반드시 임원회 결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전광훈 목사는 임원회 결의없이 “오늘부로 해임한다”고 함으로써 임원회의 권한을 또 다시 무시했다. 한기총 정관의 운영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며 자신의 말이 곧 법으로 착각하는 전광훈 목사의 불법적인 전횡을 한기총 비대위가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 전광훈 목사는 대한민국의 6만5천 교회와 3천여 개의 기도원과 2천여 개의 선교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확대하기 위하여 전국 253개 지역연합을 조직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기독자유당의 실질적인 리더인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을 중심으로 253개 지역위원회를 조직해서 기독자유당 하부기관으로 한기총을 철저하게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전광훈 목사는 매 선거 때마다 1,200만 기독교인, 30만 목회자, 25만 장로, 50만 선교가족이라고 들먹이며 마치 한국교회 연합 기관이나 단체들이 기독자유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큰 소리치고 있다. 비대위는 전광훈 목사가 그동안 걸어왔던 행적과 그 발자취를 조명해서 얼마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에 폐악을 행했는지 낱낱이 알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장하는 헛된 망상적 목적의 허상을 밝혀서 한국교회와 한기총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조금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2019년 5월 30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김창수 목사(전 한기총 대표권한대행) 엄정묵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예장개혁혁신총회장) 박중선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예장합동진리총회장) 정학채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예장개혁증경총회장) 사무총장: 배진구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한반도복음화총재) 김명중 목사(한기총 공동회장, 합동예장총회장) 정일량 목사(한기총 공동부회장, 웨신총회장) 김의웅 목사(예장합동총회장) 김병근 목사(예장고려개혁총회장) 박은총 목사(예장총신총회장) 성경모 목사(한기총 공동부회장) 김영완 목사(한기총 공동부회장) 김인기 목사(한기총 공동부회장) .... 외 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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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30
  • 광주숭일고 ‘봉사 체험의 날’ 18주년 행사
    광주숭일고 ‘봉사 체험의 날’ 18주년 행사 - 봄빛과 함께 봉사와 섬김 속으로 달려가는 행복 전도사 광주숭일고 - 봄빛이 교정을 따스하게 비추는 5월 10일 광주숭일고등학교(교장 임인호)에서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 동문, 지역대학과 함께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 양?한방 무료 진료, 위안공연, 식사대접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구성된 ‘봉사 체험의 날’행사를 실시했다. 이날 행사는 일곡동 및 인근의 65세 이상의 어르신 300여명을 초청하여 재학생들의 1대1 밀착 봉사 서비스, 학부모, 동문, 지역대학 및 지역의료진과 연계하여 이?미용봉사, 네일아트 및 어깨 마사지, 양?한방 의료봉사, 경로위안공연, 점심식사 대접, 선물 증정 등을 함으로써 경로효친 및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학생, 학부모가 독거어르신 댁을 직접 찾아가 말벗 되어 드리기 및 집안일 돕기 활동이 추가 되어 더욱 알차게 진행되었다. 또한 입시준비가 한창인 고3 학생들도 지역 환경정화활동에 참여 하였으며, 1, 2학년 일부 학급들은 시내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광주숭일고에서 벌써 18주년을 맞은 행사이다. 봉사와 섬김 속으로 달려가는 모든 이들의 행복한 미소는 천국의 모습을 연상하기까지 한다. 학교법인 숭일학원 이사장인 한기승(광주중앙교회) 목사는 “가정과 이웃이 해체되는 이 시기에 봉사체험의 날을 맞이하여 가족의 소중함과 이웃사랑을 알게 하는 뜻깊은 행사였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봄빛의 따스함은 뜨거움으로 달했다. 광주숭일고등학교 학생회장(오경명 2학년)은 “학생들이 봉사 체험의 날을 통해 사랑, 섬김, 봉사, 공동체란 단어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아울러 광주숭일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자존감까지 키워 나갔다.”라고 말한다. 광주숭일고등학교 교장(임인호)은 “이번 행사를 통해 학생들은 공동체적 자질을 함양하고 섬김과 배려를 직접 실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타인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리더십을 길러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광주숭일고는 사랑, 봉사, 공동체를 실현하며 섬김 속으로 달려가는 행복 전도사이다. 2019. 5. 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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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1
  • 칼빈의 신앙수업 - Lesson III 돌연한 회심 A sudden conversion
    Lesson III 돌연한 회심A sudden conversion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선(善)합니다’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침묵한 뒤에 하는 말로 이런 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자임에도 우리의 다른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 멀어지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싸늘한 사랑은 추억 아래 숨고 이제는 사라진 교회의 커튼도 무심한 밤 위에 드리웁니다. 그러한 허무 속에서도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학과 믿음의 드높은 주제를 말하고 또 말함이 옳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육체의 노쇠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젊은 날 우리가 사랑하고 믿고 설교했지만 무지했음을 이제 우리는 압니다. 논쟁은 때론 좋은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라도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새롭게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 용어로 풀어쓰자면 논쟁에는 ‘건강한 회의론자’(healthy skeptic)의 자세를 환기시켜 ‘증거에 기반한’(evidence-based) 합리성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배양하도록 도와주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칼빈이 가톨릭 신자에서 종교 개혁 결과 생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신교도, 항의자) 교도로 회심한 것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5,693,164 영어 항목의 무료 백과사전 Wikipedia(하와이어로 빠른‘quick’을 의미하는 ‘wiki’와 백과사전을 의미하는 ‘encyclopedia’가 합쳐진 이름)에 칼빈의 회심에 대한 논란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Alternate theories have been suggested regarding the date of Calvin's religious conversion. In this view, his resignation is the direct evidence for his conversion to the evangelical faith. Some have placed the date of his conversion around 1533, shortly before he resigned his chaplaincy. However, T. H. L. Parker argues that while this date is a terminus for his conversion, the more likely date is in late 1529 or early 1530. 칼빈의 종교적 회심(conversion 회심, 개종, 전환) 날짜에 관하여(regarding) 서로 엇갈리는(alternate) 이론(theory)들이 암암리에 주장되어(suggest 암시합니다) 왔습니다. 칼빈이 자신의 지도 신부직(chaplaincy 수도회·학교·병원·고아원·교도소·군대 따위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다스리고 이끄는 사제)을 사임하기 바로 직전인 1533년 경 회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in this view) 칼빈의 사임(resignation)이 복음주의(evangelical) 신앙으로 그가 회심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파커(Parker, T. H. L)는 그의 『칼빈 전기』(John Calvin: a Biography, Louisville, KY 199-203. Westminster John Knox: 2006)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argue). 이 날짜가 그의 회심의 종점(terminus)이라고는 해도 1529년 말이나 1530년 초가 훨씬 더 가능한(likely) 날짜인 것 같습니다. The main evidence for his conversion is contained in two significantly different accounts of his conversion. 그의 회심에 대한 주요 증거(evidence)는 그의 두 중요한 다른 회심 사건들에 들어있습니다. In the first, found in his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Calvin portrayed his conversion as a sudden change of mind, brought about by God: 그의 시편 주석(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vol. 1, p. 67, Grand Rapids: Eerdmans, 1948) 서문(preface)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사건에서(In the first) 칼빈은 자신의 회심을 하나님이 주신(brought about by God) 마음의 돌연한 변화(a sudden change of mind)로 묘사했습니다(portray): God by a sudden conversion subdued and brought my mind to a teachable frame, which was more hardened in such matters than might have been expected from one at my early period of life. Having thus received some taste and knowledge of true godliness, I was immediately inflamed with so intense a desire to make progress therein. 하나님께서 돌연한 회심(conversion)을 통해 나의 마음(mind)을 가르칠 수 있는(teachable) 구조(frame)에 복종하게(subdue)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a teachable frame) 그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내 인생 초기에 기대할 수 있었던 구조보다 훨씬 더 강하게(harden) 하는 구조였습니다. 참된 경건(godliness 신앙)의 어떤 맛과 지식을 이렇게 얻게 되자(Having thus received) 나는 그 속에서(therein 그 구조 속에서) 전진하고자(progress) 하는 아주 격렬한(intense) 열망(desire 욕구)에 즉시(immediately) 불타게(inflame) 되었습니다. 이 첫 번째 사건에서 칼빈은 참된 경건(true godliness)의 어떤 맛과 지식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언급한 경건(godliness 또는 ‘하나님 됨’)이라는 단어 godliness에 대해 『웹스터 대사전』(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godliness the conforming one’s life to the revealed character and purpose of God. 그 해석은 이렇습니다. 경건(godliness)은 ‘하나님의 계시된(revealed) 성품(character)과 목적(purpose)에 자신의 삶(one’s life)을 일치시키는(conform) 것입니다.’ 이 경건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장 2.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지식의 성향(WHAT IT IS TO KNOW GOD - TENDENCY OF THIS KNOWLEDGE)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For, first of all, the pious mind does not devise for itself any kind of God, but looks alone to the one true God; nor does it feign for him any character it pleases, but is contented to have him in the character in which he manifests himself always guarding, with the utmost diligences against transgressing his will, and wandering, with daring presumptions from the right path. 무엇보다도(first of all) 신앙심이 깊은(pious pis) 마음은 하나님을 아는 그 자체를 하나님의 어떤 종류로 궁리하지(devise) 않고 참되신 하나님에게만 향합니다. 그것(하나님을 아는 것)을 좋아하는 어떤 성품(character)으로 가장하지도(feign) 않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transgress) 것을 아주(utmost) 부지런히(diligence) 그리고 감히(daring) 건방지게(presumption) 올바른 길(path)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며(guard)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manifest) 그 성품 속에서(in the character)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만족합니다(content). 회심의 두 번째 사건에서 칼빈은 정신과 마음의 고통으로 말미암은 내적 분투의 오랜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Being exceedingly alarmed at the misery into which I had fallen, and much more at that which threatened me in view of eternal death, I, duty bound, made it my first business to betake myself to your way, condemning my past life, not without groans and tears. 영원한(eternal) 죽음(death)을 생각하면(in view of) 내가 빠졌고 나를 아주 많이 위협했던 비참함(misery)에 극도로 놀라게 된 나는 자신의 과거 생활을 비난하면서(condemn) 반드시(duty bound) 신음하고 우는 게(not without groans and tears) 나의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 And now, O Lord, what remains to a wretch like me, but instead of defense, earnestly to supplicate you not to judge that fearful abandonment of your Word according to its deserts, from which in your wondrous goodness you have at last delivered me. 그리고 오 주여, 나같이 비참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변호(defense)하는 대신에(instead of) 공적에 따라(according to its deserts) 주님 말씀의 무서운 유기(abandonment)로 심판하시지 말고 마지막에 주님의 놀라운 은혜(your wondrous goodness)로 거기에서 나를 제발 구원해 주시라고 열심히(earnestly) 애원할(supplicate) 뿐이었습니다. Scholars have argued about the precise interpretation of these accounts, but most agree that his conversion corresponded with his break from the Roman Catholic Church(Ganoczy 2004, pp. 910; Cottret 2000, pp. 6570; Parker 2006, pp. 199203; McGrath 1990, pp. 6972). 학자들이 이 두 사건에 대한 정확한(precise) 해석(interpretation)에 논란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most) 칼빈의 회심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결별(break)과 일치한다(correspond)는 데 동의합니다(agree). The Calvin biographer Bruce Gordon has stressed that “the two accounts are not antithetical, revealing some inconsistency in Calvin's memory, but rather [are] two different ways of expressing the same reality”(Bruce Gordon, Calvin, New Haven; London 2009, p. 34.). 칼빈의 전기 작가 고든(Bruce Gordon)은 “두 사건(account)들이 칼빈의 기억과 어떤 불일치(inconsistency)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정반대(antithetical)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stress).” 칼빈의 회심은 사도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루터와 같이 자세하고 극적인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또 언제 정확히 회심의 경험을 했느냐에 대해서도 기술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시편 주석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회심에 대해 ‘돌연한 회심’이란 말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기치 못한 회심으로 오랫동안 완악했던 마음을 온순하게 길들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철저히 말씀에 순종하고 성경을 열심히 연구해 하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된 대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생활을 위해서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며 통회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 근처에 사는 친구의 정원을 거닐며 로마서 13장을 읽을 때 변화되었습니다. 루터도 바르트부르크 성에 머물면서 성경을 읽고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날마다 성경의 묵상을 통하여 엘더스게이트에서 열린 작은 모임에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교훈은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무엇을 믿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무엇을 믿든지 바르게 살기만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믿든 차이가 없다고 하는 말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물을 길러온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인간이 바른 믿음이 없이도 바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8-10 둘째 교훈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명한 것을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올바른 행위와 실천의 열매와 결과가 없다면 참 믿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두 가지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믿음이 있는 사람의 행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RECOLLECTION 되·새·김 1. 논쟁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당연한 것이라도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새롭게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 용어로 풀어쓰자면 논쟁에는 ‘건강한 회의론자의 자세를 환기시켜 ‘증거에 기반한’ 합리성과 ‘비판적 사고’를 배양하게 도와주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그의 회심을 통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돌연한 회심을 통해 나의 마음을 가르칠 수 있는 구조에 복종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a teachable frame) 그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내 인생 초기에 기대할 수 있었던 구조보다 훨씬 더 강하게 하는 구조였습니다. 참된 경건의 어떤 맛과 지식을 이렇게 얻게 되자 나는 그 속에서 전진하고자 하는 아주 격렬한 열망에 즉시 불타게 되었습니다. 3. 칼빈이 언급한 경건이라는 단어 godliness에 대해 『웹스터 대사전』에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godliness: the conforming one’s life to the revealed character and purpose of God. 경건: 하나님의 계시된 성품과 목적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것.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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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6
  • 나성에 가면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요셉이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무화과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었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화과 한 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데 환히 드러난 요셉의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화염검이 두루 도는 동산 너머 어두워진 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했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음을 아들은 보았다. 나성(羅城).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 표기다. 이런 표기를 음차라고 하는데 70년대에는 이 음을 그대로 써서 LA를 나성이라 불렀다. 낯설법한데도 거부감은 덜 하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나성열린문교회’ 같은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때문이다. 원곡은 ‘LA에 가면’인데 박정희 시대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발표한 곡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이 미국에서는 그나마 가까운 LA로 많이 이주를 했는데 그때는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나성에 가면, 그러니까 로스앤젤레스에 가게 되면 ‘잘 도착했다’, ‘나 잘 살고 있다’, ‘건강하다’ 이런 안부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이 담긴 노래가 ‘나성에 가면’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지만 1978년 ‘세샘트리오’가 당시에는 생소했던 셔플리듬으로 부르면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국민가요로 등극하게 된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 줘요. 이런 가사가 반복되고 있는 이노래. 외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둘이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 달라면서 아주 오래 못 볼 거 같은 애잔함을 담고 있는 노래다. 그러나 이제 2019년 칼빈주의를 따르는 우리 교단 목사들은 나성에 가면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 가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전하는 제네바 칼빈의 정수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에 가면 깃발을 들고 차이니스 극장 앞에서 그리고 주변을 돌며 영어로 전 세계 관광객과 미국인에게 외치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을 만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창효 목사는 박헌성 목사의 ‘나성열린문교회’ 협동 목사이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5일까지 비 내리는 나성에서 아내랑 묵으면서 겪고 은혜 받아 혼자만 간직하기에 아쉬워 전한다. 이제 우리 교단 목사들이 ‘나성에 가면’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하는 슬픈 사연의 편지를 띄우지 말고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서 은혜 받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가서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에 오면 복음과 전도의 그 열정을 전해줘요. 201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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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31
  • 칼빈 신앙수업 -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 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Lesson II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프랑스 작가와 정치가 앙드레 말로(Andr Malraux 1901년 11월 3일 ~ 1976년 11월 23일)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년 2월 25일~1919년 12월 3일)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1차 대전이 일어나기 두어 해 전 동양어학교에 다니던 청년 말로가 남프랑스의 지중해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이국적인 마르세유(Marseille)나 막 요란하기 시작한 칸느(Cannes 프랑스어)를 피해 굳이 이곳에 온 것은 고운 모래에 얕은 수심을 지닌 한적한 바다가 산악과 맞닿아 있어 훨씬 드라마틱했기 때문입니다. 여관의 벨보이가 알려주는 말에 말로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르누아르가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봤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프랑스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르누아르를 어쩌면 대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당시 말로는 한창 문학·미술·역사에 대한 관심이 불타올랐고 동양 문화를 탐사하기 위해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까지 훈련하는 중이었으며 동시대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하루는 아침 식사를 마친 말로가 해초 냄새로 뒤덮인 벼랑 끝 오솔길을 산책하다가 은빛 수염을 휘날리는 한 노인의 뒤통수를 봤습니다. 노인은 잔물결 이는 바다를 마주한 채 캔버스에 몰입하는 중이었습니다. 말로는 종업원이 일러준 그 대가임을 이내 알아챘습니다. 지난 세기의 역사를 한 몸으로 지탱하고 인상주의의 한 영역을 개척한 위인을 이런 휴양지에서 단둘이 조우하게 되다니 그야말로 큰 행운이었습니다. 말로는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기 위해 조심조심 그의 등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의 집중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위대한 미술가의 제작 과정을 보기 위해서 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말로가 그의 캔버스에서 본 것은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만나는 벅찬 놀라움은 차치하고 캔버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말로는 아연실색했습니다. 바다가 그려져야 할 캔버스엔 어느 계곡을 배경으로 목욕하는 소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말로는 시선을 여러 번 그 캔버스와 그 너머 바다를 오가며 바꾸어 봤지만 그려진 장면과 그 앞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 일화는 회화의 상상력을 이야기할 때 곧잘 인용되곤 합니다. 르누아르는 망막한 바다에서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습니다. 열심히 대상을 집중해 그것과 다른 사실을 내놓은 셈입니다. 이 일은 르누아르의 의식과 그것에 반응하는 물감과 붓질에 의해 상식의 질서와 전혀 다른 논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꿈과 같습니다. 칼빈의 신학은 그의 평생에 걸쳐 사실상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강요』도 그 내용에 관한 한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시간은 기억의 시간, 믿음의 시간, 개혁의 시간입니다. 마지막 판 서문에서 그는 그 개혁의 시간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기독교강요』 저술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죽기 5년 전 1559년 8월 1일 쓴 그의 평생의 개혁주의(Protestantism prtstntizm) 회오(會悟)가 담긴 『기독교강요』 마지막 서문입니다. 뜻깊은 순간이니 기도하는 자세로 읽고 감동을 촘촘히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EPISTLE TO THE READER.[prefixed to the last edition, revised by the author.] 독자에게 드리는 서신[저자의 개정 마지막 판에 덧붙인 서문] In the first edition of this work, having not 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which God, in his boundless goodness, has been pleased to give it, I had, for the greater part, performed my task in a perfunctory manner(as is usual in trivial undertakings); but when I understood that it had been received, by almost all the pious with a favor which I had never dared to ask, far less to hope for, the more I was sincerely conscious that the reception was beyond my deserts, the greater I thought my ingratitude would be, if, to the very kind wishes which had been expressed towards me, and which seemed of their own accord to invite me to diligence, I did not endeavor to respond, at least according to my humble ability.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조차 갖지 않은 이 저작의 처음 판에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으로 기꺼이 그것을 주셨습니다. 나는 거의 대부분 형식적인 태도로 내 일을 수행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감히 결코 요하지도 않았고, 아주 조금도 바라지 않았던 어떤 호의를 거의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게서 받게 된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대접이 내 공적에 넘치는 대우라는 것을 정말 의식하면 할수록 내게 표현해 주었고 그리고 내가 노력하도록 그들이 자발적으로 부탁하는 것 같은 아주 친절한 소망들에 최소한 내 변변찮은 능력에 맞는 보답이라도 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의 더 큰 배은망덕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This I attempted not only in the Second Edition, but in every subsequent one the work has received some improvement. But though I do not regret the labour previously expended, I never felt satisfied until the work was arranged in the order in which it now appears. 이것을 나는 제2판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다음 판에서도 그 저술에 다소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들인 노동을 후회하지는 않을지라도 그 저작이 현재의 모습으로 정리될 때까지 만족한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Now I trust it will approve itself to the Judgment of all my readers. As a clear proof of the diligence with which I have laboured to perform this service to the Church of God, I may be permitted to mention, that last winter, when I thought I was dying of quartan ague, the more the disorder increased, the less I spared myself, in order that I might leave this book behind me, and thus make some return to the pious for their kind urgency. 이제 나는 그 책이 모든 나의 독자들의 판단에 스스로 입증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이 봉사를 실행하기 위하여 내가 기울인 노력의 명백한 한 증거로 다음의 것을 언급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합니다. 지난겨울 나흘마다 앓는 오한으로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그 질환이 더 심해질수록, 이 책을 내 사후에 남길 수 있고 그들 나름의 절박한 필요를 위해 경건한 신자들에게 무언가를 보답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더 아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I could have wished to give it sooner, but it is soon enough if good enough. I shall think it has appeared in good time when I see it more productive of benefit than formerly to the Church of God. This is my only wish. 나는 그것을 더 빨리 주기를 바랄 수 있었지만 그러나 어지간히 좋다면 그것도 상당히 빠른 것입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교회에 이전보다 더 생산적인 이익을 주는 걸 내가 보게 될 때 그것이 알맞은 시기에 출판되었습니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And truly it would fare ill with me if, not contented with the approbation of God alone, I were unable to despise the foolish and perverse censures of ignorant as well as the malicious and unjust censures of ungodly men.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의 허가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내가 믿음이 없는 자들의 악하고 불의한 비난들뿐만 아니라 무지한 자들의 어리석고 심술궂은 비난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면, 그 일이 여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For although, by the blessing of God, my most ardent desire has been to advance his kingdoms and promote the public good, -although I feel perfectly conscious, and take God and his angels to witness, that ever since I began to discharge the office of teacher in the Church, my only object has been to do good to the Church, by maintaining the pure doctrine of godliness, yet I believe there never was a man more assailed, stung, and torn by calumny.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의 가장 열렬한 갈망이 주님의 왕국들을 전진시키고 공공의 선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그 이후 내내 교회에서 교사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내가 완전히 자각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증거에 전념하고, 경건의 순수한 교리를 옹호함으로써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만큼 비방으로 공격받고 찔리고 찢긴 사람이 일찍이 하나도 없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as well by the declared enemies of the truth of God, as by many worthless persons who have crept into his Church - as well by monks who have brought forth their frocks from their cloisters to spread infection wherever they come, as by other miscreants not better than they]. 하나님의 진리의 공공연한 원수들뿐만 아니라 주님의 교회에 몰래 들어온 많은 무익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가는 곳마다 전염병을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수도원들에서 성직자 옷들을 만들어낸 수도사들뿐만 아니라 그들이나 다름없는 다른 이단자들에 의해서도 비방을 받았습니다. After this letter to the reader was in the press, I had undoubted information that, at Augsburg, where the Imperial Diet was held, a rumour of my defection to the papacy was circulated, and entertained in the courts of the princes more readily than might have been expected. 독자에게 쓰는 이 편지가 신문에 실린 후에 제국 의회(제국 의회는 세 개의 계열로 나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들이 참여한 신성 로마 제국의 입법 기관이자 자문 기관. 가장 유명한 의회로는 제국 개혁이 이뤄진 1495년 의회, 루터를 이단으로 선포한 1521년 의회)가 열리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내가 교황파로 변절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리고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쉽게 군주들의 궁전들에서 환대를 받았다는 확실한 정보를 받았습니다. This, forsooth, is the return made me by those who certainly are not unaware of numerous proofs of my constancyproofs which, while they rebut the foul charge, ought to have defended me against it, with all humane and impartial judges. 이것(소문)은 정말이지 내 지조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자들이 나에 대해 지어낸 보고서입니다. 한편으로 그들이 비열한 비난으로 반박하면서도 그것에 반대하는 나를 아주 인도적이고 공평한 재판관들과 함께 변호하는 것이 당연한 증거들 말입니다(대적자들의 비난으로 활용하는 증거들이 오히려 칼빈이 반대하는 주장들을 그들의 판사들과 함께 변호해 준다는 역설). But the devil, with all his crew, is mistaken if he imagines that by assailing me with vile falsehoods, he can either cool my zeal, or diminish my exertions. I trust that God, in his infinite goodness, will enable me to persevere with unruffled patience in the course of his holy vocation. Of this I give the pious reader a new proof in the present edition. 그러나 마귀가 모든 그의 패거리와 함께 야비한 거짓말들로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의 열정을 식히거나 내 노력들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 가운데 내가 그의 거룩하신 소명을 수행하는 동안에 흔들리지 않는 인내로 견딜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것에 대해 나는 경건한 독자에게 『기독교강요』 현재 판에서 새 증거를 드리고자 합니다. I may further observe, that my object in this work has been, so to prepare and train candidates for the sacred office, for the study of the sacred volume, that they may both have an easy introduction to it, and be able to prosecute it with unfaltering step; for, if I mistake not, I have given a summary of religion in all its parts, and digested it in an order which will make it easy for any one, who rightly com-prehends it, to ascertain both what he ought chiefly to look for in Scripture, and also to what head he ought to refer whatever is contained in it. 더 나아가 나는 이 저술에 있어서의 나의 목적이 성직(聖職) 후보자들이 신성한 두루마리 공부를 위해 그것(성경)의 쉬운 개론에 접할 수 있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그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한 의견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모든 분야의 개요(槪要)를 나는 제시해 주었고 그리고 그것(성경)을 바르게 파악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성서에서 주로 무엇을 찾아야 하고 성경 속에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어떤 표제로 언급해야 하는지도 확인하게 해 주기 위하여 성경이 어렵지 않게 차례대로 요약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Having thus, as it were, paved the way, as it will be unnecessary, in any Commentaries on Scripture which I may afterwards publish, to enter into long discussions of doctrinal points, and enlarge on commonplaces, I will compress them into narrow compass. 이렇게 하고 나니, 이를테면 불필요하게 될 것이지만 내가 나중에 출판할 수도 있는 어떤 성경 주석서들에서 다룰 교리적 논점들에 대한 긴 토론들에 들어가고 그리고 내가 좁은 범위로 압축하게 될 인용구들에 대해 상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In this way much trouble and fatigue will be spared to the pious reader, provided he comes prepared with a knowledge of the present work as an indispensable prerequisite. The system here followed being set forth as in a mirror in all my Commentaries, I think it better to let it speak for itself than to give any verbal explanation of it. 이렇게 하여 경건한 독자는 많은 수고와 노고를 아끼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없어서는 안 될 기초 필수 과목으로 현재 저서 『기독교강요』의 지식을 갖추고 온다면 말입니다. 모든 나의 주석들에서 거울에서처럼 분명하게 설명하게 될 다음의 체계는 그것에 대한 말의 설명보다 그것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Farewell, kind reader: if you derive any benefit from my labours, aid me with your prayers to our heavenly Father. 친절한 독자여 안녕. 당신이 내 노작(labour)들에서 어떤 이익을 얻는다면 우리의 하늘의 아버지께 당신의 기도로 나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Geneva, 1st August 15591559년 8월 1일 제네바 이렇게 죽기 5년 전 『기독교강요』 마지막 판 서문에서 칼빈 자신의 모든 심정을 털어놓은 뒤 마지막 개정 서문을 쓰고 독자들에게 안녕(Farewell, kind reader)이라는 인사까지 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추신(追伸)과 더불어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쓰기 경구(警句)를 덧붙입니다. The zeal of those whose cause I undertook, has swelled a short defense into a book. 내가 맡아서 돌보는 사람들의 주장을 위한 열정이 간단한 변호를 부풀려 한 권의 책이 되게 하였습니다. “I profess to be one of those who, by profiting, write, and by writing profit.”-Augustine, Epist. 7. “나는 이익을 얻음으로 글을 쓰고 그리고 글을 씀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서한집 7. 칼빈의 추신은 믿음으로 신자들이 당하는 오해와 어려움을 변호하다보니 그게 한 권의 책이 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진실하게 변호하고 옹호했으면 우리 개혁주의의 경전이 될 『기독교강요』를 저술해 이 세상에 남기고 전하게 됐을까요. 마치 르누아르가 망막한 바다에서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하고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는데 말로가 보기에도 놀랄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신학의 시조 칼빈 자신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어 믿음의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유익된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너무도 감동적인 경구라 다시 한 번 더 인용합니다. 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학이나 기업이 표방하는 모토 중에 영어로 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영어로 말한 것은 무엇이든 지성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듯 다른 사람에게 영어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들려준다면 그 사람은 감격하고 당신을 올려다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I profess to be one of those who, by profiting, write, and by writing profit.” “나는 이익을 얻음으로써 쓰고 그리고 씀으로써 이익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칼빈 신앙수업』을 읽는 여러분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이익을 얻음으로써(by profiting) 쓰고, 씀으로써(by writing) 이익을 얻는’ 그런 목사나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저술하면서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도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개혁주의로 변화시키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아주 작은 성공의 기대도 없이 출발하실 수 있지만 칼빈처럼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열매를 얻기를 바랍니다. RECOLLECTION 되·새·김 1. 르누아르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무엇을 상상했습니까. 르누아르는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했습니다. 2. 르누아르는 바다를 보며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습니다. 열심히 대상을 집중해 그것과 다른 사실을 내놓은 셈입니다. 이 일은 르누아르의 의식과 그것에 반응하는 물감과 붓질에 의해 상식의 질서와 전혀 다른 논리로 진행되었습니다. 3. 『기독교강요』를 처음 발간했을 때 칼빈은 어떤 기대를 했습니까.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조차 갖지 않은 이 저작의 처음 판에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으로 기꺼이 그것을 주셨습니다. 2019-02-18 LA 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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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18
  • 칼빈 신앙수업 - 칼빈은 누구 Who is Calvin
    Lesson I칼빈은 누구Who is Calvin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칠판도 없고 숙제도 없고 벌도 없는 주일학교였습니다. 교회와 집 사이는 후다닥 걸어서 가면 단 오 분 거리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걱정이 없는 늘 포근하고 선물도 심심찮게 주는 학교였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귀한 것들을 이 주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주일 저녁 텅 빈 교회 마당 구석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산 위에서 보면 교회가 나뭇가지에 달린 하얀 박꽃입니다. 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쏙쏙 얼굴을 내밉니다. 분반 공부 끝나면 오늘 외운 성경 한 절 오늘 배운 찬송 한 곡 오늘 받은 과자 한 봉지로 불룩한 마음 교회 창밖을 보면 벚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습니다. 주일학교엔 숙제도 시험도 없습니다. 고함 한번 치지 않는데 회초리 한번 들지 않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갖 꽃나무 어린 싹들 찬송하며 자랍니다. 그리고 때 되면 열매 맺어 서로 나누며 믿음의 제 몫을 합니다. 나는 교인 누구나 목사님의 말을 듣는 게 좋아서 목사가 되었고 새벽기도가 좋아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가진 것 다 주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평생을 웃습니다. 믿음 향기가 가득한 교회에서. 제 동창 친구 하나는 대학에 갈 때 영어가 싫어서 수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다보니 교과서가 전부 영어 원서였습니다. 영어는 라틴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문법이 꽤 복잡합니다. 간단한 예로 be 동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복잡함에 머리가 아플 겁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⑴ 변칙(變則)동사(anomalous verb)의 하나로 어형(語形)변화에 특징이 있음.⑵ 의문문을 만드는 데 주어와 도치되며 조동사 do를 쓰지 않음: He is busy.→Is he busy?⑶ 부정문으로 할 때에도 do를 안 씀: That is nice.→That is not 〔isn’t〕 nice. 다만, 명령형에서는 흔히 do를 쓰며, do를 쓰지 않는 것은 옛 형태: Don’t be a fool.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마라. Be not afraid. 《고어》 두려워하지 말지어다.⑷ 강조할 때 do를 사용치 않고 be 동사를 세게 발음함: She is [-z-] kind, indeed. 그녀는 정말 친절합니다. 다만, 긍정(肯定) 명령형을 강조할 때에는 do를 씀: Do be gentle to them. 제발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해 주게나. be 동사의 문법 일부가 이러니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영어 공부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기도 전에 이미 질려버립니다. 하지만 이 고비들을 잘 넘기고 복잡한 문법 체계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확실히 공부하는 훈련이 됩니다. 어렵고 미묘한 문제와 마주해도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래 해보면 깨닫게 되겠지만 영어 공부는 평범한 두뇌를 공부에 최적화된 두뇌로 활성화시키고 사고 체계를 넓혀줍니다. 실제로 영어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영문 자료를 접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대략 5-10억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선진국 국민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각 나라의 엘리트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생산해 내는 정보입니다. 신문, 잡지, 도서, 학계, 인터넷 등을 통해 영어 사용 인구가 생산해내는 정보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엄청납니다. 그러니 우리가 현대를 살면서 영어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는 사람은 개혁주의 신봉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독교강요』를 영어 번역본을 통해 그 진수(眞髓)를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교계에서 지도적 입장에 있는 엘리트(elite) 개혁주의자이거나 그것을 지향하는 신자일 것입니다. 개혁주의의 선구자(forerunner)는 누구입니까. 칼빈(John Calvin)입니다. 칼빈은 누구입니까. 인터넷 시대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5,693,164 영어 항목의 무료 백과사전 Wikipedia(하와이어로 빠른‘quick’을 의미하는 ‘wiki’와 백과사전을 의미하는 ‘encyclopedia’가 합쳐진 이름)는 칼빈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John Calvin(French: Jean Calvin; born Jehan Cauvin; 10 July 1509 27 May 1564) was a French theologian, pastor and reformer in Geneva during the Protestant Reformation. He was a principal figure in the development of the system of Christian theology later called Calvinism, aspects of which include the doctrines of predestination and of 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 in salvation of the human soul from death and eternal damnation, in which doctrines Calvin was influenced by and elaborated upon the Augustinian and other Christian traditions. Various Congregational, Reformed and Presbyterian churches, which look to Calvin as the chief expositor of their beliefs, have spread throughout the world. 칼빈(John Calvin: 프랑스 이름 쟝 칼빈 Jean Calvin; 兒名 제앙 코뱅 Jehan Cauvin; 1509년 7월 10일 1564년 5월 27일)은 개신교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 기간 제네바의 프랑스인 신학자(theologian) 목회자(pastor) 개혁가(reformer)였습니다. 그는 나중 칼빈주의(Calvinism)라고 불리는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발전시킨 주요 인물이 되었습니다. 칼빈주의는 죽음과 영원한 저주로부터 인간 영혼의 구원에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과 절대(absolute) 주권(sovereignty) 교리들을 포함시키는 견해(aspect)들입니다. 그 견해들은 칼빈이 아우구스티누스주의(Augustinian)와 다른 기독교 전통들의 영향을 받고 잘 다듬은 것들입니다. 세계로 퍼져나간 회중교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등의 여러 교파가 칼빈을 그들 신조(belief)의 대표(chief) 해설자(expositor)로 생각합니다. Calvin was a tireless polemic and apologetic writer who generated much controversy. He also exchanged cordial and supportive letters with many reformers, including Philipp Melanchthon and Heinrich Bullinger. In addition to his seminal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alvin wrote commentaries on most books of the Bible, confessional documents, and various other theological treatises. 칼빈은 많은 논쟁을 일으킨 지칠 줄 모르는 논증(polemic)과 변증(apologetic) 저술가(writer)였습니다. 그는 조직신학자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개신교 최초의 독일 루터교 조직신학자)과 불링어Heinrich Bullinger(16세기 스위스 종교개혁가)를 포함해 많은 종교개혁가들과 서신들도 주고받았습니다. 칼빈은 가장 독창성이 풍부한(seminal)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성경 주석(commentary)들과 신앙고백(confessional) 문서(document)들 및 다양한 신학 논문(treatise)들도 저술했습니다. Originally trained as a humanist lawyer, he broke from the Roman Catholic Church around 1530. After religious tensions erupted in widespread deadly violence against Protestant Christians in France, Calvin fled to Basel, Switzerland, where in 1536 he published the first edition of the Institutes. In that same year, Calvin was recruited by Frenchman William Farel to join the Reformation in Geneva, where he regularly preached sermons throughout the week; but the governing council of the city resisted the implementation of their ideas, and both men were expelled. At the invitation of Martin Bucer, Calvin proceeded to Strasbourg, where he became the minister of a church of French refugees. He continued to support the reform movement in Geneva, and in 1541 he was invited back to lead the church of the city. 원래 인문주의(humanist hjːmnist) 법률가(lawyer)로 훈련받은 그는 1530년 경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는 대폭적인 격렬한 폭력 사태로 종교적 긴장이 촉발된 후 칼빈은 스위스 바젤로 피신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27살 되는)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을 발행했습니다. 같은 해 칼빈은 제네바 종교개혁에 동참하라는 프랑스인 파렐(William Farel)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빠지지 않고 주일 내내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시의회는 그들 사상이 시행(implementation)되는 것을 거부했고 두 사람을 추방했습니다. 부서(Martin Bucer 16세기 독일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가)의 초청으로 칼빈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스 피난민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네바 개혁 운동을 계속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1541년 제네바 교회로 돌아와 지도해 달라는 청빙을 받았습니다. Following his return, Calvin introduced new forms of church government and liturgy, despite opposition from several powerful families in the city who tried to curb his authority. During this period, Michael Servetus, a Spaniard regarded by both Roman Catholics and Protestants as having a heretical view of the Trinity, arrived in Geneva. He was denounced by Calvin and burned at the stake for heresy by the city council. Following an influx of supportive refugees and new elections to the city council, Calvin's opponents were forced out. Calvin spent his final years promoting the Reformation both in Geneva and throughout Europe. 돌아온 뒤 칼빈은 그의 권위를 꺾으려는 그 도시의 몇몇 세도 가문들(several powerful families)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형식의 교회 정치(church government)와 예배 모범(liturgy)을 소개했습니다. 이 시기에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다 이단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삼위일체(the Trinity)론을 지닌 스페인 사람(Spaniard)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가 제네바에 왔습니다. 그는 칼빈의 탄핵을 받고(denounce) 시의회의 이단(heresy) 판결로 화형을 당했습니다(burned at the stake). 우호적인 피난민들의 유입(influx)과 시의회의 새 선거들이 이어져 칼빈의 반대자들이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을 제네바와 유럽 전역에 촉진시키면서 만년(final years 1564년 5월 27일 55세 소천)을 보냈습니다. 돈키호테가 그의 충실한 시종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내 친구 산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토피아도 광기의 행동도 아니야. 그건 정의라네.” 돈키호테처럼 저도 제 후배 목사와 신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여보게 내 동료와 후배들. 칼빈이 개혁주의로 세상을 바꾼 것은 사상도 행동도 아니네. 그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Righteous God)이라네.” RECOLLECTION 되·새·김 1. 영어 공부의 유익은 무엇입니까.영어 공부는 평범한 두뇌를 공부에 최적화된 두뇌로 활성화시키고 사고 체계를 넓혀줍니다. 2. 실제로 영어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영문 자료를 접하기 위해서입니다. 3. 칼빈주의는 무엇입니까.죽음과 영원한 저주로부터 인간 영혼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과 절대(absolute) 주권(sovereignty) 교리들이 포함된 견해(aspect)입니다. 2019-02-04 나성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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