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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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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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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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 리틀메시지_ 사무엘하2Samuel
    사무엘하2Samuel의 사건들이 기록되기 이전에 사무엘은 이미 죽었다. 사무엘하의 내용은 다윗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주전 1010년부터 970년경까지의 다윗 왕의 통치를 다룬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라고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사무엘하 7장 16절은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다윗의 혈통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이른바 다윗의 언약이다. 이런 시가 있다. 하느님에게 _박두순 때맞춰 비를 내리시고 동네 골목길을 청소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가슴아픈 일이 있어요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셔요 구석에 사는 것만 해도 불쌍하잖아요 가끔 굶는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이 시의 화자는 때맞춰 비를 내려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한편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어달라고 부탁한다. 비 때문에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그렇듯 사무엘하의 사건들은 이스라엘의 다윗 왕조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섭리의 기록이 담긴 역사다. 2024-03-10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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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리틀메시지_ 사무엘상1Samuel
    바세바 사무엘상1Samuel과 사무엘하는 원래 히브리어 정경에서 한 권의 책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어 구약성경을 편집한 70인역의 번역자들이 두 권으로 나누었다. 사무엘상의 주요 인물은 사무엘, 사울, 다윗 세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왕조 역사가 전개되면서 그들의 생애는 부분적으로 겹친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다. 사울은 최초의 왕이었다. 그럼에도 사울이 왕조를 세운 사람으로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유다 족속이 아닌 다른 족속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의 다윗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통치자로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처럼 하나님 대신 왕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훈련의 수단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이런 시가 있다. 한숨_ 권순남 내가 한숨을 쉬니 엄마가 아가 무슨 한숨을 자꾸 쉬노 하신다 왜 아이들은 한숨을 못 쉴까 한숨을 쉴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우리들도 한숨을 쉴 수 있었으면 평생을 아동 문학가이자 교육자로 살았던 이오덕 선생이 엮은 나도 쓸모 있을 걸 이라는 책에 실린 초등학생의 동시다. 사무엘서는 사람과 국가들의 일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이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들에 한숨을 쉬실 경우가 많다. 사람의 일이나 국가의 일이 하나님의 한숨을 쉬시게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일들을 늘 살펴보고 인도하고 간섭하신다. 2024-03-0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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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3
  • 리틀메시지_ 룻기Ruth
    룻기Ruth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나왔다.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어두운 사사 시대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 어렵다.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_ 작자 미상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을 냉장고에 붙여 놓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신이 존재하며 언제나 신이 존재하며 언제나 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 인생이 힘들기도 하고 우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난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 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우리는 지금 괴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구하시고 그의 영원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그의 세계에서 일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의 나쁜 소식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좋은 소식을 가로막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여러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당신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우리의 구세주 예수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보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룻의 이삭줍기 다윗이 성경에서 처음 언급이 되는 곳도 룻기에서다. 룻기의 4장은 연극의 4막과 같다. 제1막은 눈물, 제2막은 고생, 제3막은 믿음, 제4막은 사랑의 승리다. 룻기는 눈물의 장례식으로 시작해 웃음의 결혼식으로 끝을 맺는다. 나오미는 괴로움에서 기쁨으로 바뀐다. 룻은 외로움에서 보아스를 만나 행복으로 바뀐다.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룻의 혼례상 그렇듯 룻기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 주고 있다. 2024-02-25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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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5
  • 리틀메시지_ 사사기Judges
    골고다 십자가 사사기Judges의 사사 명칭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지도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소페팀shopetim에서 나왔다. 우리말의 사사士師는 고대 중국의 주나라 때 형벌을 맡아보던 관리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사사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뒤 마지막 사사, 사무엘 시대, 주전 1050년 왕정이 시작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앞길을 인도했다. 이런 시가 있다. 십자가_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사들과 비슷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하나가 되어 승리에서 승리로 이어지는 행진을 하지는 않는다. 사사들은 군사적인 무용뿐만 아니라 행정력과 영적 분별력도 함께 지닌 지도자들이었다. 그래서 사사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13명의 사사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저기에서 그의 영으로 그의 종들을 선택하신다. 그들은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릴 각오가 된 주의 종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의와 어둠이 짙은 이 세상에서 그의 종들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빛과 소금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갈 수 있게 도와 주신다. 2024-02-18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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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7

실시간 G.QT 기사

  • 복 주는 목사 육수복 딸 결혼
    복 주는 목사 육수복 장녀 육하은 2017년 9월 16일 오후 1시 총회유리창 김선규 총회장 주례 결혼 복스러운 결혼예배 예장합동 총회장 주례 예장통합 총회장 축도 흰 웨딩드레스 ‘부의 상징’ 의미 다른 색 옷감에 비해 값이 비싸 흰 웨딩드레스 부유한 집안 딸 의미 결혼식에서는 지켜야 할 게 참 많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신랑 신부를 포함해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까지 상식처럼 알고 따르는 많은 약속들이 있다. 그중 제1의 원칙은 ‘신부를 제외한 사람은 흰색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부가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기 때문이다. 결혼식 주인공인 신부를 가장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신부가 입는 흰색 옷을 다른 사람이 입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부의 흰색 웨딩드레스. 과연 언제부터 입기 시작한 걸까. 웨딩드레스를 흰색으로 만드는 이유로 흰색이 순결을 상징하는 색이어서 신부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옛날 유럽의 신부는 결혼식에서 다양한 색의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흰색을 입는 신부가 흔치 않았을 정도다. 그러니 신부의 색으로 흰색을 고른 이유가 순결을 상징해서라기보다는 흰 웨딩드레스를 대중적으로 입기 시작한 후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은 알버트 왕자와의 결혼식에서 입은 흰 가운과 망토를 썼고 이후 그의 스타일을 따르고 싶어 하는 신부들이 따라 입으면서 대중에 확산됐다. 빅토리아 여왕이 흰 웨딩드레스를 선택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붙는다. 당대 다른 신부들이 입지 않는 흰색을 선택함으로서 젊은 여왕의 개혁과 혁신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는 게 하나다. 또 다른 한편에선 영국 레이스 업자들을 배려해 레이스가 가장 돋보이는 색인 흰색을 선택했다는 해석도 한다. 가령 패션 컬럼리스트 마들린 루켈은 패션잡지 보그에 “빅토리아 여왕은 평소 지원받던 레이스 업자를 도우려고 레이스를 강조하는 흰 드레스를 입었다”고 전했다. 흰 웨딩드레스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부의 상징’이다. 표백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19세기에는 흰색 옷감을 만들려면 일일이 손으로 물을 빼는 방법 외엔 없었다. 공이 많이 들다 보니 다른 색 옷감에 비해 값이 비쌌고 흰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는 곧 부유한 집안의 딸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흰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는 모난 데가 없이 복이 있어 보여 집안에 복을 가져다주는 복스러운 신부를 뜻했다. 복 주는 목사 육수복(총신 83회 총회은급재단이사 전곡충현교회)과 사모 최화정의 장녀 육하은 양이 복스러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2017년 9월 16일 오후 1시 전남 광주 소재 일곡중앙교회당에서 총회유리창 김선규 총회장의 주례로 결혼예배를 드렸다. 신랑은 성남고등학교 교사로 예쁘고 복스러운 신부와 참 잘 어울리는 정만혁 전도사였다. 그는 일곡중앙교회 담임 정연수 목사와 사모 장미화의 장남이었다. 복스러운 결혼예배는 예장합동 총회장이 주례로 설교(전도서 4:9-12 ‘아름다운 가정’)하고 예장통합 총회장이 축도해 그 축복과 성대함의 의미를 더해주었다. 두 남녀가 참 잘 어울렸다. 하나님의 섭리로 참 잘 만났다.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이는 신랑 신부 닮은 점이 많았다. 눈빛에는 꿈이 가득하고 가슴에는 믿음이 가득하니 소망들을 이루어 갈 거다. 참 부러웠다. 신랑 신부 두 사람 참 좋은 짝을 만났다. 믿음은 내일을 향해 힘차고 가슴에는 사랑이 가득하니 하나님께서도 축복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파치족 인디언의 시처럼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그래서 두 사람은 예수님 말씀대로 ‘창조 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가복음 10:6-9). 이제 두 사람 앞에는 한 몸이기에 오직 하나의 복스러운 삶만이 있으리라. 20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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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03
  • 송준 시네마힐링
    <슈렉> 장르 : 애니메이션 기획 : 제프리 카젠버그 제작 : 드림웍스 동화보다 아름다운 ‘엽기 판타지’ 동화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옛날 옛적에~’ ‘무카시 무카시~’ ‘원스 어폰 어 타임~’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동서고금,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닮은꼴이다. 파스텔 톤의 그림동화책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첫 장을 넘기면서 시작되는 애니메이션 <슈렉>의 첫 장면도 ‘원스 어폰 어 타임~’이다. 그러나 흔히 동화, 또는 애니메이션이 주는 선입견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갑자기 솥뚜껑 같은 손이 동화책을 덮고는 책장을 홱 찢어낸다. 그리고 쏴~,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동화책은 괴물 슈렉의 ‘대변지’였다. 볼일을 마친 슈렉이 화장실 문을 쾅 닫고 나온 뒤 1분 여 동안 영화는 자기 색깔을 분명히 밝힌다. <슈렉>은 일종의 ‘안티 동화’다. 전통적 미학의 틀도 거부한다. 슈렉이 목욕하고 식사하는 사이사이 타이틀 자막이 올라가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객석은 웃음바다다. 물 속 방귀에 붕어가 죽어서 뜨고, 진흙 목욕에 달팽이 스테이크까지, 괴물 슈렉의 라이프 스타일과 캐릭터가 소개되는 사이 <슈렉>은 자연스럽게 향후 1시간 여 동안 이 애니메이션이 견지할 자세와 입장을 예고한다. 어느 날 깊은 숲 속 늪지에서 혼자만의 고즈넉한 고독을 즐기는 슈렉(마이크 마이어스)에게 기겁할 일이 발생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신데렐라, 꼬마 돼지 삼형제, 피노키오, 피터팬 등 성장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접했을 동화의 온갖 주인공들이 슈렉의 늪지로 몰려와 진을 친 것이다. 자기 연민 콤플렉스를 가진 포악한 영주 파콰드(존 리트고)가 동화 속 주인공들을 자신의 영지 밖으로 쫓아낸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늪지를 예전처럼 되돌리기 위해 파콰드를 찾아간 슈렉은, 대신 불을 뿜는 용의 성에서 피오나 공주(카메론 디아즈)를 구해오기로 약속한다. 백마 대역으로 따라붙은 말 많은 당나귀(에디 머피)와 함께 우여곡절 끝에 공주를 구한 슈렉은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 널리 알려진 ‘공주 구출 이야기’를 기본 얼개로 삼고 있지만, <슈렉>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화의 문법을 전복해가며 노골적인 패러디로 ‘왜 공주는 반드시 미녀여야 하는지, 공주를 구하는 건 꼭 백마를 탄 왕자나 기사여야 하는지, 기사는 잠든 초면의 공주에게 함부로 키스해도 되는지, 공주는 왜 그렇게 첫 키스를 받고 싶어 안달을 하는지’ 딴지를 건다. <슈렉>의 첫 번째 포인트는 종전의 동화들이 세뇌하듯 건설해온 통념을 뒤집는 ‘엽기 전략’이다. 괴력을 가진 슈렉의 주무기는 트림과 입 냄새. 얌전해 보이는 피오나 공주는 <와호장룡>의 소녀 검객과 <매트릭스>의 여전사를 합쳐놓은 듯한 왈가닥이다. 아리아처럼 고운 피오나의 노래 소리는 죽음을 부르고, 피오나는 새알을 가져다 태연히 프라이 요리를 한다. 슈렉과 피오나는 풍선 배틀로 관객의 턱을 빠지게 하고는 사이좋게 ‘들쥐 바비큐’를 뜯는다. 불 뿜는 용은 당나귀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의 열병을 앓고…. <슈렉>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매력은, 현대 사회와 풍습에 대한 고도의 풍자다. 파콰드 성의 액션 신에서는 레슬링에 열광하는 현대인의 세태를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원형극장 결투 신으로 패러디하여 일침을 가하고, 로빈훗 일당과의 대결 장면에서는 뮤지컬을 마음껏 비틀어 웃음으로 바꿔버린다. 방송사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듯 ‘정숙’ ‘웃음’ ‘박수’ ‘함성’ 따위 피킷을 쳐드는 대목도 재기가 넘친다. 시종 객석을 요절복통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슈렉>의 비틀기는 결코 우연의 소치가 아니다. 84년 디즈니에 입사하면서 애니메이션과 인연을 맺은 제프리 카젠버그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면서 영락해가던 디즈니 왕국의 르네상스를 견인한 인물이다. ‘가족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란 콘셉트 아래 어린이용 캐릭터 사업을 디즈니의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자리매긴 그가 디즈니를 떠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잡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새 장을 열게 된 이면에는 나름의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10대들 대부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러 극장에 가지 않는다. 열 살 이하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인 30대 이상이 디즈니의 주 관객이다. 나는 <슈렉>을 보러 온 관객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멋진 액션과 불을 뿜는 용, 슬랩스틱 유머나 개그에 즐거워한다. 10대와 20대의 반응은 다르다. 그들은 그들이 자라온 세상에 대한 ‘불경스러운 패러디’에 열광했다. 인습을 뒤집는 ‘쿨’한 문화적 코드가 10대와 20대를 사로잡는 매력이 되리라는 게 나의 확신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카젠버그는 이렇게 밝혔다. <개미> <이집트 왕자> <엘도라도> <치킨 런>으로 이어지는 드림웍스의 일관된 작품 경향이 카젠버그의 확신의 반영이었음은 물론이다. <슈렉>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실사에 가까운 3D 애니메이션의 테크닉이다.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실감나는 움직임, 피오나의 머릿결과 옷자락의 느낌, 당나귀의 털, 발 밑에 밟히는 풀들의 움직임, 나뭇잎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숲의 이미지, 물·우유·맥주 등 액체의 표현, 용이 내뿜는 불과 들끓는 용암의 열기 등 <슈렉>이 보여주는 영상은 애니메이션 기법의 신기원으로 평가된다. 피오나의 표정은 너무 실사와 흡사해서, 일부러 표현 수위를 낮추기까지 했을 정도다. <개미> 제작으로 극찬을 받았던 드림웍스의 파트너 PDI는 <슈렉>을 위해 ‘쉐이퍼’(몸의 근육 및 표정 변화를 표현하는 프로그램)와 ‘쉐이더’(피부와 옷감 등에 굴절·반사되는 다양한 빛을 표현하는 프로그램)라는 소프트웨어를 새로 개발했고, 수십억 개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도록 ‘디지털 그린 하우스’와 ‘디지털 인형 하우스’를 만들었다. 사람의 표정을 창조하는 ‘안면 근육 애니메이션 시스템’과 액체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액체 애니메이션 시스템’을 한 차원 끌어올렸으며, 때로는 스탭이 직접 진흙 세례를 받는 실험까지 치렀다고 한다. 이같은 성가에 힘입어 <슈렉>은 제54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정식 초청을 받았다. 애니메이션이 칸의 경쟁부문에 초대를 받은 것은 1973년 특별상을 수상한 르네 랄루의 <판타스틱 플래닛> 이후 28년 만의 일이다. 제프리 카젠버그는 이에 대해 “아카데미에서 <글래디에이터> <아메리칸 뷰티>가 상을 받은 것보다 훨씬 기쁘다”고 말했다. <슈렉>은 미국에서만 개봉 11일 만에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box : 디즈니 왕국과 새로운 도전자들 제프리 카젠버그와 디즈니의 인연은 미묘한 구석이 있다. 카젠버그의 입성과 함께 <인어공주>의 흥행으로 디즈니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고, <라이온 킹> 성공 이후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과의 불화로 카젠버그가 떠나면서 디즈니의 상승세가 수그러들었다. 전 세계적인 캐릭터 사업과 일본·유럽으로 확산되는 디즈니랜드의 호황으로 디즈니 왕국은 여전히 굳건하지만,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만 놓고 본다면 도전자들의 등쌀이 그리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먼저 20세기 폭스사가 <아나스타샤> <타이탄 A.E.>로 도전장을 냈고, 워너 브러더스사도 <매직 스워드> <아이언 자이언트>로 도전 대열에 합류했다. 노련한 디즈니의 방어력은 도전자들에게 참담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생아 드림웍스가 도전장을 이어받았다. 드림웍스의 <개미>와 디즈니의 <벅스 라이프>의 1차전은, 제작비의 4배가 넘는 1억6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디즈니의 승리였다. 그렇다고 드림웍스의 패배도 아니었다. <개미>는 미국에서만 9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제작비는 6천만 달러). 카젠버그는 드림웍스를 설립할 때부터 “동화는 만들지 않겠다. 동화를 스토리텔링의 기초로 삼는 디즈니 전통과는 다른 애니메이션의 비전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개미> <이집트 왕자> <치킨 런> <슈렉>으로 이어지는 드림웍스 행진의 출발이었다. 사업 컨셉트도 디즈니와 달랐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캐릭터·테마 파크 대신, 10대와 성인층을 대상으로 OST와 출판 쪽으로 전략을 다각화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었다. 디즈니식 동화와 애니메이션은 이미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날카로운 지적을 받고 있었다. 아동 문화 비평가 조셉 H. 스와츠는 디즈니식 세계관의 문제를 이렇게 비판한다. 첫째는 전형성과 상투성이다. 매우 비슷한 줄거리와 상황, 도식적 갈등과 상투적인 대응, 뻔한 결말. 인위적으로 밝은 세상에 인형 같은 주인공들. 틀에 박힌 비현실적 순수함. “이는 마치 ‘걱정마라. 현실에 해결 못하는 어려움은 없다’라는 세뇌 작용에 다름 아니다”라고 조셉은 지적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분법이다. 주인공은 늘 아름답고 착하며 순수하게 그려진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은 이상화된 비현실적 유년기를 유포시킨다. 반대쪽 등장인물은 징그럽고 폭력적이거나, 자주 실수를 저지르며 못생겼다. 항상 서로를 배신하고 속인다. 이같은 이분법은 세상을 늘 착한 세력과 나쁜 세력으로 이분화하도록 학습시킨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치부하기에는 디즈니의 영향이 세계적으로 너무나 크다는 것이 문제다.” 바로 이 점에서 드림웍스는 디즈니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슈렉>의 주인공들은 이미 충분히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왕따 괴물’ 슈렉과 버림받은 당나귀, 밤이면 정체가 변하는 공주. 이들이 빚어가는 이인삼각의 위로와 사랑. 어쩌면 디즈니가 드림웍스를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흥행 성적이 아니라 바로 이 점, ‘슈렉식 세계관’인지도 모른다.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 G.QT
    2017-09-22
  • 송준 시네마힐링
    <블러디 선데이> 감독 : 폴 그린그래스 출연 : 제임스 네스빗, 알란 길디어, 디클란 더디 피는 착취와 분노를 먹고 자란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정복과 지배, 살육과 탄압, 그 착취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문화도 예술도, 완력에 의해 지배 체제가 갖춰진 뒤에, 그 핏자국이 가신 뒤에 싹을 틔우는 것이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임을 감안하면,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배워서 알게 된 역사는 또 얼마나 걸러지고 미화된 ‘용비어천가’일 것인가. 그렇게 걸러낸 역사만으로도 인류의 심성은 충분히 잔혹하다. 고대 역사로부터 굵직한 것들만 추려도, 인류의 잔혹사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잔혹사는 대부분 타인의 피를 뽑아 제 배를 채우려는, 흡혈귀적 무한 욕망의 발자취였다. 마케도니아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알렉산더 제국’의 영광은 기껏 스무 살 철부지 왕의 정복욕으로 비롯된 ‘피눈물의 행진곡’이었고, 로마 천 년의 팽창주의도 결국은 몇만 명 남짓한 귀족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착취의 칼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바이킹의 뱃길도, 징기스칸의 질주도, 사라센의 모래바람도, 나폴레옹의 파죽지세도, 히틀러의 광기도 기실 ‘피의 경제학’에 다름 아니었다. 피의 경제학은 아즈텍·잉카·마야 등지의 인간을 도륙하고, 북미 대륙 전체를 선주민으로부터 송두리째 강탈했으며, 아프리카 전역을 이산가족의 눈물로 적시며 납치와 인신매매를 한 시대의 당당한 경제활동으로 미화시켰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잔혹사가 과거형이 아니라는 데 있다. ‘피의 경제학’은 여전히 인간에게 유력하고도 유효한 ‘경제행위’로써 유혹의 마력을 흘리고 있다. 예컨대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시리아로 이어지는 미국의 무한 전쟁은 배후의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기획 전쟁’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곧 ‘식민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기념물일진대, 그 여신의 이름으로 다시 세계 도처에서 식민과 착취를 위한 군가가 울려퍼지는 아이러니. 이 ‘피의 경제학’이 더욱 잔혹한 것은, 단지 엄청난 ‘피의 양’ 때문만이 아니다. 피바다를 덮는 절묘한 명분이, 비단보다 더 치밀하고 선동적인 논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까닭이다. 피바다를 감추는 레토릭은, 단순한 치장이나 궤변이 아니다. 이미 하나의 시스템이다. 정치와 권력의 역학, 소시민의 인생관과 인식론, 군중의 광기와 어리석음, 착취의 열매를 나누는 달콤한 공범의식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이중심리마저도 매끈하게 녹여낸 고도의 메커니즘이다. 넓게는 국가 간의 왜곡된 관계를, 좁게는 한 나라 안의 독재와 폭정의 문제를 두루 덮어주는 꾀와 명분의 금자탑이다.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호하는 작금의 논리가 그 전자라면, 광주민주항쟁을 ‘폭도 진압’으로 덮어온 수십 년 세월이 그 후자에 해당한다. 인간은 피를 뿜을 때, 이미 그 피를 덮을 온갖 장치를 준비하고 있다. 국가는 국가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각각 처지에 맞게 공인된 ‘피 덮개 레토릭’을 준비해놓고 ‘액션’에 들어가는 세상인 것이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는 피의 얼룩을 덮는 비단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핏발 선 고발장이다. 흡사 십자수를 놓듯이 힘의 논리, 힘의 메커니즘을 한 땀 한 땀 떠서 생생하게 이미지로 보여준다. 여기 작은 피의 기록이 있다. 갈등이 커지고, 부딪치고, 피를 부르고, 그 피를 덮는 마무리까지, 예의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본보기다. 영화는 1971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 데리시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를 주목한다. 이 유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 시발은 15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왕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하기 위해 로마 교황의 승인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여 성공회를 설립하고, 이웃나라인 아일랜드에도 개종을 요구한다. 이로부터 비롯된 아일랜드의 종교 갈등은, 17세기 들어 크롬웰이 청교도혁명을 일으킨 뒤 군대의 힘으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대해 다시 개종을 요구함으로써 더욱 심화된다. 저항의 결과는 참혹했다. 크롬웰은 아일랜드의 모든 토지를 몰수하여 영국인에게 나눠주고 아일랜드인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내친 김에 영국은 아일랜드에 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키고, 1801년에는 아예 속국으로 삼아버린다. 이런 여건에서 1백만 명 이상이 굶어죽은 것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대기근(1847~48년)’이 발생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불길이 치솟아 우여곡절 끝에 1921~22년 자치령을 획득(1922년 영연방 자치령 ‘아일랜드자유국’, 1937년 국호를 ‘에이레’로 바꾸어 독립, 1949년 ‘아일랜드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영연방 탈퇴)하는데, 영국은 당시 신교도 주민이 다수인 북아일랜드 6개 주를 영국에 잔류시키고, 새로 국경선을 긋는다. 파란만장한 북아일랜드 분쟁은 이렇게 태어났다. 북아일랜드의 구교도들은 극심한 차별과 탄압에 시달렸고, 다수인 신교도들은 영국의 보호 아래 특권을 누렸다. 신.구교도 사이에는 결혼을 기피할 정도로 갈등이 심화되었고, 마침내 1969년 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결성되어 아일랜드공화국과의 통일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영화 <블러디 선데이>는 IRA의 무장 투쟁이 본격화되기 직전, 그 분수령이 되는 사건을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스크린에 재현한다. 1971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 데리시. 시민들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주의를 본받은 평화 시위를 준비한다. 주요 이슈는 극심한 유아사망률. 영국의 차별 정책으로 인해 너무도 낙후되고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 아래서 구교도 주민의 아이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는 데 대한 항의였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좇아, 평화 시위를 준비하는 시민단체의 상황과 이에 대응하는 영국군의 입장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데, 그렇게 교차되는 순간들의 쌍방의 입장 차이가 경악을 금치 못하도록 선연하게 대비된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역사 속 사건을 보여주는 영화이므로 관객이 벌써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 감독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미학’으로 관객의 호흡을 멎게 만든다. 평화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몰려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군중들과, 작전 지시에 따라 그 날의 풍경이 어떻게 그려질지 ‘자신의 임무를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는’ 공수부대원들. 인간이 몸으로 빚어낸 실화가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서스펜스를 능가한다. 피의 서스펜스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 득의의 리얼리티의 승리다. 리얼리티를 향한 감독의 치밀함은 곱씹을 만하다. 주연 제임스 네스빗은 시위를 이끈 아이반 쿠퍼 하원의원과 같은 입장을 가진 북아일랜드 출신이고, 희생자 제리 도너히 역을 맡은 디클란 더디는 ‘피의 일요일’에 목숨을 잃은 삼촌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진압군 역에는 실제 공수부대원 출신들을, 시위대에는 실제 데리시 주민을 캐스팅했다. 총격 피해자들로 시끌벅적한 병원 시퀀스에는 실제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모여 눈물바다를 이뤘다. 그러나 정작 감독이 방점을 찍은 부분은 피비린내 나는 참상 너머에 있다. 일을 벌이고 난 뒤, 수습을 위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가해자들의 마무리 메커니즘이다. 시체를 치우고, 시체의 주머니 안에 수류탄을 집어넣어 평화 시위를 ‘실패한 테러’로 위장하고, 언론을 동원하여 거짓으로 포장하고, 심지어 진상조사위원회조차 형식적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는 일련의 수순들. 우연의 일치인가, 저 참상과 그에 뒤이은 매끈한 수습까지, 멀지 않은 우리 역사의 한 장면과 절묘하게 닮아 있다. 그 날 데리시에서는 13명이 죽고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여전히 가공된 논리로 포장돼 있으며, 1998년에는 편파 판결에 반발하는 청문회가 다시 열렸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데리시의 ‘피의 일요일’ 이후 10년 뒤, 대한민국 광주에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 드라마는 어찌도 저리 ‘붕어빵’인지. 1980년 5월 18~27일, 광주는 사망 218명, 부상 5,088명, 실종 363명, 기타 피해자 1,520명(www.518.org 참조)의 비극을 남기고 상황 종료되었다. 10배의 기간 동안, 100배의 피해를 낳은 광주는 공수부대를 앞세운 부대의 구성이며, 사냥을 방불케 하는 진압군의 양상이며, 지역을 완전 봉쇄하여 ‘도시의 비밀’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한 치밀함이며, 이후 언론 및 진상 조사·재판 등의 과정에서까지 어쩌면 저렇게 데리시의 모델을 닮았는지. 인간의 폭력성과 간악함은 정녕 시간을 초월하여 되풀이되는가. 언제까지고 되풀이될 것인가.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 G.QT
    2017-08-28
  • 피스메이커 김재호 장남 결혼
    총회 피스메이커 김재호 목사 김순애 사모 장남 김요섭 군과 전경은 양 혼인 예식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 주례 사랑은 어떤 시간에 피어나는 것일까, 한 사람이 힘없이 손짓하던 부름을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여 피어나는 것일까. 사랑이 피어나는 시간에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또 무엇일까, 한 사람 가장이를 예감처럼 돌다가 사라지는 빛이 사랑의 시작일까. 사랑은 결국 무슨 뜻으로 저리도 선명한 자태로 짝이 되어 내게 다가오는가.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에 바람과 빛과 또 그 알 수 없는 미동의 신비는 무엇인가. 사랑에는 무슨 뜻이 없다. 무슨 뜻이 없어서 남자와 여자 사이 더욱 아름다운 저 파동(波動)의 눈빛과 웃음들처럼 사랑은 그 자체로 두 몸이 한 몸이 되게 하는 영매(靈媒)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총회 피스메이커 김재호 목사 김순애 사모 장남 김요섭 군과 전종일 씨와 최춘열 여사의 장녀 전경은 양 혼인 예식이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 주례로 2017년 8월 12일(토) 12시 더 리버사이드 호텔 노벨라홀에서 열렸다. 상견례 뒤 찬송 605장 찬송을 불렀다. 오늘 모여 찬송함은 형제자매 즐거움거룩하신 주 뜻대로 혼인예식 합니다신랑신부 이 두 사람 한 몸 되게 하시고 온집안이 하나 되고 한뜻 되게 하소서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한길가게 하시고맘과 뜻이 하나 되어 주 따르게 하소서서로 믿고 존경하며 서로 돕고 사랑해 고와 낙을 함께 하며 승리하게 하소서 아버지여 우리들이 기도하고 바람은저들 부부 세상에서 해로 하게 하소서이 두 사람 감화하사 항상 주를 섬기며 이세상을 살아갈 때 행복하게 하소서 아멘 신부 전경은 양이 다니는 신창동교회 담임 김동희 목사가 기도했다.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에덴동산에서 주례하시어 가정을 이루어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요섭 군과 경은 양을 신랑신부 삼으셔서 가정을 이루도록 혼인예식을 허락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혼인 잔치에 참여하셔서 축복하셨던 주님께서 이 자리에도 찾아오시어 양가의 부모님과 가문 그리고 신랑신부를 축복해주실 줄 믿습니다. 총회장 김선규 목사님을 통해서 신랑신부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갈 하나님의 말씀을 주실 때 그 말씀을 잘 가슴에 담고 평생 그들 속에 담긴 말씀대로 순종하게 하시고 충만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그들이 사는 날 동안 하나님에게 영광이요 교회의 유익이며 이웃에 덕을 세우며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두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 사람이 사는 동안 가슴에 품고 기도한 이상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부부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두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축복해 주시어 시절을 따라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여주옵소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믿음의 명문 가정을 이어가도록 복 내려주옵소서. 양가를 축복하시고 신랑신부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총회 유리창 김선규 목사는 본문 시편 128:1-6을 읽고 제목 ‘복 있는 가정’ 메시지를 전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옛날 여름 비오는 날 초가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모여 흘러가면 작은 냇물을 이룹니다. 이 냇물이 모아지면 강물을 이루고 강물이 모이면 바다를 형성하는 것 잘 압니다. 부모가 만나 가정을 이루면 또 그 가정 가정들이 모이면 마을이 되고 그 마을들이 모이면 사회가 되고 사회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들이 모여 세계를 이룹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특별하게 창조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런 뒤 하나님은 아담의 몸에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은 아담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다음과 같이 외쳤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그런데 성경은 결혼의 원리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게 외로워 보여 짝을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왔을 때 아담은 외쳤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나님은 서로 좋아하는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라고 창세기 2:2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원리를 따라 믿음의 가정이 바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가정인 것입니다. 이 명령을 따라 두 사람이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어 생육하고 번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서 신랑신부의 결혼서약과 성혼기도 후 결혼이 이루어졌음을 주례자가 공포했다. 384장 찬송과 김선규 목사 축도로 혼인 예식을 마쳤다. 이어서 광고와 지구촌교회 보컬디렉터 성정선 집사의 축가가 있은 뒤 신랑신부의 행진으로 결혼예배를 마쳤다. 결혼이란 부부 사이에 빈 공간을 두어서 그들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도록 하게하고 서로 사랑하되 상대방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이 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에베소서 5:22-25, 31-33 2017-08-23
    • G.QT
    2017-08-23
  •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장르 : 다큐멘터리감독 : 빔 벤더스음악 : 라이 쿠더노래 :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인생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검은 라틴'의 파도 소리 흔히 노년은 인생의 황혼기로 비유된다. 작열하던 태양이 광포한 열기를 거두고 슬며시 서산 마루에 기대듯이, 들끓던 열정과 억센 힘, 넘치는 에너지를 세월 저편으로 갈무리한 ‘실버 실루엣’. 갈수록 급변하는 일상의 강파른 속력 앞에서 노년은 더욱 초라하다. 경쟁력 위주의 속도전 사회에서 노인은 자칫 걸림돌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대 문명의 맹목을 살짝 비켜나서 살펴보면, 노년의 이미지는 달라진다. 평생에 걸쳐 숙성한 기술과 지혜, 기품, 우주를 헤아리는 조화와 혜량. 비유를 바꿔보자. 한 방울 이슬로 태어난 물의 일생은 평생을 흘러흘러 바다에 이른다. 물이 일생에 걸쳐 조우한 온갖 미네랄과 자양들이 바다로 그윽하게 고여든다. 노년은 한편으로 ‘인생의 바다’인 것이다. 더욱이 그 노년이 기예와 함께 한 삶이라면, 일생을 조탁해온 기예의 경지는 삶의 온갖 희로애락을 용해한 세월의 밀도로 인해 독보적인 아우라를 발하기 마련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평생을 음악으로 살아온 아름다운 노년들의 실황 다큐멘터리다. 1997년 혜성처럼 나타나 미국·유럽·일본 등지를 뒤흔들며 쿠바 열풍을 불러일으킨 백발부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이들의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클래식·재즈·팝 계로부터 즉각적인 환호와 찬사를 받으며 2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연일 빌보드차트를 뒤흔든 뒤 그 해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이듬해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콘서트에서 열광적인 앵콜 세례를 받았고, 이후로도 파리, 도쿄 등지의 뮤직차트를 누비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세계적인 백발 그룹은 이름부터 아이러니하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이름 자체가 ‘환영 받는 사교 클럽’이란 뜻이다. 본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의 수도 하바나의 고급 사교장이었다. 쿠바 최고의 뮤지션들의 무대였던 이 클럽은 지난 30~5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1959년 쿠바혁명과 함께 사라진 추억의 명소다. 영화는 한 노인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옛터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아흔살(영화 촬영 당시) 노인은 15세에 벌써 첫 자작곡을 발표한 바 있는 쿠바 음악사의 산 증인 꼼빠이 세군도(1907년 생)다. 이어서 ‘쿠바의 냇 킹 콜’로 불리는 전설의 보컬리스트 이브라힘 페러(1927년 생), 영혼을 끌어들이는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1919년 생), 여성보컬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 생), 베이시스트 ‘작은 베토벤’ 카차이토(1933년 생) 등 백발부대 멤버 십여 명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기묘한 영화는 한 음반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에서 잉태되었다. 라이 쿠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제3세계 음악의 거장이다. 1996년, 라이 쿠더는 월드서킷 음반사로부터 아프리카와 쿠바의 사운드를 매치한 ‘아프로-쿠바’ 음반을 기획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쿠바로 향한다. 라이 쿠더는 젊은 시절부터 테이프를 통해 매료되었던 쿠바 뮤지션들을 찾아다닌다. 쿠바의 뮤지션들 대부분은 카스트로 혁명 이후 ‘부르주아 음악인’으로 낙인찍혀 음악을 그만두고 잊혀졌거나 활동 무대를 외국으로 옮겨야 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적지 않은 뮤지션들이 이미 세월의 파도에 휩쓸려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라이 쿠더는 하바나 골목의 낡은 아파트 등지에서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노년의 거장 뮤지션들을 어렵사리 만나 그룹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결성한다. 여기에 빔 벤더스가 합류했다. 라이 쿠더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작곡을 맡았던 환상의 콤비였다. 벤더스는 라이 쿠더가 이브라힘 페러의 솔로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하바나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했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이렇게 태어났다. 영화는 ‘백발 특공대’가 결성되는 순간부터 카네기홀 콘서트에서 앵콜 박수가 쏟아지는 장면까지를 다룬다. 벤더스는 처음부터 드라마를 버렸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카리브해 작은 섬의 늙고 초라한 뮤지션들이 카네기홀에 입성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할리우드식 앵글에 담는 편이 옳았다. 대신 벤더스는 재미의 자리에 애잔한 쿠바의 눈빛과 숨소리를 담아 영롱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빚어냈다. 공연 실황과 음반 녹음 장면, 멤버들의 인터뷰 모습 등이 교차되면서, 노익장들의 골 깊은 인생유전과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음악적 환희가 멋진 대조를 이룬다. 이들의 노랫말은 시처럼 삶과 사랑을 노래하고, 사이사이 화면에 등장하는 하바나의 다양한 표정은 영상으로 써낸 에세이처럼 은은하게 흔들린다. 이 ‘시골 노인네들’이 마침내 뉴욕에 입성하던 날의 모습은, 마치 ‘촌로들의 서울 효도관광’ 풍경처럼 어색하고 우스꽝스런 ‘역설적 감동’을 전해준다. 거리에서 촌티를 흩날리던 꼬부랑 백발들이 보여주는 무대 위의 기품, 매너. 그 은유적인 콘트라스트……. 그리하여 카네기홀 콘서트의 대단원의 막이 내리면, 콘서트홀 객석과 스크린 앞 관람석에서 동시에 우레 같은 갈채가 저 아름다운 백발들 앞에 바쳐지는 것이다. box : 빔 벤더스의 영상 미학 황량한 세상, 소외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 빔 벤더스의 영상 어조는 낮고 그윽하다. 맑고 가지런하며, 뒷부분에 힘이 실린 음색이다. 삶은, 세상은 부조리한 시지프스의 언덕 같은 것. 그 너머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묵묵히 가야 하는 공허한 허방. 관조하되 낙관하지 않고, 방황하되 절망하지 않는다. 냉소와 갈망의 중간 어디쯤, 우울과 희망의 중간 어디쯤. 황량하고 건조한 상황 속에도 그는 끝내 한 조각 온기의 비늘을 간직한다. 벤더스의 미학은 어쩌면 자기 삶의 궤적에서 고스란히 우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벤더스는 1945년 패전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나 프라이브루대학에서 철학과 의학을 전공했다.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던 중 시네마테크에 심취해 영화 인생을 시작한다. <파리, 텍사스>(1984․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베를린 천사의 시>(1987․칸영화제 감독상) 등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벤더스 감독의 화두는 일단 ‘소외’다. 그의 영상에 투영된 고독의 빛깔, 단절의 이미지, 고뇌의 미학이 모두 소외와 같은 심장을 쓰고 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는 벤더스의 눈길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공들이 겪은 개인사의 굴곡들,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를 휩쓴 근대사의 핏빛 흔적들. 삶이 너무 고달파서 차라리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라틴 노예의 후예들. 독립과 가난, 그리고 혁명. 이 소외의 연대기를 바라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속에 잔잔히 물결친다. 98년 완성된 이 영화는 99년 유럽영화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영국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시애틀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LA영화협회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호주 누사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등을 휩쓸었다.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 G.QT
    2017-08-05
  • 박기훈 초대전 - 함께 가리라
    작가노트 저는 하나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입니다. 교회는 다녀본 적도 없다가 모태신앙인 아내를 만나 1년 조금 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반주자의 자리도 내려 놓고 저와 함께 예배에 집중하며 그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이해보다 소망과 사랑을 먼저 이해시켜주신 하나님을 만나면서 모든 제 작업에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한 작업은 분명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알릴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약한 믿음이지만 이 초대전을 통해 작가로써, 신앙인으로써의 터닝포인트가 이루어지길 바래봅니다. 작품노트 따뜻한 눈동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느 녀석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박기훈 작가의 작품에 채각(彩閣) 되어진 동물들의 눈은 항상 우리를 보고 있다. 동물과 도시를 유토피아적인 구도로 만들어 내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창조되어진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조화로움, 소중함을 작품 속에 담고 있다. 태초에 창조 되어진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이 명령에 따라 사람이 만든 방주에 차곡차곡 한 쌍 씩 채워졌던 것처럼 자연과 우리의 공존(共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자연환경의 위기 속 동물들의 모습을 물질문명의 기호인 도시에 등장시키는 내용을 박기훈 작가는 판화와 회화의 요소로 접목시켜 새로운 형식의 회화를 실험하고 있다. 직접 돌 성분을 첨가하여 만들어낸 물감을 사용하여 겹겹이 안료를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층위를 쌓아, 이를 깎아나가는 기법인데 개인적으로 작가로서의 신체적 자취가 남겨지는 작업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박기훈 작가의 작업에서는 전공인 판화를 해왔던 방법적 특징이 묻어 나오는데, 예를 들어 명암을 다루었던 경험을 통해 빛의 느낌을 섬세하게 찾는 데에 몰두한 흔적이나 메조틴트, 소멸판 등 판화의 기법에 착안하여 어둠에서부터 점점 밝은 부분으로 깎아내며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특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판화의 복제성, 찍은 후 남은 판 자체의 촉감적인 회화성은 그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독창적이면서 적합한 형식이 되고 또 그것은 새로운 예술의 소통의 장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2017 전국청년작가 공모전] 김미진 심사위원장 ⌜대상 수상작⌟ 심사평 中 일부>
    • G.QT
    2017-07-08
  • 송준 시네마힐링
    <투스카니의 태양> 감독 : 오드리 웰스 출연 : 다이안 레인, 산드라 오, 린제이 던컨, 라울 보바 안단테로 부른 삶의 찬가 독특한 매력으로 회자되는 영화들이 있다. <지중해>(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 <푸에르토 에스콘디도>(가브리엘 살바토레) <일 포스티노>(마이클 래드포드) <그랑블루>(뤽 베송) 등. 모두 이탈리아의 찬연한 태양과 몽환적 풍광, 탈현실적 여유와 감미로운 나른함이 스크린 가득 흘러넘치는 작품들이다. 여느 영화에 비해, 위의 작품들이 풍기는 특색은, 의외로 의미심장한 시니피에를 함유하고 있다. 서남부 유럽과 중북부 유럽을 경계로 나누어보면, 양쪽 지역의 풍광이 시나브로 완연히 다른 자태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자가 좀더 도회적인 세련미에 가깝다면, 전자는 전원의 후덕한 자연미를 물씬 풍긴다. 이 경계는 동시에 중북부의 앵글로색슨 계열과 서남부의 라틴 계열이라는 민족적 경계선과 겹쳐진다. 앵글로색슨 계열의 문화가 냉철한 이성에 입각한 원칙주의.조직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는 데 견주어, 라틴 계열의 문화는 훈훈한 감성에서 우러나는 인본주의.가족주의 성향을 짙게 풍긴다. 두 경계는 다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계로 해석된다. 이성을 극한의 가치로 삼고, 인간의 본성과 행동양식을 일제히 이성의 틀에 맞춰 강제해온 것이 모더니즘의 논리였다. 아이들을 학교라는 규율 집단 안으로 몰아넣고 국가 권력 아래 통제.관리하고, 노숙자.걸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어 강제노동을 시키고, 법과 규율 아래 인간의 개별성마저 복속시켜온 수백 년의 문화가 곧 모더니즘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에 의한 인간소외에 대한 반동의 움직임이다. 이성이 인간의 미개를밝힌 근대의 횃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큰 발전이었으되, 그 독성과 폐해 또한 심각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획일을 버리고 문화 다양성을 지향하며, 강철의 논리 대신 웃음과 눈물로 범벅이 된 감정의 순수성을 존중하고, 물질 문명이 견인해온 도회적 삶의 스피드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느림의 미학’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을 저당잡히는 ‘맹목적 저축’의 논리도 재고의 대상이다. 이 뒤늦은 성찰의 더듬이 앞에 앞서 밝힌 저 영화들이 자리한다.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로 영역을 넓혀본다면, 알폰소 아라우 감독의 <구름 속의 산책>과 <달콤쌉사름한 초콜릿> 등을 빠뜨릴 수 없다. 이 영화들이 은연 중에 나름의 ‘열성팬’을 거느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의 칙칙한 회색, 강파른 현대 문명의 스피드, 쳇바퀴처럼 맴도는 일상의 무력감, 타인을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숨막히는 생존경쟁, 오늘을 저당잡혀서 내일을 사는 ‘눈 먼 현재’. 이 모든 스트레스의 반대편에 <지중해> 풍의 영화들이 존재한다. 관 객의 가슴에 아련한 페이소스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 한 편의 영화가 명함을 디밀었다. 오드리 웰스 감독의 데뷔작 <투스카니의 태양>(원제 : )이다.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마이클 레만)의 각본을 맡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촘촘하게 보여주었던 오드리 감독은,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원작은 동명의 소설 . 베스트셀러 작가 프란시스 메이어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도 실제와 똑같이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이름도 프란시스다. 프란시스(다이안 레인)는 한 순간에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집마저 빼앗긴다. 삶의 의욕도 다 사라지고, 초췌한 몰골의 프란시스에게서 희망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보다 못한 친구 패티(산드라 오)가 프란시스에게 이탈리아 여행 티켓을 선물한다. 망설임 끝에 여행을 떠나는 프란시스. 이 단순한 플롯을 펼쳐가는데, 화면 구성과 캐릭터 설정의 콘트라스트가 여간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프란시스의 삶과 심성을 철저히 망가뜨린 무대, 뉴욕. 저 도회적 번잡함과 화려함, 변호사로 상징되는 계약 관계의 매정함, 내일의 불확실성에 짓눌린 무력감, 오직 인내를 강요하는 모더니즘의 이성주의. 오드리 감독은 그 대척점에 확실하게 방점을 찍는다. 그림엽서 같은 화사한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이 무량하게 펼쳐지고, 계약은 엉망이고,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두루뭉실한 일상이 시끌벅적하게 전개된다. 내일보다 지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치관. 그 즉흥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숱한 시행착오. 이 왈가닥 난리통 속에 행복의 씨앗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프란시스는 관광버스의 첫 기착지에서 신비의 여인 캐서린에게 사로잡혀서, 그 뒤를 따르다가 ‘브라마솔레’라는 300년 된 허름한 빌라에 마음을 빼앗긴다. 얼떨결에 남은 전재산을 털어서 그 빌라를 구입하는데, 집 수리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공사를 맡겠다고 나서는 업자들이 하나같이 어수룩해보여서 불안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벽을 트는 중에 호박만한 돌덩이들이 우루루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몸을 피하느라 일대 소동을 겪기도 한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또 왜 그렇게 여자에게 친절한지, 도무지 혼자 걸어가는 여자의 고독을 용서하지 않는다. 액션영화의 추격전을 방불케하는 달음박질 끝에 남자 떼를 겨우 따돌린 프란시스, 이번에는 따라붙던 남자들을 물리쳐준 마르첼로(라울 보바)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혼의 충격으로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재기의 기대도 없이 떠난 이탈리아 여행, 우연히 눈길을 사로잡은 신비의 여인, 묘한 인연으로 구입한 저택, 집 수리 부품을 사려고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마르첼로와의 사랑, 그리고 이별, 이웃들과의 새로운 관계. 이 단순한 세미 로드무비 형식의 스토리를 더없이 풍요롭게 가꿔낸 오드리 감독의 재능이 눈부시다. 매 장면을 그림처럼 잡아낸 카메라의 앵글도 아름답기 그지없고, 그 장면과 장면 사이에 치밀하게 배치한 반전 효과가 의외로 신선하다. 무엇보다, 작가 출신 감독답게, 여러 등장인물과 조연들의 캐릭터가 실제 인물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저 생생한 캐릭터들이 지어내는 요절복통 우여곡절이 영화를, 그리고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지 그 숨은 신명이 기대 이상이다. 빠뜨릴 수 없는 미덕 하나 더. 신비의 여인, 매력남 마르첼로, 운명의 빌라 ‘브라마솔레’ 등을 설명이 아니라 영상으로 보여주는 디테일의 힘. <투스카니의 태양>이 보여주는 매력의 백미다.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 G.QT
    2017-05-29
  • 이서미 작가노트- 2017 개인전
    이서미 작가노트- 2017 개인전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4-9) 산수유나무의 무수한 가지들은 선이 유려하면서도 복잡하고 아름답다. 나무가 노랗게 변하면서 봄을 알리고 붉게 변하면서 결실의 계절을 맞이한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이 떠오르면서 저 나무는 참 걱정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련한 노란 빛으로 온 동네를 물들여서 눈을 호강시키는 즐거움도, 빨간 열매 수확의 기쁨도 저 걱정 많아 보이는 나무가 주는 선물이다. 저 나무를 통해서 보이는 인생도 다르지 않았다. 인생에는 어려움이 많지만 가지마다 꽃과 풍성한 열매라는 선물들이 그곳에 달려있다. 죽기를 구한 엘리야가 나무아래에 기진하여 누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어루만지시며 떡과 물을 먹이시고 다시 기운을 차려서 갈 길을 다 가도록 독려하셨다. 생각해 보니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였다. 걱정 많지만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가 가득한 나무, 그 아래서 잠깐 쉬며 천사가 건네는 시원한 생수를 마시며 기운내고 끝까지 걸어가는 것. 인생길이다. 나무 아래 인생길에 만나는 하나님의 손길, 주변의 천사들 손을 잡아 롯이 고모라를 떠날 때, 베드로가 감옥을 빠져나올 때 천사는 그들을 위기에서 끌어내는 역할을 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큰 위험에서 빠져 나온 적이 인생에서 여러 번 될 것이다. 흐린 날 흐린 날에도 세상은 아름답고, 혼자 걸어가는 것 같아도 동행하는 친구가 있다. 동행 어린이 옆에는 그들의 천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천사뿐 아니라 어린이 시절을 보낸 어른 천사들도 있다. 빛나는 열매 삶에는 각자의 빛나는 열매들이 있을 것이다. 인류는 아기천사들로 다음을 이어간다. 붉은 강에 강같이 흐르는 보혈의 피에 씻기어 깨끗하게 되는 사람들 그 때 모인 천사들 같이 기도해준 친구들-그들이 천사가 아닌가 싶었다. 하늘의 양식 오병이어 요6:9-13 38년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 요한복음5:1-15 예수님의 이적 시리즈 예수님의 이적 시리즈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많은 이적 중 일부를 그린 것이다.나는 내용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할 때 단색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색의 간섭 없이 직접적인 드로잉의 필치가 감정을 그대로 실어 나르기 때문에 내용과 감정이입상태에 집중할 때 단색 드로잉은 표현 방법으로 적절하다. 특히 모노타이프 과정에서 거친 붓자욱이나 밝은 부분을 닦아 낼 때 어깨관절을 사용하여 힘을 주게 되는데 이 때 신체의 힘이 좀 더 직접적으로 실리기 때문에 그리는 사람의 호흡이 그림에 스며들게 된다. 모노타이프 기법에서 그려가는 방식과 닦아내는 방식을 적절히 혼용하여 예수님의 이적 사건을 통해 감동된 부분들을 그려냈다.직접 그려지는 드로잉과는 달리 모노타이프로 그려지는 그림의 특성은 판 위에서 적절한 수정이 가능하고, 닦아내는 드로잉이 가능하므로 흰 부분도 드로잉의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즉 밝은 부분의 드로잉으로 인한 감정효과를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예수님의 이적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구성할 때 그 내용들을 적절히 이야기처럼 다 집어넣을 것인지, 여러 장으로 이야기처럼 풀어낼 것인지, 아니면 주관적인 해석만으로 그림을 그릴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내가 느꼈던 메시지의 핵심을 조금은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인 방법으로 풀어내기로 하였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은 지난 수천 년을 거쳐 방대한 양의 예술작품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다시 그리는 이유는 ‘새 노래로 찬양하라’라는 구절이 주는 메시지가 나에게는 의미가 있고, 이 내용들을 묵상할 때 나에게 허락된 개인적인 고백이므로 나의 색으로 다시금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과거의 양식이 지금 나의 양식과 같지 않으며 같은 내용이라도 오늘날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메시지는 항상 새롭기 때문이다. 성경의 내용을 스스로에게 새롭게 환기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G.QT
    2017-05-29
  • 남진 간증 콘서트
    우리 교회 시스템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목사님 설교야 시간 있음 나와서 들어보면 알어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텨 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셔도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도전을 유엔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히틀러의 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진짜일까 가짜일까. 물론 가짜 뉴스다. 문제는 지금도 이 뉴스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데 있다. 가짜 뉴스가 세계 각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로도 등장했다. 지난해부터 두드러진 현상이다. 뉴욕타임스에는 ‘페이크 뉴스와의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실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가짜 뉴스의 실제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2월 1일 충격적인 대선출마 포기를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그리고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습니다.” 유력 대선후보까지 끌어내린 가짜 기사는 정확히 무엇일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페이크 뉴스의 개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논의가 채 진행되기도 전에 현상이 급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의견도 분분하다. 일단은 가짜 뉴스로 통용되고 있지만, ‘조작 뉴스’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김위근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흔히 페이크 뉴스를 가짜 뉴스로 번역한다. 이 번역은 페이크 뉴스를 정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페이크’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분야는 스포츠다. 스포츠에서 페이크는 속임수로 번역된다. 합의된 정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임수 뉴스’ ‘조작 뉴스’로 번역한다면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번 대선의 혼란한 정국을 틈타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가수 남진 씨가 때 아닌 곤욕을 치렀다. 누군가 남진 씨를 사칭해 유력 대권주자를 비난하는 글을 SNS에 퍼뜨린 것이다. A4용지 10장 분량의 이 글은 '호남 사람들이 똘똘 뭉쳐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켜놨더니 문재인이 괄시하고 홀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남 씨가 평소 사용하는 호남 사투리로 적혀 있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는 ‘가짜’로 밝혀졌다. "처음엔 장난한 줄 알고 하다 말겠지 그랬는데 계속 (지인들에게 문자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심각하구나’ 하고 경찰서를 찾아갔죠.“ 남진 씨는 글에 적힌 사투리가 어설프고, 곳곳에 인용된 개인사도 사실과 다르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글에) 딸이 넷이라는 거 보고 깜짝 놀랐네요. 내가 딸 셋에 아들 하나거든요. 또 군대를 월남서 25개월인가 있다 왔는데 6개월이라고 썼더라고요.“ 특히 남 씨는 지역감정 부분에 대해 언성을 높였다. "마누라 고향이 부산 동래구 칠산동이고 우리 장인 장모 산소가 다 거기 있고 부산 분들이셔. 내가 전라도말을 하고 전라도 사람으로 많이 알고 있으니까 장난을 누가 친 모양인데...“ 2017년 4월 반기문처럼 가짜 뉴스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유명한 그는 1970년대 나훈아와 함께 시대를 양분했던 불세출의 트로트 가수다. 남진(본명 김남진 金南鎭 1946. 9. 27)은 1967년에 히트곡메이커였던 작곡가 박춘석의 ‘가슴 아프게’ 를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가수인 그가 새에덴교회 주보에 협동명예장로 김남진으로 소개되고 있다. 남진의 직업은 가수였지만 1967년에 박상호 감독의 영화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처음 출연하면서 부터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얻었던 남진은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1971년에 전역한 후 ‘마음이 고와야지’ 를 발표하였고 서울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복직 당시 정통 트로트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나훈아와 가요계의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1972년에 ‘님과 함께’ 를 발표하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고 톱 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게 되면서 1970년대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서로 호남과 영남 출신의 가수로서 지역 사이에서 경쟁을 벌였으며 박진감 넘치고 활발한 성격의 남진과 조용하고 서정적인 성격을 가진 나훈아의 차이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1970년대의 가요계를 이끌었다. 당시 가수왕에는 줄곧 남진이 1등을 하여 가수왕상을 수상하고 나훈아는 2등을 한 것으로 기록되었고 전성기를 맞이한 남진과 나훈아를 꺾을 가수가 없었다. 2004년 5월 남진(58)은 데뷔 40주년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막 날릴 때 시들어가는 선배들을 봤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실감 못했죠. 잊혀지고 박수가 멀어져갈 때의 공허함은 말로 못해요. 그 심정은 인기를 가져본 사람만 알지요. 담배를 하루 서너갑씩 피우고 사업에다 마음을 붙이려고도 했지요. 그런 세월 속에서 ‘노래가 없는 남진은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 자신을 찾으려면 꼭 노래를 해야 한다, 노래를 해야만 내가 사는 것이라는 걸... 이제 인기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못한 노력을 하고 싶어요. 가수로서 ‘혼이 담긴’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는 거죠. 저는 ‘가슴아프게’를 37년간 불렀지만, 조금 다른 ‘가슴아프게’를 부를 겁니다. 이제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 것 같아요.” 그는 1980년에 미국으로 가서 지내다가 1982년에 귀국하여 ‘빈잔’을 발표하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남진의 귀국과 함께 남진은 정통 트로트 곡 ‘빈잔’이 크게 히트하였다. 2009년에는 장윤정과 함께 ‘당신이 좋아’를 발표하여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2010년 데뷔 45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하고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해 천사백만 명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가 1970년대의 아이콘이자 당대의 아이돌 스타였던 가수 남진의 베트남전 참전 시절을 연기했다. 그런 가수 남진이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선 이틀 전 5월 7일 주일 오후 7시 경기도 용인시 죽전에 있는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에서 장로 남진의 신앙 간증 ‘봄봄 콘서트’를 가수 장윤정과 함께 가졌다. 이것은 어버이 주일을 맞아 지역의 어버이들을 위로하고 새신자들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의 웅장한 아래위층을 신자들이 구역별로 가득 메웠다. 글로리아 찬양단(지휘 김연호 목사) 합창에 이어 유쾌한 목사 소강석이 환영메시지를 전했다. “저는 새에덴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입니다. 지금 제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보다는 우리 남진 장로님과 장윤정 선생님을 보러 오신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찾아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좋은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다닌다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도 전부 고학을 했습니다. 얼마나 아버지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저를 쫓아낸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는 제 손을 잡고 ‘너 때문에 천국을 가서 너무 너무 고맙다. 내가 너를 몰랐으면 하나님을 모르고 천국을 몰랐을 텐데 너 때문에 천국을 안다’ 말하시며 제 손을 잡고 떠나셨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왜 그렇게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때리고 구박을 하셔도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어머니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 주변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들을 초청해 즐거운 시간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갖도록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함께 즐거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시간을 통해 인생은 한번인데 주변에 가까운 교회 나가시고 또 마땅한 교회가 없어 저희 교회에 나오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못하시면 건강에 유익이 없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잘 오셨죠. (온 회중 ‘네’라고 대답) 즐겁고 유익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제19대 대전 이틀 전이라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김진표(장로) 의원 부부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부인이 직접 콘서트에 참여해 유쾌한 목사 소강석의 재치 있는 소개로 박수와 조명을 받으며 인사를 했다. 국민가수 남진이 첫 곡을 신나게 흔들며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노래하고 환호 속에 인사를 했다. 그는 노래나 입담이 걸쭉했다. “반갑습니다. 오늘 저희 교회 함께해주신 우리 형제자매님들 또 누님들 형님들 어르신 여러분들 모시게 돼서 정말 영광스럽고 반갑습니다. (환호) 무대에서 노래하면 몸 잘 돌아가는디 교회에서 헌께 잘 안 돌아가네. (웃음) 자 오늘 나이 드신 어르신들 모시고 공연을 하게 돼서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반갑습니다. 또 이렇게 뜻 있는 시간이다 보니 굉장히 보람 있고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나이 드시면 이제 저도 좀 먹었습니다만 (71세) 오십이 넘었어요. (박장대소) 아따 노래헌 지가 50이 넘었다고요. 세월 속에 아무래도 그리운 추억이 있죠. 많은 추억이 있는데 저도 60년대 데뷔했으니까요. 어르신들 모시고 추억 속으로 한번 가고 싶어요. 그때 영화 주제가를 불렀는데 손수건이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입니다.” 간주가 흘렀다. 1968년 7월 20일 개봉한 1960년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문희와 신영균 주연)의 주제가를 남진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슬프지만 간드러지게 노래했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받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영원히 그 사람을 사랑해선 안 될 사람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 번아 아 안녕 나만이 가야하는 그 사랑의 길이기에 울면서 돌아설 땐 미워도 다시 한 번 아 아 안녕 “휙∼.” 양 손 검지와 중지를 각각 두 개를 입에 넣어 부는 손가락 휘슬이 장내를 휘감고 박수가 우렁찼다. 소강석 목사는 손가락 휘슬도 불고 나중에는 ’야광봉을 흔들며 호루라기도 불어댔다. 남진이 노래하듯 입을 열었다. “60년대 히트작인데 노래하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 노래는 아무래도 되살리는 기능이 있죠. 저는 오늘 특히 함께하시는 분 가운데 자매님들이 많으신데요. 젊었을 때는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낯바닥만 고와야 여자냐’를 요 주둥아리로 노래했는데요. 그때 22세였습니다. 그런데 노래는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자가 낯바닥이 예뻐야지’ 했습니다. (박장대소) 흐흐 속으로는 외적인 것을 중시하면서도 노래는 그렇게 불렀어요. 정말 오늘 여러분들 뵈니까 너무 아름답고 특히 우리 누님들 어머님들 참말로 오늘 뵈니까 분위기가 있고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간주가 이어졌다. 남진이 말하듯 노래했다. 새까만 눈동자의 아줌마(여자들 웃음)겉으로 거만한 것 같아도 음음마음이 비단 같이 고와야 정말 너무 아름답지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오늘 이 자리의 여성이정말로 여~자~지~ (환호) 사랑을 할 때는 두 눈이 먼다고 해도...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환호 손가락 휘슬 ’야광봉 아우성)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깊은 뜻이 있어서 우리 목사님 이 자리를 준비하셨는데요. 요즘 우리 가요계 옛날 말로 분위기가 좀 거시기 합니다만 이 가수가 있어서 정말 우리 가요계가 힘이 나고 저하고도 정말 인연이 깊습니다. 우리 가요계에서 정말 노래 잘하고 제가 가장 아끼고 마음씨 착하고 훌륭한 주부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 가요계 신데렐라 장윤정 양을 소개합니다.” 장내가 무너질 것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훤칠한 장윤정이 오른쪽에서 나왔다. 소리가 더욱 커졌다. “처음 온 모양이지.” “처음 오고요. 선배님이나 저나 공연하면서 이렇게 많은 관객 분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죠. 대부분의 공연장이 여기보다 못 하거든요.” “우리 교회 시스템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목사님 설교야. 시간 있음 나와서 들어보면 알어.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시잖아요. (환호) 우리 윤정 양 인연이 돼서 여기 오게 됐습니다. 요즘은 노래를 듣는 시대가 아니라 부르는 시대잖아요. ‘님과 함께’ 작곡하신 남국인 선생의 멋진 곡이 나와 장윤정 양과 같이 불렀는데 그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장윤정을 보며) 한번 불러볼까.” 둘이 불러 히트 친 ‘당신이 좋아’ 듀엣이 이어졌다. 그대는 내 사랑 당신도 내 사랑이 세상에 그 무엇도 쨉이 안 되지원앙이 따로 있나 우리가 원앙이지한 쌍의 해피한 원앙이지아~꿀맛 같은 그대 사랑에내 인생을 걸었잖아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바람 불어도 좋아좋아 좋아 당신이 좋아~~~~ (박수 환호) “여러분 이제 장윤정 양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시고 노래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장윤정의 히트곡 ‘어머나’를 비롯한 노래들이 이어졌다. 장내가 즐거움으로 달아올랐다. 청중 가운데 가장 뜨겁게 반응한 사람은 유쾌한 소강석 목사였다. 그는 맨 앞자리 보조 의자에 앉아 손가락 휘슬 호루라기 야광봉 등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한껏 드러냈다. 사람들이 ‘어머나’를 불러달라고 했다. 장윤정은 말했다. “그건 작년에 끊었습니다. 제가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왔는데... (웃음) 사진은 얼마든지 찍으셔도 좋은데 제가 눈 뜨고 있을 때 찍어주십시오... ‘꽃’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상품 추첨이 있고 남진이 다시 나와 노래하며 사이사이 간증을 했다. “이렇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청중 아멘) 노래는 힘이 들어요. 어제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2회 공연을 했는데 2시간인데 35곡을 불렀어요. 1회 공연에 60곡을 불러요. 숨이 찹니다. 아직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춤추고 노래하면 더 힘들어요. 이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박수 환호)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하나님 믿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렁찬 아멘) 내일 어버이날이죠. ‘어머님’ 불러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긴날을 하루같이 이 못난 자식위해 손발이 금이 가고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몸만은 떠나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오래 오래 사세요 편히 한번 모시리라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 몸도 아프고 집안에 여러 복잡한 일도 있고 그래도 하나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의지할 데가 있어 참 좋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위로와 위안을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가족은 내가 베풀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쓸쓸하고 외로웠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을 받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박수와 아멘) 자식이 있지만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니 그리고 은혜도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모두는 갑니다. 분명히 가죠. 또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된다니 그 은혜 무엇으로 갚을지 알 수 없습니다. 요즘 나이도 먹고 그래서 혼자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합니다. 다 자고 그러니 쓸쓸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이렇게 앉아 하나님 생각을 하며 이말 저말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합니다. 잘못한 일 잘한 일 뭐 다 말합니다. 하나님 들어주실지 안 들어주실지 잘 모르지만 하고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몰라요. 우리 말을 들어주시는 그런 분이 계신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멘)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시잖아요. 우리 죄를 지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목사님 통해 잘 듣고 간직하고 항시 의지하고 살면 힘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시겠지라. (아멘) 난 잘 모르는디 목사님이 많이 갈켜 줘 가지고 알게 됐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산다면’이라고 어깨춤을 하며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듣다보니 주님과 함께 그 나라 그 집에서 함께 사는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남진은 퇴장했다. 2017-05-15
    • G.QT
    2017-05-15
  • 삼호교회 부활절
    우리의 삶 속의 전환적인 사고와 마음성공적인 삶의 결정적인 이유가 돼 주님을 만난 자의 길은 타락과 멸망의 길이 아니라 영광과 부활 생명의 길 작년 2016년 3월 27일 부활절에는 서천읍교회를 갔다. 그 교회 담임 김영우(총신 총장 부총회장 후보)는 부활절인데도 없었다. 나중에도 오지 않았다. 총신 총장 공인인데 부활절 행사 어디에도 참여한 흔적이 없었다. 금년 2017년 4월 16일 부활절에는 호남의 거함(巨艦) 이형만 목사(총회 기소위원)가 시무하는 전남 영암군 삼호읍 소재 삼호교회를 방문했다. 호산나 찬양대의 찬양과 나판열 장로의 기도 후 이형만 목사는 본문 누가복음 24:13-35을 봉독하고 ‘부활신앙으로 회복하라’는 제목의 설교를 낮은 음성으로 심령을 파고들게 전했다. “수년 전만 해도 총회에 올라갈 때는 차를 가지고 광주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 리무진을 타고 삼성역으로 가서 내려 지하도를 통해 나가 고개를 올라가야 했습니다. 삼성역 지하에 코엑스로 가는 길이 있는데 거기에 세계지도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지도가 지금 형태로 만들어진 까닭은 그것을 만들 당시 유럽인이 만들었기 때문에 유럽을 세계지도의 중심에 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세계지도가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계지도를 뒤집어서 거꾸로 놓고 보면 한국이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대한민국이 세계중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발상의 전환에서 오는 것입니다. 강대국 속에 있는 작고 약한 국가이지만 이런 생각을 뛰어넘어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듯 우리도 세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오늘 김영민 집사님이 양복을 입고 계시니까 장로님 같으시네요.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전환적인 사고와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가 성공적인 삶의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25리 10킬로 되는 엠마오로 내려가면서 자기들이 겪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중 한 제자는 글로바고 다른 제자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왜 나오지 않을까요. 현대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그 제자가 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고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만이 겪은 경험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고 믿음을 키웠던 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자 절망과 허탈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성경의 말씀을 설명하니 그들이 마음이 뜨거워져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신앙으로 나아가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첫째 부활의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기독교를 가리켜 부활의 종교라고 합니다. 즉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극적인 차이는 부활과 죽음입니다. 모든 헛된 종교는 죽음으로 멈춰있지만 오직 기독교만이 죽음을 뛰어넘는 부활의 신앙으로 나아갑니다. 진정한 종교라면 인간의 죽음 저 너머의 삶을 이끄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의미이며 가치이며 목표입니다. 죽음으로 끝난다면 종교나 철학이나 도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부활에 대해 다윗은 시편 16:8에서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다니엘 12:1~3에서 ‘땅의 티끌 같은 자들 많은 사람이 영생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다니엘이 자기 민족의 소생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환상은 자기 민족만의 회복이 아니라 온 인류의 회복 그리고 정치적 군사적 회복만이 아니라 진정한 죽음의 권세에서 회복하는 영생의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마른 뼈의 환상을 통해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를 뛰어넘는 부활의 세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사건은 점점 진행되어 예수님의 생존 시에도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니 예수님은 마태복음 12:39 이하에서 ‘이 시대에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요나가 삼일 만에 물고기에 배에서 나와서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부활을 요나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으신 지 사흘 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심을 증거하십니다. 둘째 마음이 열려야 부활의 신앙이 획득됩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자신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말하고 이제 그들과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먹는 순간 그들의 눈이 열리고 부활의 주님을 보게 됩니다. 부활의 신앙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신앙의 어려움입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바라는 세계와 주님이 주시는 원하는 세계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주님으로 인해서 이루어질 정치와 군사적 해방을 추구하였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주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육신에 붙잡혀 자신의 주장과 그 시대의 고정관념에 잡혀있기에 부활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리숙한 사람들에게 부활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제자들에게 주님이 성경의 말씀을 풀어줄 때 마음이 뜨거워진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쳐 뜨거워질 때에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고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셋째 부활의 신앙은 올라갑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사람은 승리의 길 옳은 길 바른 길로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훗날에 영광과 존귀와 의와 복으로 다가올 길인지 이 길은 타락과 방종의 길인지 현재 우리 자신을 보면 정확히 압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절망과 멸망으로 가는 길에서 소망과 생명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주님을 만난 자의 길은 타락과 멸망의 길이 아니라 영광과 부활 생명의 길입니다. 영광과 생명의 길은 주님 안에서 걷는 길이며 날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이며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형만 목사는 오후 3시 고흥 팔영체육관에서 있을 고흥군 부활절 연합예배 축사를 위해 식사도 거른 채 바삐 움직였다. 2017-04-25
    • G.QT
    20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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