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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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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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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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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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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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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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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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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큐티주석8 안식과 주일
    Der Samstug(Saturday) 안식과 주일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1-3 알싸한 아침 작업실. 테이블 위에서 전기선을 타고 물 주전자는 푹푹 김을 내며 끓는다. 나는 기다린다. 투명 글라스에 물을 붓고 커피 가루를 서너 번 털어넣는다. 물에 퍼져 가라앉은 블랙커피 몇 모금 마시면서도 기다리고, 맥심의 묵직한 향이 낮게 깔리며 시벨리우스의 선율과 섞이는 순간에도 기다린다. 그것 없이는 아침마다 만나는 키보드의 머쓱함을 이겨낼 수가 없다. 그것이 몸 자락 여기저기 시나브로 스며들 때에야 비로소 맹수 앞에 선 전사처럼 창 대신 손을 풀며 하얀 노트북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흡사 삼일로 창고 극장에서 '고도(Godot)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나는 기다리고 기다린다. 무릇 모든 '쟁이'가 그럴 테지만 나는 일찍부터 그 불가해한 느낌에 포박돼 있었다. 아니 중독이라는 표현이 낫겠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엄습해오는 그 대체 불가의 느낌. 육적이고 영적이며 언어적이고 비언어적인, 온몸을 가볍게 진동시킬 만한 그 야릇한 흥분과 전율, 그 열감(熱感)을 대체 '설렘'이라는 말 아닌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말은 '시나브로'다. 국어사전에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 풀이한 우리말 시나브로. 설레며 열심히 기도하며 글을 쓰다보면 시나브로 그분에게 다가가게 되리라. 그분을 닮은 형상과 모습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남긴 음악은 마르지도 닳지도 않는 인류의 유산이다. 그렇듯 명 설교에는 크고 작은 마음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힘이 있다. 특별한 달란트로 평생을 헌신한 설교자들이 남긴 믿음 또한 저마다의 독특한 울림이 있는 예술 작품이다. 내가 항상 목말라하는 인천제이교회나 새에덴교회 같은 이상적인 울림의 교회 설교단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좋은 설교를 좋은 설교자가 좋은 성대로 좋은 공간에서 좋은 회중과 나누며 깊은 믿음의 울림을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감히 누릴 만한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다. 나는 꿈을 꾼다.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면서 목사의 삶을 사는 것이 꿈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요셉처럼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다. 꿈이 없는 삶은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고 그래서 늘 기뻐하지 않고 일마다 감사하지 않는 신자와 같다. 반대로 꿈을 꾸는 신자의 삶은 쉬지 않고 기도해서 항상 기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날마다 주일처럼. 믿음의 멋은 안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이다. 믿음의 멋이 있으려면 우선 성경의 지성이 풍부하고, 생각이 진실하고, 겸손해야 한다. 믿는 자의 생명 양식 성경은 말씀한다.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God reposing on Sabbath. 창 2:1-3 6일 창조와 안식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창조 이야기 진행이 장이 나뉘지만 이어진다. 1절. 천지 the heavens and the earth 궁창(the firmament) 또는 우주(the universe)를 의미한다. 라틴어 우니베르숨(universum)은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우주를 가리키는 낱말의 어원이 되었다. 한편, 고대 그리스어 어원의 코스모스(cosmos) 역시 우주를 가리키는 낱말로서 사용된다. 코스모스는 라틴어의 우니베르줌이 단순히 ‘온 누리’를 뜻하는 것과 달리 질서를 갖는 체계로서의 우주를 뜻한다는 점에서 다른 언어로 대체하기 어려운 독특한 개념이다. 천체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코스모스로 처음 지칭한 사람은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70년 ~ 기원전 495년)이다. ‘만물이 다’ ‘all the host of them’ 지구를 포함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총체. ‘이루어지니라’ ‘finished’ 창조가 완성되었다. 창조된 이래 세상의 진행에서 어떤 영원한 변화도 전혀 없고 동물들의 새로운 종이 만들어진 적도 전혀 없고 자연의 법칙이 폐기되거나 더해진 것도 전혀 없다. 그 모든 창조가 6일뿐만 아니라 한 순간에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더 고등한 피조물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교육을 위해서도 점진적이었다. 그 완성의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욥 38:7 2절.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여기에서 ‘안식하시니라’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로 지쳐 쉬신 것이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사 40:28) 분이기 때문이다. 그 안식의 의미는 창조 사역을 마치셨다(ceased from working)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도 모든 종류의 일과 노동을 마쳐야 한다는 계명에 상응하는 본보기를 제시하신 의미가 담겨 있다. 3절.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blessed and sanctified the seventh day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의 히브리어 사바쓰(Sabbath)는 ‘멈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마치셨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안식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휴식하기 위하여 잠을 자듯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셨지만 그의 말씀과 섭리로 세상을 운행하고 다스리셨다. 그렇듯 안식이란 어떤 일을 하다가 손을 놓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죄 짓는 일을 하다가 거룩한 일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교리문답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과 오락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이 이러한 일들은 엿새 동안만 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만이 세상적인 것이거나 신앙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신앙적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과 오락을 통해서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일주일 가운데 하루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하루는 우리의 주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일을 통해 몸이 쉼을 얻고 힘을 얻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일을 안식일로 삼는 문제에는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안식교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토요일이 구약의 안식일에 맞는다는 것이다. 둘째, 신약의 주일이 구약의 안식일과 같은 날이기 때문에 구약의 방법과 똑같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라 부르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안식일은 여호와에게 거룩히 지켜야 한다. 이날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의 용무는 미리 정리한 후에 세상일과 오락에 관한 말이나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온종일 거룩하게 쉬면서 공동예배와 기도와 구제를 행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개혁주의 청교도 신학은 이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셋째,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폐기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나름의 특징을 지닌 새로운 날 주일이 안식일을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존 칼빈의 견해이다. 칼빈은 유대인들을 위한 거룩한 안식일은 폐지되고 그 날을 대신하여 다른 새로운 날이 정해졌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주일도 하나님이 세우신 날이다. 그러나 안식일과 달리 이 날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날이고 안식일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안식일은 휴식하고 전혀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엄격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주일은 기쁨과 활동과 기대로 넘치는 날이다. 주일의 특징은 첫 번째 주님의 날에 있었던 사건인 부활을 기리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그들을 가르치고, 성령을 주고, 그리고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주고 승천하셨다. 안식일이 폐지되고 주일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초대교회의 예배가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로 재빨리 대체되었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십계명의 제사 계명이 안식일만 아니라 다른 날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이 계명은 사실 모든 날에 적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섬기듯이 엿새를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구별하여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다음 엿새를 위하여 세상일을 멈추고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2-24 QT 되새김 A 하나님께서 우주 창조를 6일에 마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B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는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는 것을 주일과 비교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D 그 원리를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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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4
  • 큐티주석7 하나님의 형상
    Michelangelo, Creation of Adam 하나님의 형상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24-31 AP통신, CNN 등 외신들은 900여년 만에 '회문(回文·palindrome)의 날'을 맞아 전 세계가 들뜬 분위기라고 2020년 1월 2일 보도했다. '회문'이란 앞에서부터 읽으나 뒤에서부터 읽으나 같은 문장이나 단어를 뜻하는 말로, 2020년 02월 02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회문의 날은 909년 전인 1111년 11월 11일이었으며 다음 차례는 2121년 12월 12일이어서 101년을 기다려야만 볼 수 있다. 2121년 12월 12일 이후에는 3030년 03월 03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란군이 8일 새벽 미군 주둔 이라크 기지 2곳에 15발의 미사일 로켓을 퍼부으며 보복 공격을 단행한 가운데 이란 테헤란 공항에서 이날 아침 탑승객 176명을 태운 우크라이나 민간 여객기(보잉사 기종)가 이륙 직후 갑자기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애초에 ‘기체 결함’에 따른 사고로 알려졌으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크라이나 당국은 “사고 원인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어떤 추측도 삼가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최고지도자가 이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이란사람들이 분노해 시위하는 모습은 신기하다. 이란 정부는 2020년 1월 8일 격추된 우크라이나 민항기의 잔해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며 사실 은폐에 안간힘을 썼다. 이란혁명수비대 대공 사령관이 사흘 만에 “실수로 격추된 사실을 알았을 때 죽고 싶었다”고 자백한 건 심지어 순수해 보인다. 우리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어서인가. 집권 세력의 거짓말이나 이중적 행각쯤은 내로남불, 가볍게 넘겨버리고 더는 분노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이란에선 가장 분노하는 대목이 체제를 책임지는 지도부가 비행기 결함에 추락했다고 거짓말한 점이라니 신선하다. 우파든 좌파든, 이슬람이든 무종교이든, 옳은 건 옳은 것이고 거짓말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 지당한 사실을 인정하는 이란사람들이 고맙고 감동스럽다. 테헤란에서 반(反)정부 시위 단골 구호인 “미국에 죽음을!” 대신에 “거짓말쟁이에 죽음을!”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외신에 새삼 이란을 다시 보게 됐다. . 2,500년의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이란은 1979년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를 바꾸는 진짜 혁명을 했다. 그러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가 지금 같은 신정(神政) 체제를 원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이란혁명은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공중납치 당했던 것이다. 반정부 시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물론 지식인과 중산층, 학생과 노조, 민족주의와 좌파 세력도 참여했다. 부패한 팔레비 국왕 축출이라는 목표는 같았다. 1979년 2월 1일 망명지에서 귀국한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는 탄탄한 성직자조직을 통해 이란을 장악하고는 피의 전투 끝에 2월 11일 승리를 선언했다. 그해 3월 말 이슬람 공화국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면서도 어떤 나라로 갈 것인지 이란국민이 몰랐다는 건 기막힌 일이다. 이슬람 공화국이라고 해도 음주를 강하게 단속하는 나라쯤 될 것으로 여겼다는 1979년 외신도 있다. 투표소는 뻥 뚫린 공개적 장소였고 유권자 명부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국민투표는 사기였던 셈이다. 도덕적 자신감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이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믿는 점에서 호메이니 세력은 문재인 촛불혁명세력과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 세력과 손잡고 노조 등 좌파세력과 여성운동집단을 몰아낸 다음 호메이니 독주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서구 앞잡이로 몰아 알라의 이름으로 참혹하게 숙청하는 과정은 공산당 통일전선전술을 능가했다. 그렇다면 이슬람 성직자들은 정말 이슬람 율법에 충실한 나라를 추구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정말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한 나라를 추구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실제 원하는 것은 권력과 부(富)였고 혁명수비대(또는 정보경찰과 공수처) 같은 폭력을 통해 국민의 머릿속까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면 그들은 정권을 잡지 못했을 거다. 이란 성직자들의 혁명이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연구는 너무나 많다. 1970년대 중반 국제유가 파동 여파로 대거 해고된 노동자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듯 성직자들은 이슬람 영향력 약화를 위해 팔레비 왕이 종교재단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분배하자 분연히 일어섰다는 분석들이다. 성경을 따르는 보수주의자는 신중하다. 변화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부작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최악의 사태를 미리 차단하자는 것이다. 이런 태도 아래에는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 역사를 조절하신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보수적 신자는 태극기 부대 류의 정치적 독선과 조국 류의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혐오하고 신앙의 전통과 삶의 현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기도한다. 독일의 유명 매체인 슈피겔(spiegel)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을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라는 문구의 표지를 발간해 논란이 되고 있을 때 믿는 자의 생명 양식 성경은 말씀한다. 창 1:24-31 하나님의 형상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24절. 땅은 생물(the living creature)을 그 종류대로 내되 생물(生物)은 생명이 있는 것을 말하며, 보통 동물과 식물 또는 사람 등의 존재를 두루 일컫는다.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생물은 박테리아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며, 복잡한 관계의 생명권을 이룬다. 하나님께서 지상 동물들을 만드심으로 창조가 더 진전되었다. 모든 생물의 다양한 종(species 種)을 세 종류(class)로 구분하셨다. 25절. (1) 땅의 짐승(the beast of the earth)을 그 종류대로(beast of the earth after his kind) 동물(動物)은 일반적으로 운동 능력과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이라고 하는 말은 특히 일상어의 수준에서는 사람을 포함하지 않는 ‘짐승’의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2) 가축을 그 종류대로(cattle after their kind) 집짐승은 인간이 이용하기 위하여 기르는 동물 즉 노동이나 사육 가능한 초식 종류의 동물을 말한다. (3)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every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after his kind) 거대한 파충류(爬蟲類 reptile)부터 작은 모충(毛蟲 caterpillar) 등의 모든 기는 것까지 망라한 것들을 이른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이제 창조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하나님이 이르시되’(God said)라는 말씀은 이루시려는 사역의 특별한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가시적인 머리와 지배자로서 다스리는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대표자가 될 한 피조물의 형성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형상과 모양이 두 번 언급되는 이 말씀에서 인간의 독특성과 우월성이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 즉 짐승이나 식물이 갖지 않은 인격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격을 갖는다는 것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어디에 있는가. 직립 형태나 얼굴이나 지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귀나 천사들이 이 점에 있어서는 인간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불멸성에 있지도 않다. 인간은 과거나 미래에도 영원하신 하나님같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하나님 형상은 일반적으로 원의(原義 original righteousness)라고 하는 인간 영혼 속의 도덕성(the moral dispositions)에 있다. +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전 7:29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 3:10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4 새사람이 되는 새 창조는 오직 하나님의 이 형상의 회복뿐이므로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을 따라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28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말씀에서 인간의 독특성과 우월성이 나타난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특별하게 창조하셨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창조 이후에 진화의 과정을 밟았느냐는 문제에 의견을 달리한다. 성경은 진화 과정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진화론과 타협할 수 없는 아주 분명한 이유는 이브에게 어머니가 없었다는 사실을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8-9 아담과 이브의 특별한 창조는 우리 몸이 여러 면에서 동물과 비슷하긴 하지만 동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정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음 받고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거대한 우주에 비교해 인간을 비하하려는 현대 사상의 경향을 성경은 단호히 거부하고 인간의 존재를 귀하게 여긴다. 더욱이 하나님은 구원한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모든 나라 모든 세대의 인류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색인이든 서로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고 살아야 될 최초의 한 부모의 후손이다.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 17:26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 4:24-25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은 얼마나 위대하신가. +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9 +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시 104:24-25 하나님은 그의 영원하신 지혜로 계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을 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 QT 되새김 A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B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사실로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모든 나라 모든 세대 인간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라. 신자로서 인간의 진화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모든 나라 모든 세대의 인류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색인이든 최초의 한 부모의 후손이므로 서로 어떻게 대하고 살라고 성경은 말씀하는가. 그 원리를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엡 4:24-25).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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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4
  • 큐티주석6 궁창에 광명이 있어
    궁창에 광명이 있어 1:14-23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 1:14-23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년 5월 5일 ~ 1855년 11월 11일)가 1849년 "안티-클리마쿠스"라는 익명으로 쓴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했다. “오직 기독교인만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자연인이 알지 못하는 용기를 획득한다. 그는 이 용기를 더 두려운 것을 무서워함을 배움으로써 획득한다.” 기독교인은 고독할 때 더 두려운 것 즉 천지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과 인생의 생사(生死) 화복(禍福)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를 얻게 된다. 하나님을 독대하는 그 용기의 기회는 혼자 있는 시간에 ‘땅에 비취는’ 빛처럼 온다. 스페인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아란후에스라는 시골 역에 닿는다. 스페인 왕실의 별궁이 자리하면서 형성된 소도시로 아란후에스 궁전은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궁전에 딸린 아란후에스 정원 또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명승지다. 이 궁전과 정원을 찾는 사람들로 시골 마을은 연일 북적인다. 아란후에스 시청 광장의 카페에 앉아 뜨거운 태양이 내뿜는 열기에 달아오른 몸을 식히려 물이라도 한 잔 마신다. 그러고 있자면 매 정시 시청 건물의 대형 시계가 연주하는 음악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협주곡일 이 음악은 궁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란후에스 협주곡'이다. 어떤 이들은 이 음악 덕분에 아란후에스 궁전과 정원이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어느새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일어나 그 아름답다는 정원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음악을 작곡한 사람은 그 정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 그는 아내의 팔에 의지해 정원을 걸었다. 관목들이 우거진 숲속에 작은 수로와 연못들, 이국적인 분수와 고색창연한 석상들이 가득한 정원을 걸으면서 아내는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에게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풍광 하나하나를 묘사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맹인 작곡가는 당시의 기억이 빛처럼 환하게 되살아나 '아란후에스 협주곡'을 썼다고 한다. 1991년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로드리고에게 후작 작위를 수여하였으니 명칭은 '아란후에스 정원 후작'이다. 음악가로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영예였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의 2악장을 듣고 있으면 여름날 스페인 정원의 신선한 향취가 나고 그 정경이 빛을 비추듯 밝게 보인다. 그 아름다움 속에는 가장 힘든 제약을 지닌 채로 누구보다도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결국에는 어려서 원했던 모든 것을 이룬 하나님의 은혜와 한 남자의 불굴의 의지도 배어있다. 지난 2019년 2월 21일 이스라엘 최초의 달 탐사선 '베레시트'(Beresheet·히브리어로 창세기)가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베레시트는 남아공 태생의 이스라엘 억만장자 기업가 모리스 칸 등의 기부금 1억달러가 투입돼 만들어진 사상 첫 민간 달 탐사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억 달러는 역대 달 탐사선 중 가장 적은 비용이다. 이 탐사선은 무게 585㎏, 폭 2m, 높이 1.5m의 식기세척기 크기로 역대 달 탐사선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 인근 관제센터에서 직접 발사 장면을 지켜봤고 이스라엘 전역에 생방송 됐다. 성공적으로 발사된 달 탐사선은 47일 동안 지구를 수 차례 회전하면서 달의 중력을 이용해 달에 접근했으나 4월 11일 착륙을 시도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실패했다. 외계인이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간 인류는 그런 만날 수 없는 외계인을 상상 속에서 수없이 그려왔다. SF영화 속 외계인은 곤충이나 문어의 형상에서부터 인간과 유사한 모습 등 다양하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눈이 하나가 아닌 2개라야 거리감을 느낄 수 있고, 3개라면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데 지나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며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외계 행성 속에 생명이 움트고 고등 생명체로까지 진화한다면 인류와 비슷한 모습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창 1:14-19 넷째 날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14절.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let there be lights in the firmament 대기는 완전히 정화되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구름이 없는 하늘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그 장관(壯觀)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들이 ‘궁창에’(in the firmament)에 있는 것처럼 서술되고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것들이 실제로는 까마득히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보이는 것 같다. 16절. 두 큰 광명 two great lights 창조의 넷째 날의 결과는 처음으로 지평선에 나타난 달로 인해 해넘이(sunset)의 시작으로 생각된다. 달이 반짝이는 작은 별들에 비해 ‘큰 광명’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달의 엷고 은은한 광휘는 해의 눈부신 광채로 인해 작은 광명으로 밤을 관장하게 된다. 태양의 눈부신 천체(天體)가 아침에 솟아오르고 점차 그 영광의 빛이 자오선(meridian)에 이르게 될 때 ‘더 큰 빛’(the greater light) 즉 큰 광명으로 낮을 지배하게 된다. 이 두 광명이 넷째 날에 창조된 것(created)이 아니라 ‘만들어졌다’(made)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세상을 비추는 발광체들로 봉사하는 중요하고 필요한 직무를 위해 구성되고(constituted) 지명되었고(appointed) 그리고 두 광명의 운행과 영향으로 시간의 진행과 구분을 조절한다는(regulating) 의미의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양(太陽)은 태양계 중심에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다. 본래 한국어로 ‘해’라고 하며, 태양이란 한자어는 음양(陰陽: ‘물과 불’, ‘그늘과 볕’, ‘차가움과 뜨거움’ 등) 가운데 가장 뜨거운 양(陽)이라는 뜻이다. 지구를 비롯한 태양 여러 행성과 소행성, 유성, 혜성 등의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지구는 태양을 일정한 궤도로 공전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연중 일정한 궤도를 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궤도를 황도라 한다.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는 것 외에도 스스로 24시간에 1회,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 표면에서 관측자 눈에는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일정 시간 동안 하늘을 서쪽으로 횡단한 뒤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에 도착한 햇빛 에너지는 식물의 광합성을 일으켜 거의 모든 지구상 생명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며 지구의 날씨 및 기후를 만든다. 인류는 선사 시대 이래로 태양이 지구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과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일부 문화권에서는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기도 했다. 태양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지식의 발달 속도는 느렸으며 19세기까지도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물리적 조성 및 에너지 원천에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현대에도 태양에 대해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니며 태양의 불규칙한 활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피조물 인간이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은 말씀하신다. +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계 22:20-21 ♣ QT 되새김 A 해와 달의 두 광명이 창조의 첫째 날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넷째 날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B 그 말씀을 사실로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해와 달과 별들이 구름이 없는 하늘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그 장관(壯觀)을 어떻게 드러내개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해와 달의 직무와 역할이 있듯 하나님이 주신 당신의 달란트와 직무를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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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3
  • 큐티주석5 각기 종류대로
    Flammarion engraving, Paris 1888 각기 종류대로 1:9-13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창 1:9-13 프랑스 작가 카뮈(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는 29세에 실존의 부조리를 그려낸 소설 '이방인'을 발표한 뒤 심오하고 논쟁적인 소설, 희곡, 에세이들을 잇달아 발표한 덕분에 44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화려한 작가 생활을 일궜다. 하지만 47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초기엔 삶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곧이어 삶을 긍정하기 위해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러다가 긍정과 부정을 통해 '사랑'을 추구하면서 소설 '최초의 인간'을 쓰던 중 뜻하지 않게 삶을 마감했다. 카뮈의 작업은 "부조리와 반항을 거쳐 사랑이라는 테마에 이르는 삶과 문학의 역정이 미완성으로 그치고 만 것이다. 카뮈는 생전에 좋아했던 단어 10개를 밝힌 적이 있다.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바람, 여름, 바다'라고 자신의 '작가 수첩'에 썼다. 그는 본의 아니게 세상에 태어나 세계로부터 사랑과 고통을 배우고 대지의 시련을 거치고 어머니와 마음으로 함께하며 온갖 사람들과 어울려 불의 사막을 가로질러 마침내 어리고 순수한 불꽃의 명예를 지켜냈다. 그러나 그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오히려 희망과 기쁨을 찾다가 여름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평범한 월급쟁이 뫼르소처럼 스스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부조리와 불신앙의 바다로 돌아갔다. 김정은은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다. 마음대로 지저귈 수 있으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는 없다. 말과는 달리 그가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은 엄격한 제약하에 있다. 거짓의 아비 마귀 지시를 따르는 공산주의 중국이나 러시아와 외교를 아무리 잘해도 새장 사이즈를 조금 더 키우는 정도다. 물론 합리적 추론을 벗어나 새장 틀을 부수려는 새가 자해적 행동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한반도를 둘러 싼 불확실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새가 떠드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속임수 동작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일부 대북제재 해제 요구처럼 새장을 열어주려는 어리석은 시도는 금물이다. 하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문재인이 혼자 횡행하는 청와대 눈치만 보는 우리 정부의 지금 실력으로 2020년의 북핵과 세상의 파고를 안전하게 넘을 수 있을까. 엘브리지 게리(1744~1814) 미 합중국 5대 부통령은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소속 정당에 유리하게 만든 선거구 획정안이 전설의 괴물 샐러맨더처럼 생겼다고 해서 '게리맨더링'이라는 부끄러운 정치 용어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좌파 득표 극대화 정략과 문희상 의장의 가업 승계 사익이 결합한 '무니맨더링'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이비 선거법을 탄생시켰다. 문 대통령과 문 의장의 이름도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선거법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사회를 이뤄 살아온 인간이 진화한 결과다. 짐승이 갖지 못한 감정이다.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 취급을 안 하면 그만이지만 정권이 부끄러움을 모른 채 막 나가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해 여름 이후 적지 않은 국민이 그런 난감함을 느꼈을 것이다. 납량물이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유튜브에 떠 있는 문재인 취임식을 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진지하게 '국민 통합' '탕평 인사' '공정 정의'를 읽어 내려가는 문 대통령의 표정에 지금의 현실이 겹쳐지면 소름이 안 돋으려야 안 돋을 수가 없다. 권력이 부끄러움을 내다버리면 나라가 망한다. 북한을 보면 안다.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이고 한반도 북쪽을 세계 최악 후진국으로 만든 김씨 왕조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마냥 뻔뻔하다. 그 못지않게 1월 30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임종석의 얼굴과 입처럼 뻔뻔한 권력이 한반도 남쪽에도 등장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창 1:9-13. 셋째 날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9절.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unto one place 세계가 육지와 물로 된 천체(terraqueous globe)가 되었다. 이것은 지구 표면에 일어난 화산의 격변 영향이었다. 어떤 부분은 솟아오르거나 다른 부분은 가라앉거나 해서 물이 격렬하게 흐르는 거대한 계곡(溪谷)이나 광활한 분지(盆地)가 형성되었다. 그것을 성경은 사실적으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시 104:6-9 10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그래서 지구의 큰 부분이 마른 육지(the dry land) ‘뭍’으로 남게 되고 나머지는 대양(ocean), 바다(sea), 호수(lake), 강(river) 등을 이루었다. 그것들이 각기 하천 바닥이나 수로 등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바다로 연결된다. +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욥 38:8 +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전 1:7 11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맨땅이 나무들과 채소들과 풀들로 푸른 옷을 입게 되었다. 식물계(the vegetable kingdom)의 세 가지 큰 구분이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빛과 공기와는 다른 방법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식물은 성장하도록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땅에서 정지한 채로 자랐다. 식물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느린 과정을 통해 자란다. 식물은 싹이 나고 우거지는 것이 자신의 어떤 노력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나 이슬 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각기 종류대로(after his kind)라는 말은 태초부터 만물은 유유상종(類類相從) 즉 같은 무리끼리 서로 어울려 사귀거나 같이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른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0 무섭다. 전염병이 도는데,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나. 심리학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생존·안전이고, 지위나 명예는 그보다 한참 윗단에 있는 고차원적 욕망이라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내가 아프거나 죽는 것, 주변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 모두 괴로운 일이다. 인간은 이런 공포심에 의해 위험을 피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 요소를 없애는 모든 방법이 정당하지는 않다. 그 옛날 흑사병 환자가 생긴 집이나 마을 사람을 몽땅 불태우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지층의 흥겨운 분위기가 설 직전 서초동에서 열린 '조국 수호' 집회에서 연출됐다. 진행자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정의의 사도 윤석열의) 손발을 모두 잘라냈다. 이제 물도 못 떠 먹는다"고 하자 우렁찬 환성이 터져 나왔다.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 양심과 염치가 없는 건지, 그런 앞뒤 사정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사정이 다급했던 건지 보통 사람 머리로는 헤아릴 길이 없다. 다들 가물가물하겠지만, 메르스 환자 치료에 전념한 의사의 자녀가 ‘등교를 거부당한’ 일도 있었다. 학부모들이 그 의사의 자녀가 메르스에 걸렸을지 모른다며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학교장에게 요구했다. 우리 사회가 그때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 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피해 귀국하는 동포들을 향해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는 문재인 패거리 같은 양심도 상식도 내팽개친 유유상종 몰염치한 이기주의자들 그 바닥을 어디까지 보게 될까. 전염병보다야 덜하겠지만 그것도 두렵다.우리는 진정 어떤 나무인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인가. 아니면 악한 열매를 맺는 악한 나무인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열매로 자신을 알아야 될 것이다. 찍혀 불에 던짐을 당하지 않으려면.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여느 때처럼 모바일 뉴스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만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시선을 고정한 승객들 저마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문득 이것은 단지 현재 세대의 문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과연 나는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미국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놀라운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 읽기 회로’는 지속되지 않는다. 상당한 지적 수준의 독자라고 해도 책에 몰입하는 경험을 잃으면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회귀한다.” ‘조용한 시간’(Quiet Time)에 몰입하는 성경 독서의 경험, ‘당신과 나’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나. 우리는 각기 어떤 종류의 열매를 낼까. ♣ QT 되새김 A 태초에 창조된 우주를 향해 하나님께서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라고 명하신 그 능력과 권위를 인정하는가. B 그리고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한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하실 수 있는 능력과 반드시 하시려는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각기 종류대로 열매를 맺으라’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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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31
  • 큐티주석4 하늘을 우러러
    하늘을 우러러 1:6-8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 1:6-8 영원한 청년 윤동주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48)에 수록된 머리말 격인 ‘서시’(序詩)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노래했다. .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에세이 ‘별빛 언덕 위에 쓴 이름’에서 시인 소강석 목사는 그 이름만 들어도 애처롭다고 했다. 그가 그의 가슴과 눈동자로 사랑하는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다짐한 그 하늘은 무엇일까. 하늘은 종종 사람이 땅에서 위로 올려다볼 때 보이는 곳으로 정의된다. 비록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봐 왔지만, 하늘은 정확하게 정의되기 어렵다. '하늘'의 개념은 지구의 땅 위에서 적용되기 때문에 지평선 위의 대기, 또는 행성과 행성 위에 붙어있는 물체들의 보이는 표면 위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천문학의 영역에서 하늘은 또한 천구(天球)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태양, 별들, 행성들, 달이 여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돔이다. 천구는 별자리라고 불리는 구역으로 나뉜다. 태초에 말씀으로 무(無)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운 우주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다. 태초에 우주에 빛이 비추자 물 가운데 궁창(穹蒼 firmament)이 드러났다. 유대교의 세계 구분의 하나인 하늘. 원래 금속판을 두드려 얇게 늘려 편 것을 의미하는 말로 별들과 행성들이 매달려 있는 둥근 천장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나 강 등의 아래의 물과 수증기로 올라가 비나 눈 등으로 내릴 위의 물을 구분하는 하늘이다. 창 1:6-8 둘째 날 6절 궁창 firmament 불가타 성서(the Vulgate 4세기에 번역된 라틴어역 성서)에서 궁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라키아’(raki'a)를 피르마멘툼(firmamentum)으로 번역했다. 그것을 킹제임스역에서 영어 퍼머먼트(firmament)로 번역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빛이 비추자 대기가 둘러싼 천체의 모양이 관찰자에게 둥근 천장, 아치형 천장의 하늘(the vault of heaven)로 보였다. 그래서 그 단어는 개역성경에서 태초의 축축한 구름들의 무게를 지탱하는 넓고 푸른 하늘 궁창(穹蒼 firmament)으로 번역되었다. 대기(atmosphere)의 창조로 지구 표면에 덮인 물의 더 가벼운 부분은 보이는 하늘에 끌어올려 뜨게 하고 반면에 더 크고 무거운 덩어리는 아래에 남아있게 했다. 따라서 공기가 ‘물 가운데’(n the midst of the waters) 있게 되었다. 즉 물들이 갈라지게 되었다. 대기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생명과 빛의 매체로서는 여기서 딱 한번 언급이 되고 있다. 2020년 1월 28일 기준 WHO는 우한 폐렴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4,500명을 넘어섰으며 대부분 중국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중국 본토의 우한 폐렴 확진자는 1월 29일 0시 기준 5,974명으로 2003년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를 넘어섰다. 사망자 수는 132명이다. 이럴 때 믿음을 가진 우리는 마스크를 쓴 머쓱한 표정의 문재인을 믿거나 불평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인 소강석이 사랑한 윤동주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을 우러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믿음 없이 죽어가는 자들에게 하늘을 만드신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이가 들면 아프고 병들고 죽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삶의 지혜가 생겨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이다. 다음 세대에게 좋은 것을 남겨주고 나보다 앞선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삶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연결 고리 안에 살아간다. 사람들이 흔히 말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믿음으로 좋은 것을 감사하게 먹으면 좋은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행동을 하게 된다. 좋은 행동이 이어지면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좋은 습관으로 오랜 시간을 사는 사람은 얼굴에 그것들이 쌓인다. 생각과 얼굴에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일상을 정성으로 가꾸고 싶다. 우리가 먹는 것, 우리가 읽는 책,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 우리가 남기는 자취들, 우리가 만드는 생각, 우리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의 경험... 모든 것은 어디론가 소멸되지 않고 바로 우리 얼굴에 쌓일 것이다. 그것들이 욕심과 심술의 모습이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물 위의 하늘이나 물 아래의 하늘이고 싶다. ♣ QT 되새김 A 태초에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운, 창조된 우주에 빛이 비췄을 때 하늘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B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있다고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윤동주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데 당신은 하늘을 우러러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빛이 비취자 드러난 하늘과 물을 처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2020-01-30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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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30
  • 큐티주석3 빛이 있으라
    빛이 있으라 1:3-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3-5 ‘이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 이것은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의 말이다. 외계지적생명체 탐사를 다룬 영화 ‘콘택트(Contact, 1997)’에도 소개된 바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우주 어디엔가 우리와 같은, 혹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문명을 갖춘 외계생명체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칼 세이건의 말대로 우주는 너무나 넓고 우주에는 너무나 많은 별이 존재한다. 태양계가 속해있는 우리 은하에는 태양과 같이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최소 천억 개가 있다. 만약 별을 1초에 하나씩 센다면 약 3,200년이 걸리는 엄청난 숫자다. 또한 이같이 엄청난 별을 가진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또 천억 개가 있다. 그래서 칼 세이건은 우리 인류가 이제 우주의 해변에 발을 담그게 됐다고 말했다. 이 별들에 딸려있는 지구와 같은 행성의 숫자까지 고려해보면 우주의 지적생명체가 지구에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70년 이상 동안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을 우주로 보내고 있다. 이 신호들은 빛의 속도로 우주로 나아간다. 지구에서 70광년 이내의 거리에 충분히 강력한 전파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의 오래된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100년이 지나면 우리의 신호들은 170광년까지 가게 된다. 수십만 년이 지나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은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쯤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미 우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우리와 유사한 문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과학이 있을 것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법칙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들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만들었을 것이고 원거리 통신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외계지적생명체탐사(SETI, Search for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는 바로 이런 흔적을 찾는 것이다. 앨런 배열 망원경이 외계 신호를 찾는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긴 하겠지만 아직 우리의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 사실 현재 우리의 기술로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TV나 라디오 신호가 가장 가까운 별에서 오고 있다 하더라도 받을 수가 없다. 신호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SETI에서 찾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의도적으로 보내고 있는 강한 신호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로서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들 역시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신호를 보내기도 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그런 신호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1974년, 과학자들은 지름 300m의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에 있는 강력한 레이더 송신기를 이용하여 구상성단 M13을 향해서 3분간 신호를 보냈다. 이 성단에는 수십만 개의 별이 있으므로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방향으로 전파망원경을 겨냥한다면 우리가 보낸 신호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M13은 21,000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신호가 도착하기까지 21,000년이 걸리고 지구로 답장이 오는데 다시 21,000년이 걸린다. 신호를 서로 주고받기는 어렵겠지만 만일 먼 미래의 누군가가 우리의 신호를 받는다면 그들에게는 우주에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계생명체라고 하면 흔히 UFO를 떠올린다. 그러나 UFO가 외계생명체의 비행체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별까지의 거리는 약 4.2광년으로 빛의 속도로도 4년이 넘게 걸리고 현재 우리의 기술로는 7만 년 이상이 걸리는 거리다. 그 정도 이상의 거리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수준의 생명체라면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형태의 비행물체를 이용하지도 않을 것이고 실수로 흔적을 남길 가능성도 거의 없다. 특히 외계 생명체의 비행체가 추락을 하거나 인간을 납치하여 생체 실험을 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과학자들은 태양계 천체들을 관측하거나 무인 탐사선을 보낸다. 그들은 생명체 존재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는 그곳의 환경을 연구하여 그곳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지 연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주생물학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에서의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기도 한다.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탄생했는지를 이해한다면 다른 곳에서도 생명체가 탄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은 생명체가 살기에 적당한 별과 그 별의 중심을 돌고 있는 행성을 찾고, 우리가 망원경을 통해서만 연구할 수 있는 세계에서 생명체를 찾을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에 과연 우리밖에 없을까라는 가장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한 노력과 시도이다.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찾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아직은 아무런 확실한 증거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답을 얻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무한이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에 속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한 시지프 신화를 되풀이 할 것이다. 태초의 우주는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은 물에 덮인 우주의 수면을 알을 품은 닭처럼 덮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그리고 어둠에 쌓여 있던 우주에 빛이 있었다. 빛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빛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태양이나 불빛은 그 자체가 빛의 원천(광원)이다. 광원이 아닌 다른 사물에서 산란되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광원에서 나온 빛이 그 사물에서 산란되어 우리 눈에 닿기 때문이다. 광원은 자연광과 인조광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광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광원에서 나온다. 이러한 광원에는 태양과 별이 있다. 인조광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광원에서 나온다. 모든 빛은 원자에서 나온다. 원자는 다른 광원의 빛을 흡수하거나 다른 입자와 부딪칠 때 에너지를 얻는데 바로 이때 빛이 생긴다. 에너지를 얻은 원자는 들뜬상태에 있다고 한다. 대게 원자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들뜬상태로 있다가, 곧 얻었던 에너지를 다시 내놓고 들뜬상태에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때 나오는 에너지는 다른 원자에 다시 흡수되거나 방출된다. 원자를 들뜬상태로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원자가 빛으로 내놓는 에너지는 원자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보통 빛은 호수 위를 전파해가는 수면파와 같은 파동이라고 설명한다. 또 빛은 광자라고 하는 입자로 설명하기도 한다. 빛을 파동으로 설명하든 입자로 설명하든 두 경우 모든 빛이 에너지를 가진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빛의 속력을 측정하려 한 사람 중에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다. 갈릴레이는 약 1km 떨어진 곳에서 서로 등불을 가지고 상대방의 등불이 보이면 바로 등불을 열게 하는 방법으로 그 시간차를 통해 광속을 측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는 빛이 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이 10만분의 1초 정도로 매우 짧아 속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다. 모든 형태의 진공에서 전자기 방사는 정확히 같은 속력으로 이동한다. 덴마크의 천문학자인 올러 뢰머는 1676년, 목성의 위성인 이오의 관찰을 통해서 빛의 속력을 측정하였다. 뢰머는 목성이 지구에 가장 근접했을 때 예측한 것보다 11분 일찍 이오의 월식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고, 가장 멀리 있을 때는 예측보다 11분 늦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뢰머는 그 22분이 빛이 지구의 공전궤도의 지름을 지나는 시간이라고 계산하여 빛의 속도를 추정했다. 여러 실험을 통해 정의된 빛의 속력(speed of light) 또는 광속은 진공에서 1초에 299,792,458m 대략 30만 킬로미터이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에라스토테네스(기원전 274년 ~ 기원전 196년)가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의 거리와 인류 최초로 측정한 지구 둘레(실제 지구의 둘레 약 40,009km)는 4만 킬로미터의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고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데 1초 정도 걸리는 매우 빠른 속력이다. 그리스인들은 지역에 따라 북극성의 높이가 다른 사실 등을 근거로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시에네(현재의 아스완)에서는 하짓날에 태양빛이 우물의 바닥까지 닿는다는 것을 전해 듣고, 즉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의 고도가 90도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로부터 지구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하짓날의 남중 고도는 82.8도이며, 이 차이가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의 위도의 차에 따른 것이며, 이를 이용하여 두 도시의 거리를 대비하여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비밀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그 두뇌로 발견한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이 데려오시는 짐승들의 이름을 맞춘 것처럼.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창 2:19-20 창 1:3-5 첫째 날 THE FIRST DAY 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God said 가라사대는 원래 '말씀하시되'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고 '가로되'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제가 좋아하는 개역한글판은 예스러운 “가라사대”와 “가로되”를 사용한다. 개역개정판은 이 말을 모두 “이르시되”나 “말씀하시되”로 고쳤다. 그러나 큐티주석의 본문 해석상의 문장에서는 “말씀하셨다”를 사용하려고 한다. 영어 역본은 King James Version(KJV)를 사용한다. 성경 본문에서 자주 반복되는 ‘하나님이 가라사대’(God said)라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뜻하셨다(willed), 포고하셨다(decreed), 지명하셨다(appointed)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결정하시는 뜻(determining will)은 모든 경우에 즉각적인 결과가 수반되었다. 지구와 동시에 창조되었든 또는 지구보다 먼저 창조되었든 혼돈을 덮고 있던 짙은 안개와 빽빽한 수증기가 지구를 영속적인 어둠(a settled gloom)으로 덮고 있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라’ ‘Let there be light’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빛(light)이 비추게 되었다. 두터운 어두운 구름들이 흩어지고 부서지고 옅어졌다. 빛이 광활한 물 위로 퍼졌다. 그 효과가 히브리어로 ‘따뜻함’(warmth), ‘열’(heat)을 의미하는 ‘낮’(day)이라는 명칭으로 서술되고 있다. 반면에 ‘밤’(night)이라는 명칭은 밤이 모든 것들을 그늘진 외투(shady mantle)로 싸고 있듯 ‘감싸고 있는’(rolling up) 의미를 지니고 있다. 4절.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divided the light from darkness 이 말씀은 지구가 그 축의 둘레를 날마다 도는 것으로 생기는 낮과 밤의 교체나 연속을 의미한다. 5절. 첫째 날 first day 이 구절은 두 요소 즉 낮과 밤이 분명하게 결정하는 말 그대로 자연적인 하루(a natural day)를 의미한다. 그리고 창세기 저자 모세(Moses)는 동양의 관례를 따라서 하루의 구분을 오늘날 우리가 하듯이 하루를 낮과 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녁(evening)과 아침(morning) 즉 해넘이에서 해넘이까지(from sunset to sunset)로 생각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 QT 되새김 A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그것은 이 AI 시대를 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B 하나님의 결정하시는 뜻(determining will)은 모든 경우에 즉각적인 결과가 수반되었다는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이 말씀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2020-01-29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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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29
  • BOOK 발굴추적 예수 - 이인수 감독
    제목: 발굴추적 예수지은이: 이인수 책소개 <발굴추적 예수>는 공중파 다큐멘터리 150여 편을 연출한 PD의 생생한 예수 추적 고백서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이 있다. 예수님이 실존 인물이냐는 것과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것이 사실이냐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 수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대인 석학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성경이 아닌, 고고학적 측면에서 예수님의 일생을 낱낱이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로써 2천년 동안 이어져온 실존 예수에 대한 논란이 종결지어질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이인수!그의 이름 석 자와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150여 편이라는 숫자는 아마 오래도록 깨지지 않을 대한민국 다큐멘터리사의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 길한영 전 KBS 사장의 추천사 중에서 - 저자소개 - 이인수 감독 1972년 YMCA 강당과 1974년 서울 YWCA 청개구리 홀에서 이인수 성가 작곡발표회를 가지면서 빛소리 선교단을 조직하였다. 그 후 국내에서 자작곡인 ‘나의 기도’ 등 100여 곡의 복음성가(CCM)를 발표하면서 복음성가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국내 1천 여 곳과 북미와 남미, 유럽 등 2천 여 곳에서 선교 집회를 인도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Unlversity of Maryland 대학교에서 미생물학 학사 학위를 받고, 이어서 Havard 대학교에서 생물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국립보건원(NIH)과 하버드의대 부속병원에서 Medical 미생물학자로 근무하였다.방송계에 투신하여 미국 방송국에서 교양프로그램 프로듀서로 활동하다 귀국한 후, KBS 방송국에서 KBS 스페셜, 기획 특집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150편의 역사, 시사, 인물 다큐멘터리를 연출, 방송하였다. 2002년도 한국방송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03년도 “방송위원회 다큐멘터리 기획” 대상, 2012년도 “KBS 최우수 프로그램” 대상 등 수많은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였다.장편 상업 영화 “한길수”를 비롯해 세편의 장편 영화를 기획, 감독 하였다. 그밖에 2005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자문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현재는 성결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저서로는 “24세 황태일 그는 왜? 세계가 주목하는가?”가 있으며, “독립운동의 비밀병기, 암호”, “독도는 정말 한국 땅인가?”, “동해와 일본해? 가짜 이름은 지워라” 등이 있다. 목차 추천사 전 KBS사장 길환영 ···················· · 6 시작하는 글 “예수” ························· 8 KBS에서 방영된 150편의 이인수 감독 다큐멘터리 대표작·12 추적 1예수와 이스라엘 ·························· 23예루살렘은 과연 성지인가?·27통곡의 벽앞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29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 ·33역사가 요세푸스가 남긴 역사적인 예수의 기록·37이스라엘 세계적인 석학들이 말하는 역사학자 요세푸스·39헤롯성전 헤로디움,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을 증명하다 ·45역사속에 감춰진 헤롯왕, 그는 정말 실존 인물이었나? - 헤로디움에서 발견된 헤롯왕의 파괴된 석관·52 추적 2마리아 처녀 잉태는 역사적 사실인가? ················· 60구약성경의 예언과 신약성경의 기록의 차이·60성서 고고학 논란의 키워드, 4세기 비잔틴·63고고학적으로 발굴된 동정녀 마리아의 마을 수태고지·65종교적 율법이 일반법보다 강한 유대의 관습법·72탄생의 비밀 1. 고대 로마의 인구조사는 역사적 사실·79탄생의 비밀 2. 베들레헴 탄생교회의 고고학적 고증·82 탄생의 비밀 3. 목자들의 들판교회는 지금도 존재한다.·98 추적 3나사렛 예수의 성경 밖 이야기 ··················· 104나사렛 빌리지 1. 소년 예수가 성장한 당시 마을 공개·104나사렛 빌리지 2. 예수에 대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123나사렛 빌리지 3. 고고학적인 발굴 현장의 예수를 만나다·136절벽산. 예수 그리스도 운명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141 추적 4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길 ·······················145요단강가 카스트 알 야후드 예수 공생애 시작의 첫 걸음·1452천 년 만에 드러낸 1세기 시대의 기적의 나무 배·153물 위를 걸으신 예수, 갈릴리 호수를 건너다·158최초로 공개되는 1세기 갈릴리 유적지 발굴 현장의 모습들·165 1세기 막달라 마을 발굴지의 비밀·170예수님이 함께 했던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을 최초로 공개·176예수 그리스도 공생애 사역의 본부 가버나움·187 추적 5성경의 기적을 발굴하라 ······················· 1951세기 유대인들의 장례 문화와 나사로의 무덤·195히브리대학에서 발굴된 1세기 유대인들의 무덤 양식을 추적하다 ·202 추적 6운명의 땅, 예루살렘 ·························205새로 발굴된 실로암 발굴현장 최초공개·206 히스기야 터널 끝의 작은 연못 실로암이 아니었다·227고난의 예루살렘 입성의 날이 새겨진 벳바게·231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7일, 현장을 새로 조명하다·235 예루살렘 성전의 과거와 오늘·238 마지막 만찬장소 ‘마가의 다락방’은 세계 최초의 교회·242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밤·248예수의 죽음에 관한 첫 번째 증언자 본디오 빌라도 총독·251예수의 죽음에 관한 두 번째 증언자 가야바 대제사장·258 예수의 죽음에 관한 세 번째 증언 십자가 형벌·261고고학자들에 의해 다시 밝혀진 ‘시몬 깁슨의 십자가의 길’·263예수의 고난의 길 비아돌로로사 ‘십자가의 길’ 현장을 가다·270십자가의 길 마지막 지점 골고다, 두 개의 무덤과 하나의 진실·277고고학적으로 본 죽음과 부활의 성지 성묘교회·285 추적 7부활과 승천····························304부활로 완성된 예수의 영원한 구원·304부활의 참 목격자 베드로와 우리들·307예수 그리스도 승천·312 마치는 글 예수와 나 ························ 316 판형: 신국판(150*225mm) 320쪽/ 가격: 18,000원ISBN: 978-89-93308-38-9 출판사: 바이블리더스 biblereader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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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6
  • 송준 시네마힐링
    <메멘토>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출연 : 가이 피어스, 캐리 앤 모스 제목 : 희미한 기억의 그림자를 붙잡고 사람은 기억을 먹고 사는 존재다. 유년의 기억들이 쌓여서 일기가 되고, 앨범이 된다. 여럿의 기억이 엮여서 추억이 되고, 그 거시적 온축의 맥락이 곧 역사다. 기억은 과거의 일부다. 은연 중에 현재로 날라온 과거의 파편이다. 그 파편들이 모여서 기억이 된다. 역사가 된다. 주지하다시피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의 편의에 따라, 취향에 따라 편집된 기록이다. 역사가 편집된 기록이라면, 개인적인 기억이며 추억은 또한 편집 아닐런가. ‘삶의 증언’으로 믿어온 기억이 혹여 자의식과 무의식의 지배를 받은 편집이라면, 그 기억을 토대로 쌓아올린 인생관이며 가치관은 또한 무엇인가. 기억의 의의는 과거의 회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현재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고, 미래의 행위를 담보하는 확신의 토대가 된다. 결국 우리는 편집된 기억에 기대어 가치관을 세우고, 그 편집된 가치관에 기대 오늘의 현실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편승하여 내일을 설계하는 셈이다. 그대의 기억은 진실인가, 편집인가. 편집된 기억의 이름으로, 우리는 행여 무망한 행위의 업을 짓지는 않았는가.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기억손실증 환자.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희귀한 병이다. 전직 보험수사관 레너드 셸비(가이 피어스)는 아내가 강간·살해당하던 날의 충격으로, 그날 이후의 기억을 보존하지 못한다. 오직 자기 이름과, 아내가 강간·살해당했다는 사실과, 그리고 범인 이름이 존 G.라는 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범인을 찾아내서 복수를 하기에, 레너드의 뇌 상태는 너무도 취약하다. 치명적이다. 레너드는 통화를 하다가도, 10분이 지나면 통화 상대가 누군지, 왜 전화를 하고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같이 잠자리에 든 여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거리를 질주하다가 스스로 묻는다. “내가 왜 뛰고 있지? 저기 뛰고 있는 사람을 쫓고 있는 건가? (총알이 날아오자) 아니, 이런. 쫓기는 중이었군.” 레너드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자신의 이름과 처지, 그리고 전날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다. 묵고 있는 호텔, 자신이 찾아갔던 장소, 만난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어 메모를 해둔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몸에 문신으로 남긴다. 레너드의 몸은 온통 문신 투성이다. “기억은 믿을 수 없어. 내가 믿는 건 기록뿐이야”라며 레너드는 가물가물한 기억의 신기루를 밀치고, 폴라로이드 사진과 친필 메모만을 근거로 비칠비칠 갈짓자 추리에 목숨을 건다. 잠에서 깨어나면, 베개 곁의 메모를 보고, 그렇게 자신이 남긴 기억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고, 전날의 사진과 메모들을 재해석하며 범인 추적에 나선다. 레너드에게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나날이고, 만나는 사람이 하나같이 생면부지인데, 유독 레너드를 잘 아는 듯이 대하는 두 사람이 있다. 웨이트레스 ‘나탈리’(캐리 앤 모스)와 퇴폐 경찰 ‘테디’다. 나탈리는 테디가 범인임을 암시하는 단서를 제시하고, 테디는 ‘절대 나탈리의 말을 믿지 말라’고 안타까워한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걸까. 기록은 믿을 수 있을까, 어차피 기억을 토대로 적은 것이거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철저하게 레너드의 시각을 견지한다. 관객은 내러티브 상으로 레너드가 인지한 정보 이상을 알지 못한다. 레너드의 눈으로 보고, 레너드의 뇌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레너드의 기억을 매개로, 기억의 인위성, 기억의 불확실성, 기억의 고의적 편집 의도 따위에 대한 인식론적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감독은 기억의 단절에 대한 상징으로, 고도의 장치를 설정한다. 레너드가 아내의 살인범으로 여겨지는 누군가를 죽인 시점부터 영화를 거꾸로 편집한 플롯이 그것이다. 고난도의 퍼즐을 풀듯이, 레너드의 복수로부터 과거를 향해 역순으로 돌아가는 필름. 그리하여 마침내 밝혀지는 복수의 비밀. 결과로부터 원인을 향해 가는 기억의 회귀 여행은, 특히 카메라를 레너드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가는 역순의 퍼즐은, 관객에게 한편으로 답답하고 낯설은, 그러면서도 신선한 영상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복수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크리스토퍼 감독의 연출 의도가 묘한 파장으로 이해되는 순간이 온다. 뇌리에 새겨진 기억은 한 개인이 여러 경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숱한 정보들 가운데서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내 기억’보다 믿음직스런 정보는 없다. 설사 ‘내 기억’이 너무 특이하거나 혹은 너무 은밀하여 사람들로부터 공인을 받지 못하는 특수상황이더라도, ‘기억’은 당사자로 하여금 기꺼이 ‘좁은 길’을 가도록 부추기는 가공할 신뢰도를 함유하고 있다. 이 ‘기억의 순수성’에 대해 감독은 묻는다. “정말 그런가.” 기억은 진정으로 충분히 옳은가. 충분히 사실적인가. 충분히 객관적인가. 나아가 동시대인이 공유한 어떤 사회적 기억(사건, 혹은 역사)에 대해서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21세기 들어 유독 전쟁과 분쟁이 지구촌을 어지럽히는 것 또한 이 물음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 단위의 기억이 선명할수록, 그리고 그 기억이 주체에 따라 두 국가 사이에 서로 다른 형식과 의미로 존재할 때, 기억이 낳는 피비린내 또한 그에 비례해서 선명해지지 않던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데뷔작인 저예산 영화 <메멘토> 한 편으로 단박에 할리우드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할리우드의 화끈한 지원으로 제작된 이후의 작품들 <인섬니아>(불면증, 2002년) <프레스티지>(2006) <다크 나이트>(2008) <인 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트>(2017) 등 연출이 거듭될수록 크리스토퍼 감독은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묘파하는 독자적인 내공의 깊이를 감탄과 충격으로 보여준다. 미스테리 기법으로, 한편으로 스릴러의 긴장을 놓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복잡,난해한 인간의 불가해를 짚어내는 공력이 40대(1970년 생)의 내공을 훌쩍 초월한다.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 G.QT
    2018-04-26
  • 송준 시네마힐링
    <아멜리에> 감독 : 장 피에르 주네출연 : 오드리 토투, 마티유 카소비츠 제목 : 아웃사이더들의 우주에도 행복은 있다 비극의 처방전이 분노와 냉소를 씻어주는 카타르시스라면, 희극의 효능은 지치고 상처받은 군상들을 달래주는 영혼의 초콜릿에 비견할 만하다. 때로 깔끔한 한 편의 코미디는 천 마디의 위로를 대신한다. 따습고 아름다운 프랑스 판타지 <아멜리에>는 21세기의 흐린 하늘에 희망의 편지를 쓴다. 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어차피 인생은 갈등과 고독으로 자아낸 세월의 비단 같은 것. 그 비단 위에 <아멜리에>는 유머와 아이러니로 웃음꽃을 수놓는다. <아멜리에>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웃사이더들이다. 주인공 아멜리에(오드리 토투)는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일하는 웨이트레스. 다리를 저는 여주인 수잔은 전직 곡예사다. 카페 한 켠에서 담배를 파는 조제뜨는 ‘상처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다. 3류 작가 히폴리토와 질투쟁이 스토커 조셉이 이 카페의 단골이다. 아멜리에가 사는 5층 빌라가 또 하나의 무대. 유리처럼 쉽게 부서지는 뼈 때문에 평생을 자폐하듯 살아온 할아버지 듀파엘, 늘 집 안에서 르느아르의 모작들을 그리고 있다. 먼저 간 바람둥이 남편의 추억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중년의 미망인 마들렌,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다. 식료품점 주인 꼴리뇽, 지능이 모자란 외팔이 점원 루시엥을 구박해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산다. 그리고 두 사람 더. 전직 군의관인 아빠 라파엘, 아내가 죽은 뒤 집 마당의 납골당을 장식하는 일로 소일하며 세상과 담을 쌓는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 아멜리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청년 니노(마티유 카소비츠). 파트타임잡으로 ‘포르노궁전’ 점원과 놀이공원 귀신 분장 역을 하며, 지하철 인스턴트 사진 부스의 휴지통에서 찢겨진 사진을 주워 모아 앨범을 만드는 게 취미다. 판타지 전문인 감독 장 피에르 주네는 이렇게 지나치리만큼 많은 등장인물을 이끌고 웃음 가득한 소우주를 건설한다. 아웃사이더 군상들을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플롯으로 이끄는 중심 역할이 바로 아멜리에다. 한 마디로 아멜리에는 ‘곱게 미친’ 처녀다. 어려서부터 상상의 세계에 심취한 아멜리에는 어느 날 방구석 은밀한 곳에서 작은 깡통상자를 발견하고는 엉뚱한 결심을 한다. 어릴 적 보물이 가득 든 누군가의 추억의 상자,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을 때 그가 즐거워하면 평생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에 몸을 바치기로. 아니면 말고. 아멜리에의 ‘행복 만들기’는 잔잔하고도 은밀하게 진행된다. 대상에 따라 며칠을 두고 주도면밀하게 작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아멜리에의 증세는 점점 심해진다. 자신을 마더 테레사와 동일시하는 한편, 작전을 위해 빌라의 열쇠를 복제한 뒤 몰래 이웃들의 집에 잠입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작전을 수행 중인 어느 날 아멜리에는 지하철 구내에서 니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후 영화는 아멜리에의 행복 만들기와 사랑 만들기를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그 발상과 전개가 여간 신선하지 않다. 기상천외한 상상과 꼼꼼한 편집, 삶과 실존에 대한 사유가 녹아든 연출, 휴머니즘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특수효과들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아멜리에의 사랑과 이웃들의 행복을 길어올린다. 저 많은 군상들이 두루 행복에 이르는 포복절도할 과정은 독자의 영화 감상을 위해 비밀에 붙이기로 한다. 영화는 완벽에 가까운 플롯을 자랑한다. 아멜리에의 시간을 따라가며 등장인물의 이야기들이 빈번하게 교차하는데, 신기하게도 뒤섞인 여러 이야기가 플롯을 방해하기는커녕 재미를 배가하는 효과를 발한다. 편집의 승리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해당 인물의 처지와 심정을 십분 반영하며 관객의 동일시 효과를 끌어올리고, 각 인물의 입장에서 우러나온 개똥철학의 설득력은 영화의 깊이를 한층 심화한다. “영화의 프레임들은 각각 완결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장감독의 신념이 투영된 결과다. 카메라는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쉴새없이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한다. 자칫 ‘기교 과잉’이란 비판을 받을 법하다. 그러나 여기에 감독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아멜리에>는, 전작들(<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에일리언 4> 등)을 모두 스튜디오에서 만든 장감독이 첫 야외촬영에 나선 영화다.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판타지에 심취했던 감독이 당대의 시공간에 눈길을 준 것이다. 주네는 대신 다채로운 카메라 워크와 특수효과, 실험영화적 기법들, 탐미적인 색채 영상으로 현실의 황량함을 카무플라주했다. 거리로 나서면서 주네가 의도한 것은 파리의 온갖 미적 요소를 동원한 ‘레알 판타지’였다. 파리의 거리, 몽마르트의 카페, 아멜리에의 빌라, 아버지의 정원 등 모든 쇼트에서 카메라는 미학적 시각을 견지한다. ‘누벨 이마주’ 계보의 스타일리스트답게 주네의 미장센은 마치 파리의 건축과 유적.;조각들, 난간과 회랑의 인테리어 디테일들, 침실과 주방의 소품들을 보여주는 데 더 열심인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주네는 실제로 지하철과 거리의 포스터를 좀 더 예술적인 것으로 바꿨고, 특이한 디자인의 자동차를 찾아 원하는 곳에 주차시켰다. 이같은 노력은 이 영화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로 꼽힐 만한데, 실제로 주민들은 주네의 촬영 흔적을 보존하고 있으며, 몽마르트의 카페와 꼴리뇽의 식료품점은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인물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한 점과, 장 뤽 고다르적인 시네 에세이 스타일을 적극 변용한 점도 주네가 보여준 새로운 변화다. 때로는 왈츠 풍의 아코디언으로, 때로는 애잔한 피아노 선율로 완급을 조율하는 영상 호흡은 시낭송처럼 아련하게 관객의 서정을 일깨운다. 예컨대 어린 아멜리에가 엄마와 함께 비오는 강 위에서 금붕어를 방생하는 장면과 처녀 아멜리에가 세느강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신은 시네 에세이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백미다. 영화 후반부에서 카페로 찾아온 니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아갈 때 아멜리에가 보여준 상심의 표현, 그리고 키스신에서 러브신으로 넘어가는 두 사람의 사랑의 시퀀스는 관객의 심리마저 이미지화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세자르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오드리 토투는 스물세 살의 배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깊이 있는 연기 감각을 보여준다. 역시 세자르상 신인남우상을 받은 마티유 카소비츠는 1995년 영화 <증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감독 겸 배우다. 직접 연출한 <암살자들> <크림슨 리버>와 뤽 베송 감독의 <제5 원소> 등에서 거칠고 폭력적인 액션을 보여주었던 카소비츠의 연기 변신도 주목할 만하다. <아멜리에>는 제36회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체코 프라하)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고, 영국의 에든버러국제영화제의 개막작과 캐나다 몬트리올국제영화제 폐막작 등으로 선정되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box : ‘누벨 이마주’의 희망 장 피에르 주네 탐미적인 영상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는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영화는 ‘이미지를 극대화한 화면 연출’로 요약되는 ‘누벨 이마주’의 ‘후기인상파’에 해당한다. 주네 감독은 전작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를 통해 어둡고 암울한 가상의 시공간에서 인간 군상이 벌이는 갈등과 아이러니를 판타지적 기법으로 그리는 독특한 연출 세계를 구축, 적지 않은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다. 신작 <아멜리에>에 이르기까지 주네가 보여준 동화적인 상상력과 환상적인 스타일은 그의 초기 애니메이션 작업의 소산이다. 고교시절 단편 영화에 입문한 주네는 1970년부터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74년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만난 마크 키로는 이후 오랜 파트너로서 주네의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파리로 옮겨온 두 사람은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단편 <탈출>에서 첫 호흡을 맞춘 뒤 두 번째 단편 <회전목마>로 81년 세자르상을 수상한다. 이후 공동으로 각본‧연출‧촬영‧제작‧편집‧음향 등의 작업을 해온 두 사람은 91년 인육을 먹는 사람들의 부조리를 그린 그로테스크 판타지 <델리카트슨 사람들>로 도쿄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다. 꿈을 꾸지 못해 조로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 과학자 이야기를 그린 다음 작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95년 칸영화제 개막작 초청을 받았다. 어두운 인물들, 음울한 배경, 탐미적인 영상을 주조로 한 그로테스크 판타지는 주네와 카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이 이미지는 97년 20세기폭스와 함께한 <에일리언 4>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아멜리에>는 주네가 <에일리언 4> 작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구상했던 것으로, 기괴미 취향을 벗어난 뒤 마크 카로와 결별하고 새로운 작가 기욤 롤랑과 손을 잡고 만든 작품이다. 탐미적 작가주의 연출가로서 주네의 새로운 행보가 세계 영화인들로부터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 G.QT
    2018-03-09
  • 유태영 목사 아들 결혼
    3월 1일 결혼식장 가는 길에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나무 그림자들은 한 줌 바람에 흔들린다. 주일처럼 밀려드는 오전 10시 무렵 봉은사 앞 신작로 위에 믿음은 추억 없이 떠오르고 걸어가는 길에 먼저 왔다 먼저 가는 기독신문 편집국장 강석근과 총회에서 한교총 사무총장으로 전임한 신평식 목사를 지나치며 인사를 나누었다. 결혼식장 더라빌 2층은 반가움의 웃음들로 그득하다, 누구일까. 전 총신 총장 길자연 목사 총회 총무 최우식 목사 총회농어촌부 부장 김관선 목사 선관위원장 이은철 목사 양성수 장로 총신 법인국장 권주식 목사 충청도에 사는 재경호남협의회 회장 윤익세 목사... 2018년 3월 1일 오전 11시 더라빌 1층 그랜드볼룸에서 총신대 재단이사 유태영 목사의 아들 유성봉 군과 신부 박연주 양이 대한교회 윤영민 목사의 주례로 결혼예식을 올렸다. 성경은 말씀한다.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20-25 2018-03-05
    • G.QT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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