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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기승 배광식 박사 헌법해설서
- 2025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12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주도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87일 만이다. 이에 따라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직무에 복귀했다. 헌법재판소는 2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한 총리 탄핵 심판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김복형 재판관 등 5명은 기각 의견을, 정계선 재판관은 인용 의견을 냈다.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 등 2명은 각하 의견을 냈다. 당초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재판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각 나라 헌법을 보면 그 나라가 과거 어디서 넘어졌고 어떻게 다시 일어섰나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헌법은 역사 기록 보관소와 닮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헌법’이란 말 대신 ‘기본법’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1949년 제정된 기본법 1조 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모든 국가의 권력은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20조는 국가의 정체(政體)·주권·권력 분립·정부 구성 원칙을 규정하고 20조 4항에선 ‘이런 국가 질서를 파괴하는 자(者)에 대해 다른 대응 수단이 없을 때 독일 국민은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국민 저항권을 이렇게 헌법에 확실하게 못 박은 사례는 독일뿐이다. 히틀러 나치 시대 같은 헌정(憲政) 파괴와 인권 유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것으로도 불안했던지 ‘기본법 1조의 인간 존엄성과 20조 국가 구성 원칙 등에 어긋나는 기본법 개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세계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1919년 헌법학의 세계 권위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게 바이마르 헌법이다. ‘노동 3권’ ‘양심적 병역 거부 권리’ ‘예술가의 저작권 보호’ 등 진보적 사상이 망라된 ‘호화로운’ 헌법이었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총리가 수시로 교체되는 정치 불안정에 시달렸고 대통령에게 부여한 헌법 48조 비상대권이 히틀러 집권의 문(門)을 열어주는 역설(逆說)을 낳았다. 기본법은 후임 총리를 먼저 선출하지 않고선 현직 총리를 불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설적 불신임 제도’를 도입해 정치 안정을 이뤘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 한 나라 경제 부흥은 정치 안정이 뒷받침해 가능했고, 정치 안정은 헌법의 결함을 적극적으로 보수(補修)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87년산(産) 헌법을 조종할 면허와 능력을 가졌던 대통령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대(代)가 끊겼다. 그 후 대통령들은 오토바이 운전하는 2종 원동기 면허증을 따고 대형 화물 트럭을 몰았으니 나라가 성할 리 없다. 윤석열을 운전석에서 끌어내리고 이재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라에 헌법 전문가라곤 유진오(俞鎭午) 고려대 교수 단 한 사람뿐이었던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제헌의회는 트럭 짐칸을 타고 출근해 아침 10시부터 자정까지 헌법 조문에 매달려 6월 1일 헌법 제정에 들어가 7월 12일 나라의 설계도인 제헌 헌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87년산 헌법으로 정쟁을 일삼는 우리 대한민국 현실은 그 헌법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듯 우리 총회를 위해 2019년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 목사와 호남의 별 한기승 박사가 협력해 교단 헌법해설서를 저술했다. 서문에서 그 입장과 내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헌법해설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헌법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기초하여 장로교회의 표준이 되는 교회헌법을 제정하고 시행함으로 개혁교회의 특징인 헌법주의(constitutionalism)를 지향하여 왔습니다. 교회의 목양이 근육이라면 교리와 정치는 교회의 골격과 같은 것입니다. 근육과 골격이 붙어 세워져야만 온전한 몸이 되듯이 주님의 몸인 교회도 목양과 정치가 바르게 세워지고 시행되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중략)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선교 초기부터 교회헌법 제정을 위해 여러모로 심혈을 기울여 왔음을 보게 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1907년)시에 신경과 규칙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만국장로회헌법을 번역하는 등 수많은 노력 끝에 드디어 제11회 총회(1922년)에서『죠선예수교쟝로회졍치』가 채용 가결되었습니다. 그 후 총회는 수차례 역동적인 헌법 개정을 통해 목회 현장을 고려한 법 적용의 적합성을 높여 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 직원들에게 있어서 헌법의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법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해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략) 본 헌법해설서는 제94회기의 헌법 해설의 방향을 기초로 하여 본 교단의 헌법 해설과 개정을 위해 노력해 오고 목회하면서 헌법을 적용해 본 경험들과 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넣어, 실제적이며 학문적인 해설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본서는 헌법의 해석을 돕는 참고 도구일 뿐입니다. 따라서 해석에 있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략) 본서는 교회 헌법의 분류(신조, 성경 소요리문답, 성경 대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중에서『정치』와『권징조례』만을 해설하였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서명에서『헌법』이란 좁은 의미 『교회정치, 교회권징』을 의미합니다. 정치 부분은 최근까지 헌법 개정의 결과와 총회 결의를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권징조례의 해설은 절차법적인 성격으로 그 적용을 알기 쉽게 해설하였습니다. 헌법 전문과 함께 해설을 구분하여 편집하였으며 완역본「교회 정치문답 조례」의 문답번호를 함께 수록하여 참조 하였습니다. 권징서식을 수록함으로 실제적인 필요에 부응하였고 색인표를 통해 본서의 주요 내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중략) 오늘날 세계 개혁교회는 순전한 칼빈주의의 신학을 갖고 성장한 한국 장로교회를 놀라운 눈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교회 헌법을 잘 지키고 발전시키며 목회의 구조와 질서를 교회 헌법 안에서 잘 구현할 때 더욱 큰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본 해설서는 2017년 9월 18일 제102회 총회에서 정치 및 권징조례 개정안과 어린이세례 관련 내용을 헌법적 규칙과 예배모범에 포함하여 개정하기로 결의하고, 전국 노회에 수의한 결과를 2018년 9월 10일에 회집된 제103회 총회에서 공포함에 따라, 2015년 5월에 발행한『헌법해설서』를 개정 증보판으로 발간하게 됐습니다. -저자서문 중에서 저자소개 배광식 박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77회) 목회학,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스코틀랜드 Aberdeen 대학원에서 장로교 교회사,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Ph.D) 장로교 직제를 연구하였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8년) 정치·헌법 강의를 하였고 대신대학교에서(10년) 강의전담 교수를 역임하였다. 전, 총회 헌법해설집 발간 위원회(서기), 총회 헌법개정 위원회 위원장, 총회 재판국장, 총신대학교 재단이사로 있었다. 현, 총회 세계교회 교류협력위원회 전문위원장, 울산 대암교회(25년) 원로목사. 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 총장 저서 | 장로교 정치 통전사(2011) 공역 | JA 하지 저. 교회 정치문답조례(2011) 공저 | 헌법해설서(2015) 개혁교회 신앙고백(2017) 한기승 목사 개신대학원 대학교 M.Div.eq (82회)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eq (102회)에서 목회학,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LL.D) 법학을 연구하였다. 전, 총회 헌법개정위원회 부위원장, 총회 공천부 및 정치부 서기, 총회 재판국원,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광주지방 검찰청 형사조정위원으로 있었다.광신대학교 강의전담 교수 현, 광주중앙교회 원로목사. 저서 | 비전의 사람 영광의 가문(2010), 믿음의 사람 복된 가문(2013) 공저 | 교회 법률상식(2014), 교회재판 이렇게 한다(2015), 개혁교회 신앙고백(2017) 등이 있다. 목차 저자서문 6 교회 헌법의 분류 10 헌법 서문 12 제1부 정치 교회 정치의 의의 20 헌법정치의 기본 체계 22 총론 23 제1장 원리 45 제2장 교회 60 제3장 교회 직원 71 제4장 목사 90 제5장 치리장로 115 제6장 집사 129 제7장 교회 예배 의식 137 제8장 교회 정치와 치리회 148 제9장 당회 158 제10장 노회 184 제11장 대회 206 제12장 총회 216 제13장 장로 집사 선거 및 임직 228 제14장 목사 후보생과 강도사 258 제15장 목사 선교사 선거 및 임직 276 제16장 목사 전임 307 제17장 목사 사면 및 사직 312 제18장 선교사 322 제19장 회장과 서기 327 제20장 교회 소속 각 회의 권리 및 책임 337 제21장 의회 341 제22장 총회 총대 358 제23장 헌법 개정 363 제Ⅱ부 헌법적 규칙 제1조 미조직 교회 신 설립 370 제2조 교인의 의무 372 제3조 교인의 권리와 소원 375 제4조 주일 예배회 378 제5조 학습 383 제6조 성례 384 제7조 교회의 선거 투표 387 제8조 무임집사 391 제9조 무임장로 392 제10조 권찰 394 제11조 혼 상례 395 제12조 병자에게 안수 397 제13조 문서비치 398 제Ⅲ부 권징 조례 제1장 총론 402 제2장 원고와 피고 407 제3장 고소장과 죄증 설명서 417 제4장 각 항 재판에 관한 보통 규례 421 제5장 당회 재판에 관한 특별 규례 440 제6장 직원에 대한 재판 규례 445 제7장 즉결 처단의 규례 456 제8장 증거조 규례 465 제9장 상소하는 규례 479 제10장 이의와 항의서 512 제11장 이명자 관리 규례 516 제12장 이주 기간에 관한 규례 522 제13장 재판국에 관한 규례 525 제14장 치리회 간의 재판 규례 550 제Ⅳ부 권징 사례별 해설 555 제Ⅴ부 권징 서식 675 부록 색인표 721 책 속으로 교회 헌법의 분류 실정법으로 교회 헌법은 크게 신조, 성경 소요리문답, 성경 대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 등이다. [신조]는 12항목으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교리적 표준으로써 교회의 직원들이 승인해야만 하는 신경과 신앙고백이다. [성경 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문답식으로 밝히 해석한 책으로 전통적인 교회 교육의 방식으로 서구교회에서는 ‘캐터키즘’(catechism)이라고 한다. [정치]는 교회의 기본적 정치구조, 직원의 인사(人事), 교회의 조직과 관리에 관한 실체적이면서도 절차적인 법이다. [권징 조례]는 교회의 권징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소송법이다. [예배 모범]은 교회의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개괄적이고 포괄적인 법이다. 장로교회는 성경적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장로교회는 역사적으로 교회의 근간을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고 그 법에 기초하여 교회를 다스렸다. 장로교회가 채택한 헌법주의(Con-stitutionalism)는 1인 독재나 개인주의와 독립주의를 통한 ‘인(人)의 지배’를 배제하고 헌법에 근거하여 교회를 다스렸다. 그러나 교회에서 말하는 헌법은 국가의 헌법(Verfassung, consti-tution)처럼 교회의 질서를 규정하는 기본법만을 규정하지 않았다. 국가의 헌법은 국민의 공동생활의 질서를 구성하는 기본법이다. 이 기본 헌법 밑에 수많은 법률과 규칙을 통해 국가의 질서와 행정을 구현하고 있다. 그 반면에 교회 헌법은 교회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방법인 정체(政體, polity)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절차법 내지 행정법까지 다양하게 교회의 신앙과 사역 그리고 생활을 규율하고 있다. - 11쪽 교회 헌법의 분류 중에서 헌법서문 본 총회의 헌법은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시대(1901~1906)에 다음과 같이 헌장에 관한 준비를 하였다. 1901년 만국장로회 헌법 번역위원을 선정하였고, 1902년에는 헌법 준비위원과 노회 규칙위원을 선정하였다. 1904년에는 웨스트민스터 헌법 중 일부를 역간하여 소요리문답 5천부를 출판하였다. 1905년에는 교회 신경을 공의회가 의정 채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노회)시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것이 최초의 헌장이었다. 1912년 9월 1일 평양여자성경학원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된 후 1917년 9월 1일(토요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회집된 제6회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헌법 책을 번역하여 총회가 작정한 대로 편집하여 국한문으로 출판하였다. (중략) 2017년 9월 18일 익산 기쁨의교회에서 회집된 제102회 총회에서는 제101회기 헌법개정위원회가 제안한 정치 및 권징조례에 대한 개정안과, 유아세례 연구위원회에서 보고한 어린이세례 관련 내용을 헌법적 규칙과 예배모범에 포함하여 개정하기로 결의하고, 전국노회에 수의한 결과를 2018년 9월 10일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회집된 제103회 총회에서 공포함에 따라, 2015년 5월에 발간한 헌법해설서를 개정 증보판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이에 그간 수고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이 헌법 책이 총회 안의 모든 지교회와 기관들에서 사용될 때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내리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17쪽 헌법서문 중에서 성경은 말씀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33-34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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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기승 배광식 박사 헌법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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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쟁과 재난의 시대 장창수 목사의 질문
- 한 젊은 작가는 한 신문 칼럼에서 기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기도한다. 한없이 추락하던 어느 날엔 위로를 줄 단어를 찾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말이 하늘에 닿기 전, 우선 내 귀와 가슴에 닿기를 원한다. 시인 ‘타고르’는 “고통을 멎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성공의 은혜가 아니라 “실의에 빠졌을 때 당신의 귀하신 손을 잡고 있음”을 알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 작가로 큰 업적을 남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읽고 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위해 기도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바란다. 그렇듯 대구 대명교회를 우뚝 세운 원숙(圓熟)한 장창수 목사는 모든 문제의 답과 해결은 하나님의 질문에 있다는 글을 썼다. 삶과 신앙의 자리를 빛내는 하나님의 열여섯 가지 질문! 모든 문제의 답은 질문에 있다. 질문하는 이의 의도를 정확히 알 때 우리 인생에 찾아온 문제의 답이 풀린다. 우리는 인생이 던지는 질문들에 유연하기보다는 주저하고 고민하며 번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등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질문부터, 갑작스런 사고나 죽음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까지 끝없이 몰아치는 인생의 질문들에 넉다운되기 일쑤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고 같은 질문에도 매번 당황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왔고, 똑 부러지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일까? 왜 답을 찾지 못하는가? 장창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음의 정수를 전하는 일에 소명을 둔 목회자요, 설교가다. 그는 변질되지 않는 원초적 복음만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그의 설교 속에는 한 영혼을 향한 목자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 긴박한 순간 하나님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1. 관계를 지속하는 ‘회복의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10). 2. 견고한 삶을 위한 ‘믿음의 질문’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창 16:6-11). 3. 존재의 의미를 깨우치는 ‘정체성의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2:24-32). 4. 본질을 붙드는 ‘사명의 질문’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 4:1-9). 질문이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5. 절망을 이겨 내는 ‘희망의 질문’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1:11-19). 6. 간절함을 이루는 ‘소망의 질문’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5-15). 7. 은혜를 배우는 ‘용서의 질문’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1). 8. 참된 고백을 요구하는 ‘결단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7). 질문하는 이를 알면 답이 보인다 9. 신실한 마음을 묻는 ‘사랑의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20). 10. 창조주를 바라보게 하는 ‘고난의 질문’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막 4:35-41). 11.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동행의 질문’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1-18). 12. 능력의 주를 의지하는 ‘기적의 질문’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1-11). 답은 언제나 질문 속에 숨겨져 있다 13. 하나님의 때를 이루는 ‘약속의 질문’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창 18:9-15, 21:5-7). 14. 근심을 안심으로 채우는 ‘돌봄의 질문’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눅 12:22-32). 15. 무모함을 쓸모 있게 하는 ‘확신의 질문’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눅 5:17-26). 16. 성숙한 믿음을 이루는 ‘긍휼의 질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0-37). 하나님은 인생들이 실패하고 힘들고 도저히 불가능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찾아오신다.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이 만든 세상 종교와는 다른 점이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라는 문장은 우리 기독교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거나 문제 있는 인생을 찾아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신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수많은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복과 은혜를 주기 위한 첫 단초를 질문으로 시작하셨다. 신학을 시작한 초기에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면서 왜 질문을 하시는가’였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왜 문제와 아픔을 한 번 더 확인시키며 힘들게 하시는가’였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말씀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질문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질문 속에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와 답이 포함되어 있으며, 참으로 따뜻한 하나님의 마음과 위로 그리고 그분의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과 재난으로 충격과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를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민과 묵상 중에 인간의 절망의 현장에 나타나 던지신 주님의 질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라보았던 시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하나님의 질문 속에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책망과 경고의 의미가 아니다. ‘네가 내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으니, 너를 찾아내어 벌을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긋난 길로 가는 자녀를 향해 ‘내 품으로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시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미 그 답을 알고 계신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앞으로는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바로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이다. 우리는 문제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만을 붙잡아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시고, 삶의 문제 자체를 당신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만난 하나님, 곧 ‘나에게 져 주시고, 문제 있는 나를 안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 순간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능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라고 모세에게 약속해 주셨다.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 당신의 지팡이를 손에 들려주시겠다는 것이다. 신앙의 모습은 ‘산을 오르는 신앙’과 ‘방주를 짓는 신앙’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산을 오르는 신앙이란, 신앙생활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신앙은 그 수준이 높아 보여도, 하나님의 심판 때에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물에 잠겼듯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방주를 짓는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이다. 맨땅에 방주를 지어도 비가 오면 방주는 떠오르듯이, 고난 가운데서 더욱 성장하는 신앙인 것이다. 우리의 형편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삶이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 바라느냐’고 물으신다. 우리가 이 음성을 마음에 새길 때,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지켜보시며,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때때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장신구로 전락시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도 그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예’라고 대답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답은 ‘네가 믿고, 네가 만나고, 네가 체험한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동시에 인생의 돌파구가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모태신앙이고 교회에 수십 년을 출석했다 해도 결코 구원과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때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푸신다. 인간은 절망에 빠져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간다. 오히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더 안타까워하신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며 먼저 찾아와 주신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더이상 절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신의 어려움과 형편을 모두 아심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곁에 가까이 계심을 믿는다. 이것을 경험하면 상황은 달라진 게 없어도 삶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게 된다. 20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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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쟁과 재난의 시대 장창수 목사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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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BOOK_법 앞에 선 한국교회
-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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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BOOK_법 앞에 선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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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제9장 주기도문의 끝 말씀
- 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1-13 ••••••••••• 2)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작자 미상의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에 빛을 비춰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시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사실 난 언제나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아멘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뿔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4-5 스바냐 선지자는 더욱 감동적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벧전 1:8)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요14:13-1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리석고 죄스러운 어떤 일들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1540년 루터(Martin Luther, 1483.11.10. ~ 1546.2.18.)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수였던 미코니우스(Friedrich Myconius, 1491.12.26. ~ 1546.4.7.)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루터에게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편지를 받자마자 간절한 내용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계속 더 살아있기를 명하고 싶다... 나는 주께서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위해서 당신을 살려 두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내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일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터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 당시 신중한 말이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일어난 일을 보면 루터의 이 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미코니우스는 이미 말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읽어주는 루터의 편지를 듣고 곧 소생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 후 미코니우스는 6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그는 같은 해(1546.2.18.) 죽은 루터보다 두 달(1546.4.7.) 가까이 더 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하게 함으로써 성경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점차 구절을 되풀이해 따라 말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구절을 따라서 반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압축한 한 마디, 아멘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멘이 기도나 찬송의 맺음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교훈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6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간구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아멘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핵 심 개 념 정 리] 1.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3. 어떻게 기도할 때 확신을 얻게 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2026-04-05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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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제9장 주기도문의 끝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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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나치에 항거해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앞선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가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7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크게 생각해서 일곱 번의 용서를 말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1-12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은혜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는가?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2026-03-29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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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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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 1)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7-9 ………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 3)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_이어령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에덴에 핀 꽃을 처음 보았을 때인가 최초로 이브의 살을 만져 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던 날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태양이 노을이 되고 노을이 어둠이 되는 처음 맞는 밤에도 공포에 떨었을 뿐 아담은 울지 않았다. 아담은 울지 않았다. 다만 아담이 운 것은 정확하게 천지창조 칠일 째 되는 날 아침 해가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아담은 그때 목놓아 울었으리라. 오랜 장마 끝 어느 맑게 개인 날 이불을 널어 말리듯 태양으로 고개 돌려 심호흡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가난을 미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천지창조의 일곱 번째 날 아침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손뼉을 치듯 너무 기뻐서 최초의 남자 아담처럼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일권 제 일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된 지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칼빈이 말하는 이 참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에서 깨우칠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병사 한 사람의 하루 배급식량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한 끼 먹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서 버리고 다이어트 한다고 살을 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한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고생하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만나처럼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넘치게 부어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내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한 생명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구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가?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무엇인가?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6-03-22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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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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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기승 배광식 박사 헌법해설서
- 2025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12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주도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87일 만이다. 이에 따라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직무에 복귀했다. 헌법재판소는 2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한 총리 탄핵 심판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김복형 재판관 등 5명은 기각 의견을, 정계선 재판관은 인용 의견을 냈다.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 등 2명은 각하 의견을 냈다. 당초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재판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각 나라 헌법을 보면 그 나라가 과거 어디서 넘어졌고 어떻게 다시 일어섰나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헌법은 역사 기록 보관소와 닮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헌법’이란 말 대신 ‘기본법’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1949년 제정된 기본법 1조 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모든 국가의 권력은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20조는 국가의 정체(政體)·주권·권력 분립·정부 구성 원칙을 규정하고 20조 4항에선 ‘이런 국가 질서를 파괴하는 자(者)에 대해 다른 대응 수단이 없을 때 독일 국민은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국민 저항권을 이렇게 헌법에 확실하게 못 박은 사례는 독일뿐이다. 히틀러 나치 시대 같은 헌정(憲政) 파괴와 인권 유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것으로도 불안했던지 ‘기본법 1조의 인간 존엄성과 20조 국가 구성 원칙 등에 어긋나는 기본법 개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세계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1919년 헌법학의 세계 권위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게 바이마르 헌법이다. ‘노동 3권’ ‘양심적 병역 거부 권리’ ‘예술가의 저작권 보호’ 등 진보적 사상이 망라된 ‘호화로운’ 헌법이었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총리가 수시로 교체되는 정치 불안정에 시달렸고 대통령에게 부여한 헌법 48조 비상대권이 히틀러 집권의 문(門)을 열어주는 역설(逆說)을 낳았다. 기본법은 후임 총리를 먼저 선출하지 않고선 현직 총리를 불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설적 불신임 제도’를 도입해 정치 안정을 이뤘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 한 나라 경제 부흥은 정치 안정이 뒷받침해 가능했고, 정치 안정은 헌법의 결함을 적극적으로 보수(補修)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87년산(産) 헌법을 조종할 면허와 능력을 가졌던 대통령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대(代)가 끊겼다. 그 후 대통령들은 오토바이 운전하는 2종 원동기 면허증을 따고 대형 화물 트럭을 몰았으니 나라가 성할 리 없다. 윤석열을 운전석에서 끌어내리고 이재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라에 헌법 전문가라곤 유진오(俞鎭午) 고려대 교수 단 한 사람뿐이었던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제헌의회는 트럭 짐칸을 타고 출근해 아침 10시부터 자정까지 헌법 조문에 매달려 6월 1일 헌법 제정에 들어가 7월 12일 나라의 설계도인 제헌 헌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87년산 헌법으로 정쟁을 일삼는 우리 대한민국 현실은 그 헌법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듯 우리 총회를 위해 2019년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 목사와 호남의 별 한기승 박사가 협력해 교단 헌법해설서를 저술했다. 서문에서 그 입장과 내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헌법해설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헌법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기초하여 장로교회의 표준이 되는 교회헌법을 제정하고 시행함으로 개혁교회의 특징인 헌법주의(constitutionalism)를 지향하여 왔습니다. 교회의 목양이 근육이라면 교리와 정치는 교회의 골격과 같은 것입니다. 근육과 골격이 붙어 세워져야만 온전한 몸이 되듯이 주님의 몸인 교회도 목양과 정치가 바르게 세워지고 시행되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중략)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선교 초기부터 교회헌법 제정을 위해 여러모로 심혈을 기울여 왔음을 보게 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1907년)시에 신경과 규칙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만국장로회헌법을 번역하는 등 수많은 노력 끝에 드디어 제11회 총회(1922년)에서『죠선예수교쟝로회졍치』가 채용 가결되었습니다. 그 후 총회는 수차례 역동적인 헌법 개정을 통해 목회 현장을 고려한 법 적용의 적합성을 높여 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 직원들에게 있어서 헌법의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법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해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략) 본 헌법해설서는 제94회기의 헌법 해설의 방향을 기초로 하여 본 교단의 헌법 해설과 개정을 위해 노력해 오고 목회하면서 헌법을 적용해 본 경험들과 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넣어, 실제적이며 학문적인 해설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본서는 헌법의 해석을 돕는 참고 도구일 뿐입니다. 따라서 해석에 있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략) 본서는 교회 헌법의 분류(신조, 성경 소요리문답, 성경 대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중에서『정치』와『권징조례』만을 해설하였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서명에서『헌법』이란 좁은 의미 『교회정치, 교회권징』을 의미합니다. 정치 부분은 최근까지 헌법 개정의 결과와 총회 결의를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권징조례의 해설은 절차법적인 성격으로 그 적용을 알기 쉽게 해설하였습니다. 헌법 전문과 함께 해설을 구분하여 편집하였으며 완역본「교회 정치문답 조례」의 문답번호를 함께 수록하여 참조 하였습니다. 권징서식을 수록함으로 실제적인 필요에 부응하였고 색인표를 통해 본서의 주요 내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중략) 오늘날 세계 개혁교회는 순전한 칼빈주의의 신학을 갖고 성장한 한국 장로교회를 놀라운 눈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교회 헌법을 잘 지키고 발전시키며 목회의 구조와 질서를 교회 헌법 안에서 잘 구현할 때 더욱 큰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본 해설서는 2017년 9월 18일 제102회 총회에서 정치 및 권징조례 개정안과 어린이세례 관련 내용을 헌법적 규칙과 예배모범에 포함하여 개정하기로 결의하고, 전국 노회에 수의한 결과를 2018년 9월 10일에 회집된 제103회 총회에서 공포함에 따라, 2015년 5월에 발행한『헌법해설서』를 개정 증보판으로 발간하게 됐습니다. -저자서문 중에서 저자소개 배광식 박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77회) 목회학,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스코틀랜드 Aberdeen 대학원에서 장로교 교회사,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Ph.D) 장로교 직제를 연구하였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8년) 정치·헌법 강의를 하였고 대신대학교에서(10년) 강의전담 교수를 역임하였다. 전, 총회 헌법해설집 발간 위원회(서기), 총회 헌법개정 위원회 위원장, 총회 재판국장, 총신대학교 재단이사로 있었다. 현, 총회 세계교회 교류협력위원회 전문위원장, 울산 대암교회(25년) 원로목사. 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 총장 저서 | 장로교 정치 통전사(2011) 공역 | JA 하지 저. 교회 정치문답조례(2011) 공저 | 헌법해설서(2015) 개혁교회 신앙고백(2017) 한기승 목사 개신대학원 대학교 M.Div.eq (82회)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eq (102회)에서 목회학,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LL.D) 법학을 연구하였다. 전, 총회 헌법개정위원회 부위원장, 총회 공천부 및 정치부 서기, 총회 재판국원,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광주지방 검찰청 형사조정위원으로 있었다.광신대학교 강의전담 교수 현, 광주중앙교회 원로목사. 저서 | 비전의 사람 영광의 가문(2010), 믿음의 사람 복된 가문(2013) 공저 | 교회 법률상식(2014), 교회재판 이렇게 한다(2015), 개혁교회 신앙고백(2017) 등이 있다. 목차 저자서문 6 교회 헌법의 분류 10 헌법 서문 12 제1부 정치 교회 정치의 의의 20 헌법정치의 기본 체계 22 총론 23 제1장 원리 45 제2장 교회 60 제3장 교회 직원 71 제4장 목사 90 제5장 치리장로 115 제6장 집사 129 제7장 교회 예배 의식 137 제8장 교회 정치와 치리회 148 제9장 당회 158 제10장 노회 184 제11장 대회 206 제12장 총회 216 제13장 장로 집사 선거 및 임직 228 제14장 목사 후보생과 강도사 258 제15장 목사 선교사 선거 및 임직 276 제16장 목사 전임 307 제17장 목사 사면 및 사직 312 제18장 선교사 322 제19장 회장과 서기 327 제20장 교회 소속 각 회의 권리 및 책임 337 제21장 의회 341 제22장 총회 총대 358 제23장 헌법 개정 363 제Ⅱ부 헌법적 규칙 제1조 미조직 교회 신 설립 370 제2조 교인의 의무 372 제3조 교인의 권리와 소원 375 제4조 주일 예배회 378 제5조 학습 383 제6조 성례 384 제7조 교회의 선거 투표 387 제8조 무임집사 391 제9조 무임장로 392 제10조 권찰 394 제11조 혼 상례 395 제12조 병자에게 안수 397 제13조 문서비치 398 제Ⅲ부 권징 조례 제1장 총론 402 제2장 원고와 피고 407 제3장 고소장과 죄증 설명서 417 제4장 각 항 재판에 관한 보통 규례 421 제5장 당회 재판에 관한 특별 규례 440 제6장 직원에 대한 재판 규례 445 제7장 즉결 처단의 규례 456 제8장 증거조 규례 465 제9장 상소하는 규례 479 제10장 이의와 항의서 512 제11장 이명자 관리 규례 516 제12장 이주 기간에 관한 규례 522 제13장 재판국에 관한 규례 525 제14장 치리회 간의 재판 규례 550 제Ⅳ부 권징 사례별 해설 555 제Ⅴ부 권징 서식 675 부록 색인표 721 책 속으로 교회 헌법의 분류 실정법으로 교회 헌법은 크게 신조, 성경 소요리문답, 성경 대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 등이다. [신조]는 12항목으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교리적 표준으로써 교회의 직원들이 승인해야만 하는 신경과 신앙고백이다. [성경 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문답식으로 밝히 해석한 책으로 전통적인 교회 교육의 방식으로 서구교회에서는 ‘캐터키즘’(catechism)이라고 한다. [정치]는 교회의 기본적 정치구조, 직원의 인사(人事), 교회의 조직과 관리에 관한 실체적이면서도 절차적인 법이다. [권징 조례]는 교회의 권징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소송법이다. [예배 모범]은 교회의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개괄적이고 포괄적인 법이다. 장로교회는 성경적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장로교회는 역사적으로 교회의 근간을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고 그 법에 기초하여 교회를 다스렸다. 장로교회가 채택한 헌법주의(Con-stitutionalism)는 1인 독재나 개인주의와 독립주의를 통한 ‘인(人)의 지배’를 배제하고 헌법에 근거하여 교회를 다스렸다. 그러나 교회에서 말하는 헌법은 국가의 헌법(Verfassung, consti-tution)처럼 교회의 질서를 규정하는 기본법만을 규정하지 않았다. 국가의 헌법은 국민의 공동생활의 질서를 구성하는 기본법이다. 이 기본 헌법 밑에 수많은 법률과 규칙을 통해 국가의 질서와 행정을 구현하고 있다. 그 반면에 교회 헌법은 교회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방법인 정체(政體, polity)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절차법 내지 행정법까지 다양하게 교회의 신앙과 사역 그리고 생활을 규율하고 있다. - 11쪽 교회 헌법의 분류 중에서 헌법서문 본 총회의 헌법은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시대(1901~1906)에 다음과 같이 헌장에 관한 준비를 하였다. 1901년 만국장로회 헌법 번역위원을 선정하였고, 1902년에는 헌법 준비위원과 노회 규칙위원을 선정하였다. 1904년에는 웨스트민스터 헌법 중 일부를 역간하여 소요리문답 5천부를 출판하였다. 1905년에는 교회 신경을 공의회가 의정 채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노회)시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것이 최초의 헌장이었다. 1912년 9월 1일 평양여자성경학원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된 후 1917년 9월 1일(토요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회집된 제6회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헌법 책을 번역하여 총회가 작정한 대로 편집하여 국한문으로 출판하였다. (중략) 2017년 9월 18일 익산 기쁨의교회에서 회집된 제102회 총회에서는 제101회기 헌법개정위원회가 제안한 정치 및 권징조례에 대한 개정안과, 유아세례 연구위원회에서 보고한 어린이세례 관련 내용을 헌법적 규칙과 예배모범에 포함하여 개정하기로 결의하고, 전국노회에 수의한 결과를 2018년 9월 10일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회집된 제103회 총회에서 공포함에 따라, 2015년 5월에 발간한 헌법해설서를 개정 증보판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이에 그간 수고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이 헌법 책이 총회 안의 모든 지교회와 기관들에서 사용될 때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내리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17쪽 헌법서문 중에서 성경은 말씀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33-34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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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기승 배광식 박사 헌법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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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쟁과 재난의 시대 장창수 목사의 질문
- 한 젊은 작가는 한 신문 칼럼에서 기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기도한다. 한없이 추락하던 어느 날엔 위로를 줄 단어를 찾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말이 하늘에 닿기 전, 우선 내 귀와 가슴에 닿기를 원한다. 시인 ‘타고르’는 “고통을 멎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성공의 은혜가 아니라 “실의에 빠졌을 때 당신의 귀하신 손을 잡고 있음”을 알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 작가로 큰 업적을 남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읽고 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위해 기도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바란다. 그렇듯 대구 대명교회를 우뚝 세운 원숙(圓熟)한 장창수 목사는 모든 문제의 답과 해결은 하나님의 질문에 있다는 글을 썼다. 삶과 신앙의 자리를 빛내는 하나님의 열여섯 가지 질문! 모든 문제의 답은 질문에 있다. 질문하는 이의 의도를 정확히 알 때 우리 인생에 찾아온 문제의 답이 풀린다. 우리는 인생이 던지는 질문들에 유연하기보다는 주저하고 고민하며 번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등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질문부터, 갑작스런 사고나 죽음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까지 끝없이 몰아치는 인생의 질문들에 넉다운되기 일쑤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고 같은 질문에도 매번 당황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왔고, 똑 부러지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일까? 왜 답을 찾지 못하는가? 장창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음의 정수를 전하는 일에 소명을 둔 목회자요, 설교가다. 그는 변질되지 않는 원초적 복음만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그의 설교 속에는 한 영혼을 향한 목자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 긴박한 순간 하나님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1. 관계를 지속하는 ‘회복의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10). 2. 견고한 삶을 위한 ‘믿음의 질문’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창 16:6-11). 3. 존재의 의미를 깨우치는 ‘정체성의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2:24-32). 4. 본질을 붙드는 ‘사명의 질문’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 4:1-9). 질문이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5. 절망을 이겨 내는 ‘희망의 질문’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1:11-19). 6. 간절함을 이루는 ‘소망의 질문’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5-15). 7. 은혜를 배우는 ‘용서의 질문’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1). 8. 참된 고백을 요구하는 ‘결단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7). 질문하는 이를 알면 답이 보인다 9. 신실한 마음을 묻는 ‘사랑의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20). 10. 창조주를 바라보게 하는 ‘고난의 질문’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막 4:35-41). 11.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동행의 질문’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1-18). 12. 능력의 주를 의지하는 ‘기적의 질문’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1-11). 답은 언제나 질문 속에 숨겨져 있다 13. 하나님의 때를 이루는 ‘약속의 질문’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창 18:9-15, 21:5-7). 14. 근심을 안심으로 채우는 ‘돌봄의 질문’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눅 12:22-32). 15. 무모함을 쓸모 있게 하는 ‘확신의 질문’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눅 5:17-26). 16. 성숙한 믿음을 이루는 ‘긍휼의 질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0-37). 하나님은 인생들이 실패하고 힘들고 도저히 불가능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찾아오신다.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이 만든 세상 종교와는 다른 점이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라는 문장은 우리 기독교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거나 문제 있는 인생을 찾아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신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수많은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복과 은혜를 주기 위한 첫 단초를 질문으로 시작하셨다. 신학을 시작한 초기에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면서 왜 질문을 하시는가’였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왜 문제와 아픔을 한 번 더 확인시키며 힘들게 하시는가’였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말씀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질문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질문 속에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와 답이 포함되어 있으며, 참으로 따뜻한 하나님의 마음과 위로 그리고 그분의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과 재난으로 충격과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를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민과 묵상 중에 인간의 절망의 현장에 나타나 던지신 주님의 질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라보았던 시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하나님의 질문 속에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책망과 경고의 의미가 아니다. ‘네가 내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으니, 너를 찾아내어 벌을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긋난 길로 가는 자녀를 향해 ‘내 품으로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시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미 그 답을 알고 계신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앞으로는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바로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이다. 우리는 문제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만을 붙잡아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시고, 삶의 문제 자체를 당신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만난 하나님, 곧 ‘나에게 져 주시고, 문제 있는 나를 안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 순간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능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라고 모세에게 약속해 주셨다.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 당신의 지팡이를 손에 들려주시겠다는 것이다. 신앙의 모습은 ‘산을 오르는 신앙’과 ‘방주를 짓는 신앙’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산을 오르는 신앙이란, 신앙생활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신앙은 그 수준이 높아 보여도, 하나님의 심판 때에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물에 잠겼듯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방주를 짓는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이다. 맨땅에 방주를 지어도 비가 오면 방주는 떠오르듯이, 고난 가운데서 더욱 성장하는 신앙인 것이다. 우리의 형편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삶이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 바라느냐’고 물으신다. 우리가 이 음성을 마음에 새길 때,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지켜보시며,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때때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장신구로 전락시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도 그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예’라고 대답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답은 ‘네가 믿고, 네가 만나고, 네가 체험한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동시에 인생의 돌파구가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모태신앙이고 교회에 수십 년을 출석했다 해도 결코 구원과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때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푸신다. 인간은 절망에 빠져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간다. 오히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더 안타까워하신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며 먼저 찾아와 주신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더이상 절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신의 어려움과 형편을 모두 아심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곁에 가까이 계심을 믿는다. 이것을 경험하면 상황은 달라진 게 없어도 삶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게 된다. 20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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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쟁과 재난의 시대 장창수 목사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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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BOOK_법 앞에 선 한국교회
-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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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BOOK_법 앞에 선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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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제9장 주기도문의 끝 말씀
- 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1-13 ••••••••••• 2)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작자 미상의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에 빛을 비춰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시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사실 난 언제나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아멘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뿔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4-5 스바냐 선지자는 더욱 감동적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벧전 1:8)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요14:13-1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리석고 죄스러운 어떤 일들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1540년 루터(Martin Luther, 1483.11.10. ~ 1546.2.18.)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수였던 미코니우스(Friedrich Myconius, 1491.12.26. ~ 1546.4.7.)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루터에게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편지를 받자마자 간절한 내용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계속 더 살아있기를 명하고 싶다... 나는 주께서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위해서 당신을 살려 두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내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일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터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 당시 신중한 말이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일어난 일을 보면 루터의 이 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미코니우스는 이미 말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읽어주는 루터의 편지를 듣고 곧 소생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 후 미코니우스는 6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그는 같은 해(1546.2.18.) 죽은 루터보다 두 달(1546.4.7.) 가까이 더 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하게 함으로써 성경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점차 구절을 되풀이해 따라 말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구절을 따라서 반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압축한 한 마디, 아멘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멘이 기도나 찬송의 맺음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교훈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6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간구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아멘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핵 심 개 념 정 리] 1.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3. 어떻게 기도할 때 확신을 얻게 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2026-04-05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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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제9장 주기도문의 끝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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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나치에 항거해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앞선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가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7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크게 생각해서 일곱 번의 용서를 말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1-12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은혜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는가?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2026-03-29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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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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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 1)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7-9 ………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 3)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_이어령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에덴에 핀 꽃을 처음 보았을 때인가 최초로 이브의 살을 만져 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던 날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태양이 노을이 되고 노을이 어둠이 되는 처음 맞는 밤에도 공포에 떨었을 뿐 아담은 울지 않았다. 아담은 울지 않았다. 다만 아담이 운 것은 정확하게 천지창조 칠일 째 되는 날 아침 해가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아담은 그때 목놓아 울었으리라. 오랜 장마 끝 어느 맑게 개인 날 이불을 널어 말리듯 태양으로 고개 돌려 심호흡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가난을 미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천지창조의 일곱 번째 날 아침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손뼉을 치듯 너무 기뻐서 최초의 남자 아담처럼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일권 제 일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된 지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칼빈이 말하는 이 참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에서 깨우칠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병사 한 사람의 하루 배급식량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한 끼 먹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서 버리고 다이어트 한다고 살을 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한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고생하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만나처럼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넘치게 부어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내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한 생명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구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가?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무엇인가?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6-03-22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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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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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셋째 기도
- 1)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22 ……… 2)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행 21:14 ………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 1:11 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이런 시가 적혀있다. 나는 하나님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약하게 만드셨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건강을 기도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허약함을 주셨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재능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기도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삶을 선물하셨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 1611-1691)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뻔 했던 조용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면 그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세상은 그가 실천한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통해 본보기가 된 것을 맛보지 못해 영적으로 좀 가난해졌을 것이다. 그에게 브라더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수도원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평수도사 라는 뜻이다. 그는 설교자도 아니었고 선생도 아니었고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도 아니었다. 본명이 니콜라스(Nicholas Herman)였던 로렌스는 항아리, 냄비, 포도주 통, 채소 더미의 수도원 부엌에서 사십 년을 보냈다. 그는 그 부엌에서 그의 생각과 행동과 온 생활을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는 기도생활로 만들었다. 그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못지않게 당근 껍질을 벗길 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별 볼일 없는 군인으로 전전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그는 절뚝발이가 되어 귀향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로렌스는 열여덟에 그리스도를 알고 믿은 뒤로 한 번도 자신을 버리신 적이 없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그는 처음에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한 은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는 갈멜 수도회의 평수도사가 되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은 엄격한 곳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욕망이 없었다. 성실한 로렌스가 마음에 든 수도원장이 그를 좀 더 나은 보직인 수도원 물품 구매 담당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상인들과 값을 놓고 승강이해야 하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그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일은 남들은 한사코 꺼리는 수도원 부엌이었다. 로렌스의 유일한 갈망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로렌스를 발견한 파리 추기경단의 서기였던 보포르(M. de Beaufort)가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일을 할 때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주님에게 봉헌하는 자세로 일하며 계속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을 마치면 그는 자신의 일과를 점검했다. 일과를 잘 수행했다는 판단이 서면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잘못한 점이 발견되면 그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는 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을 계속했다. 로렌스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하거나, 서두르거나, 실수하거나, 그리고 실망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보포르와 면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는 일하는 시간과 기도 시간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릇들이 덜걱거리고 음식물이 끓는 부엌의 온갖 소음 속에서 몇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다른 요구를 할 때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히 하나하나 다 들어줍니다. 나는 그 일을 무릎을 꿇고 거룩한 성만찬을 받는 자세로 행하면서 고요한 평정 속에 하나님을 소유합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에게 올라오는 기도를 천사가 접수해보면 잠언에서 “다오 다오”하는 즉 “주세요”(give me)가 수북하지 “고맙습니다”(thank you)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한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잠 30:15-16 주기문의 셋째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인데 여기에서 ‘뜻’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뜻에 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 29:29 하나님의 뜻에는 ‘감추어진 일’도 있고 ‘나타난 일’도 있다. 그러므로 ‘뜻이 이루어지다’ 할 때 하나님의 뜻은 두 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는 ‘감추어진 일’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을 따라 계획대로 일하신다고 말씀한다(엡 1:11). 그러므로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단 4:35). 우리가 하나님의 감추어진 일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는 ‘나타난 일’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를 규정한 법이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계시해주셨다(딤후 3:16-17).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사 8:20).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의 ‘내 아버지의 뜻’은 계시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지키고 따라야 한다. 욥은 하루아침에 망하고 병까지 들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불행에 욥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온갖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욥은 아내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욥 2:10 욥은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입술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셉은 형제들이 노예로 팔아넘겨 애굽에 오게 되었다. 그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하인이 되었다. 그는 잘 생기고 충직했다. 그런 그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끈질기게 유혹을 했다. 그러나 그는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며 말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 39:9 오히려 그 일로 그는 감옥에 갇혔다. 그럼에도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따랐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게 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시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3) 사도 바울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어떤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게 될 것이다. 2026-03-15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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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셋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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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둘째기도
- 1)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8 ……… 2)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롬 10:1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모라비아 교파는 초창기에 그들의 본산지인 체코슬로바키아의 헤른후트(Herrnhut)에 기도단을 두 개 조직했다. 두 기도단은 남자 기도단과 여자 기도단으로 이루어졌다. 각 기도단의 단원은 스물네 명씩이었다. 두 기도단은 매일 한 시간씩 한 명의 남녀 단원이 따로 떨어져서 교대로 기도했다. 그러니까 남자 한 사람이 남자 기도소에서 기도하고 여자 한 사람은 여자 기도소에서 한 시간씩 스물네 시간을 계속 이어서 기도했다. 매일 계속되는 이 남녀 기도자의 기도는 백년을 지속했다. 이 기도 기간에 모라비아 선교 운동은 크게 부흥했다. 해외에 세워진 선교 교회가 본국 교회보다 세 배로 성장했다. 모라비아 교파의 선교사들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에게 성경의 핵심 진리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는 영국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하고 미국에 감리교단을 설립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 효력이 없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기도 중심에 자기의 뜻과 소원을 둔다. 그러나 효력이 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기도 중심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둔다. 그러므로 신자의 중심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주기도문의 둘째 기도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란 무슨 뜻인가? 여기에서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갈망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5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다. 이 나라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통치하는 나라이다. 궁극적으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오고 있는 중이다. 모든 것이 변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 한다.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히 12:27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서게 될 것이다. 천사들의 나팔 소리가 들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다시 임하시는 날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게 될 것이다”(계 11:15). 우리는 날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소망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 2)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다. 3) 주기도문에서의 이 나라는 무엇으로 통치하는가? 이 나라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통치하는 나라이다. 2026-03-08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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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둘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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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첫째 기도
-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시 67:1-3 ……… 2)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6 ……… 3)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 노란 종달새라는 이름의 수우족 인디언이 이런 기도문을 남겼다.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내가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당신에게 언제라도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영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해주소서. 시편 기자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라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찬양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엡 3:14-15 하나님이 자연을 통하여 주신 일반계시와 성경을 통하여 주신 특별계시를 깨달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이 말씀에서 참 기도와 거짓 기도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기도이고, 거짓 기도는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을 구하는 대신에 우리의 소원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기도의 역사에 있어서 자기중심적인 기도는 별 효력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높이는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는 이렇게 말했다. 내 즐거움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영화롭게 하고, 모든 것을 그에게 드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간절히 사모하는 즐거움이고, 신앙이고, 행복이다. 내가 신앙을 가진 이후 나의 신앙은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준다. 나는 자신이 잘 되기 위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태도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말씀에서 어떤 기도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가? 우리는 이 말씀에서 참 기도와 거짓 기도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기도이고, 거짓 기도는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기도이다. 2) 어떤 기도가 효력이 있는가? 기도의 역사에 있어서 자기중심적인 기도는 별 효력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높이는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3) 어떤 태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태도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2026-03-01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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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첫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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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1장 기도
- 1)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62:8 ……… 2)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 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2008년 2월 8일 노스다코타(North Dakota)주 비스마크(Bismarck)에 있는 매리 대학교(the University of Mary)의 강당을 2,500명이 꽉 메웠다. 그것은 르완다 자기 나라에서 일리바기자(Immaculee Ilivagiza)가 1994년 르완다의 종족 학살에서 겪은 간증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대량 학살이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부활절 휴일에 그녀를 집에 오라고 권했다. 그러나 1994년 부활절 휴일인 4월 6일 주베날 하브야리마나 르완다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해 대통령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시간 만에 르완다 대량 학살이 시작됐다. 죽은 하브야리마나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정권을 쥔 다수파의 후투족이 조직적으로 소수파인 투치족을 표적 공격하면서 100일 동안에 약 100만 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집에 가지 못한 일리바기자는 다른 일곱 여자들과 함께 한 장로교 목사의 집으로 피신했다. 그들은 가로 90센티미터 세로 120센티미터의 반 평도 안 되는 욕실에서 91일을 숨어 지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투치족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사의 집도 수색을 당했지만 욕실에 숨은 그녀들은 발각되지 않았다. 신자였던 그녀는 공포에 떨며 안전을 비는 기도를 하면서 주기도문을 반복해서 암송했다. 절박한 상황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그녀의 관계가 강해질수록 그녀는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는 별 의식 없이 외우던 말씀에 회의가 들었다. 즉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는 말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지금 르완다의 투치족인 자신들에게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르완다의 후투족을 용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목사님에게 성경을 빌려 예수님에 관해 알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마침내 그녀는 성경이 사랑과 용서의 이야기들로 넘쳐난다는 것을 깨우쳤다. 그녀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하신 말씀과 성경의 다른 가르침들을 깊이 묵상했다. 마침내 그녀는 후투족이 저지르고 있는 것을 자신이 조절할 수 없고,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후투족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기도문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여론수렴이나 민원접수 수단이 아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8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뢰를 표현하고 늘릴 수 있는 수단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우리가 그를 의지할 때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단의 표현이 바로 기도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기도에 관해 이렇게 권면한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 5:14-15 성경의 약속과 명령에 따라 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의미하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죄를 고백해야 한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것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죄,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어긴 죄를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날마다 구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 요일 1:8-10 【핵·심·개·념·정·리】 1) 일리바 기자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는 가운데 어떤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가? 일리바 기자는 절박한 상황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그녀의 관계가 강해질수록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별 의식 없이 외우던 말씀에 회의가 들었다. 즉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는 말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2)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원하시는가?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뢰를 표현하고 늘릴 수 있는 수단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우리가 그를 의지할 때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단의 표현이 바로 기도이다. 3)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둘째, 믿음으로 기도해야 된다. 셋째, 기도할 때마다 죄를 고백해야 한다. 2026-02-22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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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1장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