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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3_ 개혁의 촛불
    Jan Hus at the Council of Constance. 개혁의 촛불 일본 자동차 공세에 밀려 맥을 못 쓰던 미국 자동차업계를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이아코카였다. 그는 일약 미국의 영웅이 되었고 그의 경영 철학과 경험은 세계에 물결을 일으켰다. 미국 내에서의 그의 인기는 너무도 대단해서 그는 워싱턴을 넘보는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즈는 칼럼까지 동원해 미국에 필요한 것은 일류 자동차 제조업자지 이류 정치가가 아니라고 호소했다. 『아니 여보게들 아이아코카가 정치를 할 모양이네 정치를 안 하겠다는 말이 영판 정치인 같은 어투로 말하고 있어』 요즘 정치 은퇴를 선언한 사람이 정치를 안 하겠다고 하는 말이 각 일간신문에 계속 실리고 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다. 위클리프는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운동은 영국에서 별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보헤미아에서 지지를 획득했다. 그 당시 영국 왕이 보헤미아 공주와 결혼을 했었다. 현재 체코슬로바키아인 그 나라에서 존 후스는 이탈리아의 종교개혁가 사보나롤라처럼 부패한 성직자들을 공격하는 설교를 했다. 성직자들은 화려한 옷에 달린 술을 휘날리며 말을 탔고 은으로 만든 화려한 색상의 곤봉으로 가는 길에 거추장스런 사람들을 쫓았다. 후스는 거침없는 비난들 때문에 이단으로 고소를 당해 콘스탄스에서 열린 공의회에 회부 되었다. 후스는 자신이 잘못 가르쳤다는 정죄에 대해 결코 그런 가르침을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위야 어찌 됐든 후스는 그걸 취소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후스는 눈을 껌벅거리며 도대체 결코 가르친 적이 없는 걸 무슨 수로 취소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후스는 거절했고 유죄 판결을 받아 화형당했다. 화형당하는 후스(예나 약전, 15세기 후반) 그 결과 보헤미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고 성직자들의 뺨은 디룩디룩했다. 개혁의 불빛은 아직 희미했지만 여러 구석에서 촛불들이 타고 있었다. 독일 라인강 계곡을 따라 일단의 조용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교회를 시작하지도 않았고 수도원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접촉을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그룹이 홀랜드에 있었는데 스스로를 『공동생활 형제』라고 불렀다. 그들은 늘 함께 살면서 물건을 함께 나누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르치는데 보냈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을 교육을 통해 이곳저곳에서 퍼뜨렸다. 특별히 학교와 대학교들을 통해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이 그룹을 통해 책이 한 권 나왔는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성경처럼 읽히고 있다. 이름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다. 어떤 형제가 썼는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토마스 아켐피스로 알려져 있다. 개혁의 촛불들이 희구하는 것은 하나님 교회의 사랑과 선의 회복이었다.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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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3-1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그늘
    면죄부 판매 죄의 그늘 교황의 아비뇽 유배는 단지 교회의 탐욕만을 증가시켰다. 이유인즉슨 돈을 그러모으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교황청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교황의 오랜 부재로 토지들을 이웃 통치자들이 마구 짓밟아 못 쓰게 만들었다. 아비뇽에 자리 잡은 교황 요한 22세는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옛것이든 새것이든 온갖 짓을 다 했다. 물론 세례, 결혼, 장례 등과 같은 정식 예식에 돈이 부과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둘로 나눠 두 무덤에 매장하는 것조차도 돈만 내면 교회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유럽 어느 곳에 있든 명색이 주교이면 임지를 받을 때 1년 치 봉급을 고스란히 교황한테 바쳐야 했다. 요즈음 학교 선생이 될작시면 이런 꼴같잖은 일이 있다는데 그 옛날 교황한테서 학교 이사장들이 배운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주교직이 공석이 된다면 교황은 얼씨구나 하고 그 자리를 메우려고 다른 주교를 이동시킬 것이다. 그러면 연쇄적으로 주교직이 한 자리씩 비게 되어 주교들이 전부 자리를 옮기게 될 것이다. 그런 뒤 교황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를 옮긴 주교들한테서 부임 첫해의 월급을 모조리 상납받게 된다. 돈을 버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면죄부를 파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죽은 사람이 연옥에서 괴롭게 지내야 되는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교황의 허가증이었다. 그 사상은 연옥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성자들의 공로를 보관한 보물창고를 교황이 소유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이 증서는 타인에게 양도도 가능했다. 가난과 결혼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요한 22세와 같은 탐욕 덩어리 교황한테 지청구를 늘어놓고 교황을 이단이라고 몰아댔을 때 분노의 치명적인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교황은 화가 지글지글 끓어올라 본보기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몇을 이단 심문관에게 넘겨 화형에 처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이탈리아의 교회 소유 토지를 탈취해가자 교황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들과 전쟁을 일으켜 정말 힘써 그러모은 돈을 태반이나 전쟁터에서 허비했다. 교황은 교회가 교회답게 행해야 될 일에는 쓸 돈이 거의 없었다. 또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런데 쓸 마음이 털끝만치도 없었다. 교황청이 아비뇽에서 70여 년 만에 로마로 돌아온 뒤 사치와 교만의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성직자들은 아주 품위 있게 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교회당과 그림과 책에 솔찬한 돈을 썼다. 그들은 카드놀이와 잔치에 아주 많은 돈을 활수 하게 지출했다. 그들은 값비싼 의상을 걸쳤고 예배 행렬을 화려하게 꾸몄다. 교황은 강력함을 내보이려고 멋진 의자를 군인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게 했다. 평신도들은 고등종교의 신앙에서 낮은 마법의 주술적 신앙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성만찬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마법의 부적처럼 사용했다. 기독교에 만연된 치명적인 죄와 마법이 교회의 생명을 비칠거리게 했다. 사치의 죄에 빠진 교회 개혁의 외침과 시도들이 유럽 전역에서 불끈거리며 나왔다. 밤이 깊을 대로 깊어 어두운 만큼 밝은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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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2-2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교회 침범
    서방교회의 분열을 상징화한 14세기의 세밀화 죄의 교회 침범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교황권을 튼튼하게 세운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도 죽고 교회와 세상에 신선하고 감동적인 영향을 미친 프란체스코도 죽었다. 이 세상은 악인만 죽는 게 아니라 의인도 덩달아 죽기 마련이다. 그들 모두가 인간이라 그런 것이다. 인간이 이렇듯 쓰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거듭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될 텐데. 어쨌든 이노켄티우스 3세와 프란체스코가 죽은 뒤 중세는 내리막길을 마구 달렸다. 일단 지어진 대 예배당은 변함없는 매력을 간직할 수 있었다. 돌로 된 건물은 비바람으로 인한 마모를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을 지닌 인간은 자기 특성을 잃을 수도 있다. 게다가 교회는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그것은 로마 제국을 침범했던 야만인들보다 훨씬 심한 피해를 교회에 끼쳤다. 그러나 야만인들이 로마인을 죄다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그 죄들이 교회의 모든 덕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중세의 아주 깜깜한 어둠의 시간 속에서도 신앙의 촛불이 최소한 깜박거리고는 있었다. 교회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교회의 특성과 힘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여러 종류의 시도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 즉 칠죄종(七罪宗: 죄의 일곱 가지 근원)은 오만 탐욕 사음 노여움 탐식 질투 나태 등을 이른다. 그 가운데 특별히 다섯 가지 죄가 교회를 냅다 쳐들어왔다. 이것들을 이런 모양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탐욕은 약탈 포대기를 싣고 달리는 말로 묘사된다. 탐식은 맛있는 음식을 통째로 삼키는 짐승으로 표현된다. 사치는 온갖 모양을 내느라 여념이 없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남자도 이 짓을 했다. 노여움은 연약한 처녀의 머리를 칼로 내리치려는 걸로 묘사된다. 교만은 자기 말에서 굴러떨어져 채이는 그림으로 나타난다. 약탈 포대기를 나를는 탐욕 교회의 탐욕은 국가와 아주 심하게 마찰을 빚었다. 국가도 역시 탐욕 덩어리였다. 싸움을 하면서 교회는 더욱 탐욕스러워져 갔다. 주교들과 수도원장들은 부자가 되었고 왕들은 질투로 배가 아파 몸살을 앓았다. 특별히 영국과 프랑스 왕은 강력한 국가를 구축하고 있는 참이라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면 누구에서도 그걸 얻거나 뺏을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5.6공 시절에 살고 있는 셈이었다고나 할까. 영국 왕은 교회 재산 축적에 도움을 줬고 프랑스 왕은 자기 나라의 어떤 돈도 로마로 보내는 걸 아주 싫어했다. 이에 발끈한 교황 보니파키우스 3세는 교회의 재산을 뺏어 가는 어떤 왕도 왕한테 교회 재산을 바치는 어떤 성직자도 출교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프랑스 왕은 아주 시덥잖다는 표정으로 교황을 생포해 프랑스의 한 궁벽 진 촌락으로 교황청을 이전시킴으로써 교황의 으름장에 답했다. 그 촌락 이름이 아비뇽이었다. 교황들이 7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로마에 부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305-1377) 이 시기를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 기간을 본 따 교황청의 바벨론 유수라고 한다.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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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2-07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9_ 새로운 수도원 운동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ermon to the Birds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새로운 수도원 운동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시대에 새로운 종류의 수도원운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바람을 탄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떨어져 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수도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탁발수도사(friar)니 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frater에서 온 말이다. 탁발수도사들은 함께 모임을 갖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백성들과 함께 보냈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지도자는 프란체스코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 아시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자 상인이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는 통설과 달리 프란체스코는 부자가 되기를 꺼렸다. 세상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사람들이 부를 얻고자 몸부림치며 싸우는 데서 비롯된다고 프란체스코는 믿었다. 그리고 교회의 어려움은 수도원들이 너무 부유해지고 너무 편안해져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데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가난 양』(Lady Poverty)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는 날마다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결코 가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는 화폐 가치가 있는 선물은 어떤 것도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는 입을 옷과 먹을 음식만 받았다. 그는 노동을 했지만 입고 먹는 것 이상의 임금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최상의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것을 위해서 구걸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입으려고 하지 않고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빌었다. 또한 그는 내일의 것이 아니라 그날에 필요한 오늘의 것만을 위해 구걸했다. 그는 몸의 건강조차도 자신의 소유에 속한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병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나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을 기꺼이 찾아갔다. 그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들이건 도시건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우리 찬송가 가사따나 아골 골짝 빈들에도 그는 복음을 들고 찾아갔다. 그가 활동하던 때는 도시들이 성장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모본을 따라 사는 실체를 몸소 보여주며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들이 되었다. 프란체스코는 물건 소유를 포기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소유한 부유함을 느꼈다. 프란체스코의 손과 발에 나타난 흔적들을 스티그마타 즉 성흔이라고 한다. 스티그마타(stigmata)의 복수형이다. 그 흔적들은 붉은 반점들인데 프란체스코가 그리스도의 상처들을 너무도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했다.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tigmatization 성흔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 프란체스코는 날아다니는 새들을 앉혀 놓고 행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방주 속에서 구원해 주셨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너희한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너희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둥지를 만들어 살라고 너희에게 큰 나무들을 주셨다. 너희는 누에를 치지도 않고 목화를 심지도 않았는데 너희에게 털옷을 입혀 주셨다. 그러므로 작은 자매들이여,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도록 해라』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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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2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교회교육
    논쟁하는 학자들 교회교육 언제는 쇠뜨기 풀이더니 이제는 소금이 유행이다. 건강에 소금물 복용이 그만이란다. 그것에 관한 강습회도 있고 가르침대로 따랐더니 효과를 봤다고 여기저기 퍼치는 소금 전도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에 반해 정신건강을 위한 방법 개발에는 늘 잠잠하다. 정신이 저마다 건강해서인지 아니면 생명 연장에 정신건강이 별 소용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다. 우리네 정신건강은 실로 나쁘기 그지없다. 검사가 검사한테 잡혀가 구속당하고 목사가 목사의 고발로 구치소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전직 대통령들은 외출도 못하고 자기들 보호를 위해 발사된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학들은 부정입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돈으로 해결하려고 사람들은 돈돈 하겠지… 아이를 체벌하는 수도사 배우고자 소년들이 선생인 수도사한테 몰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록이 있다. 소년들: 선생님 저희 어린이들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저희를 가르쳐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선생: 배울 때 매도 맞아야 할텐데? 소년들: 무식하기보다는 매 맞는 게 차라리 낫겠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괜히 매를 때리지 않으신다는 걸 저희는 알고 있어요. 선생: 너희는 무슨 일을 하니? 첫 번째 소년: 전 수도사가 될래요. 하루에 일곱 번씩 형제들하고 노래를 불러요. 그 사이에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요. 선생: 이 친구들은 무얼 하는지 알고 있니. 첫 번째 소년: 농부도 있고 양치기도 있고 소치기도 있고 사냥꾼도 있어요. 그리고 어부, 행상, 상인, 구두 만드는 사람, 빵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선생: 농부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농부: 아주 고된 일을 열심히 합니다. 새벽에 소를 몰고 밭에 나가 쟁기질을 합니다. 날마다 2천 평 이상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소년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는다. 소년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최고라고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선생: 자 조용히들 하려무나. 각자 서로를 도와주어라. 자기 일을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사제이든 수도사이든 평신도이든 군인이든 누구라도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해야 한다. 일에 힘쓰고 분수를 지키도록 해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점잖게 행동해라. 교회 종소리를 들을 때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서서 같은 음으로 찬송을 하고 죄 용서를 구하도록 해라. 교회는 어린 소년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학생들도 가르쳤다. 교회의 주도로 신학을 가르치기 위한 대학교들이 설립됐다. 대학교는 하나님에 관해 가르쳤고 우주를 이해시키기 위해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법학과 의학도 가르쳤다. 대학교 선생들은 석사나 박사로 불리웠다. 그들은 서로 논쟁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폈다. 학자의 논쟁이 줄어들고 눈치 보기만 한껏 늘어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단이 기승을 부리고 목회자들은 괜한 일에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닌다.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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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18
  • 성경이 삶이 되다_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주신 말씀_ 민수기 6: 24~27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화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몇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민 14: 22) 위 말씀은 가데스바데아 바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 선발된 정탐꾼 열두 명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정탐한 후 돌아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제사장 나라’ 계약을 파기하고 애굽의 노예로 살기를 선택하자 하나님이 보이신 분노의 말씀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열 하루면 가고도 남을 가나안 땅을 40년을 돌아서 가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한 출애굽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하나님은 40년간 변함없이 만나를 내려주셨고 저들의 의복을 헤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다. 항상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게도 수없이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은혜와 영광을 보면서도 쉽게 믿음에서 약해지고 약속을 잊어버리는 인생! 그는 바로 ‘나’일 수도 있다. 내 인생 모든 날은 차치하고 근래 3년간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적과 은혜만은 단 한 시도 잊어서는 안되리라! 아멘.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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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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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교회사 3_ 잠자는 곳
    Grave niches in the Catacombs of Domitilla, Rome. 잠자는 곳 마치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처음 본 제자는 베드로였다. 다른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지만 보지 못한 제자들도 있었다. 보지 못한 제자들도 그 사실을 믿었다. 그 이유는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말을 그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삶들이 변화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교회 안에서 살아 일하시는 그리스도가 없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던 제자들과 사람들도 바로 교회 안에서 살아 움직이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똑똑히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스스럼없이 믿을 수 있었다. Jesus and his twelve apostles, fresco with the Chi-Rho symbol ☧, Catacombs of Domitilla, Rome. 그리스도인들이 그린 초기의 그림들은 그들의 신앙과 신념을 드러내 준다. 이들, 그림들 가운데 많은 수가 카타콤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카타콤(catacomb)이란 로마 변두리의 땅 밑에 있는 너비 1m 가량의 꼬불꼬불한 미로같은 지하통로를 일컫는다. 카타콤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이었다. ‘카타콤’이라는 말은 ‘땅 밑에 잠자는 곳’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을 나타내는 ‘세미터리(cemetery)’ 역시 잠자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란 단지 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카타콤의 벽을 따라 죽은 사람의 유해를 안치할 수 있는 바위 턱 선반들이 들쑥날쑥 있었다. 그리고 그 카타콤 벽의 빈공간들에는 이름과 말과 그림 따위를 새겼다. 이 그림들에서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시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 않았다. 큰 물고기에서 나오는 요나를 보여 줌으로써 부활을 나타냈다. 마태복음은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예수님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시기 전에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카타콤 벽들에 그려진 그림들에서 예수님은 양들을 돌보는 선한 목자로 그려졌다. 그 그림에 나타난 목자의 얼굴은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화들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생기셨는지를 딱 부러지게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들로는 헬라어로 된 주님의 이름에서 딴 처음 두 문자들이 있다. 우리의 그에 해당되는 영어의 X자처럼 생긴 상형문자이다. 헬라어 R은 영어의 P 모양처럼 생겼다. 우리는 이 두 문자가 결합되어 있는 모양을 교회의 강대상 앞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The Chi-Rho symbol ☧ with Alpha and Omega, Catacombs of Domitilla, Rome 이 두 문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러한 문자를 머리글자 따위를 짜 맞추어 도안화했다고 해서 흔히들 짜 맞춘 글자 내지는 합문자(合文子)라고 한다. 또한, 헬라어 알파벳의 첫 번째 문자를 알파라고 하고 마지막 문자를 오메가라고 하는데 이 두 문자도 예수님을 나타낸다. 왜냐면 그는 처음과 나중이시기 때문이다. Stele Licinia Amias Terme 67646 비둘기는 성령과 평화를 상징한다. 물고기야말로 기독교의 아주 일반적인 상징이다. 이유는 첫째, 예수께서 떡 덩이와 물고기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기 때문이다. 셋째, 헬라어의 물고기라는 단어를 이룬 문자들이 ‘예수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들의 머리글자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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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5-23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교회사 2_ 비방 표적
    Perpetual adoration at the National Expiatory Temple of San Felipe de Jesus, Mexico City 비방을 받는 표적 예수님이 선하시고 친절하시고 위대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상상할는지 모른다.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신주 모시듯 하는 그들의 규칙을 깨뜨리셨기 때문에 애시당초부터 예수님을 꺼렸다. 일반 사람들은 유대에 무거운 멍에를 씌워 거칠게 다스리는 로마 정복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예수님이 그의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는 것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는 메시아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아서 로마인들을 몰아내실 수 없었을까.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셨다. 그는 적들에게 맞서기 위해 칼을 치켜들지 않으셨다. 그는 그의 왕국을 사람들의 마음속에다 세우셨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처절하지만 신바람 나는 반란의 전쟁으로 인도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그를 반대하는 대열에 줄을 섰다. 부자들은 또 다른 이유로 예수님을 두려워했다. 부자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규칙들을 삶아 잡수시든 볶아 잡수시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또한 그들은 로마의 통치 밑에서도 일이 잘되고 잘 먹고 살았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들 마냥 로마인들에 항거하는 전쟁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예수님이 부자들을 화나게 만든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랄대로 자란 하나의 관행에 대한 예수님의 통렬한 공격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에 큰 제단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는 예물로 동물들을 올려놓고 죽이는 돌이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참배하려고 성전에 올 때 희생제물로 바칠 황소나 염소나 비둘기들을 가지고 먼 길을 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객지에서 온 유대인들은 현장에서 희생제물들을 돈 주고 사야만 했다. 그들이 가져온 돈은 요새 말로 외화였기 때문에 현지 통화인 예루살렘 돈으로 환전해야만 했다. 짐승을 팔아 돈을 남기고 환전해서 차익을 챙기고 해서 부자들의 돈지갑은 늘 배고픈 줄을 몰랐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장사가 바로 성전 안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쏠쏠하고 재미있는 돈벌이 장소에 어느 날 예수님이 느닷없이 나타나시더니 사람들과 짐승을 내모시고 돈 바꾸는 상들을 엎어 버리셨다. 돈 보따리인 짐승들이 푸드득 날아가고, 음매 거리며 도망가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무서운 기세에 기겁하고 우왕좌왕했다. 예루살렘 동전들이 성전 바닥에 흩어졌다. 이 일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치솟는 분을 삭이지 못해 손을 부르르 떨고 발을 동동 굴렸다. 율법의 엄격한 옹호자들, 반란을 바라는 일반 대중들, 그리고 부자들은 예수님의 이름 소리만 들려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툴툴거렸다. 오래지 않아 자신에게 닥칠 일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나눌 자리를 마련하셨다.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그다음 날 부서지고 흘릴 그의 몸과 피라고 말씀하셨다. 그다음 날 예수님은 정죄를 받고 십자가 위의 사형을 선고받으셨다. 그가 죽으신 뒤 한 무덤에 안치되셨다. 제자들은 그들의 주님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다들 흩어져 도망갔다. 2020-05-16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5-16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교회사 1_ 교회의 시작
    An Eastern Roman mosaic showing a basilica with towers, mounted with Christian crosses, 5th century, Louvre. 교회의 시작 교회는 우리 영혼의 집이다. 어렸을 적 다니던 교회들은 대개 언덕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문 안에 있는 교회들을 빼놓고 서울 변두리에 있는 교회들은 시골 교회들과 다를 바 없이 동네를 굽어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그곳에 가면 톱밥 난로에서 비집고 나오는 따사로움이 있었고, 교회 전도사님이나 선생님의 벙긋거리는 입에서 술술 나오는 이야기의 신비로움과 즐거움이 넘실거렸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주는 군침 도는 과자봉지가 있었고, 가슴설레는 연극연습과 공연이 널려있는 잔치가 있었다. 더운 여름이면 교회만큼 서늘하고 재미진 곳이 있었을까 싶다. 왜냐면 교회만치 여러 개의 큰 창문과 높은 천정을 가진 건물을 1905년대 말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꼬마들이 어디 감히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어디서 그렇게 눈치 없이 킥킥거리고, 소리 지르고, 터럭만큼의 겁도 없이 자유스럽게 선생님을 대하고 같이 놀 수 있었을까? 이제는 도시, 마을, 어느 곳을 가도 교회의 뾰족한 탑이나 네모진 탑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곳에도, 복면을 한 젊은이들이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곳에도, 로마 병정의 모습으로 방패와 방망이를 쥐고 돌격을 외치는 곳에도, 조금만 눈을 들어보면 십자가 달린 교회들을 너나없이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집이며 어머니인 교회는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때가 되어서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 팔레스틴에서 태어나셨다. 신이신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인 인간을 통해 인간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이다. 예수님이 설흔 살이 되셨을 때 옛날 유대 선지자들 같은 종교 지도자가 한 사람 광야에 나타났다. 그는 하나님의 새로운 시대가 곧 올테니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다고 해서 세례 요한이라고 불리었다. 예수님도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 뒤 예수님은 팔레스틴 북쪽 지역인 갈릴리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셨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아주 즐겁게 들었다. 왜냐면 예수님은 괜스레 엄하고 복잡하게 발전된 유대교 율법의 사소한 규칙을 버리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짊어진 종교의 멍에를 가볍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종교를 보다 단순하고 느끼기 쉽게 만드셨다. 그렇다고 해서 식은 죽 먹듯 아주 쉽게 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용서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는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다. 많은 군중들이 그를 따랐고 그의 말씀에 기쁘게 귀를 기울였다. 심지어 예수님을 사울처럼 왕으로 삼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그의 주위에 적은 무리의 제자들을 모으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들’을 삼기 위해서 그들을 부르셨다. 그 제자들이 그리스도교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교회’를 나타내는 헬라어 에클레시아(ecclesia)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헬라어에서 교회를 나타내는 이태리어의 키에자(chiesa)와 프랑스어의 에글리즈(eglise)가 나왔다. 영어의 처치(church)는 스코틀랜드어의 커크(kirk)와 독일어의 키르크흐(kirche)처럼 ‘주님의 집(the lord’s)’을 나타내는 또 다른 헬라어 퀴리아콘(kyriakon)에서 나왔다. 2020-05-09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5-09
  • 이야기 세계교회사를 시작하며 - 바람의 눈
    Morella Santa Maria Window 바람의 눈 살을 에이는 고추바람이 봄빛에 스러져 흔적이 없게 되었다. 대신에 꽃바람이 꽁무니를 잇더니 이제는 찬 소소리바람과 싱그러운 벌바람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빛이 다사로운가 하면 어느덧 겨드랑이를 적시게도 한다. 이 바람과 빛이 동굴을 벗어나 집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문제가 됐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그들의 사는 집으로 따스하고 환한 빛은 들여보내고 차가운 바람은 막아줄 마땅한 투명체를 도저히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사람이라는 게 본디 꿈을 꿀 수 없다고 해서 넋 놓고 앉아 있는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질 못하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머리를 짜내도 해결책이 안 나왔다. 그것은 집 안으로 빛은 들어오되 바람은 되도록 적게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집 꼭대기에 초생달 모양으로 틈을 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논 틈새의 모양새를 본 사람들이 눈처럼 생겼다는 말을 하나, 둘 하기 시작하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그 틈새를 ‘바람의 눈’이라고 멋을 부려 부르게 되었다. 바람은 기어들어 오고 빛도 넉넉하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 집 위를 가늘게 튼 일명 ‘바람의 눈(wind’s eye)’이 줄어 창(window)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하여 과거를 알 필요가 있다. 이 과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거 역사에 접근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과거라는 거울 속에 비친 그들 자신의 모습에 흐믓한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식성과 취향에 맞는 어느 일정 기간과 인물을 선정하여 연구하려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거나 기리기 위하여 히죽거리며 그들의 생각대로 과거를 현재에 재현시켜 놓는다. 그런가 하면 금이 갔거나 결이 고르지 못한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때 우리의 찌그러지고 볼품없는 모습을 발견하고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게 될 것이다. 역사를 보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역사를 창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창문은 바깥을 바라보기 위해, 즉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창문을 통해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 역사로부터 현재 우리에게 유익한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이제 나는 지나온 교회의 이런저런 역사 내지는 이야기들을 바람의 눈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통해 오늘의 교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르침을 얻어내고자 한다. 교회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또는 그것을 둘러싸고 무슨 일들이 있었으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하는 등등의 것들을 베인턴(Roland H. Bainton)의 저서 ‘우리 선조들의 교회(The Church of Our Fathers)에 근거하여 일정한 주견이 없지만 얼마 간의 능력을 가지고 한껏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바람의 눈을 통해 선뜩한 바람은 적게 들어오고, 따스하고 밝은 빛은 많이 들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을 글을 시작하면서 해본다. 2020-05-02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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